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영화는 개인의 구원에 관한 영적인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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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일 저녁 8시, <택시 드라이버> 상영 전 이 영화를 선택한 김지운 감독의 짤막한 영화 소개가 있었다. 원래 23일 상영 때 시네토크가 예정되어 있었으나 공교롭게도 <놈놈놈>의 마지막 촬영이 겹치는 바람에 취소되고 오늘에야 아트시네마를 찾은 그를 만날 수 있었던 것. 일정 변경으로 넉넉한 시네토크 시간이 마련되지 못해 아쉬움이 남기도 하나 자신이 선택한 <택시 드라이버>에 대한 누구 못지않은 애정을 풀어 놓는 그의 목소리는 반가움을 더한다. 영화 <택시 드라이버>가 한 개인의 구원에 관한 영적인 이야기라 말하는 김지운 감독의 추천의 변을 싣는다.

마틴 스콜세지의 <택시 드라이버>의 두 번째 상영일이었던 31일 8시, 김지운 감독이 이번 친구들 영화제에 자신이 추천한 영화 <택시 드라이버>를 관객들과 함께 보기 위해 아트시네마를 찾았다.


상영 전 짧게 나마 영화 소개를 잊지 않으며 관객과의 만남을 가진 김지운 감독은 이 자리에서 먼저 사과의 뜻과 <놈놈놈>에 대한 다짐을 유머러스하게 밝혔다. “마지막 촬영을 끝내고 숙소로 돌아와 이메일을 확인하자 내게도 서울아트시네마에서 보낸 김지운 감독의 시네토크 취소와 관련한 단체 사과 메일이 와있더라"며 “일이 그렇게 된 데에 진심으로 사과의 말을 전합니다"라고 말했다. 또한 그는 한편으로는 자신 역시 촬영 일정 때문에 이번 친구들 영화제에서 상영된 영화들을 많이 보지 못해 아쉽다는 말도 함께 전했다.


“영화를 찍는 내내 여기 와 계신 배창호 감독님의 <꿈>을 비롯해 이두용 감독님의 특별전, 아벨 페라라 특별전 같이 어쩌면 필름으로는 다시는 못 볼수도 있을 영화들을 내 영화 <놈놈놈> 찍는 것 때문에 못 보게 된 것이 크게 아쉬웠습니다. 그런 아쉬움을 묻으면서 꼭 <놈놈놈>이 성공하고 말리라는 근거도 없고 이치에도 안 맞는 다짐을 하면서 찍었습니다.”


김지운 감독의 근거 없는 농담(?)에 극장 안에 슬며시 웃음이 번졌다. 본격적인 영화 얘기를 시작하기 전에 김지운 감독은 이번 영화제에서 유일하게 본 <순응자>에 대한 마틴 스콜세지의 평을 들려주는 센스도 발휘했다. 그의 전언에 따르면 마틴 스콜세지는 <순응자>를 두고 “마치 장 뤽 고다르와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를 한 침대에 집어넣고 총에다 머리를 갖다 대면서 ‘뭐라도 한편 만들어봐라’해서 나온 영화”라고 했단다. 당시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는 마틴 스콜세지 같은 동시대 감독들에게 있어서 경외의 대상이면서 동시에 질투의 대상이었다고 한다. 김지운 감독에게도 그랬음이 틀림없다. 그는 “역사에 관해 정치적으로 암울한 비관적인 메시지를 명랑한 형식으로 보여줄 수 있을 거라 생각지 못했기 때문에 충격적 이었다”고 유일하게 보게 된 <순응자>에 대한 짧은 소감을 전했다.


베르톨루치가 마틴 스콜세지의 경외의, 혹은 질투의 대상이었듯 김지운 감독에게는 베르톨루치 저리가라 할 정도라 마틴 스콜세지가 하나의 전설이자 신화였는지도 모르겠다. 그는 자신의 추천작 <택시 드라이버>에 대한 소개를 시작하며 “이 영화에 대해서는 이 영화만큼은 여기 바로 이 자리에 숨어있는 시네필들의 정보나 해석이 저의 것보다 훨씬 뛰어나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러나 이 영화에 대한 사랑과 애정을 말씀드리자면 저도 그 분들 못지않게 막강한 사랑과 애정을 갖고 있다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라고 단언했다.


김지운 감독은 이 영화에 대한 일화 또한 들려주었다. 그의 얘기를 그대로 옮겨보면 이렇다. 처음에 이 영화의 각본가인 폴 슈레이더는 브라이언 드 팔마에게 제안을 했다고 한다. 둘이 체스를 두면서 폴 슈레이더는 드 팔마에게 <택시 드라이버>의 시나리오를 설명했다. 월남전에 참전했던 남자가 미국에 돌아와서 불면증에 시달리다가 야간 택시드라이버를 하게 되면서 도시의 악덕이미지를 깨끗이 소탕하기 위해 벌이는 동시에 어린 창녀를 구원하기 위해서 살육을 벌인다는 얘기라고 들려주었다 한다. 살육전에 대해 일가견이 있다고 할 수 있는 드 팔마는 흥미를 보였으나 도저히 자신은 못할 것 같다고 했는데 그 당시 마틴 스콜세지는 둘을 많이 따라다녔다는 후문. 당시 폴 슈레이더는 오즈에 대한 탁월한 비평서를 내기도 하고 할리우드에서 유명한 시나리오 작가로도 자리매김하던 시기였고, 드 팔마는 <웨딩 파티>라던가 <디오니소스>를 찍으면서 인디 영화에서 전형적인 감독으로서 자자한 명성을 얻은 때였다. 스콜세지 역시 <앨리스는 더 이상 살지 않는다>, <비열한 거리>로 할리우드에서 젊은 피로 승승장구 하던 때였으나 폴 슈레이더와 드 팔마에 비할 수 없었던 모양이다. 스콜세지는 폴 슈레이더에게 도스토예프스키의 단편소설 <도박꾼> 각색을 의뢰하러 갔다가 <택시 드라이버>를 접하게 되고 결국 스콜세지 그의 손에서 비로소 영화화됐다는 것. 주인은 인연은 그렇게 따로 있나보다 싶다.


김지운 감독은 또한 <택시 드라이버>를 놓고 로저 에버트의 말을 인용하면서 “수 십 번 영화를 봤지만 볼 때마다 매번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는 이 시대의 가장 위대한 걸작이자, 이 시대의 위대한 걸작이면서 가장 위력적인 영화”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특히 그는 <택시 드라이버>를 사회 비판적인 관점보다는 개인적인 관점에서 보게 된다고 토로했다. “도시의 악덕 이미지와 타락한 개인이 말끔하게 소탕하는, 영웅이 없는 사회에 반 영웅이 나타나서 그저 소탕하는 영화라기보다는 개인적이고 내밀하고 꽉 막힌 세상에서 탈출을 시도하고 구원받으려 하는 실존적인 문제나 존재의 딜레마를 겪고 있는 한 인생에 대한 영적인 얘기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끝으로 김지운 감독은 10년 만에 이 영화를 필름으로 다시 보는 영적인 시간을 관객들과 함께 갖게 되어서 기쁘다는 말을 전하며 소개를 마쳤다. (이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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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의 거대한 서커스, 축제 같은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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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일 1시, 친구들 영화제에 새 친구로 영입된 이명세 감독이 추천한 페데리코 펠리니의 <로마>가 상영됐다.  한 편의 축제 같은 영화가 끝난 후 '모두들 왁자지껄 떠들기를 기대했다'는 이명세 감독의 소망을 시작으로 영화에 관한, 때론 삶에 대한 감상을 풀어 놓는 자리가 됐다. 여기에 소란스런, 하지만 축제가 끝난 후의 정적을 포함했던 그 흔적들을 짧게나마 옮겨 적어본다.


김성욱(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래머) : 맨 앞줄에 앉아 영화에 나온 가족들처럼 스크린을 올려다봤다. 오히려 그것이 더 다행이었던 것 같다. 등장인물이 많은 영화여서 디테일들을 보는 재미가 컸다. 너무나도 많은 얘기들이 펼쳐지는 한 편의 거대한 서커스를 본 듯한 느낌이 든다. 이 영화를 선택하신 감독님의 느낌은 어땠는지?

이명세(영화감독) : 페데리코 펠리니 감독은 내가 영화학교를 만든다면 꼭 모시고 싶은 주임교수 중 하나다. <로마>(1972)는 그 학교의 교과서다. 물론 펠리니만 있는 것은 아니다. <윌로씨의 휴가>의 자크 타티, <만춘>의 오즈 야스지로, <카메라맨>의 버스터 키튼, <키드>의 찰리 채플린까지 5명을 꼭 모시고 싶다. 거기서 나는 물론 수위다(웃음). 미국에서 처음 이 영화를 봤을 때 매우 가슴 벅찼던 기억이 있다. 이것이야 말로 영화의 전부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함께 영화를 봤던 친구들과 흥분에 겨워 며칠 동안 계속 얘기했던 추억을 떠올리면서 추천했다. 그런데 생각보다 관객 분들이 흥분보다는 혼란을 느끼시는 것 같다. 엄지원 씨도 조금 전 “마치 커다란 스테이크를 먹은 것 같다. 소화하기가 힘들다”고 말하더라. 마치 내 영화 <M>의 시사 후의 혼돈을 떠올리게 한다(웃음). 영화 전체를 ‘로마’라는 서커스라고 생각하면 간단할 것 같다. 영화를 보고 다 같이 축제처럼 왁자지껄하게 떠들기를 기대했다. 영화에 어떤 메시지가 있다고 생각하거나 영화를 이해하려는 방식을 버리면 축제처럼 영화를 즐길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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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욱 : 영화에 굉장히 많은 사람들이 등장한다. 펠리니의 분신처럼(그리고 실제로 펠리니가 일부 장면에 출연하고 있다) 보이는 한 명을 제외하고는 주인공이 따로 없이 모두 엑스트라들이 나온다. 때론 그들이 모두 주인공인 영화다. 영화 초반부에 학교에서 선생이 아이들에게 ‘조용히 해라, 질서를 지켜라’라는 말을 하는데, 영화는 정확하게 그 말의 반대를 보여준다. 소란스럽고 무질서하다. 특별히 영화의 어떤 면을 좋아하시는지 궁금하다.

이명세 : 이 영화는 주인공이나 사건, 드라마를 쫓아가는 영화가 아니다. 이야기를 좋아하시는 분들은 펠리니의 영화 중에서 <길>이나 <카비리아의 밤>을 좋아하실 거다. 개인적으로는 <아마코르드>와 <로마>가 좋다. 영화를 처음 봤을 때 영화 속 로마의 소란함이 내가 86년에 처음으로 로마에 가봤을 때의 소란함과 매우 유사하다고 느꼈다. 여기선 로마 자체를 볼 수 있다. 과거의 로마와 영화를 찍을 당시의 로마를 볼 수 있다. 음식 문화, 떠드는 사람들의 소리들, 아이들, 신부님들을 보여주면서 이야기를 통하지 않고 이미지로 ‘이것이 로마다’라고 말한다. 또 화려한 소란과 정적, 마지막의 오토바이의 질주와 그림자는 마치 불꽃놀이처럼 명멸하는 인생에 대한 비유이자 로마의 역사와 현재를 보여주는 다양한 방식을 나타낸다 싶었다. 그 다양한 각도 때문에 보는 사람마다 다른 것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보물찾기와 같은 영화가 아닌가 생각한다. 미국에서 같이 본 친구들과도 각자 ‘절대 숏’을 뽑아보았는데 오늘 영화를 함께 본 여러분들의 ‘절대 숏’은 무엇일지 몹시 궁금하다.


김성욱 : ‘절대 숏’이라 하면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이명세 : 나는 모든 영화에는 그 영화 전체를 아우를 수 있는 ‘절대 숏’이 있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면 오즈 야스지로의 <만춘>에서 사과를 깎는 아버지의 클로즈업 숏을 개인적으로 나는 절대 숏으로 꼽는다. ‘이제 저 아버지는 혼자서 사과를 깎을 수밖에 없구나’를 느끼게 만든다. 압축된 시어처럼 한 인생이나 영화 전체가 녹아있는 숏이다. 이번에 볼 때 <로마>의 절대 숏은 후반부의 어느 축제에서 할머니 옆에 걸린 거울에 젊은 여자가 비춰지는 장면이었다. ‘늙음과 젊음’이 교차될 때 아 이 영화는 인생의 명멸을 보여주고 있구나하고 새삼 느꼈다.


관객 1 : 질문에 앞서 감독님께서 그 학교를 세우시면 저는 배식담당이라도 하고 싶다(웃음). 영화의 한 장면에서 극장에서 쇼를 보다가 방공호로 대피한 후 펠리니인 듯한 청년이 러시아 여자와 대화를 하는 장면이 나오고 이어 풀숏으로 넘어간다. 그 때 청년 부분만 암흑이고 나머지는 다 빛을 받고 있다. 그 장면에서 뭐라 할 수 없는 느낌을 받았다. 왜 펠리니가 그런 식으로 찍었는지 감독님께서는 짐작하시는 바가 있는지?

이명세 : 항상 감독은 카메라 뒤에 있기 때문에 빛을 받으면 안 된다. 영화 속의 배우들만이 빛을 받아야 한다. 고야의 초상화 작품들 속에는 항상 누군가 어둠 속에 웅크리고 있는데 그 사람이 화가다. 그림을 볼 때 그 자가 영화에서의 감독과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여기서도 그런 의도가 아니었을까 짐작해본다.


관객 2 : 좋은 영화 추천해주신 덕분에 영화 잘 봤다. 개인적으로 감독님의 영화들 중에서도 디테일이 살아있는 작품들을 좋아하는데 이 영화 역시 굉장히 디테일하다. 특히 마지막 오토바이 질주 장면의 디테일을 어떻게 보셨는지 궁금하다.

이명세 : 생동감 있는 젊음의 질주다. 그 때 죽어있던 동상들의 그림자들이 마치 살아나 움직이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지금은 유적으로 남아있는 것들이 다시 되살아나는 것 같다. 그것들이 로마를 움직이는 듯한 역동적인 느낌을 만들어내는 것이 좋았다. 처음에 그 장면을 보면서 굉장히 흥분했었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오토바이들이 어둠 속으로 사라져갈 때는 묘하게 멜랑콜리한 느낌들이 남는다. 그 모든 것이 삶의 생성과 소멸과 같은 느낌을 준다.


관객 3 : 감독님의 인터뷰에서 자주 ‘영화의 운동성’에 대한 언급을 봤다. 프레임 안에서 움직임이 많다고 운동성이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로마>는 카메라 무빙, 인물들의 동선 하나는 물론 빛의 명멸에서까지 다 운동감을 느낄 수 있었다. 오즈의 영화도 차분하고 정돈된 느낌을 주지만 그 속에도 묘한 운동감이 있다. 감독님이 생각하시는 영화의 성질로서의 ‘운동’이란 어떤 것이라 보는지 듣고 싶다.

이명세 : 영화에서 운동은 어떤 리듬을 만들어낸다. 템포와 리듬은 다르다고 본다. 리듬은 소리에도 있고 스틸 사진에도 있다. 피카소나 마티스나 로댕 역시 회화나 조각이란 정지된 것 속에 움직임을 부여해 리듬을 만들어 냈다. 사운드에서도 요란함과 정적 사이에서 어떤 리듬이 만들어 진다. <로마>의 경우, 어둠 속에서 조명탄을 발사해서 사물이 나타나고 사라지는 것, 시끄러운 빗소리 속에서 들리지는 않지만 수많은 사람들이 떠드는 것 등이 하나의 리듬을 만들어낸다. 오즈의 영화에서는 픽스 숏들의 컷이 넘어갈 때 생기는 리듬이 분명히 있다. 그것이 ‘정중동이자 동중정’이라고 할 수 있는 진짜 리듬인 것 같다. 그것이야말로 활동사진이라는 영화의 기본적인 개념을 뛰어넘는 영화의 추상적이고 본질적인 활동성이라고 생각한다. (이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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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을 다시 보니 감독님 신작이 미친 듯이 더 보고 싶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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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진 평론가는 작년에 이어 올 해도 한국영화를 선택했다. 그의 올해 추천작은 바로 배창호 감독의 <꿈>(1991). 스스로 배창호 감독의 꾸준한 팬임을 자처한 김영진 평론가는 “개봉 이후 <꿈>을 필름으로 볼 기회가 별로 없어 안타까웠는데 이번 영화제를 통해 ‘꿈’이 실현됐다. 내가 보고 싶은 영화도 보는 이런 날도 있어야 하지 않겠냐”면서 기쁨을 감추지 않았다. 그리고 상영 후 이어진 시네토크 시간에는 이 영화를 추천한 김영진 평론가와 배창호 감독이 직접 참석해서 자신의 영화들과 요즘 한국 영화들에 대한 생각들을 때론 진지하게, 때론 유쾌하게 들려주었다. 그 꿈같은 현장을 짧게나마 옮겨본다.

김영진(영화평론가, 명지대 교수) : 보통 영화에서 끝까지 다 보고 난 뒤 이게 꿈이었다고 하면 매우 짜증나는 경우가 많은데, 이 영화는 매우 다행이라고 느꼈다(웃음). ‘영화가 어쩜 이렇게 간결할 수 있을까’란 생각이 들어서 그랬던 것 같다. 특히 황신혜 씨가 연기한 달례 같은 경우에는 대사도 아주 간결했다.

배창호(영화감독) : 영화를 찍을 당시에는 총각이었는데 영화를 다시 보니 만약 내가 결혼을 했거나 여성에 대해서 조금 더 잘 알았더라면 여성을 더욱 입체적으로 그릴 수 있었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하지만 그 때는 아무래도 ‘총각’의 눈으로 본 여성이고 리얼한 여성보다는 욕망의 대상으로 희생된 여성의 삶을 그리려다 보니 내가 알고 있는 것만 표현할 수밖에 없었다. 살아있는 캐릭터라기보다는 원형적인 캐릭터가 돼 버린 느낌이다. 대사의 경우는 이 영화가 인생에 대한 비유이다 보니 대화를 굳이 많이 할 필요가 없겠다고 생각했다. 엑기스만 농축시켜 압축하려고 애썼고 그러다보니 러닝타임도 짧아진 게 아닐까 싶다.


김영진 : 끝도 심플하게 끝난다. 요즘 영화는 관객을 믿지 못해서, 혹시 관객이 감동 못 할까봐 끝까지 밀어붙이는 게 있는데, <꿈>은 십수 년 전 영화인데도 담담하게 끝난다. 요즘 영화들에서는 그런 엔딩을 못 본 것 같다.

