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작가탐구: 오즈 야스지로

강사 김성욱
개강 2017년 4월 3일부터 매주 월요일 저녁 7:30 (8강, 140,000원)

강좌취지
두 명의 오즈가 있다고 말할 정도로 오즈영화에 대한 비평은 다양하다. 노엘 버치와 도날드 리치의 초기 비평에서부터 오즈를 영화에서의 정신적인 본질을 추구한 드레이어, 브레송과 연결시킨 폴 슈레더의 초월적 논의, 들뢰즈와 하수미 시게히코, 요시다 기주의 비평까지. 이번 강의는 오즈의 대표적 작품들을 몇 개의 주제와 시기로 구분해 논의해 보며 미조구치와 나루세 등 동시대 작가들의 영화, 그리고 허우 샤오시엔, 고레에다 히로카즈, 구로사와 기요시 등 후대의 작가들에 미친 영향성을 살펴본다.

1강 영화에 문법은 없다, 하지만.
2강 일상의 미각
3강 무인의 공간
4강 건축가로서의 오즈
5강 소시민 영화론
6강 가족의 표상
7강 반오즈론
8강 오즈를 따라가긴 했지만

참고문헌
『감독 오즈 야스지로』, 하수미 시게히코, 한나래
『오즈 야스지로의 영화세계』, 도날드 리치, 현대미학사

강사소개
영화평론가, 중앙대학교 영화학 박사. 시네마테크 서울아트시네마의 프로그램 디렉터로 활동하며 영화사의 거장들의 회고전을 기획해 개최하고 있다. 『데릭 저먼의 영국』, 『디지털 시대의 영화』 등의 책을 번역했고, 『루이스 부뉴엘의 은밀한 매력』, 『오시마 나기사』, 『장 피에르 멜빌』, 『영화와 사회』 등의 책을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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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나귀, 우리, 발타자르

로베르 브레송의 <당나귀 발타자르>는 그의 영화 중에서도 꽤 예외적인 작품처럼 보인다. 전작들의 긴밀하게 연결된 구조와 비교하자면 이야기가 분산적이고 산만하다. 이런 느슨한 구성은 그의 유작 <돈>과 비교해 볼 만하다. <돈>이 말 그대로 돈의 순환을 그렸다면, 이 영화에서 순환되는 것은 당나귀이다. <당나귀 발타자르>에서의 우연적 연결들은 그러나 작품의 주제와 무관하지 않다. 주인공은 제목 그대로 당나귀이다. 원제 ‘Au hasard, Balthazar’에는 ‘우연 hasard’이라는 단어가 포함되어 있다. 이 영화는 우연히, 그때그때 주인의 사정에 따라 다른 사람에게 양도되는 발타자르의 운명을 암시하고 있다.



당나귀 발타자르는 영화 대부분의 장면에 모습을 보인다. 발타자르는 주인공이자 사건의 진정한 증인이다. 그는 이 영화의 특권적 시점을 반영한다. 영화에 자주 등장하는 발타자르의 눈의 클로즈업은 그런 시점을 예시한다. 발타자르는 인간 세계에서 벌어지는 일의 추이에 따라 꼼짝없이 고초를 겪는 수동적인 존재이다. 그는 물론 인간의 해석과 이해를 넘어선 존재이다. 그의 울음소리에서 어떤 메시지를 읽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이 영화가 발타자르의 시선을 차용하는 것은 우연처럼 진행되는 영화의 불가해한 연결의 실마리를 제공하기도 한다. 자초지종을 알 수 없는 사건들의 연결은 눈앞에서 벌어지는 일을 그저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발타자르의 시점에 설 때 알몸의 생생한 현실로 납득될 수 있다. 발타자르의 시선의 도입은 그러므로 인간과 동물을 공명하게 하면서 인간의 이해 불가능한 행동이나 사건을 그대로 경험하게 한다.

그런데 이런 수동적 시선은 브레송의 영화에서 종종 등장한다. <잔다르크의 재판>의 마지막에 등장하는 개의 시선이나, <돈>의 끔찍한 라스트에서 이곳저곳을 돌다다니는 개의 시선이 그러하다. 발타자르는 우연적인, 하지만 그런 이상한 일이 저기서 벌어지고 있음을 그대로 꼼짝없이 보고 경험한다. 무기력해 보이지만 그런 발타자르는 브레송이 생각한 스크린에 육화된 우리 관객의 진정한 모습이기도 하다.

김성욱 / 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램디렉터

에디토리얼 / 201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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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1466098579 2016.06.17 02:36 신고

    알찬 정보 좋네요~

  2. 1467650867 2016.07.05 01:47 신고

    좋은글 감사

비토리오의 질문. "주식으로 사라진 돈은 어디로 가는 건가요?" 혹은, 정서적으로 무미건조해진 헤어진 연인들의 사랑은 어디로 가는 것일까? 바르트가 안토니오니를 예찬하며 말했던 것처럼 '일식'에서 안토니오니는 멈추어 서서 오랫동안 대상과 사물이, 인물이 사라질때까지 바라본다. 사물들이 소진될때까지 철저하게 사물을 바라보는 것. 우리들이 없는 세계를 보는 불안. 이는 진정한 영화(관람)의 모험이다.


일식(1962) /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
Eclipse(1962) / Michelangelo Antonion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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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돌아온 걸 환영해요.” 부엌에서 음식을 준비하던 아내 미즈키는 거실 뒤편에서 누군가 지켜보는 인기척을 느껴 되돌아본다. 한 남자가 서 있다. 남편 유스케다. “몇 년 만이지?” “3년이네요.” 둘의 대화는 이상할정도로 담담하게 진행된다. 이들 사이의 3년이란 시간에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알 도리가 없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속내를 알기 어려운 꽤나 느긋한 부부의 대화다. 그가 3년 만에 되돌아온 유령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더라도 이런 상냥한 환대에 어떤 차이가 있는 것은 아니다. 남편은 실제로 3년 전에 사라졌고, 시체는 발견되지 못했지만 죽은 것은 사실이다. 유스케는 자신의 몸이 바다에 있고, 고기들이 몸을 이미 씹어 먹어 버렸기에 시체를 보더라도 자신을 알아채지 못할 거라는 끔찍한 말을, 대수롭지 않은 듯이 아내에게 말한다. “집에 돌아온 걸 환영해요.” 그녀는 성을 내지도, 눈물을 보이지도, 와락 달려드는 일도 없이 상냥하게 유령을 환대한다.

구로사와 기요시의 신작 <해안가로의 여행>은 부부의 재회를 이런 식으로 시작한다. 이들의 과묵한 대화는 몹시 인상적이다. 그 리듬을 잊기 어렵다. 장면을 바라보는 우리의 리듬과는 무연하다. 누구나 자기만이 느끼는 아픔의 리듬이 있고, 이 순간의 리듬은 그들에게 속한 것이다. 헤어짐을 견디거나 고통을 멀리 떼어내는데 그들 각자의 고유한 시간이 걸린다. 헤어짐의 아픔, 그것을 견뎌내기 위한 시간은 이곳 생에 걸친 사람들에게만 고유한 것은 아니다. 이 장면은 저쪽 편, 죽음에 있다고 여기는 이들에게도 그 아픔의 리듬이 여전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그는 3년 만에 되돌아왔다. 유령의 도래에 담긴 비밀은 부활에 있을게 아니라 3년이란 시간의 간격에 있다. 죽은 자가 비록 당돌하게 되돌아오지만(그렇게 보일 뿐, 유령들 각자 재림의 고유한 리듬이 사연만큼 있다), 그러므로 공포나 놀람보다는 재림이 불러오는 것은 맑은 눈물이다. 브레송의 영화에서나 봤을 법한 여인의 눈에 촉촉이 젖은, 눈가의 물이 밝게 빛나는 (아름다운) 순간 말이다. 죽은 자 가운데 되돌아온 남편이 아내를 이끌어 당도하게 될 해안은 말 그대로 물이 가장 많고 빛나는 곳이다(더불어 <리얼 완전한 수장룡의 날>에서 과다한 물의 이미지가 불러온 정서를 또한 떠올려보게 된다. <경성학교: 사라진 소녀들>에 대한 짧은 글에서 밝힌바 있지만, 3.11 혹은 4.16 이후 당분간 우리는 물의 이미지들에서 어떤 죽음들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해안으로의 여행이란 그러므로 물에 도달하는 것이자(그 곳에서 남편은 죽었다고 한다), 밝게 빛나는 물들(눈물)과 만나는 여정이다. 그가 몹시도 아름다운 곳이라 말했던 이곳은 사실 지극히 평범하기 짝이 없는 어디에나 있을 바닷가일 뿐이다. 하지만 그 마지막에 도달하는 순간 관객인 우리는 이 여행을 납득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정말 아름다운 곳에 도착한다. 모든 것이 빛나는 곳이다. <도쿄 소나타>에 이어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이 몹시도 감동적인 영화를 이 세상에 가져왔다는 것에 대단하다고 말하고 싶다. 그러고 보면 이 영화에도 <도쿄 소나타>와 마찬가지로 피아노와 바다가 등장한다. 가볍게 넘길 수 없는 이 반복에 대해 먼저 말해야만 한다.

 



<해안가로의 여행>은 피아노를 치는 한 소녀를 보여주는 것으로 시작한다. 아주 느린 템포의 피아노곡이 연주되고 있다. 아이가 있는 거실의 넓은 공간은 몇 개의 가구를 제외하고는 텅 비어 있는 편인데, 이상한 것이 저 뒤편의 바깥으로 향한 창문에 커튼이 펄럭거리고 있다는 것이다. 창문이 열려 있기에 커튼이 바람에 흔들리고 있다. 하지만 왜 여기서 창문이 열려 있어야만 할까? 문이 열려 있는 것도, 커튼이 바람에 흔들리는 것도 그 자체로는 이상한 일이 아니다. 다만, 피아노를 연주하는 아이가 있는 거실의 창문이 바람에 흔들릴 정도로 열려 있다는 것은 전혀 자연스럽지가 않다. 프로이드 식으로 말하자면 낯설다Unheimlich. 배치의 의도를 작가에게 묻지 않고는 가볍게 넘어갈 수 없을 것 같은 장면이다. 이 부조리한 장면에 눈길을 던지는 사람들이라면 분명 구로사와 기요시의 과거 작을 거론하며 예전 같지 않다고 말하는 무례한 이들이 아닌, 여전히 최근작들을 몹시도 좋아하는 드문 팬들일 것이다. <도쿄 소나타>의 몇 장면들이 이 순간 그들에게도 떠올랐을 것이다. 거론하는 <도쿄 소나타>의 첫 장면은 이러하다. 카메라가 천천히 오른쪽으로 측면 운동을 하며 움직여 거실을 보여준다. 거실의 바닥 위로 신문지 한 장이 바람에 날린다. 전경의 탁자 위에 놓인 잡지의 몇 페이지가 마찬가지로 바람에 날려 펄럭거린다. 집의 내부로 폭풍우가 밀려오고 있다. 카메라가 천천히 더 오른쪽으로 움직이면 저 뒤편, 열린 창문으로 바람이 매섭게 몰아치고 있을게 눈에 들어온다. 가정주부인 메구미가 급히 뛰어나와 창문을 황급히 닫고 마루를 걸레질한다. 물끄러미 창문을 쳐다보던 그녀는 다시 문을 열고는 비가 몰아치는 먼 하늘을 올려다본다. 이 장면에서 열린 창문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다른 장면. 학교에서 꾸지람을 들은 소년은 풀이 죽어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다. 그는 우연히 카네코 피아노 교실이란 간판이 붙어있는 가정집 앞을 지나다 열린 창문으로 흘러나오는 피아노 소리를 듣게 된다. 아이가 고개를 돌려 집을 들여다보면 피아노 선생이 한 소녀에게 레슨을 하고 있다. 아이는 천천히 그들의 모습을 지켜본다. 얼마 후, 꼬마는 그 선생에게서 피아노 강습을 받기로 결심한다. 그리고 감동적인 영화의 마지막 장면. 피아노 경연대회가 열리고 있다. 아이는 심사위원들 앞에서 피아노를 연주하는데, 어찌된 일인지 강당의 뒤 편 창문에서 커튼이 펄럭거리고 있다. 이 마지막 장면이 어쩌면 <해안가로의 여행>의 첫 장면과 가장 유사하다 말할 수도 있겠다. 열린 창문으로 바깥의 바람이 실내로 들어온다. 반대로 내부의 무언가가 바깥으로 향하게 되기도 한다(<도쿄 소나타>에서 열린 문으로 들어온 정체불명의 도둑에 이끌려 메구미는 해안가로 납치 여행을 떠나게 된다. 이 설정을 <해안가로의 여행>의 기이한 여행과 연결 지을 수도 있을 것이다).

맥락은 다르지만 <해안가로의 여행>의 첫 시작은 비슷한 구도에서 시작한다. 한 아이가 피아노를 치고 있고, 뒤편의 열린 창문으로 바람이 들어와 커튼이 펄럭거린다. 잠시 후, 피아노 선생인 미즈키가 등장해 아이에게 천천히 연주할 것을 주문한다. 나중에 소녀의 어머니는 그런 미즈키의 주문을 못마땅해 한다. 조금 밝게, 빠르게 피아노를 연주할 수는 없느냐고. 이 장면은 영화의 후반부쯤에 다시 반복되어 나온다. 유스케와 해안가로의 여행 중에 음식점에서 함께 일하게 된 미즈키는 우연히 식당에 있는 피아노 위에 놓인 ‘천사들의 합창’이라는 악보에 손이 끌린다. 무심결에 피아노 앞에 앉아 곡을 연주한다. 갑자기 가게 주인 여인이 달려와 그녀의 연주를 제지한다. 허락도 받지 않고 연주를 할 수는 없는 일이라 말한다. 격렬한 제지에 미즈키는 적잖게 놀라는데, 그녀는 슬픈 사연을 털어 놓는다. 그녀의 여동생이 연주하던 곡이다. 동생은 어릴 때 연주를 많이 했지만 좀처럼 실력이 늘지 않아 곡을 완주할 수는 없었다. 그러다 갑자기 어린 나이에 동생이 세상을 떠났다. 부모는 피아노를 버리자 했지만, 악기가 동생의 몸의 한 부분이라 여긴 그녀는 동생을 기억하며 여태껏 버리지 못하고 있던 터다. 사연을 들은 미즈키는 자기가 그 아이에게 피아노를 가르쳐주고 싶다 말한다. 그러자 응답처럼 갑자기 어린 아이의 유령이 나타난다. 언니는 망연자실 바닥에 쓰러진다. 미즈키는 아이가 곡을 연주하도록 피아노로 이끈다. 아이는 건반 위에 손을 얹고 피아노를 연주하지만 아마도 예전처럼 실력에 부친 듯 쉽지 않아한다. 연주를 지켜보던 미즈키는 나지막이 소녀에게 이렇게 말한다. “처음부터 다시, 너의 템포로 연주하렴.” 피아노가 놓인 식당 저 뒤쪽의 열린 창문으로 커튼이 마찬가지로 펄럭거린다. 실내는 잠시 어둠 속에 잠긴다. 창문으로 들어오는 작은 빛이 이 세 명의 여인들을 어둠 속에서 감싸고 있다. 유미코는 소녀의 연주를 응시하고, 저 뒤편에서 언니는 바닥에 주저앉은 채 동생의 피아노 연주를 조용히 듣고 있다. 세 여성을 한 화면에 담아내는 구도가 인상적이다. 상냥한 기쁨, 혹은 부드러운 슬픔의 순간이다. 구로사와 기요시는 지금 어쩌면 나루세의 세계에 근접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유미코의 눈에 촉촉이 눈물이 고인다. 창문으로 들어오는 빛이 그녀의 눈물을 반짝거리고 있다. 아이는 연주를 마치고 컷이 되면 장면이 바뀌어 이내 소녀는 사라지고 없다. 어둡던 식당이 천천히 밝아진다. “너의 템포로 연주하렴.” 영화의 첫 장면에서 미즈키가 아이에게 주문했던 느린 템포의 연주는 기실은 이 아이에게 어울리는 리듬이었을 것이다(물론 그 템포는 남편과 사별한 미즈키의 삶의 리듬이기도 했다).




이런 식의 연출은 전형적인 호러영화와를 만드는 것과는 전혀 다른 일이다. 유령이 어떻게 출현하는가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 어쩌면 그 반대가 중요하다. <절규>로 서울아트시네마를 찾았던 2007년에도 그는 사다코의 유령처럼 어떻게 기발한 방법으로 유령이 출몰하는 것에는 관심이 없다고 말한 바 있다. 흥미를 느끼는 것은 어떻게 유령이 사라지는가이다. 하늘로 날아갈 것인지, 문을 열고 나갈 것인지, 계단을 타고 내려갈 것인지 등등. 이런 생각은 호러영화의 장르적 재미를 일찌감치 무효로 하는 설정이지만 더 흥미로운 질문이다. 유령은 이 세계에 갑자기 도래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빈 공간에 거주하고 있다. 어떻게 유령을 보게 될 것인가. 혹은 유령임을 어떻게 판명할 것인가. 최종적으로는 어떻게 유령과 결별할 것인가. 횡으로 넓은 시네마스코프 화면은 이런 빈 공간의 여백을 담아내는데 적절했을 것이다. 여기서 질문이 달라진다. 유스케는 왜 돌아왔을까. 그것도 3년의 시간이 걸려서. 비록 유스케가 생전 좋아했을 음식을 요리하는 때에 매번 돌아오는 것처럼 보일지라도(그의 첫 출현이 그랬다. 마찬가지로 그가 다시 사라진 이후- 엄밀하게 말하자면 미즈키 그를 두고 떠났던 일이지만- 다시 그를 불러내기 위해 음식을 요리한다), 이는 개연성이 없는 하나의 설정, 알리바이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유령은 언제나 빈 공간에 거주한다. 그의 출현은 전적으로 그의 결정에 따른 것이다. 다만 그를 소환하거나 사라지는 것에 영화적 장치가 필요하다. 무엇보다 프레임이라는 틀(구조물)과 컷 이라는 분리장치다. 영화의 프레임은 가시성의 틀이다. 틀 안에는 물론 보이지 않는 공백들도 담겨진다. 또 다른 하나. 하나의 컷에서 다른 컷 사이의 공백, 어둠에서 유령은 나타나고 사라진다. 가령, 한 컷에서는 소녀가 피아노를 치고 있고 다음 컷에서는 소녀는 없고 피아노만 놓여있다. 멜리에스의 영화처럼 트릭필름이라 불렀던 초기영화부터 있던 아주 단순하면서도 오래된 방식이다. 프레임이든 컷의 변경이든, 여기서 유령의 출현과 사라짐은 불가해한 바깥에의 감각을 강렬하게 한다. 프레임 안으로 바깥의 세계를 유입하는 것, 혹은 컷의 바깥으로 유령을 사라지게 하는 것. 여기서 말하고 싶은 것은 유령이란 존재(와 그의 출현과 사라짐)가 인물의 심리와 무연하다는 것이다. 나는 이런 식의 유령적 존재를 라울 루이즈의 용어를 빌려 ‘정오의 유령’이라 부르고 싶다. 루이즈가 들려주는 기이한 일화. “어느 날 한 사람이 칠레의 거리를 걷다 40년 전의 오랜 친구를 만났다. 그들은 진부한 일상의 이야기를 나눴다. 신호등이 작동하지 않는다거나, 우유 값이 올랐다거나, 근처 다리에 구멍이 있다던가 하는 그런 진부한 이야기들을. 그리고 그들은 헤어졌다. 얼마 후 그가 깨닫는다. 그 친구는 몇 년 전에 죽었던 것이다.” 루이즈는 이러한 존재를 ‘정오의 유령’이라 불렀다. 이는 나쁜 이들에게 복수하는 그림자나 고딕 유령이나, 억압된 것의 귀한이나 악의 있는 힘으로 살아 있는 자에 출몰하는 그런 유령이 아니다.

