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 2017 Cinematheque Friends Film Festival
1월 19일(목)부터 2월 22일(수)

▣ 2017 시네마테크의 친구들의 선정작
•구로사와 기요시 영화감독
<천국이 허락한 모든 것> (더글라스 서크, 1955)
<보스턴 교살자> (리처드 플레이셔, 1968)
<케이블 호그의 노래> (샘 페킨파, 1970)
<무슈 클라인>(조셉 로지, 1976)
<우주 전쟁>(스티븐 스필버그, 2005)
•김우형 촬영감독 <죠스> (스티븐 스필버그, 1975)
•김의성 배우&최동훈 영화감독 <케이프 피어>(J. 리 톰슨, 1962)
•김주혁 배우 <21그램>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 2003)
•박홍열 촬영감독 <아름다운 5월> (크리스 마르케, 1963)
•서동진 교수 <향기 어린 악몽> (키들랏 타히믹, 1977)
•윤가은 영화감독 <매그놀리아> (폴 토마스 앤더슨, 1999)
•윤여정 배우 <커다란 희망> (마이크 리, 1988)
•이경미 영화감독 <쳐다보지 마라> (니콜라스 뢰그, 1973)
•이용관 영화평론가 <이삭 줍는 사람들과 나> (아네스 바르다, 2000)
•이영진 배우 <12명의 성난 사람들> (시드니 루멧, 1957)
•임흥순 영화감독 <산쇼다유> (미조구치 겐지, 1954)
•조성희 영화감독 <특전 U보트> (볼프강 페터슨, 1981)

▣ 개막식
일시│1월 19일(목) 오후 7시
개막작│<쇼 피플>(킹 비더) 연주상영
연주자 │강현주 피아니스트
사회│권해효 배우

▣ 시네토크
1월 21일(토) 오후 3시 40분 <플레이타임> 상영 후 김성욱 프로그램디렉터
1월 22일(일) 오후 5시 30분 <매그놀리아> 상영 후 윤가은 감독 with 이화정 기자
2월 4일(토) 오후 3시 30분 <케이프 피어> 상영 후 김의성 배우, 최동훈 감독
2월 4일(토) 오후 7시 <이삭 줍는 사람들과 나> 상영 후 이용관 영화평론가
2월 5일(일) 오후 3시 30분 <쳐다보지 마라> 상영 후 이경미 감독 with 이해영 감독
2월 5일(일) 오후 7시 <향기 어린 악몽> 상영 후 서동진 교수
2월 10일(금) 오후 7시 <커다란 희망> 상영 후 윤여정 배우 with 이재용 감독
2월 11일(토) 오후 2시 <산쇼다유> 상영 후 임흥순 감독
2월 11일(토) 오후 6시 <아름다운 5월> 상영 후 박홍열 촬영감독
2월 12일(일) 오후 3시 10분 <죠스> 상영 후 김우형 촬영감독 with 주성철『씨네21』 편집장
2월 12일(일) 오후 7시 <12명의 성난 사람들> 상영 후 이영진 배우 with 이화정 기자
2월 18일(토) 오후 7시 <피로> 상영 후 김동명 감독 with 관객에디터
2월 19일(일) 오후 5시 <특전 U보트> 상영 후 조성희 감독 with 이용철 영화평론가

▣ 구로사와 기요시 마스터 클래스
일시 │ 2월 20일(월) 오후 6시 40분 <보스턴 교살자> 상영 후
참석 │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 봉준호 감독
진행 │ 김성욱 프로그램디렉터

일시 │ 2월 21일(화) 오후 6시 40분 <크리피> 상영 후
참석 │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 정지연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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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하는 중앙대 자유인문캠프에서의 겨울강좌. 이번에는 문득 '동반자'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영화의 동반자들. 영화와 함께 했던 사람들, 관객들, 그들의 결사. 영화는 이들의 역사를 통해 경험되었고 재개념화되었다. 시네필의 운동사, 혹은 시네마-무브먼트, 혹은 시네마 소사이어티의 역사를 살펴보는 일이다. 그 역사와 함께 풍부해진 영화의 경험과 개념들을 살펴보는 일이다.

강의 개요

영화란 상시적으로 극장을 찾는 관객과 함께 성립되는 예술이다. 그러므로 영화의 경험이란 언제나 동반, 혹은 친교의 과정이자 반대로 동반의 결여라는 사건이기도 하다. 영화의 동반자는 영화에 열정을 지닌 이들로, 이들은 영화를 열정적 사랑의 대상으로 삼았을 뿐만 아니라 현대적 삶의 예술로, 문화적 유산으로, 대중적 관객을 예술과 통합하는 기획으로 활용하려 했다. 이들의 회합과 조직은 또한 영화라는 매체의 역사만큼이나 오래되어, 이미 1920년대에 시네클럽과 필름 소사이어티에서 시작해 60년대의 전투적 영화공동체까지 다양했다. 이 강의는 영화로 공동성의 꿈을 기획했던 동반자 커뮤니티의 실천이라는 비밀스런 역사를 살펴본다.


[강의 일정]
일시 : 2015년 1월 16일(금) ~ 2월 13일(금) 매주 금요일 저녁 7시~9시(2시간) [총 5회]
장소 : 중앙대학교 파이퍼홀(103동)
수강정원 : 60명 / 수강료 : 40,000원

1강 1월 16일(금) 현대적 삶의 예술과 영화의 관객
2강 1월 23일(금) 우애의 공동체: 제7예술 친구들의 클럽
3강 1월 30일(금) 영화 도둑들: 영화 박물관의 아이들
4강 2월 6일(금) 전복예술과 영화의 시민(권)
5강 2월 13일(금) 밀레탕트 시네마와 공동집단의 꿈


[참고도서] 샤를 보들레르, 『현대생활의 화가』, 인문서재 / 스탠리 카벨, 『눈에 비치는 세계: 영화의 존재론에 대한 성찰』, 이두희,박진희 옮김, 이모션북스 / 모리스 불랑쇼, 『장 뤽 낭시, 밝힐 수 없는 공동체|마주한 공동체』, 박준상 옮김, 문학과 지성사 / 토마스 앨새서, 『디지털 시대의 영화』, 김성욱 외 옮김, 한나래 / 김성욱, 김이석, 『영화와 사회』, 한나래 / 데이비드 스테릿, 『고다르x고다르』, 박시찬 옮김, 이모션북스.

중앙대 자유인문캠프

http://cafe.naver.com/univfree/40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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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5.01.01 04:55

    비밀댓글입니다

*시네마테크의 아이들이 '로메르 카페'라 부르는 인사동의 작은 카페에서 얼마전에 인터뷰를 했었다. 이런 저런 이야기들을 나눴는데, 사실 질문에 나선 이에게 나 또한 어떤 질문들을 던져보고 싶었는데, 그러지는 못했다. 약간의 오해가 있을 듯도 해서 [편집자 주]의 일부 내용을 수정했다. 시가 시네마테크에의 지원 계획을 철회했다는 표현이 정확한 것은 아니기 때문다. 시는 시네마테크에 대한 지원계획이 아직 없었다. 정책 우선순위와 예산 부족이 이유다. 


 

“과거와 현재, 미래의 시네마테크“

- 대담: 김성욱(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래머) + 김경민(서울아트시네마 관객)  

 

[편집자 주] <ACT!> 기획대담이 일곱 번째를 맞습니다. 이번 주제는 시네마테크입니다. 사실 서울아트시네마는 설립초기부터 영화를 보고 싶은 관객과 운영진의 열정만으로 이끌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이번 서울시의 결정에 대한 소회와 함께 그 동안의 운영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시네마테크의 미래에 대해 얘기를 듣기 위해 김성욱 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래머를 만났습니다. 함께 대담을 진행한 김경민씨는 서울아트시네마의 열렬한 관객이자 영화를 공부하는 영화학도입니다. 부디 이번 대담을 통해 우리에게 시네마테크는 어떤 의미인지 다시 생각해보고 시네마테크를 오래 지속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할 수 있는 작은 단초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김성욱 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래머를 만났다. 크게는 정부/서울시에 대한 지원 요구의 역사를 중심으로 인터뷰를 진행했지만 (기대했던 것처럼) 또 다른 이야기도 많이 들을 수 있었다. 차마 묻지는 못했지만 아주 커다란 질문들이 머릿속을 맴돌기도 했다. 예컨대 영화라는 것은 대체 무엇일까, 시네마테크란 과연 무엇일까, 같은 질문들 말이다. 인터뷰가 끝나고 보니, 우리의 안내자들은(김성욱 프로그래머의 표현을 빌려왔다) 저 질문에 대해 충분히 고민했고 나름의 답까지 만들어가고 계신 듯 했다. 그렇다면 우리의 고민은 이 자리에서 시작될 수 있을까?



김경민: 시네마테크 프로그래머신데, 이 일을 어떻게 시작하게 되셨는지 궁금하다.

김성욱: 1993년도에 문화학교 서울을 처음 갔던 것으로 기억한다. 영화를 보는 관객의 입장에서 갔었다. 그 때 마침 연구팀을 모집하고 있어서 조영각씨와 영화보고 세미나를 하는 연구팀 활동을 시작했다. 당시 문화학교서울은 국내에서 볼 수 없는 영화의 비디오에 자막을 넣어 상영하는 비디오테크였는데, 지금 미디액트를 하는 이주훈, 서독제의 조영각, 인디스토리의 대표 곽용수 씨, 그리고 지금 평론활동을 하는 김형석 씨 등이 운영위원을 하고 있었다. 당시 20대 중후반의 나이였을 때인데, 이들은 열정을 지닌 선구자들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들이 비디오테크를 했기에 나도 거기서 영화를 볼 수 있었으니 내게 그들은 안내자였던 것이다. 점차 이런 프로그램을 극장에서도 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있었다. 그런데 극장에서 필름으로 트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었다. 때마침 1995년이 지나가면서 국제영화제도 만들어지고 필름으로 부산, 전주 등에서 영화 상영을 하면서, 더불어 자막을 투사하는 방식도 가능해졌다. 필름으로 운영하는 시네마테크도 가능하겠다는 생각이 있었다. 문화학교 서울이라는 이름으로 필름 상영을 극장에서 시작한 것이 1999년의 일이다. 그 무렵 나는 문화학교 서울에서 연구 소장을 했다. 연구소 이름이 소니마쥬 Son-Image였다. 그때 고다르의 영화를 좋아했었으니. 1999년에는 영화신문 ‘Fantome’을 발행하기도 했다. 우리가 유령같다는 생각을 했었다. 2000년도 들어서는 필름으로 작가들의 회고전을 개최했다. 루이스 부뉴엘, 에릭 로메르, 스즈키 세이준, 파솔리니 회고전 등을 당시 아트선재 지하 극장을 빌려 상영했다. 2002년 즈음 서울에서 필름 영사를 제대로 할 수 있는 곳이 아트선재센터 정도였기에, 이 공간을 거점으로 해서 일 년에 몇 차례 영화제를 했던 것을 1년 내내 상설적으로 하게 된 것이 20025월에 정식으로 서울아트시네마가 개관했을 때부터이다. 시네마테크를 하게 된 계기는 특별하다기보다는 비디오테크에서 시작해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나의 영화일은 시간이 걸렸을 뿐이지 자연스러운 결과였다고 생각한다. 언제나 의아한 것은 이전 세대는 왜 시네마테크를 할 생각이 없었을까, 이다. 시네필에 대한 말들이 있는데, 영화보기를 좋아하고, 그리고 글을 쓰고, 영화를 만든다, 라는 생각들. 그런데 이걸 단계론적으로 말하곤 하는데, 나는 이 말이 잘못됐다고 생각한다. 트뤼포나 고다르의 말도 영화 보는 것과 만드는 것, 글을 쓰는 것이 사실 다 동일하다는 의미라 생각한다. 이걸 단계나, 수준의 문제로 말하는 이들을 나는 의심한다. 물론, 나는 영화 창작자, 예술가들을 어쩌면 관객보다 더 존중할 수도 있다. 하지만 존중을 위해서라도 영화를 보여주어야 한다. 이상한 일이지만 시네마테크에 대한 시도를 전 세대가 하지 않았던 것은 그것이 물리적으로 시작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이 아니라(우리도 하지 않았나?), 그걸 시도할 생각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전 세대에서 유일하게 그걸 하려했던 이는 예전 필름 포럼을 하던 임재철 씨이다. 그 외의 분들은 소망을 내비쳤던 이들은 있었지만 실행은 하지 않았다.

 

김경민: 관객으로 문화학교 서울을 다닐 때는 학생이었나?

김성욱: 대학원을 다니고 있었지만 경제학을 공부하고 있었다. 사회과학과 인문학에 대한 관심이 많았다. 영화는 공부이외에 어릴 때부터 좋아했던 취미생활이었다. 생각해보면 사회과학에서 인문학으로, 그리고 예술이나 영화로 이끌렸다고 생각한다. 문화학교 서울이 내가 살던 사당동에 있었던 것도 한 몫 했다. 지리적으로도 가까워서 영화보고 사람들이랑 술 마시고, 이야기하는 것이 자연스러웠다. 멀었다면 그렇지 못했을 것이다. 90년대 초에 영화에 전보다 더 빠져들었던 것은 그것이 순수하게 개인적인 것이었기 때문이다. 집단이니 조직이니 이런 곳에서 일탈하고 싶었다. 80년대를 거친 이들이 갖는 일반적인 생각이랄까. 그런데 도리어 문화학교서울에서 공동성의 경험을 했던 것 같다. 공동체를 원했던 것은 아니었지만, 그 시절에서는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그 곳에 모여들었던 것 같다. 새로운 방식의 관계성이 있었다. 집단적인 목표가 분명하지는 않았지만 영화로 같이 묶여있었다. 처음에는 찾아볼 수 있는 영화 자료들을 다 읽어보겠다는 생각이 있었다. 당시 국내에서 한국어로 볼 수 있는 영화 자료들, 책은 제한적이었다. 영화 책이나 자료를 보기 위해 남산에 있는 영진위 자료실, 국립중앙도서관에도 갔었고, 한양대 도서관이나 서강대 도서관도 돌아다녔다. 비디오는 몇 년 보다 보면 볼 수 있는 것이 별로 없었다. 외국 방송에서 보거나 위성방송, 특히 일본의 BS2가 그야말로 영화 천국이었다. 틀어주는 영화를 매일 녹화하고, 모든 가능한 방식을 다 동원해 영화를 봤던 거다. 영화를 학교에서 공부하게 된 것은 뒤의 일이다. 그것도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김경민: 2002년에 시네마테크 협의회가 나오고 같은 해에 소격동에서 서울아트시네마가 개관 했다. 당시의 영화계 분위기나 상황이 어땠는지 궁금하다.

김성욱: 그 당시에는 고전영화나 예술영화를 보는 것이 교양쯤으로 생각되었던 것 같다. 90년대부터 그런 기운이 있었는데, 사실 지금 생각해보면 그게 끝물이었다고 생각한다. 독립영화전용관에 대한 고민도 있었고, 같은 해에는 미디액트도 개관했다. 90년대 비디오테크 세대들이 꿈꿨던 것들이 대중적으로 구체화되는 시대였다. 물론, 전 세계적으로 보자면 이미 시네마테크는 변화를 겪고 있었다. 새로운 공간마련에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고, 필름의 점차적인 소멸화와 디지털과 뉴미디어의 도래에 따른 극장관람 환경, 시네필 문화의 변화들을 고민하고 있었다. 우리는 세기말에 시작해, 21세기에 들어서야 정식으로 시네마테크를 시작했다. 새로운 물결이었지만 뒤늦게 도착했기에 사실 처음부터 시대의 변화들과 마주해야만 했다고 생각한다.

 

김경민: 그러면 협의회가 출범하고 극장이 개관했을 때 정부의 지원은 없었나?

김성욱: 초기에 영화진흥위원회를 통해서 극장 임대료를 지원받았다. 영화를 상영하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비용이 발생하는데, 예컨대 상영료(저작권료), 자막비용 등이 들어간다. 상영료는 영화의 저작권과 관련되는데, 이것이 21세기에 시네마테크를 시작하면서 부딪힌 꽤 큰 문제이다. 말하자면, 디지털화의 진행에 따라 도리어 저작권 관리 강화에 의해 상영의 난점이 발생했다는 것이다. 시네마테크는 영화를 소유의 관념에서 해방하는 곳이다. 영화가 예술이라면 그것은 문학이나 미술과 마찬가지로 사람들에게 자유롭게 보여져야만 한다. 그렇기 위해서는 영화의 상영을 제한하는 저작권(소유권)의 문제를 해결해야만 한다. 영화의 상품적 가치를 부정하지는 않지만, 영화의 예술적, 문화적 가치를 보전하기 위해서는 엄격한 저작권의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우리는 CJ가 저작권을 갖는 한국영화들도 상영하곤 하는데, 이런 영화들에 대해서도 가격을 지불하고 있다. 한국으로 치자면 메이저 영화사들이나 과거의 영화사들은 자사 영화의 상품적 가치를 지키는 저작권을 강경하게 유지하는 반면 그것의 공유권에는 관심이 덜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쁜 결과들이 초래된다. 비싼 저작권 때문에 상영이 어렵다. 가령, 이만희 감독의 영화를 틀기가 어렵다. 영화의 공공권, 즉 관객들의 영화에의 자유로운 접근을 위해서는 지원이 불가피하다.

 

김경민: 소격동에서 현재의 낙원상가로 극장이 이전할 때 극장 재계약 문제 외에 다른 이유는 없었나?

김성욱: 지하극장의 보수를 위해서 2005년부터는 임대를 할 수 없다는 통보가 있었다. 계약을 할 수 없게 되니까 이전이 불가피해졌다. 그런데 내가 알기로는 지금까지 개보수를 안 한 것 같다.(웃음) 그 이후로 들어가 본 적은 없다. 시네마테크의 극장도 영화만큼이나 역사성을 갖는다고 생각한다. 스크린과 공간을 거쳐간 영화의 흔적이란 게 있다. 시네마테크가 오래된 극장인데, 여기서 하다가 다른 데서 몇 년하고 그런 식으로 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 이후로 그 극장에 가보지는 않았다. 여전히 계단이나 출입구 모양이 비슷한 걸 보면 다른 이유가 있었을 것 같지만 지금까지도 알 수 없는 일이다. 그 때의 상실감은 이루 말할 수 없다. 파스빈더의 회고전을 했었고, 차이 밍량의 <안녕, 용문객잔>을 소격동 시절의 마지막 상영으로 했었는데, 그 때문인지 <안녕, 용문객잔>은 내게 잊을 수 없는 영화로 남았다. 차이밍량은 영화관의 오래된 의자가 할머니와 자신의 정서적 유대의 끈이라 말했는데, 우리는 그런 유대의 끈을 당시에 잃어버렸다. 큰 손실이었다.


김경민: 재개관 후 2006년에 <친구들 영화제>가 시작됐는데, 당시 다양성 영화 복합 상영관이 추진되다가 무산이 되었다. 2006년의 시네마테크 이야기를 들려주시면 좋을 것 같다.

김성욱: 당시 재개약을 못하면서 옮길 상영관을 바로 찾지는 못했다. 그 때 한국 시네마테크협의회의 이름으로 처음 성명을 냈다. 지원이 필요하다는 내용이다. 당시 서울아트시네마가 개관하면서 극장을 자주 왔던 감독들이 있었다. 관객처럼 영화를 보러 왔던 사람들인데 이들이 사태에 관심을 보였고, 2005년 초에 현재 낙원상가로 공간을 옮기면서 이들과 몇 가지 고민들을 공유했다. 첫째, 시네마테크의 안정적인 공간을 마련하는 것이었다. 둘째가 지원에 대한 거다. 정상적으로 운영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래서 극장에 자주 오던 영화감독들과 시네마테크를 홍보도 하고 전용관 마련에 대한 요구를 하는 영화제를 하게 된 것이다. 그들이 시네마테크의 친구들이니 영화제 제목은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라고 명명했다. 20061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가 열렸다. 그 해에 시네바캉스라는 행사도 여름에 시작했다. 서울 시민들과 함께 다양한 고전영화를 보기 위해 시작했다. 2007년에 영화진흥위원회에서도 전용관 논의가 시작되고 복합관을 만들자는 논의가 진행됐다. 그런데 정권이 바뀌고, 영진위 위원장이 바뀌며 예산이 사라지게 되었다. 논의의 주체로 시네마테크가 있었다면 아마도 진행이 빨랐을 수도 있었을 거라 생각하는데, 그 때에 우리는 주체가 아니었다. 논의 테이블에 들어간 적도 없다. 그 이후에는 전용관에 대한 논의가 실종되었다. 당시 시가 시민들을 위한 영화공간으로서 시네마테크를 지원하고 안정적인 공간을 마련하는데 나설 수 있는지에 대해 요청이 있었는데, 공식적인 화답은 작년에야 있었다



▲ 서울아트시네마의 김성욱 프로그래머



김경민: 시네마테크라는 것이 어떤 이유에서 공공성을 가지는 것이고, 왜 정부의 지원을 필요로하는지의 근거를 만들어야할 것 같다. 그런 식으로 근거를 만들어가야 지속적인 지원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요즘 무비콜라주가 다양성영화지원을 받는다는 얘기도 들었는데 시네마테크가 다양성영화를 상영하는 곳이라고 하면, 그런 곳들과의 차별성이 사라질 것이고 한편으로 영상자료원과는 어떤 차별점이 있을지. 이 사이에서 시네마테크가 어떻게 정당화 될 수 있을까?

김성욱: 2012년의 개관의 시점에서 보자면 그 때 영상자료원은 시네마테크의 기능을 거의 하지 않고 있었고, 예술영화관이 몇 곳 있었지만 시네마테크와는 성격이 달랐다. 시네마테크에의 지원은 영화의 역사에서 이미 오래된 근거를 갖고 있다. 그건 미술관이나 박물관에 대한 지원만큼이나 근거가 분명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반대로 다양성영화관 지원이라는 명목의 지원근거가 더 불분명하다고 생각한다. (다양성이라는 표현이 불분명하다는 것이다) 백화점이 동네 슈퍼보다 사실 물건이 더 다양하지 않나? 예술영화관에 대한 지원, 그것도 대기업의 지배력 안에서 민간이 운영하는 극장에 대한 지원은 타당하다. 시네마테크는 말하자면 비영리 법인에 의한 공공상영관이다. 국가의 공적 공간과 시장의 개인이나 기업의 영화관들과는 다르다. 나는 현재의 시네마테크가 1970년대 독일 공공영화관의 성격과 비슷하다고 생각하는데, 당시 독일에서는 비영리적 성격의 공공영화관이 시장의 예술영화관과 달리 상영관의 추구목표, 운영방식, 상영작 선정과 상영 방식의 비상업적 성격에서 공익성을 지니고 있기에 공익에 이바지하는 문화예술단체로 국가나 지방자치단체의 지원의 대상이 된다고 결정했다. 시네마테크에 대한 지원의 근거는 역사 속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입증되었다고 생각한다.

  공적 지원의 근거로 말해지는 공공성과 관련해서는 알다시피 세 가지 다른 의미가 있다. 첫째, 국가와 관련되는 공적이라는 의미이다. 다른 하나는 특정의 누군가가 아닌 모든 이들에 관계되는 공통적이라는 의미이다. 마지막으로는 누구에게나 접근 가능하다는 의미의 공개적이라는 의미가 있다. 공공성은 국가가 관리 통제하는 것이 아니다. 시네마테크의 공공성이라는 것은 공통적이면서 공개성에 있는 대안적인 공공성이다. 요즘의 문제는 자칫 공공성을 국가의 문제로 돌리면서 동시에 신자유주의의 효율성을 강조하면서 공공기관에 수익성을 요구하는 것이다. 새로운 시네마테크 전용관의 마련도 국가나 지방자치단체의 관리를 요구하는 것이 아니며, 그렇게 되어서도 안 된다. 우리는 대안적인, 혹은 대항적인 공공권을 말한다.

  정책적 지원과 관련해서는 이중적인 생각은 있다. 정책적인 지원이라는 것이 정책지원자들의 합리적인 판단에서 나오는 것 아닌가. 기준점이 다를 수는 있다. 그렇다면 정책의 우선순위는 어떻게 결정되어야 하나? 판단은 아마도 국가나 정부가 하겠지만, 가령 지금까지 시는 시네마테크를 지원해오지 않았다. 그런데 이는 정당한가, 라고 의문을 제기할 수 있다. 운영이 어려워서 지원을 요청한다기 보다는, 이런 영역이 정부나 지자체의 지원의 대상이 될 만한지 판단의 요구를 계속 해왔던 것이다. 다른 곳에서도 말했지만, 서울의 스크린 수가 460여개가 있다. 그들 중 대부분은 대기업의 멀티플렉스들이다. 이중 예술영화관의 스크린은 손꼽을 정도이고, 공공상영관이라 말할 수 있는 극장은 서울아트시네마와 독립영화 전용관 인디스페이스 두 곳이다. 비교하자면, 파리는 서울보다 인구수는 네 배나 적고, 영화관객수도 절반 정도인데(서울은 56백만, 파리는 27백만), 민관 영화관이 150, 그중 예술영화관이 90여개이다. 이 차이는 심각하다.

 

김경민: 그렇다면 그 차이들은 어디서 나온다고 생각하는지?

김성욱: 역사적인 배경이 다르다고 생각한다. 해외에서 이런 영화관들은 이미 3-40년대에, 그리고 60, 70년대부터 등장했다. 한국에서 6,70년대는 불모지였다. 지금의 예술영화관들은 90년대에 들어서 시작되었다. 영화문화운동들도 그 시점에서 시작되었다. 역사성의 차이가 이런 환경적인 차이를 만든 것 같다. 90년대는 그런데 영화 소비의 가속화 현상들, 즉 멀티플렉스를 통한 가속화가 한국에서 빨리 진행됐던 시기다. 그러다보니 멀티플렉스를 통한 영화의 소비가 진행되고, 이 속에서 독립영화들이나 고전영화를 상영해가는 것이 쉽지는 않았다. 게다가 영화관을 영화문화의 중요한 장소로 여기는 인식이 없었던 탓도 있다. 이건 우리들의 문제다. 영화의 상업성에 관심을 보인 이들이나 영화관을 생각했지, 상대적으로 영화예술에 관심이 있었던 이들이 영화관을 문화공간으로 인식하는 게 드물었다고 생각한다.

 

김경민: 비교적 최근의 일에 대해 질문을 하고 싶다. 2013년 여름에 박원순 시장이 청책 토론회를 열었는데, 그때 선생님도 가신 것으로 안다. 거기서 어떤 말들이 나왔고 진행이 어떻게 됐는지?

김성욱: 발제가 있었고, 토론이라기보다는 자유발언 형식이었다.

김경민: 그때 서울시가 어떤 답변을 하기도 했는지.

김성욱: 그렇지는 않고 듣기만 했다.

김경민: 당시에 나왔던 요구사항은?

김성욱: 그때가 공식적으로 서울시와 이야기할 수 있는 첫 자리였다. 서울시의 영화 정책이 공공성의 지원에 있다는 것이었고, 시네마테크에 대한 안정적인 지원과 공간에 대한 지원의 이야기가 있었다. 변영주 감독, 정윤철 감독 등의 영화감독들의 제안 발언들도 있었다. 짧은 시간이었기 때문에 많은 이야기를 한 것은 아니다. 다른 사안들도 있었기 때문에. 시네마테크와 관련해서 시의 지원과 새로운 공간 마련에 대한 이야기들이 나왔다.

 

김경민: 전용관을 실제로 추진한다는 얘기도 있었다. 그래서 친구들과 같이 이상한 걸 해보자는 이야기도 나왔고.(웃음)

김성욱: 어떤 거 이상한 거?

김경민: 로슈포르 노래를 부르면서 코스튬도 맞추고 그래서 개관식에 5분만 달라고. (웃음) 그러다 최근에 예산이 부결이 됐다는 얘기가 들렸다. 그리고 14년도에는 시네마테크에 대한 계획 자체가 안 나와있다. 그 얘기를 들으시고 앞으로 어떻게 대응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있으신지?

김성욱: 전용관은 시네마테크를 위한 안정적이고 지속가능한 공간의 의미이자, 새로운 공간을 말한다. 2002년도에 서울에서 시네마테크가 시작했다는 것은 상당히 뒤늦은 거다. 21세기의 상황이라는 것이 멀티플렉스 환경, 새로운 미디어의 등장 등의 변화가 있었기에 해외에서는 이미 새로운 관객층을 흡수하고, 교육과 전시 등을 위한 새로운 공간에 대한 요구들이 있었다. 파리, 뉴욕, 온타리오, 등등 여러 도시에서 시네마테크를 위한 신축 건물의 요구가 있었고, 또 새롭게 마련됐다. 우리의 경우는 현재의 조건이 시설도 낙후되어있고 영사장비도 부실하고, 매년 임대를 하는 불안정성의 문제가 있기에 제대로 된 상영설비를 갖춘 공간을 요구하는 것이고, 또한 십여년 동안의 활동에서 새롭게 필요한(사실은 설립 당시부터 있어야만 했던 것이기는 하지만) 공간들, 이를테면 자료실이라던가, 교육을 할 수 있는 공간들의 수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최근에는 영화진흥위원회가 부산으로 이전하면서 시네마테크의 공간 마련에 소극적이고, 그렇기 때문에 본격적으로는 2010년부터 서울시의 지원과 함께 공간 마련에 대해 요청을 했었다. 2011년도에 조례제정을 했었고, 시의 지원을 촉구했는데, 최근에야 대답이 돌아온 것이다. 하지만 지금도 시네마테크에 대한 지원여부는 결정되지 않았다. 전용관을 마련하겠다는 시의 대답과 의지 표명은 있었지만 아직 예산 반영이 되지는 않았기에 낙관할 수는 없다. 동시에 새로운 공간을 마련하는 문제를 시가 어떻게 해해나갈 것인지도 불투명하다. 가령, 아직까지도 시와 시네마테크간에 어떤 합의나 논의를 이뤄낸 것은 아니다. 가령, 시의 정책결정자들이 공식적으로 서울아트시네마를 방문한 적이 없다. 꼭 이 곳에 와야만 하는 것은 아니지만. 논의가 되려면 기존의 장소를 방문하는 것이 순서가 아닐까 싶다. 다만, 시가 전향적인 자세를 보이고 적극적인 관심을 보이는 것은 환영할 만한 일이다. 시네마테크를 건립할 것임을 몇 차례 공표했고, 지난 해에는 이와 관련한 용역조사가 있었다. 최근에는 서울영상위에서 여러 영화 단체들의 대표자들이 모여 복합상영관의 부지와 운영에 관한 논의를 하고 있다. 우리는 시네마테크의 이전이라 생각하지만, 시는 이와 관련해서 모호한 입장이며 전체적인 논의가 시네마테크가 아니라 복합관으로 진행되고 있기에, 여러 영화단체들이나 기관들이 들어가게 될 것 같다. 생각보다 공간의 규모가 커졌고, 그 만큼 건립의 진행, 운영과 관련한 논의, 공간에의 참여방식, 지원의 방식 등에 대해 최종적인 결정을 하는 데에는 시간이 오래 걸릴 것 같다. 이 유사한 복합관의 논의가 2007년에도 있었는데, 여러 이유로 결국 무산되었다. 배가 바다로 가야지 산으로 가지 않기를 바라고 있다.


김경민: 아트시네마 직원들의 근무 햇수가 길지는 않은 것 같은데, 그것도 앞선 문제들과 상관 관계가 있을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김성욱: 업무적인 불안정성의 영역이 있다고 생각한다. 여러 가지 요소들이 있지만, 그 부분들을 객관적으로 얘기할 수 있는 것은 아니고. 2010년도 이전까지는 그래도 조금 더 지속성이 있었다. 그런데 2010년도를 넘어가면서 많이 바뀌었다. 작년부터는 또 어느 정도의 지속성이 유지된다고 생각한다. 2009년을 넘어가면서는 상당히 많은 외부적인 요인이 있었다. 예산 지원의 중단이나 공모제나 이런 문제들은 일을 해왔던 이들에게 근본적인 회의감을 느끼게 한다. 시네마테크라는 것이 사회적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부분도 있다. 외국에서도 시네마테크 실무자들의 기본 덕목을 열정이라 말한다. 하지만 모든 일이 열정만으로 할 수 없는 것이다. 안정성이라는 것은 아무래도 일을 계속 지속해나갈 수 있는 임금 같은 경제적인 조건이 큰 부분으로 작용하는 것인 사실이다. 고용의 안정성을 어떻게 지켜나갈지는 큰 문제다. 극장을 찾는 사람들도 지속적으로 나이를 먹어가면서도 극장을 찾으면 좋겠다, 동시에 근무하는 사람들도 지속적으로 일을 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이 분야에서도 전문성의 영역이 큰데 불안정성이 생기면서 사람이 바뀌는 건 문제다. 예를 들어 영사기사, 매표, 수표라는 것도 실제로는 외국의 영화관에 가도 몇 년 만에 가도 똑같은 사람이다. 영화를 보는 입장에서 변함없음이 주는 심리적인 안정성이 있다. 여전히 그것이 존속한다는 것, 존재한다는 것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세상에는 내 발길이 머물지 않아도 무언가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있어야만 하는 곳이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설사 그곳에 가지 않더라도, 그것이 존재 해야만 하는 필요성. 그것은 사회적인 필요성이지, 시장의 관점에서는 아니다. 세상이 너무 빨리 폐기처분되어 버리는데, 시네마테크가 빨리 폐기처분 되어져버렸던 영화들을 보존하고 상영하는 곳이라면, 이곳은 영화가 최종적으로 사라지지 않는 한 지속되어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시장경쟁과 시장 가치 안에서 사라져야만 한다면 정상적이라고 볼 수 없다. 똑같이 일을 하는 사람들의 지속성 여부도 포함되어야 한다

 


▲ 질문 중인 서울아트시네마 관객 김경민



김경민: 몇 년 전에 인터뷰 하신 것을 찾아봤다. 당시에 여러 예를 들어주셨다. 아트시네마는 시네마테크 프랑세즈와도 (정부, 프랑스 영진위 지원 80%, 관객수입 20%), 뉴욕의 필름포럼과도 (기부금 50%, 포드재단 융자와 티켓 수입 50%) 다른 방식의 한국적 상황을 고려한 모델을 만들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말씀하신 적이 있다. 선생님이 생각하시기에 그런 모델이란 어떤 것인가?