배창호 : 요즘 영화들이 물론 많이 발전했지만, 놓치고 있는 것이 있다. 바로 영화가 시간예술이라는 사실이다. 우리는 한 컷, 몇 초를 굉장히 아낀다. 영화를 만드는 것은 시간 속에서 선택하는 것이다. 우유를 만들어 농축시켜야 치즈가 나오듯이 한 컷의 1초 1초를 아낄 수밖에 없다. 그렇게 영화를 시간 예술로서 대하다 보면 하나하나 선택에 유의하게 된다. 그러다보면 형식과 구성에서 한 숏을 선택할 때도 군더더기를 배제하려 한다. 그런데 요즘 영화는 현실을 그대로 복제하는 것들이 많다. 그런 영화들을 관객들이 많이 보니까 그런가 싶기도 하고 때론 보다보면 부러울 때도 있다. ‘야, 원 없이 시간을 쓰는구나. 중간 중간 지루하지만 그래도 끌고 나가면 저렇게 영화가 되는 구나’하고. 후배들에게 종종 농담으로 “왜 2시간 20분짜리로 만드냐. 프린트도 비싼데 영화 길다고 돈 더 받는 것도 아니고.” 그런 말도 한다(웃음). 압축해라, 압축해서 엑기스를 보여라. 이런 얘기들을 많이 해주는 편이다.


김영진 : 초반에 큰스님이 달례에게 꽃을 따주면 바로 조신에게로 컷이 붙는다. 컷이 그런 방식으로 붙을 때 영화적인 느낌이 살아나고 압축미가 느껴졌다.

배창호 : 요즘 영화는 자꾸 설명을 하려 한다. 자꾸 그렇게 하면 관객이 스스로 느끼는 부분을 차단하게 된다. 여백을 남겨 놓으면 그 여백을 관객이 채우고 참여하게 된다. 그런데 요즘 영화는 컷도 많고, 설명을 다 해준다. 그러면 관객들이 편하게는 보지만 자기가 참여하는, 자신의 영혼을 열어 느끼면서 깊이 생각하는 맛이 없다. 인물이 주지스님에게 ‘관상 좀 봐 주십시오’하면서 주절주절 말을 할 수도 있겠지만, 스님은 그 대신 꽃을 따서 준다. 일종의 화두인 것이다. 나는 어느 정도의 힌트를 던져주고 나머지는 관객이 채우는 것이다. 그걸 안 채우고 다 설명해주면 <꿈>도 20분 정도 더 길어졌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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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진 : 영화 보면서 마음이 굉장히 편해지더라. 댓구처럼 앞과 뒤가 비슷한 상황이 있는데, 처음에 달례가 나왔을 때는 계속 이동 숏으로 컷을 붙이다가 뒤에는 카메라를 픽스시켜 조신을 보여준다. ‘이런 장면들이 문장과는 다른 영화적 느낌이구나’라고 생각했다. 이게 일종의 영화적 서술인데 앞의 이동 숏으로 연결된 장면들과는 또 다른 방식으로 연출된 것이 인상적이었다. 그런 식으로 영화적 숏들에 대해 자의식을 가지고 찍고 소통하는 것이 요즘은 조금 부족해진 것 같아 아쉽다.

배창호 : 맞다. 격식이란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 그러나 격식을 위한 격식이어서는 안 된다. 격식 속에는 그 사람의 마음이 들어가 있다. 현대는 가벼움의 시대가 되고, 격식을 자꾸 거부하고 불편해하는 시대니까 형식보다는 직설적으로 말하고 컷도 많아졌다. 원래 영화의 숏, 그 앵글 속에 내용이 다 함축되어 있는 것이다. ‘왜 저 숏은 부감이어야만 하는가? 왜 저 숏은 미디엄 숏인가?’ 그런 것들이 영화의 문장처럼 언어로 들어가야 한다. 그래서 컷이 많아지는 것도 조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숏은 영화의 기본 단위이자, 영화의 한계이다. 많을수록 지루해진다. 지워나가는 작업이 필요하다.


관객 1 : 80년대 배창호 감독님의 영화들은 매우 젊고 도시적이고, 컷도 빨리 진행됐던 것 같다. 굉장히 세련된 느낌을 받았는데 <황진이>(1986) 이후로 굉장히 달라지신 듯하다. 초기에 만들어진 대중적인 영화들과 후기에 만들어진 <길>이나 <정>같은 경우가 그렇다. <꿈>도 마찬가지이고. 그런 변화는 어디에서 기인한 것인지 궁금하다.

배창호 : 영화라는 것은 한 마디로 정의할 수 없을 만큼 많은 표현 방법이 있다. 내가 연출한 열일곱 편의 영화 중에 사람들마다 좋아하는 영화가 모두 다르다. <황진이>에서 나온 터닝 포인트는 ‘왜 이것이 굳이 영화로 만들어져야 하는가?’라는 질문이다. 영화적 표현법이라는 그릇에 담으려는 노력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다보니 시행착오도 있었다. <황진이> 같은 경우에는 나중에 보면서 ‘아, 저건 머리로 만든 면이 있구나’라는 생각도 했다. <꼬방동네 사람들>처럼 형식적인 부분은 놓쳐서 그릇이 멋지지 않고 투박했지만 사람들의 가슴을 울리는 영화도 있고 <기쁜 우리 젊은 날>같은 조금 더 사실적으로 찍었어야 했는데 너무 성인동화처럼 찍었구나 싶은 영화도 있다. 이런 단점들이 계속 생긴다. 완벽한 영화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영화를 연출하다 보면 영화는 인생을 압축하는 것이라서 드라마를 신경 쓰다 보면 캐릭터가 빠지고 주인공에 집중하면 조연을 놓치고 하는 몇 가지 실수들이 꼭 나온다. 그 실수들을 다음번에 고치려고 하다가 여기까지 온 것 같다.


관객 2 : <꿈>에서 모례의 경우 자신의 인생을 망친 조신을 만났을 때 너무 깔끔하게 돌아서는 것 같았다. 그런데 감독님의 옛날 영화들을 생각해보면 악당들이 마지막에 돌아서는 경우가 많이 나온다. 농담처럼 ‘배창호 감독님은 정에 약한 사람인 것 같아’라고 말하곤 했는데, 감독님이 기본적으로 사람에 대한 믿음을 지니고 계신 것 같다고 생각했다. 영화에 나타나는 인물을 통해 감독님이 전달하고픈 인간관에 대한 얘기를 듣고 싶다.

배창호 : 영화에서 악인들이 돌아서는 장면을 볼 때 관객들은 ‘아 인간이 저럴 수도 있겠다’하기도 하고 ‘어떻게 인간이 저럴 수가 있나’라고 생각할 텐데 두 얘기 모두 맞다. 물론 내 영화를 통틀어서 내가 가진 인간에 대한 테마에 맞추려고 캐릭터를 덜 살린 점들은 군데군데 있다. 요즘 영화를 다 싸잡아서 얘기하는 건 아니지만, 요즘 연기자들을 보면 ‘저 사람들은 맨 날 조폭, 깡패, 연쇄살인자 등 그런 역할만 해야 하나’하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 ‘인간의 원형, 캐릭터를 연기할 기회가 없을까’하는 생각에 아쉬울 때가가 많다. 악한 것을 깨닫거나 악한 것과 거리를 두고 볼 수 있게 하는 것은 괜찮은데, 악한 것을 악함 그 자체로 밀어붙이는 것, 자신의 악한 점과 스파크를 일으키게 하는 것은 좋지 않은 것 같다. 내 영화에 나타난 인간은 내가 본 인간형이다. 내가 본 인간의 모습은 인간의 그런 모습들이 남아 있는 것이다. 그것을 현대적인 배경에 놓으면 리얼리티가 떨어질 수 있기 때문에 시대극을 배경으로 해서 인간 모습의 원형을 나타내려고 했다. 하지만 인간을 입체적으로 담아내는 건 부족한 면이 있었던 것 같다. 십수년이 지난 지금 다시 <황진이>나 <꿈>을 찍는다면 아마 달라질 지도 모르겠다.


김영진 : 갑자기 감독님의 신작을 미친 듯이 보고 싶어진다. 아직 젊지만(웃음) 나도 요즘 들어 점점 배창호 감독님이 느끼시는 부분을 같이 느끼고 있다.

배창호 : 결국 감독이 느끼고 그 지점에서 삶에 대해 많은 것을 경험하고 영화적으로 나타낼 수 있는 표현이 무르익는 것은 그 사람이 느끼고 생각하는 지점이 표현될 수밖에 없다. 아마 다음 영화를 보면 관객 분들이 ‘아 저 사람이 인간을 더 입체적으로 보고 있구나’, ‘테마를 닫지 않고 있구나’라고 느끼게 될 것이다. 영화는 감독을 닮게 되어 있다. (김보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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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일 7시,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대표인 박찬욱 감독이 지난해에도 추천했던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의 <순응자>가 드디어 상영됐다. 예정대로라면 상영 후 박찬욱 감독과의 즐겁고 유익한 관객과의 대화가 이어졌어야 하나 박찬욱 감독이 신작 준비 때문에 시간을 내기가 힘들어 아쉽게도 시네토크는 진행되지 못했다. 하지만 바쁜 와중에도 박찬욱 감독은 서울아트시네마를 방문해 연출, 제작부 스텝들과 함께 자신이 선택한 베르톨루치의 <순응자>를 보고 보다 좋은 작품을 만들겠노라며 상영 전 짤막한 영화 소개를 잊지 않았다.

24일 저녁, 신작 프리 프로덕션 일정 때문에 추천작인 <순응자>의 시네토크에 참석할 수 없다고 했던 박찬욱 감독이 극장 로비에 와 있었다. 지인들과 반갑게 대화를 나누던 박찬욱 감독은 입장이 시작되자 갑자기 주위 사람들에게 영화 표를 한 장씩 나눠주기 시작했다. 도대체 어떤 사람들에게 무슨 이유로 영화 표를 나눠주었을까 사뭇 궁금해졌다.


그리고 그 궁금증은 상영 전 박찬욱 감독의 영화 소개에서 해소되었다. 오늘 박찬욱 감독과 함께 영화를 보러 온 사람들은 이번 신작에서 같이 작업하게 된 연출부 스텝들이었던 것. 실제로 박찬욱 감독은 친구들 영화제 기자회견 당시 코엔 형제의 예를 들며 <순응자>를 스텝들과 같이 보고 싶다는 얘기를 한 적이 있다. “코엔 형제는 항상 새 작품 들어가기 전에 스텝들이랑 그 영화를 보고 시작한다고 해요. 그만큼 모든 면에서 완벽에 가까운 지점에 도달한 작품이라 볼 수 있는데, 이제 우리도 신작 시작하기 전에 배우들과 스텝들이 모여서 그 영화를 쫙 보고 '으쌰' 할 수 있다는 거죠.”


그렇게 큰 화면으로 보고 싶어 했던 <순응자>를, 지난해에도 박찬욱 감독의 추천작 리스트에 빠지지 않았던 그 작품을 드디어 아트시네마에서 만나게 됐다. 올해 오랜 소원을 성취하게 된 박찬욱 감독은 “먼저 추천해놓고 관객과의 대화 시간도 넉넉하게 갖고 유익한 시간을 보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해 죄송하다”며 “사실 시네토크를 진행하려면 영화도 사전에 한 번 더 보고 영화에 대한 자료도 찾아보고 공부도 하고 그래야만 하는데 그럴만한 시간이 주어지지 못해 상영 후 진행을 안 하는 것이 낫다고 판단했다. 그럼에도 이렇게 많이 제가 추천한 영화를 보러 와주셔서 고맙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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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박찬욱 감독이 그리도 보고 싶어했던 <순응자>는 어떤 영화일까. 박찬욱 감독은 간단하게 이 영화를 ‘보석’ 같은 영화라고 소개했다. “저는 베르톨루치의 모든 영화를 좋아하는 건 아닙니다. 하지만 이 영화만큼은 정말 절정의 미를 보여줍니다. 베르톨루치는 이 영화를 28살에 만들었습니다. 영화 역사 속의 신동, 천재형이라고 말할 수 있죠. 개인적으로 <순응자>는 베르톨루치 영화 중에서도 걸작으로 꼽습니다. 전작을 다 좋아했던 것은 아니라서 베르톨루치의 소식을 들으면 이에 버금갈만한 영화가 없나 기대하게 됩니다. 얼마전 16세기를 배경으로 한 신비로운 음악가를 다룬 전기 영화에 대한 제작을 발표한 바 있었는데 그 영화가 나온다면 비슷한 면모를 보여주지 않을까 싶다는 생각도 듭니다. 영화 <순응자>는 비토리오 스토라로의 촬영은 물론이고 미술, 음악과 편집 등이 특히 뛰어난데 그 요소들이 따로따로가 아니라 하나로 결합된 정말 보석 같은 영화입니다.”


박찬욱 감독은 전에도 <순응자>에 대해 얘기하며 “리얼리즘에 한 발 담군 적 있는 감독들이 거기서 벗어나면서 독창적인 새로운 영화들을 만들어온 궤적에서 배워야 할 점들이 있다”라고 말한 적이 있었는데 오늘은 특히 영화의 원작자인 알베르토 모라비아, 그리고 편집자 등 베르톨루치가 함께 작업한 동료들에 대해 강조해 말했다. 베르톨루치의 영화 중에서도 걸작 중 걸작, 그리고 변모된 베르톨루치의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정점에 놓은 영화로 평가받을 수 있었던 것은 그네들이 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알베르토 모라비아는 이탈리아 부르주아 가정의 문제를 파고 든 작가입니다. 많이 알려진 작품으로는 고다르의 <경멸>이 있죠. <순응자> 역시 모라비아의 원작으로 만들어진 고다르의 <경멸>과 통하는 배신과 수치심, 지적인 매혹에 대한 모티브가 잘 드러나는 영화입니다. 또한 이 영화는 편집이 굉장히 뛰어난 영화입니다. 베르톨루치는 스스로 이 영화의 편집을 맡았던 프랑코 아르칼리에게 ‘당신은 저에게 편집이 무엇인지 눈을 뜨게 해준, 나에게 편집에 대한 개안을 준 이’라고 칭송했습니다. 영화 자체는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며 복잡한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연기, 연출, 음악, 미술, 편집, 촬영 모두 개별적이지 않고 하나로 너무 잘 결합된 영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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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도록 극장에서 큰 스크린으로 영화를 보는 시네필답게 박찬욱 감독은  마지막으로 프린트에 대한 얘기도 빼놓지 않았다. “얼마전 스페인에서 <블레이드 러너>의 새 버전을 보면서 떨리는 마음을 멈출 수가 없었습니다. 지금도 역시 그렇습니다. 그것도 복원판 버전으로 <순응자>를 본다는 건 소수의 축복 받은 관객에게만 허락 된 일일 것입니다. 현재 작업에 들어가는 영화의 기준을 높여보고자 스텝들과 함께 왔고 같이 보면서 저에게도 허락된 그 시간에 감사하고 싶습니다.”

박찬욱 감독은 코엔 형제들을 부러워하며 자신도 신작 촬영 전에 <순응자>를 보고 싶다고  늘 말해왔고 드디어 그 바람을 이뤘다. 그러기에 영화를 대하는 영화를 보는 기준이 상승된(?) 박찬욱 감독의 신작이 더더욱 기대된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박찬욱 감독의 신작이 궁금한 분들은 <순응자> 영화를 관람해 보거나 <순응자>에 관한 영화 정보를 찾아보는 것도 궁금증을 참는 좋은 방법이 될 듯하다. (김보년/신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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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일 저녁 <타짜>에서 호흡을 맞춘 바 있는 최동훈 감독과 배우 김혜수가 추천작으로 꼽은 <글로리아>의 상영과 함께 서울아트시네마를 찾았다. 김성욱 프로그래머는 지나 롤렌즈를 ‘여자 리 마빈’이나 ‘험프리 보가트’에 비유했고, 배우 김혜수는 그녀의 매혹적인 눈빛을 예찬했다. 김혜수 씨는 지나 롤렌즈에게 질투를 넘어서 배우로서의 경의를 표했다. 여기에 질세라 최동훈 감독은 존 카사베츠처럼 영화를 찍고 싶은 욕구를 표출했다. <글로리아>를 본 배우는 영화 속 배우를 질투하고 감독은 영화를 만든 감독을 질투했다. 아니, 그건 질투가 아니라 예찬에 가까웠다. <글로리아>는 배우와 감독 그리고 관객 모두에게 자극을 준 영화다. 여기, 지나 롤렌즈처럼 손동작 하나마저도 우아한 여자 김혜수와 최동훈 감독이 함께한 시네토크 현장을 옮긴다.

김성욱(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래머) : 간단하게 이 영화의 제작배경을 말씀드리자면, <글로리아>의 제작은 인디펜던트 작가인 존 카사베츠가 자신의 작품 제작비용을 조달하기 위해 MGM에 써준 상업적 시나리오에서 시작했다. MGM은 <챔프>(1979)의 성공을 보면서 아역 배우 릭 슈로더를 주연으로 한 시나리오를 의뢰했고 카사베츠는 <오프닝 나이트>의 실패로 생긴 적자를 해결하기 위해 이 영화의 시나리오를 썼다. 그런데 릭 슈로더가 월트 디즈니사로 넘어가면서 시나리오가 사장되었다가 콜롬비아 영화사가 이 시나리오를 구입, 지나 롤랜즈를 주연으로 카사베츠에게 감독 의뢰를 한 것이다. 카사베츠는 너무 상업적인 작품이고, 특히나 메이저에서의 영화 제작을 싫어했는데, 그가 61년에 만든 <투 레잇 블루스>와 <아이들이 기다린다>(62)를 할리우드 메이저에서 만들면서 편집권이 박탈되는 등의 문제로 할리우드와 트러블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후 카사베츠는 독립적인 제작 방식을 고집했다. 하지만 아내 지나 롤랜즈의 설득과 자신의 작품의 제작 비용을 회수하기 위해 결국 이 영화를 만들게 됐다. 그래서 <글로리아>는 이전의 독립적인 영화들과 사뭇 다른 느낌이지만 영화를 보면서 ‘억!’하는 느낌을 주저 할 수 없는 장면들이 있다. 이 작품을 선택해주신 두 분은 이 영화를 어떻게 보셨는지 궁금하다.

