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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INEMATHEQUE DE M. HULOT
중력과 은총 - 사자자리Le signe du lion 본문
올해 시네마테크의 선택작은 에릭 로메르의 장편 데뷔작 <사자자리Le Signe Du Lion>이다. 1959년에 제작됐지만, 제작자와의 불화로 3년이나 지나 누벨바그의 물결에 합류하지 못하고 뒤늦게 1962년에 공개됐고, 흥행에서도 실패한 저주받은 작품으로 남았다. 규칙과 예외의 테마로 고려한 작품이지만, 올해 에릭 로메르의 탄생 백주년을 맞아 그간 상영하지 못한 작품으로 선정하기도 했고, 다른 사연들도 있다. 2회 상영으로 내일(목) 첫 상영과 이어 28일 상영후에 이야기를 나눌 예정이다. 다음달 3월에 개최하는 ‘Tribute to Burno Ganz' 특별전에서도 브루노 간즈가 출연한 로메르의 영화 한 편을 상영할 예정. 특별히 <사자자리>는 파스빈더가 사랑한 영화로, 그는 데뷔작을 로메르(와 샤브롤에) 헌정했다. 고다르, 장 두세 등이 우정 출연하는데, 고다르는 역시 고다르다. 카탈로그에 쓴 리뷰.
“더러운 파리, 더러운 파리. 빌어먹을 도시…”
하루아침에 부랑자로 전락한 피에르는 생 제르맹 거리를 돌아다니다 다리 위에서 저주의 말을 내뱉는다. 그는 방금 전 카페의 손님들에게 구걸을 하다 물벼락을 맞은 부랑자를 지켜보았고, 퐁 네프 다리 위의 사랑스런 연인들을 스쳐 지나갔다. <사자자리>에서 우리가 먼저 보는 것은 이후의 로메르 영화에서 좀처럼 보기 드문 말과 인물, 상황들이다. 그렇다고 이런 장면의 배치가 비참의 극화를 겨냥한 것이라 말할 수는 없다. 도리어 우리는 인물, 그의 걸음걸이, 시선, 말들이 제각각 개별성으로 결합하여 극화를 방해하고 있다고 말해야 할 것이다. 그는 지금 극화된 비참으로 향하는 것이 아니라 - 비록 그가 전락의 길을 걸을지라도 - 새로운 길, 이를테면 운명(별자리의 운세)과 자본주의의 돈의 지배에 강제되면서도 특별한 힘의 실천으로 향하는 길, 뤼미에르적 관찰을 자극하는 예외의 길, 말하자면 영화의 능력에 대한 새로운 믿음의 길을 걷고 있는 중이다.
보헤미안적 예술가 피에르에게 파리는 그가 경제적 곤경에 처하기 전까지는 완벽하게 사랑스런 도시였다. 하지만 일단 돈이 궁해지자 쁘띠 부르주아적 생활의 영위가 불가능해지고, 바캉스를 떠난 친구들과는 대조적으로 파리의 이방인으로 홀로 남으면서 모든 것이 변모하기 시작한다. 삶의 전락은 극적 전개뿐 아니라 이미지의 표면, 즉 우리가 보는 세계의 표상, 사람들과의 유기적 관계, 이미지의 질서를 변경시킨다. 상품과 돈의 교환을 둘러싼 숏들의 연속, 이를테면 그가 마지막 남은 동전으로 시장에서 물건을 살 때의 장면들을 사례로 볼 수 있다. (자본주의적)교환이 불가능해진 이후, 우리가 보는 것은 한 남자의 파리 표류기이다. 그는 무의식적으로 걷고, 잠을 청할 자리를 찾고, 먹을거리에 눈길을 돌린다. 로메르는 탁월한 민속학자로서 장 루슈처럼(<사자자리>는 시네마 베리테 스타일에 근접한 일종의 다큐-픽션 영화로, 전문 배우와 거리의 사람들이 완벽한 조화를 이룬다), 혹은 도시 속을 깊숙하게 비집고 들어가 새로운 지도를 작성하려 했던 상황주의자들처럼 도시를 걷는 피에르의 눈으로 세계를 묘사한다. 그 여정은 그럼에도 끝없는 추락으로, 히치콕의 누명쓴 사람의 여정, 무르나우의 마지막 인간의 고난의 길, 혹은 육체의 물리적 발걸음이 영혼의 움직임과 은총으로 향하는 로셀리니적 인물의 길을 떠올리게 한다(아마도 여기에 물의 이미지를 더해 장 르누아르의 아나키스트적인 부뒤씨의 길을 더할 수 있을 것이다).
아무튼, 피에르는 파산과 추락을 거치고서야 예기치 않은 은총을 경험한다. 로셀리니의 영화가 그러하듯 기적을 수용하는 것은 영화의 예외적 힘을 받아들이는 데 있다. 파산과 추락은 피에르로 하여금 파리를 걷게 하고, 존재와 사물을 취하는 새로운 (카메라의)시선을 불러오고, 덕분에 우리는 더러운 파리를, 더러운 돌들을, 센 강의 물 표면위로 흔들리는 빛들과 조우할 수 있다.
<사자자리>의 제작에는 샤브롤이 참여했고, 배우의 부족을 메우려 누벨바그 동료들이 영화 곳곳에 등장한다. 베토벤 사중주를 LP판으로 반복해 청취하는 무리들 가운데 홀로 있는 고다르, 샤브롤의 배우 스테판 오드랑, 익명의 무리 속에 있는 (지난 해 세상을 떠난) 장 두세 등을 볼 수 있다. 1959년작이지만 시네마테크 프랑세즈에서의 우정시사를 제외하고는 1962년까지 공개되지 못했고, 개봉시에는 루이 사귀에르의 바이올린 소나타를 싫어한 제작자 때문에 범속한 음악이 삽입된 버전으로 재편집되어 일부 극장에서 공개됐으며, 만 오천 명의 관객이 찾은 상업적 실패작으로 남았다. 이후 1962년, 로메르는 ‘로장주 영화사’를 설립했고, <몽소 빵집의 소녀>로 ‘도덕 연작’이라는 새로운 길을 걷기 시작한다.
* 15주년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에서 시네마테크의 선택작으로 로메르의 데뷔작 <사자자리>를 상영한다. <사자자리>는 로메르의 영화 중 한번도 극장에서는 소개된 적이 없기에, 이번이 처음 상영하는 기회. 올해가 로메르의 탄생 백주년이기도 하다. 2.28일 금요일 저녁 7시 30분에는 영화 상영후에 이 작품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눌 예정이다.
사자자리
2.28(금) 저녁 7시 30 상영 + 토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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