그가 돌아왔다. 처음에 미즈키는 유스케가 돌아온 것이 꿈인가 싶었다. 아침에 침대에서 깨어난 그녀는 그러나 “나랑 같이 가겠어. 아름다운 곳이야.”라 말한다. 이렇게 되돌아온 자가 같이 가자고 하는 곳은 그러나 피안의 세계가 아니다. 어디에나 있을 현실의 세계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현실의 세계의 다른 곳이다. 그를 돌보아주었던 사람들이 있던 곳이다. 부부는 운전면허증이 없어서, 기차를 타고 여행한다. 때론 버스를 타기도 한다. 현실의 수고는 유령이라고 해서 별반 달라지지 않는다. 유령 유스케는 심지어 길을 몰라 기차역의 승무원에게 행선지를 묻기도 한다. 그들은 때론 자신이 죽은 줄 모르고 여전히 신문배달을 하고 있는 사람과 만나기도 한다. 하지만 여전히 의문이 남는다. 어느 날밤에 미즈키는 유스케에게 묻는다. 왜 돌아왔어요? 그는 대답대신 묵묵히 사랑한다고 말한다. 다시 묻지만 왜 유스케는 3년 만에 되돌아온 것일까. 그가 돌아오게 해달라고 수백 장의 기도문을 썼던 응답이 되돌아온 것일까. 아니면 그가 좋아하던 음식을 마치 제사상의 음식처럼 어느 날 우연히 마련했기 때문인가. 사실 그 이유는 미즈키에게 연유한 것은 아닌 듯하다. 이 의문은 미즈키가 아닌 유스케에게 전적으로 속한 것이다. 그는 어찌된 일인지 아내에게 되돌아오기에 3년의 시간이 걸렸다. 그러므로 둘의 여행은 아내가 따라나선 그의 사후 3년의 행적을 따라가는 여정이다.

그녀에게 다가오는데 3년의 시간이 걸렸던 이유를 가늠하는 일은 드라마의 논리에 따라 설명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 설명은 그러나 흥미롭지 않다. 영화는 대신 다른 길, 꽤 물리학적 경로를 따라간다. 영화 후반부에 유스케는 시골 작은 마을에서 과학 선생처럼 주민들에게 우주의 기원에 대해 말한다. 그는 지극히 평범한 언어로 우주의 기원과 존재에 대해 설명한다. 이 모든 것은 무로 구성되어 있다고. 이 설명은 드라마의 개연성과는 무연한 영화의 작동원리를 설명하는 것처럼 보인다. 죽은 자와 함께하는 여행은 단지 둘이 함께 가는 것이 아니라, 유령이면서도 3년을 살았던 그의 행적을, 사후생의 흔적을 탐구하는 여정이다. 아내는 그런 다른 생을 받아들인다. 아름다운 곳이 있어, 함께 가지 않겠어. 유스케가 미즈키를 여행으로 안내하는 주문이다. 아름다운 곳. 사실 그들이 찾은 곳은 절경도 실로 아름다운 곳이라 말할 수 없는 지극히 평범하기 짝이 없는 작은 마을들이다. 유스케가 말한 아름다움이란 그러므로 아직 볼 수 없었던 바깥의 세계다. 평범하지만, 전적으로 유령의 눈에 비친 세계이기 때문이다. 그의 눈앞의 세계란 아직 미즈키에게는 알려지지 않은 비밀들, 말해지지 않은 것들, 아직 들리지 않았던, 그러므로 아직 보이지 않았던 것들과 관련된다.


영화의 후반부에 미즈키는 유스케에게 묻는다. “나는 궁금해 당신과 나 사이에, 어떤 차이가 있는 건지.” 이 둘은 함께 마을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미즈키는 지금 유스케와 같은 것을 보고 있던 것일까? 미즈키는 지금 영화에 고유한 특별한 질문을 던지는 것처럼 보인다. 우리는 이 세계에서 같은 것을 보고 있는 것일까. 영화란 나 이외의 사람에게도(실은 죽었다고 여기는 사람들에게도)고유한 세계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믿게 한다. 존재하는 것과 보는 것 사이의 차이를 최대한으로 줄여가는 것. 그것이 영화를 만드는 사람과 그것을 보는 사람이 공유하는, 영화적 체험이다. 구로사와 기요시의 <해안가로의 여행>은 이를 가장 감동적으로 느끼게 하는 영화다.

사족을 달자면, <해안가로의 여행>은 올해 상반기에 개봉할 예정이다. 이 아름다운 영화를 다시 극장에서 다른 이들과 함께 체험하고 싶다. 아직 정식 개봉하지 않은 작품에 대한 이야기는 이쯤에서 끝내고, 그 때에 남은 이야기를 더하고 싶다. 더 기쁜 일은 이미 구로사와 기요시가 또 다른 신작을 완성했다는 것이다. <크리피>라는 작품으로, 일가족 실종사건을 그린 서스펜스 스릴러다. 올 6월에 일본에서 개봉할 예정이다. 구로사와 기요시, (늘 있었지만) 돌아온걸 환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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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을 지켜야 한다

-지아니 아멜리오의 <아이들 도둑>

 

 

 

지난 2013베니스 인 서울에서 <용감무쌍 L'intrepido>(2013)을 소개하면서 지아니 아멜리오 감독에 대해 잠깐 언급하기는 했지만 아직까지 그의 작품은 한국에 제대로 소개된 바가 거의 없다. 그의 전작을 소개하는 일은 아직 요원하지만 이번에 상영하는 <아이들 도둑>을 통해 그의 작가적 세계에 조금이라도 다가설 수 있는 기회가 되었으면 한다. ('베니스 인 서울'에서 소개한 지아니 아멜리오의 '용감무쌍'과 관련해서는 다음의 글을 참고.  http://cinematheque.tistory.com/434 )

 

영화의 내용은 지극히 단순하다. 어머니로부터 성매매를 강요당한 11살 소녀 로제타와 그의 동생 루치아노가 젊은 경찰에 끌려 고아원으로 호송되어 가는 과정 중에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다. 힘든 현실에 노출되어 사회에 내던져진 아이들과 그들을 지키려는 경찰이 서로 조금씩 마음을 열게 되는 과정이 밀라노에서 시작해 시칠리로 향하는 여정으로 그려진다.

 

아멜리오의 작품은 원제가 암시하듯이 비토리오 데 시카의 <자전거 도둑>을 떠올리게 한다. 내용적으로는 데 시카의 또 다른 두 편의 영화 <아이들이 보고 있다 I bambini ci guardano >(1942)<구두닦이 Sciuscià>(1946)와 어울린다. 네오리얼리즘과의 연계를 따지자면 밀라노를 배경으로 이민자 가족의 이야기를 그린 루키노 비스콘티의 <로코와 그의 형제들>(1960)을 떠올릴 수도 있을 것이다. 현실에서 영감을 얻은 작품이며, 비전문 배우의 기용과 로케이션의 활용, 드라마틱한 구조를 넘어선 보고와 산책의 형식이 분명 네오리얼리즘 영화의 유산을 느끼게 한다. <자전거 도둑>에서 자전거를 잃어버린 아버지와 그를 따르는 아들의 교감이 영화의 클라이막스를 장식하는 것처럼 이 영화 또한 경찰 안토니오와 두 아이들의 감정의 교류가 영화 후반부의 가장 중요한 정서이다. 물론 차이는 있다. 데 시카의 <자전거 도둑>에서 자전거는 모든 이들이 원하는, 노동자의 삶에서 중요한 물질적 수단이다. 반면, 아멜리오의 영화에서 자전거를 대신한 아이들은 물질적 대상도 아니며 반대로 모두가 원치 않는 사회가 버린 이들이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이들을 어떻게 포착하는가이다. 유일하게 도둑질의 대상이 되는 것이 영화 후반부, 프랑스 여행객의 손에 들린 카메라인 것은 사소한 설정이 아닌 것처럼 보인다. 이 카메라로 프랑스 여행자들은 소녀의 얼굴을 몰래 촬영했고, 이들은 나중에 소녀가 매춘에 가담했던 사실을 알고는 동정을 표한다. 로제타는 이를 거부한다.

 

 

 

 

여행객의 시점, 혹은 동정의 시선을 대신하는 것이 이 영화 속 두 아이들이 사람들과 만나는 순간들이다. 가령, 아이들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 수녀원에서 동생 루치아노가 천천히 아이들이 수업을 받는 교실을 둘러보고 병원에 혼자 누워 있는 여자아이인지 남자애인지 알 수 없는 병약한 아이와 만나는 아름다운 순간이 있다. 병실의 아이는 손거울을 보며 혼자 노래를 부른다. “나는 아주 작은 물고기를 보았네. 지독한 감기에 걸렸고 더러운 물에 병들었지만, 병원에는 그 물고기를 위한 방이 없었다네.” 루치아노는 그 아이를 쳐다보며 미소를 짓는다. 이 영화의 아름다운 순간들(아마도 시칠리로 향하는 바닷가에서 세 명이 함께 수영을 하는 장면은 그들에게 허용된 가장 행복한 순간일 것이다), 마찬가지로 가장 끔찍한 순간들이 이런 식으로 보여진다. 영화는 그런 여정을 그리는데, 이탈리아 남부로의 여정은 단순한 물리적 이동이 아니라 밀라노 북부의 닫힌 세계와 대조적으로 열린 공간과 자연적 환경을 재전유하는 과정이다. 바다, 해변, 여름의 풍경이 펼쳐진다. 다른 한편, 북부에서 남부로의 여정은 아이들이 태어난 기원적 장소로 회귀하는 과정으로, 남부에서 북부로의 경제적 이주의 과정을 반대로 밟아가며 훼손된 순수성과 영혼의 가치들을 재발견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사회적 차원의 해결이 결말로 제시되는 것은 아니다. 아이들에게 향한 물리적 폭력과 사회적 불관용의 시선은 해결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다만, 우리는 두 아이가 진정으로 함께하는 순간을 보게 될 것이다.

 

김성욱 / 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램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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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열번째다. 한 여름 시네바캉스를 처음 시작한 것이 2006년의 일이다. 그 해 7월 25일, 개막작은 빌리 와일더의 '뜨거운 것이 좋아'였다. 무려 40편의 영화를 쉬는 날 없이 하루에 네 편씩 한달간 상영했다. 에릭 로메르의 8편의 바캉스영화들, 불멸의 스타전, 특별전:비시 정권하의 프랑스 영화, 뮤지컬 영화걸작선, 공포특급, 마스터즈 오브 호러, 필름 콘서트, 씨네키드, 시네클래스 등의 행사가 열렸다. 시네바캉스 열 번의 포스터들을 되돌아보고 있으면 마치 가지 못했던 여름 휴가의-사실 그 십년간 영화제 때문에 여름 휴가를 갔던 적이 없기에-기억들을 떠올리는 것 같다. 이제 새로운 장소에서 다시 여름 바캉스를 떠난다. 2006년 첫 시작을 알렸던 개최의 변을 떠올리면서.

한 여름의 영화여행 - 시네바캉스를 시작합니다!
7월 25일부터 시작하는 ‘시네바캉스 서울’은 서울아트시네마가 해마다 5월에 개관을 기념해 개최하던 ‘시네필의 향연’을 좀더 대중적으로 확대한 행사입니다. 작품수를 약 60 편으로 늘리면서 자연스럽게 기간도 늘어났고 동시에 영화감독들의 연출특강과 교육행사, 아이들과 함께 영화를 볼 수 있는 ‘시네키드’, 그리고 영화와 음악이 함께하는 ‘필름콘서트’ 등의 다양한 행사가 추가되었습니다. 영화애호가는 물론 일반 시민들도 편하고 자유롭게 영화를 즐길 수 있는 기회입니다.

‘시네바캉스 서울’은 기존의 거대한 영화제들과 비교하자면 아주 적은 예산으로 소박하게 치러지는 영화제입니다. 우리는 영화를 함께 보고 즐기며 이야기를 나누길 원하기에, 다른 호사스런 행사는 없습니다. 레드 카펫도 필요 없고 개막을 알리는 떠들썩한 이벤트 공연도 없습니다. 하루의 일과를 마치고, 혹은 여행을 떠나듯 극장을 방문해 해변의 폴린느가 아이에서 어른으로 성장하는 과정을, 험프리 보가트와 잉그리드 버그만이 재회하는 장면을, 폭풍우 속의 장 가뱅과 미셸 모르강을, 매혹적인 자태의 마릴린 먼로와 도미니크 산다를 스크린 위에서 만나며 토드 브라우닝, 사무엘 풀러, 브라이언 드 팔머, 존 카펜터, 다리오 아르젠토와 함께 공포의 휴가길을 떠나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이 축제를 영화로 떠나는 ‘바캉스’라 칭한 것도, 이 단어의 본래 의미인 무언가로부터 자유롭고자 하기 위함입니다. 제도화된 영화, 시간의 속박에 갇힌 영화, 이 모든 것으로부터 벗어나 좀더 자유롭게 다양한 영화들과 접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으면 합니다. 이 바캉스는 일주일 정도의 짧은 여행이 아니라 한 달간 지속하는 긴 여행입니다. 그리고 이 여행에서 그동안 서울아트시네마를 찾은 열정적인 관객들과 새롭게 영화관을 찾는 관객들이 의미 있는 만남의 기회가 생기기를 원합니다.

영화는 장소의 기억과 결합한 대중문화의 역사를 이루고 있습니다. 영화의 참된 기쁨은 사람들이 영화관을 찾는 것에서 시작합니다. 대형의 스크린에서 우리들은 감각, 감정과 감동을 경험하며 추억의 일부가 되는 다양한 세계의 기억과 만나게 됩니다. ‘시네바캉스 서울’은 그런 대중의 기억이 간직된 다양한 영화들을 극장에서 새롭게 다시 만나는 행사입니다. 여행은 매번 새로운 세계를 접하는 기대감과 만남을 도모하는 용기를 제공합니다.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영화와 함께 즐거운 휴가를 즐기시기 바랍니다.

김성욱(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램 디렉터)
2006. 0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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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환대 Our Hospitality

버스터 키튼은 영화가 탄생한 1895년에 태어났다. 그는 1920년대에 서커스와 마임에 기원한 무성영화의 근본적인 장르인 뷔를레스크(익살희극)의 창시자로 전성기를 구가했고, 유성영화가 도래하던 20년대 후반부터 서서히 영화계에서 존재감을 잃기 시작해, 30년대 이후에는 할리우드에서 완전히 망각되었다. 1933년 이후에 그는 대략 60여 편의 영화에 출연했지만 대중들의 기억에 남는 영화는 고작 <선 셋 대로>나 <라임 라이트> 정도였을 뿐이다. 이들 영화에서 그가 맡은 역할은 그저 미미한 조연에 불과했다.

키튼의 영화는 그러나 1950년대에 새롭게 발굴됐다. 하나의 전설적인 일화가 전해 내려온다. 1954년 어느 여름밤. 버스터 키튼은 아내와 함께 <제너럴>이 상영되는 L.A.의 코로넷 극장을 우연히 방문했다 과거를 떠올리게 하는 자신의 옛 영화를 결코 보려하지 않았던 키튼이기에 이 방문은 대단히 이례적인 것이었다. 당시 극장의 지배인이었던 레이먼드 로하우어는 키튼이 극장을 방문한 것에 놀라 그에게 무성영화 보존의 필요성을 역설했고, 키튼은 자신의 차고에 몇 편의 영화가 있다며 필요하다면 가져가라고 그에게 말했다. 다음 날, 키튼의 집을 방문한 로하우어는 그의 주차장에서 <세 가지 시대>, <전문학교>, <셜록 주니어>, <항해자> 등의 질산염 프린트를 발견했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이미 파산한 ‘버스터 키튼 프로덕션’의 유실된 영화들이 수집되기 시작했다. 그 덕분에 할리우드 무성영화의 80% 이상이 소실되었음에도 키튼의 영화는 이례적으로 보존되어 1950년대 미국의 극장에서 다시 새로운 관객들과 만날 수 있었다. 그의 영화는 6-70년대에 새롭게 조명되었다. 1965년에는 사무엘 베케트의 <필름>에 출연했고, 1968년에는 케빈 브라운로우의 무성영화에 관한 인터뷰책 'The Parade's gone by'가 출간되었고 같은 해 '그레이트 스톤 페이스'라는 다큐멘터리가 공개됐다. 이번 특별전에서 이 다큐멘터리가 상영된다. 영화탄생 100주년을 기념하던 1995년(마찬가지로 키튼의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던 해)에 다시 화려하게 키튼은 부활의 계기를 마련했다. 1995년. 키튼의 탄생 100주년의 해에 ‘버스터 키튼의 예술’이란 세 박스 세트의 DVD가 출시되었다. 11편의 극영화에 19편의 투 릴 영화들이 DVD에 수록되었다. 우리가 대중적으로 키튼의 영화를 볼 수 있었던 것은 DVD의 출시 덕분이었다.

