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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INEMATHEQUE DE M. HULOT
프랑스의 영화감독 자크 드미의 영화를 극장에서 처음 본 것은 1992년 가을무렵이었다. 지금은 사라진 종로의 코아 아트홀에서 이 재개봉을 했었다. 추억의 고전을 재상영하는 기회였다. 1991년에 자크 드미가 세상을 떠나면서 프랑스는 물론 전 세계에서 그의 영화를 재평가하는 분위기가 있었다. 이 한국에서 재개봉한 것도 그런 일환이었다. 한국에서의 재개봉 또한 기회였지만, 생각해보면 그 때의 상영은 1991년에 자크 드미가 세상을 떠난 후에 그의 영화를 재평가하기 위한 기획의 일환이기도 했다. 영화가 상영되는 극장에는 남몰래 눈물을 훔치던 연인들이 있었다. 드믄 드믄 올드팬들도 있었다. 그들 가운데 나 또한 끼어 있었다. 영화가 끝난 후 먹먹한 마음에 대학로까지 걸어갔던 기억이 아직까지 생생하다. 가끔은 영..
*2005년에 서울아트시네마에서는 처음으로 '자크 드미 회고전'이 열린 바 있습니다. 그 해 열렸던 회고전은 통속적으로 이해되던 자크 드미의 영화를 진지하게 성찰하는 기회였습니다. 이번 '2009 시네바캉스 서울'에서 다시 자크 드미의 네 편의 뮤지컬 영화가 상영됩니다. 아래 글은 2005년 회고전을 맞아 썼던 글을 부분적으로 수정한 글입니다. 자크 드미의 영화를 아직도 제대로 보지 못한 분들이라면 그의 영화들을 단편적으로가 아니라 가능한 하루에 몰아서 보아주었으면 합니다. 그의 영화는 한 편의 작품이 아니라, 작품 전체를 하나의 우주로, 세계로 받아들일 때 제대로 느낄 수 있습니다.(김성욱) 상실감으로 가득한 아름다움 - 자크 드미의 세계 1991년 자크 드미가 세상을 떠난 후, 그의 평생의 반려자였던..
유현목 감독님이 세상을 떠났다. 잠깐이나마 감독님과 함께 했던 순간들의 기억이 떠올랐다. 대부분은 사적인 기억들이다. 처음 얼굴을 뵌 것은 90년대 중반으로 기억한다. 예전 사당동에 있던 '문화학교서울'에서였다. 당시 대표님이 '소형영화동우회'의 대표를 하셨는데 유현목 감독님이 동우회의 창립자였다. 그 친분으로 문화학교서울에서 종종 감독님을 뵐 기회가 있었다. 물론 이야기를 나눈 적은 별로 없었다. 그저 뵙는 것만으로도 영광이었다. 내가 그 시절에 기억하는 유현목 감독님은 지독한 영화광인이었다. 2001년으로 기억한다.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미카엘 하네케의 를 볼 때였다. 영화가 막 시작할 무렵에 앞자리에 꽤 나이가 드신 어른 한 분이 자리를 했다. 종종 국제영화제에서 볼 수 있는 풍경이긴 했지만 어르신이 ..
아이들을 속이기란 손쉬운 일이다. 하지만 아이와 공모해 남을 속이기란 쉽지 않다. 누군가를 속이기 위해서는 먼저 두 사람이 함께 비밀을 공유해야만 한다. 하지만 아이들과 비밀을 공유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얼마 전 방안에서 담배를 피다가 불쑥 조카가 문을 열고 들어온 적이 있었다.(1) ‘삼촌, 담배 피는구나. 할머니한테 일러야지’라고 여덟 살 짜리 조카가 협박을 가해 왔다. 방안에서는 담배피지 말라는 어머니의 권고가 있었기에 조심하던 터이라 ‘너 절대로 할머니한테 고자질하면 안돼. 그럼 만화 안보여 준다. 이건 너랑 나랑 만의 비밀이야. 약속!’이라며 손가락까지 걸며 조카를 타일렀다. 하지만 조카는 문을 열고 나가기가 무섭게 마루에 앉아 계신 할아버지에게 매달리며 ‘할아버지, 할아버지, 이건 할머니..
