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를 맞아 '씨네21'에서 박찬욱, 오승욱, 전계수 감독이 나눈 대담을 소개합니다.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특별섹션 ‘최선의 악인들’ 박찬욱-오승욱-전계수 감독 대담

 

이번 행사에서 가장 독특한 섹션은 박찬욱, 오승욱 감독이 프로그래밍한 ‘최선의 악인들’이다. 수년 전부터 두 감독이 함께 아이디어를 떠올렸던 이 소행사는 영화 속 매력적인 악당과 그 악당을 연기한 뛰어난 배우들을 소개하는 자리. 감독이기에 앞서 영화광의 입장에서 ‘객원 프로그래머’ 역할을 맡은 두 사람이 이번 행사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다. 이 자리에는 <삼거리극장>의 전계수 감독이 ‘객원 대담자’로 가세해 흥미를 더욱 북돋웠다.

전계수: 두분 감독님, 오랜만에 뵙습니다. 모두 영화를 준비 중이신 것으로 아는데요, 우선 박 감독님의 <박쥐>는 어느 정도 작업을 하셨나요.

박찬욱: 지금 후시녹음을 마쳤고 음악과 CG를 만들고 있어요. 4월 말 개봉을 목표로 열심히 준비하고 있어요.

전계수: 사람들의 기대감이 굉장히 크던데, 부담스럽지는 않으세요?

박찬욱: 다른 건 모르겠는데, 규모가 굉장히 큰 영화로 여겨질까봐 걱정이에요. 사실 <박쥐>는 등장인물도 많지 않고 액션신도 거의 없는 영화거든요. 규모보다는 밀도가 중요한 영화라고.


섹션 제목이 왜 ‘최선’인가

오승욱: 저는 <무뢰한> 시나리오를 다시 쓰는 중이에요. 지난해부터 준비했는데 여건이 안 맞아서 잠시 덮어두고 <복수>라는 영화를 준비했어요. 한국전쟁 직후 미군부대를 배경으로 한 이야기라 규모가 크다보니 투자가 힘들더라고요. 그래서 다시 <무뢰한>을 끄집어냈는데, HD카메라를 사용해 10억원 미만의 저예산으로 찍을 생각이에요. 영화아카데미 제작연구과정에서 두편의 영화에 지도교수로 참여했는데, 그렇게 해보니 많은 돈을 안 들이고도 영화를 찍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지금 생각으로는 배우를 포함해서 10명의 스탭과 길거리에 나가 찍는 ‘스트리트 무비’가 될 것 같아요.

전계수: 저도 새 영화를 준비 중인데, 하정우씨가 캐스팅됐고요, 지금은 여배우를 캐스팅 중이에요. 기본적으로 사랑 이야기인데 스크루볼코미디까지는 아니지만 대사가 굉장히 많아요. 시나리오도 다른 영화보다 훨씬 두꺼워요. 배우들도 다른 영화보다 1.5배는 대사를 빨리 해야 하고, 편집도 빠르게 해야 할 것 같아요. 아까 박 감독님은 ‘규모보다 밀도’라고 하셨는데 저는 그 반대예요. 밀도보다는 스펙터클, 그러니까 대사의 스펙터클로 승부하는 영화죠. (웃음)

오승욱: 제목이 뭐예요?

전계수: 가제로 정한 것이 <러브 픽션>이에요. 사랑 이야기이고 또 소설이 나와요. <사랑 소설>이라고 하면 너무 밋밋할 것 같아서 일단 그렇게 지어놓았는데 충무로는 ‘러브’라는 단어가 들어가면 흥행이 안된다는 속설이 있더라고요. (웃음)

오승욱: 나는 <사랑 소설>이 좋은데. 유치하면서도 좋아요.

박찬욱: 그게 좋다는 말이야, 나쁘다는 말이야? (웃음)

전계수: 이제 영화제 이야기를 해보죠. 아까 기자회견 때 박 감독님 옆자리에 앉아 있었는데, 이 섹션을 아주 오래전부터 준비하셨다고 말하시던데요.

박찬욱: 우리가 하는 일이 다 그렇듯이 술자리에서 시작됐죠. (웃음)

오승욱: 언젠가 술을 마시면서 배우 얘기가 나왔는데, 각자 좋아하는 배우들을 이야기하다 보니 전부 매력있는 악당들이더라고요. 그래서 그런 캐릭터 중심의 영화들을 모아보면 어떨까 하는 이야기를 하게 됐죠.

전계수: 우선 제목이 좋은 것 같아요. ‘최선의 악인들’. 아이러니하잖아요. 그런데 왜 ‘최선’인가요.

박찬욱: 악당으로서의 역할을 최고로 잘한 캐릭터를 모아놓는다는 의미에서 그렇게 지었어요.

오승욱: 그래? 난 전혀 다른 의미로 이해했는데. 나는 ‘최선’이라는 의미를 그야말로 착할 선(善)으로 해석했거든. 그래서 악당으로서 가져서는 안될 면모를 갖고 있는 악당을 의미하는 줄 알았지.



착한 일만 하면 위선의 향기가 솔솔?

박찬욱: 악당이라는 게 나쁜 놈을 의미하는데 최선의 악당이라고 하면 진짜 나쁜 거 아니겠어. 덜 나쁜 놈은 최악의 악당이겠지.

전계수: 그런데 그런 악당에게 마음이 끌리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박찬욱: 다들 그렇지 않나요. 우리만 그런가? 하여간 나는 선한 인물만 보이는 영화는 보고 싶지 않으니까.

전계수: 그래도 주인공이 선인인 영화가 더 많잖아요.

박찬욱: 그렇다 해도 그들의 선을 빛내주기 위한 상대방은 존재하잖아요.

오승욱: 그리고 악당이야말로 사람 같잖아요. 어떤 인물이 너무 착하게 생각하고 착한 일만 하면 그 안에서는 위선의 향기가 솔솔 풍기잖아요. 그리고 악한에게서는 나 자신의 모습을 발견할 수도 있는 것 같아요. 그러니 더 끌리게 되지 않을까.

전계수: 6편의 작품 리스트를 보니 다채롭다는 생각이 드네요.

