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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INEMATHEQUE DE M. HULOT

아무것도 바꾸지 마라, 다만 모든 것을 다르게 하기 위해 본문

영화일기

아무것도 바꾸지 마라, 다만 모든 것을 다르게 하기 위해

Hulot 2011. 5. 12. 01:22


 

이번 '9주년 개관기념 영화제'에서 상영하는 브루노 뒤몽의 <하데비치>에서 폭력이 이 세계에서 자연스런 것이라 말하는 남자에게 여자는 ‘그럼 순수한 사람들은 어떡하지’라고 묻는다. 그는 정색을 하며 ‘사람들이 그들의 대표자를 선출하는 민주주의 사회에서 순수한 사람들이 있다고 생각해? 너 또한 세계에 가해진 굴종에 책임이 있는 거야’라 말한다. 고다르의 <그녀의 생을 살다>에서 나나가 자신의 손을 들어 '내가 손을 드는 것은 내 책임이야'라며 세상의 모든 책임을 말했던 것처럼, 이 순간 남자는 세계에서 벌어지는 전쟁과 폭력에 우리 모두가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의 손으로(혹은 선택의 잘못으로) 그런 전쟁과 폭력을 자행하는 이들에게 정치적 힘을 선사했기 때문이다. 이것이 우리의 삶의 조건이자 모럴의 조건이다. 삶에서 본질적인 것은 그런데 영화에서도 본질적이다. 영화에 포함된 모든 것이 또한 인간의 ‘생’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페드로 코스타의 신작은 의미심장하게도 ‘아무것도 바꾸지 마라’는 제목이다. 고다르가 브레송에게서 차용한 말로, 원래 의미대로 하자면 ‘아무것도 바꾸지 마라, 모든 것을 다르게 하기 위해서’라는 표현이다. 이는 브레송의 신비하고도 시적인 영화적 형식을 단순하게 요약한 것이다. 사물에 충실하면서도 변화를 모색하는 것, 혹은 변화하는 가운데 또한 사물에 충실해야 한다는 의미다. 어울리게 <아무것도 바꾸지 마라>는 영화의 에센스인 공간, 시간, 빛, 소리에 충실하다. 그러면서 이러한 요소를 활용해 삶의 고뇌와 사랑의 고독을 신비한 아름다움으로 보여준다. 

코스타는 그동안 점점 사라지는 것, 잃어버리는 것들에 시선을 보내는 작품들을 만들었다. 이른바 ‘퇴거退去의 영화’라 불리는 것들이다. 가령, <행진하는 청춘>에서 집이 없거나 집을 잃어버린 사람들은 마치 유령처럼 장소의 어둠, 그림자들 가운데 갑자기 깨어나 유랑을 벌인다. 그런데 여정이 거듭되면서 어쩐 일인지 사람들이 불어난다. 파괴된 집에서 출발해 그 여정의 끝에 이르면 점점 거대한 커뮤니티가 눈처럼 커져간다. 더 큰 커뮤니티를 갖고 싶은 욕망이 그의 영화를 만드는 힘이기도 하다. 그런데 그 여정에서 중요한 것은 단지 집을 찾거나 만남을 이뤄내는 것만이 아니라 헛된 미래로 투영된 시간에 저항하는 것이다. 여행은 끊임없이 과거의 시간을 거슬러 되돌아가며 앞으로 나아가야만 한다. 

9년의 시간이 흘렀다. 시네마테크가 개관한 게 2002년의 일이니, 횟수로는 올해가 벌써 10년째이다. 이 장소를 찾았던,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는 수 많은 사람들이 떠오른다. 어떤 분들은 오랫동안 얼굴을 볼 기회가 없는 사람들도 있다. 새롭게 이곳을 찾아온 이들도 있다. <하데비치>에서 수녀원장은 신에의 열정에 사로잡힌 소녀에게 세상에 나가 현실에서 새로운 것을 찾아보라 권한다. 수도원에는 언제든 돌아올 수 있다며. 서울아트시네마의 생일을 맞이하며 ‘아무것도 바꾸지 마라’는 말을 다시 한번 떠올린다. 다만 모든 것을 것을 다르게 하기 위해, 그리고 보다 충실하고 세계를 믿고 책임을 지기 위해서다. 언제든 다시 돌아올 수 있는 장소로 시네마테크가 여전히 남아 있겠다는 그런 의미이기도 하다. (김성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