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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INEMATHEQUE DE M. HULOT
프레더릭 와이즈먼 전작 회고전 본문

“안녕하세요. 저의 영화들을 한국에서 상영하게 되어 매우 기쁩니다. 더불어 건강이 좋지 않아 여러분과 함께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 애석하게 생각합니다. 1967년 <티티컷 풍자극>(Titicut Follies)을 시작으로 저는 제도를 다룬 일련의 영화들을 만들어 왔습니다. 저는 다소 게으른 사람이기 때문에 겨우 일 년에 한 편 정도밖에 만들지 못했습니다. 프랑스에서 만든 영화가 몇 편 있지만 저의 영화 대부분은 미국의 삶을 그리고자 하는 목표로 제작되었습니다. 그 형태는 다르더라도 미국뿐만 아니라 세계 각국에 공통으로 존재하는 제도들, 이를테면 병원, 경찰서, 복지시설, 무용단과 같은 곳들을 통해 미국의 초상을 그리고자 했습니다. 복지시설처럼 일정 시간 이상 존재해 왔으며, 국가의 보조를 받으며, 일반적인 기관이 제공하는 재화와 용역을 누릴 여력이 없는 사람들을 조력하는 것을 주된 목표로 두는 곳이라는, 제도에 대한 저의 느슨한 정의에 들어맞는다면 무엇이든 다루었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저의 영화들은 미국 사회에 일반적으로 존재하고, 형태는 달리하더라도 세계 어느 곳에든 존재하는 제도들을 통해 현대의 삶을 바라보는 작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제 영화들에 관심을 가지고 보러 와주신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 프레더릭 와이즈먼
프레더릭 와이즈먼은 자신의 사명이 ‘좋은 영화’를 만드는 것이라 말한다. 좋은 영화는, 통념과는 달리 세상의 변화를 꾀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변화를 만드는 예술이다. 그는 “시설을 변혁하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에게 제대로 일하라고 메시지를 전하려고 의도하지 않습니다. 나의 일은 내가 현장에서 보고 들은 것을 토대로 가능한 좋은 영화를 만드는 것입니다.“라고 말한다. 좋은 영화는, 우리 안에서 무언가를 불러일으키는 영화다.

‘프레더릭 와이즈먼 전작전 Part 1’에서 소개하는 와이즈먼의 초기 시절, 즉 1960~70년대 시기의 핵심 주제는 미국 제도 내에서 규범이 강제되는 방식과 사회적 통제, 즉 감시와 처벌의 공간을 탐구하는 데 집중되어 있다. 이러한 관심은 오늘 상영하는 그의 데뷔작인 <티티컷 풍자극>(1967)의 정신병 수감시설을 배경으로 시작했다.
와이즈먼은 동시녹음이 가능하고 손에 들고 이동할 수 있는 경량 장비를 활용하여 가볍게 촬영하는 방식을 선택했는데, 이를 통해 그는 동시대 다이렉트 시네마와 시네마 베리테의 흐름에 자연스럽게 합류할 수 있었다. 데뷔작의 첫 번째 제작 동기는 무엇보다 영화 그 자체였다. 그는 다큐멘터리를 찍고 싶었고, 좋은 주제를 찾고 있었는데, 마침 수감시설을 선택한 것은 그가 법학 교수로서 학생들을 데리고 그곳에 간 적이 있었고, 그만큼 익숙했기 때문이었다.
1950년대 후반, 보스턴 대학교 로스쿨에서 강의를 시작한 와이즈먼은 학생들을 교실 밖으로 이끌어 교도소, 가석방 심사 위원회, 검시관 사무실, 정신병원, 법정, 사회복지 기관 등 다양한 현장을 직접 체험하게 했다. 그는 학생들이 졸업 후 곧 맞닥뜨리게 될 현실을 예견하며, 이러한 환경 속에서 스스로 처신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 중요하다고 믿었다.
그러나 영화 제작으로 나아가는 길은 이와는 다른 경로를 통해 열렸다. 1961년, 와이즈먼은 워렌 밀러의 1959년 소설 <쿨 월드>의 판권을 구입하고, 영화화 작업을 당시 1961년 단편과 장편으로 주목받던 셜리 클라크에게 의뢰했다. 그가 셜리 클라크가 연출한 영화 <커넥션>의 팬이었기 때문이다. 참고로, 서울아트시네마에서는 2020년 ‘뉴욕 인디의 두 사람’이라는 기획전에서 존 카사베츠와 셜리 클라크의 작품을 함께 상영했었다.
<쿨 월드>는 평단의 호평을 받았지만 상업적 성공에는 미치지 못했고, 와이즈먼은 클라크와의 불화-그 내용은 잘 알려져 있지는 않다-와 거의 모든 제작 자금 손실이라는 어려움을 겪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경험은 와이즈먼에게 영화 제작의 매력을 깨닫게 해주었고, 그 결과 그는 자신의 첫 작품을 만들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게 되었다. <티티컷 풍자극>은 미국 다큐멘터리 역사상 가장 논란이 된 영화로, 당시 미국 법원 명령에 의해 공식적으로 일반 상영이 금지된 유일한 다큐멘터리였다.
<청소년 법원>(1973)을 끝낸 후, 프레더릭 와이즈먼은 한 평론가와의 인터뷰에서 영화가 ‘대규모 사회적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는 힘’을 지닌다는 믿음에 대해 회의적인 입장을 드러냈다. 시작할 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지만, 그의 비관적 생각은 영화들을 만들면서 점차 생긴 것이다. 그 또한 초기에는 영화에서 보여준 것이 사회적 변화를 직접적으로 이끌어낼 수도 있다고 생각했지만, 이제는 그런 생각을 하지 않는다며 어떤 변화가 있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자신의 역할이 아니라고 말했다.
하지만, 많은 이들이 그의 영화를 보며 공립학교, 교도소, 병원, 군대 등 공공기관에서의 변화를 기대하거나 최소한 희망하지 않았을까. 법률 전문가로서 사회 정의 문제에 민감하고, 영화감독으로서 여러 공공 기관을 직접 관찰해온 그가 왜 사회 문제에 대한 ‘직접적인 처방’을 제시할 권리가 없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와이즈먼은 이렇게 답변했다.
“저는 약사가 아닙니다.”

