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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INEMATHEQUE DE M. HULOT
하워드 혹스의 이 영화와 관련해 깊은 오해를 풀 필요가 있다. 하워드 혹스는 할리우드의 ‘사내중의 사내’라 불렸던 감독으로 남성들 간의 유대를 찬양했던 인물이다. 그는 ‘와일드 빌’ 월맨과 오토바이를 즐기고, 윌리엄 포크너와 비행을, 어네스트 헤밍웨이와 낚시와 사냥을 즐긴 할리우드의 대표적인 마초니즘의 작가였다. 그런데 그가 어떻게 이런 식의 ‘여성 버디무비’를 만들 수 있었을까? 비평가들은 오랫동안 이를 두고 의문을 제기했었다. 달리 말하자면 이 영화는 혹스의 작가성을 논의하기 위한 뇌관과도 같은 작품인 것이다. 혹스는 이 영화로 당시 주류 할리우드가 구축한 안정적인 젠더 정체성을 불안 투성이의 모호한 세계로 뒤바꾸어 놓았다. 혹스적인 남성과 대비되는 여성들이 게다가 남성적 우주의 신성함과 권위를 조롱..
장 르누아르의 은 정말 아름다운 영화다. 지난해 '장 르누아르 회고전'을 하면서 다시 봤던 르누아르의 영화가 문득 생각나 다른 일들을 잠깐 멈추고 DVD로 몇 장면만을 들여다봤다. 가끔씩 시집을 들춰보거나 사진집이나 그림을 들여다보듯 영화를 볼 때가 있다. 은 마치 지뢰밭을 걷는 듯한 긴장감과 불안한 느낌으로 마음을 산란하게 만든다. 과거로부터 탈출하는 것의 안도와 미지의 경험에의 긴장이 조용한 감동을 준다. 앙드레 테시네의 이란 작품을 보면 장 르누아르의 을 인용하는 아름다운 순간이 있다. 누구나 멀리 떠나고 싶은 느낌이 들 때의 젊은 마음이 있는데 현실은 언제나 살얼음같이 느껴지곤 한다. 도피하고픈, 저 멀리떠나고픈, 과거와 절연하고 절망적인 현재와 이별하고픈 그런 젊음의 욕망이 에도 담겨있다. 선물..
토요일 오후, 극장에 사람이 많진 않았지만, 을 보신 분들이라면 결코 기억에서 사라지지 않을 순간들을 아마 함께 느끼셨으리라 생각합니다. 영화를 본 후에 "아! 이건 정말이지 믿기지 않는 장면이야."라고 묻게 되는 영화들이 가끔 있는데, 이 그런 영화입니다. 믿기지 않는 장면들로 보는 내내 숨이 막힐것 같은, 마치 기적의 순간을 함께 체험하는 흥분을 느끼는 그런 영화 말입니다. 이런 영화는 예술도, 기술도 아닌 미스터리(신비)를 담고 있습니다. 특히나 나무 그늘아래 있던 꼬마아이가 종종 걸음으로 뛰어가 나무 담장위로 올라가 수풀 사이로 사라진 말을 호기심에 쳐다보던 그 침묵의 순간이나 영화 후반부에서 그늘을 찾아 조용히 눈을 감는 강아지의 모습은 잊기 힘듭니다. 영화 첫 장면에서 작렬하는 태양 아래 부부..
영화에 관한 나의 기억은 한번도 가본 적이 없는 곳에 그리움을 품는 것과 비슷합니다. 그건 한 번도 본적이 없는 것을 보려는 욕망과도 닮았습니다. 이는 내가 좋아하는 마노엘 데 올리베이라의 영화제목처럼 '세상의 시초로의 여행'이라 부를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한번도 가 본적이 없는 곳인데 그곳에서 살았다는 느낌이 들때. 그런데 그 곳에서 먼 곳으로 추방되어 내가 떠돌고 있다는 생각이 들때. 그러다 불현듯 그곳의 기억이 어렴풋이 떠오를 때. 서글픔이 화산의 용암처럼 되살아날 때. 어떻게 그런 일들이 생길 수 있을까요. (1) 조금은 텅 빈 극장에서 카를로스 사우라의 를 보며 하염없이 눈물이 흘러나오더군요. 눈을 감고 시인처럼 노래하는 한 노인의 얼굴에서 늙은 여인의 도취된 표정에서 시각의 유혹을 잃어버린 맹..
