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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영화일기 (294)
CINEMATHEQUE DE M. HULOT

친구 집이 어딨죠? 기사가 물었던 때는 저녁 어스름이었다 하늘이 잠시 멈췄다 행인은 어둠을 향해 전등을 비추고 버드나무를 가리키더니 말했다 저 나무에서 멀지 않아요 바로 앞에 골목이 하나 있는데 신이 꿈꾸는 것보다 푸른 정원을 끼고 있죠 사랑이 믿음과 정직의 깃털만큼 파란 곳이에요 골목 끝까지 가시면 청소년의 뒷골목이 나오는데 거기서 고독의 꽃 쪽으로 돌아서 꽃 두 발짝 앞 신화 속 영원의 샘물에 들르세요 맑고 깨끗한 두려움에 휩싸일 거예요 그 은밀한 공간에서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리면 빛의 둥지에서 새끼 새를 꺼내려고 소나무를 오르는 아이가 보일 거예요 그럼 그 아이에게 물어보세요 친구 집이 어딨니? - 소흐랍 세피리 (1974)에서 열두 살 소년이 고장 난 카메라로 사진을 찍는 것처럼 가장해 아이들에..

올해 전주영화제에서 상영한 포루그 파로흐자드의 다큐멘터리 (1962)이 이미 이란 뉴웨이브의 선구적 작품으로 손꼽히지만, 이란 영화의 새로운 기운은 1964년에 창설된 카눈Kanoun(청소년아동협회)에서 압바스 키아로스타미와 아미르 나데리 등이 주축이 되어 1969년에 영화 촬영부서를 설립해 아동 영화를 만들기 시작하면서 시작한다. 아미르 나데리의 말을 빌자면, 카눈 스튜디오는 최신 촬영 장비를 무료로 사용할 수 있고, 제작비는 적었지만 상업주의적 영화 시스템의 틀 바깥에서 어린이를 주제로만 하면 연출 등에서 자유로운 재량이 주어진 거의 유일한 작업 공간으로, 이곳 지하에서 빌 더글라스의 영화를 보며 어떻게 저런 영화를 만들 수 있는지 탐구했다고 한다. 키아로스타미 회고전의 첫 날에 상영하는 1974)와..

세르게이 로즈니차는 작센하우젠과 다카우 강제수용소에 카메라를 설치해 인기 있는 역사 관광의 모호함을 드러낸다. 인간이 재로 변한 공포의 수용소는 이제 대중에게 공개되어 매년 수천 명의 관광객을 받는 기념 장소가 되었다. 이 영화는 추모 현장을 방문한 관람객들과 그들의 촬영 행위를 관찰한다. 방문자가 무엇을 보고 있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대신 우리는 그들이 모든 것을 매혹적으로 관찰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스마트폰과 인스타그램 문화가 촬영 행위를 손쉽게 자신이 그 장소에 있었음을 증명할 때, 동시대에는 결코 촬영이나 보도가 허용되지 않았던 장소를 틀에 박힌 의식처럼 기념 촬영하는 행위는 공포의 장소를 탈신성화하는 것일까, 혹은 이런 촬영을 통해 시선을 수행함으로써 자신의 목격 증언과 장소를 증언하는..

아키 카우리스마키의 영화를 보면 누구나 떠올리는 사람들의 과묵함은 그들의 서투름 때문에 도리어 어색한 요령의 사람들에 이상하게 마음이 끌린다. 벨라루스의 신예 감독 율리아 사툰의 ‘내일’의 인물들은 그런 카우리스마키의 북구의 무표정을 느끼게 하는데, 특히 바에서의 춤추는 장면이나 흘러나오는 음악이 그러하다. 소리들은 배경 음악없이 화면의 시공간에 흘러나오는데, 텔레비전으로 영화를 보는 장면에서도 화면은 보이지 않은채 음악과 대사만 말 그대로 흘러나온다. 장면은 보이지 않아도 워낙 유명해서 타르코프스키의 라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영화 끝무렵 주인공 크리스가 지구로 귀환할 때의 장면으로 희망도 없고, 남은 것은 기다림뿐, 이라는 대사가 이 영화의 주제에 울림을 준다. 이 영화는 올해 내가 본 가장 인상적인..

