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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회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가 이제 곧 끝난다. 이번 영화제에서 웹데일리 작업을 진행하면서 ‘데일리 친구’의 입장에서 한 달 간의 여정을 돌아보자면, 그저 매진 걱정 없이 영화를 공짜로 볼 수 있어서 마냥 좋았다. 여느 관객의 입장에서는 좋은 점도 있고 나쁜 점도 있었던 것 같다. 영화제가 끝나는 시점에서 나에게 있어 이번 친구들 영화제의 좋았던 것과 나빴던 점은 무엇이었을까. 그것들을 떠올리며 데일리 에필로그 란에 간단하게 정리해본다.


좋았던 것은  교과서를 벗어난 <수라>를 만난 즐거움이다. 마츠모토 토시오라는 난생 처음 들어보는 감독의 영화<수라>를 보면서 너무 즐거웠다. 힘든 영화였다는 점은 별개로 치고 싶다. 정성일 선생님의 표현을 빌자면 한동안 ‘교과서적’ 목록의 영화들을 숙제하는 심정으로 하나씩 챙겨보고 있었는데, 전혀 사전 정보 없는 감독의 영화를, 그것도 너무 멋진 영화를 부담(?) 없이 볼 수 있어서 정말 기뻤다. 한편으론 이런 감독을 몰랐다는 것이 부끄럽기도 하지만 그래도 기쁜 건 어쩔 수 없다. 데뷔작인 <장미의 행렬>도 봤는데, 이 역시 멋진 영화였다.

또 하나는 꿈에 그리던 <셜록 주니어>를 필름으로 접한 것이다. 내가 버스터 키튼의 영화 중 제일 처음 본 것은 <셜록 주니어>다. 그 때는 비디오로 봤었는데 좋지 않은 화질로 볼 때도 너무 좋았었고 특히 마지막 장면에서는 살짝 감동도 받았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서울아트시네마에서 '버스터 키튼 회고전'이 열렸고 그 기회로 <손님 접대법>이나 <세 가지 시대>, <항해자> 등을 필름으로 볼 수 있었는데 그 때 들었던 생각이 ‘<셜록 주니어>도 필름으로 볼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였다. 그리고 이번 영화제에서 드디어 <셜록 주니어>를 필름으로 봤다. 더할 나위 없는 기쁨이다. 지금 다시 생각해도 마지막 장면은 너무 감동적이고 슬프다. 현실에서 아무 것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키튼이 영화에 들어가서 멋쟁이 역할을 하고, 다시 현실로 돌아와서는 영화를 따라하는 것 말고는 아무 것도 못 하는 모습은 뭔가 찡하다. 그 마지막 표정을 필름으로 볼 수 있어서 조심스럽게 말하자면, 조금 행복했다. 아! 지금도 콧날이 시큰거린다.


이번 영화제에서 '아벨 페라라 특별전'은 참 좋았다. 내가 기대했던 것과 맞아 떨어지는 부분, 다른 부분들을 체크하는 즐거움이 있었다. 하지만 더 좋았던 프로그램을 꼽는다면 '이두용 특별전'이다. 이두용 감독님의 영화는 그냥 내 기대를 뛰어넘어 버렸다. <최후의 증인> 복원 판은 영상자료원에서 이미 봤었다. 그래서 ‘나머지 영화들도 <최후의 증인> 정도겠지’라고 한계치를 내 안에서 만들어 버렸었다. 왜 그랬는지 잘 모르겠지만 그랬던 것 같다. 하지만 이번 특별전을 통해 영화를 한편씩 볼 때마다 그런 말도 안 되는 생각들은 하나씩 깨져나갔고 난 그냥 입을 딱 벌릴 수밖에 없었다. 특히 카메라가 자신의 프레임을 변화시켜나가며 인물들을 따라가는 일련의 장면들은 뭔가 대단하다는 느낌이었다. ‘영화적 순간’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겠지만 이런 상투적 표현은 피하고 싶다. 영화를 몇 번이고 다시 보고 공부하고 더 생각해야 되겠구나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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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나빴던 점을 들자면 평소에 비해 관객이 너무 많았던 것이다. 좋은 영화들 실컷 보고 뭐가 나쁘냐할 수도 있겠지만, 싫은 점이 딱 하나 있었다. 평소에 비해 관객이 진짜로 너무 많았다는 것. 서울아트시네마의 관객들에 대해서는 항상 묘한 양가적 감정이 있다. 자세히는 모르지만 서울아트시네마의 사정이 어렵다고 하니 관객들이 많이 왔으면 하고 항상 생각한다. "이렇게 좋은 영화를 안 보러 온단 말이야?" 하면서 괜히 건방진 한숨을 쉴 때도 있다.

하지만 막상 영화제 기간에 관객들이 많이 오니까 나도 모를 이상한 감정이 생긴다. 뭔가 뺏긴 것 같기도 하고 약간 쌤통이 나기도 한다. <R-X마스> 같은 영화는 나 혼자 조용히 봤으면 더 좋았을 것 같다. <수라> 같은 영화는 보고 나서 한적한 로비를 걸어서, 한적한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며 좀 더 여운을 즐기고 싶다. <우묵배미의 사랑>의 경우는 "난 <우묵배미의 사랑>을 필름으로 봤지롱~~" 하면서 주위 사람들에게 자랑도 좀 하고 싶다. 하지만 다 실패했다. 못된 마음인 거 알지만 어쩔 수 없다. 인간이기에 그러한 양가성을 지니고 있는 거겠지 싶다. 더불어 그것은 단지 친구들 영화제, 시네바캉스와 같은 조금은 대중적인 행사에만, 그러한 행사로만 관객들이 쏠리는 기현상에 대한 반감의 표현인지도 모르겠다. 벌써부터 친구들 영화제 이후 프로그램인 빈센트 미넬리 회고전 때는 관객이 얼마나 많이 올 지 기대와 걱정이 동시에 생긴다. (by 김보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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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보년(시네마테의 친구들 영화제 데일리 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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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막 영화를 보기 시작한 영화 ‘초짜’인 나는 이번 친구들 영화제에서 상영된 30편의 영화들이 거의 모두 처음 보는 영화들이었다. 그렇기에 아벨 페라라의 영화들과 <글로리아>, <순응자>, <애니홀> 등의 영화들을 필름으로 처음 접할 수 있었다는 것만도 분명 행운이었고, 큰 즐거움이었다. 하지만 내게 있어 이번 ‘2008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에서 가장 기억 남는 것은 필름으로 처음 접하게 된 그 영화들이 아니었다. 가장 소중했던 그 기억은 바로 10년, 20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 ‘나의 한국영화사’ 한 페이지를 채워주신 이두용 감독님과 배창호 감독님의 마스터클래스와 시네토크 시간이었다.


나에게 있어 최초의 한국영화는 얼마 전에 엄마에게 들었던 이야기에서 시작된다. 서울아트시네마에서 마지막 3회 차 영화를 보고 늦게 들어온 나에게 엄마는 어렸을 때가 기억 나냐고 물었다. 아빠와 엄마는 당시 어디에도 맡기지 못한 애기였던 나를 데리고 피카디리 극장으로 영화를 보러 갔었다고 한다. 언제 애가 울지 모르기 때문에 비상구 근처 좌석에 앉아서 엄마는 잔뜩 긴장한 채 내내 영화가 아닌 애만 보게 됐는데, 나는 젖병을 물고 세상모르게 조용히 잠만 잤다고 한다. 엄마는 그 때 본 영화가 무엇인지 애써 기억하려고 해봤지만, 나 때문에 영화를 제대로 보지 못해서 ‘한국영화’라는 것만 기억할 뿐 영화 내용이 무엇이었는지, 어떤 배우가 나왔는지 전혀 기억하지 못 하겠다고 하셨다. 언제 애기가 울지 몰라 영화를 제대로 보지 못했던 그 날이 극장에서 본 엄마의 마지막 영화였고, 젖병을 물고 잠만 자느라 보지도 못했던 그 영화가 내게 있어서는 최초의 한국영화였던 셈이다.


제목도 모르는 최초의 한국영화 이후, 약 10년 뒤 집에서 비디오로 본 <쉬리>가 두 번째 한국영화이고, 내가 기억할 수 있는 한에서는 첫 번째 한국영화이다. 그리고 <동갑내기 과외하기>, <황산벌>, <실미도>와 같은 영화가 개봉되었던 2003년부터 제대로 극장에서 한국영화들을 보게 되었다. 80년대 후반생인 나의 한국영화사는『한국 영화사 開化期에서 開花期까지』라는 책의 목차로 치자면 마지막 장인 「한국영화의 성장과 전망 1996~현재」에 해당되는, <쉬리>(1998)에서 시작되어 멀티플렉스 극장과 함께 자라난 10년도 안 되는 짧은 역사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에게 영화를 보기 위해 아침부터 줄을 서서 기다리는 경험이나 으슥한 동시상영관이나 재개봉관에서 영화를 보는 경험이 있을 리가 없다. 그리고 나의 개인적인 한국 영화사는 1998년에서부터 시작하기 때문에 80년대와 90년대 초의 한국영화 상황과 분위기를 당시에 개봉했던 영화들을 회상하면서 이야기 할 수도 없다.


나의 이런 투정은 멀티플렉스 세대인 나로서는 절대 경험할 수 없는 것에 대한 질투다. 과거에 보지 못한 한국영화들을 종종 영화제 회고전이나 특별전에서 필름으로 볼 수 있고, 한국영상자료원에 가면 비디오나 DVD를 통해서 웬만하면 볼 수 있다. 그러나 화려한 멀티플렉스 극장에서 보는 것이나 비디오, DVD로 영화를 보는 것은 80~90년대에 극장에서 영화를 보았던 느낌과 시대의 분위기를 몸과 마음으로 온전히 느끼게 하지는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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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약한 나의 한국영화사에 대한 불만과 직접 경험할 수 없었던 과거 한국영화를 둘러 싼 분위기와 상황에 대한 질투는 <최후의 증인>과 <내시> 그리고 <꿈> 영화 상영 이후에 이어졌던 이두용 감독님과 배창호 감독님의 시네토크를 통해 간접적으로 일정정도 해소할 수 있었다. 이두용 감독님은 검열로 인해서 영화가 일부분이 삭제되고 온전하게 상영을 할 수 없었던 시대적 상황과 영화를 보기 위해 국도극장에서 명보극장까지 줄을 서던 관객들의 모습들에 대한 에피소드, 한꺼번에 2~3편의 액션영화를 연출, 제작할 수 있었던 비법(?) 등 80년대 한국영화의 후면비사들과 직접 영화 현장에서 체험한 한국영화의 변화들을 들려주셨다. 배창호 감독님으로부터는 1990년 <꿈>이 상영되었던 극장의 분위기와 관객들의 반응, 정광석 촬영감독님과 정일성 촬영감독님과 함께 영화 작업 시 생긴 재밌는 에피소드들, 두 촬영감독님 각각의 스타일, <꼬방 동네 사람들>(1982), <적도의 꽃>(1983), <황진이>(1986), <기쁜 우리 젊은 날>(1987) 등의 당신 영화 이야기에서 비롯되어 제기된 요즘 한국영화들에 대한 감독님의 경험과 생각들을 들을 수 있었다. 그리고 시네토크와 마스터 클래스에 함께 참여한 오승욱 감독, 김영진 평론가와 관객들의 약간 흥분된 목소리로 회고되어지는 이두용 감독님과 배창호 감독님의 영화를 보던 기억들까지…. 시간 반 남짓 진행된 시네토크와 마스터클래스는 경험하지 못했던 80~90년대의 시간과 공간 속으로 나를 데려다주었다. 그렇게 나는 2008년 종로 낙원상가 4층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이두용 감독님과 배창호 감독님, 오승욱 감독과 김영진 평론가, 그리고 영화를 보러 온 관객들의 말을 통해 전달되는 경험과 기억들로 ‘나의 한국영화사’에서 비어있는 1980~1990년대의 페이지를 채울 수 있었다.


만약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 데일리'에 참여하지 않았더라면, 나의 게으름 때문에 80~90년대의 한국영화에 대한 이야기들이 은밀하게 구전되는 순간을 놓쳤을 것이고 한동안은(어쩌면 평생) ‘나의 한국영화사 1980년~1990년대’ 페이지가 백지로 남겨졌을지도 모른다. 다행히도 데일리를 하면서 소중한 기회들을 놓치지 않을 수 있었고 개인적인 기록의 차원을 넘어서 오랜 시간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는 공공의 기록으로까지 남길 수 있었다.


‘2008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는 거의 끝을 달리고 있고, 데일리 친구로서 나의 임무도 끝났다. 공식적인 나의 기록의 행위는 끝이 났지만, 앞으로의 새로운 한국영화들과 보지 못한 과거의 한국영화들을 보러 동분서주 돌아다니면서 ‘나의 한국영화사’에 있는 백지들을 채워나가기 위한 비공식적인 기록들은 계속될 것이다. (by 신윤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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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윤하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 데일리 친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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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와 저기 사이의 연관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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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과 헤어짐의 반복은 그 사람을 알게 되는 그 시점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그것은 또한 나와 공동체의 문제를 인식하는 첫 발을 내딛는 작업이다. 그렇게 영화는 친구들을 필요로 하고 친구들을 만들어 나아가며 진일보하고 있는 지도 모르겠다.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를 통해 소개된 작품에서 혹은 그 기간 동안 알게 된 많은 사람들, 새롭게 사귄 친구들과의 경험이 여기 시네마테크에서 지속되기를 바란다. 

‘2008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가 이제 막을 내리려 하고 있다. 내일이 지나고 나면 한달 간의 여정은 또 다른 추억으로 자리매김할 것이다. 때론 술자리의 재미난 안주거리로 등장할 터이고 때론 개인적 사유의 대상이 될 터이고 때론 미치게 다시 간직하고파서 DVD를, 혹은 어둠의 경로를 배회하며 최근 한 달간 마음속에 담았던 그것을 끄집어내고 싶어질 것이다.


한 달 동안 정말 많은 행사가 있었다. 수백 편의 다양한 영화를 다루는 큰 규모의 어느 영화제보다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는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는, 영화를 좀 더 알고 싶은 욕망을 지닌 사람들에게는 값진 시간이었다고 생각한다. 한두 번 영화제를 통해 소개되었다고 상영 당시 매진되었다고 그 영화가 다양성을 추구하고자 하는 영화 문화 저변을 확대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었다고는 감히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기엔 상영 횟수도 너무 적고 그 영화를 접한 관객이 너무 적지 않은가. 하지만 그것을 두고 감히 값지다고 일말의 희망을 걸어볼 수 있는 것은 이번에 상영된 영화들이 이번에 일회적으로 끝나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혹은 이번이 우리와의 첫 만남이 아니기 때문이다. 시네마테크는 그런 곳이다. 화질 나쁜 비디오로 보던 옛 추억의 편린을 재상영을 통해 되살려주는 곳. 대형 스크린으로 필름으로 보는 기쁨을 전달해주는 곳이다. 오늘 내가 놓친 <글로리아>를, <로마>를 시간이 조금 더 지나면 반드시 다시 만날 수 있는 영화에 대한 애잔한 그리움과 기다림이 존재하는 곳이다.


그러한 곳에서, 내가 믿고 내가 좋아하는 친구들이 선택한 영화를 나의 사랑스런 후배들, 친구들, 새롭게 알게 된 아는 사람들과 함께 공유한 즐거움은 이루 말할 수 없다. 특히나 필자는 영광스럽게도 그 기억의 편린을 조금 더 많이 가슴에 새기고 간직할 수 있는 기회 또한 가졌었다. 바로 영화제에서 이러 저러한 목소리를 담아낸 웹데일리를 통해서다. 사실 나는 진정한(?) 데일리 친구들은 아니다. 웹데일리 친구들은 사실 20대의 젊은 혈기 왕성한 영화를 공부하고 영화를 좋아하고 영화담론을 짊어질 5명의 친구들이었다. 거기서 3년 후면 불혹의 나이에 접어들 나는 그냥 그들의 원고 교정을 봐주는 조력자(?) 역할을 했다. 그도 잘 해냈는지 자신할 수는 없으나…. 그간의 작업을 통해 느낀 면면을 영화제를 통해 다시금 사유하게 된 몇 가지 단상을, 내 머리 속에서 든 질문을 데일리 친구들 에필로그란 이름에 편승해서 편집후기란 명명으로 몇 자 적어보고자 한다.


첫째는 여기와 저기 사이의 연관관계다. 혹은 기억, 역사에 관한 거다. 영화는 20세기 최고의 예술이며 가장 많은 사람들이 접하는 문화 중 하나로 일컬어진다. 그리고 우리는 그 속에서 역사를 알고 배운다. 영화에는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공존한다. 설사 자신이 베트남전을 몰랐다 해도 <택시 드라이버>의 트래비스가 왜 불면증에 빠져 택시 운전을 시작하게 됐는지를 가늠해보다 보면 우리는 베트남전을 전쟁의 아픔을 어렴풋이 접하게 된다. 필자의 경우 출장차 몇 번 미국을 방문한 적은 있으나 거의 서부극에 나오는 텍사스 근방이었기에 동부, 뉴욕에 대한 로망을 가지고 있는데 우디 앨런의 영화를 통해, 페라라와 스콜세지의 영화를 통해 뉴욕에 대한 동경을 더 키우기도 하고, 때론 내가 만약 그 곳에서 산다면 지독히 외로운 이방인의 그 도시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염려해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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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은 <로마>에 등장한 <순응자>에서 그려진 이탈리아와 파리를 보면서 영화와 상관없이 내가 가봤던 유럽 배낭여행의 추억을 떠올리기도 하며 입가에 미소를 머금기도 한다. 또는 <내시>, <뽕>과 같은 사극을 보면서 옛 사람들의 권력욕도 작금의 현실과 다르지 않구나 역사는 그렇게 돌고 도는 순환인가, 과연 여성으로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뿐만 아니다. <우묵배미의 사랑>을 보면서 우묵배미는 일산 신도시가 만들어지기 전 어디쯤이라고 들었는데 왜 저기는 지금의 하남시(예전에 신장이었던)행 버스가 등장했던 것일까 의문을 갖기도 한다. 그것이 옥의 티였건 혹은 우묵배미가 어디였는지는 상관없었기 때문이던 사실 그것은 중요치 않다. 그렇게 영화에는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올곧이 담겨 있어 우리들은 그를 통해 역사를, 도시를, 때론 개인의 추억을 되새김질 하게 만든다는 게 중요하다.


그건 달리 표현하면 여기와 저기 사이의 연관관계를 말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지금 여기라고 하는 것과 그때 저기라고 하는 것이 전혀 무관하지 않다는 것. 우리는 그렇게 영화 속에서 영화 안에서 역사를 배우고, 역사를 인식하고, 느끼고 심지어 그 영화가 스크린에 투영된 그 시간을 함께 공유하며 또 하나의 역사를 만들어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시간은 멈추지 않으니까. 웹데일리 작업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그냥 영화 보면 되지 뭐 굳이 그것을 기록할 필요가 있을까 싶기도 하고 누가 요즘 글을 읽을까 싶기도 하다. 또는 어차피 지나가버린 그 시간의 흔적을 그것도 100% 온전히 복원하긴 싶지 않은 그 작업을 해야만 할까하는 의문이 생기지만 어차피 역사는, 기억은, 흔적들은 그것이 텍스트로 전환될 때 100% 온전한 상태일 수 없는 편린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인식한다면 기록적 차원에서 역사를 만들어가는 주체로서 유의미한 작업이었지 않나 생각하게 된다. 더불어 그를 위해 발 빠르게 움직이며 애써준 데일리 친구들에게 감사한다.


둘째는 진실과 거짓의 차이. 삶에 대한 각성이다. 혹은 언어로 내뱉어진 것의 한계에 관한 질문이다. 영화는 만들어진 허구이다. 허구 즉 거짓을 전제로 한 것이기에 그 속에서 진실된 의미를 찾는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며 분명 한계가 존재한다. 그런데 우린 그 속에서 끊임없이 진실된 의미를 찾아 헤맨다. 과연 진실이란 존재하는 것인가, 거짓 속에서 진실을 찾는다는 의미는 무엇일까라는 질문을 던져보게 된다. 이두용 감독의 <최후의 증인>은 한 미력한 수사관이 사건의 전말을 진실을 밝혀보고자 그 사건과 관계된 증인들을 만나는 과정을 그 족적을 다룬다. 하지만 그것은 그네들 증인들의 언어를 통해 뱉어진 증언을 통해서다. 과연 그것이 진정한 진실에 닿을 수 있는 온전한 기억인가를 되묻는다면 ‘그렇다’라고 답하기 정말 힘들다. 내가 가진 기억도 내 언어도 머리 속에서 생각한 것과 말로 내 뱉어질 때 또 다르고 수정되고 변경되고 거기에 또 무언가가 덧붙여지면 미궁 속으로 빠져들게 마련이다. 수 많은 영화의 테마 중에서 가장 많은 것을 꼽으라면 아마 남녀 간의 사랑, 러브스토리를 다룬 얘기가 있을 수 있고 또 하나를 꼽자면 밀고에 대한 것을 들 수 있을 것이다. 무언가를 찾아 다니는 추적 시퀀스를 다룬 영화는 정말 많다. 이번 친구들 영화제에 작품 목록을 뒤져보아도 쉽게 찾을 수 있을 정도다. 그것은 짜릿한 스릴과 재미가 덧붙여지는 소재이기도 해서이지만 우리네 인간에게는 진실에 접근하고자 하는 욕망이, 삶을 지탱해 나가는 이유를 찾고자하는 열정이 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사실 진실과 거짓의 차이는 어쩌면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다. 아니면 금방이라도 손이 베일 만큼 아주 얇디얇은 종이 한 장 차이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그 무게감이 느껴지지 않을 만큼.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들은 부득부득 그 차이에 목을 매단다. 아마도 한계를 극복하고 싶은 욕구, 삶에 대한 열정 때문일 것이다.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살아지는 것’이라는 말이 있다. 허나 그렇다 해도 세상에 빛을 보았다면 한번쯤 살아가고 싶은 욕구가 생기는 게 인지상정이다. 설사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말이다. 거짓덩어리의 영화에 진실을 찾고자 하는 우리네 욕망은 그와 다르지 않다. 그렇게 영화는 진실과 거짓 사이의 차이를 다루면서 삶을 반영하고 삶을 기대하게 만든다. 더불어 그것이 영화 언어, 혹은 영화 담론 형성을 위해 시네마테크가 존재하는, 시네마테크를 찾는 존재 이유다.


끝으로 셋째는 친구, 나와 공동체의 문제. 혹은 만남과 헤어짐에 관한 문제다. 영화에는 실로 많은 사람들이 등장한다. 또한 극장에서 영화를 볼 때면 정말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헤어지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그렇게 영화와 함께 하다보면 매번 만남과 헤어짐의 연속적인 반복이 이어진다. 스크린 속의 로버트 드니로를 하비 케이틀을 리버 피닉스를 물론 나는 만난 적이 없고 그네들이 나를 알 턱도 없다. 현실에서는 말이다. 하지만 나는 기억한다. 트래비스의 그 몸을, 청춘의 대명사로 일컬어지는 리버 피닉스의 그 젊은 날의 표정을, 그리고 인사동 거리를 배회하며 인사동의 한 카페나 포장마차에서 그네들의 표정과 얼굴과 몸에 매료되어 아주 열심히 영화를 같이 본 나의 친구들과 지인들과 그네들의 이야기를 건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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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잘생긴 사람은 그렇게 세상을 일찍 등지는 것일까?”부터 “강단 있던 트래비스의 몸 정말 죽이지 않아!” “악질경찰의 그 역할은 하비 케이틀이 아니면 상상할 수 없어!” 등등. 쓸데없이 목소리들을 남발하는 것일지도 모르지만 그렇게 영화와 조우하고 현실의 영화 친구들을 늘려나간다. 한편으론 “혼자보고 혼자 생각하면 그만이지 않나? 꼭 같이 나눌 필요가 있을까?” 싶을 때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해가며 친구를 늘려나가는 것은 혼자 사는 인생이 아니라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이기 때문일 것이다. 필자가 극장에서 만난 사람들이 모두 친구라고 말할 수는 없다. 게 중에는 친구가 되고픈 사람도 있고 때론 저치는 좀 멀리하고 싶네 싶은 사람도 있다. 수없이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 금방 잊혀져버릴 지도 모르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뇌리에 꼭 박혀 결코 잊지 못하는 이도 있다.


친구들 영화제에 자신의 선택작을 내놓은 내노라하는 감독, 배우와 같은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혹은 이번 데일리 작업을 함께 해 온 젊디 젊은 20대의 후배, 데일리 친구들도 마찬가지다. 사실 필자는 친구들 영화제를 할 때마다 정말 그들을 정말 시네마테크의 친구로 말할 수 있나, 친구라는 말을 그리 함부로(?) 붙일 수 있나 하는 생각을 종종 했다. 그것은 아는 사람과 친구에는 분명 차이가 있다는 나름의 견해에서 비롯된 것이다. 하지만 한 달여 간의 영화제 기간 동안 거의 매일 발 도장을 찍으면서 아는 사람도 친구가 될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을 다시 하게 됐다. 이번 데일리 작업을 함께 한 친구 중 한 이는 언젠가 “시네토크 녹취록을 하도 들어서 이제 그 사람을 정말 내가 아주 잘 아는 사람으로 착각하게 되요”라고 말한 적이 있다. 설사 그 시네토크의 주인공이 그 친구를 지금은 못 알아보더라도 언젠가는 그 녹취를 푼 친구의 글을 접하면서 인연이 닿으면, 혹은 훗날 시네마테크에서 다시 조우하게 될 때 인사를 하면 ‘반갑다 친구야’를 외칠 날이 있을 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해본다. 만남과 헤어짐의 반복은 그 사람을 알게 되는 그 시점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그것은 또한 나와 공동체의 문제를 인식하는 첫 발을 내딛는 작업이다. 그렇게 영화는 친구들을 필요로 하고 친구들을 만들어 나아가며 진일보하고 있는 지도 모르겠다.


조금은 두서없이 한 달여 간의 나의 2008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 혹은 웹데일리 작업을 통한 몇 가지 사유를 펼쳐보았다. 아쉽기도 하고 약간은 부끄럽기도 하다. 그러나 기회가 주어진다면 이 여정을 계속하고 싶다. 영화를 온전히 이해한다는 것은 텍스트에 침잠하여 그 내밀한 의미를 파악하고 핵심에 접근하려는 노력과 동시에 그러한 텍스트가 태동하게 된 사회적 배경과 역사적 맥락을 두루 살피는 일이 지극히 중요하다. 맥락이 없는 텍스트는 맹목이고 텍스트가 없는 맥락은 공허하다는 생각을 한다.


필자는 이번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를 통해 소개된 작품에서 혹은 그 기간 동안 알게 된 많은 사람들, 새롭게 사귄 친구들을 통해 여기와 저기가 결코 무관하지 않고 우리네 삶 자체를 지탱하는 역사의식을 새삼 경험하게 됐다. 그 경험이 바로 여기 시네마테크에서 지속되길 또한 바라마지 않는다. (by 신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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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는 개인의 구원에 관한 영적인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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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일 저녁 8시, <택시 드라이버> 상영 전 이 영화를 선택한 김지운 감독의 짤막한 영화 소개가 있었다. 원래 23일 상영 때 시네토크가 예정되어 있었으나 공교롭게도 <놈놈놈>의 마지막 촬영이 겹치는 바람에 취소되고 오늘에야 아트시네마를 찾은 그를 만날 수 있었던 것. 일정 변경으로 넉넉한 시네토크 시간이 마련되지 못해 아쉬움이 남기도 하나 자신이 선택한 <택시 드라이버>에 대한 누구 못지않은 애정을 풀어 놓는 그의 목소리는 반가움을 더한다. 영화 <택시 드라이버>가 한 개인의 구원에 관한 영적인 이야기라 말하는 김지운 감독의 추천의 변을 싣는다.

마틴 스콜세지의 <택시 드라이버>의 두 번째 상영일이었던 31일 8시, 김지운 감독이 이번 친구들 영화제에 자신이 추천한 영화 <택시 드라이버>를 관객들과 함께 보기 위해 아트시네마를 찾았다.


상영 전 짧게 나마 영화 소개를 잊지 않으며 관객과의 만남을 가진 김지운 감독은 이 자리에서 먼저 사과의 뜻과 <놈놈놈>에 대한 다짐을 유머러스하게 밝혔다. “마지막 촬영을 끝내고 숙소로 돌아와 이메일을 확인하자 내게도 서울아트시네마에서 보낸 김지운 감독의 시네토크 취소와 관련한 단체 사과 메일이 와있더라"며 “일이 그렇게 된 데에 진심으로 사과의 말을 전합니다"라고 말했다. 또한 그는 한편으로는 자신 역시 촬영 일정 때문에 이번 친구들 영화제에서 상영된 영화들을 많이 보지 못해 아쉽다는 말도 함께 전했다.


“영화를 찍는 내내 여기 와 계신 배창호 감독님의 <꿈>을 비롯해 이두용 감독님의 특별전, 아벨 페라라 특별전 같이 어쩌면 필름으로는 다시는 못 볼수도 있을 영화들을 내 영화 <놈놈놈> 찍는 것 때문에 못 보게 된 것이 크게 아쉬웠습니다. 그런 아쉬움을 묻으면서 꼭 <놈놈놈>이 성공하고 말리라는 근거도 없고 이치에도 안 맞는 다짐을 하면서 찍었습니다.”


김지운 감독의 근거 없는 농담(?)에 극장 안에 슬며시 웃음이 번졌다. 본격적인 영화 얘기를 시작하기 전에 김지운 감독은 이번 영화제에서 유일하게 본 <순응자>에 대한 마틴 스콜세지의 평을 들려주는 센스도 발휘했다. 그의 전언에 따르면 마틴 스콜세지는 <순응자>를 두고 “마치 장 뤽 고다르와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를 한 침대에 집어넣고 총에다 머리를 갖다 대면서 ‘뭐라도 한편 만들어봐라’해서 나온 영화”라고 했단다. 당시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는 마틴 스콜세지 같은 동시대 감독들에게 있어서 경외의 대상이면서 동시에 질투의 대상이었다고 한다. 김지운 감독에게도 그랬음이 틀림없다. 그는 “역사에 관해 정치적으로 암울한 비관적인 메시지를 명랑한 형식으로 보여줄 수 있을 거라 생각지 못했기 때문에 충격적 이었다”고 유일하게 보게 된 <순응자>에 대한 짧은 소감을 전했다.


베르톨루치가 마틴 스콜세지의 경외의, 혹은 질투의 대상이었듯 김지운 감독에게는 베르톨루치 저리가라 할 정도라 마틴 스콜세지가 하나의 전설이자 신화였는지도 모르겠다. 그는 자신의 추천작 <택시 드라이버>에 대한 소개를 시작하며 “이 영화에 대해서는 이 영화만큼은 여기 바로 이 자리에 숨어있는 시네필들의 정보나 해석이 저의 것보다 훨씬 뛰어나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러나 이 영화에 대한 사랑과 애정을 말씀드리자면 저도 그 분들 못지않게 막강한 사랑과 애정을 갖고 있다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라고 단언했다.


김지운 감독은 이 영화에 대한 일화 또한 들려주었다. 그의 얘기를 그대로 옮겨보면 이렇다. 처음에 이 영화의 각본가인 폴 슈레이더는 브라이언 드 팔마에게 제안을 했다고 한다. 둘이 체스를 두면서 폴 슈레이더는 드 팔마에게 <택시 드라이버>의 시나리오를 설명했다. 월남전에 참전했던 남자가 미국에 돌아와서 불면증에 시달리다가 야간 택시드라이버를 하게 되면서 도시의 악덕이미지를 깨끗이 소탕하기 위해 벌이는 동시에 어린 창녀를 구원하기 위해서 살육을 벌인다는 얘기라고 들려주었다 한다. 살육전에 대해 일가견이 있다고 할 수 있는 드 팔마는 흥미를 보였으나 도저히 자신은 못할 것 같다고 했는데 그 당시 마틴 스콜세지는 둘을 많이 따라다녔다는 후문. 당시 폴 슈레이더는 오즈에 대한 탁월한 비평서를 내기도 하고 할리우드에서 유명한 시나리오 작가로도 자리매김하던 시기였고, 드 팔마는 <웨딩 파티>라던가 <디오니소스>를 찍으면서 인디 영화에서 전형적인 감독으로서 자자한 명성을 얻은 때였다. 스콜세지 역시 <앨리스는 더 이상 살지 않는다>, <비열한 거리>로 할리우드에서 젊은 피로 승승장구 하던 때였으나 폴 슈레이더와 드 팔마에 비할 수 없었던 모양이다. 스콜세지는 폴 슈레이더에게 도스토예프스키의 단편소설 <도박꾼> 각색을 의뢰하러 갔다가 <택시 드라이버>를 접하게 되고 결국 스콜세지 그의 손에서 비로소 영화화됐다는 것. 주인은 인연은 그렇게 따로 있나보다 싶다.


김지운 감독은 또한 <택시 드라이버>를 놓고 로저 에버트의 말을 인용하면서 “수 십 번 영화를 봤지만 볼 때마다 매번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는 이 시대의 가장 위대한 걸작이자, 이 시대의 위대한 걸작이면서 가장 위력적인 영화”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특히 그는 <택시 드라이버>를 사회 비판적인 관점보다는 개인적인 관점에서 보게 된다고 토로했다. “도시의 악덕 이미지와 타락한 개인이 말끔하게 소탕하는, 영웅이 없는 사회에 반 영웅이 나타나서 그저 소탕하는 영화라기보다는 개인적이고 내밀하고 꽉 막힌 세상에서 탈출을 시도하고 구원받으려 하는 실존적인 문제나 존재의 딜레마를 겪고 있는 한 인생에 대한 영적인 얘기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끝으로 김지운 감독은 10년 만에 이 영화를 필름으로 다시 보는 영적인 시간을 관객들과 함께 갖게 되어서 기쁘다는 말을 전하며 소개를 마쳤다. (이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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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에서는 6명의 '데일리 친구들'이 참여해 영화제 기간 동안 웹데일리를 통해 매일 진행된 시네토크를 정리하고 영화와 관련한 글들을 작성했다. 영화제가 끝나가는 아쉬움을 달리면서 이제 데일리친구들의 짧막한 에필로그를 적는다. 영화에 대한 열정만으로 20대 젊은이들과 함께 '필름에 관한 짧은 사랑'이라는 영화잡지를 창간했던 이도훈의 영화 사랑과 주성치의 <파괴지왕>을 시네마테크에서 꼭 만나고 싶다는 그의 소망을 소개한다.(편집자)

나는 내가 시네필인지 아닌지 확신이 없다. 간혹 데면데면한 사이인 사람이 지나가는 말로 나를 ‘시네필’이라고 부르면 얼굴이 화끈거린다. 그러나 극장 구경(?)을 즐겨하고 일주일에 사흘정도 극장 기운을 쐬지 않으면 안달이 난다. 그래서 좋은 기운이 느껴지는 극장을 찾아 놀러 다니기를 좋아한다. 내가 자주 가는 극장은 서울아트시네마다. 처음으로 영화를 본 극장도 그 곳이요, 연애를 시작한 곳도 바로 그 곳이다. 영화를 보게 되면서 학교에 가면 늘 외로웠지만, 극장에 가면 혼자여도 즐거웠다. 나는 영화에 안달이 났다. 친구 손에 이끌려 아트선재센터 지하에 위치한 시네마테크에 처음 발을 디딘 2003년 여름부터였던가. 나는 극장에서 영화를 보기 시작했다.


내게, 처음 본 영화가 무엇이냐고 물어본다면 주성치의 <파괴지왕>이라고 말한다. 그게 극장에서 처음 본 영화냐고 되묻는다면, 나는 고개를 설레설레 젖는다.


