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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INEMATHEQUE DE M. HULOT

릴레이 칼럼 1 | 극장 이야기 본문

상상의 영화관

릴레이 칼럼 1 | 극장 이야기

Hulot 2020. 4. 18. 20:34

“너도 한번 오노미치에 오렴.”

지극히 평범한 이 말이 지금까지 진행되던 <도쿄이야기>의 이야기-세계를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되돌려버린다고 생각한다. 영화속 그 말에 이끌려 내가 오노미치를 찾았던 이유이기도 하다. 도쿄를 방문한 시어머니는 노리코와 작별을 고하며 오노미치를 찾아오라 말하는데, 실은 무심한 운명이 먼저 그녀를 고향에 돌아가지 못하게 한다. 하라 세츠코가 연기한 노리코는 오노미치가 조금만 더 가깝다면 찾아뵙고 싶다며 죄송해 한다. 오즈의 <도쿄이야기>가 공개된 1953년 무렵, 오노미치는 실제로 도쿄에서 꽤 먼 곳이었다. 기차로 12시간을 가야 했다고 한다. 영화속 오노미치는 그러나 멀지만 가까운 곳이기도 하다. 시어머니의 당부는 생의 마지막 말이 되었고, 노리코는 그 유언을 따르듯 오노미치를 찾는다. 어쩌면 오노미치는 노리코가 너무 멀다고 했듯이 생의 저편이라 여긴 죽음의 장소, 말하자면 이계에 속하는 과거의 시간, 반복의 시간이 느리게 머물러 흐르는 곳일지도 모른다. 류치수와 하라 세츠코가 이른 아침 올랐던 정토사의 새벽 풍경이 그러하다. 이미 빔 벤더스가 오즈의 여정을 따라 오노미치를 방문해 카메라에 그곳을 담아낸 것이 2005년의 일이다. 내가 그곳을 찾았던 것도 오노미치의 새벽을 보기 위함이었다.


히로시마현 동남부에 위치한, 언덕 위에 올라서 바다를 내려다보면 통영이 떠오르는, 고양이가 골목마다 출몰하는 인구 14만명의 작은 마을. 헤이안 시대부터 항구 도시로 발전해, 바다가 향한 계단과 제법 오르막에 힘이 드는 비탈길, 다양한 먹거리가 있는 아케이드, 특별히 하야시 후미코 등 문객들의 발자취가 새겨진 한갓진 시골마을의 정경이 오노미치의 전부라 할 수 있다. 이곳에 머문 일주일, 그럼에도 발길이 가장 끌렸던 곳은 현대식으로 새로 개장한 역전 앞, 수제 나무간판에 이름을 새긴 ‘시네마 오노미치’라는 112석의 작은 단관극장이다. 먼저 이곳을 찾았던 후배가 선물한 영사기와 스크린, 관객을 그려넣은 청색의 노렌暖簾을 방문에 걸어두고는, 꼭 저 곳에 들리겠다고 생각했었다. 벚꽃이 아름답게 흐드러진 3월, 그곳에서는 ‘오노미치 영화제’가 열리고 있었다. 배우 사노 시로와 함께 오노미치 ‘영화의 거리’를 함께 걷는 행사가 열리기도 했다. 2008년 개관한 이 극장에도 사연은 있다. 2001년에 오노미치의 마지막 영화관이 폐관하면서, 촬영지 관광의 명성을 얻고 있던 마을에서 정작 영화를 볼 수 없는 터무니 없는 일이 길게 지속됐다. 영화관을 세우고자 결심한 이는 놀랍게도 영화 경험이 전무한 20대의 젊은이었다. 다들 무리라 말했다지만, 그녀는 사람들을 설득해 시민모금으로 NPO법인 ‘시네마 오노미치’를 설립했다.


이 작은 영화관도 최근 코로나 바이러스의 영향을 피해가지는 못했다. 매년 열리던 영화제가 취소됐고, 휴관은 피했다지만, 예정한 상영 라인업 일정이 변경되고, 영업시간도 단축하면서 관객이 2월에는 전년대비 40%, 3월에는 50% 감소했다. 위기를 넘기기 위해 오노미치 극장은 회원들에게 선매권인 연회비 구좌신청을 부탁하고 있다. 때마침, 지난 4월 6일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을 발기인으로 폐관 위기에 처한 전국의 미니시어터를 구제하기 위해 'SAVE THE CINEMA 미니시어터를 구하라!'라는 프로젝트가 출범했다. 만약 정부의 지원 없이 지금 상태가 6월까지 지속되면 문을 닫는 영화관이 속출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에, 많은 영화인이 동참해 정부에 긴급 지원을 요청하는 서명을 진행하고 있다. 사흘 만에 3만 6천명의 서명이 이어졌다.


오즈의 영화를 본 관객들 가운데 ‘오노미치를 찾아오라’는 말을 떠올리는 이들이 얼마나 있을지 모르겠다. 주목할 것 없는 범용한 장면이다. 게다가 그곳에 ‘시네마 오노미치’라는 작은 영화관이 있다는 사실을 아는 이들은 더 드물 것이다. 하지만, 어느날 오즈의 영화를 본 누군가가 벤더스처럼 그곳을 찾아갈지도 모르겠다. 그들 가운데 길을 잃은 이들도 있을지 모르겠다. 그 때에 여전히 마을 앞 동네 어귀의 커다랗고 든든한 고목나무처럼 역전 앞에 영화관이 있다면 좋겠다. 칠흑같은 어둠 속에서 난파를 경험한 이들은 드물다. 등대는 그래도 여전히 밤의 바다에 있어야 한다. 극장이 문을 닫으면 등대의 불빛이 꺼져 바다는 암흑이 된다고 한다. 지금 많은 곳이 그러하지 않은가. (04/10 서울아트시네마 뉴스레터 Seoul Art Cinema Newsletter)

김성욱 | 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램디렉터

* 매주 정기적으로 발송하는 서울아트시네 뉴스레터로 코로나 시대에 영화관을 주제로 영화관에서의 경험을 생각하는 글을 소개할 예정이다. 그 첫 번째 편지를 본의 아니게 쓰게 됐고, 벚꽃을 보며 오노미치 영화관의 기억이 떠올랐다. 이번 주에는(어제 금요일) 정성일 평론가의 글이 편지로 전달됐다. 계속 글을 이어갈 생각이다. 아래의 링크를 클릭해 메일 주소만 기재하면 매주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상영하는 영화들과 정보들을 메일로 받아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