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승완 감독이 선택한 로버트 알드리치의 유작 <캘리포니아 돌스>


2월 12일 저녁, 이번 친구들 영화제에 류승완 감독이 선택한 로버트 알드리치의 유작인 <캘리포니아 돌스>가 그의 추천의 변을 시작으로 상영되었다. 류승완 감독은 이 영화를 뽑은 이유에 대해 작년에 힘든 겨울을 보냈기 때문에 희망을 이야기 하는 영화를 함께 보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의 바람대로 상영 후에는 주인공들의 막판 뒤집기 승리에 관객들의 뜨거운 박수갈채가 쏟아졌고 곧 그 열기를 이어 류승완 감독과의 유쾌한 시네토크가 펼쳐졌다. 희망의 결의를 잃지 말자는 류승완 감독의 다짐과 함께, 관객들의 질문이 쇄도했던 열정 어린 시네토크 현장의 목소리를 전한다.






김성욱(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래머) : 알드리치의 다른 영화나 드 팔마의 작품도 추천했었는데 최종적으로는 이 영화를 상영하게 되었다.

류승완(영화감독) : 필름 수급이 언제나 문제이지 않은가.(웃음) 사실 제일 소개하고 싶었던 것은 마이클 위너의 <데스 위시>였는데 지금 준비하고 있는 영화와 비슷한 맥락이 있어서다. 또 추천 하고 싶었던 영화로 브라이언 드 팔마의 신작인 <리댁티드>도 있었다. 드 팔마 감독이 HD로 만든 일종의 가짜 다큐멘터리인데, 미국이 전쟁을 치루는 국가의 사람들에게 얼마나 잔혹한 짓을 하는지를 보여준다. <리댁티드>에서 드 팔마는 UCC를 시도했는데, 그 점이 아주 흥미로웠다. 그런데 이 작품도 어려운 듯 해서 그런 절망 속에서 ‘그렇다면 <캘리포니아 돌스>를!’하며 추천했다. 초반에 꿀꿀하지만 막판 뒤집기 한판으로 답답한 시대를 살아가는 국민들에게 희망이 되는 영화가 아닌가 싶다.


김성욱 : <캘리포니아 돌스>는 알드리치의 유작이라는 점과 피터 포크의 능수능란한 수완이 인상적이다. 일종의 쇼 비즈니스 사업을 엄청난 저예산으로 일궈내는 데, 그 안에 알드리치의 총 생애가 집결되어 있는 듯하다.

류승완 : 나도 비슷한 생각이 들었다. 알드리치가 여자 프로 레슬링을 통해서 ‘영화와 같은 흥행산업을 얘기하는 거였구나’했다. 피터 포크가 수완을 발휘하는 마지막 장면이 특히 감동스러웠다. 여자 레슬러들은 육체노동에 가까운 연기를 한다. 화려한 연예산업의 뒷면에는 이 여자들처럼 자기 육체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마지막 장면에서 피터 포크는 대중들을 매수한다. 이런 장면들에서 자기 몸뚱이들로 살아가는 사람들은 누구와 손을 잡아야 하는가에 대한 감독의 시선이 나타나 감동스러웠다. 매수 하는 사람들은 노인 아니면 애들이다. 반주하는 할아버지와 아이들을 통해서 관객들을 움직이는 모습도 감동적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영화는 스포츠 영화의 껍질을 한 일종의 노동영화가 아닌가 생각한다.


김성욱 : <롱기스트 야드>라는 영화를 보았나? 이 영화와 견줄만한 작품으로 그 영화도 진짜 노동영화다.(웃음)

류승완 : 아직 못봤는데 오늘 DVD를 선물 받았다. 알드리치의 영화는 대부분 노동영화 같다. <더티 더즌>같은 전쟁 영화도 노동하는 것 같으니까. 근데 이 영화는 다른 알드리치 영화와 다른 점이 있다. 알드리치 다른 영화들에 나오는 장르적인 인물이 아니라 사실적인 인물이 등장한다는 점이다.<더티 더즌>에서도 병사들을 훈련시키는 리 마빈의 역할이 중요하고 독특하게 나타는데, 그런 인물과는 달리 피터 포크는 우리가 아는 사람 같다. 그런 인물 묘사가 어쩌면 알드리치가 자기 모습을 영화 속에 남겨 놓은 건 아닌가 한다. 이 영화는 보면 볼수록 인물들을 알면 알게 될수록 경기 장면의 느낌이 달라진다. 프롤로그의 경기는 제3자로 경기를 구경하는데 반해 마지막 경기는 우리가 자연스레 응원하고 있다. <록키>같은 영화들을 보면 주인공들을 응원해줘야 한다고 막 맞춰가지만, 이 영화는 그런 것 같진 않다. 이 영화는 그 사람들을 알게 하는 것만으로도 그들을 충분히 응원하게 만든다.


관객1 : 마지막 부분에 라이벌이 주인공들 지라고 하면서 TV 경기를 보는 장면이 있다. 스포츠 영화에서는 경기를 TV로 지켜보는 사람들을 찍은 장면이 꼭 클리셰처럼 등장하는데. 

류승완 : 성공한 드라마라면 라스트에 도달하기 전까지 관객은 어떤 식으로든 주인공과 교감하게 된다. 만약 극 안에 있는 주인공을 제외한 사람들이 주인공이 아닌 다른 대상을 응원하면, 영화 밖에 있는 사람들은 주인공을 응원하게 되는 결과를 갖게 된다. 그리고 다른 시선들이 개입하는 것이 클리셰라고 했지만, 이것은 보는 관객들의 감정을 환기시켜준다. 기술적인 측면에서는 경기의 실제 시간을 다 보여주지 못할 때 외부의 시선을 개입시켜서 점핑시켜주는 효과도 있다.


관객2 : 영화는 중간 중간에 주인공들의 직업관이나 윤리관에 대해 언급하는 듯 하다 결국 그것들을 가볍게 넘겨버리는 것 같은 느낌이 있는데.

류승완 : 나도 그렇지만 이쪽 업계에 있는 사람들이 어떤 때는 발가벗은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사람들은 싫든 좋든 자기가 선택한 삶을 살아야 하는 상황이다. 지켜보는 사람들은 이렇다 저렇다 말은 할 수 있겠지만, 이들은 그렇지 않다. 이 영화는 하나의 입장이 맞다고 이야기하는 게 아닌 거 같고 그게 더 어른스럽게 보인다. 이 영화는 사건중심의 영화가 아니라 어떤 시점을 살고 있는 사람들을 포착한 듯이 만들어진 영화라서, 이 영화 안에서는 도덕적으로 여자의 행동이 잘못되었다 하는 판단이 무의미해지는 것 같다. 특별한 시선을 가르치려고 하지 않는 감독의 시선이 좋다.






관객3 : 이 영화 보면서 ‘주인공들이 진정한 승리자가 맞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여자들이 승리를 거두고 나서 가는 곳엔 또 어떤 룰이 있을까라는 생각과 함께 링 자체가 허무하게 보였다.

류승완 : 영화를 볼 때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동일한 장소에서 영화를 본 사람들은 같은 영화를 본 것 같지만 모두 다 각자의 영화를 보았을 것이다. 관객 분이 말씀한 느낌도 받아드릴 수 있는 부분이다. 나는 이 영화가 상영하는 두 시간 안에서는 두 여자가 아는 사람같이 느껴져서 그들이 승리하는 것이 고마웠다. 저들이 승리한 후 피터 포크와 어떻게 살아갈까라고 질문한다면 그건 모르는 것이다. 나는 이 영화를 복잡한 접근보다는 사회 안에서 저렇게 사는 사람들의 모습을 지켜보는 것으로 보고 싶다. 이 영화를 만든 사람이 주려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사람들이 힘든 상황들 안에서 힘들게 살지만, 그 안에서 이런 즐거움도 있다는 것을 말하는 것 같다. 그것이 내가 영화를 추천한 이유이기도 하다.


관객4 : 언제부턴가 영화들이 지는 데서 오는 감동을 주는 경우가 많은데, 이 영화는 승리함으로서 오는 감동을 주는 영화였다. 이 두 가지 상반된 감동에 대해서 감독님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류승완 : 각자의 매력이 있다. 나는 액션 영화가 유사 스포츠 관람 형태라는 말을 자주 한다. 액션 영화에서 우리가 응원해야 할 대상을 찾아내고 그가 승리하면 환호하고, 그가 패배하면 비극을 느낀다. 감동이라는 것은 마음이 움직인다는 것인데, 이건 누가 이기고 지는가의 문제가 아니라, 영화의 전체적인 드라마의 문제인거 같다. 그 인물에 얼마나 동의하고 응원할 수 있게 하는가의 문제이다. 의도적으로 그런 것에 거리를 두려는 영화들도 있다. 인물을 차갑게 응시하는, <밀리언 달러 베이비> 같은 영화가 그렇다. 그런 영화를 보면 거리를 둠으로서 또 다른 감동을 갖게 한다.


관객5 : 마지막 장면이 너무 좋았다. 그 장면에서 정정당당한 룰 같은 건 없었다. 주인공들이 대중과 음악을 가지고 다시 판을 엎었다. 우리도 세상을 엎어야 하지 않겠나.

류승완 : <겟 카터>를 보라. 마음에 드실 거다. (웃음)



김성욱 : 나 역시 마지막 장면이 감동적이었다. 링에는 언제나 규칙이 있고 또 예외가 있다. 그 링에 올라야 할 순간이 있고, 싫다면 안 오를 수도 있다. 이 판단의 과정이 피터 포크와 두 레슬러 사이에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들의 결정은 어쨌든 링엔 올라야 한다는 것이다. 또 링은 계속 존재한다는 거다. 하지만 링이 계속 되는 것이지, 사람이 계속 되는 것은 아니다. 일시적으로 주인공들이 이겼지만 그 뒤로 어떻게 될지는 모른다. 영화의 네모난 화면도 마찬가지다. 그 화면을 채울 감독들도 계속 존재할 것이다. 링과 화면은 관객과 선수보다 오래 지속될 수밖에 없다. 우리가 링 안에서 다툼을 벌이고, 일시적으로 승리하겠지만, 그 순간만큼은 또 기쁨을 누릴 필요가 있다. 그건 우리들의 프라이드니까. 알드리치는 그걸 정확하게 알고 있는 감독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 점이 좋다. 링을 포기하려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웃음) 완전히 링 바깥으로 나가면 자유로울 것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는 그 공간을 채우고 다툼을 벌일 것이다. 류승완 감독 또한 언제든 링위에 오를 준비가 된 선수란 생각이 든다. `
류승완 : 이 영화를 보고 여러분과 나누고 싶은 메시지는 현재를 살아가라는 것이다. 여기 있는 인물들은 미래를 위해 안달복달하지 않고 현재에 충실하게 살아간다. 마지막의 매력적인 피터 포크의 쇼도 현재의 상황을 직시할 수 있는 시선과 판단력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영화는 자신의 현재와 주변을 본다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일깨워주는 것 같다. 내가 링 위에서 싸우는 사람들에 관한 영화를 만들 때, 실제 복서 훈련하는 체육관에 가서 보고 놀란 글귀가 있다. ‘내가 세계 챔피언일지도 모른다!’라는 말이다. 그거 보면서 진짜 웃겼는데, 생각해보니 무시무시한 말이다. 1%의 가능성이라도 있으면 시도를 한다는 거 아니겠냐. 너무 무모해도 안 되겠지만, 가능성과 희망이 사라지면 끝장이다. 영화보고 영화 만들면서도 느낀 게 있는데, 그건 바로 맞는 걸 무서워하면 때리지를 못한다는 거다. 이건 진리다. 한 대 때리기 위해서는 한 대 맞을 것을 먼저 각오해야 나아갈 수 있다. 여러분들이나 나나 살아가면서 많은 일들에 부딪치지만, 이 진리를 곱씹으며 주저앉지 말고 잘 버텨서 살아갔으면 좋겠다.


정리 : 김나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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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일리 친구 김군의 ‘친구들 영화제에 관한 자문자답’


지난 3월 1일로 ‘2009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가 막을 내렸다. 나는 영화이론을 공부하는 학생이고 작년부터 친구들 영화제 소식을 전하는 데일리 활동을 했다. 한 달간의 여정이 끝나갈 무렵 혼잣말로 혹은 친구들에게 간간히 ‘이제 돈 주고 영화 볼 생각하니 아쉽다’란 말을 농담처럼 흘렸지만 단순한 자원봉사, 그리고 약간의 혜택을 넘어 친구들 영화제가 열리는 여기 이 곳, 서울아트시네마는 내게 있어서는 제2의 고향과 같다. 내가 발품 팔아 좀 뛰어다니면 영화를 보다 폭넓게 보고 많은 담론을 들을 수 있으니 이 영화제를 기다리고 영화제에서 일하게 된 것을 영광으로 여기지만, 내가 시네마테크, 아트시네마란 공간을 사랑하는 건 반짝거리는 이 시기만은 아니다. 친구들 영화제를 시작으로 나는 앞으로 내게 다가올 이 공간의 다양한 프로그램을 더 기다리고 고대한다. 그런데 그런 장소가 요즘 흔들리고 있다.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이 몰려오자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시네마테크 지원 사업 공모제 전환 반대 서명운동을 펼치기도 했고, 지난한 싸움이 되더라도 더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도록 계속 노력할 계획이다. 그러기 위해선 그간의 과정에 대해 되돌아보고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보는 작업도 필요하리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한번 객관적 인터뷰어가 되어 스스로에게 질문하고 인터뷰이로서 영화제가 열린 한 달 동안 느꼈던 일들과 시네마테크 전용관 서울아트시네마에 대한 생각을 답해보았다. 이 자문자답은 2009 친구들 영화제의 기억을 간직하기 위함이며, 나아가 앞으로도 쭉 시네마테크 운동이 지속되길 바라고, 관객인 내가 조금이나마 그 운동에 보탬이 될 수 있는 존재임을 스스로 각인하는 행위이기도 하다. 현재 시네마테크는 관객을 소환하고 있고, 나는 기꺼이 그 소환에 응할 것이다. 다음이 스스로에게 던진 자문자답이다.





 


Q. 작년에도 데일리 친구로 활동했었는데 처음에 어떻게 참여하게 됐나.

A. 나는 영화이론을 배우는 학생이다. 학교에서 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래머이시기도 한 김성욱 선생님 수업을 듣기도 했었고 영화를 공부하고 좋아하니 당연히 아트시네마에 자주 오기도 했었다. 원래 아트시네마 월간 소식지에 들어가는 인터뷰나 GV 등이 있을 때 종종 행사 녹취파일을 정리하곤 했었는데, 선생님이 이번 친구들 영화제 데일리팀으로 다시 활동해보지 않겠냐고 제안했다. 나로선 마다할 이유가 없다. 당연히 좋다고 했다.



Q. 왜 당연히 인가.

A. 영화도 좋아하지만, 아트시네마란 공간 자체를 좋아한다. 도움이라고 하긴 좀 거창하지만 내가 친구들 영화제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될 수 있다는데 그 점만으로도 좋을 것 같았다. 그리고 영화를 공짜로 볼 수 있다는 점도 크게 작용했다. (웃음)



Q. 표정에 그 이유가 더 크다고 써있는 듯 하다. (웃음) 막상 참여해보니 어땠나. 무엇을 느꼈는지.

A. 막, 그렇게 보람이 있다거나 한건 아니었던 것 같다. 그냥 시네토크에 참여해서 녹취를 푸는 것뿐이었으니까. 그런 건 사실 아무나 다 할 수 있는 것 아닌가. 하지만 올해 영화제에는 프리뷰를 쓸 수 있는 기회도 있어서 많이 배울 수 있었다. 김성욱 선생님은 원래 수업 때도 학생들이 쓴 글에 대해서 코멘트를 잘 안 해주시는 편인데, 이번 프리뷰 때는 두 세 번씩 계속 코멘트 해주면서 글을 다듬어 주셨다. 스스로도 이게 웬 떡인가 했다. 다음에도 기회가 있으면 더 잘 써서 공식 카탈로그에 실릴 수 있도록 해보겠다.



Q. 기대해보겠다. 데일리 팀이라면 누구보다 친구들 영화제에 관심이 있다고 해도 될 텐데, 올해 상영했던 영화들은 어떻게 보았나.

A. 아무래도 작년 영화제 때보다는 상영 편수가 줄었으니까 아쉬운 점이 있다. 작년에는 친구들이 선택한 영화 말고도 이두용 감독님, 아벨 페라라, 프랑수아 트뤼포 특별전 등 영화들이 많지 않았나. 환율 때문에 힘들었다고 하니까 어쩔 수 없지만, 좀 아쉬웠던 건 사실이다. 하지만 그 중에서 ‘최선의 악인들’ 프로그램은 유독 돋보였던 것 같다. 물론 거기 상영된 영화가 다 좋았던 건 아니지만 두 분 감독님의 취향 같은 것을 엿볼 수 있어서 재미있었다. 오승욱 감독님이 선택한 영화들에는 어떤 쓸쓸하고 고독한 정서가, 박찬욱 감독님이 선택한 영화들에는 이런 말은 좀 상투적이지만, 장난기 어린 악취미가 강하게 느껴졌다.



Q. 이번 친구들 영화제에서 가장 좋았던 영화를 꼽는다면.

A. 음... 물론 <선라이즈>다. 그 전에 비디오의 조악한 화질로 두 번 정도 봤었는데, 필름으로 보니까 확실히 느낌이 다르더라. 마지막 장면에 나오는 할머니의 클로즈업이라든지 도시의 풍광 같은 것들은 역시 커다란 스크린으로 봐야겠다는 생각이 저절로 들었다. <선라이즈>가 원래 기대했던 영화라면 별 기대 없이 봤다가 좋았던 영화도 있다. <캘리포니아 돌스>와 <겟 카터>가 그랬다. <캘리포니아 돌스>의 마지막 장면의 파워에 대해서 많이 얘기를 하던데, 나는 초, 중반부의 떠돌아다니는 장면의 느낌이 더 좋았다. 그냥 같은 시퀀스들의 반복인 것 같던데, 그게 작은 변화를 주면서 계속 쌓여나가니삶의 고단함이랄까 그런 정서가 저절로 느껴지더라. <겟 카터>는 쿨하면서도 화끈하게 치고나가는 영화니까 말 그대로 흥미진진하게 봤다. 사실 시네마테크를 찾는 것도 이런 작품을 만나기 위해서가 아닐까 싶다. ‘세계 명화 시리즈’ 이런 목록에서는 찾아보기 힘들지만 고유한 매력을 가지고 있는 영화들. 좀 오버해서 말하자면 ‘이런 즐거움은 나만 느꼈을 거야’라고 생각하게 만드는 영화들 말이다.



Q. 오히려 <선셋 대로>같은 영화가 기억에 남지는 않았나. 왜 ‘세계명화시리즈’에 항상 꼽히는 영화지만 어쩌다 보니 못 본 영화들도 생기는데 그런 영화를 숙제하는 심정으로 보았을 때 역시 좋다할 때도 있고 기대를 깨는 경우도 있다. 허나 이 모두 즐거움으로 다가온다. 이번 영화제 상영작 중 가장 별로였다고 생각하는 작품은.

A.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김지운 감독이 추천했던 <소년, 소녀를 만나다>다. 김지운 감독이 너무 거창하게 추천해주고 시네토크 때도 너무 멋있는 이야기들을 들려줘서 싫어하진 않기로 했지만, 하여튼 내 느낌으론 별로인 영화였다.



Q. 왜 별로였다 생각하는가.

A. 이야기의 매혹 없이, 김지운 감독의 말을 빌자면 “카페 한 쪽 벽을 장식할 정도로 멋진” 이미지들만 잔뜩 이어놓은 영화 같았다. 레오스 까락스 감독이 고다르를 좋아한다고 했는데, 고다르의 초기작을 잔뜩 의식하고 촬영, 편집한 표가 난 것 같았다. 보고 있자니 조금 힘들었다. 이상하게도 나는 좋은 영화들은 좋았던 점들 얘기할 수 있는데, 싫은 영화들은 왜 싫은지 이야기를 잘못하겠다. 그냥 싫었다.



Q. 영화제 기간 중 아트시네마 위기설이 다돌며 문제가 있었다. 스스로 직접 관객서명운동도 시작했다. 어떻게 그런 결심을 하게 되었나.

A. 뭐 할 얘기가 있겠나. “나는 영화진흥위원회의 시네마테크 사업 공모제 전환에 반대한다. 공모제 전환은 서울아트시네마의 운영 주체를 멋대로 바꾸는 정책이다”라고 서명 받을 때 이야기했었다. 시네마테크 전용관인 아트시네마는 관객의 것이다. 영진위가 사업주체를 선정할 결정권을 가지고 있지도 않고 공동체와 지속성이 보장되어야 하는 이 사업을 1년 단임 공모하는 것 역시 말이 안 된다 생각한다.



Q. 관객서명운동을 계속해 나갈 것인가.

A. 원래 500명 정도 받으면 많이 받는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딱 8일 서명 받아서 649명의 서명을 받았다. 페이스는 조금 떨어질 수도 있겠으나 1,000명 넘길 때까지 받았으면 싶다. 일단 공모 전환은 올해는 유보된 상태이나 이번에 벌어졌던 일을 관객들이나 영진위가 잊지 못하게 하고 싶다. 영진위가 엄청난 악의 집단이라서 서울아트시네마를 없애려고 한 건 아니라고 생각하고 싶다. 우리가 열심히 우리의 의지를 지속적으로 어필해나가고 대중의 공감대를 이끌어낼 수 있다면 현재보다는 내년이 또 그 다음 해에 일이 좀 더 쉬워질 것이라고 믿는다. 뭐 아닐 수도 있겠지만, 어쨌든 좀 더 쉬워졌으면 좋겠다. 그렇게 믿고 계속 열심히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도울 것이다.



Q. 끝은 또 다른 시작이라고 하지 않나. 마지막으로 하고픈 말 한마디는.

A. 이제 다시 돈 주고 영화 볼 생각하니까 영화제가 좀 더 길었으면 하는 생각을 했다. 물론 영화를 보는 돈이 아까운 건 아니다. 단지 가난한 학생의 신분이니. 공짜 영화들이 내게 오는 찬란한 시간은 지나갔지만 앞으로도 그냥 꾸준히 영화 보러 극장에 나오겠다. 시네마테크는 내게 안식과 기쁨과 배움을 선사하는 장소니까. 개인적 바람으로는 영미권 영화 말고 아시아권 영화도 좀 많이 틀어줬음 하지만, 뭐 프로그래머님이 생각이 있으시겠지. 여하튼 시네마테크는 지속되어야 한다. 내 고향을 떠날 수 없으니 난 지금 시네마테크의 소환에 기꺼이 응해 지키려 한다. 난 관객, 이 극장의 주인이니까. (김보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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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계수 감독과 배우 하정우가 함께 추천한 하워드 혹스의 <히스 걸 프라이데이>

 

친구들 영화제가 막바지에 이른 2월 20일과 25일, 마지막 상영작으로는 엄청난 말이 쏟아지는 하워드 혹스의 <히스 걸 프라이데이> 상영되고 양일에 걸쳐 이 영화를 함께 추천한 전계수 감독과 배우 하정우의 시네토크가 이어졌다. 원래 시네토크는 20일에 예정되어 있었는데, 이날 배우 하정우의 촬영 일정이 겹쳐 부득이 참석하지 못하는 바람에 당초 예정일에는 전계수 감독만이 자리했고, 25일 두 분이 함께 관객을 만났다. 이번 영화제 마지막 시네토크로 자리매김한 25일 자리는 자신도 극장서 꼭 보고 싶었던 작품이며 관객과의 만남을 기대했다던 배우 하정우가 다시 기회를 갖고 싶다 해서 마련된 깜짝 이벤트다. 배우 하정우는 못 볼 뻔 했던 친구인 만큼 관객들 모두가 반가워했다. 현재 ‘요절복통 로맨틱 코미디’를 준비 중인 전계수 감독은 영화의 많은 대사량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에 대한 힌트를 얻기 위해 이번 영화제에 스크루볼 코미디의 전형이라 불리는 이 영화를 선택했으며 배우 하정우는 이 작품의 남자주인공으로 내정되어 있는 상태다. 이 자리에서 전계수 감독과 배우 하정우는 혹스의 연출방식부터 엄청난 양의 대사들이 나올 수 있었던 배경, 주인공 역을 맡은 배우 캐리 그랜트와 로잘린드 러셀에 대한 생각까지 영화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는 물론 현재 작업 중인 영화에 대한 얘기도 한껏 풀어놓았다. 여기에 <히스 걸 프라이데이>만큼 경쾌한 로맨틱 코미디를 만들어서 지금 같은 어려운 시기에 웃음을 주고 싶다고 말하는 전계수 감독과 배우 하정우가 두 차례에 걸쳐 관객과 나눈 애정 어린 대화를 싣는다.

 





김성욱(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래머) : ‘요절복통 로맨틱 코미디’라는 <러브픽션>을 준비하고 있는 전계수 감독과 하정우 씨가 이번 영화제 선택작으로 <히스 걸 프라이데이>를 뽑았다. 어떻게 혹스의 이 영화를 추천할 생각을 했나. 하정우 씨는 못 보는 줄 알았는데 어려운 촬영 일정 속에서도 극장을 찾아주셔서 매우 반갑다. 영화를 본 첫 느낌이 어땠는지. 

전계수(영화감독) : 하워드 혹스의 <히스 걸 프라이데이>는 이전에 EBS에서 본 적이 있고 최근에 다시 보게 되었다. 일단 이 영화는 엄청난 대사량이 특징이다. 다른 할리우드 고전 스크루볼 코미디의 어떤 영화들보다도 많은 대사를 90분 안에 두 배우가 소화하고 있다. 현재 준비하는 영화도 대사가 엄청나게 많다. 보통 속도로 읽으면 두시간 반 정도 나올법한 대사를 100분 안에 처리하게 하기 위한 요책에 대해 고민하던 중 혹스의 작품이 힌트가 되지 않을까 싶어 고르게 되었다. 지난주 극장에서 보고 얼마 안 되서 다시 본건데도 재밌다. 볼 때마다 탁월한 리듬감에 감탄한다. 시각적 스펙터클보다 청각적 스펙터클로 승부하는 영화라고 생각한다.

하정우(영화배우) : 현재 <국가대표>를 촬영 중인데 봄이 오려고 해서 하루하루가 전쟁터다. 그래도 참여할 수 있게 되어 기쁘다. 영화는 너무 재밌게 봤다. 카메라는 워킹 없이 픽스 상태로 되어 있는데, 대사 스피드가 워낙 빨라서 거의 연극적인 느낌을 준다. 대사 템포, 배우들의 리드미컬한 브로킹이 영화를 많이 매워주면서 재미를 준다. 놀라웠다.

