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 친구 김군의 ‘친구들 영화제에 관한 자문자답’


지난 3월 1일로 ‘2009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가 막을 내렸다. 나는 영화이론을 공부하는 학생이고 작년부터 친구들 영화제 소식을 전하는 데일리 활동을 했다. 한 달간의 여정이 끝나갈 무렵 혼잣말로 혹은 친구들에게 간간히 ‘이제 돈 주고 영화 볼 생각하니 아쉽다’란 말을 농담처럼 흘렸지만 단순한 자원봉사, 그리고 약간의 혜택을 넘어 친구들 영화제가 열리는 여기 이 곳, 서울아트시네마는 내게 있어서는 제2의 고향과 같다. 내가 발품 팔아 좀 뛰어다니면 영화를 보다 폭넓게 보고 많은 담론을 들을 수 있으니 이 영화제를 기다리고 영화제에서 일하게 된 것을 영광으로 여기지만, 내가 시네마테크, 아트시네마란 공간을 사랑하는 건 반짝거리는 이 시기만은 아니다. 친구들 영화제를 시작으로 나는 앞으로 내게 다가올 이 공간의 다양한 프로그램을 더 기다리고 고대한다. 그런데 그런 장소가 요즘 흔들리고 있다.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이 몰려오자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시네마테크 지원 사업 공모제 전환 반대 서명운동을 펼치기도 했고, 지난한 싸움이 되더라도 더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도록 계속 노력할 계획이다. 그러기 위해선 그간의 과정에 대해 되돌아보고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보는 작업도 필요하리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한번 객관적 인터뷰어가 되어 스스로에게 질문하고 인터뷰이로서 영화제가 열린 한 달 동안 느꼈던 일들과 시네마테크 전용관 서울아트시네마에 대한 생각을 답해보았다. 이 자문자답은 2009 친구들 영화제의 기억을 간직하기 위함이며, 나아가 앞으로도 쭉 시네마테크 운동이 지속되길 바라고, 관객인 내가 조금이나마 그 운동에 보탬이 될 수 있는 존재임을 스스로 각인하는 행위이기도 하다. 현재 시네마테크는 관객을 소환하고 있고, 나는 기꺼이 그 소환에 응할 것이다. 다음이 스스로에게 던진 자문자답이다.





 


Q. 작년에도 데일리 친구로 활동했었는데 처음에 어떻게 참여하게 됐나.

A. 나는 영화이론을 배우는 학생이다. 학교에서 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래머이시기도 한 김성욱 선생님 수업을 듣기도 했었고 영화를 공부하고 좋아하니 당연히 아트시네마에 자주 오기도 했었다. 원래 아트시네마 월간 소식지에 들어가는 인터뷰나 GV 등이 있을 때 종종 행사 녹취파일을 정리하곤 했었는데, 선생님이 이번 친구들 영화제 데일리팀으로 다시 활동해보지 않겠냐고 제안했다. 나로선 마다할 이유가 없다. 당연히 좋다고 했다.



Q. 왜 당연히 인가.

A. 영화도 좋아하지만, 아트시네마란 공간 자체를 좋아한다. 도움이라고 하긴 좀 거창하지만 내가 친구들 영화제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될 수 있다는데 그 점만으로도 좋을 것 같았다. 그리고 영화를 공짜로 볼 수 있다는 점도 크게 작용했다. (웃음)



Q. 표정에 그 이유가 더 크다고 써있는 듯 하다. (웃음) 막상 참여해보니 어땠나. 무엇을 느꼈는지.

A. 막, 그렇게 보람이 있다거나 한건 아니었던 것 같다. 그냥 시네토크에 참여해서 녹취를 푸는 것뿐이었으니까. 그런 건 사실 아무나 다 할 수 있는 것 아닌가. 하지만 올해 영화제에는 프리뷰를 쓸 수 있는 기회도 있어서 많이 배울 수 있었다. 김성욱 선생님은 원래 수업 때도 학생들이 쓴 글에 대해서 코멘트를 잘 안 해주시는 편인데, 이번 프리뷰 때는 두 세 번씩 계속 코멘트 해주면서 글을 다듬어 주셨다. 스스로도 이게 웬 떡인가 했다. 다음에도 기회가 있으면 더 잘 써서 공식 카탈로그에 실릴 수 있도록 해보겠다.



