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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INEMATHEQUE DE M. HULOT

시네마테크의 고다르 본문

고다르 이야기

시네마테크의 고다르

Hulot 2009. 3. 17. 20:20




<고다르의 자화상>을 상영한 후에 고다르와 시네마테크에 관해 이야기를 했다. 고다르의 <영화사>를 설명하기보다는 
시네마테크의 문제를 살펴보기 위함인데, 고다르에 관해 더 많이 이야기를 한 듯하다. 좋아하는 사람앞에서 원래 실없는 소리를 많이 하는 법이다.    

최근의 '시네마테크 사태'와 관련해
시네마테크의 문제를 생각해보기 위함이었다. 그런데 왜 고다르인가? 무엇보다 그가 동시대 누벨바그리언들중에서 가장 충실한 시네마테크의 자식이었기 때문이다. 로메르, 트뤼포, 샤브롤도 시네마테크의 자식들이긴 했다. 필립 가렐과 같은 '포스트 누벨바그리언'들 또한 시네마테크의 자식들이었다. 그 외에도 자식들은 많다. 영화보다 먼저 태어난 사람들은 많지 않으니 모두 자식들인 셈이다. 고다르가 특별한 것은 자기를 키워준 시네마테크에 보답을 해야 한다고 그 누구보다 강하게 느꼈던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는 영화가 훔치는 예술임을 랑글루아의 영화박물관(시네마테크)에서 터득했고 자신이 빚진 것에, 빌린 것에, 훔쳐간 것에 정당하게 셈을 치러야 한다고 생각했다. 문화와 예술의 영역에서 셈은 더 정당하게 치러야만 한다. 트뤼포도, 샤브롤도 그만큼 하지 않았다. 

영화가 자신에게 모든 것을 주었고, 그 때문에 영화에 되돌려주어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고민한 사람. 그가 고다르다. 종종 영화를 사랑한다고 말하는 작가들, 비평가들, 기자들, 영화인들, 영화애호가들도 영화에 자신이 무엇을 되돌려주어야 하는지 생각지 않을 때가 있다. 누구든 잊기 쉬우니까. 삶은 고역이니까. '내'가 영화를 좋아하는 것이지 영화가 '나'를 선택한 것은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작가 이전에 작품이 있듯이 영화인 이전에 영화가 있다. 살아 있는 우리 모두는 결국 영화 이후에 태어난 사람들이다. 고다르는 이 단순한 사실을 일깨운다. 영화인들은 모두 영화에 빚진 존재들인 것이다. 영화를 좋아하기만 했다면 겪지 않을 고통을 영화감독이 되어 경험했다고 장 르누아르가 말하듯 그들은 영화 때문에 힘들어했지만 또 영화로 영광을 얻은 존재들이다. 그러니 최소한 영화에 빚졌다면 그것에 채무의식을 느껴야 한다. 변제할 생각을 해야하는 것이 정당한 태도다. 고다르는 그렇게 생각한 사람이다. 

볼 수 없었던 영화들을 시네마테크에서 보면서 고다르는 본 영화들이 아니라 보지 못한 영화들에 눈을 뜨게 됐다고 말한다. 진정한 영화는 결국은 볼 수 없는 영화들이라 생각했다. 볼 수 없는 것을 보게 해준, 맹인의 눈을 뜨게 해준 시네마테크에 고다르는 감사를 잊지 않았다. 실제로 여러번 그렇게 했다. 그 하나가 1966년에 랑글루아의 시네마테크에서 열린 '뤼미에르 회고전'에서의 긴 연설이다. 고다르는 이 연설에서 자신이 뤼미에르의 영화를 발견한 곳이 랑글루아의 시네마테크이기에 뤼미에르의 영화에 대한 찬사를 바치면서 동시에 시네마테크, 랑글루아에게 고맙다고 말했다. '고마워요 랑글루아'라는 표현을 수십번도 넘게 말했다. 영화의 아버지인 뤼미에르(불어로 뤼미에르는 빛을 말한다)는 영화가 빛의 예술임을 보여주었다. 그가 스크린의 흰 벽면에 빛을 투사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랑글루아의 시네마테크는 뤼미에르의 영화를 다시 투사했다. 뤼미에르의 영화가 시네마테크에서의 상영으로 다시 태어난 것이다. 