 

김성욱 : 이런 대사들을 보고 나면 실제로 시나리오에 다 쓰여 졌던 걸까 아니면 배우가 직접 각각의 상황에 즉흥적으로 대응한 것인가가 궁금해진다. 감독으로서 이런 부분들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전계수 : 이런 식의 영화 전개는 혹스의 전략이라고 생각한다. 몇 번째 보지만 대사가 너무 많으니까 아직도 얼 윌리엄즈가 정확히 무엇을 잘못했는지 잘 모르겠다. 이것은 1920년대 언론이 말하는 진실과 허위가 불분명하고 법과 공권력에 대한 불신이 팽배했던 혼돈의 도가니 같은 시카고의 사회상을 대사를 통해 정신없는 리듬감으로 보여주는 것 같다. 최근에 개봉한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체인질링>과 롭 마샬의 <시카고>도 1920년대 부패한 법과 공권력을 비판하고 있는데 할리우드 감독에게 있어 1920년대 시카고는 모든 부패의 온상과 법질서를 해소하는데 가장 좋은 시대적 배경이 될 만한 공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히스 걸 프라이데이>은 <특종기사(The front page)>라는 연극을 원작으로 한 영화다. 원작에서는 로잘린드 러셀이 맡은 힐디가 원래 남성이었고 언론과 사회에 대한 비판이 영화보다 훨씬 강하게 드러나 있다. 하워드 혹스가 이 작품을 영화화하면서 힐디를 여성으로 바꾸고 로맨스를 집어넣어 재미있게 각색한 것이다. 영화와 관련된 몇 가지 에피소드를 들은 적이 있는데, 이 영화 여주인공인 로잘린드 러셀은 촬영 2주일 전에 캐스팅이 되었다 한다. 이전에 당대의 내로라하는 여배우들에게 출연 권유를 했지만 모두 거절당했다고 하는데, 나중에 로잘린드 러셀이 그 사실을 알고 굴욕감을 느꼈다 한다. 또 처음 촬영에 들어갈 때 로잘린드 러셀은 혹스가 아무런 디렉션도 주지 않고 알아서 하라고만 말해서 답답해 했다 한다. 하여 그녀는 감독의 연출방식에 대해 캐리 그랜트에게 물었는데 <히스 걸 프라이데이> 이전에 <베이비 길들이기>와 <오직 천사에게만 날개가 있다>라는 작품을 같이 하며 혹스의 연출스타일을 알고 있던 캐리 그랜트는 ‘당신이 마음에 안들 때 얘기할 거다’고 말했다고 한다. 로잘린드 러셀에게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던 것은 그녀가 맘에 들었던 것이다. 혹스는 연출할 때 거의 모든 것을 배우에게 맡겼고 실제로 배우들이 자신들의 대사를 쓰기도 한 것으로 알고 있다. 캐리 그랜트는 워낙 글재주가 좋았던 사람이고 로잘린드 러셀은 주당 200 달러에 개인 작가를 고용하여 자기 대사를 쓰게 했다고 한다. 혹스가 전하려는 1920년대 시카고 사회에 대한 비판적인 메시지와 캐리 그랜트와 로잘린드 러셀이 서로 지지 않으려고 써놨던 무수한 대사들이 합쳐지면서 엄청난 양의 대사들이 나올 수 있었던 것 같다. 영화를 보다 보면 어떻게 저렇게 빨리 대사를 할 수 있나 생각하게 되는데, 혹스는 배우들이 자기의 입에 맞는 대사들을 직접 쓰게 했다고 짐작된다. 이런 면에서 혹스는 배우들에게 굉장히 많은 자율성을 주어 연기하도록 했고, 그 결과 정신없이 청룡열차를 탄 듯이 말의 쾌감으로 전개되는 멋진 영화가 탄생된 것이라 생각한다.

 

김성욱 : 개인적으로 레스토랑에서 처음 셋이 앉아 식사하면서 대화하는 장면을 좋아한다. 이 장면에서 캐리 그랜트가 로잘린드 러셀의 물잔을 들어서 마시다가 실수인지 의도적인지 순간적으로 간파되지 않는 방식으로 양복에 물을 흘리는데 그런 행동이 재미있다고 느껴졌다. 이 순간은 어떤 컷도 없이 순식간에 진행되기 때문에 계획된 행동이라는 것을 예측하지 못하다가 레스토랑 지배인과의 대화를 통해서 바로 전에 있었던 행동들을 이해하게 된다. 이런 장면처럼 <히스 걸 프라이데이>는 대부분 한 공간 안에서 배우들이 계속 움직여나가고 그 행동과 움직임들을 관객들이 관찰하며 인물들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 간파하게끔 만들어간다. 반면 이런 방식에 포함되지 못하는 부류의 인물도 등장한다. 로잘린드 러셀의 약혼남과 주지사의 비서가 그렇다. 그들은 시골에서 올라온 이방인들이고 도시에 살고 있지 않는 사람들로 굉장히 순박하게 그려져 도시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속도에 따라가지 못한다. 도시적 인물로 그려진 로잘린드 러셀과 캐리 그랜트가 포함된 세계와는 차이와 구별들이 있는데.

전계수 : 영화 초반부에 로잘린드 러셀은 자신의 약혼남을 신문사 안으로 들어가게 하는 것이 아니라 전남편인 캐리 그랜트을 밖으로 데리고 나와서 만나게 한다. 이것은 신문사라는 공간이 시골에서 올라온 약혼남은 들어올 수 없는 자기들만의 세계라는 것을 보여주지 않나 싶다. 그리고 약혼남과 시어머니는 형사 법원 프레스룸에 들어올 때마다 봉변을 당하고 계속해서 경찰서와 구치소로만 돌게 된다. 이러한 공간적 틀의 구성이 서로 분리되는 세계를 보여주고자 한 것이 아닐까 한다. 시골에서 올라온 사람들의 세계와 캐리 그랜트와 로잘린드 러셀이 포함된 세계에는 속도의 차이도 있다. 시골에서 온 약혼남과 주지사 비서의 경우는 말의 속도가 느리고 반면 기자들의 말은 굉장히 빠르다. 게다가 급박한 상황에서는 컷으로 나누어 각 기자들이 자기 본사에 송고하는 내용들이 하나의 문장이 되어버린다. 그래서 기사가 어느 누구의 오리지널한 것도 아니고 서로가 서로를 베끼는 상황을 보여준다. 말만이 아니라 배우들이 몸으로 하는 연기도 대단히 훌륭하다고 생각한다. 영화에서 인물들이 한시도 가만히 있지 않고 계속 끊임없이 무언가를 하고 있다. 하워드 혹스는 상대적으로 미디엄 쇼트를 많이 쓰고 컷 길이가 긴 감독 중에 하나로 알려져 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가 지루하게 느껴지지 않는 것은 그 안에서 배우들이 계속 움직이기 때문이다. 말만 티격태격하는 것이라 몸으로도 계속 무언가를 보여주고 있다. 로잘린드 러셀이 담배를 가지고 하는 행동이나 레스토랑 씬에서 처음부터 약혼남이 자리를 못 찾아 허둥대는 모습 등이 그렇다. 순간순간 말과 행동, 움직임이 서로 조응해서 독특한 템포를 전달한다. 혹스의 <베이비 길들이기>에서도 이런 면은 잘 드러난다. 캐리 그랜트와 캐서린 햅번이 나온 <베이비 길들이기>에서는 그런 면이 훨씬 더 과장되게 표현되어 십분에 한 번씩 넘어지고 옷이 찢어지고 봉변당한다. <히스 걸 프라이데이>보다 좀 더 큰 연기들을 보여주고 이런 연기들이 너무나 매끄럽게 진행되는 작품 같다. 이런 연기를 잘 할 수 있었던 것은 캐리 그랜트의 공도 클 것이다. 원래 캐리 그랜트는 곡마단에서 서커스를 하던 사람이었고 20년대에는 시카고 보드빌의 단원을 하면서 몸 쓰는데 일가견이 있었다 한다. 당시 대부분의 배우들이 거대 스튜디오에 소속되어 있었는데, 캐리 그랜트만이 유일하게 어떤 영화사에도 소속되지 않고 MGM, 콜럼비아, RKO와 같은 거대 스튜디오를 1년 단위로 돌아다녔다 한다. 그리고 자기의 작품 선택권까지 보장받은 유일한 배우였다고 알고 있다.





 

김성욱 : 지금 준비하는 영화에 하정우 씨를 캐스팅한 것으로 알고 있다. 그래서 이번에 두분이 같이 자리하게 된 것이기도 하다. 배우의 어떤 점을 보고 캐스팅하게 되었는지. 그리고 왜 하정우 씨와 이 영화를 함께 보고 싶었는지 듣고 싶다.

전계수 : 처음 시나리오 쓸 때부터 하정우 씨를 염두에 두고 있었다. 하정우 씨 얼굴에서는 여우 같은면과 더불어 자기가 파놓은 함정에 스스로 빠지는 코믹한 상황의 긴장감을 많이 끌어낼 수 있겠다 싶었다. 현재 준비하는 로맨틱 코미디 영화는 무얼 해도 잘 안되고 항상 주변에서 빈축을 사게 되는 소설가가 알래스카에서 온 겨드랑이 털 기르는 여자와 사랑에 빠지는 이야기다. <추격자>에서 하정우라는 배우를 볼 때 영화 속 인물 같은 모습을 발견했다. 왠지 겨드랑이 털에 빠질 것 같은... (웃음) 실제로 처음 시나리오를 보고서도 하정우 씨가 굉장히 좋아했다. 뒤늦게 들은 이야기인데 하정우 씨가중대 연극영화과를 나왔는데 중대 후배들 말에 의하면 세상에 그렇게 재미있는 사람이 없다고 하더라. 전혀 그렇게 안 보이지만 하정우는 엄청난 개그의 끼가 있는 사람이다. 또 하정우 씨는 말과 몸을 굉장히 잘 쓰는 배우라 생각한다. 이번 영화의 캐릭터도 대사가 많고 독특한 편이라서 이런 위험한 역할을 할 만한 사람이 하정우 씨 밖에 없겠다고 생각해 부탁했다. 모든 감독들이 비슷하겠지만 제 영화적 동기는 선배 영화에 대한 불만에서 시작한다. 이를테면 한국의 로맨틱 코미디 장르가 주는 답답함을 멋지게 넘어서고 싶다는 생각에서 이번 작품을 하게 되었다. 그 전략 중에 하나가 엄청나게 많은 대사를 하면서 서로 잡아먹을 듯이 하는 데이트를 표현하는 것이다. 한번 해볼 만하고 관객들도 기대해 볼만한 작품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하정우 씨와 이 영화를 보고 싶었던 이유는 대사량이 많은 영화이어서도 그렇지만 캐리 그랜트를 같이 보고 싶은 욕심도 있었다. 이 영화에서 캐리 그랜트는 정통파 연기보다 유들유들한 연기를 보여준다. 대사뿐만 아니라 행동도 굉장히 유연해서 화면에 빈자리를 찾아내면서 대화의 흐름을 계속 유도한다. 영화는 캐리 그랜트가 내뱉은 급작스런 멘트로 인해 벌어진 일들을 수습하느라 브루스와 힐디가 허둥대면서 전개되는데, 정작 그는 뻔뻔스럽게 들통 나면 웃음으로 때우면서 넘어간다. 그 모습만으로도 스펙터클을 느낄 수 있다. 내면 연기나 감정으로 화면을 장악하려하지 않고 말과 행동으로 플롯을 전개시킨다. 캐리 그랜트와 똑같은 캐릭터는 아니지만, 그로부터 많이 배울 수 있을 것 같아서 같이 보자고 했다.

 

김성욱 : 지금 말한대로 준비 중인 영화에서 하정우 씨는 몸도 잘 놀리고, 말도 잘해야 하는 캐릭터다. 대사가 빠른 로맨틱 코미디가 쉽진 않을 것 같다. <히즈 걸 프라이데이>는 40년 영화니까 70년 전 영화인데도 자막 속도가 너무 빨라서 화면을 보지도 못할 정도로 말이 빠르다. 이 영화에서 두 배우의 액션, 리액션은 어떻게 보셨는지, 그리고 앞으로 전계수 감독과 함께 할 영화와 비교해서 생각해보면 어떤지.

하정우 : 개인적으로 우디 앨런 영화를 좋아하는데, 거기서도 배우들이 빠른 템포로 대사를 가져가는 경향이 있다. 대사를 빨리 처리하는 것도 표현의 한 수단이기 때문에 영화에서 그런 것이 기능적으로 필요하다면 배우로써 소화해야한다고 생각한다. 이정도 템포에서 자신의 페이스, 애드립, 호흡을 가지고 가려면 기계적인 반복연습이 많이 필요했을 것 같다. 상대배우와의 강약 조절은 상대배우를 이해하고 대사를 잘 듣다보면 자연스럽게 해결되는 부분이다. 물론 그런 표현방법 외에 시나리오가 가진 이야기의 힘, 캐릭터의 유니크도 중요한데, 그런 면에서 이번 시나리오에 신뢰가 간다.

전계수 : 우디 앨런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이번 영화를 구상할 때 가장 영향을 많이 받은 영화가 <애니홀>이기도 했다. 말의 속도 뿐 아니라 세계관, 캐릭터 면에서도 그렇다. 정해진 플롯이 없어서 약간은 산만하게 연애와 삶에 대해 질문하는 영화다. 그 영화를 선택하고 싶었는데 작년에 장준환 감독이 이미 선택해서 못했다. 그러면 근원적인 의미에서 우디 앨런의 선배 격인 하워드 혹스는 어떻게 그런 것들을 다뤘는지 보고 싶어서 ‘아! 그렇다면 이 영화다’ 싶어 골랐다.





 

김성욱 : 캐리 그랜트는 고전기 배우 중에서도 상당히 매력적인 인물이다. 하정우씨는 인터뷰에서 로버트 드니로, 알파치노, 다니엘 데이 루이스 같은 배우를 좋아한다고 언급한 걸 본 적이 있는데 오늘 본 캐리 그랜트는 어떠했는지.

하정우 : 나의 배우에 대한 동경은 말론 브란도부터 시작되었다. 그 때부터 배우에 관심을 갖기 시작해서 그들이 나온 영화를 보면서 공부했다. 근데 오늘 캐리 그랜트를 보고 굉장히 충격 받았다. 캐리 그랜트란 배우에 대해선 막연히 멋진 배우라고만 생각했었는데, 이 영화를 보니까 굉장하고 거의 괴물 같은 배우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 편으론 내 연기의 뿌리가 이 사람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연극을 할 때부터 나와 비슷한 배우는 누가 있을까 생각을 많이 했었는데, 오늘 보니 감히 내 뿌리가 이 사람이었구나 싶더라. 내 성향이 이 영화의 캐리 그랜트와 비슷한 것 같다. 이런 캐릭터는 영화에서보다 소극장 연극에서 접하기 쉬운 편이다. 그걸 영화에 그대로 가져가서도 굉장히 매력적으로 다가오게끔 한다는 것이 놀라웠다. 대사 톤도 원래대로 가져가서 책 읽듯이 빨리 말하고, 큰 동작 없이 디테일한 움직임만 보여준다.

 

관객1 : 인물들이 속한 사회의 분위기와 캐릭터를 만들어내는 방식에 있어서 <히스 걸 프라이데이>가 빌리 와일더의 <원 투 쓰리>와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지금 감독님이 준비하시는 영화에 대해서도 짤막하게 언급은 하셨지만 전체적인 느낌, 캐릭터들은 어떤지 조금 더 부연설명을 듣고 싶다.

전계수 : 가제로 잡은 영화 제목은 <러브픽션>인데 부제는 ‘오해와 편견’이다. 연애를 하면서 갖게 되는 숱한 상대방에 대한 오해와 편견이 어떻게 자기 논리를 만들어내는지를 표현하고 싶다. 대표적으로 겨드랑이 털을 안 깎는 여자에 대한 편견이나 소설가에 대한 편견이 있다. 영화에서는 자기들이 원하지 않았지만 특수한 상황에 빠져서 오해를 사게 되는데 오해가 점점 불어나게 된다. 기본적으로는 연애이야기다. 연애하면서 벌어지는 잘못된 생각들과 오해들이 많이 나온다. 연애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오해와 편견이 잘못이 아니라 오해와 편견의 목록을 많이 늘려가는 것이 연애라고 생각한다. 비록 상대를 완전히 이해한다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오해든 편견이든 간에 그 사람에게 관심을 가지는 것이 중요하고 좋지 않나 생각하는데 영화에서 그런 면을 보여주고 싶다.

 

관객2 : <히스 걸 프라이데이>를 패러디해서 90분짜리로 만든다면 어떤 배우들을 주인공으로 하고 싶으며 사회나 정치, 언론을 풍자하는 주제는 어떻게 적용시키고 싶은지.

전계수 : 언론에 대한 얘기니까 내용은 ‘조선일보에선 무슨 일이 벌어질까’ 정도로 하면 재미있을 것 같다. 교활한 기자로는 여기 계신 하정우 씨가 어울릴 것 같고, 여자배우는 지금 같이 호흡을 맞추고 있는 강혜정 씨도 잘할 것 같다. 최대한 연민에 빠지지 않으려고 노력하면서 조선일보의 내부를 로맨틱 코미디란 장르로 파헤쳐보면 상당히 재밌지 않을까. (웃음) 영화의 배경은 20년대 말인데 기본적인 언론의 속성은 지금과 거의 비슷한 것 같다. 맨 처음에 나오는 자막타이틀도 그런 점들을 냉소적인 프리즘을 통해 보라고 더 강조하는 느낌을 준다.

 

관객3 : 10분 동안 한 테이크로 가는 장면에선 그 대사 연습을 얼마나 많이 했을까하는 생각을 했다. 하정우 씨는 대사 NG가 거의 없는 분으로 알려져 있던데, 평소 대사를 연습하고 소화시키는 자신만의 방법이 있는지.

하정우 : 학교 다닐 때 연극을 통해서 그런 훈련을 많이 했고 그것이 자양분이 되고 있다. 그 때 연습했던 방식을 그대로 영화 준비할 때 사용하고 있다. 감정 넣고 하는 것은 분리해서 대사가 아무리 만취가 되도 똑같은 스피드로 나올 정도로 연습한다. 입에 잘 붙는 대사도 있고 안 붙는 대사도 있는데, 될 때까지 기계적인 반복연습을 한다. <두 번째 사랑>이란 영화에서 영어대사를 연습할 때도 셰익스피어 고전극을 했던 경험으로 연극대사 연습하듯이 계속 했다. 다른 방법이 없는 것 같다.

 




관객4 : 장르영화, 독립영화, 상업영화를 오가면서 종횡무진 하는 연기 경력이 또래 배우들과는 사뭇 다른 느낌이다. 자신이 걸어 온, 그리고 앞으로의 영화 경력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

하정우 : 나는 정말 영화를 좋아하는 것 같다. 영화를 너무 하고 싶은 맘이 제일 커서 늘 학교에서 연기하면서도 영화배우나 필름메이커를 꿈꿔왔다. 독립 영화라면 뭔가 있어보여서 선택한 것은 아니다. 작년에 문득 뒤돌아보니 내가 그런 작품들을 많이 선택했고 사람들이 나를 그렇게 볼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 영화를 선택할 때는 다른 조건들보다 시나리오, 함께 소통할 감독님과 배우들에 대해서만 충실히 따져보는 편이다. 한 가지 조심하는 점은 있다. 요즘 영화 시장이 어렵고 제작 편수가 줄다보니 좋은 기획인데도 제작이 안 되거나 별로인 것 같은데도 진행되는 작품들이 있는데, 일시적인 분위기에서 변종되어 나오는 그런 영화들에 나까지 일시적으로 편승하고 싶진 않다. 계속해서 영화를 좋아하는 한 배우로써 충실하게 작품들을 선택하려고 한다.

 

관객5 : 준비 중인 영화가 한국영화에선 별로 없었던 독특한 로맨틱 코미디로 들리는데, 그런 영화를 만들기 위해 고민할 때 <히스 걸 프라이데이>가 시사하는 바는.

전계수 : 특별한 복안은 없고 일단은 내 감을 믿는 편이다. 지금 한국과 마찬가지로 이 영화가 만들어진 40년대의 미국도 대공황을 막 빠져나와 전쟁에 참전할까 말까 고민하는 혼란스런 시기다. 그런 때 사소한 것에 집착하는 로맨틱 코미디를 통해 사회 분위기에 눈 질끈 감는 태도가 무책임할 수도 있지만, 한편으론 멋진 것 같다. 그래도 삶은 계속되고 연애는 계속된다는 거다. 지금 한국 상황이 어려운데, 이럴 때일수록 얘기해야 되는 건 연애가 아닌가. 무엇으로도 위로가 안 되니, 사람의 온기로라도 위로 받고 싶은 거다. 그래서 가식적인 로맨틱 코미디는 하고 싶지 않다. 이 영화도 마찬가지지만 내용의 설득력보다 리듬감으로 한바탕 즐거운 시청각적이 오락을 제공할 수 있으면 좋겠다. 오락이야 말로 필요한 휴식이고, <히즈 걸 프라이데이>는 이런 목표에 명중한 영화란 생각이 든다. 나도 좋은 오락 영화, 정직한 오락영화를 만들고 싶다.

 

김성욱 : 마지막으로 현재 준비 중인 영화의 진행 상황을 말해 달라.

전계수 : 지금 주요 인물 캐스팅을 하고 있고 시나리오도 계속 수정 중이다. 주인공이 소설가이다 보니까 극 중에 소설이 나온다. 자기 연애에 대한 자기반영적 소설인데, 그 소설과 현실이 일정한 알레고리를 갖게 하면서 이야기를 전개시키는 게 목적이다. 그런데 두 가지 이야기를 유기적으로 연결되게 하는 것이 조금 어려워서 계속 시나리오를 수정 중에 있다. 하정우 씨 상대역인 겨드랑이 털기르는 여자로는 강혜정 씨가 나올거다. 개인적으로 시나리오를 쓰면서 굉장히 상업적으로 썼고 2, 3분에 한번씩 웃긴다고 생각했는데 투자하시는 분들은 너무 많이 웃기니 이야기에 줄거리가 없고 그로 인해 상업성이 떨어진다고 생각하시는 것 같더라. <히스 걸 프라이데이>를 보여드리면 어떨까도 생각해 봤는데 지금 보니 그럼 더 안 좋아하실 수도 있겠다 싶다. (웃음) 하지만 지금까지 한국영화에 <히스 걸 프라이데이>처럼 빠른 템포의 영화들이 없었기 때문에 이런 식의 영화도 대중적인 가능성을 갖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 현재 제가 준비 중인 영화는 <히스 걸 프라이데이>와는 또 다른 부분이 있다. 바로 공간의 문제다. <히스 걸 프라이데이>는 세트 안에서 찍었고 세 공간 정도가 주요공간으로 나오며 나머지 공간들은 부수적인 공간이다. <히스 걸 프라이데이>는 공간부터 숏까지 저렴하고 경제적으로 찍은 영화인데, 제가 준비하는 영화는 조금 낭비적인 부분이 있다. 알래스카도 가야 되고, 소설 속 장면은 탐정이 나오는 필름느와르처럼 연출해야 해서 제작비가 좀 들어간다. 정 안 되면 알래스카와 소설은 빼고 찍어야 할지도 모르겠다. (웃음) 혹스의 이 영화처럼 말로만 계속하는 영화처럼 만들 수도 있고, 영화를 다시 보니 그래도 되겠다는 생각도 든다.

 

정리 : 신윤하, 이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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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마테크에 관한 단상



내게 있어 시네필이라는 말은 아직 너무나 멀다. 영화를 좋아한다고, 영화를 좀 열심히 본다고 누구나 시네필이라고 말할 수는 없으니 말이다. 영화는 물리적 시간의 흐름을 동반한다. 장편영화로 치자면 1시간 반에서 2시간 정도다. 어떤 영화가 10년의 이야기를 하건, 10분 안에 이루어진 일들의 이야기를 하건 간에 관객은 자신의 시간을 영화에 투자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도 나는 당대 내노라하는 시네필로 불리는 선배들에 비해 영화를 본 물리적 시간 자체가 짧다. 나는 아직 이십대 초반이고 세상의 유혹이라는 핑계를 대며 영화에 시간을 많이 소요하지 못한 학생일 뿐이다.


프랑수와 트뤼포는 22살 까이에 뒤 시네마에 '프랑스 영화의 어떤 경향'이라는 글을 써서 당시 프랑스 영화계에 큰 영향을 주었다고 한다. 물론 22살의 혈기에 썼기 때문에 조금 거친 문체가 남아있는 것 같기도 하지만, 그 글을 읽으며 그의 열정과 용기를 하염없이 부러워한 적이 있다. 프랑스 나이로 하면 나는 이제 트뤼포와 동갑이 된다. 나는 영화에 대해, 영화를 둘러싼 세계에 대해 트뤼포처럼 배짱 좋게 소리칠 깜냥도 내공도 되지 않는다. 사실 고백하자면 깜냥은 고사하고 지금 쏟아지는 수많은 영상물 속에서 나를 다잡기도 어렵다.


2009년 서울에서 살아가는 내가 볼 수 있는 네모난 화면은 너무도 많다. 브라운관, 모니터, 전광판, PMP, 그리고 스크린까지. 이것은 영화를 포함한 모든 영상물을 만날 매체가 다양해진 것을 뜻한다. 수많은 매체가 쏟아내는 수많은 이미지들, 상투적으로는 이를 '이미지의 홍수'라고들 한다. 집에서 TV리모콘으로 채널만 돌리고 있어도 케이블 프로그램을 통해 홈 비디오카메라로 찍은 듯 한 작은 영상물부터 엄청난 자본을 투자하여 만든 할리우드의 현란한 CG화면까지 언제나 만날 수 있다. 질적으로 차이가 큰 이미지들이 단순히 채널이라는 대등한 위계로 나에게 다가온다. 난 이따금씩 춤추고 노래하는 어린 가수들의 몸짓에 머뭇거리기도 하고 내셔널지오그래픽의 깨끗하고 화려한 화면에 매혹되기도 한다. 이렇게 쏟아지는 이미지의 홍수 속에서 내 마음은 아무리 다잡으려 해도 갈피를 못 잡고 흔들린다.


시네마테크는 이런 환경에 갇힌 내가 찾아가는 유일무이한 곳이다. 고전을 향유한다는 것, 고전 속에서 현재를 살기 위한 보는 눈을 기른다는 것. 난 그것을 시네마테크에서 보고 배웠다. 이런 말은 짐짓 진부하게 들릴지는 모르겠지만 나에게는 진리에 가깝다. 시네마테크에 가면 고민 고민하고 공을 들여 찍어 놓은 수십년 혹은 십수년전의 이미지들이 내 눈 앞에서 춤을 춘다. 동시에 내 마음에도 자막이 뜬다. “그래, 이게 영화잖아”라고. 네이트온 메신저에서 치면 파란 줄이 그어지며 뜨는 그토록 흔하고 유동적이던 ‘영화'라는 단어는 시네마테크에서는 고정적인 어떤 것이 되어 버린다. 영화에 대한 내 편협한 감정과 사랑은 비록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렇게 시네마테크 안에서 무럭무럭 자랐다. 시네마테크에서 보았던 영화들은 언제나 나에게 새로운 질문을 던진다. 때로는 학교에서보다 더 큰 질문을 던질 때가 있다. 고다르 후기작들이 던졌던 삶과 전쟁에 대한 질문을 받아들고는 깊은 한숨을 쉬며 집으로 돌아온 적도 있었다. 로메르가 작품을 통해 한수 가르쳐준 연애기술은 나름 실생활에도 써먹을(?) 혹은 써먹고 싶을 만한 기술이었고, 더 나아가서는 사람과 사람사이의 관계에 대한 질문을 던지게 했다. 나에게 있어 시네마테크는 끊임없는 질문으로 한 발짝씩 나아가게 하는 단연 성숙의 공간이다.


그리고 내게 또 다른 의미로 시네마테크가 중요한 것은 친구들이라는 존재 때문이다. 시네마테크에는 늘 친구들이 있다. 굳이 약속을 하지 않아도 늘 극장에 가면 거기엔 친구들이 있었다. 같은 영화를 보고 나오면 친구들과 공유할 수 있는 기억이 생겼다는 생각에 말 한마디를 더 하지 않아도 이상한 연대감을 느낄 수 있다. 우리는 많은 영화를 같이 보았고 그렇게 그곳에 함께 있었던 거다.


내게 있어서는 배움터이며 안식처고 만남의 광장이기도 한 시네마테크에서 나는 올해까지 2년째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 웹데일리 작업에 참여하고 있다. 그리고 나는 그 친구들과 함께 친구들 영화제에서 일하게 된 것이 행운이라 느낀다. 이 일을 통해 새로운, 그리고 소중한 친구들도 만나게 되었으니. 친구들 영화제가 열리는 겨울마다 시네마테크에는 그 어느 때보다 사람들이 복작거렸고 재미난 영화들이 풍성했다. 영화제에서 나를 포함한 데일리 친구들이 한 작업 중에는 주로 감독, 배우들이 자신이 추천한 영화에 관해 관객과 함께 얘기하는 시네토크를 정리하는 게 많았다. 어찌 보면 그것은 말을 글로 옮겨내는 단순한 녹취풀기가 아닌가 싶은데 그 자리에 그 시간을 공유하고 있다보면 그건 단순한 녹취풀기, 그 이상이라는 걸 금방 알아채게 된다. 영화가 던지는 질문에 한번 배웠다면, 더 많이 고민하고 경험이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한 번 더 배울 수 있는 배움의 배가된 느낌을 가질 수 있었다. 나와 친구들은 영화가 끝나 극장 밖을 나서면 별이 박혀있는 밤하늘 아래서 영화와 영화를 추천한 사람들에 대한 나름의 감상을 한마디 더 덧붙였다. 또 집으로 돌아가는 시간을 아쉬워하며 무슨 이야기든 더 하기 위해 종종 커피를 마시러 가기도 한다. 커피를 마시며 매 순간 영화만을 추억한 것은 아니지만 그 모든 시간들이 내겐 너무나 황홀했던 시간이다. 아마도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나도 난 그 겨울의 시간들을 황홀함을 느낄 만큼 찬란했다고 기억할 것이다.