오승욱: 이들 영화가 최종 선정된 과정을 설명하자면 참 길어요. 처음에 열몇편의 영화를 꼽았는데, 거의 영미권 영화더라고요. 아니 악당들 나오는 영화는 왜 죄다 영미영화인 거야. 생각해보면 유럽영화 속 매력적인 악당은 여성 캐릭터가 많더라고요. 하여간 애초의 리스트를 서울아트시네마에 보냈는데 프린트가 수급되지 않는 영화가 너무 많더라고요.

전계수: 애초에는 어떤 영화들을 소개하고 싶으셨나요?

박찬욱: 우리가 공통으로 꼽았던 영화가 있는데, 그게 마이클 리치 감독의 <프라임 컷>이에요. 진 해크먼과 리 마빈이 둘 다 악당으로 나오는 영화인데, 프린트가 없어서 못 틀게 돼 너무 아쉬워요.

오승욱: 그 영화에 아주 재밌는 장면이 있어요. 진 해크먼이 총을 맞고 돼지우리에 빠져요. 진 해크먼은 리 마빈에게 우리 둘 다 비슷한 놈들인데 남자답게 깨끗이 죽여달라고 부탁하죠. 그런데 리 마빈은 웃기지 마, 하면서 그냥 가버려요. 그걸 보면서 와 저거 진짜 악당이구나 했죠. (웃음)



<프라임 컷> 못 틀어 아쉬움 남아

박찬욱: ‘프라임 컷’이라는 게 여러 뜻이 있지만 여기서는 가장 좋은 고기 부위로 만든 소시지를 의미하거든요. 사람 고기로 소시지를 만들죠.

전계수: 아, 마블링이 잔뜩 들어가 있는…. (일동 폭소)

박찬욱: 와아, 전 감독 추임새가 장난 아닌데. (웃음)

오승욱: 존 스터지스의 <황야의 7인>도 보여주고 싶은 영화였어요. 알다시피 <7인의 사무라이>를 서부극으로 리메이크한 건데 7인이 모두 악당이니까.

박찬욱: 악당들의 백화점인 셈이지. 그런데 그것도 프린트가 없더라고요.

오승욱: 로버트 알드리치의 <북극의 제왕>도 소개하려고 했던 영화예요. 어니스트 보그나인이 악당으로 나오거든요. 사실 우리가 처음 이야기를 꺼낼 때 배우, 즉 악당 전문 배우를 중심으로 생각해서 그런지 미국영화가 주가 됐던 것 같아요. 어니스트 보그나인, 잭 팰런스, 찰스 브론슨, 진 해크먼, 리처드 위드마크, 로버트 라이언 등을 소개하려고 했는데 프린트 구하는 게 만만치 않았아요.

박찬욱: 그중 위드마크와 라이언만 건진 셈이지. 나중에 다시 크게 할 때 그 사람들을 다 모아보자고.

오승욱: 아쉬운 작품 얘기만 해도 1시간은 족히 걸릴 것 같은데, 찰스 브론슨이 나온 르네 클레망의 <빗 속의 방문객>이나 로버트 라이언, 어니스트 보그나인과 리 마빈이 함께 나오는 존 스터지스의 <배드 데이 블랙 록>, 숀 코너리가 악당으로 등장하는 시드니 루멧의 <앤더슨 테이프>도 틀고 싶었고….

박찬욱: 릴리아나 카바니의 <나이트 포터>도 아쉽고, 클라우스 킨스키의 악당 연기도 보여주지 못해 안타깝고.

전계수: 결국 프린트 수급이 가능한 영화 중 선택한 셈인데, 완성된 라인업에는 어떤 맥락이 있나요.

박찬욱: 내 경우엔 맥락이 없어요. 굳이 말하자면 다양한 악당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사실 넓은 의미에서의 악당인 거죠. <퍼제션>의 이자벨 아자니는 아픈 사람이죠. 그런데 누구보다 악마적인 모습을 보여주니까. <그랜드 뷔페>의 네 주인공도 악한이라기보다 타락한 사람이라고 말하는 게 낫겠죠. 하지만 타락도 윤리의 부재 상태라는 면에서는 악의 한 형태니까. <밤 그리고 도시>는 리처드 위드마크를 소개하고 싶어서 선정했어요. 우리가 그동안 꾸준한 노력으로 리 마빈을 악당으로 어느 정도 정착시켰는데(웃음), 신인배우를 소개하는 의미에서. 이 영화 속 위드마크는 완전한 악마라기보다 좀 비열하달까 그런 정도죠. 사실 너무 악마스러우면 재미가 없어요.



이자벨 아자니, 정말 대단하지

오승욱: 악당이 악마화되고 추상화되는 순간, 관객은 흥미를 잃어버려요. 그 악은 실체가 불분명한 존재니까.

박찬욱: 훌륭한 영화이긴 하지만, 그래서 <양들의 침묵> 같은 영화는 이번 프로그램과 어울리지 않는 거죠.

전계수: 그렇다면 오승욱 감독님의 프로그래밍에는 어떤 맥락이 있나요.

오승욱: 저는 그런 것을 조금 생각한 것 같아요. 권력을 갖지 못한 사람들이 악의 기운에 휘말려 악당이 되는데 그 안에서 이상한 논리와 윤리를 만들고, 그게 아킬레스건이 돼서 파멸되는 이야기라는 면이 공통점일 거예요.

박찬욱: 오 감독이 꼽은 영화 중에서 <겟 카터>는 지금 관객에게 꼭 보여주고 싶은 영화예요. 마이클 케인이 주인공인데, 젊은 관객은 <배트맨 비긴즈>와 <다크 나이트>에서 배트맨의 집사 정도로만 기억하잖아요. 이 영화를 보면 그 매력에 깜짝 놀랄 거야.

오승욱: 박 감독이 꼽은 <퍼제션>의 이자벨 아자니도 대단하지.

박찬욱: 이 영화는 감독이 아자니와 사귀던 시절에 만들었는데, 아자니를 정서적인 궁지에 몰아넣고 학대해가면서 만든 영화지.

오승욱: 배우보다는 감독이 더 악당 같네.

전계수: 사실 저는 아자니를 아주 가까이서 볼 기회가 있었어요.

박찬욱, 오승욱: (눈을 크게 뜨며) 오, 그래?