김성욱: 한국의 상황에서는 정부나, 지자체의 지원이 필수적이다. 정부나 시의 지원이 최소한 50%는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유럽은 국가의 지원이 큰 부분을 차지하지만 미국은 시장주의가 있는데, 시장주의라 하더라도 펀드라던가 민간기업, 재단의 지원이 구조에 있어서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한국은 기업이 그런 지원을 하지 않고, 한다 해도 직접 운영을 하려 한다는게 문제다. 따라서 미국처럼 민간의 지원이나 후원의 퍼센트가 높을 수는 없다. 현재 서울아트시네마의 구조로 보면 정부 지원이 30%. 민간 영역이 70% 이상인데, 이 구조가 바뀌어야 한다. 그래야 현실적으로 이 공간의 공적 역할이 지속적으로 가능하다. 시네마테크는 관객 수입으로 재정을 충당할 수 없는 구조다. 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이다. 영화제도 관객 수로 충당하지는 않지 않는가? 공적지원의 방향은 유럽과 미국의 중간정도는 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현재, 서울아트시네마 2002년부터 개관했지만, 시는 한 번도 지원을 한 적이 없다. 서울아트시네마가 서울의 시민을 대상으로 영화를 상영을 해왔던 건데, 시의 공적 지원이 없었다는 것은 지원을 받을 만한 활동을 하지 않았는지를 생각하게 한다. 시가 충분히 정상적인 판단을 해야할 문제라고 생각한다.

 

김경민: 지금 시점에서 영화나 문화 안에서 영화의 공공성이라는 것을 두고 봤을 때 지금 현재 시네마테크는 어떤 위치에 있고, 앞으로는 어떤 자리를 지켜야할까?

김성욱: 예전에도 말했던 적이 있는데, 어떤 이들은 시네마테크를 전위라 생각하는데, 틀린 말은 아닐테지만 사실 후위에 더 가깝다고 생각한다. 모든 상업적 가치를 소진한 영화들을 상영하고 있으니, 영화가 실효성을 다 소진한 뒤에도 영화가 남을 장소이다. 우리는 뒤 쪽에 있다. 영화의 뒤를 지켜두어야 한다. 그래야 앞으로 나갈 수 있다. 뒤의 세대들을 위한 장소로서도 더 적극적인 기능을 했으면 한다.

 

김경민: 작년부터 서울 아트시네마 내의 에디터 모임이 사라진 것으로 안다. 녹취 자활이 따로 뽑히고 있어서 내심 놀랐다. 아까도 새로운 세대의 교육에 대해 말씀하시기도 했는데, 제 생각에 에디터 모임은 (잘 진행됐을 경우에) 다음의 시네마테크 세대를 배출할 수도 있을테고, 지금과 같은 시네마테크 문제에 유기적으로 결합할 수 있는 모임일 것 같은데 어떤 속사정이 있었는지 궁금하다.

김성욱: 양면적인 게 있는 것 같다. 참여하는 사람도 적극적이어야 하고, 극장에서도 어느 정도 지원이 있어야 한다. 생각들은 갖고 있지만 현실적으로 진행하기가 힘든 것 같다. 생각보다 젊은 친구들이 많이 바쁜 것 같다. (웃음) 전념할 수 있는 조건들이 마련되어야 전념을 할 텐데, 그 조건을 우리가 만들어내는 것이 어려우니, 악순환이 있다. 나는 반응의 연쇄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A에서 무언가가 이루어지면 B에서는 A로 오는 것만은 아니고 B 안에서 A라는 것을 어떻게 이루어갈지를 생각하는 것. 나는 극장에 모든 사람들이 올 수 없다고 생각하고, 그럴 만큼 영화관도 크지 않다. 사람들이 다 와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내가 꼭 가지 않더라도 극장이 여전히 있고, 각자의 자리에서 영화들에 어떻게 반응해갈 것인가를 고민할 수 있다. 글을 쓰는 것도 그런 일이라고 생각한다. 영화를 보고 영화에 대해 글을 쓰는 사람들이 많아졌으면 하는 생각은 언제나 한다. 그렇게 자발적인 참여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과 함께 그런 참여를 어떻게 지원할지는 고민이다.

  요즈음에는 작은 영화공동체들 이런 부분과 같이 어떻게 연계를 해서 서포팅을 할 수 있는지 생각한다. 영화공동체 끼리의 네트워크를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작은 공동체의 네트워크들 말이다. 자발적으로 진행되는 집단들을 눈여겨보고 있다. 그런 소규모 집단과 시네마테크는 어떻게 같이 할 수 있을지. 소규모 공동체를 하는 이들을 만나보려 한다. 개인적으로 궁금하다. 여전히 작은 규모의 모임에서 어떤 식으로 영화를 생각하고 있는지.

 

김주현: 최근에 다른 관심?

김성욱: 시네마테크 아카데미는 계속 생각하고 있다. 거창해 보이는데 (웃음) 일종의 대안영화학교이다. 영화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데 대학을 거치지 않아도 영화를 접할 수 있도록 해주는 학교. 등록금도 비싸니 모두 대학에 갈 수는 없다. 비평스쿨도 있을 수 있고. 영화를 만들고 싶어 하는 사람들과 같이 영화제작을 해보는 일종의 시민학교이다. 아이들을 위한 시네마테크도 생각한다. 몇 번 시도를 했는데, 현재 공간에서는 힘들다. 나는 영화를 둘러싼 세상이 너무 제도화되는 것이 문제라 생각한다. 그런 제도적 절차를 거치지 않더라도 영화를 만나고, 보고, 만들 수 있는 그런 환경이 마련되어야 한다. 시네마테크가 그런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김주현: 시네마테크를 운영하면서 기억에 남은 한 장면을 꼽자면?  

김성욱: 가장 기억이 남는 것은 아무래도 2010년도, 영진위의 공모제와 지원 중단에 따라 영화인들과 관객들이 후원에 나섰던 일이다. 그때의 판단은 우리는 공모제를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현실적 판단은 아니었다. 주변의 사람들도 공모제에 참여하라고 말했었다. 하지만 우리는 그들이 공모를 할 권리가 있는지에 의문을 갖고 있었다. 그들은 이 질문에 제대로 답하지 못했다. 그리고 나서 시네마테크가 지속되는 것은 사회적인 영역으로 던져진 것이었다. 우리는 극장을 계속 할 것이다. 하지만, 이곳이 지속되려면 이제 지원이 필요했다. 만약 당시에 관객들의 지원이 없어 이 공간이 사라진다면 그것에 대해 서글퍼할 이유는 없다고 생각했다. 시민적 영역에서 충분히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니 누구를 탓할 것이 아니다. 하지만 시네마테크는 중단되지 않았고 남았다. 당시에 영화인들이 후원을 했던 것이 결정적으로 작용을 했다. 동시에 관객들의 지지가 있었기 때문에 지금까지 오게 된 것이다. 나는 그 때의 일이 시네마테크에 대한 이 사회에서의 시민권 획득의 과정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이제 공적 영역에서 화답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언제까지 개인의 후원으로 이곳이 남아야만 할 것인가. 서울의 관객들은 지난 12년 동안 충분히 해왔다고 생각한다. 이제는 시가 시민들의 노력에, 그들의 요구에 화답을 보일 때이다.

 

[ACT! 88호 기획대담 2014.03.31]

 

진행 및 정리: 김경민(서울아트시네마 관객), 

김주현(ACT! 편집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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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2013년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가 열릴때 문화연대의 정책 활동가로 일하는 최혁규씨와 짧은 인터뷰를 했다. 당시 인터뷰에서도 서울시의 시네마테크 지원에 대한 이야기가 오갔다. 얼마전 인터뷰를 하다가 문득 예전의 글이 생각났다


 


서울아트시네마김성욱 프로그램 디렉터 인터뷰


최혁규

 


기존의 멀티플렉스 영화관에 익숙했던 사람들에겐 조금은 낯설 수 있는 영화관이 있다. 물론 서울 도심부에 예술영화 전용극장도 꽤 있고, 멀티플렉스 극장 안에 예술영화 전용관이 있긴 하지만 이곳은 그런 곳과 또 다른 성격의 영화관이다. 바로 서울아트시네마다. 서울아트시네마는 종로 낙원상가 4층에 위치한 시네마테크 전용관으로서 2002년부터 현대영화, 고전영화 할 것 없이 세계 각국의 영화들을 다양하게 소개해왔던 곳이다. 서울아트시네마는 영화의 집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 공간을 통해 많고 다양한 영화들을 어떻게 하면 더 많은 시민들과 만나고 교감할 수 있는지 고민하고 있는 김성욱 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램 디렉터를 만나봤다.

 


최혁규 : 서울아트시네마에서 프로그램 디렉터로 일하고 있는데 간략한 소개를 부탁한다.

 

김성욱 : 서울아트시네마에서 프로그램 디렉터로 일하면서 매년 10-15회 정도의 작가전이나 특별전 등을 기획하고 있다. 그 외에는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을 하고 있다. 원래 시네클럽의 회원에서 시작해 영화 프로그램의 기획을 하게 되었는데, 영화비평 활동도 함께 했었다.

 

최혁규 : 서울아트시네마는 시네마테크 전용관이다. 시네마테크(cinematheque)는 영화(cinema)와 도서관(bibliotheque)의 합성어인데, 시네마테크로서 서울아트시네마란 곳이 어떤 곳인지 궁금하다.

 

김성욱 : 서울아트시네마는 고전/예술 영화를 전문적으로 상영하는 시네마테크(cinematheque) 전용관이다. 서울에서는 유일하게 민간 비영리로 운영되는 전문적인 영화관이다. 2002년에 처음 개관해 지난해 10년을 넘겼다. 영화관 하면 개봉하는 영화들을 만나는 장소쯤으로 생각하는데, 실제로는 다양한 영화관들이 있다. 음악관이나 미술관, 혹은 도서관이 다양하게 존재하듯 말이다. 가령, 책만 하더라도 신간을 갖춘 대형 서점들이 있는가 하면 이미 절판되거나 과거 작가들의 전집을 읽으려면 아무래도 도서관을 찾을 수 밖에 없다. 그림도 마찬가지다. 작은 갤러리가 있고 시립, 국립 미술관들이 있다. 그런 식으로 서울아트시네마는 과거의 영화들과 만날 수 있는 일종의 영화도서관이자, 지난 해 프랑스의 영화감독 프랑수아 트뤼포의 전작 20여편을 회고전에서 상영했던 것처럼 미술관이나 박물관과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고 우리들이 과거의 작품만 트는 것은 아니고 서울에 개봉하지 못하는, 수입되지 못한 해외 걸작들을 상영하는 특별전도 개최하고 있다. 지금 진행하고 있는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처럼 영화를 만드는 사람과 영화를 좋아하는 관객들이 함께 만날 수 있는 특별한 장소이기도 하다. 영화가 숨쉬고 움직이고 쉬는 집이라고 할 수 있겠다. 



 

꾸미기_서울아트시네마.jpg


최혁규 : 시네마테크의 유래는 어떻게 되는가? 그리고 시네마테크의 해외 사례는 어떤가?

 

김성욱 : 해외에서는 주로 시네마테크, 혹은 필름아카이브(film archive) 등의 명칭으로 이미 1930년대부터 시네마테크가 만들어졌다. 영화란 그림이나 미술처럼 동질적이지 않은 대상이다. 영화라는 대상이 보는 관점에 따라 다양하게 존재한다. 1930년대 시네마테크가 서구에서 처음 만들어진 것은 영화를 문화적 유산, 특히나 20세기의 문화적 유산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문화적 유산이란 시장의 상품이나 혹은 좋은 의미에서의 예술품과 동일한 것은 아니다. 70년대 아날학파 역사가들이 뒤늦게 깨달았듯이 영화는 20세기의 역사와 사회, 인간의 삶이 담긴 중요한 기록물이기도 하니까. 물론 우리 같은 시네마테크는 전후, 특히 60년대 새로운 영화들의 등장과 함께 시작된 새로운 시네필 문화와 맥을 같이한다 생각한다. 비록 서울은 40년정도 늦긴 했지만.

 

최혁규 : 전부가 그런 건 아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영화를 미술이나 문학 같은 다른 예술들과는 다른 일회용적인 유흥거리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영화의 엔터테인먼트적인 요소만 생각하고 있다고 해야 할까? 이유야 다양하겠지만 문화적 사회적인 구조가 바뀌지 않는 한 이런 인식이 크게 바뀌지 않을 것 같다. 시네마테크가 영화를 시장의 상품이나 예술품이 아닌 문화적 유산으로 생각하고 접근하는 곳이라고 했는데, 그러면 시네마테크가 문화적 사회적으로 어떤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가?

 

김성욱 : 글쎄... 고다르 식으로 말해서 예술이 예외적인 것이고 문화가 규칙의 문제라면, 우리는 영화의 규칙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1947년에 이미 뉴욕의 에미모스 보겔은 그들이 보고 싶어 하는 영화들을 마음대로 보기가 어려웠던 상황에서 상영될 기회가 없었던 ‘전복적인 영화들’을 관객에게 보여줄 결심을 했다. 그들은 ‘성숙한’ 관객들을 대상으로 극장에 걸린 상업영화들만이 전부라 생각한 관객들에게 그런 영화만큼이나 흥미롭고 재미있는 다른 영화들의 세계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 했다. 다른 영화들을 볼 수 있다면 다른 세상도 꿈꿀 수 있을 것이다. 자본과 힘에의 종속은 피하기가 쉽지 않지만 문화의 영역은 그나마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60년대에 기 드보르가 이미 세상이 영화같은 스펙터클이 되었다고 말했듯이 새로운 영화들 혹은 아직 도착하지 못한 과거의 영화들과 만나는 것은 이미 사회적인 행위다.

 

최혁규 : 가만 살펴보면 정부 차원에서 과거의 영화들, 현재의 영화들, 그리고 새로운 영화들을 만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주는 정책을 제시한 적은 없는 것 같다. 아마도 문화 정책의 큰 틀 안에서 세부적으로 미약하게 제시될 것이다. 박근혜 정부가 문화정책으로 문화기본법과 문화예술후원활성화법의 제정, 예술인복지법 수정, 문화예술도시 개발 등을 제시했는데, 이 정책들이 서울아트시네마에 어떤 영향을 끼칠 거라 생각하는가? 또는 차기 정부가 영화 부문에 대한 어떤 정책을 제시했으면 하는가?

 

김성욱 : 글쎄... 구체적인 계획이 아직 나온것이 없어 아직은 알 수 없는 일이다. 우리는 그보다 부산처럼 서울시가 시네마테크에 관심을 보이기를 기대했는데 아직까지 뚜렷한 반응이 없다. 서울아트시네마는 서울시민들의 영화복지를 위한 공간이기도 하다. 이미 몇년전부터 서울시가 나서서 부산처럼 낙후된 영화공간을 개선해 새로운 전용관을 마련하기를 요구했지만 반응이 없다. 중요한 것은 문화가 규칙의 문제라 이야기했듯이 제대로 규칙이 마련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영화의 공공성의 위기가 있다.


꾸미기_김성욱.jpg 

 

 

[문화연대 인터뷰]11호 (2013년 2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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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는 시네마테크를 지원할 수 없는가?

 

서울시의 시네마테크 지원을 촉구하는 ‘시민청원’이 지난 3월 13일에 시작됐다. 불과 몇일만에 지지자 천명을 넘겨 청원이 정식으로 성립되었다. 단기간에 관객들, 시민들이 참여해 지지서명을 한 것은 사실 놀라운 일로, 그 만큼 이 문제에 관심들이 많았다는 것을 입증한다.

 

시민청원 이전에, 이미 서울아트시네마는 서울시에 시네마테크의 지원과 관련해 몇 차례 제안을 했었고 최근에는 공식적인 질의서를 보내기도 했다. 이미 2006년부터, 그리고 2010년 1월에 ‘시네마테크 전용관 건립을 위한 추진위원회’(위원장 이명세 감독)를 발족하면서 시의 지원과 시네마테크를 위한 새로운 공간을 마련해줄 것을 촉구했다. 당시 서울시는 충무로국제영화제에 매년 30억을 지원하고 있었다. 그런 서울시가 시네마테크에 지원을 못할 이유는 없었다. 물론, 서울시는 시네마테크의 지원에 관심이 없었다. 지원의 근거가 미약했던 탓일까? 근거를 더 마련하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들이 있었다. 그리하여, 2011년 5월에 시네마테크 지원 정책 포럼을 거쳐 그해 12월, 김미경 서울시의원의 발의로 ‘전용과 지원 조례개정’을 이뤄내기도 했다. 사실 포럼에서 나왔던 의견이지만 조례까지 만들어질 필요는 없었다. 중요한 것은 서울시의 의지였다. ‘서울시 문화도시 기본조례’에는 ‘시장은 문화예술인들의 문화예술활동을 육성하고 이를 지원하기 위한 문화시설 및 제반여건을 조성하는데 노력한다’고 되어 있다. ‘서울시 영상진흥조례’에도 ‘시민의 문화생활을 향상시키기 위해 영상문화의 다양성, 공공성 증진과 관련한 사업을 지원한다’고 되어 있다. 시민의 문화향유권을 존중했다면 그리고 의지가 있었다면 시네마테크에 대한 즉각적인 지원이 가능했을 것이다. 물론 당시 서울시는 관심이 없었기에 이런 조례가 이미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지원의 근거를 마련하는 조례 개정이 필요했던 것이다. 당시 서울시는 충무로국제영화제에 매년 30억을 지원하고 있었다. 서욱국제가족영상축제에도 매년 3억원의 예산을 지원했다. 당시 오세훈 전 시장이 서울시장으로 취임하면서 이 두 영화제가 서울시의 전폭적인 지원에 힘입어 개최됐고, 결국 지원이 중단되면서 영화제도 사라졌다.

 

2011년 10월, 현 시장이 당선되면서 상황은 바뀌는 듯 했다. 근 십여년 만에 서울시의 시네마테크의 지원과 관련한 기대감이 커 갔다. 결과적으로 그 만큼 아쉬움도 남았다. 2013년, 드디어 서울시는 전용관을 지원하기로 결정했고, 서울의 한 개관을 지원했는데, 정작 시네마테크는 지원의 대상이 될 수 없다고 했다. 이와 관련해서는 서울시가 2014년에는 지원의 폭을 넓히겠다는 말이 있었기에 당시 다툴 만한 문제는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그 와중에 서울시는 시네마테크 전용관을 건립하겠다고 했고, 이는 현재 진행 중에 있다. 하지만, 문제는 올해 예산에서도 시네마테크에 대한 지원이 배정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시민 청원은 그런 상황에서 진행된 정당한 요구였다. 이런 청원이 진행되지 않더라도 지난 과정들을 돌이켜봤을 때, 시네마테크에 대한 지원은 이미 고려될 수 있고, 또한 고려되어야만 했다.

 

시네마테크 지원을 요구하는 시민청원에 따라 얼마 후, 서울시가 서울아트시네마 지원을 검토한다는 내용의 기사가 나왔다. 3월 19일자 기사에 따르면 “시 문화산업과 관계자는 독립예술영화 전용관을 지원할 근거 조항은 있지만 예산이 한정된 만큰 정책의 우선순위를 살펴 결정하게 될 것”이라 한다. 예전 서울시장들이나 시의 무관심과 비교해보면 지금의 서울시는 영화문화와 관련해 진일보한 입장을 갖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환영할 만한 일이지만, 아쉬운 것은 조례개정이 있었던 것을 감안할 때 이미 3년째 동일한 답변이 되돌아오고 있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예산 배정이 되지 않았다와 정책 우선순위를 고려해야 한다는 말이다.

 

질문이 남았다. 그렇다면, 시네마테크의 지원은 언제까지 서울시의 정책우선순위가 될 없는 것인가? 반대로, 서울시는 지금까지 영화문화와 관련해 어떤 지원을 해왔던 것인가? 이러한 질문은 서울시의 문화정책의 목표와 과제, 정책의 방향이 무엇인가, 혹은 무엇이 되어야 하는가, 라는 질문과 무관하지 않다. 가령, 지난해 3월 서울시의 영상문화청책 토론회에서도 이와 관련한 제안이 있었다. ‘서울시 영상문화 정책 제안’이라는 제목으로 발표된 내용에서 가장 중요하게 언급된 것은 국내 타 지역 및 해외 주요도시와 비교해 서울의 영상정책 전반이 미흡하며, 인구대비 지원예산 규모도 부족하고, 시민들의 문화의식에 비해 다양한 문화향유권 지원이 부족해, 전반적으로 서울시의 공공영상문화 정책이 부족하다는 것이었다. 언제나 되돌아오는 예산부족과 정책의 우선순위와 관련한 문제는 지금의 현실에서 정책의 주된 방향을 어떻게 설정할 것인가의 문제로 접근해야만 한다. 이는 영화적 쟁점이기도 하다. 한 편의 영화에 대한 논의만큼, 우리는 영화가 어떤 상황에 있고 동시에 어떻게 영화를 지원할 것인지를 쟁점화해야만 한다.

 

쟁점의 현실을 이해할 만한 몇 가지 사례들을 들고 싶다. 가령, 서울의 극장환경을 살펴보자. 현재 서울의 스크린 수는 460여개, 이 중 대부분은 대기업의 멀티플렉스 극장들이며, 이 중 예술영화관들은 손꼽을 정도이다. 공공상영관이라 할 만한(공공상영관이라 말한 것은 일반 영화관에서는 상영될 기회가 없는 영화들을 비상업적 방식으로 상영하는 영화관을 의미한다) 극장은 비영리 시네마테크 전용관 서울아트시네마와 독립영화전용관인 인디스페이스 두 곳이다. 하지만, 지난 해 서울의 관객 수는 그 어느 해보다 많아져 5천 6백만명에 달했다. 좋은 비교는 아닐테지만(좋은 문화적 환경을 갖춘 외국의 도시들과 비교하는 것은 언제나 우리를 의기소침하게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상적인 모습이 어떻게 구현될 수 있는지를, 우리의 상상력이 단지 허구가 아니라는 것을 이해하는 데에는 도움이 된다), 서울시의 상황을 파리와 비교해보고 싶다. 종종, 서울시가 문화도시로서의 도시경쟁력을 말하면서 런던, 파리, 로마 등의 예를 들고 있으니 이 비교가 이상한 일은 아닐 것이다.

 

2013년 파리의 경우, 인구수는 대략 250만으로, 영화 관객 수는 2천7백만에 달한다고 한다. 서울의 관객 수의 대략 절반의 수치이다. 스크린 수 또한 374개로 서울보다 적은 편이다. 하지만, 그 중에서 민간영화관이 150개이며 예술영화관이 89개였다. 예술 영화관의 수는 대략 서울의 9배에 달한다. 파리는 영화의 역사가 오래된 곳으로 우리의 문화수준보다 높다고(관객수준을 말하는게 아니다) 가정하더라도, 이 차이는 심각한 것이다. 결과적으로 서울 시민들은 대기업 멀티플렉스의 시장지배와 획일적인 영화상영에 고스란히 방치되어 있다. 심각한 상황이지만 이는 아직까지 주요한 쟁점이 아니다. 지난해, 서울시장은 대형마트 규제의 필요성을 언급하며 외국에서는 입주나 매장 규모의 제한을 두고 있다며 “중소 상공인들, 재래시장 종사자들이 몰락해버리면 계층간 갈등이나 사회의 어떤 불안요인, 등 사회적 문제가 생긴다”고 말했었다. “이런 것들을 방지하는 것은 우리 시대의 큰 화두”라고도 덧붙였다. 이 동일한 논리가 서울이 처한 영화문화의 상황에도 적용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같은 논리로 서울시는 멀티플렉스를 규제할 수도 있다. 민간 예술영화관들의 몰락이나 독립영화관, 시네마테크가 처한 상황 또한 사회적 불안요인이 될 수 있다. 영화관의 대기업 지배는 대형 마트의 폐해만큼 심각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아니, 시민의 정신과 감정, 의식, 공동체성의 감각 등에 심각한 불안 요인을 만들기 때문에 더 큰 문제이다. 베르나르 스티글러의 표현을 빌자면 대기업 멀티플렉스의 마케팅 지배는 영화 관객의 곤충적 군생조직화를 양산한다.

 

서울시가 시네마테크를 지원하는 것에 더한 근거를 마련해야만 할까? 조례가 있으니 근거는 마련됐다고 생각하는데, 이미 서울시가 지난해부터 민간 독립영화관을 지원하고 있으니 더한 근거를 더 마련해야만 할 이유는 없을 것 같다. 서울에서 열리는 영화제들 또한 서울시의 지원을 받고 있다. 이제는 시네마테크가 지원을 받지 못하는 합당한 근거를 찾는 것이 더 어려운 일이 됐다. 그럼에도 다른 사례를 들고 싶다. 1970년대부터 독일의 지방자치단체는 서울아트시네마와 같은 비영리적 성격의 영화관(독일의 경우 이를 공공상영관Kommunale Kino)을 지원했는데, 그 근거는 정신적, 예술적 삶을 표현하는 고전예술 영화를 상영하는 영화관을 공익에 이바지하는 문화예술단체로 간주해야 한다는 이유였다. 지원의 또 다른 근거는 이들 영화관의 활동이 사업성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고 공공상영관의 추구목표와 운영방식, 상영작 선정과 상영방식의 비상업적 성격의 공익성이 있기에 정부나 지방자치 단체들이 재정을 지원해 주는 것이 타당하다는 것이었다. 독일식의 공공영화관은 다른 영화들을 다른 방식으로 보여주는 곳으로, 다른 영화들이란 일반 극장에서 상영될 기회가 거의 전무한 영화들이다. 이곳에서는 최신영화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다시 보고, 새로이 보고, 새삼 발견하는 것이 더 큰 의미를 갖는다. 서울의 경우 이러한 공공상영관이란 서울아트시네마와 같은 비영리 시네마테크나, 인디스페이스 같은 독립영화전용관이다.

 

서울시의 시네마테크 지원을 둘러싼 논의는 그러므로 영화문화의 정책과 관련한 영화적 쟁점이자 직업적 관심사 이상의 중요한 쟁점이다. 말하자면 영화를, 공공적 성격의 영화관을 어떻게 볼 것인가라는 문제다. 가령, 새로운 독일영화가 나오던 1970년대에 독일의 지방자치단체들이 공공영화관을 지원했던 것은 전통적으로 공익성을 가진 문화예술공간으로 간주했던 연극의 공연장, 음악의 연주장, 문화유산의 박물관, 문학의 도서관 외에 영화의 상영관 역시 사회의 문화적 자산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뒤늦긴 했지만, 그러므로 더 좋은 기회가 여전히 남아 있다. 2002년 파리 시장에 선출된 베르트랑 들라노에는 파리시의 문화관련 정책 가운데 영화문화의 다양성 보존과 지원정책의 일관성을 목표로 '미션 시네마Mission Cinema'라는 정책을 시작해, 파리의 영화문화를 혁신했다. 이 정책은 영화와 관련해 파리의 문화적 예외를 보존하려는 것이었다. 다섯 가지의 주요한 정책이 있는데, 파리의 독립적인 영화관들에 대한 지원, 영화 교육, 영화제 및 상영회 개최(파리시가 주최하는 '파리 시네마 영화제', 야외 상영회 등), 이미지 포럼 지원(파리시가 운영하는 영화관으로 프로그래밍, 운영지원), 파리에서의 촬영지원 등이다. 서울시 또한 이들 정책들의 일부를 이미 실행하고 있다. 하지만 실행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 공공적인 영화관에 대한 지원이다.

 

이제 5월이 오면 서울아트시네마는 개관 12주년을 맞이한다. 횟수로는 13년째이다. 그동안 많은 영화인들의 후원이 있었고, 관객들의 참여가 있었다. 그러나 시네마테크에의 지원과 관련해 정책결정자들로부터 우리가 되돌려 받은 것은 언제나 지불이 불가능한 부도수표였다. 단순한 사실은 지난 12년간 서울시가 시네마테크에 대한 지원을 결코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관심도 생각도 없었다. 하지만, 상황은 변화하고 있다. 최근 서울시는 그리고 현 시장은 전 시장들의 재임시절과는 비교가 안될 만큼 답변과 관심을 보이고 있다. 이제는 정책결정자들이 애매한 내일을 기약하지 않았으면 한다. 그들이 반대로 과거를 되돌아보고 지금, 이제 결정을 해주기를 기대한다. 우리가 생각하는 또 다른 세상이란 바로 여기, 지금이기 때문이다.

 

김성욱 / 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램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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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acrosstheuniverse 2014.03.22 02:26 신고

    글 잘 읽었습니다. 많은 이들이 선생님의 생각에 뜻과 마음을 함께 하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계시지요?^^지루한 기다림이었지만 머지않아 좋은 소식이 찾아올 것입니다. 그렇게 될 수 있도록 관심과 애정을 갖고 늘 지켜보겠습니다. 더 힘내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아프지 마시길.....건강하세요~^^

  2. 지나가는과객 2014.11.10 12:42 신고

    분명 전액지원을 해줘야 맞는데.. 제가 나설일이 없었으면 좋겠네요 서울의 횃불 서울아트시네마 파이팅

 

 

 


2014
년은 시네마테크 프랑세즈의 설립자인 앙리 랑글루아(1914-1977)의 탄생 백주년을 맞이한 해이다. 서울아트시네마는 올해 랑글루아 백주년 행사를 시네마테크 프랑세즈와 함께 벌일 예정이다. 랑글루아는 책에서 언급된 영화들, 영화의 역사에 그저 이름만 있던 영화들을 살아있게 했다. 시네마테크의 상영 덕분이다. 랑글루아는 시네마테크의 아버지이자 영화 프로그래머란 직업의 창시자로, 영화의 아이들(cine-fils)이 그러하듯 적어도 이 분야에서 일하는 모든 이들은 어떤 의미로든 그의 아이들이다. 그의 특별함은 탁월한 열정뿐만이 아니라(그는 시네마의 종사자들의 가장 중요한 덕목을 열정passion이라 여겼다), 그것을 어떻게 전시하고 조직하는가에 있었다. 이건 쉬운 일이 아니다. 영화의 역사에 정통하는 것만이 아니라 특별한 재능을 요하기 때문이다.

 

랑글루아는 영화와 관련해 손쉬운 합의를 도모한 사람은 아니었다. 그는 영화의 종사자들에게 무조건적인 우정을 보내기도 했지만, 또한 치명적인 증오를 불러오기도 했다. 그 치명적 결과는 알다시피 1968년에 있었던랑글루아 사태로 벌어졌다. <랑글루아의 유령>이라는 다큐멘터리에서 클로드 샤브롤이 지적하듯이랑글루아 사태는 그와 시네마테크 프랑세즈의 명성, 그리고 그가 필연적으로 양산한 적들 때문에 발생한 사건이다. 영화의 역사는 친구만이 아닌 적들과의 전투의 흔적들이다. 우리의 동료이자 친애하는 적들. 자연스럽게 어떤 친구들은 적으로 돌아서고, 또 반대로 그를 시기했던 이들이 친구가 되기도 했다. 가령, 시네마테크 프랑세즈 못지않은 아름다운 벨기에 시네마테크의 설립 자인 자크 르도는 그의 적대적 경쟁자였다. 물론 나로서 기억하고 싶은 것은 그와 친구들과의 돈독한 우정이다. 특별히 랑글루아와 그의아이들중의 한 명인 주앙 베르나르 다 코스타(1935-2009)와의 우정의 관계를 각별하게 생각한다

 

 

 

 

베르나르는 주앙 세자르 몬테이로를 포함해 페드로 코스타 등 포르투갈 감독들이 존경했던 포르투갈 시네마테크의 관장이었다. 베르나르는 젊은 시절에 리스본에서 영화사의 위대한 고전들과 만나볼 기회가 없었다고 한다. 5-60년대 리스본에서는 정치적 검열과 문화적 빈곤, 그리고 고립주의 때문에 과거의 영화와 만나는 것은 힘겨운 일이었다. 1958, 23살의 나이에 그는 처음으로 파리로 여행을 떠났고 그곳에서 랑글루아의 시네마테크를 방문해 영화의 세계에 빠져들 수 있었다. 그의 고백. “극장문을 열고 처음 들어갔을 때의 그 감정들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전함 포템킨>, <국가의 탄생>, <일출>, 그리고 <잔다르크의 수난>과 같은, 글에서 많이 읽었던, 사진들로만 보았던 영화들을 내 눈앞의 스크린으로 마침내 보게 되었을 때의 그 감정을?” 영화는 늘 보였던 것은 아니었다. 랑글루아의 시네마테크가 의미 있었던 것은 보이지 않았던 영화들을 믿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반대로 말하자면우리가 기대하는 영화들은 언제나 아직 보지 못한, 하지만 존재하게 될 영화들’(고다르)이다. 그 후, 베르나르는 굴벤키안 문화재단의 영화부문 프로그래머로 일하면서 1973년 랑글루아의 도움으로 리스본에서로셀리니 회고전을 개최할 수 있었다. 리스본의 시네필들은 랑글루아가 대동한 로셀리니를 극장에서 만나는 호사를 누릴 수 있었다. <무방비 도시>가 상영되는 오프닝 행사에서는 상영 후에 기립박수와 함께자유 만세파시즘은 물러가라는 구호가 난무했다고 한다.