이제 봄이 되면 개강을 하고 난 다시 학교로 돌아간다. 이젠 어엿한 3학년이다. 학교에 입학하면서 시네마테크에 오기 시작했으니 난 학교와 시네마테크를 동시에 다니기 시작한 셈이다. 언젠가는 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생 딱지를 떼고 다시 학교에 갈일이 없을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시네마테크는 다르다. 내가 어느 곳에서 어떤 일을 하거나 상관없이 여전히 들락거릴 것이다. 더 불어난 이미지의 홍수에 갈피를 못 잡을 때면 또 시네마테크에 와서 영화를 보고 ‘이게 영화야’라고 되뇔 것이다. 혹은 영화를 보고 붕 떠서 아쉬운 마음에 함께 영화를 본 어떤 친구에게 커피를 마시자고 할 것이다. 하지만 요즘은 시네마테크 전용관인 서울아트시네마의 위기설이 나도는 등 정말 비상식적인 일들이 많이 일어나고 있어 그 바람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어쩔까 하는 걱정에 마음이 무겁다. 이제 불어올 봄바람이 이 무거운 마음을 가셔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 바람이 이루어져 늘 바로 이 곳, 여기 시네마테크에 영화를 보러 올 수 있었으면 좋겠다. (김나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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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로서 많은 감성을 가질 수 있게 한 영화
천사들의 선택 로베르 브레송의 <무세트>

 

2월 21일 오후 2시 <무셰트> 상영을 앞두고 서울아트시네마에 반가운 친구들이 왔다. 이번 친구들 영화제에 로베르 브레송의 <무셰트> 상영을 추천하는데 그치지 않고 이 작품이 보다 안정적인 배급이 이뤄지도록 필름을 구매, 시네마테크 전용관인 서울아트시네마에 기증한 시네마엔젤 재단의 이현승 감독과 배우 이나영이다. 배우들이 주축이 되어 만들어진 시네마엔젤은 이현승 감독과 배우 이나영 외에도 김강우, 하정우, 정재영 등 대표 연기자들이 대거 참여하고 있다. 시네마엔젤은 그간 다양한 문화복지 사업을 진행해 왔는데, 영화를 매개로 한 사람들인만큼 영화를 가지고 할 수 있는 복지나 영화 문화 저변 확대를 창출할 수 있는데 주안점을 두어 이번 행사를 기획하게 되었다. 그 첫번째 시작을 알린 작품이 브레송의 <무셰트>이고, 이는 배우 이나영 씨가 굉장히 좋아하는 작품으로 그녀의 입김이 많이 작용해서 선택된 것이라 한다. 필름 라이브러리 구축의 일환에서 천사들이 동참해 이뤄진 이번 행사는 실로 뜻깊은 행사가 아닐 수 없다. <무셰트> 상영에 앞서 이 행사를 기획한 이현승 감독과 <무셰트>를 선택한 배우 이나영의 짧막한 추천의 변을 들어본다.

                           





김성욱(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래머)
: 2년 전부터 시네마테크 서울아트시네마는 일회적인 필름상영에 머물지 않고 안정적으로 영화를 배급하는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필름라이브러리를 구성했다. 장 뤽 고다르의 <자화상JLG JLG>과 세르지오 레오네의 영화 4편의 프린트를 비영리 목적으로 구매해 배급했었고, 올해는 4편의 할리우드 고전 클래식 영화들을 구매했다. 시네마테크에서 구매한 영화들은 일반극장에서는 결코 볼 수 없는 영화들로, 향후 5년 정도의 비영리 상영목적을 위해 판권을 사온 것이다. 그리고 올해는 이런 필름 라이브러리와 더불어 가장 중요한 또 하나의 행사가 마련되었다. 바로 시네마엔젤 재단이 참여하는 '천사들의 선택'이라는 프로그램이다. 영화배우들이 함께 참여하는 ‘시네마엔젤’은 영화 문화 저변 확대를 위해 올해부터 배우분들이 직접 한 편의 영화를 구매해서 시네마테크에 기증, 필름 라이브러리를 통해 지역의 시네마테크에도 상영할 계획이다. 오늘 상영하는 로베르 브레송의 <무세트>는 ‘시네마엔젤’ 프로그램의 시작을 알리는 첫 신호탄인 셈이다. 무엇보다 <무셰트>는 배우 이나영씨의 추천과 선택으로 이루어질 수 있었다. '천사들'이란 이름으로 친구들 영화제에 새친구가 된 이현승 감독과 배우 이나영 씨를 모셨다.

       

이현승(영화감독) : ‘시네마엔젤’은 재작년 즈음,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배우들이 술자리에서 나누던 사담으로 시작된 프로그램이다. 배우들 개별적으로는 좋은 일들을 많이 하는데, 모여서 무언가를 창출하는 것이 조금 부족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시네마엔젤’을 기획하게 된 거다. 영화를 통한 문화 복지와 더불어 소외계층에 영화로서 도움을 주자는 목적을 가지고 시작하게 되었다. 다들 공감하시겠지만 어렸을 때 보았던 영화 한 편이 자신의 인생을 바꾸고 되돌아보게 하는 전환점이 될 때가 있고 마음의 양식이 되기도 한다. 배우들이 직접 나서 관객들에게 이런 기억과 추억을 일깨워주는 작업을 해보고 싶었다. 티켓을 단체로 구매해서 청소년들에게 무료로 영화를 보여주는 행사를 더러 하기도 했지만 그 또한 일회성에 지나지 않는다. 보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저변 확대를 불러올 수 있는 뜻깊은 일을 해보고 싶었고 이번 시네마테크에 프린트를 기증한 것이 그 신호탄이다. 시네마테크에 프린트를 기증하는 것은 복잡한 과정 속에 있긴 하지만 굉장히 중요한 사업이다. 올해부터 ‘시네마엔젤’이 시작되어 더 많은, 그리고 좋은 영화를 볼 수 있게 하자는 측면에서 이제 출항을 하게 되었다. 저는 현재 ‘시네마엔젤’에서 기획을 도와주고 있다. 한국영화 연기자들이 합심해서, 관객들에게 사랑을 받는 만큼 돌려주기 위해 진행되는 ‘시네마엔젤’을 따뜻하고 애정어린 시선으로 보아주었으면 좋겠다.

 




이나영(영화배우)
: 사실 본의 아니게 감독님께 끌려왔다. (웃음) 원래는 정재영 선배가 이 자리에서 인사드리기로 한 것으로 아는데 선배가 갑자기 스케줄이 생겨서 제가 나오게 되었다. 관객으로 편하게 영화를 보러 왔다가 갑자기 인사를 드리게 되었다. <무세트>는 2, 3년 정도 전에 시네마테크에서 상영할 때 보았는데, 영화를 본 후 배우로서 많은 감성을 가질 수 있게 도와주었던 인상 깊은 작품이다. 브레송이란 작가를 워낙 좋아하기도 하지만 이 작품은 특히 브레송에 대해서 더 많이 알게 될 수 있는 계기를 주었던 작품이다. 이번 ‘시네마엔젤’에 참여하면서 <무세트>의 상영 소개까지 하게 되었다. (웃음) ‘시네마엔젤’ 프로젝트에 참여한 걸 영광스럽게 생각하고, 아주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수 있어서 기분이 좋다. 또한 좋아하는 영화를 볼 수 있어서 기쁘다. 이와 관련된 기회들이 있으면 언제든지 서슴없이 참여할 생각이다. 제게 많은 영감을 주었던 작품인만큼 여러분들도 오늘, 영화 재밌게 보셨으면 좋겠다.

 

정리 : 강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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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를 만나다[2] - 이경미 감독의 <미쓰 홍당무>

 

2월 21일 서울아트시네마의 마지막 상영작은 이번 달에 작가를 만나다 코너에 초청된 이경미 감독의 <미쓰 홍당무>였다. 이날 2회 상영때는 이경미 감독의 단편 2편이 연이어 상영되었고 마지막 회에 결코 미워할 수 없는 홍당무 미숙이를 관객은 다시 만날 수 있었다. <미쓰 홍당무>를 보고나면 영화에 등장하는 모든 캐릭터들에게 무한한 애정과 사랑스러움을 느끼게 된다. 양미숙 선생과 종희는 물론이고 서종철 선생, 이유리 선생 심지어 몇 컷 등장하지 않는 여고생 엑스트라까지 모두가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이렇게 관객이 영화 속 모든 인물들에게 애정을 느낄 수 있는 것은 이경미 감독 스스로 미숙이가 되고 종희가 되어 몇 번을 고민하고 고민해서 만들어낸 애정의 산물이기 때문에 그런 것 같다. 상영 후 이어진 시네토크에서 무수히 많은 영화 이야기를 쏟아낸 이경미 감독은 단지 캐릭터가 아닌 바로 옆에서 살아 움직이는 친구와 같았다. 여기에 <미쓰 홍당무>에 대한 관객들의 여러 궁금증을 하나하나 풀어주었던 이경미 감독과 함께 했던 두번째 시네토크 시간을 담는다.    


 



김성욱(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래머)
: <미쓰 홍당무>는 굉장히 빠른 템포로 진행되는 영화이다. 어떻게 이런 영화를 준비하게 되었는가.

이경미(영화감독) : <친절한 금자씨> 스크립터를 했는데, 당시 조감독 했던 분이 얼굴이 굉장히 잘 빨개지는 분이었다. 나도 얼굴이 잘 빨개져서 얼굴 빨개지는 사람의 마음을 잘 아는데, 그 분을 보면서 내가 얼굴 빨개지면서 곤란했던 일 등이 더 많이 떠올랐다. 그러면서 모호필름과 계약할 때 얼굴이 빨개지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영화로 하겠다고 했다. 얼굴이 빨개지는 여자에게 생길 수 있는 가장 곤란한 일들이 무엇일까를 생각하다 여기까지 오게 된 것이다.  

 

김성욱 : 영화 OST 작사까지 직접 하셨다.
이경미 : 합창단이 부르는 ‘나도 공주가 되고 싶어’라는 노래와 엔딩 크레딧 마지막에 나오는 ‘미쓰 홍당무’를 작사하였고 이미 음반도 나왔다. 작사를 해서 그런지 애착이 많았는데 음반 만들 생각을 안 해서 음악감독님이랑 사비를 털어서 직접 만들었다. (웃음)

 

김성욱 : 직접 작사한 노래 중에 ‘내 얼굴이 얼마나 빨개져야 사람들이 날 알아볼까’라는 가사가 있다. 얼굴이 빨개지는 것으로 인한 에피소드를 반대로 생각하면 미숙이의 존재감을 드러내는 것이다. 얼굴이 빨개져야 사람들이 나를 인식한다는 것이 마치 미숙이의 지워진 정체성을 나타내는 듯 하다. 단편 <잘돼가? 무엇이든>에서도 동일한 지점이 보인다. 예를 들어 집이 없다는 것. 안정적으로 있을 공간이 없다는 것은 어디에도 귀속되지 못하는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과도 관련된 듯 한데. 
이경미 : 미숙이가 수업하는 씬에 보면 칠판에 ‘Who am I?'라고 적혀있는데, 이는 끊임없이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과 혼란으로 똘똘 뭉친 미숙이의 질문과도 같다. 미숙이가 서선생에게 가지는 감정이 과연 사랑일까라는 생각을 많이 했는데 그것은 적어도 사랑은 아니라는 결론을 내었다. 사랑보다는 서선생과의 관계에서 미숙이는 자신의 존재를 확인받고 싶어 하는 것이라 여겼다. 시나리오 쓸 때도 미숙이처럼 자신에 대한 콤플렉스를 가진 사람들은 사람을 대하는 기술이 없어서 오해받고 외롭게 되는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김성욱 : 이 영화를 보면서 이렇게 다성적인 영화가 있을까하고 놀랐다. 인물들의 목소리 톤은 계속해서 높낮이를 달리하고 인물들이 말하는 중간에 끼어드는 잡음과 소음들은 대화를 중단시키고 변화시킨다. 게다가 인물들의 대화중에 소리뿐만 아니라 장면들도 계속 끼어든다. 이런 다층적이고 다성적인 영화의 전체적인 배치가 매우 놀랍다. 이런 것들은 원래 염두에 두고 시나리오를 작성하였나.
이경미 : 언급하신 부분들은 대개 편집에서 구성하는데 <미쓰 홍당무>는 시나리오 때부터 씬 구성을 그렇게 하였다.  

 

관객1 : 보는 내내 캐릭터와 대사가 재미있어서 어떻게 이런 대사들을 생각했나 궁금했다. 평소 감독님의 말투인지 혹은 친구들의 말에서 대사를 인용했는지 대사를 만드는 과정에 대해 말해달라. 
이경미 : <홍당무>의 경우는 특히 시나리오를 쓸 때 대사에 제일 공을 많이 들였다. 미숙이는 조울증과 자기 피해의식에 사로잡힌 피해망상증을 갖고 있기에 미숙이처럼 사고해야 나오는 대사가 많았다. 그래서 캐릭터를 만들고 나서 평소에 어떤 일을 하든 이런 상황에서 미숙이라면 어떻게 생각하고 말을 할까 곱씹어 보면서 대사를 만들었다. 종종 주변사람들에게 영감을 받기도 한다. 이유리 선생이 자기는 "2개월 15일짜리"라고 말하는 것은 실제로 아는 사람이 고민상담할 때 말한 거다. 그리고 "너 착하게 살지 말아라. 그러면 사람들이 못되게 굴어"라는 말은 저랑 굉장히 친한 현장 스텝 언니가 한 말이다. "나도 알아. 내가 별루라는거"라는 말은 굉장히 어렵게 나온 대사다. 미숙이는 왜 이럴까를 계속 생각했지만 미숙이의 내면의 바닥까지는 모르겠더라. 크랭크인이 다가올 때까지 그렇게 계속 고민하고 생각했는데도 별반 특별한 대사가 떠오르지 않았는데 크랭크인 얼마 안남긴 어느 날 갑자기 '얘는 자신을 별로라고 생각하는 애구나'라는 것을 알게 됐고 그렇게 탄생한 대사다. 제일 어려운건 서선생이었다. 말이 별로 없는 인물인데 어느 순간 폭발하는 것을 생각했는데 그 때 무슨 말을 할지가 굉장히 고민스러웠다. 크랭크인까지 계속 고민하다가 어렵게 나온 대사가 어학실에서 서선생이 부인 은교에게 내뱉는 "당신은 45년 동안 단 한 번도 실수를 안하고 살았어"이다.

 

관객2 : 이 영화의 배경이 된 학교가 독특하다. 양미숙과 서종희가 학교에서 나누는 성적인 내용의 대화들은 종교단체인 것 같은 학교 분위기와 묘하게 대조를 이룬다.
이경미 : 영화 안의 인물들이 과감하고 보통 사람들이 해서는 안되는 일들을 하는데 이런 것들이 살아나려면 그들이 있는 공간이 엄격할수록 재미있다고 생각했다. 미숙이랑 유리가 상반되는 것처럼 상반된 것들이 충돌할 때 재미를 준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공간과 인물들이 상반되도록 미션스쿨로 정했다. 영화에 어떤 종교를 차용할까 생각해 보았는데 지금까지 원불교는 한번도 안나온 것 같고 원불교 교리들도 재미있고 맘에 들어서 원불교 학교로 정했다.

 

관객3 : 창고에서 이유리 선생이 서선생 앞에서 성적인 행동을 하는 장면에서 그것을 엿보는 학생이 있다. 그리고 이 학생이 나중에 종철의 아내에게 그 때의 일을 말한다. 영화 전개상 보면 꼭 그 학생이 있지 않아도 되는것 같은데 넣은 특별한 이유가 있는가.
이경미 : 그 학생은 시나리오 상에 '햄스터'란 이름을 갖고 있다. (웃음) 햄스터는 스토리를 결정적으로 풀어주는 기능적인 역할을 한다. 인물들을 한자리에 묶고 사건을 폭로하는 역할 말이다. 원래 햄스터는 없는 인물이었는데 종희의 애들 또래 학생 오디션을 보면서 만들어졌다. 햄스터 역을 맡은 아이가 오디션을 보러 왔는데 너무 의욕이 없고 누가 시켜서 억지로 온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마지막에 스스로 우는 연기를 보여주겠다고 제안해서 해보라고 했는데 너무 못 울더라. (웃음) 그러면서 이상하게 급호감이 생겨서 만나자고 그랬고, 초지일관된 그 아이의 캐릭터가 맘에 들어서 햄스터로 끌어와서 탄생시켰다. 

 

김성욱 : 어학실 씬에서 서선생이 하는 대사 중 "이놈의 매리 때문에 말을 제대로 못 알아듣겠다"가 재미있었다. 혼선으로 인해 잘못 듣고 오해하게 되는 상황들이 영화를 흥미롭게 만들고 구조적으로 복잡하게 만든다. 이경미 감독은 최근의 한국영화에서 보자면 홍상수 감독과 더불어 언어가 영화 안에서 어떻게 가장 영화적으로 사용될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드믄 감독들 중의 한명이라 생각한다. 이 영화는 수없이 많은 말과 언어에 의해 인물들의 판단과 생각들이 좌우되는 패턴이 보인다. 영화 안에서 말들과 대사들을 다양하게 활용하는데. 
이경미 : 앞서 말한 바와 같이 대사에 공을 많이 들였는데 제일 많이 고민한 것은 '정보를 효율적으로 전달하면서 감정까지도 어떻게 전달할 것인가'였다. 미숙이가 잠은 언제 자고 밥은 언제 먹고하는 대사를 할 때는 자기가 얼마나 바빴는지를 말로 설명하는 거다. 또 그것은 미숙이의 말을 듣는 다른 사람들이 정보만이 아니라 ‘미숙이란 얘는 정말 어떻게 그렇게까지 할 수 있지’라는 감정까지 전달해야 했었다. 그래서 반복적으로 어떤 문구를 넣어주며 말의 호흡 같은 것에 신경을 썼다. 오늘 <미쓰 홍당무>를 오랜만에 봤는데 그 전에 볼 때는 컷이나 사운드 등이 신경이 쓰여 제대로 못 봤는데 이제야 비소로 편안하게 영화로 볼 수 있었다. 그러면서 시나리오 쓰면서 생각했던 두가지가 생각났다. 그 중 하나가 ‘미숙이를 이 지경으로 만든 것은 무엇인가?’이다. 미숙이가 이렇게까지 된 것은 서선생 때문이 아니다. 10년 전 수학여행에서 자신의 예술적인 감각을 살리겠다고 사진을 세로로 찍은 사진사 때문이다. 보통의 사진사들처럼 평범하게 찍지 않아서 미숙이는 자리를 옮겨야 했고 끼어들 곳이 없어진 것이다. 다른 하나는 ‘미숙이는 천사다’라는 생각이다. 미숙이 자체는 사악한 면도 있고 유독 불안정한 존재인데다가 사심이 많고 불순한 존재이지만 결국은 그녀가 다른 사람들에게 원하는 것들을 안겨준다. 유리에게는 음악을 담당하는 변선생을 만나게 해주고 서선생과 은교에게는 가정을 지킬 수 있게 해주었으며 종희에게는 친구가 되어주었다. 미숙이는 본의 아니게 천사가 된 것이다.

 

관객4 : 학교 축제 공연으로 <고도를 기다리며>를 선택한 특별한 이유가 있는지 그리고 연극을 하면서 미숙이와 종희는 왜 엎치락뒤치락 하는지 궁금하다.
이경미 : 둘이서 공연을 해야 되는데 정말 재미없는 공연이면서 딱 둘만할 수 있는 것을 찾다보니까 <고도를 기다리며>라는 연극이 잘 맞겠다 싶었다. 그리고 거기 대사들이 영화 속 인물들이 주고 받는 대사들과도 맞다는 생각도 했다. 둘이서 엎치락뒤치락 하는 건 어렸을 때 많이 하며 놀던 ‘콩쥐팥쥐’ 행동을 하는 거다. ‘콩쥐팥쥐’는 사이즈가 안맞는 사람들이 하면 굉장히 힘들다. 사이좋게 보이는 체조를 했으면 했는데 키가 큰 미숙이와 키가 작은 종희가 이것을 하면 걔네들이 얼마나 웃겨 보일까하는 생각에서 넣었다. 키 차이가 나는 애들이 사이좋게 하는 것이 언밸런스 하면서 똑깍똑깍 하는 것이 인형처럼 보이기도 해서 가져왔다.

 

관객5 : 미숙이가 선생이라기 보다는 학교를 졸업하지 못한 학생의 망령 같아 보였다. 마치 우리 사회에서 많이 회자되는 졸업 못한 학생 귀신같다는 느낌이 들었는데 이런 점은 어떻게 생각하나. 그리고 또 다른 하나는 주요 인물들이 모두 러시아어, 국어 선생님인데다가 어학실에서 많은 일들이 일어나고 영화에서 휴대폰 문자 메시지나 메신저 사용이 많은데 그런 점을 보면서 언어의 파티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경미 : 저 스스로도 시나리오를 쓰면서 미숙이가 귀신같다는 생각을 했다. 미숙이는 10년 전 자신의 괴로웠던 일 이후로 정신의 성장이 멈춰있다. 그녀는 사람들 안에 속하고 싶고 섞이고 싶은데 잘 안 된다. 그런데 사람들과 만나고 어울리는 과정들이 이루어지는 공간이 학교 아닌가. 학교 안에서 미숙이가 종희를 만나고 어울리면서 사람들과 의사소통을 할 수 있었으면 했다. 언어의 향연에 대해서는 시나리오를 쓸 때 영화가 마치 100분 토론을 보는 것 같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극의 서스펜스도 인물의 대사만으로도 생겼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말의 향연이 많이 나오고 속도도 달라지도록 했고 나중에는 100분 토론으로 폭발하도록 하였다.

 




김성욱
: 미숙이의 수학여행 에피소드 장면을 보면서 미숙이가 완전히 어떤 장소에 자리잡지 못하고 떠돌아다니는,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여분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학실에서 미숙이가 "내가 아니면 나한테 이렇게 안할꺼면서 내가 나니까 나쁘게 하는 거잖아"라는 말을 뱉는다. 미숙이는 내가 아닌 것으로의 존재성을 갖고 싶은 게 아닌가 싶었다. 굉장히 네거티브한 존재성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
이경미 : 미숙이는 자기가 자기인 것이 창피하고 내가 아니었으면 하는데 이런 점들이 반영된 것이라 본다.

 

관객6 : 삽질하는 장면을 보면 미숙이가 자기 무덤을 파는 것 같고 자기 자신만의 공간을 만드는 것 같은데 왜 땅을 파는지 그 이유가 영화에서 분명하게 안 나온다.
이경미 : 땅 파는 의도는 미숙이가 직접 말한다. 삽질하면서 서선생과 대화하는 장면에서 미숙이는 "자기가 이렇게 삽질을 하는 이유는 우리를 이상하게 볼까봐"라고 말한다. 생각이 넓지 못한 미숙이는 자기중심적으로 생각한다. 서선생이랑 둘이 마주보고 얘기하면 사람들이 눈여겨보고 관계를 눈치 챌 것 같아서 삽질을 하는 거다. 멀리서 보면 여자는 삽질을 하고 남자는 삽질을 구경하는 것처럼 보인다. 연출자로의 의도는 삽질하는 여자라는 것을 그대로 넣은 것이다. 무식해보이고 힘도 쎄보이는 비주얼적인 면도 고려했다. (웃음)

 

김성욱 : 류승완 감독의 영화에서는 여자가 나오는 화면이 대단히 불안해보이는데(웃음) 이경미 감독의 영화에서는 남자가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미쓰 홍당무>의 배경은 여학교인데다 남자는 3명 정도밖에 되지 않는데 그마저도 서종철을 제외한 나머지는 피상적으로 그려진다. <잘돼가? 무엇이든>에서도 박사장은 얼굴도 등장하지 않으면서 두 여자와 연결되어 있다. 여성적인 세계 안에서 어떻게 남성을 보고 있는가라는 점에서 흥미롭다.
이경미 : 여자들이 분주하고 힘들어하는데 그녀들을 힘들게 하는 결정적 원인제공자는 비어있다. <미쓰 홍당무>같은 경우 여자들이 서로 잘났다고 시끄럽게 화를 내서 싸웠으면 했고 그것이 남자를 갖고 싸우는 거였으면 하고 생각했다. 그러나 남자까지 들고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핵이 되는 사람은 조용하고 신비롭게 있어야 되지 않을까 싶었다. 남자 캐릭터가 어렵다는 생각도 한다. (웃음) <미쓰 홍당무> 캐릭터를 만들 때도 서선생이 제일 힘든 인물로 다가왔다. 여자들은 미묘한 콧바람까지도 어떤 것이지 알겠지만 남자들의 심리는 너무 어렵더라. 잘 알고 있었다면 <미쓰 홍당무>같은 영화가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웃음)

 

관객7 : 이유리 선생이 서선생에게 주는 선인장처럼 영화에 보면 성적인 코드가 많다. 온 몸에 깁스를 한 여자와 정상인 남자가 어떻게 관계를 맺을 수 있는지 알려준다면서 안 알려줬는데 궁금하다.
이경미 : 성적인 코드의 경우, 미장센을 될 수 있으면 성적인 코드로 하자고 하면서 만들었다. 성적인 코드를 넣는 것에 연출부가 재미있어 해서 나도 모르게 만든 장면들도 있다. 깁스의 답은 원래 엔딩 크레딧 마지막에 가능한 체위를 넣으려다가 너무 생뚱맞아서 뺐다. 연출부 5명에게 가능한 체위를 5개씩 생각해오라고 했는데 모두 다 답을 가지고 왔다. 생각보다 쉽더라. 문제는 깁스가 아니라 8인용 병실이다. 여러분들이 상상하시는 모든 것들이 가능하다. (웃음)

 

관객8 : 영화를 보면서 결국에 모든 사람들이 다 행복해졌다고 생각했다. 마지막 씬에서 미숙이가 피부과 의사를 찾아가는데, 미숙이에게 서선생이 아닌 사랑할 수 있는 다른 사람을 선물로 주고 싶었던 것인지 아니면 미숙이가 여전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인지.
이경미 : 미숙이에게 제가 줄 수 있었던 선물은 종희였다. 마지막 씬은 미숙이는 사랑이 필요한 사람이고 이렇게 계속 노력할 것이라는 것을 보여주고자 한 것이다. 과정을 겪으면서 미숙이가 얻은 큰 수확이라면 서종철 선생을 쫓아다닌던 때와 달리 맘에 드는 사람에게 'Yes or No'를 들을 수 있도록 단도직입적으로 질문할 수 있게 된 것이 아닌가 한다.

 

김성욱 : 종희 캐릭터가 매우 독특한데 배우 캐스팅은 어떻게 이루어졌는가.
이경미 : 종희와 유리 역할은 오디션을 굉장히 많이 보았다. 유리의 경우는 크랭크인 2주전에 겨우 찾았을 정도다. 종희 역을 맡은 서우 양은 원래 유리 역의 오디션을 보러왔었다. 서우 씨 실물을 보고서 '종희를 시켜봐야겠구나'라는 생각을 했고 종희의 대사인 "선생님도 내가 창피해서 나랑 공연하기 싫은거잖아요"라는 대사를 시켜보았다. 근데 서우 양이 대사를 치는데 나를 혼내듯이 딱 내뱉더라. 거기에 홀딱 빠졌고 모든 사람들이 서우 양의 오디션 테이프를 보면서 만족해했다. 그렇게 하면서 서우 양이 종희 역을 하게 된 것이다.