Q. 기대해보겠다. 데일리 팀이라면 누구보다 친구들 영화제에 관심이 있다고 해도 될 텐데, 올해 상영했던 영화들은 어떻게 보았나.

A. 아무래도 작년 영화제 때보다는 상영 편수가 줄었으니까 아쉬운 점이 있다. 작년에는 친구들이 선택한 영화 말고도 이두용 감독님, 아벨 페라라, 프랑수아 트뤼포 특별전 등 영화들이 많지 않았나. 환율 때문에 힘들었다고 하니까 어쩔 수 없지만, 좀 아쉬웠던 건 사실이다. 하지만 그 중에서 ‘최선의 악인들’ 프로그램은 유독 돋보였던 것 같다. 물론 거기 상영된 영화가 다 좋았던 건 아니지만 두 분 감독님의 취향 같은 것을 엿볼 수 있어서 재미있었다. 오승욱 감독님이 선택한 영화들에는 어떤 쓸쓸하고 고독한 정서가, 박찬욱 감독님이 선택한 영화들에는 이런 말은 좀 상투적이지만, 장난기 어린 악취미가 강하게 느껴졌다.



Q. 이번 친구들 영화제에서 가장 좋았던 영화를 꼽는다면.

A. 음... 물론 <선라이즈>다. 그 전에 비디오의 조악한 화질로 두 번 정도 봤었는데, 필름으로 보니까 확실히 느낌이 다르더라. 마지막 장면에 나오는 할머니의 클로즈업이라든지 도시의 풍광 같은 것들은 역시 커다란 스크린으로 봐야겠다는 생각이 저절로 들었다. <선라이즈>가 원래 기대했던 영화라면 별 기대 없이 봤다가 좋았던 영화도 있다. <캘리포니아 돌스>와 <겟 카터>가 그랬다. <캘리포니아 돌스>의 마지막 장면의 파워에 대해서 많이 얘기를 하던데, 나는 초, 중반부의 떠돌아다니는 장면의 느낌이 더 좋았다. 그냥 같은 시퀀스들의 반복인 것 같던데, 그게 작은 변화를 주면서 계속 쌓여나가니삶의 고단함이랄까 그런 정서가 저절로 느껴지더라. <겟 카터>는 쿨하면서도 화끈하게 치고나가는 영화니까 말 그대로 흥미진진하게 봤다. 사실 시네마테크를 찾는 것도 이런 작품을 만나기 위해서가 아닐까 싶다. ‘세계 명화 시리즈’ 이런 목록에서는 찾아보기 힘들지만 고유한 매력을 가지고 있는 영화들. 좀 오버해서 말하자면 ‘이런 즐거움은 나만 느꼈을 거야’라고 생각하게 만드는 영화들 말이다.



Q. 오히려 <선셋 대로>같은 영화가 기억에 남지는 않았나. 왜 ‘세계명화시리즈’에 항상 꼽히는 영화지만 어쩌다 보니 못 본 영화들도 생기는데 그런 영화를 숙제하는 심정으로 보았을 때 역시 좋다할 때도 있고 기대를 깨는 경우도 있다. 허나 이 모두 즐거움으로 다가온다. 이번 영화제 상영작 중 가장 별로였다고 생각하는 작품은.

A.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김지운 감독이 추천했던 <소년, 소녀를 만나다>다. 김지운 감독이 너무 거창하게 추천해주고 시네토크 때도 너무 멋있는 이야기들을 들려줘서 싫어하진 않기로 했지만, 하여튼 내 느낌으론 별로인 영화였다.



