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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용한 교사의 초상 -나는 마을 방과후 교사입니다 본문
이상한 일이지만, <나는 마을 방과후 교사입니다>(박홍열, 2022)의 오프닝과 마지막의 텅빈 공간과 건물이 마음이 남았던 것은, 생각해보면 그 곳이 지극히 평범하기 때문이다. 경험의 장소가 모두 기억의 장소로 남는 것은 아니다. 이런 범용한 공간은 그럼에도 진지한 사람들의 노력과 고민, 다양한 감정이 남겨진 기억의 장소이기도 하다. 그래서 좋은 영화는 늘 미지성을 동반하는 친밀한 곳으로 관객을 다가가게 한다.
이를테면, 아이들은 주로 도토리마을 방과후 건물 지층에서 뛰어노는데 오프닝과 마지막에서 우리는 그런 아이들이 사라지고, 비어있는, 텅 빈 공간과 마주한다. 오프닝에서, 이 비어 있음은 심지어 유일한 장면전환 효과인 디졸브로 시각화되어, 기억의 잔상을 남긴다. 이때 잔상이란 앞서 말했듯, 실은 내가 전혀 알지 못하는, 특이적이지 않은 장소의 기억, 그리고 기억의 기록이다. 학교나 제도적 기관과 달리 거기에는 애초부터 공공의 기억이란 없다.
장소의 정체성도 없다. 아이들이 뛰어노는 시멘트 바닥이 운동장이고, 앉아 있는 곳이 교실이며, 선생들이 모여 앉은 작은 탁자의 공간이 교무실이다. 그래도 그곳에서 그들만의 방식으로 입학도, 졸업식도 치러진다. 그러니 거기서 무슨 일이 매일 일어나고 있는지 봐야하고, 무슨 말들이 오가는지 들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도토리마을 방과후는 방과 ‘후’에만 학교가 아니다. 마찬가지로 교과서도, 교칙이 없어도 아이들과 만나는 이들은 엄연히 교사다. 그들은 매번 고민하고, 일하고, 생각하고, 말한다. 그렇게 이 다큐멘터리는 다양한 주제로 벌어지는 일상적 회의들, 거기서 오가는 말들에 귀기울이게 한다.
그래서 기억하는 장면을 꼽자면, 마찬가지로 지극히 평범하고 일상적인 제스처를 반복하는 순간이다. 세 분의 교사가(왜 다섯 분이 아니었을까) 출근해 매번 도어락을 열고, 환기를 위해 창문을 개방하고, 쌀을 씻는 동작을 같은 식으로 반복해 보여주는 장면 말이다. 방과 후의 일상이란 그렇게 매번 빈 공간에서 시작해 실은 공허를 향해, 날마다 무엇인가를 돌려보내는 시도의 반복이다. 극장일 대부분도 그와 같은 일들의 반복이다. 그래서 앞서 말한 텅빈 공간과 건물이 마음에 남았던 것은, 그런 반복의 일과 경험의 무근거성에 역설적으로 그 범용한 장소가 자리를 제공하는, 아이들과의 친밀한 기억의 장소이기 때문이다.
1월 14일(토)에는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저녁 6시 30분 <나는 마을 방과후 교사입니다>를 상영한다. 상영 후에 박홍열 감독이 참석해 관객과 대화를 나눌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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