버스터 키튼의 회고전을 처음 개최한 것이 이미 2004년의 일이다. 당시 레이먼드 로하우어의 방대한 무성영화 컬렉션-700편-을 인수한 곳이 두리스 코퍼레이션으로 이 곳의 팀 란자 씨의 협조로 이번에 상영하는 영화들 대부분을 필름으로 상영할 수 있었다. 당시 31편의 영화를 상영했다. 방대한 두리스 필름의 무성영화 컬렉션이 다른 곳으로 팔리면서 한동안 대규모 회고전이 어렵지 않을까 싶었는데, 다행이 십년이 지나 다시 한번 큰 규모의 특별전을 개최하게 되었다. 2004년을 기억하며 그 때와 마찬가지로 버스터 키튼에 대한 "우리들의 환대"를 표하고 싶다. 그는 최선을 다해 불가능한 일을 완수하고 고독한 형상의 이미지를 남기고 사라졌고, 다시 우리들에게 나타났다. 그는 형편없는 패가 들어와도 태연했고 새로운 방식으로 일하고 우아한 방식으로 움직이고 새로운 리듬으로 사랑하고 이 세계에서 가장 쿨하게 생존했다. 댄 칼라한이 했던 마지막 말을 기억한다. "그가 얻으려고 했던 것은 단지 우리들의 웃음이었지만, 우리는 그에게서 모든 것을 얻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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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영 감독의 신작을 보았다. <경성학교: 사라진 소녀들>에 대한 리뷰가 아닌 아주 '조심스런' 단상을 적고 싶다. 영화 전체를 설명할 생각은 없고, 내가 눌려버린 어떤 이미지에 대해 말하고 싶다. 그건 이상할 정도로 사람들이 말하지 않는 것으로, 아니 사실 말을 꺼내기도 힘들고 정확한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그것은 이미지에 놀란 피할 수 없는 '나-관객'의 경험에 속한다. <경성학교: 사라진 소녀들>에서 내게 그것은 과다한 물의 이미지이며, 물에 잠긴 소녀들의 끔찍한 이미지이다. 이 이미지들은 놀라울 정도로 영화의 홍보성 자료들, 사진들에서는 결코 보이거나 찾을 수 없는 것들이다. 하지만 영화의 초반부터 끝까지 나를 공포에, 때로는 격한 슬픔에 잠기게 한 것들이다. 영화의 초반부 주란(박보영)과 연덕(박소담)이 호숫가의 물에 빠져들게 될 때. 이미 그 순간부터 물(속에 잠긴 소녀들)의 이미지는 내게 압도적인 현실감으로 다가왔다. 이야기를 따라가는 것이 그 때부터 쉽지 않았다. 1930년대라는 시대적 설정이나, 회자되는 레퍼런스 영화들(굳이 말하자면 레퍼런스와 관련해 나는 드 팔마의 <캐리>보다는 <분노의 악령Fury>에 이 영화가 더 근접하다고 생각한다)의 어떤 장르성에도 회수되지 않는 이미지들이다. 그 때 이미지는 이야기의 불가피한 결과가 아니라, 반대로 이 이미지들 때문에 어떤 다른 현실과 상황을 떠올리게 된다. 이 이미지가 불러오는 압도적인 현실감때문에, 어쩔 수 없이 나는 가장 끔찍하면서도 처참한 현실의 이미지를 보게 된다. 조심스럽게 말하고 싶지만, 그것은 4.16의 이미지이다. 이는 구로사와 기요시의 <리얼 완전한 수장룡의 날>에서 과다한 물의 이미지를 보고 3.11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앞서 말했듯이 나는 관객의 경험으로서 말하고 있기에, 이 이미지에 감독의 숨겨진 의도나 무의식이 있다고 말하고픈 것이 아니다. 이해영 감독은 이에 대해서 내가 아는 한, 어떤 인터뷰에서도 언급한 적은 없다. 하지만, 의도와 상관없이 이 이미지들은 크라카우어가 일찍이 지적하듯이 그 끔찍함 때문에 본능적으로 우리가 보기를 거부했던 다른 사건으로 우리의 눈을 돌리게 한다. 픽션의 이미지는 페르세우스의 방패에 비친 괴물의 형상처럼 우리가 그동안 회피했던 끔찍한 사건을 직시하게 만든다. 우리가 그것을 직접 받아들이기에 너무나 무서웠던 것들이다. <경성학교: 사라진 소녀들>에서 주란(박보영)이 보게 되는 것들, 혹은 의미심장한 영사기의 등장과 사진들, 레코드는 그런 점에서 이미 예시적이다. 말하자면 이 영화만큼 4.16 이후를 살아버린, 공포와 슬픔에 잠기게 한 영화를 아직까지, 나는 보지 못했다. 순전히 그것이 나-관객의 경험에 불과한 것일지라도 말이다. 하지만, "그것은 기록되었다. 그렇다면 나는 보아야만 한다"(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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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잘 읽었습니다... 2015.07.02 16:30 신고

    서너개 감상평? 재미 있네 없네...그냥 너무 무책임하게 내뱉는 것 같은 글들 때문에, 영화 보다는 그들의 언사가 너무 짜증스러웠는데, 잘 읽었습니다. 우리는 언제나 이런 숨기려고들 노력하는 역사를 백일하에 드러내놓고 치유에 들어갈 수 있을까요...



올 여름 다지원에서 하는 강의는 앞으로의 일련의 작가탐구의 일환으로 한 명의 작가의 작품을 한 편씩 살펴보는 수업으로 할 생각이다. 그 첫 시작은 로베르 브레송. 두 가지 이유가 있었는데 보다 실천적이면서 개인적이라 수업때 이야기할 생각. 본디 10강으로 하려다 여름에 길게 하는건 무리라 판단, 8강으로 8-9편의 작품을 살펴본다. 6월 29일부터 매주 월요일 저녁 7시30분에. 간략한 내용은 아래와 같다.

강좌취지
로베르 브레송의 특별함은 개인의 스타일을 넘어서 영화 고유의 순수화된 스타일, 다른 예술 표현의 스타일과는 다른 영화 독자적인 스타일을 구체화한 것에 있다. 브레송의 영화는 무언가의 촬영도 개인의 표현도 아닌 고유의 세계 그 자체이다. 신비주의, 초월의 작가, 인간 실존의 작가라 말하기도 어려운, 대신 아무것도 변경하지 않으면서 모든 확고한 영화 그 자체의 세계를 바꾸려 한 브레송의 작품들을 매주 한 편씩 살펴본다.

1강 게임의 규칙: 죄악의 천사들
2강 의지의 승리1: 사형수 탈출하다
3강 의지의 승리2: 소매치기
4강 동등성의 미학1: 잔 다르크의 재판
5강 동등성의 미학2: 당나귀 발타자르
6강 동등성의 미학3: 무셰트
7강 파리의 도스토예프스키: 유순한 여인
8강 천사와 악마: 아마도 악마가, 그리고 돈

강사소개
영화평론가, 중앙대학교 영화학 박사. 서울아트시네마의 프로그램 디렉터로 활동하며 영화사의 거장들의 회고전을 기획해 개최하고 있다. 『데릭 저먼의 영국』, 『디지털 시대의 영화』 등의 책을 번역했고, 『루이스 부뉴엘의 은밀한 매력』, 『오시마 나기사』, 『장 피에르 멜빌』, 『영화와 사회』 등의 책을 출간했다.

참고문헌
로베르 브레송, 『시네마토그래프에 대한 단상』(동문선)
『로베르 브레송의 세계』(한나래)
Tony Pipolo, Robert Bresson: A Passion for Film

★ 수강신청 방법 :
링크 : http://daziwon.net/apply_boa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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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lles after Welles 

 

 

 

 

 

오슨 웰스는 자신의 얼굴과 몸을 훼손하는 데 꽤 열중했던 작가다. 그는 의도적으로 몸을 부풀리고 과도한 분장을 하거나 앙각촬영으로 자신의 몸을 덩치크게 표현하려 했다. 그는 비만에도 무관심했다고 한다. <아카딘 씨>에서 그의 몸은 존재만으로도 인물들을 압도한다. <악의 손길>에서 그가 처음 등장할 때 마르린 디트리히의 놀란 표정은 잊기 힘들다. 미국의 일부 평자들은 그가 후기에 텔레비전이나 B급 영화 등의 저급한 역에 (젊은 웰스의 건장한 몸과 비교해) 예의 비만의 몸으로 출연했던 것을 한탄했다고 하는데, 이는 불가피한 선택이었던 것만은 아닌 어떤 의도도 있었다고 할 수 있다. 가령 그는 십대부터 조숙한 재능을 발휘했고, 스물여섯 살의 나이에 당시 스튜디오에서 영화를 만들었던 감독들도 누리지 못했던 편집권을 얻어 <시민 케인>을 완성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 작품은 그의 젊은 재능에도 불구하고 (이후 60년대의 뉴웨이브 영화들처럼) 젊음을 찬양하는 영화는 아니었다. 그는 젊음보다는 일찌감치 이미 노년을 연기했다. 노년의 권력과 젊음의 열정 사이에는 심각한 거리가 있고 웰스는 이를 처음부터 간파하고 있었다. 이러한 역설은 제목에도 이미 나타나는데, 케인이라는 거대한 권력자와 시민이라는 차이가 이 영화의 주제이기 때문이다. ‘로즈버드’는 그러한 차이를 연결하는 마법의 열쇠이지만 <시민 케인>은 그것이 불가능함을 보여준다.


웰스는 미국이 자신을 존중했던 것이 전적으로 젊음을 요구하는 나라였기 때문이라 말한 바 있다. 젊은 미국은 동어반복처럼 항상 젊음을 예찬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나라들이 그러하듯) 그 젊음을 지속시키는 것에는 별 관심이 없다. 웰스의 진정한 저항은 그러므로 젊음을 일찍부터 부정하거나 그것에 도전하려 했다는 데에 있다고 할 수 있다. 그것이야말로 내 생각엔 젊음이라고 치기를 부리는 것보다 더 진정한 의미에서의 젊음의 저항처럼 보인다. 웰스가 출연한 영화들을 보면 그가 끊임없이 자신을 비대하고 늙은 모습으로, 혹은 다른 모습으로 보여주려 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는 젊고 잘생긴 얼굴을 가리고 의도적으로 다른 모습으로 출연하려 했다. <심판>에서 웰스는 꽤 의식적으로 얼굴을 숨기고, 11명의 다른 캐릭터의 목소리로 출연하기도 했다. 그는 속임수도 즐겨 했다. <오슨 웰스와 일하며>(1994)라는 다큐멘터리를 보면 웰스가 마술과 장난, 속임수를 관객들에게 보여주기를 좋아 했음을 알 수 있다. 그는 정말 뛰어난 마술사였다.

 

 

 

말년의 걸작 <거짓과 진실>(1974)은 그런 웰스의 거짓의 이야기를 그린다. 이 영화는 천재적인 그림 위조범, 즉 ‘거짓’이라는 책을 쓰고 하워드 휴즈의 가짜 자서전을 쓴 클리포드 어빙의 이야기에 웰스 자신이 전 미국인을 상대로 속임수를 썼던 <우주전쟁>의 라디오극 에피소드를 더한다. 이 영화에서 웰스는 “나 같은 사기꾼은 그러나 사실 진실을 추구합니다. 이걸 건방지게 표현하자면 예술이라 할 수 있죠. 피카소도 이렇게 말했습니다. 예술은 진실을 깨닫게 하는 거짓말이라고요”라고 말한다. 그는 젊음 뒤의 노년, 혹은 눈에 보이는 세계 뒤편의 다른 책략과 연극을 영화로 다뤘던 작가다. 그가 연극에서 출발했다는 점은 이런 다성성의 세계에 깊이를 더한다. <시민 케인>이 뛰어난 작품임에도 여전히 웰스를 <시민 케인>의 작가로만, 그의 젊은 시절과 혁명적 데뷔를 찬양하는 것에 머무는 일은 그래서 아쉬운 일이다. 이번 ‘오슨 웰스 백 주년 회고전’에서 이른바 웰스 이후의 웰스에 더 주목해 주었으면 한다. 그의 노년성이야말로 영화적 젊음의 모습이었다. 웰스에 관한 뛰어난 평자들의 공통적인 주장은 이렇다. 웰스는 사람들이 잘 안다고 생각하지만 결코 제대로 발견된 적이 없다. 그는 언제나 재발견의 대상이 되는 작가였다. 여전히 <아카딘 씨>가 대관절 뭘 말하는 영화인지(고다르는 <필름 소셜리즘>에서 아카딘 씨의 비밀 리포트에 대한 궁금증을 보여준 바 있다), <심판>이 현대영화가 새로 등장하던 60년대의 시기에 웰스의 어떤 태도를 담고 있는 작품인지, 왜 <불멸이 이야기>가 오슨 웰스의 '완벽한 영화'인지, 혹은 <심야의 종소리>가 왜 주목할 만한 작품인지를 말하는 이들은 드물다. 물론 쉽게 말하기도 어렵다. 웰스를 잘 안다고 생각하는 분들에게 웰스의 회고전 방문을 권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김성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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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5.04.26 00:36

    비밀댓글입니다

  2. 2016.12.10 13:23

    비밀댓글입니다

  3. 2016.12.31 23:11

    비밀댓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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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부터 내가 쓰는 메일이나 트위터, 페이스북의 아이디는 대체로 Hulot이다. 버려진 숲처럼 방치되고 있는 이 블로그의 이름도 “Cinematheque de M.Hulot”이다. 가끔 원고를 청탁하는 기자나 강의를 의뢰하는 분들에게 전화로 메일 주소의 알파벳 단어를 또박또박 불러줄 때마다 다시 환기되곤 하는 이 이름은 대체로 '훌로' 혹은 '휠롯'으로 불리곤 했다. 정확한 프랑스식 발음은 윌로이다. 시네필들은 대체로 알 테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괴상한 이름이 어디에서 왔는지 짐작하지 못한다. 물론 나 또한 그가 정확하게 어디에서 왔는지 알지 못한다. (엘르 잡지의) 에디터의 질문을 받기 전까지도 내가 왜 윌로라는 이름을 쓰기 시작했는지에 대해 깊게 생각했던 적은 없었다.

 
기억을 떠올려보면 90년대 초에 처음 비디오로 그를 만났던 것 같다. 내가 쓸데없이 본격적으로 영화에 빠져들던 때이다. <윌로씨의 휴가>라는 작품이었는데, 발랄하긴 하지만 큰 웃음을 만들기엔 재주가 없는 프랑스에서 백년에 한 번 나올까 싶은 자크 타티라는 영화감독이 1953년에 만든 작품이다. 윌로는 타티가 연기한 그의 분신이다. 영문자막이 들어간 미국판 비디오였는데, 사실 자막이 필요 없는 대사가 거의 없는 무성에 가까운 영화였다. 그 당시 나는 새벽에 두 세 편의 영화를 보는 일을 의식처럼 치르고 있었는데, 불안한 정신을 추스르려 했기 때문이다. 무언가를 해야 했고 할 일을 찾아야만 하는 낮의 일들은 대체로 피곤했고, 때마침 누나가 구입한 비디오플레이어 덕분에 밤에는 눈을 뜨고 꿈을 꿀 수 있었다. 닥치는 대로 영화를 봤지만, 코미디와 뮤지컬이 새벽의 주요 목록이었다. 내 앞의 미래에 별 흥미를 느끼지 못했던 계획 없는 삶에 그래도 가급적 진지한 영화는 새벽에는 피했던 탓이다. 그때 헤매었던 비디오 무덤사이로 윌로라는 아저씨가 나타났다. 어릴적 이끌렸던 배우들의 목록은 많았지만 성인이 되어 무심하게 매혹을 느낀 첫 아저씨였다. 

 

그는 시동이 종종 꺼지고 소리만 요란한 20년대산 구식 아밀카를 몰고 남들처럼 바캉스를 떠나는 평범한 아저씨로 나타났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남들처럼'이다. 그는 외톨이지만 그렇다고 채플린처럼 고집스럽게 자기 길을 떠나는 방랑자는 아니다. 해변을 찾는다고 여자를 꼬드기거나 낭만을 즐기는 식의 그 흔한 동기도 없다. 반겨줄 친구나 함께 시간을 보낼 애인도 없다. 남들처럼 그도 휴가를 떠났을 뿐이다. 이름도 없고 약간은 격식 차린 '무슈'라는 표현이 앞에 붙거나 '나의 삼촌' 같은 식의(그 다음의 영화제목이기도 하다), 아이가 누군가에게 말할 때 호명되는 식으로 등장한다. 사실 그는 언제나 타자의 눈과 말을 빌려 존재성을 얻은 그림자와도 같은 존재이다. 내면의 실체가 불분명한 존재. 한 여름 바캉스에 그가 처음 등장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바캉스의 '바쿰'이라는 어원의 의미가 그러하듯, 그는 텅 빈 존재이다.

 

윌로는 불평 없는 과묵한 아이이거나 철없는 어른이다. 여기에 축복과 고독이 교차한다. 아이들은 어른의 손에 이끌려 바닷가로 놀러왔지만 휴가가 끝나면 다시 부모의 손에 강제로 학교나 집으로 되돌아가야만 한다. 바캉스에서 탄생한 월로는 되돌아갈 곳이 없다. 그가 떠났던 곳이 없기 때문이다. 윌로는 매일 바캉스를 떠나거나 즐기는 축복받은 아이이자 아직도 바캉스가 여전히 끝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며 여전히 해변에 머물러 있는 미련한 어른이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그는 모두가 떠난 해변에서 휴가가 끝났다는 사실을 모른 채 계속 머물러 있다. 내가 그에게 속절없이 매혹됐던 이유다. 내 젊음의 축제는 끝나가고 있었지만, 나는 어디로 가야할지 모른 채 머뭇거리고 있었다. 그에게서 나는 어둡지만 위안을 얻을 그림자를 보았던 것이다. 얼마 후 내가 발을 들이게 된 영화라는 세계는 휴가철의 해변처럼 축제가 벌어지는 곳이 됐지만, 나는 축제가 끝난 해변에 있는 윌로처럼 오래된 극장에 앉아 있다. 염원하던 일이기도 했다. 윌로는 내가 매혹에 빠진 그림자, 나의 영무자影武者이기 때문이다.  / 김성욱(영화평론가, 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램디렉터)

 

* 엘르 잡지 에디터가 '내가 매혹된 대상'에 대한 글을 써달라고 한 것에, 썼던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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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뤽 고다르는 여성의 누드를 자주 영화에 담아냈다. 여인의 벌거벗은 몸이 매혹적으로 보일 때도 있지만, 그렇다고 에로틱한 응시의 대상이거나 이야기의 특권적인 순간을 표지하지는 않는다. 여성의 몸에 남성이 에로틱한 환상을 품는 경우도 거의 없다. 60년대 고다르에게 여성의 누드는 ‘매춘’이란 주제와 연결되곤 했었다. 이때 여성의 몸은 돈과 교환되어 상품처럼 양도되는 소비사회의 현실을 직시하게 한다. 냉정한 자본주의 교환에서 포르노그래픽한 환상이란 있을 리가 없다. 상품가치에 몰두하는 이들에게 향락에의 몰입이란 끊임없이 비켜가기 마련이다. <그녀의 삶을 살다>에서 여성의 몸은 도리어 욕망을 얼어붙게 한다. 그 빈자리에 <알파빌>에서처럼 사랑의 언어가 들어설 때도 있다. 정열도 부족하고, 관능적이지도, 도발적이지도 않은 즉물적인 몸의 노출은 <할 수 있는 자가 구하라>에서도 엿보이는데, 여기서 여성이 셔츠를 들어올려 가슴을 드러내는 것은 에로티시즘과는 하등 상관없는 가혹한 노동의 몸짓이다. 그럼에도 왜 포르노그래픽한 이미지가 그의 영화에 자주 등장하는 것일까. 섹스가 영화의 한계로 남아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럴 경우 영화에서 섹스의 표현은 정말로 포르노그래피로 한정될 것이고, 섹스는 평범한 영화가 다루어야 할 인간 삶의 모든 영역에서 터부시되고 봐서는 안 될 제한구역으로 향하게 될 것이다.