 

관객9 : 영화 속 공간을 담아내는 것들이 흥미로운데 <잘돼가? 무엇이든> 경우 조용한 사무실 안에 권력의 상하관계와 회사의 부조리, 직장 내 여성의 위치 등이, <미쓰 홍당무>의 주요 공간인 학교에서는 왕따 문제와 여고 특유의 분위기가 그려진다. 단편부터 장편까지 보고 나니 다음에 준비하는 영화는 어떤 것인지 더욱 궁금해진다.
이경미 : <미쓰 홍당무>의 여중고는 삭막했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에 그런 느낌의 학교를 찾아다녔다. 요새의 학교들은 너무 좋은데다가 여고는 아기자기한 느낌이 있어서 지방에 있는 남자 공업고등학교를 헌팅 했다. 학교라는 공간을 살리기 위해서는 그것을 채우고 있는 엑스트라들이 어떻게 무드를 만들어주는가에 따라 좌지우지된다. 그래서 엑스트라가 되는 여학생들의 오디션을 많이 봤다. 다음 작품은 남자들이 나오는 스릴러를 하려고 한다. 스릴러를 하려는 이유 중에는 남자 배우들과 작업을 해보고 싶어서 그런 것도 있다. (웃음)    

 

정리 : 신윤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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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를 만나다[1] - 이경미 감독의 단편 <오디션>과 <잘돼가? 무엇이든>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가 중반을 넘어선 2월 21일 오후, 작가를 만나다 코너를 통해 반가운 손님이 아트시네마를 찾았다. 지난해 <미쓰 홍당무>라는 장편 입봉작으로 신선한 충격을 주었던 이경미 감독을 만날 수 있었던 것. 특히 이 날은 작년에 개봉한 <미쓰 홍당무>외에 그녀의 초기 단편영화까지 챙겨볼 수 있는 기회였다. 그녀는 생각이 깊어서인지 무언가에 잘 꽃혀서인지 가끔 말을 잊기도 하고 샛길로 빠지기도 잘한다. 하지만 그런 면이 더 진심으로 다가오고 관객을 사로잡는다. 언어가 주는 묘미를 잘 알고 그것을 영화적으로 잘 활용하는 이경미 감독이 장편 데뷔 전에는 어떤 생각으로 영화작업을 했는지 또 앞으로 그녀의 행보는 어떨지 들을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두편의 단편영화와 한편의 장편영화까지 두 차례에 걸쳐 펼쳐진 그녀와의 솔직담백한 관객과의 대화 중 단편영화 상영 후 첫번째로 이어진 시네토크 현장을 옮긴다.        



  
       
   
김성욱(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래머) : 작년에 개봉했던 한국영화 중 가장 신선하고 당혹스런 영화 중 하나가 <미쓰 홍당무>가 아닌가 생각하는데, 오늘 작가를 만나다 코너를 통해 그 문제작을 만든 이경미 감독을 모시게 되었다. 앞서 장편 영화 데뷔 전에 만든 단편 중 2편을 상영하고 이야기 나누는 시간을 갖게 되었다. 개인적으로는 오늘 상영된 단편 중 <잘돼가? 무엇이든>의 시나리오를 심사했었다. 그때 만장일치로 최고의 점수를 얻은 시나리오로 기억하는데 영화가 어떻게 만들어질지 무척 궁금했다. 이 영화를 만들 때 어떤 생각이 들었는지.
이경미(영화감독) : <오디션>을 만들 때가 영화학교 3학년인 2002년이었다. <잘돼가? 무엇이든>은 4학년 졸업작품으로 만든거다. <오디션>의 경우는 필름으로 사운드작업을 같이 해서 만든 첫 작품이다. 오랜만에 극장에서 보니 민망하다. 그래서 배급을 계속해야 되나하고 생각했다. (웃음) <오디션>은 그 당시 열심히 만들었다. 그때는 순진하게 진심을 다하면 전달이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 다시 보니 진심만 담은 것 같다. 어떻게 소통해야 하는지에 대한 기술은 몰랐던 것이다.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었지만 그렇지 못해서 심정적으로 절망하고 좌절했었다. 그때 바닥을 치고 만든 것이 <잘돼가? 무엇이든>이다. 두 작품 사이에 시나리오 한편이 더 있는데 당시 홍상수 감독님께 무참히 깨지고, 그 다음에 쓴 것이 <잘돼가? 무엇이든>이다. <오디션> 때는 봉준호 감독님도 많이 도와주셔서 크레딧에 이름이 들어갔어야 했는데 고마움을 까먹었었나 보다. 봉준호 감독님은 박해일 씨 캐스팅에 결정적으로 도움을 주셨던 분이다. 그 때 저는 연출고급 수업을 듣고 있었는데 정윤철, 봉준호 감독님이 저한테는 스승이었다. 2학년때부터 4학년까지 그분들께 배웠다. 그래서 여전히 선생님이란 호칭을 쓴다. <오디션> 만들 때 봉준호 감독님은 <살인의 추억>, 정윤철 감독님은 <말아톤>을 만들기 전이었다. 그리고 그 인연이 장편 데뷔작인 <미쓰 홍당무>까지 왔다.

 

김성욱 : 단편 중 <오디션>은 오늘 처음 봤다. 영화에서 명동 거리 장면이 나올 때 한명만 뒤돌아 보는 것을 보고 그 당시는 박해일 씨가 유명 하지 않았었나 하는 생각을 했다. 그 장면은 마치 배우가 아닌 카메라를 보는 것 같더라.
이경미 : 맞다. <오디션>에 박해일 씨를 캐스팅 할 때는 박해일 씨가 <와이키키 브라더스>에 출연했었고 <질투는 나의 힘>이란 영화의 개봉을 앞두고 있을 때였다. <와이키키 브라더스>에서 보고 해일 씨의 얼굴이 제 영화에 맞다고 생각해 수소문했었다. 알아봤더니 이미 <살인의 추억>에 캐스팅된 상태로 봉준호 감독님 소개로 만나게 됐다. 대학로에서 처음 만났는데, 당시 얼굴보고 큰일이라고 생각했다. 생각했던 얼굴이랑 달랐기 때문이다. 생각했던 것보다 박해일 씨 얼굴이 너무 작고 눈코입이 크더라. 그때는 배우를 만난적이 없어서 그런 사람들이 그렇게 생겼다는 걸 몰랐던 것 같다. (웃음) 대학로에서 연극을 하고 있었는데 연극 끝나고 함께 술을 마시면서 인사하고 캐스팅 제안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다행히도 스케줄이 비어서 같이 작업했는데, 하면서 무척 즐거웠다. 그 후에 <국화꽃향기> 등으로 갑자기 바빠지셨다. <오디션> 촬영할 당시에는 장비나 짐도 밴에 다 실어주고, 항상 십분 전에 먼저 촬영장에 도착해 스탭들을 당황케 했던 굉장히 성실한 분이셨다.

 

김성욱 : 오늘 보니 단편 두 편 다 죽음이라는 그림자가 크게 있다. 우연한 것인지 어떤 의도가 있었는지 궁금하다. 
이경미 : 두 작품을 함께 보니 비슷한 면이 많은 것 같다. 죽음이나, 명동거리가 똑같이 나오는 것이 그렇다. 죽음이라는 테마는 제가 경험이 없어서 그런 것 같다. 사실 가까운 이의 죽음을 <잘돼가? 무엇이든> 전에는 경험해보지 못했었다. 그래서 무섭고 큰일이라고 막연히 느꼈고 죽음이라는 것은 그야말로 끝이라고 생각했었다. 친한 중학교 동창이 있는데, 그 친구는 내가 회사 다니고 있을 때 만나면 항상 내가 잘모르고 그다지 친하지 않았던 또 다른 친구에 대한 안부를 궁금해 했었다. 그러다가 언젠가 다른 곳에서 그 친구가 안부를 궁금해하던 또 다른 친구가 죽었다는 소식을 내가 먼저 들었다. 그때가 내가 알던 사람이 처음 죽는다는 걸 들었던 때다. 회사에서 그 연락을 받고 통곡했었다. 친한 친구도 아니었는데 말이다. 그래서 그 친구 안부를 궁금해하던 친구한테 전화해서 울먹였더니, 친구는 너무나 담담하게 받아들이더라. 그 상황이 좀 무색했었는데, 죽음을 처음 만났던 거라 그런지 굉장히 충격이 컸다. 그런 마음이 영화에 반영된 것이 아닌가 싶다.

 

관객1 : <잘돼가? 무엇이든>과 <미쓰 홍당무>의 캐릭터는 비슷한 부분이 많다. 두명의 여자 배우가 출연하고, 쌍욕을 내 뱉고, 모니터나 TV에 문구를 적어서 붙여 넣는 것이 그렇다. 그런 문자나 언어를 활용하는 게 인상적이었는데 이경미 어록으로 시리즈를 만들고 싶을 정도였다. 다음영화에서도 계속 쓰실 의향이 있는지.
이경미 : <잘돼가? 무엇이든>에서는 '적일 수록 항상 곁에 두고 배워야 한다'라는 문구를, <미쓰 홍당무>에서는 '쉽게 넘어가지 말자'라는 문구를 인용했다. 후자의 경우 내 스스로가 너무 쉽게 잘 넘어가기 때문에 각성하기 위해 적은 것이다. <미쓰 홍당무> 시나리오를 쓸 때 '웃지 못할 상황'이란 말도 써놓았었다. 스스로를 각성시키기 위함이었는데 이후에도 그런 태도가 지속되면 연속적으로 사용하지 않을까 싶다. 시리즈를 만들 생각은 못해보았지만 만약 만드시면 저한테도 보여주셨음 좋겠다.   

김성욱 : <잘돼가? 무엇이든>도 영화의 마지막 부분에서 거친 말을 하는 장면이 인상 깊었다. 나중에 반전처럼 대사에서 사투리가 나오는데 어떻게 쓰게 되었는지.
이경미 : 사투리는 전혀 못한다. 누구를 염두에 두고 쓰진 않는다. 쓸 때는 기억들의 조각이 모아지는 것 같다. <잘돼가? 무엇이든>때는 조감독을 보고 쓴 것 같다. 그 친구는 부산에서 온 친구인데 사투리가 재미있었다. 개인적으로 경상도 사투리를 좋아하기도 한다. 사투리를 쓰는 사람을 보면 좋아하는 감정이 생긴다. 조감독이 감정 게이지가 올라갈 때 사투리가 나오는 걸 보고 차용했다. 실제 당시 지역 역을 한 배우도 사투리를 못한다. 그래서 조감독이 배우를 연습시켰고 그로 인해 엔딩 크레딧에 ‘방언지도’도 올라갔다.

 

김성욱 : 몇몇 장면은 굉장히 스펙터클하고 스타일리쉬한 부분이 있다. 불자동차가 등장하는 장면도 그렇고 로케이션 촬영도 많다. 일상적인 톤일 것 같은데, 조명에서도 표현적인 특성이 나타난다. 특히 박사장의 얼굴은 영화에서 끝내 안나온다. 처음부터 염두에 두고 촬영한 것인가.
이경미 : 처음 콘티짤 때부터 시점 숏을 염두에 두고 그렇게 한 것이다. 그것이 관객에게 훨씬 강하게 느껴질 것이라 생각했다.

 

관객2 : <잘돼가? 무엇이든>에서 나오는 대사 중 희진이가 “박사장 때문에 속타 죽지”라고 말한 것을 지영이가 “박사장 불에 타 죽지”로 듣는 것 처럼 나온다. 진짜 어떤 대사가 맞는건지 궁금하다.
이경미 : 희진이가 “박사장 땜에 속타 죽지”라고 한것이 맞다. 그런데 지영이가 ‘박사장이 죽어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니까 그렇게 들린 것이다. 다들 어렸을 때 그런 기억 하나쯤 가지고 있지 않나. 저도 어렸을 때 그런 기억이 있다. 어머니가 양배추를 사오라고 심부름을 시켰는데 나는 그걸 배추를 사오라는 것으로 들었고 그렇게 믿었다.근데 배추는 보통 한포기만은 잘 안팔더라. 고생고생해서 배추를 하나 사왔는데 왜 배추를 사왔나며 혼난 기억이 있다. 들은 것과 다르게 하나로만 접수될 때가 있는 것 같다.

 

관객3 : 감독님은 이야기를 시작할 때 어떤 식으로 시작하는지 궁금하다. 모티브가 되는 이미지가 있는지, 떠오른 이야기를 어떤 식으로 직조해 나가는지 혹은 처음부터 연출의도를 가지고 이야기를 구성하는지.
이경미 : <오디션>은 어떤 아마추어 배우가 술자리에서 경험담을 말한 것을 듣고, 꽂혀서 그대로 쓴거다. 그 당시 딜레마였다. 창작을 하는 사람이 지켜야 될 선에 대해 고민이 많았었다. <잘돼가? 무엇이든>의 경우는 주변 친구들이 대부분 직장인이었고 나 역시 직장을 다닌 경험이 있었다. 친구들이 직장에서 스트레스를 받고 힘들어하는 모습에서 재미있는 부분을 느꼈었다. 그리고 힘든 한주를 살아가는 친구들에게 '화이팅'이라고 말하고 싶었다. 처음부터 어떤 연출의도를 가지고 만들지는 않는다. 작은 에피소드나 이야기에 살을 붙여서 이야기를 만들고, 그러면서 연출의도가 생긴다.

 

관객4 : <잘돼가? 무엇이든>에서 지영이가 희진이한테 “왜 그렇게 열심히 해, 너만 상처받는다”라는 대사가 나오는데 <미쓰 홍당무>에도 비슷한 대사가 있다. 감독님의 평소 생각이 그러신지.
이경미 : 제가 평소 무엇이든 열심히 하는 편이다. 그런데 세상이 그 만큼 공평하지는 않다는 걸 느낀다. 그런 부분에 삐져서 그런 대사가 나온 것 같다.

 

관객5 : <잘돼가? 무엇이든>의 마지막에 나오는 라디오 아나운서 목소리가 감독님이 하신 게 맞는지 궁금하다. 그리고 또 하나 궁금한 것은 <미쓰 홍당무>에서 어학실 유리가 두 번 깨지는데 한번은 상처를 내기 위해서, 두번째는 주도권을 잡기 위해서 같다. 처음부터 계획된 것이었나.
이경미 : 첫번째 질문부터 답하자면 제 목소리가 맞다. <잘돼가? 무엇이든>의 아나운서 목소리도 그렇지만 <오디션>에서 할머니 숨소리도 제가 한 거다. 할머니의 연기가 생각만큼 안된다 싶어 고심했는데 제작 환경상 사람이 모자르다 보니 직접 하게 됐다. 그리고 두번째 질문하신 어학실에서 유리 깨는 장면은 중요한 의미가 있어서, 시니라오부터 이미 계산이 되어 있었던 거다. 보통 시나리오작업부터 디테일을 정해놓는 편이다. 물론 현장성이 적용이 되어 바뀌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처음부터 디테일을 염두에 둔다.

 

김성욱 : 다음 시간에 <미쓰 홍당무>도 상영하고 이어서 계속 이야기할 시간이 준비되어 있으니 이 시간은 정리해야 할 것 같다. 마지막으로 한가지 궁금한 것이 있는데 <잘돼가? 무엇이든>의 후반부에 말뚝잡고 있는 장면이다. 원래 현장에는 없었을 것 같은데 그 장면을 찍기 위해서 만든 건지.
이경미 : 원래 영화를 찍을 때 말뚝 하나만 박고 싶었다. 그런데 모두들 너무 격렬하게 반대 했다. 그래서 새끼 막대기를 옆에 세워두게 된 것이다. 막대기의 디테일은 시나리오 쓸 때부터 구상한 거다. 달리의 그림 중에 여자의 가슴에 구멍이 있는데 그 가운데에 막대기만 있는 게 있다. 그 그림을 보면서 그게 지영이의 마음이라고 생각했다.


정리: 이하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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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9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에는 7명의 '데일리 친구들'이 영화제에 참여해 상영작 소개글 및 리뷰, 영화제 기간에 진행된 시네토크를 정리해 기사를 작성했다. 영화제가 끝나가면서 영화제에 열정적으로 참여했던 '데일리 친구들'의 시네마테크와 영화제에 관한 짤막한 단상을 소개한다.    

시네마테크를 향한 연애편지






올해로 4회를 맞는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가 막바지에 다다랐다. 2월이 지나고 3월이 오면 서울아트시네마는 이제 새로운 프로그램을 위한 준비에 분주해 질 것이다. 서울아트시네마의 1년 중, 그 어느 때보다 분주하고 그 어느 때보다 활력 넘치는 한달여의 시간은 또다시 내년을 기약한다. 그리고 동시에 ‘친구들 영화제’의 일원으로 속해있던 나 또한 내년에 돌아올 ‘친구들 영화제’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3월의 첫날, 나는 ‘친구들 영화제’의 폐막과 동시에 개강을 준비해야 한다. 서른 편 남짓의 영화들에 둘러싸여 정신없는 방학을 보냈던 나는 이제 온전히 영화로만 이루어진 달콤한 꿈을 잠시 접어야 한다. 그 어느 때보다 기다렸던 2009년의 겨울은 어느새 봄을 준비하라는 다그침으로 바뀌어 있다.


한국에서 겨울을 맞이하는 건 2년, 정확히 횟수로 따지면 3년 만이다. 3년에 걸친 시간 동안 나는 인도에 잠시 둥지를 틀고 있었다. 인도와 한국, 두 나라는 모두 뚜렷한 사계를 가지고 있지만 실제의 기후는 조금 차이가 난다. 한국에 강한 햇볕이 내리쬐는 여름, 인도는 하루 종일 비가 퍼붓는 우기를 준비한다. 인도의 최북단 지방은 겨울이 되면 영하 2,30도 안팎으로 떨어지곤 한다. 한국의 30배에 달하는 인도의 거대한 땅덩어리는 북부와 중부, 그리고 남부에 걸친 다양한 기후를 가지고 있다. 인도를 여행하고자 하는 대부분의 한국 사람들은 비교적 날씨가 안정적인 겨울을 택한다. 나도 좀 더 쾌적한 여행을 위해 겨울이라는 계절을 선택했고, 그렇게 매년 겨울마다 인도에 머무는 ‘못된’ 습관을 들였다. 인도에서 생활했던 시간들은 더없이 값진 것들이었지만,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생긴 기회비용은 바로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였다. ‘친구들 영화제’는 시네마테크의 1년 중 가장 큰 행사이며 평소 보고 싶었던 감독들과 배우들을 만나는 행복을 제공하는 것이기도 하다. 2006년 처음으로 ‘친구들 영화제’의 북적거림에 맛 들린 나는 이후 두해의 겨울을 인도에서 보내며 늘 아쉬움을 안고 살아야 했다. 작년 겨울, 네팔의 안나푸르나 등반 중에 지인들에게 부쳤던 엽서는 온통 ‘시네마테크’라는 단어로 도배되어 있었다. 까맣게 그을린 ‘정글소녀’의 몰골로 3월이 시작될 즈음 한국에 돌아오자마자 가장 먼저 확인한 것 역시 지난 ‘친구들 영화제’의 프로그램이다. 지난 몇 년 간 나에게 겨울이라는 단어는 곧 시네마테크를 의미했다.


그렇게 기대하고 기대하던 ‘친구들 영화제로의 귀환’을 무사히 마친 후, 문득 떠오르는 것은 처음 시네마테크를 만났던 순간의 기억이다. 고등학교 3학년에 진학하던 겨울, 시네마테크라는 난생 처음 보는 공간 안에서 만났던 영화는 아마 구로사와 아키라의 영화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런저런 전시회를 둘러보던 나는 우연히 아트선재 밑에 극장이 있다는 정보를 들었고, 그 길로 내려가 영화를 관람했다. 고등학교 시절에는 거의 인사동에서 살다시피 했으므로 그때 이후 시간이 날 때마다 종종 시네마테크를 찾곤 했다. 그렇게 혼자만 다니던 시네마테크에 친구 손을 붙잡고 온 것은 그 다음해, 그러니까 대학교 입시가 끝난 해의 겨울이다. 프랑소와 오종의 자극적인 단편들을 보며 스트레스를 해소하곤 했던 나는 그때 만해도 시네마테크가 내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공간이 되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나는 예중․고를 거쳐 자연스레 미대에 진학했기 때문에 영화에 관련된 과나 학원과는 꽤나 거리가 멀었다. 때문에 좋은 영화나 좋은 비평을 발견해도, 그것을 나눌 수 있는 친구들은 지극히 한정되어 있었다. 영화에 관한 농담을 나눌 수 있는 친구들은 있어도 영화가 던져주는 텍스트나 감정들에 대해 이야기할 친구들은 거의 없었다. 화가가 되고 싶은 꿈은 학교 내에서도 충분히 해소할 수 있었지만 영화를 나누고 싶다는 꿈은 어디에서도 해소될 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시네마테크에 더욱 안착했고 뜻 맞는 동창들 몇 명이 모여 시네마테크에 대한 이야기를 줄기차게 이어나가기 시작했다. 시네마테크는 나에게 결국 ‘방과 후 수업’과 같은 존재다. 그 곳에 가면 많은 사람들이 반짝이는 눈빛으로 영화 보는 진풍경을 감상할 수 있고 평소에 듣도 보도 못한 영화들을 경험할 수 있었다. 서울아트시네마가 지금의 공간으로 이사하기 직전, 그러니까 소격동 시절에 마지막으로 상영했던 차이밍량의 <안녕, 용문객잔>은 평생에 걸쳐 잊을 수 없는 아련함을 안겨주었다. 서울아트시네마가 낙원상가로 이사한다는 사실을 모른 채 극장이 아예 사라진다고 착각했던 나는 아주 차분히 아트선재의 계단을 쓸며 올라왔었던 것 같다.


극장이 없어지지 않고 예전 모습 그대로 낙원상가 4층에 새둥지를 틀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날 나는 영문 모르는 친구의 팔을 붙잡고 종로 한 복판을 길길이 뛰어다니기도 했다. 돌아보면 그때의 철없던 애정이 결국 지금까지 종로 어귀를 전전하게 만드는 원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아주 어릴 때부터 좋아하던 한 감독의 영화를 극장을 통해 다시 만났을 때의 희열, 그 기쁨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아름다운 순간들이다. 최근에는 시네마테크를 향한 개인적인 욕심도 하나 생겼다. 2년 전, 시네마테크에서 한 러시아 감독의 특별전을 상영했는데 그때 이후 지금까지 그 감독에 대한 커다란 애정을 고스란히 이어오고 있다. 그 러시아 감독의 다른 영화들을 지속적으로 찾아보았지만, 역시 극장에서 보았던 그대로의 느낌은 나지 않았다.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그의 모든 작품을 시네마테크에서 관람하고 싶다. 더불어 ‘관객’으로서가 아닌 ‘감독’으로서 그의 영화를 소개하고 싶다는 당돌한 소망도 가져본다. 매우 뜬금없는 소망이지만, 그 어느 곳에도 이야기해본 적 없는 시네마테크에 대한 조심스러운 고백이자, 시네마테크와 함께 자라온 철부지 꼬마의 ‘장래희망’이다. 나에게 좋아하는 영화, 사랑하는 영화를 함께 나눌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은 시네마테크뿐이다. 영화를 보기 위한 단 하나의 공간만을 허락한다면 나는 주저 없이, 너무나 당연하게 시네마테크를 선택할 것이다. 나의 ‘당돌한’ 소망이 이뤄지는 그날 그리고 그 이후로도, 시네마테크가 영원히 살아남기를 간절히 바란다. (강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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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상수 감독이 추천한 에리히 폰 스트로하임의 <탐욕>

 

2월 22일 오후 2시 친구들 영화제에서는 홍상수 감독이 선택한 에리히 폰 스트로하임의 <탐욕>의 상영과 함께 오랜 친구 홍상수 감독이 이 영화를 추천한 이유와 영화에 대한 느낌을 관객과 같이 나눌 수 있는 시네토크가 펼쳐졌다. 스트로하임의 <탐욕>은 원본 상영시간이 9시간 반이라는 기록적인 전설을 가지고 있는 걸작으로 알려져 있으나 오리지널 버전은 소실되었고 이후 4시간 버전으로 복원된 바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 역시 배급이 이뤄지지 않고 있는 터라 이날 상영된 버전은 필름 상영으로 편집한 140분 분량의 편집본이었고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는 말 그대로의 ‘무성영화’다. 그래서인지 극장 안은 두시간 여동안 얕은 기침소리도 낼 수 없는 듯 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음악 소리 하나 없었던 '무성'이었지만 전혀 무성영화같지 않은 <탐욕>에 대해 홍상수 감독과 관객들이 함께 나눈 진담 어린 시네토크 현장을 옮긴다.

 




김성욱(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래머)
: 두시간 여동안 소리 없이 영화를 재밌게 보셨으리라 생각한다. 이 영화는 후반부 살인장면의 빛이 꽤 인상적인 명장면으로 알려져 있다. 그에 관한 비평 글도 있었다. 개인적으로 이 영화는 1990년대 초에 비디오로 처음 봤었는데, 화질이 좋지 않아서 그 장면을 제대로 확인하지 못했었다. 오늘 스크린으로 보니 잘 알려진 후반부의 ‘데스 밸리’ 장면이 강하게 와 닿는다. 어떻게 <탐욕>이란 작품을 이번 선택작으로 고르게 되었는지. 
홍상수(영화감독) : 좋아하는 영화들이 좀 있는데, 그 중에 한 작품이다. 그래서 보여주고 싶었다. 좋아하는 영화들 중 다른 작품들은 이 영화보다는 볼 기회가 더 많을 것 같다. 이 영화는 20년전에 봤었는데, 아직까지도 가끔 기억이 나는 영화였다. 그래서 나도 다시 보고 싶었고 관객들이 한번 보시면 좋겠다 싶었다. 좋은 영화라고 생각한다.

 

김성욱 : 20년 전에 보고 나서 어떤 부분이 기억에 제일 많이 남았었나.
홍상수 : 20대 중반부터 영화를 보기 시작해서 가슴에 남는 영화들이 40편 정도 되는데 <탐욕>도 그중에 하나다. 이것 저것 섞여서 느낌을 받았던 것 같다. 인물들의 시선이 흔히 접한 영화보다 자연주의적이라고 할까, 그런 시선이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이 영화는 <맥티그>라는 원작이 있는데, 원작에서 나오는 것이 겠지만 디테일이 놀라웠다. 예전에 봤을때는 음악이 깔려 있었는데, 그때 무성영화를 봤다는 생각을 안했었다. 그만큼 재밌게 봤었다. 가끔 스트로하임에 관한 글을 접해서 보면, 그는 참 재밌는 사람같다는 생각을 했다. 스트로하임은 오스트리아 출신인데 이름 중간에 붙은 '폰'은 보통 오스트리아 귀족들이 주로 붙이는 거다. 그런데 그는 귀족출신이 아니었고 미국에 건너오면서 스스로 붙였다고 한다. (웃음) 그게 좀 귀여웠다. 스트로하임이 이 영화를 생각하게 된 것은 미국에 처음 와서 궁상떨 때로 이 영화의 원작인 책을 읽고 언젠가 꼭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했고 그 생각이 이렇게 만들어진 것이라 한다. 그에게 있어서 <탐욕>이란 영화는 삶의 큰 프로젝트가 아니었나 싶다. 그리고 그는 또 배우로도 활동했다. 르누아르의 <거대한 환상>에서 독일군 장교로도 나온다. 르누아르는 스트로하임을 굉장히 좋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의 자서전에 따르면 스트로하임의 영화를 보고 영화를 해야겠다고 생각했을 정도다. 사실 스트로하임은 약간 사기꾼같은 기질이 있는 것 같은 인상을 받는데, 영화는 목숨걸고 만드는 사람 같다. 그런 인상들이 모아져서 이 영화를 더 좋아했었던 것 같고 물론 영화 자체도 좋았다. 특히 원작이 가지고 있는 디테일이 굉장히 풍요롭다는 생각이 든다. 무성영화라는 포맷과 그의 충실한 자세가 이런 영화를 만들었지 싶고 그래서 영화 자체가 더 아름답게 보인다. 이 영화는 보통의 무성영화보다 시선이 삶에 훨씬 근접해 있고 묘사가 소박하고 충실해 보인다. 보통 무성영화보다 상상할 폭이 더 많고, 깊이 빠져서 보게되니까 유성영화를 본 것 같은 느낌이다. 9시간 반짜리 원본은 못봤지만 원작을 훼손하지 않고 그대로 재현하는 충실함이 묻어 있고 읽어보진 않았으나 원작을 정말 좋아했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그런 작가들이 있다. 브레송의 경우도 그렇다. 브레송의 <시골 사제의 일기>라는 작품도 굉장히 유명한 작가의 작품이 원작인데, 브레송 스스로 이 영화와 마찬가지로 소설을 그대로 찍겠다고 했다 한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이 영화는 오늘 상영한 편집본 정도의 길이가 맞다고 본다. 9시간 반은 너무 충실한 분량이지 않나 싶다. 처음 이 영화를 접할 때는 음악이랑 같이 봤었는데, 훨씬 더 몰입할 수 있었다. 여러분들도 음악과 같이 보았다면 더 좋았을 것이다. <탐욕>은 내 머리에 있는 여러 별들 중에 하나로 자리하고 있는 작품이다. 이런 영화가 있었구나라는 생각하면 든든하다. 하나의 기둥처럼 서 있는 영화다.

