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워드 혹스의 <히스 걸 프라이데이>






하워드 혹스가 1940년에 만든 <히스 걸 프라이데이>는 대사가 쉬지 않고 나오는 영화다. 대립 끝에 해피엔딩을 맞는 남녀, 거침없는 서사 진행, 그리고 정신없을 정도로 빠른 대사가 나오는 장르를 스크루볼 코미라 일컫는데 이 영화는 그 스크루볼 코미디 장르의 전형을 보여주는 영화라 할 수 있다. 월터(캐리 그랜트)와 힐디(로잘린드 러셀) 두 사람의 대화만이 십여 분간 계속되는 첫 시퀀스부터 장르적 묘미는 쉽게 찾을 수 있다. 첫 장면부터 혹스는 한정된 공간 안에서 오로지 두 배우들의 쉴 새 없이 이어지는 대사와 그 리듬감만으로 팽팽한 긴장감과 흥미를 만들어낸다.


<히스 걸 프라이데이>는 하워드 혹스가 훌륭한 배우들과 함께 만들어낸 스크루볼 코미디 장르의 정점에 놓인 작품인 동시에 또한 혹스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영화이기도 하다. 1926년에 데뷔해서 1970년 <리오 로보>를 만들기까지 웨스턴에서 필름 느와르, 뮤지컬 등에 이르는 다양한 장르 영화를 연출한 하워드 혹스는 자신의 직업에 강한 사명감을 가지고 있는 '일 중독자'들을 주로 주인공으로 다루었다고 한다. 이러한 특징은 <히스 걸 프라이데이>에서도 확인할 수 있는데, 특종을 취재하기 위해서 모든 것을 다 팽개치고 사건에 매달리는(그래서 웃음을 불러일으키는) 월터와 힐디의 행동에서는 거의 강박증에 가까운 일에 대한 열정을 엿볼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이 특종을 두고 주고받는 빠른 대사는 단순한 장르적 장치가 아니라 철저한 프로의식의 발현이기도 하다. 영화의 첫 부분에 나오는 "특종을 위해서는 살인만 빼고 다 했다"라는 말은 절대 과장이 아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혹스가 이들을 단지 특종에 목을 맨 일 중독자처럼 비추지도 않는다. 수다스럽기 그지없는 이 영화에 딱 한 번 등장하는 기자들의 침묵 장면은 일에 미쳐있으면서도 책임감을 잊지 않으려 노력하는 성숙한 프로의 태도를 보여준다. 이런 점 역시 혹스 영화가 지닌, 그가 보여주려 하는 매력적인 모습 중 하나일 것이다.


한편 이 영화는 저널리스트가 등장하고 특종을 다룬다는 점에서 루이스 마일스톤의 1931년 작 <특종기사(The Front Page)>와 닮아 있다. <특종기사>는 <히스 걸 프라이데이>의 원작 격이라고 할 수 있는데, 재미있는 것은 <특종기사>에서는 월터와 힐디가 모두 남성이었다는 점이다. 하워드 혹스는 이 영화를 구성하면서 <특종기사>의 캐릭터와 내용은 빌리데 한 인물을 힐디라는 여성으로 설정하면서 영화에 로맨틱한 설정을 집어넣은 것이다. 그리고 캐리 그랜트와 로잘린느 러셀은 정말 이 설정을 십분 살려내었다. 누구보다도 바쁜 사람이지만 그 가운데서도 넉살 좋은 유머를 잊지 않는 캐리 그랜트는 말할 것도 없으며, 로렌 바콜 만큼이나 멋있게 담배를 피우는 모습을 보여주는 로잘린느 러셀은 웬만한 남자 배우들보다 더 카리스마 있는 모습을 보여준다. 두 사람의 숨 가쁘게 주고받는 연기 호흡은 영화 전체에 유쾌한 활력과 긴장, 로맨틱한 분위기를 동시에 만들어낸다.


스크루볼 코미디라는 장르적 관습을 모두 아우르는 이 영화는 장르적 장치를 차치하고라도 결코 한 눈을 팔수 없게 만드는 영화다. 시종일관 쏟아지는 속사포 같은 대사가 속도감 있게 전개되기 때문에 그들의 대사를 쫓아가다보면 자연스레 극의 상황에 몰입하게 되니 말이다. 2009 시네마테크 친구들 영화제를 통해 스크루볼 코미디 장르를 대표하는 영화이자 혹스의 대표작 중 하나인 <히스 걸 프라이데이>를 필름으로 감상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지 마시길. (김보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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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리 와일더의 <선셋대로>






빌리 와일더의 1950년 작 <선셋대로>는 그동안 시네바캉스나 친구들 영화제를 통해 서울아트시네마에서 간간이 소개되어왔던 작품이다. 영화는 풀장에 떠있는 한 남자의 시신으로부터 시작한다. 시나리오 작가로 궁핍한 삶을 이어가던 조 길리스(윌리엄 홀덴)는 차 할부금을 떼먹고 도망치다가 무성영화 시대의 유명 여배우 노마 데스몬드(글로리아 스완슨)가 살고 있는 선셋대로의 한 저택에 도착한다. 조는 어쩌다 노마의 시나리오를 검토해주는 댓가로 저택에서 호화로운 생활을 영위하게 된다. 어느 날 그런 삶이 갑갑해진 조는 우연히 다시 만난 베티 셰이퍼(낸시 올슨)와 함께 시나리오를 쓰기 위해 밤마다 외출을 한다. 그는 베티에게 노마와의 관계를 숨기려하지만 결국 들키자 노마에게서 떠나려한다.


대표적인 할리우드에 대한 할리우드 영화로 알려진 이 영화는 당시 할리우드의 상황을 반영하고 있다. 50년대를 바라보는 스튜디오 시스템은 관객 수의 감소나 TV와의 경쟁 등에서 비롯된 한계에 부딪히면서 서서히 붕괴될 위기에 처해 있었다. 그런 전조가 조의 자조적이고 비관적인 대사를 통해서 자주 표현된다. 영화에는 궁색한 작가들의 신세, 예산에 민감한 영화사들의 상황이 자연스럽게 드러나고 있다. 영화 전체에 깔린 불안감이 당시 할리우드 시스템이 당면한 경제적, 미학적 난관과 맞물려 표현된 것이다.


영화는 외부적으로 할리우드의 상황을 반영하고 있다면, 내부적으로는 등장인물들에 대한 역사를 직접적으로 언급하고 있다. 여주인공 노마 역의 글로리아 스완슨, 집사 맥스 역의 에리히 폰 스트로하임, 노마와 작업했던 감독 역의 세실 B. 드밀 외에도 버스터 키튼 같은 무성영화 시대 인물들이 실제로 등장한다. 자기망상에 빠진 노마가 거실에서 감상하는 자신의 영화는 스트로하임이 감독하고 스완슨 자신이 주연한 <여왕 켈리>(1929)이고, 노마가 찾아간 드밀은 그의 영화 <삼손과 데릴라>(1949)를 촬영 중이기도 하다.


영화에서 노마는 조에게 엄청난 부와 안락함을 제공한다. 한편으로 조는 그런 세계를 견디지 못하고 탈출을 시도하면서 일과 사랑에 대해 열정적인 베티 셰이퍼에게 빠져든다. 여러 면에서 노마와 베티는 ‘올드 할리우드와 뉴 할리우드’, ‘무성영화 시대와 유성영화 시대’, ‘죽음과 사랑’ 등으로 대비된다. 노마가 막대한 부를 가졌고 사치를 부리지만 홀로 쓸쓸히 살아가는 인물이라면, 베티는 소박한 삶 속에서 자신의 일에 대한 열정을 가지고 바쁘게 살아가는 인물로 그려진다. 영화는 조를 가운데 두고 노마와 선셋대로의 저택이 풍기는 죽음의 이미지와 베티의 일과 사랑이 주는 삶의 이미지를 대비시킨다.


이외에도 영화는 죽은 인물의 내레이션을 이용한 플래시백 구조가 돋보이고 느와르적인 조명과 영상, 실제 파라마운트에서의 촬영을 통한 반기록영화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다. 다양한 측면에서 여러 비평가들을 통해 언급된 <선셋대로>는 그만큼 풍부한 텍스트다. 간간히 소개된 작품이지만 영화의 고전, 역사가 살아있는 이번 시네마테크 친구들 영화제에서 <선셋대로>를 접하면 다시 한 번 빌리 와일더의 진가를 확인하는 기회가 될 것이다. (이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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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데리코 펠리니의 <카비리아의 밤>






영화 <카비리아의 밤>은 페데리코 펠리니의 1954년 작인 <길>의 연장선에 위치한 작품이다. <길>의 젤소미나와 <카비리아의 밤>의 카비리아는 진실한 사랑을 찾아 떠도는 여성으로 어떤 상황에서건 특유의 낙천성을 잃지 않고 미래를 바라볼 수 있는 쾌활한 성격을 가진 주인공이다. 하지만 카비리아는 젤소미나와 달리 필연적인 시공간을 배회한다. <길>이 우연히 던져지는 사건들의 연속이라면 <카비리아의 밤>은 시간과 공간이 서로 치밀하게 얽혀 하나의 완벽한 드라마를 만들어 낸다는 것이다. <카비리아의 밤>은 페데리코 펠리니가 네오리얼리즘을 떠나는 반환점이 되는 동시에 ‘펠리니적’이라는 수식어의 탄생 과정에 놓인 영화다.