최근, 몇 편의 영화들에 내려진 제한상영가 등급판정이 논란이 되고 있다. 서울아트시네마 또한 2006년 <숏버스>의 상영으로 곤혹을 치러야만 했었다. 등급을 받지 않은 영화, 혹은 제한상영가를 받은 영화들의 상영에 제약이 있기 때문이다. 이 문제는 이미 2008년 서울독립영화제에서 열린 ‘감각의 독립’과 관련한 특별전에서도 중요하게 제기했었다.  최근의 상황은 여전히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채 거대한 불씨로 남아있다는 것을 느끼게 한다. 도리어 더 가혹한 경우가 발생하고 있다. 이번 “시네바캉스 서울”의 포럼섹션에서는 그리하여 이 주제를 다시 한 번 말하려 한다. 예술영화관의 관계자들, 법조인들, 영화인들과 함께 제한상영이란 등급 때문에 예술영화관에서조차 일부 영화들이 상영 불가한 것을 문제 삼으려 한다. 제한상영가 영화나 등급을 받지 않은 영화들의 상영이 예술영화관에서 허용되어야 한다고 제안할 생각이다. 섹스는 우리 삶의 일부이고, 삶의 모든 것은 또한 영화가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김성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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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관객 2014.08.10 23:52 신고

    부탁드리고 싶은 것이 있어 여기에 글 남깁니다. 아트시네마에서 영화 상영 후 영화 해설도 가끔 하시는데, 그 내용을 여기에 올려주시면 안 될까요? 귀찮은 부탁이 될 수 있겠으나 아무래도 한 번 설명해 주시는 것으로 관객이 다 알아 듣기는 힘든 것 같아요. 이 블로그에서 올려 주신 글을 다시 읽어보면 더 많은 참고도 되고, 질문을 남길 수도 있고 해서 좋을 거 같은데요.^^ 그럼 올려주시길 기대하며, 끝으로 친절한 영화 해설 감사드려요~~:)

    • Hulot 2014.08.28 23:58 신고

      가능하면 그럴려고 하는데 말로 하는것과 글은 또 달라서 쉽게 올리지는 못하고 있네요. 정리될때마도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야스미 아흐마드의 <묵신>

 

말레이시아 영화계의 ‘대모’라 불린 야스민 아흐마드는 단 6편의 청춘송가와도 같은 보석 같은 작품을 남기고 2009년, 51세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그 이후 그녀의 영화를 다시 보는 일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2010년에 서울아트시네마에서는 ‘우리 시대의 아시아 영화 특별전’에서 그녀의 유작인 <탈렌타임>(2009)을 상영했었다. 말레이시아의 한 고등학교에서 벌어지는 학예회를 무대로 벌어지는 청춘들의 사랑 이야기인데, 아무도 없는 교실에 빛이 들어오고 하나씩 불이 꺼지면서 모든 것이 사라져가는 명멸하는 빛과 시간의 무상함으로 가득한 작품이다.

 

야스민 아흐마드의 영화는 주로 민족이나 종교의 차이를 넘은 연애를 드라마의 소재로 다뤘는데 <묵신>도 그런 이야기의 연장선상에 놓인 작품이다. <묵신>은 오키드라는 소녀의 여러 생애를 다룬 ‘오키드 4부작’의 마지막을 이루는 작품이다. 이 4부작의 시간 순서는 제작 순서와는 다른데, <묵신>은 4부작의 대미를 장식하지만 극 중 이야기의 시간으로는 가장 빠른 유년기의 사랑을 그린다(가령, 극 중의 시간축은 <묵신>(2006), <가는 눈>(2004), <라분>(2003), <그부라>(2005)로 이어진다).

 

 

 

이 영화에는 우정과 사랑의 틈새에서 흔들리는 유년기의 감정의 혼란, 소녀 시대의 첫사랑을 그려내는 감상적인 필치가 모든 평범한 장면들에 묻어 있어 세심한 관찰을 요한다. 아니 관찰이랄 것도 없이 자연스럽게 우리의 눈길이 장면의 구석구석에 스며들 만큼 사랑스럽다. 야스민 아흐마드는 사이좋게 지내던 친구에게 어느 날 사랑의 감정을 느끼게 될 때 그들에게 어떤 일이 발생하는지를 그리고 싶었다고 한다. 그 아름다움이 90분 동안의 상영시간 동안 지속된다. 무엇보다 소녀에게 갑자기 발생하는 운명의 만남, 사랑의 순간을 지켜보는 매혹이 있다. 갑자기 모든 평범한 일상들이 아름다운 순간으로 변모하는 것이다. 빗속의 춤, 평범한 축구 경기, 벌판에서의 연날리기, 그리고 자전거를 함께 타는 순간들이 모여 작은 우주를 형성한다. 이렇듯 이 영화는 우리에게 지나가 버린 작은 것들의 경험에서 소중한 시간들을 되찾게 한다. 무대가 되는 말레이시아의 다민족적, 다문화적 양상이 다양한 사람들의 가치관의 충돌, 계층적 차이, 언어적 차이(가령, 오키드는 영국 유학의 경험을 지닌 어머니 아래서 영어로 이야기를 하고 중국어를 습득하기 위해 중국계 학교를 다닌다)로 부각되지만, 그리 심각한 편은 아니다. 영화는 이러한 모순과 갈등보다는 유년기의 첫사랑이라는 테마에 보다 집중하기 때문이다. 각각의 현실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감독의 상냥한 눈길이 느껴지는 아름다운 작품이기에, 설명은 그 다음의 일이다.

 

 

김성욱 | 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램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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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많이 보았던  작가, 브라이언 팔마

 

브라이언 팔마의 영화를 자극적인 불량식품 같은, 정상성의 궤도에서 벗어난 독특한 취향의 작품으로 취급하는 것은 틀린 말은 아닐 테지만 수정되어야 전적인 오해에서 비롯된 생각이다. 가령 60년대 아메리칸 시네마의 정신에 기대어 말하자면, 조금은 삐뚤어진 방식처럼 보이긴 하지만 현재 팔마보다 직접적인 계승자를 찾기란 쉽지 않다. 그는 비뚤어진 것이 아니라 도리어 변모의 윤리를 지켜왔기에 희귀하게 생존한 아메리칸 시네마의 작가로 남았다.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조지 루카스, 마틴 스콜세지, 스티븐 스필버그 같은 감독들이 지금 보여주는 작업들을 팔마의 근작인 <리댁티드> <팜므 파탈> 같은 영화와 비교해 보면 차이를 느낄 있다. 팔마는 흥행에 성공한 작품을 제외하자면(가령, <언터처블>, <미션 임파서블>) 상품으로 제대로 팔리거나 예술적 매버릭으로 이해되는 작가는 아니었다. 종종 그는 아메리칸 시네마의 낭만적 영혼의 계승자로 찬미되었지만 쓸데없는 영화들에 재능을 낭비한 작가로 치부되기도 한다. 여성의 재현과 관련한 오래된 논란도 여전히 풀어야 문제로 남아 있다. 이런 문제들을 단번에 수정하기란 어려운 일이지만 이번  기회에 그의 초기작을 주의 깊게 보았으면 한다. 이를테면 <하이 !> 경우가 그렇다(아쉽게도 이번 상영작에서 누락되었지만 <디오니소스 69> <그리팅스> 같은 계열에서 생각해야 한다).

 

팔마는 60년대 실험적이고 정치적인 영화의 급진적 경향에서 빠져나오면서 70년대에 다른 시네마의 작가들과 다른 노선을 밟아나갔다. 선택의 교차로가 있었다. 하나는 상업적 시스템의 영화로 들어가는 것이다. 다른 경로는 언더그라운드 세계로 향하는 것이다. 팔마는 스콜세지와 코폴라처럼 장르영화 제작을 실용적 수단으로 채택했지만, 이를 개작하고 실험하는 전복의 장기 전략으로 활용했다. 여기에 B영화와 히치콕의 서브코드를 동력으로 장착한다. 코폴라와 스콜세지가 고전 할리우드 영화에 모던한 영화 스타일을 결합해 품격의 고급스러운 길로 향했다면, 팔마는 B 호러, 포르노그래피 등의 한계적인 영화들을 섞어 낮은 길로 향한다. 길은 물론 많이, 다르게 보면서 하위의 역량을 이미지의 에너지로 끌어오는 효과적인 수단이 되었다.


 

 

 

그는 너무 많이 보려 아메리칸 시네마의 작가다. <캐리> <퓨리>에서 소년과 소녀가 몬스터가 되는 것은 6-70년대에 너무 끔찍한 것들을( 대부분은 전쟁과 폭력, 암살 등이다) 많이 보았기 때문이다. 때문에 그들은 비전의 희생자가 되었다. <드레스드 >에서의 살인과 광학적 장치들, <필사의 추적>에서의 시각적 도청, <스네이크 아이즈> <미션 임파서블> 하이테크 비전들, 그리고 <팜므파탈> 눈에 대한 공격까지. 그리고 최근작인 <리댁티드>에서의 멀티플 스크린까지, 팔마의 비전은 실로 다양하고 넓게 확장되었다. <리댁티드> 다루는 이라크 전쟁의 참상은  복수의 스크린들이 서로 전투를 벌이는 양상이다. 영화에서 60년대 베트남에서 벌어졌던 일을 다시 떠올리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다시 되돌아가는 1960년대의 아메리카.  미국(영화) 꿈과 실패에서 기원한 모든 것들이 여전히 그의 영화에서 잔존하는 것들이다. 그는 영화의 변혁이 실패로 끝난 이후를 살아간 끈질긴 작가다.  

 

아메리칸 고다르 브라이언 팔마의 <하이 >

 

 

 

팔마를 히치콕의 적자로 이해하는 이들은 아마도 그의 60년대 초기작들을 보면 의아해 것이다. <그리팅스>, <하이 !>, 그리고 <디오니소스 69> 같은 작품들은 히치콕보다는 거의 고다르의 <주말>이나 <남성, 여성> 같은 작품들의 영향 아래 있는 일종의 언더그라운드 영화이기 때문이다. 60년대에 고다르의 세례를 조금이라도 받지 않은 작가란 없을 테지만, 할리우드에서 이런 과격한 시도를 대놓고 작가는 찾기 쉽지 않다. 60년대 후반, 고다르의 영화가 베트남, 반전, 미제국주의, 맑스, 계급투쟁, 마오주의 등의 용어들을 떠올리게 했다면, 모든 것은 마찬가지로 팔마의 영화에도 적용되는 것이다. JFK 암살과 베트남 전쟁을 거친 팔마는 아메리칸 고다르를 꿈꿨던 것이다.  <하이 !> 모든 것의 예증이다.  

 

 

 

<하이 !> 서두는 핸드헬드 카메라로 남자의 일인칭 시점을 따라 움직이는 장면에서 시작한다. 주관적인 카메라의 활용은 관객들이 주인공과 동일화되도록 만드는데, 마침 남자는 건너편 아파트의 거주자들을 몰래 8미리 카메라로 촬영하는 영화를 제작 중에 있다. 남자 주인공은 로버트 니로가 연기한다. 영화 대부분의 내용은 주인공의 특권화된 관음증적 시선을 따라가지만, 그럼에도 시점과 형식은 인물을 넘어 여러 가지로 분산된다. 가령, 그가 카메라 숍을 방문하는 순간은 16미리 카메라를 만지작거리는 여인 라라의 시점으로 중계되며, 영화의 중간 중간에는 흑인운동을 알리는 텔레비전 다큐멘터리의 화면이 삽입되어 있다. 팔마는 고다르가 <남성, 여성> 같은 작품에서 했던 것처럼 시네마 베리테의 관습을 빌려와 다큐멘터리적 진실이 영화의 테크닉과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음을 자기반영적으로 보여준다. 크게 보자면 영화는 가지 구성 부분으로 나뉜다. 첫째가 백인 중산계급의 아파트에서 일상을 보여주는주부 다이어리이다. 고다르가 중산층의 일상을 르포르타주처럼 파악한 <그녀에 대해 알고 싶은 두세 가지 것들> 연상된다. 번째는 시네마 베리테 스타일의 다큐멘터리로, 백인 중산계급에 대한 흑인들의 비전을 보여준다. 셋째는, 전체를 조망하는 주인공의 시선이 담긴관음증적 영화이다. 예술영화, 포르노그래피, 아방가르드 간의 경계를 가로지르면서 60년대 미국 사회를 중산계급의 외설성과 흑인의 바깥의 시선으로 포착한 급진적이면서도 진지하게 유머러스한 영화다.

 

김성욱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램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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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16일부터 중앙대 '자유인문 캠프'에서 재난을 접하는 간객[구경꾼]의 책임과 관련한 강의를 합니다. 주로 21세기의 '윤리적 전환 이후의 재난영화들의 표상과 이러한 영화들을 보는 우리들의 위치와 태도, 시각성의 윤리와 관련된 문제들을 다룹니다.

 

 

 

 

영화-간객看客의 책임 [김성욱]

 

이 강의는 21세기 영화의 윤리적 전환의 문제를 생각해보려 한다. 이는 21세기의 재난과 재앙, 테러의 끔찍함이 영화감독으로 하여금 표상의 더 적절하고 책임성 있는 형식을 탐구하도록 독려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고 해도 어떠한 윤리적 우선권이 미학적 선택을 특징짓게 한 것인지, 혹은 윤리적 중요성이 미학적 관심보다 더 우선시 되어야 하는지, 혹은 이 둘이 분리 가능한 것인지는 여전히 논쟁적이다. 더 나아가, 영화경험, 장치, 제도의 어디에 윤리적 의미가 놓여 있는지, 혹은 이미지와 관객의 관계에서 윤리적 문제가 출현하는 것인지, 어떤 종류의 책임이 보는 자들에게 의무처럼 제기되는지를 생각해봐야 한다. 이번 강의에서는 21세기에 나온 다큐멘터리와 픽션을 살펴보면서 구경꾼(간객)의 책임성의 문제를 생각해보려 한다.

 


[강의 일정]

     일시 : 2014 7 16() ~ 8 20() 매주 수요일 오후 7~9(2시간) [ 6]

     장소 : 중앙대학교 파이퍼홀(103동) 304호 강의실

     수강정원 : 60명 

     수강료 : 48,000


1

7 16()

재난의 표상

2

7 23()

스크린들의 전투

3

7 30()

증언의 불가능성

4

8 6()

구제의 한계

5

8 13()

[발표토론] 한국영화-윤리적 전환?

6

8 20()

간객看客의 책임



[참고도서] 

자크 랑시에르, 미학 안의 불편함, 인간사랑  

슬라보예 지젝, 폭력이란 무엇인가, 난장이 

조르조 아감벤, 아우슈비츠의 남은 자들, 새물결 

수전 손택, 사진에 관하여, 이후 ,

               『타인의 고통, 이후 

 

자유인문캠프

http://cafe.naver.com/univfree/3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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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개굴개굴왕 2014.08.04 17:34 신고

    안녕하세요. 블로그 내용이 좋아서♡ 블로그모음 서비스인 블로그앤미(http://blogand.me) 에 등록했습니다. 원하지 않으시면 삭제하겠습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

 

 

영화는 아이들에게 너무 일찍 세상의 모든 것들이 이내 사라질거라는 걸 느끼게한다. 그런 아이들은 극장에서 너무 일찍 조숙해지고 사회에선 미숙한 상태로 남게된다. 연애 경험 이전에 헤어짐을 알아버리게 했던 우리 어린 시절의 영화들...

 

 

체코 영화제가 끝난 다음주엔 '필름 아카이브 특별전'을 개최한다. 35미리 필름으로 고전명작을 극장에서 볼 기회다. 이런 雨期엔 지난해 개봉 50주년을 맞았던 자크 드미의 '쉘부르의 우산'을 보는 것도 제법 어울릴 듯. 어릴적 이 영화를 보며 연애란걸 하기전부터 헤어짐을 알아버린 것 같았다. "당신이 떠나면 난 죽어버릴줄 알았는데..."

 

어릴적 텔레비전에서 처음 본 이래로 대부분의 장면을 이상할 정도로 정확하게 기억하는 영화들이 있다. 거의 처음부터 끝까지의 장면이 생생한 경우. 물론 그 기억들이 맞는 것인지를 가늠할 기회를 갖지 않았던, 혹은 그 이후로 두번다시 보지 않았던 영화들이 꽤 있는 편이다. 르네 클레망의 '금지된 장난'이 그 중의 하나. 특히나 곱슬머리 꼬마가 미쉘을 부르며 뛰어가던 라스트를 마치 극장에서 혼자 본것처럼 착각한다. '필름 아카이브 특별전'에서 '금지된 장난'을 다시 볼 기회. 예전 공개제목은 '금지된 작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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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의 다지원에서 자크 랑시에르의 영화론에 대해 강의를 한다. 랑시에르의 '영화우화'를 중심으로, 영화와 관련한 논의에 집중해 작품들, 작가들과 관련해 이야기를 할 생각이다. 간략한 내용은 아래와 같다.

 

 

 

자크 랑시에르의 영화우화

 

개강 2014년 6월 30일부터 매주 월요일 저녁 7시30분 

강사: 김성욱 

 

  
강좌취지
질 들뢰즈 이후 영화에 관한 가장 흥미로운 철학적 논의를 전개하는 이는 단연 자크 랑시에르이다. 랑시에르에게 영화는 정치학, 미학이 다툼을 벌이는 투기장이자 주요한 비평적 장소이다. 그가 ‘우화’라는 표현으로 영화를 분석하는 것은 이론의 구축보다는 영화의 상이한 감각적 체제를 사고하고 영화 내부의 고유한 긴장을 읽어나가기 위함이다. 가시성의 우화들에서 시작해, 서사, 영화적 모더니티, 정치학과 관련한 문제들을 작가들의 작품을 중심으로 살펴본다.

1강 이미지의 운명
2강 새로운 예술체제
3강 내러티브와 가시성의 우화
4강 몽타주와 순수한 이미지
5강 물질적 사유
6강 영화와 정치적인 것
7강 재현불가능한 것이 있는가?
8강 미학의 정치학
  
참고문헌
자크 랑시에르 『영화우화』, 『이미지의 운명』

 

http://daziwon.net/third_2014/1338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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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배의 공허한 영광

- 마노엘 데 올리베이라, 빅토르 에리세, 아키 카우리스마키, 페드로 코스타의 <센트로 히스토리코>(2012)






포르투갈의 북서부에 자리한 구시가지 기마랑이스 지구는 포르투갈의 발상지라 불리는 최초의 수도이다. 2012, EU는 이 지구를 유럽 문화수도로 지정했고 1년간 집중적으로 다양한 문화행사가 열렸다. <센트로 히스토리코>(2012)는 이 문화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기획되어 제작됐다. 감독들에게 던져진 질문은 이러했다. 1143년 포르투갈 왕국이 성립된 후 800년 이상의 역사를 지닌 이 거리에서 어떤 이야기가 성립할 수 있을까? 이 물음에 따라 유럽의 영화계를 대표한 네 명의 감독이 제작에 참여했다. 북유럽 핀란드 출신이면서 포르투갈에 거주하는 아키 카우리스마키, 스페인의 빅토르 에리세, 그리고 포르투갈을 대표해 페드로 코스타, 마노엘 데 올리베이라가 참여했다.


