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년에 니콜라스 레이는 학생들에게 했던 강연에서 영화광들을 언급하며 그들이 자기를 괴롭힌다고 말했다. 자꾸 곤란한 질문을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에게 존경을 표한다고 말했다. 배우는 관객이 없다면 존재하지 않는데, 영화광들이야말로 진정한 관객들이기 때문이다. 아니 그 이상이다. 그들은 분석하고, 증거하고, 기억하고 수집한다. 니콜라스 레이는 사물을 탐구하고 분석하고 정의를 내리는 영화광들의 일이 매우 중요하고 쓸모있는 일이라 말한다. 그는 시네마테크가 영화광들, 진지한 학생들, 영화창작 예술에의 종사자들이 특정한 영화들에 가치를 부여하는 장소이자 그와는 다른 영화들을 거부하거나 저항하는 장소라 했다. 레이는 말한다. "시네마테크 덕분에, 당신들이 가치를 부여하는 작품들이 보존될 수 있었고, 그래서 그런 영화들이 당신들의 예술적 성장을 위해 제공하는 기회를 당신들은 활용할 수 있습니다"라고. 누군가 조금은 거창해 보이지만 진지하게 이렇게 물었다. 그래요. 지금 영화광들은 영화를 두고 어떻게 세상과 싸울 수 있을까요. 무셰트를 다시 보고 싶어졌다. (Hul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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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료제를 구실로 해서 문화의 가장 나쁜 적들이 자유의 거점을 탈환하려 한다. 거기에 가지 말아야 한다. 거기서 떠나야 한다. 자유는 쟁취하는 것이지 수여받는 것이 아니다. 프랑스와 전세계에서 영화를 사랑하는 모든 이들이 당신과 그리고 앙리 랑글루아와 함께 할 것이다. - 1968년. 장 피에르 칼퐁 "시네마테크의 아이들" 성명서 중에서.



1968년 2월, 시네마테크 프랑세즈의 랑글루아와 그의 운영진이 한국식의 영진위인 CNC로부터 해고됐을 때, 시네필들 즉, 시네마테크의 친구들과 아이들은 단호한 결단을 내렸다. 새로 구성된 바르뱅테크(피에르 바르뱅이란 자가 랑글루아를 대신해 관장으로 들어갔고, 새로운 운영진이 임명됐다)에 가지 말자고. 그 곳을 인정하지 말자고 했다. 이 단호한 결정과 신속한 행동이 두 달여간의 싸움을 거쳐 시네마테크를 구제할 수 있었다.  


시네필, 그들은 단지 영화만 보는 이들이 아니다. 그들의 미학적, 윤리적 결단은 가장 견고하면서도 단호하다. 그것을 자유에의 저항이라 부를 수 있다. 저항은 말로가 말했듯이 인간적이며, 동시에 예술 행위이다. 시네필은 저항하는 자이기에 그들은 또한 창조자들이다. (김성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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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0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를 맞아서 '시네필의 선택' 섹션에 참여한 영화평론가 정성일씨가 시네마테크에 보냈던 편지입니다. 카탈로그에 실려있지만 여기에도 소개합니다.

   

시네마테크2010_친구영화제_20091230

보내는 사람_정성일

받는 사람_김성욱

 

 

첫 번째 (상황). 2008년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가 내건 슬로건은 ‘영년(zero year)’이었다. 그건 마치 내게 하는 말 같았다. 제로라는 무효의 선언. 다시 시작하겠다는 각오. 로셀리니가 영화 제목에 쓴 말. 그런 다음 고다르가 받아서 21세기에 반복했던 제목. 하지만 내게 그 의미는 다른 것이었다. 말 그대로 진공상태. 단지 길을 잃었다는 말로는 부족하다. 나는 텅 빈 상태였었고, 거의 매일같이 술을 마시는 것처럼 영화를 보았다. 너무 많이 보아서 어제 본 영화와 오늘 본 영화가 잘 구별되지 않았다. 종종 중간부터 보기도 하였고, 때로는 보다가 지쳐서 자기도 하였다. 나는 2008년 친구영화제에 슬픈 마음을 안고 마츠모토 토시오의 <수라(修羅)>를 백지수표에 썼다. 그때 내 상황은 비유 없이 아수라장이었다. 그 해 내내 준비했던 영화는 잘되지 않았다. 나는 할복자살하는 심정으로 이 영화를 그 자리에 온 영화의 친구들에게 소개했다. 아니, 그건 그냥 할복이라고 말하는 편이 옳을 것이다. 마츠모토 토시오라는 칼. 단숨에 창자까지 꺼내 들 수 있게 잘 만들어진 섬뜩한 날. 먹물처럼 배어 나올 피. 유혈 낭자한 소개. 나는 친구들이 모인 파티를 피바다로 만들고 싶었다. 하지만 아무도 내 마음을 이해해주지는 않았다. 모두는 아니지만, 그 중 몇몇은 재미있게 보았다. 심지어 악수를 청하는 사람도 있었다. 맙소사! 눈물을 흘리는 사람에게 청하는 감사의 악수보다 더 아이러니한 상황이 있을까.


두 번째 (행동). 그 이듬해 다행히도 나는 친구 영화제에 참석하지 않아도 되었다. 영화를 찍었다. 그건 내게 매우 중요한 일이었다. 단지 영화를 찍었다는 사실 때문이 아니다. 만일 그렇게 생각한다면 그건 나를 오해한 것이다. 나를 붙잡은 질문. 대답을 구하려는 간절한 노력. 내게서 영화를 찍는다는 건 질문에 대답하는 활동이다. 말하자면 사랑의 다른 길. 훨씬 직접적이고 감각적인 길. 생각이 미리 자리 잡기 전에 작업하면서 고정적이고 기계적인 개념을 부수는 방법. 내가 책에서 읽은 의심스러운 구절들. 우리는 책에서 읽은 상투적인 구절들과 싸워야 한다. 아니, 그냥 단도직입적으로 개념이 담긴 영화 책이라는 유리병을 세상 속으로 집어던져서 깨버려야 한다. 어떻게? 나는 영화를 만드는 것만이 방법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러므로 영화를 만드는 것은 내가 배움을 향해서 간절하게 집어던지는 액션이다. 로셀리니는 세상 속에서만 영화는 배움을 청한다고 말했다. 나는 그 말에 대한 믿음을 실천하고 싶었다. 차라리 내 존경을 실천하고 싶었다. <카페 느와르>는 나의 영화 액션이다. 우리는 이 영화에 대해서 함께 이야기할 시간이 있을 것이다. 아니, 그 시간이 올 것이다. 미래의 관객이라는 기대의 지평.


세 번째 (선택).
나는 올해 열 편의 영화 제목을 썼다. 그중에서 세 편이 결정되었다(고 한다). 그러므로 세 편 사이의 관계를 설명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혹은 억지로 만들어내는 삼각형이 될 것이다. 대신 열 편을 고르면서 세운 원칙과 세 편에 대한 짧은 추억을 말하는 것으로 소개를 대신하겠다. 시네마테크에서 영화를 소개하다니! 그런 건 그냥 교과서에 맡겨놓으면 된다. 여기는 교실이 아니다. 우리가 구출해야 할 영화. 영화를 착취하는 기계들. 교실. 멀티플렉스. 아마도 그런 곳에서는 소개가 필요할 것이다. 어쩌면 별점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일을 하는 건 바보짓이다. 나의 호소. 우리는 영화를 소개하면 안 된다. 그저 그걸 보아야 한다. 보고 또 보아야 한다. 그런 다음 각자의 영화사를 창조해야 한다. 나는 그것을 앙리 랑글루아의 목록에서 배웠다. 랑글루아는 시네마테크의 시간표를 매일매일 짜면서 그걸 작가별, 혹은 주제별, 또는 장르별, 배우별, 시대별로 구분되지 않게 필사적인 노력을 기울였다. 여기는 슈퍼마켓이 아니다. 우리 시대의 발명품 영화. 20세기의 타임머신.
 

변주곡, 혹은 엘레지. 김성욱 씨로부터 슬픈 이야기를 들었다. 어쩌면 2010년 친구의 영화제가 마지막이 될지도 모른다는 말을 했다. 이유는 여러분이 잘 아는 그대로이다. 끔찍한 일이다. 우리는 다시 만나지 못할지도 모른다. 우정을 나눌 장소는 위기에 빠졌고, 아직 대안은 없다. 아마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나는 예술과 정치의 수상쩍은 구별을 항상 의심한다. 물론 시네마테크 친구들의 희생적인 노력 덕분에 우리는 그동안 아무 걱정 없이 영화를 보았다. 여기서 방점은 불행히도 ‘그 동안’이다. 하지만 이제 그 희생의 노력만으로 충분하지 않게 되었을 때 당신은 무엇을 할 것인가? 당신의 투쟁전선은 고작 해야 방안의 홈 씨어터인가? 보고 싶은 영화를 위한 당신의 저항은 불법다운로드인가? 우리가 믿는 정의를 옹호하기 위해서 해야 하는 행동을 결정해야 할 시간. 우리는 예술과 짝을 이루는 정치에 대해서 생각해야 한다. 사방에서 벌어지는 폭격. 점령구역들. 하지만 발등에 불이 떨어져야만 움직이기 시작하는 수수방관. 당신은 영화를 본다는 것 말고는 아무 이해관계도 없는 장소를 방어하기 위해서 (어떤 형식이건) 희생할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는가. 이것은 다시 입장의 문제이다. 그리고 입장의 효과(와 결과)를 생각해야 한다. 유명한 1902년의 정식. “막대가 나쁜 방향으로 구부러졌을 때, 그것을 바로 잡기 위해서는 즉 곧게 펴기 위해서는, 우선 막대를 반대방향으로 구부려야만 하며 따라서 그것을 쥐고 튼튼하게 반대방향으로 잡아당겨야 한다.” 누가 결정을 내리는가? 결정의 내용을 아무리 따져보아야 거기에는 대답이 없다. 핵심은 결정을 바꾸는 것이다. 혹은 결정을 내리는 자리를 바꾸는 것 이외에는 방법이 없다. 곧게 펴기. 하지만 어떻게? 우리는 이제 흐릿해진 생각을 명확하게 해야 한다.


세 편의 영화. 먼저 루이 푀이야드의 <뱀파이어>. 물론 이 영화는 ‘흡혈귀’와 아무 상관이 없다. 연쇄극으로 이루어진 이 영화의 어떤 버전이 이번 영화제에서 상영될지에 대해서 나는 아직 아무 정보도 없다. 나는 이 영화를 이번 영화제에서 진심으로 ‘공유’하고 싶다. 다소 무모한 말이긴 하지만 당신들과 마찬가지로 나에게도 ‘생애 한 편의 영화’가 있다. 물론 이 영화 제목은 내일 바꿀 수도 있다. 원래 ‘한 편의 영화’라는 건 그런 것이다. 나는 1993년 1월 마지막 토요일 클레르몽페랑의 파스칼대학 강당에서 밤 10시에 시작해서 밤새도록 상영된 루이 푀이야드의 <뱀파이어>를 처음 보았다. 그 전에 나는 이 영화를 책의 제목에서만 보았다. 그리고 아무도 내게 이 영화를 추천해주지 않았다. 나는 완전히 홀렸다. 아니, 그냥 넋을 잃었다는 말이 맞다. 최면상태. 아름답다거나 훌륭하다는 말로는 설명되지 않았다. 이건 위대하다거나 혹은 걸작이라는 말과는 근본적으로 어울리지 않는 결정이다. 그냥 영화 자체를 본 것 같았다. ‘아! 이것이 영화구나.’ 라는 탄식. 물론 그런 다음에도 쉬지 않고 영화를 보았다. 놓친 영화들을 찾아보았고, 새로운 영화들을 보았다. 많은 복원판을 보았다. 추천작들도 보았다. 하지만 어떤 영화도 자기의 자리를 차지할 뿐 내게 지금 이것은 영화, 라고 선언하지 못했다. 나에게 영화는 결국 <뱀파이어>이다. 나는 내 믿음을 의심하기도 하였다. 그래서 거의 십 년이 지났을 때 다시 보았다. 이번에는 뉴욕에서 보았다. 그때 결론을 내렸다. 나는 결국 이 사랑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마치 내 평생의 연인이 릴리안 기쉬인 것처럼. 그때 이 결정에서 릴리안 기쉬가 얼마나 연기를 잘하느냐는 문제와 아무 상관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물론 당신이 동의하건 말건 그건 내 관심이 아니다. 아마도 당신에게 영화라고 선언하는 또 다른 영화가 있을 것이다. 나는 그것을 놓고 경쟁할 생각이 없다. 다만 이 자리에서 내 사랑을 고백하고 싶을 뿐이다. 아무도 강요하지 않았지만, 고백을 통해서 당신에게 내가 친구라는 것을 말하고 싶다. 하긴 여기가 아니라면 어디서 그 말을 할 수 있을까.

 

두 번째. 사샤 기트리. 아직 단 한 번도 여기서 사샤 기트리의 회고전이 없었다는 사실은 부끄러운 일이다. 게다가 거의 이야기도 되지 않는다. 언제나 르누아르. 언제나 브레송. 언제나 고다르. 나는 사샤 기트리에 대해서 함께 이야기할 친구를 오랫동안 기다렸다. 하지만 불행히도 아직 만나지 못했다. 그러므로 이 선택은 친구를 찾는 나의 애절한 호소이다. 우리가 우정을 나누는 방식. 나는 사샤 기트리가 장 르누아르나 브레송만큼은 아니지만 마르셀 카르네나 줄리앙 뒤비비에보다는 훨씬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혹은 장 콕토보다 본질적으로 시적이다. 사샤 기트리가 없었다면 장 으스타슈가 가능했을까. 앙리 랑글루아는 훨씬 더 확신을 갖고 프로그램을 썼다. “사샤 기트리는 미조구치 겐지, 빈센트 미넬리, 더글라스 서크, 로베르토 로셀리니처럼 중요하다. 이 말은 이상하다. 그렇다. 사샤 기트리는 영화사에서 그렇게 이상한 자리에 있다.” 내가 사샤 기트리를 처음 본 곳은 프랑스 문화원이었다. 그때 나는 사샤 기트리의 중요함에 대해서 열심히 설명했다. 나와 함께 영화를 보던 친구들은 동의하지 않았다. 나는 세대를 건너뛰어 이제 다시 당신에게 동의를 구한다. 하지만 사샤 기트리의 영화를 한 편 보고 그를 잘 알게 된 것처럼 말하는 것은 우스운일디다. 내 꿈 중의 하나는 살아생전 사샤 기트리의 전작 회고전을 보는 것이다.


세 번째. 카르멜로 베네를 가장 먼저 언급한 사람은 피에르 파올로 파솔리니였다. 파솔리니는 경외감을 안고 베네를 ‘나의 위대한 동지’라고 불렀다. 그 다음은 고다르이다. 고다르는 베네의 영화를 본 다음 달려가서 로마에서 그의 연극 무대를 보았다. 질 들뢰즈는 카르멜로 베네에 관해서 한 권의 책을 헌사 했다. 하지만 시네필 들뢰즈가 카르멜로 베네를 말하면서 연극에 한정 지어 설명한 것은 좀 의외이다. 들뢰즈가 카르멜로 베네에게 바친 한 권의 책 『중첩』은 들뢰즈의 유일한 연극에 대한 책이(라고 나는 알고 있)다. 그런 다음 영화에 관한 두 번째 책 『영화 2; 이미지-시간’의 제 8장 ‘영화, 신체, 그리고 뇌, 사유』에서 짧게 다루고 있다. 하지만 들뢰즈는 카르멜로 베네가 이미지-수정체를 건설한 가장 위대한 시네아스트 중의 한 명이라는 사실을 인정한다. 그런 다음 들뢰즈는 여기서 장 으스타슈, 필립 가렐, 알랭 레네, 장-마리 스트로브와 다니엘 위예 그리고 미래의 민중영화를 이야기한다. 카르멜로 베네의 위치. 나는 좀 더 많은 카르멜로 베네의 영화를 보고 싶다.


인사. 그렇다. 우리는 영화에게 인사를 해야 한다. 더 많은 영화에게 인사를 해야 한다. 우리들의 두 번째 십 년. 우리들의 21세기의 두 번째 시작. (정성일_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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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네마테크협의회가 지난 2월부터 진행된 영진위의 시네마테크의 공모제건과 관련해서 3월 25일 성명서를 발표했습니다. 이 성명서는 한국시네마테크협의회 총회에서 의결된 사항으로 전국적인 시네마테크 단체들이 영진위가 시네마테크 공모전환에 대한 반대의사를 분명히 천명하는 것으로, 시네마테크를 정치적 외압에서 방어하고 부분적인 재정지원을 빌미로 관리 통제하려는 영진위, 혹은 정치적 세력들에 입장을 표명하는 것입니다.

성명서의 요지는 다음과 같습니다. 
    

한시협은 최근 영진위가 시네마테크를 공모로 전환하려는 시도가 시네마테크와의 문화적 합의를 깨는 중대사안이라 판단한다. 민간 영역에서 진행해 왔던 시네마테크 사업을 영진위가 사업비의 일부를 지원하는 형태로 보조해 왔을 뿐인데, 지금 영진위는 마치 시네마테크 사업을 그들의 자체 사업인 것처럼 인식하고 있다. 순수 민간영역의 활동을 영진위가 사업주체가 되어 경쟁 입찰로 전환하겠다는 것은 비상식적인 일이다. 한시협은 전국의 12개 시네마테크 단체들의 협의체로 현재 한국의 시네마테크들을 공식적으로 대변하는 대표성을 지닌 단체이다. 그런데 영진위가 시네마테크에 대한 지원사업의 정당성이 공모제를 통해서 성립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지난 10여 년간의 시네마테크의 활동을 부정하는 몰염치한 태도이다.