영화는 물에 빠진 카비리아를 마을 사람들이 구출해내는 장면으로부터 시작된다. 카비리아가 사랑했던 조르조는 카비리아를 물에 빠뜨린 채 그녀의 돈을 빼앗아 달아난다. 카비리아는 물에 흠뻑 젖은 채 사람들의 구경거리가 되고, 마침내 그녀는 애지중지 키우던 닭을 끌어안고 울음을 터뜨린다. 하지만 카비리아의 우울한 마음은 이내 조르조에 대한 분노로 바뀐다. 그녀는 눈물을 삼킨 채 방으로 들어가 조르조의 사진을 모조리 불태워버린다. 마음을 굳게 다진 카비리아는 떠나간 조르조를 뒤로하고 다시 거리로 나선다. 그러나 여전히 그녀의 사정은 계속해서 후퇴할 뿐이다.


펠리니의 영화 속 주인공들 대부분은 종교적인, 혹은 구원적인 특정 대상에 자신을 의지해 해답을 얻으려 노력한다. 그러나 그들은 모두 신으로부터 외면당한 채 스스로 파멸하고 갱생하기를 거듭한다. <카비리아의 밤>의 카비리아 또한 자신의 처지를 벗어나고자 성당을 찾지만, 그녀에게 되돌아오는 것은 구원의 밧줄이 아닌 침묵뿐이다. ‘언젠가는 지독한 불운에서 벗어나리라’ 다짐하는 카비리아를 덮치는 것은 실망과 배신의 나날이다. 페데리코 펠리니는 카비리아라는 인물의 행로를 설정하기 전에 그녀가 몇 번이고 실패로부터 일어서게 만드는 힘을 영화에 덧씌운다. 카비리아의 ‘힘’은 기적, 혹은 구원 에 대한 갈증으로 펠리니는 이를 통해 카비리아의 행동에 대해 한 치의 의심도 허용하지 않는 질서를 만들어 낸다.


영화가 끝나갈 무렵 카비리아는 마지막 희망, 그리고 마지막 기적의 상대인 오스카를 만난다. 거듭되는 악몽이 두려웠던 카비리아는 오스카를 경계하지만, 그의 끈질긴 구애 앞에 결국 마음을 받아들인다. 그러나 그토록 사랑을 속삭였던 오스카도 사랑의 힘에 이끌려 카비리아를 원한 것이 아니었음이 밝혀지고, 카비리아는 홀로 외딴 지방에 남아 구슬픈 눈물을 흘린다. 자신이 살던 마을을 벗어나 방황하던 카비리아는 그녀의 유일한 친구였던 음악의 유혹에 이끌려 울음을 삼키고 웃음을 짓는다. 카비리아의 눈가에 맺힌 검은 눈물방울은 사랑이라는 단어를 이용해 기생해야했던 남성들의 모습을 보여주는 동시에 딛고 일어나야만 하는 카비리아의 ‘광대적 삶’을 함축적으로 묘사한다. 카비리아의 웃음은 그녀가 그토록 찾아 헤맸던 종교적 해답을 발견했음을 보여주고, 이것은 곧 페데리코 펠리니의 ‘신성’으로 이어진다. 웃는 자는 곧 깨달음을 얻은 자이며, 자기치유의 권한을 단독으로 부여받은 사람이다. 카비리아는 사랑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자신을 사랑하며 세상을 향해 웃음 짓는다. (강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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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베르 브레송의 <무셰트>






영화 <무셰트>는 희생과 영적 구원에 꾸준한 관심을 보여 왔던 로베르 브레송이 1967년에 만든 작품이다. 로베르 브레송은 60년대에 접어들어 점차 영적 구원이라는 주제에 이어 은총에 흐르는 통로와 죽음을 받아들이는 태도에 대해 탐지하기 시작한다. 조르주 베르나노스가 1936년에 발표한 소설 <무셰트의 새로운 이야기>를 원작으로 각색하여 만들어진 이 영화 역시 그 같은 맥락 위에 있다.


영화는 14살 소녀 무셰트의 일종의 종교적 수난기를 따라가는 듯하다. 가난한 시골 마을에 살고 있는 무셰트에게는 병든 어머니와 알코올 중독자인 의붓아버지, 밀수를 하는 오빠, 그리고 갓난아기인 동생이 있다. 이들은 무셰트에게 무거운 짐으로 다가 오고, 이 같은 현실에서 무셰트는 절망감을 느낀다. 그러던 어느 날 무셰트는 방과 후 귀가하는 아이들을 피해 산길로 돌아오다 큰 비를 만나 길을 잃게 되고 그곳에서 밀렵꾼 아르센을 만난다. 아르센은 무셰트에게 자신이 밀렵 감시원인 마티유를 죽인 것 같다고 고백한다. 동정과 사랑을 느낀 무셰트는 자신이 알리바이를 세워주겠다고 제의하고 아르센은 갑작스러운 간질로 발작한 후 무셰트를 성폭행한다. 무셰트는 집으로 돌아와 어머니에게 모든 것을 말하려 하지만 어머니는 아무런 도움 없이 죽어버린다. 어머니를 잃은 무셰트를 마을사람들은 동정 어린 눈길로 바라보지만 끝내 무셰트는 그것이 가식이며, 아르센 역시 자신에게 거짓말을 했음을 확인한 후 자살을 결심하게 된다.


이 영화에서는 로베르 브레송만의 특징적인 영화 문체들이 눈에 띈다. <무셰트>에서 가장 주되게 나타나는 것은 음향과 영상의 특징적인 사용이다. 무성영화에 가깝도록 말이 없는 이 영화는 음향과 영상이 무관한 것처럼 보이나 실은 음향과 영상이 각기 다른 고유한 방법으로 하나의 장면을 만들어내곤 한다. 이를테면 학교 종소리와 학생들의 말소리를 통해 학교의 이미지 없이도 학교라는 배경을 환기시키는 장면이다. 이 같은 결합과 함께 또 하나 주목할 것은 카메라와 쇼트의 자유로운 사용이다. 종종 영화는 무셰트의 얼굴을 보여주지 않음으로써 그녀의 낡은 옷과 걸음걸이에 집중하게 만든다. 거기서 관객은 무셰트의 표정을 굳이 보지 않아도 그 여린 소녀가 낙담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또한 극단적인 클로즈업을 삽입함으로써 손에 잡힐 듯한 촉각적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무셰트>의 이러한 장면들은 우리에게 그간 영화를 통해 경험한 느낌과는 확연히 다른 생경한 느낌을 준다.


<무셰트>는 작가 감독으로 일컬어지는 브레송의 대표작이다. 그만큼 브레송이 세상과 소통하기 위해 일생 동안 만들어온 시네마토그라피의 여러 특징들을 담아내고 있다. 이 영화에서 우리는 그만의 독특한 영화 문체와 함께 무셰트라는 소녀를 통해 보이려 했던 절망에서의 죽음에 대한 질문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죽음은 구원과 은총의 통로가 될 수 있는가. 질문의 답은 영화 속에 있다. (김나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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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워드 혹스의 <신사는 금발을 좋아해>





이 영화와 관련해 깊은 오해를 풀 필요가 있다. 하워드 혹스는 할리우드의 ‘사내중의 사내’라 불렸던 감독으로 남성들 간의 유대를 찬양했던 인물이다. 그는 ‘와일드 빌’ 월맨과 오토바이를 즐기고, 윌리엄 포크너와 비행을, 어네스트 헤밍웨이와 낚시와 사냥을 즐긴 할리우드의 대표적인 마초니즘의 작가였다. 그런데 그가 어떻게 이런 식의 ‘여성 버디무비’를 만들 수 있었을까? 비평가들은 오랫동안 이를 두고 의문을 제기했었다. 달리 말하자면 이 영화는 혹스의 작가성을 논의하기 위한 뇌관과도 같은 작품인 것이다. 혹스는 이 영화로 당시 주류 할리우드가 구축한 안정적인 젠더 정체성을 불안 투성이의 모호한 세계로 뒤바꾸어 놓았다. 혹스적인 남성과 대비되는 여성들이 게다가 남성적 우주의 신성함과 권위를 조롱한다. 그런 점으로 이 영화는 <베이비 키우기>(38)와 <나는 남성 전쟁신부였다>(49), <몽키 비즈니스>(52)의 연장선상에서 논할 필요가 있는 작품이다. 