Q. 왜 별로였다 생각하는가.

A. 이야기의 매혹 없이, 김지운 감독의 말을 빌자면 “카페 한 쪽 벽을 장식할 정도로 멋진” 이미지들만 잔뜩 이어놓은 영화 같았다. 레오스 까락스 감독이 고다르를 좋아한다고 했는데, 고다르의 초기작을 잔뜩 의식하고 촬영, 편집한 표가 난 것 같았다. 보고 있자니 조금 힘들었다. 이상하게도 나는 좋은 영화들은 좋았던 점들 얘기할 수 있는데, 싫은 영화들은 왜 싫은지 이야기를 잘못하겠다. 그냥 싫었다.



Q. 영화제 기간 중 아트시네마 위기설이 다돌며 문제가 있었다. 스스로 직접 관객서명운동도 시작했다. 어떻게 그런 결심을 하게 되었나.

A. 뭐 할 얘기가 있겠나. “나는 영화진흥위원회의 시네마테크 사업 공모제 전환에 반대한다. 공모제 전환은 서울아트시네마의 운영 주체를 멋대로 바꾸는 정책이다”라고 서명 받을 때 이야기했었다. 시네마테크 전용관인 아트시네마는 관객의 것이다. 영진위가 사업주체를 선정할 결정권을 가지고 있지도 않고 공동체와 지속성이 보장되어야 하는 이 사업을 1년 단임 공모하는 것 역시 말이 안 된다 생각한다.



Q. 관객서명운동을 계속해 나갈 것인가.

A. 원래 500명 정도 받으면 많이 받는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딱 8일 서명 받아서 649명의 서명을 받았다. 페이스는 조금 떨어질 수도 있겠으나 1,000명 넘길 때까지 받았으면 싶다. 일단 공모 전환은 올해는 유보된 상태이나 이번에 벌어졌던 일을 관객들이나 영진위가 잊지 못하게 하고 싶다. 영진위가 엄청난 악의 집단이라서 서울아트시네마를 없애려고 한 건 아니라고 생각하고 싶다. 우리가 열심히 우리의 의지를 지속적으로 어필해나가고 대중의 공감대를 이끌어낼 수 있다면 현재보다는 내년이 또 그 다음 해에 일이 좀 더 쉬워질 것이라고 믿는다. 뭐 아닐 수도 있겠지만, 어쨌든 좀 더 쉬워졌으면 좋겠다. 그렇게 믿고 계속 열심히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도울 것이다.



Q. 끝은 또 다른 시작이라고 하지 않나. 마지막으로 하고픈 말 한마디는.

A. 이제 다시 돈 주고 영화 볼 생각하니까 영화제가 좀 더 길었으면 하는 생각을 했다. 물론 영화를 보는 돈이 아까운 건 아니다. 단지 가난한 학생의 신분이니. 공짜 영화들이 내게 오는 찬란한 시간은 지나갔지만 앞으로도 그냥 꾸준히 영화 보러 극장에 나오겠다. 시네마테크는 내게 안식과 기쁨과 배움을 선사하는 장소니까. 개인적 바람으로는 영미권 영화 말고 아시아권 영화도 좀 많이 틀어줬음 하지만, 뭐 프로그래머님이 생각이 있으시겠지. 여하튼 시네마테크는 지속되어야 한다. 내 고향을 떠날 수 없으니 난 지금 시네마테크의 소환에 기꺼이 응해 지키려 한다. 난 관객, 이 극장의 주인이니까. (김보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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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마테크에 관한 단상



내게 있어 시네필이라는 말은 아직 너무나 멀다. 영화를 좋아한다고, 영화를 좀 열심히 본다고 누구나 시네필이라고 말할 수는 없으니 말이다. 영화는 물리적 시간의 흐름을 동반한다. 장편영화로 치자면 1시간 반에서 2시간 정도다. 어떤 영화가 10년의 이야기를 하건, 10분 안에 이루어진 일들의 이야기를 하건 간에 관객은 자신의 시간을 영화에 투자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도 나는 당대 내노라하는 시네필로 불리는 선배들에 비해 영화를 본 물리적 시간 자체가 짧다. 나는 아직 이십대 초반이고 세상의 유혹이라는 핑계를 대며 영화에 시간을 많이 소요하지 못한 학생일 뿐이다.