최동훈(영화감독) : <글로리아>는 아카데미에서 영화를 공부하던 시절에 봤던 영화다. 당시 친구들끼리 영화를 하나씩 가져와서 세미나를 했었다. 한 친구는 오손 웰스의 <악의 손길>을 친구들에게 보여주면서 그 영화의 첫 장면이 얼마나 훌륭한지 거품을 물면서 이야기한 적 있다. 당시 내가 틀었던 영화가 존 카사베츠의 <글로리아>다. 지나 롤렌즈가 필이라는 꼬마랑 옥신각신하고 있으면 갱단이 차를 몰고 온다. 다음 장면에서 지나 롤렌즈가 갱들과 이야기 하다가 여섯 발의 총알을 쏘고 나서, “택시!”하고 외치면 빌 콘티의 음악이 흘러나온다. 그 장면을 미치도록 좋아해서 열 번씩 재생해서 봤다. 혹자는 이 영화가 존 카사베츠의 영화 중 가장 졸작이라고 하지만 내게는 <영향 아래 있는 여자>나 <오프닝 나이트>보다 더 좋은 영화다. 나는 <글로리아>가 혜수 씨랑 가장 어울릴 것 같다고 생각해서 선택했다. 혜수씨는 어떻게 보셨나?

김혜수(영화배우) : 최동훈 감독의 추천으로 <글로리아>를 처음 보았다. 작은 화면으로 볼 때는 몰랐지만 오늘 큰 화면으로 보면서 음악에 압도되었다. 영화 음악이 시작되면서 사람을 스크린 안으로 빨아들이고 있다는 느낌이 들더라. 그리고 의상이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그런데 크래딧이 올라갈 때 보니 패션 디자이너 에마뉴엘 웅가로가 의상을 맡아서 역시나 했다. 또 이 영화에 출연하는 지나 롤렌즈에게 자극을 많이 받았다. 할리우드나 한국이나 연기 경험이 많고, 관객에게 좀 더 많은 것을 보여줄 수 있는 여자배우들이 활약할 수 있는 기회가 굉장히 제한적이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지나 롤렌즈는 군더더기 없는 연기를 보여주었다. 그녀는 진정으로 쿨하고, 완벽하고, 어디에서도 볼 수 없었던 독창적인 여성 캐릭터를 재현했다. 지나 롤렌즈의 존재 자체가 영화 전체를 쥐고 흔드는 것 같다. 영화를 보고 나서 최동훈 감독에게 “감독님도 나중에 저런 캐릭터를 꼭 만들어 보세요”라고 말했다. 이 영화 속 글로리아는 캐릭터는 영화를 만드는 사람뿐만 아니라 연기를 하는 사람에게도 매우 매력적인 인물이라고 생각한다. 시네마테크와 최동훈 감독, 그리고 시네마테크를 찾은 관객들 덕분에 좋은 시간을 가진 것 같다.


김성욱 : 이 영화가 처음 나왔을 때 미국에서는 지나 롤랜즈를 ‘여자 리 마빈’ 혹은 ‘여자 험프리 보가트’라고 불렀다고 한다. 지나 롤렌즈가 담배 피는 모습, 그녀가 걸어 다니는 모양새, 택시에서 이야기하는 장면들이 매우 인상적이다. 김혜수 씨는 지나 롤랜즈의 연기를 어떻게 보셨나?

김혜수 : 지나 롤렌즈가 처음 등장하는 장면이 매우 인상적이다. 열쇠 구멍으로 그녀의 얼굴이 클로즈업되고, 문이 열리면 지나 롤렌즈가 “하이!!”라고 말한다. 난 그 목소리 톤에 깜짝 놀랐다. 그 장면보고 ‘저 모습이 글로리아구나’란 생각을 했다. 지나 롤렌즈란 배우는 눈이 매섭고 날카롭고, 우리가 늘 보아온 전형적인 금발 미인의 주인공이 아니다. 그녀의 대사 톤은 관객을 배신하면서도, 묘한 기대감을 준다. 건달처럼 팔자걸음에 가깝게 걸어 다니는 그녀의 걸음걸이는 배짱이 두둑해 보인다. 글로리아라는 캐릭터는 전형적이지 않고, 다듬어지지 않은 캐릭터다. 그녀는 아이에게 자기의 진심이나 모성을 드러내지 않는 일관된 태도를 유지한다. 그러면서도 영화를 보고 있으면 아이를 대하는 글로리아의 작고 섬세한 감정 변화를 느낄 수 있다. 그녀는 머리가 아니라 가슴으로 아이를 받아 들였기 때문에, 갱들에게 위협받는 상황에서도 총을 쏠 수 있었던 거다. 지나 롤렌즈의 눈빛과 영화 전체를 아우르는 그녀 몸의 태도가 돋보이는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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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욱 : 존 카사베츠는 연기를 디렉션하기보다는 배우의 감정을 뽑아내는 탁월한 감각이 있는 것 같다. 최동훈 감독님은 영화를 찍을 때 배우의 감정을 어떻게 뽑아내는지?

최동훈 : 배우의 감정을 끌어내는 건 매우 어려운 것 같다. 그건 어느 학교에서도 가르쳐 주지 않는다. 감독에게는 배우와 대화하는 게 가장 중요함에도, 학교에서는 의미 있는 쇼트만 찍으라고 한다. 반면 존 카사베츠는 진짜 배우를 위한 영화를 찍는 것 같다. 그는 특별히 미장센을 고려한 설정은 하지 않는 것 같다. 이를테면 그가 조명이 들어갈 자리를 고려했다거나 배우의 동선을 고려해 트랙을 설치한 모습은 보기 힘들다. 카사베츠는 영화가 영화다워질 수 있는 형식을 거부하고, 동시에 배우를 제한하는 틀을 없애주는 것 같다. 그는 두 대의 카메라를 사용한다. 한 대는 멀리서 넓은 쇼트를 찍고, 한 대는 클로즈업으로 찍는다. 존 카사베츠는 배우의 얼굴이야 말로 가장 영화적이면서 가장 스펙터클하다고 믿는 감독 중 하나다. 나 역시 카사베츠처럼 되어갈 가능성이 있다. 나는 필름을 낭비하면서도 배우가 하도록 내버려둔 후 카메라가 배우의 연기를 쫓아가게 한다. 배우의 감정이 관객을 움직일 수 없다면 완벽한 세팅이나 미술도 용인되지 않는 것 같다.


김성욱 : <글로리아>의 지나 롤렌즈처럼 40대, 50대가 되어서 연기를 한다는 게, 쉽지 않은 것 같다. 한국의 경우 상황은 더 열악할 지도 모르겠는데.

김혜수 : 쉽지 않으나 상황은 세계 어디든 마찬가지인 것 같다. 그리고 예전에 비해 많이 나아진 것도 있다. 여전히 멋지게 연기하시는 여배우들이 많이 늘어나고 있으니…. 영화는 현실을 기초해서 허구를 그려야하고, 관객에게 진정성을 줄 수 있어야 한다. 영화란 게 사람을 다루고 인간의 살아가는 모습을 담아내기 때문에, 배우가 나이 들어가면서 삶에서 체득한 것을 영화에 반영할 수 있는 것 같다. 나 역시 10년 후면 40대 중반이 된다. 그 때도 내가 연기를 계속 할 수 있을지, 여건이 뒷받침 될지 의문이다.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문화와 영화 관객을 위해서 새로운 시도들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배우 자신에게도 하고 싶다는 열의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관객 1 : 글로리아와 필이 피츠버그에 가려다가 식당에 들르는 장면이 기억에 남는다. 두 사람이 식당에서 음식을 시키고 이야기를 하다가, 글로리아가 아무렇지도 않게 뚜벅뚜벅 걸어가면 갱들이 반대편 테이블에 앉아 있는 모습이 보인다. 그 장면이 매우 이상하면서도 인상적이었다. 그 장면에 대해서는 어떤 생각을 갖고 있나?

최동훈 : 영화를 처음 볼 때는 그 식당 씬에 불필요한 장면이 많다고 생각했다. 헌데, 다시 생각해면 존 카사베츠가 배우들의 동선을 고려해서 찍었다는 느낌을 받는다. 식당에 들어서면 글로리아는 화면 오른쪽에 앉는다. 주문을 받는 웨이트리스는 식당 뒷배경을 가려주는 역할을 한다. 웨이트리스가 두 번 왔다 갔다 한 후에야 비로소 뒤쪽에 앉은 갱들의 모습이 보인다. 그들의 모습이 처음 보이는 것도, 한 남자가 의자에 앉는 순간부터다. 이 씬을 보면서 존 카사베츠가 보이지 않게 장면을 설계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관객 2 : 아이가 묘지에서 인사하는 방법이 인상적이었다. 마지막 장면에서도 아이는 글로리아가 죽었다고 생각해서 묘지에 간다. 이 때 아이의 태도가 매우 의연하고 씩씩하다. 나는 마지막 장면에서 약간 교훈적이길 원했다. 이 영화를 청소년들이 보면 어떤 영향을 받을지 궁금하다.

최동훈 : 이 영화는 약간 전형적인 영화라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글로리아>는 꼬마 아이가 진짜 남자가 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무덤 장면은 매우 좋다고 생각한다. 첫 번째 무덤 장면에서 아이가 고백을 한다. 그리고 마지막 장면에서 꼬마는 글로리아가 죽었다고 생각하면서 그녀에게 작별인사를 한다. 이 때 아이의 태도는 매우 의젓하고 멋있다. 또 글로리아가 죽기를 각오하고 악당들을 찾아가는 장면은 용기라고 생각한다. 늘 도망 다니던 글로리아가 죽기를 각오하고 탄지니를 찾아 간 것처럼, 이 영화는 용기에 관한 영화, 용기 있는 사람을 다룬 영화라고 생각한다. (이도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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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열로 절름발이가 된 영화들을 다시 한번 찍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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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 4시 이두용 감독이 두성영화사를 설립하고 만든 첫 번째 창립영화 <내시>(1986)가 상영되었다. 상영 전 이두용 감독은 <내시> 각본을 쓴 곽일로 씨에게 제안을 받던 때를 회상하면서, 이 내용이 자신에게 비극이자 동시에 희극으로 다가왔다는 말과 함께 간략한 영화 소개를 해주었다. 신상옥 감독의 <내시>(1968)와 달리 ‘내시’에 초점을 맞춘 이두용 감독의 <내시>에는 여러 가지 욕망과 에로티시즘 그리고 내시들의 반란으로 표현되는 80년대의 시대정신이 담겨있다. 상영 후에는 개봉 당시 <내시>를 무려 7번이나 봤다는 김영진 영화평론가의 입담으로 시작된 이두용 감독의 마스터 클래스가 이어졌다.

김영진(영화평론가, 명지대 교수) : 80년대 중반 당시 한국영화에서는 세트촬영을 많이 보기 힘들었는데 <내시>는 세트촬영이 많은 상당히 규모 있는 영화다. 마지막 세트에서 화살 쏘는 장면은 시도하기 힘든 장면이었을 것 같은데.

이두용(영화감독) : 세트가 빈약했던 시절이었다. 그래서 경주 등을 돌아다니면서 궁 같이 생긴 건물을 찍고 내전의 방 안만 세트로 했다. 궁의 내전을 재현하는데 애를 먹었다. 특히 ‘대비전’같은 경우 전부 궁처럼 했어야 하는데 아쉬움이 남는다. 화살을 쏘는 마지막 장면을 보면서 낯 뜨거웠다. 지금은 화살이 ‘팍팍’하고 꽂히지만 예전에는 그런 장치들도 없었고…(웃음), 영화 보면서 다들 눈치 챘을텐데, 이 영화도 검열 때문에 못 나올 뻔 했다. 곳곳에 조금씩 잘린 장면도 많고, 왕(길용우 분)과 몸종인 길녀(김진아 분)의 정사 씬은 포커스아웃 처리되었다. 그 당시 검열기준에 따르면 남자와 여자의 전라가 나오면 안 되었다.

<내시> 촬영할 때, 왕의 내전과 관련된 기록이 거의 없어서 약간의 정보라도 얻기 위해 사방팔방으로 돌아다녔던 기억이 있다. 찾은 정보 중에서 왕의 침전 모습에 대한 기록만이 있다. 왕의 침전이 ‘우물 정’ 모양으로 가운데에 침전이 있고 사방에 방이 있었다고 한다. 침전을 둘러싼 사방의 방에 입직 내시와 상궁들, 약방 내시들이 들어가 있다가 정사 도중에 있을 불의의 사고에 대처했다고 한다. 영화에서는 방을 두 개만 만들었지만…. 상궁, 무수리, 나인들과 왕과의 관계에 대해서는 전혀 기록이 없어서 사학자들에게 도움을 얻어 드라마를 만들었다. 내시에 대해 고증해보니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체격이 작고, 간신 같은 모습이 아니었다. 오히려 거세로 인한 호르몬 변화로 인해 체격이 컸다고 한다. 영화 촬영할 때 실제 내시 한분이 계셨는데, 그분의 키가 180cm이었다. 이런 것을 바탕으로 내시감으로 큰 체격의 남궁원 씨를 캐스팅했다.


김영진 : 신상옥 감독이 1968년에 만든 <내시>라는 작품도 있다. 기본적인 얼개는 비슷하지만 영화 톤은 다르다. 신상옥 감독의 <내시>는 신성일, 윤정희 씨가 주인공이고, 남궁원 씨가 왕, 내시감이 박노식 씨인 멜로드라마 톤이 강하다. 그런데 이두용 감독의 <내시>는 ‘이거 멜로로 봐도 되나’ 헷갈릴 만큼 기본적인 형태만 띄고 내시감 남궁원 씨 위주로 움직인다. 은밀하게 굉장히 불경스럽게 영화가 전개된다는 생각을 했다. 영화 안에는 여러 가지 욕망과 에로티시즘이 있고 클라이맥스에선 내시들이 일종의 모반을 벌인다. 이 모반 장면에는 ‘내시들은 가라’라는 대사와 함께 이두용 감독 특유의 액션과 휘몰아치는 느낌이 있다. <내시>가 개봉되던 1986년은 ‘겨울공화국’이라고 부르던 굉장히 우울했던 격동의 시기였다. 그런 때 개봉한 <내시>를 우연찮게 보았는데, ‘뭐 이런 기이하고 불경스러운 사극영화가 있냐’는 생각을 하면서 이 영화에 매혹 당했다. 이두용 감독 영화에는 활극적인 재미와 해학이 있는 영화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모든 영화에는 권력에 대한 감독님 특유의 불경스러운 시선이 있다. 이 지점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계신가?

이두용 : <내시>를 국도극장에서 개봉을 해야 되는데, 당시 검열관이 왕을 죽이는 것을 관력자의 암살로, 내시의 반란을 쿠데타라고 연상해서 ‘검열 필’ 도장을 찍어주지 않아 영화가 안 나올 뻔 했다. 이런 측면에서 본다면 불경스럽다고 말할 수 있을게다. 제일 처음에 <내시>의 각본을 쓴 곽일로 씨가 영화를 하자고 제안을 했다. 그 제안에 ‘리메이크 안 하는데..’라고 거절했는데, 곽일로 씨가 그게 아니라면서 ‘내시’에 초점을 맞춘 영화 내용을 이야기 해줬다. 왕의 여성들의 지조를 지키기 위해 성기가 거세되어 들어오는 내시들의 이야기를 비극이자 굉장한 희극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이거 한번 해보자’ 생각했다. 신상옥 감독의 <내시>는 영향을 받을까봐 일부러 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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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진 : 감독님은 줌렌즈 쓰는 것을 두려워하시지 않는 것 같다. 사실 어느 시점 유행이 지나간 뒤에 줌렌즈를 쓰면 영화가 자칫 촌스러워 보인다. 그런데 감독님 영화에서는 줌렌즈가 효과적으로 쓰인다고 생각된다. <최후의 증인>은 예외에 속하지만 열악한 제작 상황에서 작품을 자주 연출하시다보니까 줌렌즈가 환경의 산물이 아닐까라는 생각도 하게 되는데.

이두용 : 마지막 작품 <아리랑>을 만들 때, 촬영기사에게 줌으로 하자고 말하니까 ‘요새는 이거 안 씁니다’라고 말하더라. 그래서 ‘영화가 옛날에 쓰고, 지금 안 쓰고 그러는 것이 어디 있나. 필요하면 쓰는 게지’라고 했다. 피사체에게 몰입시키기 위해서는 줌렌즈를 쓸 수 있고 그것을 잘 쓰면 괜찮다고 본다. 그리고 관객을 감독이 강조하는 것에 대해 집중시키기 위해서 줌렌즈를 많이 쓰는 편이다. 물론 환경의 영향도 있다. 외국은 달리에 카메라를 올려놓고 카메라 자체가 피사체에 다가간다. 그러나 당시 우리는 그런 장비가 없었고, 현장 여건이 열악했기 때문에 줌렌즈를 사용하는 방법 밖에 없었다.


김영진 : 감독님은 조감독 시절에 어떤 분들의 조감독을 하셨는지? 또 그 때 한국영화의 형편에 비춰 어떤 감독이 되고자 하셨고, 영화계에서 무엇으로 승부를 걸어보겠다고 생각하셨는지 듣고 싶다.

이두용 : <미워도 다시 한번>의 정소영 씨, 방송국에 PD로 계셨던 김수동 씨, 돌아가신 전홍식 씨 등의 여러 분의 조감독을 했었다. 당시 영화감독을 할 때는 ‘신파’라고 해서 멜로드라마가 유행할 때였고, 나 역시도 감독 데뷔를 <잃어버린 면사포>라는 멜로드라마로 했다. 데뷔는 멜로드라마로 하였지만 액션, 추리물, 코미디, 시대극 등의 다양한 장르를 섭렵했다. 내 작업태도가 이번에는 멜로드라마를 하면 다음에는 반드시 액션을 하는 식으로 전혀 다른 장르들을 넘나들었는데, 이것이 내게 신선한 충격과 항상 신인감독 같은 흥분을 준다.


김영진 : 이두용 감독님 필모그래피를 보면 특히 1974년에서 1976년 사이가 특이하다. 1년에 4~5편 정도의 굉장히 많은 영화를 작업했는데 물리적으로 그 것이 가능했는가?