1925년에 발표된 아니타 로스 원작의 동명소설은 발표 즉시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다음해 소설을 희곡화한 무대극도 호평을 얻었고 1949년에는 브로드웨이 뮤지컬로도 상연되어 대히트를 기록했다. 혹스의 영화는 원작의 20년대를 소비주의 시대의 50년대로 변경했고 뉴욕의 나이트클럽의 인기 댄서 로렐라이(마릴린 먼로)와 도로시(제인 러셀), 두 여인을 주인공으로 내세운다. 로렐라이는 부호의 아들 거스와 파리에서 결혼식을 올릴 예정이지만 거스 아버지의 반대로 여의치 않다. 로렐라이는 도로시와 호화 여객선으로 파리로 향하지만 선상에서 로렐라이가 유혹한 광산왕의 아내가 준 다이아몬드를 몰래 챙겨 둘은 말썽에 휘말린다. 그 와중에 도로시는 로렐라이를 감시하는 탐정 말론에게 마음이 끌린다.





로렐라이는 "다이아몬드가 최고의 친구다"라고 노래 부르고 반대로 도로시는 결혼의 제일 조건이 사랑이라 믿는다. 먼로가 연기한 로렐라이는 당시 할리우드가 준수해온 도덕 가치관과는 사뭇 거리가 있는 인물이다. "아들의 돈 때문에 결혼하는 거 아니냐"고 따지는 부친에게 로렐라이는 "부자의 남자는 미인의 여자와 같아요. 당신은 자신의 딸을 가난한 사람과 혼인시키고 싶은가요? 그것을 내가 바라면 안 되는 건가요?" 라고 당돌하게 반문한다. 이만큼 ‘현실적인’ 해피엔드로 끝나는 영화를 찾기도 쉽지 않다. 부도덕한 결말처럼 보이지만 마릴린 먼로의 천진난만함의 승리라 여겨도 좋을 것이다.



혹스의 세심한 연출은 눈여겨 볼만하다. 가령 영화의 첫 장면, 화려하게 보석으로 장식한 제인 러셀과 마릴린 먼로가 처음 등장해 붉은 세퀸으로 장식한 가운을 입고 ‘우리는 리틀락 출신의 두 미녀’라고 노래 부르는 순간은 영화 전체를 예시한다. 이들은 리틀락에서 남자들에게 상처를 입었고 뉴욕에 와보니 어디나 남자들은 똑같다고 노래한다. 이어 ‘신사분을 찾아요. 내성적이던 활발하던 키가 크던 작던 나이에 상관없이 부자라면 돼요’라고 노래하는데 이들이 나중에 만나게 될 사람들이다. 로렐라이는 무대에서 조명을 받으면서도 그녀의 숭배자인 에스먼드의 주머니가 불룩한 것을 보고 틀림없이 반지를 넣은 상자가 있음을 눈치 챈다. 그녀의 다이아에 대한 몰두는 선상에서 늙고 볼품없는 페기의 얼굴에서 거대하고 반짝이는 욕망 가득한 다이아를 떠올릴 때 거의 추상적인 수준에 달한다. 그녀는 남성에의 섹스와 사랑의 욕망을 돈과 다이아몬드로 대치한다. 낭만적인 사랑의 논리보다 자본주의 논리가 제공하는 조건에서 남성과 협상을 벌이는 것이다. 가장 하드 보일드한 로맨틱 코미디인 셈이다. 이 영화는 한 마디로 진지한 재검토가 필요한 혹스의 문제작이다. (김성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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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피차퐁 위라세타쿤은 세계 영화계에서 최근 몇 년간 가장 새로운 발견이다. 그의 영화에 주목하게 되는 이유는 전혀 다른 ‘개념’과 ‘발상’으로 이루어진 영화라는 점에서다. 다큐멘터리와 픽션의 경계를 무너뜨리고, 문명과 야생의 세계를 자유로이 오가는 그의 실험적 스타일에는 마치 영화 역사의 시작을 접하는 것 같은 근원적인 초(超)에너지가 살아 숨쉰다. 카메라의 존재는 지워져 있고, 드러날 듯 드러나지 않는 감정의 굴곡은 영화 속 대기의 감각마저 생생히 느끼게 만든다. <열대병>에는 타이의 고전 민담이 중요한 모티프로 작용하지만, 이런 최소한의 국지적 요소를 제거한다면 기본적으로 그의 영화는 초국가/지역적 토대 위에 서 있다. 그의 영화는 그다지 세련되지도 않고 모더니즘의 잣대로도 읽히지 않으며, ‘영화는 이러해야 한다’는 그 어떤 규칙으로부터도 탈피해 있다. 만국 공통의 실험영화가 극영화라는 최소한의 얼개를 유지하면서 나아갈 수 있는 최고의 미학적 극점에 그가 있다.



아피차퐁 위라세타쿤의 영화는 ‘정글의 영화’라 불러도 좋을 정도로 정글 혹은 숲이 주요한 배경을 차지한다. 말하자면 그의 영화는 원초적인 녹색으로 이루어져 있다. 거기에는 일말의 가식도 없고, 인위적인 에너지도 없으며, 예상 가능한 규칙적 움직임도 없다. 초감각적이라고 부를 만한, 어떻게 보면 무의미한 장면들의 연속인데 거기서 묘한 감흥이 생겨난다. <열대병>은 그의 감각적이고 몽환적인 영화 세계, 그리고 자동 기술법처럼 전개되는 이야기 구조가 집약돼 있는 작품이다. 동성애자인 젊은 군인과 한 시골 소년이 사랑을 나누다 갑자기 소년이 행방불명되고 군인은 그를 찾아 정글로 들어간다. 그가 정글로 들어간 이후 영화는 갑작스레 무성영화 스타일 혹은 이제껏 한 번도 본 적 없는 기이한 판타지로 ‘돌변’한다. 이 영화는 꽤 첨예한 동성애 문제를 묘사하고 있다. 이렇게 그는 언제나 세속적인 것에서부터 출발하지만 결국 초월적인 삶의 의지로 나아간다. 그는 “아무리 참혹한 때에도 미소를 짓는 순간이 생기는 것이 바로 인생 아닐까?”라고 반문한다. 그는 자신의 영화를 두고 "치유의 영화"라고 말한 적이 있다. 판타지로만 이루어진 영화의 후반부에서 정글 속 호랑이의 눈빛이 번쩍 드러나는 순간, 그 모든 긴장과 자극은 짜릿한 치유와 극적 초월의 순간으로 전이된다. 아피차퐁 위라세타쿤은 오감이 아닌 ‘육감’으로 영화를 만드는 감독이다. 현대 영화가 계속 새로워지고 있다는 떨리는 흥분, 바로 그의 영화에 있다. (주성철: '씨네21'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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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코 페레리의 <그랜드 뷔페> 


 

<그랜드 뷔페>는 당대를 대표하는 신사들이자 유명배우들이었던 마르첼로 마스트로얀니와 미셸 피콜리, 필립 느와레, 그리고 우고 토그나지가 실명을 내걸고 서로 다른 직업의 부유한 남성들로 분해 출연한 작품이다. 부르주아 집단에 속한 이들 네 남성은 유복한 중년의 삶을 지내고 있지만, 알 수 없는 공허함이 자신들을 옥죄고 있다고 생각한다. 결국 그들은 각자의 삶을 정리하고 은밀한 별장에서 쾌락과 소비에 빠져들며 죽음을 기다리는 모임을 가진다. 오랜 시간을 들여 엄청난 양의 재료를 준비하고 신선한 고기들을 구입하는 별장 속의 네 남자, 자신의 생계와 계급이 존재했던 파리라는 도시를 떠나 그들이 택한 마지막 여행은 인간의 가장 본능적인 욕구들에 기댄 것이었다.

 

먹음직스럽게 보이는 음식들과 정성껏 요리를 준비하며 수다를 떠는 남자들의 모습은 말 그대로 '그랜드 뷔페'의 호화찬란한 만찬을 연상시킨다. 남성들은 최고급의 재료를 공수해 방대한 양의 음식으로 가득찬 식탁을 차려놓고 거나한 식사를 즐긴다. <그랜드 뷔페>의 초반, 네 남자가 별장으로 완전히 숨어들기 직전까지, 영화는 음식이라는 단어를 익히 알고 있는 기본적인 에너지의 수단으로만 설정한다. 때문에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먹을 것을 씹어 삼키는 필립이나, 그런 그가 배고프지 않도록 음식을 마련하는 필립의 유모의 행동은 지극히 당연한 것이다. 하지만 필립이 가방을 꾸려 집을 나서는 순간, 그는 지금까지 꽤나 규칙적이고 일반적이었던 자신의 삶을 완전하게 붕괴시켜버릴 계획을 실행하기 시작한다. 미셸을 비롯해 별장에 모인 네 남자는 정성을 다해 요리를 하고, 게걸스럽게 식탁 위를 청소한다.