영진위는 이에 대한 아무런 대책도 마련하지 않은 채 단지 국정감사 지적 사항이라는 것만을 이유로 공모제를 강행하려 하고 있다. 영진위는 지난해 위원장의 과시욕이 화를 초래하여 다양성영화 복합상영관 추진을 좌초시킨 데 이어 이제는 겨우 자리를 잡아가기 시작한 국내의 민간 시네마테크 활동을 고사시키려고 나섰다.
한시협은 운영예산의 80% 이상을 공적자금으로 지원하는 서구의 시네마테크처럼 영진위가 지원 규모를 확대하라고 요구하고 싶지 않다. 영진위의 문화적인 성숙도가 그에 미치지 못한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네마테크의 지원기관으로서의 기본 역할까지는 망각하지 말 것을 경고한다. 공모제를 강행하는 것은 국내의 시네마테크 활동을 10년 전으로, 아니 그 이상으로 되돌리는 행위임을 영진위는 자각해야 한다.

 


이에 한시협은 문화적 다양성을 심각하게 훼손하며 국내 영화진흥에 걸림돌이 되고 있는 강한섭 위원장을 규탄하며 지금이라도 영진위가 다음과 같이 나설 것을 촉구한다.

 

   첫째, 영진위는 정치적인 외압에 스스로 굴종할 것이 아니라 비전문적인 정치인들과 관료의 일방적 주장에 맞서 시네마테크의 영화다양성을 지키기 위한 노력을 소신 있게 관철하라!

   둘째, 영진위는 적절한 논리도, 근거도 없이 일방적으로 진행된 시네마테크 지원사업의 공모 전환 추진을 즉각 중단하라!

   셋째, 영진위는 시네마테크 사업에 필요한 최소한의 물적, 재정적 지원을 확대하기 위한 구체적인 방안을 마련하라!

   넷째, 영진위는 지난 해 영진위의 잘못된 시도로 좌초된 시네마테크 전용관의 설립에 적극적으로 나서라!

 


한시협은 이와 관련해 영진위가 적극적이고 구체적인 개선책을 제시하지 않을 경우, 전국 시네마테크 단체들은 물론 영화인들, 관객들과 연대하여 공동행동을 전개할 것이다. 아울러 한시협은 시네마테크를 정치나 자본의 논리에 따라 좌지우지하려는 지금의 상황이 영화문화의 위기국면이라 생각해 올 한 해 동안 지속적으로 이러한 문제와 관련한 포럼과 대중적인 논의, 영화인들의 결속을 이뤄내는 활동을 전개해 나갈 것을 결의한다.


 

* 최근 문화관광부는 국립오페라 합창단을 일방적으로 해고하는 만행을  저질렀습니다. 2002년에 창단된 국립오페라단이 처한 상황은 시네마테크가 최근 겪고 있는 위기와 별반 달라 보이지 않습니다. 경제와 정치를 말아먹은 한심한 이명박 정권이 이제 문화예술계 또한 위기로 몰아가고 있습니다.  

한겨레: 광화문에 울려퍼진 '합창단 해체반대' 오페라  


* 영진위 노조 또한 최근 영진위의 파행과 계약직 연구원의 일방적 해고와 관련해 영진위 위원장의 퇴진을 요구하는 천막농성을 벌이고 있습니다. 이와 관련해서는 아래의 기사를 참고하세요.

프레시안: 영진위 조 천막농성 돌입, "강한섭 위원장 사퇴하라" - 거듭되는 파행, 이번엔 부당하게 계약직 해고



* 성명서의 전문은 아래를 확인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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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서울아트시네마와의 만남

 

리뷰를 쓰면서 영화형식미에 대한 나의 지식이 참으로 일천하기 그지 없다는 사실을 절감했다. 그래서 영화의 역사와 고전형식을 되짚어 보기 위해 <서울아트시네마>를 방문하기 시작했고, 그리고는 이내 영화의 풍성한 형식미의 바다에 퐁당 빠져서 허우적대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그렇게 어느 한 분야의 예술영역, 특히 영화는 쉽게 가늠하기 힘든 형식과 내용을 이미 갖추고 있었다.

 

2. 시네마떼끄의 힘

 

내가 영화예술의 진한 맛에 빠르게 중독된 데에는 뭐니뭐니해도 극장이라는 목적의식적인 대중적(정치적) 공간에서 만나는 필름(원본재현)상영이 존재했기에, 즉 고전 영화의 역사적 재현 공간에, 그 순간 내가 위치해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것이다. 이렇게 시네마떼끄는 과거의 역사적 경험을 현재의 대중과 공유하는 재현과 소통의 시대적 공간인 것이다. 이것이 우리가 떼끄를 지키고 사수해야 하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인 것이며, DVD나 TV로 개인적 공간에서 해결 불가능한 것이다.

 

3. 공모제의 본질

 

그런데 불행히도 그 공간이 사라질지도 모를 위험에 처해있다(이런... 역시 어느 곳, 어느 때이건 예술은 정치와 딴 몸일 수 없으며 항상 생존을 위해 싸움이 필요하다는 역사적 교훈을 또 일깨워준다. 의회민주주의의 역사는 항상 이런 상시적 불안감을 동반한다).

 

마침내 "공모제"라는 이름을 내걸고 시네마떼끄의 주체와 운영, 즉 헤게모니를 손아귀에 쥐겠다는 영진위의 끔찍한 도발이 시작된 것이다.(공모제란 마치 정부의 하청사업 경쟁입찰 공모 하듯이 다수의 떼끄 운영자를 공모 신청 받아서 그 중에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자로 골라서 운영을 맡기겠다는 것이다). 시민들 사이에서 자발적으로 시작된 이십 년에 가까운 역사를 가진 시네마떼끄 운동에 대해 정부가 그동안 고작 몇 년 간 약 30%의 예산지원을 해왔다는 이유로 운영권을 뺐아가겠다니, 도대체 이런 해괴망측한 날강도적 발상의 전환이 어찌 가능한지 김곡 감독의 "뇌절개술"로 그들의 사유방식을 한 번 해부해 보고 싶다.

 

사실 공모제 추진에는 정치경제적인 이데올로기적 배경이 있다. MB정권의 신자유주의의 극대화, 이윤과 효율 극대화의 논리, 선택집중의 허울 속에 담긴 국가경쟁력 강화의 논리가 문화부문에서, "모든 위탁경영제의 공모제로의 전환"이라는 정책으로 추진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예술에도 산업이윤의 경쟁논리의 잣대를 들이대고 있다. 한마디로 이윤에 눈이 먼, (국가)경쟁력 강화라는 경쟁과 일등만능주의에 빠진 그들에게 예술을 이해시킨다는 것 자체가 무리다.

 

그리고 가장 공정해야 할 사법기관과 언론마저도 낙하산과 코드인사로 완전장악한 그들의 힘 앞에서 문광부의 일개 위원회 조직인 영진위가 그들의 헤게모니를 거부하고 우리를 지켜줄 것이라는 환상은 정말 "거대한 환상"일 뿐이라는 사실을 명심하며, 결국 이 싸움은 우리들과 그들의 한 판 힘싸움이라는 것을 되새겨야 한다.

 

때문에 공모제 철회를 이루어내면 그것은 MB정권의 정치헤게모니인 신자유주의 극대화(경쟁과 이윤 극대화 논리)에 첫 파열구를 내는 싸움이라는 것도 알 수 있다. 1968년 일어난  프랑스 시네마떼끄를 지켜내기 위한 "앙리 랑글루아"싸움으로 드골정권에 첫 파열구를 내어 이후 68학생운동의 지식인세력에 큰 자신감을 실어 주어 전국적 정치운동으로 확대되었던 전래가 존재한다.

 

4. 라깡의 이론과 영화운동의 충돌

 

생존의 위협이라는 절박감 앞에 우리는 현재의 시간(현실)을 인식하고 몸부림(실천) 쳐야만 한다는 사실을 안다. 그것은 라깡의 시니피앙(기표)의 무한 연쇄의미화 작용이라는 대타자의 인식불가능성의 이론을 머리 속에서 말끔히 지워버려야 함을, 그리하여 눈 앞에 닥친 문제(대타자)에 대한 총체적 인식과 실천을 위한 대안 창출이 요구됨을 알 수 있다.

 

실천을 위해 선행되는 대상인식 작용은 항상 시간을 분절시키고 멈추게 한다. 그러기에 생존하려면, 즉 현실을 인식하려면 라깡의 미끄러짐의 무한 의미화 연쇄작용의 시간을 정지시켜 대타자를 필요한 해당 순간에 총체적으로 인식할 수 있어야 한다. 결국 생존을 위한 실천 앞에 라깡의 이론은 허무한 사변임을, 제논의 역설인 영원히 내 눈동자에 도달하지 않는 화살의 궤변임을, 결국 그 화살은 내 눈 앞에 도달하게 됨을 우리는 현실을 통해 알게 된다.

 

5. 씨네필 그리고 연대, 우리의 대응

 

공모제 철회 싸움은 이명박 정책 헤게모니의 담지자 영진위와 떼끄를 지키려는 씨네필 대중과의 힘 싸움이다. 그러기에 시네마떼끄 운동은 대중적 기반을 통해 유지되고 강화 될 수 있는 대중운동임을 재차 확인하는 계기가 될 것 같다. 이 기회를 통해 떼끄 운영진과 관객들 사이의 관계 강화로 떼끄운동의 대중적 기반이 실질적으로 형성되었으면 한다. 이를 위한 다양한 방법 연구는 앞으로 우리의 과제일 것이다

 

우선 기본적으로 관객의 리뷰가 함께 실리는 시네마떼끄가 발행하는 매월 소식, 리뷰지를 고려해 봄이 어떨까 싶다. 관객들은 서명운동을 계기로 '공모제 철회 커뮤니티'를 형성하여 씨네필 대중을 결집하는 계기를 만들고(영화학과와 수많은 영화동아리와 카페들이 대거 참여할 수 있다면 참 좋겠다는 희망사항을 꿈꿔 본다), 이를 바탕으로 떼끄 운영진과의 상시적 소통이 이루어졌으면 좋겠다.

 

마침 독립영화 "워낭소리"가 3백만 까지도 바라 보는 대선전으로, 독립영화와 예술영화운동의 중요성과 힘, 그리고 예술에 이윤과 경쟁논리를 불허해야 한다는 사실을 전국민에게 각성시킬 좋은 호재를 만들어 주었다. 게다가 공모제 위기에 함께 내몰린 미디액트와 독립영화계 인디스페이스는 우리와 함께 연대해 나갈 든든한 원군이다. 이번 싸움이 시네마떼끄가 대중들에게 널리 인식되고 그 기반을 점차 강화시키는 좋은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 우리들의 시네마테크 http://notrecinema.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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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우리가 칼을 갈 차례


 



초미의 관심사였던 시네마테크 위탁사업의 공모제 전환이 1년 뒤로 연기되었다. 천만다행인 일이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불씨는 남아있다. 표면에 내세운 시행 연기의 이유가 ‘시기상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영화진흥위원회의 의도가 분명하게 드러나는 대목이다. 그러니까 여전히 영진위 임의로 시네마테크를 좌지우지할 수 있다는 생각에 변화가 없음을 의미하고, 공모제로의 전환을 기정사실화하겠다는 방침을 명문화시킨 것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어쩌면 애초부터 공포탄을 쏘겠다는 심산이었는지 모른다. 원래 첫발은 공포탄이고 실탄 사격은 두 번째부터 아니던가. 언제라도 지원을 끊을 수 있으니 딴 맘 품지 말고 알아서 기라는 의도가 다분해 보인다.

공모제라는 단어 하나만 던져놓았을 뿐인데, 서울아트시네마와 친구들 영화제를 뒤흔들어놓을 만큼 파급력이 컸다는 점만 놓고 보면 문화체육관광부나 영진위 입장에서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다고 자평할 수 도 있겠다. 이번 사태를 통해 우리는 이 땅의 행정가들이 문화를 바라보는 태도와 소양의 천박함을 확인할 수 있었고, 문화예술마저 자본의 발아래 둘 수 있다는 놀라운 발상의 결과물을 목도했다. 또한 다수의 언론 매체가 보여준 무신경한 반응은 철저하게 네티즌의 기호에 의존하고 있는 영화 담론의 현주소를 확인시켜주기에 충분했다.(물론 애초부터 기대하지도 않았지만) 그럼에도 서울아트시네마와 관객들은 침착하게 그러나 열정적으로 대응하였다. 시네마테크를 지켜내는 힘은 관객으로부터 나올 수 있음을 입증하였고 서울아트시네마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결집된 힘을 저들에게 확인시켜 주었다. 한편 이번 사태는 서울아트시네마의 재정구조의 취약성을 드러내기도 하였다. 전체 예산의 30%에 불과하지만 영진위의 위탁사업지원금이 없으면 시네마테크를 유지하기 힘들다는 것. 재정자립의 문제가 현실로 다가온 것이다.

현재의 서울아트시네마는 (약으로 말하자면) 비타민과 당위정이 골고루 들어있는 처방전을 필요로 한다. 예컨대 서울아트시네마를 사랑하는 관객의 힘이 비타민이라면 재정자립을 위한 안정적 재원확보는 당위정에 해당할 것이다. 제 아무리 애정 가득한 관객의 지원이 차고 넘친다 해도 그것만으로 버틸 수는 없는 법. 누구보다 극장 측이 더 많이 고민하고 지혜를 짜내고 있을 터이지만, 시네마테크 공모제전환 반대 서명운동과는 별개로 후원회원을 배가시키는 데 힘써야 할 것이고, 언론과의 유기적인 협력을 바탕으로 우호적 지원군을 확보하는 일에도 소홀해서는 안 될 것이며 선량한 후원자를 찾는 일에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것이다. 각계각층을 망라한 실질적인 도움과 지원이 절실한 때라는 얘기다.

어느 정치인의 말대로, 기나긴 싸움이 이제 막 시작되었을 따름이다. 지난 몇 주간이 목검으로 상대와 합을 맞춰보며 서로의 내공을 시험해본 시간이었다면 바야흐로 진검승부의 시간이 도래하였다. 진검승부를 앞둔 무사에게 녹슨 칼은 무용지물일 터. 칼은 무사만 가는 것이 아니다. 지금까지 몇몇 언론과 매체만이 시네마테크문제를 공론화하며 칼끝을 세웠다면, 이제야말로 영화를 사랑하는 관객이 나서서 칼을 갈 차례다. 시네마테크를 사랑하는 많은 이들이 합심하여 갈아 놓은 칼을 든 장수가 무엇이 두려울 것인가. 그런 점에서 이번 주말 서울아트시네마의 프로그램인 ‘필름라이브러리 무료상영회’는 시네마테크를 사랑하는 마음을 실천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이다. 그러니 이번 주말, 서울아트시네마로 달려가 서명운동에 동참하고 관객회원에도 가입하자. Now, Were going to Seoul Art Cinema!

 

 

2009.03.03
백건영(영화평론가)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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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아트시네마, 앞으로 어떻게 될까

[이슈 인 시네마]<14>서울아트시네마 긴급 토론회 개최

지난 토요일(2월 28일) 오후 2시 30분, 서울아트시네마에서는 원래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 상영작 중 배창호 감독의 추천작인 <분노의 포도>가 마지막으로 상영될 예정이었다. 그러나 <분노의 포도>의 상영은 취소됐고, 대신 '서울아트시네마 긴급 토론회'가 열렸다. 최근 서울아트시네마가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로부터 시네마테크 전용관 위탁사업을 공모제로 전환한다는 통보를 받았다가 유예된 것을 계기로 서울아트시네마의 공식 입장을 밝히는 첫 자리가 된 것이다. 서울아트시네마의 김성욱 프로그래머를 비롯해 서울아트시네마를 운영하고 있는 한국시네마테크협회(이하 '한시협) 김홍록 사무국장, 오승욱 감독과 영화평론가 김영진 명지대 교수, 정윤철 감독이 참석했다. 객석엔 평소 서울아트시네마를 드나들며 이번 일에 관심을 가지고 있던 관객들이 모였다.

▲ 왼쪽부터 영화평론가 김영진 명지대 교수, 오승욱 감독, 김성욱 프로그래머, 김홍록 사무국장, 정윤철 감독 ⓒ프레시안무비

2월 2일 영진위로부터 최초 통보를 받은 이래 토론회 전날인 27일 영진위와 간담회를 나누기까지, 김홍록 사무국장이 밝힌 서울아트시네마의 한 달은 마치 마른하늘에 날벼락이 연이어 치는 듯한 시간이었다. 하필이면 <워낭소리>가 흥행에 성공하면서 대통령과 문광부 장관이 직접 영화를 보러 행차한 때와 맞물렸다. 언론은 <워낭소리>에 관객이 몇 명이 들고 수익이 얼마가 났는지에 촉각을 세우고 제작사가 과연 영화 속 할머니, 할아버지에게 사례를 어떻게 할지 수익을 어떻게 나눌 것인지 주제넘은 훈수를 두면서도, 정작 독립영화와 시네마테크가 처한 진짜 현실에는 큰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독립영화전용관이 이미 있는지 없는지조차 모르고 있는 기사가 나오기까지 했고, 시네마테크 전용관은 아예 안중에도 없는 듯 보였다.

