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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INEMATHEQUE DE M. HULOT
"영화의 특성을 그리스 예술의 특성과 비교하는 것은 한가한 일이겠지만, 이 비교는 한 가지 점에서는 유익하다. 그리스인들이 분명 마지막까지 인정하기 힘들었던 특성, 혹은 가장 무시할 만한 예술의 특성이 영화에 의해 결정적인 것이 되었다. 그것이 바로 예술작품의 개선가능성perfectibilite이다. 완성된 영화는 일사천리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며 영화는 일련의 연속된 이미지로 구성된다... 따라서 영화는 개선가능성이 가장 높은 예술작품이고, 이 개선가능성은 모든 '영원한 가치'에 대한 급진적 거부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를 반대로 검증하면 이렇게 된다. 예술로 '영원한 가치'를 만들어내려 했던 그리스인들은 개선가능성이 가장 적은 예술 형태인 조각-조각품은 문자 그대로 한 조각이 전체가 된다-을 예술의 위계..
신비적인 모든 언어는 '통해서'를 필요로 한다. 보이는 것을 '통해서' 보이지 않는 세계에 접근할 수 있고, 타인을 '통해서' 다른 세계와 만날 수 있다. 영화는 그런 통하는 도구이다. 마치, 강의 흐름, 풍경, 바람, 심지어 인간의 얼굴을 '통해서' 세계를 보듯이, 우리는 영화를 '통해서' 세계를 본다.
우연히 공연장을 지나다 비를 피하려 들어선 순간 흘러나오는 노래에 취해 가만히 대기실에 앉아 음악을 들었다. 음악은 종종 시간을 거스르게 한다. 내가 아직 어릴때 긴 머리에 노래를 부르는 여자에게 빠졌던 적이 있었다. 옆에서 검은 코트에 긴 머리에 담배를 물고 기타를 연주하던 한 남자가 있었고, 난 그 자리에 있고 싶었기에 기타를 배웠었다. 그렇게 보았던 상상은 결코 실현되지 않았지만 가끔 그 노래소리들을 듣곤한다. 아니 그 소리들을 피하려곤 한다. 노래와 음악은 벽을 넘어서고 몸을 꿰뚫고 경계의 기슭으로 이끌기에. iPhone 에서 작성된 글입니다.
알랭 레네의 영화를 진정한 현대영화의 출발점이라 말하면서 종종 간과하는 것 중의 하나는 그가 프랑스 역사의 어두운 지대를 통과하며 세계 기억(홀로코스트, 히로시마, 알제리 전쟁)의 문제를 다뤘다는 점이다. 레네에게 중요했던 것은 기억의 지리정치학이다. 그는 전후 20년의 침울한 시기동안 프랑스인들이 기억상실증에 빠졌고,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기억의 계속적인 변경이 이뤄졌다는 점에 주목한다. 레네적 인물들의 무기력은 그들이 과거의 기억과 망각의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예외적인 인물들, 즉 수용소의 시간에서 되돌아온 자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의 고통은 망각만이 아니라 실제로 무슨 일이 벌어졌는가와 관련한 거짓 기억들과의 다툼에서도 발생한다. (1959)에서 레네는 글로벌한 기억과 개인적 기억의 ..
1983년은 카르멘의 전성시대였다. 프란체스코 로지, 카를로스 사우라, 피터 브룩이 마치 경연이라도 하듯이 카르멘을 영화로 만들었던 것은 당시 비제의 오페라가 저작권 소멸상태가 됐기 때문이었다. 고다르 또한 작업에 착수했다. 다른 작가들과 달리 그는 비제의 오페라를 느슨하게 차용만 했을 뿐 그 유명한 음악을 쓸 생각이 없었다. 오토 프레민저의 (1954)처럼 이야기를 현대로 옮겨왔고, 처음엔 이자벨 아자니를 주인공으로 염두에 두었다. 아자니의 바쁜 일정 탓에 당시 신인이었던 마루츠카 데트메르스가 최종적으로 카르멘 역에 캐스팅되었다(그녀는 국내에는 (1989)으로 잘 알려진 배우다). 고다르의 계획은 급진적이었다. 그는 음악을 따라가는 이야기, 혹은 음악이 이야기의 전체가 되는 영화를 구상했다. 카르멘은 ..
알베르 시모닌의 원작소설이 처음 나온 것이 1953년의 일이니 자크 베케르가 를 영화화한 것을 꽤 재빠른 시도였다. 갈리마르의 ‘세리 누아르’에 실렸던 이 소설은 초판 20만부가 팔리는 인기를 얻었고 유명한 문학상인 되 마고 상(Prix des Deux Magots)을 수상했다. 은퇴를 앞둔 노년의 갱스터가 주인공들이다. 오랜 친구인 막스와 리톤은 마지막 노후를 편하게 보내려 공항에서 금괴를 강탈하는데, 계획과는 달리 일이 뜻대로 되지 않는다. 우정을 너무 과신했던 탓이고, 금괴 강탈에 야심을 보인 눈치 빠른 신흥 갱 안젤로의 도전이 만만치 않았기 때문이다. 베케르가 이 소설에 관심을 보였던 것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두 사내들의 우정과 배신의 이야기가 흥미를 끌었다. 게다가 은퇴를 앞둔 그들의 나이..
시네바캉스의 시즌이 돌아왔습니다. (사)한국시네마테크협의회의 대표적인 여름 행사인 ‘시네바캉스 서울’이 올해로 여섯 번째를 맞이하여 7월 28일부터 한 달간의 축제를 시작합니다. 알프레드 히치콕의 가장 유명한 작품 를 비롯해 후대 감독들에 의해 리메이크된 바 있는 자크 투르뇌르의 과 프랭클린 J. 샤프너의 . 로버트 알드리치의 , 그리고 프랑스 범죄영화의 대표작이라고 할 만한 자크 베케르의 , 장 피에르 멜빌의 등 익숙한 제목들이지만 여전히 많은 이들에게 미지의 영화로 남아있는 20편 넘는 걸작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개막작으로는 빈센트 미넬리의 뮤지컬 영화 을 선정하였습니다. 지도에는 없는 신비한 마을에서 벌어지는 미국 청년과 환상적인 여인의 사랑을 다룬 이 영화에는 꿈과 모험, 무엇보다 춤과 노래가 ..
로만 폴란스키의 에서 주인공은 정말 기이한 인물이다. 그는 이름도 없고, 그저 ‘유령’이라 불릴 뿐이다. 그가 세상에 드러나지 않기 때문이지만(그래서 존재가 미미한 그가 세상에 드러나는 유일한 방법은 그가 죽었을 때이다), 실로 그가 ‘유령’인 것은 자신의 존재를 숨기고 다른 이의 대필 작가로 나섰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더 중요한 것은 그가 이미 죽어버린 선임자의 뒤를 계승한다는 것에 있다. 주인공은 그래서 유명인의 대필 작가이자 대필 작가의 대역, 즉 이중적인 의미의 ‘유령’이라 할 수 있다. 말하자면 는 유령이 죽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이런 인물은 알프레드 히치콕의 에서 로저 O 손힐(이름의 중간에 있는 O는 대화에서도 나오지만 '아무것도 아니다')과 같은 일종의 텅 빈 존재를 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