내가 영화를 처음 본 곳은 교실이다. 이 얘길하자면 한 친구 얘길 안 꺼낼 수가 없다. 일주일간 방에서 자장면만 먹고도 살 수 있는 ‘올드보이’ H군은 내게 ‘영화 전도사’ 같은 존재였다. 어렸을 적 아버지와 함께 쇼 브라더스의 영화를 즐겨보던 H군. 고등학교 입학식에서 처음 만난 H는 영화를 좋아한다고 자신을 소개했다. 그는 많은 영화들 중에서도 이연걸의 영화를 좋아하고 주성치를 존경했다. 고등학교 2학년, 입시에 찌들어가던 나와 내 친구들은 여드름 짤 시간도 아껴가면서 대입준비에 박차를 가하고 있었다. 낭만이란 없었다. H는 타성에 젖은 친구들, 현실에 굴복하는 친구들이 찌질해 보였던 모양이다. 그러던 어느 날, 담임선생이 자리를 비운 야간 자율학습 시간. H는 오래된 비디오 테입 하나를 가지고 와서는 기습적으로 틀어버리는 만행을 저지른다. 그건 혁명이었다. 곧이어 반 전체가 눈과 귀를 집중했던 40인치 프로젝션 티비에서는 EBS 교육방송 대신 주성치의 <파괴지왕>이 상영되었다. 의아해하던 아이들은 곧 월드컵 열기를 능가할 정도로 열광했고, 열광을 넘어 발광하기 시작했다. 당시 전교 1등 하던 범생이 녀석도 영어 문제집을 덮고 책상위로 올라가서 손뼉 치고 발을 동동 구르면서 영화를 봤던 걸로 기억한다. 누구하나 공부하자는 소리를 하지 않았다. 집단적인 그 행동은 훗날 우리의 일탈이자 혁명으로 기억된다.

H가 선동한 혁명은 피 흘리지 않고도 이루어낸 깨끗한 성공이었다. <파괴지왕>에서 계란을 두 눈에 뒤집어쓰고 불에 달군 모래에 두 손을 팍팍 찔러 넣는 주성치는 우리의 영웅으로 급부상했다. H는 주성치를 전파하는 전도사 역할을 했다. 이후 우리 반 아이들은 시간 나는 대로 선생님 눈치를 봐가면서 H군이 준비해온 <소림축구>와 <희극지왕>, <서유기 월광보합>같은 영화를 보고는 했다. 40명 남짓한 남정네들은 그 날 이후 주성치를 교주로 모시게 된다. <파괴지왕>을 함께 보던 그날, 우리는 영화를 함께 보았고, 그래서 더 행복했다. 영화가 예술이나 오락이 될 수 있으려면 혼자가 아니라 함께 보고 열광해야 한다는 걸 지금, 그 시절을 생각하면서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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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도에서 서울로 유학 온 H와 나는 자주 만나는 사이였다. 당시 H와 나는 대학생활에 지쳐있었다. 대학생활은 우리가 TV 시트콤에서 본 것처럼 아기자기 하지 않았고, 달콤하지 않았다. 낭만과는 거리가 멀고 지리멸렬했다. 특히 당시 나는 짝사랑 하던 여자에게 4번 프러포즈했지만 4번 다 보기 좋게 차였다. 그녀는 잔인했고, 나는 상처 받았다. 봄이 가고 여름이 올 무렵, 실연의 상처로 피폐해진 나를 안쓰럽게 쳐다보던 H는 어딘가로 나를 이끌었다. 돌담길을 지나 풍문여고생들의 향긋한 샴푸 냄새가 사라지는 길 끝에 다다르니 극장이 나타났다. 서울아트시네마가 그곳에 있었다. 돌담길 길의 끝에 극장이 있었고, 그 길의 끝에서 내 영화 역사가 시작되었던 것이다. 소격동에 있던 시네마테크는 이후 구 허리우드 극장으로 자리를 옮긴다. 낙원상가 4층 옥상에 위치한 지금의 서울아트시네마는 UFO처럼 보인다. 모르긴 몰라도, 전 세계에서 하늘과 맞닿아 있는 극장은 이곳뿐일 것이다. 시네마테크의 그로테스크한 모양새와 옥상이라는 위치가 맞물리면서 SF적인 발상도 해본다. 밤이 되면 극장위로 별이 쏟아지고, 극장 뒤편으로는 네온사인이 휘황찬란한 빛을 뽐낸다. 간혹 오색찬란한 네온사인 빛이 지구별 전체에 보내는 신호 같기도 하다. 아마도 밤하늘에 신호를 보내서 세계 각국의 영화 친구들에게 메시지를 보내고 있는 건 아닐까? 그래서 우리가 세계 각국의 고전 명작을 서울 한 복판에서 보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이렇게 생각하고 보니 정말 쌈 마이 같은 극장이다. 김성욱 프로그래머가 어디선가 한 말대로 서울아트시네마는 B급 극장이며, B급 상상력과 키치적 낭만이 교차하는 곳이다. 나는 B급 극장과 B급 낭만이 있는 이곳이 좋다.


혼자 즐겁자니 지금 내 곁에 없는 친구들에게 미안하다. 그들 중 대다수는 군대에 있거나 개인적인 사정으로 지방에 머물고 있어 서울아트시네마에 오지 못한다. 이번 친구들 영화제에서 버스터 키튼의 <셜록 주니어>를 보면서 H군과 주성치, 그리고 고등학교 친구들을 생각했다. 먼 훗날 주성치가 버스터 키튼처럼 시네필의 사랑을 받아 아트시네마에서 회고전이 열리게 된다면, 나는 고등학교 동창들을 모아 반창회를 열 것이다. 고등학교 때처럼 우리의 ‘영화 전도사’ ‘주성치 대변인’ H를 무대 위에 올려 사전 소개를 할 수 있도록 하고, 친구들과 필름으로 <파괴지왕>을 단체 관람 하련다. 나는 지금 내 곁에 없는 나의 영화 친구들과 함께 열광하고, 발광하면서 영화를 보고 싶다. 그러니 부디 서울아트시네마가 장수하길 바라며 더불어 나와 내 친구들의 영화 사랑도 식지 않았으면 한다. 주성치의 <파괴지왕>을 필름으로 볼 그날 까지. 서울아트시네마여 지구를 떠나지 말아다오!! (by 이도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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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도훈(2008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 데일리 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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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ICEBREAKERS 2009.04.13 19:26 신고

    갑자기 파괴지왕이 생각나서 우연히 블로그에 들리게 되었네요. 잘 보고 갑니다^%^

1990년 명보극장, 애타게 민공례에 대한 기억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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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중 한사람인 김태용 감독이 <우묵배미의 사랑>을 선택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나는 뛰는 가슴을 주체할 수 없었다. 이러한 설렘은 2년 전쯤 광화문의 한 극장에서 <세상의 모든 아침 Tous Les Matins Du Monde>(1991)을 다시 스크린으로 보던 날의 떨림과도 유사했다. 다시 이 영화를 극장에서 보게 되다니!

장선우의 <우묵배미의 사랑>이 개봉했을 때, 그러니까 내가 주저 없이 명보극장을 찾은 것은 1990년 4월 초 쯤의 일이다. 이미 1년 전 공중파를 통해 인기몰이를 한 드라마 [왕룽일가]의 영향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명보극장에 대한 신뢰 때문이었다. <깊고 푸른 밤> <그 해 겨울은 따뜻했네>를 위시한 한국영화 개봉 비중이 높았던 곳도, 당시 대한민국에서 가장 좋은 음향시설을 갖춘 곳도 명보극장이었기에 내게 있어 명보극장 개봉작이란 곧 볼 만한 좋은 영화를 의미했다.

장선우의 세 번째 연출작 <우묵배미의 사랑>(1990)은 서울에서 소일하다 예전에 살던 우묵배미로 다시 돌아간 배일도가 그곳에서 미싱사 민공례를 만나 벌이는 사랑과 불륜의 이야기를 회고담 형식으로 그려내고 있다. 박영한의 소설『왕룽일가』에 따르면 우묵배미는 “서울시청 건너편 '삼성' 본관 앞에서 999번 입석을 타고 신촌, 수색을 거쳐 50분쯤 달려와 낭곡 종점”근처에 있는 변두리 마을의 이름이다. 김포 부근에 위치한 소읍으로 예전에는 완연한 시골이었겠지만 지금은 연립과 빌라의 신축 분양 광고가 줄지어 나부끼고 있는, 도시도 아니고 시골도 아닌 곳이다. 다만 영화에서는 ‘우묵배미’가 구리시 너머 어디쯤 위치한 것으로 보여 지는데 이것은 전혀 중요하지 않다. 왜냐하면 서울의 지속적 팽창이 마침내 인근 도시까지 파고들어 난개발을 유도한 결과 생겨난 동네가 '우묵배미'이고, 영화는 그곳에 있던 원주민과 흘러들어온 사람들 사이에서 피어난 이야기라는 점에서, 유사한 삶의 풍경을 간직한 곳이라면 어디라도 무방할 것이기 때문이다.

영화는 남편의 학대와 힘겨운 노동 속에 사는 민공례와 “아무 남정네 앞에서나 절구통만한 엉덩이를 흔들어대고 헤프게 웃음 짓는”천박하고 거친 아내에게 정나미가 떨어진 배일도 사이의 불륜을 어떤 구원처럼 묘사하고 있다. 추레한 공간과 남루한 삶을 전경화시키고 있음에도 이들의 불륜이 한 없이 따뜻하게 느껴지는 것은 이 때문일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배일도의 아내인‘새댁’의 영화 속 위상이다. 이를테면 영화 초반 배일도의 입을 빌려 존재하던 새댁이 어느 순간엔가 독자적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는 데, 이렇듯 돌연한 화자의 교체와 위상변화가 의미하는 바가 무엇이냐는 것이다. 우리가 배일도와 민공례가 아닌 ‘새댁’을 주목해야 하는 것과 ‘민공례’가 아닌 ‘민공례에 대한 기억’을 찾아서라는 나의 표현도 같은 맥락이라 하겠다. 민공례와 벌였던 짜릿한 불륜의 시간들,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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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처음과 마지막 장면을 기억해보자. 그러니까, 민공례가 영원히 사라져버린 시점에서 마무리되는 영화는, 민공례가 아닌 다른 여자와 외박을 하고 들어온 어느 날 새벽, 배일도의 회상으로 시작된다. 흥미롭지 않은가? 그녀가 없으면 못 살 것처럼 굴고 “진흙에서 피어난 연꽃”같은 여인 민공례를 만나게 해준 우묵배미를 잊을 수 없다던 그가, 민공례가 떠난 후 다른 여자와 불륜을 저지르고 들어와서는 그녀를 회상하다니. 그것도 하필 민공례와 낭만적 정사를 나누던 그러나 지금은 뼈대만 앙상하게 남은 비닐하우스 옆에서 말이다.

또 달리 주목할 것은 이 영화가 감독의 필모그래피에서 보기 드물게 균질적 완성도를 보여주었다는 점인데, 다시 말해 전통과 현대, 고상함과 비속함, 비극과 희극, 육체와 영혼, 연민과 냉소, 카니발과 일상 등 대극의 세계를 통해 당대사회와 긴장하면서 교접하는 방식을 택해온 장선우 영화의 미학이, <우묵배미의 사랑>에 이르러 정점을 찍게 되었다는 것이다. 아울러 민공례와 새댁의 대극적 이미지를 통해 진일보된 계급투쟁의 방식을 보여주는 감독의 시선 또한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결국 영화의 오프닝 신은 고전적이고 낭만적이며 수동적인 여성의 몰락과 강하고 능동적이며 억센 투사형 여성이 지배하게 될 가까운 미래에 대한 눈 밝은 예언인 동시에, 샛길로 빠질 수밖에 없는 관계에 관한 친절한 안내서에 다름 아니었던 것이다.

대립적 세계인 세 남녀 사이를 유영하며 그것들을 충돌시키고 화해시키는 동안 만들어내는 리얼리즘, 장선우가 장기로 사용해왔던 영화미학은 관객과의 거리를 제거하며 영화 속으로 빠져들도록 기능하고 있다. 예컨대 영화 종반 새댁에게 붙잡힌 배일도가 옷이 찢겨진 채 끌려나올 때 동네사람들이 그들을 따라가며 택시를 둘러싸던 시퀀스와, 배일도의 고향집에 당도했을 때 마을 사람들이 마당으로 모이는 시퀀스는 카니발처럼 연출되고 있는데, 이 제의(祭儀)는 가정에 안착해 일상으로 되돌아간 배일도와  생선을 발라줄 정도로 조신해진 새댁의 모습으로 이어지면서 관객의 정서적 참여를 추동하고 있는 것이다.

진보적 영화주의자임을 자처했던 장선우는 시대를 앞서가는 비평가보다 한발 앞선 시선으로 영화를 찍었고 신인보다 더 결기 넘치는 방법을 통해 시대를 담아낸 인물이었다. 그런 점에서 <우묵배미의 사랑>이 이룬 안정적이고 흠잡을 데 없는 완성도는 여타 그의 영화들과 비교할 때 이질적일 수밖에 없어 보인다, 하지만 달리 말하면 장선우의 영화가 새로운 시기를 맞고 있음을 뜻하는 것이기도 했다. 또한 이 영화에는 감독의 (민중을 소재로 하지 않은)다른 영화와는 달리 풍자와 조롱의 시선을 거두고 민중의 삶에 대하여 속살거리고자하는 장선우의 속내가 감지된다. 풍자와 비판이 도덕적이거나 하다못해 상상적 우월감에서 비롯된다는 점을 감안할 때, 애초부터 우묵배미 민중의 삶은 풍자의 대상이 될 수 없었던 까닭이다.

<우묵배미의 사랑>은 장선우가 고달픈 민중의 삶 속에서 길어 올린 사랑과 불륜의 따뜻한 휴먼드라마이다. 동시에 그는 어느 추레한 술집 구석에 앉아 배일도와 민공례의 이야기를 엿듣거나 새댁의 악다구니를 사람 좋은 웃음으로 받아넘기기도 하고, 배일도의 외도행각을 눈감아 주기도 한다. 그렇다면 지식인의 형상을 한 검은 뿔테의 주인집 남자, 혹시 그가 장선우의 페르소나는 아니었을까? (백건영: 영화평론가, 네오이마주 편집장)

[관련 포스트]
김태용 감독의 ‘내 인생의 영화’ 장선우의 <우묵배미의 사랑>
장선우의 <우묵배미의 사랑>에 관한 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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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의 거대한 서커스, 축제 같은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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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일 1시, 친구들 영화제에 새 친구로 영입된 이명세 감독이 추천한 페데리코 펠리니의 <로마>가 상영됐다.  한 편의 축제 같은 영화가 끝난 후 '모두들 왁자지껄 떠들기를 기대했다'는 이명세 감독의 소망을 시작으로 영화에 관한, 때론 삶에 대한 감상을 풀어 놓는 자리가 됐다. 여기에 소란스런, 하지만 축제가 끝난 후의 정적을 포함했던 그 흔적들을 짧게나마 옮겨 적어본다.


김성욱(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래머) : 맨 앞줄에 앉아 영화에 나온 가족들처럼 스크린을 올려다봤다. 오히려 그것이 더 다행이었던 것 같다. 등장인물이 많은 영화여서 디테일들을 보는 재미가 컸다. 너무나도 많은 얘기들이 펼쳐지는 한 편의 거대한 서커스를 본 듯한 느낌이 든다. 이 영화를 선택하신 감독님의 느낌은 어땠는지?

이명세(영화감독) : 페데리코 펠리니 감독은 내가 영화학교를 만든다면 꼭 모시고 싶은 주임교수 중 하나다. <로마>(1972)는 그 학교의 교과서다. 물론 펠리니만 있는 것은 아니다. <윌로씨의 휴가>의 자크 타티, <만춘>의 오즈 야스지로, <카메라맨>의 버스터 키튼, <키드>의 찰리 채플린까지 5명을 꼭 모시고 싶다. 거기서 나는 물론 수위다(웃음). 미국에서 처음 이 영화를 봤을 때 매우 가슴 벅찼던 기억이 있다. 이것이야 말로 영화의 전부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함께 영화를 봤던 친구들과 흥분에 겨워 며칠 동안 계속 얘기했던 추억을 떠올리면서 추천했다. 그런데 생각보다 관객 분들이 흥분보다는 혼란을 느끼시는 것 같다. 엄지원 씨도 조금 전 “마치 커다란 스테이크를 먹은 것 같다. 소화하기가 힘들다”고 말하더라. 마치 내 영화 <M>의 시사 후의 혼돈을 떠올리게 한다(웃음). 영화 전체를 ‘로마’라는 서커스라고 생각하면 간단할 것 같다. 영화를 보고 다 같이 축제처럼 왁자지껄하게 떠들기를 기대했다. 영화에 어떤 메시지가 있다고 생각하거나 영화를 이해하려는 방식을 버리면 축제처럼 영화를 즐길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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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욱 : 영화에 굉장히 많은 사람들이 등장한다. 펠리니의 분신처럼(그리고 실제로 펠리니가 일부 장면에 출연하고 있다) 보이는 한 명을 제외하고는 주인공이 따로 없이 모두 엑스트라들이 나온다. 때론 그들이 모두 주인공인 영화다. 영화 초반부에 학교에서 선생이 아이들에게 ‘조용히 해라, 질서를 지켜라’라는 말을 하는데, 영화는 정확하게 그 말의 반대를 보여준다. 소란스럽고 무질서하다. 특별히 영화의 어떤 면을 좋아하시는지 궁금하다.

이명세 : 이 영화는 주인공이나 사건, 드라마를 쫓아가는 영화가 아니다. 이야기를 좋아하시는 분들은 펠리니의 영화 중에서 <길>이나 <카비리아의 밤>을 좋아하실 거다. 개인적으로는 <아마코르드>와 <로마>가 좋다. 영화를 처음 봤을 때 영화 속 로마의 소란함이 내가 86년에 처음으로 로마에 가봤을 때의 소란함과 매우 유사하다고 느꼈다. 여기선 로마 자체를 볼 수 있다. 과거의 로마와 영화를 찍을 당시의 로마를 볼 수 있다. 음식 문화, 떠드는 사람들의 소리들, 아이들, 신부님들을 보여주면서 이야기를 통하지 않고 이미지로 ‘이것이 로마다’라고 말한다. 또 화려한 소란과 정적, 마지막의 오토바이의 질주와 그림자는 마치 불꽃놀이처럼 명멸하는 인생에 대한 비유이자 로마의 역사와 현재를 보여주는 다양한 방식을 나타낸다 싶었다. 그 다양한 각도 때문에 보는 사람마다 다른 것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보물찾기와 같은 영화가 아닌가 생각한다. 미국에서 같이 본 친구들과도 각자 ‘절대 숏’을 뽑아보았는데 오늘 영화를 함께 본 여러분들의 ‘절대 숏’은 무엇일지 몹시 궁금하다.


김성욱 : ‘절대 숏’이라 하면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이명세 : 나는 모든 영화에는 그 영화 전체를 아우를 수 있는 ‘절대 숏’이 있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면 오즈 야스지로의 <만춘>에서 사과를 깎는 아버지의 클로즈업 숏을 개인적으로 나는 절대 숏으로 꼽는다. ‘이제 저 아버지는 혼자서 사과를 깎을 수밖에 없구나’를 느끼게 만든다. 압축된 시어처럼 한 인생이나 영화 전체가 녹아있는 숏이다. 이번에 볼 때 <로마>의 절대 숏은 후반부의 어느 축제에서 할머니 옆에 걸린 거울에 젊은 여자가 비춰지는 장면이었다. ‘늙음과 젊음’이 교차될 때 아 이 영화는 인생의 명멸을 보여주고 있구나하고 새삼 느꼈다.


관객 1 : 질문에 앞서 감독님께서 그 학교를 세우시면 저는 배식담당이라도 하고 싶다(웃음). 영화의 한 장면에서 극장에서 쇼를 보다가 방공호로 대피한 후 펠리니인 듯한 청년이 러시아 여자와 대화를 하는 장면이 나오고 이어 풀숏으로 넘어간다. 그 때 청년 부분만 암흑이고 나머지는 다 빛을 받고 있다. 그 장면에서 뭐라 할 수 없는 느낌을 받았다. 왜 펠리니가 그런 식으로 찍었는지 감독님께서는 짐작하시는 바가 있는지?

이명세 : 항상 감독은 카메라 뒤에 있기 때문에 빛을 받으면 안 된다. 영화 속의 배우들만이 빛을 받아야 한다. 고야의 초상화 작품들 속에는 항상 누군가 어둠 속에 웅크리고 있는데 그 사람이 화가다. 그림을 볼 때 그 자가 영화에서의 감독과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여기서도 그런 의도가 아니었을까 짐작해본다.


관객 2 : 좋은 영화 추천해주신 덕분에 영화 잘 봤다. 개인적으로 감독님의 영화들 중에서도 디테일이 살아있는 작품들을 좋아하는데 이 영화 역시 굉장히 디테일하다. 특히 마지막 오토바이 질주 장면의 디테일을 어떻게 보셨는지 궁금하다.

이명세 : 생동감 있는 젊음의 질주다. 그 때 죽어있던 동상들의 그림자들이 마치 살아나 움직이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지금은 유적으로 남아있는 것들이 다시 되살아나는 것 같다. 그것들이 로마를 움직이는 듯한 역동적인 느낌을 만들어내는 것이 좋았다. 처음에 그 장면을 보면서 굉장히 흥분했었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오토바이들이 어둠 속으로 사라져갈 때는 묘하게 멜랑콜리한 느낌들이 남는다. 그 모든 것이 삶의 생성과 소멸과 같은 느낌을 준다.


관객 3 : 감독님의 인터뷰에서 자주 ‘영화의 운동성’에 대한 언급을 봤다. 프레임 안에서 움직임이 많다고 운동성이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로마>는 카메라 무빙, 인물들의 동선 하나는 물론 빛의 명멸에서까지 다 운동감을 느낄 수 있었다. 오즈의 영화도 차분하고 정돈된 느낌을 주지만 그 속에도 묘한 운동감이 있다. 감독님이 생각하시는 영화의 성질로서의 ‘운동’이란 어떤 것이라 보는지 듣고 싶다.

이명세 : 영화에서 운동은 어떤 리듬을 만들어낸다. 템포와 리듬은 다르다고 본다. 리듬은 소리에도 있고 스틸 사진에도 있다. 피카소나 마티스나 로댕 역시 회화나 조각이란 정지된 것 속에 움직임을 부여해 리듬을 만들어 냈다. 사운드에서도 요란함과 정적 사이에서 어떤 리듬이 만들어 진다. <로마>의 경우, 어둠 속에서 조명탄을 발사해서 사물이 나타나고 사라지는 것, 시끄러운 빗소리 속에서 들리지는 않지만 수많은 사람들이 떠드는 것 등이 하나의 리듬을 만들어낸다. 오즈의 영화에서는 픽스 숏들의 컷이 넘어갈 때 생기는 리듬이 분명히 있다. 그것이 ‘정중동이자 동중정’이라고 할 수 있는 진짜 리듬인 것 같다. 그것이야말로 활동사진이라는 영화의 기본적인 개념을 뛰어넘는 영화의 추상적이고 본질적인 활동성이라고 생각한다. (이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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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을 다시 보니 감독님 신작이 미친 듯이 더 보고 싶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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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진 평론가는 작년에 이어 올 해도 한국영화를 선택했다. 그의 올해 추천작은 바로 배창호 감독의 <꿈>(1991). 스스로 배창호 감독의 꾸준한 팬임을 자처한 김영진 평론가는 “개봉 이후 <꿈>을 필름으로 볼 기회가 별로 없어 안타까웠는데 이번 영화제를 통해 ‘꿈’이 실현됐다. 내가 보고 싶은 영화도 보는 이런 날도 있어야 하지 않겠냐”면서 기쁨을 감추지 않았다. 그리고 상영 후 이어진 시네토크 시간에는 이 영화를 추천한 김영진 평론가와 배창호 감독이 직접 참석해서 자신의 영화들과 요즘 한국 영화들에 대한 생각들을 때론 진지하게, 때론 유쾌하게 들려주었다. 그 꿈같은 현장을 짧게나마 옮겨본다.

김영진(영화평론가, 명지대 교수) : 보통 영화에서 끝까지 다 보고 난 뒤 이게 꿈이었다고 하면 매우 짜증나는 경우가 많은데, 이 영화는 매우 다행이라고 느꼈다(웃음). ‘영화가 어쩜 이렇게 간결할 수 있을까’란 생각이 들어서 그랬던 것 같다. 특히 황신혜 씨가 연기한 달례 같은 경우에는 대사도 아주 간결했다.

배창호(영화감독) : 영화를 찍을 당시에는 총각이었는데 영화를 다시 보니 만약 내가 결혼을 했거나 여성에 대해서 조금 더 잘 알았더라면 여성을 더욱 입체적으로 그릴 수 있었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하지만 그 때는 아무래도 ‘총각’의 눈으로 본 여성이고 리얼한 여성보다는 욕망의 대상으로 희생된 여성의 삶을 그리려다 보니 내가 알고 있는 것만 표현할 수밖에 없었다. 살아있는 캐릭터라기보다는 원형적인 캐릭터가 돼 버린 느낌이다. 대사의 경우는 이 영화가 인생에 대한 비유이다 보니 대화를 굳이 많이 할 필요가 없겠다고 생각했다. 엑기스만 농축시켜 압축하려고 애썼고 그러다보니 러닝타임도 짧아진 게 아닐까 싶다.


김영진 : 끝도 심플하게 끝난다. 요즘 영화는 관객을 믿지 못해서, 혹시 관객이 감동 못 할까봐 끝까지 밀어붙이는 게 있는데, <꿈>은 십수 년 전 영화인데도 담담하게 끝난다. 요즘 영화들에서는 그런 엔딩을 못 본 것 같다.

배창호 : 요즘 영화들이 물론 많이 발전했지만, 놓치고 있는 것이 있다. 바로 영화가 시간예술이라는 사실이다. 우리는 한 컷, 몇 초를 굉장히 아낀다. 영화를 만드는 것은 시간 속에서 선택하는 것이다. 우유를 만들어 농축시켜야 치즈가 나오듯이 한 컷의 1초 1초를 아낄 수밖에 없다. 그렇게 영화를 시간 예술로서 대하다 보면 하나하나 선택에 유의하게 된다. 그러다보면 형식과 구성에서 한 숏을 선택할 때도 군더더기를 배제하려 한다. 그런데 요즘 영화는 현실을 그대로 복제하는 것들이 많다. 그런 영화들을 관객들이 많이 보니까 그런가 싶기도 하고 때론 보다보면 부러울 때도 있다. ‘야, 원 없이 시간을 쓰는구나. 중간 중간 지루하지만 그래도 끌고 나가면 저렇게 영화가 되는 구나’하고. 후배들에게 종종 농담으로 “왜 2시간 20분짜리로 만드냐. 프린트도 비싼데 영화 길다고 돈 더 받는 것도 아니고.” 그런 말도 한다(웃음). 압축해라, 압축해서 엑기스를 보여라. 이런 얘기들을 많이 해주는 편이다.


김영진 : 초반에 큰스님이 달례에게 꽃을 따주면 바로 조신에게로 컷이 붙는다. 컷이 그런 방식으로 붙을 때 영화적인 느낌이 살아나고 압축미가 느껴졌다.

배창호 : 요즘 영화는 자꾸 설명을 하려 한다. 자꾸 그렇게 하면 관객이 스스로 느끼는 부분을 차단하게 된다. 여백을 남겨 놓으면 그 여백을 관객이 채우고 참여하게 된다. 그런데 요즘 영화는 컷도 많고, 설명을 다 해준다. 그러면 관객들이 편하게는 보지만 자기가 참여하는, 자신의 영혼을 열어 느끼면서 깊이 생각하는 맛이 없다. 인물이 주지스님에게 ‘관상 좀 봐 주십시오’하면서 주절주절 말을 할 수도 있겠지만, 스님은 그 대신 꽃을 따서 준다. 일종의 화두인 것이다. 나는 어느 정도의 힌트를 던져주고 나머지는 관객이 채우는 것이다. 그걸 안 채우고 다 설명해주면 <꿈>도 20분 정도 더 길어졌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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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진 : 영화 보면서 마음이 굉장히 편해지더라. 댓구처럼 앞과 뒤가 비슷한 상황이 있는데, 처음에 달례가 나왔을 때는 계속 이동 숏으로 컷을 붙이다가 뒤에는 카메라를 픽스시켜 조신을 보여준다. ‘이런 장면들이 문장과는 다른 영화적 느낌이구나’라고 생각했다. 이게 일종의 영화적 서술인데 앞의 이동 숏으로 연결된 장면들과는 또 다른 방식으로 연출된 것이 인상적이었다. 그런 식으로 영화적 숏들에 대해 자의식을 가지고 찍고 소통하는 것이 요즘은 조금 부족해진 것 같아 아쉽다.

배창호 : 맞다. 격식이란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 그러나 격식을 위한 격식이어서는 안 된다. 격식 속에는 그 사람의 마음이 들어가 있다. 현대는 가벼움의 시대가 되고, 격식을 자꾸 거부하고 불편해하는 시대니까 형식보다는 직설적으로 말하고 컷도 많아졌다. 원래 영화의 숏, 그 앵글 속에 내용이 다 함축되어 있는 것이다. ‘왜 저 숏은 부감이어야만 하는가? 왜 저 숏은 미디엄 숏인가?’ 그런 것들이 영화의 문장처럼 언어로 들어가야 한다. 그래서 컷이 많아지는 것도 조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숏은 영화의 기본 단위이자, 영화의 한계이다. 많을수록 지루해진다. 지워나가는 작업이 필요하다.


관객 1 : 80년대 배창호 감독님의 영화들은 매우 젊고 도시적이고, 컷도 빨리 진행됐던 것 같다. 굉장히 세련된 느낌을 받았는데 <황진이>(1986) 이후로 굉장히 달라지신 듯하다. 초기에 만들어진 대중적인 영화들과 후기에 만들어진 <길>이나 <정>같은 경우가 그렇다. <꿈>도 마찬가지이고. 그런 변화는 어디에서 기인한 것인지 궁금하다.

배창호 : 영화라는 것은 한 마디로 정의할 수 없을 만큼 많은 표현 방법이 있다. 내가 연출한 열일곱 편의 영화 중에 사람들마다 좋아하는 영화가 모두 다르다. <황진이>에서 나온 터닝 포인트는 ‘왜 이것이 굳이 영화로 만들어져야 하는가?’라는 질문이다. 영화적 표현법이라는 그릇에 담으려는 노력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다보니 시행착오도 있었다. <황진이> 같은 경우에는 나중에 보면서 ‘아, 저건 머리로 만든 면이 있구나’라는 생각도 했다. <꼬방동네 사람들>처럼 형식적인 부분은 놓쳐서 그릇이 멋지지 않고 투박했지만 사람들의 가슴을 울리는 영화도 있고 <기쁜 우리 젊은 날>같은 조금 더 사실적으로 찍었어야 했는데 너무 성인동화처럼 찍었구나 싶은 영화도 있다. 이런 단점들이 계속 생긴다. 완벽한 영화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영화를 연출하다 보면 영화는 인생을 압축하는 것이라서 드라마를 신경 쓰다 보면 캐릭터가 빠지고 주인공에 집중하면 조연을 놓치고 하는 몇 가지 실수들이 꼭 나온다. 그 실수들을 다음번에 고치려고 하다가 여기까지 온 것 같다.


관객 2 : <꿈>에서 모례의 경우 자신의 인생을 망친 조신을 만났을 때 너무 깔끔하게 돌아서는 것 같았다. 그런데 감독님의 옛날 영화들을 생각해보면 악당들이 마지막에 돌아서는 경우가 많이 나온다. 농담처럼 ‘배창호 감독님은 정에 약한 사람인 것 같아’라고 말하곤 했는데, 감독님이 기본적으로 사람에 대한 믿음을 지니고 계신 것 같다고 생각했다. 영화에 나타나는 인물을 통해 감독님이 전달하고픈 인간관에 대한 얘기를 듣고 싶다.

배창호 : 영화에서 악인들이 돌아서는 장면을 볼 때 관객들은 ‘아 인간이 저럴 수도 있겠다’하기도 하고 ‘어떻게 인간이 저럴 수가 있나’라고 생각할 텐데 두 얘기 모두 맞다. 물론 내 영화를 통틀어서 내가 가진 인간에 대한 테마에 맞추려고 캐릭터를 덜 살린 점들은 군데군데 있다. 요즘 영화를 다 싸잡아서 얘기하는 건 아니지만, 요즘 연기자들을 보면 ‘저 사람들은 맨 날 조폭, 깡패, 연쇄살인자 등 그런 역할만 해야 하나’하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 ‘인간의 원형, 캐릭터를 연기할 기회가 없을까’하는 생각에 아쉬울 때가가 많다. 악한 것을 깨닫거나 악한 것과 거리를 두고 볼 수 있게 하는 것은 괜찮은데, 악한 것을 악함 그 자체로 밀어붙이는 것, 자신의 악한 점과 스파크를 일으키게 하는 것은 좋지 않은 것 같다. 내 영화에 나타난 인간은 내가 본 인간형이다. 내가 본 인간의 모습은 인간의 그런 모습들이 남아 있는 것이다. 그것을 현대적인 배경에 놓으면 리얼리티가 떨어질 수 있기 때문에 시대극을 배경으로 해서 인간 모습의 원형을 나타내려고 했다. 하지만 인간을 입체적으로 담아내는 건 부족한 면이 있었던 것 같다. 십수년이 지난 지금 다시 <황진이>나 <꿈>을 찍는다면 아마 달라질 지도 모르겠다.


김영진 : 갑자기 감독님의 신작을 미친 듯이 보고 싶어진다. 아직 젊지만(웃음) 나도 요즘 들어 점점 배창호 감독님이 느끼시는 부분을 같이 느끼고 있다.

배창호 : 결국 감독이 느끼고 그 지점에서 삶에 대해 많은 것을 경험하고 영화적으로 나타낼 수 있는 표현이 무르익는 것은 그 사람이 느끼고 생각하는 지점이 표현될 수밖에 없다. 아마 다음 영화를 보면 관객 분들이 ‘아 저 사람이 인간을 더 입체적으로 보고 있구나’, ‘테마를 닫지 않고 있구나’라고 느끼게 될 것이다. 영화는 감독을 닮게 되어 있다. (김보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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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일 7시,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대표인 박찬욱 감독이 지난해에도 추천했던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의 <순응자>가 드디어 상영됐다. 예정대로라면 상영 후 박찬욱 감독과의 즐겁고 유익한 관객과의 대화가 이어졌어야 하나 박찬욱 감독이 신작 준비 때문에 시간을 내기가 힘들어 아쉽게도 시네토크는 진행되지 못했다. 하지만 바쁜 와중에도 박찬욱 감독은 서울아트시네마를 방문해 연출, 제작부 스텝들과 함께 자신이 선택한 베르톨루치의 <순응자>를 보고 보다 좋은 작품을 만들겠노라며 상영 전 짤막한 영화 소개를 잊지 않았다.

24일 저녁, 신작 프리 프로덕션 일정 때문에 추천작인 <순응자>의 시네토크에 참석할 수 없다고 했던 박찬욱 감독이 극장 로비에 와 있었다. 지인들과 반갑게 대화를 나누던 박찬욱 감독은 입장이 시작되자 갑자기 주위 사람들에게 영화 표를 한 장씩 나눠주기 시작했다. 도대체 어떤 사람들에게 무슨 이유로 영화 표를 나눠주었을까 사뭇 궁금해졌다.


그리고 그 궁금증은 상영 전 박찬욱 감독의 영화 소개에서 해소되었다. 오늘 박찬욱 감독과 함께 영화를 보러 온 사람들은 이번 신작에서 같이 작업하게 된 연출부 스텝들이었던 것. 실제로 박찬욱 감독은 친구들 영화제 기자회견 당시 코엔 형제의 예를 들며 <순응자>를 스텝들과 같이 보고 싶다는 얘기를 한 적이 있다. “코엔 형제는 항상 새 작품 들어가기 전에 스텝들이랑 그 영화를 보고 시작한다고 해요. 그만큼 모든 면에서 완벽에 가까운 지점에 도달한 작품이라 볼 수 있는데, 이제 우리도 신작 시작하기 전에 배우들과 스텝들이 모여서 그 영화를 쫙 보고 '으쌰' 할 수 있다는 거죠.”