카우리스마키의 <식당 주인>은 기마랑이스 거리의 한 식당 주인의 하루를 보여주는 이야기다. 언제나 그러하듯 카우리스마키는 과묵하게 개인과 사회의 관계를 그린다. 언뜻 <어둠은 걷히고>의 식당이 떠오르는데, 그 영화에서는 비즈니스의 정글의 법칙에서도 오래된 고객과 가게의 일원들 간의 연대감이 돋보였다. 이 영화에서는 그런 관계가 느껴지지 않는다. 관계는 절연됐고 정서적 차가움이 더하다. 그의 가게에는 종일 손님의 발길이 드물다. 가게를 닫고 저녁에 댄스클럽에서 춤을 함께했던 여인에게 그는 마음을 전하려 하는데 그녀가 기혼임을 알게 되고는 혼자 집으로 돌아온다. 손에 들고 있던 붉은 카네이션이 거리에 버려진다. 라디오로 들리는 소리들은 2012EU의 전례가 없는 헝가리에 대한 경제 제제조치의 내용들이다. EU는 당시 재정적 감축을 이행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헝가리에 경제 제재조치를 취했었다. 간혹 축구경기의 중계방송 소리도 들려온다. 이 고독한 정서에 다른 기운을 불러오는 것은 파두의 노래다. 블루의 컬러 또한 여전하다. 영화의 마지막에 이 남자는 그럼에도 길거리의 고양이를 위해 문 앞에 우유접시를 놓는다. 이 단순한 행동이 묵묵히 마음을 움직이게 한다. 물론 그가 낮에 식당에서 준비한 어부를 위한 스프에 사람들의 발길이 없었던 것처럼 고양이 또한 등장하지는 않는다. 남은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다림이다. 이 막연한 기다림이 마음을 울린다.





빅토르 에리세의 <깨어진 창문>은 기마랑이스에서 조금 떨어진 방치된 옛 방직 공장을 무대로 과거의 기억들을 소환하는 영화다. 일찍이 이 공장에 근무했던 평범한 아저씨, 아주머니들이 한 명씩 옛 공장의 식당을 배경으로 과거 그들이 겪었던 이야기를 들려준다. 1845년에 창업한 이 공장은 1990년에 경영위기로 2002년에 문을 닫았다. 들려주는 이야기는 그들의 소중한 추억이자 고된 노동의 괴로운 경험들이다. 14세에 일을 시작했던 한 여성은 기계의 소음 때문에 고막 이식 수술을 했는데, 이제 56세라며 인생이 끝났다고 토로한다. 영화 마지막에 한 남자가 아버지의 일을 회상하면서 아코디언을 연주하는데 그 곡에 맞추어 식당 벽에 걸린 거대한 크기의 사진에 보이는 무수한 익명의 사람들의 얼굴이 화면을 장식한다. ‘포르투갈에서의 영화를 위한 테스트라는 작은 제목이 영화의 시작 부분에 나오지만 평범할 수도 있는 장면이 말할 수 없을 만큼의 감정을 불어오는 이 작품을 에리세의 가벼운 습작으로 치부할 수는 없을 것이다.





마노엘 데 올리베이라의 <정복된 정복자>는 기마랑이스 지구에 오는 외국인 관광객들을 담은 가장 짧은 단편이다. 기마랑이스 지구의 거리와 광장, 엔리케스 아퐁수의 동상과 그곳을 관광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교차해 보여주는 장면이 영화의 전체를 이룬다. 정복자의 동상을 올려다보는 쇼트에 모든 관광객들이 카메라의 셔터를 누르는 모습을 대조시키는 장면이 인상적이다. 페드로 코스타의 <스위트 엑소시스트>는 그 자체만으로는 기마랑이스 지구와는 별 상관이 없어 보이는 영화다. 그는 기마랑이스라는 주제로 얼마나 기마랑이스라는 특정한 지구에서 멀리 떨어져 포르투갈의 역사를 보여줄 수 있는지를 시험한 듯하다. 코스타는 대신 1974년 포르투갈의 독재정권에 대항해 젊은 장교들이 궐기한 카네이션 혁명에 대해 말한다. 식민지 카보베르데의 이민자 출신인 벤투라가 이번에도 주인공이다. 그는 이 쿠테타에 참가했다 숲속에서 의식을 잃어 병원에 입원한다. 병원의 엘리베이터에서 그는 청동의 페인트로 칠한 (사람인지 역사의 유령인지, 혹은 기념비적인 조각인지 모를)병사와 만나 이야기를 나눈다. 지난해 서울아트시네마를 방문했던 코스타는 74년의 카네이션 혁명의 체험이 벤투라와 같은 이민자들에게는 아프리카로 송환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갖게 했다고 말했었다. 혁명에의 체험이 달랐던 것이다. 이 영화는 그런 역사적 순간에 대한 서로 다른 기억, 감정, 역사, 특별히 제목처럼 공포의 체험을 전한다. 영화의 제목 스위트 엑소시스트1974년에 발매된 커티스 메이필드의 앨범에서 따온 것이다.






김성욱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램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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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마 노보를 넘어서

- 카를로스 디에게스의 <바이 바이 브라질>

 

 


 

 

카를로스 디에게스는 브라질의 신영화를 의미하는 60년대 '시네마 노보'의 대표적인 작가이자 가장 대중적인 감독이지만 아직 한국에서는 제대로 소개될 기회가 없었다. 2006-2007년에 브라질 영화의 최근작들과 과거의 작품을 소개하는 브라질 영화제를 개최하긴 했지만, 그때에 이 작가를 소개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일단 작품을 구하기 어려웠다. 그때의 특별전은 주로 60년대 브라질 영화를 대표했던 시네마 노보를 소개하는 행사로, 안셀무 두아르테의 <산타 바바라의 맹세>(1962), 넬슨 뻬레이라 도스 산토스의 <황폐한 삶>(1963)<사랑의 갈구>(1968), 글라우버 로샤의 <검은 신, 하얀 약마>(1964)<고뇌하는 땅>(1967), 로게리오 칸젤라의 <레드 라이트 밴디트>, 조아킹 페드로 데 안드라데의 <마꾸나이마>(1969) 등의 작품을 상영했다. 그러니 이번 특별전에서 처음으로 그의 작품과 만날 기회다. 원래 그의 대표작 중의 하나인 <오르페>(1999) 또한 상영할 계획이었지만, 아쉽게도 기회가 보장되지 못했다.

 

 

 

아직 우리들에게 낯선 디에게스의 영화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브라질 영화의 역사를 간략하게 살펴보는 것이 도움이 될 것이다. 사실 브라질 영화는 꽤 오랜 역사를 갖고 있는데, 이미 1930년대 이래로 베라 크루즈 스튜디오의 영화들이 양산되고 있었고 칸영화제에서 수상하는 등, 일찍부터 서구 영화계에 강한 인상을 주고 있었다. 물론, 브라질 영화가 하나의 국민적 영화로 세계에 알려지게 된 것은 1950년대 이후의 일이다. 1950년대 쿠바 혁명의 성공은 라틴 아메리카 대부분의 지역에서 탈식민을 부르짖는 민족주의, 민중주의 문화운동을 불러와 브라질에서도 새로운 영화를 주창하는 시네마 노보의 흐름을 낳게 되었다. 당시 글라우버 로샤는 이 새로운 브라질 영화를 빈곤의 미학이라 말했다. 굶주리는 자들에게 폭력은 일상적이며, 폭력의 순간은 식민지 개척자들이 식민지인들의 존재를 알게 되는 순간을 드러낸다는 게 그의 주장이었다. ‘시네마 노보운동은 아르헨티나의 페르난도 솔라나스 등이 주창한 3영화론과 더불어 제3세계 민족해방 문화운동은 물론이고 당시 자본주의적 영화를 돌파하는 새로운 시도를 벌였던 장 뤽 고다르를 비롯해 혁명적 영화와 영화의 혁명을 창작으로 실천하려던 서구 작가들에게 깊은 영향을 주었다.

 

이 시기 새로운 브라질 영화의 선구자는 단연 도스 산토스 감독이었다. 그는 1955년에 만든 <리오 40>1963년작 <황폐한 삶>으로 브라질 영화의 신경향을 주도했다. <리오 40>에서 그는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즈와 같은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고 하는데, 즉 많은 등장인물이 등장해 그들이 리오에서 하루를 살아가는 모습을 모자이크처럼 그려내는 것이다. 이런 새로운 작법의 시도는 그가 파리 유학 중에 시네마테크 프랑세즈에서 동시대 새로운 영화들과 접했던 경험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는 시네마테크에서 많은 영화들을 보았는데, 특히 비스콘티와 로셀리니 등의 이탈리아 네오리얼리즘 영화들에 깊은 감흥을 받았다고 한다. 또한, 이전 뮤지컬 영화들에서의 조감독 경험이 그의 영화에 브라질만의 독특한 카니발을 가미한 다양한 요소가 혼재된 영화를 낳게 했다. 흥미로운 사실은 그의 작품이 시네마 노보의 젊은 주역들과 관계를 맺고 있다는 것이다. <리오 40>는 공개 당시 브라질에서 상영이 금지되어 브라질 전역의 시네클럽에서 영화를 상영하는 운동이 발생했는데, 그때 시네클럽에는 글라우버 로샤, 카를로스 디에게스 등, 후일 시네마 노보의 주역이 되는 젊은이들이 참여했다. 도스 산토스 감독은 그들과 이야기를 나누었고, 이러한 관계가 시네마 노보의 도화선이 되었다고 한다.

 




저예산 제작과 기술적 수준의 저열함에도 불구하고 시네마 노보는 창조의 자유로움과 연결된 젊음의 영화로 참여적인 영화이자 비평적인 영화였다. 글라우버 로샤와 카를로스 디에게스 같은 젊은 감독들은 당시 서유럽의 작가주의를 받아들여 상업적인 영화와의 차별을 시도했다. 글라우버 로샤는 대중영화가 집단적인 담론을 선호한다면, 시네마 노보는 더 개인적인 표현의 형식을 갖고 있으며, 상업영화가 관습적이라면 작가영화는 혁명적이라 말했다. 카를로스 디에게스 또한 시네마 노보가 브라질에서 새로운 영화를 창조한 동일한 세대의 집단으로 시작했다며, 이 집단의 통일성이 브라질에서 브라질적인 영화를 만드는 것, 비평적 비전을 지닌 영화를 만드는 것이라 말했다. 중요한 것은 브라질의 현실을 사회적 형식만이 아닌 정신적이고 문화적인 형식으로 이해하는 시도였다. 1964년에 군부 쿠테타가 돌발하면서 이후 군사정권의 통치와 검열에 맞서 브라질 고유의 민중문화를 강조하는 시네마 노보의 변형이 발생하는데, 이는 정치적으로는 권위주의에 대항하면서 영화적으로는 픽션, 다큐멘터리에 상관없이 할리우드 영화의 완성적인 웰메이드를 거부하며 한계적인 상황에서 열대주의카니발리즘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것이다. 열대주의, 혹은 카니발리즘은 지식인 중심의 영화에서 진정으로 문화적으로, 대중적으로 영화를 제작하려는 기획에서 나왔다. 군사정권의 견고한 검열을 피하기 위해 정치적인 문제를 간접적으로, 종종 알레고리적으로 사용해 표현할 필요가 있었다. 다른 한편 정치적 억압에 대한 예술적 반응으로서 카니발리즘은 그로테스크, 악취미, 키치 등을 강조하면서 부르주아 사회의 위계와 계급, 성차를 과격하게 전복하고 공식적인 문화적 삶의 규칙과 제한에서 탈피하는 신선한 시도를 보여주었다. 가령, 조아킹 페드로 데 안드라데의 <마꾸나이마>(1969)는 열대림과 도시의 대조로 현대화된 브라질 경제, 브라질의 전통과 식민화의 대립과 긴장을 표현한다. 이는 브라질 경제가 1964년 이후에 세계자본주의 체제에 통합되는 시기를 표현하고 있다. 감독은 브라질의 사회적, 정치적, 경제적 관계를 빈곤과 저발전을 통해 그들의 국민을 게걸스럽게 먹어치우는 카니발리즘을 통해 표현한다. 이는 국제자본주의 세계 체제에 의해 저발전의 브라질이 착취당하고 있음을 간접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다른 뉴시네마 운동들이 그러하듯 브라질의 시네마 노보 또한 사회의 변화와 더불어 제작의 변형을 거치게 되는데, 그중 카를로스 디에게스의 영화는 빈곤의 미학을 넘어서 보다 대중적인 영화를 만드는 새로운 경향의 한 사례를 보여준다. <바이 바이 브라질>(1979)은 그런 변형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작품이다. 이 영화는 일종의 로드무비로, ‘카라바나 홀리데이Caravana Rolidei’(발음상 영어인 휴일holiday과 유사하다)라는 유랑극단이 브라질 전역을 돌아다니는 이야기다. 엉터리 마술사, 펠리니의 <>의 잠파노를 연상케 하는 차력사, 매혹적인 룸바의 여인, 그리고 새롭게 합류한 아코디언 연주자 젊은 부부가 있다. 이들은 불모의 북동부 지역에서(피라냐, 마세이오) 아마존의 숲을 가로질러(알타미라, 아마존 고속도로), 그리고 브라질고원 중앙부(브라질리아, 론도니아) 등의 브라질 전역을 돌아다닌다. 로드무비란 일종의 흔적 탐사의 장르이다. 이 영화 역시 유랑을 통해 브라질의 현대화, 식민화, 미국화의 경향의 흔적을 탐사한다(그 과정에서 젊은 부부와 유랑극단의 여인과의 복잡한 연애 사건이 전개된다). 우리가 확인하는 것은 브라질이 다국적화의 여파로 어떤 상황에 놓여있는가이다. 브라질의 밀림지역 또한 개발의 광풍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동물들의 살육, 원주민들의 물리적 절멸과 문화적 붕괴들과 마주한다. 원주민들의 공동체는 파괴되었고 그들은 이제 라디오를 듣고 있다.

 




이 영화는 그런 점에서 이중적인 의미에서 브라질과 작별한다(영화의 제목에 있는 ‘bye bye’가 함의하는 바이다). 유랑극단은 오래된 브라질의 전통문화와 연결되어 있는데, 무엇보다 60년대 저발전의 시기에 시네마 노보가 추구한 민중의 유토피아를 떠올리게 한다. 유랑극단의 마술사는 가령 꿈은 단지 꿈을 꾸지 않은 사람들에게만 거스르는 것이라며 자신이 모든 브라질 사람들의 꿈을 실현시킬 수 있다고 (거짓)말한다. 그런데 이 꿈은 이제 변형 중에 있다. 그는 마을에 눈을 내리게 할 수 있다면서 실제로는 버젓이 코코넛 가루를 사람들에게 뿌린다. 그러면서 그는 스위스나 독일, 프랑스 같은 문명화된 전 세계 나라들의 사람들처럼 브라질 사람들도 눈을 가질 수 있게 됐다고 너스레를 떤다. 가장 미국적이라 할 수 있는 화이트 크리스마스노래와 함께. 마법은 그러므로 단순한 판타지가 아니라 글로벌한 미국화의 한 단면처럼 보인다. 물론 아이러니한 상황도 있다. 유랑극단의 단장은 가난한 사람들을 불러 모아 플래시로 불을 비추면서 자신이 텔레파시로 죽은 자들을 볼 수 있다고 (거짓)말한다. 텔레파시라는 특권화된 정신의 소통방식을 그가 거론할 때 민중들은 그 불빛 아래서 하나 둘씩 자신의 사연을 내비친다. “이 땅은 우리의 것이 아니다. 벌써 2년간 수확을 하지 못했다. 우리는 기도도 하고, 십자가 앞에 무릎 꿇기도 했다. 비가 내려달라고 기도도 했다. 구름이 몰려오고 천둥이 치기도 했지만, 비는 내리지 않았다. 신은 그럼 어디에 있나?” 그들은 자신이 처한 비극을 토로한다. 다른 이는 잃어버린 가족을 찾을 수 있냐고 묻는다. 이 장면이 마음에 남는 것은 그들이 털어놓는 사연 때문만이 아니라 그들을 비추고 간헐적으로 드러나는 어둠에서 명멸하는 불빛 때문이다. 이 장면은 특별히 시네마라는 장치를 떠올리게 한다.

 

이와 비슷한 순간들이 영화에 몇 번 보인다. 가령, 유랑극단이 한 마을에 들려 공연을 선전할 때 사람들은 그들의 공연에는 관심이 없고 모두들 시청 앞 광장에 앉아 텔레비전 공연물을 쳐다보고 있다. 텔레비전 드라마에 빠져 있는 사람들의 모습은 미디어가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주고 있는지는 물론이고 그 텔레비전 프로그램이 미국적인 드라마라는 점에서 문화적 식민주의의 폐해를 보여준다. 리오와 상파울로의 텔레비전 프로그램은 지방의 다양한 오락거리를 위협하고 있다. 이는 작고 허름한 영화관을 운영하는 한 노인이 영화관의 사라짐에 대해 근심하는 다음 장면에서 보다 분명하게 표현된다. 그는 16미리 필름으로 사람들에게 영화를 보여주고 있다. 사람들은 거의 없고, 어린아이들만이 들어와 스크린 앞에 옹기종기 앉아 있다. 그는 사람들이 영화를 보던 좋은 시절을 떠올린다. 시네마 노보의 좋은 시절(실제로는 군사독재의 억압의 시절이었지만)을 살았던 작가의 자화상처럼 보인다.

 

제목처럼 이 영화는 브라질과 작별을 고하는 영화다. 앞서 말했듯 이는 이중적이다. 디에게스는 자본주의적인 발전의 꿈, 혹은 민중적인 저항의 꿈 둘 다와 작별을 시도한다. 시네마 노보의 카니발리즘의 시기에 아마존의 원주민들은 브라질의 정수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하지만, 이제 그들은 반식민적 저항의 대표자들이 아니다. 그렇다면 지금 브라질의 상황은 어떠한가? 민중의 문화란 무엇인가? 문화적 식민주의란 무엇인가? 예술과 대중과의 관계는 어떠해야 하는가? 문제는 여전하다. 하지만 무언가 변화해야만 한다. 사회적 모순을 드러내면서도 미래로의 낙관적인 여행을 시도하는 것. 그리하여 이 영화의 마지막에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문구를 읽게 된다. “21세기의 브라질 민중들에게.”

 

 

김성욱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램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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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noname 2014.05.04 22:25 신고

    바이 바이 브라질......!! 카를로스 디에게스의 다른 작품들과 함께 서울아트시네마에서 다시 꼭 만나고 싶습니다. ^^

아침에 메일함을 확인하다 '반디앤루니스'의 뉴스레터로 '영화보러 낙원상가 갑니다'라는 사려깊은 글을 읽었다. 글의 필자는 명기되어 있지 않은데, 서울아트시네마를 자주 찾았던 분인가보다. 책도 어려울테지만 "잘 안팔리는 책은 그래도 기다려주는 법이 있는데 영화는 그렇지 않은가봅니다"라는 말이 마음에 와 닿았다. 아키 카우리스마키의 영화를 보며 극장에서 추위에 시달렸던 기억, 만프레드 아이허가 방문했을때 서울아트시네마가 세종문화회관이라도 된것처럼 기뻤다는 글 앞에서 속절없이 미소짓게 되는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만프레드 아이허가 '서울방문시에 가장 기억에 남는곳이 어디였나'라는 질문에 낙원옥상의 서울아트시네마라고 했다는 말을 전해들었었다. 에드워드 양의 질문처럼 내가 보는 것을 다른 사람도 보고 있는지 궁금할 때가 있다. 우리는 서로 같은 것을 보고 같이 공감하고 있을까? 뉴스레터의 글은 링크를 걸 수 없는듯해서 본문을 옮겨놓았다. 반가운 목요일 오후.