프랑수와 트뤼포는 22살 까이에 뒤 시네마에 '프랑스 영화의 어떤 경향'이라는 글을 써서 당시 프랑스 영화계에 큰 영향을 주었다고 한다. 물론 22살의 혈기에 썼기 때문에 조금 거친 문체가 남아있는 것 같기도 하지만, 그 글을 읽으며 그의 열정과 용기를 하염없이 부러워한 적이 있다. 프랑스 나이로 하면 나는 이제 트뤼포와 동갑이 된다. 나는 영화에 대해, 영화를 둘러싼 세계에 대해 트뤼포처럼 배짱 좋게 소리칠 깜냥도 내공도 되지 않는다. 사실 고백하자면 깜냥은 고사하고 지금 쏟아지는 수많은 영상물 속에서 나를 다잡기도 어렵다.


2009년 서울에서 살아가는 내가 볼 수 있는 네모난 화면은 너무도 많다. 브라운관, 모니터, 전광판, PMP, 그리고 스크린까지. 이것은 영화를 포함한 모든 영상물을 만날 매체가 다양해진 것을 뜻한다. 수많은 매체가 쏟아내는 수많은 이미지들, 상투적으로는 이를 '이미지의 홍수'라고들 한다. 집에서 TV리모콘으로 채널만 돌리고 있어도 케이블 프로그램을 통해 홈 비디오카메라로 찍은 듯 한 작은 영상물부터 엄청난 자본을 투자하여 만든 할리우드의 현란한 CG화면까지 언제나 만날 수 있다. 질적으로 차이가 큰 이미지들이 단순히 채널이라는 대등한 위계로 나에게 다가온다. 난 이따금씩 춤추고 노래하는 어린 가수들의 몸짓에 머뭇거리기도 하고 내셔널지오그래픽의 깨끗하고 화려한 화면에 매혹되기도 한다. 이렇게 쏟아지는 이미지의 홍수 속에서 내 마음은 아무리 다잡으려 해도 갈피를 못 잡고 흔들린다.


시네마테크는 이런 환경에 갇힌 내가 찾아가는 유일무이한 곳이다. 고전을 향유한다는 것, 고전 속에서 현재를 살기 위한 보는 눈을 기른다는 것. 난 그것을 시네마테크에서 보고 배웠다. 이런 말은 짐짓 진부하게 들릴지는 모르겠지만 나에게는 진리에 가깝다. 시네마테크에 가면 고민 고민하고 공을 들여 찍어 놓은 수십년 혹은 십수년전의 이미지들이 내 눈 앞에서 춤을 춘다. 동시에 내 마음에도 자막이 뜬다. “그래, 이게 영화잖아”라고. 네이트온 메신저에서 치면 파란 줄이 그어지며 뜨는 그토록 흔하고 유동적이던 ‘영화'라는 단어는 시네마테크에서는 고정적인 어떤 것이 되어 버린다. 영화에 대한 내 편협한 감정과 사랑은 비록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렇게 시네마테크 안에서 무럭무럭 자랐다. 시네마테크에서 보았던 영화들은 언제나 나에게 새로운 질문을 던진다. 때로는 학교에서보다 더 큰 질문을 던질 때가 있다. 고다르 후기작들이 던졌던 삶과 전쟁에 대한 질문을 받아들고는 깊은 한숨을 쉬며 집으로 돌아온 적도 있었다. 로메르가 작품을 통해 한수 가르쳐준 연애기술은 나름 실생활에도 써먹을(?) 혹은 써먹고 싶을 만한 기술이었고, 더 나아가서는 사람과 사람사이의 관계에 대한 질문을 던지게 했다. 나에게 있어 시네마테크는 끊임없는 질문으로 한 발짝씩 나아가게 하는 단연 성숙의 공간이다.