 

자유분방한 성 생활을 즐겨온 파일럿 마르첼로에 의해, 별장의 '만찬'에는 여성들이 초대된다. 여성들은 푸짐하게 차려진 식탁에서 즐겁게 식사를 마치지만, 한 번의 모임으로 끝날 것이라 생각했던 풍족한 식탁이 계속해서 이어지는 것을 보고 진저리친다. 끊임없이 음식을 위 속에 밀어 넣어 통증을 견디다 못해 몸 져 누운 미셸의 모습에 역겨움을 느낀 창녀를 비롯한 두 여성이 별장을 떠나버리지만, 학교 선생인 안드레아는 네 남자의 마지막 파티에 동참하기로 마음먹는다. 안드레아가 연일 이어지는 무절제의 축제에 함께 하면서부터 네 남성의 식탁에는 음식뿐만 아니라 동시다발적 섹스까지 추가된다. <그랜드 뷔페>는 안드레아라는 여성의 등장으로 인해 전환점을 맞게 된다.

 

<그랜드 뷔페>는 부르주아 계급층에 대한 노골적인 비판과 조롱의 탈을 쓴 블랙 코미디의 형식으로 전개된다. 쓸데없이 음식을 소비하며 임종을 맞기를 바라는 괴상망측한 게임을 하는 대상은 모두 번지르르한 계급을 소유한 대상들로, 그들은 시간이 갈수록 우스꽝스러운 모습과 역겨움을 남김없이 관객들에게 선사한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비판’이라는 단어를 가지고 있는 <그랜드 뷔페>의 내면에는, 인간에 대한 생리학적 갈망이 녹아있다. 영화 속의 남성들은 풍만하고 살 진 몸매의 여성에게 욕망을 느끼며 거침없는 섹스를 즐긴다. 맵시 있는 옷을 입은 날렵한 여자, 혹은 마른 여자 따위는 그들의 관심 대상이 아니다. 남성들은 품에 안기 버거울 정도로 토실토실하게 살이 오른 안드레아에게 찬사와 아름다움의 미사여구를 보탠다. 네 남성들보다 체구가 거대한 안드레아는, 그들이 갈망하며 부러워하는 몸매, 즉 어머니의 이상형이다. 남성들은 안드레아를 통해 성적 욕구를 해소하는 동시에 자신을 돌봐주는, 그리고 걱정해주는 모성애와 같은 애정의 결핍을 충족시킬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남자들은 안드레아의 이름이 새겨진 거대한 파스타를 그녀의 앞에 밀어놓고, 축하의 박수를 보내며 자신들의 앞에서 모조리 먹어치우기를 바란다. 네 남자의 기대와 호응에, 안드레아는 단 한 번도 괴로운 내색을 띈 적이 없으며, 오히려 그녀는 남성들보다 훨씬 더 식욕의 쾌락을 즐기는 인물로 변해간다. 결국 안드레아는 남성들이 남긴 잉여 생산물을 남김없이 먹어치우며 그들을 돌보는 완전한 에너지의 여성으로 존재하게 된다. 시간이 지날수록 우노의 몫이었던 음식을 만드는 일에 안드레아는 관여하기 시작하고, 안드레아의 엉덩이로 반죽해 만든 ‘안드레아 파이’를 게걸스레 먹어치우는 장면에 이르러 안드레아의 지위는 정상에 다다른다. 과식으로 인해, 혹은 기타의 사고로 인해 한두 명씩 죽어 나가는 광경을 마주하면서도 그녀는 평정심을 잃지 않는다. 별장에 처음 초대되었을 때 안드레아는 필립의 사랑이었지만, 그녀는 네 남자와 섹스를 나눈 기이한 관계를 유지한다. 외부와 차단된 별장 안의 삶은 결국 그들이 살던 파리의 삶에서 역행해 고대의 시기를 향해 달려 나간다. 모든 것을 어머니가 책임지고 보살피던 모계 사회 속 군주의 모습을 한 안드레아 앞에, 네 남성들은 하나 둘 씩 칭얼거리는 어린이로 변해간다.

 

마르첼로와 필립, 미셸, 그리고 우고 네 남자가 시작했던 게임의 승자는 결국 필립이 되고, 매우 건강이 악화된 필립을 위해 안드레아는 음식을 준비한다. 때마침 요리할 고기를 제공해주기 위해 정육점 차가 정원에 들어서고, 안드레아가 고기들을 받으러 간 사이 필립은 안드레아가 만들어준 요리를 먹는다. 안드레아의 가슴과 꼭 닮은 풍만한 두 덩이의 케익이 반쯤 없어졌을 때, 필립은 괴로운 표정으로 숨을 거둔다. 시간을 무시하고 인간의 도덕이라는 것을 무시한 채 벌어진 부르주아 계층의 엄청난 판타지는 필립의 죽음으로 인해 사라진다. 영화는 임종이 다가오는 것을 알면서도 배 속으로 음식을 밀어 넣어야 했던 광기 넘치는 부유층의 후회와, 허약해진 남성들을 마지막까지 돌보아 주었던 안드레아의 모습으로 결말을 맺는다. <그랜드 뷔페>는 스크린에서 눈을 떼고 싶을 정도로 참을 수 없는 역겨움을 묘사한 풍자 코미디를 보여주는 동시에, 마지막으로 별장에서 살아남은 인물은 결국 안드레아 혼자라는 것을 강조한다. 영화는 안드레아를 살려둠으로써 또 다른 희망, 혹은 타락한 인류의 미래에 대한 긍정적 기대를 보여주고 있다. (강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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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크 베케르의 <구멍>





프랑수아 트뤼포는 언젠가 “장 르누아르가 존경의 대상이라면, 자크 베케르는 나와 친구들이 동일시했던 이름이다”라고 밝혔다. 현실은 조금 다르다. 장 피에르 멜빌, 로베르 브레송과 함께 프랑스영화의 황금기와 누벨바그시기를 연결하는 가장 중요한 작가인 자크 베케르는 종종 과소평가 받곤 한다. 장 르누아르가 <위대한 환상>, <시골의 하루> 등을 만들던 시기에 든든한 조력자로 활동했던 베케르는 르누아르로부터 막대한 영향을 받았다. 르누아르의 휴머니즘과 자연주의적인 스타일이 곧바로 베케르 영화의 핵심을 형성했던 것인데, 어쩌면 그런 성향이 현대의 관객과 그의 영화 사이의 틈을 제공하는지도 모르겠다. <구멍>은 <황금투구>(1952)와 <현금을 손대지 마라>(1954)를 잇는 베케르의 대표작이자 그가 유작으로 남긴 작품이다. 베케르는 한 인터뷰에서 “비토리오 데 시카가 <자전거 도둑>에서 성취한 자연주의적인 통찰을 <구멍>이 재현하기를 열망한다.”고 말했다. 건강이 나빠진 그가 유작에 담은 노력은 그 열망의 반영이었다. 그는 원작소설을 쓴 조제 조반니와 직접 각색작업을 진행했고, 실제 탈옥사건에 가담했던 세 사람(영화를 제작하던 당시엔 그들이 이미 형을 마친 후였다)을 현장에 데려와 조언을 구했고, 탈옥자 한 명을 포함한 출연자 전원을 비전문배우로 구성했고, 사건이 벌어진 ‘라 상테’ 형무소에서 대부분의 장면을 촬영했다. 현대의 관객이 무심코 넘길 <구멍>의 사실적인 분위기는 그렇게 치열한 과정 속에서 구한 것이다.

 

6호실의 네 수감자 - 롤랑, 마누, 신부, 조는 새롭게 이감된 가스파르를 동료로 받아들일지 망설인다. 그들에겐 비밀이 있다. 모두 긴 형량을 남겨둔 네 사람은 곧 바닥을 뚫고 탈옥할 예정인데, 가스파르가 그들의 계획에 동참할지 알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1급 살인을 기도해 10년 이상의 형을 받을 확률이 높은 가스파르가 그들의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이자, 며칠에 걸쳐 그들의 계획이 착착 실행된다. 하지만 행운은 그들의 편이 아니었다.