영진위는 서울아트시네마에 대해 자신들의 시네마테크 사업을 일개 단체인 한시협에 위탁을 준 것으로 사고한다. 평소 서울아트시네마와 인디스페이스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숫자까지 합해서 "우리 영진위 직원은 몇 백 명"이라고 말해온 터였다. 정작 서울아트시네마를 개관하고 운영해온 것은 한시협이었다. 2002년 그간 영화상영회를 주도해온 시네마테크 단체들이 한시협을 탄생시켰고, 이들은 아트선재센터의 지하 선재홀에 서울아트시네마를 개관했다. 영진위는 이 공간의 필요성에 동의하면서 지원을 하기로 했다. 다만 당시 영진위와 한국영상자료원(이하 '영상자료원')이 민간에 이관되면서, 영상자료원과 업무과 비슷한 만큼 영상자료원이 한시협에 위탁하는 형태로 지원을 하게 된 것이다. 실질적으로는 지원이었지만 이를 위해 명목상으로는 '위탁사업'의 방식을 선택했다. 당시영상자료원은 기관의 성격상 다른 곳에 지원을 한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2005년, 서울아트시네마는 영상자료원 대신 영진위와 직접적으로 위탁계약을 맺게 된다. 그리고 2009년, 영진위는 명목상 위탁이었으나 실질적으로는 지원이었던 것을, 지원이 아니라 위탁이니 자신들의 사업의 공정성을 위해 공모제를 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김홍록 사무국장은 "위탁계약의 형식을 그대로 둔 것이 문제의 불씨가 된 것 같다"고 말한다. 김영진 평론가는 "지금에 있어서는 위탁이니 계약이니 지원이니 하는 것에 매달리는 것 자체가 그들의 프레임에 말려드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는 오승욱 감독 역시 마찬가지다. "위탁이고 공모제고 아무리 들어봐도 대체 이해가 안 된다. 대체 영진위가 왜 이런 말도 안 되는 짓을 벌이는지 모르겠다." 앞서 씨네토크에 참석했던 홍상수 감독은 이렇게 말했다. "대체 영진위에 이럴 권리가 있기나 해요?" 이런 식의 의문을 느끼는 건 서울아트시네마를 드나들던 관객들도 마찬가지다. 대체 지원을 끊으면 끊는 거고 계속하면 계속하는 거지, 공모제를 한다는 게 대체 무슨 의미냐며 당황하고 분노하고 있다.

2005년 서울아트시네마는 아트선재센터 측으로부터 "내부 공사를 해야겠으니 나가달라"며 쫓겨났다. 아트선재센터는 이후 내부공사를 하지도 않았고, 그 공간을 그대로 방치하다 작년 영화사 진진과 계약을 맺고 씨네코드 선재홀로 재개관했다. 그 2005년에 영진위는 그저 뒷짐만 지고 있을 뿐이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서울아트시네마는 영진위가 아니라 한시협의 사업이었고, 한시협의 문제인 이상 영진위가 나서서 공간을 해결해줄 필요도, 그럴 권리도 없었기 때문이다. 정말로 자기들의 사업이라면 그럴 수가 없었을 것이다. 지원하기 위해 끌어온 방식이 위탁이었을 뿐 실질적으로 지원이었음을, 누구보다도 영진위가 잘 알고 있었다. 이후 서울아트시네마는 극적으로 지금의 허리우드 극장에 다시 둥지를 틀었다. 상처의 후유증이 컸다. 아무리 관객들이 지키고 앉아있어도, 아무리 스탭들이 발벗고 밤잠을 못 자며 서울아트시네마를 운영해도 이곳이 순식간에 없어질 가능성이란 게 존재한다는 사실에 모두들 충격을 받은 터였다. 고즈넉한 돌담길과 도서관이 있던 풍경을 좋아했던 관객들은 졸지에 돼지머릿고기의 냄새가 진동하고 '카바레 135'가 있는 새로운 풍경에 경악했다.

그래도 관객들은 적응했다. 돼지머릿고기의 냄새를 '고향의 정겨움'으로, 서울아트시네마 바로 앞에 있는 널따란 옥상을 '자유로운 마당'으로 받아들였다. 서울아트시네마는 새 공간을 안정적인 공간으로 만들고자, 나아가 좀더 넓은 안정적인 공간을 마련하고자 연초에는 시네마테크의 친구들영화제를, 여름에는 씨네바캉스를 개최하기 시작했다. 감독들과 배우들이 앞다투어 나서 박찬욱 감독을 대표로 둔 '시네마테크의 친구들'이 되었다. 역시나 감독과 배우들이 만든 모임인 '시네마 엔젤'은 서울아트시네마에 필름을 기증했다. 아트선재센터 시절에도 그랬지만 허리우드 극장에 온 뒤로 프로그램은 더욱 알차고 풍성하고 다양해졌다. 모두들 악착같이 매달려 이곳을 '우리의 공간'으로 안정적으로 뿌리내리고자 했기 때문이다. 작년부터는 고전영화의 필름도 직접 사들여 아카이브 구축사업을 시작했다. 그런데 공간 임대료 등에 해당하는 금액만 지원해왔던 영진위는 이제 와서 서울아트시네마를 자신들의 공간이라 우기며 한시협을 자신들의 사업에 임시 고용된 일개 하청업체로 취급한다.

김성욱 프로그래머는 이번 사건을 "영혼의 파괴"라 표현했다. 아울러 "이제껏 가져온 문화적 합의를 일방적으로 깬 것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고 했다. 그저 고전영화 좀 보자며 그간 서울아트시네마를 아껴온 관객들을, 서울아트시네마가 없어질지도 몰라 발을 동동 구르며 눈물을 흘렸던 2005년의 악몽과 패닉에 또다시 빠뜨렸기 때문이다. 관객들은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스스로 관객서명을 시작하고 인터넷에 팀 블로그를 만들어 글을 쓰기 시작했다. 서울아트시네마가 자신에게 얼마나 특별한 공간인지, 왜 이 공간을 지켜야 하는지에 대해.

토론회가 열렸던 날은 마침 故 하길종 감독이 돌아가신지 딱 30주기가 되는 날이었다. 묘소에 갔다가 토론회에 늦게 도착한 정윤철 감독은 이렇게 말했다. "당시에 서울아트시네마가 있었다면 하길종 감독이 덜 외로웠을 것이다." 정윤철 감독은 자신을 비롯한 모든 영화인들이 이곳에서는 그저 한 사람의 관객일 뿐이라고 했다. 영화를 하다 안 풀리거나 시나리오를 쓰다가 막히면 이곳에 와서 다시 힘을 얻고 간다고 했다. "저렇게 오래된 옛날영화보다 못 만들면 어떡하겠어?"

일부에서는 서울아트시네마 공모제를 비롯한 최근 영진위의 일련의 정책들이 보수진영의 흔들기라고 말한다. 문화와 예술을 돈벌이로만, 산업으로만 사고하는 이들이 영화판의 주도권을 탈취하려 하는 와중 시네마테크에도 손을 뻗쳤다는 것이다. 정윤철 감독은 "그럴 수도 있겠지. 정권이 바뀌면서 그런 식의 재분배와 구조조정이 있는 것 자체는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시네마테크란 공간은 좌든 우든, 그런 것과 상관없이 무엇보다도 안정성이 중요한 공간이다. 감독들이 영화를 한 편도 못 만들게 되는 한이 있더라도 제발 이곳만은 지켜야 한다."라고 잘라 말한다. 이곳이 있는 한 미래가 있기 때문이다. 영화감독의 입에서 "영화를 만들지 못하는 한이 있더라도"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시네마테크는 무엇보다 안정성이 중요한 공간인 것이다. 그러나 최근의 영진위는 이 공간의 존립 자체를 흔들어 버렸다.

토론회에 참석한 관객들은 저마다 "이 상황에서 내가 대체 무엇을 하면 서울아트시네마에 도움이 될지" 간절한 질문을 던졌다. 김성욱 프로그래머는 "할 수 있는 모든 것"이라고 답했다. "서울아트시네마의 주인은 영진위가 아니라 관객이기 때문이다." 장-뤽 고다르 감독의 영화, <할 수 있는 자가 구하라 - 인생>이 새삼 떠오르는 순간이다.

/김숙현 기자 메일보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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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시간, 오늘의 아트시네마 ②

 

 


어느 시나리오 작가와 어느 cf 감독과 어느 미대생으로부터의 이야기

 

2008년 2월 28일 현재 아트시네마를 지키는 서명운동은 1000명 목표에 약 500명 정도로 모였다. 네오이마주의 강민영 스탭은 인터넷에서 공용 티스토리 블로그가 만들어서 운영 중이고, 서울아트시네마 공식 카페에서 인터넷으로도 서명에 관한 서류를 배포하면서 접수를 받고 있다. 서명을 하는 인원이 약 1000명으로 잡은 것은 아트시네마가 적지만 고유한 인원으로 주로 이용되기 때문이다. 아트시네마에서는 사활에 도움을 주는 1천명이다.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의 영화 <몽상가들>의 매튜는 "어떤 영화가 좋은 영화인지 모르니 줄기차게 봐야 한다"라고 말한다. 실제로 영화에서 좋은 영화와 나쁜 영화는 구별짓기 어렵다. 저마다의 생성배경과 창작의 배경이 다른 만큼 영화의 내적인 면 이외에도 외적인 맥락까지 더해서 저마다의 의미는 있는 셈이다. 영화 자체의 순수성을 지향하는 면모와는 다르게, 프랑소와 트뤼포 감독이 제시했던 영화를 사랑하는 세 가지 방법에 꼭 따르지 않더라도 분명 영화들은 살려놓을 필요가 있다. 영화는 단지 걸려있는 것, 장소를 제공하는 법만이 아니라 그것을 상영하는 시간을 공유하는 시간예술이기 때문이다.

아트시네마의 사활에 대한 논의를 한 토요일 저녁, 종로를 벗어나 홍대의 한 카페에서 들은 이야기가 있다. 과거 모 영화의 시나리오를 썼던 한 작가에 관한 이야기이다. 물론 그 영화는 상업적으로나 작품성 측면으로나 모두 높은 평가를 받았으며, 그 영화를 토대로 주인공들은 영화계에서 입지를 단단히 다질 수 있었던 전력을 지녔다. 그 작가는 그 시나리오를 내놓고는 영화판에 회의를 느꼈다고 했다. 그러고서는 곧장 유학을 떠나 미디어아트계통으로 공부를 시작했는데, 몇명의 학생들이 "선생님은 영화를 더 이상 좋아하지 않으시는 것인가요?"라는 질문을 던졌다고 한다. 작가는 "아니. 나는 영화를 사랑해."라고 답변했다고 한다. 그러나 몇 번의 기획회의를 거치고 난 뒤 자신의 영화가 '소재만 바뀌었을 뿐 구성은 동일한' 영화로 재탄생되는 과정을 겪으며 심적으로 난항을 겪었으며, 자신이 미디어아트에 손대는 것은 영화에 대한 일종의 저항이라고 명명했다.

물론 영화를 두고 '타인의 자본으로 만드는 예술'이라는 측면에서 실험성과 도전성, 혹은 과감한 영상적인 시도는 무책임하다. 영화보다는 미디어아트가 보다 예술의 계통에 더 가깝고, 그러므로 창작에 있어 더 자유로운 측면은 있다. 그러나 시사하는 바는 비도전적인 영화를 통해서 맛없는 영화를 만드나마 맛있는 영화를 위해서 보다 책임을 질 만큼의 능력을 기르는 측면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때문에 수명이 긴 영화를 보는 건 영화가 가진 원형적인 맥락을 이어가는 것으로 유효하다. 고전이 문고판으로 지속적인 제본을 해오는 맥락과 클래식 음악도 지속적으로 변주를 해가며 오늘의 음악에 영향을 주는 것 까지 마찬가지이다.

모 cf 감독 출신 영화감독은 영화계에서 상처를 받은 적이 있다고 말했다. 쉽게 말하면 cf 출신은 영화를 제대로 못만든다는 얘기였다고 한다. 그런데 영화를 제대로 만드는 것이 무슨 말일까. 미셸 공드리의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고 싫어하는 사람이 있다. 영화적인 문법이 있고 문법을 지킨 영화와 문법을 지키지 않는 영화가 있다. 과거 미국의 20년대 30년대 포르노 영화는 영화취급도 받지 못했지만 약 90년대에 들어와서는 문화인류학적인 관점에서 과거 미국의 실내 건축 연구라는 테마로 요긴하게 쓰이고 있다. 요컨대 제대로 만드는 관점이란 것의 절대성에 관해서는 의문을 표하고 싶다. 영화를 보고 '제대로 만든 영화'라는 것은 자기가 가진 영화적인 눈을 재확인해가는 과정으로 보는 게 더 나은 말이다.

도전적인 발언이나, '모든 영화는 평등하다'라는 말을 하려는 것은 아니다. 영화에 관해서는 평가적인 가치가 분명히 존재하며, 그것은 영화를 두고 평론을 하든 영화를 자료로 삼든 영화를 만들어가든 간의 과정에서 평가에 의한 담론이 필요하다. 그것은 내러티브적인 맥락 뿐만이 아니다. 영상에 의한 효과와 영상에 대한 촬영과 편집 등이 모두 유효하다. 그것을 배우려면 영화과에 가야하는 것일까. 영화에 관심이 생긴 대중은 어디로 가야하는 것일까. 이명세 감독의 <형사-Duelist>와 을 보고나서 그 영상이 가리키는 방향을 어렴풋하게 느낀 어느 미대생의 호기심은 어디로 가야하는 것일까. 서울 아트시네마는 단순한 상영관의 수준을 넘어서 교육효과와 담론을 낳는 효과도 자아내고 있다. 그 규모는 낙원상가 4층의 규모만이 아니라 보다 큰 커뮤니티적인 맥락으로 승화되고 있는 현실이다.

영화와 영화관이 돈 앞에 무력해지는 것은 영화가 '자본을 두고 하는 예술'이라서 그럴지도 모른다. 그러나 앞서 언급한 cf 감독은 "우리나라 사람들은 눈에 당장 보이는 것이 아니면 돈을 왜 쓰는 줄 이해하지 못한다"라고 말한다. 제품 cf를 찍기 위해 모델과 모델이 입을 옷과 무대 셋팅과 조명과 카메라 등과 관련한 장비만 있으면 되지, 그것을 해내기 위한 제반 환경에 대해서는 무지하다는 설명이다. 칸느 국제광고제에서 수상한 작품 치고 한국처럼 스타 캐스팅으로 미소와 제스츄어, 노래에 맞춰 춤을 추고 짠! 하고 나타나는 형태는 없다.

<친구들 영화제>를 통해 멀티플렉스의 극장에서는 "영화 많이 사랑해주시구요, 많이 보러와주세요."라는 말을 하는 배우가 아트시네마의 상영관에서는 관객과 진지하게 문답을 주고 받는다. 아트시네마의 규모가 면밀한 대화를 하기에는 큰 편이므로 질문과 답변의 형식을 취하기는 하지만, 그것의 문답은 활자로 기록되고 발간되는 등의 영향력을 갖는다. 문화는 당장의 효용을 산출해내지는 않으나, 시대의 혈류를 타고 구석구석 양분을 전달해준다. 문화도시는 '문화'라는 말을 표면적으로 내걸지 않는다. 광장과 담론과 창작이 보장되는 상황에서 역사가 쌓여 형성이 되는 공간이다.

앞으로의 서울은 고층건물들이 들어설 공간이 된다. 약 2100년이 되면 세계의 마천루의 중심지가 아시아로 옮겨온다고 한다. 마천루? 좋다. 마천루의 끝에서 바라볼 서울은 어떤 도시일까. 문화도시였으면 좋겠다. '문화'라는 활자를 현수막에 내건 도시가 아니라, 진정어린 문화도시로 살기도 좋고 살아가는 이유도 매순간 찾아낼 수 있는 도시이길 바란다. 그리고 낙원상가의 4층, 아트시네마의 영화에서 2000년대의 영화가 상영되고 있는 게 더 낫겠다. 전통과 현대의 괴리가 아닌 공존을 보장하려면 말이다.





 

* 티스토리 블로그 : http://notrecinema.tistory.com/
* 아트시네마 카페 서명 다운로드 :
http://cafe.naver.com/seoulartcinema.cafe?iframe_url=/ArticleRead.nhn%3Farticleid=2413

 

2009.03.01
서유경(편집스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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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시간, 오늘의 아트시네마 ①

 

 


1. 누구의 시간도 거꾸로 가지 않는다.


최근 시간이 거꾸로 간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상영관에서는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가 상영되고 광장에서는 오늘의 한국이 지난 세월로 되돌아간다는 얘기를 한다. 그러나 엄밀히 말해 시간은 되돌아가지 않는다. 그 누구도 시간을 건드릴 수는 없다. 앞으로의 이야기를 끌어감에 있어서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에서 드러나는 시간성을 잠시 밝혀두어야겠다. 영화에서는 '시간'을 소재로 했으나 소재로의 접근 방법은 바로 인간의 삶을 낯설게 보는 행위다. 노인의 모습으로 태어난 아기 벤자민에서부터 아기의 모습으로 죽어간 노인 벤자민을 통해 이 영화의 서사와 사건은 유발된다. 정확히 말하자면 거꾸로 가는 것은 세포의 활동이고 그것은 벤자민을 특이점으로 남겨둔다.