전계수: 지난해 10월에 카자흐스탄에서 열린 유라시아영화제에서요. 인권영화 <시선 1318>가 초청돼서 거기에 참여했던 이현승, 김태용, 방은진, 윤성호 감독님과 함께 갔는데, 아자니가 게스트로 참석했더라고요. 그런데 아자니 때문에 저희 기자회견이 두번이나 취소되고 연기됐어요. 애초 기자회견이 잡혔는데 하필 그때 아자니가 와서 기자들이 다 그쪽으로 갔어요. 그래서 다음날 다시 기자회견을 하려는데, 그전에 했던 아자니 인터뷰가 너무 길어져서 기자들이 다 밥먹으러 갔다는 거예요. (웃음)

박찬욱: 그런데 어땠어요, 직접 보니.

전계수: 사실 제가 공개하면 안될 것 같은 아자니의 굴욕사진을 몇개 갖고 있는데, 많이 망가졌어요. 얼굴은 어떻게 했는지 30대 후반의 모습을 유지하는데, 몸이….

오승욱: 잠깐. 그만 듣는 게 나을 것 같네요. 기억 속 이미지가 지워질 것 같아. (웃음)

박찬욱: <퍼제션>에서는 아자니에 가려졌지만 샘 닐의 연기도 좋죠. 연기를 말하자면 <그랜드 뷔페>도 대단하죠. 마르첼로 마스트로이안니, 미셸 피콜리, 필립 누아레, 우고 토나치처럼 당대 유럽의 최고 배우들이 함께 나오니까. 우리로 치면 송강호, 설경구, 최민식, 김윤석이 한 영화에 나온 셈이죠. 그래서 이 영화는 남자배우들이 와서 봐줬으면 좋겠어요. <퍼제션>은 여자배우들이 봐주고.

전계수: <박쥐>의 김옥빈씨도 보러 오겠네요.

박찬욱: 옥빈이는 DVD로 보여줬어요. 그것을 보고 느낌이 많았던 모양이에요. 요즘 우리 배우들을 보면 가만히 있는 내면연기나 절제된 연기만 좋아하고 그게 연기의 전부라고 생각하는데, 그런 연기가 필요한 영화도 있겠지만 나는 그런 게 싫어요.



김옥빈에겐 <퍼제션>, 임수정에겐 <백야>

전계수: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우리 배우들은 몸을 쓰는 게 너무 부자연스럽잖아요. 몸을 보여줄 수 없다 보니 클로즈업으로 찍을 수밖에 없고 그러다 보니 표정으로만 하는 게 연기처럼 받아들여지는 것 같아요.

박찬욱: 옥빈이에게 <퍼제션>을 보여준 것도 그런 자극을 받으라는 의미였어요. <미쓰 홍당무> 때는 공효진에게 <카비리아의 밤>을 보라고 했고, <싸이보그지만 괜찮아> 때 임수정에게 <백야>를 보여준 것도 그런 의미죠.

전계수: 사실 우리가 잘 몰라서 그렇지 고전영화를 좋아하는 배우들도 많더라고요. 제가 알기로는 김효진씨도 엄청난 영화광이에요.

박찬욱: 이번에 시네마 엔젤이 선택한 <무셰트>는 이나영씨가 가장 좋아하는 영화로 알고 있어요. 그래서 나영씨가 선택했다더라고요. 특이한 영화를 좋아하는 배우도 많은 것 같아요. 임수정씨가 샘 페킨파의 <팻 개럴과 빌리 더 키드>를 좋아할 줄이야. 김옥빈이 존 휴스턴의 <팻시티>를 좋아할 줄이야.

오승욱: 그리고 문소리가 존 카사베츠의 <영향력 아래의 여자>를 좋아할 줄이야.

박찬욱: 재밌는 게 스타들을 데려와보면 시네마테크 관객은 스타들에게 사인해달라고 하는 경우가 별로 없어요. 감독들에게만 몰리지. 그게 시네마테크 관객의 자존심 같아요. 그리고 또 너무 덤벼들면 배우들이 다시 오지 않을까 하는 배려도 있는 것 같아.

오승욱: 우리만 악당들에 관한 이야기를 했는데, 전계수 감독도 다음다음 영화로 악당이 나오는 영화를 준비하고 있다고 들었어요.

전계수: 일단 제목을 정해놓았는데, <악한 자가 되지 않는 것은 오만>이에요.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의 <픽션들>에 나오는 소설 속 구절이에요. 그 말이 가슴에 콕 박혔어요. 저는 평생에 걸쳐서 악한을 다뤄보고 싶은데 일단 처음에는 부모나 친구처럼 개인적 차원의 나쁜 짓을 하는 악당을 그리고, 다음에는 사회적 차원에서의 나쁜 놈을, 그 다음에는 역사적 차원에서의 나쁜 놈을 다루고 싶어요. ‘악한 자가 되지 않는 것은 오만’이라는 말처럼 어떤 사람이 악한이 될 수밖에 없는 불가피성을 담겠죠.

박찬욱: 본인이 프로그래밍한 영화 말고 이번 영화제에서 보고 싶은 작품과 관객에게 추천하고 싶은 작품은 뭔가요.

전계수: 제가 악한에 관심이 많다보니 이 ‘최선의 악인들’을 다 볼 계획이에요. 보지는 못했지만 제목이 마음에 드는 <열대병>을 추천하고 싶고요.

박찬욱: 나는 아직까지 보지 못한 <탐욕>을 보고 싶어요. 그리고 추천작은 아까 말했던 <겟 카터>.