 

김성욱 : 무성영화라고 느껴지지 않는 것 같은 부분이 분명 있다. 스트로하임은 무성영화임에도 불구하고 배우들에게 대사를 정확하게 하도록 지도했다고 한다. 무성영화에서는 말도 안 되는 건데, 20년대 영화가 주는 과장된 제스쳐가 있긴 하지만, 그때에 비해 사실적인 느낌이 있다. 무성영화는 인물을 표현하는 방법이 유성영화나 최근의 영화와는 다르지만 이 영화에서는 비슷한 느낌도 없지 않다. 자연주의적이라고 말한 인간의 본능적인 면들을 표현해나가는 부분이 그렇다. 인상적이었던 장면은 주인공이 여주인공에게 이빨 치료를 하는 장면이었다. 이 장면이 영화에서는 무척 길게 나왔는데 여자에 대한 남자의 욕망이 드러나는 장면으로 심리적인 느낌이 잘 전달된 느낌이다.  
홍상수 : 무성영화니까 생략이 훨씬 강하다. 소리를 상상하게 한다. 또 그런 여유를 만들어내니까 다른 생각도 개입하게 된다. 개인적으로 무성영화가 형태로써 떨어진다고 생각하지 않고 여전히 하나의 형태라고 생각한다. 나도 무성영화를 만들 수 있을 것 같다. 형식이 주는 맛이 있지 않는가. 무성영화가 의도한 것은 아닐 테지만, 결과적으로 영상이 짧게 한마디씩 나에게 설명하고 있는 것 같다. 이런 부분이 재밌다. 그리고 명확한 글자가 나오는 것이 반복되는 형태 자체가 좋다. 영화를 하고 있지만 사진도 좋아하는데 사진을 봤을 때 영화로는 할 수 없는 것이 있다. 사진은 혼자 상상하는 부분이 많다. 정지된 화면에서 보이는 증폭시키는 힘이 있다. 무성영화는 그런 비슷한 맛이 있는 것 간다. 유성영화가 말과 행동으로 문화적 컨텍스트 위에서 재는 느낌이 있다면, 무성영화는 상상하게 되니까 사람의 움직임 하나도 다르게 느껴지는 것 같다. 뤼미에르 형제의 기록영화들이 좋은 예다. 사진도 아니고 영화 같지도 않은데 사람의 움직임을 그냥 보게 된다. 컨텍스트로 반응하는게 아니라 사람의 움직임이 아름답다고 생각하게 만든다. 약간의 이야기가 있을 뿐이고, 여백이 많아서 계속 상상하게 되는 것이 좋다. 보통 각색할 때 상식적인 선에서는 원작이 있으면 그건 그냥 시작점이고 재료로써만 보아야 한다고들 말하는데 스트로하임이나 브레송은 그렇지 않다. 원작에 충실하겠다는 자세로 만들지 않았나 싶다. 그러면 잔재주를 부리지 않게 되고 깨끗하게 만들어지는 것 같다.

 

관객1 : 감독님의 데뷔작인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도 원작소설이 있는 것으로 안다. 그 때의 감독님 자세는 어떠셨는지.
홍상수 : 그 때는 영화를 만들기가 힘든 상황이란 걸 직감하고 영화를 만들 수 있기 위해서 나름대로 노력의 결과로 원작을 정하게 된 것이다. 구효서란 분의 글이다. 그 전에 그분의 글을 읽은 것은 아닌데 영화를 만들기 위해선 원작이 있는 게 낫겠다 싶어 골랐다. 내가 쓴 것들은 제작사에서 이해도가 낮았다. 그때 같이 하던 친구들이 네 명이 있었다. 작업을 네 명이서 각자 나눠서 해 보았다. 그리고 기록들을 내가 합쳐서, 만들게 된 것이다. 아까 말씀드린 케이스들과는 거리가 있다.

 

관객2 : 감독님 영화에서는 리얼리즘적인 것을 생각하게 된다. 개인적으로 리얼리즘을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듣고 싶다.
홍상수 : 대학 때 예술사 수업에서 절대적 리얼리즘이란 있을 수 없다는 말을 들었던 적이 있다. 보는 사람이 충분히 사실적이라고 생각하면 그것이 리얼리즘이라고 생각한다. 리얼리즘 자체는 시대를 그려내는 종류의 영화들을 카테고리로 모아서 칭하기 쉬운 용어인 것 같은데 내겐 의미 없다. 삶은 사람 손을 벗어나는 무한한 것들이다. 의식과 시선은 취사선택을 통해 들어가는 것들이다. 표피적이고 일상적인 것을 다룬다해도 그것 또한 사람이 손을 댄 인위적인 것이다. 리얼리즘이란 용어자체는 내게 별 의미가 없다.

 

관객3 : <탐욕>에서 캐릭터를 잘 그렸다고 말씀하셨는데 탐욕을 바라보는 3명의 인물들이 결국 같은 것을 추구하지 않는가. 관점만 조금씩 다를 뿐 갖고 있는 성향들이 같은 것 같다는 인상을 받았는데, 그렇다면 같은 성향의 캐릭터들의 나열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홍상수 : 그것은 제목에 따른 주제의식을 표방한 것으로 인물들의 행동도 그 주제의식을 따른 것이라고 본다. 하지만 인물형은 좀 다르지 않나 생각한다. 맥티크는 좀 느리게 생각하고 자연을 좋아하고, 여린 면이 있을 뿐 아니라 사람 잘 믿다가 극한에 다다르면 폭발하고 자제력도 없어진다. 반면 마커스는 잔머리를 잘 굴리고 위선적인 데다 이중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여자는 유약하게 타고 났는데, 격식을 차리는 가정에서 심리적으로 윤리적 억압 상태에 있다가 결혼하고 확 변하는 스타일이다. 돈 만지면서 유약한 신경계가 망가진 캐릭터. 그 정도면 잘 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관객4 : <탐욕>에 등장하는 캐릭터들과 감독님 영화에 등장하는 캐릭터들이 비슷한 느낌이 있다. 모든 캐릭터들이 욕망을 가지고 있지만 그건 결핍으로써의 욕망이고 후반부에서는 깨달음을 얻으면서 끝난다는 면이 그렇게 보인다. 공통점이 있다고 생각하시는지 그리고 또 하나 감독님 영화는 대사가 참 매력적이면서 참신하다는 느낌을 받는데 어떤 방식으로 시나리오를 써서 그런 대사가 나오는 것인지 시나리오 작업 방식에 대해 듣고 싶다.
홍상수 : 어떤 영화든 공통점을 찾으려면 찾을 수 있다. 욕망은 지나치게 형이상학적이거나 습관적 욕망 등을 조심해야 하고, 우러나오는 자제된 욕망은 괜찮지 않나 싶다. 캐릭터의 공통점은 잘 모르겠다. 사실 난 나의 캐릭터들에 대해 얘기하는 것을 싫어하는 편이다. 일관적이지 않는 조각들이 붙어서 만들어진 캐릭터들이기 때문이다. 각자의 시선에 따라 충분히 다르게 보일 수 있다. 배우들에게도 구체적으로 이야기해주지 않는다. 대사를 쓰는 것은 아침마다 써서 씬을 완성한다. 트리트먼트에도 별로 대사가 많지 않다. 90% 이상이 그날 아침에 나온다. 대사는 쓰고 나서 기억이 잘 안 난다. 단순한 말도 어떻게 끝내는지 잘 모르겠다. 쓸 때 그냥 미쳐서 막 담아놨다가, 미뤘다가 마지막 순간에 터져 나오는 거 같다.

 

관객5 : 100억을 한 편에 다 써야하는 영화를 찍는다면 어떻게 찍을지 궁금하다.
홍상수 : 100억짜리는 글쎄(?) 장난을 칠 수는 있을 것 같다. 100억짜리 실험영화들은 만들 수 있을 것 같은데. 쓸 데가 없을 것 같다. 개인적으로 돈 너무 많이 드는 영화는 별로다.

 

관객6 : 재작년 친구들 영화제에서는 감독님이 루이스 부뉴엘의 <절멸의 천사>라는 영화를 선택하셨고 당시 GV에 참여했었다. 그때 감독님이 "자기에게 100만큼의 진심이 있으면 영화로 표현해서 타인에게 전달할 수 있는 것은 50이고, 그걸 타인이 진심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20,30밖에 안된다. 근데 그게 중요해서 영화를 만드는 것"이라고 말씀하셨는데 그 말이 인상에 남아 잊지 않고 계속 담아 두고 있다. 새로운 작품의 개봉을 앞두고 계신데, 그런 생각에 변화가 있는가.
홍상수 : 별로 변화 없는 것 같다. 나이를 먹으면서 변하는 게 조금씩 반영되고 있는 거지, 그다지 생각의 변화는 없다. 첫 영화 만들 때와 지금과 자세는 거의 똑같은 것 같다.

 

관객7 : 영화에 임하는 충실한 자세에 대한 얘기를 많이 하셨는데 그 말을 들으면서 감독님이 좋아한다고 말씀하셨던 '세잔'이 떠올랐다. 충실한 자세가 중요하다고 하셨는데 감독님의 경우는 그것이 어떻게 발현되는지 궁금하다.
홍상수 : 자세가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남들의 잣대는 절대적이지 않다. 재능은 그 후다. 자기의 재능에 전착해서 그게 꽃필 때까지 기다리고 있으면 된다. 올바른 자세를 가지면 견디는 힘이 생기는 것 같다. 곰곰히 잘 생각해서 자기가 하는 일을 아낄 줄 알면 되는 것 아닐까. 자기가 생각해서 제일 좋아하는 자세로 임하면 좋은 결과가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김성욱 : 좋은 자세는 어떻게 나오는지. (웃음)
홍상수 :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자기 자신에 대해 냉철하게 쳐다보고, 계기가 생길 때 마다 놓치지 말고 자기에 대해 많이 알려고 하는 것이 시작이다. 그러다보면 그걸 바탕으로 어떻게 살아야겠다는 방향이 정해진다고 본다. 시작은 '자기 자신에 대해 알기'이다. 그러면 계기가 생길 것이다. 작은 계기라도 잘 생각해서 자신에 대해 솔직하게 생각하고 쳐다보는 시간을 많이 가지면 보인다. '자기 보기' 시간이 많이 늘어나면, 자기 생각이 생긴다.

 

김성욱 : 나중에 좋아한다고 언급한 40여 편 정도의 영화를 레퍼토리로 상영하고 이야기를 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감독님의 얘기를 듣고 있으면 곱씹게 된다. 영화도 재밌지만, 같이 이야기 하는 것이 더 좋았던 시간이었다. 토크 시간이 조금 더 길었으면 좋았겠다 싶다.
홍상수 : 나도 20년 만에 가끔씩 기억나는 좋은 영화를 다시 볼 수 있어서 기쁘고 좋았다. 

 

정리 : 이하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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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워드 혹스의 <히스 걸 프라이데이>






하워드 혹스가 1940년에 만든 <히스 걸 프라이데이>는 대사가 쉬지 않고 나오는 영화다. 대립 끝에 해피엔딩을 맞는 남녀, 거침없는 서사 진행, 그리고 정신없을 정도로 빠른 대사가 나오는 장르를 스크루볼 코미라 일컫는데 이 영화는 그 스크루볼 코미디 장르의 전형을 보여주는 영화라 할 수 있다. 월터(캐리 그랜트)와 힐디(로잘린드 러셀) 두 사람의 대화만이 십여 분간 계속되는 첫 시퀀스부터 장르적 묘미는 쉽게 찾을 수 있다. 첫 장면부터 혹스는 한정된 공간 안에서 오로지 두 배우들의 쉴 새 없이 이어지는 대사와 그 리듬감만으로 팽팽한 긴장감과 흥미를 만들어낸다.


<히스 걸 프라이데이>는 하워드 혹스가 훌륭한 배우들과 함께 만들어낸 스크루볼 코미디 장르의 정점에 놓인 작품인 동시에 또한 혹스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영화이기도 하다. 1926년에 데뷔해서 1970년 <리오 로보>를 만들기까지 웨스턴에서 필름 느와르, 뮤지컬 등에 이르는 다양한 장르 영화를 연출한 하워드 혹스는 자신의 직업에 강한 사명감을 가지고 있는 '일 중독자'들을 주로 주인공으로 다루었다고 한다. 이러한 특징은 <히스 걸 프라이데이>에서도 확인할 수 있는데, 특종을 취재하기 위해서 모든 것을 다 팽개치고 사건에 매달리는(그래서 웃음을 불러일으키는) 월터와 힐디의 행동에서는 거의 강박증에 가까운 일에 대한 열정을 엿볼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이 특종을 두고 주고받는 빠른 대사는 단순한 장르적 장치가 아니라 철저한 프로의식의 발현이기도 하다. 영화의 첫 부분에 나오는 "특종을 위해서는 살인만 빼고 다 했다"라는 말은 절대 과장이 아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혹스가 이들을 단지 특종에 목을 맨 일 중독자처럼 비추지도 않는다. 수다스럽기 그지없는 이 영화에 딱 한 번 등장하는 기자들의 침묵 장면은 일에 미쳐있으면서도 책임감을 잊지 않으려 노력하는 성숙한 프로의 태도를 보여준다. 이런 점 역시 혹스 영화가 지닌, 그가 보여주려 하는 매력적인 모습 중 하나일 것이다.


한편 이 영화는 저널리스트가 등장하고 특종을 다룬다는 점에서 루이스 마일스톤의 1931년 작 <특종기사(The Front Page)>와 닮아 있다. <특종기사>는 <히스 걸 프라이데이>의 원작 격이라고 할 수 있는데, 재미있는 것은 <특종기사>에서는 월터와 힐디가 모두 남성이었다는 점이다. 하워드 혹스는 이 영화를 구성하면서 <특종기사>의 캐릭터와 내용은 빌리데 한 인물을 힐디라는 여성으로 설정하면서 영화에 로맨틱한 설정을 집어넣은 것이다. 그리고 캐리 그랜트와 로잘린느 러셀은 정말 이 설정을 십분 살려내었다. 누구보다도 바쁜 사람이지만 그 가운데서도 넉살 좋은 유머를 잊지 않는 캐리 그랜트는 말할 것도 없으며, 로렌 바콜 만큼이나 멋있게 담배를 피우는 모습을 보여주는 로잘린느 러셀은 웬만한 남자 배우들보다 더 카리스마 있는 모습을 보여준다. 두 사람의 숨 가쁘게 주고받는 연기 호흡은 영화 전체에 유쾌한 활력과 긴장, 로맨틱한 분위기를 동시에 만들어낸다.


스크루볼 코미디라는 장르적 관습을 모두 아우르는 이 영화는 장르적 장치를 차치하고라도 결코 한 눈을 팔수 없게 만드는 영화다. 시종일관 쏟아지는 속사포 같은 대사가 속도감 있게 전개되기 때문에 그들의 대사를 쫓아가다보면 자연스레 극의 상황에 몰입하게 되니 말이다. 2009 시네마테크 친구들 영화제를 통해 스크루볼 코미디 장르를 대표하는 영화이자 혹스의 대표작 중 하나인 <히스 걸 프라이데이>를 필름으로 감상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지 마시길. (김보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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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리 와일더의 <선셋대로>






빌리 와일더의 1950년 작 <선셋대로>는 그동안 시네바캉스나 친구들 영화제를 통해 서울아트시네마에서 간간이 소개되어왔던 작품이다. 영화는 풀장에 떠있는 한 남자의 시신으로부터 시작한다. 시나리오 작가로 궁핍한 삶을 이어가던 조 길리스(윌리엄 홀덴)는 차 할부금을 떼먹고 도망치다가 무성영화 시대의 유명 여배우 노마 데스몬드(글로리아 스완슨)가 살고 있는 선셋대로의 한 저택에 도착한다. 조는 어쩌다 노마의 시나리오를 검토해주는 댓가로 저택에서 호화로운 생활을 영위하게 된다. 어느 날 그런 삶이 갑갑해진 조는 우연히 다시 만난 베티 셰이퍼(낸시 올슨)와 함께 시나리오를 쓰기 위해 밤마다 외출을 한다. 그는 베티에게 노마와의 관계를 숨기려하지만 결국 들키자 노마에게서 떠나려한다.


대표적인 할리우드에 대한 할리우드 영화로 알려진 이 영화는 당시 할리우드의 상황을 반영하고 있다. 50년대를 바라보는 스튜디오 시스템은 관객 수의 감소나 TV와의 경쟁 등에서 비롯된 한계에 부딪히면서 서서히 붕괴될 위기에 처해 있었다. 그런 전조가 조의 자조적이고 비관적인 대사를 통해서 자주 표현된다. 영화에는 궁색한 작가들의 신세, 예산에 민감한 영화사들의 상황이 자연스럽게 드러나고 있다. 영화 전체에 깔린 불안감이 당시 할리우드 시스템이 당면한 경제적, 미학적 난관과 맞물려 표현된 것이다.


영화는 외부적으로 할리우드의 상황을 반영하고 있다면, 내부적으로는 등장인물들에 대한 역사를 직접적으로 언급하고 있다. 여주인공 노마 역의 글로리아 스완슨, 집사 맥스 역의 에리히 폰 스트로하임, 노마와 작업했던 감독 역의 세실 B. 드밀 외에도 버스터 키튼 같은 무성영화 시대 인물들이 실제로 등장한다. 자기망상에 빠진 노마가 거실에서 감상하는 자신의 영화는 스트로하임이 감독하고 스완슨 자신이 주연한 <여왕 켈리>(1929)이고, 노마가 찾아간 드밀은 그의 영화 <삼손과 데릴라>(1949)를 촬영 중이기도 하다.


영화에서 노마는 조에게 엄청난 부와 안락함을 제공한다. 한편으로 조는 그런 세계를 견디지 못하고 탈출을 시도하면서 일과 사랑에 대해 열정적인 베티 셰이퍼에게 빠져든다. 여러 면에서 노마와 베티는 ‘올드 할리우드와 뉴 할리우드’, ‘무성영화 시대와 유성영화 시대’, ‘죽음과 사랑’ 등으로 대비된다. 노마가 막대한 부를 가졌고 사치를 부리지만 홀로 쓸쓸히 살아가는 인물이라면, 베티는 소박한 삶 속에서 자신의 일에 대한 열정을 가지고 바쁘게 살아가는 인물로 그려진다. 영화는 조를 가운데 두고 노마와 선셋대로의 저택이 풍기는 죽음의 이미지와 베티의 일과 사랑이 주는 삶의 이미지를 대비시킨다.


이외에도 영화는 죽은 인물의 내레이션을 이용한 플래시백 구조가 돋보이고 느와르적인 조명과 영상, 실제 파라마운트에서의 촬영을 통한 반기록영화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다. 다양한 측면에서 여러 비평가들을 통해 언급된 <선셋대로>는 그만큼 풍부한 텍스트다. 간간히 소개된 작품이지만 영화의 고전, 역사가 살아있는 이번 시네마테크 친구들 영화제에서 <선셋대로>를 접하면 다시 한 번 빌리 와일더의 진가를 확인하는 기회가 될 것이다. (이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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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데리코 펠리니의 <카비리아의 밤>






영화 <카비리아의 밤>은 페데리코 펠리니의 1954년 작인 <길>의 연장선에 위치한 작품이다. <길>의 젤소미나와 <카비리아의 밤>의 카비리아는 진실한 사랑을 찾아 떠도는 여성으로 어떤 상황에서건 특유의 낙천성을 잃지 않고 미래를 바라볼 수 있는 쾌활한 성격을 가진 주인공이다. 하지만 카비리아는 젤소미나와 달리 필연적인 시공간을 배회한다. <길>이 우연히 던져지는 사건들의 연속이라면 <카비리아의 밤>은 시간과 공간이 서로 치밀하게 얽혀 하나의 완벽한 드라마를 만들어 낸다는 것이다. <카비리아의 밤>은 페데리코 펠리니가 네오리얼리즘을 떠나는 반환점이 되는 동시에 ‘펠리니적’이라는 수식어의 탄생 과정에 놓인 영화다.


영화는 물에 빠진 카비리아를 마을 사람들이 구출해내는 장면으로부터 시작된다. 카비리아가 사랑했던 조르조는 카비리아를 물에 빠뜨린 채 그녀의 돈을 빼앗아 달아난다. 카비리아는 물에 흠뻑 젖은 채 사람들의 구경거리가 되고, 마침내 그녀는 애지중지 키우던 닭을 끌어안고 울음을 터뜨린다. 하지만 카비리아의 우울한 마음은 이내 조르조에 대한 분노로 바뀐다. 그녀는 눈물을 삼킨 채 방으로 들어가 조르조의 사진을 모조리 불태워버린다. 마음을 굳게 다진 카비리아는 떠나간 조르조를 뒤로하고 다시 거리로 나선다. 그러나 여전히 그녀의 사정은 계속해서 후퇴할 뿐이다.


펠리니의 영화 속 주인공들 대부분은 종교적인, 혹은 구원적인 특정 대상에 자신을 의지해 해답을 얻으려 노력한다. 그러나 그들은 모두 신으로부터 외면당한 채 스스로 파멸하고 갱생하기를 거듭한다. <카비리아의 밤>의 카비리아 또한 자신의 처지를 벗어나고자 성당을 찾지만, 그녀에게 되돌아오는 것은 구원의 밧줄이 아닌 침묵뿐이다. ‘언젠가는 지독한 불운에서 벗어나리라’ 다짐하는 카비리아를 덮치는 것은 실망과 배신의 나날이다. 페데리코 펠리니는 카비리아라는 인물의 행로를 설정하기 전에 그녀가 몇 번이고 실패로부터 일어서게 만드는 힘을 영화에 덧씌운다. 카비리아의 ‘힘’은 기적, 혹은 구원 에 대한 갈증으로 펠리니는 이를 통해 카비리아의 행동에 대해 한 치의 의심도 허용하지 않는 질서를 만들어 낸다.


영화가 끝나갈 무렵 카비리아는 마지막 희망, 그리고 마지막 기적의 상대인 오스카를 만난다. 거듭되는 악몽이 두려웠던 카비리아는 오스카를 경계하지만, 그의 끈질긴 구애 앞에 결국 마음을 받아들인다. 그러나 그토록 사랑을 속삭였던 오스카도 사랑의 힘에 이끌려 카비리아를 원한 것이 아니었음이 밝혀지고, 카비리아는 홀로 외딴 지방에 남아 구슬픈 눈물을 흘린다. 자신이 살던 마을을 벗어나 방황하던 카비리아는 그녀의 유일한 친구였던 음악의 유혹에 이끌려 울음을 삼키고 웃음을 짓는다. 카비리아의 눈가에 맺힌 검은 눈물방울은 사랑이라는 단어를 이용해 기생해야했던 남성들의 모습을 보여주는 동시에 딛고 일어나야만 하는 카비리아의 ‘광대적 삶’을 함축적으로 묘사한다. 카비리아의 웃음은 그녀가 그토록 찾아 헤맸던 종교적 해답을 발견했음을 보여주고, 이것은 곧 페데리코 펠리니의 ‘신성’으로 이어진다. 웃는 자는 곧 깨달음을 얻은 자이며, 자기치유의 권한을 단독으로 부여받은 사람이다. 카비리아는 사랑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자신을 사랑하며 세상을 향해 웃음 짓는다. (강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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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베르 브레송의 <무셰트>






영화 <무셰트>는 희생과 영적 구원에 꾸준한 관심을 보여 왔던 로베르 브레송이 1967년에 만든 작품이다. 로베르 브레송은 60년대에 접어들어 점차 영적 구원이라는 주제에 이어 은총에 흐르는 통로와 죽음을 받아들이는 태도에 대해 탐지하기 시작한다. 조르주 베르나노스가 1936년에 발표한 소설 <무셰트의 새로운 이야기>를 원작으로 각색하여 만들어진 이 영화 역시 그 같은 맥락 위에 있다.


영화는 14살 소녀 무셰트의 일종의 종교적 수난기를 따라가는 듯하다. 가난한 시골 마을에 살고 있는 무셰트에게는 병든 어머니와 알코올 중독자인 의붓아버지, 밀수를 하는 오빠, 그리고 갓난아기인 동생이 있다. 이들은 무셰트에게 무거운 짐으로 다가 오고, 이 같은 현실에서 무셰트는 절망감을 느낀다. 그러던 어느 날 무셰트는 방과 후 귀가하는 아이들을 피해 산길로 돌아오다 큰 비를 만나 길을 잃게 되고 그곳에서 밀렵꾼 아르센을 만난다. 아르센은 무셰트에게 자신이 밀렵 감시원인 마티유를 죽인 것 같다고 고백한다. 동정과 사랑을 느낀 무셰트는 자신이 알리바이를 세워주겠다고 제의하고 아르센은 갑작스러운 간질로 발작한 후 무셰트를 성폭행한다. 무셰트는 집으로 돌아와 어머니에게 모든 것을 말하려 하지만 어머니는 아무런 도움 없이 죽어버린다. 어머니를 잃은 무셰트를 마을사람들은 동정 어린 눈길로 바라보지만 끝내 무셰트는 그것이 가식이며, 아르센 역시 자신에게 거짓말을 했음을 확인한 후 자살을 결심하게 된다.


이 영화에서는 로베르 브레송만의 특징적인 영화 문체들이 눈에 띈다. <무셰트>에서 가장 주되게 나타나는 것은 음향과 영상의 특징적인 사용이다. 무성영화에 가깝도록 말이 없는 이 영화는 음향과 영상이 무관한 것처럼 보이나 실은 음향과 영상이 각기 다른 고유한 방법으로 하나의 장면을 만들어내곤 한다. 이를테면 학교 종소리와 학생들의 말소리를 통해 학교의 이미지 없이도 학교라는 배경을 환기시키는 장면이다. 이 같은 결합과 함께 또 하나 주목할 것은 카메라와 쇼트의 자유로운 사용이다. 종종 영화는 무셰트의 얼굴을 보여주지 않음으로써 그녀의 낡은 옷과 걸음걸이에 집중하게 만든다. 거기서 관객은 무셰트의 표정을 굳이 보지 않아도 그 여린 소녀가 낙담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또한 극단적인 클로즈업을 삽입함으로써 손에 잡힐 듯한 촉각적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무셰트>의 이러한 장면들은 우리에게 그간 영화를 통해 경험한 느낌과는 확연히 다른 생경한 느낌을 준다.