흥미로운 것은 벤자민의 시간 역시 여주인공 데이지를 비롯한 여타 인간들의 시간과 본질적으로는 다를 것이 없었다는 점이다. 그의 몸은 시간에 따라 변해간다. 노인의 세포에서 젊은이의 세포로의 '귀화'라기보다는 '성장'에 가깝다. 또한 삶의 생애까지 선형적인 방식에 의해 '나이듦'에 따라 죽는데, 벤자민의 경우에는 그것을 다룰 개념이 '나이듦'과 '더 이상 어려질 수 없음'의 경계에서 죽음을 다룬다는 것에서 차이점이 있다. 이러한 점에서 벤자민의 특이점의 의미가 전반에 드러난다. 벤자민은 보통의 인간이라면 낯설지 않을 환경을 낯설게 관찰하는 사람으로서 존재한다.

속도감에 있어서도 차이가 나는데 영화에서 벤자민의 유년기와 청년기, 장년기, 노년기에서의 영화 내 시간의 속도감의 차이는 확연히 두드러진다. 유년기에는 같은 집에 사는 노인들의 일상과 죽음에 많은 포커스가 맞춰진다. 시간적인 흐름과 공간적인 스케일 면에서 가장 협소하고 밋밋할 수 있는 시기에도 불구하고 굉장히 느린 속도로 진행된다. 이후 나이가 들면서 점차 가속도가 붙는데, 그것은 시간을 잘라내는 편집으로 점프를 하는 수준으로 된다. 벤자민의 유년에 관해 관심이 많다기 보다는 낯선 상황에 가장 낯설음으로 보는 시각을 드러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데이지는 벤자민에게 말한다. "당신이 마흔 아홉, 내가 마흔 셋. 이제 우리는 딱 맞는 나이네." 그리고 그들의 사랑은 격정적이고 아름답게 묘사되는데, 그것은 마치 서로 기울기가 대칭관계인 두 직선과도 같다. 단 교점이 생성되는 까닭은 각개 직선이 서로에게서 영향을 받아 방향을 뒤틀지 않는 개별적인 성질을 지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시간을 거스르는 상상력을 보여주었던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는 실제로 시간성에 관한 이야기는 아니다. 오히려 같은 시간 속에서 그것을 낯설게 볼 수 있는 특이점을 잡고 삶에 관해 매 시기마다의 화두를 던진다. 이 시기에 왜 이것을 하지 않았을까, 혹은 나는 지난 시간을 왜 그렇게 보냈을까. 그리고 이러한 질문은 각 개인의 삶에 관해 관심을 갖게 한다. 벤자민이 러시아의 숙박소에서 만났던 부인이 지난 날 해협 횡단에 실패했고, 이후 해협 횡단에 성공한 것 처럼.

그렇다면 이제 시간성 자체의 속성에 관해 절대시간과 상대시간에 관해 이야기할 수 있겠다. 절대시간 자체는 건드릴 수 없다. 이 시간 속에서 누가, 어디에서, 어떻게 살고 있느냐는 물음이 시간을 이야기할 수 있게 해준다. 여기에서 살아가는 공간과 시간이 면밀히 엮인다. 이 글을 쓰는 나는 지금 어디에서 어떻게 무엇을 왜 살아가고 있을 지에 관한 것을 생각하면 그것들이 묶여내 진행되는 것이 오늘에 관한 상대시간일 것이다. 오늘의 시간, 곧 나는 어떤 시간을 살아가고 있는지에 관해 물어보기 위해서는 '어떤'이라는 속성을 설명해낼 수 있어야 겠다.

 



 

2. 나는 왜 이런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일까, 지각쟁이 유경씨의 하루.

2월 28일, 토요일. 쾌청한 날이었으며 봄의 시작을 알리는 듯 햇살이 나긋했다. 지난 추운 계절 속에서 폐간된 영화잡지를 읽지 못하는 날이며, 오후 2시 반 무렵에는 서울 아트시네마에서는 아트시네마의 앞으로 나아갈 길에 관한 포럼을 진행하고 있다. 광화문으로 향하는 501번 버스가 한강대교를 원활히 지나지 못하고 교통이 꽉 막힌 상태로 대교에서만 10여분을 보낸 토요일이기도 하다. 곧 이을 오후 여섯시가 되면 국민 오락프로그램이라고 부를 수 있을 정도로의 재미있고 친근한 <무한도전>이 방영된다. 본방송으로도 보지 못한다면 인터넷 상영으로라도 볼 것이다. 나의 토요일은 이렇듯 별다를 것이 없지만, 그러나 나는 왜 이러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일까.

늘어지는 설명일지는 모른다만은 짚어보겠다. 지난 집회시기를 지나 광화문과 시청 일대에는 전경들이 토요일마다 나온다. 언론재단 건물 앞 버스정류장 근처와 청계광장 주변에는 전경버스가 서 있고 그로 인해 버스는 정류장에서 정차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도로에서 정차를 한다. 버스가 서고 멈추는 범주에 따라 도로는 진행됐다가 멈추는 파동을 탄다. 그 탓에 광화문과 청계광장에서 북쪽 방향으로는 차가 막히는 기색이 없으나 그 남쪽으로는 도로 교통이 혼잡스럽다. 서울역이나 용산, 혹은 그 이남의 한강대교, 상도터널로 이어지는 동작구와 관악구의 현장에서는 왜이리 차가 막히는지 '날씨가 좋아서 그런가'라거나 '토요일 오후라서 그래'라며 애꿎은 시각으로 시간을 보내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 까닭에 평소의 거의 2배가 되는 시간동안 버스에 있어야 했고 아트시네마로 함께 가기로 한 친구를 먼저 보내야 했다. <무한도전>의 멤버들 정신감정을 하기로 하는 예고편을 보면서 '이야, 재밌겠는데?'라는 기대감으로 혼자 느긋하게 식사를 한 다음 청계천 변 광교를 걸었고, 동아일보사의 현판에 걸린 '기습 공격을 당한 전여옥 의원'의 기사가 신문 1면에 걸린 것을 봤다. 왼쪽 눈이 깊숙하게 다친 전 의원의 사진을 유심하게 본 뒤 다시금 청계천 변을 통해 하늘을 바라본다. 우울한 생각을 하기에는, 오늘의 이 시간이 참으로 아깝지 않느냐는 생각. 그리고 나는 이 글을 쓰기로 마음을 먹고 컴퓨터를 꺼낸 것이다. 오늘의 시간을 서술하기에는 매우 많은 사연들이 있으나 그 중 가장 큰 핵심요약어는 고통이다.

2007년의 3월의 학교의 저널에서 한 학생 기자가 베를린으로 건너가 송두율 교수를 인터뷰했다. (http://www.snujn.com/article.php?id=1405 ) 그는 지난 대선을 두고 "일단 급하다고 짠 바닷물을 마신 격"이라고 표현했다. 그 시간은 오늘로 대치가 됐고 그것은 "도덕이 밥 먹여주냐"는 논리는 "도덕이 있어야 밥도 제대로 먹는다"는 말을 되새기게 해준다. 방송국 파업에서도 마찬가지다. 501번 버스가 지나온 용산 일대에서도 드러난다. 큼직한 유리가 몸으로 파고들어오는 듯한 아픔이다. 2008년 2월은 '기습'으로 시작해 '기습'으로 마무리되고 있다. 아트시네마가 순식간에 '세입자'의 현실로 마주하고 2월 26일에는 우황청심환 한 알이 국회의 정의보다 앞서 미디어 법안을 상정하고야 말았다. 2월은 끝나도 시간은 끝나지 않는다.

시간은 끝나지도 않고 재생되지도 않는다. 그러나 고통은 재생된다. 오늘날 방송국의 현실에 떨떠름해 하고 대학간 순위 경쟁과 앞으로 부닥칠 수많은 것들에 관해 뒤처지지 않을까 걱정하면서도 나는 곧 이어 <무한도전>을 보러 갈 것 이다. 분명 나는 누가 제일 못났나, 누가 제일 덜떨어졌나를 보며 박장대소할 것이다. 내일은 <패밀리가 떴다>를 보며 잠자리 '순위'를 매기는 것을 보면서 대리만족을 느끼게 될 것이다. 언제 어떤 불행이 올 지 예측하지 못할 두려움을 <1박 2일>의 복불복 게임을 통해 내 일이 아닌양 생각하게 될 것이다. 가장 못난 사람이 모든 걸 감수하는 것 자체로 웃는 것이 코미디로 통하는 속에서 오늘을 보낸다. 웃게 되는 것도 다 이유가 있다.

오늘을 이렇게 보낸 까닭을 유기적으로 이어보려 했으나, 이것이 모두 변명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닫고는 있다. 그러므로 여기에서 글을 마치기로 한다. 곧 이어 아트시네마 포럼도 끝난다. '아트시네마의 친구들 데일리'를 통해 '어떻게'에 관한 소식들이 따끈따끈하게 전해질 것이다. (계속)

 

 

2009.02.28
서유경(편집스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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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씨네필이 아니다. 고백컨데 나는 영화보다 극장을 먼저 좋아했다. 언제부턴가 그 어두운 공간에 늦은 밤 혼자 찾아가는 행위 자체가 중요해지기 시작했다. 20대 나의 전부였던 공간은 사실 교회였다. 수업과 레포트보다 그리고 직장보다 교회와 전도의 일이 나에겐 최우선순위였다. 그렇게 열정적으로 일하던 공동체에서 힘들어지던 순간은, 이 공동체가 내 개인의 삶과 맞물리지 못한 채 흘러가고 있다고 느껴지면서 부터였다. 성경을 가르치고 제자양육을 하는데 정작 나는 그렇게 살지 못하고 있었다. 아이들은 계속 치고 올라오고, 공동체는 끝없는 헌신을 요구하는데 내 삶은 어느순간 저기 내팽개쳐져 있음을 발견했다. 나는 나를 돌볼줄 몰랐다. 그것은 공동의 목표에 비해 중요한 일이 아니라고 자신했었다. 아니 나는 그것을 공동의 운명처럼 받아들이고 있었다. 모든 걸 쏟아부었다고 느꼈는데 정작 내 현실위에 아무런 것이 되돌아오지 않는 순간은 늘어만 갔다. 무엇보다 나는 나를 이해받는다고 느꼈던 시간들이 멀어져가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유일한 내 위로는 늦은 밤 예배당에 홀로 찾아가는 일이었다. 나는 말을 걸고 혼자 메아리처럼 되돌아오는 내 목소리를 들었다. 기도. 그리고 목소리 그리고 눈물. 종교행위를 하는 누군가를 뒤에서보면 정신나간 행위로 보일지도 모른다. 독백속에 혼자 취한 뒷모습들. 그건 절실한 고독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그들은 보지 못했다. 내 눈의 영에서 행해지던 그 절실함들을.

 



교회를 떠나서 극장을 다니기 시작한 것은 의도적인 것이 아니었다. 나는 말을 잘 못하는 편이라서 늘 생각하는 것의 2-30퍼센트 정도만 전달한다고 생각해왔다. 나는 세상의 소음은 말에 있다고 생각해왔다. 나는 가족 그리고 교회공동체에서 말들(소문)로 인한 상처를 겪었다. 그것은 그곳을 나왔다해도 지워질 수가 없는 흔적이다. 이런 상황들이 홀로 선 나를 더 무의식적으로 갈증나게 만들었는지 모르겠다. 극장에 가면 감독이 직접 말을 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있고 환영이 있고 그 사이에 어떤 시공간이 있다. 내가 이 현상을 왜 만나고 있고 이 이야기에 왜 빠져들며 그것은 지금 내 삶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가. 나는 극장이라는 집단적인 공간에서 모두 같은 행위를 하고 있는 상태, 그 침묵의 상태에서 동일한 상을 만나는 그 상태가 좋았다. 마치 모두가 평범해지는 것 같았다. 선후배도, 직장 상사도 함께 간 모든 사람들이 그 영화를 대하고 나서는 공감대를 느끼려고하지 우위를 점하거나 명령하려고 하지 않았다. 강요나 헌신이 아니었다. 그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었다. 그것은 어떤 원죄의식도 아니었다. 그것은 이렇게 한없이 작은 나라는 존재에게도 동일하게 이 현시적인 느낌을 있는그대로 전달해주는 것을 결코 서슴치 않았다. 뭐랄까 너무 순수하게 열정적이었다. 그것은 집단 이데올로기와는 달랐다. 그것은 나에게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깊은 touch를 했다. 그것이 내가 영화를 만난 방식이다. 지금은 자리를 옮긴 필름포럼에 지아장커의 다큐멘터리를 보러 왔다가 우연처럼 라울월시 회고전을 하고 있는 아트시네마를 만났다. 나는 고전영화라고는 아는 것도 본것도 많지 않았다. 그곳에서는 생전 듣지도 보지도 못한 영화들을 하고 있었다. 언제부턴가 일을 마친 후에 나는 이곳으로 오고 있었다. 이미 서른을 코앞에 두고 있었던 그 불안하기만 했던 시절에 말이다. 프리츠 랑의 빅히트를 보는데, 흑백영화를 스크린에서 본 것은 처음이었다. 나는 그 영화의 느낌을 또렷이 기억한다. 영화와 나와의 시간은 너무나 큰 차이를 가지고 있는데 나는 그 영화안에 이미 빠져들어가 있었다. 개봉영화를 볼 때의 약속된 가학성과 달랐다. 머리속으로 계산하고 있는 영화값과 기타 기회비용, 그리고 그에 향응하는 영화의 스펙터클을 요구하던 내 머리가 통째로 흔들리는 경험이었다. 지금은 그때의 영화들이 무엇이었는지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지만 나는 그 순간 내 머릿속으로 그 무엇도 그 영화와 맞바꿔지질 못했다. 그 기분을 어떻게 설명해야할지 잘 모르겠다. 프로그래머님이 나와서 하시는 말중 반복되는 것이 있었다. '언제 다시 살아생전에 이 영화를 스크린에서 만날 수 있을지 모르는 일이다' 충격이었다. 영화는 언제고 극장에서 볼 수 있는 소비품이라고 여겨온 나에게 커다란 정신적 쇼크를 남겼다. 그 때부터 나는 이곳에서 영화를 보면서 이 영화들이 사라져가는 듯한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어떤 영화는 졸기도 하면서도 귀만은 쫑끗이 살아서 소리들이라도 담으려 애쓰고 있었다. 나는 이 영화들이 뇌리에서 사라져가는 것이 갑자기 슬퍼졌고 또 두려워졌다. 그래서 나는 이상하고 무식한 기록들이라도 남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 나는 그때 처음으로 느꼈다. 영화는, 나같은 공허한 자를 허락해주는 이 영화는 진정 평등이다. 영화는 진정 보편적인 현상이다. 이것은 그 누구의 소유물이 아니다. 이것은 시공간을 초월하는 것이다.

 




스물아홉부터 지금까지. 근 2-3년간 내가 직장 다음으로 많은 시간을 보낸 곳은 이곳이다. 함께 하지도 않으면서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은 거짓이다. 지금 내가 가장 많이 투자하고 있는 그것, 우리는 고백하는 것보다 우리의 실제 생활의 양식에서 그가 진실로 사랑하는 것이 무엇인지 발견할 수 있다. 오늘 나는 직장에서 계약만료당했다. 짐을 주섬주섬 싸고 있는 내게 직장 사람들은 그제서야 '그동안 밥도 못사주고 미안하다'고 말했다. 이상하지? 그것은 나에게 어떤 위로도 주질 못했다. 직장에서 위기에 몰렸던 순간 싸늘하게 등돌렸던 사람들이 갑자기 악수를 청하는데 그들의 손이 낯설었다. 나는 울음이 났는데 그것은 그 사람들에 대한 미움이라기보다는 내 무능력한 현실과 이런 상황에서도 이악물고 살아나가야만 하는 당위성에서 느껴지는 삶에 대한 슬픈 감정들의 복합체였다. 나는 그 사람들이 한 말에 담긴 함축적인 의미들을 느낄 수 있었다. 누구하나 불공정한 위기상황에서 나를 대변해주지 않았던 상황은, 그들로서는 삶의 어쩔수없는 영역이었던 것이다. 그것을 비난할 수는 없다. 나는 그들의 위기를 감수시킬만큼 공공의 이익을 위해 살았던 것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오는 이순간, 내 손에 남은 것이라고는 쇼핑백 달랑 한꾸러미였다. 내 짐이 이렇게 슬프게 느껴진 것은 처음이다. 3년을 넘게 근무한 곳에서 나는 가지고 나올 것이 없었다. 나는 여기에서 월급을 받아챙겨먹은 것 말고는 마치 아무것도 한 것이 없어보였다. 내 존재감. 그것이 이렇게 잊혀지는것이구나. 그것은 시간속에 사라지는 것이구나. 내 자리는 누군가가 와서 새로운 공간을 만들것이다. 내 명패는 바뀌고 내 향기도 잊혀질 것이며 내 목소리는 새로운 목소리로 덧입혀질 것이다. IMF위기에 대규모로 늘어난 계약파견직의 일자리는 임기응변이 아니라 고정적인 일자리가 되어버렸다. 그 제도라는 것이 무서운 것이, 만일 그 자리에 상근직원보다 유능한 사람이 들어왔다 하더라도 계약이 끝나면 나가게 되어있다. 그것은 예산을 절감해주는대신, 사람을 잃어버리는 것이다. 아니 그들이 그렇게 추구하는 발전과 상충하는 것이다. 그 불안정한 자리는 수준을 결코 보장해주지 못한다. 그 자리는 채워졌다가 사라지는 운명을 가진 것이므로 누가 어떤 역량을 선보일것인가보다는 어떻게든 그들의 사업계획에 차질이 없도록 하는데 중점을 두게 되는 것이다. 그 자리는 사람을 기대하도록 만들지 못한다. 그 자리는 무능력해도 좋으니 문제만 일으키지 말라고 말한다. 그 자리에대해 기대하는 직원은 단 한명도 없다. 그것을 명심해야만 계약직으로 무난하게 생활할 수가 있는 것이다.