이두용 : 그 때는 처음부터 영화를 동시에 2개를 기획했었다. 세트를 재사용하기 위해서….처음 영화에서 세트를 짓고 얌전하게 사용한 뒤에, 두 번째 영화에서 불을 지르거나 액션을 하면서 세트를 부수고 망가뜨렸다.(관객들 웃음) 당시에는 영화 규모가 작고 가난했던 시절이었기 때문에 한 세트에서 2~3개의 영화를 동시에 촬영하고 그랬던 것이다. 예를 들면 사각형 세트를 반으로 나누어서 각각 한쪽에서 두 개의 영화를 동시에 찍었다. 이렇게 하다 보니까 한창 액션 영화를 찍던 시기에 작품 수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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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객 1 : <내시>가 개봉 당시 흥행에 성공했다고 하셨는데, 지금 다시 리메이크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시대를 아우르는 보편적인 정서가 영화 안에 있는 것 같다. 이 점을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이두용 : <내시>는 당시 5억 원 정도의 어마어마한 제작비가 들어간 영화이다. 영화 개봉일 아침에 충무로의 단골 사우나에 가다 개봉극장이었던 국도극장을 한 바퀴 돌다가 갔다. 그 때는 손님이 드는 영화에는 새벽부터 관객이 줄을 서고 기다렸는데, 극장에 가니까 파리 한 마리도 없더라. 첫 제작 영화였는데도 말이다. ‘아, 이게 망하는 거구나’라는 생각을 했고 알고 지내던 영화사 사장이 위로하고 그랬다. 5~6시간 후에 사우나에 있다가 회사에서 빨리 오라는 연락을 받고 극장에 갔다. 가니까 영화를 보기 위해 사람들이 국도극장을 한 바퀴 돌아 명보극장 앞까지 줄을 이어 서 있었다. 손님이 많이 와서 국도극장의 전면 유리창이 깨지기도 했었다. 나중에 극장에 들어가서 영화를 보니까 관객들이 내시에 대한 호기심과 익사이팅한 내시의 반란에 재밌어하고, 내가 노린 부분에서 흥분하고 예상치 못한 장면에서 즐거워했다.


관객 2 : 이전에 만들었던 영화를 지금 다시 만들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 어떤 영화를 만들고 싶으신지?

이두용 : 내 수첩에는 영화화 하고 싶은 것들이 수십 개나 된다. 만약 리메이크를 하게 된다면 옛날에 검열 때문에 최선을 하지 못했던 영화들을 찍고 싶다. <해결사>처럼 검열로 난도질당한 작품이나, 기획에서부터 무산된 영화, 본의 아니게 절름발이가 된 영화들을 다시 찍어보고 싶다. (신윤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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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아트앤스터디 2010.03.02 18:01 신고

    김영진 평론가의 <영화, 본다는 것에 대하여>라는 강의가 7주에 걸쳐 진행됩니다. 관심 있으시면 한 번 둘러 보세요^^
    http://www.artnstudy.com/inmoonsoop/Lecture/default1003.asp?lessonidx=off_yjKim01

<최후의 증인>은 마음으로 만든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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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토의 하드보일드’라고 극찬하며 <최후의 증인>을 재발견하는데 가장 앞장 서왔던 오승욱 감독이 이번 영화제에서 그 소망을 이뤘다. 개봉 당시 검열로 50여분이 삭제되어 개봉됐던 <최후의 증인>을 158분 버전으로 상영하게 된 것이다. 보는 내내 많은 관객들은 숨죽일 수밖에 없었고 영화가 끝남과 동시에 일제히 관객들은 영화와 감독에게 박수를 보냈다. 이어진 씨네토크 시간, <최후의 증인>을 강력히 추천한 오승욱 감독과 이두용 감독이 함께 했다. 검열로 인해 암울했던 80년대의 이야기와 함께 이두용 감독의 액션영화에 대한 애착을 들을 수 있는 자리였다.


이두용(영화감독) : 이 영화를 만든 시기는 1979년 5월부터 1980년 4월 경 광주 민주화 운동이 시작 전 무렵이다. 90회 안된 촬영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당시에 이 영화로 ‘사상이 이상하다’ 등의 이상한 소리를 들었다. 스스로 확인도 못한 상태에서 검열로 50여분이 잘렸다. 나중에 명보극장에서 개봉을 해서 보는데 시간표에 1시간 30분으로 되어있었고, 당시에 잘린 부분이 너무 많아서 보다 나왔다. 영화계의 암울했던 그런 시대가 있었다. 6.25 전쟁 영화를 만들어야 하는데 전투영화는 싫고 우리의 어떤 아픔과 사회의 양면성을 그려보고자 했다. 어떤 기교를 가지고, 재미있게 해야지 하고 만든 것이 아니다. 마음으로 만든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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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욱(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래머) : <최후의 증인>을 재발견하는데 가장 많은 노력을 기울이신 오승욱 감독님은 다시 보시면서 이 영화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계신가?

오승욱(영화감독) : 일단 이두용 감독님 영화를 맨 처음 봤을 때부터 이야기하고 싶다. 내가 이두용 감독님 영화를 처음 본 것이 초등학교 4학년 때 <배신자>라는 태권도 영화였다. 사실은 <용쟁호투>라는 이소룡 영화를 보기 위해서 신촌과 마포 일대의 극장을 찾아다니다가 차리셀(한용철)이라는 배우가 옆차기를 하고 있는 <배신자> 간판을 보고 ‘그래 이걸 보자’했다. 극장 문을 열고 들어가자마자 본 것이 골목에 차리셀이 걸어가고 조춘이 그를 맞이하는 장면이었다. 그 때는 아무 때나 들어가서 영화를 보던 때였다. 차리셀이 두목이 보내서 여기를 왔다하니까 조춘이 편지를 달라 해서 차리셀이 편지를 준다. 편지를 펼치니까 ‘죽.여.라’라고 써 있었다. 내용인즉슨 극중 차리셀의 부인이 있는데 굉장히 이뻤고 차리셀의 부인을 두목과 악당들이 겁탈을 하기 위해서 사랑하는 부하인데도 그를 죽이려고 흉계를 꾸민 거다. 영화에서 놀랐던 것은 조춘이랑 그의 악당들이 덤벼들어서 차리셀이 발차기를 하면서 그들과 싸우는 장면이다. 차리셀이 조춘을 드럼통에 거꾸로 박아놓고 드럼통을 발로 차는데 그게 상당히 쇼킹했다. 그런 한국영화가 없었고, 홍콩영화에서도 그런 잔인함이 없었다. 그 다음에 본 영화 중 가장 대단히 재미있게 본 영화가 있는데, 그것이 <돌아온 외다리>인지 <속 돌아온 외다리>인지 헷갈린다. 그건 또 어떤 이야기냐면, 악당들이 차리셀의 다리를 잘라버리고 차리셀은 쇠로 다리를 만들어서 차고 무쇠다리로 발차기연습을 한다. 마지막에 복수를 하러가는 장면에서 악당들이 술집에서 놀고 있는데 골목 끝에서부터 철커덩 철커덩하면서 무쇠다리가 바닥을 울리는 소리가 가까워진다. 차리셀이 그대로 달려들어 돌려차기를 하는 순간 쇳소리가 바람을 가르면서 퍽 소리를 내는데 적어도 두 파열이 되었을법한 소리이다. 활력이 느껴졌다. 그것이 엄청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액션이라는 것이 바람소리까지 내면서 화면을 휘저어 버릴 수 있구나 싶었다. <최후의 증인>에서도 그런 액션들이 있다. 내가 단언컨대 그 당시 한국 영화에서 가장 독특했고 가장 액션의 활력이 넘쳤다.

이두용 : 옛날에는 이두용하면 ‘액션’이었다. 당시에는 영화에 검열이 심해서, 어쩔 때는 잔혹하게 해야 되고, 감독이 갈 때까지 가야 되는데 그러지 못했다. 조폭이 칼을 꺼내서 푹 찔러야 되는데 꺼내서 칼이 보이는 순간 영화를 잘라서 장면 연결이 안 되고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그것이 내가 액션영화를 접은 이유다. 감독들이 영화를 어떻게 만들어야 될지 모르는 시대였고, 검열을 피하다 보니까 어중간한 영화를 만들게 된 환경이었다. 많은 분들이 계시지만 이 영화를 찍으면서 가장 잊을 수 없는 분이 양택조 선생이다. 그 때 당시에도보통 대사 녹음(후시녹음)은 길어야 2~3일이었는데 내가 이 때 처음으로 딱 한 달간 녹음했다. 사실감 있는 목소리가 나오도록 하기 위해서, 이 녹음의 총 지휘를 양택조가 했다. 당시에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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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욱 : 밖에서 잠깐 양택조 선생님과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이 영화를 80년 개봉당시에 보고 그 때 이후로 한 번도 보신 적이 없었다고 하셨다. 지금도 객석에 계신데 오늘 20년을 훌쩍 넘겨 오늘 보신 소감은 어떠신지?

양택조 : 기술시사 때 저도 이 영화를 한 컷도 안 잘린 상태에서 처음부터 다 봤다. 시사 끝나고 눈이 탱탱 붓도록 울었다. 오늘은 안 울 줄 알았는데 보면서 더 많이 울었다. 근데 가만히 눈치를 보니까 우는 분이 많은 것 같다. 아직도 이 정서가 살아있구나, 영화감독들이 계속 열심히 만들면 인정을 받을 수 있겠구나 생각했다. 제가 이두용 감독님의 영화를 처음부터 끝까지 거의 한 작품도 안 빠지고 후시녹음을 같이 했다. 가장 오랜 시간을 작업해서 그런지, 많은 작품 중 <최후의 증인>이 제일 애착이 가고, 가장 예술적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나도 명보극장에서 봤는데 한 시간이나 잘렸더라. ‘경찰이 우스꽝스럽게 되는 것은 안돼‘하고 커트, ’검사가 정윤희에게 욕정을 품는 것도 안돼‘하고 커트. 이것저것 자르고 나니까 영화가 엉망이 돼서 분통이 터졌다. 검열 때문에 엉망이 되어버린 이두용 감독의 <최후의 증인>과 이만희 감독의 <들국화는 피었는데>라는 두 작품이 아까웠는데 <최후의 증인>이 살아나서 천만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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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승욱 : 영화에서 주인공 수사관 오병호가 찾아가는 길들은 한국의 대단히 재미있는 지점과 정서를 포착하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어디를 가든 언제나 여자가 일하고 있다. 추운 겨울 밖에서 여자는 일하고 있지만 남자는 보이지 않고, 맨 처음 술집에서도 아줌마는 술을 따르고 있는데 아들은 따뜻한 아랫목에 담배피고 누워서 얘기한다. 이런 것들이 한국 남자들의 어떤 모습인가 싶었다. 한국 남자들의 사악하고 비열하며, 굉장히 폭력적인 것들이 일제시대와 한국 전쟁을 관통하면서 그렇게 된 것이라는 생각. 살기 위해서 죽이거나, 자포자기하고 밀려나는 한국 남성들의 모습들이 놀랍게 포착되어 있다. 폭력적인 기운들도 잘 나타난 것 같다. 강간장면을 보면 남성들의 욕망이나 사악함 그리고 전쟁으로 인해서 이들이 얼마나 망가진 신성을 가지고 있느냐가 잘 포착되어 있다. 이 지점이 존경하는 지점이기도 하다. 한편 사건을 다 파헤치고 난 이후 주인공은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 감독님이 성을 바라보는 시각과 라스트에 대한 의문을 풀어줬음 한다.

이두용 : 영화가 얘기하고 있는 당시의 시대상황이 남성들이 자기 일 못 잡고 소위 요즘 말하는 백수이다. 여러 가지 권력에 눌려 살고, 자기 재주 없는 남성들이다. 거기다 특히 중요한 것은 인텔리가 안 되는 사람들이 알량한 지식으로 순박한 사람을 망가뜨린다. 그런 점을 지적하고 싶었다. 남성들과 대비해서 여성들은 끊임없이 일을 한다. 우리나라는 전통적으로 여성들이 강하다. <뽕>에서도 보면 도덕적으로 안 되는 일이지만 여자 주인공은 그것을 사는 방법으로 생각하고, 벽촌에서 살기 위한 투쟁을 한다. <장남>에서 황정순 씨가 거대한 어머니상으로 나오는데 그 분이 한번 쓰러질 때 세상이 끝나는 것 같은 무서움을 느낄 수 있다. 내 어머님이 돌아가셨을 때 진심으로 큰일 났다는 생각을 했었다. 어머니가 하셨던 인간관계를 어떻게 내가 다 할 수 있을까 하고 가슴이 덜컹거렸다. 그만큼 어머니의 족적이 참 크다. 제 가슴 속에는 거대한 모상과 강인한 여성들의 이미지가 있어서 영화 요소요소에 표현된 것이 아닐까 싶다. 라스트에서 대해서는 갈등을 많이 했다. 영특하고 신출귀몰하고 기가 막힌 광역수사가 아닌 교과서식으로 육하원칙에 따라 수사를 하는 평범한 수사관을 다루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평범하고 일반적인 수사관이 사건을 들여다보니까 이상한 비리가 있고, 권력이 있고, 여자를 파멸시키는 것들을 접하니까 이 수사관은 인간자체를 싫어하게 된 것이다. 당시 ‘자연을 살리자’라는 문구가 유행을 했는데 자연 보호하기 전 우선 인간보호를 해야한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래서 이 작품을 했다. 일반적인 영화 라스트를 한다면 태영이를 구해서 황바우와 손지혜의 품에 안겨서 하나의 사건을 완결했다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딱 떨어지는 라스트를 할 필요가 있을까 싶었다. 결국은 이 수사관도 혼신을 다하고 긴 시간에 사건을 파헤쳤지만, 어떻게 마무리 할 수 없는 것과 수사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는 것에 책임을 져야한다고 봐서 자살을 택했다. 형사가 죽어가는 모습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한 사람으로써 사회적 책임을 지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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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객 1 : 영화 보면서 궁금한 것이 세 가지가 떠올랐다. 첫 번째는 영화 색감이나 전체적인 느낌이 마치 물 속에 잠긴 듯 한 느낌이었는데 영화에서도 웅덩이나 강처럼 물과 관련된 것이 많이 나온다. 물과 인물에 대한 감독님의 생각을 듣고 싶다. 두 번째는 영화의 살해방법이 전부 둔탁하고 날카롭게 머리를 내려치고 있다. 요즘 영화보다 더욱 쇼킹했다. 세 번째는 캐릭터에 대한 것이다. 주인공 오병호는 정상적이지 못하고, 이방인이나 낙오자 같은 인물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진실에 가까운 인물로 묘사되어 있다. 또 경찰서장은 주인공을 절대적으로 돕는 지원자나 조력자의 역할을 하고 있다. 

이두용 : 영화의 이야기가 암울하고 어두웠던 시대에 관한 것이라 화면은 의도적으로 어둡게 했다.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계속 돌아다니다 보니까 물가도 가게 되고, 영화에 비도 몇 번 등장한다. 우울함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것이 물이 아닌가 싶다. 살해방법에 관한 건 짧게 지나가지만 흉기가 망치였다. 살의를 가지고 망치를 사용하면 당연히 머리를 친다고 생각한다. 총이나 칼보다 끔찍한 생활도구가 살해무기가 될 수 있다. 오병호를 이방인같은 느낌으로 설정한 것은 남자의 외로움이다. 외로움을 가진 사람이어야 되겠다고 생각했다. 외로움이 사건을 수사하는 결정적 역할을 할 수 있고, 외로운 사람이 외로운 사람의 사건을 해결하는데 노력이 더 살겠다고 봐서 교통사고로 부인을 잃고 혼자 남은 남자로 설정해서 외로움을 주었다. 경찰서장은 사회가 다 썩은 것이 아니고 정의감이 있는 관리도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희망을 주기 위한 캐릭터로 설정했다.


관객 2 : 오병호 형사가 항상 누구를 쳐다볼 때 고개를 비스듬히 해서 쳐다보는데 이것이 우연히 그런 것인지 의도적으로 반복을 하신 것인지 궁금하다.

이두용 : 연출이 요구한 것도 있고 하명중이란 배우 본인이 연기도 그렇게 했다. 사건을 유심히 본다는 것과 아무리 거짓말을 해도 진실을 캐내려고 하는 수사관의 모습을 그린 거다.


오승욱 : 오병호의 걸음걸이에 대해 묻고 싶다. 이 영화도 그렇고 감독님의 영화에서 보면 그들만의 독특한 걸음걸이가 있다. 이 영화는 진흙탕 속에 빠진 구두까지 건져가면서 계속 걷는 영화이다.
이두용 : 그 때 하명중에게 촬영하기 전에 수사관 티 내지 말고, 멋있게 하지 말라는 요구를 했었다. 수사관들은 티가 나면 안 된다. 상대방이 봤을 때 수사관이라는 것을 알면 그건 수사관 자격이 없는 것이다. 걸음걸이에 특수한 성격이 없는 무성격의 사람들이어야 좋은 수사관이라는 얘기를 들었다. 그래서 그러한 점을 배우에게 요구했었다. (신윤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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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quaterback 2010.01.24 01:15 신고

    글 잘 봤습니다^^
    며칠전 DVD를 구입하면서 보고 있는데, 정말 좋더군요.

    코멘터리 버전까지 일주일동안 5번 이상 보게되더군요.

    본영화도 물론 좋지만 이두용 감독님의 숨고르는 소리까지 녹음된 서플도 좋았고, 오승욱 감독님 흥분된 어조로 하고싶은 말 진짜로 하고 싶어하는 코멘터리도 좋더군요.

온 몸을 던져 사랑하고 싶은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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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일 저녁, 김태용 감독이 추천한 장선우 감독의 <우묵배미의 사랑>의 상영이 끝난 극장은 흥분이 가라앉지 않았다. 이 영화가 ‘내 인생의 영화’라며 ‘많은 영향을 받았고, 여전히 받을 거다’라고 조심스레 밝힌 김태용 감독과의 대화, 세대 불문한 영화의 감동과 여러 층위로 다양하게 해석되는 영화를 두고 말 말 말이 이어졌다. 이날 시네토크는 이번 영화제 기간 중 가장 길었고, 관객들은 경쟁하듯 손을 들어 김태용 감독에게 질문할 수 있는 행운(!)을 얻으려 했다. “진짜 재미있죠?”라는 말을 시작으로, 이 영화 때문에 영화감독이 될 생각을 했다고 고백한 김태용 감독이 온 몸을 던져 사랑한다는 영화 <우묵배미의 사랑>에 관한 이야기를 옮겨본다.


김성욱(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래머) : 2000년 즈음 <씨네 21>의 ‘내 인생의 영화’라는 칼럼에도 장선우 감독의 <우묵배미의 사랑>을 꼽았더라. 당시 글을 보면 한국 영화를 전혀 보지 않던 시절, 친구의 추천으로 본 영화라던데, 이 영화를 보게 된 계기와 몇 년이 지난 현재 또 다시 추천한 이유, 그리고 글에서는 극장에서 본 한국영화로는 처음이라고 했던 것 같은데 정말인인 궁금하다.