그렇게 큰 화면으로 보고 싶어 했던 <순응자>를, 지난해에도 박찬욱 감독의 추천작 리스트에 빠지지 않았던 그 작품을 드디어 아트시네마에서 만나게 됐다. 올해 오랜 소원을 성취하게 된 박찬욱 감독은 “먼저 추천해놓고 관객과의 대화 시간도 넉넉하게 갖고 유익한 시간을 보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해 죄송하다”며 “사실 시네토크를 진행하려면 영화도 사전에 한 번 더 보고 영화에 대한 자료도 찾아보고 공부도 하고 그래야만 하는데 그럴만한 시간이 주어지지 못해 상영 후 진행을 안 하는 것이 낫다고 판단했다. 그럼에도 이렇게 많이 제가 추천한 영화를 보러 와주셔서 고맙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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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박찬욱 감독이 그리도 보고 싶어했던 <순응자>는 어떤 영화일까. 박찬욱 감독은 간단하게 이 영화를 ‘보석’ 같은 영화라고 소개했다. “저는 베르톨루치의 모든 영화를 좋아하는 건 아닙니다. 하지만 이 영화만큼은 정말 절정의 미를 보여줍니다. 베르톨루치는 이 영화를 28살에 만들었습니다. 영화 역사 속의 신동, 천재형이라고 말할 수 있죠. 개인적으로 <순응자>는 베르톨루치 영화 중에서도 걸작으로 꼽습니다. 전작을 다 좋아했던 것은 아니라서 베르톨루치의 소식을 들으면 이에 버금갈만한 영화가 없나 기대하게 됩니다. 얼마전 16세기를 배경으로 한 신비로운 음악가를 다룬 전기 영화에 대한 제작을 발표한 바 있었는데 그 영화가 나온다면 비슷한 면모를 보여주지 않을까 싶다는 생각도 듭니다. 영화 <순응자>는 비토리오 스토라로의 촬영은 물론이고 미술, 음악과 편집 등이 특히 뛰어난데 그 요소들이 따로따로가 아니라 하나로 결합된 정말 보석 같은 영화입니다.”


박찬욱 감독은 전에도 <순응자>에 대해 얘기하며 “리얼리즘에 한 발 담군 적 있는 감독들이 거기서 벗어나면서 독창적인 새로운 영화들을 만들어온 궤적에서 배워야 할 점들이 있다”라고 말한 적이 있었는데 오늘은 특히 영화의 원작자인 알베르토 모라비아, 그리고 편집자 등 베르톨루치가 함께 작업한 동료들에 대해 강조해 말했다. 베르톨루치의 영화 중에서도 걸작 중 걸작, 그리고 변모된 베르톨루치의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정점에 놓은 영화로 평가받을 수 있었던 것은 그네들이 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알베르토 모라비아는 이탈리아 부르주아 가정의 문제를 파고 든 작가입니다. 많이 알려진 작품으로는 고다르의 <경멸>이 있죠. <순응자> 역시 모라비아의 원작으로 만들어진 고다르의 <경멸>과 통하는 배신과 수치심, 지적인 매혹에 대한 모티브가 잘 드러나는 영화입니다. 또한 이 영화는 편집이 굉장히 뛰어난 영화입니다. 베르톨루치는 스스로 이 영화의 편집을 맡았던 프랑코 아르칼리에게 ‘당신은 저에게 편집이 무엇인지 눈을 뜨게 해준, 나에게 편집에 대한 개안을 준 이’라고 칭송했습니다. 영화 자체는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며 복잡한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연기, 연출, 음악, 미술, 편집, 촬영 모두 개별적이지 않고 하나로 너무 잘 결합된 영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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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도록 극장에서 큰 스크린으로 영화를 보는 시네필답게 박찬욱 감독은  마지막으로 프린트에 대한 얘기도 빼놓지 않았다. “얼마전 스페인에서 <블레이드 러너>의 새 버전을 보면서 떨리는 마음을 멈출 수가 없었습니다. 지금도 역시 그렇습니다. 그것도 복원판 버전으로 <순응자>를 본다는 건 소수의 축복 받은 관객에게만 허락 된 일일 것입니다. 현재 작업에 들어가는 영화의 기준을 높여보고자 스텝들과 함께 왔고 같이 보면서 저에게도 허락된 그 시간에 감사하고 싶습니다.”

박찬욱 감독은 코엔 형제들을 부러워하며 자신도 신작 촬영 전에 <순응자>를 보고 싶다고  늘 말해왔고 드디어 그 바람을 이뤘다. 그러기에 영화를 대하는 영화를 보는 기준이 상승된(?) 박찬욱 감독의 신작이 더더욱 기대된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박찬욱 감독의 신작이 궁금한 분들은 <순응자> 영화를 관람해 보거나 <순응자>에 관한 영화 정보를 찾아보는 것도 궁금증을 참는 좋은 방법이 될 듯하다. (김보년/신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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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프면서 웃음이 나고, 판타스틱하면서 또 리얼하고 에밀 쿠스트리차의 <집시의 시간>은 그렇게 양가적인 감정을 만드는 영화다. 인간이 가지는 타락과 죽음에 대한 필연은 당연한 것이면서도 느낄 때마다 섬뜩 섬뜩 무서워지게 만든다. 영화 <집시의 시간>은 우리가 언제나 느끼고 있는, 하지만 잘 의식하지 못하는 그 운명에 대해 말한다.

에밀 쿠스트리차의 <집시의 시간>은 양가적인 감정을 만드는 영화다. 슬픈 장면이면서도 관객에게 웃음이 절로 나오게 만든다. 하지만 그 웃음 때문에 다시 마음은 조금 더 공허해진다. 다른 한편으로 <집시의 시간>은 아주 판타스틱하면서 리얼리즘적이다. 숟가락은 페란의 눈빛을 따라 움직였고, 칠면조는 페란의 목소리를 따라 날개를 폈다. 하지만 그런 페란도 돈을 벌기 위해 로마로 떠나야 했다. 이런 식으로 영화가 만들어 낸 결말 역시 무척 충격적이고 당혹스러운 면모가 있다. 반면 다시 생각하면 당연한 결말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던져준다. 무엇이 당혹스러웠고 무엇이 당연한 것이었을까. 충격적으로 받아들이면서 수긍할 수밖에 없었던 마지막 장면에 <집시의 시간>이 가지는 커다란 울림이 있다. 


페란은 그 수많은 우여곡절을 겪은 후 결국 죽어버린다. 화면은 그의 장례식으로 이어진다. 시신 위에는 그가 순수성을 잃어버리게 만든 돈이 놓여 있다. 눈에는 금화, 손 등에는 지폐들이 너저분히 놓여있다. 아들 페란은 아버지 페란 눈 위에 놓인 금화 하나를 훔쳐 달아난다. 아들 페란은 아버지 페란이 자주 했던 행동을 상기시키듯 박스 속에 들어간 채 달아난다. 그리고 망나니 삼촌은 아이를 뒤쫓는다. 달아나는 아들 페란의 뒷모습은 아버지 페란과 완벽하게 닮아 있다.


결말의 충격은 페란의 죽음으로부터 시작되고, 그 충격은 아들 페란이 아버지를 애도하기는커녕 시신 위의 돈을 훔쳐 가는 것으로 이어진다. 아들 페란의 사라지는 뒷모습과 뒤쫓는 삼촌의 뒷모습으로 스틸 처리된 마지막 장면에서 관객은 모두들 알아차렸을 것이다. 아들 페란은 아버지 페란과 같은 집시의 삶을 살아가게 될 것이라는 것을. 아들 페란 역시 도둑질을 하고 거짓말을 배울 것이며 자신이 거짓말을 시작한 후부터는 남의 말도, 신의 뜻도 믿을 수 없게 될 것을 말이다. 시간은 흐르고 페란은 죽었다. 하지만 변한 것은 없다. 아들 페란을 쫓던 삼촌 역시도 다시 자신의 방식대로 삶을 살아갈 것이며, 할머니는 아들 페란의 타락함에 다시 눈물을 흘릴 것이다. 집시의 삶은 다시 반복된다. 우리의 삶이 언제나 돌고 도는 것처럼. <집시의 시간>의 엔딩 장면에 가슴이 벅차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던 것은 우리가 알고 싶지 않은 그 말을 하고 있어서다.


인간이 가지는 타락과 죽음에 대한 필연은 당연한 것이면서도 느낄 때마다 섬뜩 섬뜩 무서워지게 만든다. 영화 <집시의 시간>은 우리가 언제나 느끼고 있는, 하지만 잘 의식하지 못하는 그 운명에 대해 말한다. 그것도, 다른 민족보다 더욱 직관적이고 영적인 집시들을 통해서 말이다. 우리보다 더 순수하게 그려지는 집시들이 타락하고 죽는 운명을 보아야 하는 관객의 슬픔은 배가 된다. 숟가락을 움직이는 힘을 가지고, 아들이 집의 벽을 뜯어버리는 행동을 해도 의연하게 처연한 눈으로 아들을 바라볼 수 있는 집시들도 다르지 않게 살고 있던 것이다. 저들도, 그리고 우리도 그렇게 살 수밖에 없고 그것이 삶이라고 영화는 나지막하게 그러나 냉정하게 말한다.


허나 그것을 말하는 에밀 쿠스트리차의 시선은 결코 차갑지 만은 않다. 그의 영화 속에는 집시의 대한 한없는 관심과 애정, 그리고 깊이 있는 이해가 담겨 있다. 그들의 삶은 다르지 않게 다시 돌아갈 테고 여전히 집시는 다시 꿈을 꿀 것이다. 그들은 꿈꾸는 법을 잊지 않는다. 페란의 육체가 다시 고향을 찾게 된 것처럼 말이다. 꿈을 꾼만큼, 현실 앞에 타락해야 한만큼 그만큼 아름다운 집시들, 그리고 그 만큼 더 슬픈 집시들을 에밀 쿠스트리차의 <집시의 시간>에서 만난다. (김나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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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영일정]

[관련 포스트]
임순례 감독이 추천한 에밀 쿠스트리차의 <집시의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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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phara 2010.06.15 00:59 신고

    참 괜찮게 봤던 영화에요.
    한동안 떠나가지 않았던
    장면들이 이 글을 읽으니까 다시 떠오르네요.
    잘 읽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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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일 저녁 <타짜>에서 호흡을 맞춘 바 있는 최동훈 감독과 배우 김혜수가 추천작으로 꼽은 <글로리아>의 상영과 함께 서울아트시네마를 찾았다. 김성욱 프로그래머는 지나 롤렌즈를 ‘여자 리 마빈’이나 ‘험프리 보가트’에 비유했고, 배우 김혜수는 그녀의 매혹적인 눈빛을 예찬했다. 김혜수 씨는 지나 롤렌즈에게 질투를 넘어서 배우로서의 경의를 표했다. 여기에 질세라 최동훈 감독은 존 카사베츠처럼 영화를 찍고 싶은 욕구를 표출했다. <글로리아>를 본 배우는 영화 속 배우를 질투하고 감독은 영화를 만든 감독을 질투했다. 아니, 그건 질투가 아니라 예찬에 가까웠다. <글로리아>는 배우와 감독 그리고 관객 모두에게 자극을 준 영화다. 여기, 지나 롤렌즈처럼 손동작 하나마저도 우아한 여자 김혜수와 최동훈 감독이 함께한 시네토크 현장을 옮긴다.

김성욱(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래머) : 간단하게 이 영화의 제작배경을 말씀드리자면, <글로리아>의 제작은 인디펜던트 작가인 존 카사베츠가 자신의 작품 제작비용을 조달하기 위해 MGM에 써준 상업적 시나리오에서 시작했다. MGM은 <챔프>(1979)의 성공을 보면서 아역 배우 릭 슈로더를 주연으로 한 시나리오를 의뢰했고 카사베츠는 <오프닝 나이트>의 실패로 생긴 적자를 해결하기 위해 이 영화의 시나리오를 썼다. 그런데 릭 슈로더가 월트 디즈니사로 넘어가면서 시나리오가 사장되었다가 콜롬비아 영화사가 이 시나리오를 구입, 지나 롤랜즈를 주연으로 카사베츠에게 감독 의뢰를 한 것이다. 카사베츠는 너무 상업적인 작품이고, 특히나 메이저에서의 영화 제작을 싫어했는데, 그가 61년에 만든 <투 레잇 블루스>와 <아이들이 기다린다>(62)를 할리우드 메이저에서 만들면서 편집권이 박탈되는 등의 문제로 할리우드와 트러블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후 카사베츠는 독립적인 제작 방식을 고집했다. 하지만 아내 지나 롤랜즈의 설득과 자신의 작품의 제작 비용을 회수하기 위해 결국 이 영화를 만들게 됐다. 그래서 <글로리아>는 이전의 독립적인 영화들과 사뭇 다른 느낌이지만 영화를 보면서 ‘억!’하는 느낌을 주저 할 수 없는 장면들이 있다. 이 작품을 선택해주신 두 분은 이 영화를 어떻게 보셨는지 궁금하다.

최동훈(영화감독) : <글로리아>는 아카데미에서 영화를 공부하던 시절에 봤던 영화다. 당시 친구들끼리 영화를 하나씩 가져와서 세미나를 했었다. 한 친구는 오손 웰스의 <악의 손길>을 친구들에게 보여주면서 그 영화의 첫 장면이 얼마나 훌륭한지 거품을 물면서 이야기한 적 있다. 당시 내가 틀었던 영화가 존 카사베츠의 <글로리아>다. 지나 롤렌즈가 필이라는 꼬마랑 옥신각신하고 있으면 갱단이 차를 몰고 온다. 다음 장면에서 지나 롤렌즈가 갱들과 이야기 하다가 여섯 발의 총알을 쏘고 나서, “택시!”하고 외치면 빌 콘티의 음악이 흘러나온다. 그 장면을 미치도록 좋아해서 열 번씩 재생해서 봤다. 혹자는 이 영화가 존 카사베츠의 영화 중 가장 졸작이라고 하지만 내게는 <영향 아래 있는 여자>나 <오프닝 나이트>보다 더 좋은 영화다. 나는 <글로리아>가 혜수 씨랑 가장 어울릴 것 같다고 생각해서 선택했다. 혜수씨는 어떻게 보셨나?

김혜수(영화배우) : 최동훈 감독의 추천으로 <글로리아>를 처음 보았다. 작은 화면으로 볼 때는 몰랐지만 오늘 큰 화면으로 보면서 음악에 압도되었다. 영화 음악이 시작되면서 사람을 스크린 안으로 빨아들이고 있다는 느낌이 들더라. 그리고 의상이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그런데 크래딧이 올라갈 때 보니 패션 디자이너 에마뉴엘 웅가로가 의상을 맡아서 역시나 했다. 또 이 영화에 출연하는 지나 롤렌즈에게 자극을 많이 받았다. 할리우드나 한국이나 연기 경험이 많고, 관객에게 좀 더 많은 것을 보여줄 수 있는 여자배우들이 활약할 수 있는 기회가 굉장히 제한적이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지나 롤렌즈는 군더더기 없는 연기를 보여주었다. 그녀는 진정으로 쿨하고, 완벽하고, 어디에서도 볼 수 없었던 독창적인 여성 캐릭터를 재현했다. 지나 롤렌즈의 존재 자체가 영화 전체를 쥐고 흔드는 것 같다. 영화를 보고 나서 최동훈 감독에게 “감독님도 나중에 저런 캐릭터를 꼭 만들어 보세요”라고 말했다. 이 영화 속 글로리아는 캐릭터는 영화를 만드는 사람뿐만 아니라 연기를 하는 사람에게도 매우 매력적인 인물이라고 생각한다. 시네마테크와 최동훈 감독, 그리고 시네마테크를 찾은 관객들 덕분에 좋은 시간을 가진 것 같다.


김성욱 : 이 영화가 처음 나왔을 때 미국에서는 지나 롤랜즈를 ‘여자 리 마빈’ 혹은 ‘여자 험프리 보가트’라고 불렀다고 한다. 지나 롤렌즈가 담배 피는 모습, 그녀가 걸어 다니는 모양새, 택시에서 이야기하는 장면들이 매우 인상적이다. 김혜수 씨는 지나 롤랜즈의 연기를 어떻게 보셨나?

김혜수 : 지나 롤렌즈가 처음 등장하는 장면이 매우 인상적이다. 열쇠 구멍으로 그녀의 얼굴이 클로즈업되고, 문이 열리면 지나 롤렌즈가 “하이!!”라고 말한다. 난 그 목소리 톤에 깜짝 놀랐다. 그 장면보고 ‘저 모습이 글로리아구나’란 생각을 했다. 지나 롤렌즈란 배우는 눈이 매섭고 날카롭고, 우리가 늘 보아온 전형적인 금발 미인의 주인공이 아니다. 그녀의 대사 톤은 관객을 배신하면서도, 묘한 기대감을 준다. 건달처럼 팔자걸음에 가깝게 걸어 다니는 그녀의 걸음걸이는 배짱이 두둑해 보인다. 글로리아라는 캐릭터는 전형적이지 않고, 다듬어지지 않은 캐릭터다. 그녀는 아이에게 자기의 진심이나 모성을 드러내지 않는 일관된 태도를 유지한다. 그러면서도 영화를 보고 있으면 아이를 대하는 글로리아의 작고 섬세한 감정 변화를 느낄 수 있다. 그녀는 머리가 아니라 가슴으로 아이를 받아 들였기 때문에, 갱들에게 위협받는 상황에서도 총을 쏠 수 있었던 거다. 지나 롤렌즈의 눈빛과 영화 전체를 아우르는 그녀 몸의 태도가 돋보이는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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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욱 : 존 카사베츠는 연기를 디렉션하기보다는 배우의 감정을 뽑아내는 탁월한 감각이 있는 것 같다. 최동훈 감독님은 영화를 찍을 때 배우의 감정을 어떻게 뽑아내는지?

최동훈 : 배우의 감정을 끌어내는 건 매우 어려운 것 같다. 그건 어느 학교에서도 가르쳐 주지 않는다. 감독에게는 배우와 대화하는 게 가장 중요함에도, 학교에서는 의미 있는 쇼트만 찍으라고 한다. 반면 존 카사베츠는 진짜 배우를 위한 영화를 찍는 것 같다. 그는 특별히 미장센을 고려한 설정은 하지 않는 것 같다. 이를테면 그가 조명이 들어갈 자리를 고려했다거나 배우의 동선을 고려해 트랙을 설치한 모습은 보기 힘들다. 카사베츠는 영화가 영화다워질 수 있는 형식을 거부하고, 동시에 배우를 제한하는 틀을 없애주는 것 같다. 그는 두 대의 카메라를 사용한다. 한 대는 멀리서 넓은 쇼트를 찍고, 한 대는 클로즈업으로 찍는다. 존 카사베츠는 배우의 얼굴이야 말로 가장 영화적이면서 가장 스펙터클하다고 믿는 감독 중 하나다. 나 역시 카사베츠처럼 되어갈 가능성이 있다. 나는 필름을 낭비하면서도 배우가 하도록 내버려둔 후 카메라가 배우의 연기를 쫓아가게 한다. 배우의 감정이 관객을 움직일 수 없다면 완벽한 세팅이나 미술도 용인되지 않는 것 같다.


김성욱 : <글로리아>의 지나 롤렌즈처럼 40대, 50대가 되어서 연기를 한다는 게, 쉽지 않은 것 같다. 한국의 경우 상황은 더 열악할 지도 모르겠는데.

김혜수 : 쉽지 않으나 상황은 세계 어디든 마찬가지인 것 같다. 그리고 예전에 비해 많이 나아진 것도 있다. 여전히 멋지게 연기하시는 여배우들이 많이 늘어나고 있으니…. 영화는 현실을 기초해서 허구를 그려야하고, 관객에게 진정성을 줄 수 있어야 한다. 영화란 게 사람을 다루고 인간의 살아가는 모습을 담아내기 때문에, 배우가 나이 들어가면서 삶에서 체득한 것을 영화에 반영할 수 있는 것 같다. 나 역시 10년 후면 40대 중반이 된다. 그 때도 내가 연기를 계속 할 수 있을지, 여건이 뒷받침 될지 의문이다.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문화와 영화 관객을 위해서 새로운 시도들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배우 자신에게도 하고 싶다는 열의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관객 1 : 글로리아와 필이 피츠버그에 가려다가 식당에 들르는 장면이 기억에 남는다. 두 사람이 식당에서 음식을 시키고 이야기를 하다가, 글로리아가 아무렇지도 않게 뚜벅뚜벅 걸어가면 갱들이 반대편 테이블에 앉아 있는 모습이 보인다. 그 장면이 매우 이상하면서도 인상적이었다. 그 장면에 대해서는 어떤 생각을 갖고 있나?

최동훈 : 영화를 처음 볼 때는 그 식당 씬에 불필요한 장면이 많다고 생각했다. 헌데, 다시 생각해면 존 카사베츠가 배우들의 동선을 고려해서 찍었다는 느낌을 받는다. 식당에 들어서면 글로리아는 화면 오른쪽에 앉는다. 주문을 받는 웨이트리스는 식당 뒷배경을 가려주는 역할을 한다. 웨이트리스가 두 번 왔다 갔다 한 후에야 비로소 뒤쪽에 앉은 갱들의 모습이 보인다. 그들의 모습이 처음 보이는 것도, 한 남자가 의자에 앉는 순간부터다. 이 씬을 보면서 존 카사베츠가 보이지 않게 장면을 설계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관객 2 : 아이가 묘지에서 인사하는 방법이 인상적이었다. 마지막 장면에서도 아이는 글로리아가 죽었다고 생각해서 묘지에 간다. 이 때 아이의 태도가 매우 의연하고 씩씩하다. 나는 마지막 장면에서 약간 교훈적이길 원했다. 이 영화를 청소년들이 보면 어떤 영향을 받을지 궁금하다.

최동훈 : 이 영화는 약간 전형적인 영화라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글로리아>는 꼬마 아이가 진짜 남자가 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무덤 장면은 매우 좋다고 생각한다. 첫 번째 무덤 장면에서 아이가 고백을 한다. 그리고 마지막 장면에서 꼬마는 글로리아가 죽었다고 생각하면서 그녀에게 작별인사를 한다. 이 때 아이의 태도는 매우 의젓하고 멋있다. 또 글로리아가 죽기를 각오하고 악당들을 찾아가는 장면은 용기라고 생각한다. 늘 도망 다니던 글로리아가 죽기를 각오하고 탄지니를 찾아 간 것처럼, 이 영화는 용기에 관한 영화, 용기 있는 사람을 다룬 영화라고 생각한다. (이도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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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영화 친구 장 피에르 레오와의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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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명의 영국 여인과 유럽 대륙>은 최고의 러브 스토리이며 장 피에르 레오를 만나는 즐거움이 있는 영화다. 이번에 재회하게 될 <두 명의 영국 여인과 유럽 대륙>은 과연 어떤 모습일지, 십여 년 전의 기억과 영화는 또 얼마나 다를지 벌써부터 가슴이 설렌다. 스크린을 통한 오랜 영화친구 장 피에르 레오와의 만남이 사뭇 기대된다.


장 피에르 레오. 지난 해 ‘2007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에서도 우리는 그를 만났다. 예르지 스콜리모프스키의 <출발>이란 영화에서다. 그와 예르지 스콜리모프스키와의 조합은 왠지 어색하다고 생각했는데, 그건 기우였던 것 같다. 그는 <출발>이란 영화에서 자동차 경주에 나가고 싶어 안달인 청년을 연기했다. 그리고 그는 우리들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입상은 커녕 자동차 경주에 출전하지도 못한다. 그렇다. 그는 언제나 흥분된 목소리로 내면의 열정을 내뱉지만, 그 끝에서 항상 실패하는 청년의 얼굴로 기억되곤 한다.


참 신기한 일이다. 4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자크 리베트, 피에르 파올로 파솔리니, 프랑수아 트뤼포, 장 뤽 고다르, 장 으스타슈, 필립 가렐, 아키 카우리스마키, 올리비에 아쌰야스, 차이밍량 같은 감독들과 폭넓은 스펙트럼의 영화를 찍으면서도 그는 변변한 영웅의 연기를 한 적이 거의 없다. 하지만 그는 우리에게 좌절하는 법을 가르치진 않았다. 오히려 청년은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면서도 계속 버티고 끝없이 투쟁하는 존재라는 걸 몸소 보여준다.


사랑에 빠진 남자를 연기할 때도 그는 마찬가지다. 그가 말하는 사랑은 위태롭고, 그가 사랑에 빠진 사람은 그를 버리고, 그가 연기하는 사랑은 이루어지지 않기 일쑤다. 2008년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에서 그와 다시 만나게 해줄 작품 또한 그런 사랑이야기이다. 프랑수와 트뤼포의 페르소나로 불리는 그는 트뤼포의 1971년 작품 <두 명의 영국 여인과 유럽 대륙>으로 우리와 조우한다.


<두 명의 영국 여인과 유럽 대륙>은 <쥴 앤 짐>의 원작자이기도 한 앙리 피에르 로셰의 소설을 각색한 작품이다. 트뤼포는 앙리 피에르 로셰의 소설을 사랑했던 것일까? 로셰가 쓴 단 두 편의 소설을 모두 영화로 만들었던 것에 무언가 이유가 있을 것만 같다. <쥴 앤 짐>과 10년의 간극을 두고 만들어진 <두 명의 영국 여인과 유럽 대륙>은 전편과 마찬가지로 세 남녀의 정의하기 힘든 사랑과 헝클어진 관계를 다룬다. 다양한 영역에서 활동했던 로셰였던 만큼 <두 명의 영국 여인과 유럽 대륙>의 엄청난 대사를 이해하기란 쉽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미리 겁먹을 필요는 없다고 본다. 사랑의 고통을 앓아봤던 사람은 영화의 심장부에 성큼 닿아 있을 자신의 뜨거운 손을 느낄 테니….


솔직히 말하자면 십여 년 전에 <두 명의 영국 여인과 유럽 대륙>을 본 뒤 이 영화를 보지 않았다. 심장이 또 그렇게 뛸까봐 겁나기도 했고, 이 아름다운(트뤼포의 가장 아름다운 영화 중 한 편이다) 영화를 다시 본다면 커다란 스크린으로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필자의 기억이 맞는다면, 영화의 마지막 부분에 기나긴 편지를 읽는 여자의 내레이션이 나왔던 것 같다. 몇 년 뒤 그 배우가 나온 또 다른 삼각관계의 이야기인 <엄마와 창녀>에서 한 여자의 긴 내레이션을 들으며 <두 명의 영국 여인과 유럽 대륙>을 떠올렸고, 잠시 몸서리를 쳐야만 했다.

개인적으로 필자는 트뤼포의 <두 명의 영국 여인과 유럽 대륙>, 장 비고의 <라탈랑트>, 그리고 F.W. 무르나우의 <일출>을 최고의 러브스토리로 꼽고는 한다. 필자에게 있어 <두 명의 영국 여인과 유럽 대륙>은 그런 영화이고, 장 피에르 레오를 만나는 즐거움이 있는 영화다. 이번에 재회하게 될 <두 명의 영국 여인과 유럽 대륙>은 과연 어떤 모습일지, 십여 년 전의 기억과 영화는 또 얼마나 다를지 벌써부터 가슴이 설렌다. 특히 스크린을 통한 오랜 영화친구 장 피에르 레오와의 만남이 사뭇 기대된다. (이용철 : 영화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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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열로 절름발이가 된 영화들을 다시 한번 찍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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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 4시 이두용 감독이 두성영화사를 설립하고 만든 첫 번째 창립영화 <내시>(1986)가 상영되었다. 상영 전 이두용 감독은 <내시> 각본을 쓴 곽일로 씨에게 제안을 받던 때를 회상하면서, 이 내용이 자신에게 비극이자 동시에 희극으로 다가왔다는 말과 함께 간략한 영화 소개를 해주었다. 신상옥 감독의 <내시>(1968)와 달리 ‘내시’에 초점을 맞춘 이두용 감독의 <내시>에는 여러 가지 욕망과 에로티시즘 그리고 내시들의 반란으로 표현되는 80년대의 시대정신이 담겨있다. 상영 후에는 개봉 당시 <내시>를 무려 7번이나 봤다는 김영진 영화평론가의 입담으로 시작된 이두용 감독의 마스터 클래스가 이어졌다.

김영진(영화평론가, 명지대 교수) : 80년대 중반 당시 한국영화에서는 세트촬영을 많이 보기 힘들었는데 <내시>는 세트촬영이 많은 상당히 규모 있는 영화다. 마지막 세트에서 화살 쏘는 장면은 시도하기 힘든 장면이었을 것 같은데.

이두용(영화감독) : 세트가 빈약했던 시절이었다. 그래서 경주 등을 돌아다니면서 궁 같이 생긴 건물을 찍고 내전의 방 안만 세트로 했다. 궁의 내전을 재현하는데 애를 먹었다. 특히 ‘대비전’같은 경우 전부 궁처럼 했어야 하는데 아쉬움이 남는다. 화살을 쏘는 마지막 장면을 보면서 낯 뜨거웠다. 지금은 화살이 ‘팍팍’하고 꽂히지만 예전에는 그런 장치들도 없었고…(웃음), 영화 보면서 다들 눈치 챘을텐데, 이 영화도 검열 때문에 못 나올 뻔 했다. 곳곳에 조금씩 잘린 장면도 많고, 왕(길용우 분)과 몸종인 길녀(김진아 분)의 정사 씬은 포커스아웃 처리되었다. 그 당시 검열기준에 따르면 남자와 여자의 전라가 나오면 안 되었다.

<내시> 촬영할 때, 왕의 내전과 관련된 기록이 거의 없어서 약간의 정보라도 얻기 위해 사방팔방으로 돌아다녔던 기억이 있다. 찾은 정보 중에서 왕의 침전 모습에 대한 기록만이 있다. 왕의 침전이 ‘우물 정’ 모양으로 가운데에 침전이 있고 사방에 방이 있었다고 한다. 침전을 둘러싼 사방의 방에 입직 내시와 상궁들, 약방 내시들이 들어가 있다가 정사 도중에 있을 불의의 사고에 대처했다고 한다. 영화에서는 방을 두 개만 만들었지만…. 상궁, 무수리, 나인들과 왕과의 관계에 대해서는 전혀 기록이 없어서 사학자들에게 도움을 얻어 드라마를 만들었다. 내시에 대해 고증해보니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체격이 작고, 간신 같은 모습이 아니었다. 오히려 거세로 인한 호르몬 변화로 인해 체격이 컸다고 한다. 영화 촬영할 때 실제 내시 한분이 계셨는데, 그분의 키가 180cm이었다. 이런 것을 바탕으로 내시감으로 큰 체격의 남궁원 씨를 캐스팅했다.


김영진 : 신상옥 감독이 1968년에 만든 <내시>라는 작품도 있다. 기본적인 얼개는 비슷하지만 영화 톤은 다르다. 신상옥 감독의 <내시>는 신성일, 윤정희 씨가 주인공이고, 남궁원 씨가 왕, 내시감이 박노식 씨인 멜로드라마 톤이 강하다. 그런데 이두용 감독의 <내시>는 ‘이거 멜로로 봐도 되나’ 헷갈릴 만큼 기본적인 형태만 띄고 내시감 남궁원 씨 위주로 움직인다. 은밀하게 굉장히 불경스럽게 영화가 전개된다는 생각을 했다. 영화 안에는 여러 가지 욕망과 에로티시즘이 있고 클라이맥스에선 내시들이 일종의 모반을 벌인다. 이 모반 장면에는 ‘내시들은 가라’라는 대사와 함께 이두용 감독 특유의 액션과 휘몰아치는 느낌이 있다. <내시>가 개봉되던 1986년은 ‘겨울공화국’이라고 부르던 굉장히 우울했던 격동의 시기였다. 그런 때 개봉한 <내시>를 우연찮게 보았는데, ‘뭐 이런 기이하고 불경스러운 사극영화가 있냐’는 생각을 하면서 이 영화에 매혹 당했다. 이두용 감독 영화에는 활극적인 재미와 해학이 있는 영화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모든 영화에는 권력에 대한 감독님 특유의 불경스러운 시선이 있다. 이 지점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계신가?

이두용 : <내시>를 국도극장에서 개봉을 해야 되는데, 당시 검열관이 왕을 죽이는 것을 관력자의 암살로, 내시의 반란을 쿠데타라고 연상해서 ‘검열 필’ 도장을 찍어주지 않아 영화가 안 나올 뻔 했다. 이런 측면에서 본다면 불경스럽다고 말할 수 있을게다. 제일 처음에 <내시>의 각본을 쓴 곽일로 씨가 영화를 하자고 제안을 했다. 그 제안에 ‘리메이크 안 하는데..’라고 거절했는데, 곽일로 씨가 그게 아니라면서 ‘내시’에 초점을 맞춘 영화 내용을 이야기 해줬다. 왕의 여성들의 지조를 지키기 위해 성기가 거세되어 들어오는 내시들의 이야기를 비극이자 굉장한 희극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이거 한번 해보자’ 생각했다. 신상옥 감독의 <내시>는 영향을 받을까봐 일부러 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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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진 : 감독님은 줌렌즈 쓰는 것을 두려워하시지 않는 것 같다. 사실 어느 시점 유행이 지나간 뒤에 줌렌즈를 쓰면 영화가 자칫 촌스러워 보인다. 그런데 감독님 영화에서는 줌렌즈가 효과적으로 쓰인다고 생각된다. <최후의 증인>은 예외에 속하지만 열악한 제작 상황에서 작품을 자주 연출하시다보니까 줌렌즈가 환경의 산물이 아닐까라는 생각도 하게 되는데.

이두용 : 마지막 작품 <아리랑>을 만들 때, 촬영기사에게 줌으로 하자고 말하니까 ‘요새는 이거 안 씁니다’라고 말하더라. 그래서 ‘영화가 옛날에 쓰고, 지금 안 쓰고 그러는 것이 어디 있나. 필요하면 쓰는 게지’라고 했다. 피사체에게 몰입시키기 위해서는 줌렌즈를 쓸 수 있고 그것을 잘 쓰면 괜찮다고 본다. 그리고 관객을 감독이 강조하는 것에 대해 집중시키기 위해서 줌렌즈를 많이 쓰는 편이다. 물론 환경의 영향도 있다. 외국은 달리에 카메라를 올려놓고 카메라 자체가 피사체에 다가간다. 그러나 당시 우리는 그런 장비가 없었고, 현장 여건이 열악했기 때문에 줌렌즈를 사용하는 방법 밖에 없었다.


김영진 : 감독님은 조감독 시절에 어떤 분들의 조감독을 하셨는지? 또 그 때 한국영화의 형편에 비춰 어떤 감독이 되고자 하셨고, 영화계에서 무엇으로 승부를 걸어보겠다고 생각하셨는지 듣고 싶다.

이두용 : <미워도 다시 한번>의 정소영 씨, 방송국에 PD로 계셨던 김수동 씨, 돌아가신 전홍식 씨 등의 여러 분의 조감독을 했었다. 당시 영화감독을 할 때는 ‘신파’라고 해서 멜로드라마가 유행할 때였고, 나 역시도 감독 데뷔를 <잃어버린 면사포>라는 멜로드라마로 했다. 데뷔는 멜로드라마로 하였지만 액션, 추리물, 코미디, 시대극 등의 다양한 장르를 섭렵했다. 내 작업태도가 이번에는 멜로드라마를 하면 다음에는 반드시 액션을 하는 식으로 전혀 다른 장르들을 넘나들었는데, 이것이 내게 신선한 충격과 항상 신인감독 같은 흥분을 준다.


김영진 : 이두용 감독님 필모그래피를 보면 특히 1974년에서 1976년 사이가 특이하다. 1년에 4~5편 정도의 굉장히 많은 영화를 작업했는데 물리적으로 그 것이 가능했는가?