 

베케르가 공들여 완성해놓은, 감옥 내부의 풍경 하나하나가 놓치기 아까운 것이지만, 그 중 압권은 탈옥과정의 묘사에 있다. 갖가지 도구의 활용법, 유머 넘치는 위장술, 섬세하면서 과감한 실행력은 흡사 탈옥의 지침서로 보일 정도다. 다섯 사람이 시멘트 바닥을 처음으로 깨부수는 신은 영화의 클라이맥스 중 하나이면서, 영화의 스타일을 대표하는 장면이다. 견디기 힘든 거대한 소음에 가스파르는 귀를 틀어막고, 신부는 초조한 마음으로 문밖을 감시하며, 마누와 롤랑과 조는 돌아가며 철제 도구로 바닥을 내리친다. 시멘트가 정말로 부서져 바닥의 흙이 드러나게 되는 4분여의 시간을 영화가 별 편집 없이 보여줄 동안, 관객은 호흡을 멈춘 채 그 광경에 몰입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생생한 묘사만큼 영화를 충만하게 하는 건 다섯 남자의 동료애다. 좁은 공간 안의 다섯 남자는 짧은 시간이나마 모든 것을 나누는 사이다. 그들은 음식과 기호품을 나눠 먹고, 노동을 함께 하며, 무엇보다 목숨을 담보한 비밀을 공유한다. 그들에게 탈옥은 범죄가 아니라 삶을 위한 투쟁이었던 바, <구멍>은 다섯 인간의 투쟁의 기록이다. 서로 믿으며 협력하는 공동체는 <구멍>을 평범한 감옥영화, 탈옥영화와 전혀 다른 곳에 위치시킨다. <구멍>의 아름다움은 공동체의식이 꽃피운 삶의 가치에서 비롯하고, 그런 점에서 그들이 웃으며 음식을 나누는 긴 장면의 여운은 영화가 끝난 뒤에도 좀체 사라지지 않는다. 베케르는 장르영화를 통해 인간 심성의 깊은 곳에 다다르고 있으며, <구멍>은 인간의 꿈과 우리들의 낙원이 사라지는 과정을 쓰라리게 묘사한다. 로베르 브레송의 <사형수 탈옥하다>에 맞설 수 있는 유일한 세계, 열편의 <쇼생크 탈출>이 나온다 한들 넘어설 수 없는 세계가 여기에 있다.(이용철: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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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페킨파 2010.04.22 16:00 신고

    http://www.artnstudy.com/inmoonsoop/Lecture/default1005.asp?lessonidx=off_snHong03 여기서 평론가 홍성남 선생님이 브레송 강의를 하시네요

마이크 핫지스의 <겟 카터>




마이크 핫지스는 우리에게 잊혀진 영화감독이다. 클라이브 오웬을 발견하게 만든 <크루피어>(1998)와 <죽어야 잠들리라>(2003)로 근래 잠시 재기하기도 했으나, 그의 걸작 <겟 카터 Get Carter >는 여전히 실베스터 스탤론이 출연한 형편없는 리메이크의 유명세 아래 있다. 그야말로 환장할 일이다. 테드 루이스의 원작소설 <잭, 고향으로 돌아오다>를 각색한 <겟 카터>는 영국 갱스터영화의 역사에서 빼놓지 않고 언급되는 걸작이다. 그리고 1990년대 이후 반짝 성공하며 영국영화의 부흥을 이끈 현대 갱스터영화의 전범에 해당하는 작품이다.



런던 갱스터의 멤버인 잭 카터는 조직의 반대를 무릅쓰고 북쪽 뉴캐슬로 향한다. 며칠 전 죽은 형의 장례식에 참석하고 원인을 파헤치기 위해서다. 카터는 점잖고 얌전한 인물인 형의 죽음이 평범한 사고사로 묻히는 걸 캐내다 지방 조직의 심기를 거스르게 된다. 외부에서 온 손님을 달가워하지 않는 뉴캐슬의 조직에 대항하는 카터의 입장은 분명하고 단순하다. 뉴캐슬은 자기가 어린 시절을 보낸 고향이고, 그 곳에서 벌어진 형의 죽음을 묵과하게 않겠다는 것이다.



뉴캐슬로 향하는 열차에 오른 잭 카터의 외모는 영국신사에 가깝다. 고급 양복과 세련된 얼굴의 그는 조용히 책을 읽는다. 그런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사정이 다르다. 그가 든 책은 레이먼드 챈들러의 소설 <안녕, 내사랑>(영화에는 어울리지만 중년신사에겐 어울리지 않는)이며, 열차가 종착역에 멈출 즈음에도 그가 읽은 분량은 얼마 되지 않는다. 비싼 양복을 입고, 책을 읽고, 일등석에 앉아 있는 그는 사실 사람 죽이는 데 능한 킬러다. 열차에서 내리는 순간, 그는 자신의 본성에 더 어울리는 밑바닥의 현실로 진입한다.



신시사이저로 연주된 현란한 퓨전재즈와 과감하게 사용된 줌인이 눈과 귀를 채우는 시작점부터 <겟 카터>는 1970년대 상업영화의 냄새를 물씬 풍긴다. <겟 카터>를 평범한 갱스터영화로부터 구하는 건 무심한 듯 건조한 색체의 영화와 캐릭터다. <겟 카터>는 카터가 범죄의 중심에 이르는 과정을 애써 긴장감 넘치게 포장하지 않을 뿐더러, 엉뚱할 정도로 직선적이고 차가우며 전혀 친절하지 않은 인물인 카터는 현대 영웅의 한 전형을 창조해냈다. 한마디로, 쿨한 인물이 등장하는 쿨한 영화란 이야기다.



<겟 카터>는 마이크 핫지스가 같은 연배의 영국인인 존 부어맨이 미국에 건너가 만든 <포인트 블랭크>에 대한 답변으로 연출한 작품 같다. ‘68년 직전에 제작된 <포인트 블랭크>가 부정하고 환각상태에 빠진 미국의 미래를 예언한 것처럼, 마찬가지로 막무가내의 거친 남자를 빌린 <겟 카터>는 개발과 소비가 폭발할 즈음의 사회와 마약과 매춘에 얽힌 상류층의 진실을 대면한다. 앞만 향해 성큼성큼 걷는 두 주인공이 부닥치는 어딘가 역겹고 몽환적인 분위기도 비슷하다.



마이클 케인을 고상하고, 인자하며, 코믹한 배우로 알고 있는 요즘 관객에겐 <겟 카터>의 날 선 연기가 놀라움일 것이다. <겟 카터>는 젊은 시절의 마이클 케인이 미국영화에 있어 로버트 드 니로 같은 존재였음을 재확인하는 자리다. 케인보다 놀라운 배우는 존 오스본이다. 『성난 얼굴로 돌아보라』 의 작가로서 ‘성난 젊은이들’의 상징이었던 그가 범죄조직의 우두머리로 분한 것 자체가 당시 영국 관객에겐 충격이었을 게다. 그의 등장은 시대의 변화와 타락한 현실을 동시에 상징하는 사건이었다.(이용철: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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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네 클레망의 <들판을 달리는 토끼>



<들판을 달리는 토끼>는 바로 전 해에 찰슨 브론슨을 미국에서 불러들여 주연으로 만든 영화 <빗속의 방문객>에서 재미를 본 르네 클레망 감독이 할리우드에서 개성 있는 조연 정도로 만족하며 나이를 먹어 가던 로버트 라이언을 프랑스로 불러 들여 장 루이 트탱티냥과 함께 만든 매우 이상하고 불균질 한 영화다. 로버트 라이언은 50년대 RKO의 영화에 출연하며 니콜라스 레이, 로버트 와이즈, 안소니 만의 영화에 조연 또는 주연으로 출연하다가 60년대에는 악당 연기를 주로 하는 조연배우로 굳어진다. 그의 피곤한 듯한 회색 눈빛은 리 마빈의 그것과 비슷하지만, 많이 달랐다. <배드 데이 블랙 록>에서 내로라하는 할리우드의 악당들, 어네스트 보그나인과 리 마빈을 똘마니로 거느리고 시종일관 점잖은 스펜서 트레이시를 야비하게 괴롭히는 그의 번득이는 작은 눈은 잔인할 정도로 아무것도 없는 시골마을에서 뭔가 나쁜 짓만을 찾아 헤매는 그런 악당의 눈이었고, 그것은 정말 소름끼친다. 리 마빈과 어네스트 보그나인이 아무리 대단한 악당이어도 로버트 라이언 앞에서는 그냥 똘마니일 수 밖에 없는 것이 당연하다. 그의 최고의 연기 중 하나는 <와일드 번치>이다. 친구 월리엄 홀덴에게 배신당하고 그들과 적이 되어 뒤를 쫓는 그의 늙고 지친 모습은, 한때는 최고였지만 이제는 몰락하여 외톨이가 된 늙은 악당을 보여준 최고의 연기였다.