 

이런 훈훈한 우정에 더해 나로서는 그들의 우정을 넘어선 차이 또한 주목한다. 거부하고 싶더라도 우리는 결국 랑글루아의 키드이겠지만 서로 다른 상황과 시간대, 조건에 있기에 친화성 못지 않게 거리를 분명히 하지 않을 수 없다. 리스본의 베르나르 또한 파리의 랑글루아와는 다른 프로그래밍을 해야만 했다. 마치, 파리의 고다르와 저 남미의 글라우버 로샤가 만났을 때 로샤가 말했던 것처럼. 당신들은 영화를 해체하고 있는데 우리는 해체할 영화가 없으니, 먼저 영화를 구축해야만 합니다! 랑글루아는 좋은 취향과 나쁜 취향, 저급한 것과 고급한 것의 문화적 기준을 거부하는 프로그래밍으로 유명했다. 그는 심지어 좋은 영화만 선별한 것이 아니라 아닌 모든 영화를 보존해야 한다고 했다. 어떤 작품이 좋은지 누가 어떻게 결정할 수 있을까? 영화사는 그 반대의 진실을 언제나 보여주었었다. 반면, 베르나르는 주로 작가들의 회고전에, 그리고 다소 교훈적이고 영화사의 위대한 정전의 작품을 상영하는 데에 치중했다. 이는 1970년대 리스본에서 절실했던 일이다. 무엇보다 먼저 관객을 늘리고 좋은 작품을 접하도록 하는 것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베르나르는 이전에 보지 못했던 걸작들을, 그동안 상영되지 못했던 영화들을 소개하고 보다 근본적인 영화 교육을 제공하는 것에 치중했다.

 

 

 

파리의 랑글루아는 상상적인 프로그래밍을 꿈꾸었다. 그는 하루 종일 영화를 보는 관객들을 가정한 프로그래밍, 가령 이 가상의 관객들은 사실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는데, 이들이 하루 동안 종일 영화를 볼 경우에 서로 이질적인 영화들의 자유로운 배치로 영화들 사이의 비밀스러운 다리를 놓는 비밀스러운 기획을 하기를 원했다. 영화관의 어둠 속에서 영화적 이미지들이 그려내는 비밀스러운 성좌의 구축. 이미 시네마테크를 설립하기도 전에 그는 샹젤리제의 작은 공간을 빌려서시네마 판타스티크Le Cinéma Fantastique’라는 제목의 기획전을 개최했던 적이 있는데. 그때에 랑글루아는 어떤 휴식 시간도 없이 세 편의 장편 영화를 연달아 상영했다. 장 엡스탱의 <어셔 가의 몰락>(1928), 로베르트 비네의 <칼리가리 박사의 밀실>(1920), 그리고 폴 레니의 <라스트 워닝>(1929). 이 세 편의 정해진 주제와 기획의 의도는 분명치 않다. 그는 한 편의 영화 이전에, 그리고 다음 영화와의 관계에 영화가 놓여지기를 원했다. 라울 월쉬의 영화 전에 에이젠슈테인의 영화를, 미조구치의 영화 다음에 히치콕의 영화를 상영하는 식으로. 계몽적인 기획의 주제보다는 삼투현상에 의한 영화 교육을 믿었던 것이다. 종종 랑글루아의 영화박물관의 전시는 심지어 연대기도 그 어떤 꼬리표도 달지 않은 전시물들의 배치로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전통적인 박물관의 큐레이터들은 랑글루아의 그런 방식의 배치에 비전문가라는 경멸을 표하기도 했다). 만약 이런 식이라면 고물상의 무질서한 배치와 뭐가 다르단 말인가라는 비난들. 하지만 상상의 시네마크는 이런 꿈이었다. 어느 날, 루브르 박물관에 도둑이 들어 모든 전시물들의 꼬리표를 제거하고 마음대로 예술품들을 뒤섞어 버린다. 그 다음 날 관객들은 그런 줄도 모르고 박물관에 들어와 연대기도, 주제도 무시된 채 무질서하게 배치된 예술작품들을 감상하게 된다. 그런 날들이 오게 되면 더 비밀스러운 예술의 역사에 접근할 수 있지 않을까?

 

 

 

올해도 어김없이 친구들이 어떤 일관된 기준 없이 선택한(친구들 스스로 작품을 선택하는 고유의 일관성과 철학이 없다는 말이 아니다) 영화들이 상영되는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가 열린다. 정말 영화를 즐기고 싶다면 이 무질서한 영화들의 사이, 우연한 관계와 배치에 더 관심을 기울여줄 것을 부탁드린다. 위계와 통제를 벗어나고자 한다면 한계를 두어서는 안 된다. 짐 자무시의 영화가 보여주는 중요한 교훈을 상기하고 싶다. No Limits, No Control.

 

 

김성욱 / 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램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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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0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를 맞아서 '시네필의 선택' 섹션에 참여한 영화평론가 정성일씨가 시네마테크에 보냈던 편지입니다. 카탈로그에 실려있지만 여기에도 소개합니다.

   

시네마테크2010_친구영화제_20091230

보내는 사람_정성일

받는 사람_김성욱

 

 

첫 번째 (상황). 2008년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가 내건 슬로건은 ‘영년(zero year)’이었다. 그건 마치 내게 하는 말 같았다. 제로라는 무효의 선언. 다시 시작하겠다는 각오. 로셀리니가 영화 제목에 쓴 말. 그런 다음 고다르가 받아서 21세기에 반복했던 제목. 하지만 내게 그 의미는 다른 것이었다. 말 그대로 진공상태. 단지 길을 잃었다는 말로는 부족하다. 나는 텅 빈 상태였었고, 거의 매일같이 술을 마시는 것처럼 영화를 보았다. 너무 많이 보아서 어제 본 영화와 오늘 본 영화가 잘 구별되지 않았다. 종종 중간부터 보기도 하였고, 때로는 보다가 지쳐서 자기도 하였다. 나는 2008년 친구영화제에 슬픈 마음을 안고 마츠모토 토시오의 <수라(修羅)>를 백지수표에 썼다. 그때 내 상황은 비유 없이 아수라장이었다. 그 해 내내 준비했던 영화는 잘되지 않았다. 나는 할복자살하는 심정으로 이 영화를 그 자리에 온 영화의 친구들에게 소개했다. 아니, 그건 그냥 할복이라고 말하는 편이 옳을 것이다. 마츠모토 토시오라는 칼. 단숨에 창자까지 꺼내 들 수 있게 잘 만들어진 섬뜩한 날. 먹물처럼 배어 나올 피. 유혈 낭자한 소개. 나는 친구들이 모인 파티를 피바다로 만들고 싶었다. 하지만 아무도 내 마음을 이해해주지는 않았다. 모두는 아니지만, 그 중 몇몇은 재미있게 보았다. 심지어 악수를 청하는 사람도 있었다. 맙소사! 눈물을 흘리는 사람에게 청하는 감사의 악수보다 더 아이러니한 상황이 있을까.


두 번째 (행동). 그 이듬해 다행히도 나는 친구 영화제에 참석하지 않아도 되었다. 영화를 찍었다. 그건 내게 매우 중요한 일이었다. 단지 영화를 찍었다는 사실 때문이 아니다. 만일 그렇게 생각한다면 그건 나를 오해한 것이다. 나를 붙잡은 질문. 대답을 구하려는 간절한 노력. 내게서 영화를 찍는다는 건 질문에 대답하는 활동이다. 말하자면 사랑의 다른 길. 훨씬 직접적이고 감각적인 길. 생각이 미리 자리 잡기 전에 작업하면서 고정적이고 기계적인 개념을 부수는 방법. 내가 책에서 읽은 의심스러운 구절들. 우리는 책에서 읽은 상투적인 구절들과 싸워야 한다. 아니, 그냥 단도직입적으로 개념이 담긴 영화 책이라는 유리병을 세상 속으로 집어던져서 깨버려야 한다. 어떻게? 나는 영화를 만드는 것만이 방법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러므로 영화를 만드는 것은 내가 배움을 향해서 간절하게 집어던지는 액션이다. 로셀리니는 세상 속에서만 영화는 배움을 청한다고 말했다. 나는 그 말에 대한 믿음을 실천하고 싶었다. 차라리 내 존경을 실천하고 싶었다. <카페 느와르>는 나의 영화 액션이다. 우리는 이 영화에 대해서 함께 이야기할 시간이 있을 것이다. 아니, 그 시간이 올 것이다. 미래의 관객이라는 기대의 지평.


세 번째 (선택).
나는 올해 열 편의 영화 제목을 썼다. 그중에서 세 편이 결정되었다(고 한다). 그러므로 세 편 사이의 관계를 설명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혹은 억지로 만들어내는 삼각형이 될 것이다. 대신 열 편을 고르면서 세운 원칙과 세 편에 대한 짧은 추억을 말하는 것으로 소개를 대신하겠다. 시네마테크에서 영화를 소개하다니! 그런 건 그냥 교과서에 맡겨놓으면 된다. 여기는 교실이 아니다. 우리가 구출해야 할 영화. 영화를 착취하는 기계들. 교실. 멀티플렉스. 아마도 그런 곳에서는 소개가 필요할 것이다. 어쩌면 별점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일을 하는 건 바보짓이다. 나의 호소. 우리는 영화를 소개하면 안 된다. 그저 그걸 보아야 한다. 보고 또 보아야 한다. 그런 다음 각자의 영화사를 창조해야 한다. 나는 그것을 앙리 랑글루아의 목록에서 배웠다. 랑글루아는 시네마테크의 시간표를 매일매일 짜면서 그걸 작가별, 혹은 주제별, 또는 장르별, 배우별, 시대별로 구분되지 않게 필사적인 노력을 기울였다. 여기는 슈퍼마켓이 아니다. 우리 시대의 발명품 영화. 20세기의 타임머신.
 

변주곡, 혹은 엘레지. 김성욱 씨로부터 슬픈 이야기를 들었다. 어쩌면 2010년 친구의 영화제가 마지막이 될지도 모른다는 말을 했다. 이유는 여러분이 잘 아는 그대로이다. 끔찍한 일이다. 우리는 다시 만나지 못할지도 모른다. 우정을 나눌 장소는 위기에 빠졌고, 아직 대안은 없다. 아마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나는 예술과 정치의 수상쩍은 구별을 항상 의심한다. 물론 시네마테크 친구들의 희생적인 노력 덕분에 우리는 그동안 아무 걱정 없이 영화를 보았다. 여기서 방점은 불행히도 ‘그 동안’이다. 하지만 이제 그 희생의 노력만으로 충분하지 않게 되었을 때 당신은 무엇을 할 것인가? 당신의 투쟁전선은 고작 해야 방안의 홈 씨어터인가? 보고 싶은 영화를 위한 당신의 저항은 불법다운로드인가? 우리가 믿는 정의를 옹호하기 위해서 해야 하는 행동을 결정해야 할 시간. 우리는 예술과 짝을 이루는 정치에 대해서 생각해야 한다. 사방에서 벌어지는 폭격. 점령구역들. 하지만 발등에 불이 떨어져야만 움직이기 시작하는 수수방관. 당신은 영화를 본다는 것 말고는 아무 이해관계도 없는 장소를 방어하기 위해서 (어떤 형식이건) 희생할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는가. 이것은 다시 입장의 문제이다. 그리고 입장의 효과(와 결과)를 생각해야 한다. 유명한 1902년의 정식. “막대가 나쁜 방향으로 구부러졌을 때, 그것을 바로 잡기 위해서는 즉 곧게 펴기 위해서는, 우선 막대를 반대방향으로 구부려야만 하며 따라서 그것을 쥐고 튼튼하게 반대방향으로 잡아당겨야 한다.” 누가 결정을 내리는가? 결정의 내용을 아무리 따져보아야 거기에는 대답이 없다. 핵심은 결정을 바꾸는 것이다. 혹은 결정을 내리는 자리를 바꾸는 것 이외에는 방법이 없다. 곧게 펴기. 하지만 어떻게? 우리는 이제 흐릿해진 생각을 명확하게 해야 한다.


세 편의 영화. 먼저 루이 푀이야드의 <뱀파이어>. 물론 이 영화는 ‘흡혈귀’와 아무 상관이 없다. 연쇄극으로 이루어진 이 영화의 어떤 버전이 이번 영화제에서 상영될지에 대해서 나는 아직 아무 정보도 없다. 나는 이 영화를 이번 영화제에서 진심으로 ‘공유’하고 싶다. 다소 무모한 말이긴 하지만 당신들과 마찬가지로 나에게도 ‘생애 한 편의 영화’가 있다. 물론 이 영화 제목은 내일 바꿀 수도 있다. 원래 ‘한 편의 영화’라는 건 그런 것이다. 나는 1993년 1월 마지막 토요일 클레르몽페랑의 파스칼대학 강당에서 밤 10시에 시작해서 밤새도록 상영된 루이 푀이야드의 <뱀파이어>를 처음 보았다. 그 전에 나는 이 영화를 책의 제목에서만 보았다. 그리고 아무도 내게 이 영화를 추천해주지 않았다. 나는 완전히 홀렸다. 아니, 그냥 넋을 잃었다는 말이 맞다. 최면상태. 아름답다거나 훌륭하다는 말로는 설명되지 않았다. 이건 위대하다거나 혹은 걸작이라는 말과는 근본적으로 어울리지 않는 결정이다. 그냥 영화 자체를 본 것 같았다. ‘아! 이것이 영화구나.’ 라는 탄식. 물론 그런 다음에도 쉬지 않고 영화를 보았다. 놓친 영화들을 찾아보았고, 새로운 영화들을 보았다. 많은 복원판을 보았다. 추천작들도 보았다. 하지만 어떤 영화도 자기의 자리를 차지할 뿐 내게 지금 이것은 영화, 라고 선언하지 못했다. 나에게 영화는 결국 <뱀파이어>이다. 나는 내 믿음을 의심하기도 하였다. 그래서 거의 십 년이 지났을 때 다시 보았다. 이번에는 뉴욕에서 보았다. 그때 결론을 내렸다. 나는 결국 이 사랑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마치 내 평생의 연인이 릴리안 기쉬인 것처럼. 그때 이 결정에서 릴리안 기쉬가 얼마나 연기를 잘하느냐는 문제와 아무 상관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물론 당신이 동의하건 말건 그건 내 관심이 아니다. 아마도 당신에게 영화라고 선언하는 또 다른 영화가 있을 것이다. 나는 그것을 놓고 경쟁할 생각이 없다. 다만 이 자리에서 내 사랑을 고백하고 싶을 뿐이다. 아무도 강요하지 않았지만, 고백을 통해서 당신에게 내가 친구라는 것을 말하고 싶다. 하긴 여기가 아니라면 어디서 그 말을 할 수 있을까.

 

두 번째. 사샤 기트리. 아직 단 한 번도 여기서 사샤 기트리의 회고전이 없었다는 사실은 부끄러운 일이다. 게다가 거의 이야기도 되지 않는다. 언제나 르누아르. 언제나 브레송. 언제나 고다르. 나는 사샤 기트리에 대해서 함께 이야기할 친구를 오랫동안 기다렸다. 하지만 불행히도 아직 만나지 못했다. 그러므로 이 선택은 친구를 찾는 나의 애절한 호소이다. 우리가 우정을 나누는 방식. 나는 사샤 기트리가 장 르누아르나 브레송만큼은 아니지만 마르셀 카르네나 줄리앙 뒤비비에보다는 훨씬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혹은 장 콕토보다 본질적으로 시적이다. 사샤 기트리가 없었다면 장 으스타슈가 가능했을까. 앙리 랑글루아는 훨씬 더 확신을 갖고 프로그램을 썼다. “사샤 기트리는 미조구치 겐지, 빈센트 미넬리, 더글라스 서크, 로베르토 로셀리니처럼 중요하다. 이 말은 이상하다. 그렇다. 사샤 기트리는 영화사에서 그렇게 이상한 자리에 있다.” 내가 사샤 기트리를 처음 본 곳은 프랑스 문화원이었다. 그때 나는 사샤 기트리의 중요함에 대해서 열심히 설명했다. 나와 함께 영화를 보던 친구들은 동의하지 않았다. 나는 세대를 건너뛰어 이제 다시 당신에게 동의를 구한다. 하지만 사샤 기트리의 영화를 한 편 보고 그를 잘 알게 된 것처럼 말하는 것은 우스운일디다. 내 꿈 중의 하나는 살아생전 사샤 기트리의 전작 회고전을 보는 것이다.


세 번째. 카르멜로 베네를 가장 먼저 언급한 사람은 피에르 파올로 파솔리니였다. 파솔리니는 경외감을 안고 베네를 ‘나의 위대한 동지’라고 불렀다. 그 다음은 고다르이다. 고다르는 베네의 영화를 본 다음 달려가서 로마에서 그의 연극 무대를 보았다. 질 들뢰즈는 카르멜로 베네에 관해서 한 권의 책을 헌사 했다. 하지만 시네필 들뢰즈가 카르멜로 베네를 말하면서 연극에 한정 지어 설명한 것은 좀 의외이다. 들뢰즈가 카르멜로 베네에게 바친 한 권의 책 『중첩』은 들뢰즈의 유일한 연극에 대한 책이(라고 나는 알고 있)다. 그런 다음 영화에 관한 두 번째 책 『영화 2; 이미지-시간’의 제 8장 ‘영화, 신체, 그리고 뇌, 사유』에서 짧게 다루고 있다. 하지만 들뢰즈는 카르멜로 베네가 이미지-수정체를 건설한 가장 위대한 시네아스트 중의 한 명이라는 사실을 인정한다. 그런 다음 들뢰즈는 여기서 장 으스타슈, 필립 가렐, 알랭 레네, 장-마리 스트로브와 다니엘 위예 그리고 미래의 민중영화를 이야기한다. 카르멜로 베네의 위치. 나는 좀 더 많은 카르멜로 베네의 영화를 보고 싶다.


인사. 그렇다. 우리는 영화에게 인사를 해야 한다. 더 많은 영화에게 인사를 해야 한다. 우리들의 두 번째 십 년. 우리들의 21세기의 두 번째 시작. (정성일_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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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회를 맞는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가 1월 15일 7시에 개막합니다. 상세한 일정들은 금주에 나올 테지만, 먼저 영화제의 프로그램들을 소개할까 합니다.

올해, 개막작은 루이 푀이야드의 그 전설적인 영화 <뱀파이어>입니다. 이 영화는 정성일 영화평론가(영화감독)의 선택작이기도 합니다. 왜 이 영화가 개막작일 수 밖에 없는가는 개막식 때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영화는 당일 개막식에 장영규 음악감독의 라이브 연주로 상영됩니다. 이런 영화 이렇게 볼 기회는 별로 없을 겁니다.

올 해 시네마테크의 선택작은 찰스 로튼의 <사냥꾼의 밤>입니다. 보신 분들도 있을테지만, 35mm 뉴프린트로 새롭게 선보이는 작품입니다. 이 또한 왜 우리의 선택작이 됐는가는 상영회 때 아실 수 있습니다. 짐작하는 분들도 이미 있겠지요.

친구들의 선택은 영화의 상영작이나 작품의 취향이나 시대, 국적이 꽤나 다양합니다. 그들 각자의 선택, 그리고 왜 그 작품들이 선택됐는가는 여전히 궁금한 점들이 있습니다. 이미 만났던 영화들, 다시 보게 되는 영화들, 아니 처음 만나게 될 작품들이 있습니다.

관객들의 선택은 두 작품이 최종 상영되는데, 이 또한 사연이 있습니다. 그리고 예년처럼 작품을 선택한 관객들 중 한 분이 영화 상영전에 소개를 하게 될 겁니다. 하실 분들은 미리 마음에 두셨다가 연락 부탁드립니다.

올 해 특별섹션은 시네필, 영화애호가들의 미적 취향에 중점을 두었습니다. 한국과 미국의 대표적인 평론가인 정성일, 크리스 후지와라의 선택작의 상영과 그들의 영화강의로 '영화평론 마스터클래스'가 진행됩니다. 처음 소개되는 카르멜로 베네의 영화는 아마 독특한 경험을 선사할 겁니다. <카프리치> 혹시 보신분들 있으신가요? '시네마테크 라이브러리'로 구축되는 존 포드의 영화들은 일단 영화 보고 이야기를 해야만 합니다. 앞으로도 목록을 늘여나가도 싶은데, 이제 라이브러리 예산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아 한숨이 나옵니다. 

'작가를 만나다'에서는 배창호 감독님의 신작 <여행>을 주목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 영화 프리미어 상영하는 겁니다. 시네마테크에서 배창호 감독님의 신작을 첫 상영하는 겁니다! 최초로 이 영화와 만나는 기회를 절대 놓치시지 않길 바랍니다. 제주도를 배경으로 세 에피소드로 구성된 이 영화는 배창호 감독님의 이전의 그 어떤 작품보다 더 젊은 영화이자 중견감독의 저력이 어떤 것인가를 느낄 수 있습니다. 2시간 30분이 정말 편안한 영화입니다. 두 번째 에피소드에 이르러 눈물을 멈출 수 없었던 영화입니다. 

올 해는 언제나 해보려고 했던, 하지만 공간문제로 유보를 해두었던 감독들과의 좀더 사적인 만남, 카페에서 커피 한잔 하며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시네클럽' 행사를 시도합니다. 그 첫 시간은 특별히 대학의 영화공동체 젊은 친구들과 함께 영화감독이 되고자 하는 젊은이들을 대상으로 세 명의 영화감독과 이야기를 나눕니다. 류승완 감독이 '나는 어쩌다 영화 만드는 일을 하고 있는가?’로, 오승욱 감독이 '좋은 시나리오란 무엇일까'를, 그리고 봉준호 감독이 '<마더>의 영화연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예정입니다. 30명 정원의 선착순 마감을 하는 특별한 행사입니다.      

올 영화제는 서울아트시네마의 창립 10주년을 목전에 앞두고 서울에 시네마테크 전용관의 설립을 기획하고 촉구하는 일환으로 진행될 예정입니다. 이와 관련한 내용은 또 다음에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김성욱: 시네마테크 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래머) 

 
2010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 The 5th Cinematheque Friends Film Festival

5주년을 맞이한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
한국시네마테크협의회는 2010년 1월 15일부터 2월 28일까지 약 두 달간 시네마테크를 후원하는 영화인들과 함께 벌써 5주년을 맞이하는 ‘2010년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를 개최합니다. 2006년에 시네마테크의 설립취지에 공감하고 활동을 지지하는 영화인들이 참여해 처음 열린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는 영화인들이 직접 참여해 영화를 선택하고, 관객들과 영화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독특한 형식으로 매년 시네마테크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열리는 대표적인 영화축제입니다.

20여명의 영화감독, 배우, 평론가들이 참여하는 친구들의 선택
‘2010년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는 영화제 5주년을 기념하고, 시네마테크 전용관 창립 10주년을 목전에 앞두고 열리는 행사인 만큼 ‘새로운 10년’을 준비하는 마음으로 특별한 행사들을 마련합니다. 먼저 박찬욱, 봉준호, 김지운, 홍상수, 류승완, 안성기 등 한국을 대표하는 영화인들이 참여해 그들이 선택한 영화를 상영하고 관객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친구들의 선택', 관객들의 손으로 직접 뽑은 영화를 상영하는 ‘관객들의 선택’ 두 섹션은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가 개최된 이래 지속적으로 관객들에게 선보인 프로그램으로 올해는 더욱 많은 친구들이 다양하고 의미 있는 영화들을 가지고 관객들에게 큰 만족을 선사할 것입니다.

영화 평론가 마스터클래스, 시네클럽 등 다채로운 교육 행사
또한, 시네마테크가 2008년부터 매년 구축하고 있는 고전영화 라이브러리를 2010년에도 관객들게 처음 소개할 예정이며, ‘카르트 블랑슈- 시네필의 선택’에서는 국내를 대표하는 영화평론가 ‘정성일’과 해외 게스트로 저널리스트, 편집자, 저술가로 활동하고 있는 영화평론가 ‘크리스 후지와라’가 초청되어 그들이 선택한 영화를 상영하고 영화비평에 대한 마스터클래스를 개최할 예정입니다. 또한, 이번 영화제 기간에는 영화를 만들고 싶어 하는 젊은 친구들과 봉준호, 류승완, 오승욱 감독이 참여해 영화 연출 및 시나리오 등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시네클럽’ 행사가 처음으로 열릴 예정입니다.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서울에 시네마테크 전용관을 설립하게 위해 나서다
아울러 첫 번째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가 시작된 이래로 염원해 온 ‘시네마테크 전용관’ 설립을 위한 구체적인 활동이 이번 영화제를 통해 시작됩니다. 그동안 시네마테크를 후원하기 위해 모였던 영화감독, 배우, 교수, 영화평론가 등 영화인들이 참여해 ‘시네마테크 전용관’을 설립하기 위한 추진활동을 개시할 예정입니다.
‘2010년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는 1월 15일 ‘시네마테크의 친구들’이 참여해 영화제를 소개하는 개막식과 후원의 밤을 시작으로 막을 엽니다. 2월 28일까지 약 두 달간 개최될 ‘2010년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에 관객 여러분의 많은 관심과 참여 부탁드립니다.


프로그램

개막식
2010년 1월 15일(금) 19:00 서울아트시네마
개막작 <뱀파이어: 에피소드 1, 2>(루이 푀이야드 연출, 1915) *연주상영




연주자 소개: 장영규
장영규 음악감독은 ‘어어부 밴드’의 일원으로 잘 알려져 있다. 90년대 말부터 김지운, 박찬욱, 김인식, 김기덕, 이수연, 이재용 등 한국영화의 새로운 기운을 발흥시켰던 감독들의 영화음악을 맡아 독특한 개성을 발휘했다. 그의 영화음악은 영화들의 화면만큼이나 스타일리시하고 풍성하다. 장영규 음악감독은 달파란, 방준석, 이병훈 등과 함께 영화음악집단 ‘복숭아 프레젠트’를 꾸리고, 그들과 공동으로 혹은 단독으로 작업하고 있다.
작업 l 파주 (2009) / 미쓰 홍당무 (2008) / 전우치 (2008) /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2008) / 다세포소녀 (2006)
타짜 (2006) / 소년 천국에 가다 (2005) / 달콤한 인생 (2005) / 얼굴없는 미녀 (2004) / 해안선 (2002) / 반칙왕 (2000)

 

01. 메인 섹션 Main Section

시네마테크의 선택 Cinematheque's Choices
매년 시네마테크가 선택한 작품을 상영하는 섹션. 이번 시네마테크의 선택작은 시네마테크가 고전 영화 라이브러리로 직접 구매한 찰스 로튼의 <사냥꾼의 밤>이 뉴 프린트로 처음 소개된다.

사냥꾼의 밤 The Night of the Hunter (New 35mm 프린트) l 연출: 찰스 로튼 Charles Laughton

 





친구들의 선택 Friends' Choices
시네마테크의 친구들이 직접 자신이 관객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영화를 선택해 상영하고 작품에 대한 소개를 진행하며, 상영 후에는 관객들과 영화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는 섹션이다.

친구들의 선택 1- 김영진(영화평론가)
나의 계곡은 푸르렀다 How Green Was My Valley l 연출: 존 포드 John Ford

친구들의 선택 2- 김지운(영화감독)
마태복음 Il Vangelo secondo Matteo l 연출: 피에르 파올로 파솔리니 Pier Paolo Pasolini

친구들의 선택 3- 김한민(영화감독)+윤종빈(영화감독)
엄마와 창녀 La Maman et La Putain / The Mother and the Whore l 연출: 장 으스타슈 Jean Eustache

친구들의 선택 4- 류승완(영화감독)
열혈남아 旺角下問 / As Tears Go By l 연출: 왕가위 Kar Wai Wong
*이번에 상영되는 <열혈남아>는 기존에 개봉한 대만 버전이 아닌 홍콩버전(감독판)으로 엔딩 등 일부 장면이 다릅니다.

친구들의 선택 5- 박찬옥(영화감독)
네이키드 Naked l 연출: 마이크 리 Mike Leigh

친구들의 선택 6- 박찬욱(영화감독)
쳐다보지 마라 Don't Look Now l 연출: 니콜라스 뢰그 Nicolas Roeg

친구들의 선택 7- 봉준호(영화감독)
서바이벌 게임 Deliverance l 연출: 존 부어맨 John Boorman

친구들의 선택 8- 안성기(영화배우)
아마데우스 Amadeus (New 35mm 디렉터스 컷) l 연출: 밀로스 포먼 Milos Forman

친구들의 선택 9- 오승욱(영화감독)
트로츠키 암살 The Assassination of Trotsky l 연출: 조셉 로지 Joseph Losey

친구들의 선택 10- 이명세(영화감독)
동경 이야기 東京物語 Tokyo Story l 연출: 오즈 야스지로 Yasuziro Ozu

친구들의 선택 11- 이재용(영화감독)+전계수(영화감독)
디바인 대소동 Female Trouble l 연출: 존 워터스 John Waters

친구들의 선택 12- 최동훈(영화감독)
바람에 사라지다 Written on the Wind l 연출: 더글라스 서크 Douglas Sirk

친구들의 선택 13- 홍상수(영화감독)
오데트 Ordet / The Word l 연출: 칼 드레이어 Carl Theodor Dreyer

-관객들의 선택 Members' Choices
시네마테크를 찾는 관객들이 직접 선택한 작품을 상영하는 섹션. 2010년에는 관객들이 지금까지 시네마테크에서 상영했던 무성영화 중에서 ‘다시 보고 싶은 무성영화’ 한 편을 직접 선정해 상영한다. 영화 역사의 시작이자, 영화의 언어와 문법을 창조한 10편의 무성영화 중에서 관객들이 11월 19일부터 12월 3일까지 서울아트시네마 홈페이지와 온라인 카페, 상영관 로비 게시판에서 투표한 결과 장 엡스탱의 <어셔 가의 몰락>이 1위로 <항해자>가 2위로 선정되어 상영된다.

어셔 가의 몰락 La chute de la maison Usher / The Fall of the House of Usher l 연출: 장 엡스탱 Jean Epstein

항해자 The Navigator l연출: 버스터 키튼 Buster Keaton

 

02. 특별 섹션 Special Section


-카르트 블랑슈: 시네필의 선택 Carte Blanche

한국과 미국을 대표하는 두 명의 영화평론가가 직접 3편의 영화를 선정해 자신이 선택한 영화를 상영하고 영화에 대한 강연과 더불어 관객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 영화평론가이자 영화감독으로 데뷔한 정성일과 미국의 저명한 평론가인 크리스 후지와라가 시네필의 입장에서 선택한 6편의 영화가 상영된다.

정성일의 선택(총 3편)
뱀파이어 Les Vampires / The Vampires l 연출: 루이 푀이야드 Louis Feuillade
어느 사기꾼의 이야기 Le Roman d'un tricheur / Confessions of a Cheat l 연출: 사샤 기트리 Sacha Guitry
카프리치 Capricci l 연출: 카르멜로 베네 Carmelo Bene

크리스 후지와라의 선택(총 3편)
이유없는 의심 Beyond a Reasonable Doubt l 연출: 프리츠 랑 Fritz Lang
말 위의 두 사나이 Two Rode Together l 연출: 존 포드 John Ford
프랑켄슈타인 죽이기 Frankenstein Must Be Destroyed l 연출: 테렌스 피셔 Terence Fisher

 

-존 포드 걸작선 John Ford Special
시네마테크에서는 교육적, 문화적 영화 상영과 시대의 고전을 소개하기 위해 2007년부터 고전 영화의 프린트를 직접 구매하는 '한국시네마테크협의회 필름 라이브러리’를 운영해오고 있다. 2009년에는 미국영화의 대명사일 뿐만 아니라 서부극의 거장인 존 포드의 걸작 6편을 구매해 뉴프린트로 처음 관객들에게 선을 보이는 행사가 열린다. 아울러 2편의 대표작을 추가로, 총 8편의 존 포드의 영화가 상영된다.