이두용 : 그 때는 처음부터 영화를 동시에 2개를 기획했었다. 세트를 재사용하기 위해서….처음 영화에서 세트를 짓고 얌전하게 사용한 뒤에, 두 번째 영화에서 불을 지르거나 액션을 하면서 세트를 부수고 망가뜨렸다.(관객들 웃음) 당시에는 영화 규모가 작고 가난했던 시절이었기 때문에 한 세트에서 2~3개의 영화를 동시에 촬영하고 그랬던 것이다. 예를 들면 사각형 세트를 반으로 나누어서 각각 한쪽에서 두 개의 영화를 동시에 찍었다. 이렇게 하다 보니까 한창 액션 영화를 찍던 시기에 작품 수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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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객 1 : <내시>가 개봉 당시 흥행에 성공했다고 하셨는데, 지금 다시 리메이크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시대를 아우르는 보편적인 정서가 영화 안에 있는 것 같다. 이 점을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이두용 : <내시>는 당시 5억 원 정도의 어마어마한 제작비가 들어간 영화이다. 영화 개봉일 아침에 충무로의 단골 사우나에 가다 개봉극장이었던 국도극장을 한 바퀴 돌다가 갔다. 그 때는 손님이 드는 영화에는 새벽부터 관객이 줄을 서고 기다렸는데, 극장에 가니까 파리 한 마리도 없더라. 첫 제작 영화였는데도 말이다. ‘아, 이게 망하는 거구나’라는 생각을 했고 알고 지내던 영화사 사장이 위로하고 그랬다. 5~6시간 후에 사우나에 있다가 회사에서 빨리 오라는 연락을 받고 극장에 갔다. 가니까 영화를 보기 위해 사람들이 국도극장을 한 바퀴 돌아 명보극장 앞까지 줄을 이어 서 있었다. 손님이 많이 와서 국도극장의 전면 유리창이 깨지기도 했었다. 나중에 극장에 들어가서 영화를 보니까 관객들이 내시에 대한 호기심과 익사이팅한 내시의 반란에 재밌어하고, 내가 노린 부분에서 흥분하고 예상치 못한 장면에서 즐거워했다.


관객 2 : 이전에 만들었던 영화를 지금 다시 만들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 어떤 영화를 만들고 싶으신지?

이두용 : 내 수첩에는 영화화 하고 싶은 것들이 수십 개나 된다. 만약 리메이크를 하게 된다면 옛날에 검열 때문에 최선을 하지 못했던 영화들을 찍고 싶다. <해결사>처럼 검열로 난도질당한 작품이나, 기획에서부터 무산된 영화, 본의 아니게 절름발이가 된 영화들을 다시 찍어보고 싶다. (신윤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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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아트앤스터디 2010.03.02 18:01 신고

    김영진 평론가의 <영화, 본다는 것에 대하여>라는 강의가 7주에 걸쳐 진행됩니다. 관심 있으시면 한 번 둘러 보세요^^
    http://www.artnstudy.com/inmoonsoop/Lecture/default1003.asp?lessonidx=off_yjKim01

'뽕' 이두용 "2시간 40분짜리를 1시간 30분으로 싹둑"
<배한성의 아주 특별한 인터뷰> '뽕'의 감독 이두용을 만나다

지난해 우리 영화계 가장 큰 경사 중의 하나를 꼽는다면 전도연 씨가 칸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게 아닐까 싶은데요. 지금이야 여기 저기 해외 영화제에서 우리 영화가 상도 받고 그러지만7, 80년대는 참 힘든 일이었죠.

해외 영화제에서 첫 번째로 상을 받은 영화, 뭔지 아십니까? 1981년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특별상을 수상한 이두용 감독의 ‘피막’이란 영환데요. 이 감독의 1983년작 <물레야 물레야>는 칸영화제에 초청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그를 ‘한국영화의 세계화’라는 화두의 원조라고 볼 수 있는데요.

이두용 감독은 ‘잃어버린 면사포’로 데뷔해서 ‘뽕’ ‘내시’ ‘최후의 증인’ ‘돌아이’ ‘용호대련’ 등 7,80년대 한국의 상업영화계를 풍미한 감독이구요. 70년대 중반에는 태권 액션영화로 이름을 떨쳤고, 토속물의 대가였고, 최근까지 작품 활동을 하고 있는 몇 안 되는 70년대 데뷔 감독 중 한 사람입니다.

지난 8일부터 서울 낙원동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열리는 ‘2008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 이곳에서 후배 감독들이 ‘이두용 감독 특별전’을 마련했다고 하는데요. 이두용 감독을 1월 14일 CBS 배한성의 아주 특별한 인터뷰(FM 98.1Mhz, 연출 김우호 PD)에서 만나봤습니다.

◇ ‘감독 특별전’ 후배 감독들에게 고마울 뿐

▶ 요즘 근황은 어떠세요?

명지대학교 연극영화학과 초빙교수로 바쁘게 지내고 있는데 올 1월에 정년퇴직을 합니다. 막상 정년퇴직을 한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이상해지더라고요. 시원섭섭하다는 표현이 딱 맞는 것 같아요.

▶ 1월 8일~2월 3일까지 종로구 낙원동에 있는 서울아트시네마에서 ‘2008 시네마테크 친구들 영화제’로 감독 특별전을 갖는다고요?

올해 3회째라는데 저는 처음 가봤어요. 젊은 감독들이 주축이 돼서 알차게 영화제를 해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보통 영화제하면 푸짐한 행사 중심으로 많이 하거든요. 영화배우나 감독들 초청, 이벤트를 많이 하면 좋은 영화제로 평가를 하는데 이 영화제는 국제영화제로서 내용이 알찹니다.

작가주의적인 영화를 중심으로 하는 점이 아주 독특해요. 그 젊은 감독들이 특별전을 해준다고 하는데 우선 고맙고, 영화를 예술인가, 아닌가 하는 논란을 뛰어넘어서 서로 감상하고 젊은 영화학도들이나 관객들에게 이해시키고 알리는 게 아주 좋았던 것 같아요.

▶ 어떤 작품들이 상영되나요?

[BestNocut_R]이번에 5작품이 상영되는데 <최후의 증인>, <뽕>, <내시>, <물레야 물레야> 등입니다. 그 중에 1978년에 기획해서 79년에 만든 <최후의 증인>이라는 작품은 당시 검열의 시대였기 때문에 엄청나게 잘려나갔어요. 그게 2시간 40분짜리 영화인데 1시간 30분짜리로 상영이 되니까 내용이 연결이 안 되죠.

이건 내 영화가 아니라고 생각해서 80년도에 처음 한 번 보고 이후에는 잊어버리고 있었어요. 그 영화를 젊은 감독들이 2시간 40분짜리 원본을 찾아내서 상영을 해주는데 저도 이번에 가서 그 원본을 보니까 너무 반갑더라고요. 내 작품이 아니라고 생각해서 20년 동안 잊어버리고 있던 작품을 젊은 감독들이 좋게 봐서 이 작품을 중심으로 감독 특별전을 열어준다고 하니까 그저 고마울 뿐입니다.

▶ <최후의 증인>이 검열에서 잘려나간 이유는 뭔가요?

6.25 전쟁의 후유증을 배경으로 한 영화인데 동족간의 이념을 다룬 영화가 아니에요. 한 순진무구한 사람이 권력자들한테 모함을 당해서 일생을 감옥에서 보내는, 그리고 전쟁 때문에 일생이 마모되어 가는 과정을 한 수사관이 수사를 하면서 드러나는 영화인데 이두용 감독 사상이 수상하다고 누가 청와대에 투고를 했어요.

옛날에는 영화를 만들 때 금기가 있었어요. 이념을 다룬 것은 물론 안 되고 공무원 부패를 다룬 것도 안 되고, 아주 많았어요. 그런 게 다 걸렸었나 봐요. 그러니 모조리 잘려버리니까 영화가 절름발이가 된 거죠. 그래서 개봉날 영화를 보다가 뛰쳐나왔어요. 나와서 시간표를 보니까 그 영화가 2시간 40분짜리인데 1시간 40분으로 돼 있더라고요.

▶ 1981년 작품인 <피막>은 우리 영화 역사상 최초로 해외영화제에서 수상을 한 작품이에요.

베니스 국제영화제에요. 회사에서도 그냥 출품해 본 건데 상을 받으리라고는 생각도 안 했어요. 아직 국내에 베니스 국제영화제가 알려지지 않았던 시기이기도 했고요. 그때 받은 상은 이시답 상이라고 해서 그 해에 총 6명을 뽑아요. 그 중의 하나로 들어간 거죠. 당시에는 지금처럼 국제영화제에서 상을 받았다고 해서 화제가 되었던 건 아니에요. 외신에서 들어오면서 점점 알려지기 시작한 거예요. 외국 비평가들이 이두용 감독 찾으러 오고 하니까 점점 알려진 거죠. 언론 쪽에서도 영화에 대해서 심도 있게 보고 있었던 건 아니니까요.

◇ 화장실에 숨어서 하루 종일 영화를 보기도

▶ 영화를 하시게 된 계기가 있으신가요?

대부분의 영화감독들처럼 영화광이었어요. 중학교 때 이미 영화에 푹 빠져있었는데 당시에 영화는 거의 미국영화였어요. 그런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은 대체 누굴까 생각했었어요.제가 서울이 고향이라서 주로 국도극장을 갔었어요. 당시 중학생이었고 미성년자 관람불가도 많았고 또 학생이라 돈도 없었는데 어찌해서 들어가면 하루 종일 4,5회씩 화장실에 숨어서 보기도 했어요. <역마차>, <오케이 목장의 결투>, <원탁의 기사> 등 영화의 비주얼에 푹 빠진 거죠.

▶ 용산고등학교를 나오셨는데 공부를 잘 하셨다면서요?

잘 한 건 아니고 중간 정도였는데 영화에 푹 빠졌어요.

▶ 그림도 잘 그리신다는데 영화와 무관하지 않을 것 같아요.

그런 재주가 있었나 봐요. 중고등학교 때부터 나는 영화감독이 되겠다고 하니까, 주위에서 너는 나가면 움직이는 그림을 하면 되겠다고 할 정도였어요. 마침 학교 선배가 영화 조감독을 하고 있었는데 영화감독이 꿈이면 빨리 나한테 와서 일도 좀 거들면서 배우라고 해서 그렇게 된 거예요. 그래서 용산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영화판에 뛰어든 거죠. 졸업하기 전부터 드나들기 시작하면서 선배 일을 틈틈이 돕다가 졸업하면서 영화 일을 본격적으로 시작했어요.

▶ 첫 번째 데뷔작품은 어떤 영화인가요?

1969년 작 <잃어버린 면사포>인데 신성일, 문희 씨가 주연을 한 멜로드라마에요. 첫 작품이 흥행이 좀 돼서 이후에도 계속 감독을 했던 거죠. 당시에 10만 관객이 들면 대박이라고 했는데 이 정도 관객이면 요즘 100만 관객과 맞먹을 거예요. 이 작품이 10만 관객까지는 아니었지만 꽤 히트를 했었죠.

▶ 작품의 평가는 어땠나요?

내용이 좋다고 하더라고요. 제가 첫 번에 인정을 받은 게, 옛날에는 지방에 ‘흥행사’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이 사람들이 서울 중앙에 영화제작 자금을 올려 보내 주면 영화사로 돈을 줘서 영화를 만들 수 있었거든요. <잃어버린 면사포>가 지방에서도 흥행이 괜찮았고 좋게 봐서 확산이 된 겁니다.

▶ 같은 시대에 활동했던 감독님들은 어떤 분들이 있나요?

신상옥, 이만희, 홍성기, 김수용 감독들이 있죠.

◇ 전국 태권도 유단자들로 만든 ‘태권 액션물’


▶ ‘70년대 중반 한국 영화계에 태권 액션물 유행을 일으킨 장본인’, ‘직선과 생략의 액션 미학’이라고 어느 평론가가 말했는데요.

제가 액션을 시작할 그 무렵까지 멜로드라마, 신파를 많이 했어요. 그런데 하다 보니까 싫증이 나더라고요. 아까도 이야기했듯이 어렸을 때부터 비주얼한 영화를 만들고 싶었는데 이야기 중심의 멜로만 하다 보니까 뭔가 이게 아니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더라고요. 당시 상황이 스토리텔링 중심으로 영화를 만들던 때였는데 그 장르가 나쁘다는 게 아니고 스스로 이게 아니다 생각할 즈음에 외국에 내보내는 영화를 만들고 싶어진 거예요.

외국에 나가려면 지금도 그렇지만 우리의 풍습이나 생활을 다룬 것은 승산이 없어요. 외국에 나간다는 건 영화제에 나간다는 게 아니고 영화 시장에 나가는 영화를 하고 싶었던 거죠. 영화시장에서 남의 나라 풍습이나 생활을 다루면 관심 밖으로 밀려나잖아요. 그렇다면 갈 수 있는 건 액션이라고 생각한 거예요.

당시 할리우드나 일본에서 얼마나 액션영화를 잘 만들었는지 몰라요. 그러면 그냥 3류 액션영화를 만들면 안 되겠다, 외국 감독들 못지않은 영화를 만들어서 영화시장에 내보내야겠다는 발칙한 생각을 했어요. 당시에 이소룡의 쿵푸를 다룬 영화가 막 확산되기 전이었어요. 한국의 태권도를 가지고 액션영화를 만든다면 외국 젊은이들이 호기심을 갖고 영화를 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 거죠.

그리고 학교 다닐 때 제가 태권도를 좀 했어요. 그때 배울 때 관장님이 말씀하시기를, 과학적으로 발이 주먹보다 2.5배의 힘이 있다고 하셨거든요. 그래서 발을 응용해서 액션영화를 만들면 좋겠다고 해서 만든 것이 태권도 영화 <용호대련>이었어요.

▶ <용호대련>의 흥행은 어땠나요?

흥행이 좋았는데 특히 지방에서 좋았어요. 헐리웃 극장에서 시작을 했는데 확산이 되면서 대한민국에 태권도 영화가 나왔다고 굉장히 반응이 좋았어요. 이후에 그런 영화를 만들어달라는 주문이 쏟아지더라고요. 그래서 몇 년 동안 정신없이 만들었죠.

▶ 당시에는 컴퓨터 그래픽 같은 기술이 부족하니까 위험한 부분도 있었겠어요?

컴퓨터 그래픽도 없었고 전문적인 스턴트맨들도 없었죠. 그 영화를 만들 때 전국의 태권도 유단자들을 모집했어요. 그랬더니 300명 정도가 와서 영등포의 한 도장에 가서 오디션을 보고 100명 정도로 간추렸어요. 그렇게 태권도 영화를 시작한 거예요. 저 친구는 기능도 있지만 연기도 할 수 있겠다, 악당 역에 어울리겠다, 이렇게 전부 배치해서 영화를 만들었는데 굉장히 소중한 친구들이에요. 태권도 영화는 이 친구들이 원조에요. 한때는 방송국의 무술감독으로 활동도 했고 지금은 그 후배들이 하고 있죠.

▶ 1980년대에 만든 <돌아이> 시리즈의 인기가 대단했었어요.

주인공이 전영록 씨인데 영화광이에요. 집에 가 보니까 영화와 관련된 책, 음반 등 프로 못지않게 갖춰놔서 깜짝 놀랐어요. 그래서 배우 이상으로 성공하겠다는 생각을 했었어요. <돌아이> 찍을 때도, 지금 같으면 컴퓨터 그래픽으로 할 텐데 남산의 케이블 카 위에 직접 올라타서 결투 신을 찍을 정도였어요. 그걸 시키는 감독이나 그걸 하는 배우나 또라이였죠.(웃음) 전영록 씨는 운동을 많이 해서 몸놀림도 좋고 열정이 대단했어요.

▶ 새로운 스타일의 다양성을 갖춘 영화를 추구하시는 것 같아요.

처음부터 거시적으로 다양성을 추구해야겠다고 시작한 건 아니고 한 유형의 영화를 하고 나면 정반대의 영화를 해요. 진지한 장르를 만들었다면 그 다음은 가벼운 장르를 만드는 거죠. 다른 영화를 하면 신인감독이 된 것처럼 신선하고 신이 나거든요.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으려고 영악한 계산을 한 것도 아니고 전혀 다른 장르의 영화를 만드는 작업이 즐거움을 줘요. 그래서 그런 작업들을 선호한 거죠.

▶ 외국 영화감독들에게 영향을 받으셨을 거 같아요.

외국의 특정한 감독이나 영화에 영향을 받은 건 아니고 전체 외국 영화의 수려함에 영향을 받았어요. 다만 프랑스 감독 클로드 를르슈가 만든 <남과 여>를 보고 깜짝 놀랐어요. 망원렌즈로 피사체를 심도 있게 잡아내거든요. 렌즈의 정확한 사용, 범위 등에 놀라는데 오히려 그런 사람의 작법에 영향을 받았을 거예요.

▶ 어느 인터뷰에서 ‘끝까지 액션영화를 하면 좋았을 것’이라고 고백도 하셨다는데 어떤 내용인가요?

요즘은 그렇지 않은데 우리 사회는 이상하게 액션영화를 폭력영화로 보고, 좋지 않은 영화라고 생각하는 인식이 저변에 깔려있어요. 유교의 인식 때문이라고 개인적으로는 생각하는데 영화를 영화로 봤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액션영화를 3류 영화로 보는 게 못 견디겠어요. 좋아서 만들기도 하고 해외수출용으로 만들었는데 멜로영화보다 액션영화 만들기가 더 어려워요. 노동의 강도도 그렇고요.

예를 들면 할리우드 액션 스타인 아놀드 슈워제네거, 실베스터 스탤론 같은 배우는 멜로 배우보다 열 배는 개런티를 더 받아요. 제작비도 더 많이 드는데 그만큼 액션영화가 쉽지 않다는 얘기에요. 제가 결정적으로 액션영화를 그만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한 게, 그 100명의 태권도의 달인들을 뽑아서 훈련을 시켰는데 그에 맞는 대우를 해주지 않고 ‘으악새 배우’라고 하면서 천하게 보는 거예요.

그 친구들하고 우리 세계적인 액션영화를 만들자고 단단히 약속하고 시작했는데 너무 마음이 아프더라고요. 나 역시도 똑같은 감독 연출료를 받고 고단한 액션영화를 만들어서 뭘 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액션영화의 인적자원에 대해서 대접을 안 해요. 지금은 그렇지 않으니까요.

◇ 나도향의 원작 ‘뽕’ 재미와 해학으로 재탄생

▶ 1985년 작 <뽕>을 찍으실 때 장소 찾는 것부터 쉽지 않으셨다고요?

우리가 일제 강점기 시절의 어두운 부분이 있었잖아요. 살기 어려운 사람들이 척박한 땅에 사는 이야기인데, 원래 나도향 씨의 원작이 아주 사실감 있고 생생한 반면 시대 배경도 그렇고 아주 어두운 작품이에요. 그래서 어두운 부분은 소설로서 충분히 표현이 되었으니까 영화는 재미있게 해학적으로 만들면 되겠다, 해학이라는 생각이 퍼뜩 떠오르더라고요.

작가와 잘 상의해서 진행하는데 검열도 그렇고 영화의 진위를 잘 모르는 거예요. 영화사마다 다 달라서 어떤 영화사는 바로 만들자고 그러고 또 어떤 영화사는 미진하고, 검열은 사전 검열이라는 게 있어서 걸리고, 결국 영화사를 세 곳을 전전하다가 이태원 씨가 처음 차린 태극영화사에서 하게 되었는데 대박을 친 거예요.

▶ 그 작품에서 이두용 감독님은 상업적으로 접근하신 건가요?

나중에 흥행이 되니까 상업적이 된 거고, 가난하고 척박한 땅에서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잖아요. 나라 잃은 땅에서 여자가 몸으로 살아가는 이야기인데 그걸 사실적으로 접근하면 칙칙해서 안 되겠더라고요. 그 배경에 깔린 건 슬픔이지만 영화를 보면서 껄껄거리게 재미있게 만들자고 해서 접근한 게 뽕입니다.

▶ 1986년 작 <내시> 역시 대단한 흥행을 거두셨잖아요?

1986년도에 두성영화사라고 직접 영화사를 차렸어요. <내시>가 창립 작품이에요. 모든 감독들이 그렇겠지만 자본을 투입해서 완벽한 작품을 만들자고 해서 직접 영화사를 차렸고 첫 영화가 내시인데 당시 제작비 규모로 봤을 때 어마어마한 작품이에요. 당시 제작비 규모가 7000~8000만원이었는데 내시는 홍보비까지 5억원이 들었어요. 그런데 영화가 흥행이 안 되면 알거지가 되었을 텐데 다행히 국도극장 정문이 깨질 정도로 사람들이 많이 와서 흥행이 되었죠.

▶ 영화는 대박이냐, 쪽박이냐로 명암이 갈리는데 이두용 감독님은 어떠셨어요?

지금까지 65편정도 만들었는데 흥행된 것은 10~15%정도, 적자는 안 난 게 10%정도고 나머지는 쪽박이에요. 그런데 흥행된 걸로 커버를 하는 거죠.

▶ 요즘은 한국영화의 위기론이 많이 이야기되고 있어요.

한국영화가 제2의 르네상스 시대다, 황금기라고 작년까지 그랬잖아요. 영화라는 게 흥행이 되었다가도 안 되기도 하는 건데 조금만 안 되면 위기라고 하고 조금만 잘 되면 황금기라고 하는데 물론 포장과 과장이 있었던 건 사실이에요. 하지만 영화는 쪽박을 차든 대박을 치든 없어지지 않아요. 모든 생활이 영상이잖아요. 토성까지 인공위성으로 찍어오는데 이걸 찍어오는 것은 영상이거든요. 영상이 있는 한 영화는 발전합니다.

요즘 영화의 위기론을 많이 이야기하는데 우리 세대 감독들과는 다른 문법으로 젊은 감독들이 잘 만들잖아요. 제작비를 대거 투여해서 해외에 많이 내보내는데 세계에서 상 받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건 수단이고 세계의 상업 시장에 우리영화가 나가야 해요.

물론 우려하는 바도 알겠어요. 2006년에 우리 영화가 120편이 만들어졌다고 하더라고요. 그랬다가 작년 제작한 영화는 40편도 안 되는 것 같아요. 하지만 그런 걸 가지고 한국영화가 끝났다고 하기에는 너무 이른다고 할 수 있죠. 총기 있고 잘 만드는 젊은 감독들이 있잖아요.

◇ ‘메이드 인 코리아’ 세계 영화시장에 들어가야

▶ 그런 의미에서 심형래 감독의 <디 워>가 할리우드 시장의 문을 두드렸다는 건 의미가 크다고 할 수 있겠군요.

내용이야 어쨌든 미국에서 2000개 이상의 스크린에서 걸었다는 건 대단한 겁니다. 미국사회에서 그만큼 상품대접을 받았다는 거거든요. 일단 흥행영화라고 하면 입장료를 끊어서 들어오는 코흘리개 어린애나 노인이나 똑같은 돈을 받는 거예요. 그 사람들이 재미있게 보는 영화가 어떤 영화인지 생각해야 해요. 영화에 대한 논란도 있지만 심형래 감독이 비즈니스를 잘 해서 미국에서 2000개 이상의 스크린에 걸은 건 상업적으로는 성공했다고 봅니다.

전 세계 극장의 절반이 미국에 있어요. 한때 우리나라의 농구화나 운동화가 전량 미국으로 갔었어요. 그때 들은 이야기로는 메이드 인 코리아 운동화를 미국인 개인이 1년에 4.5켤레를 신는다고 해요. 4.5켤레를 3켤레로 줄이면 한국의 운동화 산업이 망한다고 할 정도였어요.

농담으로 생각해서 웃었는데 중국제가 들어가서 정말로 그렇게 되었잖아요.마찬가지로 영화의 전 세계의 배급망은 미국이 주도하고 있어요. 영화도 그 체인에 들어가야 하는데 정상적으로 대접받고 들어간 게 <디 워>라는 거죠.

▶ 2005년 초에 프랑스 브졸영화제에서 특별 공로상을 수상하셨고 회고전도 열렸는데요.

그 영화제가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아시안 영화제만 해요. 해외에서 3번 회고제를 열었는데 브졸의 집행위원장이 15년 전부터 저의 회고전을 하고 싶었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8작품을 거기서 했어요. 고맙게도 한국의 영화감독을 환대해 주었어요.

한국에 있는 필름을 가져간다는 게 쉽지 않을뿐더러 프랑스에 있는 필름들을 모두 수거해서 회고전을 하는데 정말 감동을 받았죠. 막대한 비용을 들여서 해주는 데 문화선진국이 이래서 문화선진국이구나 싶어서 머리가 숙여지더라고요.

▶ 이두용 감독님의 대표작을 꼽으라고 한다면 어떤 작품을 꼽으시겠어요?

제 영화를 10년 후에 다시 보면 촌스러워요. 당시 영화를 만들 때마다 완성도 100%의 영화를 만들자는 게 모토인데, 감독의 생각을 배우가 연기하고 연기한 것을 필름에 찍어서 보여주는 게 영화인데 자본이나 기능, 환경에 의해서 내 생각이 전달 안 될 때가 더 많아요. 그래서 많지 않은데 어쨌든 내가 만든 좋아하는 영화가 있어요. <장남>, <뽕>, <피막>, 그리고 사회성을 다룬 액션영화 <해결사>는 애정이 많이 가는 작품이에요.

▶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서 말씀해 주세요.

영화 기획을 하고 있고 대본도 쓰고 있는데 영화를 만들려면 막대한 자본이 들어가잖아요. 그래서 펀딩을 하는데 애로사항이 있어요.

(FM 98.1MHz 월~토 오후 4시 5분, 정리=박길자)

※ 배한성의 아주 특별한 인터뷰(표준FM 98.1MHz)는 월~토 오후 4시 5분에 방송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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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후의 증인>은 마음으로 만든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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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토의 하드보일드’라고 극찬하며 <최후의 증인>을 재발견하는데 가장 앞장 서왔던 오승욱 감독이 이번 영화제에서 그 소망을 이뤘다. 개봉 당시 검열로 50여분이 삭제되어 개봉됐던 <최후의 증인>을 158분 버전으로 상영하게 된 것이다. 보는 내내 많은 관객들은 숨죽일 수밖에 없었고 영화가 끝남과 동시에 일제히 관객들은 영화와 감독에게 박수를 보냈다. 이어진 씨네토크 시간, <최후의 증인>을 강력히 추천한 오승욱 감독과 이두용 감독이 함께 했다. 검열로 인해 암울했던 80년대의 이야기와 함께 이두용 감독의 액션영화에 대한 애착을 들을 수 있는 자리였다.


이두용(영화감독) : 이 영화를 만든 시기는 1979년 5월부터 1980년 4월 경 광주 민주화 운동이 시작 전 무렵이다. 90회 안된 촬영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당시에 이 영화로 ‘사상이 이상하다’ 등의 이상한 소리를 들었다. 스스로 확인도 못한 상태에서 검열로 50여분이 잘렸다. 나중에 명보극장에서 개봉을 해서 보는데 시간표에 1시간 30분으로 되어있었고, 당시에 잘린 부분이 너무 많아서 보다 나왔다. 영화계의 암울했던 그런 시대가 있었다. 6.25 전쟁 영화를 만들어야 하는데 전투영화는 싫고 우리의 어떤 아픔과 사회의 양면성을 그려보고자 했다. 어떤 기교를 가지고, 재미있게 해야지 하고 만든 것이 아니다. 마음으로 만든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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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욱(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래머) : <최후의 증인>을 재발견하는데 가장 많은 노력을 기울이신 오승욱 감독님은 다시 보시면서 이 영화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계신가?

오승욱(영화감독) : 일단 이두용 감독님 영화를 맨 처음 봤을 때부터 이야기하고 싶다. 내가 이두용 감독님 영화를 처음 본 것이 초등학교 4학년 때 <배신자>라는 태권도 영화였다. 사실은 <용쟁호투>라는 이소룡 영화를 보기 위해서 신촌과 마포 일대의 극장을 찾아다니다가 차리셀(한용철)이라는 배우가 옆차기를 하고 있는 <배신자> 간판을 보고 ‘그래 이걸 보자’했다. 극장 문을 열고 들어가자마자 본 것이 골목에 차리셀이 걸어가고 조춘이 그를 맞이하는 장면이었다. 그 때는 아무 때나 들어가서 영화를 보던 때였다. 차리셀이 두목이 보내서 여기를 왔다하니까 조춘이 편지를 달라 해서 차리셀이 편지를 준다. 편지를 펼치니까 ‘죽.여.라’라고 써 있었다. 내용인즉슨 극중 차리셀의 부인이 있는데 굉장히 이뻤고 차리셀의 부인을 두목과 악당들이 겁탈을 하기 위해서 사랑하는 부하인데도 그를 죽이려고 흉계를 꾸민 거다. 영화에서 놀랐던 것은 조춘이랑 그의 악당들이 덤벼들어서 차리셀이 발차기를 하면서 그들과 싸우는 장면이다. 차리셀이 조춘을 드럼통에 거꾸로 박아놓고 드럼통을 발로 차는데 그게 상당히 쇼킹했다. 그런 한국영화가 없었고, 홍콩영화에서도 그런 잔인함이 없었다. 그 다음에 본 영화 중 가장 대단히 재미있게 본 영화가 있는데, 그것이 <돌아온 외다리>인지 <속 돌아온 외다리>인지 헷갈린다. 그건 또 어떤 이야기냐면, 악당들이 차리셀의 다리를 잘라버리고 차리셀은 쇠로 다리를 만들어서 차고 무쇠다리로 발차기연습을 한다. 마지막에 복수를 하러가는 장면에서 악당들이 술집에서 놀고 있는데 골목 끝에서부터 철커덩 철커덩하면서 무쇠다리가 바닥을 울리는 소리가 가까워진다. 차리셀이 그대로 달려들어 돌려차기를 하는 순간 쇳소리가 바람을 가르면서 퍽 소리를 내는데 적어도 두 파열이 되었을법한 소리이다. 활력이 느껴졌다. 그것이 엄청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액션이라는 것이 바람소리까지 내면서 화면을 휘저어 버릴 수 있구나 싶었다. <최후의 증인>에서도 그런 액션들이 있다. 내가 단언컨대 그 당시 한국 영화에서 가장 독특했고 가장 액션의 활력이 넘쳤다.

이두용 : 옛날에는 이두용하면 ‘액션’이었다. 당시에는 영화에 검열이 심해서, 어쩔 때는 잔혹하게 해야 되고, 감독이 갈 때까지 가야 되는데 그러지 못했다. 조폭이 칼을 꺼내서 푹 찔러야 되는데 꺼내서 칼이 보이는 순간 영화를 잘라서 장면 연결이 안 되고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그것이 내가 액션영화를 접은 이유다. 감독들이 영화를 어떻게 만들어야 될지 모르는 시대였고, 검열을 피하다 보니까 어중간한 영화를 만들게 된 환경이었다. 많은 분들이 계시지만 이 영화를 찍으면서 가장 잊을 수 없는 분이 양택조 선생이다. 그 때 당시에도보통 대사 녹음(후시녹음)은 길어야 2~3일이었는데 내가 이 때 처음으로 딱 한 달간 녹음했다. 사실감 있는 목소리가 나오도록 하기 위해서, 이 녹음의 총 지휘를 양택조가 했다. 당시에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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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욱 : 밖에서 잠깐 양택조 선생님과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이 영화를 80년 개봉당시에 보고 그 때 이후로 한 번도 보신 적이 없었다고 하셨다. 지금도 객석에 계신데 오늘 20년을 훌쩍 넘겨 오늘 보신 소감은 어떠신지?

양택조 : 기술시사 때 저도 이 영화를 한 컷도 안 잘린 상태에서 처음부터 다 봤다. 시사 끝나고 눈이 탱탱 붓도록 울었다. 오늘은 안 울 줄 알았는데 보면서 더 많이 울었다. 근데 가만히 눈치를 보니까 우는 분이 많은 것 같다. 아직도 이 정서가 살아있구나, 영화감독들이 계속 열심히 만들면 인정을 받을 수 있겠구나 생각했다. 제가 이두용 감독님의 영화를 처음부터 끝까지 거의 한 작품도 안 빠지고 후시녹음을 같이 했다. 가장 오랜 시간을 작업해서 그런지, 많은 작품 중 <최후의 증인>이 제일 애착이 가고, 가장 예술적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나도 명보극장에서 봤는데 한 시간이나 잘렸더라. ‘경찰이 우스꽝스럽게 되는 것은 안돼‘하고 커트, ’검사가 정윤희에게 욕정을 품는 것도 안돼‘하고 커트. 이것저것 자르고 나니까 영화가 엉망이 돼서 분통이 터졌다. 검열 때문에 엉망이 되어버린 이두용 감독의 <최후의 증인>과 이만희 감독의 <들국화는 피었는데>라는 두 작품이 아까웠는데 <최후의 증인>이 살아나서 천만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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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승욱 : 영화에서 주인공 수사관 오병호가 찾아가는 길들은 한국의 대단히 재미있는 지점과 정서를 포착하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어디를 가든 언제나 여자가 일하고 있다. 추운 겨울 밖에서 여자는 일하고 있지만 남자는 보이지 않고, 맨 처음 술집에서도 아줌마는 술을 따르고 있는데 아들은 따뜻한 아랫목에 담배피고 누워서 얘기한다. 이런 것들이 한국 남자들의 어떤 모습인가 싶었다. 한국 남자들의 사악하고 비열하며, 굉장히 폭력적인 것들이 일제시대와 한국 전쟁을 관통하면서 그렇게 된 것이라는 생각. 살기 위해서 죽이거나, 자포자기하고 밀려나는 한국 남성들의 모습들이 놀랍게 포착되어 있다. 폭력적인 기운들도 잘 나타난 것 같다. 강간장면을 보면 남성들의 욕망이나 사악함 그리고 전쟁으로 인해서 이들이 얼마나 망가진 신성을 가지고 있느냐가 잘 포착되어 있다. 이 지점이 존경하는 지점이기도 하다. 한편 사건을 다 파헤치고 난 이후 주인공은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 감독님이 성을 바라보는 시각과 라스트에 대한 의문을 풀어줬음 한다.

이두용 : 영화가 얘기하고 있는 당시의 시대상황이 남성들이 자기 일 못 잡고 소위 요즘 말하는 백수이다. 여러 가지 권력에 눌려 살고, 자기 재주 없는 남성들이다. 거기다 특히 중요한 것은 인텔리가 안 되는 사람들이 알량한 지식으로 순박한 사람을 망가뜨린다. 그런 점을 지적하고 싶었다. 남성들과 대비해서 여성들은 끊임없이 일을 한다. 우리나라는 전통적으로 여성들이 강하다. <뽕>에서도 보면 도덕적으로 안 되는 일이지만 여자 주인공은 그것을 사는 방법으로 생각하고, 벽촌에서 살기 위한 투쟁을 한다. <장남>에서 황정순 씨가 거대한 어머니상으로 나오는데 그 분이 한번 쓰러질 때 세상이 끝나는 것 같은 무서움을 느낄 수 있다. 내 어머님이 돌아가셨을 때 진심으로 큰일 났다는 생각을 했었다. 어머니가 하셨던 인간관계를 어떻게 내가 다 할 수 있을까 하고 가슴이 덜컹거렸다. 그만큼 어머니의 족적이 참 크다. 제 가슴 속에는 거대한 모상과 강인한 여성들의 이미지가 있어서 영화 요소요소에 표현된 것이 아닐까 싶다. 라스트에서 대해서는 갈등을 많이 했다. 영특하고 신출귀몰하고 기가 막힌 광역수사가 아닌 교과서식으로 육하원칙에 따라 수사를 하는 평범한 수사관을 다루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평범하고 일반적인 수사관이 사건을 들여다보니까 이상한 비리가 있고, 권력이 있고, 여자를 파멸시키는 것들을 접하니까 이 수사관은 인간자체를 싫어하게 된 것이다. 당시 ‘자연을 살리자’라는 문구가 유행을 했는데 자연 보호하기 전 우선 인간보호를 해야한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래서 이 작품을 했다. 일반적인 영화 라스트를 한다면 태영이를 구해서 황바우와 손지혜의 품에 안겨서 하나의 사건을 완결했다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딱 떨어지는 라스트를 할 필요가 있을까 싶었다. 결국은 이 수사관도 혼신을 다하고 긴 시간에 사건을 파헤쳤지만, 어떻게 마무리 할 수 없는 것과 수사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는 것에 책임을 져야한다고 봐서 자살을 택했다. 형사가 죽어가는 모습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한 사람으로써 사회적 책임을 지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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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객 1 : 영화 보면서 궁금한 것이 세 가지가 떠올랐다. 첫 번째는 영화 색감이나 전체적인 느낌이 마치 물 속에 잠긴 듯 한 느낌이었는데 영화에서도 웅덩이나 강처럼 물과 관련된 것이 많이 나온다. 물과 인물에 대한 감독님의 생각을 듣고 싶다. 두 번째는 영화의 살해방법이 전부 둔탁하고 날카롭게 머리를 내려치고 있다. 요즘 영화보다 더욱 쇼킹했다. 세 번째는 캐릭터에 대한 것이다. 주인공 오병호는 정상적이지 못하고, 이방인이나 낙오자 같은 인물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진실에 가까운 인물로 묘사되어 있다. 또 경찰서장은 주인공을 절대적으로 돕는 지원자나 조력자의 역할을 하고 있다. 