영화를 보러 갈때 무엇을 기대해야 할지 모르는, 짐작할 수 없는 나라와 들어보지 못한 작가의 영화와 만나는 것은 실은 기쁜 일이다. 대체로 사람들은 그 반대로 기대할만한 영화를 보러 가면서 적당한 만족을 얻는 것에 즐거워할 수 있겠지만, 그 또한 영화 관람의 당연한 쾌락이지만, 그럼에도 여전한 영화의 즐거움은 대체로 기대하지 못한 여행지와 관람에서 나오기 마련이다. 영화의 관객은 효용 극대화를 추구하는 합리적 선택의 소비자와는 달리 우연과 내기를 즐기는 모험가다. 비록 특정 지리에 관한 관심에서 멀리 떨어진 나라들이 있더라도 영화의 나라에서 주목 받지 못할 나라나 개인은 없다. 게다가 특정 나라의 영화가 젊음의 기운을 갱신하는, 바로 그 피어오르는 순간에 우연히 작품을 들여다 볼 수 있는 기회란 많지 않..

“스탈린의 죽음은 한 시대의 죽음을 의미했습니다. 1953년 3월 지도자 스탈린을 애도하는 수백만 명의 사람들은 이것을 깨닫지 못한 채 자신의 사적인 역사에서 삶을 변화시키는 경험을 하고 있었습니다. 내게 중요한 것은 역사적 사건의 공정한 관찰자나 희귀한 아카이브 풋티지의 숭배자가 아니라 참여자로서, 그리고 거창하고 무시무시하고 기괴한 광경의 증인으로서, 이 경험 속에 관객을 끌어들여 독재 정권의 본질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나는 이 영화를 스탈린의 인격 숭배의 본질에 대한 시각적 연구이자 피비린내 나는 정권의 기초를 형성한 의식을 해체하는 시도라 생각합니다. 스탈린이 죽은 지 66년이 지난 지금, 2019년 현재 모스크바에서, 3월 5일 수천 명의 사람들이 그의 무덤에 모여 꽃을 들고 그의 죽음을 애도한..

2016년 알렉산드르 도브젠코 회고전을 개최한 후에, 언젠가는 꼭 틀고 싶었던 작품이 율리아 손체바의 ‘우크라이나 삼부작’이었다. 그 소망은 물론, 70mm 상영을 전제한 것이었기에, 그런 호사를 누릴 수 있을거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도쿄의 어느 극장이 문을 닫고, 미국의 어느 오래된 영화관이 폐업을 신고한 이런 시대에, 그래도 35mm 필름으로 그녀의 영화를 상영할 수 있게된 것은 기쁜 일이다. 너무 늦었지만, 또 다행히 아직 늦진 않았다. 이 영화의 운명도 그랬다. 손체바의 ‘우크라이나 삼부작’은 기적적으로 소생한 작품이다. 도브젠코는 생의 마지막 시간을 남부 우크라이나의 드네프르 강에서 그의 가장 원대한 꿈을 꾸며 보냈다고 한다. ‘우크라이나 삼부작’은 생의 마지막 기획이었는데, 해빙기는 너무 늦게..

사회가 독재자를, 혹은 광적인 살인자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채플린의 생각은 에 이어 (1946)에서 보다 극명하게 표현된다. 채플린은 를 ‘살인에 대한 희극’으로 평가했다. 이 영화는 거의 웃음이 없는, 차가운 냉소성이 느껴지는 블랙코미디로 매카시즘에 급격히 물들고 있었던 당시 미국의 편협성을 반영한다. 전원생활을 하는 베루도(채플린)는 모범적인 인물이지만 수십 년 일한 은행에서 해고되면서 연쇄살인마로 돌변한다. 그는 살인이 사업의 연장이라 여긴다. 급격한 시대의 변화가 그러한 인물을 만들어낸 것이다. 초라한 서민의 대변자였던 방랑자 찰리가 이제 결연히 무시무시한 현실의 세상으로 들어가 사람들에게 웃음을 선사하는 것이 아니라 공포를 조장한다. 그런데 이 영화가 섬뜩한 것은 그것이 당시의 현실 세계를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