철마 The Iron Horse (New 35mm 프린트) l 1924 133min 미국  B&W 35mm 15세 이상 관람가
굽이도는 증기선 Steamboat round the Bend (New 35mm 프린트) l 1935 81min 미국 B&W 35mm 12세 이상 관람가
모호크족의 북소리 Drums Along the Mohawk (New 35mm 프린트) l 1939 104min 미국 Color 35mm 15세 이상 관람가
분노의 포도 The Grapes of Wrath (New 35mm 프린트) l 1940 129min B&W 12세 이상 관람가
나의 계곡은 푸르렀다 How Green Was My Valley (New 35mm 프린트) l 1941 118min 미국 B&W 35mm 12세 이상 관람가
황야의 결투 My Darling Clementine (New 35mm 프린트) l 1946 97min 미국 B&W 35mm 12세 이상 관람가
말 위의 두 사나이 Two Rode Together l 1961 109min 미국 Color 35mm 12세 이상 관람가
리버티 밸런스를 쏜 사나이 The Man who Shot Liberty Valance (New 35mm 프린트) l 1962 123min 미국 B&W 35mm 12세 이상 관람가
아파치 요새 Fort Apache l 1948 127min 미국 B&W 35mm 15세 이상 관람가

 

03. 정기 상영회

-작가를 만나다
미래의 작가로 발돋움하고 있거나 꾸준히 자신만의 방식으로 독특한 영화세계를 구축해 가고 있는 감독을 선정해 그들의 작품세계를 함께 느끼고 호흡하는 자리를 마련한다. 2010년 1월에는 80년대 최고의 영화감독이자 꾸준히 독립적인 방식으로 영화를 만들고 있는 배창호 감독의 신작을 프리미어 상영하고, 2월에는 영화학 교수이자 평론가로 활동하며 장편영화를 연출한 김정 감독의 신작이 관객들과 만난다.

1월 작가를 만나다: 배창호 <여행> ★ 프리미어 상영
여행 l 2009 100min 한국 Color HD l 연출: 배창호

2월 작가를 만나다: 김정 <거류>, <질주환상>, <경>
거류 l 2000 75min 한국 Color Digibeta 12세 이상 관람가 l 연출: 김정
질주환상 l 2004 6min 한국 Color Digibeta 12세 이상 관람가 l 연출: 김정
경 l 2009 95min 한국 Color Digibeta 12세 이상 관람가 l 연출: 김정


-영화관 속 작은 학교

서울아트시네마 교육 프로젝트인 ‘영화관 속 작은 학교’는 매월 1회 영화 상영 후 감독 및 영화 전문 인력과의 대화가 이루어지고 프로그램별 교육 자료가 제공되는 청소년 대상의 영화 교육 프로그램이다. 2월 방학프로그램으로 청각장애인을 위한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훌라걸스 l 2006 110min 일본 Color 35mm 전체 관람가

-서울아트시네마 일본영화걸작 정기 무료상영회
공공상영의 일환으로 2008년부터 한 달에 한 번 개최하고 있는 ‘서울아트시네마 일본영화걸작 정기 무료상영회’는 일본영화에 관심이 있는 영화애호가, 영화전문가, 일반 관객들이 참여하는 행사로 작가, 테마, 시대별로 선정된 일본영화의 걸작을 소개한다.

1월 상영작
열흘 밤의 꿈 ユメ十夜 l 연출: 야마시타 노부히로 외 10명

2월 상영
붉은 유성 紅の流れ星 l 연출: 마스다 토시오
동경방랑자 東京流れ者 l 연출: 스즈키 세이준

 

-인디스토리 쇼케이스 금요단편극장
‘작가를 만나다’와 함께 상업영화관에서 제대로 상영될 기회가 없는 저예산 독립영화와 단편영화, 예술적이며 실험적인 미래의 감독들의 작품을 소개하는 프로그램. 서울아트시네마와 인디스토리가 함께, 영화제가 아니면 만나보기 어려웠던 국내 신작 독립 단편영화를 매달 금요일 밤에 선보이는 독립단편영화의 축제.

1월 상영작
소년, 소년을 만나다 Boy meets Boy l 2008 13'10" 한국 Color HD l 연출: 김조광수
친구사이? Just Friends? l 2009 29'20" 한국 Color HD l 연출: 김조광수

2월 상영작
굿나잇 Good Night l 2009 11'40" 한국 Color HD l 연출: 강동헌
백년해로외전 Be with Me l 2009 30'19" 한국 Color HD l 연출: 강진아
죽기직전 그들 Just before They Died l 2009 13'10" 한국 Color HD l 연출: 김영관

-영화 희망 나눔 영화인 캠페인 상영회
한국시네마테크협의회와 씨네21, 아름다운재단, 여성영화인모임, 영화인회의, 영화제작가협회, 한국독립영화협회가 ‘영화·희망·나눔 영화인캠페인’의 일환으로 매달 한 번 준비하는 상영회.
매달 한 번 상영회를 통해 문화 소외계층과 함께 영화를 보고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를 마련하고 있으며, 영화인과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매달 아름다운재단에 소정의 기부금을 납부하여 영화인캠페인 기금을 조성, ‘청소년들의 자발적 문화 활동’을 증진하는 사업을 지원하고 있다.

 

04. 부대행사 Events

-영화평론 마스터클래스 Film Critic Masterclass
한국과 미국을 대표하는 시네필이자 저명한 영화평론가를 초대해 그들이 선택한 영화 상영과 더불어 강연, 좌담이 열린다.

정성일(영화평론가, 영화감독)
1. <뱀파이어> 상영 후 강연
2. <어느 사기꾼의 이야기> 상영 후 강연

크리스 후지와라(미국 영화평론가)
1. <이유없는 의심> 상영 후 강연
2. 존 포드 강연
3. 영화비평 좌담 - 시네필의 윤리

-시네토크 Cinetalk
‘2010년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에 참여하는 ‘친구들’이 관객들과 영화를 보고 대화를 나누는 행사. 2009년에 이어 국내 유명 감독과 배우, 평론가들이 관객들과 만나 영화에 대한 풍성하고 다양한 대화를 마음껏 나눌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한다.

-시네클럽 Cineclub
영화를 꿈꾸는 청년들과 영화공동체가 영화인들과 함께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행사로 봉준호, 류승완, 오승욱 감독이 참여해 영화 연출과 시나리오에 대해 이야기하는 자리를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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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5beom 2010.01.08 02:13 신고

    기대됩니다!




우리 시대의 프랑스 영화 특별전
French Cinema Now
한국시네마테크협의회는 2009년 11월 10일부터 29일까지 ‘우리 시대의 프랑스 영화 특별전’을 개최합니다.
최근의 프랑스 영화들은 국제영화제를 통해 간헐적으로 소개된 바 있지만, 정식으로 수입되지 못한 대부분의 작품은 아직 한국의 관객들과 제대로 만날 기회가 없었습니다. 이번 영화제에서는 현재 진행 중인 프랑스 영화의 경향과 창조성을 살펴볼 수 있는 총 23편의 작품을 상영하고 이와 관련된 강좌, 토크, 마스터클래스 등의 다양한 부대행사를 마련하여 최근 프랑스 영화계를 진단해 보는 자리를 마련합니다.
이번 특별전에서는 현대 프랑스 영화를 이끌어 가고 있는 젊은 감독들의 주요 작품들을 일별해보는 소중한 기회를 마련합니다. 먼저, 영화 <휴머니티>로 칸영화제 심사위원대상을 받으며 현재 프랑스에서 가장 주목받는 감독이자, 끊임없이 인간의 본성과 삶의 폭력성에 대해 치열하게 영화 속에서 담아내는 브루노 뒤몽의 작품 두 편을 상영합니다. 또한, 사진작가, 저널리스트로 전방위적인 활동을 하다가 다큐멘터리 감독으로 연출을 시작한 레이몽 드파르동의 <농부의 초상: 어프로치>, <농부의 초상: 일상>, <농부의 초상: 모던 라이프>가 소개됩니다. 이 세 편의 작품은 급변하는 프랑스 농촌에서 생존을 위해 살아가는 농부들의 일상과 변화를 그린 3편의 연작 시리즈입니다. 장만옥의 출연으로 화제가 된 올리비에 아사야스의 <이마베프>, 크리스토프 오노레의 독특하고 낭만적인 감수성으로 가득한 두 편의 작품 <세실 카사르, 17번>, <사랑의 찬가>. 독특하고 신비로운 분위기로 소녀들 성장 이야기를 그린 프랑스의 떠오르는 여성감독 뤼실 아지아릴로비치의 <이노센스> 등 현대 프랑스 영화의 현재와 각기 다른 스타일을 가진 감독들의 작품을 아울러 볼 소중한 기회가 될 것입니다.
최근 프랑스 영화를 진단할 소중한 기회가 될 ‘우리 시대의 프랑스 영화 특별전’에 관객 여러분의 많은 참여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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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보도를 통해 접하신 분들도 있겠지만
10월 22일부터 '루키노 비스콘티 특별전'이 시네마테크에서 열립니다.
시네마테크 개관 이래로 간헐적으로 비스콘티의 영화들이 상영된 적이 있긴 하지만
그의 전작을 상영하는 기회는 없었기에 조금은 야심차게
단편을 포함해 전작을 상영할 계획을 세웠던 프로그램입니다.
하지만 최종적으로는 상영작의 규모가 작아졌습니다.
최근 상영료의 증가(1회 상영료만 3백여만에 달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이래서는 갈수록 상영을 하기가 어려워질 것 같습니다)와 저작권의 문제가 커져서
불가피하게 작품 수가 줄 수 밖에 없었습니다. 

자꾸 이러다가는 영화를 미리 볼 사람을 모집해
상영하는 방식을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지도 모를 일입니다. 
좋은 작품을 보려는 관객들이 적어지면서
점점 그들이 부담해야 하는 몫이 갈수록 커질 수 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네 시간이 넘는 대작으로 처음 공개하는 <루드비히>, <센소>,
그리고 <강박관념>, <흔들리는 대지>, <이방인>, <가족의 초상> 등
6편의 영화가 상영됩니다.  
매 작품당 2회 상영을 할 계획이라
평일에는 저녁에 한번, 주말에는 두 작품이 상영됩니다. 
비스콘티의 영화를 국내에서 보는 것은 그닥 쉬운 일은 아닐 겁니다.
흔치 않은 기회이니 시간을 내어 영화를 꼭 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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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J 2009.10.08 14:20 신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맙습니다 돈 벌기도 어렵지만 제대로 쓸줄도 모르네요

  2. melomane 2009.10.10 13:15 신고

    어떤 작품이 상영될까 궁금했는데 기다려집니다 ^^

  3. Hulot 2009.10.16 01:01 신고

    전작 상영이 아니라 아쉽긴 하지만, 흔치 않은 기회이니 많이들 보셨으면 좋겠네요..




유현목 감독님이 세상을 떠났다. 잠깐이나마 감독님과 함께 했던 순간들의 기억이 떠올랐다. 대부분은 사적인 기억들이다. 처음 얼굴을 뵌 것은 90년대 중반으로 기억한다. 예전 사당동에 있던 '문화학교서울'에서였다. 당시 대표님이 '소형영화동우회'의 대표를 하셨는데 유현목 감독님이 동우회의 창립자였다. 그 친분으로 문화학교서울에서 종종 감독님을 뵐 기회가 있었다. 물론 이야기를 나눈 적은 별로 없었다. 그저 뵙는 것만으로도 영광이었다.

내가 그 시절에 기억하는 유현목 감독님은 지독한 영화광인이었다. 2001년으로 기억한다.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미카엘 하네케의 <피아니스트>를 볼 때였다. 영화가 막 시작할 무렵에 앞자리에 꽤 나이가 드신 어른 한 분이 자리를 했다. 종종 국제영화제에서 볼 수 있는 풍경이긴 했지만 어르신이 작품을 잘못 골랐을 거라 생각했다. 꽤 긴 상영시간에 때론
충격적인 장면이 있는 영화였다. 영화가 끝나고 불이 켜질 때 면도날에 살짝 베인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사람들이 웅성거리며 움직이고 있었다. 순간 앞자리의 나이든 분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유현목 감독이었다. 나도 모르게 꾸벅 인사를 했다. 감독님을 뵌 적은 꽤 있었지만 이야기를 나눈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극장을 나오며 한번 뵙고 이야기를 듣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팔순을 앞둔 감독에게 지금의 영화가 어떤 느낌일지 궁금했었다.

유현목 감독을 영화제에서 만나는 일은 드믄 일이 아니었다. 요란한
행사장이 아니라 영화가 상영되는 극장에서 만났던 적이 많았다. 칠순을 넘기고도 새로운 영화들을 평범한 관객처럼 극장에서 보시는 것에 꽤 감동을 받았다. 언젠가 인터뷰를 해보고 싶단 생각이 들었다. 2003년 7월에 그런 기회가 생겼다. 서울아트시네마가 안국동에 있던 시절에 정전협정 50주년을 맞아 독일과 한국의 분단을 되돌아보는 '한독 분단영화 특별전'을 개최한 적이 있었다. 유현목 감독의 <오발탄>을 상영할 생각을 했다. 이때다 싶었다. 유현목 감독을 뵙고 인터뷰를 하기로 했다. 남산에 있는 조그만 사무실에서 감독님과 마주했다. 그 때 감독님과 나눈 이야기가 아직까지 기억에 생생하다.

지독한 영화광인

1925년 황해도 사리원에서 출생한 유현목 감독은 소년기 내성적인 성품에 늘 가냘픈 선병질의 약함이 있었다고 한다. 그가 소년시절의 고독과 소우주에서 탈출할 수 있었던 것은 작은 마을에 찾아오는 '구경거리' 덕분이었다. 소학교 5,6학년 때쯤 그는 지방순회공연을 하는 신파극단의 공연이나 활동사진을 구경하는 취미를 붙였고 이것이 발전되어 중학시절에는 교회에서 하는 성극의 대본을 쓰거나 주연 또는 연출을 맡기까지 했다. 그러나 유현목 감독이 적극적으로 영화에 몰두하게 된 것은 해방 이후의 일이다. 해방의 물결은 영화의 해방을 불러 왔고 금기의 명화들이 갑자기 봇물처럼 쏟아져 나왔다. 유현목 감독은 암울한 분위기 속에서 섬광처럼 다가온 영화의 빛과 만났고 변두리 조그마한 극장을 돌아다니며 재탕, 삼탕을 거듭하며 영화를 봤다고 한다. 영화에 미쳐 영화를 만들 결심을 했던 것이다.

"동국대를 다닐 때, 국립중앙도서관에서 한 보름 동안 시나리오 강좌가 있었지. 오영진, 최금동, 백철 선생 등이 강좌를 맡았는데, 보름 동안 들었어. 왜 들었냐면, 일제 시대에 도스토예프스키 <죄와 벌>에 심취했다고. 그런데 해방되면서 그 동안 보지 못했던 프랑스 영화가 들어온 거야. 피에르 슈발의 35년도 작품이었지. 그 영화에 미쳤었지. 미친 이유가 뭐냐면, 문자로 쓰인 이미지하고 영상의 이미지가 갖는 차이가 있어요. 영상적 매력인 거지. 그 영화에 완전히 심취해서, 열 네 번을 봤어요. 그때 2번관, 3번관, 4번관, 필름이 다 찢어지고 비가 오고 그랬어도, 마지막 열 네 번까지 봤어. 미친 거지, 그 영화에. 연극과 다른 영화세계에 매혹돼 시나리오 강좌에 들어가 시나리오를 썼지."

유현목 감독의 영화작업은 영화를 제대로 보는 것에서 시작됐다고 할 수 있다. 수십 번을 보면서 기술적인 면이 어떻게 시도됐는가를 탐구했다고 한다. 한국영화의 진부한 '스토리텔링'을 넘어서기 위해 영상적인 시도를 할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한국영화의 제작조건이 가혹했기에 어려움은 있었지만, 유현목 감독은 영상적 테크닉의 미숙함을 극복하는 것을 최우선의 과제로 생각했다.

"예전에는 한국영화가 그냥 스토리텔링이야. 배우의 연기도 대사의 전달일 뿐이고. 영상의 표현이나, 몽타주 편집도 전무했지. 비싼 필름을 얼마 안 주니까, 찍다가 필름 끊어지면 카메라 위치나 이런 건 신경 쓸 수가 없었어. 그냥 스토리만 이어지게 했다고. 영상주의적 표현이 아주 드물었지. 한국영화에서 그게 가장 절실한 문제였어요. 왜 카메라 앞에서 이렇게 찍어야 하는지, 왜 이렇게 편집을 해야 하는지, 라는 질문이 거의 없었어. 테크닉부터 배워야겠다고 결심했지. 영화를 보는데 테마가 어떻고 이런 건 나중에 배우자. 그래서 순전히 테크닉만 봤어. 왜 카메라가 거기서 찍었지, 왜 팬을 했지, 왜 천천히 이동했지? 노트를 갖고 깜깜한 영화관에서 그런 걸 적었어. 집에 와서 그걸 딴 노트에 적는데, 그게 참 재밌었다고. 영상적 표현이나, 편집 몽타주의 재구성, 대사와 영상과의 관계, 음악의 역할, 이런 걸 공부하게 된 거지."

유현목 감독은 한국전쟁의 피난 시절에 비토리오 데 시카의 <자전거 도둑>을 부산 서면의 중앙극장에서 보고 크게 감동을 받았다고 말했다. 너무 영화에 도취되어 도랑에 빠질 정도였다고 한다. 로베르 브레송, 잉마르 베리만의 영화에 특히 깊은 영향을 받았다.

"로베르 브레송의 <소매치기>, <저항>을 보고 영화에 도취됐지. <소매치기>에서는 손의 움직임이 기법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영혼의 움직임이라고. <저항>도 그렇지. 내용은 단순해. 감옥에서 탈출하는 이야긴데, 쇠로 탈출도구를 몰래 만드는 모습을 오래 찍고 있어. 그게 영혼의 움직임을 찍는 거지. 그런 면에서 충격을 많이 받았고 영화의 가능성을 본 거야. 잉마르 베리만의 <침묵>에도 큰 영향을 받았지. 베리만을 한번 만날 기회가 있기도 했었어. 유럽 시찰을 갔을 때 파리에서 브레송을 만났지. 미국, 영국, 독일에 초청받아 간 거였는데, 베리만은 그 때 독감 걸려서 못 만나고 그의 작품을 영화인협회에서 틀어줘서 6편인가를 봤어. 그 독특한 수법에 감동을 받았지. 그의 영화에 영향을 많이 받았어."

스스로 '조금은 건방진 일'이라 말했지만, 유현목 감독은 당시 '멜로드라마나 신파에 혐오가 생겼다'고 한다. 물론 1960년대에 새로운 스타일의 영화를 만드는 일은 어려운 일이었다. 꽤나 고통스런 일이었다. 흥행성이 없고 안 팔리는 감독으로 악명을 들어야만 했다.

"그때는 카메라도 몇 대 없어서 빌려 쓸 때야. 다른 팀에서 카메라를 쓰고 있으면 촬영이 끝나기를 기다려야만 했어. 제작자는 빨리 찍으라고 재촉하고. 제작시간이 곧 돈이니까. 나는 느린 감독으로 유명했지. 왜냐면 보통 세트를 제작하면 3면에만 벽을 만든다고. 이게 빨리 찍을 수 있는 방법이긴 한데, 나는 제4의 벽을 꼭 만들었어. 그래야 화면에서 입체성을 가질 수 있어. 입체성이라는 게, 관객의 주의를 요구한다고. 사이즈나 앵글에 따른 이미지의 표현성이라는 게 있는데, 촬영하면서 그걸 다 고려하면 하루에 몇 커트 못 찍는 거지. 세트나 앵글 한 번 바꿀 때마다 2-3 시간씩 걸리니까. 그러니까 느린 거지. 느린 감독인 데다 안 팔리는 감독이라고 악명을 얻었지."

영화작업은 고통스런 일




유현목 감독은 대단한 애연가였다. 언제나 먼발치에서 그 분을 뵐 때마다 손에는 담배가 쥐어져 있었다. 극장에서 관객들과 대화를 나눌 때에도 종종 담배를 피우시기도 했다. 당시 인터뷰를 할 때까지도 나는 담배가 유현목 감독님에게 어떤 의미인지 제대로 알지 못했다. 인터뷰가 끝날 무렵에 감독님은 담배를 피우게 된 사연을 말해주셨다. 담배 연기에 고독한 삶의 무게가 짙게 묻어 있었다.

"예전에는 영화 만들기가 정말 어려웠지. 제작비 중에 제일 많이 들어간 게 필름 값이랑 현상비였어. 거기다 신성일, 엄앵란 같은 스타배우들은 한 해 30편에 가까운 작품을 찍었고 동시에 여러 작품을 찍을 수밖에 없으니까 무리가 많았지. 배우를 한 번 잡으려면 일정이 한 달만에 돌아왔다고. 한번 돌아오면 매일 무리해서 찍어서, 잘 시간도 없었어. 배우가 졸면서 연기를 하다가 지금 대사가 아니고 먼저 찍던 영화의 대사를 하기도 했지. O.K.가 될 수가 없는데 필름이 아까우니까 그냥 가는 거지. 만 피트 영화를 촬영하면 필름을 만 2천 피트밖에 안 줬어. 지금이야 20만자, 30만자 쓰지만. N.G.가 분명한데, 그래도 O.K.를 할 수밖에 없었어. 그 때부터 담배를 배운 거야. 하루에 세 갑반씩 매일."

조심스럽게 <말미잘> 이후에 영화를 더 만드실 생각이 없냐고 물었다. 감독님은 '영화작업은 고통스런 일'이라 말했다.

"의욕은 있는데, 나이가 드니까 몸이 힘들어. 미국의 심리학자가 쓴 책에서 직업 중에 육체적, 정신적으로 소모가 많은 일에 순위를 매긴 게 있어. 1위가 영화감독이고, 2위가 강대국의 대통령이고, 3위가 전쟁 중 작전책임자야. 영화감독은 육체노동도 심하지만, 정신적인 소모가 심해. 신경을 굉장히 많이 쓰게 된다고. 컷, 했을 때의 그 중압감이라는 건 체험하지 않은 사람은 잘 모르지. 반 년, 1년씩 진행되는 영화작업은 쉴 틈도 없고 힘들어. 콘티 하나 짜는데 이틀 밤 사흘 밤을 새울 때도 있고. 내년이면 우리 나이로 80이 되는데, 디지털 카메라로 규모가 작은 영화를 찍어보고 싶어. 소품으로 문제의식 있는 걸 해보고 싶어."

유현목 감독의 바람은 실현되지 못했다. 이후 그 분의 영화가 간헐적으로 상영되는 일은 있었지만 영화를 결코 만들지는 못했다. 2006년 2월에 김홍준 감독의 추천으로 <춘몽>(65)을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에서 상영했었다. 영화가 상영되는 중에 극장의 뒷자리에서 조금 시끄러운 소리가 들렸다. 유현목 감독님이 영화를 보시며 '아, 저 친구가 신성일이야. 연기를 잘 했지'라는 식으로 중계를 하듯이 말씀을 하고 계셨던 것이다. 상영 후에 진행된 김홍준 감독과의 대담에서 유현목 감독은 이렇게 말했다.

"예전에는 영화를 찍다가 에너지가 부족하고, 다시 찍고 싶은 장면이 있어도 그냥 오케이를 해야 했어. 그러면 감독은 무척 불쾌해진다고. 그래서 담배를 많이 피웠어. 지금도 커피 중독이고 담배 두 갑을 태우지. 다들 알겠지만 나는 <오발탄>이라든가 <순교자>, <사람의 아들>, <김약국의 딸들>, <장마>와 같은 문예적 작품을 만들었고, 비흥행 감독이라 오락영화는 만들 줄 몰랐어. 당시에는 촬영과 녹음, 감독에게 주는 개런티를 빼면 다른 스태프들은 생계비가 부족할 정도였지. 이런 영화 작업이라도 해야 생계를 유지했던 시절이었어. 요즘은 필름을 50만자도 쓰고 카메라도 두 대 이상 돌아가는 것을 보면 너무 부럽고 왜 너무 일찍 태어났나, 라는 생각에 원망도 하곤 했지."

2007년 8월에 피아니스트 박창수 씨가 개최하는 '하우스 콘서트'에서 <김약국의 딸들>(63)을 상영하면서 관객과의 대화를 진행했던 적이 있었다. 보조기구를 끌고 움직여야할 만큼 감독님은 거동이 불편했다. 앉아서 이야기를 하시라는 권유를 뿌리치고 내내 서서 영화에 대해 말씀하신 것이 기억난다. 사실, 무슨 말을 하셨는지는 잘 생각나지 않는다. 그 때 나는 그 분의 말을 듣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 보조기구를 잡고 있던 그 분의 손과 지쳐 보이지만 묵직한 등을 보고 있었던 것 같다. 이후 잠깐씩 얼굴을 뵐 기회가 있었지만 그 날이 아마도 가장 오랫동안 감독님과 함께 시간을 보낸 마지막 날이었을 것이다. 감독님이 세상을 떠났다. 사소한 순간들이지만 그 분과의 만남은 여전히 강렬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영화를 보며 그 분을 떠올리게 될 것이다. 여전히 감독님이 극장의 어둠 한 구석에서 영화를 보고 계실 것만 같다.
(김성욱)

* 프레시안의 '상상의 시네마테크'에 쓴 글이다. 감독님은 시네마테크에 큰 애정이 있으셨고, 이 일의 중요성에 대해 다른 자리에서도 말씀을 많이 하셨다. 영화를 보시던 감독님의 모습이 떠올라 무언가 글을 쓰고 싶었다. 하지만, 내가 기억하는 것들은 사실 많지 않다. 아주 조그만 기억의 조각들 뿐이다.

* 사진들은 모두 '하우스 콘서트'에서 관객과의 대화를 하시던 모습이다. 서울아트시네마에서 몇 차례 상영회가 있긴 했지만 제대로 감독님의 회고전을 진행하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다. 아마도 영상자료원이나 국제영화제에서 보다 충실하게 이런 행사를 진행할 수 있지 않았을까.
 
* 예전 안국동 시절인 2003년에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오발탄>의 상영후에 극장에 오셨던 감독님과 근처의 음식점에서 저녁식사를 함께 했었다. 그 때, 두 어잔의 술을 비우시고는 감독님은 노래를 부르며 즐겁게 춤을 추셨다. 동석했던 사람들 중에 관객으로 왔던 젊은 청년이 한 명 있었다. 감독님이 그에게 '자네는 뭘 하고 싶나'라고 묻자 '전, 영화감독이 되고 싶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러자 감독님은 '그래, 자네는 영화를 몇 편이나 봤나? 어떤 영화들을 봤어? 열 번 이상 본 영화가 있나'라고 물었다. 감독님의 질문은 단호했고, 가볍게 이야기를 나눌 때의 표정과는 사뭇 달랐다. 젊은 청년은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같은 길을 가려는 젊은이에게 감독님이 보인 날카롭고 진지한 표정은 잊을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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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크 타티의 장편영화 데뷔작인 <축제일>은 우편배달부를 주인공으로 모던한 사회의 속도를 그가 어떻게 희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는가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우편배달부로 분한 타티는 효율성이 지배하는 어떤 사회의 내면을 질주한다. 제복을 입고 자전거를 타고 운송기계를 활용해 우편배달부는 공동체의 감정을 이어주는 편지를 전달한다. 그는 이미 1936년 르네 클레망의 <오른쪽을 조심해>라는 영화에서 우편배달부의 캐릭터를 염두에 두고 있었다. 10년이 지난 후에, 타티는 우편배달부를 주인공으로  <우편배달부 학교>라는 단편을 만들기도 했다. 이 단편은 1943년 무렵, 타티가 비시정권 하에서 독일에의 협력과 망명 사이에서 고민하다, 친구인 극작가 앙리 마르케와 비점령지대인 생 제베르라는 마을에 내려가서 그곳에서 은둔하다 만났던 시골 사람들과의 교감에서 시작됐다. 전쟁이 끝난 후에 타티는 파리로 돌아와 앙리 마르케와 공동으로 1946년에 영화의 각본을 썼고, 단편을 만들었다.


<축제일>은 <우편배달부 학교>의 에피소드를 계승하는 작품으로, 두 가지 부분으로 나뉘어져 있다. 그 하나는 떠돌이 흥행사들이 마을에 도착해 벌이는 에피소드이고, 다른 하나는 시골의 작은 우체국의 우편배달부 타티가 겪는 우스꽝스런 소동이다. 그는 천막극장에서 상영된 비행기와 첨단 운송기계를 동원한 미국의 합리적 우편시스템에 고무되어 현대적인 시간체계에 적응해 편지를 배달하려 애쓴다. 그는 합리성, 속도와 경쟁을 벌이려 한다.


타티는 이 영화를 1947년 5개월에 걸쳐 로케이션 촬영을 했다.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들 대부분은 비전문적인 마을 주민들로, 놀랍게도 그는 당시 이 영화를 프랑스에서는 최초로 톰슨컬러라는 컬러영화로 만들 생각을 했다. 실제로 촬영단계에서 타티는 두 대의 카메라로, 하나는 흑백으로 다른 하나는 컬러로 촬영했지만, 컬러의 결과에 만족하지 못했기에 영화 개봉시에는 흑백버전으로 상영하게 됐다(이번 ‘회고전’에서 상영하는 버전은 오랫동안 비밀에 가려져 있었던 컬러버전이다.) 영화는 마을에 흥행사들의 대열이 들어오는 것으로 시작해, 일종의 축제가 벌어지고 이어 그 축제가 종결을 맞는 것으로 끝을 맺는다. 이러한 구성은 <윌로씨의 휴가>에서 휴가철에 벌어지는 에피소드를 그려내는 방식과 닮았다. 앙드레 바쟁이 말한 ‘시에스타의 시간’을 표현하는 것이 타티의 주된 목표인 것이다.


이 영화는 또한 무대와 영화의 결합으로도 이채롭다. 영화의 장면들은 어떤 무대극처럼 보이기도 하는데, 그래서 영화의 대부분의 장면은 롱쇼트로 일관되어 있다. 타티는 화면의 넓은 영역에서 마을 주민들의 모습, 그들의 숨결, 영혼을 지극히 객관적인 방식으로 표현하고자 했다. 이러한 구성은 코미디에 적합한 것이지만, 그럼에도 이 영화에는 개그라던가 희극이라는 범주에 완벽하게 포착되지 않는 영상들, 순간적인 장면들이 들어가 있다. 앙리 루소나 라울 두피의 그림들을 떠올리게 하는 이 영화는 인간과 사물에의 예찬, 마을의 생생한 풍경과 영혼을 표현하는 것으로 고다르의 말을 빌지 않더라도 전후 프랑스 영화계에서 나온 최초의 모던한 영화로 손꼽을 수 있겠다.



<축제일>에서 엿보이는 모던한 세계와의 충돌은 1958년작인 <나의 삼촌>에서 보다 분명하게 표현된다. 이 영화는 타티의 영화중 가장 위트가 넘치는 영화이자 윌로씨의 독특한 캐릭터를 가장 잘 묘사한 작품이다. 타티는 이 영화에서 프랑스의 소도시를 배경으로 현대적인 삶이 지닌 비인격성, 무미건조함, 황폐함을 풍자한다. 이제 윌로씨는 채플린이 <모던 타임즈>에서 그랬던 것처럼 현대적인 삶의 장치들과 싸운다. 거대한 눈처럼 보이는 창문, 철근으로 만들어진 괴상한 건축물, 모던한 가구, 자동차들이 즐비한 모던한 환경에서 윌로씨의 소심한 행동은 <윌로씨의 휴가>(53)에서처럼 무정부적인 혼란을 만들어낸다. 흥미로운 것은 <나의 삼촌>이 프랑스 누벨바그가 태동하기 바로 직전의 작품이라는 점이다. 세르즈 다네는 타티의 영화가 프랑스 역사(혹은 영화사)와 관련한 특정한 역사적 순간을 특징짓는다고 말한바 있다. 타티는 프랑스 누벨바그가 본격적으로 가동하기 직전인 1958년에 <나의 삼촌>을 만들었다. 이 영화는 그런 점으로 무성 코미디와 프랑스 누벨바그, 팝과 아방가르드를 연결하는 작품이자 프랑스의 모던한 사회 환경을 비판하는 작품이었다. 68혁명 직전에 만들어진, 일종의 무정부적 혼란을 그린 <플레이타임>(67)은 그런 점에서 고다르의 <주말>보다 더 선구적이다(고다르는 <플레이타임>에 자극되어 <주말>의 긴 자동차 행렬의 시퀀스를 만들어냈다.)