오승욱: 나는 <분노의 포도>를 보고 싶고 추천하고 싶어요. 대공황이 배경인데, 이 영화는 바로 지금 봐야 해요. 이 MB시대에…. (웃음)



박찬욱이 추천하는 3편의 영화

<그랜드뷔페>, 비위 약하면 보지 마

우선 <밤 그리고 도시>에서는 무엇보다 리처드 위드마크의 매력에 주목해달라. <이중노출> <패닉 인 더 스트리트> <사우스 스트리트의 소매치기> 등에서 악당 연기를 해왔던 그는 지금 세대에겐 낯선 존재일 것. 비정한 세계에 내몰린 악당의 이야기를 통해 그의 멋진 모습을 다시 보고 싶다. <퍼제션>의 안드레이 줄랍스키 감독은 워낙 광기어린 영화를 만들기로 유명하지만, 이 영화는 그중에서도 정점에 해당한다. 여기서 아자니는 표면적으로는 정신병자이지만 악마에 사로잡힌 여성으로 등장해 혼신의 연기를 보여준다. 사실 그건 줄랍스키의 학대에 가까운 연출에서 비롯된 것(프랑스 기자에게 듣자하니 아자니에게 이 영화에 관한 질문을 던지는 건 결례로 받아들여진다고 한다)이긴 하지만. <그랜드 뷔페>는 네명의 부르주아들이 죽을 때까지 먹자, 다시 말해 먹어서 죽자는 연대감으로 별장에 모이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네 배우의 뛰어난 연기에 초점을 맞춰달라. 이들이 죽어가는 장면을 보고 있으면 아무리 떠들썩한 파티를 열더라도 결국 죽음은 혼자서 맞이하는 것이라는 진실이 절절하고 쓸쓸하게 다가온다. 아, 워낙 괴상한 장면이 많이 나오니 비위가 약한 분들은 보지 않는 편이 나을지 모른다.





오승욱이 추천하는 3편의 영화

<구멍>의 이상한 감동

<겟 카터>는 형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고향을 찾아가는 한 갱의 이야기다. 여기서 마이클 케인이 휘두르는 거친 폭력에는 별 이유가 없어 보인다. 자기가 언제부터 형과 조카를 사랑했다고. 감정이입을 할 구석이 없는 캐릭터인데도 마음이 끌리는 건 뛰어난 연출력과 연기 때문일 것이다. 특히 케인이 자기가 행사하는 폭력에 도취되는 모습은 정말 매력적이다. 자크 베케르의 <구멍>은 감옥에 갇힌 중죄인들이 탈옥을 감행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나는 이 영화를 감히 로베르 브레송의 <사형수 탈옥하다>에 버금가는 감옥영화에 꼽고 싶다. 다섯명의 악인들이 넓은 어깨를 부딪혀가며 땅을 파는 모습이 주는 이상한 감동과 긴장감이 두드러진다. <들판을 달리는 토끼>는 로버트 라이언에 대한 애정으로 선택했다. <피아노를 쏴라> <다크 패시지> 등의 원작자 데이비드 구디스의 소설을 바탕으로 한 이 영화는 울퉁불퉁하기는 하지만 악당이라는 존재가 결국 통과의례를 거치지 못해 유년기에 머물고 있는 남자들이라는 사실을 알게 한다. 이 영화가 <EBS>에서 방영됐을 때 동료인 허진호 감독이 <킬리만자로>를 준비하던 나를 위해 녹화해준 개인적 기억도 있다.


* http://www.cine21.com/Article/article_view.php?mm=005001002&article_id=547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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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1월 29일 저녁 7시, 서울아트시네마에서 네 번째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가 막을 올렸다. 풀린 날씨만큼 따뜻한 마음으로 영화제를 찾은 친구들과 관객들로 극장은 상영시간 한참 전부터 북적이기 시작했다. 영화제 관계자 외에도 많은 이들이 영화계 안팎으로 다사다난했던 한 해를 떠나보내고 시네마테크의 2009년 첫 발걸음을 축하하기 위해 모여들었다. 이날은 친구들 영화제와 시네마테크를 응원하는 이들에겐 무엇보다 새로운 희망의 빛을 발견하고자 하는 염원이 담긴 자리기도 했다. 매년 ‘친구들 영화제’의 사회를 단독 진행한 권해효씨가 이번에는 새로운 친구를 맞았다. 배우 예지원씨가 새로운 친구가 되어 영화제의 사회를 진행했고 그 어느 때보다 친구들의 따뜻한 환호 속에서 영화제의 개막식이 열렸다. 친구들 영화제 개막식 현장을 전한다. (이후경)

 




권해효(배우): 많은 사람들의 많은 염원이 담겼던 독립영화, 예술영화상영관들이 어려워진 상황에서 맞이하는 시네마테크 친구들 영화제가 보다 남다르게 느껴지는 때입니다. 하지만 오랜만에 여기 모이신 관객 분들, 배우들, 친구들과 함께 즐거운 마음으로 친구들 영화제를 시작했으면 좋겠습니다.


예지원(배우): 올해의 슬로건은 ‘공간의 발견, 행복의 시네마테크’입니다. 친구들로는 영화감독 13분과 배우 3분, 영화평론가 1분이 참여하셨습니다. 나날이 참석하시는 분들도 늘어가고 희망이 있는 것 같습니다.


박찬욱(영화감독, 친구들 대표): 시대와 국적을 초월해서 가장 재밌고 위대한 영화들을 불러모아 함께 즐겨 보는 행복한 시간이 돌아왔습니다. 제가 며칠 전에 멀티플렉스에 갔는데, 정말 볼 영화가 없어서 결국 낮술을 마셨습니다(웃음). 와이드릴리즈 시스템의 문제도 있고, 국내외적으로 기대할만한 영화가 잘 나오지 않는 시대이기도 합니다. 그에 비해 친구들 영화제는 이름만 들어도 설레는 작가들의 대표작들을 총망라하고 있습니다. 그 목록은 어떤 계보나 논리도 없는 개인적 취향들의 모임이지만, 그래서 오히려 좋은 영화들을 고를 수 있었습니다. 이런 행사는 여길 꾸준히 와주셨던 영화광들을 위한 선물이자, 새로운 단골들을 끌어들기 위한 호객행위입니다. 저를 비롯한 영화를 고른 모든 분들이 호객꾼인 셈입니다. 저도 오승욱 감독과 함께 ‘최선의 악인들’이란 이름으로 악당들이 주인공인 영화들로 몇 편 골라봤습니다. 품질은 보장합니다. 정말 재밌고, 엽기적이고, 변태적인 영화들입니다. 온갖 미치광이, 정신병자, 광인, 악당, 무뢰한, 불량배들이 다 나옵니다. 꼭 와서 봐주시길 바랍니다. 예전에 스콜세지 감독이 60년대 말, 70년대 초의 뉴욕에서는 일주일에 한 번 씩 인생을 바꿀만한 영화들을 만나곤 했다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여기서 여러분들은 하루에 세 번씩 인생을 바꿀만한 영화를 만나시게 될 겁니다.


