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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INEMATHEQUE DE M. HULOT
영화감독이 영화사에 이름을 알리는 몇 가지 방법이 있다. 첫째. 유명 영화제에서 수상하는 것. 칸이나 베를린, 혹은 베니스 영화제에서 수상작에 오르면 그래도 이름이 남는다. 둘째, 거대한 흥행기록을 세웠을 경우. 영화잡지이든 신문이든, 혹은 심지어 영화사와 관련한 책에도 흥행성적이 좋았던 영화들은 남게 된다. 셋째, 비평가나 저널리스트 혹은 학자들의 책에 이름을 남기는 경우. 앞의 경우와는 다르지만, 비평가들이 영화에 대해 호의적으로 쓰거나, 학자들이 영화책의 저술에 분석글을 남기게 되면 그 작가는 이후에도 의미있게 다뤄지는 법이다. 이 세 가지에 들지 못할 경우 작가가 이름을 남기긴 어려운 법이다. 그저 필름에 그의 이름이 등재되어 있을 뿐이다. 사실상 B급 영화의 감독들 상당수가 이름을 남기지 못했기..
새로운 영화는 새로운 전략을 필요로 한다. 프랑수아 트뤼포는 어떤 영화감독들은 무인도에서도 영화를 만들거라 말했다지만, 사실 거의 모든 감독들은 대중들이 자신의 영화를 보아줄 거라 여기며 영화를 만든다. 물론 영화를 만든 이후에 관객과 만날 생각을 하는 경우도 있긴 하다. 마치 상품이 교환의 곡예를 넘어야 실현될 수 있듯이, 영화 또한 관객과 만날 때 성립될 수 있다. 아니 극장에서 상영의 기회를 잡아야 그 이미지가 펼쳐질 수 있다. 그러나 상품의 곡예보다 심하게 영화의 성립과 실현은 영화를 보는 사람과의 심각한 거리를 노정한다. 이 거리를 좁히기 위해 감독들은 새로운 장치들과 전략들을 고안한다. 관객들에게 영화가 어떻게 받아들여지고 있는가를 예상하고 그것에 변화를 주기 위해 그리피스는 평행편집을, 에른..
‘피 흘리는 샘’ 혹은 ‘폭력의 피카소’라 불린 샘 페킨파는 6-70년대 아메리칸 시네마의 감독들 중에서 서부의 신화를 의문시하면서 가장 전복적이고 폭력적인 방식으로 영화를 만든 작가이다. 페킨파 영화의 독특한 시학은 베트남 전쟁, 정치적 암살 등으로 표출된 아메리카의 폭력적 에너지를 역사의 죄의식과 연결하는 것이다. 미국적 프런티어는 이제 물리적 여정이라기보다는 정신적이고 심리적이며 움직임의 선 또한 내부화된다. 방황하는 인물들의 폭력 또한 몸을 파괴하는 것에 머무는 것이 아니다. 차라리 영화적 이미지, 즉 표상의 질서를 파괴하는 폭력의 경향에 더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의 말미에 보이는 극단적인 커팅, 수천 개의 쇼트로 구성된 장렬한 총격전은 줌 렌즈와 느린 화면들의 활용으로 폭력의 잔상을 관객들에게 ..
지난해 에릭 로메르의 부음을 접하면서 과거의 추억이 떠올랐다. 2001년 7월 29일. ‘문화학교 서울’ 주최로 아트선재센터 지하에서 한국에서는 처음으로 에릭 로메르의 17편의 작품을 상영하는 대규모 회고전을 개최했었다. 당시 문화학교서울의 프로그래머로 일하면서 기획한 두 번째 회고전이었다. 지금에야 에릭 로메르는 시네마테크에서 관객들의 사랑을 받는 인기 작가이지만 9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가 개봉당시 천명의 관객을 넘기지 못했을 정도로 그는 소수의 시네필들에게만 알려져 있던 인물이었다. 그러니까 2001년의 회고전은 로메르를 국내에 처음 온전하게 알리는 행사였다. 회고전에 즈음해 로메르의 영화사인 ‘로장주 필름’(로메르는 누벨바그 작가 중 거의 유일하게 자신의 영화사를 설립해 40년 동안 거의 전작을 ..