자크 타티의 현대사회에 대한 보다 강렬한 표현은 <플레이타임>을 거쳐 <트래픽>(71)에서 정점에 달한다. 자동차의 발달과 커뮤니케이션의 곤란함이 영화의 주제다. 영화에는 곳곳에서 일상적인 정체나 다양한 자동차 사고가 등장한다. 타티는 <트래픽>에서 자동차의 움직임을 코미디의 운동과 연결하면서 동시에 현대 사회를 풍자한다. 찰리 채플린이 20세기 초두, 미국의 자동차 생산방식을 혁신한 ‘포드주의’와 ‘컨베이어 시스템’을 <모던 타임즈>에서 인간의 기계화와 소외로 풍자했다면, 타티는 20세기 후반의 소비자본주의 사회와 현대인의 모습을 자동차의 단조로운 운동과 그것의 정체, 사고로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 자동차의 움직임은 영화의 운동과 닮았다. 자동차는 같은 속도로 움직이는 바퀴의 움직임에 따라 만들어진다. 이것은 기차와 더불어 영화의 움직임과 유사한 것으로 이야기되어 왔다. 동시에 자동차는 움직임과 속도뿐만 아니라 교통과 소통을 만들어냈다. 영화 역시 움직이는 영상으로 대중적인 소통을 이뤄낸다는 점으로, 영화와 자동차는 태생적으로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었다. <트래픽>에서 타티가 표현하는 것처럼, 현대인들은 자동차를 타고 움직이면서 하나의 공간에서 다른 장소로 여행을 가거나, 일을 하기 위해 움직인다. 다른 한편으로, 현대인들은 대부분의 시간을 차안에서 보내면서 담화를 나눈다. 차에 동승해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고, 차창 밖으로 스쳐 지나가는 풍경을 쳐다보기도 한다. 자동차는 그래서 단순한 운송수단이 아니라 생각하고 대화를 나누는, 즉 커뮤니케이션의 수단이기도 하다.



타티는 <트래픽>에서 도로 위에 가득한 자동차들의 행렬, 자동차 교통사고를 보여주면서 현대 사회의 일반적 특징을 풍자한다. <트래픽>에 등장하는 모든 사람들은 서로 운행하는 자동차는 다르지만 모두 도로를 질주하려는 동일한 열망에 사로잡혀있다. 하지만 이 때문에 역설적으로 교통 정체가 발생한다. 교통 정체는 현대 사회의 진보가 지닌 역설적인 상황을 표현한다. 참을성 없는 여행자들에게 자동차는 빠르고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게 하는 교통수단이 아니다. 반대로, 현대인들을 구금하고 감금하며, 위험한 세계로 안내하는 기계가 자동차이기도 하다. <트래픽>은 그런 현대사회의 특징, 부조화, 불협화음, 결핍을 표현한다. 교통(트래픽)의 장애와 소통(커뮤니케이션)의 곤경이 함께 하는 것이다. 인간의 소외와 고독, 나아가서 후기 자본주의 사회의 위기를 이렇게 경이롭게 표현한 코미디를 만나기란 쉽지 않다. (김성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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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 5월 16일 토요일 7시 30분
장소: 서울아트시네마
5월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열리는 ‘작가를 만나다’에서는 <다섯은 너무 많아>(2005), <나의 노래는>(2007)등의 작품으로 잘 알려진 안슬기 감독을 만나는 시간을 마련합니다. 현직 교사인 안슬기 감독은 방학 때마다 찍기 시작한 영화가 벌써 3편에 달해 이제는, 중견 감독이라는 명칭이 어색하지 않은 이 시대의 작가로 자리매김했습니다. 단편 <사랑아니다>(2002), (2004)로 영화감독으로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시작한 감독은 <다섯은 너무 많아>로 장편 데뷔합니다. 이 작품은 생면부지의 사람들의 가족 만들기라는 발랄한 주제의식과 안슬기 감독 특유의 유쾌한 시선으로 진지한 독립영화계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켰습니다.
그의 두 번째 장편 영화 <나의 노래는>은 전작 <다섯은 너무 많아>와 같은 선상에 있는 작품입니다. 스무 살의 문턱에 막 들어선 주인공 희철은 손자보다 종교가 더 중요한 할머니와 불한당 같은 아버지가 유일한 가족으로 앞이 보이지 않는 소년입니다. 그렇게 미래에 대한 아무런 희망 없이 하루하루를 견디던 중 우연히 단편영화 주인공이 되고, 그 속에서 영화라는 한 줌의 꿈을 품은 자신의 모습을 발견합니다. 할머니는 자신만의 새 인생을 위해 가출했고, 아버지는 여전히 불한당이지만, 그는 스무 살의 희망을 놓지 않습니다. 영화 <나의 노래는>는 홀로서기를 시작한 이 땅의 모든 스무 살, 꿈과 희망으로 현실에 꿋꿋이 두 발을 딛고 서 있는 청춘들의 노래입니다. 생면부지의 사람들이 좁은 단칸방에서 생활하며 진짜 가족보다 더 큰 가족으로 거듭나 듯, 아무 희망도 품지 못했던 희철이 한 줌 꿈을 움켜지고 성장하는 모습은 사람에 대해 긍정하는 따뜻한 마음의 소유자 안슬기 감독이 빚어놓은 것들입니다.
이번 ‘작가를 만나다’ 프로그램 역시 상영 후에 안슬기 감독과 함께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관객과의 대화’ 시간이 마련되어 있습니다. 너무 진지하지도 너무 어렵지도 않지만, 그 속에서도 우리는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습니다. 가족, 청춘, 사랑, 꿈, 열정과 희망이라는 아름다운 단어들을 영화로 빚어놓은 안슬기 감독과 만나는 시간! 5월 ‘작가를 만나다’ 프로그램에 관객 여러분의 많은 참여 바랍니다.


*감독 안슬기
1970년생으로 고려대학교 수학교육과를 졸업하고 현재 고등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현직 교사로, 방학 때면 어김없이 영화를 만드는 괴짜 감독이다. 한겨레신문사 문화센터 영화제작학교와 민예총 심산의 시나리오 워크샵을 수료하면서 감독을 준비해오다가, 단편 <사랑 아니다>(2002), (2003)가 각종 영화제에 출품하면서 주목을 받았다. 2005년 장편 데뷔작 <다섯은 너무 많아>가 2005년 부산국제영화제, 전주국제영화제에 소개된 뒤 작은 영화로써는 보기 드물게 개봉관을 전국 10개로 확대 상영되어 국내외에서 호평받았다. 그리고 2년 뒤, 두 번째 장편영화 <나의 노래는>으로 다시 관객들을 찾았다. 이번에는 감독 자신과 늘 함께하는 존재, 학교에서 늘 만나는 아이들을 카메라에 담았다.

*Fimography
단편
<고지식한 자판기>(1999)
<가장자리>(2000)
<생활대백과사전>(2001)
<사랑아니다>(2002)
<결혼이야기>(2003)
(2004)

장편
<다섯은 너무 많아>(2005)
<나의 노래는>(2007)
<지구에서 사는 법>(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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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7일, 7시 30분에 데이비드 린의 <밀회> 상영 후에, <사과>의 강이관 감독의 시네토크가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열립니다. <밀회>는 평범한 주부인 로라와 중년의 의사 알렉의 불륜의 사랑을 그린 영화입니다.

로라와 알렉은 기차역의 작은 카페에서 만나 사랑에 빠진다. 이들은 매주 
목요일마다 만남을 갖게 되면서 서로 사랑을 느끼지만, 가정에의 책임으로 죄책감에 시달리다 결국 헤어진다. <밀회>는 이 둘의 담백하면서도 심플한 사랑 이야기를 그린다.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했고 영국영화연구소(BFI)가 뽑은 ‘영국 영화 베스트 100’에서 2위를 차지할 정도로 <밀회>는 영국인들, 그리고 데이비드 린의 마니아들에게 오랫동안 사랑을 받은 영화다. 영화의 중심적 문제인 사회적 책임과 개인의 열정간의 충돌은 린의 영화에서 반복되는 탐구의 주제다. <정열적인 친구들>이나 <여정>에서 이와 동일한 주제가 반복되고 변주된다. 원작자인 노엘 코워드가 쓴 짤막한 ‘스틸 라이프’란 희곡이 원안으로, 기차역에서의 두 남녀의 짧고 은밀한 만남과 헤어짐이 이야기의 전부였다. 이야기의 마지막에서 영화가 시작해 이전에 있었던 일이 플래시백으로 보이고, 다시 처음으로 되돌아가는 영화의 시간적 구성은 린의 착상에서 비롯된 것이다. 로라의 내레이션을 들으면서, 동시에 플래시백으로 과거로 되돌려지며 우리는 그녀의 마음에 남아 있는 과거의 회환, 헤어짐으로 귀결될 사랑의 비극을 더 통렬하게 느끼게 된다. 연인들의 쉽게 드러낼 수 없는 정념은 어둑한 기차역과 플랫폼의 공간, 지나가는 기차가 간헐적으로 비추는 빛의 파열, 그리고 무엇보다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 2번’의 고상하고도 열정적인 선율로 애잔하게 말해진다. 로라는 "나는 사랑에 빠진 평범한 여인이다. 나처럼 평범한 사람에게 이런 폭력적인 비극이 일어나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어"라고 술회한다. 연인들의 들뜬 열망이 좌절과 낙심으로 귀결되는 페시미즘의 세계가 절절할 만큼 통렬하다. (Hul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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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재미있게도, 2009.05.07 07:32 신고

    이런 멜로드라마 장르(일 거라고 생각..)의 화자는 항상 여성이었던 것 같아요. 결국에는 실패한, 혹은 극복되지 못한, 애절하고 통렬하고 찐한 연애담을 서툴지 않게 차분히 들려주는 건 언제나 큰언니들이었어...라고. 보러 가기 전에 드는 이런저런 잡념을 여기다 쓰고 있는 건데요^-^ 보고나면 이야, 저 언니들은 실패로 끝난 사랑에 대해 나처럼 무기력하거나 무능해지지 않는구나하는 감탄과 위로받는 기분이 또 들까...요? 어쩌면 영화라서 가능한, 플래시백이라는 회고 헝식의 승리일지도 모르겠지만. 시간적 거리가 생기면 감정적 거리도 함께 연동해서 덜 타이트하게 간다.. 라던가.



    그런데. 실은 플래시백 구성이라는 얘기를 보자마자 연상된 영화가 한 편 있는데요. 분위기만 생각나고 감독도 배우도 기억이 나지 않고 줄거리도 머리 속에서 완전 시망;; 아무리 홈피 아카이브 뒤적여봐도 뭔지 모르겠는데 아트시네마에서 틀었던 거니까 꼭 아실 것 같아서 좀 여쭐게요! 그러니까 내래이션과 동반된 플래시백 구성으로 되어있어요. 194~50년대 헐리우드의 B급 범죄물이거나 느와르물이구요. 아직 흑백이고, 어쩐지 의외로 투르뇌르가 아닐까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아닌 것 같아요. 낙원동으로 옮긴 후의 프로그램이구요. 기억나는 장면은 주인공 남자가 벽난로가 있는 거실 마룻바닥에 널부러지듯 앉아있고 총에 맞았나? 암튼 덥고 힘들고 그래서 땀을 무척 흘리고 있어요. 거의 실내에서 아지랑이가 피어 오를 기세? ㅋㅋ 굉장히 리얼한 설정이지만 이상하게 몽롱한 분위기로 연출되어 있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여기서 이 남자가 자신이 지금 처한 상황에 이르기까지의 일을 플래시백으로 회고하기 시작하는 거죠. 내용 중에 돈이 없어서 자동차로 미국을 횡단한 것도 있었던 거 같아요. 간이 모텔 장면도 나오는데 동행한 다른 남자랑 함께 였던 것 같구요. 일단 빌리 와일더의 <이중배상>이 제일 먼저 연상되었고. 미녀 팜므 파탈이 나왔던 것도 같고 아닐지도 모르고... 전날 밤을 샜던건지 졸면서 봤던 영화라 기억이 좀 뒤죽박죽인데요. 다만 저 몽롱한 실내의 장면이 너무 강렬해서 저 장면과 상황만으로도 영화를 참 좋게 봤던 것 같아요. 잊혀지지 않는 영화예요-물론 본 부분에 한해서겠지만^0^ 저는 이 아침에 다른 데 어디 물어볼 곳이 없답니다. 알고 계시면 너무 기쁘고 감사할 것 같아요. 알려주세요. 무슨 영화인가요?

  2. 재미있게도, 2009.05.07 18:56 신고

    아, 이런. 이제 저도 그 장면이 기억나요. 감사드려요! 근데 에드가 울머인데요 선생님. 지금 검색해보니 2006년에 3달 간격을 두고 투르뇌르 회고전과 에드가 울머 회고전이 있었네요....

    그럼 남자가 혼자 죽어가고 있던 게 아니었던 건가요... 암튼 정말 감사해요!! *ㅁ*

  3. Hulot 2009.05.08 06:30 신고

    에드가 울머의 <우회Detour>를 말하는 군요. 처음 시작하면, 자동차를 타고 와서 레스토랑에 들어오는 것으로 시작하죠. 갑자기 주크박스에서 음악이 흘러나오자 '제발, 저 노래는 그만!'하고 화를 내고는, 절망적으로 과거를 회상하면서 그가 겪은 최악의 상황들이 들려지기 시작합니다. 예전 '자크 투르뇌르 회고전'을 할때 상영한 적이 있어요. 단, 5일 만에 제작한 영화로 유명하죠..

  4. Hulot 2009.05.08 13:12 신고

    기억의 실수가 발생하네요.. 에드가 울머인데.. 남자가 혼자 죽어가는건 아니었습니다..

  5. fnwj 2009.05.09 22:35 신고

    계속 잠입자의 자막이 떠올라 재밌었습니다 : 열정은 내적 에너지가 아니라 내부와 외부 세계의 마찰일 뿐이다
    로맨스나 사랑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어요



박희순, 오광록, 이문식, 임원희 등 충무로 개성파 배우들이 정장을 빼입었다.


제일모직 이탈리아 정통 신사복 빨질레리(Pal Zileri)는 비영리 문화공간인 시네마테크를 후원하기 위해 바자(BAZAAR)와 함께 화보 촬영을 진행했다고 21일 밝혔다.

올해가 3회째 화보로 1회엔 영화감독들, 2회엔 감독과 배우들이 그 대상이었다. 3회인 올해는 한국 영화계를 빛낸 개성파 배우 15인이 주인공이다.

한국시네마테크협의회는 영화 문화의 다양성을 보장할 토대를 확장하기 위해 2002년 1월 전국 15개 시네마테크 단체들이 연합해 교육과 문화를 목적으로 영화를 상영하는 비영리 민간 시네마테크 전용관 서울아트시네마를 개관한 바 있다.

이번 화보 촬영에 참여한 영화배우 박희순은 "영화계를 살리고자 하는 비영리 단체 시네마테크 활동에 뜻을 함께해 지난해에 이어 올해까지 후원 화보에 2년 연속 참여하게 됐다"며 "꾸준한 후원을 진행하는 신사복 브랜드 빨질레리처럼 앞으로도 대한민국 영화계 발전을 위해 많은 관심을 부탁한다"고 말했다. 촬영된 화보는 <바자> 5월호를 통해 공개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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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비드 린의 영화를 보지 않고 어린 시절을 겪은 이는 아마 거의 없을 것이다. 올드팬들이라면 어린 시절 텔레비전을 통해 <밀회>, <올리버 트위스트>, <여정>같은 작품들을 보았거나, 70mm 대한극장 시절에 <아라비아의 로렌스>를, <닥터 지바고>나 <콰이강의 다리>를 지금은 사라진 금성극장 등의 옛 극장에서 보았던 경험을 공유하고 있을 것이다. 데이비드 린은 고전기 작가이지만, 다른 작가들의 경우와 달리 그의 영화는 세대를 넘어 동시대적인 영화 체험의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 데이비드 린의 '회고전'은 그래서 마치 영화의 원초적 체험, 그것의 공유의 흔적을 찾아 나가는 여정처럼 느껴진다.  

서울아트시네마에서는 예전 소격동 시절(아트선재센터)에 마이클 파웰의 회고전과 더불어 데이비드 린 감독의 영국시절의 영화들을 일부 상영한 바 있다. 미리 말하자면, 이번 4월 말부터 열리는 '데이비드 린 회고전'은 그 때 상영하지 못했던 영국시절의 작품들과 미국으로 건너가 만든 대하 서사극을 포함해 13편이 상영되는 행사다. 사실, 지난해 데이비드 린 감독(1908~1991)의 탄생 100주년을 맞이해 전세계적으로 대대적인 회고전이 열린 바 있었다. 이번, 시네마테크에서의 '데이비드 린 회고전'은 그런 점으로 데이비드 린의 탄생 백주년을 기념하는 일환이자 올해 3월 29일에 사망한 영화음악가 모리스 자르를 추모하는 행사이기도 하다. 잘 알다시피, 모리스 자르는 데이비드 린과 함께 <아라비아의 로렌스>, <닥터 지바고>, <라이언의 딸>등의 작품에서 뒤어난 음악을 들려주었던 영화음악가이다. 

데이비드 린은 대하 역사극에 관한한 능가할 만한 상대가 없다고 평가받는 긴 호흡의 대작을 만든 감독이다. 하지만 그의 영국 시절의 작품은 섬세한 드라마들이다. <밀회>나 <위대한 유산>, <올리버 트위스트>뿐만 아니라 잘 거론되지 않았던 <즐거운 영혼>이나 <정열적인 친구들>과 같은 영화들도 주목을 요한다. 

* 자세한 일정은 곧 서울아트시네마의 홈페이지나 카페에 소개될 것입니다. 상영작과 특별행사만 간력하게 이번엔 소개해 드릴까 합니다.  


■ 상영작

인도로 가는 길 A Passage to India (1984 163min 영국/미국 Color 35mm)
라이언의 딸 Ryan's Daughter (1970 195min 영국 Color 35mm)
닥터 지바고 Doctor Zhivago (1965 197min 미국 Color 35mm)
아라비아의 로렌스 Lawrence of Arabia (1962 190min 영국 Color 35mm)
콰이강의 다리 The Bridge on the River Kwai (1957 161min 영국/미국 Color 35mm)
여정 Summertime (1955 100min 영국/미국 Color 35mm)
매들린 Madeleine (1950 114min 영국 B&W 35mm)
정열적인 친구들 The Passionate Friends (1949 95min 영국 B&W 35mm)
올리버 트위스트 Oliver Twist (1948 116min 영국 B&W 35mm)
위대한 유산 Great Expectations (1946 118min 영국 B&W 35mm)
밀회 Brief Encounter (1945 86min 영국 B&W 35mm)
즐거운 영혼 Blithe Spirit (1945 96min 영국 Color 35mm)
깁슨 가족 연대기 This Happy Breed (1944 115min 영국 Color 35mm)


■ 특별행사
5월 7일 (Thur.) 19:30 <밀회> 상영 후 시네토크- 강이관(영화감독)/ 진행 김성욱
5월 9일 (Sat.) 14:30 <아라비아의 로렌스> 상영 후 강연- 김영진(영화평론가)
5월 10일 (Sun.) 14:00 <콰이강의 다리> 상영 후 시네토크- 오승욱(영화감독) / 진행 김성욱
5월 10일 (Sun.) 18:30 <라이언의 딸> 상영 전 영화소개- 오승욱(영화감독)
5월 12일 (Tue.) 19:30 <정열적인 친구들> 상영 후 시네토크- 김성욱(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래머)





* 상영작 시간표가 나왔습니다. (자세한 정보는 시네마테크 홈페이지를 참고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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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아트시네마 CMS후원회원 1,000명 모집 캠페인 4월 무료상영
& 시네마테크 연속포럼2






한국시네마테크협의회는 지난 3월 ‘서울아트시네마 CMS후원회원 1,000명 모집 캠페인: 시네마테크 필름 라이브러리 무료 상영회’를 시작으로 2009년 한 해 동안 ‘서울아트시네마 CMS후원회원 1,000명 모집 캠페인’을 벌이며 매월 한 번의 무료상영회와 시네마테크와 관련한 문제를 살펴보는 연간 기획 ‘시네마테크 연속포럼’을 개최합니다. 매월 한 번 마련하는 무료상영회는 서울아트시네마의 재정 안정과 상영 공간의 안정성을 확보하기 위해 벌이는 연중 후원 캠페인의 일환으로 마련하는 자리입니다.

4월 캠페인 상영회에서는 게오르기 다넬리야의 <나는 모스크바를 걷는다>를 상영하고 3월에 이은 두 번째 ‘시네마테크 연속포럼’을 진행합니다. 4월 포럼에서는 ‘비평공간: 시네마테크와 영화비평’이라는 주제로 시네마테크와 영화 비평의 문제를 짚어볼 예정입니다. 시네마테크, 그리고 영화 비평과 관련한 문제에 관심 있는 분들은 누구나 참여하실 수 있습니다. 시네마테크를 사랑하는 관객 여러분의 많은 지지와 참여를 기대합니다.

■ 일시: 2009년 4월 18일(토) 15:30분 <나는 모스크바를 걷는다> 상영 후
           시네마테크 연속포럼2
■ 포럼: ‘비평공간: 시네마테크와 영화비평’
           사회 - 김성욱(영화평론가, 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래머)
           토론 - 김영진(영화평론가, 명지대 교수), 변성찬(영화평론가),
                    장병원(전 필름2.0 편집장)
■ 주최: (사)한국시네마테크협의회
■ 장소: 시네마테크 서울아트시네마(종로3가역 낙원악기상가 4층)
■ 문의: 02-741-9782 www.cinematheque.seoul.kr
■ 관람료: 4월 18일 15:30분 상영에 한해 선착순 무료 입장
              (만석일 경우 추가 입장 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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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모스필름 회고전'이 이제 중반을 넘기고 있다. 1950년대 이후의 영화들, 특히 '해빙기'라 불리는 시기의 작품들을 소개하고 싶은데, 그 중의 한 편이 게오르기 다넬리야의 <나는 모스크바를 걷는다>(1963)이다. 이 영화는 아마 이번 회고전에서 소개되는 영화들 중 <제 3의 소시민>과 더불어 가장 감미롭고 아름다운 작품 중의 하나에 속할 것이다. 같은 시기 타르코프스키나 미하일 칼라토초프의 장엄하고 엄숙한 주제, 탁월하고 강력한 영상과 비교하면 피아노 소품같은 작품이다. 그런데 이게 꽤나 활기차고 발랄해서 묵직한 감동과는 다른 감각적 환희를 선사한다.  

모스크바의 평범한 젊은이들의 일상, 그것도 거의 하루의 이야기가 영화의 전부다. '모스크바, 도시의 교향곡'같은 식의 영화랄까. 영화가 활기차고 발랄한 것은 주인공들이 젊을 뿐만 아니라, 영화를 만든 이도 젊고, 작법도 젊기 때문이다. <위선의 태양>, <러브 오브 시베리아>로 유명한 영화감독 니키타 미할로프가 모스크바를 하루 종일 소요하는 젊은 주인공 콜랴 역을 맡아 열연한다. 그는 광산 노동자로 우연히 시베리아에서 온 볼로야에게 길을 안내하는 역할을 한다. 콜랴는 레코드 가게에서 일하는 알레나에게 마음을 두고 있다. 그런데 작가가 되려는 볼로야가 그녀에게 관심을 보이면서 내심 초조해 한다. 알레나 또한 볼로야에게 은근히 마음이 끌리고 있던 탓이다.


프랑스 누벨바그 풍의 젊은이들의 소소한 연애담이 결국 줄거리의 전부인 셈인다. 사실 영화의 주된 사건은 극적이라기보다는 즉흥적이고 우연적이며 산발적인 에피소드들이다. 가령 영화는 짧은 프롤로그에서 당돌하게 시작한다. 한 여자가 왠지 모를 기쁜 마음에 노래를 흥얼거리며 가볍게 춤을 추듯 걸어간다. 그녀의 모습이 유리 창에 비추어 보이는데, 그 창문을 반사되어 이 곳이 공항임을 알게 된다. 그 반대편에서 한 남자가 물끄러미 그녀를 지켜본다.(나중에 그가 영화 속 주인공 중의 한명인 볼로야였음이 밝혀진다.) 그는 기쁜 표정의 여인에게 뭐가 그리 행복한가, 라고 묻는다. 그녀는 남편을 공항에서 기다리고 있는 중이라 말한다. 볼로야는 그게 그리도 좋으냐고 의아해 한다. 이 정체 모를 여인의 기쁨은 누군가를 기다릴 때의 순전한 기쁨을 표상하는 것이다. 근데 정말 그게 그리도 기쁘고 행복한 것이었을까. 그건 경험하지 않으면 모를 일이다. 달리 말하자면 이 이미지는 전달 불가능한 경험, 감각의 표상이다.

이 프롤로그는 답이 제시되지 않은 질문처럼, 일종의 제유법처럼, 혹은 거의 환영이라 부를 법한 갑작스런 출현의 이미지다. 이 첫 장면의 불가해한 느낌 때문에 영화 초반부의 이야기 전개가 잘 안들어 올 정도였다. 프롤로그에 이어지는 장면에서 하나 둘씩 사건과 장면이 더해진다. 첫 장면이 지나친 뺄셈이었다면 이어지는 장면은 덧셈이다. 그도 그럴것이 프롤로그에 이어 곧바로 광산노동자인 콜랴(그가 영화의 진정한 주인공처럼 처음 제시된다)가 아침에 퇴근하는 모습으로 넘어가면서 그의 움직임에 따라 모스크바의 일상 풍경이 하나, 하나씩 드러난다. 강에서 보트를 즐기는 사람들, 전철안에서 만난 우연한 여행객들, 길거리의 풍경들, 공원을 산책하는 사람들, 쇼핑몰에 몰려든 사람들이 보인다. 이러한 풍경은 마치 로메르 영화에서 자주 등장하는 일종의 ‘구문론적 이미지phrase images’처럼 보이기도 한다. 콜랴가 모스크바를 돌아다니는 것으로 조금씩 사건이라 부를 법한 일들이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것이다.  

가령, 영화의 초반부에서 거리를 돌아다니던 콜랴와 친구 사샤(그는 애인과 결혼하기 위해 입영을 연기하려 한다)는 도로 공사를 하는 사람들에게 ‘여기에 혹시 보물이라도 숨겼나요’라고 묻는다. 이어 이들은 일본인 관광객을 실은 택시운전사로부터 통역자의 역할로 관광객을 목적지까지 안내해줄 것을 부탁받아 택시에 합승을 하게 되고, 이어 쇼핑몰에서 우연히 형수가 딴 남자와 만나는 순간을 목격하고, 거기서 우연히 젊은 작가 볼로야를 다시 만나 레코드 가게에서 일하는 알레나를 만나러 간다. 이런 단편적인 에피소드들의 우연적인 연결은 영화 속의 모든 사건에 현전성의 효과를 만들어낸다. 모든 일들이 봄의 아지랑이처럼, 얼굴에 피어오르는 미소처럼 출현한다.(또 한번의 제유법적 이미지라 부를 법한 것은 비가 내리는 가운데 맨발로 걸어가는 한 여인의 모습이다. 이는 영화 첫 장면과 대구를 이루는 것으로 보인다.) 타르코프스키의 <이반의 어린시절>에서 탁월한 촬영을 선보인 바딤 유소프가 마찬가지로 이 영화에서 인간의 얼굴을 한 사회주의의 풍경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프롤로그만큼 영화의 라스트 또한 인상적이다. 헤어짐의 서정적 순간을 포착하는데, 이 때 콜랴는 프롤로그에 등장했던 여인처럼 혼자 흥얼거리며 전철을 돌아다닌다. 프롤로그가 공항이었다면 에필로그는 전철역에서다. 우연한 방문객, 누군가의 기다림과 떠남이 있는 장소다. 자크 드미의 영화를 볼 때의 그런 느낌이 영화의 마지막에 담겨 있다. 콜랴의 노래처럼 말하자면, 이 영화는 영문도 모르고 기분이 좋아지는 그런 영화다. 마치 한 여름 빗줄기가 더위를 식혀줄 때, 많은 이들 속에서 아는 사람의 얼굴을 볼 때, 그 행복한 눈빛을 볼 때 느끼는 이상한 비애와 아련한 기쁨을 느끼게 된다. 영화가 끝날 때 탄식이 절로 나올만큼 이 영화는 탁월한 걸작이다. (김성욱)


* 오늘(화요일) 5시 30분에, 그리고 이번 주 토요일 3시 30분에 마지막으로 이 영화가 상영된다. 4월 18일, 토요일에는 무료로 이 영화를 볼 수 있다. 서울아트시네마의 후원회원 모집을 위한 무료상영회의 날이다. 이 영화의 상영 이후에 '시네마테크 연속포럼2 - 시네마테크와 영화 비평'이란 주제로 포럼이 또한 열린다. 
  

* 영화의 촬영은 바딤 유소프로, 그는 동시대 타르코프스키의 <이반의 어린 시절>을 촬영했다. <이반의 어린 시절>에서 초현실적인 화면의 몽타주와 표현주의적 조명, 과감한 앵글과 광각의 활용, 그리고 움직임이 돋보였다면 이 영화에서는 20년대 다큐멘터리, 혹은 유럽식의 시네마 베리테에 가까운 사실적인 촬영이 돋보인다.

* 중심적인 테마와 그것의 변주가 영화의 구조적인 형식이라 말할 수 있다. 지극히 음악적인 구조를 갖고 있는 영화라는 말이다. 마치 영화 내내 반복되어 최종적으로 노래로 완성되는 음악처럼 말이다. 자크 타티 풍의 음악은 도시의 일상, 풍경, 인물들의 삶을 반복적인 리듬으로 연결한다. 그런데 모든 것은 반복된다. 한 번은 행위로 또 한번은 관조로, 혹은 한 번은 응시로 다른 한 번은 행위로, 그런 식으로 운동에서 정감으로, 혹은 정감에서 운동으로의 이전이 있다. 

* 젊은이들은 초조하다. 사랑을 믿지 못하고, 동시에 우연적이고 갑작스런 사랑의 도래에, 혹은 아직 시작도 못한 사랑의 떠남에 당혹해 한다. 결국, 이 영화는 시간에 관한 영화이기도 하다. 과거에서 여전히 남아 있는 잔존의 흔적들, 우연적이고 찰나적인 현재, 그리고 알 수 없는 미래가 있다. 젊은이들은 60년대 트뤼포나 고다르, 혹은 스콜리모프스키의 영화속 인물들이 그러하듯 뛰어다닌다. '우리 뛰어갈까'. 마치 아이들 처럼. 그리고는 질문한다. 그녀는 그가 군대를 갔다 올 동안 기다릴 수 있을까? 그녀는 정말 시베리아로 갈 것인가? 그들의 할머니는 전쟁이 끝날 때까지 애인을 기다렸는데. 미래의 기다림은 젊은이들에게 초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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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4.14 2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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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네마테크협의회가 지난 2월부터 진행된 영진위의 시네마테크의 공모제건과 관련해서 3월 25일 성명서를 발표했습니다. 이 성명서는 한국시네마테크협의회 총회에서 의결된 사항으로 전국적인 시네마테크 단체들이 영진위가 시네마테크 공모전환에 대한 반대의사를 분명히 천명하는 것으로, 시네마테크를 정치적 외압에서 방어하고 부분적인 재정지원을 빌미로 관리 통제하려는 영진위, 혹은 정치적 세력들에 입장을 표명하는 것입니다.

성명서의 요지는 다음과 같습니다. 
    

한시협은 최근 영진위가 시네마테크를 공모로 전환하려는 시도가 시네마테크와의 문화적 합의를 깨는 중대사안이라 판단한다. 민간 영역에서 진행해 왔던 시네마테크 사업을 영진위가 사업비의 일부를 지원하는 형태로 보조해 왔을 뿐인데, 지금 영진위는 마치 시네마테크 사업을 그들의 자체 사업인 것처럼 인식하고 있다. 순수 민간영역의 활동을 영진위가 사업주체가 되어 경쟁 입찰로 전환하겠다는 것은 비상식적인 일이다. 한시협은 전국의 12개 시네마테크 단체들의 협의체로 현재 한국의 시네마테크들을 공식적으로 대변하는 대표성을 지닌 단체이다. 그런데 영진위가 시네마테크에 대한 지원사업의 정당성이 공모제를 통해서 성립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지난 10여 년간의 시네마테크의 활동을 부정하는 몰염치한 태도이다.


영진위는 이에 대한 아무런 대책도 마련하지 않은 채 단지 국정감사 지적 사항이라는 것만을 이유로 공모제를 강행하려 하고 있다. 영진위는 지난해 위원장의 과시욕이 화를 초래하여 다양성영화 복합상영관 추진을 좌초시킨 데 이어 이제는 겨우 자리를 잡아가기 시작한 국내의 민간 시네마테크 활동을 고사시키려고 나섰다.
한시협은 운영예산의 80% 이상을 공적자금으로 지원하는 서구의 시네마테크처럼 영진위가 지원 규모를 확대하라고 요구하고 싶지 않다. 영진위의 문화적인 성숙도가 그에 미치지 못한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네마테크의 지원기관으로서의 기본 역할까지는 망각하지 말 것을 경고한다. 공모제를 강행하는 것은 국내의 시네마테크 활동을 10년 전으로, 아니 그 이상으로 되돌리는 행위임을 영진위는 자각해야 한다.

