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작가탐구: 오즈 야스지로

강사 김성욱
개강 2017년 4월 3일부터 매주 월요일 저녁 7:30 (8강, 140,000원)

강좌취지
두 명의 오즈가 있다고 말할 정도로 오즈영화에 대한 비평은 다양하다. 노엘 버치와 도날드 리치의 초기 비평에서부터 오즈를 영화에서의 정신적인 본질을 추구한 드레이어, 브레송과 연결시킨 폴 슈레더의 초월적 논의, 들뢰즈와 하수미 시게히코, 요시다 기주의 비평까지. 이번 강의는 오즈의 대표적 작품들을 몇 개의 주제와 시기로 구분해 논의해 보며 미조구치와 나루세 등 동시대 작가들의 영화, 그리고 허우 샤오시엔, 고레에다 히로카즈, 구로사와 기요시 등 후대의 작가들에 미친 영향성을 살펴본다.

1강 영화에 문법은 없다, 하지만.
2강 일상의 미각
3강 무인의 공간
4강 건축가로서의 오즈
5강 소시민 영화론
6강 가족의 표상
7강 반오즈론
8강 오즈를 따라가긴 했지만

참고문헌
『감독 오즈 야스지로』, 하수미 시게히코, 한나래
『오즈 야스지로의 영화세계』, 도날드 리치, 현대미학사

강사소개
영화평론가, 중앙대학교 영화학 박사. 시네마테크 서울아트시네마의 프로그램 디렉터로 활동하며 영화사의 거장들의 회고전을 기획해 개최하고 있다. 『데릭 저먼의 영국』, 『디지털 시대의 영화』 등의 책을 번역했고, 『루이스 부뉴엘의 은밀한 매력』, 『오시마 나기사』, 『장 피에르 멜빌』, 『영화와 사회』 등의 책을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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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즈 야스지로는 생전에 자신의 영화가 세계적으로 유명해질 것이라고 믿지 않았다고 한다. 그는 언젠가 촬영감독 아츠다 유하루에게 “내 영화를 외국인들은 알지 못할 거야. 그건 무리가 아니지. 하지만 언젠가 그들은 일본 사람들이 앉아 있다는 사실, 우리에겐 낮은 카메라 위치가 어울린다는 사실을 알게 될 거야. 하긴 내 영화에 그들이 큰 신경을 쓰진 않겠지만”이라 말했었다. 오즈가 이런 말을 한 것도 무리는 아니었을 것이다. 게다가 그의 말은 현실화됐다. 1950년대 일본 영화의 황금기를 장식한 세 명의 감독, 구로자와 아키라, 미조구치 겐지, 오즈 야스지로 중에서 그는 가장 뒤늦게 서구에 소개된 감독이었다.
서구인들은 구로자와의 <라쇼몽>이나 미조구치의 <우게츠 이야기>에 담긴 이국적인 정서에 매료되었다. 그들의 눈으로 보기에 오즈의 영화는 너무나 일본적인 것으로 보였다. 이국적인 정서에의 과한 평가로 유럽과 미국은 70년대까지 오즈 야스지로의 작품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었다. 비단 서구의 일 만은 아니었다. 오시마 나기사, 요시다 기주, 이마무라 쇼헤이를 포함한 60년대 일본 뉴웨이브 감독들은 오즈의 영화에 박한 평가를 보였다. 오즈의 영화가 봉건제와 보수적인 사회의 분위기를 지나치게 묵인하는 수동성을 보여주고 있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오즈이즘’의 바로 그런 특징이 오즈의 영화가 지닌 위대성을 웅변하고 있다. 오즈의 영화는 우리의 시선을 달리할 것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오즈의 죽음은 기묘한 사건처럼 보인다. 그는 1903년 12월 12일에 태어나 1963년 그의 60번째 생일에 간암으로 사망했다. 탄생과 죽음의 기묘한 순환은 그의 무덤에 적힌 ‘무無’라는 글귀만큼이나 오즈 영화에서의 반복과 순환, 삶과 죽음의 닮은꼴을 상징하는 것처럼 보인다. 계절과 날씨만큼 이런 반복과 닮음을 명증하게 보여주는 것도 없을 것이다. 오즈의 영화에서 인물들은 일상적으로 날씨에 대한 대화를 나눈다. 그렇다고 계절과 날씨가 극적인 사건을 만드는 것은 아니다. <부초>를 제외한다면 그의 영화 대부분에서 하늘은 마치 자크 타티의 세계에서처럼 늘 화창하고 맑게 개여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날씨에 대한 언급은 끊이지 않는다. 그것은 일상성의 가장 평범한 표현들이다. 또한 추수를 기다리는 농부의 태도처럼 오즈의 인물들이 자신을 둘러싼 대기의 흐름에 민감해 하기 때문이다.
오즈의 영화에는 ‘어떻게 대학을 졸업할 것인가, 어떻게 취직을 할 것인가, 어떻게 결혼을 할 것인가, 어떻게 노년을 준비할 것인가, 어떻게 장례식을 치를 것인가’등의 일상적인 질문들로 가득하다. 오즈의 작품은 마치 ‘일상의 범례’를 영화화한 것처럼 보인다. 오즈는 결코 이런 일상적인 질문들에 대한 명증한 해답을 제공하지 않지만 일상의 문제에 직면한 인간이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는가는 분명하게 보여준다.
삶에는 맑은 날이 있으면 흐린 날이 있는 것만큼이나 자연스럽고 무상하다. 인간의 선택은 제한되어 있다. 오즈의 인물들은 추수를 기다리는 농부의 삶처럼 계절의 흐름에 맞춰 삶을 영위한다. 그런 점에서 오즈가 정해진 규칙에 순응하는 금욕적인 태도를 지니고 있었다고 말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을 것이다. 딸을 시집보내야만 아버지의 심정을 자주 다룬 오즈의 후기작에서 흐름에 역행하는 태도가 물론 없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피안화>에서 아버지는 딸을 시집보내려 하지만 정작 딸이 애인을 숨기고 있었다는 사실에 화를 낸다. 하지만 아버지는 결국 딸의 결혼식에 참가한다. <만춘>이나 <꽁치의 맛>에서 딸을 시집보내야 하는 아버지의 심정은 괴롭지만 그 때문에 그들이 답답해하거나 고통스러워하지 않는다. 더운 날씨로 여름이 가까이 왔음을 느끼는 것처럼 인물들은 주위의 친구들을 보고 딸이 시집갈 나이가 되었음을 깨닫는다. 여름 맞을 준비를 하기 위해 짧은 옷을 꺼내놓고 선풍기를 닦는 것처럼, 아버지는 딸에게 맞는 신랑감을 찾고 딸을 시집보낼 마음의 준비를 한다.  .