김태용(영화감독) : 한국 영화를 처음 본건 아니지만, 처음으로 온 몸을 던져 좋아했던 한국 영화다. 당시 나는 영화를 좋아하긴 했지만, 영화광은 아니었다. 90년도 이전에는 단순히 영화 보는 게 좋아서, 유명하다는 영화를 조금 찾아보는 정도였다. <우묵배미의 사랑은>은 나에게 있어서 ‘내가 영화를 만들어야겠다’, ‘내가 영화 만드는 사람이 되면 얼마나 좋을까?’란 생각을 처음으로 하게 해준 영화였다. 좋아하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 친구가 한국 영화를 좋아했다. 평소 그 친구가 한국영화 이야기를 많이 들려주었는데, 그 친구의 추천으로 이 영화를 보게 된 거다. 그래서 <우묵배미의 사랑>을 볼 때마다 그 사람이 생각나고 그립다.


김성욱 : 과거에는 어떤 점이 좋았고, 감독이 된 후 본 느낌은 어떤가? 어느 부분을 매력적으로 느꼈는지 말해 달라.

김태용 : 영화 속에 등장하는 사람들이 참 이상하다고 생각했지만, 굉장히 와 닿았다. 우선 <우묵배미의 사랑>은 지방변두리 한 마을의 이야기라는 게 특이했다. 당시 내 편견으로 영화가 변두리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룬다는 것은 생각지도 못했다. 또, 이 영화를 보면서 한 인간이 어떤 환경에 처해 있다면, 그 환경과 싸우는 것보다 자기 내부의 욕망과 끊임없이 싸우는 게 중요하다는 걸 알게 됐다. 이 작품을 보고 나서 영화가 사람을 담을 수 있다는 걸 느꼈다고 할까. 주인공 배일도는 자신이 처한 환경을 극복하기 위해서 끊임없이 고민하고 싸우는 인물이라 매력적이다. 오늘 이 작품을 다시 보면서 내가 이 작품의 영향을 많이 받았고, 앞으로 계속 영향을 받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가족의 탄생>에 나오는 엄태웅의 캐릭터와 배일도가 좀 닮지 않았나? 아울러 이 영화는 유머러스하면서도 에로틱하고, 때때로 폭력적이기도 하다. 병행하기 어려운 요소들이 잘 어우러져 있어 영화 보는 재미가 있다.


김성욱 : 장선우 감독은 영화에 등장하는 모든 사람에게 애정이 많았던 것 같다. 모든 인물들에게 이야기 하고 자신을 변호를 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 두는 것 같다. 장선우 감독은 38살에 이 영화를 만든 것 같은데, 굉장히 어른스러운 영화를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영화에서 뽕짝 음악도 인상적으로 들리더라. 감독님은 어떤 장면이 인상적이었나?

김태용 : 공례가 여관에서 배일도의 양말을 빨아주는 장면. 대부분의 영화에서 여관 정사 씬이면 둘 사이의 밀도가 중요할 텐데. 여관 정사 씬에서 양말을 빠는 게 정말 신기했다(웃음). 이 영화를 보고 있으면 각각의 인물들이 자신이 처한 삶에서 벗어날 수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영화 곳곳에 그런 암시가 깔려 있다. 그래서 그들의 사연과 그들의 미래가 궁금해지더라. <우묵배미의 사랑>에는 70년대에서 90년대로 이어져오는 근대화 과정이 암시되어 있고, 서울과 변두리의 삶이 잘 배치되어 있다. 요즘 영화에서 볼 수 없는 모놀로그 형식의 독백도 인상적이었다.


관객 1 : <우묵배미의 사랑>에는 노동자들이 일하는 모습이 자세하게 나온다. 반면, 90년대 중반 이후의 한국영화들을 보면 직업은 있으나 노동은 없다는 생각이 든다. 영화 안에서 노동하는 모습이 한 인물을 표현하는데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와 현재 한국영화에서 노동하는 모습이 실종된 이유는 뭐라 생각하는지?

김태용 : 나 역시 영화를 보면서 영화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직업이 왜 중요한지 생각해보았다. 90년대 전후 내가 시나리오 공부를 하던 20대 초반에는 캐릭터를 구상할 때 그를 둘러싸고 있는 환경을 중요시했다. 캐릭터가 살고 있을 장소, 가족, 직업 같은 요소들 말이다. 반면, 요즘은 설정 위주로 인물간의 관계를 생각해서 캐릭터들이 바뀌는 것 같다. 언제부턴가 캐릭터들이 어디에 살고, 어떤 일을 하며, 하루 24시간을 어떻게 보내는지 관심이 적어지는 것 같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우묵배미의 사랑>은 80년대에서 90년대까지 이어져온 리얼리즘의 전통에 입각해서 영화 속 이야기를 관념적으로 접근한 것 같다. 이 영화를 보면 노동하는 사람들을 부각시키려고 애쓴 장면들을 많이 볼 수 있다. 요즘 영화들은 <우묵배미의 사랑>에서 볼 수 있는 영화적 전통에서 자유로워진 것 같지만, 나는 캐릭터를 만들 때 가장 중요한 건 여전히 인물들을 둘러싼 환경이라고 생각한다.


관객 2 : 영화가 전체적으로 재미있지만 씁쓸하고 슬픈 장면도 많았다. 배일도는 단순해 보이지만, 재미있게 살려고 했던 사람 같다. 배일도가 공례와 나이트클럽에 가는 장면에서 평소 낙천적이던 그가 절망에 빠지는 게 인상적이었다. 공례는 배일도를 만나면서 사랑을 깨달았기 때문에 그녀의 미래는 행복할 거라고 생각한다. 반대로 배일도는 사랑을 뒤늦게 깨달았기 때문에 그의 미래가 비관적일 수도 있다. 재미있고 즐겁게 살려는 사람일수록 현실을 절망적으로 받아들일 가능성이 많다고 보는데, 배일도는 끝내 자살할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해보았다.

김성욱 : 이 영화 속 등장인물 중 누가 더 불행할거라고 생각해본 적은 없다. 보통의 영화들은 두 사람이 중심이 되면 주변에 등장하는 사람은 잠깐 보여줄 뿐인 반면, 이 영화는 둘 사이의 관계라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둘에 플러스되는 누군가가 있다는 점이다. 이 영화는 두 사람 사이의 틈 안에서 존재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누가 더 행복하고, 누가 더 불행하게 사는지 판단하기 쉽지 않다. 그들의 미래가 행복한지 불행한지는 한 인물과 그 주변 사람들의 관계가 어떻게 되느냐에 따라 결정되는 것 같다. <우묵배미의 사랑>은 한 인물의 이야기만을 다루는 영화가 아니기 때문에 한 사람의 의지만으로는 행복과 불행을 판단하기는 어려운 것 같다.


관객 3 : 영화 안에서 기차가 등장하는 장면이 많다. 영화의 엔딩 장면을 봐도 쓸쓸히 걸어가는 배일도의 어깨 너머로 기차가 지나가는 게 보인다. 연출을 하는 입장에서 영화 속 기차를 어떻게 보았는지 궁금하다.

김태용 :  장선우 감독의 <우묵배미의 사랑>에서는 공간이 중요하게 드러난다. ‘우묵배미’란 마을은 서울에서 밀려나 이주해 온 사람들과 오랫동안 그곳에서 농사짓고 살아온 사람들, 개발이 진행되면서 서울로 진입하려다가 실패한 사람들이 혼재되어 있다. 기차는 서울과 마을, 이주민과 정착민간의 복잡한 관계를 이어주는 끈으로 사용되고 있다. 외화면에서 들려오는 기차 소리도 서울 근방이라는 공간감을 잘 살리고 있는 것 같다. (이도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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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포스트]
장선우의 <우묵배미의 사랑>에 관한 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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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정한 청춘 뒤에 다시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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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류승범이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를 찾아 구스 반 산트의 <아이다호>를 추천했다. 거리를 떠도는 청춘들의 모습을 담은 이 영화에서는 너무나 젊은 나이에 작고한 리버 피닉스의 아름다운 모습, 영원한 청춘이 담겨 있다. 상영이 끝난 후에는 배우 류승범의 진솔하고 진지한 얘기가 오간 시네토크가 이어졌다. 길에서 시작되어 길에서 끝났지만 끝이 아닌 것 같은 <아이다호>가 자신, 그리고 우리네 삶과 닮아 있다고 말하는 류승범으로부터 그가 생각하는 청춘, 리버피닉스, 그리고 배우로 살아간다는 것에 대해 들어 본다.

류승범(영화배우, 이하 류) : 열아홉 살 때 우연히 비디오테이프로 이 영화를 보았다. 열아홉에 보았기 때문에 영화가 나와 닮아있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 저 거리에 있는 청춘들과 왠지 모를 동질감을 느꼈다. 그때가 제 스스로는 청춘이었고, 질풍노도의 시기였는데 그 시간이 지난 다음에 성인이 되었을 때 다시 이 영화를 보면 어떨까 하는 마음에 추천했다. 시간이 지난 후 내가 나를 돌아보면 지금의 내 모습이 키아누 리브스의 모습인지, 아니면 여전히 리버 피닉스의 모습인지 스스로 한번 생각해보고 싶었던 것 같다.


김성욱(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래머, 이하 김) : 이 영화에서 리버 피닉스는 잊을 수 없는 모습을 보여준다. 지금 다시 볼 때 리버 피닉스란 배우에게 어떤 느낌이 드는가?

류 : 영화를 추천하면서 청춘이라는 화두를 던졌는데, 내가 왜 이 영화를 청춘처럼 느꼈을까 영화를 보는 내내 생각해보았다. 청춘이라는 것은 굉장히 불안정한 상태인 것 같다. 몸은 이미 성장했지만, 머리로는 과거로 갈까 미래로 갈까 고민하는 그런 상태 말이다. 어렸을 때 느꼈던 따뜻함이 없는 거리에서, 내가 나 스스로를 지켜야 하고, 한 발을 내딛고 나가야 하는데 그게 잘 안되는 게 청춘 같다는 생각을 했다. 제가 본 리버 피닉스는 그런 모습이었던 것 같다. 영화에서 마이크(리버 피닉스)는 성에 대한 정체성,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 어렸을 때의 환경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한다. 영화에서 리버 피닉스는 자신에 대한 확실한 정체성을 찾지 못하고 흔들리는 시기나 인물의 표상 같다는 생각을 했다.


김 : 리버 피닉스가 모닥불 앞에 앉아 키아누 리브스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류승범 씨는 어떤 장면을 인상적으로 기억하는지?

류 : 오늘 보았을 때는 오프닝과 엔딩에서 리버 피닉스가 기면발작으로 쓰러지는 장면이 인상 깊었다. 끝이 보이지 않는 하이웨이, 그 길 위에서 시작하고 끝나는 영화지 않나. 느낌이 굉장히 서글프다. 처음과 끝을 다시 돌아가는 듯한, 절대 끝을 보여주지 않은 이런 영화는 뭔지 모를 답답함, 아련한 씁쓸함이 있다.


김 :
이 영화를 보면 리버 피닉스에 대한 개인적인 느낌들을 발견할 수 있는 것 같다. 연기자로써 개인이 느끼는 것과 영화에서 표현되는 것의 간극이 있는데, 이에 대해서는 어떤 생각을 갖고 있나?

류 : 어떤 영화든지 배우는 자기 내면을 끄집어내지 않아도, 그것이 영화에서 느껴질 수 있는 것 같다. 제임스 딘이나 리버 피닉스 같은 경우에도 그 얼마 되지 않은 영화로 그 사람의 감춰지지 않은 모습들은 볼 수 있지 않은가. 제가 배우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리버 피닉스가 아이다호를 선택했을 때는 그 만의 이유가 있었을 게다. 배우가 영화를 선택하는 이유는 있다고 생각한다. 배우는 영화를 선택할 때 활자로 만날 수밖에 없는데, 그 때 여러 가지 직관들이 오는 것 같다. 그 직관을 믿을 수밖에 없다. 그 활자에 이상하게 매료되는 경우도 있고... 리버 피닉스 역시도 그 활자를 보고 자기와 많이 닮아있다고 느끼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그렇게 배우는 자신을 표현하기도 한다. 2008년인 지금 이 영화를 보더라도, 시대가 지나 어린 친구들이 십년 후에 이 영화를 보더라도, 리버 피닉스가 전달하고 싶은 마음을 느낄 수 있는 것. 영화는 그런 게 참 대단한 것 같다. 제 상상인데, 리버피닉스는 이 작품과 많이 닮아있지 않은가 하는 생각을 한다. 너무 잘해서 그런가, 너무 잘생겨서 그런가?!(웃음).


관객 1 : 영화를 처음 볼 때랑 나중에 다시 볼 때랑 다르다고 말하는 사람들을 종종 만난다. 류승범 씨도 <아이다호>를 다시 보니까 안 보이던 부분이 보이지 않던가? 있다면 어떤 것인지 궁금하다.

류 : 살다보면 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친구들이나 길 위에서 내지는 일 속에서 만나게 된다. 그런 사람들을 새롭게 만나고 성장하고 그렇게 변해가는 내 모습을 당시에는 잘 못 느끼는 것 같다. 사실 제가 처음 봤을 때는 스콧과 마이크의 관계만 강렬하게 들어왔는데, 다시 보니 저 둘이 굉장히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있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 보았을 땐 마이크가 언제나 혼자 있는 듯이 외로워 보였는데, 지금 보니까 그런 것이 달라보인다. 외로워 보이는 사람도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서로가 서로를 만나면서 성장하는 그런 모습들이 보이는 거 같다. 다시 보니까 예전에 못 봤던 마이크의 주변 사람들이 많이 보인다.


관객 2 : 영화에서 배우를 보면 실제 인물이 아니라 그 인물 자체가 된 듯한 느낌이 있다. 배우들이 몰입을 너무 많이 하다보면 전체적인 느낌보다는 나무만을 볼 때가 있다. 배우들도 전체적인 영화의 느낌을 알기 위해 시나리오를 써본다거나 하는 시도를 할 수 있는 같은데, 이런 점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류 : 영화를 굳이 두 가지로 구분해 보자면 어떤 영화는 캐릭터가 이야기를 만드는 경우가 있고, 어떤 영화는 이야기가 중심이 되고 인물들이 도구로 되는 영화가 있다. <아이다호>는 전자의 경우에 해당하는 영화 같다. 배우는 그렇다면 연기를 떠나서 그 영화가 어떤 영화인지를 봐야 한다고 본다. 가끔 보면 나무만 봐도 되는 영화가 있다. 배우가 인물에 대한 것만 보아도 영화는 완성되어지는 경우가 그렇다. 거기서 배우가 자칫 자꾸 숲을 보려고 하면 엉뚱하게 될 때가 있다. 배우로서 선택을 할 때 그런 큰 구분을 하는 것이 숲을 보는 첫 번째 단계 같다. 그것은 영화에 임하고 있을 때 보다는 처음 선택을 할 때 보아야 하는 점이다. 사실 연기를 하면서는 다른 생각 안 하려고 한다. 혼자 하는 작업이 아니니까. 감독이 숲을 보면 배우는 나무를 봐야 한다. 서로를 신뢰하고 내게 주어진 것이 나무를 보는 것이라면 나무를 자세히 봐야하는 거다. 그러다보면 이미 숲에 들어와 있게 되는 것 같다. 시나리오나 연출 공부를 통해 숲을 볼 수 있는 건 아닌 것 같다. 배우가 그런 작업을 하지 않는다고 해서 숲을 보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김 : 배우라는 존재는 일반인들이 보기에 동경의 대상이 될 수도 있고 이미지 때문에 현혹될 수 있는 대상이기도 하다. 일반적인 질문이긴 하지만 류승범 씨는 어떤 배우가 되고 싶은지?

류 : 매일 잠들기 전에 하는 질문이기도 하다. 사실 아직도 명쾌한 답은 없어서... 요즘 어떤 것이 좋은 배우인가 하는 고민을 많이 한다. ‘좋은 배우는 연기를 잘하는 것인가, 그렇다면 연기는 뭐지, 연기는 가짜인데, 그럼 나는 가짜 인생을 살아야하나’ 같은 양파 껍질을 벗기듯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을 항상 던진다. 여전히 정답은 없다. 계속 고민하게 될 지도 모른다. 그래서 스스로 요즘에 정리를 한건, 인간 류승범이 어떻게 사느냐가 좋은 배우가 되는 첫걸음이지 않나 하는 거다. 제가 좋은 사람이 아니면서 좋은 배우가 될 수 없는 것 같고, 제가 진솔하지 않으면 진솔한 배우가 될 수 없고, 이런 단순한 맥락이 있는 것 같다. 거짓이 아닌 것, 그것을 지킨다는 것 하나로도 배우로써 성장할 수 있는 길이 아닌가 생각한다. 그냥 뜬구름같이 ‘좋은 배우가 되고 싶다’가 아니라 시작해야 하는 것 같다. 인간 류승범이 어떻게 사는 것, 어떤 생각을 하고 사는 것, 이것이 좋은 배우가 되는 첫 걸음이지 싶다. (김나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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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에 관한 한 편의 진지한 농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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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일 저녁 7시, 시네마테크의 새 친구로 영입된 장준환 감독의 추천작인 우디 앨런의 <애니 홀>이 상영됐다. 영화 상영 후에는 <애니 홀>을 선택한 장준환 감독과 김성욱 프로그래머, 관객들이 함께 그동안 우디 앨런에 대해 가지고 있었던 애정을 풀어놓는 자리로서 시네토크가 진행됐다. <애니 홀>이 던져준 유쾌한 웃음과 씁쓸함을 한꺼번에 다시 떠올리면서 진행된 시네토크를 여기에 옮긴다.


김성욱(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래머, 이하 김) : 우디 앨런의 영화들은 웃긴데 씁쓸한 느낌이 든다.  영화에서 우디 앨런은 자조적으로 마흔이 넘었다고 얘기하는데 77년 영화를 만들 때의 실제나이와도 비슷하다. 영화 처음부터 나오는 썰렁한 농담도 예전에는 무슨 의미인지 모르고 지나갔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그 뜻을 조금씩 알게 된다. 영화를 본 소감은 어떠한가?


장준환(영화감독, 이하 장) : <애니 홀>은 몇 번을 다시 봐도 똑같은 농담인데 또 다른 재미가 있다. 매번 웃는 포인트를 새로 발견하는 재미가 있는 것 같다. 우디 앨런만이 할 수 있는 코미디를 좋아한다. 가끔 다른 배우들이 그의 영화의 주인공을 하기도 하지만 우디 앨런만큼은 못한 것 같다. 감독으로서 배우로서 그만이 가지는 독특함을 좋아한다. 특히 이 영화는 그의 다른 작품들과는 좀 다른 느낌을 준다. 판타지 같은 장면들이 있는데 작가로서도 영화 문법을 떠나 자유로운 느낌이 든다. 그것 때문에 이 영화를 더 좋아한다.