이두용 : 영화의 이야기가 암울하고 어두웠던 시대에 관한 것이라 화면은 의도적으로 어둡게 했다.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계속 돌아다니다 보니까 물가도 가게 되고, 영화에 비도 몇 번 등장한다. 우울함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것이 물이 아닌가 싶다. 살해방법에 관한 건 짧게 지나가지만 흉기가 망치였다. 살의를 가지고 망치를 사용하면 당연히 머리를 친다고 생각한다. 총이나 칼보다 끔찍한 생활도구가 살해무기가 될 수 있다. 오병호를 이방인같은 느낌으로 설정한 것은 남자의 외로움이다. 외로움을 가진 사람이어야 되겠다고 생각했다. 외로움이 사건을 수사하는 결정적 역할을 할 수 있고, 외로운 사람이 외로운 사람의 사건을 해결하는데 노력이 더 살겠다고 봐서 교통사고로 부인을 잃고 혼자 남은 남자로 설정해서 외로움을 주었다. 경찰서장은 사회가 다 썩은 것이 아니고 정의감이 있는 관리도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희망을 주기 위한 캐릭터로 설정했다.


관객 2 : 오병호 형사가 항상 누구를 쳐다볼 때 고개를 비스듬히 해서 쳐다보는데 이것이 우연히 그런 것인지 의도적으로 반복을 하신 것인지 궁금하다.

이두용 : 연출이 요구한 것도 있고 하명중이란 배우 본인이 연기도 그렇게 했다. 사건을 유심히 본다는 것과 아무리 거짓말을 해도 진실을 캐내려고 하는 수사관의 모습을 그린 거다.


오승욱 : 오병호의 걸음걸이에 대해 묻고 싶다. 이 영화도 그렇고 감독님의 영화에서 보면 그들만의 독특한 걸음걸이가 있다. 이 영화는 진흙탕 속에 빠진 구두까지 건져가면서 계속 걷는 영화이다.
이두용 : 그 때 하명중에게 촬영하기 전에 수사관 티 내지 말고, 멋있게 하지 말라는 요구를 했었다. 수사관들은 티가 나면 안 된다. 상대방이 봤을 때 수사관이라는 것을 알면 그건 수사관 자격이 없는 것이다. 걸음걸이에 특수한 성격이 없는 무성격의 사람들이어야 좋은 수사관이라는 얘기를 들었다. 그래서 그러한 점을 배우에게 요구했었다. (신윤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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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quaterback 2010.01.24 01:15 신고

    글 잘 봤습니다^^
    며칠전 DVD를 구입하면서 보고 있는데, 정말 좋더군요.

    코멘터리 버전까지 일주일동안 5번 이상 보게되더군요.

    본영화도 물론 좋지만 이두용 감독님의 숨고르는 소리까지 녹음된 서플도 좋았고, 오승욱 감독님 흥분된 어조로 하고싶은 말 진짜로 하고 싶어하는 코멘터리도 좋더군요.

손으로 쓰고, 발로 버틴 그네들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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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선우 감독의 <우묵배미의 사랑>은 누가 불행했고 누가 행복했는지 묻기보다, 누가 어떻게 사랑했고,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보여주는 영화다. 인물 모두에게 애정을 갖고 찍고 애정을 표현한 영화다. 그래서 영화 속 그녀들의 손, 그네들의 발은 한없이 돋보인다. <우묵배미 사랑> 속 그녀들은 손으로 사랑과 가난을 써내려갔고, 그들은 발로 시대의 풍파와 삶의 고단함을 버텨왔던 것 같다.


디테일한 연출이 돋보이는 영화는 아름답고 앙증맞다. 일례로 에릭 로메르의 영화에서 여자의 무릎을 더듬는 남자의 손은 에로티시즘과는 거리가 멀고, 그저 귀여워 보인다(그 손의 떨림이라니…). 트뤼포는 여자를 향한 사랑을 목덜미를 쳐다보는 행위로 대신했다. <쥴 앤 짐>에서 짐은 카트린의 목덜미를 훔쳐보는 걸 즐긴다. 그리고 짐은 카트린의 목을 어루만진다. 트뤼포의 눈은 은밀했다. 브레송의 영화 <사형수 탈옥하다>에서 탈옥을 기도하는 한 남자의 손은 신의 존재를 느끼게 해준다. 한 평자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어떻게 손을 보여주는 것만으로 신의 존재를 증명하는가. 아! 위대한 브레송.” 이 뿐만이 아니다. 오즈 야스지로의 영화를 보고 나면 오차즈케의 맛이 그립고, 맥주와 돈까스를 먹고 싶어진다. 오즈는 일상적인 것을 예술로 승화시켰다. 대단한 오즈 야스지로!

하스미 시게히코라는 영화평론가는 존 포드의 영화에서 맥주병을 던지는 행위가 그의 영화에서 서사를 진행하는 원동력이라고 했다. 그저 던질 뿐인데, 그게 뭐 그리 중요한가 싶다. 허나 실제로 존 포드의 영화에서 던지는 행위는 자주 등장한다. 존 포드의 후기작 <도노반의 산호초>를 보면 쉴 새 없이 날아다니는 맥주병을 확인할 수 있다. 나루세 미키오의 영화 <여자가 계단을 오를 때>는 가파른 계단을 오르는 여자의 발을 보여줌으로써 험난한 여성의 삶을 어루만진다. 나루세 미키오는 이 영화에서 여자 주인공이 계단을 오르는 장면을 매번 다르게 찍음으로써 각기 다른 느낌을 만들어냈다. 이처럼 좋은 영화들은 감독의 섬세한 연출 감각을 자랑한다. 장선우의 <우묵배미의 사랑>도 그런 영화 축에 속한다고 생각한다.


<우묵배미의 사랑>은 소품이 빛나는 영화다. <우묵배미의 사랑>은 풍경마저도 소품으로 사용한다. 그래서 이 영화는 매 씬 마다 화면구성이 꽉 차 있다는 느낌을 준다. 불순물이 첨가되지 않은 순물질이라고 할까? 외화면에서 들려오는 기차의 경적, 여관 방 창 너머로 들려오는 빗소리, 봉제 공장 미싱 소리, 오래된 카세트에서 흘러나오는 뽕짝, 공장 아주머니들이 미주알고주알 나누는 수다, 막걸리 한 사발로 하루의 피로를 씻는 남정네들의 술판, 동대문 시장 상인들의 활기찬 모습, 나이트클럽에서 볼 수 있는 자본주의의 살풍경한 모습 등 이 영화는 근대화 과정을 겪는 변두리 서울을 소리와 풍경으로 세심히 묘사한다. 공장에서 노동자들이 일하는 모습은 과하다 싶을 정도로 긴 호흡을 자랑한다. 여기에는 단순 노동이 가지고 있는 반복성이 있다. 미싱 돌아가는 모습, 아주머니들이 실밥 뜯는 모습 등이 그렇다. 하지만 이 영화는 노동의 반복성을 통해 활기찬 노동 현장을 보여주되 우울한 모습을 보여주지는 않는다. 남편에게 두들겨 맞아 화장으로 멍든 자국을 가린 공례조차도 일할 때만큼은 침울한 표정을 짓지 않는다. 기계의 반복성과 노동하는 손의 리듬감이 있어서 이 영화는 활기차 보인다. 한편 <우묵배미의 사랑>은 탁월한 음향 연출 감각을 보여준다. 외화면에서 들려오는 기차 소리가 대표적이다. 어두운 밤 외화면에서 들려오는 기차 소리는 배일도와 공례가 겪어야 할 험난한 길을 암시한다. 배일도와 공례가 야밤 도주하던 그 날, 일도는 기차 안에서 두 사람의 앞날을 ‘샛길’에 비유했다. 영화에서 기차의 경적 소리는 불안한 미래를 암시하듯 잊혀질만하면 등장하고, 마지막 장면에서도 공례가 떠나고 쓸쓸히 논길을 걸어가는 일도의 어깨 너머로 기차가 지나간다. 기차의 경적소리는 ‘샛길’같은 공례와 일도의 미래가 아니었을까?


남자들은 두 발로 가난과 쓸쓸함을 지탱했다. 영화의 오프닝은 일도가 아내에게 두들겨 맞고 집을 뛰쳐나오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논길을 비틀비틀 걷던 일도는 이내 논두렁으로 나자빠지면서 한 쪽 발을 접질린다. 일도는 발을 움켜잡고 구질구질한 자기 삶을 한탄한다. 그리고 공례를 생각한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을 상기해 봐도 공례가 떠난 후 일도는 논두렁을 거닌다. 이때 일도는 꼿꼿이 선 채로 논두렁을 걸어간다. 첫 장면과 달리 일도는 비틀거리지 않고 무게중심을 잡고 있다. 한 쪽 다리를 다친 일도의 모습과 꼿꼿이 선 일도의 모습은 묘한 대구를 이룬다. 일도는 사랑에 실패하고 남은 상처와 시대가 안겨준 가난을 두 발로 버텨야 하는 남자였다. 반면, 이 영화에서 남자의 발은 폭력의 도구로 쓰이기도 했다. 공례의 남편으로 등장하는 이대근은 아내를 논두렁에 패대기친 후 발로 마구 밟는 무지막지한 남자다. 그는 공례가 일어서려고 하면 다시 자빠뜨린 후 발로 밟았다. 이대근의 무시무시한 발을 보면서 한 가정에서 남자들의 발아래 상처받았을 80, 90년대 여성들을 생각해보니 가슴이 저릿저릿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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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묵배미의 사랑>에서 남자들은 발을 자주 쓴다. 미싱을 돌리는 장면에서 일도의 발이 클로즈업 된다. 또, 일도가 아내와 잠자리를 가질 때 그는 보통의 남자들처럼 손으로 아내의 속옷을 벗기지 않는다. 급한 김에 발가락으로 아내의 팬티를 벗긴다. 물론 이 장면은 애교라고 볼 수도 있다. 한편, 일도는 여자의 손을 잡는 게 어색했나보다. 기차간에서 두 사람이 맥주를 주거니 받거니 하다가 우연히 손을 잡았을 때 당황하던 기색이 역력하던 둘의 모습은 지금 보면 참 아이러니하다. 마치 아침 드라마의 한 장면을 보는 듯. 그래서 재회 장면에서 일도는 공례의 손을 잡지 않고 발로 지그시 눌렀나 보다. 일도와 공례가 헤어진 후 술집에서 재회하는 장면에서 일도는 공례와의 어색함을 감추지 못한다. 일도는 발로 자신의 의사를 표시하고, 공례에게 자신의 온기를 발로 전한다. 이처럼 이 영화에서 남자들은 발로 삶을 버텨냈고, 발로 애정을 표시했다.


여자들은 박복한 삶을 손으로 견뎌냈다. 사랑을 표현하는데 있어서 남자가 발을 사용했다면, 이 영화에서 여자들은 손으로 사랑을 표현하고 전달했다. 가장 밀도 높아야 했던 여관 씬에서, 공례는 일도의 하얀 양말을 빡빡 문질러서 씻어준다. 일도의 아내도, 집 나간 남편이 없는 동안 투덜거리면서 빨래를 한다. 두 여자의 손에는 일도가 내일 신고 나가야 할, 흰 양말이 쥐어져 있다. 두 여자는 내 남자의 발이 깨끗해 보이도록 하기 위해서 더러워진 양말을 손으로 빡빡 문질러서 빨아준다. 그것이 그녀들의 애정이며 사랑이다. 일도의 아내는 일도가 밥을 먹는 동안 가만히 지켜보다가, 조심스레 반찬을 올려 준다. 그 때의 손. 수줍음이 많은 공례는 일도에게 말로 자신의 처지를 말하지 못하고 종종 편지를 쓴다. 화면에서 보이지 않지만 아마도 공례는 혼자서 모래 손으로 꾹꾹 눌러가며 편지를 썼을 것이다. 보이지 않는 공례의 손. 공례의 손은 가끔 적극적으로 변하기도 한다. 야밤 도주하던 날 조마조마하게 망설이던 일도의 손을 잡고 뛰었던 것 역시 공례의 손이다. 공례와 일도가 첫 관계를 가질 때도 그랬다. 그렇게 소극적이던 공례의 손은 일도의 사타구니에 이미 닿아있었다. 장선우의 짓궂은 면이 유감없이 발휘되는 장면이다.

한편 여자의 폭력성은 일도의 아내 유혜리의 손에서 나타났다. 일도의 아내는 화가 나면 손에 잡히는 모든 것을 던져버리고 깨부순다. 그녀가 손에든 부지깽이와 놋그릇, 연탄은 일도의 뒤통수를 가격하고, 전신을 멍들게 한다. 억척스러운 유혜리의 손에서 몰강스러운 맛이 났다.


끝으로 누군가 필자에게 이 영화에서 가장 매력적이었던 장면을 꼽으라면 일도와 공례가 초크로 약속 시간을 정하던 장면을 택하겠다. 미싱을 돌리던 일도는 공장 아주머니들을 눈을 피해 옆자리에 앉은 공례에게 일종의 사인을 보낸다. 그는 들고 있던 초크로 미싱에다 ‘8 1/2’라고 쓴다. 펠리니의 영화제목과 흡사한 게 오마주인가 하는 생각도 잠깐 했다. 또, 이 장면을 보면서 톨스토이의 소설 <안나 카레리나>를 떠올렸다. 레빈이라는 귀족은 어린애처럼 맑고 고왔던 키티라는 아가씨에게 매번 거절당한다. 안타깝게도 그녀는 다른 남자를 사랑하고 있었던 것이다. 우여곡절 끝에 레빈과 키티는 서로의 마음을 알아가게 되고 레빈은 마지막으로 그녀에게 다시 한 번 고백한다. 이 때 레빈은 백묵으로 탁자위에 알파벳 머릿글자만 적어서 보여준다. 남들이 보면 낙서이지만, 키티가 보기에 그 낙서는 일종의 연애편지이며 레빈의 프로포즈였다. <우묵배미 사랑>에서 공례와 일도도 백묵으로 서로 대화를 나누었고, 영화 후반부에 가면 손에 물을 찍어 탁자 위에 비닐하우스에서 만나자는 말을 적는다.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고, 소설과 영화 모두 사랑에 빠진 연인들의 애틋함을 느낄 수 있다.


<우묵배미의 사랑>은 자칫 무거울 수도 있는 90년대 이야기를 해학과 골계미로 풀어낸다. 그리고 이 영화 속 이야기 속에는 욕망과는 거리가 멀고 사랑과 거리가 가까운 러브 스토리가 있다. 이 영화는 누가 불행했고 누가 행복했는지 묻기보다, 누가 어떻게 사랑했고,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보여주는 영화다. 그래서 그녀들의 손, 그네들의 발이 더 돋보였던 것 같다. <우묵배미 사랑> 속 그녀들은 손으로 사랑과 가난을 써내려갔고, 그들은 발로 시대의 풍파와 삶의 고단함을 버텨왔던 것 같다. (이도훈 : 데일리 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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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포스트]
김태용 감독의 ‘내 인생의 영화’ 장선우의 <우묵배미의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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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몸을 던져 사랑하고 싶은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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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일 저녁, 김태용 감독이 추천한 장선우 감독의 <우묵배미의 사랑>의 상영이 끝난 극장은 흥분이 가라앉지 않았다. 이 영화가 ‘내 인생의 영화’라며 ‘많은 영향을 받았고, 여전히 받을 거다’라고 조심스레 밝힌 김태용 감독과의 대화, 세대 불문한 영화의 감동과 여러 층위로 다양하게 해석되는 영화를 두고 말 말 말이 이어졌다. 이날 시네토크는 이번 영화제 기간 중 가장 길었고, 관객들은 경쟁하듯 손을 들어 김태용 감독에게 질문할 수 있는 행운(!)을 얻으려 했다. “진짜 재미있죠?”라는 말을 시작으로, 이 영화 때문에 영화감독이 될 생각을 했다고 고백한 김태용 감독이 온 몸을 던져 사랑한다는 영화 <우묵배미의 사랑>에 관한 이야기를 옮겨본다.


김성욱(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래머) : 2000년 즈음 <씨네 21>의 ‘내 인생의 영화’라는 칼럼에도 장선우 감독의 <우묵배미의 사랑>을 꼽았더라. 당시 글을 보면 한국 영화를 전혀 보지 않던 시절, 친구의 추천으로 본 영화라던데, 이 영화를 보게 된 계기와 몇 년이 지난 현재 또 다시 추천한 이유, 그리고 글에서는 극장에서 본 한국영화로는 처음이라고 했던 것 같은데 정말인인 궁금하다.

김태용(영화감독) : 한국 영화를 처음 본건 아니지만, 처음으로 온 몸을 던져 좋아했던 한국 영화다. 당시 나는 영화를 좋아하긴 했지만, 영화광은 아니었다. 90년도 이전에는 단순히 영화 보는 게 좋아서, 유명하다는 영화를 조금 찾아보는 정도였다. <우묵배미의 사랑은>은 나에게 있어서 ‘내가 영화를 만들어야겠다’, ‘내가 영화 만드는 사람이 되면 얼마나 좋을까?’란 생각을 처음으로 하게 해준 영화였다. 좋아하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 친구가 한국 영화를 좋아했다. 평소 그 친구가 한국영화 이야기를 많이 들려주었는데, 그 친구의 추천으로 이 영화를 보게 된 거다. 그래서 <우묵배미의 사랑>을 볼 때마다 그 사람이 생각나고 그립다.


김성욱 : 과거에는 어떤 점이 좋았고, 감독이 된 후 본 느낌은 어떤가? 어느 부분을 매력적으로 느꼈는지 말해 달라.

김태용 : 영화 속에 등장하는 사람들이 참 이상하다고 생각했지만, 굉장히 와 닿았다. 우선 <우묵배미의 사랑>은 지방변두리 한 마을의 이야기라는 게 특이했다. 당시 내 편견으로 영화가 변두리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룬다는 것은 생각지도 못했다. 또, 이 영화를 보면서 한 인간이 어떤 환경에 처해 있다면, 그 환경과 싸우는 것보다 자기 내부의 욕망과 끊임없이 싸우는 게 중요하다는 걸 알게 됐다. 이 작품을 보고 나서 영화가 사람을 담을 수 있다는 걸 느꼈다고 할까. 주인공 배일도는 자신이 처한 환경을 극복하기 위해서 끊임없이 고민하고 싸우는 인물이라 매력적이다. 오늘 이 작품을 다시 보면서 내가 이 작품의 영향을 많이 받았고, 앞으로 계속 영향을 받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가족의 탄생>에 나오는 엄태웅의 캐릭터와 배일도가 좀 닮지 않았나? 아울러 이 영화는 유머러스하면서도 에로틱하고, 때때로 폭력적이기도 하다. 병행하기 어려운 요소들이 잘 어우러져 있어 영화 보는 재미가 있다.


김성욱 : 장선우 감독은 영화에 등장하는 모든 사람에게 애정이 많았던 것 같다. 모든 인물들에게 이야기 하고 자신을 변호를 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 두는 것 같다. 장선우 감독은 38살에 이 영화를 만든 것 같은데, 굉장히 어른스러운 영화를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영화에서 뽕짝 음악도 인상적으로 들리더라. 감독님은 어떤 장면이 인상적이었나?

김태용 : 공례가 여관에서 배일도의 양말을 빨아주는 장면. 대부분의 영화에서 여관 정사 씬이면 둘 사이의 밀도가 중요할 텐데. 여관 정사 씬에서 양말을 빠는 게 정말 신기했다(웃음). 이 영화를 보고 있으면 각각의 인물들이 자신이 처한 삶에서 벗어날 수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영화 곳곳에 그런 암시가 깔려 있다. 그래서 그들의 사연과 그들의 미래가 궁금해지더라. <우묵배미의 사랑>에는 70년대에서 90년대로 이어져오는 근대화 과정이 암시되어 있고, 서울과 변두리의 삶이 잘 배치되어 있다. 요즘 영화에서 볼 수 없는 모놀로그 형식의 독백도 인상적이었다.


관객 1 : <우묵배미의 사랑>에는 노동자들이 일하는 모습이 자세하게 나온다. 반면, 90년대 중반 이후의 한국영화들을 보면 직업은 있으나 노동은 없다는 생각이 든다. 영화 안에서 노동하는 모습이 한 인물을 표현하는데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와 현재 한국영화에서 노동하는 모습이 실종된 이유는 뭐라 생각하는지?

김태용 : 나 역시 영화를 보면서 영화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직업이 왜 중요한지 생각해보았다. 90년대 전후 내가 시나리오 공부를 하던 20대 초반에는 캐릭터를 구상할 때 그를 둘러싸고 있는 환경을 중요시했다. 캐릭터가 살고 있을 장소, 가족, 직업 같은 요소들 말이다. 반면, 요즘은 설정 위주로 인물간의 관계를 생각해서 캐릭터들이 바뀌는 것 같다. 언제부턴가 캐릭터들이 어디에 살고, 어떤 일을 하며, 하루 24시간을 어떻게 보내는지 관심이 적어지는 것 같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우묵배미의 사랑>은 80년대에서 90년대까지 이어져온 리얼리즘의 전통에 입각해서 영화 속 이야기를 관념적으로 접근한 것 같다. 이 영화를 보면 노동하는 사람들을 부각시키려고 애쓴 장면들을 많이 볼 수 있다. 요즘 영화들은 <우묵배미의 사랑>에서 볼 수 있는 영화적 전통에서 자유로워진 것 같지만, 나는 캐릭터를 만들 때 가장 중요한 건 여전히 인물들을 둘러싼 환경이라고 생각한다.


관객 2 : 영화가 전체적으로 재미있지만 씁쓸하고 슬픈 장면도 많았다. 배일도는 단순해 보이지만, 재미있게 살려고 했던 사람 같다. 배일도가 공례와 나이트클럽에 가는 장면에서 평소 낙천적이던 그가 절망에 빠지는 게 인상적이었다. 공례는 배일도를 만나면서 사랑을 깨달았기 때문에 그녀의 미래는 행복할 거라고 생각한다. 반대로 배일도는 사랑을 뒤늦게 깨달았기 때문에 그의 미래가 비관적일 수도 있다. 재미있고 즐겁게 살려는 사람일수록 현실을 절망적으로 받아들일 가능성이 많다고 보는데, 배일도는 끝내 자살할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해보았다.

김성욱 : 이 영화 속 등장인물 중 누가 더 불행할거라고 생각해본 적은 없다. 보통의 영화들은 두 사람이 중심이 되면 주변에 등장하는 사람은 잠깐 보여줄 뿐인 반면, 이 영화는 둘 사이의 관계라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둘에 플러스되는 누군가가 있다는 점이다. 이 영화는 두 사람 사이의 틈 안에서 존재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누가 더 행복하고, 누가 더 불행하게 사는지 판단하기 쉽지 않다. 그들의 미래가 행복한지 불행한지는 한 인물과 그 주변 사람들의 관계가 어떻게 되느냐에 따라 결정되는 것 같다. <우묵배미의 사랑>은 한 인물의 이야기만을 다루는 영화가 아니기 때문에 한 사람의 의지만으로는 행복과 불행을 판단하기는 어려운 것 같다.


관객 3 : 영화 안에서 기차가 등장하는 장면이 많다. 영화의 엔딩 장면을 봐도 쓸쓸히 걸어가는 배일도의 어깨 너머로 기차가 지나가는 게 보인다. 연출을 하는 입장에서 영화 속 기차를 어떻게 보았는지 궁금하다.

김태용 :  장선우 감독의 <우묵배미의 사랑>에서는 공간이 중요하게 드러난다. ‘우묵배미’란 마을은 서울에서 밀려나 이주해 온 사람들과 오랫동안 그곳에서 농사짓고 살아온 사람들, 개발이 진행되면서 서울로 진입하려다가 실패한 사람들이 혼재되어 있다. 기차는 서울과 마을, 이주민과 정착민간의 복잡한 관계를 이어주는 끈으로 사용되고 있다. 외화면에서 들려오는 기차 소리도 서울 근방이라는 공간감을 잘 살리고 있는 것 같다. (이도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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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포스트]
장선우의 <우묵배미의 사랑>에 관한 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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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정한 청춘 뒤에 다시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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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류승범이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를 찾아 구스 반 산트의 <아이다호>를 추천했다. 거리를 떠도는 청춘들의 모습을 담은 이 영화에서는 너무나 젊은 나이에 작고한 리버 피닉스의 아름다운 모습, 영원한 청춘이 담겨 있다. 상영이 끝난 후에는 배우 류승범의 진솔하고 진지한 얘기가 오간 시네토크가 이어졌다. 길에서 시작되어 길에서 끝났지만 끝이 아닌 것 같은 <아이다호>가 자신, 그리고 우리네 삶과 닮아 있다고 말하는 류승범으로부터 그가 생각하는 청춘, 리버피닉스, 그리고 배우로 살아간다는 것에 대해 들어 본다.

류승범(영화배우, 이하 류) : 열아홉 살 때 우연히 비디오테이프로 이 영화를 보았다. 열아홉에 보았기 때문에 영화가 나와 닮아있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 저 거리에 있는 청춘들과 왠지 모를 동질감을 느꼈다. 그때가 제 스스로는 청춘이었고, 질풍노도의 시기였는데 그 시간이 지난 다음에 성인이 되었을 때 다시 이 영화를 보면 어떨까 하는 마음에 추천했다. 시간이 지난 후 내가 나를 돌아보면 지금의 내 모습이 키아누 리브스의 모습인지, 아니면 여전히 리버 피닉스의 모습인지 스스로 한번 생각해보고 싶었던 것 같다.


김성욱(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래머, 이하 김) : 이 영화에서 리버 피닉스는 잊을 수 없는 모습을 보여준다. 지금 다시 볼 때 리버 피닉스란 배우에게 어떤 느낌이 드는가?

류 : 영화를 추천하면서 청춘이라는 화두를 던졌는데, 내가 왜 이 영화를 청춘처럼 느꼈을까 영화를 보는 내내 생각해보았다. 청춘이라는 것은 굉장히 불안정한 상태인 것 같다. 몸은 이미 성장했지만, 머리로는 과거로 갈까 미래로 갈까 고민하는 그런 상태 말이다. 어렸을 때 느꼈던 따뜻함이 없는 거리에서, 내가 나 스스로를 지켜야 하고, 한 발을 내딛고 나가야 하는데 그게 잘 안되는 게 청춘 같다는 생각을 했다. 제가 본 리버 피닉스는 그런 모습이었던 것 같다. 영화에서 마이크(리버 피닉스)는 성에 대한 정체성,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 어렸을 때의 환경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한다. 영화에서 리버 피닉스는 자신에 대한 확실한 정체성을 찾지 못하고 흔들리는 시기나 인물의 표상 같다는 생각을 했다.


김 : 리버 피닉스가 모닥불 앞에 앉아 키아누 리브스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류승범 씨는 어떤 장면을 인상적으로 기억하는지?

류 : 오늘 보았을 때는 오프닝과 엔딩에서 리버 피닉스가 기면발작으로 쓰러지는 장면이 인상 깊었다. 끝이 보이지 않는 하이웨이, 그 길 위에서 시작하고 끝나는 영화지 않나. 느낌이 굉장히 서글프다. 처음과 끝을 다시 돌아가는 듯한, 절대 끝을 보여주지 않은 이런 영화는 뭔지 모를 답답함, 아련한 씁쓸함이 있다.


김 :
이 영화를 보면 리버 피닉스에 대한 개인적인 느낌들을 발견할 수 있는 것 같다. 연기자로써 개인이 느끼는 것과 영화에서 표현되는 것의 간극이 있는데, 이에 대해서는 어떤 생각을 갖고 있나?

류 : 어떤 영화든지 배우는 자기 내면을 끄집어내지 않아도, 그것이 영화에서 느껴질 수 있는 것 같다. 제임스 딘이나 리버 피닉스 같은 경우에도 그 얼마 되지 않은 영화로 그 사람의 감춰지지 않은 모습들은 볼 수 있지 않은가. 제가 배우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리버 피닉스가 아이다호를 선택했을 때는 그 만의 이유가 있었을 게다. 배우가 영화를 선택하는 이유는 있다고 생각한다. 배우는 영화를 선택할 때 활자로 만날 수밖에 없는데, 그 때 여러 가지 직관들이 오는 것 같다. 그 직관을 믿을 수밖에 없다. 그 활자에 이상하게 매료되는 경우도 있고... 리버 피닉스 역시도 그 활자를 보고 자기와 많이 닮아있다고 느끼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그렇게 배우는 자신을 표현하기도 한다. 2008년인 지금 이 영화를 보더라도, 시대가 지나 어린 친구들이 십년 후에 이 영화를 보더라도, 리버 피닉스가 전달하고 싶은 마음을 느낄 수 있는 것. 영화는 그런 게 참 대단한 것 같다. 제 상상인데, 리버피닉스는 이 작품과 많이 닮아있지 않은가 하는 생각을 한다. 너무 잘해서 그런가, 너무 잘생겨서 그런가?!(웃음).


관객 1 : 영화를 처음 볼 때랑 나중에 다시 볼 때랑 다르다고 말하는 사람들을 종종 만난다. 류승범 씨도 <아이다호>를 다시 보니까 안 보이던 부분이 보이지 않던가? 있다면 어떤 것인지 궁금하다.

류 : 살다보면 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친구들이나 길 위에서 내지는 일 속에서 만나게 된다. 그런 사람들을 새롭게 만나고 성장하고 그렇게 변해가는 내 모습을 당시에는 잘 못 느끼는 것 같다. 사실 제가 처음 봤을 때는 스콧과 마이크의 관계만 강렬하게 들어왔는데, 다시 보니 저 둘이 굉장히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있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 보았을 땐 마이크가 언제나 혼자 있는 듯이 외로워 보였는데, 지금 보니까 그런 것이 달라보인다. 외로워 보이는 사람도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서로가 서로를 만나면서 성장하는 그런 모습들이 보이는 거 같다. 다시 보니까 예전에 못 봤던 마이크의 주변 사람들이 많이 보인다.


관객 2 : 영화에서 배우를 보면 실제 인물이 아니라 그 인물 자체가 된 듯한 느낌이 있다. 배우들이 몰입을 너무 많이 하다보면 전체적인 느낌보다는 나무만을 볼 때가 있다. 배우들도 전체적인 영화의 느낌을 알기 위해 시나리오를 써본다거나 하는 시도를 할 수 있는 같은데, 이런 점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류 : 영화를 굳이 두 가지로 구분해 보자면 어떤 영화는 캐릭터가 이야기를 만드는 경우가 있고, 어떤 영화는 이야기가 중심이 되고 인물들이 도구로 되는 영화가 있다. <아이다호>는 전자의 경우에 해당하는 영화 같다. 배우는 그렇다면 연기를 떠나서 그 영화가 어떤 영화인지를 봐야 한다고 본다. 가끔 보면 나무만 봐도 되는 영화가 있다. 배우가 인물에 대한 것만 보아도 영화는 완성되어지는 경우가 그렇다. 거기서 배우가 자칫 자꾸 숲을 보려고 하면 엉뚱하게 될 때가 있다. 배우로서 선택을 할 때 그런 큰 구분을 하는 것이 숲을 보는 첫 번째 단계 같다. 그것은 영화에 임하고 있을 때 보다는 처음 선택을 할 때 보아야 하는 점이다. 사실 연기를 하면서는 다른 생각 안 하려고 한다. 혼자 하는 작업이 아니니까. 감독이 숲을 보면 배우는 나무를 봐야 한다. 서로를 신뢰하고 내게 주어진 것이 나무를 보는 것이라면 나무를 자세히 봐야하는 거다. 그러다보면 이미 숲에 들어와 있게 되는 것 같다. 시나리오나 연출 공부를 통해 숲을 볼 수 있는 건 아닌 것 같다. 배우가 그런 작업을 하지 않는다고 해서 숲을 보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김 : 배우라는 존재는 일반인들이 보기에 동경의 대상이 될 수도 있고 이미지 때문에 현혹될 수 있는 대상이기도 하다. 일반적인 질문이긴 하지만 류승범 씨는 어떤 배우가 되고 싶은지?

류 : 매일 잠들기 전에 하는 질문이기도 하다. 사실 아직도 명쾌한 답은 없어서... 요즘 어떤 것이 좋은 배우인가 하는 고민을 많이 한다. ‘좋은 배우는 연기를 잘하는 것인가, 그렇다면 연기는 뭐지, 연기는 가짜인데, 그럼 나는 가짜 인생을 살아야하나’ 같은 양파 껍질을 벗기듯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을 항상 던진다. 여전히 정답은 없다. 계속 고민하게 될 지도 모른다. 그래서 스스로 요즘에 정리를 한건, 인간 류승범이 어떻게 사느냐가 좋은 배우가 되는 첫걸음이지 않나 하는 거다. 제가 좋은 사람이 아니면서 좋은 배우가 될 수 없는 것 같고, 제가 진솔하지 않으면 진솔한 배우가 될 수 없고, 이런 단순한 맥락이 있는 것 같다. 거짓이 아닌 것, 그것을 지킨다는 것 하나로도 배우로써 성장할 수 있는 길이 아닌가 생각한다. 그냥 뜬구름같이 ‘좋은 배우가 되고 싶다’가 아니라 시작해야 하는 것 같다. 인간 류승범이 어떻게 사는 것, 어떤 생각을 하고 사는 것, 이것이 좋은 배우가 되는 첫 걸음이지 싶다. (김나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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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마테크에 관한 짧은 필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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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한 영화 감상이 아닌 온 몸으로 영화를 체험하게 하는 시네마테크의 공기는 영화에 대한 갈증을 씻어주는 묘한 매력이 있다. 인간이란 누구나 그리운 대상을 떠올리고 추억하며 지극한 행복을 느끼는 존재다. 고전 속에는 그렇게 그리운 대상들이 오롯이 살아 숨쉬며 살아있는 우리들에게 행복을 전달해준다.

시네마테크의 위치는 오묘하다. 이전에 있었던 아트선재센터도 지금의 허리우드극장도 친근한 공간은 아니었지만, 막상 찾고 나면 왠지 모르게 마음이 놓이는 곳이란 생각이 든다. 인사동 거리를 거쳐 돌담길을 차례로 지나 외로운 계단을 걸어 내려가야 만날 수 있었던, 그리고 북적거리는 종로 거리를 지나 덜컹이는 엘리베이터의 불안함을 감소해야 도착할 수 있는 곳. 시네마테크에 대한 알싸한 추억담은 때때로 영사기를 통해 상영되는 한 편의 영화처럼 느껴지곤 한다.