 


최정운(한국시네마테크협의회 대표): 올해로 4회를 맞이하는 친구들 영화제는 대한민국의 오늘의 영화인들을 대표하는 영화감독, 연기자, 평론가에 이르는 많은 분들이 영화를 선택해 관객 분들과 함께 보고 얘기 나누는 아주 특별한 영화제입니다. 특히 올해는 박찬욱, 오승욱 감독님께서 수고하신 ‘최선의 악인들’ 프로그램, 시네마테크 엔젤들의 선택을 포함한 다양한 영화들이 상영됩니다. 이 자리에 참석해주신 여러분들께 다시 한 번 감사드리고, 영화제 기간 내내 좋은 시간되시길 바랍니다.


김성욱(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래머): 올해는 가장 어려운 조건 속에서 최대의 효과를 내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최근에 사라진 친구들이 많습니다. 동반자였던 영화 잡지, 시네마테크 전용관 설립 계획, 시네마테크를 이해해주셨던 정책 관계자 분들 또한 사라지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이런 때 친구들로써 영화제에 참여해주신 분들께 그 어느 때보다 감사드립니다. 올해는 특별히 나쁜 친구들도 모셨습니다. 박찬욱, 오승욱 감독이 뽑아준 ‘최선의 악인들’은 더 나쁜 악당들과 싸우기 위해 불가피하게 친구로 삼을 수밖에 없는 최선의 악인들입니다. 올해 개막작은 무르나우 감독이 1927년에 만든 무성영화 <선라이즈>입니다. 이 영화는 자본과 영혼이 가장 적절하게 결합된 예외적인 작품이라 할 수 있습니다. <선라이즈>에서 무르나우 감독은 삶의 아주 작은 것들에 재앙과 파멸의 흔적이 있음을 말하면서 아주 사사로운 것들로부터도 희망을 품을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무르나우의 <선라이즈>와 함께 희망의 일출을 느끼시길 바랍니다.


 

배창호(영화감독): 제가 영화계에 뛰어든 70년대 말에는 쿼터 때문에 외국영화를 볼 수 있는 기회가 극히 제한적이어서 문화원 행사를 통해서 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오늘 개막작으로 선정된 무르나우의 <선라이즈>같은 고전 명작들도 책에서 본 스틸, 영화를 본 사람의 이야기로 만족했었습니다. 그러다가 잉그마르 베르히만의 <제7의 봉인>을 보기 위해 가슴 설레는 마음으로 구 영화진흥위원회를 찾아갔는데 몇 사람 없어서 씁쓸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지나간 영화를 음미하고 그 가치를 발견하는 사람들은 여전히 적은 것 같습니다. 존 부어맨 감독은 요즘 영화들이 인위적인 테크닉으로 관객들을 흥분시키지만 기초는 부족하다고 말했습니다. 영화의 기초를 습득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큰 발자취를 남긴 감독들의 영화를 음미하고 창작의 원천을 이해하는 일일 것입니다. 제가 대학시절 프랑스 고전 영화나 누벨바그 영화를 보기 위해 경복궁 앞에 위치한 프랑스문화원을 가면 지하에 ‘살 드 르누아르’, 즉 르누아르의 방이라는 조그만 영사실이 있었습니다. 그곳이 당시 영화학도들에게는 도서관이자 귀중한 학교였습니다. 영화관도 영화도 넘쳐나는 시대에 서울아트시네마가 그런 공간이 되길 바랍니다.



 


안성기(배우): 제가 가끔 영화과 학생들에게 특강할 일이 있을 때 우리 영화사에서 손꼽히는 작품들을 얘기하면 못 본 영화라서 얘기가 진전이 안 될 때가 많습니다. 현재의 홍수 같은 물량에 기가 질린 상태겠지만, 집고 넘어갈 것은 집고 넘어가야 과거, 현재, 미래라는 선이 흔들리지 않고 잘 이어지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래서 예전 영화들이 중요합니다. 그런데 과거 우리 영화들의 필름 보존 상태가 외국영화들과 비교해 부끄러울 정도로 안 좋습니다. 그것이 우리 시네마테크들이 잘 안 되는 원인 중 하나라고도 생각합니다. 최근에는 디지털 복원들이 조금씩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최근 완전 복원된 김기영의 <하녀>는 언제 보셔도 손색이 없으실 겁니다. 앞으로도 많은 분들이 함께 즐길 수 있도록 오래된 영화들을 복원하는 것도 큰 작업입니다. 이번 기회를 통해 우리 관객들이 예전 영화들의 소중함을 느끼는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 개막식이 있는 날이면 낙원상가 4층은 늘 조심스런 분주함이 서린다. 개막식 행사는 7시부터지만, 6시를 넘기자마자 옹기종기 모인 관객들은 일찌감치 표를 사놓고 아담한 극장 로비에 앉아 행사가 시작하기를 기다린다. 일을 마치고 부랴부랴 뛰어온 직장인, 아르바이트 시간을 앞당겨 친구들과 함께 극장을 찾은 대학생, 아이의 손을 잡고 온 어머니까지 모두가 들뜬 마음으로 시계를 바라본다. 일 년 중 좀처럼 모이기 힘든 영화인이 한데 모이고, 관객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는 날이다. 그렇게 제법 힘찬 움직임 속에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 개막식이 시작되었다.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가 다른 영화제보다 조금 더 친밀하고 조금 더 따스하게 다가오는 가장 큰 이유는 각개의 영화를 책임지는 영화인 ‘친구들’이 있다는 것이다. 매번 개막식 때마다 막간 인터뷰를 통해 시네마테크를 지지하고 스스로 선택한 영화를 지지하는 ‘친구들의 메시지’는 친구들 영화제가 처음 시작했을 때부터 시네마테크 고유의 것이었다. 한 명의 영화인이 영화를 선택한 후, 그 영화에 대해 관객과의 대화를 진행하는 것은 곧 영화에 대한 애정을 실감하게 하는 멋진 대화법이 아닐 수 없다. 해마다 많은 감독과 배우, 그리고 평론가들이 자신의 이름과 얼굴을 스크린에 비추며 영화에 대한 지지를 아끼지 않는다. 짧지만 핵심을 찌르는 그들의 진솔한, 혹은 재미난 인터뷰를 듣고 있으면, 도대체 어떤 영화이기에 저들의 마음을 그토록 사로잡았을까 하는 궁금증이 뭉게뭉게 피어난다. 너무나 보고 싶고, 너무나 좋아하는 영화를 추천해 관객과의 만남을 기다리는 영화인들. 그리고 그들의 추천사를 두어 번쯤 곱씹으며 극장으로 향하는 관객들.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는 누구든 상관없이 극장을 찾는 불특정다수를 ‘친구’라는 단어로 엮어주는 역할을 도맡는다. 추천한 영화, 추천 받은 영화, 그리고 자발적으로 선택한 영화들을 관람한 후 극장을 나선 후의 발걸음은 가벼울 수밖에 없다. 결국은 모두가 영화 하나로 묶인 동지들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친구들’의 인사와 함께 개막 행사가 무사히 끝나고, 무르나우의 영화 <선라이즈>를 상영하는 것으로 ‘2009년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는 약 한 달 정도 진행되는 영화 여행의 시작을 알렸다. 영화가 끝날 무렵 준비된 푸짐한 리셉션과 여기저기서 마주하는 반가운 얼굴들은, 좀처럼 서울아트시네마라는 공간을 벗어나지 못하도록 발길을 잡는다. 차가 끊길 시간이 다 되어서야 극장 로비는 한결 조용해진다. “내일 오실 건가요?” “어떤 영화 볼 거예요?” 헤어질 때 즈음 나누는 여담들은 또다시 영화로 시작해 영화로 끝을 맺는다. 하지만 아쉬움도 잠시. 이제 막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는 본격적인 항해를 시작했다. 봄기운이 비칠 무렵에야 뭍에 다다를 ‘친구들 영화제’를 빌미로, 영화를 한 번, 소중한 친구들을 두 번 바라보는 재미는 지금부터 시작이다.(강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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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를 맞아 무비위크의 이유진 기자가 감독들과 인터뷰했던 글이 인터넷에 올라있네요. '친구들 영화제'를 맞아 조금 가벼운 컨셉으로 각각의 감독들이 자신이 좋아하는 영화들, 시네마테크와 관련한 기억들을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조금은 익살스런 사진들의 모습이 재미있군요.