* "아녜스 바르다 회고전"이 거의 끝나갈 무렵인 10월 31일 상영 후 서울아트시네마에서 바르다에 관한 강연을 했다. 이 영화는 한국에서는 거의 소개될 기회가 없었던 작품이다. 하지만 바르다의 예술가의 초상화 작업, 혹은 그녀 자신의 자화상과 관련해서 이 영화는 대단히 중요한 위치를 점하는 작품이다. 그 일부를 소개한다.(김성욱) 김성욱(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래머): 이 영화는 DVD로도 출시된 적이 없고, 예전에 서울국제여성영화제에서 열렸던 아녜스 바르다 특별전 때도 상영되지 않았던 작품 중에 하나라서 오늘이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필름 상영을 하는 날이었을 것이다. 반면에 이 영화 다음에 만들어진 라는 작품은 유일하게 한국에 비디오로 출시되었던 작품이다. 이런 상황 자체가 방금 보신 영화가 놓인 처지를 ..
한때 아시아 영화들이 환대를 받던 때가 있었다. 불과 십오 년 전만 해도 중국 5세대의 영화들이나 대만 뉴웨이브, 이란 뉴웨이브 감독들의 영화가 극장에서도 제법 인기를 끌었다. 중국의 장예모와 첸 카이거, 대만의 허우 샤오시엔, 차이밍량, 그리고 에드워드 양, 이란의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등의 작가가 영화잡지는 물론이고 신문에 소개되기도 했다. 이제 호시절은 끝난 것처럼 보인다. 일본 영화를 제외하고 극장가에서 아시아 영화들을 좀처럼 찾아볼 수 없다. 21세기에 새롭게 출현한 아시아 영화들 대부분이 거대한 공백처럼 존재유무를 확인하기 힘들다. 이는 아시아 영화들의 퇴보를 의미하는 것일까? 사실은 그렇지 않다. 국제영화제를 방문하거나 세계 영화계의 동향을 살펴보면 최근 가장 주목받는 영화들 대부분이 아시아 ..
* 이번 주 화요일부터 '아녜스 바르다 회고전'을 개최하고 있다. 원래대로라면 작년에 열렸어야 했던 회고전이다. 그동안 클레르 드니, 샹탈 애커만,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영화들을 소개했고 워낙 좋아하는 아녜스 바르다의 회고전은 일정을 미루고 있었다. 그러던 차에 지난 해 드디어 10월에 회고전을 개최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다른 곳에서 바르다의 영화를 상영하는 행사가 9월쯤에 열린다는 소식을 접했고, 일정상 양보하기로 했더랬다. 대신 21세기의 프랑스 영화들을 소개하는 특별전을 치르기로 했다. 다른 곳에서 바르다의 회고전이 열린다면 아쉽지만 그래도 기뻐하면서 보러 갈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약속과 달리 회고전이 열리지는 않았다. 그렇게 일년이 지났고, 바르다의 영화를 서울아트시네마의 스크린에서 소개할 ..
1. 프랑스의 영화감독 자크 드미의 영화를 극장에서 처음 본 것은 1992년 가을무렵이었다. 지금은 사라진 종로의 코아 아트홀에서 이 재개봉을 했었다. 1991년에 자크 드미가 세상을 떠나면서 프랑스는 물론 전 세계에서 그의 영화를 재평가하는 분위기가 있었다. 이 한국에서 재개봉한 것도 그런 일환이었다. 한국에서의 재개봉 또한 기회였지만, 생각해보면 그 때의 상영은 1991년에 자크 드미가 세상을 떠난 후에 그의 영화를 재평가하기 위한 기획의 일환이기도 했다. 영화가 상영되는 극장에는 남몰래 눈물을 훔치던 연인들이 있었다. 드믄 드믄 올드팬들도 있었다. 그들 가운데 나 또한 끼어 있었다. 영화가 끝난 후 먹먹한 마음에 대학로까지 걸어갔던 기억이 아직까지 생생하다. 가끔은 영화보다 그 때 종로의 거리들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