[반디앤루니스] 책과사람 - 이슈와 추천도서

영화보러 낙원상가 갑니다.

정말 좋은 책인데, 잘 팔리고, 잘 나가는 책에 가려 주목을 못 받고 있다면, 저는 그 책에 더 애정을 쏟게 됩니다. 그리고 어떻게 해야 더 많은 사람이 이 책에 관심을 보일까, 방법을 고민합니다. 신간은 쏟아지는데, 시대를 잘못 태어나 빛을 보지 못한 책이 너무 많습니다. 영화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책은 웬만하면 기다려주는 성질이 있는데, 영화는 그렇지 않습니다. 서울에는 약 460개의 스크린이 있고, 대부분은 대기업의 멀티플렉스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멀티플렉스는 조금이라도 흥행에 성공하지 못할 것 같은 영화에 대한 고려가 없습니다. 정말 볼 만한 가치가 있는 영화라도 말이죠. 세상이 이렇게나 빨리 돌아가고 있는 와중에 종로구 낙원동 낙원상가 꼭대기에 위치한 ‘서울아트시네마’가 하는 일은 좀 달라 보입니다.

서울아트시네마에서는 3월 11일부터 ‘동시대 영화 특별전’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동시대’인데, 일종의 ‘시차’가 보입니다. 이대로 잊히기엔 아쉬운 영화들, 영화적 성취에도 불구하고 짧은 기간만 극장에 머물렀던 영화들이 그곳에 모여 있었습니다. 시차는 거기서 오는 것이었습니다.

서울아트시네마는 세상이 차마 신경 쓰지 못한 영화들을 보존, 상영, 그리고 존중합니다. 작년 겨울, 추위를 뚫고 저는 서울아트시네마에서 하는 ‘아키 카우리스마키’ 특별전을 보러 다녔습니다. 영화 한 편을 보고 나오면, 추워도 오길 잘했다고 생각했습니다. 영화관에서 그보다 따뜻할 순 없었으니까요. 저는 서울아트시네마를 다니면서부터 영화를 좋아하게 됐습니다. 작년 가을, ECM 레이블의 설립자 만프레드 아이허가 서울아트시네마를 방문했을 땐 좌석이 매진됐습니다. 그때는 그곳이 마치 세종문화회관이라도 된 것 같아 덩달아 기뻤습니다. 오즈 야스지로를 처음 알고 좋아서 감상했던 시간을 오래 간직하고 싶었던 기억, 구로사와 아키라의 ‘이키루’를 다 보고 영화관을 쉽게 빠져나올 수 없었던 기억도 그곳에 남아 있습니다.

그런데 요즘 서울아트시네마가 제대로 위기를 맞았습니다. “본래의 목적인 영화를 수집, 보관하는 것은 엄두도 못 내고 있으며 많은 사람과 함께 보고 이야기를 나누어야 할 극장 운영조차도 어렵기 때문입니다.” 서울아트시네마의 관계자가 서울시 온라인 청원사이트에 등록한 글 일부입니다. 해당 글은 서울 시민 1,000명 이상의 지지를 얻어 청원이 성립되었고, 지금 검토에 들어갔습니다. 듣던 중 반가운 소식이지만, 기뻐하긴 이른 것 같습니다. 서울아트시네마 지원에 관해서는 3년 연속 서울시 정책 우선순위에서 물러났다고 합니다.

영화를 결코 많이 보며 살아왔다고 말할 순 없지만,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영화 보는 기쁨을 처음으로 알았던 관객으로서, 그리고 영화를 사랑하는 한 사람으로서 올해는 서울시의 밝고 뚜렷한 약속을 기대해 봅니다.

공감하는 마음이 커져 변화가 생기길 바라며, 이만 오늘의 [책과 사람]을 마무리하겠습니다.

“제작자들은 과거에 히트한 작품만 영원히 쫓아다닌다. 새로운 꿈을 꾸려고 하지 않고 옛 꿈만을 바란다. 먹다 남은 음식을 재료로 해서 이상한 요리를 만드는 셈이다.”
- 구로사와 아키라, 『구로사와 아키라 자서전 비슷한 것』, 모비딕,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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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여행을 위한 들뢰즈 『시네마』의 8개의 정거장

 
영화를 이해하는 여러 가지 방법들과 참고할 만한 책들이 많이 있지만, 들뢰즈의 영화에 관한 두 권의 저서는 영화 논의를 새롭게 확장했다는 점에서 중요하게 참고할 만하다. 들뢰즈는 영화적 개념들을 재사유하고 이미지의 운동을 분류하며 동시에 영화적 형식이 어떻게 구성되고 변용되는가를 고유의 분류법에 따라 제시한다. 이번 강의는 들뢰즈의 『시네마』를 중심으로 일종의 영화입문 과정을 시도한다. 들뢰즈의 『시네마』를 설명하는 것이라기보다는 그의 책에서 가져온 영화에 관한 여덟 가지의 주요한 질문들을 바탕으로 영화에 대한 이해를 시도하는 것이다. 영화의 몇 가지 개념들을 살펴보고, 작가들의 경향과, 영화의 역사적 질문들을 살펴볼 것이다.
 

1강 화면의 분류 - 왜 쇼트에서 시작하는가?

2강 영화적 지각 - 카메라와 영화적 지각이란 무엇인가?

3강 얼굴과 감정 - 영화는 어떻게 클로즈업으로 감정을 만들어내는가?

4강 이미지의 변형 - 영화의 구조와 형식, 장르는 어떻게 구별되는가?

5강 시간 - 영화는 어떻게 기억과 꿈을 작동시키는가?

6강 신화작용 - 정치적인 영화는 무엇인가?  

7강 사유의 (불)가능성 - 뇌의 영화와 신체의 영화란? 

8강 정보 - 오늘날 이미지에 대해 어떻게 말할 것인가?


참고문헌

질 들뢰즈, 『시네마1』, 『시네마2』(시각과 언어)

로널드 보그, 『들뢰즈와 시네마』(동문선)

 

강사 김성욱
개강 2014년 4월 4일부터 매주 금요일 저녁 7시30분

 

다중지성의 정원 http://daziwon.net/second_2014/126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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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랭 레네 감독이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들었다. 90년대 초, 문화학교서울의 비디오테크에서 어렵게 만났던 그의 영화 덕분에 나는 영화에 매혹되었고 이 세계에 들어설 수 있었다. 그 시절의 강박관념들: <밤과 안개>의 시체들, <세상의 모든 기억>의 (감옥)도서관, <히로시마 내 사랑>의 '그땐 얼마나 아름다웠는지'라 말하는 기억의 괴로움에 사로잡힌 엠마누엘 리바, <지난 해 마리앵바드>와 <뮤리엘>의 돌아온 자들과 만나는 맘각으로 고통받는 델핀 세리그. 곤경에 처한 '우리들'. 알랭 레네에게서 내가 배웠던 것은 영화가 결국 무엇을 할 수 있는가였다. 레네는 영화의 동력이 그것에 의지할 수 밖에 없는 사람들, 장소들 때문이라는 것을 깨닫게 해준 작가였다. 말하자면 그는 세상의 모든 기억과 마주한 우리들의 변호인이었다. 아래 글은 <우리는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를 기다리며 '씨네21'에 썼던 글이다. 하지만 결국 이번 베를린 영화제에 소개된 <라일리의 삶>이 그의 유작으로 남았다.  





우리들은 모두 레네의 신작을 기다린다


본디 레네식의 만남이란 관계가 없어 보이는 두 사람의 인생이 기이하게 근거리에서 교차하고 평행해 새로운 삶의 리듬과 가능성을 창조하는 것에 있다. 올해 칸 영화제에서 알랭 레네의 만남이 그랬다. 미카엘 하네케의 영화에 출연한 엠마누엘 리바와 90세를 넘기고도 신작으로 칸을 방문한 알랭 레네의 우연한 조우. <히로시마 내 사랑>으로 둘이 칸을 찾았던 것이 1959년의 일이니, 실로 50년만의 일이다. 이들의 과거를 추억하고픈 것이 아니다. 사실 나는 아무것도 그들에 대해 본 것이 없다. 다만 <당신은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라는 제목에서 <히로시마 내 사랑>의 ‘당신은 히로시마에서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라는 대사가 떠올랐을 뿐이다. 물론 이 두 영화는 관계가 없을 것 같다.


‘씨네21’의 칸 영화제 중간리포트에서 정한석 기자는 주저 없이 홍상수의 영화와 알랭 레네의 신작을 최고의 영화로 손꼽았다. ‘한 노감독의 힘없는 유물이 아니라 지금도 현재 진행형인 사유의 찬란한 결과물’이 선정이유였다. 동의할 수밖에 없는 표현이다. 전작 <마음>과 <잡초>의 파격이 여전하다면 말이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우리들은 그 노래를 알고 있다> 이래로 우리는 히로시마와 마리앵바드, 혹은 뮤리엘의 레네에게서 멀리 떨어진 그를 제대로 보지 못했다. 다행히 신작이 개봉예정이라는데, 이게 무슨 유언장처럼 보인다. <당신은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의 대략의 이야기는 이렇다고 한다. 연극 연출가 앙트완느 오투악이 사망한다. 그는 마치 유언처럼 자신의 연극에 출연했던 과거의 배우들을 성에 모이도록 한다. 이들은 모두 <에우리디스> 연극을 함께 했던 배우들이다. 그들은 거기서 거실의 스크린에 상영되는 젊은 배우들이 새롭게 번안한 연극을 보게 되는데, 어느 덧 스크린의 이쪽 편에 있는 배우들도 무대에 서 있는 이상한 경험을 한다. 영화와 연극, 배우와 관객, 삶과 죽음의 관계를 다룬 영화라고들 한다.


궁금해서 찾아본 유투브의 칸 기자회견 영상을 보면서 은발의 노신사 곁에 미셀 피콜리를 위시해 그의 전속배우 사비느 아제마와 피에르 아르디티, 램버트 윌슨, 그리고 새롭게 레네의 배우군단에 자원한 마티유 아멜릭 등 실로 많은 배우들이 다들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배우들이 너무나 사랑해 너도나도 영화에 출연하고 싶어했던 전성기 할리우드의 황태자 에른스트 루비치가 떠올랐다. 농담이 아니다. 그의 최근작들은 뮤지컬이 가미된 일종의 코미디이고 <입술만은 안돼요>는 루비치의 영화에서 특별한 영감을 얻었다. 루비치 터치는 레네의 기이한 작가성에도 있다. 그는 한 명의 모던한 작가라기보다는 화법과 형식을 파괴한 실험의 작가였고, 실로 작가라기보다는 연극처럼 배우들과 극단을 거느린 연출가에 가깝다. 알랭 플래셔의 표현을 빌자면 그의 영화는 ‘아틀리에 예술’이다. 그는 언제나 집단을 구성해 다른 예술을 영화에 끌어들였다. 누보로망 작가들의 문학, 희곡의 영화화는 물론이고 엠마누엘 리바, 델핀 세리그, 사비느 아제마 등 무대 여배우들을 영화에 기용했고, 오페레타와 뮤지컬, 만화, 범죄 영화, 멜로드라마 등의 장르를 적극 활용했다. 레네의 영화는 개인보다는 집단의 산물이고, 그는 현대영화의 탁월한 황태자이다.


그러니 호모 사케르식 개인에 집중했던 초기작들을 넘어서 근작들에서 우리는 레네의 ‘우리들’을 보아야만 한다. 비록 실감 없는 현실에서 정체성의 위기와 우울증을 겪지만 그럼에도 감성적 공동체를 구성하는 우리들 말이다. <마음>과 <잡초>에서 레네는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의 정신, 의식, 마음에 카메라를 올려놓았고 아스팔트의 틈새에서 굳건하게 피어오르는 잡초마냥 우리들의 마음을 피어오르게 했다. ‘극장을 나오면 어떤 것도 놀랄게 없다. 무엇이든 발생할 수 있다’고 <잡초>의 내레이터가 말한다. 그러니 그의 아틀리에에 들어가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레네의 신작을 기다린다. (김성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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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느베르 2014.03.08 02:37 신고

    "나도 망각과 싸웠지만 당신처럼 나도 잊고 말았죠.
    기억해야 하는 이유를 잊고마는 망각의 공포에 맞서
    매일 힘겹게 싸웠지만 당신처럼 나도 잊고 말았죠.
    .......................기억할 건 기억해야만 해요!!"

    영화 <히로시마 내 사랑> 중에서...............

  2. 고쌍 2014.11.30 15:01 신고

    아 선생님 좋은 글 감사합니다^^



 


부산 영화의 전당에서 3월말부터 여섯번에 걸쳐서 강의를 진행한다. 그동안 너무 하드한 주제들을 다뤘던 터라, 이번에는 봄기운에 맞춰 부드러운 감정들에 관한 영화들을 이야기할 계획. 프랑수아 트뤼포는 고백이나 일기와 같은 영화에 대해 말했던 적이 있다. 이는 그들의 첫 사랑이나 그들이 겪은 최근의 일들, 정치적인 각성에 대한 이야기, 여행의 이야기, 고통의 이야기, 그들의 결혼, 그들의 마지막 휴가에 관한 이야기들로, 무엇보다 사랑의 행위가 될 것이라 말했다. 이번 강의에서 다루는 영화들은 모두 그런 사랑의 행위가 된 영화들이다. 일종의 연애지도를 만들어갔던 영화들, 무엇보다 내밀한 감정의 영화들을 살펴본다. 혹은 연애의 불가능성에 관한 영화들이라 할 수도 있겠다. 이러한 주제에 따른 영화의 목록을 방대하겠지만,  생각나는 6개의 키워드로 대표적인 작가들의 작품을 살펴보려 한다. 영화 강의의 자세한 일정은 아래와 같다. 

  

3/29일(토)

규원: 페이 무와 데이비드 린

3/30(일)

내향: 나루세 미키오의 여인들

4/5(토)

소멸: 안토니오니와 차이밍량의 시간

4/6(일)

우연: 에릭 로메르와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4/19(토)

재회: 에드워드 양의 ‘해변의 하루’와 ‘하나 그리고 둘’

4/20(일)

방치: 고다르와 필립 가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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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의 <몽상가들>이 재개봉 중이다. 이 영화는 혁명전야의 시대를 살아간 세대를 그린다는 점에서 그의 혁명적인 데뷔작이기도 했던 <혁명전야>의 주제를 다시 반복한다. 베르톨루치에게 중요했던 것은 혁명의 효과나 68혁명에 관한 영화가 아니었다. 혁명의 시절을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혁명 이전의 가능성을 다시 사고하는 것. 말하자면 정치적, 성적, 미학적(영화적) 유산의 잠재성들이 중요하다. 우리는 이와 유사한 문제를 이번 3월에 상영하는 올리비에 아사야스의 <5월 이후>에서도 엿볼 수 있다. 이 영화는 감독 자신이 보낸 시대에 관한 이야기로, 5월 혁명의 공기로 감싸였던 파리에서 시작해 혁명과 예술에 몰두했던 젊은이들의 방황을 그린다.


이미 올리비에 아사야스는 <카를로스>에서 70년대~80년대에 세계를 공포로 몰아넣었던 테러리스트의 이야기를 다룬 바 있다. <5월 이후>에서 그는 이제 자신의 분신이 분명한 주인공 고교생의 이야기를 빌어 한 손에는 돌을, 다른 손에는 붓을 들었던 청춘의 빛나던 시절을 노래한다. 소녀들과의 사랑 이야기 또한 빠질 수 없다. 1955년생인 아사야스는 68혁명 당시 열 세 살로 학생 운동에 참여하면서 음악과 예술, 그리고 영화와 만나게 되었다고 한다. 그는 무엇보다 앤디 워홀의 예술에, 그리고 기 드보르를 위시한 상황주의자의 운동에 매혹되었다. 젊은 날의 아사야스에게 중요했던 것은 당시 그가 살던 사회 체제에서 어떻게든 일탈을 시도하는 것이었다. 그 방법론으로 아사야스는 예술에 끌리게 된 것이다. 빛나는 청춘은 물론 다소 염세적이고 고독을 맛보는 시기이기도 하다. 세계를 바꿀 수 있다고 생각했던 시절은 그러나 지나갔고, 혁명에 뒤늦게 도달한 세대는 그러므로 그 어디에서도 이상향을 찾기 힘든 가운데 다시 혁명의 가능성과 잠재성의 기원으로 되돌아가야만 했다. 아사야스의 영화는 그래서 장 뤽 고다르가 <즐거운 지식>에서 했던 표현을 빌자면 (영화)제로지대로의 회귀를 시도한다. 이 제로지대로의 회귀는 베르톨루치가 <혁명전야>에서 말한 현재의 노스탤지어가 아니다. 아사야스는 ‘그라운드 제로’를 맞았던 21세기에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에 대한 이해의 출발점으로 혁명 전후를 되돌려 구축하는 것이다. 5월의 빛나는 청춘과 만나기를 기원한다.

- 김성욱(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램디렉터)


*3월의 '시네마테크' 소식지에 에디토리얼로 쓴 글이다. 올리비에 아사야스의 영화와 베르톨루치의 영화가 3월, 동시기에 소개되는 일은 흥미로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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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로드 소테와 파트리스 르콩트의 영화들 간에 어떤 공통점이 있는가를 말하는 것은 그들 각자의 영화에 어떤 일관된 테마와 스타일이 있는가를 확인하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일이다. ‘감정의 세공술사’라는 이번 시네마테크 부산의 기획전 제목은 그래서 부가적인 설명이 필요할 터인데, 대신 나는 다른 비교들을 들고 싶다. 1924년생인 소테와 1947년생인 르 콩트는 작업의 시대로만 보자면 누벨바그 이전과 누벨바그 이후의 작가들이라 할만하다. 하지만 두 감독이 한국의 관객들에게 친숙하게 인지된 것은 90년대 초의 일이다. 여전히 대중적 기억에 회자되는 <겨울의 심장>(국내 개봉제목은 ‘금지된 사랑’이었다)과 <사랑한다면 이들처럼>이 서울에서는 지금은 사라진 씨네하우스란 극장에서 소개되었다. 예술영화의 늦바람이 살랑거리던 때로 소테와 르콩트의 영화는 중년의 연애를 섬세하고 관능적으로 그렸다는 점에서 관객들의 호응을 얻었는데, 그 때가 프랑스 영화들에 ‘누벨 이마주’라는 기묘한 꼬리표를 붙이던 시절이었기에 이들의 영화는 분류 불가능한 프랑스 영화의 한 경향쯤으로 치부되었다.