특별히 좋아하는 장면은 애니(다이앤 키튼)이 한번 헤어진 후 새벽 3시에 뜬금없이 거미를 잡아달라고 부를 때다. 앨비 싱어(우디 앨런)이 거미를 잡는 모습이 나랑 비슷하다. 남자니까 잡아줘야 되는데 에프킬러를 반통 다 쓰고 그런다(웃음). 그렇게 웃긴 장면 뒤에 애니가 사실은 외롭고 보고 싶어서 불렀다고 말한다. 외로움, 사랑하는 사람들 사이의 만남과 헤어짐 등. 우리의 삶을 압축적으로 잘 보여주는 장면인 것 같다. 웃기기도 하면서 찡한 무엇이 있다. 외로운 사람들이 나오는 영화를 좋아하는 것 같다.


김 : 영화 속 우디 앨런이 어릴 때 <백설 공주>를 보러가서 다른 애들은 백설 공주를 좋아하는데 자기만 마녀를 좋아했다고 하는데 왠지 감독님도 그랬을 것 같다(웃음). 영화에서 “나를 받아주는 클럽에는 가지 않겠다”는 그루초 막스의 농담이 나온다. 애니가 “삶을 바꿔야 돼”에서 ‘life’를 ‘wife’로 헷갈리는데 우디 앨런이 삶을 바꾸는 행위가 세 번의 와이프를 바꾸는 행위와 겹치기도 한다. 그는 사회 안에 편입하고 싶지만 일반인들의 생활 방식과 완전히 다른 방식의 생각을 가진 사람이다. 감독님도 여기에 매혹을 느끼시는 것 같은데?


장 : 맞다. 그런 점이 좋다. 특히 예전에 영화에서 나온 말 “이 세상엔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 비참한 사람과 끔찍한 사람”이라는... 근데 그 중에 나는 어느 쪽일까 고민하고 생각하며 공감했던 적이 있다. 삶에 대해 굉장히 비관적이면서 동시에 그 삶을 부둥켜안고 살아가야 한다는 딜레마의 주제가 한 남녀가 만나고 헤어지는 과정 속에 잘 녹아나있는 느낌이 있다. 구조적으로 드라마 트루기가 아주 강하거나 할리우드의 잘 짜인 각본은 아니지만 자기가 느끼는 삶을 진솔하고 재밌고 소소하게 하지만 진지한 농담으로 깊게 담아낼 수 있다는 점에서 신선한 매력을 느꼈다.


김 : 영화 마지막에 나오는 연극처럼 삶과 작품이 서로 조응하면서도 서로 다르게 나타날 때 드는 씁쓸한 느낌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장 : 그러고 보니 <지구를 지켜라>와 비슷한 느낌이 든다. 표현은 좀 과격했지만, 지구가 폭파되고 난 뒤에 텔레비전에서 지구에서의 행복했지만 고통스러웠던 삶을 바라보는 엔딩이 있는데 그것이 <애니홀>의 엔딩과 통하는 부분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


김 : 약간 신경증적인 우디 앨런의 캐릭터와 애니 홀이라는 캐릭터에 대해서는 어떤 느낌을 갖고 있나?


장 : 우디 앨런은 <맨해튼>이었던가 몇몇 작품에서 보면 건강염려증 환자로 나오고 신경 쇠약의 뉴요커로 많이 나오는데 그런 부분에 나 스스로를 어느 정도 대입할 수 있다. 산업화된 도시, 꼭 도시가 아니라도 대한민국에 사는 우리도 어떤 강박증, 염려증을 갖고 살아가고 있지 않나 싶다. 그의 삶은 굉장히 멀고 문화적으로 다르지만 우리는 그 사람을 통해 불안감 같은 것들을 공감한다. 그래서 우디 앨런의 코미디에 웃을 수 있고 캐릭터에 동질감을 느끼는 것 같다.

애니의 스타일과 말투는 앨비 싱어보다 밝고 긍정적이고 좋은 의미에서 가벼워 보인다. 그래서 앨비 싱어가 애니에게서 자신이 가지지 못하는 것을 바라는 느낌이다. 자신이 가진 폐쇄성과 비관적인 면을 해소해 줄 수 있는 좋은 궁합처럼 보인다. 대학을 가서 공부를 하라고 강요하기도 하지만 자신과 다른 애니의 자유롭고 다른 영혼에 매력을 느끼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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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준환 서울아트시네마



관객 1 : 영화에서 솔직한 표현과 형식적인 장난이 좋았는데 특히 영화와 삶의 관계를 중요한 테마로 다루고 있는 듯 하여 더 그렇다. 초등학교 때 아이들이 직접 지금의 직업을 얘기하고, 애니와 함께 과거의 파티를 직접 들어가서 구경한다. 또 영화 속에서 영화를 보는 장면들이 나온다. 그런 점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장 : 영화적인 새로운 시도, 장난이 많이 나온다. <카이로의 붉은 장미>를 보시면 거기서도 영화 속으로 들어가서 뭔가 다른 삶을 살고 또 영화 밖으로 나오고 한다. 영화와 직접적인 관계를 맺는 이야기다. 다른 작품들도 그런 것 같다. 우디 앨런은 문학, 소설 인용을 많이 하는 편이긴 하나 특히 영화 작품들에 대해서 언급, 인용을 많이 하는 것 같다. 여기서 나치 영화가 두 번씩 나오는 장면을 보면 우디 앨런 본인이 갖고 있는 개인적인 관심과 작가적인 열정과 지식인으로서의 완고함을 모두 볼 수 있는 것 같다.


관객 2 : 영화 전체의 바탕이 막스 그루초의 농담인 것 같다. 앨비 싱어는 변화를 받아들일 자세가 안 된 사람인 것 같고... 같이 정신과 치료를 받아도 애니 홀은 금방 바뀌어 가는데 자기는 변하려하지 않고 계속 외부 세계와 충돌한다. 애니 홀이 떠나자 변화를 시도하지만 실패하고 결국에는 낙담한다. 이것이 작가의 세계관인지 <애니 홀>에 국한된 전체적인 가치관인건지?


장 : 제가 본 우디 앨런의 영화들은 그런 면에서 일관성이 있는 것 같다. 인생에 관한 농담이기는 하지만 직접적이고 깊이 있는 얘기가 담겨져 있어서 우리가 들여다보기 쉬웠던 것 같다. 특히 <애니 홀> 앞뒤로 있는 다른 영화들에서도 그는 남녀 관계에서 계속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하면서 어쩔 수 없음을 느낀다. 그가 가진 세상에 대한 비관적 느낌이나 성적 관계에서 가지는 콤플렉스나 유대인으로서 가지는 인식들이 크게 다른 것 같지 않다. (이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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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튼의 슬픈 표정에 주목을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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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성 영화’는 말 그대로 소리가 없는 영화를 뜻하지만 무성영화가 정말 ‘무성’으로 상영된 적이 영화의 역사를 통틀어 몇 번이나 있었을까. 1924년에 만들어진 버스터 키튼의 무성영화 <셜록 주니어> 역시 마찬가지다. 처음으로 상영되었을 때부터 지금까지 다양한 연주와 함께 상영되어 온 <셜록 주니어>가 2008년 서울아트시네마에서는 몽라의 연주로 새롭게 상영됐다.

‘2008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 개막작인 버스터 키튼의 <셜록 주니어>의 연주를 맡은 몽라는 이미 전주 영화제 등에서 소니마주(sonimage) 공연을 한 적이 있으며 1집 앨범 <꿈꾸는 아이>를 발표한 크로스오버 피아니스트이다. 이번 시네마테크 친구들 영화제에서도 <셜록 주니어>를 위해 특별히 작곡한 곡들에 기존 발표곡들까지 포함해 새로운 느낌의 <셜록 주니어>를 관객들에게 선사해주었다. 특히 영화 속 꿈 장면에서는 테레민이라는 악기를 사용해서 색다른 연주를 들려주었다.


이전의 <셜록 주니어>에 입혀진 음악이 영화의 경쾌한 분위기에 맞게 주로 흥겹고 밝은 느낌의 음악들이었다면 이번 몽라의 연주는 서정적이고 신비로운 느낌이 좀 더 강조되어 있었다. 상영 후 이어진 시네토크 시간에 몽라는 이 점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기존의 연주는 영화의 경쾌하고 밝은 면에 초점을 맞추었다면 저는 버스터 키튼의 슬픔이 묻어 있는 표정, 특히 웃고 있어도 어딘지 슬퍼 보이는 얼굴에 주목을 했어요. 키튼의 생애 역시 그렇게 밝지 않았던 걸로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했는지 모르겠지만 이번에는 음악을 이렇게 맞춰 보았어요.”


그녀의 얘기를 듣다보니 궁금증이 유발한다. 그런데 과연 몽라는 영화와 음악과의 접점을 어떻게 찾을까? 이에 대해 그녀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관객 분들은 제 연주를 들으러 오는 게 아니라 영화를 보러 오신 거라는 사실을 항상 염두에 둬요. 그래서 무엇보다 영화를 계속 반복해서 보면서 준비를 하구요. 영화의 느낌을 관객 분들에게 잘 전달하는 것이 1차 목표에요. 그리고 영화 관람에 방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 제 느낌을 살리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렇게 몽라는 관객들의 질문에 조곤조곤한 말투로 조심스럽게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해주었는데 그 속에서 자신의 연주를 통해 조금이라도 영화의 느낌을 더 잘 살리려하는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런 맥락이었을까. 영화 중간에 나오는 무반주는 어떤 의도였냐고 묻는 관객의 질문에 몽라는 다시 조심스럽게 되물었다. “혹시 몰입에 방해가 되셨나요?” 내가 질문을 한 것도 아니었지만 속으로 조용히 말했다. ‘아니오. 너무 좋았어요!!’ (김보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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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을 꿀 수 있는 존재, 집시들에 관한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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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순례 감독은 이번 "친구들 영화제"에서 에밀 쿠스트리차의 <집시의 시간>과 테오 앙겔로푸스의 <시테라 섬으로의 여행>과 <영원과 하루>를 추천했었다고 한다. 아트시네마 프로그램 팀은 이 영화의 필름을 수급하기 위해 전 세계에 연락했었지만 쉽지 않았다고 한다. 그렇게 어렵게 구한 <집시의 시간>을 필름으로 볼 수 있는 값진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아무리 좋게 본 영화라도 극장에서 두 번을 잘 안 본다는 임순례 감독이 오늘 세 번째 보게 된다는 에밀 쿠스트리차의 <집시의 시간>에 대해 나누었던 이야기를 옮긴다.


임순례(영화감독, 이하 임) : 에밀 쿠스트리차라는 작가를 굉장히 좋아한다. 작가가 좋으면 전작을 거의 다 보는 편인데 그의 영화는 전체적으로 다 좋다. 그 중에서도 특히 <집시의 시간>을 가장 좋아한다. 에밀 쿠스트리차 감독의 영화는 상당히 에너지틱해서 영화를 보면 그 에너지에 감당이 안 될 때가 많다. <집시의 시간>은 에너지도 에너지지만 굉장히 양극의 감정들이 같은 씬 안에 섞여있다. 아주 슬프고 절망적인 장면에 유머가 있다든지 가장 기쁜 장면에 비극이 숨어있다든지 식의 양면적이 감정들이 항상 뒤섞여 있고 영화의 서사구조나 캐릭터의 표현이 어느 하나 흠잡을 데 없이 완벽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시각적으로 굉장히 아름다운 상징이나 은유들도 훌륭히 표현되어 있다. 에밀 쿠스트리차는 냉혹하고 끔찍한 현실을 정면으로 다루는데, 정면으로 다루는 방식 자체가 굉장히 따뜻하고 시선이 깊고 넓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그런 시선도 굉장히 좋아한다. 에밀 쿠스트리차는 본인이 음악가이기도 해서인지 모든 영화의 음악까지 다 아름답다. 특히 오늘 본 영화의 음악은 어떤 영화음악보다 아름답고 잘 살린 영화 음악이라 사료된다. 아마 오늘 영화를 처음 보시는 분들도 있을 텐데 그 음악이 오랫동안 귀에서 맴돌 것이다.


김성욱(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래머, 이하 김) : 말씀하신 것처럼 이런 영화를 볼 때 굉장히 모순적인 감정이 발생한다. 슬픔들 안에 유머, 웃음을 집어넣고 혹은 굉장히 사실적이면서도 동시에 아주 마법 같은 순간들이 발생한다. 이 영화도 그렇고 나중에 나온 <언더그라운드>, <검은 고양이 흰 고양이>같은 경우도 그렇다. 서로 모순적인 것들이 영화 안에서 동시에 하나로 조화롭게 이루어지는 그런 작품들을 볼 때마다 늘 ‘경이롭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그런 부분들을 조화시키는 쿠스트리차 영화에서 어떤 것들을 눈여겨봤는지?


임 : 영화 작가들 중에서 굉장히 특이한 존재라는 생각이 든다. 보통 리얼리즘 경향이 좀 우세하거나 반대로 표현주의적 경향이 우세하거나 해서 한 쪽으로 치우치기 마련인데, 쿠스트리차 감독은 이런 두 가지가 전혀 거부감 없이 섞여있다. 그리고 굉장히 놀라운 것은 관객에게 제시하는 판타지나 표현주의적인 요소들이 관객들이 믿을 수 있을 정도의 리얼리즘이랑 맥이 닿아있다. 그것이 굉장히 황당한 판타지거나 말도 안 되는 판타지일지언정 보고 있으면 인물들이 보여주는 그 시각적인 판타지가 믿어진다. 그런 두 가지의 형식이 한 영화 안에 자연스럽게 공존하고 있다는 것, 그리고 판타지 성격 자체가 리얼리즘이랑 맞닿아 있다는 것이 특징적으로 느껴진다.


김 : 개인적으로 이탈리아에 갔다가 집시들한테 도둑을 맞은 적이 있었는데, 파리에 계셨으니까 집시들도 많이 보셨을 것 같다. 영화에서 나오는 집시들은 유럽에서 말하자면 일종의 소수자다. 그들 내부에 들어가서, 또 실제로 비전문적인 집시들을 캐스팅해서 영화를 만들고 집시들을 다루는 쿠스트리차의 방식이 굉장히 인상적이다.

임 : 아마 유럽배낭 여행을 갔다 오신 분들은 집시들에 대해서 굉장히 안 좋은 느낌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뛰어난 감독이나 작가는 ‘자기가 다루는 대상에 대한 어떤 총체적이고 본질적인 것들을 관객에게 제공하는 사람들’이 아닌가 싶다. 물론 우리가 집시에게 당하고, 집시들을 퇴폐적으로 봤을 때 거리를 멀게 할 수 있지만 그러한 직접적인 경험이나 퇴폐적인 판단을 넘어서 집시들이 가지고 있는 근원적인 특징, 꿈을 꾸는 존재들이고 진실한 마음을 가지고 다른 것들을 움직일 수 있는 굉장히 특수하고 순수한 집단들이라는 것, 집시들이 인생과 삶에 대해 가지고 있는 본질적인 태도, 특질을 쿠스트리차 감독은 잘 보여준 것 같고 보여주고자 한 것이 아닌가 싶다는 생각을 한다. 이 영화를 통해서 그 집단들에 대해 깊은 이해를 제공했다는 점에서 역시 에밀 쿠스트리차는 굉장히 뛰어난 감독이고, 그분들의 어떤 정신과 문화와 특질이 다는 아니지만 2시간동안 깊이 전달됐다.


김 : 감독님은 영화에서 상징을 많이 안 쓰시는 편인 것 같은데, 쿠스트리차의 영화 특히 <집시의 시간>을 보면 마치 루이스 브뉘엘 영화처럼 갑자기 동물이 등장한다던지, 타르코프스키 영화처럼 물이나 불같은 자연적인 원 질료를 활용하는 방식, 공중부양 등등 다양한 상징들이 등장한다. 이 영화에서 쿠스트리차가 사용하는 상징의 방식에 대해서는 어떻게 봤는지?


임 : 상징들이 많이 나온 영화 중 하나다. 동물, 어린아이, 자연현상은 집시들이 본질적인 자연이나 우주에 더 가까운 사람들, 동물이나 아이의 어떤 순수한 심정들에 더 가까운 사람들이라는 것을 표현하는 것일 수 있다는 생각을 했고 공중부양이나 영적인 세계를 보여주는 것은 동구권의 전통에 맞닿아 있다는 생각이 든다.


김 : 영화를 본 사람들은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 깊은 장면을 꼽으라면 대부분 물에서 벌이는 축제 장면을 꼽는데, 오늘 보시면서 감독님은 어떤 장면이 가장 인상 깊었는지?


임 : 예전에 처음 영화를 봤을 때는 삼촌이 빗속에서 뛰어가다 걸리는 엔딩 장면이 가장 인상적이었는데, 그 때는 20대여서 그 장면을 보고 슬프게 울었다. 오늘 보니까 굉장히 새롭게 예전에는 보지 못했던 장면들이 있었는데, 주인공이 환상으로 보는 것들, 가장 순수한 상태에서 환상으로 보는 것들이 눈에 띤다. 예컨대 부인이 출산할 때 공중 부양하는 장면이라든지, 이 친구가 판타지로 보는 그런 장면들의 처리 같은 것들이 더 각인되었다.


관객 1 : 마지막 장면에 굉장한 여운이 남았다. 삼촌이 아이를 쫓아가다가 다른 곳으로 가는데 삼촌이 어디로 가고 있을까라고 궁금해졌다. 그 마지막 장면에 대해서 감독님은 어떤 생각을 하셨는지?


임 : 이건 농담인데 아이가 돈을 훔쳐서 가는 순간 ‘아 삼촌 애가 맞구나. 내가 속았구나’ 라는 생각을 잠깐 했었다(웃음). 그것이 인생이다. 이제 이 아이도 집시의 길로 들어섰고, 삼촌도 개과천선을 하는 좋은 모습이 아니라 지금까지 살아온 방식대로 살아가겠지 뭐 그런 생각을 했다. 이를테면 인생이 계속된다 정도. 비바람 맞으면서 아이를 따라가려다 따로 가는 것이 정말 냉혹한 현실인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 결혼하고, 누군가 태어나고 죽고, 누군가 늙고 하지만 이 삶은 변함없이 지속이 된다는 느낌을 엔딩 씬에서 받았다.