<무셰트>는 작가 감독으로 일컬어지는 브레송의 대표작이다. 그만큼 브레송이 세상과 소통하기 위해 일생 동안 만들어온 시네마토그라피의 여러 특징들을 담아내고 있다. 이 영화에서 우리는 그만의 독특한 영화 문체와 함께 무셰트라는 소녀를 통해 보이려 했던 절망에서의 죽음에 대한 질문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죽음은 구원과 은총의 통로가 될 수 있는가. 질문의 답은 영화 속에 있다. (김나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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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안성기가 추천한 존 슐레진저의 <미드나잇 카우보이>



2월 15일 늦은 오후, 이번 친구들 영화제에 새 친구로 참여한 배우 안성기가 그의 추천작인 존 슐레진저의 <미드나잇 카우보이>를 관객과 함께 보고 이야기하기 위해 서울아트시네마를 찾았다. 이 자리에서 그는 자신이 영화를 처음 봤을 때는 영화가 검열이라는 이름으로 난도질당했던 터라 꼭 온전한 상태로 다시 보고 싶었는데, 이번 기회에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다시 보게 되었다며 특히 아메리칸 뉴시네마의 개성적인 인물들과 다시금 조우할 수 있는 감동적인 시간이었다고 밝혔다. 또한 그는 이 모두가 오늘의 시공간을 함께 공유한 관객들 덕분이라며 앞으로도 시네마테크 운동이 지속될 수 있도록 관객들의 많은 관심과 참여를 부탁했다. 유난히 추운날씨였는데도 불구하고 그의 온화하고 나지막한 목소리는 극장 안을 금세 따뜻한 온기로 메웠다. 여기에 배우 안성기의 연기에 대한 주관과 열정을 느낄 수 있었던 그 즐거운 시간을 옮긴다.








김성욱(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래머) : 이 영화가 나온 건 69년이지만 60, 70년대에 미국영화가 가지고 있던 활력과 배우들의 놀라움이 있다. 처음 접한 영화는 아닐 텐데 다시 본 소감은 어떤가.

안성기(영화배우) : 영화는 딱 40년 전에 만들어졌고 우리나라에서 개봉한 것은 70년대 중반인데 제 경우엔 좀 나중에 보게 되었다. 개봉 당시가 유신군사정권 치하라 모든 게 잘려서 영화의 전체를 볼 수가 없었다. 듣기엔 굉장히 많이 잘려나갔다고 하던데, 어느 것이 잘려나갔었는지 궁금했다. 나중에 비디오로 보게 되었는데, 아시다시피 비디오로 보는 것은 스크린으로 보는 것에 비해 감상은 안 되지 않나. 그래서 이번 친구들 영화제를 핑계 삼아 다시 한번 보고 싶어서 추천했다. 아메리칸 뉴시네마가 성행하던 70년대 국내에서 수입영화는 일년에 스무 편 남짓 볼 수 있었다. 참 영화보기가 힘든 시기였는데, 당시 이 영화는 예술적인 만족과 상업적인 요소도 동시에 만족시켜주는 좋은 영화였다. 지금 봐도 뒤떨어짐이 없는 영화인 것 같다. 오늘 이 영화를 다시 보니까 생각나는 영화도 있다. 이장호 감독의 <바람 불어 좋은 날>이다. 시골에서 무작정 상경한 3명의 젊은 남자들을 통해서 당시 서울의 사회상을 보여준 영화로 당시의 사회적인 비판, 정치적인 요소가 많이 가미되어 있다. 물론 <미드나잇 카우보이>는 정치, 사회적 요소보다는 두 남자의 모습을 통해 화려한 뉴욕의 뒷골목과 치부와 우정을 잘 보여주는 영화라는 생각이 들지만 겹쳐지는 부분도 있다.


김성욱 : 배창호 감독의 <그해 겨울은 따뜻했네>라는 영화의 한 장면도 떠올랐다. 그 영화에 세운상가에서 카우보이 복장을 하고 등장하는 모습이 나오는데 존 보이트의 카우보이 복장을 보면서 그런 생각이 난 게 아닌가 싶다. 개인적으로 80년대 초반, 중고등학교 시절에 봤던 거의 모든 한국영화에서 안성기 선생님을 보았다. <풀잎처럼 눕다>라던가, <어둠의 자식들>, <바람 불어 좋은 날>, 심지어 <어우동>이라는 작품에서도 나오셨는데 좋았다. 그때 놀랐던 것이 선생님의 캐릭터와 연기다. 마찬가지로 60년대 말이나 70년대 초반의 미국 영화에서 주목할 만한 것이 배우들의 연기다. 특히 행위적인 면들이다. 선생님이 연기한 인물에서도 그런 것을 많이 느꼈는데 그 당시 배우들에게서는 생리적인 몸과 그들의 행동, 그들이 갖고 있는 내면적인 부분들이 외면적으로 표출되는 것을 느끼게 된다. 이 영화에서도 존 보이트와 더스틴 호프먼의 연기를 빼놓을 수 없을 텐데 인물들의 연기와 캐릭터는 어떻게 보셨는지.

안성기 : 더스틴 호프먼은 워낙 개성이 강하고 설정을 굉장히 잘하는 배우다. <마라톤 맨>, <빠삐용>, <크레이머 대 크레이머> 등 좋은 영화에 많이 나왔었다. 하지만 늘 이미지가 똑같은 느낌도 없지 않다. 뭔가 허술하고 비어있으며 조금 모자라는 느낌을 주는 역할을 많이 한 것 같다. 존 보이트는 거기에 반해서 배우로써의 느낌을 말하자면 액체 같다. 무얼 만들어도 되는 그런 배우라는 생각이 든다. 처음에 좋은 역할을 하다가 나중에 악역을 많이 한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지 않았나 싶다. 더스틴 호프먼은 자기만의 개성이 확실히 있어서 지금까지도 대부분 좋은 역할을 쭉 해왔다면, 존 보이트는 배우로써 점점 다양한 모습으로 변화를 주는 배우가 아니었나 싶다. 전자가 성격이 강한 배우라면, 후자는 여지가 많은 배우라고 할 수 있다.


김성욱 : 두 명의 남자배우가 나오는 영화를 ‘버디무비’라고 부른다. 이렇게 쌍벽을 이루는 두 배우가 호연을 할 경우, 배우들의 호흡은 어떻게 할까 늘 궁금했다. 예를 들면 개성에 차이도 있고 굉장한 힘이 있는 로버트 드니로와 알 파치노가 한 영화에 같이 나오는 경우처럼 말이다. 마찬가지로 더스틴 호프먼과 존 보이트도 개성적인 인물들이다. 그런 인물들이 한 영화에 같이 나오고 특히 마지막 버스에서 더스틴 호프먼이 죽음을 맞을 때는 두 사람의 호흡이 꽤 중요할 텐데 어떻게 맞추는지 궁금하다. 안성기 선생님도 ‘버디무비’처럼 두 인물이 나오는 연기를 많이 하셨다. 최근작으로는 <마이 뉴 파트너>와 <라디오 스타> 등에서도 그런데, 상대 배우와의 호흡을 위해 어떤 점들을 중요하게 여기시는지.

안성기 : 자연적이고 본능적으로 느껴지는 것들이라고 본다. 이 장면에서는 저 친구가 살고, 내가 죽어야지 영화가 잘 나갈 수 있겠구나 정도는 서로 이야기 한다. 하지만 본능적으로 느끼는 것이 더 많은 것 같다. 특히 버디무비의 경우에는 호흡이 생명이라, 같이 오랫동안 생활하면서 촬영을 하다보면 서로 자연스럽게 잘 맞추어 가는 것 같다. 이야기를 딱히 하지 않아도 잘 이루어져야 좋은 영화, 감동을 주는 영화가 될 수 있는 거 아닌가 싶다. 그런 밸런스가 맞지 않고 조화가 잘 이루어지지 않았을 때는 확실히 영화에 아주 안 좋은 영향을 주게 되니 말이다. 그래서 영화를 찍을 때는 기술적인 면도 중요하겠지만, 서로가 서로를 아끼는 마음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것은 배우들의 마음뿐만 아니라 스텝 등 참여자 모두의 마음이 있을 때 성공할 확률이 높다. 물론, 반드시 그렇다고 해서 잘되는 법은 없지만 확률이 확실히 높기는 하다.


김성욱 : 오늘 보기에는 두 배우의 어떤 면이 가장 인상 깊게 보였나.

안성기 : 예전엔 더스틴 호프먼을 좋아했는데 오늘 보니 존 보이트의 연기가 훨씬 더 와 닿는다. 전에 더스틴 호프먼을 좋아했던 것은 내가 출연한 영화에 비슷한 캐릭터가 있었던 영향이 컸던 것 같다. 80년대 초,중반은 똑바로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시대가 아니었다. 연출자가 좀 어리숙한 캐릭터를 통해서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많이 했었다. 그래서 나도 그런 식의 캐릭터에 관심을 가지고 연기했었다. 이 영화에서 존 보이트의 아무 생각이 없는, 종마 같은 모습이 아주 실감이 난다.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날 것 그대로인 것처럼 보인다.


김성욱 : 이 영화에서는 존 보이트의 과거가 불분명하게 표현되어 있다. 이렇게 불분명한 과거를 가지고 있는 인물이 관객에게 현재를 보여주는 연기를 한다. 감독이 인물의 과거를 명확하게 얘기하지 않은 상태에서 배우가 연기하게 된다면 연기자로써는 굉장히 힘들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하게 되는데.

안성기 : 그렇지 않다. 과거가 확실하다면 튀어갈 방향이 거의 정해져 있는 것 아닌가 싶다. 그런 부분에 비해서, 과거가 불분명할 때에는 어디로 가도 용납이 된다. 그래서 연기자로써 감정의 폭이 굉장히 넓어져서 훨씬 좋다고 생각한다.


김성욱 : <바람 불어 좋은 날>, <풀처럼 눕다> 등에 출연할 당시 선생님은 자신이 맡은 인물을 표현하기 위해 감독과 상의를 많이 하는 편이었는지 평소 인물을 소화하기 위해서 어떤 부분을 떠올리는지 궁금하다.

안성기 : 요즘은 감독과 제작진들과의 만남이 예전처럼 뒹굴거나 하는 수준은 아니다. 예전에는 시나리오작업부터 같이 머리를 맞대었다. 그래서 촬영할 때가 되면 인물에 대해 녹아있는 상태라 따로 이야기가 필요 없을 정도였다. 그런 환경 속에서 굉장히 구체적인 이야기, 설정에 대한 이야기도 다 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작업이 힘들다. 처음에는 굉장히 많이 분석하며 그렇게 인물에 가까이 다가가려고 노력했었다.


관객1 : 최근에 <칠수와 만수>를 봤다. 예전에는 서민적인 역할을 하다가, 요즘 권력의 중심에 있는 캐릭터를 많이 하시는 것 같다. (웃음) 어떤 배역을 맡을 때가 더 마음에 들고 편하신지.

안성기 : 나이 때문에 그런 것 같다. (웃음) 나이 든 사람에게 포커스를 맞추는 영화는 거의 없다. 그런 역할들이 많다면 서민적인 모습들이 많이 그려질 텐데, 나이 든 사람의 모습이 위에 있는 사람들의 모습으로 많이 그려지다 보니까 그런 역할을 맡게 된다. 역시 서민적이고 루저의 모습을 띤 역할이 연기하기에 좋고 매력이 있는 것 같다.


관객2 : 옛날에 텔레비전에서 <바보선언>이란 영화를 봤는데, 주인공이 다리를 절름거리면서 나오고 부자들의 파티에 끌려가는 내용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 영화와 굉장히 닮았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이 영화가 당시 우리나라 영화들에 많은 영향을 끼친 것이 아닌가 싶은데. 

안성기 : 그런 요소가 분명히 있는 것 같다. <바보선언>에서 김명곤 씨가 다리를 절면서 등장한다. 아메리칸 뉴시네마는 우리나라에서 영화하는 사람들에게 아주 많은 영향을 끼친 것 같다. 현실을 직시하고 비판하고 사회의 모순을 파 들어가는 영화들이었기 때문이다. 또 배우 위주였기 때문에 제작비 차원에서도 영향을 많이 받은 것 같다.


관객3 : 선생님께서 나이가 드셔서 서민적인 역할을 안 하시는 것이 아니라, 서민적인 영화가 별로 없어서 그런 것 같다는 생각도 드는데.

안성기 : 나도 나이 들면 <워낭소리>같은 작품을 하고 싶다. (웃음)


관객4 : 자신만의 특별전을 한다면, 꼭 넣어야겠다고 생각하는 작품은 무엇인가.

안성기 : 나는 괜찮다고 생각하는데 관객이 손을 안 들어준 영화들이 있다. (웃음) 대표적인 것이 이명세 감독의 <개그맨>이다. 오승욱 감독의 <킬리만자로>도 그렇다. 너무나 사랑스러운 인물이었다. <영원한 제국>, <축제>, <남자는 괴로워> 등 7, 8개의 작품이 떠오르고 <만다라>도 넣고 싶은 작품 중 하나다.


김성욱 : 어느덧 마무리해야 할 시간이다. 

안성기 : 관객 여러분 덕분에 영화를 다시, 그리고 함께 보게 되어서 많이 기뻤다. 지금 시네마테크에 여러 가지 어려움이 많이 있다. 앞으로 어려움을 헤쳐 나가는데 큰 힘은 많은 분들이 지금처럼 자리를 가득 채워 같이 영화를 볼 때이다. 이 힘이 계속 이어져나가서 더 좋은 영화를 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앞으로 시네마테크를 많이 사랑해 주셨으면 한다.


정리 : 이하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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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세 감독이 선택한 페데리코 펠리니의 <카비리아의 밤>


유난히 바람이 거세진 2월 15일 오후, 지난해부터 친구들 영화제의 새 친구로 합류한 이명세 감독의 추천작 <카비리아의 밤>이 상영되고, 추위에도 불구하고 많은 관객들이 자리를 지킨 채 이명세 감독과의 만남을 기다렸다. 꾸준한 ‘펠리니 사랑’으로 서울아트시네마의 문을 두드리는 이명세 감독은 짧은 시간동안 펠리니에 대한 개인적인 기억부터 최근의 고민까지 많은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줄리에타 마시나의 눈물에 매료된 관객들로 인해 <카비리아의 밤>의 시네토크는 비교적 조용하고 차분한 분위기에서 진행되었지만 더 없이 값진 시간이었다. 영화에서도, 영화에 대한 이야기 속에서도 순수함이 묻어났던 그 현장을 전한다.





김성욱(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래머) : 작년에 친구들 영화제에서도 페데리코 펠리니의 <로마>를 추천했는데 올해도 펠리니의 <카비리아의 밤>을 선택하셨다. 감독님은 공식석상에서 언제나 펠리니를 좋아한다고 말하곤 하시는데 다시 보니 어떤 느낌이셨는지.

이명세(영화감독) : 정확하게 기억나지는 않지만 <카비리아의 밤>을 2001년 뉴욕에서 처음 보았다. 그곳에서 영화학교를 다닐 때 마지막 부분에 영화에서 유일하게 한 장면 나오는 빅 클로즈업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때는 이론적으로만 생각하다가, 영화를 보고 나서 마음속으로 많이 울었다. 다시 보니 처음 봤을 때처럼 눈물이 많이 쏟아지지는 않지만 가슴이 메어지더라. 당시 영화를 보고 쓴 일기가 있었는데 그때 적은 내용이 어렴풋이 기억난다. <카비리아의 밤>은 돌아온 탕아라고 썼던 것 같다. 어떤 어머니가 돌아온 탕아를 맞이해서 따뜻한 물과 소소한 반찬으로 밥을 차려주었을 때 탕아가 밥을 먹는 그런 분위기와 같다 생각했다. 이 영화를 보며 줄리에타 마시나의 눈에 고인 눈물이 마치 보석 같았다. 요즘엔 다들 힘들고, 더군다나 오늘 날이 많이 쌀쌀해졌는데 <카비리아의 밤>을 보고 절망 속에서도 힘을 찾기를 바란다.


김성욱 : 추천의 변에서도 줄리에타 마시나의 장면들을 통해 펠리니의 지독성을 느낄 수 있다고 하셨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점이 그런가.

이명세 : 좋은 감독들은 뛰어난 테크니션이다. 페데리코 펠리니도 말하자면 테크니션의 감독이라 생각한다. 영화 마지막의 빅 클로즈업 같은 경우도 잘 쓰면 좋은 약이 되고 못 쓰면 오히려 독이 되는 숏 중 하나다. 결정적 한 장면인 것이다. 카비리아가 집을 팔고 4만 리라를 만들어왔을 때 오스카는 매우 당황해하며 담배를 커피 잔에 턴다. 웬만한 감독들 같으면 그 부분을 클로즈업으로 땄을 텐데 펠리니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 장면에는 순진한 카비리아의 모습을 제대로 바라보지 못하고 선글라스로 위장해야 했던 오스카의 심정이 담겨있다. 오즈 야스지로의 <만춘>에서도 마지막에 사과 깎는 클로즈업이 인상적이지 않나. 펠리니는 아마도 앞서 말한 장면들을 미리 정해놓고 촬영에 들어가지 않았나 싶다. 그 장면을 위해 영화 전체를 남겨두었던 것에서 펠리니의 지독성을 느꼈다.


김성욱 : 줄리에타 마시나는 펠리니의 부인이기도 하고, <길>과 더불어 <카비리아의 밤>에서 전문적인 연기라기 보단 순수한 영혼을 지닌 여인의 역할을 맡는다. 줄리에타 마시나의 얼굴만 보고 있어도 천진난만하다는 느낌이 든다.

이명세 : 줄리에타 마시나가 출연하는 영화들에서는 분명 공통점을 느낄 것이다. 일종의 서커스나 축제의 모습을 통해 줄리에타 마시나는 비애가 서린 광대의 모습을 표출해낸다. 줄리에타 마시나는 어떤 상징물이나 아이콘일 수도 있고 이미 그 자체로도 연기일 수 있다. 드라마가 몸에 녹아있는 느낌이 든다. 영화연기라는 것은 연극연기와 다르게 배우 자체가 가지고 있는 것이 바로 연기인 경우가 있다. 펠리니와 함께 한 인물 중 또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니노 로타 음악 감독이다. 그는 펠리니 영화의 대부분의 음악을 맡았다. 펠리니 영화 속의 그의 음악은 영화 속에서 분리될 수 없는, 영화음악이라기보다 영화의 문장이면서 문체, 주제, 소재가 된다. 펠리니의 모든 영화들이 그런 것 같다.


김성욱 : <카비리아의 밤>은 1950년대 마지막 무렵의 영화다. 로셀리니를 비롯해 이 시기 이탈리아 영화들은 주로 영혼을 울리는 것에 집중되어있었다. 희망을 찾을 수 있는 불행한 시대가 이탈리아로 따지면 1950년대였던 것 같고, 60년대의 소비화가 진행되어지는 전 단계에 직면한 시기라 생각된다. 때문에 작년 감독님의 추천작이었던 <로마>와는 분위기가 매우 다른데.

이명세 : 확실히 펠리니의 <카비리아의 밤>과 <로마>는 차이가 있다. 사실 작년에 <로마>를 상영했을 때 모든 관객들이 놀라고 울고 할 줄 알았는데 의외로 반응이 썰렁하더라. (웃음) 오늘 관객들께서 <카비리아의 밤>을 어떻게 감상하셨는지 너무 궁금하다.


김성욱 : 네오리얼리즘이라고 불리는 영화들은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모두 공감을 이끌어내는 것 같다. 하지만 펠리니의 60년대 이후 영화에 대해서는 조금씩 다르다고 생각한다. 네오리얼리즘 이후의 펠리니 영화들에서 보여 지는 화려하고 거대한 규모와 장식적인, 말하자면 하나의 서커스 같은 연출에 당혹해하시는 분들도 있다. 펠리니 감독의 60년대 이전과 이후 영화들 양쪽을 모두 좋아하시는지.

이명세 : 그렇다. 나는 ‘영화를 영화로 찍는 다섯 명의 감독을 알고 있다’고 항상 이야기하곤 하는데, 그 중 한 명이 페데리코 펠리니다. 60년대로 들어선 펠리니는 그야말로 영화 자체로 뛰어 들어가는 설정을 보여준다. <카비리아의 밤>에서는 줄리에타 마시나가 영화언어 자체인 것이다. 숏이나 장면전환뿐만 아니라 연기자 자체도 영화언어가 될 수 있다. 그런 것들이 후대의 영화들에게 영감을 준 영화가 아닐까 생각한다. 어떤 장면을 보면 <토토로>의 한 장면 같기도 하다. (웃음) 펠리니 영화를 보다보니 생각난 건데, 시네마테크라든지 상업영화, 고전영화라는 말을 없앴으면 좋겠다. 영화는 그냥 영화다. 다시 보아도 또 다른 느낌이 계속 나올 수 있는 것들이 좋은 영화의 기준이라 생각한다. 고전영화라기 보단 좋은 영화라는 표현이 옳지 않겠나.


관객1 : 영화의 마지막은 <판의 미로>같다는 생각도 했다. 감독님은 늘 절대적인 영화적 가치나 순수성에 대한 동경이 있으신 것 같다.

이명세 : 어느 순간 영화라는 것에 대한 담론이 사라진 게 아닌가하는 생각이 든다. 모든 예술에는 절대음감, 절대언어라는 게 있지 않나. 영화에도 ‘절대 숏’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숏들을 찾으려 노력하고 있다. 그걸 표현하는 게 영화감독의 임무이자 일이라 생각한다. 우리가 이 공간에 모두가 모여서 영화를 보고 이야기를 하려는 자체가 일종의 판타지다. 영화를 보는 내내 ‘정신의 유전자’가 떠올랐는데, 우디 알렌, 버스터 키튼, 펠리니 등과 같은 아름다운 사람들이 계속해서 아름다운 영화들을 통해 발견하고 삶을 발전시킨다. 나 역시 그 중 하나일지 모르고 관객도 그 중 하나일 것이라는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관객2 : 요즘 처음으로 사랑이라는 걸 하고 있다. 그런데 영화에서 카비리아가 시련을 당하는 부분을 보고 오늘 온 걸 후회했었다. 그녀가 다시 사랑을 할 수 있을까, 그녀가 다시 행복을 찾을 수 있을까가 너무 궁금하다.

이명세 : 물론 카비리아는 다시 사랑을 하게 될 것이다. 이건 내가 영화를 하는 것과 비슷하다. 관객을 사랑해서 사랑의 편지를 썼는데 무참하게 답장이 오지 않는 심정이랄까. (웃음) 히자만 언젠가는 올 것이라 생각하고 또 다시 영화를 찍게 되고 현장에 나간다. 흔한 이야기지만 사랑은 주는 게 더 좋다. 주는 것으로 행복한 것이 사랑이라 생각한다.



김성욱
: 고전영화에 대한 이야기도 하셨는데, 좋아하는 감독의 상당수가 이미 시대를 다한 감독들이다. 자크 타티나 펠리니, 키튼과 같은 감독들. 이런 사람들의 영화는 지금 보아도 여전히 영화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왜 이후의 영화들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시는지.

이명세 : 그런 감독들은 영화를 영화로 찍기도 하지만 따뜻한 감성을 가지고 있었다. 영화의 기본은 사람을 바라보는 것이고, 예술의 한 면은 결국 세상에 대한 연민이다. 그런 감정이 없이는 영화든 소설이든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워낭소리>의 흥행도 기쁘게 생각한다. 영화라는 예술은 따뜻한 부분을 나누는 것이라 생각한다.


관객3 : 지금까지 만든 영화 중에 펠리니 감독에 대한 오마주나 장면 혹은 설정 등을 인용한 것이 있는지 궁금하다.

이명세 : 의도적으로 한건 없다. 비슷하다는 생각은 많이 한다. 영화적인 방법들은 펠리니를 일찍 만났더라면 영향을 더욱 받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관객4 : 카비리아에게는 사랑외의 어떤 믿음이 좌절되는 부분도 있다고 생각했다. 영화의 마지막은 희망을 이야기하면서도 신의 축복 같은 느낌이 들더라. 신의 실험을 통해 신과 교류하는 느낌도 들었다.

이명세 : 중요한 것은 배치의 문제다. <카비리아의 밤>은 격렬한 논쟁을 불러일으키는 종류의 영화는 아니다. 극장이라는 공간은 광장의 예술이다. 영화의 매력은 같은 감정을 나눌 수 있을 때 발산된다. <카비리아의 밤>을 보고 난 후, 그런 마음들이 교류되었으면 좋겠다.


정리 : 강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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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운 감독이 선택한 레오 까락스의 <소년, 소녀를 만나다>


발렌타인데이였던 2월 14일 늦은 오후, 친구들 영화제의 오랜 친구인 김지운 감독이 추천한 레오 까락스의 <소년, 소녀를 만나다> 상영과 시네토크가 진행되었다. 김지운 감독은 사랑을 이렇게 우울하게 그린 영화를 하필 연인들의 최대 이벤트일이라는 이런 날 보러 왔냐는 농담으로 시작했지만 곧 차분한 어조로 자신의 속 깊은 얘기까지 마치 시처럼 들려주었다. 자신이 가장 열광했던 감독의 데뷔작을 관객들과 함께 보면서 초심을 떠올리고 싶어 이 작품을 선택하게 되었다던 김지운 감독이 그의 언어로 관객과 나눈 사랑의 대화를 여기에 싣는다.







김성욱(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래머) : 오늘 마침 발렌타인데이라 어쩐지 이 영화가 어울리는지도 모르겠다. 사랑을 말하는 영화로 관객을 만나게 되었다.

김지운(영화감독) : 13일의 금요일은 피하고 싶어서 오늘로 잡았는데 발렌타인데이더라. 발렌타인데이에 이런 영화를 보러 오다니 여러분이 진정 영화를 사랑하는 관객이다. (웃음) 레오스 까락스 감독이 1984년에 선보인, 그의 데뷔작이기도 한 이 영화는 그 해 깐느에도 초청됐었다. 당시 상영 시간이 새벽 2시쯤이었는데 당연히 홀대에 가까운 대접을 받아 상영관은 많이 비어있었다고 한다. 그 때 포지티프와 까이에 뒤 시네마의 기자가 이 영화를 보았고 다음 날 깐느 데일리에 ‘영화 천재 출현’, ‘제2의 고다르 등장’ 같은 센세이션한 헤드라인이 떳다고 한다. 이걸 뒤늦게 본 영화인들이 레오 까락스를 인터뷰하려고 했지만 그는 이미 깐느를 뜬 뒤였고, 그 뒤에도 르몽드, 리베라시옹 등의 매체에서 요청한 인터뷰를 감독은 다 거부했다고 한다. 그래서 더 신비로운 느낌이 더해지는 것 같다. 여러분들은 그 영화 천재 레오스 까락스의 데뷔작을 본 것이다.


김성욱 : 이 영화는 언제 어떻게 처음 보게 되었는지 궁금하다.

김지운 : 우연히 명동에 있는 CD 판매점에서 레이저 디스크를 빌려보다가 <Boy Meets Girl> 이란 걸 보게 됐는데 그 때는 아무 정보도 없었다. 감독도 모르고 배우도 몰랐다. 이 영화는 90년대 초,중반에 <천국보다 낯선>과 함께 카페 같은 곳에 포스터가 많이 걸려 있는 영화였다. 그 정도로 영화의 스틸 한 장면 한 장면이 포토제닉하면서 동화적이고 시적인 느낌을 주었다. 그렇게 이 영화를 보게 됐고, 그 때 받았던 느낌은 오늘 처음 이 영화를 보신 분들과 비슷할 것이다. 뭔지 모르지만 아름답다는 느낌. 보고 나서는 사랑을 이렇게 우울하게 그릴 수 있구나 생각했다. 그리고 충격적이기도 했다. 나와 같은 80년대 학번 중에서 영화가 어디로 가야하는지 고민했던 사람들 중에서는 이 영화를 보고 충격을 받은 사람이 꽤 있을 것이다. 그때까지만 해도 영화의 방향성을 얘기할 때 모델이 되는 영화들은 일마즈 귀니가 만든 <욜>이라든가, 코스타 가브라스의 <Z>나 <실종> 혹은 정치 상황을 예술적으로 표현한 <양철북> 같은 영화들이었다. 우리나라도 민주화가 어느 정도 진행되고 정치와 사회를 고발할 수 있는 도구로 영화를 생각할 때 이런 개인적이고 사적인 감수성으로 만든 영화는 충격적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 그래서 아마 저를 비롯해서 영화를 좋아하지만 폐쇄적이고 고립적인 성격의 사람들, 내 성격상 영화 작업이 맞지 않는 게 아닐까 생각하던 사람들에게 새로운 영화의 좌표를 제시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니까 영화는 사회에 대해 얘기하고 체제 고발해야 하며 그것만이 영화가 나가야 할 방향이라고 생각할 때 이런 사적인 감수성으로 만든 섬세한 영화가 나타난 것이다. 아까 열거한 영화들 중에서 나온 민주적이고 프롤레타리아적인 숏들, 수평이동이 많은 것들, 이런 것들이 지향해야 할 미장센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런 영화를 보면서 욕망의 시점, 동경의 시점으로 내가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부분들을 잡을 수 있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 그런 의미에서 나서지 못하고 나대지 못하고 적극적이지 못한 성격을 지닌 섬세한 감수성의 소유자들에게 모델이 되는 영화가 아닌가 싶다. 당시는 이것이 영화의 미래였을 수도 있다는 생각도 했다.


