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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INEMATHEQUE DE M. HULOT
예전부터 내가 쓰는 메일이나 트위터, 페이스북의 아이디는 대체로 Hulot이다. 버려진 숲처럼 방치되고 있는 이 블로그의 이름도 “Cinematheque de M.Hulot”이다. 가끔 원고를 청탁하는 기자나 강의를 의뢰하는 분들에게 전화로 메일 주소의 알파벳 단어를 또박또박 불러줄 때마다 다시 환기되곤 하는 이 이름은 대체로 '훌로' 혹은 '휠롯'으로 불리곤 했다. 정확한 프랑스식 발음은 윌로이다. 시네필들은 대체로 알 테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괴상한 이름이 어디에서 왔는지 짐작하지 못한다. 물론 나 또한 그가 정확하게 어디에서 왔는지 알지 못한다. (엘르 잡지의) 에디터의 질문을 받기 전까지도 내가 왜 윌로라는 이름을 쓰기 시작했는지에 대해 깊게 생각했던 적은 없었다. 기억을 떠올려보면 90년대..
따지고 보면 놀라운 일도 아니다. 기록에 따르면 식민지 치하의 조선에서는 '시적 리얼리즘' 혹은 '사회적 판타지'라 명명된 1930년대 프랑스 영화들이 대거 수입되어 관객들의 사랑을 얻었다. 자크 페데나 마르셀 카르네의 영화, 줄리앙 뒤비비에의 (1936), (1937)과 같은 작품들이 특히 대중적 인기를 얻었는데, 가령 작가인 김남천은 (첫 개봉 제목은 이었지만, 전후에 재개봉할 때 이란 제목으로 바뀌었다)을 본 후의 소감을 소설에서 이런 식으로 기술한다. “어떤 날 오후, 봄이라지만, 아직도 치위가 완전히 대기 속에서 가시어 버리지 않은 날, 나는 영화 상설관에서 를 구경하고 일곱 시경에 거리에 나섰다. 저녁을 먹어야 할 끼니때가 이미 지났으나, 곧 뻐스에 시달리면서 집으로 향..
말이 실패하는 곳에서, 사랑이 떠난 시간에서 음악이 시작한다고 한다. 음악을 듣는 것은 그래서 우리를 매번 돌이킬 수 없는 회한에 젖게한다. 우울할 때 음악을 듣는 일은 그래서 예전에는 피했던 일이다. 대신 그럴때 나는 책을 꺼내들곤 했다. 책은 우울에서 벗어나게 하고 음악은 돌이킬 수 없는 시간에 머물게 하기에. 그러면 영화는 우리를 어디에 데려다줄까. 혹은 영화는 어디에서 시작하게 되는걸까.
극장의 빈 자리는 정말 비워진것이 아니라 거기 없는 사람들, 떠났거나 아직 오지 못한 사람들의 영혼으로 채워져 있다고 생각해왔다. 좋은 영화는 빈 자리의 영혼의 무게를 동반한다. 극장안의 우리는 혼자라도 홀로는 아닐 것이다. 우리는 여기 없는 이들이 볼 수 없는 것들을 앞서 보고 있는 일종의 척후병斥候兵들로- 사실 누가 그들을 파견했는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차용되어 나온 것이다. 빈 자리의 그들은 우리의 정찰과 탐색 이후에 어쩌면 나중에 오게 될 것이다. 극장을 하는 나의 믿음은 이러했다. 사람들은 이제 생각을 바꾸라 한다. 대체로 영업의 논리는 다를 수 밖에 없다. 문화라 부르는, 사실은 영업과 통상通商의 규칙은 채워짐을 욕망하고, 요구한다. 대체로 관료들이나 통상인들의 주문이 그러한데, 이제는 다른 ..
오늘은 뉴 아메리칸 시네마의 세 감독의 영화를 연이어 상영하는 날이다. 13:00에는 스탠리 큐브릭의 '아이즈 와이드 셧', 16:10에는 마이클 만의 '미이애미 바이스'를 그리고 19:00에는 드 팔마의 '하이 맘' 상영과 상영후에 해설을 한다. 이중 아마도 가장 생소한 작품이 드 팔마의 '하이 맘'일 것이다. 드 팔마를 히치콕의 적자로만 이해하는 이들이 보기에는 그의 60년대 초기작들은 이상하게 보일 것이다. , , 그리고 와 같은 작품들은 히치콕보다는 거의 고다르의 이나 같은 작품들의 영향 아래 있는 일종의 언더그라운드 영화이기 때문이다. 60년대, 뜨거운 젊음의 20대를 거치면서 고다르의 세례를 조금이라도 받지 않은 작가란 없을 테지만, 할리우드에서 이런 과격한 시도를 대놓고 한 작가는 찾기 쉽지..
야스미 아흐마드의 말레이시아 영화계의 ‘대모’라 불린 야스민 아흐마드는 단 6편의 청춘송가와도 같은 보석 같은 작품을 남기고 2009년, 51세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그 이후 그녀의 영화를 다시 보는 일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2010년에 서울아트시네마에서는 ‘우리 시대의 아시아 영화 특별전’에서 그녀의 유작인 (2009)을 상영했었다. 말레이시아의 한 고등학교에서 벌어지는 학예회를 무대로 벌어지는 청춘들의 사랑 이야기인데, 아무도 없는 교실에 빛이 들어오고 하나씩 불이 꺼지면서 모든 것이 사라져가는 명멸하는 빛과 시간의 무상함으로 가득한 작품이다. 야스민 아흐마드의 영화는 주로 민족이나 종교의 차이를 넘은 연애를 드라마의 소재로 다뤘는데 도 그런 이야기의 연장선상에 놓인 작품이다. 은 오키드라..
너무 많이 보았던 작가, 브라이언 드 팔마 브라이언 드 팔마의 영화를 자극적인 불량식품 같은, 정상성의 궤도에서 벗어난 독특한 취향의 작품으로 취급하는 것은 틀린 말은 아닐 테지만 수정되어야 할 전적인 오해에서 비롯된 생각이다. 가령 60년대 아메리칸 뉴 시네마의 정신에 기대어 말하자면, 조금은 삐뚤어진 방식처럼 보이긴 하지만 현재 드 팔마보다 더 직접적인 계승자를 찾기란 쉽지 않다. 그는 비뚤어진 것이 아니라 도리어 변모의 윤리를 지켜왔기에 희귀하게 생존한 아메리칸 뉴 시네마의 작가로 남았다.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조지 루카스, 마틴 스콜세지, 스티븐 스필버그 같은 감독들이 지금 보여주는 작업들을 드 팔마의 근작인 나 같은 영화와 비교해 보면 그 차이를 느낄 수 있다. 드 팔마는 흥행에 성공한 몇 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