아마도 내 기억이 맞는다면 내가 맨 처음 시네마테크를 찾은 것은 2002년의 여름 즈음, 정독도서관 열람실에서 책 구경하는 게 유일한 낙이었던 스트레스 충만한 고3 시절일 것이다. 그 무렵 나에게 시네마테크는 정독도서관을 들어가기 전에 괜히 한 번 기웃거려보는 호기심의 대상이었는데, 그러던 어느 날 호기심이 심하게 발동하여 극장 안으로 들어선 게 시네마테크와의 첫 만남이었다. 막연하게 들어선 시네마테크의 첫인상은 고요하면서도 친밀한 느낌이랄까(?!) 멍하니 두리번거리던 나에게 누군가 무언가를 물어왔는데 벌떡 일어나 도망쳤던 기억이 난다. 이어폰을 끼고 있어 무슨 말인지 듣진 못했지만 아마도 어떤 영화를 보러 왔냐는 정도의 질문이 아니었나 싶은데, 뭐가 그렇게 부끄러웠던 건지…. 아무튼 그렇게 시네마테크와의 첫 만남은 나름 강렬한 청춘의 기억으로 남아있다. 도망치듯 극장을 빠져나오고 끝나지 않을 것만 같았던 고3 시절은 지나가고 나는 대학에 입학했다. 그리고 오랜만에 찾은 시네마테크는 아이러니하게도 소격동의 마지막 고별전인 '라이너 베르너 파스빈더 회고전'이 진행 중이었다. 독일의 비정한 역사 속에서 끊임없이 소외와 억압의 문제, 인간관계의 실체를 자문했던 그의 작품을 보기 위해 매일 시네마테크를 찾으면서 나는 고전 영화를 향한 막연한 그리움 같은 게 조금씩 움튼 것 같다.


개인적으로 의미가 많았던 아트선재센터에서 허리우드극장으로 자리를 옮기고부터 한 달에 한 두 번씩은 꾸준히 시네마테크를 찾는다. 휘청거리는 엘리베이터를 함께 타고 올라오다가 지금은 없어진 극장 건너편 카바레로 향하는 아주머니 아저씨들과 갈라질 때의 그 은밀한 정서. 더불어 매번 마주쳐서 익숙한, 왠지 반갑게 인사를 해야 할 것만 같은 관객들을 마주할 때의 어색한 감정은 이젠 정겹게 느껴진다. 내노라하는 감독들과 종종 같은 상영관에서 영화를 관람할 때면 주책스럽게 영화보다 그들의 뒤통수에 시선이 가기도 한다. 가끔 비 내리는 흐린 스크린과 잡음 가득한 사운드 같은 건 별로 중요치 않다, 그저 쉽게 접할 수 없는 고전들을 함께 할 수 있는 공간이 있다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단순한 영화 감상이 아닌 온 몸으로 영화를 체험하게 하는 시네마테크의 공기는 영화에 대한 갈증을 씻어주는 묘한 매력이 있다. 인간이란 누구나 그리운 대상을 떠올리고 추억하며 지극한 행복을 느끼는 존재다. 고전 속에는 그렇게 그리운 대상들이 오롯이 살아 숨쉬며 살아있는 우리들에게 행복을 전달해준다.


올 해로 세 번째로 맞이하는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는 시네마테크의 주옥같은 프로그램 중에서도 특히나 반가운 행사다. 시네마테크의 소중함을 알고 그 안에서 상영되는 고전 영화의 가치를 이해하고 또 그 모든 기억과 경험을 나눌 수 있는 ‘친구’들이 함께하기 때문이다. <올 댓 재즈>를 보고나서 밥 포시의 경이로운 열정을 찬양하고 <더러운 얼굴의 천사>를 보고 제임스 캐그니의 소름끼치는 연기에 감탄했던 기억, <그림자 군단>을 보고 너나할 것 없이 감격적인 표정을 짓던 감독들의 얼굴, <셜록 주니어>를 보며 박수치며 깔깔거린 시네마테크 ‘친구’들의 웃음까지. 이 모든 것이 어우러져 한 편의 영화를 보는 듯한 착각과 환상에 젖어드는 공간이 있어 참 다행이란 생각이 든다. 이젠 이 친구들이 더 이상 어색함에 서성이지 않게, 그리울 때면 언제든 거장들의 명작들을 꺼내볼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할 차례다.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친구가 있고 그런 친구가 모여드는 시네마테크라면 아마도 세상에서 가장 매력적이고 매혹적인 공간으로 기억되지 않을까 싶다. / 이유진 (무비위크 기자 illenne@movieweek.co.kr)

시네마테크에서 시공간을 공유하는 경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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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마테크는 현재의 시네필을 위한 전유물만이 아니라 아직 시네필인지 아닌지 확신할 수는 없으나 형언할 수 없는 느낌의 영화를 만날 수 있는 곳, 그런 영화를 발견하고 틀어주는 곳, 시네필로 나아가게 만드는 곳, 시공간을 공유하는 경험, 흔적을 채취하는 장소이다.

‘2008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가 서곡을 연지 일주일이 지나고 2주째에 접어든다. 연일 흥분과 호기심이 계속되는 시간을 보내고 있어 즐겁다. 그 가운데 뜬금없이 쓸데없는 생각에 확 꽂혀버릴 때가 있다. 극장에서 영화를 본다는 행위, 영화가 상영되는 그 시간 동안에는 시간과 장소를 누군가와 공유한다는 그 자체에 매료되는 어느 순간 등이 그렇다.


한 달간은 '친구들 영화제'와 함께 하리라 맘먹고 개막식에 참석했을 때 내게 첫 번째로 눈에 들어온 것은 ‘새로워진 리더 필름’과 개막 영상을 통해 뇌리 속의 기억의 잔상을 끄집어 낸 그간 상영된 작품, 프로그램에 대한 포스터들 이었다. 지난 5년간의 시간을 다시금 재출발하는 의미에서 ‘새로운 영년’을 선포한 시네마테크가 공들여 만들었을 그 '리더필름'과 ‘개막 영상’을 스크린으로 보면서 순간순간 많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그 중 하나는 화재 대피에 대한 안내 문구가 나오면서 정말 불꽃이 나오더라는 것. 그 짧은 이미지를 보면서 ‘역시 단순 명료해서 좋아!’라는 생각을 했고 ‘근데 음악도 바뀌었네. 난 전자음의 짧고 심플한 예전에 나오던 음악이 더 좋은데’라는 생각도 했다. 뭐 이런 저런 정말 쓸데없는(?) 자질구레한 생각들이 순간 넘쳐났다.


그리고 중요한 또 한 가지 생각은 ‘시네필이 지켜야할 에티켓’에 대한 문구를 접할 때 뇌리에 스친 것. ‘시네필’이라는 단어다. 갑자기 궁금해졌다. 나는 과연 시네필인가? 혹은 여기 이곳 시네마테크, 서울아트시네마는 시네필을 위한 공간인가? 시네필이 아니면 들어올 수 없는 곳인가? 이런 질문이 들었다. 친구들 영화제에 관한 소식을 다룬 몇몇 매체의 기사 헤드라인에 보면 곧잘 “영화광들 다 모인다!”, “시네필들의 향연” 등등의 문구를 접하게 된다. 그것만 보면 시네마테크가 시네필만을 위한 장소로 국한되어지는 느낌이 있다. 이 지점이 좀 아이러니하다.

이 점이 궁금해 시네필이라는 단어를 사전에서 뒤져보았다. 게으른 성격 탓에 그 어원이 어디서 기원했는지는 찾아보지 못했으나 사전을 뒤졌을 때 국어사전에 등록된 단어라는 점이 또 한편으론 마냥 신기하고 반갑기도 했다. 그것도 언제 등록된 단어인지 모르나 신어, 즉 새로이 생겨 만들어진 신조어로 나왔다.
사전적 의미로 시네필은 ‘영화를 열광적으로 좋아하는 사람’으로 명기되어 있다. 소위 말하는 ‘영화광’을 지칭한다. “그렇다면 나는 영화를 좋아하긴 하는데 때론 열광할 때도 있지만 때론 지칠 때도 있는데 열광한다는 것의 기준은 뭘까?”라는 생각에 미친다. 좋으니까 보고 매력적이니까 주머니를 털어 돈 주고 영화보긴 하지만 진짜 내가 열광하는 것인가? 이 점은 석연찮은 구석이 있다. 열광에는 취향의 문제가 끼어든다.

한 달 전 즈음 필자는 아는 몇몇 지인과 모 영화평론가와 함께 술자리를 가진 적이 있다. 그 곳에서 나눈 얘기 중 하나가 시네필에 대한 것이었다. “선생님은 1년에 영화를 몇편이나 보셔요? DVD나 비디오는 얼마나 소장하고 있나요? 시네필의 대명사로 알려진 트뤼포는 2만 편이 넘는 영화를 봤다고 하던데(숫자에 약해 정확치는 않음)...” 이런 질문이 오가던 중 그 평론가는 다음과 같이 답했다. “에이 난 시네필이 아니예요. 왜냐? 취향이 없거든... 정말 시네필들이 얼마나 많은데...” 이 말은 그 자리에 있던 이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있었다. “시네필, 영화를 열광적으로 좋아하는 사람은 취향이 있어야 하는 구나”다. 이번 친구들 영화제에 정성일 평론가도 자신이 선택한 <수라>라는 작품에 대한 소개를 하면서도 비슷한 얘기를 했다. “<수라>는 영화를 사랑하는 모든 이들을 만족시킬 수는 없는, 취향의 영화다. 이 영화가 취향에 맞았다면 나는 그들을 친구를 넘어 동지라 부르고 싶다”라고, 이 지점에서 또 한번 생각해본다. 난 취향이 있나? 생각해보면 별반 없다. 멜빌을 보고도 로메르를 보고도 혹은 최근에 친구들 영화제에서 본 페라라를 보고도 좋은 지점을 발견한다. 그럼 난 취향이 없는 것인가? 취향이 없다는 것 자체가 취향이 될 수는 없나? 꼭 취사 선별이 필요한 것인가? 아직 해답을 찾지는 못했다. 혹은 꼭 해답을 찾을 필요성을 느끼지도 못한다. 이 시점에서 분명하게 드는 한 생각은 “그러한 생각을, 고민을, 내가 지금 하고 있구나”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닌가하는 거다. 내가 아직 취향을 갖지 못한 것은 아직 봐야할 영화, 보고픈 영화가 너무 많아서 그럴 수도 있고, 정말 취향 자체가 없는 것일 수도 있다. 그리고 그 자체가 나의 취향이라 말할 수도 있을게다.


연인들이나 혹은 친구들 간에도 우리는 곧잘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한다. “자긴 내가 좋아? 어디가 좋아? 좋은 이유 열 가지만 대봐.” 혹자는 콕 집어서 좋은 이유를 열거하기도 하나 혹자는 “그걸 어떻게 말로 하니. 그냥 좋아. 다 좋아. 마냥 좋아!”라고 말로 표현할 수 없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리고 우리는 때론 후자의 말에 더 큰 감동을 느끼게 된다. 이를 영화에 대비해 봐도 그렇다. 대사 하나에 배우 표정 하나에 그 작품이 뇌리에 와서 박힐 때가 있다. 줄거리도 배우 이름도 감독이 누구였는지 설사 기억을 못 한다 해도 말이다. 우리들은 종종 너무 좋은 영화를 보면, 말문이 막혀, 가슴이 먹먹해질 때가 있다. 얼마 전 필자가 아는 허우샤오시엔과 오즈 야스지로를 유독 좋아하는 지인이 그런 말을 했다. “누나 정말 좋은 영화를 보고 그 감독한테 경배를 올리듯 헌사 내지는 정말 좋은 글을 쓰고 싶은데... 맘처럼 되지 않아요. 쓸 수가 없지 않아요? 표현할 수가 없네”라고... ‘형언할 수 없다’는 최고의 찬사인지도 모르겠다.


트뤼포는 영화를 좋아하는 첫 번째 행위는 같은 영화를 반복해서 보는 것이고 두 번째 행위는 영화에 관한 글을 쓰는 것이고 마지막 세 번째는 영화를 만드는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아직 필자는 첫 번째 행위에 머무르고 있으나 혹은 아직도 못 본 영화가 너무 많아서 보는데 집중하고 있는 시점이며 영화를 사랑하기 위한 준비단계에 있다. 그리고 상상력이 부족한 탓에 영화를 만들 생각조차 감히 해보지 못한다. 그것은 내 일이 아니라는 느낌이 지배적이다. 하지만 그러니까 그렇기 때문에 시네마테크를 찾는다. 시네마테크는 현재의 시네필을 위한 전유물만이 아니라 아직 시네필인지 아닌지 확신할 수는 없으나 형언할 수 없는 느낌의 영화를 만날 수 있는 곳, 그런 영화를 발견하고 틀어주는 곳, 시네필로 나아가게 만드는 곳, 시공간을 공유하는 경험, 흔적을 채취하는 장소이다.


영화는 결코 혼자 할 수 없는 공동의 작업이고 극장에서 상영될 때만이 비로소 완성되는 것 같다. 최종 목적지는 바로 관객이다. <미셀 푸코 연구>라는 책에서 바르트는 "텍스트는 여러 문화에서 나온, 그리고 서로 대화하고 패러디화하고, 항의하는 여러 글쓰기로 이뤄져 있다. 그러나 이 다면성이 합치는 한 장소가 있는데, 그 장소는 작가가 아니라 관객이다. 텍스트의 통일성은 시원에 있는 게 아니라 목적지에 있다. 그러나 그 목적지는 개인적일 수 없다. 관객은 글을 이루는 모든 흔적들을 하나의 자리에 모으는 어떤 사람이다"라고 했다. 시네마테크는 그러한 관객들, 친구들과 함께 밤의 문화를 향유할 수 있는, 언제 졸업할 지는 모르나 그러한 흔적이 물씬 풍겨나는 장소이고 그 중심은 바로 시공간을 공유하는 그 자체의 경험이다.


필자는 종종 엉뚱한 상상을 해본다. “내가 지금 보고 있는 저 이미지가 현실이고 내가 현실이라고 믿고 있는 이 세계가 환상일지도 몰라.” 역설적인 표현이지만,가령 삶과 죽음, 실재와 허상 등은 동어반복에 지나지 않을 지도 모른다. 고다르가 영화를 ‘1초에 24프레임의 진실’이라고 말한 것이나 로라 멀비가 이를 역설적으로 표현한 ‘1초에 24프레임의 죽음’이라고 말한 것은 동일 선상에서 다 맞는 말 같다. 그리고 시네마테크는 우리에게 그러한 삶과 죽음의 진실, 역사의 흔적을 만끽하게 해주는 장소다. 알랭 레네가 <세상에 모든 기억>이란 단편에서 세상에 모든 기억이 존재하는 곳이 도서관이라고 했는데 같은 의미로 시네마테크는 영화에 관한 모든 기억, 흔적이 있는 곳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나아가 시네마테크가 보다 기민한 행동으로 영화 박물관, 영화 학교의 역할을 톡톡히 해주길 기대해본다.


벤야민의 <일방통행로>라는 책의 <주요소>라는 챕터를 보면 다음과 같이 서술되어 있다. “지금 삶의 구성은 확신보다는 훨씬 더 사실들의 권역에서 이뤄지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참된 문학 활동이 문학의 틀 안에서 이뤄지길 바라서는 안 된다. 문학이 제대로 효력을 발휘하려면 행동과 글쓰기가 엄격하게 교대되어야만 한다. 그렇게 하려면 괜히 젠 체하기만 하며 일반적인 제스처만 취하고 마는 저서보다 현재 활동 중인 공동체들에 영향을 미치기에 훨씬 더 적합한 언뜻 싸구려처럼 보이는 형식들, 즉 전단지, 팸플릿, 신문 기사와 플래카드 등을 만들어야 한다. 그러한 기민한 언어만이 순간순간을 능동적으로 감당할 수 있다. 온갖 의견이 사회적 삶이라는 거대한 장치에 대해 갖는 관계는 기름과 기계의 관계와 동일하다. 아마 터빈 위에 서서 위에다 기계유를 쏟아 부을 사람은 없을 것이다. 감추어져 있는 축이나 이음매에 기름을 조금 쳐주는 것이 다일 텐데, 그러자면 그것들이 어디에 있는지를 알아야 할 것이다.”


시네필인지 아닌지 아직 확신할 수 없는 많은 관객, 영화의 친구, 영화에의 애정, 열정이 있는 많은 이들한테 시네마테크가 벤야민의 말처럼 감추어져 있는 축이나 이음매에 기름을 쳐주는 역할을 해줬음 한다. 그렇게 진일보하길 바란다. 극장에 자주 가다 보면 나이든 어르신을 보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얼마 전에는 한 어르신이 엘리베이터 안에서 말을 걸었다. “옛날 영화인데 젊은 사람이 이런 영화를 다 봤어?”라며 의아해 했다. 아마 추측컨대 그분은 그 옛날 필름으로 봤던 영화를, 그 때의 흔적을 찾고 싶어 아트시네마를 찾았을 것이다. 필자 역시 훗날 노인이 되어서 지금 내가 경험한 페라라를, 장 비고의 <라탈랑트>를 다시금 보고 싶어 질 때가 분명 있을 것이다. 그때도 기분 좋게 지금의 흔적과 경험을 회상하며 시네마테크에 오고 싶다. 내 생이 다하는 날까지 시네마테크가 지속되길 진심으로 바란다. 시공간을 공유한다는 것, 설사 훗날 지금의 이 순간을 망각해버릴지언정 망각도 기억의, 흔적의 조각인 만큼 소중하게 여기고 싶다. (신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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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에 관한 한 편의 진지한 농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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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일 저녁 7시, 시네마테크의 새 친구로 영입된 장준환 감독의 추천작인 우디 앨런의 <애니 홀>이 상영됐다. 영화 상영 후에는 <애니 홀>을 선택한 장준환 감독과 김성욱 프로그래머, 관객들이 함께 그동안 우디 앨런에 대해 가지고 있었던 애정을 풀어놓는 자리로서 시네토크가 진행됐다. <애니 홀>이 던져준 유쾌한 웃음과 씁쓸함을 한꺼번에 다시 떠올리면서 진행된 시네토크를 여기에 옮긴다.


김성욱(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래머, 이하 김) : 우디 앨런의 영화들은 웃긴데 씁쓸한 느낌이 든다.  영화에서 우디 앨런은 자조적으로 마흔이 넘었다고 얘기하는데 77년 영화를 만들 때의 실제나이와도 비슷하다. 영화 처음부터 나오는 썰렁한 농담도 예전에는 무슨 의미인지 모르고 지나갔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그 뜻을 조금씩 알게 된다. 영화를 본 소감은 어떠한가?


장준환(영화감독, 이하 장) : <애니 홀>은 몇 번을 다시 봐도 똑같은 농담인데 또 다른 재미가 있다. 매번 웃는 포인트를 새로 발견하는 재미가 있는 것 같다. 우디 앨런만이 할 수 있는 코미디를 좋아한다. 가끔 다른 배우들이 그의 영화의 주인공을 하기도 하지만 우디 앨런만큼은 못한 것 같다. 감독으로서 배우로서 그만이 가지는 독특함을 좋아한다. 특히 이 영화는 그의 다른 작품들과는 좀 다른 느낌을 준다. 판타지 같은 장면들이 있는데 작가로서도 영화 문법을 떠나 자유로운 느낌이 든다. 그것 때문에 이 영화를 더 좋아한다.

특별히 좋아하는 장면은 애니(다이앤 키튼)이 한번 헤어진 후 새벽 3시에 뜬금없이 거미를 잡아달라고 부를 때다. 앨비 싱어(우디 앨런)이 거미를 잡는 모습이 나랑 비슷하다. 남자니까 잡아줘야 되는데 에프킬러를 반통 다 쓰고 그런다(웃음). 그렇게 웃긴 장면 뒤에 애니가 사실은 외롭고 보고 싶어서 불렀다고 말한다. 외로움, 사랑하는 사람들 사이의 만남과 헤어짐 등. 우리의 삶을 압축적으로 잘 보여주는 장면인 것 같다. 웃기기도 하면서 찡한 무엇이 있다. 외로운 사람들이 나오는 영화를 좋아하는 것 같다.


김 : 영화 속 우디 앨런이 어릴 때 <백설 공주>를 보러가서 다른 애들은 백설 공주를 좋아하는데 자기만 마녀를 좋아했다고 하는데 왠지 감독님도 그랬을 것 같다(웃음). 영화에서 “나를 받아주는 클럽에는 가지 않겠다”는 그루초 막스의 농담이 나온다. 애니가 “삶을 바꿔야 돼”에서 ‘life’를 ‘wife’로 헷갈리는데 우디 앨런이 삶을 바꾸는 행위가 세 번의 와이프를 바꾸는 행위와 겹치기도 한다. 그는 사회 안에 편입하고 싶지만 일반인들의 생활 방식과 완전히 다른 방식의 생각을 가진 사람이다. 감독님도 여기에 매혹을 느끼시는 것 같은데?


장 : 맞다. 그런 점이 좋다. 특히 예전에 영화에서 나온 말 “이 세상엔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 비참한 사람과 끔찍한 사람”이라는... 근데 그 중에 나는 어느 쪽일까 고민하고 생각하며 공감했던 적이 있다. 삶에 대해 굉장히 비관적이면서 동시에 그 삶을 부둥켜안고 살아가야 한다는 딜레마의 주제가 한 남녀가 만나고 헤어지는 과정 속에 잘 녹아나있는 느낌이 있다. 구조적으로 드라마 트루기가 아주 강하거나 할리우드의 잘 짜인 각본은 아니지만 자기가 느끼는 삶을 진솔하고 재밌고 소소하게 하지만 진지한 농담으로 깊게 담아낼 수 있다는 점에서 신선한 매력을 느꼈다.


김 : 영화 마지막에 나오는 연극처럼 삶과 작품이 서로 조응하면서도 서로 다르게 나타날 때 드는 씁쓸한 느낌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장 : 그러고 보니 <지구를 지켜라>와 비슷한 느낌이 든다. 표현은 좀 과격했지만, 지구가 폭파되고 난 뒤에 텔레비전에서 지구에서의 행복했지만 고통스러웠던 삶을 바라보는 엔딩이 있는데 그것이 <애니홀>의 엔딩과 통하는 부분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


김 : 약간 신경증적인 우디 앨런의 캐릭터와 애니 홀이라는 캐릭터에 대해서는 어떤 느낌을 갖고 있나?


장 : 우디 앨런은 <맨해튼>이었던가 몇몇 작품에서 보면 건강염려증 환자로 나오고 신경 쇠약의 뉴요커로 많이 나오는데 그런 부분에 나 스스로를 어느 정도 대입할 수 있다. 산업화된 도시, 꼭 도시가 아니라도 대한민국에 사는 우리도 어떤 강박증, 염려증을 갖고 살아가고 있지 않나 싶다. 그의 삶은 굉장히 멀고 문화적으로 다르지만 우리는 그 사람을 통해 불안감 같은 것들을 공감한다. 그래서 우디 앨런의 코미디에 웃을 수 있고 캐릭터에 동질감을 느끼는 것 같다.

애니의 스타일과 말투는 앨비 싱어보다 밝고 긍정적이고 좋은 의미에서 가벼워 보인다. 그래서 앨비 싱어가 애니에게서 자신이 가지지 못하는 것을 바라는 느낌이다. 자신이 가진 폐쇄성과 비관적인 면을 해소해 줄 수 있는 좋은 궁합처럼 보인다. 대학을 가서 공부를 하라고 강요하기도 하지만 자신과 다른 애니의 자유롭고 다른 영혼에 매력을 느끼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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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준환 서울아트시네마



관객 1 : 영화에서 솔직한 표현과 형식적인 장난이 좋았는데 특히 영화와 삶의 관계를 중요한 테마로 다루고 있는 듯 하여 더 그렇다. 초등학교 때 아이들이 직접 지금의 직업을 얘기하고, 애니와 함께 과거의 파티를 직접 들어가서 구경한다. 또 영화 속에서 영화를 보는 장면들이 나온다. 그런 점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장 : 영화적인 새로운 시도, 장난이 많이 나온다. <카이로의 붉은 장미>를 보시면 거기서도 영화 속으로 들어가서 뭔가 다른 삶을 살고 또 영화 밖으로 나오고 한다. 영화와 직접적인 관계를 맺는 이야기다. 다른 작품들도 그런 것 같다. 우디 앨런은 문학, 소설 인용을 많이 하는 편이긴 하나 특히 영화 작품들에 대해서 언급, 인용을 많이 하는 것 같다. 여기서 나치 영화가 두 번씩 나오는 장면을 보면 우디 앨런 본인이 갖고 있는 개인적인 관심과 작가적인 열정과 지식인으로서의 완고함을 모두 볼 수 있는 것 같다.


관객 2 : 영화 전체의 바탕이 막스 그루초의 농담인 것 같다. 앨비 싱어는 변화를 받아들일 자세가 안 된 사람인 것 같고... 같이 정신과 치료를 받아도 애니 홀은 금방 바뀌어 가는데 자기는 변하려하지 않고 계속 외부 세계와 충돌한다. 애니 홀이 떠나자 변화를 시도하지만 실패하고 결국에는 낙담한다. 이것이 작가의 세계관인지 <애니 홀>에 국한된 전체적인 가치관인건지?


장 : 제가 본 우디 앨런의 영화들은 그런 면에서 일관성이 있는 것 같다. 인생에 관한 농담이기는 하지만 직접적이고 깊이 있는 얘기가 담겨져 있어서 우리가 들여다보기 쉬웠던 것 같다. 특히 <애니 홀> 앞뒤로 있는 다른 영화들에서도 그는 남녀 관계에서 계속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하면서 어쩔 수 없음을 느낀다. 그가 가진 세상에 대한 비관적 느낌이나 성적 관계에서 가지는 콤플렉스나 유대인으로서 가지는 인식들이 크게 다른 것 같지 않다. (이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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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소한 것의 특별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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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매력은 별거 아닌 당연하고 사소한 것들이 확대되어서 극장의 큰 스크린에 나타났을 때 받게 되는 ‘놀라움’과 ‘특별함’에 있다.

극장에서 영화를 보다보면 아무것도 아닌 사소한 장면이나 인물의 미세한 표정 변화 혹은 작은 몸짓 하나가 영화에 대한 강한 인상을 남길 때가 있다. 필자에게 있어 이번 "친구들 영화제"에서는 홍상수 감독이 선택한 장 비고의 <라탈랑트>가 그러하다. 영화가 끝나고 나서도 계속해서 머릿속에 맴돌았던 장면이 있다. 그것은 바로 쥘의 어깨 위에 위태롭게 매달려 있던 새끼고양이의 움직임이다.


‘쥘의 어깨에 매달려 있는 새끼고양이’라는 사소한 것이 나에게 <라탈랑트>의 다른 어떤 장면들보다 특별함을 갖게 된 것은 이 영화를 극장에서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극장에서 <라탈랑트>를 보기 이전에 DVD로 영화를 보았던 적이 있으나 당시는 쥘의 어깨에 매달려 있는 새끼고양이의 움직임은 나의 눈에 특별히 들어오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된다. ‘어깨에 새끼고양이 한 마리가 앉아있구나’하는 정도였다. 그런데 극장에서 이 장면을 다시 접했을 때는 느낌이 굉장히 틀렸다. 춤을 추는 쥘의 움직임에 따라 함께 들썩이면서 떨어지지 않으려고 하는 새끼고양이의 필사적인 모습과 갑작스러운 쥘의 큰 몸짓 때문에 새끼고양이가 살짝 날랐다가 미끄러지고, 떨어질 뻔 하는 일련의 작은 움직임들이 눈에 띄었다. 아니 이러한 새끼고양이의 움직임은 그냥 ‘눈에 띤다, 보았다’라는 표현보다는 ‘눈에 포착되었다’라는 표현이 더 어울릴 것이다. 필자의 눈에 포착된 그 장면은 말 그대로 강력하게 뇌리에 꽂힌 것이다. 영화에서 실제 진행되었던 시간은 고작 1분 정도인데 그 장면의 느낌은 조금 더 길게 나의 망막에 맺혀있었던 것 같다.  DVD로 봤을 때는 별반 느낌 없이 지나가버리거나 눈에 잘 들어오지 않았던 새끼고양이의 작은 움직임 하나가 극장의 큰 스크린을 통해 ‘포착’되고, ‘확대’되어져서 순간적으로 들어온다. 그 움직임은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것이 아닌 매우 낯설고 신비스러운 것처럼 다가왔다. <라탈랑트>에서 새끼고양이의 작은 움직임을 통해 받았던 묘한 경이로움은 초기 영화를 보던 관객들이 바람에 흔들리는 잎사귀의 움직임에 열광했다는 사실을 떠올리게 한다.


<라탈랑트>는 사소한 것에 특별함이 있는 영화이다. 남편은 부인이 주는 옷을 받아 갈아입고, 부인은 남편의 옷을 갈아입는 사이에 테이블 위에 있는 실을 들어 치수를 재는 일상적인 움직임을 하나하나 보여주는 이 평범한 숏은 이중인화의 특수효과 장면만큼 놀라움을 준다. 밤마다 자다가 깨야 되는 생활에 피곤한 부인의 표정과 남편이 방으로 돌아왔을 때 그녀의 자연스럽고 일상적인 움직임과 서로 말하지 않으면서 남편이 옷을 내리기 전에 치수를 재는 절묘한 타이밍의 능숙한 몸짓에 삶의 느낌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줄리엣이랑 헤어지고 나서 넋이 나간 선장을 보다 못해, 쥘은 줄리엣을 찾아 나선다. 줄리엣은 쥬크박스가 있는 가게에 들어가서 신혼 첫날 ‘라탈랑트’의 선원들이 불러주었던 노래를 듣는다. 줄리엣을 찾으러 호텔과 거리를 돌아다니던 쥘은 가게에서 나오는 ‘선원의 노래’를 듣고 가게로 들어간다. 그곳에서 쥘은 노래를 듣고 있는 줄리엣을 찾게 된다. ‘선원의 노래’는 다른 사람들에게 최신 히트곡일 뿐이지만 ‘라탈랑트’의 식구들에게는 서로를 연결해 주는 특별한 노래가 된다. 그래서 쥘과 줄리엣이 노래를 통해 만나는 우연의 순간이 마치 필연의 순간처럼 보인다. 단지 유행 노래일 뿐인 것을 특별한 것으로, 필연의 기적으로 만들어낸다.


<라탈랑트> 상영 후 시네토크 시간에 홍상수 감독은 <라탈랑트>의 모든 씬에 사랑이 담겨있고, 사랑해서 찍은 느낌이 나는 영화라고 말했다. 무엇이 이 영화에 사랑스러운 느낌을 주는 것일까? 눈에 포착된 작은 움직임에 대한 감탄, 일상적인 몸짓과 장면들이 담아내는 삶의 느낌, 사소한 것이 만들어내는 기적이 영화를 사랑스럽게 만드는 것이라 생각된다. <라탈랑트>는 감정이 삭막해진 요즘에 딱 어울릴 법한 영화다. 사랑스러움과 아기자기함이 물씬 풍기는 이 영화는 계속 웃으면서, 물안개처럼 잔잔하게 흐르던 음악을 흥얼거리면서 집에 가게 했다. <라탈랑트>는 별거 아닌 당연하고 사소한 것들이 확대되어서 극장의 큰 스크린에 나타났을 때 받게 되는 ‘놀라움’과 ‘특별함’이 가득한 매혹적인 영화다. (신윤하: 데일리 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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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튼의 슬픈 표정에 주목을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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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성 영화’는 말 그대로 소리가 없는 영화를 뜻하지만 무성영화가 정말 ‘무성’으로 상영된 적이 영화의 역사를 통틀어 몇 번이나 있었을까. 1924년에 만들어진 버스터 키튼의 무성영화 <셜록 주니어> 역시 마찬가지다. 처음으로 상영되었을 때부터 지금까지 다양한 연주와 함께 상영되어 온 <셜록 주니어>가 2008년 서울아트시네마에서는 몽라의 연주로 새롭게 상영됐다.

‘2008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 개막작인 버스터 키튼의 <셜록 주니어>의 연주를 맡은 몽라는 이미 전주 영화제 등에서 소니마주(sonimage) 공연을 한 적이 있으며 1집 앨범 <꿈꾸는 아이>를 발표한 크로스오버 피아니스트이다. 이번 시네마테크 친구들 영화제에서도 <셜록 주니어>를 위해 특별히 작곡한 곡들에 기존 발표곡들까지 포함해 새로운 느낌의 <셜록 주니어>를 관객들에게 선사해주었다. 특히 영화 속 꿈 장면에서는 테레민이라는 악기를 사용해서 색다른 연주를 들려주었다.


이전의 <셜록 주니어>에 입혀진 음악이 영화의 경쾌한 분위기에 맞게 주로 흥겹고 밝은 느낌의 음악들이었다면 이번 몽라의 연주는 서정적이고 신비로운 느낌이 좀 더 강조되어 있었다. 상영 후 이어진 시네토크 시간에 몽라는 이 점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기존의 연주는 영화의 경쾌하고 밝은 면에 초점을 맞추었다면 저는 버스터 키튼의 슬픔이 묻어 있는 표정, 특히 웃고 있어도 어딘지 슬퍼 보이는 얼굴에 주목을 했어요. 키튼의 생애 역시 그렇게 밝지 않았던 걸로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했는지 모르겠지만 이번에는 음악을 이렇게 맞춰 보았어요.”


그녀의 얘기를 듣다보니 궁금증이 유발한다. 그런데 과연 몽라는 영화와 음악과의 접점을 어떻게 찾을까? 이에 대해 그녀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관객 분들은 제 연주를 들으러 오는 게 아니라 영화를 보러 오신 거라는 사실을 항상 염두에 둬요. 그래서 무엇보다 영화를 계속 반복해서 보면서 준비를 하구요. 영화의 느낌을 관객 분들에게 잘 전달하는 것이 1차 목표에요. 그리고 영화 관람에 방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 제 느낌을 살리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렇게 몽라는 관객들의 질문에 조곤조곤한 말투로 조심스럽게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해주었는데 그 속에서 자신의 연주를 통해 조금이라도 영화의 느낌을 더 잘 살리려하는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런 맥락이었을까. 영화 중간에 나오는 무반주는 어떤 의도였냐고 묻는 관객의 질문에 몽라는 다시 조심스럽게 되물었다. “혹시 몰입에 방해가 되셨나요?” 내가 질문을 한 것도 아니었지만 속으로 조용히 말했다. ‘아니오. 너무 좋았어요!!’ (김보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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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을 꿀 수 있는 존재, 집시들에 관한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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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순례 감독은 이번 "친구들 영화제"에서 에밀 쿠스트리차의 <집시의 시간>과 테오 앙겔로푸스의 <시테라 섬으로의 여행>과 <영원과 하루>를 추천했었다고 한다. 아트시네마 프로그램 팀은 이 영화의 필름을 수급하기 위해 전 세계에 연락했었지만 쉽지 않았다고 한다. 그렇게 어렵게 구한 <집시의 시간>을 필름으로 볼 수 있는 값진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아무리 좋게 본 영화라도 극장에서 두 번을 잘 안 본다는 임순례 감독이 오늘 세 번째 보게 된다는 에밀 쿠스트리차의 <집시의 시간>에 대해 나누었던 이야기를 옮긴다.


임순례(영화감독, 이하 임) : 에밀 쿠스트리차라는 작가를 굉장히 좋아한다. 작가가 좋으면 전작을 거의 다 보는 편인데 그의 영화는 전체적으로 다 좋다. 그 중에서도 특히 <집시의 시간>을 가장 좋아한다. 에밀 쿠스트리차 감독의 영화는 상당히 에너지틱해서 영화를 보면 그 에너지에 감당이 안 될 때가 많다. <집시의 시간>은 에너지도 에너지지만 굉장히 양극의 감정들이 같은 씬 안에 섞여있다. 아주 슬프고 절망적인 장면에 유머가 있다든지 가장 기쁜 장면에 비극이 숨어있다든지 식의 양면적이 감정들이 항상 뒤섞여 있고 영화의 서사구조나 캐릭터의 표현이 어느 하나 흠잡을 데 없이 완벽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시각적으로 굉장히 아름다운 상징이나 은유들도 훌륭히 표현되어 있다. 에밀 쿠스트리차는 냉혹하고 끔찍한 현실을 정면으로 다루는데, 정면으로 다루는 방식 자체가 굉장히 따뜻하고 시선이 깊고 넓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그런 시선도 굉장히 좋아한다. 에밀 쿠스트리차는 본인이 음악가이기도 해서인지 모든 영화의 음악까지 다 아름답다. 특히 오늘 본 영화의 음악은 어떤 영화음악보다 아름답고 잘 살린 영화 음악이라 사료된다. 아마 오늘 영화를 처음 보시는 분들도 있을 텐데 그 음악이 오랫동안 귀에서 맴돌 것이다.


