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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INEMATHEQUE DE M. HULOT
돌아오지 못한 병사의 숨겨진 이야기- <병사의 발라드> 본문
1930년에서 50년대에 걸친 '스탈린 시대’에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변화는 1934년 소련 작가 대회에서 정식으로 채택되어 소련의 예술 전반을 지배한 창작방법으로서의 ‘사회주의 리얼리즘’이었다. 이 방법은 새로운 생활 스타일의 건설을 목표로 대담하게 과거를 부정해 유토피아적인 세계를 지향, 건설보다 파괴와 전위적인 실천을 시도했던 소비에트의 다양한 예술이념을 공식의 ‘사회주의 리얼리즘’으로 일원화해 예술가의 창작의 자유를 어렵게 했다. 가령 이 시기 예술적 표상은 군사 퍼레이드의 장식성과 별반 다르지 않은 것으로, 병력의 과시와 국위의 발양을 노린 떠들썩한 연극적 퍼포먼스에 가까웠다. 규율과 질서로 사회를 재편해, 가히 일상생활의 군대화가 진행된 시기였다. 변화는 1950년대 스탈린의 죽음과 후르시초프가 추진한 자유화 노선으로 시작되었다. 역설적으로 이 시기 다양하게 등장한 영화들은 전쟁으로 찢어진 애인들의 비극을 그린 <학이 날다>(1957)와 소년병의 귀환을 그린 <병사의 발라드>(1959)와 같은 전쟁영화들이었다.
그리고리 추흐라이의 <병사의 발라드>는 전쟁이라는 가혹한 현실에서 포착된 휴가병과 후방의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린 아름다운 영화다. 영화는 끝없이 이어지는 보리밭과 그곳의 구부러진 길 어귀에서 아들의 귀가를 기다리는 엄마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으로 시작한다. 시작은 그러나 이미 끝인 것으로, 그녀가 기다리는 19세의 소년 병사 알료사는 집으로 돌아오지 못한다. 내레이션이 이 가혹한 운명을 미리 고지한다. “그녀는 기다릴 사람이 없다. 그녀의 아들 알료샤는 전장에서 돌아오지 않았다. 그는 먼 타향 이국 지명의 마을에 묻혀 있다. 낯선 사람들이 그의 무덤에 헌화를 하며 러시아 병사이며 영웅이자 해방자로 그를 칭송한다. 하지만, 그녀에게 그는 단지 한 아들일 뿐이다.”
시작부의 이 내레이션은 영화의 내적 충돌을 미리 드러낸다. 제목의 ‘러시아 병사’는 사실 그저 한 어머니의 아들일 뿐이다. 영화는 전장에서 두 대의 적 전차를 파괴한 공로로 알료사가 6일간의 특별휴가를 얻는 것에서 시작해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만난 사람들의 사연을 들려준다. 알료사는 귀향길에 만난 사람들 때문에 귀가를 자주 늦춘다. 전선에서 이름 모를 병사에게 맡겨진 선물을 고향의 아내에게 전달하고, 아내 곁으로 귀향하는 부상병을 도와주거나 군용 화물열차에 몰래 탄 소녀를 만나 잠깐의 마음의 정을 나누기도 한다. 그럴수록 귀향은 늦어져만 간다. 그리하여 영화의 아름다운 순간은 이 짧은 유예의 시간이 허용한 사랑스러운 순간들과 재회의 격정에 있다. 목마른 소녀에게 줄 물을 구하다 화차를 놓쳐 버려 다시 철교 아래에서 재회하는 장면이나 영화의 마지막 어머니와의 짧은 포옹의 순간은 한 인간이 다른 인간을 만날 때의 기쁨이 얼마나 큰 감동을 주는지, 그리하여 이런 단순한 재회를 불가능하게 만드는 전쟁의 가혹함을 설교적이지 않으면서도 강력하게 전달한다.
특별히 기억하는 두 장면을 더하자면, 알료사가 병사에게서 전달받은 비누를 남편을 기다리는 아내에게 전달할 때이다. 사실 그녀는 다른 남자에게 몸을 맡기고 있던 것. 알료사는 처음 그녀에게 주었던 비누를 다시 챙겨 병사의 아버지에게 전달한다. 그 아내가 있던 아파트의 아이들은 그 순간 비눗방울 놀이를 하고 있다. 비누는 군의 귀중한 보급품으로, 집에 있는 여인들을 위해 병사들이 십시일반 걷었던 것. 이 장면은 전선에 있는 군인들과 부정한 여인의 대비를 보여주는 듯하다. 하지만 계단을 오르던 소녀가 아이들이 불어 날린 비눗방울을 신기한 듯이 손으로 잡을 때, 그녀의 아이 같은 순수한 행동과 이내 물거품처럼 터져 버리는 비눗방울이 묘한 아름다운 순간을 만들어낸다. 이는 사라지는 꿈에 대한 상징적인 표현일까? 혹은 전쟁이 앗아간 행복한 삶의 물거품 같은 순간들일까?
영화는 만약, 전쟁이 없었다면 쉽게 얻었을 평범한 행복한 순간들이 여지없이 사라져 가는 것을 포착한다. 소녀와 헤어진 알료사가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기차 안에서 그녀와 잠깐 보냈던 시간들을 회상할 때 스쳐 지나가는 이미지들은 이 영화의 소박하지만 강력한 힘을 예증한다. 짧은 귀향의 시간은 돌아옴에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라 결코 되돌릴 수 없거나 다시 돌아올 수 없는 이런 평범한 순간들을 비추는 데 있다. 전쟁의 비참함을 직접적으로 그려내지 않으면서, 영웅 병사의 보편에 가려 버린 (그의 어머니조차 알지 못한) 그의 숨겨진 시간을 되찾게 하는 것. 전시 하에 핀 이렇게 아름다운 첫사랑을 그린 영화는 그리 많지 않다. 아마도 더글라스 서크의 <사랑할 때와 죽을 때>를 떠올릴 수도 있겠다. (김성욱 프로그램디렉터)
*2014년 '모스필름 회고전' 카탈로그에 실었던 짧은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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