그리고 내게 또 다른 의미로 시네마테크가 중요한 것은 친구들이라는 존재 때문이다. 시네마테크에는 늘 친구들이 있다. 굳이 약속을 하지 않아도 늘 극장에 가면 거기엔 친구들이 있었다. 같은 영화를 보고 나오면 친구들과 공유할 수 있는 기억이 생겼다는 생각에 말 한마디를 더 하지 않아도 이상한 연대감을 느낄 수 있다. 우리는 많은 영화를 같이 보았고 그렇게 그곳에 함께 있었던 거다.


내게 있어서는 배움터이며 안식처고 만남의 광장이기도 한 시네마테크에서 나는 올해까지 2년째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 웹데일리 작업에 참여하고 있다. 그리고 나는 그 친구들과 함께 친구들 영화제에서 일하게 된 것이 행운이라 느낀다. 이 일을 통해 새로운, 그리고 소중한 친구들도 만나게 되었으니. 친구들 영화제가 열리는 겨울마다 시네마테크에는 그 어느 때보다 사람들이 복작거렸고 재미난 영화들이 풍성했다. 영화제에서 나를 포함한 데일리 친구들이 한 작업 중에는 주로 감독, 배우들이 자신이 추천한 영화에 관해 관객과 함께 얘기하는 시네토크를 정리하는 게 많았다. 어찌 보면 그것은 말을 글로 옮겨내는 단순한 녹취풀기가 아닌가 싶은데 그 자리에 그 시간을 공유하고 있다보면 그건 단순한 녹취풀기, 그 이상이라는 걸 금방 알아채게 된다. 영화가 던지는 질문에 한번 배웠다면, 더 많이 고민하고 경험이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한 번 더 배울 수 있는 배움의 배가된 느낌을 가질 수 있었다. 나와 친구들은 영화가 끝나 극장 밖을 나서면 별이 박혀있는 밤하늘 아래서 영화와 영화를 추천한 사람들에 대한 나름의 감상을 한마디 더 덧붙였다. 또 집으로 돌아가는 시간을 아쉬워하며 무슨 이야기든 더 하기 위해 종종 커피를 마시러 가기도 한다. 커피를 마시며 매 순간 영화만을 추억한 것은 아니지만 그 모든 시간들이 내겐 너무나 황홀했던 시간이다. 아마도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나도 난 그 겨울의 시간들을 황홀함을 느낄 만큼 찬란했다고 기억할 것이다.


이제 봄이 되면 개강을 하고 난 다시 학교로 돌아간다. 이젠 어엿한 3학년이다. 학교에 입학하면서 시네마테크에 오기 시작했으니 난 학교와 시네마테크를 동시에 다니기 시작한 셈이다. 언젠가는 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생 딱지를 떼고 다시 학교에 갈일이 없을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시네마테크는 다르다. 내가 어느 곳에서 어떤 일을 하거나 상관없이 여전히 들락거릴 것이다. 더 불어난 이미지의 홍수에 갈피를 못 잡을 때면 또 시네마테크에 와서 영화를 보고 ‘이게 영화야’라고 되뇔 것이다. 혹은 영화를 보고 붕 떠서 아쉬운 마음에 함께 영화를 본 어떤 친구에게 커피를 마시자고 할 것이다. 하지만 요즘은 시네마테크 전용관인 서울아트시네마의 위기설이 나도는 등 정말 비상식적인 일들이 많이 일어나고 있어 그 바람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어쩔까 하는 걱정에 마음이 무겁다. 이제 불어올 봄바람이 이 무거운 마음을 가셔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 바람이 이루어져 늘 바로 이 곳, 여기 시네마테크에 영화를 보러 올 수 있었으면 좋겠다. (김나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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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9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에는 7명의 '데일리 친구들'이 영화제에 참여해 상영작 소개글 및 리뷰, 영화제 기간에 진행된 시네토크를 정리해 기사를 작성했다. 영화제가 끝나가면서 영화제에 열정적으로 참여했던 '데일리 친구들'의 시네마테크와 영화제에 관한 짤막한 단상을 소개한다.    