김성욱 : 작년 전주국제영화제에서 부랑자처럼 돌아다니는 드니 라방을 본 적이 있다.(웃음) 언급하신 영화의 독특한 점을 드니 라방이 보여주고 있는 것 같은데.

김지운 : 처음에는 불쾌한 느낌도 있었다. (웃음) 레오스 까락스 감독이 알렉스라는 이름의 주인공을 등장시켜 스무살과 사랑에 대한 삼부작을 만들었는데, 어떤 평자는 드니 라방을 통해 종래의 미남미녀가 나오는 멜로드라마의 낭만주의적 환영을 파괴한 것이 아닌가라는 얘기도 하더라. 드니 라방은 레오 까락스 감독의 분신이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소년, 소녀를 만나다>, <나쁜 피>, <퐁네프의 연인들>에도 드니 라방은 알렉스로 나온다. 근데 아시는 분들을 아시겠지만 레오 까락스 본명이 알렉산드로 오스카 뒤퐁이다. 알렉산드로 오스카의 철자로 다시 만든 이름이 레오스 까락스다. 그는 어릴 때 개구쟁이였는데 열두 살 무렵 시네마테크 프랑세즈에서 로베르 브레송의 <블로뉴 숲의 여인들>을 보고 영화감독이 되기로 결심을 했다고 한다. 그리고는 계속 시네마테크에서 고전영화, 무성영화들을 무수히 봤고, 그래서 그런지 고독과 침묵의 세계로 빠져들었다고 한다. 일상의 대화들을 중지하고 대신에 복화술을 배우기도 했다더라. 16세 때 정규 수업을 중간에 그만두고 단편영화를 두 편 만든 뒤, 로베르 브레송에 대한 글로 까이에 뒤 시네마에서 평론가로 활동하기도 했다. 그리고 그 때부터 알렉스란 필명을 썼다고 알고 있다. 그 때 받은 원고료로 <소년, 소녀를 만나다>를 찍었는데 낮에는 학교도 다니고 일도 하고, 밤에 촬영을 했다고 한다. 그러다보니 영화에도 밤 장면이 많아진 게 아닌가 싶다. 처음 이 영화를 보면 조합이 잘 안 된다. 스토리텔링을 하는 것도 아니고 대화를 통해서 성숙한 사고를 지향하는 것도 아니다. 레오 까락스 감독 자체의 언어에 대한 불신일 수도 있겠는데, 영화를 봐도 알겠지만 카페에 들어가나 어딜 가나 사람들이 등을 돌리고 서로 상대를 안 한다. 레오 까락스 감독이 실제로 파리에 올라와서는 자신을 이방인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런 외로운 기억들이 영화에 반영된 것이 아닐까. 고다르가 영화를 어떻게 만들어야 되느냐에 대한 질문에 대답했던 ‘매일 일어난 일을 관찰하고 그래서 그 경험의 결과를 이미지로 모색하라’는 말을 가장 철저하게 따른 작품이 이 영화라고 생각한다.


김성욱 : 이 영화는 레오스 까락스 감독이 스물세살에 만든 영화로 알고 있다. 지금으로 치자면 빅뱅이나 소녀시대가 만든 음악을 듣는 느낌일 텐데, (웃음) 처음 영화를 접했을 때 이십대 초반의 감독이 만든 만든 영화라는 점에서 질투심을 느꼈을 법하다. 굉장히 젊은 영화이고 젊다는 것 때문에 프랑스가 사랑하는 60년대 누벨바그와도 많은 부분이 연결되어 있다. 처음 봤을 때와 오늘 봤을 때 느낌이 달랐을 것 같다. 

김지운 : 생각보다 몸 개그가 많더라. (웃음) 그 때도 썰렁한 유머라고 생각했었고 그 유머가 천진해서 품위 있다고 생각했다. 이 영화는 어쨌든 논리적인 사유의 결과로서 영화가 좋다 나쁘다 말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 영화를 보고 나서도 한참 이미지의 잔상들이 계속 내 안에서 중독성 있게 남아 있어서 어둡고 고독하고 고립되어 있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예를 들어 이런 영화는 화면 구성을 볼 때 이야기와 화면 구성이 독립적으로 작용한다는 느낌이 있다. 이야기가 화면을 안내하지도 않고 화면이 이야기를 지시하지도 않는다. 서로 떨어트려 놓고 대사와 이미지들이 각기 다른 감성으로 작용하는 느낌이다. 이야기가 짜임새 있는 영화보다 분위기가 오랫동안 잔상으로 남아서 오래간다. 아까 말씀하신 누벨바그 이전 세대가 어떤 대상을 화면에 담을 때 이 대상이 다른 것과 어떤 연관성을 가지고 있고 무엇을 의미하느냐에 대한 것을 추구했다면 누벨바그 세대는 이것이 어떻게 보여지는가에 대해 철저하게 고민하고 추구했다고 보는데 그런 점에서 이 영화가 누벨바그와 연관이 있다고 생각한다.


김성욱 : 영화상영 전 초심을 떠올리게 위해 이 영화를 추천했다는 말이 인상적이었는데.

김지운 : 레오스 까락스 감독은 <퐁네프의 연인들>에 자신의 모든 재능을 쏟아 부었다고 생각한다. 나중에 다시 <폴라 X>를 만들지만 흥행에서도, 평단에서도 융단폭격에 가까운 비판을 받았다. 한때 가장 극렬한 지지와 어떤 감독도 받기 힘든 찬사를 받았는데 어떻게 이렇게 총기 잃은 천재 감독이 돼 버렸는지... <놈놈놈>을 끝내고 생각해보니 내가 <조용한 가족>부터 10년 동안 감독을 해왔다. 이번에 이 영화를 추천한 이유도 그것을 정리하고 반추하면서 초심이란 게 무엇이었을까를 생각하기 위해서다. 내가 감독이 되기 전에 가장 열광했던 감독이 누구였을까 생각해보니까, 그 당시에 왕가위, 짐 자무쉬, 타르코프스키, 그리고 코엔 형제와 레오스 까락스가 있었다. 타르코프스키 감독은 이미 고인이 되었고 나머지 감독들은 아직 건재하고 유효한데, 그 중에서 가장 높은 지지와 성원을 받았던 천재 감독이 왜 이렇게 몰락을 해버렸는가. 이런 것들이 궁금했던 것 같다. 특히 내가 그런 것을 생각해볼 때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레오스 까락스를 떠올렸다. 16년 만에 이 영화를 다시 본 것이다. 나는 영화감독으로 어떤 사람일까 생각을 해봤는데 영화감독으로서 야심이 없더라. 더 갈고 닦고, 더 준비하고, 더 좋은 작품이 될 수 있게 묵히지 않고 그냥 빨리 영화를 찍고 싶어서 70, 80% 됐다 싶으면 바로 촬영장으로 나가고 싶어 안달이 나는 타입 같다. 한동안 <놈놈놈> 찍고 영화를 찍지 않을 생각으로 있었는데 이틀 전에 단편 영화를 또 하나 찍었다. (웃음) 그러고 보니까 현장만이 나를 흥분시키고 화나게 하고 웃게 하고, 살아 있다는 느낌을 준다. 계속 전진하고 싶다.


김성욱 : 어느덧 정리할 시간이 되었다. 

김지운 : 마지막으로 까이에 뒤 시네마의 인터뷰에 답했던 레오 까락스 감독의 말을 옮기면서 정리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는 마치 싯구처럼 ‘샤르에 대한 나의 사랑, 영화에 대한 나의 사랑, 장 콕토에 대한 나의 사랑, 시에 대한 나의 사랑, 파리의 거리에 대한 나의 사랑, 장 뤽 고다르에 대한 나의 사랑, 무성영화에 대한 나의 사랑’이라고 자기의 영화 이야기를 했다. 우리가 동경해야 할 것, 또는 이 세상에 아름다운 것이 있고, 그것이 있다고 믿는다면 계속해서 영화를 만들 것이란 의미가 아닌가 한다. 나도 삶에서 보아왔던 아름다움이 있기 때문에 그것을 영화로 완전하게 표현할 수 있는 날까지 레오스 까락스의 말처럼 그런 사랑을 우습게보지 않고, 의심하지 않고, 거들먹거리지 않고 마음에 있는 사랑을 더 키워나가고 싶다. 정리가 잘 안 되지만 말이다. (웃음)


 

정리 : 김보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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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편지 처럼. 2009.03.01 19:35 신고

    "샤르에 대한 나의 사랑" "영화에 대한 나의 사랑" " 시에 대한 나의 사랑" "파리의 거리에 대한 나의 사랑" "무성영화에 대한 나의 사랑"

    흑백영화의 영상에 뜻밖에 컬러의 색채를 느끼거나, , ,
    이야기하지 않는 모습, 침묵이라는 상황 장면에서 흐르는 문자를 읽거나, , ,
    색깔을 안가지는 영상에 비추어지는 (옷) 의상이나 가구의 디자인등에 (인물상) 캐릭터나, 작품의 이야기배경을 느낄 순간, , ,
    영상속에 비치는 가본적이 없는 거리를 걷는 사람들에게, 시대를 넘은 공감이나 동감을 느낄때,

    이따금, 문득 예고없이 영상 안으로 전해오는 그러한 말하지 않는 모습이나 흑백영상에 만났을 때, , , 그 작품에 대한 이루 말할 수 못하는 존경심과 애정이 생깁니다...

박찬욱, 오승욱 감독이 구성한 악인열전에 대한 진실 혹은 대담


2월 8일 <밤 그리고 도시> 상영 후 이번 친구들 영화제 특별 섹션으로 마련된 ‘최선의 악인들’ 프로그램을 직접 구성한 박찬욱 감독과 오승욱 감독이 함께하는 시네토크가 있었다. 지난 3일간 친구들 영화제를 떠돌았던 ‘최선의 악인들’을 다시금 기억하고 회개하는 자리였다. 악인들을 통해서 더 사실적인 삶과 희망을 엿볼 수 있다는 두 감독의 목소리는 극악무도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무나 인간적인 악당을 향한 깊은 사랑이 배어난다. 그들은 또 아직 함께 보고 싶은 악당들이 너무도 많이 남아있다며 아쉬움을 표한다. 추천작 20여 편 중 이번에는 단지 6편을 상영하는데 그쳤지만 다음 해에는 더 많은 매력적인 악당, ‘최선의 악인들’을 만날 수 있길 몹시도 기대하고 있다. 게스트 프로그래머로 참여한 오랜 친구 박찬욱, 오승욱 감독이 <밤 그리고 도시>를 중심으로 나눈 대담을 소개하며 ‘최선의 악인들’을 향한 두 분의 넘치는 애정을 담아본다.






김성욱(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래머) : 지난 3일간을 ‘최선의 악인들’과 함께 보냈다. 사실 20편정도의 리스트를 뽑았었는데 여러 과정을 거치면서 6편의 영화를 맛보기 식으로 상영하게 되었다. 좀 전에 상영한 <밤 그리고 도시>를 포함해서 이번 ‘최선의 악인들’의 추천작들을 선택하게 된 이유라고 한다면.

박찬욱(영화감독) : <밤 그리고 도시>와 <겟 카터>는 오승욱 감독과 함께 고른 작품이다. 두 작품에 대한 취향이 일치했다. 선택하게 된 이유는 먼저 줄스 다신 감독이 국내외적으로 정당한 평가를 못 받고 있기 때문이다. 요즘은 컬렉션이 DVD로 나오고 많은 영화 팬들이 알아봐주는 것 같긴 하나 그래도 여전히 그는 실력으론 합당한 평가를 못 받은 감독이라고 할 수 있다. 대학 강의에서도 별로 다뤄지지 않고 교과서적인 영화서적들에서도 중요하게 취급되지 않는다. 그래서 줄스 다신의 영화를 소개하고 싶었다. 그 중에서 그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 <리피피>는 몇 번 소개되어 <밤 그리고 도시>로 골랐다. 하지만 진짜 중요한 이유는 주인공역을 맡은 리차드 위드마크라는 배우 때문이다. 그는 대표적인 악역 배우였고, 이 배우를 모르고서 필름 느와르, 악당들의 영화사를 논할 수 없을 것이다.

오승욱(영화감독) : 나 역시 사람들이 너무 몰라주니까 화가 나서 선택하게 된 것 같다. 베케르의 <구멍>도 같은 경우다. 사실 이걸 준비한 건 2년 전부터인데, 감독 위주로 회고전 하는 것도 좋지만 배우 중심으로 해보면 어떨까하는 생각에서 나온 아이디어다. 어쩌다보니 둘 다 비슷하게 악인 캐릭터에 매력을 느끼고 있었고, 그래서 악당들만 모아서 특별전을 해보고 싶어졌다. 이 영화 외에도 악당들만 나오는 악당 버라이어티 영화들, 영미권 외의 악당 영화들, 여자가 악당으로 나오는 영화들도 선택했었는데 다 소개를 못해서 아쉽다. 마침 주일이기도 하고, 오늘은 그 동안 우리가 풀어놓은 악당들과 선택작들에 대해서 회개할 때인 것 같다. (웃음)




김성욱 : 이번 프로그램을 통해서 왜 영화 속에는 악당들이 이렇게 많은지 고민해 봤다. 일차적으로는 악당들이 주는 매혹 때문인 것 같다. 미국영화로 보자면 악당들은 미국의 대공황이란 사회적 현실에서, 유성영화의 도래 이후인 30년대에 그들의 목소리를 낼 수 있었고 이후로도 쭉 지금까지 그들만의 증식의 역사를 계속 해오고 있다. 두 분은 악당들의 어떤 면에 매혹되었는지 궁금하다.

박찬욱 : 어려서 영화를 처음 봤을 때부터 그랬다. 나는 오히려 착한 캐릭터에게 매혹당하는 심리가 어떤 것인지가 궁금하다. (웃음) 악당들은 우리가 인생에서 해볼 수 없는 짓들을 저지르는 사람들이다. 그들이 맘속으로 품는 것만으로도 죄의식이 생길 일들을 영화에서 벌이는 것에 매혹된다. 그건 오직 영화관에서만 합법적으로 즐길 수 있는 것 아니겠는가.

오승욱 : 나 역시 어렸을 때부터 그랬다. 존 웨인도 오로지 <수색자> 때문에 좋아했을 정도다. 어떤 배우든지 못되게 나와야 매력적이다. 어렸을 때 명화극장이나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면 착한 놈들만 이겨서 화가 났다. 현실은 그렇지 않은데 하면서... 악당을 보면 마음부터 동하는 것 같다. 악당들이 갖고 있는 사악한 욕망과 파멸하는 과정에는 그들이 갖고 있는 아킬레스건이 드러나는데, 바로 그들의 윤리적인 면들이다. 그것은 공항이나 전쟁 같은 시대적인 변혁을 겪으면서 인간의 어두운 면모들이 무의식 위로 올라올 때 드러나는 집단적인 죄의식이기도 한 것 같다. 70년대 일본영화에 등장하는 루저 야쿠자들, 50년대 전후 한국영화에 나온 이상한 악당들, 매카시즘 이후의 미국 영화들에 나오는 악인들은 모두 그런 면을 드러낸다. 사회가 변할 때 주변부로 밀려난 그런 인물들을 보면 작가나 감독, 관객으로서 동정심을 느낀다. 무엇보다 그들의 어두운 면을 보고 나의 어둠을 확인하는 것이 재밌지 않나. 오히려 밝은 면을 보는 데에 무슨 재미가 있는지 모르겠다. (웃음)




박찬욱 : 인간성, 휴머니티, 따뜻하고 아름다운 희망의 징후를 발견하는 것도 악당들을 통해서다. 사실 무작정 악으로 똘똘 뭉친 인물들은 별 재미가 없다. 사악함 속에 언뜻 비치는 취약성이 어둠 속의 작은 불빛처럼 희망을 보여주고, 거기서 인간성이 발견된다. 그 좋은 예가 바로 이 영화 <밤 그리고 도시>다. 이 영화에서 해리 파비안, 아버지가 아킬레스건인 크리스토, 아내를 사랑하는 클럽주인 필 등은 모두 용납할 수 없는 악인임에도 불구하고 작은 약점들을 갖고 있다. 그들이 착한 짓만 하는 캐릭터들보다 더 큰 감동을 준다.

오승욱 : 악당이지만 착한 면도 있어야 재밌다. <슈퍼맨>이나 <다이하드>같은 헐리우드 영화들에 나오는 스테레오 타입의 악당들은 악으로만 뭉쳐있어서 너무 추상적이다. 그들은 현실적으로 만날 수 있는 악당들이 아니기 때문에 별로 매력이 없다. 이번 추천작들은 악당을 한 인간으로 보았을 때 어떤 태도와 관점으로 표현할 것인가에 대한 감독의 관심들이 발현된 영화들이다. 각자의 아킬레스건 때문에 필연적으로 파멸에 이르고 마는 악당들이 더 매력적으로 보인다.






김성욱 : 악인역을 맡는 배우들은 캐릭터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몸에서 나오는 독특한 느낌을 갖고 있다. 이 영화에 나오는 리차드 위드마크나 <겟 카터>의 마이클 케인도 그런 것 같은데 어떻게 보셨는지.

박찬욱 : 배우는 외모가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내면연기보다도 우선 생김새가 받쳐줘야 된다. (웃음) 리차드 위드마크는 데뷔작인 <죽음의 키스>에서 입 모양을 이상하게 일그러뜨리면서 불쾌하게 웃는 웃음으로 조연이었지만 주연보다 큰 주목을 받았다. <죽음의 키스>에 대해 말할 때 모든 사람들이 리차드 위드마크의 날렵한 모습을 이야기 한다. 당시 시사회 이후 홍보 자체가 그에게 맞춰질 정도였다고 한다. 홍보 담당자들의 동물적인 감각을 충족시키는 충격적인 연기와 외모를 보여줬던 것이다. 마이클 케인은 원래 꽃 미남 바람둥이 이미지를 가진 노동계급출신 배우였는데, 턱을 약간 들고 큰 키로 싸늘한 눈으로 내려다보는 특유한 오만한 표정이 특징이다. 재수 없기도 하고 한편으론 매력적이기도 하다. <겟 카터>는 그가 가진 싸늘한 면이 최고조로 발휘된 영화라고 할 수 있다.

오승욱 : 실베스타 스탤론이 주연한 리메이크작과 비교해 보면 마이클 케인의 강력함을 알 수 있다. 스탤론은 엄청난 근육을 자랑하지만 전혀 강한 느낌을 주지 못하는 반면, 마이클 케인은 옷을 벗으면 살이 흐물흐물한데도 강력해 보인다. 특히 술잔을 들고 있는 그를 롱숏으로 찍은 첫 장면부터 압도적이다. 영화에서 거의 웃지도 않는다. 킬러 역은 안 어울린다고 생각했는데 <겟 카터>는 아주 설득력이 있었다.


김성욱 : 방금 상영한 작품이나 감독에 대한 얘길 중심적으로 하는 게 좋겠다. 줄스 다신 감독을 특별히 좋아하는 이유가 있는가.

박찬욱 : 사생활에서 지조를 지킨 사람이다. 무슨 말이냐면, 러시아계 유태인 집안 출신으로 뉴욕에 살 때 공산당에 입당했다가 환멸을 느끼고 나왔었는데, 그 일 때문에 반미 조사위원회에 끌려가서 조사를 받고 헐리우드에서 추방을 당했다. 만약 에드워드 드미트리나 엘리야 카잔처럼 협조하고 동료들의 이름을 팔았다면 살아남을 수 있었을 텐데 그러지 않아서 블랙리스트에 올라야만 했던 인물이다. 그런 점이 존경심을 일으킨다. <밤 그리고 도시>를 만들게 된 데도 비화가 있다. 그는 원래 이 영화의 감독이 아니었는데, 어느 날 대릴 자눅이라는 고참 프로듀서가 갑자기 불러 무조건 하라고 시켰다고 한다. 사실은 줄스 다신이 추방당하기 전에 런던으로 도피시킨 것이었다고 한다. 그는 영화 끝날 때까지 원작 소설도 못 읽고 허겁지겁 영화를 만들었다고 전해진다. 대릴 자눅은 사태가 더 위급해지자 그가 중간에 해고될까봐 일부러 비싼 장면부터 찍으라고 했다고도 한다. 그 생각을 하고 봤더니 관중 많은 레슬링 장면부터 먼저 찍었을 것 같다. (웃음) 결국 이 영화는 줄스 다신이 미국에서 찍은 마지막 영화가 되었고, 그는 이후 파리에서 <리피피>를 찍기까지 영화를 못 만들었다. 고다르는 줄스 다신이 <리피피>에서 프랑스 감독들도 몰랐던 파리를 보여줬다고 말한 바 있는데 <밤 그리고 도시> 역시 영국 감독들도 몰랐던 런던의 모습을 보여줬다고 생각한다. 이 영화를 만들었을 때 그는 남들은 평생 한 편도 만들기 힘든 필름 누아르의 고전 걸작들을 일 년에 한 번씩 발표할 정도로 전성기에 있었다. 그런 감독이 정당한 평가를 못 받고 있어서 안타깝다.




김성욱 : 이번 상영하게 된 <밤 그리고 도시>는 한국에서 개봉되었던 미국판이 아니라 영국판 버전이었다. 첫 장면부터 차이가 있는데.

박찬욱 : 보고 깜짝 놀랐다. 이렇게 차이가 날 줄 몰랐다. 두 버전의 음악이 다른 건 원래 유명하다. 미국판의 프란츠 왁스만 음악이 월등히 좋다는 생각이 든다. 영국판에서는 해리 파비안이 쫓기면서 골목을 누빌 때 경쾌한 음악이 나오던데 전체적으로 좀 가볍고 친절한 영화인 것 같다. 미국판에서는 그레고리우스와 스트랭글러의 레슬링 장면이 아주 길고 강력해서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는데, 영국판은 짧아서 그레고리우스가 너무 쉽게 죽는 느낌이 들었다. 첫 장면이나 마지막 장면도 미국판에서는 해리가 좀 더 비열하게 나오고 더 경제적으로 처리되어 있다. 영국판이 비교적 설명이 많아서 보긴 편한데, 미국판이 더 강력하고 비극적이다.




김성욱 : 이 영화에서 리차드 위드마크는 처음부터 쫓기는 인물이고, 획득할 수 없는 것을 계속 가지려는 인물이다. 비슷한 시기의 악당들이 나오는 영화들에서도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점 같다. 희망이나 기대는 있을 수 없는 일이란 생각이 든다. 그러다가 결국 악당들은 죽음으로 치닫고 마는 숙명적인 상황에 이른다.

오승욱 : 이 영화도 그렇고 <들판을 달리는 토끼>에서도 악당들은 등장할 때부터 쫓기고 있다. 그런데 그들이 쫓기다가 문득 멈추는 순간이 있다. 근데 토끼처럼 약자니까 계속 쫓기는 신세일 수밖에 없는 악당이 멈춰서 그만 뛰겠다고 하면 죽는 거다. 이 영화도 리차드가 계속 뛰다가 지쳐서 쉬려고 하는 순간 죽음을 맞이한다. 욕망이 마비되는 순간이기도 하고, 끝까지 왔기 때문에 지친 것이기도 하다. 지쳐서 쓰러지는 것, 그래서 죽음으로 가는 것이 악당영화들의 공통점이다. 그걸 어떤 방식으로 포착하느냐에 따라 걸작이 되기도 하고 졸작이 되기도 하는 것 같다.

박찬욱 : 중간에 클럽 주인이 해리 파비안을 보고 데드맨이라고 하는데, 그 운명의 저주가 그의 머리위에 드리워져 있는 것이다. 감독의 연출력이 뛰어난 것은 저주의 불길한 조짐과 희망의 두 선을 아슬아슬하게 교차시키면서 끌고 가는데서 볼 수 있다. 관객은 해리가 원하는 출세가 끝내 이루어지지 않을 것임을 알지만, 한 편으로는 그의 잔재주와 짧은 승리를 보며 잘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하게 된다. 그래서 영화가 끝날 때는 평생 쫓겨 온 이 악인에게 안식이 찾아오는 데 대한 편안한 느낌까지 준다.




관객1 : 후보작으로 고려했던 다른 악당 영화들은 어떤 것들인지 궁금하다. 특히 한국영화 중에서 악당 영화를 고른다면.

오승욱 : 배우 중심으로 골랐고, 클라우스 킨스키, 찰스 브론스 리 마빈, 진 해크먼 등이 나오는 영화들을 한 편씩 고르고 싶었다. 가급적 영미권 밖의 영화들을 고르고 싶어서 일본영화로 후카사쿠 킨지의 <의리의 무덤>같은 것과 홍콩 쪽 악당 영화들도 생각했었다. 결국 필름 수급 상황이 안 좋아서 욕심을 많이 줄였다. 한국영화에 나오는 악당들 중에는 허장강, 박노식이 제일 좋았던 것 같다.

박찬욱 : 한국영화 중에선 요즘 너무 인기 많아서 재미없을 수도 있지만, 그래도 김기영 감독 영화를 꼽고 싶다. <화녀82>같은 영화는 그 중에서도 별로 주목받지 못한 영화인데, 김기영 스스로 몇 번씩 리메이크 한 것 중 마지막에 해당한다. 그의 매너리즘을 엿볼 수 있는 영화라 생각한다. 개인적으로는 내가 82년도에 신입생의 부푼 꿈을 안고 처음 본 영화고, 그 영화를 보고 ‘한국에서도 좋은 영화가 나올 수 있구나’ 희망을 안게 된 결정적인 영화다. 나중에 같이 볼 기회가 있으면 좋겠다.


정리 : 이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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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승욱 감독이 뽑은 ‘최선의 악인들’, 자크 베케르의 <구멍>


박찬욱, 오승욱 감독의 ‘최선의 악인들’ 섹션이 거의 끝나 가는 2월 8일 첫 상영작은 오승욱 감독의 추천작 중 하나인 자크 베케르 감독의 <구멍>이었다. 혹자는 <구멍>이란 영화를 돈 시겔의 <알카트라즈 탈출>에 영감을 준 영화, 로베르 브레송의 <사형수 탈옥하다>와 형제격인 영화, <쇼생크 탈출>과 가장 반대편에 위치하는 영화라고 설명한다. 누군가는 또 이 영화를 굉장히 창조적이고 우아한, 그리고 격이 높은 어른의 영화이며 가장 하드보일드하고 터프한 영화라고 말한다. 왜 사람들이 이 미니멀한 영화에 열광하게 되는가. 직접 이 작품을 선정한 오승욱 감독과의 시네토크 시간을 통해 엿본다.






김성욱(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래머) : 자크 베케르의 <구멍>은 탈옥에 실패하는 영화이긴 하지만 탈옥을 다룬 영화 중에서 가장 대단한 작품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베케르 감독의 영화 중에서 좋아하는 영화이기도 하다. 오승욱 감독님은 이 영화를 세 번이나 봤다고 하던데.

오승욱(영화감독) : 이 영화를 EBS 명작극장에서 처음 봤는데, 10년 전쯤이다. 그 때는 이 영화를 보다가 잤었다. 근데 자다가 일어나도 계속 구멍을 파고 있더라. (웃음) 주구장창 구멍만 파는 영화구나 했는데, 10년이 지나서 다시 보는데 한 장면도 놓칠 수가 없었다. 감정이입이 되는 것이, 이 답답한 현실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구멍을 파는 것 밖에 없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 보러 올 때는 피곤해서 잘 줄 알았는데 안 자지더라. 이번에는 특히 배우들의 얼굴을 집중적으로 봤는데 역시 좋았다.