 




서울아트시네마가 지금 처한 위기는 물론 내가 겪은 계약직의 문제와는 다르다. 나는 계약을 하고 들어갔지만 아트시네마는 민간에서 시작된 시네마테크 운동의 손수 피땀어린 결과물이다. 그들은 이곳을 찾는(을) 관객들을 위해 더 안정적이고 지속적인 상영환경을 마련하고자 정부로부터 약속받아 국고지원을 받은 것이다. 그랬던 상황은 정권교체와 함께 뿌리를 부정하는 제국주의의 위기를 맞았다. 영화인들은 영진위의 태도에 무척 배신감을 느끼고 있다. 그들은 문화부소속이기 전에 영화인이다. 그런 그들이 철저한 정권의 시녀처럼 굴고있는 것이다. 나는 이 문제를 정확히 알지 못해서 부끄럽지만 영진위에 민원글을 올렸다. 예술영화전용관 공모전사업과 시네마테크 공모전 전환사업을 혼동해서 질문이 약간 모호해졌다. 그러나 담당자는 너무도 친절하게 내가 혼동한 것을 설명해주고는 각각의 사업에 대해 설명해주었다. 물론 그것은 답변의 최대기간인 정확히 7일이 지난 후였다. 시네마테크 공모전에 관해 시네마테크 지원사업담당자에게 답변을 들은 내용은 다음과 같다.

 

"


시네마테크전용관 지원사업과 관련하여 말씀하신 데로 위원회는 1995년부터 시작된 ‘전국시네마테크연합’ 활동의 성과를 발전적으로 계승하고 시네마테크 활동의 질을 강화하고자 2002년 시네마테크전용관 서울아트시네마(종로구 소격동 아트선재센터)를 개관하여 안정적인 영화상영공간인 시네마테크전용관 마련하였고, 2005년 4월 현 원상?(구)허리우드 극장)로 이전하여 운영되고 있습니다. 위원회는 사업을 운영할 수 있는 안정적인 공간 및 지원예산을 확보하고, (사)한국시네마테크협의회에는 업무를 위탁받아 운영하여 시네마테크프로그램을 통해 교육적·문화적 목적의 영화상영이라는 시네마테크 본연의 활동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문의하신 서울아트시네마 공모 관련 내용은 서울아트시네마는 예술영화전용관으로 운영, 지원신청 접수·심사에 의해 선정되는 예술영화전용관사업에 포함되는 내용이 아니며, 위원회에서 운영지원을 하고 있는 시네마테크전용관 지원사업과 관련된 내용입니다.

시네마테크전용관 서울아트시네마 위탁자운영과 관련하여 2008년도 국정감사 시 위원회가 위탁하는 지원사업에 소수의 단체에 집중하여 지속적으로 지정위탁 하는 것이 형평성에 어긋남을 지적받아 이에 대한 개선점으로 사업을 진행할 수 있는 단체를 대상으로 공개 공모 절차를 진행하여, 사업 신청의 기회를 제공하고, 공정한 심사를 통해 사업 취지에 맞는 위탁단체를 선정하여 사업추진 하고자 하는 내용입니다. 이는 시네마테크전용관 고유의 사업 목적을 훼손하거나 지원을 축소하는 것이 아니라 시네마테크 사업 운영의 방식을 보다 효율적이고 안정적이게 하고자 하는 것임을 알려드립니다. 위원회는 시네마테크의 본연의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최선의 지원을 다하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시네마테크전용관 지원사업과 관련 된 문의 내용이 있으시면, 영상문화조성팀 최은실 (02-95807564)에게 연락주시길 바랍니다."

 




나는 이 답변을 듣고 한낱 관객임에도 실소를 지을수밖에 없었다. 영진위 스스로의 위치를 스스로도 감지하지 못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기 떄문이다. 시네마테크운동의 발전적 계승, 사업의 질 강화를 위해 자신들이 (마치) 개관하고 마련하여서 운영하고 있다고 말하다가 갑자기 또 지원하고 있다고 말한다. 운영지원을 해왔다고 말하다가 그동안 서울아트시네마에 영진위가 위탁해온 사업이라고 말한다. 그리고나서는 결론적으로 사업취지에 맞는 위탁단체를 자신들이 선정하여 시네마테크를 안정적으로 지원하고자한다고 말한다. 이들은 '위탁'이라는 말과 '지원'이라는 말을 급격도로 혼동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언제나 국민을 위한다는 정권의 말속에는 탈식민주의시대의 새로운 제국주의와 식민주의가 도사리고 있다. 그것은 식민주의가 약속해준 경제의 발전이라는 과거의 습성을 벗어나지 못한 태도에서 기인한 것이다. 영진위의 이러한 앞뒤가 안맞는 태도는 곧 정부의 입장의 대변이자 그들의 위압이라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2008년 문광부 산하단체의 국감자료를 국회홈페이지에서 찾아보라. 한나라당 의원들이 특정 공격성 발언을 하는 의원들에게 질의를 몰아주어 당략적으로 심의했고 관계부처의 장들은 꾸뻑이며 검토하겠다는 말을 되풀이한다.) 효율과 안정을 꾀한다는 목적은 다 그럴듯하다. 문제는 그들이 말하는 효율과 안정이라는 개념과 시네마테크와 우리가 이해하고 있는 그 개념과는 뿌리부터 다르다는 것에 있다. 그들이 쓰려는 역사와 우리가 쓰려는 역사는 이렇게 다르다. 지아장커 감독이 24시티를 만들 때 했던 인터뷰중에 기억에 남는 것이 있다. 그는 중국역사에 대해 wating의 다큐가 아닌 making의 다큐를 만든다. 그는 집단(지배자)의 역사가 아닌 개인의 보편적인 역사를 기록하려 한다. 그것을 위해 그는 허구적인 요소들 개입시킨다. 그에게 진실과 거짓이란 리얼리티와 허구의 문제가 아니다. 그에게 진실이란 개인들의 역사이고 거짓은 다름아닌 집단 지배자의 역사이다. 그렇기에 그는 420팩토리 공장에 얽힌 기억에 대해 침묵하거나 신음소리로 대신하는 노동자에게 대답을 강요하지 못한다. 그렇기에 그는 공식적인 공장의 사업에 얽힌 역사적인 기억으로 시작하지만 아주 사적인 고백들을 늘어놓으며 눈물을 흘리는 여공들 향해 더욱 오래 카메라를 남겨두는 것이다. 사업에 대한 이야기보다 첫사랑에 대한 이야기, 그 담배연기, 그 오래된 건물의 뿌연 흙먼지와 무너지던 순간의 가루의 잔상들을 오래도록 바라보는 것이다. 그는 조안첸 자오타오 등의 배우들에게 연기를 시킨다. 진실을 위해 과거를 재연하는 것을 그는 인위적인 거짓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그는 그녀들을 보편적인 압축물로 설정한 것이다. 영화라는 것이 어쩌면 정확히 그런 속성을 가진 것일지 모르겠다. 내가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시네마로서의 영화를 처음 만난 기억은 위에 지루하게 언급했듯이 그런 기억들이다. 1950년대 말 공장의 기억에 대해 2008년에 누군가 인터뷰를 할 것이라고 그 누가 예상할 수 있었단 말인가. 지금 아트시네마가 위기에 처했기 때문에 우리의 사적인 과거가 호출당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이번 사건의 논제외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사실 가장 핵심적인 논제위에 올라야할 소중한 우리의 역사들이다. 말해졌으면 좋겠다. 24시티에서 실제 노동자들은 말하지 않는다. 그들은 인터뷰보다는 카메라를 정면으로 마주치다가 웃어버리기도 하고 굳어져버려 정지된 사진처럼 기념된다. 공장이 폭파로 사라지기 전 손전등을 든 관리자가 마지막으로 허물어진 건물 내부를 비추며 클래식 선율이 울리는 장면이 있다. 그 때 외부에서 누군가 돌팔매를 던지고 노래가 멈춘다. 낭만이 멈춰지고 그 과거를 벗어나려는 눈물이 흐른다. 그것이 지금 우리가 처한 현실이다. 시네마테크에 얽힌 기억들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호출하는 일이 지금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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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었던 영진위, 이젠 됐거든!
모든 시네필들의 고향 서울아트시네마
이도훈 (mathoon) 기자
 
  
▲ 서울아트시네마
ⓒ 이도훈

요즘 서울아트시네마에서 벌어지는 일을 가만히 보고 있으면 아스라이 잊고 지내던 일이 떠오른다.
 
잊고 싶었던 옛 이야기. 어린 시절 집을 짓고 산다는 건 우리 가족의 원대한 꿈이었다. 일흔이 넘은 할아버지가 흐뭇한 미소를 지으시며 괭이질을 하신 자리에 기초를 닦았고, 아버지가 땀 흘려 모으신 돈으로 산 나무와 벽돌을 두 아들이 고사리 같은 손으로 나르고 쌓아 지은 집이 있었다. 그렇게 삼대의 손길을 거친 삶의 보금자리에서 우리는 8년을 살았다.

 

그러나 그 집은 이제 우리 것이 아니다. IMF의 한파도 겪어내며 지켜낸 집이었건만, 아버지는 동업을 하던 죽마고우에게 사기를 당했다. 돈에 눈이 먼 친구에게 철저히 배신 당하신 아버지는 결국 8년을 지켜온 집을 빼앗기셨다. 모든 게 풍비박산 났다. 7년을 애지중지 기르던 진돗개마저 키울 곳이 없어서 새 주인에게 떠넘겼다. 그 후 새로운 곳으로 이사하기까지는 참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 때는 참 막막했다.

 

헌데 나는 그 어느때 보다 더 막막하다. 영진위가 서울아트시네마에 관한 지원정책을 '공모전'으로 바꾸겠다고 통보한 사실을 접하고 나서다. 내 20대를 책임지고 있는 나의 안식처, 나의 그림 같은 집이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고 한다. 비록 지난 25일 영진위가 한 발 물러나 '올해는 공모제 전환을 철회한다'는 입장을 처음으로 밝혔지만, 불이 꺼진 것은 아니다. 다만 시기만 미뤄졌을 뿐.

 

모든 시네필들의 고향, 서울아트시네마

 

올해 내가 들은 이야기 중 가장 황당했던 사건은 추기경의 사망 소식도, 화재가 난 망루에서 숨진 철거민들의 사건도, 흉포한 살인마에 관한 이야기도 아니다. 고귀한 생명이 사라진 순간과 비교해서는 안 되지만 내게는 서울아트시네마가 그만큼 중요하다. 내 20대의 청승과 아양을 넉넉히 받아준, 오늘날 내 삶의 절반을 이곳에 의탁하고 해도 과언이 아닌 이곳은, 모든 시네필들에게 그러하듯 나의 또 다른 고향이다.

 

영진위는 서울아트시네마에 돌이킬 수 없는 풍화작용을 일으키고 있다. 공모전을 시행할 경우, 서울아트시네마는 서서히 마모되어 결국 재가 되어 날릴지도 모르며 훗날 한국영화사 속에서 '옛날 옛적에 서울아트시네마가 있었다'는 식으로 신화처럼 기록될지도 모른다.

 

나는 그게 서글프다. 명백하게 현존하는 영화인의 성지가 미래를 보장받을 수 없다는 사실이 말이다. 서울아트시네마는 90년대 한국영화의 정신적 버팀목이었으며, 21세기 한국영화인의 토양이 될 곳이다. 그곳이 사라질 위기에 처하다니. 그걸 보고만 있어야 하다니. 내가 서울아트시네마의 입장과 일부 관객 및 영화인들의 분노에 동의하는 건, 아트시네마의 주인이 명백히 영진위가 아니라, 서울아트시네마라는 데에 있다.

 

우리가 믿었던 '영진위'는 어디에?

 

  
▲ 서울아트시네마
ⓒ 이도훈

근 10년간 서울아트시네마를 지켜오면서 동시에 이곳을 시네필의 성지로 정착시킨 영화인들의 몫이며, 덩달아 나처럼 발품을 팔아가며 이곳에서 영화를 보아온 관객의 몫이라는 점이다. 그런데 영진위의 무차별적인 통보를 보고 있으면 그들이 마치 주권자인양, 통치자인양 행세하는 꼴을 보이고 있다.

 

느닷없는 '공모제' 전환 통보는 서울아트시네마의 존폐와 직결되는 심각한 사안이다. 영진위의 논리에는 첫 삽을 뜬 사람과 주추를 올리고 대들보를 올린 집주인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고 개발을 명목으로 불도저로 밀어버리려는 업자들의 행태와 유사하다. 집주인들의 사정은 조금도 들어볼 아량이 없이 막무가내다. 더 놀라운 건, 그들이 우리가 지금까지 믿어왔던 '영진위'라는 사실이다.

 

영화문화 사업을 촉진하기 위한 목적으로 설립된 단체에서 영화인들의 생명권과 존립을 두고서 '공모전'이라는 논리로 서울아트시네마 지원을 시장자율에 맡기겠다는 작태는 내 상식으로는 이해불가다. 우리가 알던 영진위는 어디로 갔나? 영진위도 소위 말하는 실용주의를 따를 모양인가보다. 그리고 도덕적 판단이나 윤리적 관용을 앞서 생각하기 보다는 효율을 중시하는 관료주의의 상명하복 질서를 따를 모양이다.

 

좀 과격하게 말하면, 그건 아우슈비츠에서나 가능하던 일 아닌가? 최고통치자의 이념과 정책에 충실했을 뿐이다라고 말하면 모든 것이 해결되겠지만 한 순간의 실수로 모든 것은 사라진다. 돌이킬 수 없다. 후회해도 늦다. 모든 역사서는 문화가 말살되고 억압되는 시기를 폭압의 정치라고 표현했다. 제발, 그 전철을 밟지 말아야 한다.

 

한 순간의 실수로 모든 것은 사라진다

 

나는 서울아트시네마가 좋다. 이곳은 오늘날 우리 영화의 과거이자 현재며 다가올 미래이다. 영화를 처음 접하는 이들이 아무 영화나 보고는 뛰는 가슴을 진정시키지 못하는 곳이며, 영화를 조금 본 친구들이  좀 더 열성적으로 영화문화에 빠져드는 곳이며, 영화전문가들이 넓은 혜안을 가지고 새롭게 영화를 해석하는 곳이다.

 

실로 이곳은 영화 문화의 실직적인 보고(寶庫)이자 영화인을 위한 보배(寶貝)다. 그러니 서울아트시네마는 경제적인 논리로 추방을 명해서는 안 되는 곳이다. 이곳의 주인은 모든 영화인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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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상의 낙원'마저 빼앗아야겠습니까
서울아트시네마 공모 전환, 오늘도 내일도 안 됩니다 [오마이뉴스]
허진무 (riverrun88)
 
  
서울아트시네마의 풍경. 종로 3가에 있는 낙원상가 4층으로 가면 탁 트인 옥상이 나온다. 거기에 작은 시네마테크, 서울아트시네마가 있다.
ⓒ 허진무
 

'서울아트시네마가 사라질 수도 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나는 얼이 빠졌다. 그곳이 사라진다는 상상을 하니까 심장이 가슴에서 튀어나와 땅바닥으로 '툭' 떨어지는 게 아닌가 싶도록 망연했다.

 

얘기인즉슨, 영화진흥위원회가 시네마테크 지원 사업 방식을 공모제로 전환한다고 일방 통보했다는 거였다. 날벼락 통보였고 대화는 없었다. 영진위 시네마테크 지원금이 예산의 30%를 점하는 서울아트시네마다. 지원금은 임대료 등 필수적인 부분에 쓴다. 때문에 만약 공모제에서 탈락하게 되면 당장 극장의 목숨이 위협을 당한다. 서울아트시네마는 민간 주도로 이어온 극장이다. 이제 와 영진위는 고작 30%의 예산지원이란 명목으로 서울아트시네마의 주인 행세를 하는 것이다.

 

당연히 반발의 아우성이 메아리치자 영진위는 25일 "올해는 공모제 전환을 철회하고 내년으로 연기한다"는 공문을 보냈다. 떨어지는 칼날을 겨우 피하긴 했지만 문제가 깨끗이 해결된 것은 아니다. 영진위의 독립영화 지원비 폐지 사건과 맞물려 영화계 또한 자본의 불도저로 밀어버리려는 심산이 아닌지 크게 걱정이 된다. 더욱이 하필 서울아트시네마라니! 절대로 안 된다.

 

서울아트시네마를 빼고 어찌 종로를 논할까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열리는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 중, 역시 '친구들'의 하나인 봉준호 감독의 헌사. 시네마테크는 영화의 낙원이다.
ⓒ 허진무

세상에는 많은 극장이 있지만 서울아트시네마는 내가 제일 사랑하는 극장이다. 종로에 관한 거의 모든 추억은 서울아트시네마로 통한다. 왜냐하면 종로에 갈 일이 있으면 꼭 서울아트시네마도 가기 때문이다.