자크 타티의 장편영화 데뷔작인 은 우편배달부를 주인공으로 모던한 사회의 속도를 그가 어떻게 희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는가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우편배달부로 분한 타티는 효율성이 지배하는 어떤 사회의 내면을 질주한다. 제복을 입고 자전거를 타고 운송기계를 활용해 우편배달부는 공동체의 감정을 이어주는 편지를 전달한다. 그는 이미 1936년 르네 클레망의 라는 영화에서 우편배달부의 캐릭터를 염두에 두고 있었다. 10년이 지난 후에, 타티는 우편배달부를 주인공으로 라는 단편을 만들기도 했다. 이 단편은 1943년 무렵, 타티가 비시정권 하에서 독일에의 협력과 망명 사이에서 고민하다, 친구인 극작가 앙리 마르케와 비점령지대인 생 제베르라는 마을에 내려가서 그곳에서 은둔하다 만났던 시골 사람들과의 교감에서 시작됐다. ..
밀회 평범한 주부인 로라와 중년의 의사 알렉은 기차역 작은 카페에서 우연히 만나 사랑에 빠진다. 이들은 매주 다. 이들은 매주 목요일마다 만남을 갖게 되면서 사랑을 느끼지만 서로의 가정에의 책임으로 죄책감에 로 죄책감에 시달리다, 결국 헤어진다. 는 이 둘의 담백하면서도 심플한 사랑 이야기를 그린다. ‘칸 국제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했고 영국영화연구소(BFI)가 뽑은 ‘영국 영화 베스트 100’에서 2위를 차지할 정도로 이 영화는 영국인들, 그리고 린의 마니아들에게 오랫동안 사랑을 받은 영화다. 영화의 중심적 문제인 사회적 책임과 개인의 열정간의 충돌은 린의 영화에서 반복되는 탐구의 주제다. 원작자인 노엘 코워드가 쓴 짤막한 ‘스틸 라이프’란 희곡이 원안으로, 기차역에서의 두 남녀의 짧고 은밀한 만..
'러시아 모스필름 회고전'이 이제 중반을 넘기고 있다. 1950년대 이후의 영화들, 특히 '해빙기'라 불리는 시기의 작품들을 소개하고 싶은데, 그 중의 한 편이 게오르기 다넬리야의 (1963)이다. 이 영화는 아마 이번 회고전에서 소개되는 영화들 중 과 더불어 가장 감미롭고 아름다운 작품 중의 하나에 속할 것이다. 같은 시기 타르코프스키나 미하일 칼라토초프의 장엄하고 엄숙한 주제, 탁월하고 강력한 영상과 비교하면 피아노 소품같은 작품이다. 그런데 이게 꽤나 활기차고 발랄해서 묵직한 감동과는 다른 감각적 환희를 선사한다. 모스크바의 평범한 젊은이들의 일상, 그것도 거의 하루의 이야기가 영화의 전부다. '모스크바, 도시의 교향곡'같은 식의 영화랄까. 영화가 활기차고 발랄한 것은 주인공들이 젊을 뿐만 아니라,..
영화에 관한 나의 기억은 한번도 가본 적이 없는 곳에 그리움을 품는 것과 비슷합니다. 그건 한 번도 본적이 없는 것을 보려는 욕망과도 닮았습니다. 이는 내가 좋아하는 마노엘 데 올리베이라의 영화제목처럼 '세상의 시초로의 여행'이라 부를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한번도 가 본적이 없는 곳인데 그곳에서 살았다는 느낌이 들때. 그런데 그 곳에서 먼 곳으로 추방되어 내가 떠돌고 있다는 생각이 들때. 그러다 불현듯 그곳의 기억이 어렴풋이 떠오를 때. 서글픔이 화산의 용암처럼 되살아날 때. 어떻게 그런 일들이 생길 수 있을까요. (1) 조금은 텅 빈 극장에서 카를로스 사우라의 를 보며 하염없이 눈물이 흘러나오더군요. 눈을 감고 시인처럼 노래하는 한 노인의 얼굴에서 늙은 여인의 도취된 표정에서 시각의 유혹을 잃어버린 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