영화 <피아니스트를 쏴라>, <다크 페세지>의 원작자인 데이비드 구디스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만든 이 영화는 60년대 조연으로만 영화에 출연 하던 로버트 라이언이 노회하고 잔인한 악당으로 출연하는 마지막 주연작이다. 그는 이 영화를 찍은 후 할리우드로 돌아가 두어 편의 영화에 조연으로 출연하고 죽는다. 어린 시절 관계에 집착하는 로버트 라이안과 장 루이 트랭티냥의 이상한 자살적 행위가 독특하고, 악당들의 유치한 기 싸움이 재미있다. 르네 클레망은 <빗 속의 방문객>에서도 유리창에 호두알을 던져 깨먹는 묘기를 부리는 주인공이 나오는데, 이 영화에서도 역시 담배 세우기 같은 악당들만의 묘기를 보인다. 그것은 홍콩으로 건너와 이쑤시개 씹기라던가, 라이터 불을 입으로 마시기, 담배를 손가락 사이로 돌리기 같은 악당들의 고독을 표현하는 디테일로 발전한다. 악당들은 자신들만의 아주 하찮고 쓸데없는 재주를 지니고 있다. 그리고 그들은 그것을 자기 앞에 놓인 파멸을 지연시키는 부적인양 집착한다. (오승욱: 영화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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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에서 배창호 감독이 선택한 영화는 <분노의 포도>이다. <분노의 포도>는 1939년에 쓰인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하여 존 포드 감독이 1940년에 만든 영화로서 원작자인 존 스타인벡이 직접 각본에 참여하기도 했다. 존 포드 감독은 그의 서부극으로 많이 기억되고, 또한 스스로도 그렇게 생각했지만(존 포드가 감독 협회의 모임 자리에서 “나는 서부극을 만드는 사람입니다” 라고 소개 했다는 에피소드는 유명하다), <분노의 포도>는 그가 서부극이라는 장르와는 별개로 영화를 통해 인간의 존엄성을 사유한 감독이란 것을 알려준다.


영화는 미국의 중부 지역인 오클라호마에서 시작한다. 살인죄로 4년간 복역한 톰 조드(헨리 폰다)는 가석방을 얻어 고향으로 돌아온다. 그러나 악덕 대지주들의 횡포 때문에 가족들은 이미 집과 땅을 남겨두고 어딘가로 쫓겨난 후이다. 톰은 한 때 목사였던 캐시와 함께 겨우 가족들을 찾아내지만 상봉의 기쁨도 잠시, 그들은 다시 서부로 내몰린다. 결국 조드 가족은 고물 트럭 한 대에 몸을 싣고 일자리를 찾아 캘리포니아로 떠난다. 그러나 고생 끝에 도착한 캘리포니아 역시 희망의 장소는 아니다. 악덕 고용주와 열악한 삶의 조건 때문에 힘든 생활을 하는 도중 톰은 어떤 결단의 순간에 직면하고, 남겨진 가족들 또한 자신의 삶을 살아가야 한다.

 

<분노의 포도>가 <역마차>(1939) 이후에 만들어졌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몇가지 생각거리를 던져준다. 서부극의 원형으로 평가받는 <역마차>의 마지막 장면을 생각해보자. 링고 키드(존 웨인)는 힘든 여정 끝에 미지의 서부로 떠나고 영화는 서부로 향하는 그의 뒷모습에 희망찬 기운을 불어 넣었다. 그러나 바로 1년 뒤에 만든 <분노의 포도>에서 존 포드 감독은 서부를 향한 여정을 희망의 길이 아닌 고난의 길로 묘사한다. 심지어 서부에 도착한 이후에도 조드 가족의 생활은 나아지지 않는다. 서부는 더 이상 희망의 공간이 아닐 뿐더러 오히려 지독한 가난과 착취가 존재하는 곳이다. 서부를 향해 떠나던 링고 키드의 앞날을 그토록 희망차게 묘사했던 존 포드 감독이 링고 키드의 후손들이 살고 있는 서부를 고난의 장소로 묘사한 것은 서부극이 구축한 미국의 신화에 균열을 발생시킨다.

 

 

그러나 이를 두고 존 포드 감독의 세계관이 비관적으로 바뀌었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는 고난에 처한 인간에 대한 신뢰와 그들을 향한 따스한 시선을 잃지 않으며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굳건한 의지에 포커스를 맞춰 담담히 그려낸다. 톰 조드의 어머니를 생각해보자. 난민 캠프장에서 아이들이 음식을 구걸하러 다니는 절망적인 상황에서 그녀는 자기 가족이 먹을 음식을 아껴서 아이들에게 골고루 나눠준다. 또는 경찰이 약한 사람에게 폭력을 행사할 때 용감하게 이를 막아섰던 캐시의 모습은 어떤가. 어려움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으려 노력하는 사람들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야말로 어쩌면 존 포드 감독의 변하지 않는 세계관이었을지도 모른다.

 

<분노의 포도>가 이러한 세계관을 구축하는 데에는 배우와 스탭의 역할도 컸다. 거칠면서도 건강한 민중의 모습을 연기한 헨리 폰다와 인자함 속에서 강한 의지를 보여준 제인 다웰(톰 조드의 어머니)의 연기가 특히 인상적이며(그녀는 이 영화로 아카데미 최우수 여우조연상을 받았다), 1940년 한 해에만 <시민케인>, <분노의 포도>에 참여한 촬영감독 그렉 톨렌드가 로케이션으로 촬영한 미국의 황량한 풍경들은 삭막하면서도 아름다운 영화적 순간들을 만들어낸다. 존 포드 감독의 서부극에만 익숙한 관객들이라면 <분노의 포도>를 통해 그의 새로운 진가를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김보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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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대의 미국, 즉 아이젠하워(1952~1960 재임) 시대의 미국은 역사상 경제적으로 가장 부유했다. 국민 총생산이 빠른 속도로 늘어났고 사회 보험과 복지 혜택의 증가와 함께 소득의 재분배도 상당히 이루어졌다. 넘쳐나는 소비재에 기반을 둔 이 미국 사회를 1958년 미국의 경제학자 갤브레이스는 ‘풍요의 사회’라고 말했다. 그러나 경제적 풍요와 안정된 사회의 보이지 않는 곳에는 무의식적인 집단적 불안감이 있었다. 경제적 풍요의 결과 사회적 차원에서 획일화와 동질화가 실현되면서 미국인들은 일종의 무력감 속에서 조금씩 정체성에 대한 의심과 내적불안을 키워 갔다. 게다가 히로시마의 기억이 채 사라지기 전에 소련이 수폭 실험에 성공했다는 소식이 들려왔고 동시에 이때부터 미확인 비행 물체(UFO)에 관한 뉴스가 심심찮게 흘러나왔다. 그 결과 자연스럽게 신경 쇠약이 이 시기 미국인들 일상의 질병이 되었고, 계층을 상관없이 사람들은 광적으로 종교를 찾아다녔다. 니콜라스 레이의
<실물보다 큰>(1956)은 이러한 1950년대 미국인들에게 잠재되어 있는 불안감과 신경병적인 증상들을 반영하는 작품이다. 

‘작가 감독’ 영화의 위대한 10년으로 분류되는 1950년대, 니콜라스 레이는『카이에 뒤 시네마』가 선정한 작가감독들 중 한 명이다. 니콜라스 레이는 뉴욕의 급진적 극단에서 활동한 배경과 전전과 전시에는 하우스먼과 함께 연극과 라디오에서 일한 경력을 갖고 있다. RKO에서 하우스먼이 제작한 니콜라스 레이의 데뷔작 <그들은 밤에 산다>(1948)는 1년이 넘도록 제대로 공개되지 못하다가 프랑스에서의 비평적 관심으로 빛을 받게 된다. 1950년대에 들어서 니콜라스 레이는 시각적 유동성뿐만 아니라, 극단에 가까운 강렬한 인물 묘사와 사회 전반에 만연한 순응주의적 풍조에 대한 등장인물의 거부를 특징으로 하는 이단적이고 색다른 장르 영화를 계속 만들었다. 번민하는 10대 역으로 제임슨 딘을 캐스팅하여 성공한 <이유 없는 반항>(1955)이 아들에게 초점이 맞춰져있는 가족 멜로드라마라면, <실물보다 큰>은 중산층의 남편/아버지에게 초점을 맞춰 남성성의 딜레마와 평범한 중산층 가족생활의 표면 아래에 감춰져 있는 악의 힘을 드러내는 가족 멜로드라마이다.


 

건축을 전공한 니콜라스 레이의 영화에는 시각적 감각에서뿐만 아니라, 배경과 캐릭터를 조화시키는 능력이 탁월하다. 특히 니콜라스 레이의 능력은 와이드 스크린에서 두드러진다. <실물보다 큰>은 시네마스코프의 전성기를 대표하는 작품들 중 하나이며, 니콜라스 레이가 와이드 스크린의 대가임을 확인시켜주는 작품이다. <실물보다 큰>에서 집 안의 계단은 모든 사건과 갈등들이 시작되고 끝이 나는 지점이다. 영화 속 중요한 공간인 계단의 수직적인 선과 좌우로 긴 시네마스코프의 수평적 선이 만나면서 감각적인 미장센들을 만들어낸다. 특히 후반부 미쳐서 날뛰는 에드 애버리(제임스 메이슨)를 제압하는 장면은 계단의 수직과 시네마스코프의 수평의 대비를 활용하여 계단에서 난투극을 벌이는 두 남자와 화면의 오른쪽 끝에서 두려움에 떨고 있는 모자의 모습으로 연결한다. 