 

종로의 굽이지고 낡은 골목들, 젖은 아스팔트와 억척스런 사람들의 모습들이 나는 정겹다. 종로 3가에 들어서면, 벌써부터 멀리 낙원상가의 큼직한 건물이 보인다. 종로 거리를 거닐고서 낙원상가를 비켜갈 수는 없다.

 

낙원상가 밑에는 1500원에 우거지 국밥을 먹을 수 있는 식당이 있다. 돈은 궁한데 배는 고프고, 영화도 보고 싶을 때 나는 영화값을 남기기 위해 여기서 밥을 먹었다.

 

허름하고 비좁은 곳에서 복닥이며 먹는 국밥 맛은 특별했다. 뜨끈한 국물로 배를 채우고 낙원상가 4층 옥상의 낙원으로 어슬렁 가는 것이다. 옥상에는 서울아트시네마가 있다. 나는 낙원이라고 했다. 정말이지 진짜 낙원이다.

 

괴상하게도 상가 옥상에 있다는 시네마테크를 처음 찾은 계기는 순전한 호기심이었다. 고전 영화와 예술·실험 영화들을 틀어준다는 극장이 과연 어떨까 궁금했다. 거기에는 공룡 영화들에 질려버린 감성도 영향을 끼쳤다.

 

서울아트시네마에서 본 첫 번째 영화는 에른스트 루비치 감독의 <모퉁이 가게>였다. 듣도 보도 못한 감독에다 듣도 보도 못한 1940년산 영화다. 그러나 나는 필름이 돌아가는 동안 혼이 빠졌다. 영화의 나이만 따지자면 영락없는 노인 영화라고 할 테지만 60년이 넘는 나이 차가 있는 청년의 눈을 빼앗았다. 벌써 고전이란 딱지가 붙여진 흑백 필름이 여전히 가슴을 울리고 눈물을 닦아주니 자리에 주저앉아 꼼짝도 못했다.

 

자본에 패한 영화들에 위안받는 곳

 

  
서울아트시네마는 좋은 영화라면 어떤 영화든 가리지 앟는다. 이제 멀티플렉스에서는 틀어주지 않는 필름이 시네마테크에서 묵묵히 돌아가고 있다.
ⓒ 허진무

그것은 죽비였다. 순간 나는 오랜 세월 동안 대형 극장만을 드나들며 영화적 지배를 당했다는 걸 알았다. 조금 다른 영화를 보겠다는 상상력을 상실했었다. 대한민국의 영화는 멀티플렉스 영화관 삼총사가 지배하고 멀티플렉스는 거대자본 영화가 지배하고 있다.

 

돈벌이가 되는 이른바 공룡 영화들이 상영관을 점령하고 싸움을 벌이는 통에, 소수자의 영화는 금방 간판을 내리고 변방으로 밀려나기 일쑤다. 어느덧 영화가 산업의 주판으로 계산되기 시작한 이래 일어나는 비극이다. 그런 자본의 전쟁에서 패한 영화들을 만날 수 있는 변방의 주막이 바로 시네마테크다.

 

전국을 통틀어 딱 여덟 개 있는 시네마테크는 비영리 영화관이다. 돈벌이를 위한 극장이 아니다. 당최 돈하고는 서먹한 영화만 틀어주니 영화로 장사하려다가는 진작 망했을 테다. 시네마테크는 오롯이 영화와 관객을 위하여 있다.

 

나는 시네마테크의 다른 무엇보다 분위기를 사랑한다. 정말이지 영화가 좋아 죽겠다는 이들이 내쉬고 들이마시는 공기가 가득이다. 재미난 영화를 좋아하는 데에는 남녀노소가 따로 없다. 하이힐을 신은 여대생부터 두둑한 점퍼를 입은 할아버지까지 누구나 영화가 좋아 시네마테크를 찾는다.

 

스크린을 바라볼 때면 연인을 바라보듯 그윽하고 진지하다. 집에서 서울아트시네마까지는 지하철과 버스로 두 시간이 걸리지만 그곳의 공기가 그리워 어쩔 도리가 없다. 최근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가 열리는 중에 아핏차퐁 위라세타쿤 감독의 <열대병>을 보러 갔었다. 퀴어 멜로와 신화를 끌어들여 실험하는 태국산 영화지만 빈틈없이 자리가 꽉 들어찼다. 그러자 옆자리에 앉았던 남자가 혀를 내두르며 혼자 중얼거리는 거였다.

 

"이야, 영화 좋아하는 사람 진짜 많구나."

 

당신도, 시네마테크의 친구가 되어주세요

 

  
서울아트시네마 벽 한켠에 걸린 '친구들'의 사진. 임권택, 봉준호, 박찬욱, 배창호, 홍상수 같은 감독들부터 안성기, 권해효, 하승우, 류승범 같은 배우들까지 여러 사진이 붙어 있다.
ⓒ 허진무

시네마테크의 정신을 한눈에 보여주는 특별한 풍경이 있다. 시네마테크의 관객들은 영화의 마지막 장면이 끝나도 자리를 뜨지 않는다. 극장도 불을 켜지 않는다. 화면에는 감독부터 말단 스태프까지 이름이 꼬박 실린 엔딩 크레딧이 느릿느릿 흘러가고 있다.

 

엔딩 크레딧이 끝나고서야 비로소 극장에는 불이 켜지고 관객들은 자리에서 일어난다. 가끔 짤막한 박수를 치는 사람도 있다. 영화와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에 대한 경의와 존중이다. 처음에 이 낯선 습성과 마주했을 때 감동으로 몸이 저릿했다. 상업적 수단으로, 혹은 즉각적인 오락으로만 여기는 요즘 세태에서 드문 풍경이다.

 

류승완 감독은 어느 인터뷰에서 요즘 사람들이 영화에 대한 연정과 예의를 잃어가고 있다고 한탄한 적이 있었다. 영화를 상품으로 취급하는 일은 이제 와 거의 국가적 의식이 된 시대라 그럴 테다. 하지만 아직도 시대에 어울리지 않게도 영화를 친구로서 사귀고자 하는 이들이 있다. 그리고 그런 이들을 친구로서 맞이하고자 하는 영화관이 있다. 류승완부터 안성기까지 여러 감독들과 배우들도 다투어 시네마테크의 친구들이 되는 까닭이다.

 

새로운 영화와 만나는 순간은 새로운 친구와 만나듯 언제나 수줍다. 좋은 영화라면 옛날의 영화든 오늘날의 영화든 출신성분을 가리지 않고 틀어주는 극장이다. 나는 시네마테크에서 많은 영화들과 친구가 되어 가까워질 수 있었다. 서울아트시네마는 소수자의 극장이지만 동시에 다양성의 극장이다.

 

자본의 무차별 진압으로 대중의 관심 바깥으로 밀려난 영화들의 마지막 거점이다. 예비 감독과 예비 배우가 학습하는 교육의 현장이며 영화의 역사가 살아서 관객과 만나는 공간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영화의 낙원이다. 씨앗은 물과 볕을 조심하며 오래 돌봐야 비로소 싹이 트고 예쁜 꽃도 피는 법이다.

 

영화도 마찬가지다. 당장의 이익에 눈이 멀어 영화를 사고파는 데 열중한다면 결국 숲 전체가 몽땅 시들고 말 테다. '제2의 워낭소리'도 씨가 마른다. 내일은 다들 서울아트시네마로 가서 좋은 영화도 보고 낙원상가 아래 천 원짜리 떡볶이도 먹어 보길 권한다.

 

이다음부터는 종로의 모든 거리가 결국 서울아트시네마로 통하는 신기한 경험을 하게 될 테니 말이다. 영화를 사랑한다면 서울아트시네마도 사랑하지 않을 리 없다. 가히 시네마테크의 멸망은 사랑의 멸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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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28일 토요일 2시 30분, 시네마테크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친구들의 토론회가 열립니다!

배가 고프면 상점에 나가 음식을 살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정말로 울적하거나, 일종의 영혼의 위기를 겪게 되면, 어디에도 갈 곳이란 없습니다  -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





언제나 스크린 위에서 벌어지는 일에 관심을 갖는 영화를 사랑하는 관객들, 영화인들도 종종 스크린에서 빠져나와 현실의 문제를 고민하고 논의할 때가 있습니다. 영화는 현실의 반영이자 반영의 현실로 우리보다 더 큰 스크린 위에서 진정한 세계와 만나는 놀라운 경험을 제공하지만 또한 우리는 영화가 처한 현실을 언제나 되돌아보게 됩니다. 영화를 사랑한다고 말하면서 영화가 처한 가혹한 현실을 외면하는 것은 진실한 영화 사랑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한국에서 영화는 언제나 자본과 권력에 휘둘려왔지만 영화인들과 관객들은 또한 예술적 저항을 결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웨스턴의 신화만큼이나 전설적인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옵니다. 1950년 10월 22일, 미국영화감독협회의 임시총회에서 무성영화시기 이래 할리우드를 대표하는 대감독이자 거장이었던 세실 B. 드 밀이 당시 협회장이던 조셉 맨키비츠의 해임을 획책한 일이 있었습니다. 당시 공산주의자 색출의 선봉장이었던 드 밀은 비버리 힐즈의 호텔에 모인 600여명의 감독들 앞에서 표현의 자유를 옹호하던 맨키비츠를 힐난하고 있었습니다. 스튜디오에 심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던 드 밀에게 쉽사리 아무도 반기를 들지 못하던 순간, 침묵을 깨뜨리며 그간 공공연하게 자신의 의견을 말하기 꺼려했던 한 명의 감독이 분연히 일어나 강력하고 단순한 말로 자신을 소개합니다. "내 이름은 존 포드입니다. 웨스턴을 만들고 있습니다." 존 포드는 맨키비츠와 민주주의의 정당성을 옹호하며 드 밀의 책략을 비판합니다. 이어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이 파이프의 담배 연기를 내뿜으며 "자, 이제 저는 집으로 돌아갑니다. 내일 촬영이 있으니까요."라며 회의장을 뒤로 했다고 합니다. 마치 서부의 주인공처럼 포드는 그 순간 스크린으로부터 현실로 내려와 암울한 역사와 마주해 저항을 벌였습니다. 

영화애호가들은 시끄러운 정치인들이나 모리배들과 달리 어둠 속의 침묵을 좋아합니다. 영화는 침묵 속에 놓여 있고 영화들 사이에 더 거대한 침묵이 놓여 있습니다. 마노엘 데 올리베이라는 영화가 셀를로이드 필름 위에 이미지를 담아내지만 그것은 환영으로 그것의 흔적과 기억이 거대한 침묵 속에 놓여 있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그런 영화애호가들도 가끔은 침묵을 깨뜨릴 때가 있는 법입니다. 발언을 해야 할 때가 있는 법입니다. 말을 하지 않으면, 글을 쓰지 않으면 사라질 영화의 기억과 추억, 휘발될 예술이 있기 때문입니다. 

2월 28일, 시네마테크에서 전례없는 토론회가 열립니다. 시네마테크는 침묵 속에 영화를 보고, 영화를 이야기하는 장소입니다. 지금 시네마테크가 어떤 상황에 놓여 있는가를 논의하는 것은 그런 침묵을 깨뜨리는 예외적인 행위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침묵을 깨뜨리는 것은 더 가혹한 침묵, 굴종과 예속을 외면하지 않기 위함입니다. 한 편의 영화로 우리는 손상되어 떠도는 영혼이 자리할 수 있는 마음의 거처를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런 영화는 또한 우리들이 소리를 지르고 싶을 만큼 함께 감탄하고 경탄하는 시네마테크라는 장소를 외면하고 이루어질 수는 없을 것입니다. 우리들의 기억이 노예가 될 수도 있는 그런 어리석은 일이 진행되는 것에 침묵해서는 안될 일입니다.

영화는 시간을 지켜주었지만 시간이 결코 영화를 지켜왔던 것은 아닙니다. 에리히 폰 스트로하임, 버스터 키튼, 로버트 알드리치, 자크 베케르, 장 르누아르, 로베르 브레송, 모리스 피알라, 존 카사베츠, 자크 타티, 그리고 수 많은 감독들의 영화를 시네마테크에서 보면서 영화애호가들은 아마도 가혹한 시간과 역사에 농락당한 영화예술의 흔적을 뒤늦게야 발견할 때가 있을 것입니다. 그럴 때 제 시간에, 제 때에 영화예술을 지켜주지 못하면 영화예술인들이, 혹은 그들의 영화가 어떻게 곤경에 처할 수 밖에 없는가를 깨닫게 됩니다. 뒤늦게 과거의 영화를 발견했다고 호들갑을 떠는 것도 좋은 일일테지만 지금, 여기에서 영화의 기억과 시간을 지켜내는 일 또한 중요합니다. 지금은 시네마테크에 대해, 영화에 대해 이야기를 해야만 할 때 입니다. (김성욱)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긴급 토론회

-시네마테크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


일시: 2009년 2월 28일(토), 오후 2시 30분~5시

장소: 시네마테크 서울아트시네마

참석: 김영진(영화평론가), 오승욱(영화감독), 정윤철(영화감독), 김성욱(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래머), 김홍록(한국시네마테크협의회 사무국장)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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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포트] 위기에 처한 서울아트시네마





서울아트시네마가 위기에 처했다.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가 시네마테크 전용관 지원 방식을 ‘위탁’에서 ‘공모’로 변경하겠다고 통보한 것이다. 서울아트시네마 김홍록 사무국장은 지난 2일 2008년 사업 보고와 2009년 사업 계획을 전달하기 위해 영진위를 방문했다가 이와 같은 통보를 받았다고 밝혔다. 그리고 이러한 결정을 내린 이유에 대해 “영진위 측에선 각종 지원 사안들을 공모제로 전환하라는 것이 문화체육관광부의 강력한 의지라고 말하고 있다”고 전했다.

영진위 영상문화조성팀 김종호 팀장은 이와 관련해서 “아직까지 확정된 사안은 아니다. 공모와 관련해서 서울아트시네마 측과 의견을 조율하는 중이다. 그러나 공모 진행 여부와 관계없이 지원과 관련하여 서울아트시네마에 대한 실적 평가는 확실하게 진행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현재까지 확정된 것은 없다. 하지만 명확한 근거 제시 없이 공모제를 주장하는 영진위의 입장은 이해하기 힘들다. ‘모든 위탁 사업을 공모제로 전환하라’는 것이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광부)의 지시라고 하지만, 정작 문광부는 ‘영진위의 세세한 부분까지 지침을 내리진 않는다’는 입장이다. 정확한 입장 정리조차 되지 않은 상황에서 벌어진 공모제에 대한 발상 자체가 황당하다.

영진위가 공모로 시네마테크를 선정할 경우 기존의 서울아트시네마가 공모 여부에 따라 시네마테크로서 인정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는 기괴한 논리가 만들어진다. 만약 다른 단체가 시네마테크 전용관 사업의 위탁 사업자로 결정될 경우 서울아트시네마는 더 이상 지원을 받지 못하게 된다. 당장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영화를 볼 수 없게 될 수도 있다는 말이다. 2009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로 활기를 찾은 서울아트시네마에 예상치 못한 한파가 찾아온 것이다.

영화를 위한 국내 유일의 비영리 민간단체

서울아트시네마는 국내 유일의 고전 영화를 통한 교육을 목적으로 시네마테크 활동을 펼쳐온 비영리 공간이다. 즉, 영진위나 문광부가 주도하여 설립한 기관이 아니라는 얘기다. 순수하게 민간이 주도하여 만들고 이끌어 온 민간기관인 것이다. 1990년대 후반부터 시작된 ‘전국시네마테크연합’ 활동의 성과를 발전적으로 계승하고 시네마테크 활동의 질을 한 단계 끌어올리기 위한 취지에서, 2001년 10월 26일 영화진흥위원회 시네마테크 지원 방향 마련 토론 좌담회를 시작으로 12월 18일까지 모두 5차에 걸친 전국 시네마테크 대표자 연석회의를 통해 ‘한국시네마테크협의회’ 창립을 공동으로 발의했다.

이어 2002년 문화관광부를 통해 사단법인 인가를 받고 소격동 아트선재센터에 둥지를 틀며 서울아트시네마는 영화를 사랑하는 모든 이들의 안식처 역할을 톡톡히 해왔다. 현재의 허리우드 극장으로 자리를 옮기기까지 지난 7년 동안 한국 영화 문화 발전을 위해 애써온 공간인 것이다. 한국을 대표하는 영화감독, 영화평론가, 영화배우들이 시네마테크를 아끼고 응원하는 것도 이러한 시네마테크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서울아트시네마는 2009년 프로그램을 모두 완성한 상태다. 이들 중 다수는 외국 시네마테크나 아카이브와 교류를 통해 진행되는 감독들의 회고전들이다. 당장 4월에는 ‘러시아 모스필름 회고전’과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 회고전’이 잡혀 있다. 이런 상황에서 공모로 시네마테크를 선정하겠다는 영진위의 입장이 나오자 서울아트시네마로서는 어이없다는 반응이다. 그간 서울아트시네마가 외국 시네마네크와 쌓아온 신뢰와 명성에 손상이 발생할 수도 있는 일이기 때문. 영화를 사랑하는 많은 이들이 갈 곳을 잃고 헤맬 것은 두말하면 잔소리고 말이다.