 


이에 한시협은 문화적 다양성을 심각하게 훼손하며 국내 영화진흥에 걸림돌이 되고 있는 강한섭 위원장을 규탄하며 지금이라도 영진위가 다음과 같이 나설 것을 촉구한다.

 

   첫째, 영진위는 정치적인 외압에 스스로 굴종할 것이 아니라 비전문적인 정치인들과 관료의 일방적 주장에 맞서 시네마테크의 영화다양성을 지키기 위한 노력을 소신 있게 관철하라!

   둘째, 영진위는 적절한 논리도, 근거도 없이 일방적으로 진행된 시네마테크 지원사업의 공모 전환 추진을 즉각 중단하라!

   셋째, 영진위는 시네마테크 사업에 필요한 최소한의 물적, 재정적 지원을 확대하기 위한 구체적인 방안을 마련하라!

   넷째, 영진위는 지난 해 영진위의 잘못된 시도로 좌초된 시네마테크 전용관의 설립에 적극적으로 나서라!

 


한시협은 이와 관련해 영진위가 적극적이고 구체적인 개선책을 제시하지 않을 경우, 전국 시네마테크 단체들은 물론 영화인들, 관객들과 연대하여 공동행동을 전개할 것이다. 아울러 한시협은 시네마테크를 정치나 자본의 논리에 따라 좌지우지하려는 지금의 상황이 영화문화의 위기국면이라 생각해 올 한 해 동안 지속적으로 이러한 문제와 관련한 포럼과 대중적인 논의, 영화인들의 결속을 이뤄내는 활동을 전개해 나갈 것을 결의한다.


 

* 최근 문화관광부는 국립오페라 합창단을 일방적으로 해고하는 만행을  저질렀습니다. 2002년에 창단된 국립오페라단이 처한 상황은 시네마테크가 최근 겪고 있는 위기와 별반 달라 보이지 않습니다. 경제와 정치를 말아먹은 한심한 이명박 정권이 이제 문화예술계 또한 위기로 몰아가고 있습니다.  

한겨레: 광화문에 울려퍼진 '합창단 해체반대' 오페라  


* 영진위 노조 또한 최근 영진위의 파행과 계약직 연구원의 일방적 해고와 관련해 영진위 위원장의 퇴진을 요구하는 천막농성을 벌이고 있습니다. 이와 관련해서는 아래의 기사를 참고하세요.

프레시안: 영진위 조 천막농성 돌입, "강한섭 위원장 사퇴하라" - 거듭되는 파행, 이번엔 부당하게 계약직 해고



* 성명서의 전문은 아래를 확인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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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젠슈테인, 타르코프스키 등

전설적인 러시아 작가들의 영화가 한국을 방문합니다!

1923년에 설립된 러시아 최대의 영화 스튜디오 ‘모스필름’은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거대하고 생산적인 영화 스튜디오로 오늘날까지 중요한 영화기관으로 남아 있습니다. 모스필름은 할리우드에 버금가는 거대 스튜디오로 그 시대에 러시아의 가장 혁신적인 영화감독과 유명 스타들이 참여해 약 3천 편의 영화를 제작했습니다. 세르게이 에이젠슈테인, 미하일 롬, 알렉산더 메드베드킨, 미하일 칼라토초프,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 그리고 구로사와 아키라까지 영화의 창조적인 거장들이 이곳에서 영화를 만들었고, 러시아 영화의 예술성을 보여주었습니다. 이번에 개최될 ‘러시아 모스필름 회고전’은 1920년대 무성영화로 영화사의 교과서로 불리는 에이젠슈테인의 <전함 포템킨>부터 모스필름이 최근에 제작한 카렌 샤흐나자로프의 <사라진 제국>에 이르기까지 러시아 영화의 정수를 최초로 한국에 소개하는 대규모 회고전입니다. 특히 이번 회고전에서는 러시아 영화의 거장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의 영화 5편이 상영됩니다. 그동안 국내에 소개될 기회가 없었던 타르코프스키 감독의 단편영화를 비롯해 <이반의 어린시절>, <안드레이 류블로프>, <잠입자> 등 예술과 영화에 대한 사색적이고 미학적인 아름다움으로 영화의 시인이라고 불리는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의 영화가 처음으로 필름으로 상영됩니다. 유구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러시아 최대의 스튜디오로 많은 제작자와 작가들에게 영화제작의 기회를 제공하고 그 토양이 된 모스필름에서 만들어진 영화를 통해 러시아 영화의 정수를 감상할 수 있는 이번 회고전에 관객 여러분의 많은 관심 기대합니다.

★ 특별행사
영화사 연속강좌 : 20세기 러시아 영화의 재발견
'러시아 모스필름 회고전'을 맞아 한국시네마테크협의회는 20세기 러시아 영화를 되돌아보는 영화사 연속강좌를 개설합니다. 이번 강좌는 20세기 러시아 역사와 문화를 살펴보는 것으로 시작해 소비에트 영화의 무성영화 황금시절, 러시아 영화의 혁신과 난제들, 해빙기 이후의 러시아 영화의 변모, 그리고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의 영화세계를 살펴보는 자리가 될 것입니다.

1. 4월 4일(토) 15:00 <죽음이라는 이름의 기사> 상영 후
‘20세기 러시아 역사와 문화’ 박종소(서울대 노어노문학과 교수)
2. 4월 5일(일) 13:00 <전함 포템킨> 상영 후
‘러시아 영화의 황금기’ 정미숙(러시아 국립영화대학 예술학 박사)
3. 4월 8일(수) 19:30 <이반의 어린 시절> 상영 후
‘타르코프스키와 러시아 영화’ 민병훈(영화감독)
4. 4월 11일(토) 15:00 <학이 난다> 상영 후
‘해빙기의 러시아 영화’ 홍상우(경상대 러시아학과 교수)
5. 4월 12일(일) 13:30 <잠입자> 상영 후
‘타르코프스키의 영화세계’ 홍성남(영화평론가)
6. 4월 19일(일) 14:00 <행복> 상영 후
‘미완의 소비에트 영화혁명’ 김성욱(영화평론가, 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래머)

※ 영화사 연속강좌 외에도 모스필름을 대표하여 올가 카라바예바(모스필름 국제 업무 담당자)가 방한하여 상영 전 영화 소개 및 모스필름을 한국에 소개하는 시간을 가질 예정입니다.

★ 개막작




사라진 제국 Исчезнувшая империя The Vanished Empire
2008 105min 러시아 Color 35mm 15세 이상 관람가
연출 카렌 샤흐나자로프 Karen Shakhnazarov
출연 알렉산더 리아핀 Aleksandr Lyapin, 리디야 밀료지나 Lidiya Milyuzina

1970년대 소비에트를 배경으로 두 소년과 한 소녀의 삼각관계를 다룬 영화. 소비에트 연방이 정점에 이르렀던 1974년 모스크바에서는 이 견고한 제국이 사라질 것이라는 생각은 누구도 하지 않았다. 세르게이는 블랙진과 롤링스톤즈 레코드를 사는데 돈을 흥청망청 쓰는 철없는 학생이다. 여자 친구와 헤어진 후 좌절하고 있던 세르게이는 고고학자인 할아버지에게 의지하고 그의 가르침을 들으면서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소련이 언젠가 지도에서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걸 깨닫는다. 영화는 이제는 사라지고 없어진 소련의 제국에 대한 아련한 향수와 개인적이고 이데올로기적인 질문에 대해 회고하는 영화로 모스필름이 제작한 근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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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에서 타르코프스키의 <거울>이 상영될 때 밝힌 바 있지만, 미리 말씀드리자면 이번 3월 말부터 시네마테크 서울아트시네마에서 러시아 영화 19편이 상영되는 '러시아 모스필름 회고전'을 개최합니다. 몇 년 전부터 러시아 영화를 상영할 계획이었지만 여건이 되지 않아 계속 미뤄졌던 일인데, 이번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에서 <거울>을 상영하면서 러시아 영화들을 상영할 기회를 갖게 됐습니다. 원래 25편 정도의 작품들을 상영할 계획이었고, 그 대부분은 70년대 이전 영화들로 무성영화 작품들을 많이 고려했으나 이러저러한 사정으로 최종적으로 19편을 상영합니다. 빠진 작품들(빠진 작가들)이 너무 많아 아쉽지만, 이번을 시작으로 기회가 될 때마다 러시아 영화들을 소개할 생각입니다. 이번에 시네마테크와 함께 하는 '모스필름'은 1923년에 설립되어 유럽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지닌, 가장 크고 생산적인 영화 스튜디오로 여전히 러시아에서 가장 중요한 영화기관의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현재 거의 모든 러시아의 영화, 텔레비전 및 비디오 프로그램이 모스필름을 기반으로 제작되고 있다고 할 정도로 '모스필름'은 러시아 영화의 산파역을 한 스튜디오라 할 수 있습니다. 


할리우드에 버금가는 거대 스튜디오를 갖고 있던 모스필름은 또한 러시아의 창조적이고 혁신적인 영화감독들이 참여해 영화를 제작한 유서깊은 스튜디오입니다. 세르게이 에이젠슈테인, 미하일 롬, 알렉산드르 메드베드킨, 미하일 칼라토초프,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 그리고 구로사와 아키라(<데르수 우잘라>를 이곳에서 만들었습니다)까지 영화의 창조적인 거장들이 이곳에서 영화작업을 했습니다. 이번에 열리는 ‘러시아 모스필름 회고전’은 에이젠슈테인의 <전함 포템킨>, <알렉산더 네프스키>, 메드베드킨의 <행복>과 같은 2-30년대 무성영화들에서부터 아브라함 롬, 미하일 롬의 영화들, 미하일 칼라토초프의 <학이 난다>와 같은 해빙기의 러시아 영화들, 그리고 특히 러시아 영화의 거장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의 영화 5편이 상영됩니다. <증기기관차와 바이올린>, <이반의 어린시절>, <안드레이 류블로프>, <잠입자> 등이 필름으로 상영됩니다. 저 또한 <이반의 어린시절>은 유독 필름으로 본 적이 없기에 정말 기대됩니다. <잠입자>의 그 엄청난 장면들을 볼 기대도 있고요. 타르코프스키의 영화가 <향수>와 <희생>으로 유명해졌지만 정작 그의 초기작들은 제대로 극장에서 개봉되지 않았고 소개도 드물었습니다. 서울에서 러시아 영화를 극장에서 보는 드믄 기회이니 많은 분들이 보셨으면 좋겠네요. 3월 31일 카렌 샤흐나자로프의 <사라진 제국>(2008)을 개막작으로 4월 26일까지 영화제가 열립니다. (Hulot)

* 자세한 상영일정은 추후 서울아트시네마 홈페이지나 카페서울아트시네마를 참고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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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stella 2009.03.21 14:57 신고

    ( 와아~~!!! ) 까페에는 아직 안 올라온 글 같은데, 여기서 한 발 먼저 영화제 상영작들을 알게되니 더 가슴이 두근두근. ^ㅇ^ 특히 이반의 어린시절 포스터 굉장히 인상적이네요. 중간에, 싸르트르의 찬사가 확- 눈에 들어오며, 이번 영화제의 백미를 장식할 것 같다는 예감이.. ㅠ
    이런 시대에, 그리고 이렇게 척박한 문화 환경속에서도 저런 대작들이 상영되고 또 우리가 볼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왠지 기적처럼 느껴져요. 이 얼마나 이중적이고 씁쓸한 감격인지!

  2. Hulot 2009.03.22 15:29 신고

    이번주 초에 서울아트시네마 카페에 작품정보와 시간표가 올라올 겁니다. 영화제를 준비하는 저로서도 <이반의 어린시절>을 필름으로 볼 일에 잔뜩 기대를 하고 있습니다. 시네마테크가 겪는 문제는 문제고, 영화는 또 영화대로 상영을 하면서 행복을 찾을건 찾아야겠죠. 역설적으로 올해 시네마테크의 슬로건이 '행복의 시네마테크'입니다. 이번 러시아 영화제에서 상영하는 메드베드킨의 영화(그는 <행복>이란 영화를 만들기도 했죠)를 보면 그런 '행복'이 어떤 것인가를 생각하게 됩니다.

시네마네크는 영화를 보는 장소이지만 동시에 영화를 만들 결심과 욕망을 품게 하는 장소이기도 합니다. 그런 점에서 서울아트시네마는 언제나 영화제작과 관련한 영화학교를 개설하는 것을 꿈꿔왔습니다. 이번에 '한국영화아카데미'와 함께 공동으로 기획한 '시네마테크 영화학교'는 영화제작을 꿈꾸는 분들을 위한 기회입니다. 한국영화아카데미에서 제작된 장편영화가 어떻게 만들어지고, 어떤 준비과정을 거쳤는지, 그리고 제작과정에서 어떤 일들이 있었는가를 함께 논의하는 자리로, 김태용, 변영주 감독들이 참여해 장편영화 제작에 관해 작품을 두고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도 마련됩니다.

만약, 영화제작에 꿈이 있는 분들이라면 '시네마테크 영화학교'에서 감독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에 한번쯤 참여해보시는 것도 좋으리라 생각합니다.  






시네마테크의 영화학교 ‘영화제작 워크샵’

- 일정 : 3월 24일(화) - 3월 27일(금) 4일간 오후 2시부터
- 내용 :
한국영화아카데미 제작연구과정은 한국영화아카데미 정규과정을 수료한 졸업생들을 대상으로 한 고급제작훈련프로그램입니다. 한국영화아카데미의 제작연구과정에 있는 전문 제작자 및 제작 스태프의 교육과 지도를 거쳐 총 3편의 장편 영화와 1편의 장편 에니메이션이 제작되었습니다.

이번 시네마테크의 영화학교 ‘영화제작 워크샵’에서는 한국 최대의 영화 교육 학교인 한국영화아카데미가 25년이나 되는 오랜 전통을 이어오면서 갖게 된 그들의 제작 노하우와 교육 방법 등을 소개할 뿐만 아니라, 2007년 신설된 제작연구과정의 교육 내용과 방식이 소개됩니다. 또한, 각 워크샵별 상영된 작품의 감독, 촬영 스태프들과 한국 영화계를 대표하는 유명 감독, 평론가들이 패널로 참여해 그들의 연출방식과 제작과정을 집중적으로 분석하는 시간을 마련합니다.

한국영화아카데미의 노하우와 제작방식을 살펴볼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인 이번 ‘영화제작 워크샵’에는 영화제작에 관심 있는 학생, 일반인, 현재 영화제작작업을 하고 있는 영화인까지 누구나 참여하실 수 있습니다.

★시네마테크의 영화학교 ‘영화제작 워크샵’ 구성 (총 4일)
1부- 영화 상영 후 해당 작품의 연출 방식과 과정에 대한 대담이 진행 됩니다..
2부- 피디, 촬영, 배우 등의 스태프들이 참여해 제작과정과 방식에 대해 소개합니다.


첫째날.
영화제작 워크샵 1
■ 일시 : 3월 24일(화) 14:00 단편 <다시>, 장편 <어떤 개인 날> 상영 후
■ 1부 대담 이숙경(영화감독), 변영주(영화감독)
2부 워크샵 이숙경(영화감독), 권오성(프로듀서)

둘째날.
영화제작 워크샵 2
■ 일시 : 3월 25일(수) 14:00 단편 <수다쟁이들>, 장편 <그녀들의 방> 상영 후
■ 1부 대담 고태정(영화감독), 김태용(영화감독)
2부 워크샵 고태정(영화감독)

셋째날.
영화제작 워크샵 3
■ 일시 : 3월 26일(목) 14:00 단편 <프랑스 중위의 여자>, 장편 <장례식의 멤버> 상영 후
■ 1부 대담 백승빈(영화감독), 김성욱 (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래머)
2부 워크샵 백승빈(영화감독), 임경우(촬영감독)

넷째날.
영화제작 워크샵 4
■ 일시 : 3월 27일(금) 14:00 단편 <스위밍 걸>, <인 유어 아이즈>, <36번째 수감자>, <다리들>, <불휘>, 장편 에니메이션 <제불찰씨 이야기> 상영 후
■ 1부 대담 이은미(영화감독), 장형윤(영화감독)
2부 워크샵 이은미(영화감독)


■ 영화제작 워크샵 참여 방법
■ 대상 : 영화제작에 관심 있는 학생, 일반인, 영화인 누구나

■ 참여 신청 :
수강료 : 일반판매 각 회당 1만원 (4회 전체 수강권 3만원)
서울아트시네마 관객회원 각 회당 6,000원 (4회 전체 수강권 2만원)
※ ‘4회 전체 수강권’은 할인된 금액이므로 사전 신청 또는 현장 구매한 경우 환불 불가.

1) 사전신청
- 사전신청 기간: 3월 17일(화) ~ 3월 22일(일)까지
- 신청방법 :
홈페이지(www.cinematheque.seoul.kr)의 Notice 게시판에서 신청서를 다운받은 후 지정된 이메일로 발송하고, 아래 계좌로 수강료 입금 후 확인전화. (전화 02-741-9782)
계좌번호: 068-39-0044-13-002 예금주: (사)한국시네마테크협의회

2) 인터넷예매
각 회당 1만원, ‘4회 전체 수강권’ 구매 불가. 할인 불가.

3) 현장판매
남은 좌석에 한하여 현장 판매, 3월 24일 13시부터 판매 개시.






■한국영화아카데미 제작연구과정 소개(KAFA Films)
2007년부터 시작된 한국영화아카데미 제작연구과정은 정규과정 졸업생을 대상으로 하는 고급 제작교육 프로그램으로 장편 영화와 애니메이션 프로젝트 수행을 통해 제작연구생들의 실무능력을 극대화하고, 독창적이고 완성도 높은 작품을 제작하는 것이 그 목적이다. 매년 프로듀싱, 영화연출, 촬영 전공 3팀과 프로듀싱, 애니메이션연출 전공 1팀을 기본으로, 총 3편의 장편영화와 1편의 장편애니메이션을 완성하는 이 과정은 한국영화아카데미 교수진과 외부 전문가의 제작지도와 전문스태프의 제작참여를 통해 보다 수준 높은 작품을 제작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한다. 또한 자체 프로덕션 시스템을 구축하고 제작현장과 새로운 형태의 산학협력 시스템을 만들어 가는데 주력하고 있다. 장편제작연구과정은 단순히 수준 높은 작품을 제작해내는 것뿐만 아니라 새로운 제작모델을 개발하여 한국 영화, 애니메이션 산업부분에도 기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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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반대편 남아메리카 열대 카리브 해의 위치한 베네수엘라는 다양한 인종, 언어, 종교가 한데 조화롭게 어우러진 국가입니다. 한국과 베네수엘라는 1965년에 외교 관계를 맺은 이후 정치, 경제, 문화적으로 상호간에 지속적인 교류를 해왔습니다. 베네수엘라는 자국의 영화 자본이 활발하게 유통되지 않아 영화 제작이 척박함에도 불구하고 베네수엘라인들 특유의 열정과 근성으로 자국 영화를 만드는데 힘쓰고 있습니다.

이번 베네수엘라 영화제에서는 아름다운 화면에 남녀의 사랑을 애틋하게 그린 <이사벨 호는 오늘 오후 도착했다>를 개막작으로 6일간의 여정을 시작합니다. 베네수엘라의 국민 감독인 로만 찰바우드 감독의 영화 <담배 피우는 물고기>와 <게Ⅱ>가 소개됩니다. <담배 피우는 물고기는> 자국 영화인들에게는 고전으로 불리며 지금까지도 베네수엘라 영화의 이정표가 되고 있습니다. 원작 소설을 바탕으로한 <게Ⅱ>는 미궁의 살인사건을 베네수엘라 영화 특유의 복잡하고 섬세한 심리묘사로 표현한 작품으로 베네수엘라 영화 중 최초의 속편 제작 영화이기도 합니다. 이 외에도 자국 영화 중 최대 관객 수를 기록하며 2006년 아카데미 영화제에 베네수엘라 대표 출품작으로 선정된 <경찰관의 여자 마쿠>, 이반 페오 감독이 만든 <이피헤니아>등 이제까지 쉽게 접해볼 수 없었던 베네수엘라 장편 영화 6편이 소개됩니다. 사랑과 질투, 폭력에 대한 강렬하고 매혹적인 베네수엘라의 영화를 통해 베네수엘라인의 영화에 대한 집념과 열정을 확인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가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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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다르의 자화상>을 상영한 후에 고다르와 시네마테크에 관해 이야기를 했다. 고다르의 <영화사>를 설명하기보다는 
시네마테크의 문제를 살펴보기 위함인데, 고다르에 관해 더 많이 이야기를 한 듯하다. 좋아하는 사람앞에서 원래 실없는 소리를 많이 하는 법이다.    

최근의 '시네마테크 사태'와 관련해
시네마테크의 문제를 생각해보기 위함이었다. 그런데 왜 고다르인가? 무엇보다 그가 동시대 누벨바그리언들중에서 가장 충실한 시네마테크의 자식이었기 때문이다. 로메르, 트뤼포, 샤브롤도 시네마테크의 자식들이긴 했다. 필립 가렐과 같은 '포스트 누벨바그리언'들 또한 시네마테크의 자식들이었다. 그 외에도 자식들은 많다. 영화보다 먼저 태어난 사람들은 많지 않으니 모두 자식들인 셈이다. 고다르가 특별한 것은 자기를 키워준 시네마테크에 보답을 해야 한다고 그 누구보다 강하게 느꼈던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는 영화가 훔치는 예술임을 랑글루아의 영화박물관(시네마테크)에서 터득했고 자신이 빚진 것에, 빌린 것에, 훔쳐간 것에 정당하게 셈을 치러야 한다고 생각했다. 문화와 예술의 영역에서 셈은 더 정당하게 치러야만 한다. 트뤼포도, 샤브롤도 그만큼 하지 않았다. 

영화가 자신에게 모든 것을 주었고, 그 때문에 영화에 되돌려주어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고민한 사람. 그가 고다르다. 종종 영화를 사랑한다고 말하는 작가들, 비평가들, 기자들, 영화인들, 영화애호가들도 영화에 자신이 무엇을 되돌려주어야 하는지 생각지 않을 때가 있다. 누구든 잊기 쉬우니까. 삶은 고역이니까. '내'가 영화를 좋아하는 것이지 영화가 '나'를 선택한 것은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작가 이전에 작품이 있듯이 영화인 이전에 영화가 있다. 살아 있는 우리 모두는 결국 영화 이후에 태어난 사람들이다. 고다르는 이 단순한 사실을 일깨운다. 영화인들은 모두 영화에 빚진 존재들인 것이다. 영화를 좋아하기만 했다면 겪지 않을 고통을 영화감독이 되어 경험했다고 장 르누아르가 말하듯 그들은 영화 때문에 힘들어했지만 또 영화로 영광을 얻은 존재들이다. 그러니 최소한 영화에 빚졌다면 그것에 채무의식을 느껴야 한다. 변제할 생각을 해야하는 것이 정당한 태도다. 고다르는 그렇게 생각한 사람이다. 

볼 수 없었던 영화들을 시네마테크에서 보면서 고다르는 본 영화들이 아니라 보지 못한 영화들에 눈을 뜨게 됐다고 말한다. 진정한 영화는 결국은 볼 수 없는 영화들이라 생각했다. 볼 수 없는 것을 보게 해준, 맹인의 눈을 뜨게 해준 시네마테크에 고다르는 감사를 잊지 않았다. 실제로 여러번 그렇게 했다. 그 하나가 1966년에 랑글루아의 시네마테크에서 열린 '뤼미에르 회고전'에서의 긴 연설이다. 고다르는 이 연설에서 자신이 뤼미에르의 영화를 발견한 곳이 랑글루아의 시네마테크이기에 뤼미에르의 영화에 대한 찬사를 바치면서 동시에 시네마테크, 랑글루아에게 고맙다고 말했다. '고마워요 랑글루아'라는 표현을 수십번도 넘게 말했다. 영화의 아버지인 뤼미에르(불어로 뤼미에르는 빛을 말한다)는 영화가 빛의 예술임을 보여주었다. 그가 스크린의 흰 벽면에 빛을 투사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랑글루아의 시네마테크는 뤼미에르의 영화를 다시 투사했다. 뤼미에르의 영화가 시네마테크에서의 상영으로 다시 태어난 것이다. 




고다르에게 시네마테크는 단지 영화예술의 역사를 배운 장소가 아니다. 그곳에서 고다르는 영화 예술에의 믿음을 품을 수 있었다. 시네마테크는 영화의 빛을 되돌려주는 장소였고, 자신이 태어나기 전에 만들어진 영화들, 결코 보지 못한 영화들과의 만남을 주선했다. 작가 이전에 작품이 있듯이 작가 이후에도 작품이 존재(해야만)한다. 고다르는 만약 장 비고의 죽음 이전에 시네마테크가 있었다면 고몽영화사와 겪은 곤경 이후에 그가 위로를 받을 수 있었을 것이고, 결국 영화를 만들 힘을 회복할 수 있었을 것이라 말한다. 그럴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 가능성의 표현이 중요하다.
고다르는 <영화사>에서 '아마도 이러 이러했을수도 있었을 것이다'라는 가정법 표현을 반복해 쓰고 있다. 그는 '있었던 역사들'(역사가라 불리는 사람들이 종종 이러한 일들에 과도하게 집착한다)이 아니라 '있을 수도 있었을 역사들'에 주목한다. 이 점을 중요하게 봐야 한다. 아마도 무르나우가 그렇게 빨리 죽지 않을수도 있었을 것이다. 베케르도, 멜빌도 그렇게 빨리 사라지지 않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레오네는 소비에트 혁명에 관한 영화를 만들 수도 있었을 것이고, 브레송도 천지창조에 관한 영화를 만들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길종도 영화를 더 만들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지 못했다. 영화의 모든 역사는 그러므로 있을 수 있었을 가정법의 역사들을 포함해야만 한다.     


랑글루아의 시네마테크는 회합의 장소였다. 이 곳에서 영화는 새로운 인간관계의 형식이자 실체이기도 했다. 사랑만이 아니라 영화의 우정을 발견한 곳이었다. 사랑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사람이 결국 사랑한다. 반대로 말하자면, 사랑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결국 사랑하지 않는다. 영화를 사랑한다고 말하기는 쉽다. 하지만 영화로 우정을 나누기란 어려운 법이다. 영화적 회합은 영화에 사랑을 느낀 사람들의 우애의 공동체다. 고다르는 시네마테크의 회합을 그렇게 봤다. 우정의 장소에서 고다르는 영화적인 레지스탕스가 결코 끝나지 않았다고, 아니 제대로된 레지스탕스를 한 적이 없었다고 말한다. 국민위에 군림하는 국가에 대항하는 투쟁, 미국에 의한 영화의 점유와 영화만들기의 획일성에 대항하는 예술적 저항을 여전히 벌여야만 한다고 주장한다. 나이가 들수록 예술가들도 평화나 화해를 애매하게 주장하곤 하는데, 고다르는 다른 길을 걷고 있다. 그는 예전보다 더 꼬장꼬장하게 싸움을 건다. 아마도 지금 생존하는 작가들 중에서 칠순을 넘기고도 그런 태도를 유지하는 사람은 세상에 단 두명일 것이다. 고다르와 클린트 이스트우드. 이스트우드는 최근작에서 총을 잡았고 고다르는 여전히 시로 싸워야 한다고 말한다. 이스트우드도 훌륭하지만 나로서는 고다르에게 감사할 수 밖에 없다. 고다르도 시네마테크에 빚을 졌다지만 시네마테크도 영화적으로는 그에게 빚을 졌다. 그러니 고다르에게 감사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김성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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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J 2009.03.19 06:28 신고

    영화라는 치명적인 미는 어느 한편을 불구로 만들기도 하는데 우정은 그것을 그대로 내버려두지 않는 것이란 말씀이시지요? 우리의 영화는 어느 한 편의 짝사랑으로 끝나는 것이 되어선 안될것이란 말씀이지요?

  2. Hulot 2009.03.20 04:49 신고

    영화에의 사랑이 열광적으로 보이긴 하지만 탐욕과 그릇된 욕망으로 향하기도 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누구나 사랑을 주장할 수 있고 또 그것을 특권적인 것으로 말할 수도 있으니까요. 하지만 영화의 우정은 상호적인 것이기에... 그러니까 언제나 상호적인 반성과 반조가 뒤따르는게 아닐까요. 영화를 사랑한다고 말하는 사람들보다 영화로 우정을 함께 나누려는 친구들이 나이가 들수록 더 좋아하게 됩니다...

  3. 메이비 2009.03.21 17:26 신고

    <영화사>와 <JLG/JLG;자화상>을 보면서 느낀 것은,
    고다르는 우리가 미래에 도착할 곳에 이미 가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그곳에 도착하면 우리는 언제나 먼 과거의 그를 만나야 할 것입니다. 그를 만날 수 있는 유일한 곳도 시테마테크 안일 것입니다... 오래전 고다르도 우리처럼 미래를 만난 곳이 시네마테크였겠죠. 그 공간에 도착해있는 무수한 역사들과 영화들, 그리고 고다르라는 영화/역사. 몇십 광년 전에 출발한 별빛처럼 그는 이미 과거가 되었고, 영화와 역사 그 자체가 되었습니다. 그는 그 안에 들어가 있었습니다. <자화상>은 그가 영화/역사에 들어가는 행로를 그대로 보여줍니다. 그와 우리의 시차는 광활한 우주공간만큼 너무 크고, 그래서 그만큼 그의 슬픔이 클 것 같아서 더욱 가슴 아픕니다.
    Thanks 고다르, Thanks 서울아트시네마.

 





“영화는 결국 아무것도 아니다.” 프랑스 누벨바그를 대표하는 장 뤽 고다르는 20세기의 역사를 결산의 자세로 임해 만든 <영화사>에서 이렇게 말한다. <영화사>는 고다르의 가장 야심적인 작품으로 1988년부터 시작해 10년만인 1997년에 완성한, 그의 영화적 삶과 기억을 도합 네 시간 반에 담아낸 대작이다. 기획의 원대함과 치밀함으로 보자면 19세기 파리에서 형성된 산업문화에 대한 방대한 인용으로 근대성의 원현상을 그려낸 발터 벤야민의 ‘아케이드 프로젝트’와 비견할 만하다. 고다르는 이 작품으로 영화가 ‘거대한 역사’를 이룬다고 말하는데, 다른 역사가 언제나 축소될 뿐이라면 영화는 그 역사를 스크린에 크게 투사하기에 거대하다는 것이다. 고다르는 영화가 무의식의 밤의 역사를 이루기에 20세기 역사의 거대한 공백과 부재가 스크린에 담길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런데 고다르는 그런 영화가 결국은 ‘아무것도 아니다’라 말한 것이다.
 
고다르의 도발적인 발언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의 특별한 역사인식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고다르에게 영화는 20세기에 꽃을 피운 19세기적 사건이다. 19세기 말의 집단적인 꿈이 20세기에 현실화된 것이다. 그런데 영화가 19세기의 꿈을 투사하는 능력을 가졌을지언정 그것의 현실화는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했다는 것이 고다르의 판단이다. 영화가 현실을 외면했고, 이어 현실이 영화에 복수를 감행한다. 이것이 고다르가 보는 영화/역사의 비극이다. 그는 <영화사>에서 이러한 역사의 비극이 1940년대 초에 픽션의 거장들이 그들의 카메라를 아우슈비츠에서 딴 곳으로 돌렸기 때문에 발생했다고 말한다. 영화는 현실을 기록하는 힘(영화는 무엇보다 기록의 매체로 탄생했다)을 지니고 있었지만 아우슈비츠에서 발생한 비극을 결코 담아내지 않았기에 역사적 책무를 등졌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총 8부(네 개의 장이 각각 A,B 두 섹션으로 구성되어 있다)로 구성된 <영화사>의 1A에서 고다르는 “학살한 것을 망각한 것도 학살에 참여한 것이나 다름없다. 희망, 영화의 역사, 언어가 없는 역사, 밤의 역사. 신은 인간을 버렸다. 영화관의 어둠속에서 50년간 사람들은 냉혹한 현실을 상상을 통해 따뜻하게 했지만 이제 현실은 복수를 시작해 피와 눈물을 추구한다. 극영화의 거장들은 현실의 역습을 제어할 수 없었다.”고 말한다. 영화가 현실의 비극을 담아내지 못하면서 현실 또한 영화를 저버린 것이다. 
 