* <무비위크> by 이유진

2009년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에 놀러오세요!

당신에게 시네마테크는 무엇인가요. 우리가 사랑하는 감독들에게 시네마테크에 대한 추억을 물었습니다. 모두가 서로 다른 추억을 회고하지만 이 하나에서만큼은 한목소리를 냅니다. “시네마테크에서 영화를 보면서 감독의 꿈을 키우고 영화를 찍을 수 있었다”고 말입니다. 올해도 어김없이 시네마테크 친구들 영화제가 찾아옵니다. 옛날 영화는 촌스럽다고, 혹은 너무 어렵다고 생각하고 있지 않나요? 그렇다면 친구들이 직접 소개하는 추천작과 시네마테크에 대한 소소한 추억을 엿보며 이참에 <무비위크>와 함께 시네마테크 친구들 손잡고 영화제에 놀러 가는 건 어때요. 자, 부끄러워하지 말고 시네마테크로 어서 오라니까요!

● 박찬욱 감독 

 

내가 시네마테크에서 가장 인상 깊게 본 영화는 [샘 페킨파 감독의 <가르시아>(1974)]이고, 그때 배우의 [데킬라 들이켜는 표정]에 너무 반해서 [술집으로 직행해서 취할 때까지 술을 마셨]다. 만약에 내가 연출한 작품 중에 시네마테크에 남길 작품을 뽑으라면 [<싸이보그지만 괜찮아>(2006)]인데, 사람들이 [일순과 영군의 키스(영화 사상 최고의 키스 신이다!)] 장면을 오래도록 기억해 줬으면 좋겠다. 내가 평생에 찍고 싶은 영화는 [서부극]이고, 이때 내 최대 라이벌은 [김지운]인데 [18세 이상 관람가 찍는 것]만큼은 내가 더 잘한다. 올 한 해 [<박쥐> 개봉 후 휴식]을 계획 중이고 [감량]하는 게 목표다. 2009년 한국 영화는 [감량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추천작 <그랜드 뷔페>
1973 | director 마르코 페레리

“이번에 오승욱 감독와 함께 ‘최선의 악인’이란 섹션을 기획했다. ‘최선의 악인’이란 게 모순 어법이지 않나. 악당들이 나오는 영화이되 일정한 경지에 오른 그런 캐릭터, 악인으로서의 자기 역할을 최선으로 잘해낸 캐릭터가 나오는 영화들을 모았다. 사실 매력적인 악인을 만들기 위해선 배우의 매력이 중요하다. 연기력이 돋보일 수밖에 없는 거니까 캐스팅에 공을 들이게 마련이고. <겟 카터>엔 마이클 케인, <그랜드 뷔페>의 마르첼로 마스트로얀니, 미셀 피콜리, 우고 토그나지는 이탈리아와 프랑스를 대표하는 당대 최고의 중년 배우들이다. 우리나라로 치면 송강호 최민식 설경구 안성기 김윤석 이런 배우들이 한 영화에 나왔다고 보면 된다. 이렇게 매력적인 배우들을 한 번에 볼 수 있다는 것부터 구미가 당기지 않나. 음, 우리나라에서 최선의 악인을 뽑으라면? 송강호를 뽑겠다!”