주객전도의 위기에 처한 시네마테크

서울아트시네마는 영진위 지원금 30퍼센트와 관객 수입 30퍼센트, 그리고 나머지는 자체 수입 사업으로 운영을 유지해 왔다. 영진위의 지원은 2002년 한국시네마테크협의회 발족 후 서울아트시네마 오픈과 함께 시작했으며 형식적으로 매년 위탁 계약을 채결해 온 상황. 회계연도는 3월부터 다음해 2월까지이며 시네마테크전용관 지원 사업에 2억 9,000만 원, 시네마테크 네트워크 사업에 1억 5,000만 원 정도가 지원되어 왔다.

영진위는 위탁이라는 방식으로 시네마테크 운영금의 일부를 지원해 온 것이지, 시네마테크를 운영하는 주체가 아니다. 그런데 이제 와서 사업 주체를 영진위가 주도하고 시네마테크를 선정하겠다는 것은 납득할 수 없는 비상식적인 조처라는 것이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에 참여하고 있는 영화인들의 주장이다. 이는 명백한 ‘주객전도’를 노리는 행동이라 이들은 말한다. 민간기관인 시네마테크의 운영에 정부가 관여하고 통제하겠다는 의미인 것이다. 현재 서울아트시네마 측은 영진위의 일방적인 통보에 대책을 강구하고 있는 상태다.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또한 영진위의 통보에 반대 의사를 내세우면서 시네마테크를 위한 목소리를 한데 모으고 있다.

시네마테크 지원에 대한 사안은 이미 오래 전부터 지속적으로 거론된 문제다. 지난 3기 영진위에서 진행하려고 했던 복합 상영관 건립에 대한 안건은 4기 영진위로 넘어오면서 표류 중인 상태고, 시네마테크 운영에 대한 지원 또한 적극적이지 못했던 게 사실이다. 쉴새없이 팽창해 온 영화 산업 이면에는 영화의 문화적 가치와 소양을 쌓을 수 있는 영화 도서관을 외면한 무관심한 시선이 존재했던 것이다. 게다가 이번 공모 건은 영진위 내부에서조차 제대로 논의가 이루어지지 않았고, 당사자인 서울아트시네마와 상의조차 하지 않은 상태에서 진행된 것으로 절차상의 문제 또한 있어 보인다. 문광부는 답변을 회피하고 있지만 갑작스런 영진위의 결정에 외압이 있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추측 또한 흘러나오고 있다.

이번 영진위의 공모제 전환 통보는 영화 문화와 예술에 대한 지원이 행정 편의에 따라 언제든 쉽게 변경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건으로 주목된다. 시네마테크는 영화를 보다 다양하고 깊이 있게 접근할 수 있는 장으로서 한국 영화를 성장시키는 원동력이 되어 왔다. 친구들 영화제에서 만난 영화인들은 한결같이 ‘영진위가 왜 이런 무리한 일을 시도하고 있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다.

관객들 또한 영진위의 결정에 반대하는 서명을 진행할 예정이란다. 영진위는 이에 대해 여전히 침묵을 지키고 있다. 40년 전 프랑스에서는 시네마테크의 자율성을 침해하고 운영권을 통제하려 했던 관료들에 영화인들이 반발해 ‘랑글루아 사태’가 일어났었다. 그 이후로 시네마테크에 관료들의 통제는 있을 수 없는 일이 됐다. 영진위의 결정이 한국판 ‘랑글루아 사태’로 비화되지는 말아야 할 일이다.

무비위크 |2009.02.24 16:28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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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아트시네마, 관객이 나섰다

[이슈 인 시네마] 서울아트시네마 지키기 관객서명 운동

기사입력 2009-02-23 오후 12:31:43

서울아트시네마 지키기에 관객들이 나섰다.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이하 '친구들영화제')가 열리고 있는 서울아트시네마의 로비 한쪽에서는 영화를 보기 위해 극장에 들른 관객들을 대상으로 서명운동이 한창이다.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가 올 2월 초 갑작스레 시네마테크 사업을 공모제로 전환하겠다고 일방적으로 통고한 후, 공모제 전환에 반대하는 관객들이 21일(토) 직접 서명부스를 차린 것.

서명부스를 지키고 있던 김보년, 이후경 씨는 평소 서울아트시네마를 열심히 드나들던 열혈 관객들로, 이들은 이번 친구들영화제에서 웹데일리팀에 자원봉사로 참여하고 있기도 하다. 그 중 이후경 씨는 자신을 "아트선재센터 시절부터 서울아트시네마에 다녔던 관객"이라 소개했다. 이들은 주말인 21, 22일 양일간 약 3백명 가량의 서명을 받았으며 현재 목표를 천 명으로 잡고 있다.

▲ 서울아트시네마에 온 관객이 서명용지에 서명을 하고 있다. ⓒ프레시안

이들은 '서울아트시네마를 사랑하는 관객들'이라는 이름으로 "우리는 우리의 시네마테크를 지키려 합니다"라는 제목 하에 A4 한장짜리 홍보물도 자체 제작하여 부스에서 배포하고 있다. "시네마테크는 관객들의 것이다, 시네마테크 공모제 전환에 반대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는 이 홍보물은 뒷면에 1968년 프랑스의 시네마테크 프랑세즈의 앙리 랑글루아 해임 사건과 2003년 활력연구소 지원 중단 사건의 예를 소개하고 있다. 프랑스에서는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의 영화 <몽상가들>이 묘사하고 있듯 다수의 영화인들과 영화팬들이 시위를 벌인 끝에 앙리 랑글루아가 복직되고 시네마테크 프랑세즈 역시 독립성을 인정받았다. 또한 이 시위는 그해 5월 혁명의 기폭제 역할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명박 대통령이 서울시장으로 있던 2003년 당시 활력연구소는 서울시가 일방적으로 지원을 중단한 뒤 결국 그해 말 폐관되고 말았다. 서울아트시네마 역시 활력연구소의 전철을 밟을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이 반영된 것.

실제로 관객서명운동의 제안자 중 한 명으로 서울아트시네마의 인터넷 카페에서 활동하고 있는 관객(아이디 : '이키리아')은 이 상황을 '한국의 랑글루아 사태'로 명명했다. 서명부스를 지키고 있던 이후경 씨는 "영진위가 그러는 건 기존의 시네마테크를 인정 안 하겠다는 얘기 아니냐. 이 공간은 당연히 지켜져야 한다. 공모제 전환을 막아야 한다."고 말했다.

현재 영진위는 공모제 전환을 둘러싼 잡음에 대해 아직 공식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김숙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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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장은 유보됐지만 내년에 불씨 커질 수도… 영진위와의 관계부터 규명해야

서울아트시네마의 존립위기설이 또다시 불거졌다. 영화진흥위원회가 서울아트시네마에 지정위탁해온 시네마테크 전용관 사업을 공모제로 전환하려는 것을 두고 논란이 일기 때문이다. 서울아트시네마는 지난 2002년 5월 설립된 곳으로 그동안 한국시네마테크협의회가 매년 영화진흥위원회의 국고지원을 받아 운영해왔다. 만약 공모제가 강행돼 서울아트시네마 공모에서 탈락한다면 서울아트시네마는 시네마테크 전용관으로서의 자격을 잃고 극장임대료 등을 지원받지 못하게 된다. 전용관의 자격을 지키는 것도 문제지만, 그것보다 당장 짐을 빼야 하는 세입자의 처지가 된다.

 

 

2009년은 일단 지정위탁형태로

서울아트시네마의 김홍록 사무국장이 영진위로부터 공모제를 통보받은 것은 지난 2월2일이었다. 이날 영진위쪽 담당자는 “영진위가 위탁사업을 하는 미디어센터 미디액트와 독립영화전용관 인디스페이스는 회계연도가 1월까지라 2010년부터 공모제를 통해 운영주체를 선발할 예정이지만, 회계연도가 2월인 시네마테크는 올해부터 공모제를 진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홍록 사무국장에 따르면 당시 영진위가 공모제 전환 배경에 대해 취한 입장은 “모든 위탁사업에 공모제를 실시하라는 게 문화관광체육부의 방침”이라는 것과 “공모에 응할 다른 주체가 없을 테니 오히려 서울아트시네마에 유리하다”는 정도였다.

하지만 김 사무국장이 문화관광체육부 담당자에게서 들은 이야기는 또 달랐다. “영진위 같은 큰 조직의 사업시행일까지 관여하지도 않고 해서도 안된다고 하더라.” 서울아트시네마의 김성욱 프로그래머는 “영진위가 공식적으로 구체적인 입장을 밝히지 않은 상태라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납득이 될 만한 명분을 밝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2월19일 현재, 이 사안은 일단 2009년에 한해 기존의 지정위탁형태로 시네마테크 전용관 사업을 진행하는 쪽으로 가닥이 잡히고 있다. 영진위의 김병재 사무국장은 <씨네21>과의 전화통화에서 “강한섭 위원장과 여러 영화계 종사자들의 의견을 수렴해 올해는 예년과 같은 방향으로 가기로 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잠정적인 재고이기 때문에 2010년부터는 또 다른 논의가 필요할 예정이다. 게다가 김홍록 사무국장의 말에 따르면 “영진위는 올해 6월부터 공모심사를 할 계획을 세우고 있기 때문에 내년이 아니라 당장 올해의 문제”가 될 수도 있다. 독립영화전용관과 미디어센터도 당연히 자유롭지 않다. 인디스페이스를 운영하는 원승환 한국독립영화배급센터 소장은 “우리는 공모제가 구체화되기 전인 지난 1월2일, 앞으로 1년간의 지원협약을 체결했지만, 내년부터는 공모제가 실시될 수도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2010년의 위탁사업에 대한 영진위의 태도도 마찬가지다. “내년은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고 말한 김병재 사무국장은 “이제부터라도 의견을 수렴하고 대화하면서 방법을 찾아나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형평성 위해 무리하게 서두르나

논란은 잠잠해지는 분위기이지만, 영진위가 전용관 사업을 지정위탁에서 공모제로 전환하게 된 배경은 여전히 의문이다. 김병재 사무국장은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지적받은 부분의 개선안을 만드는 과정에서 서울아트시네마와 소통이 부족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가 작성한 2008년 국정감사 결과 보고서에 따르면, 당시 영진위는 “단체지원사업이 독립영화협회, 영화인회의, 제작가협회, 영화인협회등 소수단체에 40%가 집중지원되고 있으므로 형평성 차원에서 단체지원 사업의 추진방식에 개선이 필요하다”고 지적받았고, 이를 위해 “공모사업 수행시 특정 단체에 편중하여 기금이 지원되지 않도록 공모사업 및 위탁사업의 전반적인 개선방안을 마련할 것”을 요구받았다. 김병재 사무국장은 “국민들이 만들어준 기금을 여러 부문에 안배해야 한다는 문제제기를 무시할 수 없는 게 영진위의 입장”이라고 말했다.

국정감사의 지적사항을 개선해야 하는 영진위의 입장에서 볼 때, 사실상 가장 명확한 공모제 전환의 배경은 ‘형식적인 절차’이다. ‘누구를 뽑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단지 ‘지적사항을 개선했다는 명분’이 필요했다는 것이다. “영진위에서는 시네마테크를 운영할 수 있는 곳이 시네마테크협의회밖에 없으니 상관없지 않냐며 법적인 형식을 갖추는 것이니 이해해 달라고 했다”는 김홍록 사무국장의 말도 이를 뒷받침한다. 또한 영진위가 공모제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무리를 했다는 점도 그렇다. 서울아트시네마가 공모제 전환을 통보받은 2월2일은 운영지원재계약을 2주 앞둔 날이었다. 그런데 영진위가 2월17일, 홈페이지를 통해 공개한 ‘2009년도 영상문화조성팀 세부사업계획’에 따르면 시네마테크전용관 위탁운영자 선정 공고를 2009년 2월에 발표해 2월 말에 심사 및 선정을 실시하고, 2009년 3월에 위탁운영 약정체결 및 지원금 지급을 하는 것으로 나와 있다. 4억5천만원이나 되는 지원사업의 운영자를 선택하는 공정을 1년 중 가장 짧은 달인 2월에 모두 끝내려 했던 것이다 김홍록 사무국장은 “공모제가 이런식으로 추진될 경우에는 제3자가 보기에 짜고 치는 고스톱으로 볼 수 있다”며 “오히려 이 공모제 자체가 2009년 국정감사장에서 지적사항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영진위는 후원자인가 설립자인가

무엇보다 가장 큰 논란의 쟁점은 공모제 전환의 배경이 아니라 ‘과연 영진위가 서울아트시네마의 운영주체에 대해 공모제를 실시할 법적 근거가 있는가’란 의문이다. 김성욱 프로그래머는 “시네마테크는 애초에 영진위에서 만든 것이 아니라 민간기구에서 출발한 곳”이라며 “어떻게 운영비 지원 명목으로 운영주체를 결정할 수 있냐”고 반문했다. 공모제를 통해 국정감사에서 지적받은 사항을 개선하겠다고 할 때, 서울아트시네마는 그 영역에 포함되지 않는 곳이라는 이야기다.

김홍록 사무국장의 말에 따르면, 영진위는 “관련 근거를 찾았다”고 했다지만 여전히 구체적인 설명은 부족한 상황이다. 시네마테크 전용관 사업담당자인 영진위의 김종호 영상문화조성팀장도 “영진위는 서울아트시네마가 설립될 때부터 위탁계약을 통해 운영뿐만 아니라 공간임대를 비롯한 많은 부분을 지원하기 때문에 위탁을 어디에 맡길지를 공모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설명하는 정도다. 이미 관련 근거에 대해 답변서를 요청한 김홍록 사무국장은 “가장 크게 지원받는 게 극장임대료이기 때문에 서울아트시네마가 민간영역에 고유한 것이 아니라고 할 수는 있지만, 서울아트시네마가 영진위의 직접적인 사업범주 안에 포함되는 것처럼 인식하는 것은 주객전도나 다름없다”고 말했다. 정리하자면 영진위와 서울아트시네마의 관계를 어떻게 해석하느냐가 이 사안을 푸는 열쇠가 될 전망이다. 서울아트시네마는 누구의 것인지. 영진위는 시네마테크의 후원자인지, 아니면 설립자인지. 하지만 아직 영진위는 이에 대해 명확한 설명을 내놓지 않고 있다.

 
글: 강병진<fuggy@cine21.com>
사진: 최성열
2009.02.24
http://www.cine21.com/Index/magazine.php?mag_id=55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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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묻는다]영진위는 왜 ‘시네마테크’를 흔드나
ㆍ‘실물보다 큰’

영화의 신(神)은 어디에 삽니까.

칼 같은 겨울 바람이 불던 10일 오후, 영화의 신전에 다녀왔습니다. 누린내 나는 돼지머리 고기집을 지나, 전기 기타가 새 주인을 기다리는 악기상을 넘어, 종로 낙원상가 4층에 올랐습니다. 한국에서 영화의 신은 이 누추한 신전에 모셔져 있습니다.

서울아트시네마는 2005년 이곳에 둥지를 틀었습니다. 한적하고 깔끔했던 소격동 아트선재센터 건물에서 3년을 보낸 뒤였습니다. 그 이전에는 사당동 등지에 흩어져 있었습니다. 한국의 젊은 영화 신도들은 그렇게 장소를 옮겨가며 앞서간 영화의 신들을 사모하고 경배해 왔습니다.

추운 평일 오후였지만, 극장에는 70여명의 관객이 모였습니다. 대부분의 관객이 혼자 온 듯 보인다는 점도 여느 극장과 다른 풍경입니다. 이들의 목적은 친교, 유희가 아닙니다. 이들은 영화의 신과의 직접 만남을 추구하는 ‘근본주의자’이자, 영화 예술의 전위를 음미하는 ‘얼리어답터’이고, 잊혀져가는 영화 유산을 기억하는 ‘고고학자’입니다.

이날 제가 만난 신은 니콜라스 레이. 그의 대표작 <실물보다 큰>(원제 Bigger Than Life)이 스크린에 투사됐습니다. 가정과 직장에 충실한 가장 에드는 희귀병으로 쓰러집니다. 의사들이 실험 중인 신약을 투약하자 에드는 병석을 털고 일어납니다. 그러나 신약에는 예기치 못한 부작용이 있었습니다. 성실했던 가장은 어느새 공포의 폭군으로 변합니다. 제작사는 할리우드 메이저 스튜디오인 20세기 폭스. 스튜디오 시스템이 허술했던 것일까요, 스튜디오 간부가 개방적인 사람이었을까요, 아니면 당대 관객의 감수성이 전위적이었을까요. 이 광기어린 가족극이 1956년도에 제작됐다는 사실을 도무지 믿을 수 없었습니다.

연중 최고 행사인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가 갓 열린 2월초, 서울아트시네마는 영화진흥위원회로부터 갑작스러운 통보를 받았습니다. 시네마테크 전용관 위탁 사업을 공모제로 전환하겠다는 내용이었습니다. 1년 간의 지원 기간이 1달도 남지 않은 시점이었죠.

지난해의 경우 서울아트시네마는 영진위 지원금 4억5000만원을 받았습니다. 이 돈은 공간 임대료, 운영비 등 연간 예산의 30%에 해당합니다. 영진위 측은 지난해 국감에서 비공모제의 문제점이 지적됐기 때문이라고 해명하고 있습니다.