고다르의 역사인식은 교과서적인 영화사의 이해와는 아무런 관련성이 없어 보인다. 영화는 그에게 소명이다. 그는 작품으로 특별한 세계를 표현한 예술가일뿐만 아니라 영화가 무엇이고, 그것이 무엇을 할 수 있으며, 그 가운데 자신이 어떤 일을 해야만 하는가를 탐구한 소명의 작가다. <영화사>는 그런 점에서 영화의 실패를 역사를 통해 구제하려는 그의 ‘사적’인, 가히 무모하다고 할만한 시도가 담긴 작품이다. 마틴 스콜세지의 ‘영화사 기행’과 같은 다큐멘터리와는 완전히 다른 기획이라는 말이다. 물론 고다르의 ‘시네필’적 취향이 <영화사>를 만들게 된 계기이긴 하다. 그럼에도 80년대 중반에 그가 본격적으로 역사를 결산하는 시도를 하게 된 가장 큰 계기는 역설적으로 클로드 란즈만의 <쇼아>(85)를 꼽을 수 있다. 클로드 란즈만은 <쇼아>에서 수용소의 비극을 재현하는 것을 단호히 거부하며 배우나 엑스트라의 출연을 금지시키고, 당시의 기록영상도 일체 사용하지 않는 태도를 보였다. 단지 당시의 기억을 간직한 사람의 증언과 회상으로 20세기의 최대의 비극이라 불리는 수용소의 공포를 담아냈다. 대량학살을 해석하고 재현하는 영화의 특별한 권리에 ‘금지’와 ‘한계’를 선언한 것이다. 

고다르는 란즈만의 시도에 반기를 들었다. 고다르가 보기에 란즈만의 시도는 '실패의 실패'를 반복한다. <영화사>에서 고다르는 이미 영화가 역사에서 이중적인 실패를 보였다고 말한다. 1940년대에 아무도 수용소를 촬영하지 않았고 그것을 보여주려 하지 않았기 때문에 영화사의 비극이 발생했는데, 동시에 스크린에 투영된 극영화의 영상에서 그러한 비극을 제대로 보지 못했던 것 또한 비극의 전주였다. 이를테면 장 르누아르의 <게임의 규칙>이나 채플린의 <독재자>는 그런 역사의 비극을 예고하고 있었지만 사람들은 결코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던 것이다. 고다르는 이러한 이중적 실패가 결국 전후 유럽영화의 죽음과 미국영화의 승리를 초래했다고 말한다. 그러니 역사의 실패를 넘어서야 한다. 
 
<영화사>는 비극의 역사/영화사를 담아내는 것으로 20세기의 역사와 영화를 마주하게 한다. 고다르는 마치 상을 치르듯이 과거의 영상과 죽은 자들을 불러들인다. 인용되는 ‘스토리/역사(들)’이 워낙 방대해 통상의 영화를 보는 몇 배 이상의 집중력을 요구할 정도의 정보의 과잉에 관객들은 쉽게 압도당할 것이다. 뉴스릴, 극영화, 회화, 문자, 수많은 인용들이 거의 무차별적으로 화면에 파도처럼 밀려왔다 사라진다. 다양한 편집기술의 합성, 접합, 분절이 복잡한 이미지의 성좌를 그려낸다. 가히 20세기의 ‘모든 역사들’을 보여주기 위해 그것의 혼령들이 떼를 이뤄 ‘죽음의 춤’을 추는 형국이다. 이 장엄한 풍경은 이해를 바라기 보다는 차라리 그것에 빠져들어가고 삼투되기를 요구한다. 고다르의 영화는 잠깐 환희에 잠겼던 새로운 밀레니엄의 시대에 과연 지난 세기의 비극과 전쟁이 지나가버린 것인지, 우리가 정말 20세기와 제대로 작별을 고한 것인가를 되돌아보게 한다. (김성욱)


*  장 뤽 고다르 <영화사> 특별전은  시네마테크 서울아트시네마에서 3월 10일부터 15일까지 열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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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rearview 2009.03.10 20:22 신고

    갑자기 눈물이 날 것 같아요.

  2. Hulot 2009.03.11 03:35 신고

    맹인이 되는 것과 눈물을 흘리는 일은 같은 일이라고 하죠...고다르의 <영화사>는 영화를 보는 눈의 본질이 시각이 아니라 눈물임을 말해줍니다.

  3. Hulot 2009.03.20 04:51 신고

    ............................

과거의 글을 다시 끄집어낼 때가 있다. 최근 시네마테크와 관련한 논란을 보면서 혹시나 시네마테크가 어떤 곳인지 모르는 분들을 위해 시네마테크를 설명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문득 외국의 시네마테크를 소개할 생각에 썼던 글이 떠올랐다. 이미 2년전의 글이라 내용들을 일부 수정하고 싶은 생각이 있지만 일단 소개의 차원에서 시네마테크와 관련한 역사를 다시 옮긴다. 기회가 된다면 더 추가해서 글을 쓰고 싶긴 하다. 예전 '컬처뉴스'에 연재로 할 계획이었다가 두번만 쓰고 넘긴 글이다. (Hulot)



1. 시네마테크, 상상의 영화박물관



외국에 나갈 기회가 있을 때마다 습관적으로 관광명소보다는 예술영화관이나 시네마테크 혹은 영화박물관과 같은 공간들을 방문하곤 한다. 일단 필름으로 극장에서 못 본 영화를 챙겨보고 이어 천천히 영화가 상영되는 극장을 둘러보곤 한다. 상영 10분 전에만 판매되는 입장권 때문에 상영 바로 직전에 극장의 매표소 앞에 줄지어 선 관객들, ‘복원판 뉴 프린트’라는 광고가 붙은 영화의 포스터, 극장의 벽면을 성당처럼 장식하고 있는 스테인드글라스, 지나칠 정도로 어두운 극장의 회랑에 시선을 보내고 있노라면 스크래치가 심한 낡은 필름만큼이나 공간에 배어 있는 과거의 시간이 느껴진다.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작가나 작품뿐만 아니라 영화가 상영되는 조건과 공간, 그곳을 방문하는 사람들에게 애착을 갖기 마련이다. 그 영화가 어떤 줄거리였고 어떤 배우가 출연했는가라는 정보 이상의 추억이 영화에 담겨 있기 때문이다. 영화를 보았던 시간과 계절, 그 영화가 상영된 장소, 영화를 본 후 친구와 걸었던 밤거리에 대한 기억이 영화의 줄거리보다 더 민감하게 우리의 추억을 자극한다. 이를테면 지금은 사라진 코아 아트홀에서 컬러 복원판으로 재상영된 자크 드미의 <쉘부르의 우산>을 보았던 내 경험은 극장 안에서 훌쩍이던 연인들의 모습과 영화가 끝난 후 친구와 걸었던 그 해 가을 종로와 혜화동의 밤거리에 대한 기억과 연결되어 있다.


일찍이 롤랑 바르트는 영화관의 어둠 이전에 존재하는 거리의 어둠에 대해 언급하면서 밤의 경험이 영화체험의 가장 중요한 요소라 말한 바 있다. 최근의 영화 관람이 지닌 문제는 영화와 그것을 가능케 하는 조건들과의 철저한 단절로 표현될 수 있겠다. 미국의 영화평론가인 조나단 로젠봄은 극장이 아닌 비디오로 영화를 관람하는 것의 문제를 지적하면서 “사람들은 마치 자신들 모두가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기라도 한 것처럼 영화에 대해 말한다. 이것이 우리가 직면해 있는 문제다. 우리가 영화가 무엇인지를 말할 때, 또는 영화를 기술하려고 노력할 때, 우리는 영화를 조건과는 무관한 대상으로 고찰하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 이 조건에서 우리들은 영화를 보고 그런 방식으로 영화를 받아들인다. 이런 상황들은 종종 대상으로서 우리들의 영화의 인식에서 결정적이다”라고 말한다.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작가나 작품뿐만 아니라 영화가 상영되는 조건과 공간,
그곳을 방문하는 사람들에게 애착을 갖기 마련이다. 사진 서울아트시네마야외

영화관에서의 영화 관람을 특권화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다만 영상이 범람하는 지금의 시대에 앙드레 바쟁이 그랬던 것처럼 ‘영화가 무엇인가’라고 질문하고자 한다면 이제 조금 관점을 달리해 ‘영화가 어디에 존재하는가’라고 묻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하고 싶다. 시네마테크를 운영하는 입장에서 말하자면 첫 번째 질문만큼이나 영화의 ‘거처’와 관련한 두 번째 질문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사실 영화가 처음 대중들에게 선을 보인 1895년 이래로 영화는 고유의 역사를 통해 산업적 대상에서 예술적 대상으로, 그리고 문화적 유산으로 변모해 왔는데, 이 때 영화에 대한 사고의 변화와 마찬가지로 상업영화관, 시네클럽, 공공상영관, 예술영화관, 시네마테크와 같은 다양한 상영공간의 역사가 함께 했다.


시네마테크는 좀 거창하게 말하자면 영화가 처했던 위기의 역사와 함께 했다. 전 세계적으로 시네마테크가 처음 모습을 보인 시기는 1920년대 말 무렵인데, 이 때는 무성영화가 유성영화로 넘어가던 변화의 시기로 당시 무성영화의 대중적인 스타들과 감독들, 그리고 영화 애호가들은 토키의 도래로 인해 무성영화가 지닌 예술적 표현의 가능성이 사라지는 것에 깊은 우려를 보였다. 토키의 등장은 무성영화를 대중들의 눈앞에서 사라지게 만들었고, 이는 곧바로 무성영화 필름에 심각한 손상을 초래했다. 멜리에스가 만든 영화들의 네거티브 프린트가 파손되었고, 미국에서는 이 시기 무성영화의 75%가 영원히 사라져버렸다.


영화 제작자들과 배급업자들은 시대에 뒤떨어진 무성영화를 관객들이 더 이상 보지 않을 거라 믿었고, 극장에서는 무성영화를 더 이상 상영하지 않았다. 이 때 영화가 계속 대중들에게 상영되기 위해서는 필름의 ‘보존’이 불가피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되면서 이를 위해 영화를 보존하는 박물관으로서의 시네마테크(혹은 필름아카이브)가 제기되었고 프랑스, 독일, 미국 등지에서 조금씩 성격은 달랐지만 필름을 보관하는 필름아카이브가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물론 보관소로서의 필름아카이브가 아니라 상영공간으로서의 시네마테크의 의미와 중요성이 보다 분명해진 것은 사실 1950년대 무렵의 두 번째 시기라 할 것이다. 전 세계적으로 새로운 영화들(이탈리아 네오리얼리즘, 프랑스의 누벨바그, 미국의 뉴아메리칸 시네마 등)이 등장하면서, 새로운 세대의 영화애호가들은 영화를 보존하고 계승하는 것이 필름을 ‘보관’하는 머무는 것이 아니라, 필름 캔 위에 수북이 쌓인 먼지를 털어내고 극장의 어둠에서 그것의 빛을 체험하는 행위를 통해 이루어질 수 있다고 주장한다. 보여주는 예술로서의 영화가 극장에서 상영될 기회가 없다면 결국 그 영화는 존재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인 셈이다.

시네마테크는 다양한 시대, 다양한 공간의 영화로 관객들의 상상력을 채워준다.
서울아트시네마 '시네바캉스'의 풍경 ⓒ 김성욱

새로운 시각(이른바 작가정책)으로 영화를 다시 보면서 예술로서의 영화를 재인식하던 시기가 바로 이때다. 작가정책, 영화비평, 시네필이 시네마테크와 이토록 긴밀하게 호흡하던 시기는 아마 없었을 것이다. 뉴웨이브 세대들은 영화를 보는 것이 영화들 간의 새로운 관계를 형성하는 비평작업이자 새롭게 영화를 만드는 과정이라 여겼기에 보는 행위와 비평작업, 영화를 만드는 행위에 어떤 위계를 부여하지 않았다. 그들은 스스로 영화의 좋은 관객이자 비평가이며 작가라는 사실을 자부했다. 비평가에서 시작해 영화를 만든 프랑스 누벨바그의 기수였던 고다르는 “우리는 영화의 역사에서 에이젠슈테인 뒤에, 혹은 로셀리니 뒤에 어떤 감독들이 존재하는가를 알 수 있었다. 이 모든 것을 랑글루아의 시네마테크가 우리들에게 가르쳐주었다”라고 말했는데, 이는 시네마테크에서의 영화보기를 통해 영화의 역사에 대한 이해를 형성할 수 있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 시기 그리피스, 에이젠슈테인, 무르나우, 프리츠 랑, 하워드 혹스, 미조구치 겐지, 알프레드 히치콕 등의 다양한 작가들의 회고전과 특별전이 열리면서 영화의 역사에 대한 인식이 새롭게 만들어졌다. 이들이 형성한 영화의 역사에 대한 인식은 물론 작품의 연대기적 시간에 근거한 것은 아니다. 작품들 간의 서로 다른 거리와 시간의 커넥션을 통해, 그것들이 형성한 성좌에 의해 구성된 영화의 역사적 시간 개념이 보다 중요했다.


“영화의 유일한 학교는 영화관이다”라고 선언하며 심지어 영화학교를 거부한 뉴웨이브 세대들의 영화관에서의 전설적인 영화경험은 지금 되돌아보면 신화만큼이나 거리가 있는 이야기처럼 들린다. 아마도 이후의 시기를 현재와 관련해 고려하는 게 그래서 보다 중요한데, 이는 1960~1970년대를 거치면서 영화가 이미지의 주요한 원천이나 대중예술의 유일한 지위를 더 이상 차지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과 관련된다. 관객들은 이제 신문의 줄 광고에 실린 영화상영 광고를 보고 도시를 가로질러 영화와 만나기 위해 버스를 갈아타고 여정을 떠나는 모험가들이 아니다. 그들이 느끼는 영화의 즐거움은 또한 1000석이 넘는 극장에서 70mm 대형화면에 투사되는 <아라비아의 로렌스>를 보며 황홀해하던 이미지에의 매혹과 비교하자면 지극히 작은 것처럼 보인다.

역사와 현실, 시대의 유일한 증언자임을 자부했던 영화는 기껏해야 이야기의 즐거움을 제공하는 여흥에 머물고 있고, 이제 영화광이 된다는 것은 반문화와 관련된다기보다는 대학이나 영화학교와 같은 제도적 기관에의 편입을 의미하는 것이 돼버렸다. 개인화된 영화체험, 끊임없는 영화의 축소화 경향, 너무 빨리 진행되는 제도화의 경향이 지배하는 영화문화 속에서 시네마테크는 또 한 번 그 자신의 고유의 역할에 대해 고민해야만 한다. 시네마테크와 관련해 영화의 교육학과 박물관학이 제기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영화가 무엇보다 보여주는 행위라면 영화는 그것을 보여주는 열정을 지닌 사람들과
그것을 보는 사람들, 그리고 영화가 상영되는 공간과 조건에 의존할 것이다. ⓒ 김성욱

시네마테크는 그러나 기억의 기념비를 세우고 때가 되면 무언가를 기념하는 제도적 박물관처럼 그렇게 낡은 것은 아니다. 한국의 경우 그 역사가 일천해 부분적인 한계가 있을 터이지만 그럼에도 한국에서 시네마테크가 1990년대를 거치면서 관객운동이라는 고유의 활력을 바탕으로 독립적인 방식으로 진행되어 왔다는 사실을 중요하게 평가할 필요가 있다. 1990년대 말 아트선재 센터 지하에서 처음 필름 상영을 시작하면서 2002년 정식으로 시네마테크 전용관이 설립되고, 또 지금은 낙원동의 4층 건물의 한 개 관에서 관객들과 만나고 있는 ‘서울아트시네마’는 그런 관객운동의 활력에 근거해 만들어졌다.


사실 외국의 시네마테크를 돌아본 사람들이라면 느끼겠지만 서구의 다양한 사례와 비교해 볼 때 21세기에 이렇게 제도적 지원은 지극히 적으면서 관객운동의 활력이 강하게 느껴지는 곳은 오직 서울뿐이라는 생각이 든다. 게다가 이렇게 다양한 과거의 영화들을 일년 내내 관객들이 손쉽게 만날 수 있는 곳도 많지 않다. 2006년 올 한해만 보더라도 서울아트시네마에서는 빔 벤더스, 샹탈 아커만, 막스 오퓔스, 키에슬롭스키, 안소니 만, 샘 페킨파, 라울 루이즈, 와카마츠 코지, 베르너 헤어쪼그, 자크 투르뇌르, 더글라스 서크, 빌리 와일더 등 거장들의 회고전과 멕시코 영화제, 라틴 아메리카 영화제, 브라질 영화제, 체코 영화제 등이 개최된 바 있다.


이런 영화들을 시네마테크에서 상영하는 것은 호사스런 축제와는 거리가 멀다. 시네마테크의 영화 상영은 아직 그 시효를 다하지 않은 수많은 영화의 잠재적 가치를 상영을 통해 실현하는 행위이며, 동시에 미래의 영화, 미래의 관객을 준비하는 작업이기도 하다. 영화의 진정한 가치, 그것의 잠재적 가치를 평가하는 것은 현재의 관점에서만 진행될 일도 아니며 예술의 역사를 고려할 때 늘 현재의 평가가 온당했던 것도 아니다. 작가의 작품이 지닌 시장 가치는 유행에 따라 개봉하는 당시에 평가가 되겠지만 시장가치와 그것의 잠재적 가치가 같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래서 시간을 견뎌내는 영화의 잠재적 가치를 유보시키고, 그것을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의 관객들에게 전달하고 계승하는 것이 무엇보다 필요한 것이다.


영화는 쉽게 유행에 뒤쳐지고 보지 않는 영화는 망각의 저편으로 빨리 사라진다. 누군가는 진정한 영화애호가는 이제 막 개봉한 영화를 접하고서도 “이 영화는 아주 빨리 잊혀질 것이고 유행에 뒤진 영화가 될 것이야”라고 민감하게 느끼는 사람들이라 말한다. 미술관에 전시된 미술품이 여전히 굳건한 예술의 지위를 차지하고 있는 것과 비교하면 영화는 대단히 위약한 처지에 있다. 만약 영화가 무엇보다 보여주는 행위라면 영화는 그것을 보여주는 열정을 지닌 사람들과 그것을 보는 사람들, 그리고 영화가 상영되는 공간과 조건에 의존할 것이다. 시네마테크는 제도화된 박물관이 아니라 벤야민이 말한 ‘집단적인 꿈의 집’이자 말로가 원했던 ‘상상의 박물관’에 가깝다. 20세기의 대중예술로서 영화는 미술만큼이나 그것이 거주할 집, 시네마테크를 필요로 하고 있다.
▲ ‘시네마테크 프랑세즈’에서 장 엡스탱의 <라 벨 니베르네즈>를 보고 나서 센느 강은 진정 새롭게 다가온다. 사진: 시네마테크 프랑세즈(베르시) ⓒ 김성욱


2. 그리고 시네필이 시네마테크를 창조했다



한 번쯤 파리를 방문해본 여행자들은 루비통 매장이 있는 화려한 샹제리제 거리나 파리 시내의 야경을 내려다볼 수 있는 에펠탑, 퐁 데 자르나 퐁 네프 다리가 놓여있는 센느 강, 혹은 루브르 박물관이나 오르세 미술관 등을 주로 떠올리곤 한다. 아마도 파리에 관한 공식적인 이미지들은 그와 같을 것이다.


하지만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파리의 추억은 좀 남다르다. 이를테면 내게 파리의 풍경은 영화관에 대한 기억들로 가득하다. 생 미셀 근처의 골목골목에 숨어있는 유서 깊은 예술영화관들, 5유로를 내면 하루 종일 서너 편의 영화를 볼 수 있었던 레알 역 지하에 있는 ‘포럼 데 이마주’, 전시를 관람하고 영화를 함께 볼 수 있는 퐁피두센터 지하의 영화상영관, 혹은 과거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샤이오 궁 뒤편에 있던 ‘시네마테크 프랑세즈’(지금은 좀더 호화로운 건물을 조성해 베르시로 이전했지만) 등, 파리에는 정말이지 다양한 영화관들이 즐비하다. 매주 수요일 가판대에서 판매되는 ‘파리스코프’를 사면 일주일간 파리 시내에서 상영되는 모든 영화들의 정보를 확인할 수 있는데, 보고 싶은 영화들에 동그라미를 쳐가며 찾았던 파리 시내의 이러한 어둑한 영화관들은 내겐 루브르 박물관보다 더 진정한 밤의 박물관이었다. 그리하여 에펠탑은 ‘포럼 데 이마주’에서 르네 클레르의 무성영화 <파리는 잠들다>를 피아노 연주와 함께 본 후에 달라 보였고, 센느 강은 ‘시네마테크 프랑세즈’에서 장 엡스탱의 <라 벨 니베르네즈>를 보고 나서 진정으로 새롭게 다가온다.

파리의 영화환경은 하루아침에 생겨난 것이 아니라 오랜 역사를 통해 서서히, 혹은 급격
한 생성의 변화를 겪으면서 생겨났다. 사진: 시네마테크 프랑세즈(샤이오) ⓒ 김성욱

이러한 곳들은 프랑스의 영화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영화관들로 파리지앵들에게는 영화의 사랑을 몸에 익힌 장소이자 영화애호가들(시네필들)의 상징적 결집의 장소이기도 하다. 거장들의 회고전과 특별전, 기획전이 매달 개최되는 시네마테크 프랑세즈, 포럼 데 이마주, 퐁피두를 제외하고도 파리 시내에는 90여 개가 넘는 크고 작은 예술영화관들이 또한 존재한다. 파리시의 인구가 서울시의 1/5도 안되는 250만 명쯤이라 할 때 이렇게 다양한 영화상영 공간들이 존재한다는 것은 정말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이러한 공간들의 역사가 이미 1920년대에 그 기원을 두고 있다는 점이다. 파리의 다양한 영화문화환경에 놀라움을 표현할 때 그래서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그것이 하루아침에 생겨난 것이 아니라 오랜 역사를 통해 서서히, 혹은 급격한 생성의 변화를 겪었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것이다. 모든 나라가 그러하듯 프랑스의 영화문화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때문에 그 생성의 역사를 되돌아보는 것이 필요하다.


프랑스에서는 이미 1920년대부터 영화잡지, 영화비평을 둘러싼 노력이 있었고, 시네클럽이라는 광범위한 민중운동이 있었다. 1920년대의 시점에서 소비에트가 영화를 혁명화하려 했다면, 그리고 1930년대의 독일이 영화를 국가의 정치적 미장센으로 만들려 했다면 프랑스는 일치감치 그들과는 다른 의미의 영화국민이 되려했다. 현재 ‘카이에 뒤 시네마’의 편집장이기도 한 장 미셸 프루동은 『민족과 영화』라는 책에서 그런 프랑스의 영화사랑에 대해 “프랑스는 영화사랑의 나라, 혹은 시네필의 조국이 되려했다. 이는 세계의 유명 영화인들이 모두 각자의 조국을 버리지 않으면서 모두 영화조국의 시민이 되려하는 것에서도 알 수 있다. 그리고 그 곳에는 프랑수아 트뤼포와 같은 영화라는 이름의 국민의 왕자, 영웅 혹은 순교자가 있었다. 영화를 투영해 영화보다 더 크고 아름답고 다양하게 영화의 가치를 세계에 투영하려 하는 것. 그 순수한 의미만을 고려할 때 프랑스, 특히 파리는 영화의 수도가 된 것이다”라고 표현한 바 있다. 좀 과장돼 보이긴 하지만 사실 틀린 말은 아니다.

5유로를 내면 하루 종일 서너 편의 영화를 볼 수 있었던 레알 역 지하에 있는 ‘포럼 데 이
마주’ ⓒ 김성욱

역사를 되돌아볼 때 프랑스의 영화사랑은 두 가지 대립적인 힘의 작용에 의해 진행되어 왔다고 볼 수 있다. 그 하나의 축이 영화예술을 보존, 육성하려 했던 자발적인 노력의 과정이라면 다른 축은 오랜 역사를 통해 영화를 문화제도 안에 적절하게 위치시키려는 노력이다. 전자가 시네클럽, 시네마테크, 예술영화관들의 자발적인 생성과 영화애호가들의 노력이라면 후자는 예술로서의 영화를 제도적 지원이 가능한 문화의 영역으로 끌어올리려 한 행정가들의 노력에 있다.


이미 1920년대, 그러니까 영화가 무성영화였던 시대, 혹은 영화가 젊었던 시절에 초현실주의와 아방가르드 영화에 매혹을 느낀 초기의 영화애호가들(시네필)은 소규모로 시네클럽을 조직해 영화상영과 토론을 행하면서 영화가 예술임을 표명했다. 시네클럽은 영화상영의 공간이자 비평의 공간이었고, 또 영화가 예술이라는 사실을 일깨우는 공간이었다. 이 시기의 시네클럽은 실로 다양했는데, 이를테면 1920년대 시네클럽의 핵심적인 인물이었던 레옹 무시낙은 1928년에 ‘스파르타쿠스의 친구들Les Amis de Spartcacus'이라는 노동자 중심의 시네클럽을 만들기도 했다. 그는 당시 시네클럽의 영화상영에 대해 “영화상영이 끝난 뒤에 사람들은 떠나기를 거부했다. 그들은 열정적으로 앙코르를 외쳐댔다. 그래서 우리는 영화의 마지막 릴을 다시 한번 틀어야만 했다. 그 영화가 에이젠슈테인의 <10월>이었다. 마지막 전철도 끊어진 상태, 그래서 대부분의 노동자 관객들은 영화가 끝나 뒤에는 걸어서, 밤새도록 집으로 돌아가야만 했다”라고 감동적으로 회고한다. ‘스파르타쿠스의 친구들’이란 시네클럽은 프랑스에서 첫 번째로 만들어진 전국적 규모의 대안적인 영화상영 네트워크로 알려져 있는데, 이들은 파리에만 1만 5천명의 회원을 확보해 검열로 인해 상영이 불가능했던 소비에트 영화들을 집중적으로 소개했다. 에이젠슈테인의 <전함 포템킨>이 이러한 네트워크를 통해 프랑스 전역에서 3만 여명의 관객을 동원하기도 했었다.

초기의 영화애호가들은 소규모로 시네클럽을 조직해 영화상영과 토론을 행하면서 영화
가 예술임을 표명했다. 사진: 파리의 예술영화관 그랑악시옹ⓒ 김성욱

전후 프랑스에서는 전설처럼 회자되는 새로운 시네필의 탄생의 역사가 도래한다. 이 새로운 세대는 영화예술에 대한 기성의 견해에 반대 의견을 내비치면서 자신들의 영화적 취향을 과시하는 ‘저항’을 벌이기도 했다. 이를테면 시인 장 콕토가 1948년에 아방가르드 영화운동을 활성화하기 위해 만든 ‘Objectif 49'라는 시네클럽에는 로베르 브레송, 로저 렌하르트, 장 그레미용, 르네 클레망, 마르셀 카르네 등이 참여했는데, 이 시네클럽은 당시 배급이 불가능했던 영화들, 상업적으로 성공하지 못해 시장에서 사장된 영화들, 시네클럽의 취향과 열정에 어울리는 영화들을 주로 상영했다. 장 콕토의 <무서운 부모들>, 로셀리니의 <독일 영년>, 오슨 웰즈의 <위대한 앰버슨가> 등과 같은 작품이 여기에 포함되어 있었다. 장 콕토는 또한 당시 각 나라의 당국자들이 작품을 선별하던 기존의 영화제에 대항해 ‘타도 칸느’를 외치며 “우리가 스스로 작품을 선별할 것이다”라며 스스로 ‘저주받은 영화들’이라 칭한 영화들을 상영하는 ‘저주받은 영화 페스티벌’을 개최하기도 했다. 이 영화제에는 당시 19살의 고다르가, 21살의 리베트, 17살의 트뤼포가 참여하면서 영화상영 후에 격렬한 논쟁을 벌이기도 했다.


새로운 영화문화의 활성화에 기폭제가 된 것은 물론 앙리 랑글루아의 시네마테크였다. 1936년, 앙리 랑글루아와 조르주 플랑주에 의해 창설된 시네마테크 프랑세즈는 2차대전 이후 1948년, 50석의 상설관으로 개관하며 프랑스 영화문화에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당시 16세였던 프랑수와 트뤼포는 “시네마테크는 당시 우리에게 안식의 장소이자, 피난소이며, 가정이었다. 50석밖에 안되었기에 우리는 좌석에 앉지 않고 맨 앞줄의 마루에 앉는 것이 일상적인 일이었다”라고 말한다. 이러한 시네필들은 영화를 새로운 예술로 인식했고, 영화와 그것의 역사에 대한 반성의 새로운 장을 열었던 독특한 관객들이었다. 시네필들은 문서에 의존하는 영화사가와는 다른 나름의 기억술에 근거해 영화의 역사를 새로 써내면서 영화와 관련한 논쟁에 있어서 열정적이었고, 작품의 분류와 체계화, 취향의 판단에 있어서 야심적이면서도 세밀하고, 무엇보다 자신들이 좋아하는 영화의 가치를 적극적으로 옹호했다. 그런 점에서 시네필 문화는 제도적이고 공적인 문화와는 거리가 멀었다. 프랑스에서 시네필 문화는 그것의 바깥에서, 거의 독학을 통해, 자발적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전후 프랑스 시네클럽은 당시 배급이 불가능했던 영화들, 상업적으로 성공하지 못해
시장에서 사장된 영화들을 주로 상영했다. 사진: 파리의 예술영화관 르 카르티에 라탱
ⓒ 김성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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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stella 2009.03.11 01:19 신고

    아, 너무나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시네마테크라는 공간의 역사적인 기원과 그 가치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만드네요. 시네마테크의 설립자 랑글루와는 죽었지만, 오늘날에도 그랑 악시옹 극장안의 어둠속에서 씨네필들과 함께 영화를 보고있다는 얘기는 슬쩍 감동이..

    글 중에, 영화를 보았던 시간과 공간에 대한 추억이 특정 영화에 대한 기억에서 얼마나 큰 자리를 차지하는지에 대해서 정말 공감합니다. 쉘부르의 우산 얘기를 하셔서 문득 떠올랐는데요. 예전에 아트시네마에서 자크 드미 전을 했을때 [로슈포르의 숙녀들]을 보고 거리에 나온 후, 부드러운 활기로 가득했던 밤의 풍경과 귓가에 흐르던 미셸 르그랑의 경쾌한 음악소리는 그 영화를 떠올릴때마다 마치 소설 속 에필로그처럼 '함께' 솟아오르는 추억이랍니다.
    또, 존 휴스턴 감독의 [죽은 자들] 엔딩 크레딧에서 묘지위에 내리는 눈송이들이 하얗게 스크린을 덮는 장면을 보고난 후 극장 밖에 나왔을때 느꼈던 '밤의 어둠'은 분명히 예전의 어둠과는 다른 특별한 것이었습니다.

    ( ㅎ 그런데, 이 글을 읽으며 눈앞에 펼쳐지는 또 하나의 영화적 풍경은 플레이 타임에서 윌로씨가 회색 고층 빌딩들 사이로 성큼성큼 걸어다니는 그런 모습이예요. ^^ 아주 오래전, 파리에 흩어져있는 극장들 이곳 저곳을 즐거운 걸음으로 찾아다녔을, '아트시네마의 윌로씨'가 상상속에 그려져요. )

  2. Hulot 2009.03.11 02:58 신고

    2003년에 자크 타티의 <플레이 타임>을 파리의 르네 거리에 있는 L'Arlequin이라는 극장에서 70mm로 본 적이 있어요. 복원판이 재상영됐던 때입니다. <축제일>도 개봉시의 흑백버전과 미개봉의 컬러버전을 같이 상영했던 '자크 타티'에의 오마주전이었죠. 70mm라고는 하지만 스크린이 아주 거대한 곳은 아니었기에 조금 아쉬웠지만 그래도 그 넓은 화면에 윌로씨가 돌아다니는 모습을 보는 일은 무척 경이로운 일이었습니다. 2-3천석 극장에서 이 영화를 70mm로 보면 어떨까, 라는 생각을 했었죠. 자크 타티의 '회고전'을 올 5월에 시네마테크 서울아트시네마에서 할 예정입니다. 예전 아트선재 시절에 <윌로씨의 휴가>를 튼 적이 있지만 시네마테크에서 타티의 영화를 상영할 기회가 없었습니다. 벌써 5월이 기다려지는데 현실의 넘어야 할 산들이 많네요.

  3. sesism 2009.03.11 11:11 신고

    난간에 서서 관객들을 내려다보는 랑글루아의 이미지에 선생님이 겹쳐졌어요. 언젠가 "마지막 상영이 끝나고나서 인사동 쪽으로 빠져나가는 관객들을 내려다본다"던 말씀이 생각났거든요. 저도 5월이 기다려지는데 그저 그저 화이팅입니다 :)

  4. Hulot 2009.03.14 02:54 신고

    가끔 옥상에 심야 카페를 하나 차리면 좋겠다는 생각을 할 때가 있네요...영화가 끝난 후에도 쉽게 발길을 돌리지 못하고 옥상에서 담배를 피우는 사람들과 밤새 커피에 술을 한잔 해도 좋을 듯 싶은데.

  5. iamarock 2009.04.09 10:39 신고

    아트시네마에서 영화도 보고 미드나잇 파티도 하고 그랬으면 정말 좋겠네요. 꿈꿔 봅니다.