관객 2 : <언더그라운드>와 비슷한 씬들이 많이 나온다. 주인공이 교회 종에 목을 매달고 죽으려고 한다든지, 웨딩드레스 의상이 날아다니는 것, 왁자지껄한 결혼식, 보스가 다른 사람들을 속인다든지 장면과 설정이 비슷한데, 다른 영화와 비슷한 씬과 설정은 어떤 의미가 있는지?


임 : 그것은 어쩔 수 없는 부분인 것 같다. 사실은 주제도 마찬가지인데 감독들이 처음에 가졌던 주제가 바뀌지 않고 조금씩 변주되어 가는 작가들이 거의 대부분이고, 자기가 주로 애용하고 사용하는 장면들이나 구조, 캐릭터, 앵글, 철학적인 은유나 상징들이 어쩔 수 없이 자주 반복되는 것 같다. 의도적으로 사용하시는 분들도 있다. 키에슬로프스키 같은 경우는 허리가 굽은 할머니가 빈병을 쓰레기통에 천천히 집어넣는 장면이 거의 모든 영화에 들어가 있다. 의도적으로 반복하시는 분도 계시고 무의식적으로 했는데 표현이 반복되어 나타나는 경우도 있다. 작가영화에 있어서는 피해갈 수 없는 부분들이라고 생각한다.


관객 3 : 감독님은 에밀 쿠스트리차 영화에서 어떤 영향을 받았는지 궁금하다.


임 : 쿠스트리차 영화랑 닮은 영화를 만들고 싶었는데 전혀 안 된다. 영화는 감독의 기질과 성격이 많이 드러나는데, 쿠스트리차 영화를 보면 이 사람은 굉장히 에너지가 많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저는 그런 형태의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그런 영화를 만들 수 없다. 저는 저다운 영화, 저의 성격과 기질과 저의 DNA가 나타나는 영화를 만드는 거라서 굉장히 닮고 싶지만 그것은 저의 DNA가 바뀌지 않으면 닮을 수 없다. 그러나 흉내를 내보려고 하는 것들이 있다. 굉장히 슬프고 끔직한 상황에서 그것을 한 발짝 떨어져서 관조할 수 있는 유머나 여유, 굉장히 기쁘고 유쾌한 장면에 내포된 슬픔들. 이런 양가적 감정들이 한 컷이나 한 씬 안에서 표현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과 그런 정도는 해도 되지 않을까싶다. 그래서 이번 영화에 해 봤는데...(웃음) 뭐 그렇게 그냥 제 식대로 됐다. 스타일을 닮고 싶다는 것 보다는 이 감독이 세상을 바라보는 눈, 인간을 바라보는 눈이 굉장히 깊고 폭 넓고 입체적이고 따뜻하고 냉정한데, 그런 점을 배우고 싶다.


김 : 마지막으로 꼭 하고픈 말이 있다면?


임 : 굉장히 새로운 경험이었다. 사실 제 영화를 가지고 이야기를 해도 대답 못 하는 것도 많고, 만족한 대답을 못 드릴 때가 많은데 남의 영화를 가지고 얘기를 한다는 것이..(웃음) 이야기를 한다는 자체가 중요하다기 보다 이 행사는 이것을 기회로 우리가 좋은 영화 한편을 볼 수 있다는, 기회를 서로 나눈다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닌가 생각해본다. 아까도 말씀드렸듯이 좋은 영화는 제가 얘기하고 다른 사람이 얘기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오늘 영화를 보면서 가졌던 느낌들을 깊이 간직하는 거다. (신윤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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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관객 분들은 복 받은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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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시네마테크 친구들 영화제의 추천작’을 보며 류승완 감독의 이름이 빠져 있어 약간 서운함을 느낀 관객들이 많이 있을 것으로 짐작된다. 그러나 그가 친구들로 당당히 관객과 만났다. 더욱이 알고 보니 류승완 감독은 이미 아벨 페라라 감독의 <킹 뉴욕>(King of New York, 1989)을 추천해 놓았었다고 한다. 촬영 일정으로 바빠서 이번 영화제 참석이 힘들었으나 원래 내한예정이었던 아벨 페라라 감독이 못 온 바람에 다시 류승완 감독이 긴급투입(?)되어 친구들 영화제에 참여하게 된 것. 크리스토퍼 워큰을 비롯한 멋진 배우들의 멋진 연기가 아벨 페라라 감독의 ‘차가운’ 연출 속에 잘 녹아 있는 <킹 뉴욕>을 좋은 상태의 프린트로 본 오늘 관객들은 “복 받은 거다”라고 말하는 류승완 감독의 유쾌한 입담으로 시작된 <킹 뉴욕> 상영 후의 씨네토크를 지상 중계한다. by 김보년


류승완(영화감독, 이하 류) : 오늘 오신 분들은 복 받은 겁니다. 프린트가 이 정도로 좋을 줄 몰랐다. 이 영화를 고3 때 비디오로 처음 본 것 같다. 그 때 보고 진짜 재밌다 생각하고, 비디오 반납하러 갔는데 비디오 가게가 망해서 그 비디오가 고스란히 나의 것이 됐다. 지금도 갖고 있고 어제도 다시 한번 보고 왔다. 근데 오늘 필름으로 보니까 비디오 버전에는 없던 씬도 너무 많고 이렇게 ‘때깔’이 좋은 영화인 줄 정말 몰랐다. 크리스토퍼 워큰의 첫 클로즈업 같은 경우 비디오에서는 차 안의 창백한 얼굴이 이런 느낌이 아니고 그냥 파랗기만 했는데, 그 때는 ‘그래도 멋있다. 페라라 형님이 느낌이 있으셔’하고 생각했다. 오늘 보니깐 그게 그런 느낌이 아니다. 영화를 보면서 경악을 금치 못했다. 페라라 형님이 오셔야 물어보고 싶은 걸 물어볼 수 있었을텐데 안타깝다. 오셨다면 덕분에 핑계 대고 이번 영화제 땡땡이치려 했는데 안 오시는 바람에 정말 멋진 영화를 봤고, 덕분에 다음 영화를 더 차갑게 찍을 수도 있을 것 같다.개인적으로 페라라 감독의 영화 중에 <악질 경찰>과 <킹 뉴욕>을 되게 좋아한다. 그 이유는 아벨 페라라의 영화이면서 동시에 배우들의 영화인 것 같은 느낌이 있어서다. 크리스토퍼 워큰이 없는 <킹 뉴욕>이나 하비 케이틀이 없는 <악질 경찰>을 떠올릴 수 없다. 물론 ‘파치노 형님’도 있고 ‘드니로 형님’도 있지만 알 파치노가 <스카페이스>엔 어울리지만 <킹 뉴욕>에는 너무 뜨거울 것 같다. <악질 경찰> 보면서도 생각했는데 로버트 드니로나 알 파치노가 형사나 갱을 연기하면 연기를 굉장히 잘한다는 생각이 들지만 하비 케이틀이나 크리스토퍼 워큰이 하면 진짜 그 사람 같다. 또 한편으론 <악질 경찰>과 <킹 뉴욕>을 보면서 <복수는 나의 것>과 <올드보이>의 쌍이 생각났다. 하비 케이틀이 최민식 같은 뜨거움이 있다면 워큰은 송강호 같은 차가움이 있다. 이를테면 <킹 뉴욕>이 <복수의 나의 것>의 자리라는 생각. 그런 대치가 재밌다.


김성욱(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래머, 이하 김) : 이 영화가 미국에서 개봉했을 때 당시 리뷰의 헤드라인중의 하나가 “데드 맨 워크”라는 제목이었다. 영화에서 실제로 프랭크 화이트는 자신이 “죽음에서 되돌아온 자"라는 표현을 쓰는데, 한편으로는 ‘노스페라투’ 같기도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프랑켄슈타인'같기도 하다. 아마도 로버트 드니로나 알 파치노는 죽음에서 돌아온 느낌이 나지는 않을 것 같다. 배우들이 대단하다.


류 : 아벨 페라라 감독의 연출력도 대단하다. 하비 케이틀이란 배우를 데리고 <악질 경찰>에서 온전히 한 사람의 캐릭터로 영화를 아작 내는가 하면 <킹 뉴욕>에서는 크리스토퍼 워큰이라는 정반대의 온도를 가진 배우를 다르게 접근하는 것 같다. 한 사람의 연출자가 그래서 혹 같은 연출자 맞나 하는 생각이 든다. 연출 양식이 다르다. 이를테면 <킹 뉴욕>은 망원렌즈와 클로즈업을 많이 사용한 반면 <악질 경찰>은 광각렌즈를 사용하고 컷을 별로 안 나누고, 또 상황 안에 인물을 떨어트려 놓고 즉흥연기를 허용했던 것 같은데, 다른 측면에서 배우의 개성과 감독의 개성이 잘 어울리는 측면이 신기하다. 어떻게 그렇게 다른 스타일의 연출을 하는지... 또 놀라운 것은 두 영화 모두 ‘저 사람은 죽어서도 구원받았을까?’라는 질문을 하게끔 하는 것이다. 페라라 형님이 오셨어야 물어 보는데(웃음). 또 다른 재미를 느낀 것은 총격전 연출 방식이다. 1988~89년 즈음에 홍콩의 액션영화들이 뉴욕의 인디 감독들에게 영향을 준 것으로 알고 있다. 페라라도 조금 영향을 받지 않았나 추측해본다. <킹 뉴욕>의 슬로우 모션의 패턴 같은 걸 보면 그렇다. 페라라의 다른 영화들과는 다른 지점이 있다. 그래서 나중에 ‘내가 너무 말끔하게 만든 것 같아’라고 하며 <악질 경찰>을 만들 때 더 거칠게 밀어 붙인 것 같다.


김 : 영화에서 지상과 지하세계의 모습은 영화의 색감에서의 차이로도 표현된다. 또 형사들과 프랭크 화이트란 인물이 부딪치는 모습들은 일종의 전쟁처럼 그려진다. 이런 대조적인 장면들은 어떻게 봤나?


류 : <악질 경찰>에서 차 안에 있는 사람을 저격하는 장면이나 <킹 뉴욕>에서 크리스토퍼 워큰이 차 안에서 죽는 장면을 생각해봐도 그런 것 같다. 첫 장면에서 프랭크 화이트가 감옥에서 출소하자마자 바로 차에 타는데, 대저택으로 가면 그곳에서 다시 철문이 닫힌다. 결국 이 영화는 끝끝내 그 사람이 자신의 세계에서 떠나지 못하고 갇혀있는 느낌을 주는 것 같더라. 심지어 제일 다혈질로 나오는 형사조차 차 안에서 썰렁하게 죽지 않는가. 경찰들은 범죄자보다 내면이 썩어있고 범죄자들은 더더욱 숭고해지려 노력하는... 이러한 선과 악의 경계가 모호한 인물들을 대할 때는 감독의 태도가 중요한데 아벨 페라라 감독은 자신의 태도가 분명히 있는 것 같다. “과연 저 인물이 구원을 받았을까”라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프랭크 화이트가 마약과 범죄 가운데서 병원을 짓는다거나 하는 방식으로 법의 테두리 안에서 해결해보려고 몸부림치지만 마지막에는 비참한 죽음을 당한다. <비열한 거리>(마틴 스콜세지, 1973)와 비교해보자면, <비열한 거리>의 마지막도 비참하지만 그 장면이 이상한 해방감 같은 것이 있다면 이 영화에서는 주인공이 구원을 못 받은 것 같다. 심지어 프랭크 화이트가 죽은 다음 힙합 음악이 나오지 않는가. 숭고해 보이지 않도록 하기 위한 조치 같다는 생각을 했다. 감독은 ‘니가 아무리 손을 뻗어 봐야 신은 너를 버렸어’란 생각을 하고 있는 게 아닐까 싶다.


관객 1 : <킹 뉴욕>이나 <악질 경찰>의 인물들이 구원받지 못할 것이라고 했는데, 사실 그 인물들은 나쁘게 살다가 좋은 일을 해보려다 죽는 사람들인데, 그런 사람들이 구원받아야 하는 게 아닐까?


류 : 구원 자체에 대한 문제가 아니라 페라라 영화에서 말하려는 것은 구원에 대한 권리 문제라고 생각한다. 페라라의 세계는 일종의 중독된 인물을 다루는 세계다. <악질 경찰>은 마약과 노름에 중독 되어 있고 프랭크 화이트는 자신의 범죄 뿐만 아니라 권력욕과 죄의식을 씻어내려는 의식에 중독 되어 있다. 일종의 죄의식에서 벗어나려는 움직임조차 중독으로 보인다. 그래서 이 연출자는 인간들이 버림받았다고 생각하는 건 아닐까란 생각을 했다. 스콜세지 영화와 비슷하다 느끼는 면이 바로 이 지점이다. “신이 만들어놓은 인간들이 신에게 버림 받았다면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을까, 누구에게 구원 받을 것일까. 스스로의 구원이 가능한가?”라는 질문이 자연스럽게 나오게 하는 영화다. 하지만 내가 십 년 후에 이 영화를 또 본다면 정 반대의 얘기를 할지도 모르겠다.


관객 2 : 배우의 영화, 캐릭터의 힘에 대한 얘기가 많았다. 감독님 영화의 캐릭터들도 다 강한 척을 해도 선량함 같은 것들이 느껴지는데, 캐릭터를 어떻게 만들고, 어떤 캐릭터에서 재미, 혹은 매력을 느끼는지 궁금하다.


류 : 캐릭터를 만드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기본적으로 모두 매력을 느낀다. 이를테면 <아라한 장풍 대작전>의 인물들도 귀엽고, 정재영 씨가 <피도 눈물도 없이>에서 연기했던 캐릭터도 좋아한다. 개인적으로 영화에서 어떠한 인물들이 나오는 세계를 다루느냐를 먼저 생각하는 편이다. 어떨 때는 사건과 상황이 먼저 떠오를 때가 있고 어떨 땐 인물이 먼저 떠오를 수도 있지만, 이번에 페라라의 <악질 경찰>을 보면서는 인물 중심으로 가는 영화를 하고 싶다는 생각도 했다. 연출을 하면서 변하고 있는 것 중 하나는 어떤 인물을 만들어 놓으면 그 특징적인 성격 하나가 영화를 관통해야 한다고 강박적으로 생각한 편이었는데 <주먹이 운다> 이후로 그 생각이 조금 변했다. 일관성 있는 인물이야 말로 ‘영화적인 인물’이라는 생각이 들어서다. 실제로는 다들 조금씩 바뀔 수밖에 없는 거니 굳이 일관성 있게 하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에 미치게 되더라. (김보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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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것 같은, 불 균질 속에서 진정성이 묻어나는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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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일 오후, 당초 일정과 달리 아벨 페라라와의 대담은 이어지지 못했으나 <악질 경찰>은 매진될 정도로 관객 호응이 좋았다. 1992년 작인 <악질경찰>은 도발적인 페라라를 잘 보여주는 대표작으로 끝없이 나락의, 지옥의 세계로 빠져들며 어느 순간 은총을 만끽할 수 있는 영화. 상영 전 영화를 소개하던 김성욱 프로그래머의 우려와는 달리 극장 문을 박차고 나가는 사람 없이 모두 페라라의 힘에 매료되었고, 상영 후 이어진 씨네토크에는 아벨 페라라를 대신해 페라라의 <악질경찰>과 <퓨너럴>을 무지 좋아한다는 오승욱 감독과 김성욱 프로그래머가 함께했다. “<악질 경찰>은 관객을 시궁창으로 몰아넣었다가 정화시켜주는 영화”라며 “언젠가 나도 꼭 예수를 소환하고 싶다”라고 말하는 오승욱 감독과 “얼굴의 영화”라 말하는 김성욱 프로그래머, 그들과 페라라 영화와의 조우를 담았다. (by 이도훈)


김성욱(이하 김) : <악질 경찰>은 관객에게 지옥이나 나락의 세계를 한참 경험하게 하다가 조금씩 은총을 느끼게 해주는 영화다. 이 작품은 여러 가지 모순적인 것들이 엉켜 있는 듯하며, 보고 나면 배우의 얼굴과 행동을 결코 잊을 수 없게 만든다. 어떻게 봤나?


오승욱(이하 오) : 이 영화는 98년 즈음 허진호 감독이 독일에 갔다 오면서 내가 좋아할 것 같다며 사다 준 비디오 테이프를 통해 처음 봤다. 처음 봤을 때는 초반부에 마약하는 장면이 굉장히 세밀하고, 호흡이 길게 느껴졌다. 그런데 오늘 영화를 다시 보니 마약하는 장면들이 짧게 느껴지더라. 이 영화를 처음 보던 날 <악질 경찰>의 하비 케이틀은 <레 미제라블>의 자베르 형사와 닮아있다고 생각했다. <레미제라블>의 자베르 형사는 장발장을 쫓다가 결국 장발장을 놓아주고 강변으로 투신자살한다. 이 영화는 자베르를 주인공으로 해서 <레미제라블>을 다시 쓴 것 같아 매혹적이다. 특히 예수가 등장하는 장면에서는 숨이 막히는 줄 알았다. 예수를 통해 구원과 속죄를 말할 때, 아예 예수 자체를 등장시켜 버리는 건 굉장한 용기라고 본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서 다시 보니 이 장면이 약간 코믹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더라. 하비 케이틀이 예수를 향해서 기어가는 장면에서 짐승 같은 울음을 울 때는 배우에게 동화되는 것 같았다.


김 : 이 영화를 보고 있으면 ‘얼굴의 영화’라는 생각을 참 많이 하게 된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하비 케이틀은 두 범죄자를 향해 “니가 버스를 안 탈 거 같지...”라면서 막 울상을 짓는다. 그 표정이 매우 강렬하다. 아벨 페라라의 다른 작품인 <킹 뉴욕>도 크리스토포 워큰의 연기 때문에 그 영화 자체가 크리스토퍼 워큰의 ‘얼굴의 영화’라고 느껴질 정도다. 그리고 영화상에서 인물이 나락을 빠져나가는 추동력은 부정에 있는 것 같다. 라디오나 TV에서 중계되는 야구 경기의 결과, 경기에 배팅하는 하비 케이틀의 방식, 강간당한 수녀가 처신하는 방식, 하비 케이틀이 두 여자 앞에서 자위를 하거나, 이 후에 수녀가 두 강간범을 용서하는 것을 이해할 수 없는 하비 케이틀의 처지 등. 부정에 대한 것들이 강력해짐에 따라서 훨씬 더 심한 나락을 경험하게 되고, 동시에 그 경험을 수용해 나가는 것 같다. 그런 점은 어떤가?