● 오승욱 감독



내가 시네마테크에서 가장 인상 깊게 본 영화는 [우선 장 피에르 멜빌의 <레드 써클>이 좋았고, 파졸리니 영화도 좋았다. 최근에 본 것 중에선 작년에 세르지오 레오네의 달러 3부작 <황야의 무법자> <석양의 건맨>
<석양의 무법자>를 하루에 연대기 순으로 이어 봤는데, 그 경험이 굉장히 인상 깊었]
다. 세르지오 레오네 감독이 [배불뚝이 자세로 TV 웨스턴을 보는 사진을 좋아하는데] 달러 3부작을 보고 집에 가는 길에 그 생각이 나서 [밥을 어마어마하게 많이 먹고 배를 불려서 존 포드의 웨스턴 영화]를 봤다. 만약에 내가 연출한 작품 중에 시네마테크에 남길 작품을 뽑으라면 [아마도 다음에 찍을 영화였으면 좋겠는]데, [죽기 전에 한 열 편의 영화를 찍을 수 있으면 너무] 좋겠다. 내가 평생에 찍고 싶은 영화는 [인간의 죄에 대한 영화]이고, 이때 내 최대 멘토는 [장 피에르 멜빌]인데, [한국의 어두운 면모, 지금 동시대에 대한민국이 저지른 죄]만큼은 내가 더 잘 안다. 올 한 해 [다음 영화 시나리오 열심히 쓰는 걸] 계획 중이고 [그 시나리오로 영화를 찍는] 게 목표다. 2009년 한국 영화가 [무조건 생존!]했으면 좋겠다.

추천작 <들판을 달리는 토끼>
1972 | director 르네 끌레망

“우리가 매력을 느끼는 악당들은 어둠 속에서 생존하기 위해서 범죄를 저지르는 이들이다. 악한 행동에 최선의 윤리의식이 아킬레스 건으로 존재하는 악당, 해적을 꿈꾸는 늙은 소년들을 소개하고 싶다. <들판을 달리는 토끼>를 보면 어른들이 하는 행태들이 굉장히 유치하다. 말도 안 되는 게임을 하고, 그 순간 폭력이 발생하기도 하고. <구멍>은 <사형수 탈옥하다>의 범죄 버전이라고 볼 수 있는데, 대단히 재밌는 영화다. 흥미로운 이야기뿐만 아니라 굉장히 매력적인 악역 배우들도 골고루 만날 수 있다.”

● 김지운 감독



내가 시네마테크에서 가장 인상 깊게 본 영화는 [레오 까락스, 파졸리니, 브레송의 작품들]이고, 그 감독들의 [모든 작품]에 반해서 [나도 언젠가 꼭 저런 영화를 만들겠다 다짐]했다. 내가 연출한 작품 중에 시네마테크에 남길 작품을 뽑으라면 [아직 없는]데, [언젠가 내 영화가 상영된다면 너무 행복할 것] 같다. 최근에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를 보면서 장르 영화가 도달할 수 있는 최고의 경지란 생각을 했는데 나도 이런 영화를 만들면 좋겠]고, 이때 내 멘토는 [당연히 코엔 형제]인데, [한국어]만큼은 내가 더 잘한다.(웃음) 2009년엔 [<놈놈놈> 이후 어떤 영화를 찾아갈 것인가에 대한 답을 얻는 게] 목표고, 한국 영화가 [활기를 찾고 건강한 기운을 얻으면] 좋겠다.

추천작 <소년, 소녀를 만나다>
1984 | director 레오 까락스

“영화 천재이자 장 뤽 고다르의 유일한 정신적 아들, 시인 랭보와 가장 절친한 이웃사촌. 한 감독이 이렇게 화려한 수식어를 가질 수 있는지 의문이 들 정도로 한국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혜성같이 등장한 레오 까락스의 데뷔작이다. 영화적으로는 가끔 이야기의 불연속성 불균질적 텍스트, 알 수 없는 몸짓과 행동, 철학적인 대사 때문에 난해하게 생각할 수도 있지만 한 편의 사랑 이야기를 고백하는 시적이고 아름다운 동화 같은 흑백 영화가 아닐까 생각한다. 이야기를 좇다 보면 지루할 수도 있으나 좋은 블로거의 시적인 사진첩을 한 장 한 장 넘겨볼 때 느낄 법한 애틋하고 쓸쓸한, 사랑에 대한 정서를 마주할 수 있을 것이다.”

● 전계수 감독



내가 시네마테크에서 가장 인상 깊게 본 영화는 [장 비고 감독의 <라탈랑트>(1934)]이고, 그때 그 배우들이 [굉장히 사랑스러워서] 그 모습이 늘 [마음에 남아] 있다. 만약에 내가 연출한 작품 중에 시네마테크에 남길 작품을 뽑으라면 [아직은 없지만, 죽기 전에 찍게 될 마지막 작품이 되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만약에 한국의 뮤지컬 영화가 많이 늘어나서 <삼거리 극장>이 상영된다면], 사람들이 [정든 꿈을 부르는] 장면을 오래도록 기억해 줬으면 좋겠다. 내가 평생에 찍고 싶은 영화는 [너무 많은데, 지치지 않고 열심히 꾸준히 찍었으면 좋겠]고, 이때 내 최대 라이벌은 [강이관 김태용 감독처럼 잘생긴 감독들]인데,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더 잘하는 건] 없는 듯 싶다.(웃음) 올 한 해 [하정우 씨와 같이 <러브 픽션>을 작업]할 예정인데 3월부터 촬영에 들어갈 것 같다. 의도치 않게 말 때문에 늘 주변의 빈축을 사는 인물이 주인공인데, 내 모습이 많이 투영돼 있다.(웃음) [늘 연애에 실패하지만 언제나 연애를 꿈꾸는 소설가의 좌충우돌 연애담]을 계획 중이고 [리듬감 있는 스크루블 코미디 영화로 완성]하는 게 목표다. 2009년 한국 영화가 [즐거워졌으면] 좋겠다.

추천작 <연인 프라이데이 >
1940 | director 하워드 혹스

“할리우드의 전형적인 대표 스크루블 코미디 영화다. 그 안에서 배우들이 나누는 속사포같이 쏟아지는 대사들이 마치 롤러코스터를 타듯이 영화의 리듬을 들었다 놨다 하는 게 있는데, 앞으로 찍을 <러브 픽션>에서 그런 장면이 많아 도움이 많이 될 것 같아서 골랐다. 긴장을 잃지 않고 배우들이 움직이고 말하는 연출 자체가 굉장히 재미있게 느껴질 거다. 절대 놓치면 안 되는 작품이다.”