1968년, 미국은 전쟁과 폭력, 그리고 사회적 분열의 소용돌이 속에 있었다. 베트남 반전 운동은 전국으로 확산되었고 4월, 마틴 루터 킹이 암살되자 전국적으로 시위가 폭발했고, 미국 사회는 돌이킬 수 없는 균열의 시대로 진입했다. 바로 이 폭력의 봄에 프레더릭 와이즈먼은 뉴욕영화제에서 <고등학교>를 공개했다.
6월에는 로버트 케네디가 또다시 암살되었다. 혼란한 정국 속에서 인종차별주의자이자 전 앨라배마 주지사였던 조지 월리스가 “인종 분리”와 “질서 유지”를 기치로 대선 출마를 선언했고, 리처드 닉슨은 ‘법과 질서(Law and Order)’를 슬로건으로 내세우며 치밀한 선거운동을 벌였다. 그해 8월, 시카고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벌어진 반전 시위는 경찰에 의해 극도로 폭력적으로 진압되었고, 이 사건은 와이즈먼이 다음 작품의 주제를 ‘경찰’로 정하게 되는 직접적인 계기가 되었고, 그 결과 <법과 질서>를 제작했다.
이 작품은 단순히 경찰의 폭력을 고발하는 영화가 아니다. 와이즈먼은 경찰과 동행하며 “정치적 의도나 논쟁적 동기에서 벗어나기로 결심하는 데 15분도 걸리지 않았다”고 말하며, 자신이 추구하는 시선의 거리를 분명히 했다. 그는 경찰의 폭력을 옹호하지도, 비난하지도 않는다. 대신 경찰이 매일 마주하는 근본적인 모순 — 공공의 질서를 유지하는 봉사자이자 동시에 억압의 도구로 존재해야 하는 이중적 역할 — 의 긴장을 탐구한다.

우리 모두가 학교에 대한 개인적 경험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 학교는 주목할 대상이지만, 특별히 교육 문제가 제대로 영화에서 다뤄진 작품이 많은 것은 아니다. 와이즈먼의 <고등학교>에 흥미를 느끼는 이유다. 그가 관찰하는 제도는 시설(물리적 장소)과 표준(운영체제)를 갖춘 곳으로, 특정 사회적 및 조직적 특성을 지닌 지리적으로 물리적으로 정의된 시설이다.
기관은 건물을 기반으로 하기에, 거기에는 내부가 있고 외부가 있으며 규칙과 표준화된 조직이 있고, 시설의 목적에 따라 각자 맡은 역할을 수행한다. 와이즈먼은 관찰을 위해 촬영을 한다고 말하는데( 그 반대가 아니라), 이때 학교를 촬영한다는 것은 대체 어떤 의미일까? 그 의문에 대해 생각해보려 한다.
10.18.(토) 오후 3시 40분. 고등학교 (1968) +
시네토크| 학교를 촬영하기: 제도적 규율과 관찰의 형식 진행│김성욱 프로그램디렉터
프레더릭 와이즈먼 전작 회고전
Frederick Wiseman: A Complete Retrospective - Part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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