오즈의 영화가 공감을 자아내는 것은 인물들의 이런 태도 때문이다. <피안화>에서 아버지는 몰래 결혼해서 살고 있는 딸에게 애증을 느끼는 친구와 닮아 있고, <꽁치의 맛>에서 히라야마는 딸의 혼기를 놓친 은사 사쿠마와 닮아 있다. 이런 인물들의 공감은 서로 닮은 태도와 자세에서 가장 아름답게 표현된다. 오즈의 영화에서 공감은 둘이 서로 마주보는 것이 아니라 서로 나란히 앉아 하나의 대상을 눈에 담는 몸짓을 통해 만들어진다. <동경 이야기>에서 노부부는 제방 위에 유카타 차림으로 나란히 앉아 있는 장면은 비스듬히 옆에서 찍힌 두 사람의 등을 보여준다. 서로 나란히 앉아 마치 서로의 행동을 반복하듯 같은 동작을 연기하는 것만으로 공감이 이루어진다. 이러한 정서는 홀로 앉아 있는 사람의 뒷모습에서 최고조에 달한다. 오즈의 마지막 작품 <꽁치의 맛>에서 히라야마가 딸의 결혼식이 끝난 뒤 찾아간 술집에서 노래를 들으며 홀로 앉아 있는 뒷모습이나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의자에 앉아 있는 히라야마의 뒷모습은 한없이 쓸쓸해 보인다. 이러한 인물의 몸짓은 도자기, 화병, 주전자, 심지어 공장의 굴뚝과 같은 삶의 느린 지속을 간직한 정물과도 같은 자세이다. 비록 오즈의 조감독을 했던 이마무라 쇼헤이가 배우를 인형처럼 고정시켜 놓고 세세한 몸짓까지 오즈가 지시하는 것에 분통을 터트렸지만 그 또한 부자연스러움과 제한된 선택을 통해 오즈가 감동을 만들어냈다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오즈 영화의 서명과도 같은 또 다른 특징은 잘 알려진 낮은 위치의 카메라(로우 앵글)이다. 오즈는 늘 지면에 근접한 상태에서 대상을 촬영했다. 오즈는 아츠다에게 “당신도 알다시피 일본의 방에서 특히 구석에서 좋은 구도를 만들기란 정말 힘들어. 이걸 처리하는 최선의 방법은 낮은 카메라 위치를 이용하는 거지. 이렇게 하면 모든 일이 쉬워질거야”라고 말했다. 이런 낮은 위치의 카메라는 제한이나 엄격함의 산물이라기보다는 인물의 내부적인 시선과 삶의 지속을 반영한 것이다. 예를 들어 <동경 이야기>에서 낮은 위치의 카메라는 그가 관심을 두고 있는 중심인물이 나이든 부부라는 점에서 설득력을 갖는다. 그들의 움직임은 느리고 서 있기보다는 대부분 앉아 있다. 많은 서구의 비평가들은 이런 오즈의 로우 앵글 쇼트를 금욕적인 것으로 이해했다. 예컨대 도널드 리치는 오즈가 영화적인 표현 수단의 방법들을 포기하고 가혹하리만큼 영화적 논평에 대한 수단들을 제한해 버렸다고 말한다. 즉 오즈가 고의적으로 그가 카메라의 제한된 스타일을 사용했다는 것이다. 오즈를 묘사하는 대부분의 서구 비평가의 표현은 ‘반복, 제한, 극단적인 구성의 경제성, 세심한 계산’ 같은 것이다. 그들은 오즈 영화의 특징이 일본의 미니멀리스트 미학을 반영하는 것이라고 간주한다. 그래서 일본의 하이쿠나 동양의 선사상을 통해 오즈에 접근한다. 그렇게 오즈의 신성화가 만들어진다.