시네마테크를 향한 연애편지






올해로 4회를 맞는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가 막바지에 다다랐다. 2월이 지나고 3월이 오면 서울아트시네마는 이제 새로운 프로그램을 위한 준비에 분주해 질 것이다. 서울아트시네마의 1년 중, 그 어느 때보다 분주하고 그 어느 때보다 활력 넘치는 한달여의 시간은 또다시 내년을 기약한다. 그리고 동시에 ‘친구들 영화제’의 일원으로 속해있던 나 또한 내년에 돌아올 ‘친구들 영화제’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3월의 첫날, 나는 ‘친구들 영화제’의 폐막과 동시에 개강을 준비해야 한다. 서른 편 남짓의 영화들에 둘러싸여 정신없는 방학을 보냈던 나는 이제 온전히 영화로만 이루어진 달콤한 꿈을 잠시 접어야 한다. 그 어느 때보다 기다렸던 2009년의 겨울은 어느새 봄을 준비하라는 다그침으로 바뀌어 있다.


한국에서 겨울을 맞이하는 건 2년, 정확히 횟수로 따지면 3년 만이다. 3년에 걸친 시간 동안 나는 인도에 잠시 둥지를 틀고 있었다. 인도와 한국, 두 나라는 모두 뚜렷한 사계를 가지고 있지만 실제의 기후는 조금 차이가 난다. 한국에 강한 햇볕이 내리쬐는 여름, 인도는 하루 종일 비가 퍼붓는 우기를 준비한다. 인도의 최북단 지방은 겨울이 되면 영하 2,30도 안팎으로 떨어지곤 한다. 한국의 30배에 달하는 인도의 거대한 땅덩어리는 북부와 중부, 그리고 남부에 걸친 다양한 기후를 가지고 있다. 인도를 여행하고자 하는 대부분의 한국 사람들은 비교적 날씨가 안정적인 겨울을 택한다. 나도 좀 더 쾌적한 여행을 위해 겨울이라는 계절을 선택했고, 그렇게 매년 겨울마다 인도에 머무는 ‘못된’ 습관을 들였다. 인도에서 생활했던 시간들은 더없이 값진 것들이었지만,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생긴 기회비용은 바로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였다. ‘친구들 영화제’는 시네마테크의 1년 중 가장 큰 행사이며 평소 보고 싶었던 감독들과 배우들을 만나는 행복을 제공하는 것이기도 하다. 2006년 처음으로 ‘친구들 영화제’의 북적거림에 맛 들린 나는 이후 두해의 겨울을 인도에서 보내며 늘 아쉬움을 안고 살아야 했다. 작년 겨울, 네팔의 안나푸르나 등반 중에 지인들에게 부쳤던 엽서는 온통 ‘시네마테크’라는 단어로 도배되어 있었다. 까맣게 그을린 ‘정글소녀’의 몰골로 3월이 시작될 즈음 한국에 돌아오자마자 가장 먼저 확인한 것 역시 지난 ‘친구들 영화제’의 프로그램이다. 지난 몇 년 간 나에게 겨울이라는 단어는 곧 시네마테크를 의미했다.