고다르에게 시네마테크는 단지 영화예술의 역사를 배운 장소가 아니다. 그곳에서 고다르는 영화 예술에의 믿음을 품을 수 있었다. 시네마테크는 영화의 빛을 되돌려주는 장소였고, 자신이 태어나기 전에 만들어진 영화들, 결코 보지 못한 영화들과의 만남을 주선했다. 작가 이전에 작품이 있듯이 작가 이후에도 작품이 존재(해야만)한다. 고다르는 만약 장 비고의 죽음 이전에 시네마테크가 있었다면 고몽영화사와 겪은 곤경 이후에 그가 위로를 받을 수 있었을 것이고, 결국 영화를 만들 힘을 회복할 수 있었을 것이라 말한다. 그럴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 가능성의 표현이 중요하다.
고다르는 <영화사>에서 '아마도 이러 이러했을수도 있었을 것이다'라는 가정법 표현을 반복해 쓰고 있다. 그는 '있었던 역사들'(역사가라 불리는 사람들이 종종 이러한 일들에 과도하게 집착한다)이 아니라 '있을 수도 있었을 역사들'에 주목한다. 이 점을 중요하게 봐야 한다. 아마도 무르나우가 그렇게 빨리 죽지 않을수도 있었을 것이다. 베케르도, 멜빌도 그렇게 빨리 사라지지 않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레오네는 소비에트 혁명에 관한 영화를 만들 수도 있었을 것이고, 브레송도 천지창조에 관한 영화를 만들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길종도 영화를 더 만들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지 못했다. 영화의 모든 역사는 그러므로 있을 수 있었을 가정법의 역사들을 포함해야만 한다.     


랑글루아의 시네마테크는 회합의 장소였다. 이 곳에서 영화는 새로운 인간관계의 형식이자 실체이기도 했다. 사랑만이 아니라 영화의 우정을 발견한 곳이었다. 사랑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사람이 결국 사랑한다. 반대로 말하자면, 사랑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결국 사랑하지 않는다. 영화를 사랑한다고 말하기는 쉽다. 하지만 영화로 우정을 나누기란 어려운 법이다. 영화적 회합은 영화에 사랑을 느낀 사람들의 우애의 공동체다. 고다르는 시네마테크의 회합을 그렇게 봤다. 우정의 장소에서 고다르는 영화적인 레지스탕스가 결코 끝나지 않았다고, 아니 제대로된 레지스탕스를 한 적이 없었다고 말한다. 국민위에 군림하는 국가에 대항하는 투쟁, 미국에 의한 영화의 점유와 영화만들기의 획일성에 대항하는 예술적 저항을 여전히 벌여야만 한다고 주장한다. 나이가 들수록 예술가들도 평화나 화해를 애매하게 주장하곤 하는데, 고다르는 다른 길을 걷고 있다. 그는 예전보다 더 꼬장꼬장하게 싸움을 건다. 아마도 지금 생존하는 작가들 중에서 칠순을 넘기고도 그런 태도를 유지하는 사람은 세상에 단 두명일 것이다. 고다르와 클린트 이스트우드. 이스트우드는 최근작에서 총을 잡았고 고다르는 여전히 시로 싸워야 한다고 말한다. 이스트우드도 훌륭하지만 나로서는 고다르에게 감사할 수 밖에 없다. 고다르도 시네마테크에 빚을 졌다지만 시네마테크도 영화적으로는 그에게 빚을 졌다. 그러니 고다르에게 감사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김성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