언젠가 빔 벤더스는 ‘영화에서 신성한 보배와 같은 것이 있다면 그것은 아마도 오즈의 작품일 것이다’라고 말했다. 신성한 보배와도 같은 오즈의 작품은 어떻게 1950년대 만들어질 수 있었을까? 오즈는 1923년 쇼치쿠의 가마타 스튜디오 촬영 부서에 입사했다. 그는 3년 뒤인 1926년 감독 부서로 옮겼다. 군대 복무를 포함한 짧은 기간이었지만 그가 촬영 부서에서 일한 경험은 이후 오즈 영화의 중요한 자산이 되었다. 오즈가 입사할 무렵 쇼치쿠 영화사는 혁명적인 변화를 겪고 있었다. 당시 쇼치쿠는 할리우드 스튜디오 시스템을 도입하고 있는 중이었다. 전통적인 대중 연극, 특히 가부키를 제작하던 쇼치쿠는 1920년에 영화 제작을 시작했고, 미국에서 태어나 할리우드에서 작업한 젊은 촬영 감독 헨리 코타니를 영입했다. 촬영 감독이었던 미도리카와 미치오는 헨리 코타니의 할리우드적인 촬영 테크닉을 받아들였다. 오즈가 쇼치쿠에 촬영 부서로 입사했을 때 미도리카와는 오즈에게 할리우드적인 영화 촬영 테크닉을 전수했다. 미국 영화를 즐겨 보았던 오즈에게 할리우드의 혁신적인 촬영 기법은 오즈 영화 형식의 적절한 뼈대를 제공했다.
오즈가 쇼치쿠에 견습생으로 입사했을 당시 아츠다 유하루 또한 촬영 부서로 들어왔다. 당시 쇼치쿠에서는 두 개의 대립적인 스타일이 경쟁을 벌이고 있었다. 하나는 할리우드적인 스타일이었고, 또 다른 하나는 니카추에서 만들어진 일본의 전통적인 스타일이었다. 아츠다는 미도리카와의 보조로 일하면서 할리우드적인 촬영 테크닉을 배웠다. 오즈와 아츠다의 협력 관계가 이미 심정적으로 1920년대 중반에 마련되고 있었던 셈이다. 나중에 아츠다가 오즈의 촬영 감독이 됐을 때 그는 오즈의 스타일을 금방 이해할 수 있었다. 아츠다는 오즈가 즐겨 사용하는 독특한 로우 앵글 쇼트를 위한 특별한 삼각대를 고안했을 뿐만 아니라 촬영지를 물색하거나 세트 촬영에서의 제반 준비를 오즈가 원하는 방식으로 준비했다. 심지어 아츠다는 자신이 오즈처럼 생각하고, 오즈처럼 보고, 오즈처럼 행동했다고 술회하고 있다. 아츠다는 오즈의 단순한 촬영 감독이 아니라 오즈 영화의 뼈대를 형성한 든든한 동료이자 후원자였다. 오즈는 1950년대 자신의 영화 스타일을 견고하게 뒷받침 해주는 완벽한 팀을 구성할 수 있었다. 시나리오 작가, 촬영감독, 예술감독, 편집자, 배우 등으로 구성된 이 집단은 서로가 무엇을 원하는지 너무나 잘 알고 있었고 할리우드의 표준화된 제작 시스템처럼 재빨리 움직였다. 그런 점에서 1950년대 오즈의 걸작 영화들이 만들어질 수 있었던 것은 단순한 기적도 신성한 사건도 아니다. 오즈의 영화는 그가 즐겨 사용한 낮은 위치의 카메라처럼 견고하게 지면에 뿌리박고 있었던 셈이다.