그렇게 기대하고 기대하던 ‘친구들 영화제로의 귀환’을 무사히 마친 후, 문득 떠오르는 것은 처음 시네마테크를 만났던 순간의 기억이다. 고등학교 3학년에 진학하던 겨울, 시네마테크라는 난생 처음 보는 공간 안에서 만났던 영화는 아마 구로사와 아키라의 영화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런저런 전시회를 둘러보던 나는 우연히 아트선재 밑에 극장이 있다는 정보를 들었고, 그 길로 내려가 영화를 관람했다. 고등학교 시절에는 거의 인사동에서 살다시피 했으므로 그때 이후 시간이 날 때마다 종종 시네마테크를 찾곤 했다. 그렇게 혼자만 다니던 시네마테크에 친구 손을 붙잡고 온 것은 그 다음해, 그러니까 대학교 입시가 끝난 해의 겨울이다. 프랑소와 오종의 자극적인 단편들을 보며 스트레스를 해소하곤 했던 나는 그때 만해도 시네마테크가 내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공간이 되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나는 예중․고를 거쳐 자연스레 미대에 진학했기 때문에 영화에 관련된 과나 학원과는 꽤나 거리가 멀었다. 때문에 좋은 영화나 좋은 비평을 발견해도, 그것을 나눌 수 있는 친구들은 지극히 한정되어 있었다. 영화에 관한 농담을 나눌 수 있는 친구들은 있어도 영화가 던져주는 텍스트나 감정들에 대해 이야기할 친구들은 거의 없었다. 화가가 되고 싶은 꿈은 학교 내에서도 충분히 해소할 수 있었지만 영화를 나누고 싶다는 꿈은 어디에서도 해소될 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시네마테크에 더욱 안착했고 뜻 맞는 동창들 몇 명이 모여 시네마테크에 대한 이야기를 줄기차게 이어나가기 시작했다. 시네마테크는 나에게 결국 ‘방과 후 수업’과 같은 존재다. 그 곳에 가면 많은 사람들이 반짝이는 눈빛으로 영화 보는 진풍경을 감상할 수 있고 평소에 듣도 보도 못한 영화들을 경험할 수 있었다. 서울아트시네마가 지금의 공간으로 이사하기 직전, 그러니까 소격동 시절에 마지막으로 상영했던 차이밍량의 <안녕, 용문객잔>은 평생에 걸쳐 잊을 수 없는 아련함을 안겨주었다. 서울아트시네마가 낙원상가로 이사한다는 사실을 모른 채 극장이 아예 사라진다고 착각했던 나는 아주 차분히 아트선재의 계단을 쓸며 올라왔었던 것 같다.


극장이 없어지지 않고 예전 모습 그대로 낙원상가 4층에 새둥지를 틀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날 나는 영문 모르는 친구의 팔을 붙잡고 종로 한 복판을 길길이 뛰어다니기도 했다. 돌아보면 그때의 철없던 애정이 결국 지금까지 종로 어귀를 전전하게 만드는 원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아주 어릴 때부터 좋아하던 한 감독의 영화를 극장을 통해 다시 만났을 때의 희열, 그 기쁨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아름다운 순간들이다. 최근에는 시네마테크를 향한 개인적인 욕심도 하나 생겼다. 2년 전, 시네마테크에서 한 러시아 감독의 특별전을 상영했는데 그때 이후 지금까지 그 감독에 대한 커다란 애정을 고스란히 이어오고 있다. 그 러시아 감독의 다른 영화들을 지속적으로 찾아보았지만, 역시 극장에서 보았던 그대로의 느낌은 나지 않았다.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그의 모든 작품을 시네마테크에서 관람하고 싶다. 더불어 ‘관객’으로서가 아닌 ‘감독’으로서 그의 영화를 소개하고 싶다는 당돌한 소망도 가져본다. 매우 뜬금없는 소망이지만, 그 어느 곳에도 이야기해본 적 없는 시네마테크에 대한 조심스러운 고백이자, 시네마테크와 함께 자라온 철부지 꼬마의 ‘장래희망’이다. 나에게 좋아하는 영화, 사랑하는 영화를 함께 나눌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은 시네마테크뿐이다. 영화를 보기 위한 단 하나의 공간만을 허락한다면 나는 주저 없이, 너무나 당연하게 시네마테크를 선택할 것이다. 나의 ‘당돌한’ 소망이 이뤄지는 그날 그리고 그 이후로도, 시네마테크가 영원히 살아남기를 간절히 바란다. (강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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