프랑스라고 별반 사정이 다르지는 않았던 듯하다. 가령, 클로드 소테의 실질적인 데뷔작이라 할만한 <거대한 위험>(1960)은 개봉즉시 외면당했다. 하필이면 고다르의 충격적인 데뷔작 <네 멋대로 해라>와 한 달 차이를 두고 개봉해 잔뜩 누벨바그에 쏠린 관심때문에 r의 영화가 쉽게 무시되었던 것이다. 소테의 영화는 누벨바그의 악동클럽들과는 달리 자크 베케르와 장 피에르 멜빌의 고전주의에 더 친화력을 갖고 있었다. <거대한 위험>은 호세 지오바니의 원작을 영화화한 작품으로(그는 자크 베케르의 <구멍>(57)과 장 피에르 멜빌의 <두 번째 숨결>의 원작자이자, <시실리안>, <암흑가의 두 사람>의 연출가이기도 하다), 사내들의 우정과 배신을 그린 프렌치 누아르 풍의 영화다. 영화의 오프닝 장면은 편견 없이 보자면 정말 감탄할 만큼 탁월하다. 지금으로 보자면 두기봉 영화의 오프닝 정도가 이에 필적할 만하다. 밀라노 역에 두 사내가 가족들을 데리고 등장한다. 어찌된 일인지 그들은 가족들을 모두 기차에 태우고는 사람들로 붐비는 역 앞에서 누군가를 기다리는데, 얼마 후 우리는 이들이 백주대낮의 노상강도임을 알게 된다. 이어지는 자동차 도주. 안전을 도모하기 위한 것인지 갑자기 한 남자가 차에서 내려 오토바이로 갈아타는데 그는 경찰의 제지로 다시 야산으로 탈주한다. 다시 자동차를 훔쳐 달아난 이 사내는 반대편에서 오던 차를 몰고 오던 예의 친구를 만나 기쁨의 재회를 나눈다. 조셉 루이스의 <건 크레이지>에서 은행을 턴 남녀가 차를 몰고 달아나다 재회해 기쁨의 키스를 나누는 순간을 떠올리게 하는 장면이다. 이어 이들은 다시 버스를 갈아타고 프랑스로 건너가는데, 때마침 등장한 경찰들과의 총격전으로 가족들과 그 사내가 사살되고 주인공 니노 벤추라만이 살아남게 된다. 예측 불가능한 속도와 사건으로 치닫는 영화 초반부의 시퀀스는 실로 놀라운데, 운동의 리듬뿐만 아니라 음악, 액션의 안무, 얼굴의 클로즈업으로 이어지는 장면의 연쇄가 꽤나 시적이다. 장황하게 소개한 이유는 잘 알려진 소테의 영화들 가운데 여전히 덜 알려진 이 영화가 이번 기획전에서 다시 재평가 되기를 기대하기 때문이다.





이미 1955년에 <미소여 안녕>이란 작품으로 데뷔했지만, 크게 주목받지 못했던 소테는 <거대한 위협>의 실패 이후에 절치부심하다(그는 이후 십여 년간 프랑스 영화계의 주요한 시나리오들을 손봐주는 ‘시나리오 닥터’로 활동했는데, 트뤼포를 포함해 모든 이들이 그에게 시나리오 자문을 구했다고 한다) 1970년작인 <즐거운 인생>으로 재기에 성공했다. 1970년대 이후의 작품들은 로미 슈나이더와 엠마누엘 베아르 등의 여배우들과의 협연으로 유명하다. 특히 범죄자를 놓쳤다는 자책감에 시달린 형사의 이야기를 그린 <맥스>(1971)와 중년의 두 남자와 한 여자 사이의 사랑과 우정을 다룬 <세자르와 로잘리>(1972)에서의 로미 슈나이더의 마성의 미에 주목할 만하고, <겨울의 심장>(1992)과 <넬리와 아르노>(1995)에서의 엠마누엘 베아르의 귀품 있는 연기는 더 말할 필요가 없다. <나쁜 아들>(1980)도 주목할 만하다.






소테의 영화에 대해 덧붙여 말한다면, 나는 그의 영화가 1930년대 프랑스 영화의 시적 리얼리즘에 근접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이는 그의 영화에서 엿보이는 노스탤직한 분위기 때문만이 아니라 작업의 방식, 스타일에서도 나온다. 프랑스 영화하면 작가 영화로 환대받지만 프랑스 고전주의는 코미디, 로맨스, 뮤지컬, 스릴러, 사극 등의 장르 영화에 배우 시스템이 가미된 대중적인 영화였다. 시적 리얼리즘은 그러한 대중주의에 멜로드라마, 사회적 판타지, 누아르 리얼리즘, 낭만적인 페시미즘, 마술적 리얼리즘 등을 결합한 것이다. 무엇보다 이런 영화의 미덕이라 함은 일상에 시적, 정서적인 감성을 더하는 것으로 일상을 서정으로 이끌어 올리는 것에 있다.


파트리스 르콩트의 영화 또한 대중주의에 가까운데, 그는 비평가와의 불편한 관계로 유명세를 치르기도 했다. 그는 1999년 프랑스 비평가들이 대중적, 상업적인 프랑스 영화를 죽이기 위해 비평을 쓰는 것처럼 보인다며 맹비난을 했었다. 그의 대중적 면모는 스스로 ‘오락 영화를 만드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라는 자신감에 찬 말에서도 엿보인다. 물론 그의 대중주의는 이중적인 면모를 갖고 있다. 코미디에서 액션, 사극, 서스펜스 터치의 작품 등 르콩트는 다양한 장르 영화를 만들었지만 그 어떤 단일한 장르나 장르의 규범에 종속되지 않는 독특한 그만의 향기를 유지했다는 점에서 이채롭다. 무엇보다 그의 영화는 과장된 코미디에 뿌리를 두고 있다. 그는 원래 만화가 일러스트레이터로 활약하다 영화를 시작했는데(최근작에서 그는 전력을 살려 드디어 3D 애니메이션 <파리의 자살가게>(2012)을 만들었다), 데뷔작의 실패 이후 그가 감독인생의 발판을 마련하게 된 것은 프랑스 희극연극집단의 무대를 여름 휴양지로 옮겨 소시민들이 벌이는 레저 익살소동극인 <선탠하는 사람들>(1978)의 대중적 흥행덕분이었다. 후속작인 <선탠하는 사람들2>(1979)이 만들어질 정도였다.





하지만 그를 국제적으로 유명하게 만들고 그의 전매특허라 할 수 있는 너무 열정적이라 조금은 왜곡된 사랑과 꿈같은 여정을 그린 출발점의 작품은 단연 <살인혐의>(1989)와 <사랑한다면 이들처럼>(1990)이라 할 수 있다. <살인혐의>는 언제나 창백하고 무표정한 고독한 중년 남자가 이웃집 아파트에 새로 이사온 앨리스라는 젊고 아름다운 여인을 훔쳐보면서 점점 마음을 열게 되고 인생이란 고독에서 행복과 사랑의 빛을 발견하게 되는 이야기의 영화다. <사랑한다면 이들처럼>은 르콩트의 영화가 철저한 개인주의와 연애지상주의로 무장되어 있음을 보여주는 영화다. 노르망디 해안가를 배경으로 미용실에서 머리를 자르는 것에 흥분을 느낀 소년이 나이가 들어 아름다운 미용사와 결혼해 꿈같은 사랑을 얻게 되는, 하지만 충격적인 비극으로 향하게 되는 이야기다. 이 영화는 르콩트 영화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연인들의 유토피아적 세계를 꿈처럼 제시한다. 그의 작품은 가장 일상적인 현실에서 시작해 다른 세계로의 꿈같은 여정을 그리는데, 이는 하나의 시간과 이미지에서 다른 이미지와 시간으로 톤과 분위기뿐만 아니라 빛, 컬러, 운동, 음악 등의 변형으로 표현된다. 일종의 무의식의 방법이라 할 만한 스타일에서 중요한 것은 정서적 일관성을 획득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르콩트의 영화는 항상 현실과 허구의 세계가 다툼을 벌이고 남녀관계의 뒤얽힘이 계기가 되어 충만해져가는 꿈과 망상의 세계를 그린 우디 앨런의 영화를 떠올리게 한다.


르콩트의 영화에서 흥미로운 것은 특별한 연애관이다. 이 영화의 충격적인 결말에서 엿보이듯이 르콩트의 주인공들은 연애라는 감정 안에서 서로의 차이들을 수용한다. 중요한 것은 사회적 관습으로는 설명될 수 없는 연인들의 사랑의 감정인데, 이는 지극히 둘만의 유토피아적 세계에서만 납득할 만하다. 이런 경향은 결혼과 아이들 대신에 둘만의 관계와 모험, 여행을 강조하는 <걸 온더 브릿지>(1999)에서도 분명하게 드러난다. 그의 영화는 관습과 모럴을 넘어서는 새로운 연애지도를 그리는 것만이 아닌 우리의 감각을 건드리는 침투해들어오는 여인의 몸들의 지닌 관능성 때문에 지극히 감각적이다. 그는 여인의 몸에서 빛이 쏟아지도록 화면을 장식한다. <사랑한다면 이들처럼>은 물론이고 지극히 에로틱한 <이본느의 향기>(1994), 그리고 <친밀한 타인들>(2004)에서 우리는 여성의 머리카락, 어깨, 쇄골, 발끝이 얼마나 감각적으로 작동하는지를 보게 된다. 그의 영화는 루이 말의 영화가 그러하듯이 논리나 이성보다는 감성의 여행을 떠나기를 관객들에게 권고한다. 연인들은 그의 영화에 투영된 감성의 지도 위에 그려진 강줄기를 따라 미지의 영토로 여행을 떠난다. 하지만, 이런 연인들의 유토피아는 또한 우리들의 삶의 근원에서 기원한 것이다. 르콩트는 현대적 삶이 정서적 고독의 상태에 놓여있음을 보여주는 작가다. 그러므로 사랑과 우정이라는 가치가 단연 중요하게 부각되는 것이다. 사랑처럼 선언되지 않는 우정을 그린 작품으로는 <마이 베스트 프렌드>(2006)를 주목해 볼 수 있다.





파트리스 르콩트의 영화는 클로드 소테의 영화와 마찬가지로 시스템의 영화로 대중적인 성공을 거뒀다. 이 두 작가는 시나리오 작가, 영화음악가, 촬영감독, 스타 배우들과의 지속적인 협업으로 유명하다. 세밀한 시각적 구성, 감미로운 음악, 돋보이는 연기들은 이런 지속적인 공정의 결과다. 이번 기획전은 소테의 영화들을 다시 논의해볼 좋은 기회이지만, 무엇보다 상업적 성공을 거두면서도 대중영화의 미덕을 품위 있게 지키는 두 장인의 숙련된 솜씨를 맛보는 것만으로도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을 것이다. (김성욱 / 영화평론가)


* 부산 영화의 전당에서 열린 '클로드 소테, 파트리스 르콩트' 전에 맞춰 <씨네21>에 썼던 글이다. <겨울의 심장>(당시 개봉제목은 금지된 사랑이었던)을 신사동의 씨네하우스에서 봤던 기억이 떠올랐다. 무엇보다 이번 기획전에서는 클로드 소테의 초기작, 특히나 < 거대한 위험>은 필견의 작품이자, 누벨바그 영화들 가운데 새롭게 논의되어야 할 작품이다. 클로드 소테의 영화가 다시 보고 싶어지는 계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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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ool 2014.02.27 23:54 신고

    클로드 소테와 파트리스 르콩트의 영화들을 서울아트시네마에서 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무척 보고 싶은데 부산까지 가기엔......서울의 바쁜 일상이 여유로움을 주지 않을 듯 합니다.ㅠ.ㅠ

    • Hulot 2014.02.28 01:54 신고

      서울에서도 할 날이 있을 거예요. 겨울쯤에 조금은 쓸쓸한 느낌으로 영화들을 보고 싶네요.



 

이 목록들은 지극히 우연적인 선택의 결과다. 미국 영화들 중에서 최근 디지털 복원된 작품들 네 편을 추렸던 것이다. 시대는 제각각 다르다. 다만 선택의 과정에서 은연중에 ‘패닉panic’이란 단어를 떠올렸다. 패닉이란 알다시피 돌발적인 불안과 공포, 스트레스에 의한 혼란한 심리상태를 말한다. 혹은, 그에 따른 행동을 일컫는 말이다. 일종의 공황상태다. 이 단어와 함께 의식에 부상한 것은 도덕moral이란 말이었다. 그렇게 모럴과 패닉의 합성어가 만들어졌다. 이 개념은 1972년 영국의 사회학자 스탠리 코엔Stanley Cohen이 1960년대 영국의 매스미디어가 당시 모즈나 로커즈라는 거친 젊은이들을 어떻게 과잉 보도했는지를 기술할 때 사용한 단어이기도 하다. 도덕적 공황을 일컫는 말로 사회질서의 위협으로 간주된 특정 집단의 사람들에게 발산되는 다수인들의 격렬한 감정으로 정의된다. 이러한 표현은 시대의 불안과 관련이 깊다. 어떻게 무분별한 시대의 불안이 사람들의 분노와 격노로 격해져 가는지, 치안에 대한 불안이 무뢰한이나 반문화집단을 배제하는 집단 공포와 집단 광기, 혹은 집단행동으로 전이되어 가는지를 말해준다.

엄밀한 의미에서 이 섹션의 작품들은 그런 ‘도덕적 패닉’의 전형성을 대표할 영화들은 아니다. 앞서 말했듯이 우연적 선택의 결과이기 때문이며 무엇보다 목록이 적다. 다른 부제들을 관객들이 떠올릴 수 있기를 기대한다. 다만, 패닉과 시대적 모럴의 비틀어진 합성의 작품들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따지고 보면 영화 그 자체가 오랫동안 시대의 도덕적 패닉의 대상이 되어왔던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사람들은 극장의 어둠이 도덕적으로 잘못된 것들을 보여주고 저급한 행동이 벌어질 수 있는 나쁜 기회를 만들 수 있다고 두려워했다. 극장의 어둠 속에서 언제나 무언가 은밀한, 음습한 일들이 벌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검열이 동원되고 극장에 대한 막연한 공포 때문에 스크린에 전시되는 폭력과 섹스의 이미지에 과다한 반응이 생기기도 했다. 영화는 비도덕적인 일이 벌어질 수 있는 장소이자 반사회적인 이미지들이 들끓는 곳이기도 했다. 영화는 그 시대의 모럴의 위기를 반영하고, 혹은 그 위기를 만들어낸 것으로 비난받기도 했다. 영화에서의 패닉과 모럴의 문제는 그러므로 그 시대의 정치학을 반영한다. 그리고 실제로 영화는 시대의 상상된 사회에의 위협을 표상한다. 이 네 편의 영화는 그러므로 각각의 시대에서 사회의, 혹은 사회에의 위협을 상상화한 작품들이라 말할 수 있다. 목록은 당연하게도 확장되고 넓어질 것이다.



 

그 첫 번째 작품은 프리츠 랑의 <인간 사냥>(1941)이다. 프리츠 랑, 더글라스 서크, 로버트 시오도마크, 에드워드 드미트리, 존 베리, 조셉 로지, 밀로스 포먼, 로만 폴란스키. 이름은 더 호명될 수 있겠지만, 이들은 모두 시기와 이유는 다르지만 제 나라를 떠나야 했던 망명의 작가들이다. 나치 독일을 피해 미국으로 이주했던 이들, 빨갱이 사냥 시대에 미국에서 벗어나 유럽으로 건너가야만 했던 작가들, 혹은 공산권에서 망명한 작가들이다. 망명자들의 영화, 혹은 망명은 작가들에게 어떤 영향을 주었을까? 그 흥미로운 사례의 처음에는 아마도 프리츠 랑이 자리할 것이다. 프리츠 랑은 나치 독일에서 망명한 작가이다. 프리츠 랑의 미국 시절(1934-1956)은 그러므로 독일의 우파Ufa 스튜디오에서 막강한 위력을 행사하던 때와는 달리 실업을 피하기 위해 그가 얻을 수 있는 무엇이든 작업을 해야만 했던 할리우드 영화산업의 피고용자 신분의 작업을 의미한다. <인간 사냥>은 이 시절의 초기에 만들어진 영화로, <사형수 또한 죽는다>(1943), <공포의 내각>(1944), 그리고 <클로크와 대거>(1946)로 이어지는 반-나치 영화의 첫 번째 작품이다. 영화가 개봉하던 해는 1941년으로, 당시 미국은 2차 대전의 참전을 고려하지 않고 있었다. 진주만 폭격은 이 영화가 개봉하고 반 년 후에 벌어졌다.

영화의 첫 시작부에서 우리는 영국인 사냥꾼 손다이크가 독일의 시골 마을에서 히틀러를 암살하려다 체포되는 모습을 보게 된다. 그는 자신이 동물을 죽이지 않고 단지 목적을 달성하는 영국식 사냥 스포츠를 즐겼을 뿐이라 답한다. 나치 장교는 그가 히틀러를 암살 기도했다는 조작 서류에 사인을 하도록 강요한다. 때는 영국과 나치 독일이 본격적인 전쟁에 들어가기 전인 1939년. 그는 죽음의 위협에서 탈출에 성공해 런던에서 아름다운 여인 제리에게 도움을 얻지만 얼마 후, 독일과 영국은 전쟁에 돌입하고 이번에야말로 그는 히틀러의 암살을 위해 적진에 침투한다.

서스펜스 스릴러처럼 전개되는 이야기가 꽤 복잡한 모럴의 문제를 불러오는 것은 영화의 중반 이후를 거치면서이다. 손다이크는 게임 사냥꾼으로 자신이 사람을 죽이려 한 것이 아니라 강변한다. 그는 죽이는 게 아닌 추적 과정에 그 맛이 있는 사냥이야말로 최고의 게임이라며 아무도 죽이지 않았다고 말하는데, 나중에 그의 운명은 나치 경찰의 추적을 받게 되면서 그리고 한 여인과 만나면서 변하게 된다. 히치콕의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에서 성냥갑이 그러하듯이 손다이크와 제리의 관계에서 중요하게 작동하는 것은 활 모양의 머리핀이다. 이 둘의 관계에 어떤 낭만성이 없다는 것이 특이한 일이다. 랑은 둘의 로맨스 대신에 활 모양의 머리핀을 기호로 활용한다. 영화의 한 장면. 잃어버린 머리핀을 사기 위해 가게를 방문하는 장면은 어렴풋이 독일 시절 그가 만든 <엠>의 한 장면, 즉 연쇄살인범이 쇼 윈도우 앞에서 진열된 물건들에 사로잡힌 순간을 떠올리게 한다. 그는 마찬가지로 쇼 윈도우 앞에서 넋을 놓고 소비사회의 물건들을 쳐다보는 소녀에 은밀한 시선을 보낸다. 쇼 윈도우는 랑에게 현대적 도시, 시각적 호기심과 매혹의 이미지가 전시되는 장소다. 미국 시절로 넘어가면서 랑의 영화에서 쇼 윈도우는 도시적 소비문화가 양산한 강박성과 억압된 욕망의 기호들의 전시로 종종 등장하곤 했다. <엠>에서의 기하학적 패턴의 칼과 거울, 그리고 화살 모양의 장식들을 보고 있던 살인자는 곧이어 도시의 어둠의 사냥꾼들에게 추적당하게 된다. 그러므로 이 장면은 영화의 내러티브 중심에서 벗어난 꽤 예외적인 휴지부이다. 하지만 동시에 내러티브를 갱생하는 이미지의 논리가 작동하는 순간이기도 하다. 마찬가지로 <인간 사냥>에서 우리는 이 화살의 기호가 어떻게 작동하게 될 것인지를 앞으로 보게 된다. 제리는 하트 모양의 머리핀은 흔하니 화살 모양의 핀을 달라고 주문한다. 가게 주인은 크롬으로 만들어진 이 머리핀은 당신이 죽을 때까지 멀쩡할 거라 말한다. 그녀는 그 말대로 희생자가 될 것이고, 머리핀은 남아 손다이크의 모럴을 자극한다. 동굴에서의 나치 장교와의 활의 싸움. 최종적으로 히틀러를 암살하려는 그의 시도. 비행기에 그려진 화살의 기호. 사랑과 죽음, 그리고 공포의 이미지로 기억될 기호들.