오 : 비슷한 생각을 했다. 얼마 전 봤던 장 피에르 멜빌의 <레옹 모랭 신부>에서 “신을 가장 부정하고 신에게서 멀어지려고 하는 자가 신에게 가장 가까워 질 수밖에 없는 자”라고 했는데 <악질 경찰>도 부정의 부정을 거듭하면 할수록 신의 자장 안으로 더 끌려 들어가는 영화로 여겨진다. 그리고 <악질 경찰>은 에너지가 넘쳐서 좋다. 수녀를 강간하는 장면이나 하비 케이틀이 두 여자 앞에서 자위하는 장면이 특히 그렇다. 이 영화 안에서 앞서 말한 두 장면의 조합만 봐도 <악질 경찰>이 굉장히 불 균질하다는 걸 알 수 있다. 불 균질하기 때문에 날것의 느낌이 있고, 거기에서 페라라 특유의 독특한 파워가 느껴진다. 보통의 감독들이 만드는 균질한 영화보다는 불 균질하게 만들어진 영화에서 진정성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스스로 내 함정을 파는 거지만, 나는 <퓨너럴>이 <대부>보다 100배는 낫다고 생각한다(좌중 웃음). <대부>가 미국을 신화화 하고 포장하고 있다면 <퓨너럴>은 미국이라는 나라에 흠집을 내고 있다.


관객 1 : 하비 케이틀과 수녀가 동일하게 느껴지는 부분이 많았다. 특히 하비 케이틀이 수녀 이야기를 들으려고 몸을 숙일 때, 그가 수녀를 보면서 자신의 모습을 보고 있는 것 같았다. 수녀가 떠나고 하비 케이틀이 예수님을 향해서 소리 칠 때도, 하비 케이틀의 목소리가 곧 수녀의 목소리인 것처럼 들리더라.


김 : 수녀가 성당에서 신부에게 고해하던 부분에서도 그런 느낌을 받는다. <악질 경찰>의 몇 장면과 <’R-X 마스>를 같이 생각해보면 페라라의 영화는 동화 <크리스마스 캐롤>이 가지고 있는 원형적인 특성을 띠고 있다. 스크루지 처럼 철저하게 부정을 했다가 어느 순간 무언가를 보면서 변화가 일어난다. <’R-X 마스>는 남편을 납치한 사람이 유령처럼 나온다. 남편이 납치범을 만나면서 변경이 발생하는데, <악질 경찰>에서 하비 케이틀은 수녀를 조심스럽게 쳐다보는 과정을 통해서 변화한다. 이처럼 아벨 페라라의 영화는 동화 같기도 하고, 유령 이야기 같기도 하다. 혹은 동화와 유령이야기가 혼재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관객 2 : <악질 경찰>은 선과 악의 문제에 대해서 날 것 자체를 보여주고 판단을 보류하는 것 같다. 오승욱 감독님은 영화가 불 균질하고 날 것 같다고 했다. 그렇다면 이 영화는 선악을 구분하지 않고, 날 것 그 자체로 놓아둔다고 생각하는지와 하비 케이틀이 수녀를 강간한 두 남자를 용서했기 때문에 보내준 거라고 생각하는지 궁금하다.


오 : 이 영화가 불 균질하고 모순적인 내용으로 이루어져있고, 선악의 구분이 모호하다는 말이 맞는 것 같다. 보통 영화에서 선악을 명확하게 구분하면 재미가 반감되지 않나?! 남자가 회개한다는 것도 조금 모호하다. 실제로 누군가가 회개를 한다고 해서 그것이 진정한 회개인지 알기 힘들다고 생각한다.


관객 3 : <악질 경찰>은 감독과 배우가 영화 속 상황이나 등장인물을 진짜 믿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 영화는 관객에게 보여 질 것은 생각하지 않고, 고해소에서나 말 할 수 있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영화는 진심을 말하고 관객은 그저 이해하며, 바라볼 수밖에 없게 만든다. <악질경찰>같은 영화를 보고나면 죄스러운 마음과 수치심이 생기지 않나?


오 : 비슷한 느낌이지만 조금 다르다. 이 영화를 보고 있으면 하비 케이틀에게 동화되어서 시궁창 같은 곳에 들어가는 것 같다. 내가 지었던 모든 죄들이 시궁창 같은 곳으로 빨려 들어갔다가 영화가 끝나면 정화되어서 나오는 느낌이다. <악질경찰>같이 나를 정화시켜주는 영화가 좋고, 존경스럽다. 영화가 100편 만들어지면 이런 영화가 10편 정도는 나왔으면 좋겠다. (이도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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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를 맞아 홍상수 감독은 장 비고의 <라탈랑트>를 추천했다. 1934년에 만들어진 이 영화는 29살의 나이에 요절한 장 비고의 유작으로 바지선을 배경으로 결혼한 커플의 사랑이야기를 흥겹고 아름다운 영상으로 표현한다. 상영이 끝난 이후 이어진 씨네토크는 나즈막한 목소리로 “너무 예쁘고 사랑스럽네요”라고 말하는 홍상수 감독의 고백 같은 이야기로 시작했다.


홍상수 : 저는 이 영화를 이십년 전에 처음 보았습니다. 그 때 굉장히 좋게 본 영화라서, 그리고 항상 기억에 남는 영화였기 때문에 선택했습니다. 잘 보았습니다. 처음 보았을 때 이 영화는 인상이 참 깊은 영화였어요. 이번에 다시 볼 때 왜 내가 이 영화를 좋아했는지 이유를 찾으면서 보았는데, 아무래도 이 영화는 장면을 선택하는 동기에서 힘이 나오는 것 같아요. 한 씬을 선택함에 있어서 사랑하는 마음이 있다고 할까요. 씬을 만들 때 지나치게 계산하거나, 어떤 예술적인 기준들에 견주어서 만드는 경우가 있는데 이 분은 영화를 만들 때 ‘사랑해서 찍은 느낌’이 물씬 풍기네요. 씬을 선택한 이유가 인물이든, 배우에 대한 사랑이든, 앵글이 갖는 아름다움의 사랑이든, 안개 낀 배경 속에서 어긋나는 상황들이든, 그 안에는 사랑이 담겨져 있다고 느꼈어요. 이 영화는 씬 안에 넘치도록 담겨있는 애정으로 모여진 영화인 것 같아요. 너무 좋네요. 여러분들이 좋아하시면 저도 참 기쁘겠습니다.


김성욱(프로그래머) : <라탈랑트>는 이제 막 결혼한 커플의 이야기에서 시작해 서로 몸이 헤어졌다가 다시 몸이 만나는 것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사건이 아주 즉흥적인 방식으로 진행되는데, 그런 점은 어떻게 보셨는지요?

홍상수 : 두 연인이 포옹하거나 키스하거나 그러다가 넘어지는 장면들을 너무 좋게 보았습니다. 마지막에 이들이 아주 짧게 바닥에 뒤집어지는 장면이 왜 이렇게 아름다울까 생각했는데, 역시 감독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것들을 모아놓았기 때문인 것 같아요. 씬 처리는 약간 다큐멘터리 같기도 하고요. 일상적인 행위들을 보여주는 앵글들이 갖는 느낌과 배우들이 뿜어내는 힘이 안 맞는 것 같은 느낌이 있어요. 배를 끄는 것 같은 일상적인 행위들을 호흡으로 보여주는 데 이런 점들이 굉장히 순수하네요. 혹은 남자 주인공이 갑판 위를 걸어 기어가며 여자 뒤에 오는 장면은 또 굉장히 서정적이거든요. 영화에서는 인물들에 대한 애정도 보여 지는 것 같아요. 남자가 사랑을 지탱하고, 유지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보여주고, 여자는 굉장히 호기심이 많은 고양이 같은 여자잖아요. 이 둘이 잡상인 때문에 막 도망가거나 하는 장면들이 정말 너무 좋아요. 이런 요소들이 묘하게 섞여지는 느낌이 참 아름다운 것 같아요. 사랑함에 있어서 그 예민하고 위태로운 느낌, 그것을 보호해야 하는 것, 이것이 삶이고 이것들이 나오는 게 다 좋아요. 잘 이야기를 할 수 없을 것 같네요.


관객1 : 많은 영화들 중에서 감독님은 어떻게 영화를 선별하여 보시는지요?

홍상수 : 요사이 만들어진 영화는 잘 안 보는 편이예요. 공부하던 시절에는 옛날 영화만 많이 본 것 같아요. 제 기질과도 맞았던 것 같은데 옛날 영화가 더 좋았어요. 원류라는 생각도 들었고, 그것이 왜 클래식이 되었는지를 생각하면서 공부했던 것 같아요. 그러면서 나한테 와 닿았던 사람들도 발견되었고요. 내 영화에 대한 기준이나 이상, 아름다운 것이 무엇인가, 영화로 할 수 있는 최대치들이 무엇인가 하는 질문들은 그런 작품들을 찾고 보면서 결정된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건 제 기질인데 많이 쌓이면 피곤해져요. 그래서 그 이외에 영화들은 잘 보지 못한 것 같아요. 그것들을 다 보아야 한다는 그런 생각이나 급한 마음은 없었어요. 처음 영화를 보았을 때 감흥을 받은 게 있으면 그것으로 충분하고 그 다음에는 제 일상과 제 마음 속을 쳐다보면서 영화로 무엇을 할까를 생각한 것 같네요.


관객2 : <라탈랑트>는 즉흥적으로 연계되어 엉성한 배열로 이루어졌다는 생각이 듭니다. 좋은 영화라고 못 느껴지는데, 왜 좋은 영화인지 설명해주세요.

홍상수 : 예를 들어 할아버지가 되어서 스무 명 정도 되는 손자들에게 절을 받는다고 하면 절을 하다가 뒤집어지는 아이도 있고 하겠지만 나를 사랑해서 하는 모습이니까 다들 예쁘잖아요. 절은 중요한 게 아니니까. 그런 모습에 풋풋함이 있는 거 같아요. 요새는 테크닉 자체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시류인데, 그건 일종의 수사이고 문법 같아요. 틀 거리를 지나치게 존중하다보면 내용 자체가 번지거나 방해될 수 있거든요. 그 안에 자신의 모습이 온전히 담기는 것이 중요합니다. 사람이 누구인지가 훨씬 더 중요하죠.


관객3 : 인물설정이 독특합니다. 주인공 부부는 연약한 인물임에 반해 이들을 감싸주는 것은 쥘 이었습니다. 이런 설정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홍상수 : 영화를 보면서 인물들이 부딪쳐 있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쥘(미셀 시몽) 같은 경우는 감독이 배우자체에 매력을 느껴서 캐스팅한 것 같아요. 그래서 자유롭게 이 배우에게 공간을 줄 수 있는 여유가 있었던 것 같고, 두 주인공은 내러티브 때문에 캐스팅한 것 같아요. 이런 충돌이 예쁜 것 같아요. 여자 주인공은 예쁘고 호기심도 많고, 쥘 아저씨나, 잡상인도 모두 삶에 대한 상투적인 열정을 가진 사람들 같아요. 그 다른 열정들이 모두 부딪쳐 있다고나 할까요. 이런 점들을 정말 잘 표현한 것 같아요. 영화 처음의 결혼식 장면은 굉장히 길잖아요. 이런 것은 머리로는 나오기 어려운 것인데, 종종 아마추어나 제작 여건 때문에 이런 장면이 나오기도 하지만, 이 경우에는 다르죠. 어떤 종류의 성숙이 없으면 한번 실수로 마는데, 이 작품에는 예상할 수 없는 이런 장면들이 계속 나와서 좋아요. 인물의 모습들도 그렇고요. 이런 점들이 숏 하나하나 속에 인물들에 대한 애정으로 만들어 질 수 있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김나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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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에서 ‘동지’로, 혹은 ‘취향의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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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9일 7시, ‘2008 시네마테크 친구들 영화제’의 친구들 중 첫 번째로 관객과의 대화를 갖게 된 정성일 영화평론가가 뽑은 영화는 마츠모토 토시오 감독의 1971년 작 <수라>였다. 비교적 많이 알려지지 않은 감독의 영화인만큼 관객들로 가득 찬 극장에는 기대 섞인 긴장의 분위기가 감돌았고 “다음에는 영화 상영 후 GV를 했으면 좋겠다”는 김성욱 프로그래머의 바람과 함께 정성일 영화평론가의 상영 전 영화 소개가 이어졌다.


앞질러서 얘기하자면 <수라>는 정성일 평론가가 표현한 것처럼, 그야말로 아수라장 같은 영화였다. 2시간이 넘는 상영 시간 동안 비극적인 복수의 이야기를 극단적인 클로즈업과 기괴한 트래킹 숏, 대비 강한 조명이 눈에 띠는 이 영화는 분명 ‘보기 편한’ 영화는 아니었다. 그런 맥락에서였을까? 정성일 평론가가 먼저 꺼낸 말도 “이 영화는 누구나 만족할만한 영화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저마다의 명단을 갖고있는데 저는 이 영화가 세 번째 명단 ‘취향의 영화’에 속한다고 생각합니다”였다. ‘취향의 영화’라니? 사전 인터뷰에서 “이제 시네마테크의 프로그램도 교과서적 목록에서 벗어날 때가 되었다”라는 의미심장한 발언을 하긴 했지만, ‘취향의 영화’란? 이 또한 짐작컨대 정성일 평론가식의 나름의 영화 분류법 중 하나로 여겨진다.


“영화를 사랑한다, 영화를 본다는 사람들에게는 저마다의 명단이 있습니다. 첫 번째는 인간된 도리로써 꼭 봐줘야만 하는, 교양의 영화 이를테면 오손 웰즈의 <시민 케인>, 장 르누아르의 <게임의 규칙>, 오즈 야스지로의 <동경이야기>, 존 포드의 <역마차> 같은 영화고, 두 번째는 누구나 사랑할 수밖에 없는, 빠져드는 영화로 하워드 혹스의 <리오 브라보>, 타르코프스키의 <거울> 같은 영화들이 있습니다. 여기까지는 영화를 사랑하는 많은 친구들의 영화 명단입니다. 그리고 세 번째 명단이 있습니다. 바로 ‘취향의 영화’입니다.”

정성일 평론가는 취향의 영화란 누구나 좋아할 법한, 누구한테나 걸작으로 손꼽힐만한 영화는 아니라도 애정이 가는, 그런 영화들이다. 즉, 그가 뽑은 <수라>가 그렇다. 그의 말을 빌자면 영화 <수라>는 상영 후 기립박수를 보내는 이들도 있으나 ‘이게 무슨 개수작이야’라며 극장을 나가버리는 이들도 있을 수 있는 영화다. 말 그대로 취향이 갈리는 영화다. 1971년 개봉 당시에도 흥행에도 참패했고 평단에서도 그닥 주목받지 못한 영화라 한다. 본격적인 영화에 대한 얘기 전에 정성일 평론가는 <수라>에 대한 오시마 나기사의 장문의 글 중 일부를 인용하며 마츠모토 토시오와 오시마 나기사 사이의 논쟁을 소개했다. 그에 따르면 오시마 나기사는 마츠모토 토시오에게 보낸 글 중 마지막에 “마츠모토, 그렇게 영화를 하면 안돼”라고 했고 그에 대한 마츠모토 토시오의 반론의 글의 첫 시작은 “관객을 버려두어라. 그들의 뜻대로~”였다고 언급했다.

정성일 평론가는 “영화 <수라>는 일본에서는 너무나 잘 알려진 주신구라 이야기와 토카이도 요츠야 괴담을 합쳐놓은 얘기지만, 이야기를 너무 염두에 두지 않아도 될 것”이라 설명했다. 또한 “처음 컬러로 시작하나 곧바로 먹물을 부어 놓은 듯한 끊임없이 밤이 이어지는 화면을 보게 될 것”이라고 전했다. 특히 그는 1969년, 1970년이라는 일본의 특별한 시대적 배경에 대해 염두에 두고 영화를 봐야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동경대 야스다 강당사건과 적군파 린치 사건을 말하는 것이다.


끝으로 정성일 평론가는 마츠모토 토시오 감독이 당시 사건에 대해 쓴 글을 통해 영화에 대한 소개를 대신했다. 그가 읽은 글의 일부를 빌어보면 다음과 같다.

“아! 젠장. 이게 뭔가, 도대체 혁명이란? 당신들의 투쟁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각자 투쟁하자. 공동체의 환상을 포기하자.”

핵심은 바로 ‘공동체의 환상’이다. 정성일 평론가는 “마츠모토는 죽음과 삶의 경계인 수라에 머무는 느낌, 자살하는 심정으로 영화를 찍었을 것”이라며 "주신구라에서 누구나 충신이 되지 않고 다른 생각을 하는 이가 있듯이 <수라>라는 영화도 그러한 공동체에 환상에 대해 다룬다"고 소개했다. 영화를 접하고 나면 정성일 평론가가 왜 이 영화를 취향의 영화라 부르고 공동체의 환상을 깨뜨리는 영화라 했는지 알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덧붙여 그는 자신에게 친구들 영화제에서 영화를 고를 수 있는 티켓이 주어지는 한 앞으로도 계속 ‘취향의 영화’를 선택할 것이고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들끼리 ‘친구’가 될 수 있지만 취향의 영화에 동의 혹은 지지를 보내는 사람은 친구를 넘어서 ‘동지’가 될 수 있다고 힘주어 말했다. “오늘 이후로 <수라>를 본 사람이 많아질 것이기 때문에 조금 섭섭한 마음이 든다”라고 농담을 건네는 정성일 평론가는 “2시간 40분 동안 카메라가 딱 세 번 움직이는 <중국여인의 연대기>(왕빙, 2007)를 걸작이라고 한 사람들과 <기사에게 경배를>(알베르 세라, 2006)을 본 36명의 사람들, 혹은 10시간 40분의 <필리핀 가족의 진화>(라브 디아즈, 2004)를 하루 종일 같이 본 28명에게 동지들이라고 부르고 싶다. 그리고 그 명단에 오늘의 <수라>를 보고 박수를 보내는 이들도 함께하고 싶다”고 밝혔다.

“1월 9일 이 자리에 오신 여러분들에게 ‘동지들’이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만약, 이 영화가 관객들의 세 번째 명단에 들어갈 수 있을까, 혹은 내가 ‘동지’가 될 수 있을까 궁금해 하는 분들이 있다면 이제 한 번 남은 1월 27일(일) 8시의 <수라> 상영을 놓치지 마시길. 어쩌면 그 날 시네마테크에서 당신의 새로운 영화 동지를 만날 지도 모르는 일이다. (취재:김보년, 편집: 신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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