고전·예술 영화를 보유하고 상영하는 시네마테크는 정부의 지원을 받아 출발하지 않았습니다. 영화를 사랑하고, 영화를 보고 싶고, 영화를 나누고 싶은 청년들이 1990년대 중반부터 자발적으로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쌓여온 시네마테크들의 역량이 2002년 ‘한국시네마테크협의회’로 뭉쳤고, 오늘날에 이르렀습니다. “시네마테크에 후원하는 것은 한국의 영화문화와 예술에 투자하는 것”(유현목 감독), “우리의 영화팬들이 지난 작품들을 다시 볼 수 있고 즐길 수 있을 때 우리 영화는 좀더 풍부해지며 탄탄한 전통을 쌓아갈 수 있을 것”(배우 안성기) 등은 시네마테크를 위한 헌사입니다.

영화를 ‘진흥’한다는 영진위는 뒤늦게 끼어들어 몇억원의 돈으로 시네마테크의 역사를 흔들려 합니다. 서울아트시네마는 이미 올해 20개 이상의 행사 계획을 세워 놓았습니다.

설령 공모를 통해 서울아트시네마가 탈락해 정체모를 누군가가 시네마테크 운영 주체로 나선다 하더라도, 영화의 신도들은 새 신전을 찾지 않을 것입니다. 신이 아니라 신전의 규모에 반해 종교를 가지는 신도가 진정한 신도입니까.

“기껏 영화일 뿐”이라고 말하는 분들께서 기억할 만한 역사의 사건이 있습니다. 시네마테크 프랑세즈의 앙리 랑글루아 관장이 해임되자, 이에 반대한 장 뤽 고다르, 알렝 레네 등 당대의 혁신적인 젊은 감독이 거리로 나섰습니다. 학생, 노동자가 뒤를 따랐습니다. 서구 사회의 가치관, 시스템을 송두리째 뒤흔든 68혁명의 시작입니다.

<백승찬 기자 myungworr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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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시네마테크, 서울아트시네마를 지켜라!

 





지난 1월,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에 즈음하여 진행된 인터뷰에서 김성욱 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래머는 시네마테크사업에 대한 중요한 이야기를 꺼낸 바 있다. 중차대한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사안이 첨예하고 민감한데다가, 사실 확인이 모호한 상황에서 먼저 움직이는 것이 이롭지 않다는 판단이 섰기에 이 내용은 의도적으로 기사화하지 않았다. 그런데 불과 한 달도 되지 않아 우려가 현실로 나타났다. 다름 아닌 시네마테크 전용관 위탁사업을 공모제로 변경한다는 것이 주요 골자다. 쉽게 설명하면 시네마테크전용관 ‘서울아트시네마’는 독립영화 전용관 ‘인디스페이스’와 미디어 센터 ‘미디액트’와 더불어 영화진흥위원회의 위탁사업 수행기관 중 하나이다. 서울아트시네마의 공간 임대료를 비롯한 기자재 구입비와 운영비는 이처럼 정부지원금으로 조달되어왔고 이것이 서울아트시네마 전체 운영비의 30%를 차지한다. 그런데 이제부터는 위탁이 아닌 공모제로 전환하겠다는 것이다. 계약 갱신을 불과 한 달도 남기지 않은 시점에서 말이다. 여기서 한 가지, 오해하지 말아야 할 중요한 사실이 있다.

 

시네마테크 서울아트시네마는 영진위나 문화관광체육부가 출연한 기금으로 설립 운영되어온 기관이 아니다. 순수하게 민간이 주도하여 만들고 이어져온 민간 기관이라는 것. 다만 영진위는 시네마테크 전용관 위탁사업의 형식을 통해 운영자금의 일부를 지원해왔을 뿐이라는 점이다. 그러니까 민간이 시작해 힘들게 꾸려온 사업에 정부는 단지 위탁이라는 미명하에 운영비 일부를 지원해주었다는 것인데, 그것을 빌미로 이제 와서 그 사업의 주체를 자기들이 결정하겠다는 것이 논점이다. 이것이 중요한 이유는 뒤에 거듭 말하겠지만, 자칫 영진위가 시도하는 공모제가 시네마테크전용관의 주체를 선정하기 위한 꽤나 정당하고 투명한 절차로 오인될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까지는 확정된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서울아트시네마가 공모에 참여할지, 어떤 주체가 추가로 공모에 참여할지 확연하게 드러나지 않은 상태이다. 하지만 손 놓고 안이하게 결과를 기다리기에는 돌아가는 정황이 석연치 않다. 황급히 글을 쓰는 것도 이런 까닭이다. 그래, 솔직히 고백한다. 이것은 선방이다. 상대를 넘어뜨리기 위한 피니시 블로우가 아닌 상대가 접근하지 못하도록 잽을 날리는 데 그 목적이 있다. 그러므로 지금부터 할 이야기가 전혀 쓸모없는 기우에 불과했기를 바랄 따름이다. 진심으로 내가 별것 아닌 일에 호들갑 떤 우스운 인물이 되어버렸으면 좋겠다.


정부사업에서의 수의계약은 잡음을 만들어내기 일쑤였다. 특혜 시비와 부적격자 선정에 따른 부실문제가 뒤따랐고 여기에는 검은 돈 또는 외압이 개입되기 마련이었다. 공모입찰제로 바꾸고 공개경쟁을 통해 사업의 내실을 기하는 풍토가 확산된 것은 이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행태는 사업권자 선정 방법만 바뀌었을 뿐, 공모입찰제하에서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순진한 입찰자들은 자신들이 결정과정의 합법성을 증거 하기 위한 들러리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아야만했다. 결국 문제는 (언제나 그랬듯이) 제도가 아닌 제도를 운영하는 주체와 사람에 있었다. 

영진위의 시네마테크 사업권자의 공모제 역시 같은 맥락에서 살펴봐야 할 것이다. 영진위는 “모든 위탁사업을 공모제로 전환하라”는 문광부의 지시에 따른 것이라고 얘기하고 있지만 문광부의 주장은 이와 사뭇 다르다. “문광부는 그런 세세한 부분까지 관여하고 지침을 내리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지금 어느 쪽의 말이 맞는 지는 중요하지 않다. 문제는 이제까지 민간 주도하에 운영해 온 시네마테크를 공모에 붙이겠다는 발상 자체가 어불성설이라는 데 있다. 영진위는 시네마테크 사업의 주체가 아니라 그 알량한 정부지원금의 대리 집행기관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제 와서 공모제로 전환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요컨대 민간사업에 정부가 관여하여 간섭하고 통제하겠다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서울아트시네마 측이 항변하자 영진위는 “어차피 공모할 주체가 없으니 빨리 응모할 수 록 서울아트시네마에 유리하다”는 이유를 내세워 설득하려 했다. 이 말은 마치 서울아트시네마 이외에 시네마테크전용관 위탁사업을 수행할 만한 자질과 경험을 가진 단체가 없어 보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모제를 수행하는 것은 단순히 행정처리지침의 일환이요, 요식행위이니 서류만 제출하면 끝날 일이라는 것처럼 들린다. 당신도 그렇게 생각하는가? 영진위의 호언장담과는 달리 특정 단체가 공모하고 심사 결과 서울아트시네마가 공모에서 탈락한다면? 결과는 간단하다. 지금의 장소에 머물 명분이 없으니 현재의 형태는 사라지게 될 것이다. 서울아트시네마가 없어진다는 말이다.

만약 다른 단체가 공모한다면 어떤 곳일까? 현재로써는 정확하게 알 길이 없다. 표면상 드러난 주체가 없는 마당에 섣부른 추측은 위험하다. 하지만 가늠되는 것이 없지도 않다. 사실 2008년 이후 영화계 일각에서는 시네마테크전용관 사업에 대한 사업권자 교체 가능성에 대한 이야기가 솔솔 흘러나오곤 했다. 세간에서는 현재의 서울아트시네마를 대체할 사업자로 특정 단체의 이름도 거론되고 있었다.

 

이쯤에서 혹자는 이렇게 말할 지도 모른다. 그간 서울아트시네마가 펼쳐온 사업을 그 화려한 고전의 향연을 지금 그 어떤 단체가 순조롭게 해낼 수 있겠느냐고. 물론 나 역시 서울아트시네마만이 유일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것은 달리 보면 지극히 순진하고 위험한 질문이다. 왜냐하면 애초에 사업자 선정의 대상이 아닌 것을 가지고 논박하는 것은 상대의 술책에 말려드는 결과를 가져오기 때문이다. 분명이 알아야 할 것은, 시네마테크전용관은 영진위의 산하 기관도 아닐 뿐더러 공모를 통해 선정되기만 하면 운영할 수 있는 공간이 아니라는 점이다.


서울아트시네마가 지난 7년간 해온 사업을 되살펴 볼 필요도 없이, 이제껏 우리들이 보아온 시네마테크는 비록 시네마테크 프랑세즈처럼 방대한 아카이브를 구성하지는 못했을지라도 그간의 프로그램과 상영실적에 있어 시네필의 욕구를 충족시키려 무던히 애써왔다. 또한 고전 걸작의 상영에 그치지 않고 젊고 역량 있는 작가들을 소개하고 지원해왔으며 교육기관과의 연대를 통한 고품격 영화문화의 창달에도 힘써왔다. 그렇게 7년의 세월을 통해서 뿌리내린 시네마테크의 친구들은 지금도 한국영화의 중심으로 활약하고 있다. 때문에 오직 서울아트시네마만이 시네마테크의 주체이고 이것이 이 논란의 부질없음을 증명하는 이유가 된다. 

문화예술이란 것이 정권에 따라 부침을 겪는 것도 사실이다. 지난 10년의 진보정권 시절 보수ㆍ우익 예술인이 상대적으로 소외 받은 것은 사실이다. 그렇지만 좌우 이념 논쟁을 부추기는 언론플레이로 ‘실리’를 챙기겠다는 ‘꼼수’를 부렸던 이들이 시네마테크전용관 사업까지 노린다면 그것은 시대착오적인 생각이다. 무엇보다 영화계에 발붙이고 있는 이들이 행할 도리가 아니다. 빛의 속도로 변화하는 관객의 욕구에 부합할 만한 영화를 찍을 자신이 없으니까, 뱃속 편하게 고전영화나 틀면서 추억에 젖겠다는 건가? 정권이 바뀌었다고 세월까지 되돌릴 수는 없는 노릇이고 문화헤게모니는 그런 경로로 이동하는 것이 아니다. 정말로 한국영화가 걱정스럽고 한국영화 발전에 기여하고 싶다면, 빈약한 논리로 한 풀이를 도모하기 이전에 영화를 찍는 것이 순서일 것이다. 모름지기 감독이란 영화로 말을 해야 하지 않나? 그럼에도 허황된 욕심이 피워내는 고약하고 불온한 냄새가 진동하니 그래서 노탐(老貪)이라고 하는 거다.


영화광이라면 저마다 자신의 영화적 고향 또는 모태로 삼은 공간이 있을 것이다. 70.80년대의 영화광들이 프랑스문화원과 독일문화원을 거점삼아 영화의 사회성을 고민했다면, 90년대의 영화광들은 문화학교서울(현재의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영화를 터득했고, 이후 세대들은 시네코아를 비롯한 다양한 예술영화전용관을 두루 섭렵하면서 자신의 영화적 소양을 쌓아왔다. 그래서 누군가는 “나는 시네마테크에서 영화를 배웠다”라고 말을 하기도 한다. 이처럼 서울아트시네마는 단순한 영화관이 아니다. 사당동에서 소격동을 거쳐 오늘에 이르기까지 숱한 영화지망생들이 꿈을 키워온 성소(聖所)에 다름 아닌 곳이다. 비록 당연하게 여겨졌던 것들이 손바닥 뒤집히듯 바뀌는 격변의 시기일지라도 시네마테크전용관사업의 주체만큼은 특정집단의 입김과 이념의 제물로 전락해서는 안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따라서 영진위의 시네마테크전용관 사업자 공모 계획은 전면 백지화 되어야 한다.


시네마테크는 문화헤게모니의 거점이 아닌 문화유산이요 영화의 거처이고 기억의 장소이다. 이것이야말로 단순하지만 거대한 진실이다. 정녕, 문화관광체육부와 영화진흥위원회는 앙리 랑글루아를 시네마테크 프랑세즈 관장 직에서 해임했던 앙드레 말로의 전철을 밟겠다는 것인지, 지켜 볼 것이다.

 


2009.02.16

백건영(영화평론가)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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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에 처한 서울아트시네마

[충무로 이모저모] 영진위, 지원 정책 재검토 들어가

기사입력 2009-02-13 오후 6:45:35







국내 시네마테크를 대표하는 서울아트시네마가 위기에 처했다. 영화진흥위원회가 시네마테크 전용관 지원 사업의 방식을 변경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영진위는 그간 한국시네마테크협의회가 개관해 운영하고 있는 서울아트시네마에 시네마테크 전용관 사업을 위탁하는 형식으로 서울아트시네마를 지원해 왔으나, 올해 시네마테크 전용관 위탁을 공모제로 전환하기로 결정하고 이를 한시협과 서울아트시네마 측에 일방적으로 통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아트시네마 김홍록 사무국장에 의하면 서울아트시네마가 영진위로부터 통보를 받은 것은 지난 2일. 영진위가 대대적인 조직개편을 거친 뒤 2009년 사업보고와 설명을 하기 위해 영진위 담당자를 만난 자리에서다. 담당자는 "다른 사업체와 달리 서울아트시네마만 회계년도가 3월부터 익년 2월까지라 아직 2008년 사업을 진행하고 있기 때문에 이같은 결정을 내린 것"이라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후 서울아트시네마 측은 영진위 측에 "위원장도 알고 있는 사실인가" "영진위의 공식 입장인가"에 대해 반복적으로 확인을 요구한 결과 결국 "그렇다"는 답을 받았다는 것. 또한 김홍록 국장은 "영진위에 의하면 모든 위탁사업에 대해 공모제를 실시하라는 게 문화관광체육부의 강력한 의지"라는 말도 전했다. 그러나 문화관광체육부의 대답은 다르다. 문화관광체육부의 김덕수 사무관은 "영진위의 구체적인 사업과 방식에 대해서까지 문화관광체육부가 참견하지 않으며, 그럴 수도 없다"고 말했다.


서울아트시네마는 영진위의 공모제 전환 결정을 결코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다. "7년째 시네마테크 전용관을 운영하면서 한국 영화문화에 큰 공헌을 해왔다고 자부한다. 그런데 사업에 대한 제대로 된 검토와 평가도 없었고, 우리 쪽과의 의견 조율이나 사회적 합의를 모을 공청회 등 최소한의 절차도 거치지 않은 채 갑자기 공모제로 전환하라고 통고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는 것이 서울아트시네마의 입장이다. 공모제 자체에 대한 판단은 차치하고, 공모제로 전환하는 데에 대한 상식적인 절차를 전혀 거치지 않은 채 일방적으로 결정하고 이를 따르라고 하는 것부터 문제라는 것이다.

만약 공모제가 시행되면 서울아트시네마는 매년 공모제에 참가자 중 하나로 응해야 하며, 다른 단체가 시네마테크 전용관 사업에 위탁 사업자로 결정이 되면 지원을 받을 수가 없게 된다. 문제는 서울아트시네마가 지원받고 있는 금액이 공간 임대료와 장비 임대료 등 극장 운영에 있어 가장 필수적인 부분을 구성하고 있어 지원을 받지 못할 경우 당장 극장의 존립에 위기가 생긴다는 것이다. 영진위 측 담당자는 "어차피 공모에 응할 다른 주체도 없는데 빨리 할수록 오히려 서울아트시네마에도 유리한 것 아니냐"란 말로 설득하고 있지만, 오히려 그런 형식적인 공모가 더 문제가 아니냐는 게 서울아트시네마의 답변이다. 올해 사업의 기획이 모두 완성된 데다 그 중 상당수는 주한 외국 대사관들과 공동주최를 하는 프로그램이고, 3, 4월 프로그램도 이미 준비를 진행중이다. 브라질영화 특별전의 경우 브라질 대통령의 방한시기와도 겹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 상황에서 만약 공모전에 떨어졌을 때 진행에 차질이 생길 수밖에 없으며, 그러할 경우 그간 서울아트시네마가 쌓아온 신뢰와 활동은 회복이 불가능할 정도로 망가진다는 게 김홍록 사무국장의 설명이다.

현재 영진위로부터 위탁을 받아 운영되는 곳은 서울아트시네마와 독립영화전용관 인디스페이스, 그리고 미디어센터인 미디액트 등 세 곳으로, 서울아트시네마의 경우 영진위로부터 지원되는 금액은 전체 예산의 30% 정도로 알려졌다. 미디액트나 인디스페이스 역시 전액지원을 받고 있지는 않다. 그러나 공모제로 전환하겠다는 공식적인 결정을 들은 곳은 서울아트시네마 한 곳뿐이다. 미디액트의 경우 초기에는 공모제 얘기가 나오기는 했으나 이미 올해 사업을 진행하고 있기 때문에 결국 유예된 것으로 알려졌다. 미디액트의 이주훈 사무국장은 "서울아트시네마나 미디액트나 인디스페이스나, 모두 나름의 특수성과 전문성을 가지고 사업을 펼쳐나가고 있는 곳이다. 과연 경험도 없고 준비도 없는 다른 민간업체가 지금 우리가 하고 있는 사업을 대체할 수 있겠는가. 공모제 자체는 좋을 수 있지만 서울아트시네마의 경우 정당한 평가나 절차도 없이 갑작스럽게 진행하는 이유가 오히려 의아스러울 뿐"이라는 의견을 밝혔다.

/김숙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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