김성욱(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래머, 이하 김) : 말씀하신 것처럼 이런 영화를 볼 때 굉장히 모순적인 감정이 발생한다. 슬픔들 안에 유머, 웃음을 집어넣고 혹은 굉장히 사실적이면서도 동시에 아주 마법 같은 순간들이 발생한다. 이 영화도 그렇고 나중에 나온 <언더그라운드>, <검은 고양이 흰 고양이>같은 경우도 그렇다. 서로 모순적인 것들이 영화 안에서 동시에 하나로 조화롭게 이루어지는 그런 작품들을 볼 때마다 늘 ‘경이롭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그런 부분들을 조화시키는 쿠스트리차 영화에서 어떤 것들을 눈여겨봤는지?


임 : 영화 작가들 중에서 굉장히 특이한 존재라는 생각이 든다. 보통 리얼리즘 경향이 좀 우세하거나 반대로 표현주의적 경향이 우세하거나 해서 한 쪽으로 치우치기 마련인데, 쿠스트리차 감독은 이런 두 가지가 전혀 거부감 없이 섞여있다. 그리고 굉장히 놀라운 것은 관객에게 제시하는 판타지나 표현주의적인 요소들이 관객들이 믿을 수 있을 정도의 리얼리즘이랑 맥이 닿아있다. 그것이 굉장히 황당한 판타지거나 말도 안 되는 판타지일지언정 보고 있으면 인물들이 보여주는 그 시각적인 판타지가 믿어진다. 그런 두 가지의 형식이 한 영화 안에 자연스럽게 공존하고 있다는 것, 그리고 판타지 성격 자체가 리얼리즘이랑 맞닿아 있다는 것이 특징적으로 느껴진다.


김 : 개인적으로 이탈리아에 갔다가 집시들한테 도둑을 맞은 적이 있었는데, 파리에 계셨으니까 집시들도 많이 보셨을 것 같다. 영화에서 나오는 집시들은 유럽에서 말하자면 일종의 소수자다. 그들 내부에 들어가서, 또 실제로 비전문적인 집시들을 캐스팅해서 영화를 만들고 집시들을 다루는 쿠스트리차의 방식이 굉장히 인상적이다.

임 : 아마 유럽배낭 여행을 갔다 오신 분들은 집시들에 대해서 굉장히 안 좋은 느낌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뛰어난 감독이나 작가는 ‘자기가 다루는 대상에 대한 어떤 총체적이고 본질적인 것들을 관객에게 제공하는 사람들’이 아닌가 싶다. 물론 우리가 집시에게 당하고, 집시들을 퇴폐적으로 봤을 때 거리를 멀게 할 수 있지만 그러한 직접적인 경험이나 퇴폐적인 판단을 넘어서 집시들이 가지고 있는 근원적인 특징, 꿈을 꾸는 존재들이고 진실한 마음을 가지고 다른 것들을 움직일 수 있는 굉장히 특수하고 순수한 집단들이라는 것, 집시들이 인생과 삶에 대해 가지고 있는 본질적인 태도, 특질을 쿠스트리차 감독은 잘 보여준 것 같고 보여주고자 한 것이 아닌가 싶다는 생각을 한다. 이 영화를 통해서 그 집단들에 대해 깊은 이해를 제공했다는 점에서 역시 에밀 쿠스트리차는 굉장히 뛰어난 감독이고, 그분들의 어떤 정신과 문화와 특질이 다는 아니지만 2시간동안 깊이 전달됐다.


김 : 감독님은 영화에서 상징을 많이 안 쓰시는 편인 것 같은데, 쿠스트리차의 영화 특히 <집시의 시간>을 보면 마치 루이스 브뉘엘 영화처럼 갑자기 동물이 등장한다던지, 타르코프스키 영화처럼 물이나 불같은 자연적인 원 질료를 활용하는 방식, 공중부양 등등 다양한 상징들이 등장한다. 이 영화에서 쿠스트리차가 사용하는 상징의 방식에 대해서는 어떻게 봤는지?


임 : 상징들이 많이 나온 영화 중 하나다. 동물, 어린아이, 자연현상은 집시들이 본질적인 자연이나 우주에 더 가까운 사람들, 동물이나 아이의 어떤 순수한 심정들에 더 가까운 사람들이라는 것을 표현하는 것일 수 있다는 생각을 했고 공중부양이나 영적인 세계를 보여주는 것은 동구권의 전통에 맞닿아 있다는 생각이 든다.


김 : 영화를 본 사람들은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 깊은 장면을 꼽으라면 대부분 물에서 벌이는 축제 장면을 꼽는데, 오늘 보시면서 감독님은 어떤 장면이 가장 인상 깊었는지?


임 : 예전에 처음 영화를 봤을 때는 삼촌이 빗속에서 뛰어가다 걸리는 엔딩 장면이 가장 인상적이었는데, 그 때는 20대여서 그 장면을 보고 슬프게 울었다. 오늘 보니까 굉장히 새롭게 예전에는 보지 못했던 장면들이 있었는데, 주인공이 환상으로 보는 것들, 가장 순수한 상태에서 환상으로 보는 것들이 눈에 띤다. 예컨대 부인이 출산할 때 공중 부양하는 장면이라든지, 이 친구가 판타지로 보는 그런 장면들의 처리 같은 것들이 더 각인되었다.


관객 1 : 마지막 장면에 굉장한 여운이 남았다. 삼촌이 아이를 쫓아가다가 다른 곳으로 가는데 삼촌이 어디로 가고 있을까라고 궁금해졌다. 그 마지막 장면에 대해서 감독님은 어떤 생각을 하셨는지?


임 : 이건 농담인데 아이가 돈을 훔쳐서 가는 순간 ‘아 삼촌 애가 맞구나. 내가 속았구나’ 라는 생각을 잠깐 했었다(웃음). 그것이 인생이다. 이제 이 아이도 집시의 길로 들어섰고, 삼촌도 개과천선을 하는 좋은 모습이 아니라 지금까지 살아온 방식대로 살아가겠지 뭐 그런 생각을 했다. 이를테면 인생이 계속된다 정도. 비바람 맞으면서 아이를 따라가려다 따로 가는 것이 정말 냉혹한 현실인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 결혼하고, 누군가 태어나고 죽고, 누군가 늙고 하지만 이 삶은 변함없이 지속이 된다는 느낌을 엔딩 씬에서 받았다.


관객 2 : <언더그라운드>와 비슷한 씬들이 많이 나온다. 주인공이 교회 종에 목을 매달고 죽으려고 한다든지, 웨딩드레스 의상이 날아다니는 것, 왁자지껄한 결혼식, 보스가 다른 사람들을 속인다든지 장면과 설정이 비슷한데, 다른 영화와 비슷한 씬과 설정은 어떤 의미가 있는지?


임 : 그것은 어쩔 수 없는 부분인 것 같다. 사실은 주제도 마찬가지인데 감독들이 처음에 가졌던 주제가 바뀌지 않고 조금씩 변주되어 가는 작가들이 거의 대부분이고, 자기가 주로 애용하고 사용하는 장면들이나 구조, 캐릭터, 앵글, 철학적인 은유나 상징들이 어쩔 수 없이 자주 반복되는 것 같다. 의도적으로 사용하시는 분들도 있다. 키에슬로프스키 같은 경우는 허리가 굽은 할머니가 빈병을 쓰레기통에 천천히 집어넣는 장면이 거의 모든 영화에 들어가 있다. 의도적으로 반복하시는 분도 계시고 무의식적으로 했는데 표현이 반복되어 나타나는 경우도 있다. 작가영화에 있어서는 피해갈 수 없는 부분들이라고 생각한다.


관객 3 : 감독님은 에밀 쿠스트리차 영화에서 어떤 영향을 받았는지 궁금하다.


임 : 쿠스트리차 영화랑 닮은 영화를 만들고 싶었는데 전혀 안 된다. 영화는 감독의 기질과 성격이 많이 드러나는데, 쿠스트리차 영화를 보면 이 사람은 굉장히 에너지가 많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저는 그런 형태의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그런 영화를 만들 수 없다. 저는 저다운 영화, 저의 성격과 기질과 저의 DNA가 나타나는 영화를 만드는 거라서 굉장히 닮고 싶지만 그것은 저의 DNA가 바뀌지 않으면 닮을 수 없다. 그러나 흉내를 내보려고 하는 것들이 있다. 굉장히 슬프고 끔직한 상황에서 그것을 한 발짝 떨어져서 관조할 수 있는 유머나 여유, 굉장히 기쁘고 유쾌한 장면에 내포된 슬픔들. 이런 양가적 감정들이 한 컷이나 한 씬 안에서 표현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과 그런 정도는 해도 되지 않을까싶다. 그래서 이번 영화에 해 봤는데...(웃음) 뭐 그렇게 그냥 제 식대로 됐다. 스타일을 닮고 싶다는 것 보다는 이 감독이 세상을 바라보는 눈, 인간을 바라보는 눈이 굉장히 깊고 폭 넓고 입체적이고 따뜻하고 냉정한데, 그런 점을 배우고 싶다.


김 : 마지막으로 꼭 하고픈 말이 있다면?


임 : 굉장히 새로운 경험이었다. 사실 제 영화를 가지고 이야기를 해도 대답 못 하는 것도 많고, 만족한 대답을 못 드릴 때가 많은데 남의 영화를 가지고 얘기를 한다는 것이..(웃음) 이야기를 한다는 자체가 중요하다기 보다 이 행사는 이것을 기회로 우리가 좋은 영화 한편을 볼 수 있다는, 기회를 서로 나눈다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닌가 생각해본다. 아까도 말씀드렸듯이 좋은 영화는 제가 얘기하고 다른 사람이 얘기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오늘 영화를 보면서 가졌던 느낌들을 깊이 간직하는 거다. (신윤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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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라라, 그를 가볍게 봐선 큰 코 다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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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이 턱턱 막히게 하는 영화. 아벨 페라라의 <킹 뉴욕>이 그렇다. 영화가 끝나고, 먹먹해진 느낌으로 극장을 배회한다. 아트시네마도 고요하다. 담배 연기만 자욱하다. 좋은 영화를 보고 나서는 말을 아껴야 한다. 입으로 탄성을 내지르거나, 영화 내용을 구구절절 나열할 때 온 몸을 휘감았던 희열이 날아가 버릴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평소 알고 지내던 한 지인이 아벨 페라라의 영화를 보기 위해 동네 비디오 가게를 뒤지던 90년대를 회상하면서 의미심장한 말을 남긴 적이 있다. 그 말인즉슨 “당시 우리들에게 아벨 페라라의 영화를 보기 위해 발품을 파는 건 일종의 성지 순례와 같은 것”이었다. 도대체 아벨 페라라는 어떤 영화를 만드는 감독이기에 이런 말이 나왔던 걸까? 20살 넘어서 뒤늦게(?) 영화를 보기 시작한 필자에게 아벨 페라라는 이름은 ‘B급 무비를 만드는 감독’ 정도로만 기억되어 있었다. 90년대 비디오 가게를 뒤져가면서 영화를 보던 사람이 아니고서는 아벨 페라라에 열광하는 내 또래는 그리 많지 않았다. 아벨 페라라를 숭배하고 찬양한다던 선배들의 말에 약간의 의구심을 가지면서 그의 영화를 기다렸다. 그리고 드디어, ‘2008 친구들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에서 페라라의 영화를 만나게 되었다.


아벨 페라라는 ‘쌈마이 감독.’ 이번 친구들 영화제에서 그의 영화를 몰아 보기 전까지 내가 가지고 있었던 생각이다. 그를 처음 알게 된 건 <차이나 걸>(1987)을 보고 나서다. 이 영화는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의 스토리를 차용하여 이태리인들과 차이나타운에 살고 있는 중국인의 폭력적인 관계를 묘사했다. 사랑해서는 안 되는 이태리 청년과 중국 처녀의 비극적인 러브 스토리. 페라라는 셰익스피어라는 클래식한 세계를 뒷골목 필름 느와르의 세계로 바꿔버렸다. 뭔가 펄프픽션을 보는 느낌이랄까. 두 번째로 보았던 작품은 <피어 시티>(1984). 한 미치광이 소설가가 스트립 댄서만 골라서 연쇄 살인을 벌인다는 내용이다. 그는 낮에는 소설을 쓰고, 쌍절권을 돌리면서 무술을 연마한다. 밤이 되면 뒷골목을 전전하며 먹이를 찾는 승냥이 마냥 으르렁거리며 돌아다닌다. 그리고 여자들을 살해한다. 한 밤중에 달빛을 받아 한 줄기 은빛을 내뿜는 면도칼로 여자들의 목을 사정없이 베어버린다. 이 장면들이 굉장히 무서울 것 같지만 한편으로는 코믹스럽다. “너무 진지하면 농담 같아 보여”라고 관념적인 이야기들을 구구절절 늘어놓으며 여자들을 사냥하는 살인범은 조금 우스워보였다. 쌍절권을 돌리며 자아도취에 빠진 살인범의 모습은 작품 전체를 지배하는 공포스러운 분위기와는 달리 생뚱맞아 보였다. <차이나 걸>과 <피어 시티>. 적어도 이 두 작품을 접했을 때 필자는 아벨 페라라를 ‘뒷골목 쌈마이 느와르의 대가’라고 자가 진단했다.


그 이후에 다시 페라라를 접한 것은 <보디 에일리언>(1993)이었는데 이 작품은 약간 의아했다. 돈 시겔의 <신체 강탈자들의 침입>(1956)을 리메이크했다지만 원작에는 못 미치는 미숙한 연출에 약간 실망했던 것 같다. 그 다음으로 접한 이탈리아계 이민 2세대인 템피오가 형제들의 파멸을 그린 <퓨너럴>은 아벨 페라라가 데이비드 크로넨버그의 <폭력의 역사>(2005)나 <이스턴 프라미시스>(2007)같은 영화보다 훨씬 앞서서 미국 역사에 흠집을 냈다고 생각했다. 마약하는 장면과 노출이 심한 장면을 과감하게 삭제한 국내 출시용 비디오로 보았던 <블랙아웃>은 앞서 본 아벨 페라라의 영화와는 달랐다. 좀 더 원숙해진 느낌이랄까? 놀라웠던 건, 장면들이 히치콕의 <현기증>과 닮아 있었다는 것. 처음으로 아벨 페라라가 나의 심금을 흔들어 버렸고, 그의 영화에서 카메라를 발견할 수 있었다. <블랙아웃>은 흔들거리는 카메라에서 비디오와 영화라는 매체를 연결해 보려는 감독의 진심을 느낄 수 있었는 작품이었다. 이때부터 내게 의식의 전환이 일어났다. 어쩌면 이 감독, 가볍게 보아서는 안 되는 사람이 아닐까?!


이번 친구들 영화제에서 상영된 아벨 페라라의 총 여섯 작품을 보면서, 왜 선배들이 이 영화에 열광했는지 온 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이번 영화제에서 상영된 작품은 초기작인 <복수의 립스틱>, 90년대 만들어진 <킹 뉴욕>, <악질 경찰>, <퓨너럴>, <블랙아웃>과 2001년 작품인 <‘R-X마스>이다.
아벨 페라라의 영화는 펄프 픽션을 보는 느낌을 준다. 페라라의 영화 속에는 레이몬드 첸들러의 소설 속 남성들처럼 자기주장이 확실하다. 페라라는 뒷골목을 묘사하는 데 그치지 않고 캐릭터의 행동 하나하나에도 사실적인 모습을 부여한다. 페라라의 영화 속 남성들은 부러질망정 휘어지지는 않을 것 같다. 예컨대 <악질 경찰>의 하비 케이틀은 메츠와 다저스의 경기에 매번 큰돈을 거는 내기를 하는데 매번 지면서도 다저스에 배팅한다. 그것도 14살 이후부터 총알이 자기를 비켜나갔다고 말하면서 말이다. 영화에서 하비 케이틀은 운명에 굴복하려고 하지 않는다. <킹 뉴욕>의 크리스토퍼 워큰은 또 어떤가. 마약과 총 부림으로 아수라장인 뒷골목 세계의 질서를 다 잡으려고 한다. 그는 자신을 잡으려는 경찰들에게 맞서 한 치의 흐트러짐도 보이지 않는다. 절대로 뒷모습을 보이지 않겠다는 차갑고, 강직한 그의 모습에서 남성의 로망을 가져봄직하다.


페라라의 남성들은 육체뿐만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강하고 선이 굵은 모습을 보여준다. 영화 속 남자들은 결정적인 순간에 시궁창 같은 뒷골목 세계에서 빠져나오고 싶어 한다. 이들은 스스로 회개하고 절망의 구렁텅이 속에서 기어 나오려고 발버둥친다. <악질 경찰>에서 예수를 본 하비 케이틀의 모습은 측은지심을 유발한다. <블랙아웃>에서 지난날의 악몽 속에서 깨어나지 못하는 남자의 모습이나, <퓨너럴>에서 세 형제가 모두 죽어버리는 비극적 결말, <’R-X 마스>에서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서 불가피하게 마약을 판매해야하는 한 가장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악한 자도 회개할 수 있으며, 구원을 받을 수 있는가?”라는 의문이 든다.


페라라의 영화를 보면서는 다른 감독들의 영화와 비교하는 재미도 쏠쏠했다. <복수의 립스틱>에서 두 번 강간당한 후 세상을 향해서 복수하는 한 여자의 모습은 마틴 스콜세지의 <택시 드라이버>에 등장했던 트레비스와 닮아 있다. 페라라의 영화를 보면서 마틴 스콜세지가 그렸던 뉴욕의 모습과 비열한 남성상을 비교해봐도 재미있을 것 같다. 뉴욕 뒷골목의 음산한 분위기와 마약과 살인으로 얼룩진 거리. <악질 경찰>의 하비 케이틀을 통해서는 복수와 증오에 찌든 한 인간의 모습을 처절하게 그린다. 페라라의 영화는 마틴 스콜세지의 영화처럼 천당과 지옥 사이를 경험하게 해준다. 페라라의 영화 속에서 히치콕의 흔적을 찾는 건 어떨까? <복수의 립스틱>을 보면 <싸이코>에서 사용되었던 하수구에 물이 빠지는 장면이 있다. <블랙 아웃>에서 필자처럼 히치콕의 <현기증>이 떠올랐던 사람이라면 아벨 페라라를 통해서 히치콕의 아우라를 느껴볼 수도 있을 듯하다.


<악질 경찰>에서 하비 케이틀이 3만 달러를 들고 쫓기듯이 계단을 내려가는 장면은 손에 땀을 쥐게 한다. 하비 케이틀은 누군가에 쫓기듯이 계단 구석에 숨어서 벌벌 떤다. 이 장면에서 특이한 점은 그를 쫓는 특정한 시선이 없다는 것이다. 계단 구석에 오롯이 서 있는 하비 케이틀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오손 웰즈의 <심판>에서 아이들의 눈을 피해서 미로 같은 계단을 내려가던 앤터니 퍼킨스의 모습이 오버랩 된다. 니콜라스 레이의 영화 <실물보다 큰>의 계단 장면도 연상된다. 광기로 인해 아들을 죽이려 하는 제임스 메이슨의 모습은 절대적 악의 화신을 상징한다. 계단 아래서 로우 앵글로 촬영된 제임스 메이슨의 모습은 사뭇 인간이 아닌 신으로 보이기까지 한다. 반면 <악질 경찰>의 계단 씬은 부감으로 촬영되었고, 카메라가 절대적인 시선- 즉 신의 시선-이 되고 하비 케이틀은 초라하고 옹색한 인간으로 그려진다. 영화사에 길이 남는 몇몇 계단 장면과 <악질 경찰>의 계단 씬을 비교해 보는 것만으로 아벨 페라라의 연출력을 확인 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아벨 페라라, 그를 결코 가볍게 봐서는 안 된다. <킹 뉴욕>이 상영되던 날, 극장 곳곳에서 탄성이 흘러나왔다. 필자도 마찬가지. 15초 간격을 두고 뜬금없는 탄성이 삐죽거리며 새어 나왔다. 당시 나는 <킹 뉴욕>을 지배하는 비장한 기운과 크리스토퍼 워큰의 얼굴에 드리워진 그림자에 압도당해버렸다. 내 호흡은 늑골의 끝에 까지 밀려 내려가 있어서 숨을 쉬기 힘들었다. 그래서인지 즐거움과 놀라움의 탄성은 늘 한 박자 뒤에 터졌다. 영화가 끝나고, 먹먹해진 느낌으로 극장을 배회한다. <킹 뉴욕>의 상영이 끝난 서울아트시네마는 고요했다. 좋은 영화를 보고 나서는 말을 아껴야 한다. 입으로 탄성을 내지르거나, 영화 내용을 구구절절 나열할 때 온 몸을 휘감았던 희열이 날아가 버릴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아벨 페라라의 영화는 말을 아끼는 대신, 보고 즐기는 것만이 상책이라고 생각한다. 분명 아벨 페라라는 90년대 시네필들에 의해서 발견된 영화였다. 그리고 2008년 지금, 서울아트시네마는 재발견과 확인의 자리를 마련해주었다. 이에 감사한 마음을 시네마테크에 전하며, 아직 페라라의 영화를 체험하지 못한 친구들에게는 ‘2008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를 통해서 아벨 페라라의 세계를 탐닉해보길 적극 권한다. (이도훈: 데일리 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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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 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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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1.10 김영진 편집위원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에서 우리가 결국 확인하는 것은, 우리는 결코 고독하지 않으며 이전에도 그랬는지 모르지만 앞으로도 세대를 초월해 친구가 될 수 있다는 믿음의 나눔일 것이다. 시네마테크를 통해 나눌 수 있는 이 우정의 교감은 영화를 만들고 보는 것이 덧없는 극장 흥행의 운명에서 벗어나 고갈되지 않는 체험이라는 것을 실감하게 만든다.

1월 8일부터 2월 3일까지 서울아트시네마에서는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가 열린다. 영화감독, 평론가, 배우를 주축으로 한 시네마테크의 친구들이 각자 영화를 한 편씩 선정하고 관객들과 함께 해당 영화를 보며 대화를 나누는 이 행사는 올해로 세 번째다. 시네마테크의 단골인 박찬욱, 오승욱 감독을 비롯해 김지운, 김태용, 이명세, 임순례, 장준환, 최동훈, 홍상수와 배우 김혜수, 류승범, 평론가인 정성일과 필자 등이 영화를 선정했다. 아울러 이두용 감독 특별전과 아벨 페라라 특별전이 마련되고, 영원한 시네필의 초상인 프랑수아 트뤼포의 회고전도 마련돼 있다. 아벨 페라라는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자격으로 내한하고, 이두용 감독도 극장에서 직접 관객을 만날 예정이다.

가슴 뛰는 상황이 아닐 수 없다. 수년 전 아트시네마의 김성욱 프로그래머로부터 이 행사의 게스트로 참여할 것을 제안받았을 때는 소격동에서 종로2가로 둥지를 옮긴 이 극장의 존립 자체가 불투명한 상황이었다. 극장의 생존을 걱정해야 하는 처지는 바뀌지 않았지만, 그리고 서울시는 시네마테크를 여전히 백안시하고 있지만, 여하튼 친구들은 이곳에 계속 모이고 있다. 아트시네마에 한 번이라도 가본 사람이라면 20세기의 매체인 영화를 극장 대형 스크린에서 함께 관람한다는 것의 의미를 저절로 체득하리라고 믿는다. 얼마 전 스탠리 큐브릭의 <배리 린든>(1975)을 이곳에서 봤을 때 비디오와 DVD로 다섯 번 본 그 영화와 껍데기만 같은 것임을 알게 되었다. 큰 화면에서 남녀 주인공이 눈짓을 교환하는 간단한 장면에서조차 대가급 감독이 왜 다른 세부 묘사의 재능을 보여줄 수 있는 것인지 실감이 났기 때문이다. 남녀가 눈을 맞춘다, 그들은 사랑에 빠진다, 그들은 결혼한다는 단순한 전개가 한마디 말 없이 불과 몇 분의 화면 전개 사이에 묘사되는데 활자언어로 환치될 수 없는 경지가 거기 있었다.

이런 것이 영화의 박물관인 시네마테크에서 공유할 수 있는 경험의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큰 스크린에서 방금 본 영화의 특정 화면이 얼얼하게 뇌리를 맴도는데 그걸 말로 제대로 집어낼 수 없어 묵묵히 있다가 오래전의 영화에서 시간의 시련을 뚫고 강인하게 버텨온 예술성의 줄기를 제대로 집어낸 것 같은 포만감을 접수하며 과거의 영화를 즐기는 영화 공동체는 미래의 영화를 창작하고 감상하는 토대로 이어지게 되는 것이다. 아쉽게도 한국에서는 이 공동체의 체험이 21세기에야 시작된 것이지만, 더 이상 비밀결사조직 같은 느낌은 주지 않는다. 영화를 좋아한다는 이유만으로 종사자들이 가난과 과부하가 걸린 근무조건에 갇혀 있는 것은 안타깝지만, 여하튼 친구들은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과거의 명작을 제대로 극장에서 필름으로 볼 수 없었던 필자 세대에 비해 이제 마음만 먹으면 작심하고 1년간 이곳에 들락거리면서 영화를 섭렵할 수 있는 행운이 가능해진 것이다.

올해 스크린으로 상영되는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 상영작들 대부분이 그런 행운을 특정 관객에게 안겨줄 것이라고 생각되지만, 필자가 특히 기다렸던 작품은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의 <순응자>(1970)다. 베르톨루치가 젊었을 적 동료였던 촬영감독 비토리오 스트라로와 함께 만든 이 영화는 천부적인 재능과 시대의 공기가 만났을 때 어떤 경이적인 결과물이 나오는가에 대한 좋은 예증이다. 남들처럼 정상적으로 살고 싶다는 욕망에서 파시스트가 된 주인공 마르첼로가 과거의 스승인 콰드리 교수를 암살하기 위해 파리로 가는 것이 영화의 주된 내용인데, 수시로 마르첼로의 과거 회상 장면이 끼어든다. 아마도 영화사상 가장 복잡하고 세련된 플래시백 구조를 완성했다고 볼 수 있는 이 영화에서, 주인공 마르첼로는 이 회상 장면을 통해 관객과 함께 자신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듯한 착각마저 준다. 어린 시절 아름다운 외모를 지닌 동성애자에게 성추행당할 뻔했을 때 불쾌했다기보다는 묘한 홀림과 두려움을 경험했던 마르첼로는 무의식적으로 자신이 혹시 성 정체성에 문제가 있는 게 아닐까 근심한다. 파시즘이 대세이던 1930년대의 이탈리아에서 그는 맹인 철학자 이탈로의 안내를 받아 파시스트가 되고 결혼해 가정을 꾸리며 스승과 세상을 향해 자신이 정상인임을 증명하고 싶어 한다.

하지만 그의 무의식 속에서 이상적인 아버지는 전 스승인 콰드리 교수다. 그가 콰드리 교수를 죽이는 것은 일종의 살부 의식을 집전하는 것이고, 아울러 은근히 연모했던 콰드리 교수의 부인 안나에 대한 감정을 부정함으로써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영화의 후반부에 겨울 숲에서 벌어지는 암살 장면은 그 서늘한 공포 묘사 감각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온몸이 마비된 듯한 자세로 공포에 질려 눈을 부릅뜬 채 자동차 안에서 콰드리 교수 부부의 암살을 지켜보는 마르첼로의 모습은 시대의 격랑에 자아를 놓치고 휩쓸려 들어간 개인의 당혹과 공포를 생생하게 웅변한다. 콰드리 교수의 부인 안나로 분한 젊은 시절의 도미니크 산다가 우아하면서도 연약한, 깨어지기 쉬운 유리병 같은 아름다움 속에 감추고 있던 도도함을 끝내 놓아버리고 생명을 애걸할 때 관객이 갖는 통절한 느낌도 함께 남는다. 클라이맥스에 이르기까지 마르첼로의 의식을 충분히 지켜봤던 관객은 이 비극적인 느낌 앞에 할 말을 잃는다.

<순응자>는 개인의 의식 속에 밀고 들어오는 시대의식의 침입 및 그로 인해 개인이 갖게 되는 맹목성과 현혹된 자아의 양상을 현란한 스타일로 전시하는데, 고전영화 시대의 조셉 폰 스턴버그나 오손 웰스가 추구했던 바로크적 수사의 극단적인 아름다움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면서 마를렌 디트리히와 같은 절대적인 미의 아이콘을 교묘하게 도미니크 산다와 같은 당대의 배우의 육체를 통해 재탄생시킨 베르톨루치 스타일의 관능 앞에 관객이 이미 무릎을 꿇은 상태라면 이 영화의 비극성의 심연은 더욱 깊어진다. 영화 초반 마르첼로가 라디오 방송국 스튜디오에서 스승 이탈로를 만나는 장면을 예로 들면, 동일한 공간에서 몇 차례 관객을 헷갈리게 하는 잘못된 화면 연결로 관객을 마치 거대한 무의식의 동굴에 빠트리는 것 같은 묘한 느낌에 빠져들게 한다. 빛과 어둠이 극단적으로 대비되는 가운데 측면으로 느리게 움직이는 카메라가 멈출 때 관객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상황과 만나고 그때 알게 된다. 이것은 카메라가 움직이는 영화이고 그 움직임 속에서 시각적 진술이 만들어졌으며 자신은 주인공 마르첼로와 마찬가지로 거미줄에 갇힌 처지와 비슷하다는 것을 몸으로 느끼는 것이다. 여기서 관객은 마르첼로를 지켜본다고 생각했지만 거꾸로 누군가가 바라보고 있는 마르첼로와 비슷한 입장에 빠진 자신을 깨닫는다.

결국 이런 얘기는 <순응자>를 직접 극장에서 관람하고 그 실체를 만끽해보라고 여러분을 꼬드기는 일종의 호객행위다. 필자가 추천한 배창호의 <꿈>(1990)과 같은 영화도 텔레비전 수상기로는 온전히 접수할 수 없는 화면의 밀도를 갖고 있는 작품이다. 불운하게도 당대에는 어떤 제대로 된 평가도 국내외에서 받지 못했던 이 영화는, 한 뛰어난 감독이 미처 다 추구하지 못했던 형식적 모험의 여정이 얼마나 근사한 경지에 있었는가를 증명한다. 안성기가 연기하는 조신이라는 스님이 겪는 파계와 파멸적인 사랑의 여정 속에 새겨진 수려한 회화적 질감의 화면들은 한국 영화의 독자적 미학을 수립하는 데 한때 가장 멀리 나갔던 감독의 여정을 확인하게 해줄 것이다. 필자 자신도 대학생 시절 본 이 영화를 그 뒤로 제대로 보지 못했다. 오늘날 많은 영화들이 햄버거처럼 흔하게 소비되고 잊혀지고 있지만, <꿈>과 같은 영화는 개개인의 극장 체험 속에 밀봉된 채 오랫동안 햇빛을 보지 못했다. 이 영화를 극장에서 배창호 감독과 관객들과 함께 관람하고 나서 누리는 자그마한 흥분과 기쁨은 이두용 감독의 <내시>(1986)와 같은 영화에도 비슷한 부피로 체험될 것이다. 필자는 이 영화를 일곱 번 관람했는데, 당시에는 이 영화를 보고 느낀 감흥을 나눌 친구가 없어서 무척 고독했다. <내시>는 극장 개봉 당시 흥행한 영화지만, 이상하게도 이 영화에 대해 상세히 언급한 언론 반응을 찾을 수 없었다. 필자와 같은 고독한 관객이 있는지 없는지 모르는 채 전근대적인 충무로 현장에서 억압적인 정치적 분위기를 감내하며 영화를 만들던 당시의 감독들은 더 고독했을 것이다.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에서 우리가 결국 확인하는 것은, 우리는 결코 고독하지 않으며 이전에도 그랬는지 모르지만 앞으로도 세대를 초월해 친구가 될 수 있다는 믿음의 나눔일 것이다. 시네마테크를 통해 나눌 수 있는 이 우정의 교감은 영화를 만들고 보는 것이 덧없는 극장 흥행의 운명에서 벗어나 고갈되지 않는 체험이라는 것을 실감하게 만든다. 올해 세 번째를 맞이하는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를 계기로 영화의 거듭남이라는 축복을 즐겼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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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관객 분들은 복 받은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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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시네마테크 친구들 영화제의 추천작’을 보며 류승완 감독의 이름이 빠져 있어 약간 서운함을 느낀 관객들이 많이 있을 것으로 짐작된다. 그러나 그가 친구들로 당당히 관객과 만났다. 더욱이 알고 보니 류승완 감독은 이미 아벨 페라라 감독의 <킹 뉴욕>(King of New York, 1989)을 추천해 놓았었다고 한다. 촬영 일정으로 바빠서 이번 영화제 참석이 힘들었으나 원래 내한예정이었던 아벨 페라라 감독이 못 온 바람에 다시 류승완 감독이 긴급투입(?)되어 친구들 영화제에 참여하게 된 것. 크리스토퍼 워큰을 비롯한 멋진 배우들의 멋진 연기가 아벨 페라라 감독의 ‘차가운’ 연출 속에 잘 녹아 있는 <킹 뉴욕>을 좋은 상태의 프린트로 본 오늘 관객들은 “복 받은 거다”라고 말하는 류승완 감독의 유쾌한 입담으로 시작된 <킹 뉴욕> 상영 후의 씨네토크를 지상 중계한다. by 김보년


류승완(영화감독, 이하 류) : 오늘 오신 분들은 복 받은 겁니다. 프린트가 이 정도로 좋을 줄 몰랐다. 이 영화를 고3 때 비디오로 처음 본 것 같다. 그 때 보고 진짜 재밌다 생각하고, 비디오 반납하러 갔는데 비디오 가게가 망해서 그 비디오가 고스란히 나의 것이 됐다. 지금도 갖고 있고 어제도 다시 한번 보고 왔다. 근데 오늘 필름으로 보니까 비디오 버전에는 없던 씬도 너무 많고 이렇게 ‘때깔’이 좋은 영화인 줄 정말 몰랐다. 크리스토퍼 워큰의 첫 클로즈업 같은 경우 비디오에서는 차 안의 창백한 얼굴이 이런 느낌이 아니고 그냥 파랗기만 했는데, 그 때는 ‘그래도 멋있다. 페라라 형님이 느낌이 있으셔’하고 생각했다. 오늘 보니깐 그게 그런 느낌이 아니다. 영화를 보면서 경악을 금치 못했다. 페라라 형님이 오셔야 물어보고 싶은 걸 물어볼 수 있었을텐데 안타깝다. 오셨다면 덕분에 핑계 대고 이번 영화제 땡땡이치려 했는데 안 오시는 바람에 정말 멋진 영화를 봤고, 덕분에 다음 영화를 더 차갑게 찍을 수도 있을 것 같다.개인적으로 페라라 감독의 영화 중에 <악질 경찰>과 <킹 뉴욕>을 되게 좋아한다. 그 이유는 아벨 페라라의 영화이면서 동시에 배우들의 영화인 것 같은 느낌이 있어서다. 크리스토퍼 워큰이 없는 <킹 뉴욕>이나 하비 케이틀이 없는 <악질 경찰>을 떠올릴 수 없다. 물론 ‘파치노 형님’도 있고 ‘드니로 형님’도 있지만 알 파치노가 <스카페이스>엔 어울리지만 <킹 뉴욕>에는 너무 뜨거울 것 같다. <악질 경찰> 보면서도 생각했는데 로버트 드니로나 알 파치노가 형사나 갱을 연기하면 연기를 굉장히 잘한다는 생각이 들지만 하비 케이틀이나 크리스토퍼 워큰이 하면 진짜 그 사람 같다. 또 한편으론 <악질 경찰>과 <킹 뉴욕>을 보면서 <복수는 나의 것>과 <올드보이>의 쌍이 생각났다. 하비 케이틀이 최민식 같은 뜨거움이 있다면 워큰은 송강호 같은 차가움이 있다. 이를테면 <킹 뉴욕>이 <복수의 나의 것>의 자리라는 생각. 그런 대치가 재밌다.