 




헨리 헤서웨이의 <죽음의 키스>(1947)는 로버트 시오도마크의 <킬러>(1946), 아브라함 폴란스키의 <악의 힘>(1948), 조셉 루이스의 <건 크레이지>(1949), 그리고 라울 월쉬의 <화이트 히트>(1949)로 이어지는 40년대 필름 누아르의 대표작이다. 이야기는 뉴욕의 크리스마스 날에 벌어진다. 크리스마스는 어떤 사람에게는 행복한 시간이지만, 운이 좋지 않은 이들, 특히 전과자로 일자리를 찾을 수 없는 닉에게는 불행한 날이다. 그는 평범한 사람들이 아이들에게 줄 선물을 사기 위해 쇼핑을 하는 때에 다른 방식으로 선물을 사려 한다. 영화 초반의 돈을 터는 강탈 시퀀스, 그리고 이어지는 만원 엘리베이터에서 벌어지는 서스펜스 장면이 꽤나 초조한 긴장감을 불러올 만큼의 정교한 편집으로 흥미롭다. 이 영화는 범죄자 닉의 운명적 상황을 강조한다. 그의 범죄에 대한 뚜렷한 경제적, 사회적 배경을 설명하지 않기에 이 사건은 순수하게 그가 처한 절망적 상황을 부각시킨다. 범죄가 크리스마스에 벌어지는 것은 그래서 상징적이다. 그가 기독교적인 희생에 이끌리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이 처한 삶의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찾지 못했고, 그리하여 유일한 방법으로 종교적 믿음과 희생에 도달한다. 영화는 당시의 스튜디오에서 벗어난 리얼 로케이션 촬영의 진수를 보여준다. 동시에 사회적 행동과 개인의 모럴의 희망 없는 상태, 무력함을 전시한다. 그 가운데 휠체어의 노파를 계단에서 밀어 떨어뜨리는 당시로서는 꽤 파격적인 신흥 범죄자 리처드 위드마크의 위협적이고 반사회적인 행동, 흥분된 에너지가 충격을 준다. 이 파괴적인 에너지는 다른 형태로 <건 크레이지>와 <화이트 히트>로 이어지게 될 것이다.


 




사회와 법이 시대적 불안과 공포를 해결할 수 없다는 절망감은 70년대 터프한 경찰영화들에서도 발견된다. 즉, 사회가 구제될 수 있고 구제되어야만 한다는 약속이 실패로 끝나는 것은 <더티 해리>와 <프렌치 커넥션>(1971)과 같은 영화에서 플롯의 전제이다. 자경단의 액션은 정신이상적인 형사의 과격한 폭력에서 구제를 찾기 힘든 사회의 몸서리치는 비전을 제시한다. 윌리엄 프리드킨을 유명하게 만든 <프렌치 커넥션>의 주인공, 뽀빠이 형사 지미(진 핵크만)는 활력이 넘치고 과격한 폭력을 불사하는 이로 범죄자를 소탕한다는 명목 하에 차를 몰고 범죄자를 추적하면서 도리어 거리를 패닉의 상태로 몰아넣는다. 영화는 마르세이유의 허름한 집에서 한 남자가 킬러에게 살해당하는 것으로 시작해, 브루클린의 뒷골목에서 뽀빠이 형사가 마약 판매원을 후리는 것으로 이어진다. 이러한 영화는 법 질서를 회복한다는 명목 하의 과다한 폭력에의 의존, 더 나아가 사회를 보호한다는 명분 하에 사회적 질서를 도리어 침해하는 폭력을 행사한다는 공통점을 갖는다. 폭력과 살인을 종결시키려는 폭력은 뽀바이 형사와 같은 반영웅이 휴머니티를 반납하고 치러야만 하는 도덕적 부담이다. 자경단은 그러므로 다크 나이트의 초인이 되어야만 한다. 그의 매력은 그의 모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사실은 그의 대적할 수 없는 강력한 능력에 있다. 탐정으로서의 그의 절차적 능력, 범죄자를 쫓는 탁월한 드라이빙의 재능, 그리고 파이터로서의 몸의 파워. 경찰의 자질은 법 질서의 집행이 아닌 절차적으로 숙달된 능력에 있다.

그러므로 무엇보다 공들인 유명한 장면들은 모두 추격의 시퀀스들이다. 그리고 이 추격의 상황이야말로 정당한 것과 부당한 것, 선과 악의 판별력을 흐리게 만드는 무차별한 액션의 롤러코스트를 만들어낸다. 최선의 사내는 결국 최고의 추격자여야만 한다. 고도로 스타일화된 추격 장면은 그러므로 가장 사실적인 것으로 포장된다. 아니, 사실로서 인정되어야만 한다. <프렌치 커넥션>에 따라붙은 ‘다큐멘터리적 리얼리즘’이란 비록 이 영화가 경찰들의 세속적인 일과들을 강박적으로 전시하고 있음에도, 지극히 양식적인 것들로 원인을 지워가면서 그들의 대담한 행동에 주목하게 하는 착시효과를 만들어낸다. 법 질서 확립의 권위를 상실한 사회에서 경찰은 사회적 질서를 대변하는 단독자로 나서기 위해 그의 모든 능력을 미화시켜야만 한다. 뉴욕은 더럽고 추하고 사악하다. 모럴은 그러므로 사회가 처한 물리적 위험보다 덜 중요해진다. <프렌치 커넥션>은 정치적 주장을 슬며시 피하면서(가령 뽀빠이 형사의 적수는 부패한 미국인이 아니라 프랑스 사업가이다) 흑백의 인종적 갈등을 법 질서와 경찰의 하위문화의 관계로 치환한다. 나중에 우리는 로드니 킹 사건에서 현실의 파열을 보게 될 것이다.


 




그리고 세기말의 데이빗 핀처의 <파이트 클럽>(1999)이 있다. 공개 시에 폭력적인 영화이므로 상영해서는 안 된다는 비판에 직면했던 영화다. 실제로 <파이트 클럽>의 초기 예고편은 폭력적이라는 이유로 미국에서는 방영되지 않았다. 파시스트적이라거나 무책임한 영화로 비난받았고 영화의 극단적 폭력과 잔인성에 대한 시각적 묘사가 사회적으로 무책임하고 불쾌하다는 평도 있었다. 하지만, 이 영화의 폭력이 흥미로운 것은 그 방향이 타인으로 향하는 것이 아니라(물론 후반부의 집단적 테러리즘의 경우로 치닫는 경우를 제외하자면), 자기 파괴적인 폭력에 가깝다는 것이다. 맞는 것에 의해서 아픔을 안다는 것, 아픔을 느끼는 것으로 살아있다는 실감을 맛보는 것. 통증을 통해 자신이 세상에 존재하고 살아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 그래서 때리는 것이 아니라 얻어맞는 것이 중요하게 부각된다. 가령, 빌딩의 술집 지하를 파이트 클럽으로 전용한 테일러에게 격분한 주인이 찾아와 그를 후려질 때, 테일러는 전혀 반격하지 않고 맞는 것을 기뻐한다. 그 반응에 불길함을 느낀 주인은 결국 사용을 허락하고 자리를 떠난다. 이와 대비되는 것이 후반부에 내레이터(내레이션을 하는 주인공의 이름은 주어져 있지 않다)가 미모의 청년을 피투성이로 만들어 버리는 분노의 폭력이다.

내레이터인 에드워드 노튼은 자본주의 소비문화에서 빠져나와 타일러와 만나면서 파이트 클럽이라는 비밀스러운 탈영토화의 공간에 자리하게 된다. 이들의 폭력은 소비문화의 아름다움과 우아함을 공격의 대상으로 한다. 그들은 캘빈 클라인의 속옷 광고와 잘 만들어진 근육을 경멸적인 시선으로 바라보고, 자본주의 소비문화에 대항하는 저항으로 자기 파괴적인 폭력행위를 신봉한다. 파트리샤 피스터르스가 『시각문화의 매트릭스』에서 지적하듯이 이러한 자본주의 정신분열증-운동이 분명하게 드러나는 순간은 타일러가 내레이터에게 어떻게 비누와 폭탄을 만드는지를 가르쳐 줄 때이다. 이를 위해 그들은 우아한 문화의 하나인 지방흡입 병원에서 사람의 몸에서 나온 찌꺼기인 지방 덩어리를 훔쳐 글리세린 비누와 니트로글리세린 폭탄을 만들어낸다. 그들이 판매하는 비누는 백화점 매장에 진열되고, 폭약은 나중에 신용카드 회사와 자본주의 상징물들을 폭파시키는 데 활용된다. 지방 찌꺼기는 소비 상품으로 전화하고, 결국에는 전체 체계에 대항하는 니트로글리세린 폭탄이라는 파괴적인 무기로 전환되는 것이다. 지젝의 말을 빌자면 이러한 파괴는 위반으로서의 전복이 갖는 한계를 극복하는 전복 자체를 전복하는 것이다.


김성욱 / 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램디렉터

 

* '2014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의 특별섹션으로 상영중인 네 편의 영화에 대한 글이다. 아쉽게도 상영작 중에서 프리츠 랑의 <인간 사냥>은 상영본의 문제 때문에 결국 상영이 취소되었다. 다른 기회에 다른 작품들의 목록을 포함해 다시 이런 주제의 프로그램을 기획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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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noname 2014.02.27 00:10 신고

    잘 읽어보았습니다. 선생님께서 올려주시는 글 빠짐없이 읽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많은 글 올려주세요~^^

    • Hulot 2014.02.28 01:55 신고

      약속은 못하지만, 전보다는 자주 뭔가 글을 올릴 생각입니다.

  2. YUTLU 2014.11.12 01:02

    이용약관위배로 관리자 삭제된 댓글입니다.

 

 

 


2014
년은 시네마테크 프랑세즈의 설립자인 앙리 랑글루아(1914-1977)의 탄생 백주년을 맞이한 해이다. 서울아트시네마는 올해 랑글루아 백주년 행사를 시네마테크 프랑세즈와 함께 벌일 예정이다. 랑글루아는 책에서 언급된 영화들, 영화의 역사에 그저 이름만 있던 영화들을 살아있게 했다. 시네마테크의 상영 덕분이다. 랑글루아는 시네마테크의 아버지이자 영화 프로그래머란 직업의 창시자로, 영화의 아이들(cine-fils)이 그러하듯 적어도 이 분야에서 일하는 모든 이들은 어떤 의미로든 그의 아이들이다. 그의 특별함은 탁월한 열정뿐만이 아니라(그는 시네마의 종사자들의 가장 중요한 덕목을 열정passion이라 여겼다), 그것을 어떻게 전시하고 조직하는가에 있었다. 이건 쉬운 일이 아니다. 영화의 역사에 정통하는 것만이 아니라 특별한 재능을 요하기 때문이다.

 

랑글루아는 영화와 관련해 손쉬운 합의를 도모한 사람은 아니었다. 그는 영화의 종사자들에게 무조건적인 우정을 보내기도 했지만, 또한 치명적인 증오를 불러오기도 했다. 그 치명적 결과는 알다시피 1968년에 있었던랑글루아 사태로 벌어졌다. <랑글루아의 유령>이라는 다큐멘터리에서 클로드 샤브롤이 지적하듯이랑글루아 사태는 그와 시네마테크 프랑세즈의 명성, 그리고 그가 필연적으로 양산한 적들 때문에 발생한 사건이다. 영화의 역사는 친구만이 아닌 적들과의 전투의 흔적들이다. 우리의 동료이자 친애하는 적들. 자연스럽게 어떤 친구들은 적으로 돌아서고, 또 반대로 그를 시기했던 이들이 친구가 되기도 했다. 가령, 시네마테크 프랑세즈 못지않은 아름다운 벨기에 시네마테크의 설립 자인 자크 르도는 그의 적대적 경쟁자였다. 물론 나로서 기억하고 싶은 것은 그와 친구들과의 돈독한 우정이다. 특별히 랑글루아와 그의아이들중의 한 명인 주앙 베르나르 다 코스타(1935-2009)와의 우정의 관계를 각별하게 생각한다

 

 

 

 

베르나르는 주앙 세자르 몬테이로를 포함해 페드로 코스타 등 포르투갈 감독들이 존경했던 포르투갈 시네마테크의 관장이었다. 베르나르는 젊은 시절에 리스본에서 영화사의 위대한 고전들과 만나볼 기회가 없었다고 한다. 5-60년대 리스본에서는 정치적 검열과 문화적 빈곤, 그리고 고립주의 때문에 과거의 영화와 만나는 것은 힘겨운 일이었다. 1958, 23살의 나이에 그는 처음으로 파리로 여행을 떠났고 그곳에서 랑글루아의 시네마테크를 방문해 영화의 세계에 빠져들 수 있었다. 그의 고백. “극장문을 열고 처음 들어갔을 때의 그 감정들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전함 포템킨>, <국가의 탄생>, <일출>, 그리고 <잔다르크의 수난>과 같은, 글에서 많이 읽었던, 사진들로만 보았던 영화들을 내 눈앞의 스크린으로 마침내 보게 되었을 때의 그 감정을?” 영화는 늘 보였던 것은 아니었다. 랑글루아의 시네마테크가 의미 있었던 것은 보이지 않았던 영화들을 믿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반대로 말하자면우리가 기대하는 영화들은 언제나 아직 보지 못한, 하지만 존재하게 될 영화들’(고다르)이다. 그 후, 베르나르는 굴벤키안 문화재단의 영화부문 프로그래머로 일하면서 1973년 랑글루아의 도움으로 리스본에서로셀리니 회고전을 개최할 수 있었다. 리스본의 시네필들은 랑글루아가 대동한 로셀리니를 극장에서 만나는 호사를 누릴 수 있었다. <무방비 도시>가 상영되는 오프닝 행사에서는 상영 후에 기립박수와 함께자유 만세파시즘은 물러가라는 구호가 난무했다고 한다.

 

이런 훈훈한 우정에 더해 나로서는 그들의 우정을 넘어선 차이 또한 주목한다. 거부하고 싶더라도 우리는 결국 랑글루아의 키드이겠지만 서로 다른 상황과 시간대, 조건에 있기에 친화성 못지 않게 거리를 분명히 하지 않을 수 없다. 리스본의 베르나르 또한 파리의 랑글루아와는 다른 프로그래밍을 해야만 했다. 마치, 파리의 고다르와 저 남미의 글라우버 로샤가 만났을 때 로샤가 말했던 것처럼. 당신들은 영화를 해체하고 있는데 우리는 해체할 영화가 없으니, 먼저 영화를 구축해야만 합니다! 랑글루아는 좋은 취향과 나쁜 취향, 저급한 것과 고급한 것의 문화적 기준을 거부하는 프로그래밍으로 유명했다. 그는 심지어 좋은 영화만 선별한 것이 아니라 아닌 모든 영화를 보존해야 한다고 했다. 어떤 작품이 좋은지 누가 어떻게 결정할 수 있을까? 영화사는 그 반대의 진실을 언제나 보여주었었다. 반면, 베르나르는 주로 작가들의 회고전에, 그리고 다소 교훈적이고 영화사의 위대한 정전의 작품을 상영하는 데에 치중했다. 이는 1970년대 리스본에서 절실했던 일이다. 무엇보다 먼저 관객을 늘리고 좋은 작품을 접하도록 하는 것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베르나르는 이전에 보지 못했던 걸작들을, 그동안 상영되지 못했던 영화들을 소개하고 보다 근본적인 영화 교육을 제공하는 것에 치중했다.

 

 

 

파리의 랑글루아는 상상적인 프로그래밍을 꿈꾸었다. 그는 하루 종일 영화를 보는 관객들을 가정한 프로그래밍, 가령 이 가상의 관객들은 사실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는데, 이들이 하루 동안 종일 영화를 볼 경우에 서로 이질적인 영화들의 자유로운 배치로 영화들 사이의 비밀스러운 다리를 놓는 비밀스러운 기획을 하기를 원했다. 영화관의 어둠 속에서 영화적 이미지들이 그려내는 비밀스러운 성좌의 구축. 이미 시네마테크를 설립하기도 전에 그는 샹젤리제의 작은 공간을 빌려서시네마 판타스티크Le Cinéma Fantastique’라는 제목의 기획전을 개최했던 적이 있는데. 그때에 랑글루아는 어떤 휴식 시간도 없이 세 편의 장편 영화를 연달아 상영했다. 장 엡스탱의 <어셔 가의 몰락>(1928), 로베르트 비네의 <칼리가리 박사의 밀실>(1920), 그리고 폴 레니의 <라스트 워닝>(1929). 이 세 편의 정해진 주제와 기획의 의도는 분명치 않다. 그는 한 편의 영화 이전에, 그리고 다음 영화와의 관계에 영화가 놓여지기를 원했다. 라울 월쉬의 영화 전에 에이젠슈테인의 영화를, 미조구치의 영화 다음에 히치콕의 영화를 상영하는 식으로. 계몽적인 기획의 주제보다는 삼투현상에 의한 영화 교육을 믿었던 것이다. 종종 랑글루아의 영화박물관의 전시는 심지어 연대기도 그 어떤 꼬리표도 달지 않은 전시물들의 배치로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전통적인 박물관의 큐레이터들은 랑글루아의 그런 방식의 배치에 비전문가라는 경멸을 표하기도 했다). 만약 이런 식이라면 고물상의 무질서한 배치와 뭐가 다르단 말인가라는 비난들. 하지만 상상의 시네마크는 이런 꿈이었다. 어느 날, 루브르 박물관에 도둑이 들어 모든 전시물들의 꼬리표를 제거하고 마음대로 예술품들을 뒤섞어 버린다. 그 다음 날 관객들은 그런 줄도 모르고 박물관에 들어와 연대기도, 주제도 무시된 채 무질서하게 배치된 예술작품들을 감상하게 된다. 그런 날들이 오게 되면 더 비밀스러운 예술의 역사에 접근할 수 있지 않을까?

 

 

 

올해도 어김없이 친구들이 어떤 일관된 기준 없이 선택한(친구들 스스로 작품을 선택하는 고유의 일관성과 철학이 없다는 말이 아니다) 영화들이 상영되는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가 열린다. 정말 영화를 즐기고 싶다면 이 무질서한 영화들의 사이, 우연한 관계와 배치에 더 관심을 기울여줄 것을 부탁드린다. 위계와 통제를 벗어나고자 한다면 한계를 두어서는 안 된다. 짐 자무시의 영화가 보여주는 중요한 교훈을 상기하고 싶다. No Limits, No Control.

 

 

김성욱 / 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램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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