일본의 영화 평론가인 사토 다다오는 서구인들이 오즈 영화에서 보여지는 정적인 감각을 가장 일본적인 것이라고 평가하고 있지만 불행하게도 일본에는 한 명의 오즈 야스지로가 있었을 뿐이라고 말한다. 오즈를 모방하거나 오즈를 따른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말이다. 달리 말하자면 오즈는 일본에서 스스로 ‘고립된 천재’였던 것이다. 사토 다다오는 오즈가 분명 일본적인 감독이었지만 오즈의 영화를 민족성에 근거해 이해하려는 태도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다. 차라리 오즈의 영화를 이해하는 좋은 태도는 ‘세계 영화의 조류’에서 어떻게 오즈의 영화가 구별되는가를 분류하는 것이다. 오즈를 영화에서의 정신적인 본질을 추구한 드레이어, 브레송과 연결시킨 폴 슈레더의 논의는 비록 오즈 영화의 초월성을 지나치게 강조한 면이 있지만 오즈를 일본적인 구도에서만 이해하려는 편견에서 벗어난 흥미로운 사례 중의 하나이다. 들뢰즈 또한 오즈를 미조구치나 구로사와와 달리 네오리얼리즘, 누벨바그 등과 함께 현대 영화의 새로운 시작점의 작가로 위치시킨다. 
하지만 가장 흥미로운 시도는 일본의 평론가인 하스미 시게히코의 평가일 것이다. 하스미는 <감독 오스 야스지로>에서 ‘오즈다운 것’과 ‘오즈 야스지로’를 비교하며 오즈다운 것에서 벗어나 오즈의 영화를 제대로 볼 것을 제안한다. 많은 사람들이 ‘오즈답다’라고 말할 때 그들이 사용하는 언어는 부정과 결핍의 언어이다. 예컨대 이동 촬영을 배제하고, 플롯을 배제하고, 배우의 연기를 억제할 때 오즈다운 영화가 만들어진다고 말한다. 하지만 오즈 야스지로의 영화는 결핍과 부정보다는 긍정으로 충만해 있는 영화였다는 것이다. 하스미는 오즈의 엄격함이 제한과 결핍에서 기인한 것이 아니라 영화가 지닌 한계에 대한 인식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지적한다.
오즈는 영화가 지극히 부자연스런 매체라고 생각했다. 예를 들어 영화는 두 사람이 서로를 응시하는 눈동자를 보여줄 수는 있지만 시선을 보여줄 수는 없다. 오즈의 영화에서 인물은 상대방을 응시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대부분 서로 시선이 교차되는 법은 드물다. 프랑수아 트뤼포가 오즈의 영화에서 보이는 기묘한 시선에 대해 “한 사람의 시선을 따라가면 사실 거기에는 상대가 없는 것은 아닌가 하는 불안에 휩싸여 버린다”고 표현했을 때 이 시선의 어지러움은 영화 매체가 지닌 한계에 대한 자각을 반영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보자면 오즈의 낮은 카메라 위치 또한 영화를 보는 관객의 위치(관객은 앉은 자리에서 영화를 본다)에 대한 자각을 반영하는 것이었다 말할 수도 있다. 선입견에서 벗어나 오즈 야스지로의 영화를 제대로 이해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러므로 그의 영화를 제대로 보는 것이다. (김성욱)

* 이 글은 2001년 1월에 열린 ‘오즈 야스지로 회고전’에 맞춰 ‘필름2.0’에 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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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cosmosmachina 2017.06.01 02:46 신고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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