자크 리베트는 와이드스크린이 편집을 최소화하게끔 하면서 영화를 어떻게 미장센의 예술로 만드는지를 <실물보다 큰>의 한 장면으로 예를 들었다. 주인공 에드가 병원에서 떠날 때 자신을 치료해준 의사에게 고마움을 표한다. 분홍색 알약 코티존 병이 침대 발치 오른쪽에 있는 테이블 위에서 조용히 빛을 내고 있고, 에드가 막 떠나려 할 때 그때서야 의사가 손을 뻗쳐 병을 집는다. 이 장면에서 니콜라스 레이는 알약병을 이 쇼트의 마침표로 첨가하면서 이 장면과 연관된 다른 요소들을 수평으로 나란히 배열한다. 리베트는 이 장면이야말로 와이드 스크린 미장센의 새로운 시대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하였다.(신윤하)










* 상영일
2월 3일 수요일 7시 30분 : 상영후 김영진(영화평론가) 시네토크
2월 12일 목요일 4시 30분
2월 17일 화요일 3시
3월 1일 일요일 5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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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앞둔 구로사와의 자화상

- 구로사와 아키라의 <란>



구로사와 아키라의 영화 <란>은 아키라 후기 작품세계의 완성체인 동시에 그가 살아생전 가장 많은 에너지를 쏟아 부었던 위대한 시대극으로 알려져 있다. 구로사와 아키라는 10년여의 제작기간에 걸쳐 75세의 나이에 <란>을 완성했다. 아키라의 비관적인 휴머니티에 대한 고찰은 그의 50년대 작품들에서부터 드러나기 시작했고 그것은 결국 <란>에 이르러 집대성된다. <란>은 셰익스피어의 비극 ‘리어 왕’에 기대고 있지만, <란>을 단지 각색 영화라고 부를 수 없는 이유는 영화 속에 인간의 폭력과 전쟁, 그리고 종말에 관한 은유가 녹아있기 때문이다. 구로사와 아키라는 <란>을 통해 몰락을 향해 나아갈 수밖에 없는 비관주의적 인간관을 여과 없이 보여주고 있다. 


모든 것을 잃은 채 방황하는 혼란스런 꿈 때문에 성주 히데토라는 아들들을 불러 모아 재산 분배를 하게 된다. 히데토라는 자신의 ‘성주’라는 지위를 제외한 모든 재산을 장남에게 물려주고 나머지 동생들에게는 영지를 고루 분배해준다. 이에 반한 막내아들 사부로는 히데토라를 설득하려 하지만 히데토라는 격분한 채 막내아들을 쫓아낸다. <란>은 히데토라의 꿈으로부터 출발해 히데토라의 참혹한 현실로 끝을 맺는다. 히데토라의 불행은 약육강식의 세계를 전제로 둔 것이며, 그는 결국 자신이 행했던 과거의 업보를 고스란히 짊어지게 된다. <란>은 한 도시 그리고 한 가족이 파멸에 이르는 과정과 결과를 보여준 영화지만, 그 이면에는 구로사와 아키라의 개인적인 인생사가 짙게 배어있다. <도라 도라 도라>의 제작이 무산되고 <도데스 카덴>의 흥행이 참패하자 급기야 아키라는 1971년에 자살을 시도한다. 아픔을 딛고 재기에 성공한 이후 전설적인 영화 <카게무샤>를 만들어낸 아키라는, <카게무샤>가 결국 <란>을 위한 리허설에 불과했으며 <란>이 결국 자신의 유언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성장기를 배제한 채 노인의 모습으로 등장하는 히데토라는 결국 아키라의 분신이며, 구로사와 아키라는 히데토라의 입을 통해 환멸스러운 사회에 대한 비관의 시선을 유감없이 던져낸다.


<란>에서 눈여겨보아야 할 것은 클로즈업 신이 없다는 것이다. 히데토라의 분노가 하늘을 찌를 듯이 발산되는 장면에서조차 <란>의 카메라는 인물로부터 꽤나 거리를 둔 곳에 위치해있다. 때문에 <란>의 인물들은 스스로의 감정에 의존하기보다 자신을 구성하는 주변의 환경에 파묻힌다. 완연한 전지적 작가시점을 구사하는 카메라는 영화의 중반, 히데토라가 불타는 성을 등지고 걸어 나오기 직전의 전투장면에서 정점을 이룬다. 하나의 웅장한 오페라를 보는 것과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란>은,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 이르러 영영 구원받지 못할 인간의 모습을 그려낸다. 말년에 이르러 영화들의 콘티 제작에 공을 들이던 구로사와 아키라는 <란>의 콘티를 소개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는 어쩌면 <란>을 영화로 찍지 못할 지도 모른다. 만일 그렇게 된다면 다음 세대의 사람들에게 적어도 내가 머릿속에 그린 비전이 어떤 것 인지라도 보여주고 싶다.’ <란>은 결국 구로사와 아키라가 죽음을 앞두고 바라보아야만 했던 아키라의 또 다른 자화상인 것이다.(강민영)








* 상영일정
2월 1일 일요일 3시 : 상영후 변영주(영화감독) 시네토크
2월 4일 수요일 4시
2월 12일 목요일 1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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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년 시절의 꿈과 기억의 이야기
-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의 <거울>




타르코프스키는 저서 <봉인된 시간>의 서문에서, 영화 <거울>이 러시아에서 개봉되었을 때, 많은 사람들로부터 격렬한 항의를 받았던 것을 회고한다. 항의의 대다수는 이 영화에 대한 절대적인 이해의 어려움에 대한 토로였다고 한다. 영화의 복잡한 시간성과 서사, 시점, 1인 2역 등으로 인해, 논리적인 분석은 상당히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 영화를 누군가의 기억, 누군가의 의식의 흐름을 따르는 영화라고 생각한다면, 그 흐름을 따라가는 것이 그렇게 어렵지는 않다. 이것은 누군가의 유년시절의 꿈에 대한 이야기이며, 기억에 대한 이야기이다. 이것은 분명히 개인적인 차원의 기억이지만, 보편적인 개인이다. 그래서 이 기억이 감독의 기억임과 동시에 러시아인들의 기억이라고도 말할 수도 있다. 여기에는 유년의 추억의 애틋함,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과 애증의 교차(마르가리타 테레코바가 연기한 어머니 캐릭터는 영화의 중심적 인물이며, 매우 다채로운 성격을 내포하는데, 그것은 화자가 기억하는 어머니에 대한 애증의 감정의 표현이다), 부재하는 아버지에 대한 상실감이 있다. 타르코프스키가 감명 받았다고 소개한, <거울>을 본 관객의 편지들이 이런 것들을 너무도 잘 표현해준다.

“나의 어린 시절은 영화와 똑같았습니다... 당신의 영화는 어린이의 의식의 깨어남을 얼마나 훌륭하게 보여주고 있는지... 우리들은 정말 우리 어머니들의 얼굴을 모릅니다... 저는 제 생애 처음으로 제가 혼자가 아니라고 느꼈습니다.”, “나를 괴롭히는 모든 것, 내가 동경하던 모든 것, 나를 흥분시키고 내게 역겨운 모든 것- 이 모든 것들을 나는 마치 거울 속을 보듯 당신의 영화 속에서 보았습니다... 처음으로 영화가 내게는 현실이 되어버렸습니다.”

<거울>이 만들어진 시대에 러시아 사람들의 기억에는 전쟁의 역사가 있고, 거기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은 거의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개인의 기억에는 반드시 역사에 휘말린 상흔이 남는다. 감독이 그 상흔을 담아내기 위해 선택한 것은 허구적 자료와 기록적 자료(뉴스 필름)를 몽타주하는 것이다. 그는 엄청난 분량의 뉴스 필름을 뒤져 마침내 자신의 영화에 완벽하게 들어맞는다고 생각되는 영상을 발견했다고 한다. 그것은 참혹하고 비극적인 운명의 희생자들, 그들의 힘으로 감당할 수 없는 비인간적인 사역에 지칠 대로 지친 인간들을 보여주면서, ‘역사의 발전’이란 것을 위해, 그 대가로 치른 고통과 참상을 보여준다. 그 희생자들을 토대로 해서만이 역사는 흘러왔던 것이다. 그들의 희생과 이 필름은 불멸성을 획득한다. 이것은 기억의 탈시간성과 연결되는 것이다. 더불어 영화에는 감독의 아버지인 아르제니 타르코프스키의 시가 계속해서 나온다. 이 시는 또 하나의 개인적이자 역사적인 기억들이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타르코프스키의 실제 어머니가 출연해, 그녀가 살았던 공간과 거의 똑같이 재현된 시골집 앞의 메밀꽃밭을 바라보는 장면이다. 그녀의 진실한 표정을 얻었다며 만족했다는 감독은, 이것으로 시간이 덮어 버린 뚜껑을 다시 들추어낼 수 있는 추억의 능력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렇게 보면 이 영화가 왜 그렇게 복잡한 시간구조로 이루어져 있는지 어느 정도 수긍할 수 있다. 영화에서 표현되는 초자연적인 현상들의 이미지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기억은 때때로 이렇게 자연적이거나 시간적인 차원을 넘어서는 것이다. 