    • Hulot 2009.04.11 10:24 신고

      유럽에서는 가을에 백야축제를 하지요. 저녁부터 아침까지 갤러리, 박물관, 영화관이 밤새 개방을 하고 거리에서 공연이 벌어지는.. 그런걸 가을에 인사동에서 하면 좋을텐데요..

  6. void 2009.04.09 20:41 신고

    으흐흐 미드나잇 파티... 옥상 난간에 기대 서 있다보면 다리가 아파서 안에 있는 빨간 의자 갖고 나오고 싶어지더라구요. 햇살에, 선선한 바람에, 좋은 영화에. 문득문득 행복하다고 느낍니다.

    • Hulot 2009.04.11 10:27 신고

      '시네바캉스'를 하는 여름에 옥상에 모래를 깔고 파라솔을 설치하고 한적하게 보내도 좋을 텐데요..

  7. melomane 2009.10.17 11:20 신고

    글 참 재미있게 읽었어요. 이 좋은 공간들도 모르고 있었다니 파리에서 보낸 짧은 기간이 참 허무하단 생각이 드네요. 대신 지금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상영하는 영화를 꼼꼼히 체크하고 자주 다니려고 합니다. 여기서 관람한 영화는 왠지 머리 속에 뚜렷이 남는 것 같아요. 프로그램이 좋아서 그렇겠죠?

    • Hulot 2009.10.21 02:21 신고

      파리는 언제 가도 여전히 예전의 극장이 있고, 또 예전의 영화들을 늘 상영하고 있어 사라지지 않는 추억의 거처가 있다는 안도감이 생겨요....

1. 서울아트시네마와의 만남

 

리뷰를 쓰면서 영화형식미에 대한 나의 지식이 참으로 일천하기 그지 없다는 사실을 절감했다. 그래서 영화의 역사와 고전형식을 되짚어 보기 위해 <서울아트시네마>를 방문하기 시작했고, 그리고는 이내 영화의 풍성한 형식미의 바다에 퐁당 빠져서 허우적대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그렇게 어느 한 분야의 예술영역, 특히 영화는 쉽게 가늠하기 힘든 형식과 내용을 이미 갖추고 있었다.

 

2. 시네마떼끄의 힘

 

내가 영화예술의 진한 맛에 빠르게 중독된 데에는 뭐니뭐니해도 극장이라는 목적의식적인 대중적(정치적) 공간에서 만나는 필름(원본재현)상영이 존재했기에, 즉 고전 영화의 역사적 재현 공간에, 그 순간 내가 위치해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것이다. 이렇게 시네마떼끄는 과거의 역사적 경험을 현재의 대중과 공유하는 재현과 소통의 시대적 공간인 것이다. 이것이 우리가 떼끄를 지키고 사수해야 하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인 것이며, DVD나 TV로 개인적 공간에서 해결 불가능한 것이다.

 

3. 공모제의 본질

 

그런데 불행히도 그 공간이 사라질지도 모를 위험에 처해있다(이런... 역시 어느 곳, 어느 때이건 예술은 정치와 딴 몸일 수 없으며 항상 생존을 위해 싸움이 필요하다는 역사적 교훈을 또 일깨워준다. 의회민주주의의 역사는 항상 이런 상시적 불안감을 동반한다).

 

마침내 "공모제"라는 이름을 내걸고 시네마떼끄의 주체와 운영, 즉 헤게모니를 손아귀에 쥐겠다는 영진위의 끔찍한 도발이 시작된 것이다.(공모제란 마치 정부의 하청사업 경쟁입찰 공모 하듯이 다수의 떼끄 운영자를 공모 신청 받아서 그 중에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자로 골라서 운영을 맡기겠다는 것이다). 시민들 사이에서 자발적으로 시작된 이십 년에 가까운 역사를 가진 시네마떼끄 운동에 대해 정부가 그동안 고작 몇 년 간 약 30%의 예산지원을 해왔다는 이유로 운영권을 뺐아가겠다니, 도대체 이런 해괴망측한 날강도적 발상의 전환이 어찌 가능한지 김곡 감독의 "뇌절개술"로 그들의 사유방식을 한 번 해부해 보고 싶다.

 

사실 공모제 추진에는 정치경제적인 이데올로기적 배경이 있다. MB정권의 신자유주의의 극대화, 이윤과 효율 극대화의 논리, 선택집중의 허울 속에 담긴 국가경쟁력 강화의 논리가 문화부문에서, "모든 위탁경영제의 공모제로의 전환"이라는 정책으로 추진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예술에도 산업이윤의 경쟁논리의 잣대를 들이대고 있다. 한마디로 이윤에 눈이 먼, (국가)경쟁력 강화라는 경쟁과 일등만능주의에 빠진 그들에게 예술을 이해시킨다는 것 자체가 무리다.

 

그리고 가장 공정해야 할 사법기관과 언론마저도 낙하산과 코드인사로 완전장악한 그들의 힘 앞에서 문광부의 일개 위원회 조직인 영진위가 그들의 헤게모니를 거부하고 우리를 지켜줄 것이라는 환상은 정말 "거대한 환상"일 뿐이라는 사실을 명심하며, 결국 이 싸움은 우리들과 그들의 한 판 힘싸움이라는 것을 되새겨야 한다.

 

때문에 공모제 철회를 이루어내면 그것은 MB정권의 정치헤게모니인 신자유주의 극대화(경쟁과 이윤 극대화 논리)에 첫 파열구를 내는 싸움이라는 것도 알 수 있다. 1968년 일어난  프랑스 시네마떼끄를 지켜내기 위한 "앙리 랑글루아"싸움으로 드골정권에 첫 파열구를 내어 이후 68학생운동의 지식인세력에 큰 자신감을 실어 주어 전국적 정치운동으로 확대되었던 전래가 존재한다.

 

4. 라깡의 이론과 영화운동의 충돌

 

생존의 위협이라는 절박감 앞에 우리는 현재의 시간(현실)을 인식하고 몸부림(실천) 쳐야만 한다는 사실을 안다. 그것은 라깡의 시니피앙(기표)의 무한 연쇄의미화 작용이라는 대타자의 인식불가능성의 이론을 머리 속에서 말끔히 지워버려야 함을, 그리하여 눈 앞에 닥친 문제(대타자)에 대한 총체적 인식과 실천을 위한 대안 창출이 요구됨을 알 수 있다.

 

실천을 위해 선행되는 대상인식 작용은 항상 시간을 분절시키고 멈추게 한다. 그러기에 생존하려면, 즉 현실을 인식하려면 라깡의 미끄러짐의 무한 의미화 연쇄작용의 시간을 정지시켜 대타자를 필요한 해당 순간에 총체적으로 인식할 수 있어야 한다. 결국 생존을 위한 실천 앞에 라깡의 이론은 허무한 사변임을, 제논의 역설인 영원히 내 눈동자에 도달하지 않는 화살의 궤변임을, 결국 그 화살은 내 눈 앞에 도달하게 됨을 우리는 현실을 통해 알게 된다.

 

5. 씨네필 그리고 연대, 우리의 대응

 

공모제 철회 싸움은 이명박 정책 헤게모니의 담지자 영진위와 떼끄를 지키려는 씨네필 대중과의 힘 싸움이다. 그러기에 시네마떼끄 운동은 대중적 기반을 통해 유지되고 강화 될 수 있는 대중운동임을 재차 확인하는 계기가 될 것 같다. 이 기회를 통해 떼끄 운영진과 관객들 사이의 관계 강화로 떼끄운동의 대중적 기반이 실질적으로 형성되었으면 한다. 이를 위한 다양한 방법 연구는 앞으로 우리의 과제일 것이다

 

우선 기본적으로 관객의 리뷰가 함께 실리는 시네마떼끄가 발행하는 매월 소식, 리뷰지를 고려해 봄이 어떨까 싶다. 관객들은 서명운동을 계기로 '공모제 철회 커뮤니티'를 형성하여 씨네필 대중을 결집하는 계기를 만들고(영화학과와 수많은 영화동아리와 카페들이 대거 참여할 수 있다면 참 좋겠다는 희망사항을 꿈꿔 본다), 이를 바탕으로 떼끄 운영진과의 상시적 소통이 이루어졌으면 좋겠다.

 

마침 독립영화 "워낭소리"가 3백만 까지도 바라 보는 대선전으로, 독립영화와 예술영화운동의 중요성과 힘, 그리고 예술에 이윤과 경쟁논리를 불허해야 한다는 사실을 전국민에게 각성시킬 좋은 호재를 만들어 주었다. 게다가 공모제 위기에 함께 내몰린 미디액트와 독립영화계 인디스페이스는 우리와 함께 연대해 나갈 든든한 원군이다. 이번 싸움이 시네마떼끄가 대중들에게 널리 인식되고 그 기반을 점차 강화시키는 좋은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 우리들의 시네마테크 http://notrecinema.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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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네마테크협의회는 현대 영화사에서 잊지 말아야 할 중요한 작가 중 한 명인 장 뤽 고다르의 ‘영화, 역사, 시네마테크- 장 뤽 고다르의 <영화사> 특별전’을 개최합니다. 2007년, 서울아트시네마에서는 이미 장 뤽 고다르 특별전을 통해 그의 2기와 3기의 대표작을 소개하여 거장의 영화적 사유를 함께 호흡하는 자리를 마련한 바 있습니다.
2008년에는 이제 희수(喜壽)를 넘긴 노령의 고다르가 역사와 영화의 미래에 대해 발언한 근작 3편을 소개해 20세기 역사와 영화를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지기도 했습니다. 이번 ‘영화, 역사, 시네마테크-장 뤽 고다르의 <영화사> 특별전’에서는 장 뤽 고다르의 작품 <영화사>와 < JLG/JLG: 고다르의 자화상 >을 상영하고, 상영 전 영화 소개와 ‘고다르와 시네마테크’ 라는 제목의 시네마테크 첫 연속포럼을 시작하는 등의 특별 행사가 마련됩니다.

장 뤽 고다르의 <영화사>는 20세기 영화의 역사를 고다르적인 방식으로 약 4시간 30여 분에 걸쳐 4부작으로 정리한 작품입니다. 고다르 자신이 ‘연대기적인 방식이 아니라 고고학적이며 생물학적인 방식으로 영화의 역사를 썼다’ 고 했던 <영화사>는 20세기 영화사 최고의 영화와 역사에 < JLG/JLG: 고다르의 자화상 >은 2006년 시네마테크 서울아트시네마를 사랑하고 아끼는 분들의 후원금으로 프린트를 구매해 구축된‘시네마테크의 친구들 필름 라이브러리’ 중 하나입니다. 이 영화에서 고다르는 죽음과 애도, 구제의 문제를 제기합니다.

이번 특별전 기간 중에는 최근에 발생한 시네마테크를 둘러싼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시네마테크 연속포럼’을 개최합니다. 그 첫 번째로 프랑스 누벨바그의 기수이자 시네마테크의 ‘아이’라 불린 장 뤽 고다르가 20세기 역사를 결산하는 자세로 만든 <영화사>와 자전적인 영화 < JLG/JLG: 고다르의 자화상 >을 중심으로 시네필로서 고다르와 시네마테크의 관계를 살펴보는 자리를 마련합니다. 앞으로도 서울아트시네마는 시네마테크의 본질과 미래에 대한 포럼을 연속적으로 개최, 시네마테크가 나아가야할 방향에 대한 구체적인 논의를 전개해나갈 예정입니다. 또한, <영화사>의 상영 전 고다르의 영화에 대한 소개를 통해 고다르의 작품세계에 대한 심도 있는 이해를 도울 것입니다.

이번 ‘영화, 역사, 시네마테크-장 뤽 고다르의 <영화사> 특별전’은 장 뤽 고다르가 우리 시대의 가장 중요한 감독이자,이 시대가 잊지 말아야할 중요한 예술가 중 한 사람이라고 믿는 관객들에게 다시없는 기회가 될 것입니다.
 
장 뤽 고다르 Jean-Luc Godard (1930-)
장 뤽 고다르는 영화를 ‘찍지’ 않고, ‘창조’한다는 평가를 받는 감독입니다. 현존하는 영화연출가 중 현대 영화의 발전에 가장 큰 공로를 남긴 감독인 고다르의 필모그래피 전체는 수많은 실험과 형식의 혁신으로 영화의 미학적, 정치적 경계를 넓혀왔습니다. 소르본대학을 중퇴하고 시네마테크에서 만난 친구들인 프랑수아 트뤼포, 클로드 샤브롤 등과 함께 영화잡지 ‘카이에 뒤 시네마’의 필자로 활동한 후, 1959년 ‘누벨바그’ (새로운 물결)로 불리우며 영화연출자로 데뷔한 고다르는 관습을 거부하고 비약과 생략이 난무하는 편집으로 이루어진 데뷔작 <네 멋대로 해라 A Bout de Souffle>로 현대 영화에 혁명적인 바람을 일으켰습니다. <네 멋대로 해라>에서 <주말 Weekend>(1967)까지가 고다르 영화의 제1기라 분류한다면, 1968년 5월 혁명을 겪은 고다르가 ‘지가 베르토프’ 집단을 만들어 혁명 영화의 생산과 제작, 배급을 선언하며 자본에 대항하는 급진적 영화 만들기를 모색했던 시기를 고다르 영화의 2기라 부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는 혁명 영화의 생산과 제작, 배급에 주력할 것을 선언한 후 전 세계의 상업 배급망과 관계를 끊고, ‘정치적 주제에 관한 영화’가 아니라 ‘정치적으로 만들어지는 영화’를 만들고자 전 세계의 학생, 노동자, 운동 집단과 연대하여 창작활동을 펼치며 자본주의 체제하에서의 급진적 영화 만들기를 모색하였습니다. <할 수 있는 자가 구하라: 인생 Sauve qui peut: la vie>(1980)로 다시 상업영화에 복귀한 고다르는 영화, 또는 그를 포함한 예술, 종교의 가능성과 한계를 끝없이 회의하고 성찰하는 신세계의 경지를 펼쳐 보이고 있습니다.
 
no THE TITLE OF FILM DIRECTOR EXTRA INFO
01. JLG/JLG: 고다르의 자화상
JLG/JLG-autoportrait de decembre
장 뤽 고다르
Jean-Luc Godardr
1995ㅣ62minㅣ프랑스/스위스ㅣColorㅣ16mm
02. 영화사
Histoire(s) du cinema
장 뤽 고다르
Jean-Luc Godard
1998ㅣ270minㅣ프랑스ㅣColorㅣDV

 

특별행사: 시네마테크 연속포럼(1)

3/14(Sat.) 15:00 상영 후 시네마테크 연속포럼(1) -고다르와 시네마테크
강연자: 김성욱(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래머)

시네마테크 서울아트시네마에서는 최근 시네마테크를 둘러싼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매달 ‘시네마테크 연속포럼’을 개최합니다. ‘시네마테크 연속포럼’은 영화관계자들, 영화 전문가들이 참여해 시네마테크가 영화의 역사에서 지닌 문화적 의미를 살펴볼 뿐만 아니라 한국에서 시네마테크를 활성화하기 위한 방안을 모색하는 자리입니다. 그 첫 시간으로 프랑스 누벨바그의 기수이자 시네마테크의 ‘아이’라 불린 장 뤽 고다르가 20세기 역사를 결산하는 자세로 만든 <영화사>와 자전적인 영화 을 중심으로 시네필로서 고다르와 시네마테크의 관계를 살펴보는 자리를 마련합니다.

※시네마테크 연속포럼(1)은 앞서 상영되는 작품을 보신 관객들께 참여 우선권을 드리며, 자리가 남을 경우 선착순으로 참여하실 수 있습니다.

3/15(Sun.) 13:30
영화사 1부(모든 역사들/하나의 역사), 2부(오직 영화만이/치명적인 아름다움)
상영 전 영화소개: 김성욱(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래머)

3/15(Sun.) 17:00
영화사 3부(절대의 화폐/하나의 새로운 물결), 4부(우주의 통제/우리 사이의 기호)
상영 전 영화소개: 김성욱(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래머)

 
S1/ 15:00 S2/ 17:30 S3/ 20:00
3.10.Tue    
JLG/JLG:고다르의 자화상
JLG/JLG-Self-Portrait in December /62분
3.11.Wed  
19:30
영화사
1부(모든 역사들/하나의 역사)
2부(오직 영화만이/치명적인 아름다움) /149분
3.12.Thur  
17:00
영화사
1부(모든 역사들/하나의 역사)
2부(오직 영화만이/치명적인 아름다움) /149분

영화사
3부(절대의 화폐/하나의 새로운 물결)
4부(우주의 통제/우리 사이의 기호) /119분
3.13.Fri
15:30
영화사
3부(절대의 화폐/하나의 새로운 물결)
4부(우주의 통제/우리 사이의 기호) /119분
18:00
JLG/JLG:고다르의 자화상
JLG/JLG-Self-Portrait in December /62분
금요단편극장
3.14.Sat
JLG/JLG:고다르의 자화상
JLG/JLG-Self-Portrait in December /62분
상영 후
시네마테크 연속포럼1
고다르와 시네마테크
강연: 김성욱(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래머)

19:00
3월 작가를 만나다 - 신동일
나의 친구, 그의 아내
/116분
3.15.Sun
13:30
영화사
1부(모든 역사들/하나의 역사)
2부(오직 영화만이/치명적인 아름다움) /149분
상영 전 영화소개: 김성욱
17:00
영화사
3부(절대의 화폐/하나의 새로운 물결)
4부(우주의 통제/우리 사이의 기호) /119분
상영 전 영화소개: 김성욱
JLG/JLG:고다르의 자화상
JLG/JLG-Self-Portrait in December /62분

※장 뤽 고다르의 <영화사>는 총 4부로 구성되어 있으며, 총 상영시간은 4시간 27분입니다. 상영 시에는 1,2부와 3,4부 2편씩 묶어 상영하며 티켓 역시 1,2부와 3,4부로 묶어 판매합니다.
※시네마테크 연속포럼(1)은 앞서 상영되는 작품을 보신 관객들께 참여 우선권을 드리며, 자리가 남을 경우 선착순으로 참여하실 수 있습니다.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1회 관람료 6,000원/ 청소년 5,000원/ 관객회원, 노인 및 장애인 4,000원
-금요단편극장/ 작가를 만나다 1회 관람료 일반 5.000원, 청소년/단체/노인 4,000원 관객회원 3,000원
-인터넷 예매는 맥스무비(www.maxmovie.com), YES24(www.yes24.com), 티켓링크(www.ticketlink.co.kr) 등 지정예매사이트에서 가능합니다.
-현장예매는 3월 10일(화) 19시부터 시작합니다.
*모든 작품은 한글자막과 함께 상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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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아트시네마는 국내 유일의 민간 비영리 시네마테크 전용관으로 관객 여러분의 후원이 그 무엇보다 절실합니다.

이번 행사는 민간 시네마테크 활동의 근간을 이루는 상영 공간의 안정성을 확보하기 위해 벌이는 연중 후원 캠페인의 일환으로 마련된 무료 상영회입니다. 이후로도 다양한 방식으로 서울아트시네마를 지지하고 후원하는 회원 모집 캠페인을 벌일 예정입니다. 영화를 사랑하는 관객 여러분의 많은 참여 기대합니다.
 
no THE TITLE OF FILM DIRECTOR EXTRA INFO
01. 석양의 무법자
The Good, the Bad and the Ugly
세르지오 레오네 Sergio Leone 1966 l 181min l 이탈리아/스페인 l Colorㅣ35mm
02.

옛날 옛적 서부에서
Once Upon a Time in the West

세르지오 레오네 Sergio Leone 1968 l 165min l 이탈리아/미국 l Colorㅣ35mm
03.

석양의 갱들
Duck, You Sucker

세르지오 레오네 Sergio Leone 1971 l 157min l 이탈리아 l Colorㅣ35mm
04.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
Once Upon a Time in America
세르지오 레오네 Sergio Leone 1984 l 229min l 이탈리아/미국 l Color l 35mm
05. 선라이즈
Sunrise: A Song of Two Humans
F.W. 무르나우 F.W. Murnau 1927ㅣ95minㅣ미국ㅣB&Wㅣ35mm
06. 분노의 포도
The Grapes of Wrath
존 포드 John Ford 1940ㅣ129minㅣ미국ㅣB&Wㅣ35mm
07. 신사는 금발을 좋아해
Gentlemen Prefer Blondes
하워드 혹스 Howard Hawks 1953ㅣ91minㅣ미국ㅣColorㅣ35mm
08. 실물보다 큰
Bigger than Life
니콜라스 레이 Nicholas Ray 1956ㅣ95minㅣ미국ㅣColorㅣ35mm
09. 무셰트
Mouchette
로베르 브레송 Robert Bresson 1967ㅣ78minㅣ프랑스ㅣB&Wㅣ35mm
 
S1/ S2/ S3/
3.06.Fri 14:00
선라이즈
Sunrise

95분
16:30
실물보다 큰
Bigger Than Life

95분
19:00
옛날 옛적 서부에서
Once Upon a Time in The West

165분
3.07.Sat 13:00
분노의 포도
The Grapes of Wrath

128분
16:00
신사는 금발을 좋아해
Gentlemen Prefer Blondes

91분
18:00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
Once Upon a Time in America

229분
3.08.Sun
13:00
석양의 무법자
The Good, the Bad, and the Ugly

181분
16:30
석양의 갱들
A Fistful of Dynamite

157분
20:30
무셰트
Mouchette

78분

*모든 상영작은 좌석에 한해 선착순 무료 입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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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승완 감독이 선택한 로버트 알드리치의 유작 <캘리포니아 돌스>


2월 12일 저녁, 이번 친구들 영화제에 류승완 감독이 선택한 로버트 알드리치의 유작인 <캘리포니아 돌스>가 그의 추천의 변을 시작으로 상영되었다. 류승완 감독은 이 영화를 뽑은 이유에 대해 작년에 힘든 겨울을 보냈기 때문에 희망을 이야기 하는 영화를 함께 보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의 바람대로 상영 후에는 주인공들의 막판 뒤집기 승리에 관객들의 뜨거운 박수갈채가 쏟아졌고 곧 그 열기를 이어 류승완 감독과의 유쾌한 시네토크가 펼쳐졌다. 희망의 결의를 잃지 말자는 류승완 감독의 다짐과 함께, 관객들의 질문이 쇄도했던 열정 어린 시네토크 현장의 목소리를 전한다.






김성욱(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래머) : 알드리치의 다른 영화나 드 팔마의 작품도 추천했었는데 최종적으로는 이 영화를 상영하게 되었다.

류승완(영화감독) : 필름 수급이 언제나 문제이지 않은가.(웃음) 사실 제일 소개하고 싶었던 것은 마이클 위너의 <데스 위시>였는데 지금 준비하고 있는 영화와 비슷한 맥락이 있어서다. 또 추천 하고 싶었던 영화로 브라이언 드 팔마의 신작인 <리댁티드>도 있었다. 드 팔마 감독이 HD로 만든 일종의 가짜 다큐멘터리인데, 미국이 전쟁을 치루는 국가의 사람들에게 얼마나 잔혹한 짓을 하는지를 보여준다. <리댁티드>에서 드 팔마는 UCC를 시도했는데, 그 점이 아주 흥미로웠다. 그런데 이 작품도 어려운 듯 해서 그런 절망 속에서 ‘그렇다면 <캘리포니아 돌스>를!’하며 추천했다. 초반에 꿀꿀하지만 막판 뒤집기 한판으로 답답한 시대를 살아가는 국민들에게 희망이 되는 영화가 아닌가 싶다.


김성욱 : <캘리포니아 돌스>는 알드리치의 유작이라는 점과 피터 포크의 능수능란한 수완이 인상적이다. 일종의 쇼 비즈니스 사업을 엄청난 저예산으로 일궈내는 데, 그 안에 알드리치의 총 생애가 집결되어 있는 듯하다.

류승완 : 나도 비슷한 생각이 들었다. 알드리치가 여자 프로 레슬링을 통해서 ‘영화와 같은 흥행산업을 얘기하는 거였구나’했다. 피터 포크가 수완을 발휘하는 마지막 장면이 특히 감동스러웠다. 여자 레슬러들은 육체노동에 가까운 연기를 한다. 화려한 연예산업의 뒷면에는 이 여자들처럼 자기 육체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마지막 장면에서 피터 포크는 대중들을 매수한다. 이런 장면들에서 자기 몸뚱이들로 살아가는 사람들은 누구와 손을 잡아야 하는가에 대한 감독의 시선이 나타나 감동스러웠다. 매수 하는 사람들은 노인 아니면 애들이다. 반주하는 할아버지와 아이들을 통해서 관객들을 움직이는 모습도 감동적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영화는 스포츠 영화의 껍질을 한 일종의 노동영화가 아닌가 생각한다.


김성욱 : <롱기스트 야드>라는 영화를 보았나? 이 영화와 견줄만한 작품으로 그 영화도 진짜 노동영화다.(웃음)

류승완 : 아직 못봤는데 오늘 DVD를 선물 받았다. 알드리치의 영화는 대부분 노동영화 같다. <더티 더즌>같은 전쟁 영화도 노동하는 것 같으니까. 근데 이 영화는 다른 알드리치 영화와 다른 점이 있다. 알드리치 다른 영화들에 나오는 장르적인 인물이 아니라 사실적인 인물이 등장한다는 점이다.<더티 더즌>에서도 병사들을 훈련시키는 리 마빈의 역할이 중요하고 독특하게 나타는데, 그런 인물과는 달리 피터 포크는 우리가 아는 사람 같다. 그런 인물 묘사가 어쩌면 알드리치가 자기 모습을 영화 속에 남겨 놓은 건 아닌가 한다. 이 영화는 보면 볼수록 인물들을 알면 알게 될수록 경기 장면의 느낌이 달라진다. 프롤로그의 경기는 제3자로 경기를 구경하는데 반해 마지막 경기는 우리가 자연스레 응원하고 있다. <록키>같은 영화들을 보면 주인공들을 응원해줘야 한다고 막 맞춰가지만, 이 영화는 그런 것 같진 않다. 이 영화는 그 사람들을 알게 하는 것만으로도 그들을 충분히 응원하게 만든다.


관객1 : 마지막 부분에 라이벌이 주인공들 지라고 하면서 TV 경기를 보는 장면이 있다. 스포츠 영화에서는 경기를 TV로 지켜보는 사람들을 찍은 장면이 꼭 클리셰처럼 등장하는데. 

류승완 : 성공한 드라마라면 라스트에 도달하기 전까지 관객은 어떤 식으로든 주인공과 교감하게 된다. 만약 극 안에 있는 주인공을 제외한 사람들이 주인공이 아닌 다른 대상을 응원하면, 영화 밖에 있는 사람들은 주인공을 응원하게 되는 결과를 갖게 된다. 그리고 다른 시선들이 개입하는 것이 클리셰라고 했지만, 이것은 보는 관객들의 감정을 환기시켜준다. 기술적인 측면에서는 경기의 실제 시간을 다 보여주지 못할 때 외부의 시선을 개입시켜서 점핑시켜주는 효과도 있다.


관객2 : 영화는 중간 중간에 주인공들의 직업관이나 윤리관에 대해 언급하는 듯 하다 결국 그것들을 가볍게 넘겨버리는 것 같은 느낌이 있는데.

류승완 : 나도 그렇지만 이쪽 업계에 있는 사람들이 어떤 때는 발가벗은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사람들은 싫든 좋든 자기가 선택한 삶을 살아야 하는 상황이다. 지켜보는 사람들은 이렇다 저렇다 말은 할 수 있겠지만, 이들은 그렇지 않다. 이 영화는 하나의 입장이 맞다고 이야기하는 게 아닌 거 같고 그게 더 어른스럽게 보인다. 이 영화는 사건중심의 영화가 아니라 어떤 시점을 살고 있는 사람들을 포착한 듯이 만들어진 영화라서, 이 영화 안에서는 도덕적으로 여자의 행동이 잘못되었다 하는 판단이 무의미해지는 것 같다. 특별한 시선을 가르치려고 하지 않는 감독의 시선이 좋다.






관객3 : 이 영화 보면서 ‘주인공들이 진정한 승리자가 맞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여자들이 승리를 거두고 나서 가는 곳엔 또 어떤 룰이 있을까라는 생각과 함께 링 자체가 허무하게 보였다.

류승완 : 영화를 볼 때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동일한 장소에서 영화를 본 사람들은 같은 영화를 본 것 같지만 모두 다 각자의 영화를 보았을 것이다. 관객 분이 말씀한 느낌도 받아드릴 수 있는 부분이다. 나는 이 영화가 상영하는 두 시간 안에서는 두 여자가 아는 사람같이 느껴져서 그들이 승리하는 것이 고마웠다. 저들이 승리한 후 피터 포크와 어떻게 살아갈까라고 질문한다면 그건 모르는 것이다. 나는 이 영화를 복잡한 접근보다는 사회 안에서 저렇게 사는 사람들의 모습을 지켜보는 것으로 보고 싶다. 이 영화를 만든 사람이 주려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사람들이 힘든 상황들 안에서 힘들게 살지만, 그 안에서 이런 즐거움도 있다는 것을 말하는 것 같다. 그것이 내가 영화를 추천한 이유이기도 하다.


관객4 : 언제부턴가 영화들이 지는 데서 오는 감동을 주는 경우가 많은데, 이 영화는 승리함으로서 오는 감동을 주는 영화였다. 이 두 가지 상반된 감동에 대해서 감독님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류승완 : 각자의 매력이 있다. 나는 액션 영화가 유사 스포츠 관람 형태라는 말을 자주 한다. 액션 영화에서 우리가 응원해야 할 대상을 찾아내고 그가 승리하면 환호하고, 그가 패배하면 비극을 느낀다. 감동이라는 것은 마음이 움직인다는 것인데, 이건 누가 이기고 지는가의 문제가 아니라, 영화의 전체적인 드라마의 문제인거 같다. 그 인물에 얼마나 동의하고 응원할 수 있게 하는가의 문제이다. 의도적으로 그런 것에 거리를 두려는 영화들도 있다. 인물을 차갑게 응시하는, <밀리언 달러 베이비> 같은 영화가 그렇다. 그런 영화를 보면 거리를 둠으로서 또 다른 감동을 갖게 한다.


관객5 : 마지막 장면이 너무 좋았다. 그 장면에서 정정당당한 룰 같은 건 없었다. 주인공들이 대중과 음악을 가지고 다시 판을 엎었다. 우리도 세상을 엎어야 하지 않겠나.

류승완 : <겟 카터>를 보라. 마음에 드실 거다. (웃음)



김성욱 : 나 역시 마지막 장면이 감동적이었다. 링에는 언제나 규칙이 있고 또 예외가 있다. 그 링에 올라야 할 순간이 있고, 싫다면 안 오를 수도 있다. 이 판단의 과정이 피터 포크와 두 레슬러 사이에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들의 결정은 어쨌든 링엔 올라야 한다는 것이다. 또 링은 계속 존재한다는 거다. 하지만 링이 계속 되는 것이지, 사람이 계속 되는 것은 아니다. 일시적으로 주인공들이 이겼지만 그 뒤로 어떻게 될지는 모른다. 영화의 네모난 화면도 마찬가지다. 그 화면을 채울 감독들도 계속 존재할 것이다. 링과 화면은 관객과 선수보다 오래 지속될 수밖에 없다. 우리가 링 안에서 다툼을 벌이고, 일시적으로 승리하겠지만, 그 순간만큼은 또 기쁨을 누릴 필요가 있다. 그건 우리들의 프라이드니까. 알드리치는 그걸 정확하게 알고 있는 감독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 점이 좋다. 링을 포기하려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웃음) 완전히 링 바깥으로 나가면 자유로울 것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는 그 공간을 채우고 다툼을 벌일 것이다. 류승완 감독 또한 언제든 링위에 오를 준비가 된 선수란 생각이 든다. `
류승완 : 이 영화를 보고 여러분과 나누고 싶은 메시지는 현재를 살아가라는 것이다. 여기 있는 인물들은 미래를 위해 안달복달하지 않고 현재에 충실하게 살아간다. 마지막의 매력적인 피터 포크의 쇼도 현재의 상황을 직시할 수 있는 시선과 판단력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영화는 자신의 현재와 주변을 본다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일깨워주는 것 같다. 내가 링 위에서 싸우는 사람들에 관한 영화를 만들 때, 실제 복서 훈련하는 체육관에 가서 보고 놀란 글귀가 있다. ‘내가 세계 챔피언일지도 모른다!’라는 말이다. 그거 보면서 진짜 웃겼는데, 생각해보니 무시무시한 말이다. 1%의 가능성이라도 있으면 시도를 한다는 거 아니겠냐. 너무 무모해도 안 되겠지만, 가능성과 희망이 사라지면 끝장이다. 영화보고 영화 만들면서도 느낀 게 있는데, 그건 바로 맞는 걸 무서워하면 때리지를 못한다는 거다. 이건 진리다. 한 대 때리기 위해서는 한 대 맞을 것을 먼저 각오해야 나아갈 수 있다. 여러분들이나 나나 살아가면서 많은 일들에 부딪치지만, 이 진리를 곱씹으며 주저앉지 말고 잘 버텨서 살아갔으면 좋겠다.


정리 : 김나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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