김성욱(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래머, 이하 김) : 이 영화가 미국에서 개봉했을 때 당시 리뷰의 헤드라인중의 하나가 “데드 맨 워크”라는 제목이었다. 영화에서 실제로 프랭크 화이트는 자신이 “죽음에서 되돌아온 자"라는 표현을 쓰는데, 한편으로는 ‘노스페라투’ 같기도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프랑켄슈타인'같기도 하다. 아마도 로버트 드니로나 알 파치노는 죽음에서 돌아온 느낌이 나지는 않을 것 같다. 배우들이 대단하다.


류 : 아벨 페라라 감독의 연출력도 대단하다. 하비 케이틀이란 배우를 데리고 <악질 경찰>에서 온전히 한 사람의 캐릭터로 영화를 아작 내는가 하면 <킹 뉴욕>에서는 크리스토퍼 워큰이라는 정반대의 온도를 가진 배우를 다르게 접근하는 것 같다. 한 사람의 연출자가 그래서 혹 같은 연출자 맞나 하는 생각이 든다. 연출 양식이 다르다. 이를테면 <킹 뉴욕>은 망원렌즈와 클로즈업을 많이 사용한 반면 <악질 경찰>은 광각렌즈를 사용하고 컷을 별로 안 나누고, 또 상황 안에 인물을 떨어트려 놓고 즉흥연기를 허용했던 것 같은데, 다른 측면에서 배우의 개성과 감독의 개성이 잘 어울리는 측면이 신기하다. 어떻게 그렇게 다른 스타일의 연출을 하는지... 또 놀라운 것은 두 영화 모두 ‘저 사람은 죽어서도 구원받았을까?’라는 질문을 하게끔 하는 것이다. 페라라 형님이 오셨어야 물어 보는데(웃음). 또 다른 재미를 느낀 것은 총격전 연출 방식이다. 1988~89년 즈음에 홍콩의 액션영화들이 뉴욕의 인디 감독들에게 영향을 준 것으로 알고 있다. 페라라도 조금 영향을 받지 않았나 추측해본다. <킹 뉴욕>의 슬로우 모션의 패턴 같은 걸 보면 그렇다. 페라라의 다른 영화들과는 다른 지점이 있다. 그래서 나중에 ‘내가 너무 말끔하게 만든 것 같아’라고 하며 <악질 경찰>을 만들 때 더 거칠게 밀어 붙인 것 같다.


김 : 영화에서 지상과 지하세계의 모습은 영화의 색감에서의 차이로도 표현된다. 또 형사들과 프랭크 화이트란 인물이 부딪치는 모습들은 일종의 전쟁처럼 그려진다. 이런 대조적인 장면들은 어떻게 봤나?


류 : <악질 경찰>에서 차 안에 있는 사람을 저격하는 장면이나 <킹 뉴욕>에서 크리스토퍼 워큰이 차 안에서 죽는 장면을 생각해봐도 그런 것 같다. 첫 장면에서 프랭크 화이트가 감옥에서 출소하자마자 바로 차에 타는데, 대저택으로 가면 그곳에서 다시 철문이 닫힌다. 결국 이 영화는 끝끝내 그 사람이 자신의 세계에서 떠나지 못하고 갇혀있는 느낌을 주는 것 같더라. 심지어 제일 다혈질로 나오는 형사조차 차 안에서 썰렁하게 죽지 않는가. 경찰들은 범죄자보다 내면이 썩어있고 범죄자들은 더더욱 숭고해지려 노력하는... 이러한 선과 악의 경계가 모호한 인물들을 대할 때는 감독의 태도가 중요한데 아벨 페라라 감독은 자신의 태도가 분명히 있는 것 같다. “과연 저 인물이 구원을 받았을까”라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프랭크 화이트가 마약과 범죄 가운데서 병원을 짓는다거나 하는 방식으로 법의 테두리 안에서 해결해보려고 몸부림치지만 마지막에는 비참한 죽음을 당한다. <비열한 거리>(마틴 스콜세지, 1973)와 비교해보자면, <비열한 거리>의 마지막도 비참하지만 그 장면이 이상한 해방감 같은 것이 있다면 이 영화에서는 주인공이 구원을 못 받은 것 같다. 심지어 프랭크 화이트가 죽은 다음 힙합 음악이 나오지 않는가. 숭고해 보이지 않도록 하기 위한 조치 같다는 생각을 했다. 감독은 ‘니가 아무리 손을 뻗어 봐야 신은 너를 버렸어’란 생각을 하고 있는 게 아닐까 싶다.


관객 1 : <킹 뉴욕>이나 <악질 경찰>의 인물들이 구원받지 못할 것이라고 했는데, 사실 그 인물들은 나쁘게 살다가 좋은 일을 해보려다 죽는 사람들인데, 그런 사람들이 구원받아야 하는 게 아닐까?


류 : 구원 자체에 대한 문제가 아니라 페라라 영화에서 말하려는 것은 구원에 대한 권리 문제라고 생각한다. 페라라의 세계는 일종의 중독된 인물을 다루는 세계다. <악질 경찰>은 마약과 노름에 중독 되어 있고 프랭크 화이트는 자신의 범죄 뿐만 아니라 권력욕과 죄의식을 씻어내려는 의식에 중독 되어 있다. 일종의 죄의식에서 벗어나려는 움직임조차 중독으로 보인다. 그래서 이 연출자는 인간들이 버림받았다고 생각하는 건 아닐까란 생각을 했다. 스콜세지 영화와 비슷하다 느끼는 면이 바로 이 지점이다. “신이 만들어놓은 인간들이 신에게 버림 받았다면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을까, 누구에게 구원 받을 것일까. 스스로의 구원이 가능한가?”라는 질문이 자연스럽게 나오게 하는 영화다. 하지만 내가 십 년 후에 이 영화를 또 본다면 정 반대의 얘기를 할지도 모르겠다.


관객 2 : 배우의 영화, 캐릭터의 힘에 대한 얘기가 많았다. 감독님 영화의 캐릭터들도 다 강한 척을 해도 선량함 같은 것들이 느껴지는데, 캐릭터를 어떻게 만들고, 어떤 캐릭터에서 재미, 혹은 매력을 느끼는지 궁금하다.


류 : 캐릭터를 만드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기본적으로 모두 매력을 느낀다. 이를테면 <아라한 장풍 대작전>의 인물들도 귀엽고, 정재영 씨가 <피도 눈물도 없이>에서 연기했던 캐릭터도 좋아한다. 개인적으로 영화에서 어떠한 인물들이 나오는 세계를 다루느냐를 먼저 생각하는 편이다. 어떨 때는 사건과 상황이 먼저 떠오를 때가 있고 어떨 땐 인물이 먼저 떠오를 수도 있지만, 이번에 페라라의 <악질 경찰>을 보면서는 인물 중심으로 가는 영화를 하고 싶다는 생각도 했다. 연출을 하면서 변하고 있는 것 중 하나는 어떤 인물을 만들어 놓으면 그 특징적인 성격 하나가 영화를 관통해야 한다고 강박적으로 생각한 편이었는데 <주먹이 운다> 이후로 그 생각이 조금 변했다. 일관성 있는 인물이야 말로 ‘영화적인 인물’이라는 생각이 들어서다. 실제로는 다들 조금씩 바뀔 수밖에 없는 거니 굳이 일관성 있게 하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에 미치게 되더라. (김보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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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것 같은, 불 균질 속에서 진정성이 묻어나는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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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일 오후, 당초 일정과 달리 아벨 페라라와의 대담은 이어지지 못했으나 <악질 경찰>은 매진될 정도로 관객 호응이 좋았다. 1992년 작인 <악질경찰>은 도발적인 페라라를 잘 보여주는 대표작으로 끝없이 나락의, 지옥의 세계로 빠져들며 어느 순간 은총을 만끽할 수 있는 영화. 상영 전 영화를 소개하던 김성욱 프로그래머의 우려와는 달리 극장 문을 박차고 나가는 사람 없이 모두 페라라의 힘에 매료되었고, 상영 후 이어진 씨네토크에는 아벨 페라라를 대신해 페라라의 <악질경찰>과 <퓨너럴>을 무지 좋아한다는 오승욱 감독과 김성욱 프로그래머가 함께했다. “<악질 경찰>은 관객을 시궁창으로 몰아넣었다가 정화시켜주는 영화”라며 “언젠가 나도 꼭 예수를 소환하고 싶다”라고 말하는 오승욱 감독과 “얼굴의 영화”라 말하는 김성욱 프로그래머, 그들과 페라라 영화와의 조우를 담았다. (by 이도훈)


김성욱(이하 김) : <악질 경찰>은 관객에게 지옥이나 나락의 세계를 한참 경험하게 하다가 조금씩 은총을 느끼게 해주는 영화다. 이 작품은 여러 가지 모순적인 것들이 엉켜 있는 듯하며, 보고 나면 배우의 얼굴과 행동을 결코 잊을 수 없게 만든다. 어떻게 봤나?


오승욱(이하 오) : 이 영화는 98년 즈음 허진호 감독이 독일에 갔다 오면서 내가 좋아할 것 같다며 사다 준 비디오 테이프를 통해 처음 봤다. 처음 봤을 때는 초반부에 마약하는 장면이 굉장히 세밀하고, 호흡이 길게 느껴졌다. 그런데 오늘 영화를 다시 보니 마약하는 장면들이 짧게 느껴지더라. 이 영화를 처음 보던 날 <악질 경찰>의 하비 케이틀은 <레 미제라블>의 자베르 형사와 닮아있다고 생각했다. <레미제라블>의 자베르 형사는 장발장을 쫓다가 결국 장발장을 놓아주고 강변으로 투신자살한다. 이 영화는 자베르를 주인공으로 해서 <레미제라블>을 다시 쓴 것 같아 매혹적이다. 특히 예수가 등장하는 장면에서는 숨이 막히는 줄 알았다. 예수를 통해 구원과 속죄를 말할 때, 아예 예수 자체를 등장시켜 버리는 건 굉장한 용기라고 본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서 다시 보니 이 장면이 약간 코믹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더라. 하비 케이틀이 예수를 향해서 기어가는 장면에서 짐승 같은 울음을 울 때는 배우에게 동화되는 것 같았다.


김 : 이 영화를 보고 있으면 ‘얼굴의 영화’라는 생각을 참 많이 하게 된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하비 케이틀은 두 범죄자를 향해 “니가 버스를 안 탈 거 같지...”라면서 막 울상을 짓는다. 그 표정이 매우 강렬하다. 아벨 페라라의 다른 작품인 <킹 뉴욕>도 크리스토포 워큰의 연기 때문에 그 영화 자체가 크리스토퍼 워큰의 ‘얼굴의 영화’라고 느껴질 정도다. 그리고 영화상에서 인물이 나락을 빠져나가는 추동력은 부정에 있는 것 같다. 라디오나 TV에서 중계되는 야구 경기의 결과, 경기에 배팅하는 하비 케이틀의 방식, 강간당한 수녀가 처신하는 방식, 하비 케이틀이 두 여자 앞에서 자위를 하거나, 이 후에 수녀가 두 강간범을 용서하는 것을 이해할 수 없는 하비 케이틀의 처지 등. 부정에 대한 것들이 강력해짐에 따라서 훨씬 더 심한 나락을 경험하게 되고, 동시에 그 경험을 수용해 나가는 것 같다. 그런 점은 어떤가?


오 : 비슷한 생각을 했다. 얼마 전 봤던 장 피에르 멜빌의 <레옹 모랭 신부>에서 “신을 가장 부정하고 신에게서 멀어지려고 하는 자가 신에게 가장 가까워 질 수밖에 없는 자”라고 했는데 <악질 경찰>도 부정의 부정을 거듭하면 할수록 신의 자장 안으로 더 끌려 들어가는 영화로 여겨진다. 그리고 <악질 경찰>은 에너지가 넘쳐서 좋다. 수녀를 강간하는 장면이나 하비 케이틀이 두 여자 앞에서 자위하는 장면이 특히 그렇다. 이 영화 안에서 앞서 말한 두 장면의 조합만 봐도 <악질 경찰>이 굉장히 불 균질하다는 걸 알 수 있다. 불 균질하기 때문에 날것의 느낌이 있고, 거기에서 페라라 특유의 독특한 파워가 느껴진다. 보통의 감독들이 만드는 균질한 영화보다는 불 균질하게 만들어진 영화에서 진정성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스스로 내 함정을 파는 거지만, 나는 <퓨너럴>이 <대부>보다 100배는 낫다고 생각한다(좌중 웃음). <대부>가 미국을 신화화 하고 포장하고 있다면 <퓨너럴>은 미국이라는 나라에 흠집을 내고 있다.


관객 1 : 하비 케이틀과 수녀가 동일하게 느껴지는 부분이 많았다. 특히 하비 케이틀이 수녀 이야기를 들으려고 몸을 숙일 때, 그가 수녀를 보면서 자신의 모습을 보고 있는 것 같았다. 수녀가 떠나고 하비 케이틀이 예수님을 향해서 소리 칠 때도, 하비 케이틀의 목소리가 곧 수녀의 목소리인 것처럼 들리더라.


김 : 수녀가 성당에서 신부에게 고해하던 부분에서도 그런 느낌을 받는다. <악질 경찰>의 몇 장면과 <’R-X 마스>를 같이 생각해보면 페라라의 영화는 동화 <크리스마스 캐롤>이 가지고 있는 원형적인 특성을 띠고 있다. 스크루지 처럼 철저하게 부정을 했다가 어느 순간 무언가를 보면서 변화가 일어난다. <’R-X 마스>는 남편을 납치한 사람이 유령처럼 나온다. 남편이 납치범을 만나면서 변경이 발생하는데, <악질 경찰>에서 하비 케이틀은 수녀를 조심스럽게 쳐다보는 과정을 통해서 변화한다. 이처럼 아벨 페라라의 영화는 동화 같기도 하고, 유령 이야기 같기도 하다. 혹은 동화와 유령이야기가 혼재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관객 2 : <악질 경찰>은 선과 악의 문제에 대해서 날 것 자체를 보여주고 판단을 보류하는 것 같다. 오승욱 감독님은 영화가 불 균질하고 날 것 같다고 했다. 그렇다면 이 영화는 선악을 구분하지 않고, 날 것 그 자체로 놓아둔다고 생각하는지와 하비 케이틀이 수녀를 강간한 두 남자를 용서했기 때문에 보내준 거라고 생각하는지 궁금하다.


오 : 이 영화가 불 균질하고 모순적인 내용으로 이루어져있고, 선악의 구분이 모호하다는 말이 맞는 것 같다. 보통 영화에서 선악을 명확하게 구분하면 재미가 반감되지 않나?! 남자가 회개한다는 것도 조금 모호하다. 실제로 누군가가 회개를 한다고 해서 그것이 진정한 회개인지 알기 힘들다고 생각한다.


관객 3 : <악질 경찰>은 감독과 배우가 영화 속 상황이나 등장인물을 진짜 믿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 영화는 관객에게 보여 질 것은 생각하지 않고, 고해소에서나 말 할 수 있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영화는 진심을 말하고 관객은 그저 이해하며, 바라볼 수밖에 없게 만든다. <악질경찰>같은 영화를 보고나면 죄스러운 마음과 수치심이 생기지 않나?


오 : 비슷한 느낌이지만 조금 다르다. 이 영화를 보고 있으면 하비 케이틀에게 동화되어서 시궁창 같은 곳에 들어가는 것 같다. 내가 지었던 모든 죄들이 시궁창 같은 곳으로 빨려 들어갔다가 영화가 끝나면 정화되어서 나오는 느낌이다. <악질경찰>같이 나를 정화시켜주는 영화가 좋고, 존경스럽다. 영화가 100편 만들어지면 이런 영화가 10편 정도는 나왔으면 좋겠다. (이도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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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객 인터뷰 / 송주호(24세), 한상희(23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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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일 병환으로 인해 아벨 페라라의 아시아 첫 방한이 취소되어 안타깝지만 페라라의 영화를 사랑하는 이들은 건재하다. 페라라와 함께하지 못해도 페라라를 얘기할 수 있는 장의 서곡을 장식한 <’R-마스>를 보고 나온 페라라의 건재한 팬들 중 유독 두 사람이 눈에 띤다. 혹자는 솔로들의 전당이라고 말하는 바로 여기 아트시네마에서, 그네들에게서는 풋풋하고 싱그러운 연애기운이 느껴졌기 때문에 질투심이 발동한 것이다. 기쁨은 나누면 배가 된다고 한다. 좋은 영화를 연인과 함께 보는 것은 어떤 것일까? 빔 벤더스는 “한 번 상상해보라. 영화를 보는 당신 곁에서 눈물짓고 박수치고 웃고 탄식하는 천사가 옆에서 함께 영화를 보고 있다고”라는 말로 영화를 같이 보는 친구를 천사로 표현했다. 미대생이라며 자신을 소개한 한상희 씨(23세)와 작년 10월에 전역하고 극장가를 전전하고 있는 송주호 씨와(24세) 함께한 영화 이야기를 싣는다. (by 이도훈)


이도훈(이하 이) : 두 사람의 모습을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자주 보았다. 극장에서 만난 사이인가?

한상희(이하 한) : 작년에 서울아트시네마에서 했던 ‘영화의 매혹’이라는 영화사 강좌를 듣다가 만나게 되었다. 매주 수요일마다 마주치다가 우연히 인사하면서 친해졌다.

송주호(이하 송) : 서로 시간이 맞으면 데이트를 하는데, 얼굴 맞대고 있는 시간보다 스크린을 쳐다보는 시간이 더 길었던 것 같다(웃음).


이 : 우선, 방금 보고 나온 <’R-X마스>를 본 소감이 궁금하다.

송 : 나는 이 영화를 ‘크리스마스 가족영화’로 생각했다. <’R-X마스>의 오프닝과 엔딩은 가족으로 시작하고 끝난다. 오프닝에서 크리스마스 연극을 하는 딸의 모습으로 시작해서 엔딩은 부부의 사랑을 노래하는 장면으로 끝난다는 것이 가족애를 다룬 것이라고 생각했다. 영화의 배경이 크리스마스라서 종교적인 색채도 느껴지는데, 그 부분을 작위적으로 생각했다. 그래서 그런지 불법적인 장사로 생계를 유지하는 두 부부가 딸의 미래를 생각하며 합법적으로 살자며 회개하고 있는 듯하다.

한 : 마약팔지 말자!?(웃음) 이 영화를 일종의 ‘크리스마스 가족영화’라고 하면 가족의 소중함을 말하는 것 같다. 다만 그 소중함을 알아가는 과정이 험난하게 그려져 있다. 비리 경찰은 마치 산타처럼 보이더라. 경찰이 남자 주인공을 납치해서 풀어줄 때, 주인공 남자는 크리스마스 날 아침에 집으로 돌아오지 않나. 비리 경찰이 아버지를 착하게 만들어서 가정으로 되돌려 보내는 것 같더라. 특히 부모가 딸아이에게 사주는 ‘파티 걸 인형’이 기억에 남는다. 외형상으로는 전혀 크리스마스 분위기에 어울리지 않는 불길한 느낌을 받았다. 인형이 검은색 루즈를 바른 모습과 검은 색 머리는 어딘지 모르게 음산하면서 한편으로는 식상하다고나 할까.


이 : 아직 친구들 영화제가 초반이긴 하나 극장에서 꽤 본 것 같다. 이번 기간 중 재미있게 본 작품에 대해서 말해 달라.

송 : 정성일 평론가가 추천한 <수라>를 재미있게 보았다. 영화 속 주인공의 성격이 우유부단한 것 같다. 주인공인 겐고베이가 행동하기 전 상상하는 장면이 많다. 결국 주인공은 자신이 상상한 것과는 반대로 행동한다. 상상 속 사건이 현실에서는 엉뚱하게 전개되는 점이 재미있었다. <수라>를 보기 전에는 사무라이 검술 영화인가 했는데 막상 영화를 볼 때는 그렇지 않았다. 영화 속 상상과 현실이 충돌할 때는 마치 씬과 씬이 검술을 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한 : <수라>는 인물의 심리를 전달하는 과정이 설득력 있었다. 겐고베이가 자신을 속인 코마에게 복수하는 행위가 피상적으로 보이기도 한다. 그럼에도 그의 처지와 행동을 이해할 수 있었다. 예를 들어 겐고베이가 코만의 손을 붙잡고 강제로 아이의 입에다가 칼을 찔러 넣는 장면은 정말 충격적이지만, 실제로 복수를 한다면 저렇게 잔인하게 하겠지 라는 생각이 들더라.


이 : 이번 영화제에서 기대하고 있는 작품이 있나?

송 : 개인적으로 아벨 페라라 감독의 <복수의 립스틱>과 <악질 경찰>을 필름으로 볼 수 있게 되어 너무 설렌다. 자크 리베트의 <셀린느와 줄리 배타러 가다>는 2004년에 너무 재미있게 본 기억이 난다. ‘관객들의 선택’을 선정할 때 이 영화에 표를 던졌는데, 다시 보게 되어서 너무 기쁘다.


이 : 지금까지 서울아트시네마에서 본 작품 중 기억에 남는 영화나 에피소드가 있다면?

송 : 최근 본 스탠리 큐브릭의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은 내게 전대미문의 영화적 체험을 가능하게 해주었다. 그 전까지는 비디오나 DVD를 통해 작은 화면으로만 봐서 그런지 걸작이라거나 아름답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하지만 큰 화면으로 보니 확실히 다르더라. 원숭이들이 모노리스라는 검은 색 돌기둥으로 도구를 사용하는 방법을 알게 되는 장면이 있다. 이 영화의 처음 시작할 때와 중반부에서 암전으로만 검게 처리된다. 암전된 장면에서 스크린이라는 직사각 자체가 마치 그 원숭이들 앞에 떡하니 서있던 돌기둥처럼 느껴졌다. 그런 생각을 하니 소름도 끼치고 정말 벌벌 떨면서 영화를 봤었다.

한 : 서울아트시네마에서 버스터 키튼의 영화를 보면 항시 느끼는 게 있다. 키튼의 영화를 집에서 혼자 보면 키튼이 아무리 익살스러워도 박장대소까지 하지는 않는다. 반면 극장에서 여러 사람과 함께 보면, 깔깔거리고 박수까지 치면서 영화를 본다. 키튼의 영화를 보면서 혼자서 영화 보는 것보다 극장에서 여럿이 함께 볼 때 영화 보는 재미가 배가 된다는 걸 경험했다. 이곳은 영화를 함께 볼 수 있는 공간인 동시에 다른 극장에서는 느낄 수 없는 자유분방한 기운이 있는 곳 같다.


이 :
이번 영화제에서 상영되지 않지만 꼭 필름으로 보고 싶은 작품이 있다면?

송 : 마리오 바바, 다리오 아르젠토의 영화를 꼭 시네마테크에서 보고 싶다. 

한 : 시네마테크가 아트선재에서 마지막으로 상영한 영화가 <안녕, 용문객잔>으로 기억한다다. 그 때 본 그 영화를 결코 잊을 수가 없어서, 이번 관객들의 선택에서도 경합을 벌인 것으로 아는데 다시 한번 상영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이도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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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


관객인터뷰 / 강연하 (23세, 영화 아카데미 25기생)

10일, 프랑수아 트뤼포의 <녹색 방> 상영이 끝난 후 쏟아져 나오는 관객들. 유독 한 여인에게 눈길이 간다. 트뤼포의 <쥴 앤 짐>과 <두 명의 영국 여인과 유럽대륙> 속 남자 주인공들은 사랑하는 여자가 머리를 틀어 올릴 때마다 목덜미를 관찰하는 버릇이 있다. <쥴 앤 짐>의 카트린처럼 머리를 곱게 묶은 한 여인에게 호기심이 발동한 것은 전적으로 트뤼포 탓이리라. 영화 연출을 공부하고 있다는 강연하(23살, 영화 아카데미 25기생) 씨에게 트뤼포를 빌미로 말을 걸어본다. 여기, 그녀의 영화 사랑과 시네마테크에 대한 애정이 있다. (
by 이도훈)

이도훈(이하 이) : 우선, 자기소개를 부탁한다.

강연하(이하 강) : 현재 영화연출을 공부하고 있는 23살의 학생이다. 전에 다니던 영화학과를 그만두고 올해 영화아카데미 25기에 합격해서 연출공부를 하고 있다. 벌써부터 과제의 압박에 시달려서 힘들다(웃음).


이 : 평소 아트시네마에 자주 오는가? 작년에 프로그램이 많았었는데, 가장 기억에 남는 영화제가 있다면?

강 : 자주 오는 편이다. 거의 모든 영화제마다 발품 팔아서 영화를 봤다. 가장 기억에 남는 건 단연 에릭 로메르! 딱 내 취향이다(웃음).


이 : 올해 친구들 영화제에서 가장 기대하는 작품이 있다면?

강 : 가장 기대했던 작품은 <수라>였다. 그래서 어제 상영할 때 봤는데, 내 취향과는 전혀 맞지 않는 영화라는 생각을 했다. 그래도 ‘시네마테크 친구들 영화제’가 아니면 언제 이런 영화를 보겠나 싶어 그 점에 만족했다. 그 외에 보고 싶은 영화는 이명세 감독님이 추천해준 <로마>다. 평소 이명세 감독님의 영화연출방법이 궁금했었기 때문에 <로마> 상영 후 있을 씨네토크를 기대하고 있다. 우디 앨런의 영화는 초기작까지 다 찾아서 볼 정도로 좋아하는데, <애니홀>은 예전에 봤던 작품이지만 스크린으로 다시 보고 싶다.


이 : 방금 프랑수와 트뤼포의 <녹색방>을 보고 나오셨는데, 간단한 소감을 듣고 싶다.

강 : <녹색방>에서 트뤼포가 직접 연기하는 줄리안이 내 성격과 비슷해서 감정이입하기 쉬웠다. 평소 트뤼포의 영화 중 <아델 H 이야기>를 좋아했다. 이 영화를 보면 이자벨 아자니가 한 남자에게 집착하다가 결국 미쳐버린다. <녹색방>도 죽은 아내를 잊지 못하는 한 남자의 이야기다. 두 캐릭터처럼 나 역시 지나간 일에 집착을 많이 한다. 예를 들자면 8년 동안 써서 다 떨어져가는 지갑을 아직까지 쓰고 있다. 사람이나 대상에 대한 집착은 습관 같은 거라는 생각이 든다. <아델 H 이야기>나 오늘 본 <녹색방>에는 무언가를 잊지 못하거나 버리지 못하면서 집착하는 내 성격과 만나는 지점이 있다.


이 : <녹색방>에서 특별히 기억에 남는 장면을 꼽는다면?

강 : 주인공 여자가 입고 다녔던 하늘색 코트. 여자 주인공이 늘 하늘색 코트를 입고 등장하는데, 여자의 하늘색 코트는 트뤼포가 머무는 녹색방과 함께 영화의 주요 테마를 형성하는 것 같다. <녹색방>에서 표현된 색은 영화 속의 ‘죽음’이라는 주제와 연관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이와 비슷한 영화로, 키에슬로브스키가 연출한 <블루> 역시 영화 전체를 지배하는 푸른색이 죽음이라는 주제와 맞닿아 있다.


이 : 영화학도로서 트뤼포에게 본받을 점이 있다면?

강 : 내게는 이야기를 쓸 상상력이 부족하다. 반면에 트뤼포는 데뷔작부터 줄곧 영화를 통해서 자기 이야기를 해왔다. <400번의 구타>를 보면 앙트완 드와넬이 트뤼포와 너무 닮았지 않나. 트뤼포는 캐릭터에 자신을 투영하길 좋아하고 자신이 만든 캐릭터에 무한한 애정을 가지는 것 같다.


이 : 앞으로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상영되길 원하는 작품이 있나?

강 : (갑자기 손뼉을 치면서) 가와세 나오미! 앞으로 아트시네마에서 동시대 영화들도 다양하게 틀어줬으면 한다. 가와세 나오미의 영화 중 아직 보지 못한 초기 다큐멘터리 작품인 <따뜻한 포옹>을 보고 싶다. 이미 본 영화지만 <사라쌍수>도 스크린으로 다시 보고 싶다.


이 : 서울아트시네마에 대한 개인적인 애착을 지니게 된 이유가 있다면 듣고 싶다.

강 : 서울아트시네마를 좋아하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다. 지금은 그만둔 대학을 다닐 때다. 1학년 때였던가, 학교가 너무 싫어서 방황했던 적이 있다. 1학기가 끝나고 휴학을 한 사이 매일 같이 극장에 드나들었다. 2005년 ‘대만 뉴웨이브 영화제’ 때 허우샤오시엔과 차이밍량의 영화를 봤다. 허우샤오시엔의 <동년왕사>를 보고서, 20살 어린 나이에 너무 충격을 받았다. 태어나서 카메라가 움직이지 않는 영화를 처음 본거다. 마치 신천지를 만난 느낌이라고 할까? 또 옥상에 위치한 서울아트시네마라는 특이한 공간이 좋았다. 휴학하고부터는 늘 불안하고 쓸쓸했는데, 시네마테크에 올 때면 힘이 났다. 나에게 서울아트시네마는 영화학교 같은 곳이었다. 이곳에 오면 내가 영화 공부를 하고 있는 것을 후회하지 않게 된다. (by 이도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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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를 맞아 홍상수 감독은 장 비고의 <라탈랑트>를 추천했다. 1934년에 만들어진 이 영화는 29살의 나이에 요절한 장 비고의 유작으로 바지선을 배경으로 결혼한 커플의 사랑이야기를 흥겹고 아름다운 영상으로 표현한다. 상영이 끝난 이후 이어진 씨네토크는 나즈막한 목소리로 “너무 예쁘고 사랑스럽네요”라고 말하는 홍상수 감독의 고백 같은 이야기로 시작했다.


홍상수 : 저는 이 영화를 이십년 전에 처음 보았습니다. 그 때 굉장히 좋게 본 영화라서, 그리고 항상 기억에 남는 영화였기 때문에 선택했습니다. 잘 보았습니다. 처음 보았을 때 이 영화는 인상이 참 깊은 영화였어요. 이번에 다시 볼 때 왜 내가 이 영화를 좋아했는지 이유를 찾으면서 보았는데, 아무래도 이 영화는 장면을 선택하는 동기에서 힘이 나오는 것 같아요. 한 씬을 선택함에 있어서 사랑하는 마음이 있다고 할까요. 씬을 만들 때 지나치게 계산하거나, 어떤 예술적인 기준들에 견주어서 만드는 경우가 있는데 이 분은 영화를 만들 때 ‘사랑해서 찍은 느낌’이 물씬 풍기네요. 씬을 선택한 이유가 인물이든, 배우에 대한 사랑이든, 앵글이 갖는 아름다움의 사랑이든, 안개 낀 배경 속에서 어긋나는 상황들이든, 그 안에는 사랑이 담겨져 있다고 느꼈어요. 이 영화는 씬 안에 넘치도록 담겨있는 애정으로 모여진 영화인 것 같아요. 너무 좋네요. 여러분들이 좋아하시면 저도 참 기쁘겠습니다.


김성욱(프로그래머) : <라탈랑트>는 이제 막 결혼한 커플의 이야기에서 시작해 서로 몸이 헤어졌다가 다시 몸이 만나는 것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사건이 아주 즉흥적인 방식으로 진행되는데, 그런 점은 어떻게 보셨는지요?

홍상수 : 두 연인이 포옹하거나 키스하거나 그러다가 넘어지는 장면들을 너무 좋게 보았습니다. 마지막에 이들이 아주 짧게 바닥에 뒤집어지는 장면이 왜 이렇게 아름다울까 생각했는데, 역시 감독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것들을 모아놓았기 때문인 것 같아요. 씬 처리는 약간 다큐멘터리 같기도 하고요. 일상적인 행위들을 보여주는 앵글들이 갖는 느낌과 배우들이 뿜어내는 힘이 안 맞는 것 같은 느낌이 있어요. 배를 끄는 것 같은 일상적인 행위들을 호흡으로 보여주는 데 이런 점들이 굉장히 순수하네요. 혹은 남자 주인공이 갑판 위를 걸어 기어가며 여자 뒤에 오는 장면은 또 굉장히 서정적이거든요. 영화에서는 인물들에 대한 애정도 보여 지는 것 같아요. 남자가 사랑을 지탱하고, 유지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보여주고, 여자는 굉장히 호기심이 많은 고양이 같은 여자잖아요. 이 둘이 잡상인 때문에 막 도망가거나 하는 장면들이 정말 너무 좋아요. 이런 요소들이 묘하게 섞여지는 느낌이 참 아름다운 것 같아요. 사랑함에 있어서 그 예민하고 위태로운 느낌, 그것을 보호해야 하는 것, 이것이 삶이고 이것들이 나오는 게 다 좋아요. 잘 이야기를 할 수 없을 것 같네요.


관객1 : 많은 영화들 중에서 감독님은 어떻게 영화를 선별하여 보시는지요?

홍상수 : 요사이 만들어진 영화는 잘 안 보는 편이예요. 공부하던 시절에는 옛날 영화만 많이 본 것 같아요. 제 기질과도 맞았던 것 같은데 옛날 영화가 더 좋았어요. 원류라는 생각도 들었고, 그것이 왜 클래식이 되었는지를 생각하면서 공부했던 것 같아요. 그러면서 나한테 와 닿았던 사람들도 발견되었고요. 내 영화에 대한 기준이나 이상, 아름다운 것이 무엇인가, 영화로 할 수 있는 최대치들이 무엇인가 하는 질문들은 그런 작품들을 찾고 보면서 결정된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건 제 기질인데 많이 쌓이면 피곤해져요. 그래서 그 이외에 영화들은 잘 보지 못한 것 같아요. 그것들을 다 보아야 한다는 그런 생각이나 급한 마음은 없었어요. 처음 영화를 보았을 때 감흥을 받은 게 있으면 그것으로 충분하고 그 다음에는 제 일상과 제 마음 속을 쳐다보면서 영화로 무엇을 할까를 생각한 것 같네요.


관객2 : <라탈랑트>는 즉흥적으로 연계되어 엉성한 배열로 이루어졌다는 생각이 듭니다. 좋은 영화라고 못 느껴지는데, 왜 좋은 영화인지 설명해주세요.

홍상수 : 예를 들어 할아버지가 되어서 스무 명 정도 되는 손자들에게 절을 받는다고 하면 절을 하다가 뒤집어지는 아이도 있고 하겠지만 나를 사랑해서 하는 모습이니까 다들 예쁘잖아요. 절은 중요한 게 아니니까. 그런 모습에 풋풋함이 있는 거 같아요. 요새는 테크닉 자체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시류인데, 그건 일종의 수사이고 문법 같아요. 틀 거리를 지나치게 존중하다보면 내용 자체가 번지거나 방해될 수 있거든요. 그 안에 자신의 모습이 온전히 담기는 것이 중요합니다. 사람이 누구인지가 훨씬 더 중요하죠.


관객3 : 인물설정이 독특합니다. 주인공 부부는 연약한 인물임에 반해 이들을 감싸주는 것은 쥘 이었습니다. 이런 설정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홍상수 : 영화를 보면서 인물들이 부딪쳐 있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쥘(미셀 시몽) 같은 경우는 감독이 배우자체에 매력을 느껴서 캐스팅한 것 같아요. 그래서 자유롭게 이 배우에게 공간을 줄 수 있는 여유가 있었던 것 같고, 두 주인공은 내러티브 때문에 캐스팅한 것 같아요. 이런 충돌이 예쁜 것 같아요. 여자 주인공은 예쁘고 호기심도 많고, 쥘 아저씨나, 잡상인도 모두 삶에 대한 상투적인 열정을 가진 사람들 같아요. 그 다른 열정들이 모두 부딪쳐 있다고나 할까요. 이런 점들을 정말 잘 표현한 것 같아요. 영화 처음의 결혼식 장면은 굉장히 길잖아요. 이런 것은 머리로는 나오기 어려운 것인데, 종종 아마추어나 제작 여건 때문에 이런 장면이 나오기도 하지만, 이 경우에는 다르죠. 어떤 종류의 성숙이 없으면 한번 실수로 마는데, 이 작품에는 예상할 수 없는 이런 장면들이 계속 나와서 좋아요. 인물의 모습들도 그렇고요. 이런 점들이 숏 하나하나 속에 인물들에 대한 애정으로 만들어 질 수 있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김나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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