● 정가형제 감독



우리가 시네마테크에서 가장 인상 깊게 본 영화는 [나루세 미키오의 <부운>(1995)]이고, 그때 그 감독의 [인생과 사랑을 보는 시선]에 너무 반해서 [들떴다]. 만약 우리가 연출한 작품 중에 시네마테크에 남길 작품을 뽑으라면 [<기담> (2007)]인데, 사람들이 [사계절 환상] 장면을 오래도록 기억해 줬으면 좋겠다. 내가 평생에 찍고 싶은 영화는 [뉴라이트가 전액 투자하는 초대형 블록버스터 <청산리 대첩>]이고, 이때 우리의 최대 라이벌은 [방해 공무원]인데, [폭력 장면 연출만큼은 니네]가 더 잘한다. 올 한 해 형은 [자가 운전]을 계획 중이고 동생은 [운전면허 취득이] 목표다. 2009년 한국 영화가 [과! 속! 성장]했으면 좋겠다.

추천작 <거울>
1998 | director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

“만약에 세상이 물에 잠겨서 노아의 방주를 띄우고 영화를 넣어야 한다면 무수히 많은 작품을 선택하게 될 것이다. 그렇지만 정말 몇 편의 영화만을 남겨야 한다면 인류에게 이런 영화가 있다는 것을 알려줘야 하는 의무감과 사명감을 가지고 남겨놓는 작품일 텐데, 그때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의 영화는 꼭 들어가 있을 거라 생각한다. 그 가운데 굳이 <거울>을 뽑은 건 우리가 필름으로 못 봐서.(웃음) 둘 다 너무 좋아하는 작품이다.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 영화는 <향수>부터 보기 시작했는데 지금은 저잣거리에 내놔도 안 쳐다볼 구원과 희생을 화두로 삼고 있지 않나. 살인, 치정, 복수 이런 테마가 더 익숙한 요즘에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가 어떻게 받아들여질지 모르겠지만 그가 이야기한 구원과 희생의 테마는 인류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추천작 <탐욕>
1924 | director 에리히 폰 스트로하임

“대학교 1학년 때 좋은 수업 듣겠다고 4학년 수업에 몰래 들어갔었다. 그때 교수님이 에리히 폰 스트로하임의 <탐욕>을 설명하면서, 완전판이 존재하지 않는데 그게 어마어마할 거란 얘기를 했었다. 마침 이번에 상영한다고 해 완전히 기대하고 있다. 워낙에 좋은 영화들이 많아서 만사 제치고 다 보려고 한다.”

2009-01-19   이유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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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의 발견, 행복의 시네마테크’ 에서 2009년 시네마테크의 친구들이 다시 함께 합니다!



2009년, 벌써 네 번째를 맞는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가 개최됩니다. 이 영화제는 시네마테크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열리는 최대의 영화축제입니다. 2006년 1월을 시작으로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는 영화애호가들은 물론, 영화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에게 매년 기다려지는 대표적인 영화축제가 됐습니다. 한국을 대표하는 영화감독, 영화평론가, 배우들이 직접 참여해 자신들이 관객들과 함께 보고 싶은 영화를 선정, 필름으로 영화를 상영하고 관객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는 한국의 다른 영화제들과는 기획과정이나 참여방식 자체가 색다른 유일하고도 독특한 영화제입니다.
이번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에서는 ‘공간의 발견, 행복의 시네마테크’라는 슬로건으로 시네마테크의 본령을 향한 힘찬 여정을 시작합니다. 문학에 대해 도서관이 있듯이 영화에 대해서는 시네마테크가 절실합니다. 기존의 공공문화 기반 활동들이 위축되고 있는 이 때, 시네마테크는 영화라는 문화유산을 통해 문화다양성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 낼 수 있는 공간적 논리를 더욱 굳건히 세우려고 합니다. ‘공간의 발견, 행복의 시네마테크’는 당면한 공간적 한계를 넘어 시네마테크로서의 초심을 되새기고자 하는 서울아트시네마의 반성과 자기인식에서 출발합니다. 현 공간을 긍정하고 그의 가능성을 새롭게 발견해 내는 한편, 이를 중심으로 다양한 논의와 폭넓은 네트워킹을 구축함으로서 궁극의 시네마테크를 발견하려는 서울아트시네마의 강한 의지 표명입니다.

개막식 및 후원의 밤
2009년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 개막식 및 서울아트시네마 후원의 밤
일시 l 2009년 1월 29일 (목) 19시
장소 l 시네마테크 서울아트시네마
사회 l 권해효(배우), 예지원(배우)

개막식 및 후원의 밤 순서
19:00 '2009년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 개막식 본 행사
20:00 개막작 <선라이즈> (F.W. 무르나우 연출, 1927 95min) 상영
21:30 서울아트시네마 후원의 밤 (장소: 서울아트시네마 로비)


2009년 관객과 함께하는 ‘친구들’
영화 감독(13명) 박찬욱(‘친구들’ 대표), 김지운, 류승완, 배창호, 변영주, 오승욱, 이명세, 이현승, 전계수, 정가형제(정식,정범식), 정윤철, 홍상수
배우(3명) 권해효, 안성기, 하정우
영화평론가(1명) 김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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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29일 개막하는 '2009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의 기자회견이 오늘(1월 14일) 3시 인사동의 '리틀 차이나'라는 카페에서 박찬욱, 전계수 감독, 김성욱(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래머), 김홍록(한국시네마테크협의회 사무국장)이 참여한 가운데 열렸습니다. 처음으로 '영화제'의 프로그램을 공식적으로 소개하는 행사였습니다.

올해로 벌써 네 번째를 맞는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는 시네마테크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열리는 최대의 영화축제입니다. 2006년 1월, 서울아트시네마의 재정후원을 도모하고 한국에서 고전영화를 소개하고 상영하는 시네마테크의 활동을 지지하는 박찬욱, 봉준호, 김지운, 류승완, 오승욱 등의 영화감독, 정성일, 김영진 등의 영화평론가, 문소리, 황정민 등의 배우들이 참여해 처음으로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가 열린 이래로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는 영화애호가들은 물론, 영화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에게 매년 기다려지는 대표적인 영화축제가 됐습니다.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는 매년 한국을 대표하는 영화감독, 영화평론가, 배우들이 직접 참여해 자신들이 관객들과 함께 보고 싶은 영화를 선정, 필름으로 영화를 상영하고 관객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영화제로, 한국의 다른 영화제들과는 기획과정이나 참여방식 자체가 색다른 유일하고도 독특한 영화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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