작가와 작품의 관계 작품은 작가를 초과한다 작가 이전에 작품이 있다, 그리고 작가 이후에 작품이 또한 존재한다. 좋은 영화란 무엇인가? 확언하기 힘들지만 생각나는 한 가지가 있다면, 그것은 언제나 우리의 보기와 설명을 초과한다는 것에 있다. 가령, 우리가 어떤 영화를 보고 비평글을 쓸때 그 글의 결함으로 지적되는 사항중의 하나로 객관성의 결여를 드는 때가 있곤 한다. 객관성의 결여란 글을 쓰는 이가 영화를 자기식의 관점만으로 재단하려 들 때이다. 이 때 그가 오류를 범한다는 것은 그의 생각과 주장이 영화보다 초월적 위치에서 내려다본다는 점에 있다. 그는 영화의 어떤 부분을 자신의 관점에서 투사하고 있을 뿐이다. 달리 말하면 좋은 영화는 언제나 우리들의 보기를 넘어서는 영역을 담고 있다. 그런데 이는 작가..
기관사는 인간의 조건을 성찰하는 직업이다, 클레르 드니 감독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호텔의 19층 카페에서 부을 방문한 클레르 드니와 세 번째 만남을 가졌다. 전날 그녀는 홍상수 감독과 ‘오픈 토크’를 했다. 그녀는 홍상수 감독의 전작을 모두 봤고, 파리에서 그의 영화가 개봉될 때면 직접 나서 영화를 소개하는 역할을 했다. 예전의 만남 덕분인지 첫눈에 그녀는 나를 알아보고 “홍상수 감독이 왜 내 영화를 안보는 걸까”라며 가벼운 투정을 부렸다. 그녀의 열렬한 팬으로서 나 또한 궁금했다. 특유의 허스키한 목소리로 그녀는 “보기 싫어서, 아니면 논평을 피하기 위해 아예 보지 않는 걸까. 이 둘 중에서 어떤 쪽일 것 같나?” 하고 내게 넌지시 생각을 물었다. 아마도 두 번째가 아니었을까. 곧바로 그녀의 신작 의 이..
* 13회 부산국제영화제의 '씨네21 데일리(2008.10.02일자)'에 부산에 온 안나 카리나를 위해 쓴 글입니다. 뉴 커런츠 심사위원장으로 부산 찾은 장 뤽 고다르의 뮤즈, 안나 카리나 장 뤽 고다르의 영화를 우연히 보지 않았다면 안나 카리나와 만날 인연은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그 반대가 더 진실에 가깝다. 안나 카리나가 없었다면 고다르의 영화에 대한 관심은 덜했을 것이다. 혹은 우리가 누벨바그(1950년대 후반에 프랑스에서 일어난 젊은 영화작가들에 의한 전위적인 영화운동)라 말하는 고다르의 영화경력은 결코 완성될 수 없었을 것이다. 고다르의 작가적 연대기에서 누벨바그의 시기(1959-1967)가 종종 ‘안나 카리나 시절’이라 불릴 만큼 그의 영화에서 카리나가 차지하는 비중은 절대적이다...
* 충무로국제영화제에 참석한 시네마테크 프랑세즈의 프로그램 디렉터를 만나 인터뷰한 내용을 에 실었던 글이다. 지속적인 영화 상영 보존의 길 : 김성욱, 장 프랑수아 로제를 만나다 충무로국제영화제에서 시네마테크 프랑세즈의 프로그램 디렉터인 장 프랑수아 로제를 만났다.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처음 인사를 한 이래로 나는 그를 몇 번 만났다. 3년 전 파리에서 그를 만나 짧게 인터뷰를 했던 것을 기억한다. 시네마테크 프랑세즈가 샤이오를 떠나 랑글루아 시절부터 염원했던 새로운 장소(최종적으로는 베르시로 결정됐다)로 이전하기 직전이었는데, 시네마테크의 새로운 공간 계획과 관련해 몇 가지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한 자리였다. 물론 프로그램에 대한 이야기도 나눴고, 시네마테크 서울아트시네마와 마찬가지로 민간에 의한 조직이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