타르코프스키는 <거울>에서 자신과 가까운 인간들에 대해 느끼는 감정들과 관계, 영원한 동감에 관하여 그리고 또한 자신의 무력함과 그들에 대한 자신의 그치지 않는 죄의식에 대해 이야기하려 했다고 밝혔다. 결국 <거울>은 인간에 대한 영화다. 그것을 느끼게 될 때, 이 영화는 무엇보다도 정서적인 경험으로 기억될 것이다. (박영석)








* 상영일정
1월 31일 토요일 3시 30분 : 상영후 정가형제(영화감독) 시네토크
2월 15일 일요일 8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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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좌파 감독의 즐거운 일기

- 난니 모레티의 <4월>




난니 모레티라는 이름을 듣는다면 사람들은 1994년 칸의 황금종려상을 받은 <나의 즐거운 일기>라는 영화를 기억해낼 것이다. <나는 자급자족한다>(1976), <빨간 비둘기>(1990) 등 여러 영화를 제작하고 감독, 출연한 난니 모레티는 네오리얼리즘의 바통을 이어 받아 좌파적 시각으로 반파시즘적 이념을 이야기하는 이탈리아의 영화감독이다. 그는 나치즘의 망령과 보수우익으로 점철된 현대 이탈리아에서, 영화라는 매체로 시대와 권력에 대해 저항한다. 여기에 일상적 삶에 녹아든 그만의 유머감각이 경쾌한 힘을 더한다. 이렇게 저항과 웃음이 혼재하는 모레티의 영화는 발랄하지만, 결코 가볍지 만은 않은 정치적 진정성을 지닌 채 우리에게 다가온다. 


<4월>은 <나의 즐거운 일기>로부터 4년이 지난 후 난니 모레티가 다시 쓰는 영화 일기다. 상황은 그 때보다 더 안 좋아졌다. 영화는 미디어의 제왕 베를루스코니가 대통령으로 당선되는 것으로 시작하여 그가 집권했던 1994년 3월부터 1997년 8월까지의 모레티의 일상을 쫓아간다. 극우파와 좌파간의 권력싸움이 일어나는 이 시기에 모레티는 자신이 오랫동안 염원했던 트로츠키주의자 주방장이 나오는 뮤지컬영화를 찍으려 한다. 하지만 지금 자신이 해야 할 일은 이탈리아의 정치적 현실을 반영하는 다큐멘터리를 찍어야 한다는 생각에 고민하고, 결국 뮤지컬 영화를 잠시 포기한다. 동시에 모레티의 아들 피에트로가 태어나고 모레티는 계속 영화 일기 쓰기를 진행한다.


<4월>를 통해 난니 모레티는 정치와 권력, 그리고 이들을 작동시키는 미디어와 저널리즘에 대해 직설적으로 비판한다. 영화가 사라지고 텔레비전이 들어선 이탈리아에서, 모레티가 걱정했던 파시즘적 스펙터클은 미디어 재벌 베를루스코니의 승리로 더욱 쉽게 개인의 일상에 들어오게 되었다. <4월>은 베를루스코니가 나오는 텔레비전 화면을 그대로 보여주며, 이러한 세태를 강조하며 경계를 늦추지 않는다. 저널리즘에 대한 비판도 마찬가지이다. 그는 권력의 지배 안에서 작동되고 있는 신문과 잡지들에는 같은 필자가 쓰는 다른 기사들이 대부분임을 직접적으로 말하며, 갖가지 신문과 잡지들에 실린 기사들을 스크랩하여 큰 신문을 만든다. 모레티가 덮일 만큼 거대한 신문의 크기는 권력의 지배의지에 사로잡힌 신문과 정보의 양이 얼마큼인지를 여과 없이 보여준다. 


난니 모레티의 <4월>에서 주목할 점은 이 같은 비판과 저항 사이에 소소한 웃음들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영화 속에는 다큐멘터리를 위해 수집한 신문 스크랩들을 깔고 피에트로와 함께 앉아 있는 모레티가 나오는 장면처럼 비판적 장치와 웃음이 공존하는 장면이 자주 등장한다. 한마디로 이 영화는 한국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이탈리아 ‘좌파’ 감독의 ‘즐거운’ 일기다. (김나현)








상영일
1월 30일 금요일 7시 30분 : 상영후 정윤철 감독 시네토크
2월 1일 일요일 1시
2월 18일 수요일 8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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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르나우와 헐리우드의 첫 만남

- 개막작 무르나우의 <선라이즈>




‘2009년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의 개막식 상영작으로 선정된 <선라이즈>는 F. W. 무르나우가 1927년에 헐리웃으로 건너가 처음으로 만든 영화다. 그 무렵 무르나우는 <마지막 웃음>(1924)이 전 세계적으로 성공해 유명해진 상태였다. 미국에서는 25년 1월에 <마지막 웃음>이, 26년 12월에 <파우스트>(1926)가 개봉되어 흥행과 비평에서 모두 성공을 거두었다. 그 외에도 미국에서 개봉된 독일영화들이 호평을 얻어 독일영화란 말 자체가 미국 상업영화의 반대말, 곧 예술영화의 동의어로 쓰이게 됐다. 때문에 스캔들과 검열문제로 고민하던 할리우드의 많은 영화사들은 독일 감독들을 영입해 영화 예술의 후원자로서의 위치를 다지고자 했다. 폭스 또한 전략적인 차원에서 이미지 쇄신을 위해 무르나우를 초청했고, 무르나우는 미국 영화계와 언론의 열렬한 환호 속에서 미국에 도착했다.

한편 당시 독일 영화계는 무르나우의 <파우스트>와 프리츠 랑의 <메트로폴리스>에 든 과도한 제작비로 인해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에 놓여있었다. 두 영화를 제작한 UFA는 파산 위기에 몰렸고, 표현주의 운동으로 활발했던 독일영화산업은 침체기를 맞았다. 그로 인해 많은 독일의 영화인들이 자본이 많은 할리우드로 빠져나갔는데, 무르나우는 그 중에서도 가장 빛나는 이름이었다. 폭스는 무르나우가 감독하는 <선라이즈>에 120만불이란 거액을 투자했고, 무르나우는 경제적인 제약 없이 자유롭게 창작활동에 전념할 수 있었다.


영화의 내러티브는 비교적 단순하다. 시골마을에 사는 부부가 한 도시여자로 인해 시련을 겪는 이야기다. 남자는 도시여자에게 꼬여 부인을 물에 빠뜨려 죽이려다가, 겁을 먹고 도망치는 부인을 쫓아 기차에 올라타게 된다. 부부는 어느 도시에서 내려 우연히 결혼식을 보게 되고, 남자는 옛 맹세를 떠올리며 참회한다. 그들은 행복한 하루를 보낸 뒤 배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던 중 풍랑을 만난다. 아내는 사라지고 계획이 성공한 줄 안 도시여자가 남자를 찾아온다. 화가 난 남자는 도시여자를 죽이려는데 아내가 발견되고, 도시여자는 결국 시골을 떠난다.


단순한 내러티브와 여유로운 경제적 조건 덕분에 무르나우는 뛰어난 동료들과 함께 무성영화의 표현가능성을 적극적으로 실험해 볼 수 있었다. 먼저 독일에서부터 무르나우와 함께 작업했던 로쿠스 글리제가 세트 디자이너로 참여해 정교한 원근법을 지닌 거대한 도시 세트를 만들어냈다. 또 각본은 <마지막 웃음>을 포함한 많은 독일 표현주의 영화를 썼던 독일의 칼 마이어가 맡았다. 특히 로저 에버트가 “시간과 중력을 정복”했다고 표현한 <선라이즈>의 자유로운 카메라 움직임은 <벤허>를 찍은 미국의 촬영감독 칼 스트러스 덕분이었다. 그는 영국인 찰스 로쉐와 함께 여러 기법들을 고안해 이중노출, 트레킹 숏 등을 촬영했다.


결국 <선라이즈>는 할리우드의 자본력과 무르나우의 실험정신이 결합해 낳은 걸작이었다. 비록 영화가 개봉되었을 때 미국에서 독일영화의 위상이 급변하면서 흥행과 비평 면에서 참패를 겪을 수밖에 없었지만, <선라이즈>야 말로 무성영화의 거장, 무르나우의 절정을 보여준 작품이었다. 아직 못 본 사람들에겐 이번 상영이 영화사에서 가장 뛰어난 영화 중 하나로 꼽히는 <선라이즈>를 필름으로 확인할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이후경)





* 상영일정
1월 29일 목요일 7시 개막작 상영
2월 4일 수요일 1시 30분
2월 11일 수요일 7시 30분 : 상영후 김성욱(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래머) 시네토크
2월 14일 토요일 8시
2월 27일 금요일 5시 3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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