나는 탈옥 영화를 좋아한다. <알카트라즈 탈출>이나 <대탈주>, <슈가랜드 특급>, 그리고 <제17포로수용소> 등등 굉장히 많은데, 그 중에서도 이 영화는 독특하고 아름답게 느껴진다. 사내들이 콘크리트 벽에다 쇠로 찍는 장면이 특히 그러하다. <알카트라즈 탈출> 보신 분은 아시겠지만 이 영화가 <구멍>에서 많은 영감을 받은 것 같다. 콘크리트 파는 것이라든지, 간수를 속이려고 인형을 만든다든지 하는 것들 말이다. 그리고 이 영화의 좋은 점은 계속 구멍을 판다는 거다. 하나의 구멍을 파면 또 구멍을 파야 되고 그러면 또 구멍을 파야 되고. 그런 견고한 벽들을 남자들이 파내려간다는 것, 이것이 이 영화에서 가장 독특하고 좋은 점이다. 또한 <구멍>은 우아하다는 생각도 든다. 자크 베케르 감독이 만든 코미디 영화를 봐도 그런데, 그가 인간을 묘사하는 방식이 우아하다고 생각한다. <황금 투구>, <현금에 손대지 마라>가 그렇고, <구멍>에서도 사람들이 숨어서 속삭이듯 대화를 한다. 음악도 사용하지 않다가 - 마지막 장면에서 살짝 사용하긴 하지만 - 물리적으로 어쩔 수 없는 소리들이 들려오는 점들이 좋았다.

그리고 장면을 묘사할 때, 이런 걸 왜 이렇게 길게 보여주지 하는 장면들이 있다. 하수구에 두 번째 내려갈 때는 그냥 쇠로 벽을 때리는 걸 첫 쇼트로 하면 파워풀 할 것 같은데 베케르는 인물들이 사다리 타고 내려가는 것부터 보여준다. 이런 디테일한 하나하나를 보여줌으로써 이들이 어떤 캐릭터이고, 이들이 범죄를 저지르는 것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보여주고, 전문성까지도 보여준다. 자크 베케르 감독이 독특하게 시간을 채집하는 방식이 아닌가 싶다. 나는 영화에서 무엇을 보여주고 무엇을 안 보여주는가를 정확히 알고 선택하는 것이 감독이 보여줄 수 있는 중요한 지점이라고 생각한다. 자크 베케르 감독의 영화를 보면 이 사람이 왜 이 영화를 찍었고, 무엇을 보여주려고 하는 것인가에 대해 생각하며 경탄할 때가 많다.

이 영화를 보면서 든 재밌는 생각은 이차대전이 끝나고 난 뒤 세상에서, 그러니까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장 창조적인 일을 하는 예술가는 범죄자가 아닐까 하는 거다. 결코 동의 안 하시겠지만... (웃음) 그런 생각에 미쳤다. 이 영화의 주인공들이 너무너무 창조적이라 그런 것 같다. 아무 것도 없는 곳에서, 그야말로 무에서 유를 창조해낸다. 절대 할 수 없는 것을 밀고 나간다. 그런걸 보면 범죄자들이야 말로 자본주의 세상에서 가장 예술가다운 예술가가 아닌가 생각한다.




김성욱
: 이 영화는 가장 터프한 영화라고 생각한다. 인간은 칼로 찌르면 피가 나는데, 이 사람들은 피도 눈물도 없는 벽을 파고드는 사람들이다. 가장 견고한 상대와 싸우는 영화다. 이 영화를 좋아하는 이유가 바로 그 벽의 그 견고함이란 것 자체가 세상의 벽 같은 느낌도 들고, 영화와 감독간의 관계를 떠올리게 해서다. 독방이란 것이 닫힌 프레임이라고 하면, 벽과 벽 사이의 통방은 화면과 외화면과의 관계를 떠올리게 한다.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마지막에 바깥을 향해 거울을 비출 때 경찰들이 나오는 장면이다. 그 순간에 죄수들이 밖으로 내민 거울은 바깥을 보기 위해서인데, 베케르 감독이 영화라는 거울을 통해 비춰낸 바깥세상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그리고 이 영화는 자크 베케르 감독의 유작이기도 하다. 박찬욱 감독이 자신을 뼛속 깊이 시스템에서 영화를 만드는 감독이라고 말 한 것이 인상적이었는데, 베케르 감독도 엄혹한 조건에서 영화를 만든 사람이었다. 그건 마치 시스템에 구멍을 파는 작가들 같은 거다. 베케르 감독의 경우는 주로 장르 영화를 만들면서 특히 갱스터, 범죄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은 평생을 구멍만 판셈인데, 그 벽과 상대해서 싸웠던 느낌이 이 영화에 고스란히 드러난 것 같다. 멜빌과 프리츠 랑의 영화도 생각난다. 랑의 <M>을 보면 금고 하나 터는데 그 장면을 매우 디테일하게 묘사한다. 여기서도 벽을 뚫고, 칫솔을 가는 등 다양한 디테일한 묘사가 나오는데.

오승욱 : 김성욱 프로그래머가 영화 소개할 때 <쇼생크 탈출>을 두고 <구멍>의 가장 반대편에 있는 영화라고 했다. <쇼생크 탈출>도 물론 재밌고 흥미로운 영화다. <쇼생크 탈출>이 계속 죄수와 간수가 싸우는 구조를 만든다면, <구멍>에서는 적은 내부에도 있고 외부에도 있고, 그리고 자기 자신도 적이 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쇼생크 탈출>은 어린이들도 볼 수 있고 흥행에도 성공한 영화지만 <구멍>은 그렇지 않다. 한 마디로 <구멍>은 격이 높은, 어른들의 영화라고 생각한다.

디테일도 대단하다. 죄수들이 탈출하기 위해 처음 만드는 것이 바깥을 보기 위해 칫솔에 거울을 붙인 것이고 영화의 맨 마지막 장면은 다시 거울로 바깥을 보는 것이다. 그렇게 처음과 끝을 설정해 마무리 짓는 것도 훌륭했다.

멜빌이나 브레송의 영화와 닮아있다는 생각도 한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프랑스 감독 세 사람이, 자크 베케르와 장 피에르 멜빌, 그리고 로베르 브레송이다. 이유는 이 세 사람이 범죄든 뭐든 예식을 치르는 것에 대해 미니멀한 묘사를 하기 때문이다. 세상에 대해 자신이 임하는 태도가 보이는 것 같다. 마디가 잘려나간 손으로 구멍을 파는 장면들은 짠한 느낌을 주지 않는가. 곧 정으로 내리쳐서 부술 곳임에도 불구하고 손으로 쓸어내고 빗자루로 청소하는 장면들이 매우 의미심장하다. 이들이 범죄를 저지를 때의 준비과정들을 이 감독은 세심하게 터치해낸다. 브레송도 마찬가지다. <사형수 탈옥하다>를 보면 실 하나하나 풀어서 로프를 만들고 숟가락을 간다. <구멍>은 그 영화와 형제 같다. 멜빌도 그렇다. <암흑가의 세 사람>에서 이브 몽땅이 신발을 벗고 올라갔다 다시 내려가고 하는 장면들을 다 보여준다. 보여주지 않아도 되는 장면이지만 그걸 다 보여 줌으로써 그들이 어떤 존재이고 어떤 정체성을 갖고 있는지에 대해 보여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혹은 그렇게 해야만 안심하는 종류의 감독들이다. 그게 그들이 세상을 대하는 태도다.




김성욱
: <사무라이>에서 알랭 드롱이 열쇠 뭉치를 꺼내서 하나하나 열쇠를 꽂아 넣는 장면도 기억난다. 그런 것들이 일반적 영화의 몽타주와는 매우 다르다. 문이 언제 열릴지, 벽이 언제 뚫릴지를 아무도 모른다. 디테일을 얘기하다 보니 생각났는데 베케르는 '영화의 곤충학자'라고 불리기도 했다고 한다. 그런 점이 이 영화에서도 도드라졌다. 비전문배우를 데려다 놓고 계속 구멍을 파게 하는, 그럼으로써 이 사람의 몸과 얼굴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관찰하는 느낌이 있다. 감독님은 이번에 볼 때 얼굴에 집중해서 봤다고 했는데.

오승욱 : 그냥 얼굴이 많이 보였던 거다. 좋았던 장면이라면 가스파와 롤랑의 관계를 보여주는 장면들이다. <첩혈쌍웅>에서 주윤발과 이수현의 관계처럼 말이다. 이를테면 주윤발의 상처에 이수현이 화약을 부어 불붙이는 장면 같은 것. 가스파가 삐져 있으면 롤랑이 별사탕을 주는 장면이라든지, 조와 롤랑이 땅을 파다가 물 나눠 먹는 장면들 같은 것들. 힘든 노동을 하면서 서로가 서로의 고통을 정신적으로 소통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느낌 때문에 두 장면이 정말 좋다. 세 번 봤는데도 좋으면 정말 좋은 거 아닌가. (웃음)


정리 : 김보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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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욱 감독이 선택한 안드레이 줄랍스키의 <퍼제션>



2월 7일 아트시네마는 탄식과 비명의 도가니였다. 올해 친구들 영화제에 직접 게스트 프로그래머로 참여하여 ‘최선의 악인들’ 섹션을 기획한 박찬욱 감독이 선택한 세편의 영화 때문이다. <밤 그리고 도시>부터 시작해 <그랜드 뷔페>, 그리고 <퍼제션>으로 이어진 상영은, 토요일 오후 내내 영화를 보기 위해 극장을 지키던 관객들을 그야말로 탈진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마지막 상영작인 <퍼제션>이 끝나고 이어진 관객과의 대화, 꽤 늦은 시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극장을 가득 메운 객석은 그 어느 때보다 뜨겁게 달아오른 공기를 뿜어냈다. 박찬욱 감독이 뽑은 매력적인 악당들의 향기에 취해 휴일 저녁을 '기이하게' 보내야 했던 관객들과 박찬욱 감독과의 생기 넘치는 시네토크 현장을 전한다.





김성욱(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래머) : <퍼제션>은 개봉 당시 찬사와 혹평을 동시에 받았던 영화로 기억한다. 특히 이자벨 아자니의 연기가 대단하다. 왜 영화 중간에 이자벨 아자니가 지하철 구내에서 엄청난 연기를 벌이지 않나. 이 영화에서 모든 배우들이 자폐 연기를 하는데 이자벨 아자니의 지하철 씬은 정말 경악을 금치 못한다. 감독님은 어떻게 보셨나.

박찬욱(영화감독) : 일단 어쩌다 한 번 보기도 힘든 영화를 연달아 보려니 감당이 잘 안 된다. (웃음) 사실 <퍼제션>은 아직까지도 아리송하다. 처음 영화를 보면서 느낀 것이기도 한데, 다시 봐도 제일 먼저 드는 생각은 (농담이 아니라) 이자벨 아자니가 정말 예쁘다는 거다. 워낙에 아름답기로 유명하기도하지만 이 영화에서 유난히 돋보였다. 아자니는 <까미유 끌로델>이나 <아델의 사랑이야기>, <여왕 마고> 같은 미친 여자 연기를 자주, 그리고 능숙하게 하기로도 유명했다. <퍼제션>은 두 남녀가 매우 흥분되어있는 상태에서 출발한다. 처음부터 그들의 오버액션을 지켜보면서 도대체 클라이맥스는 어떻게 처리하려고 저러나 의문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기대를 배반하지 않고 아자니의 지하철 씬을 통해 절정을 보여준다. <그랜드 뷔페>가 방귀뀌는 것을 음악연주회 수준으로 바꿔놓았다면, <퍼제션>은 정신발작을 현대무용으로 승화시켰다고 생각한다. (웃음)




김성욱 : 이 영화에선 하임리히라는 인물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나올 때마다 엄청난 기대감을 불려주며 관객을 결코 실망시키지 않는 이상한 연기를 선보인다. 

박찬욱 : 이 영화의 팬들은 모두다 하임리히 이야기를 한다. <양철북>에도 그가 나왔는데 참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이정도면 독일의 안소니 홉킨스가 아닐까. 무용을 배운 분이 아닐까싶을 정도로 자세가 다져져 있다. 걸어가는 것도 예사 자세가 아니다. 모든지 과잉되어있는 영화에서 하임리히도 질세라 그렇게 엄청난 오버액션을 선사했다.




김성욱 : 이 영화에서는 독특한 공간들이 눈에 띄었다. 초반에 회사를 보여주는 공간도 달랑 테이블만 놓여 있다. 도시전체가 비어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교 선생의 집은 굉장히 현대적 건물이다. 공간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가 없는데.

박찬욱 : <퍼제션>의 무대는 장벽이 무너지기 전의 베를린이다. 에스피오나지, 음모, 책략 등의 무대로 베를린이 적당했던 것이다. 영화에서 분단의 느낌이 확실히 든다. 가장 중요한 실내 공간은 아자니 부부가 사는 집과 괴물이 자라고 있는 집이다. 두 집을 시각적으로 구별해놓은 연출이 좋았다. 부부의 집은 청색과 흰색 프린트로, 괴물의 은신처는 연두색 위주의 프린트로 구성되었는데, 연두색은 사실 인물의 눈동자 색과 직결된다. 괴물의 눈동자가 연두색이기도 한데, 이것은 아마 또 다른 자아, 복제된 인물의 특징으로 설정된 게 아닐까 싶다.




김성욱 : 변신의 느낌도 보였다. <그랜드 뷔페>의 인물들은 타인과 느낌을 전달하고 교감하며 생활한다. 흔한 말이긴 하지만 <퍼제션>에서도 카프카의 변신 모티브가 생성된다. 괴물이 새로 태어나고 삶을 지속하는 등의 연결 말이다.

박찬욱 : <그랜드 뷔페>는 면밀하게 계획된 것이다. <그랜드 뷔페>에서는 서로의 의복이 뒤바뀐다. 마지막으로 죽는 필립은 심지어 먼저 간 친구들의 옷을 모조리 입고 있다. 우정과 같이 섞이는 과정을 의복을 통해 표현한 거다. <퍼제션>은 도플갱어 이야기다. 지하철에서 아자니의 광기는 말하자면 퍼제스 되는 과정을 보여준 것이 아닌가 싶다. 괴물은 결국 아자니의 아이이고, 그 아이가 커서 아버지를 닮는 변신의 과정을 겪는 것이라 생각한다.




관객1 : <그랜드 뷔페>도 그렇고 <퍼제션> 같은 영화에 도대체 투자하고 제작하는 사람들의 정체가 궁금하다.

박찬욱 : <그랜드 뷔페>는 흥행에 성공했고 <퍼제션>은 여기저기서 상영금지가 많이 되었다. <그랜드 뷔페>는 DVD로도 매번 새 버전이 나온다. 프랑스판에는 영화 속 요리를 만드는 법 요리 강좌 동영상이 들어있다고 한다. (웃음) <퍼제션>의 제작자는 루이 말 감독의 형제인 빈센트 말이다. 루이 말의 <데미지>나 두샨 마카베예프의 악명 높은 <스윗 무비>를 제작한 사람이니 범상한 사람은 아닌 셈이다.




관객2 : <퍼제션>을 보면서 도스토예프스키의 ‘악령’이 생각났다. 마지막 부분에 욕조에서 잠수하는 아들의 장면이 인상 깊었다. 영화 보는 내내 과연 무엇에 퍼제션 되는 것 일까가 궁금해졌다.

관객3 : 영화를 무슨 내용인지 모르면서도 끝까지 봤다. 가장 큰 이유가 아자니 때문이었는데, 이런 영화에서 연출자가 연기를 끌어내려는 방법에 대해 말씀해주신다면.

박찬욱 : 일반적으로 촬영할 때 앞부분의 장면을 먼저 찍는다. 첫 번째 두 번째에서 강하게 찍고 나면, 그 다음부터는 관성으로라도 점점 더 올라갈 수밖에 없다. <퍼제션>도 그러지 않았을까 짐작한다. 내가 줄랍스키였다고 해도 배우들을 설득시키거나, 그것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초반 씬을 강하게 친 다음에 영화를 이끌어 갔을 것 같다.




관객4
: 영화를 보면서 카인과 아벨 이야기가 떠올랐다. 엔딩 씬에서 하늘을 향해 올라가다가 구원받지 못하고 타락하는 모습이 보이기도 했다.

관객5 : 휴가내서 영화를 보러왔는데, 오늘 영화들을 보며 고향인 제주도로 돌아가고 싶더라. (웃음) 감독님이 B급 컬트를 평가할 때 기준으로 삼는 것이라면.

박찬욱 : 영화를 선택하고 좋아하는 것이야 다들 같다고 생각한다. 나를 놀라게 할 수 있는지가 중요하다. 웬만해서는 놀라지 않고 당황하지 않는데, 그런 나를 아직도 놀라게 해줄 수 있다면 가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새로움이 아니어도 <퍼제션>처럼 어떤 인생의 교훈을 주는 것도 좋다. 아내를 두고 1년 동안 출장을 가면 안 된다는 사실 같은 것 말이다. (웃음)




관객6
: 앞서 본 영화 두 편 다 회화적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요즘 산업화되면서 점점 감독들이 실험성 짙은 작품을 할 수 있는 환경이 없어지는 것 같은데.

박찬욱 : <그랜드 뷔페>같은 경우는 르네상스 회화를 그대로 재현한 느낌이 든다. 한 화면에 모든 인물들을 넣어서 보여주지 않는가. <그랜드 뷔페>는 미술감독의 빛이 가장 활발하게 작용했다고 생각되는 영화들 중 하나다. 하지만 <퍼제션>은 완전히 반대다. <퍼제션>은 철저하게 스태디 캠으로 찍어진 영화다. 끊임없이 움직이고 정신없이 줌인을 반복한다. <퍼제션>의 화면은 영화가 가진 주제의식을 보여주기에 가장 탁월했던 방법이었다.




관객7
: 감독님이 추천한 영화들을 보면 일정 수준의 악취미를 가진 것 같다. (웃음) 사회적인 제약이 없고 사람들의 시선도 상관없다면 이런 영화를 만들고 싶은 욕망이 있는지.

박찬욱 : 나는 뼛속 깊이 시스템 안에서 영화를 찍는 게 익숙해져있는 사람이라, 자유스러운 상황이 벌어지지 않을 것을 알기 때문에 그것에 대해 생각한 적은 없다. 아마 그렇게 된다면 공포영화가 될 것이다. <쓰리, 몬스터>의 제의에 동의했던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물론 이런 것만 좋아하는 건 아니다. 잉그마르 베리히만과 같은 감독들을 더 좋아한다. (웃음)




관객8
: <그랜드 뷔페>의 먹는 장면을 보며 실제로 배우들이 먹는 연기를 한 건지 진짜로 먹은 건지 몹시 궁금했는데 감독님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박찬욱 : 먹는 것 같이 보이긴 했는데, 물론 확인할 방법은 없다. 마르코 페레리 감독이 미식가 중의 미식가였다고 한다. 나중에 병이 들어 먹지 못하게 될 때도 후배들을 데려가 메뉴 골라주고 냄새 맡고 그런 낙으로 살았다고 한다. 이탈리아 사람들을 만나면 꼭 페레리 감독 이야기를 하곤 한다. 그는 우정이 끈끈하고 인품이 너그러운 사람이었다고 전해진다.


정리 : 강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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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욱 감독이 뽑은 ‘최선의 악인’, 마르코 페레리의 <그랜드 뷔페>



올해 ‘최선의 악인들’이란 프로그램으로 친구들 영화제를 더욱 맛깔스럽게 해준 박찬욱 감독이 2월 7일 오후 <그랜드 뷔페>의 상영을 함께하기 위해 극장을 찾았다. 그는 상영 전 소개에서 한 때는 숨겨둘 수밖에 없었던 자신의 취향을 비로소 관객들과 공유하게 되었음을 기뻐하며, 보다 괴로우면 중간에 극장을 나가도 괜찮다고 말했다. 하지만 관객들에게는 그 말이 오히려 자극제가 된 듯했다. 두 시간이 넘도록 폭식의 향연으로 넘쳐흐르는 이미지들이 매진된 관객석을 향해 기염을 토했지만 누구도 괴로운 탄식을 내뱉으며 고개를 돌릴지언정 쉽게 자리를 뜨진 못했다. 그러다 어느새 여기저기서 폭소가 섞여 나오며 극장은 유쾌한 고통 속에 들썩거렸다. 여기에 짧게나마 그 어지러웠던 고통과 흥분의 흔적을 옮겨본다.






김성욱(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래머) : 마르코 페레리 감독의 <그랜드 뷔페>는 많이 알려져 있지만 국내에서는 거의 상영된 적이 없었다. 어떻게 추천하시게 되었는지 궁금하다.

박찬욱(영화감독) : 드디어 이 영화를 소개할 수 있게 되어 너무 기쁘다. 요즘 어느 잡지에 ‘Guilty Pleasure’란 칼럼 코너가 있던데, 나의 Guilty Pleasure가 바로 <그랜드 뷔페>다. 처음 이 영화를 본 것은 감독과 배우 이름만 보고 산 DVD를 통해서였다. 처음 보고 굉장히 충격을 받아서, 좋긴 좋은데 어디 가서 말도 못하고 지냈다. 그러다가 여러 자료도 찾아보고 사람들과 대화도 나눠보면서 이 영화를 좋아해도 된다는 생각했다. 이 영화는 많은 논쟁과 주먹싸움을 야기했던 영화이고 모든 사람들의 취향이 아닌 것만은 분명하다. 이 영화를 선택할 때 ‘최선의 악인들’이란 말과 어울릴지 많이 고민했다. 사드적인 의미의 잔혹성이랄까. 합리주의, 질서, 체제, 이성적인 모든 것을 경멸하고 궁극적인 혼돈, 카오스를 지향한다는 점에서 일종의 악인들이라고 볼 수 있지 않나 싶었다. 그래도 많은 분들이 웃으면서 이 영화를 봐주셔서 다행이다. 사실 이 영화는 많은 자료에서 장르상 코미디로 분류되어 있다. 끝이 슬프긴 하지만, 전반적인 기조는 코믹한 느낌이다. 아무튼 그동안 혼자서만 봤는데 여럿이 함께 보게 되어 흐뭇하고 기분이 좋다. (웃음)




김성욱 : 오늘 다시 보면서 어떤 생각을 하셨는지.

박찬욱 : 다시 봐도 역시 네 명의 주연배우들의 매력에 경탄을 금할 수가 없다. 당시 유럽에서 최고의 전성기에 올라있던 아저씨들이 본명으로 출연하기 때문에 배우 하나하나의 모습을 즐길 수 있다. 지금 한국으로 치면 최민식, 송강호, 설경구, 김윤석을 모아놓은 셈이다. 미셸 피콜리를 제외하고 나머지 배우들과 감독은 모두 돌아가셨는데, 영화에는 본인들의 대중적인 이미지와 성격이 잘 반영되어있다. 조종사 역의 마르첼로 마스트로얀니는 감미로운 미남이자 바람둥이로 청년 시절부터 유명했다. 넷 중에 당대로선 가장 유명한 배우였는데 이 영화에선 가장 먼저 죽는다. 죽어서도 계속 나와서 다행이긴 하지만... (웃음) 역시 이탈리아 배우인 우고 토그나지는 이탈리아 영화에 파렴치한 악당으로 자주 등장했고 서민적인 역할을 많이 맡았다. 판사 역의 필립 느와레는 프랑스 배운데 의뭉스럽고 뚱한 느낌으로 코믹영화에 자주 나왔고, 이 영화에서도 코믹한 부분을 많이 맡고 있다. 미셸 피콜리는 지적이고 예술적인 사람으로 잘 알려져 있는데, 그런 사람이 맞는 최후는 가장 지저분하게 나온다. 아마 영화를 만들면서 자기들끼리 많이 웃으면서 재밌어했을 것 같다.




김성욱
: 혹시 마르코 페레리의 다음 영화 <백인여자에게 손대지 마라>도 보셨는지 궁금하다. 파리에서 벌어지는 일종의 초현실주의적인 서부극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 지금 이런 식의 영화들을 찍기는 상당히 힘들 것 같다. 어떻게 생각하는가.

박찬욱 : 봤다. 그 영화에 비하면 <그랜드 뷔페>는 정통적인 문법으로 만든 아주 평범한 영화라고 할 수 있다. (웃음) 그 시기는 재밌는 동네고, 재밌는 시대였던 것 같다. 지금은 이런 영화를 찍으라고 판을 펼쳐줘도 찍을 배짱을 가진 감독도 없을 거다. 영화 산업의 문제라고만 할 수 없는 것이, 이런 영화들은 당시 60년대 후반에서 70년대를 거치면서 젊은이들이나 지식인들이 가졌던 고민과 자유분방함이 빚어낸 것들이기 때문이다. 지금은 아무리 유럽이라도 이런 영화가 나오기 힘들 거다. 73년 작인 <그랜드 뷔페>도 베트남전, 히피문화, 68혁명을 거치면서 함께 싸웠던 사람들만이 만들어낼 수 있는 영화라고 생각한다. 마르코 페레리 감독은 이탈리아 평론가들이 66년에서 75년간의 10년을 결산하면서 뽑은 이탈리아 영화 베스트10에 두 편의 영화를 올린 감독이다. 1위로 오른 영화가 미셸 피콜리 주연의 <델린저는 죽었다>로 6명의 스텝으로 만든 초저예산영화였다고 한다. 그리고 4위에 오른 영화가 바로 <그랜드 뷔페>다. 그는 당시 10년 동안 이탈리아 안에서는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했던 대가라고 할 수 있다. 세계적으로 <그랜드 뷔페>가 가장 널리 알려진 이유는 이 영화로 인해 73년 칸 영화제가 난리였기 때문이다. 그 뒤에 이탈리아에서도 개봉 당시 검열을 심하게 당했다. 반면 파리에서는 엄청나게 흥행해서 스트라빈스키의 <봄의 제전>이 초연되었을 때를 방불케 하는 소동이 벌어졌다고 한다. 어떻게 보면 마르코 페레리 감독은 상당히 아나킥하다고 할 수 있다. 사상을 주장하고 선동한다거나 노동계급의 삶을 다루기보다는 중산층, 상류층의 퇴폐와 타락을 다루는데 공을 들였던 사람이다.




김성욱
: 영화의 대저택이란 공간이 주는 느낌이 독특하다. 밀실이나 감금된 공간처럼 보이는데 마르코 페레리의 이후 영화들에도 상당한 영향을 준 것 같다. 감독님의 영화들에도 폐쇄된 공간이 자주 등장하는데, 이 영화의 공간적 특성에 대해 어떻게 보셨는지 궁금하다.

박찬욱 : 이 영화를 언급할 때 빠트릴 수 없는 이름이 사드다. 사드의 대표작인 <소돔의 120일>은 크레딧에 언급되진 않지만 누가 봐도 이 영화의 근원이 되는 작품이다. 사드의 소설에서도 상류층에 속한 네 명의 중년들이 모여서 성, 음식, 폭력 이 세 가지의 대향연을 120일 동안 펼친다. 그것을 파졸리니는 <살로, 소돔의 120일>에서 파시즘과 연결시켜서 비판적으로 묘사했다면, 페레리는 <그랜드 뷔페>에서 서구문명 전체에 대한 종말론적인 시각으로 보여주었다고 볼 수 있다. 황폐해진 정원, 무너져가는 건물 자체가 서구문명 전체를 축소해놓은 미니어처 같은 역할을 한다. 변기가 폭발하는 장면만 봐도 그렇다. 그 이튿날의 광경에서는 미셸 피콜리가 아침에 식탁을 정리할 때 천장부터 축축하게 젖은 벽이 보이고, 그 냄새는 아무리가도 지워지지 않을 것처럼 묘사된다. 그것처럼 영화는 곧 붕괴되어가는 문명사회에 대한 얘기를 하고, 그 안에 스스로를 감금한 죄수들처럼 갇힌 사람들을 이야기한다. 마르첼로도 부가티를 몰고 떠난 이튿날 그 자리에 되돌아와 죽어있다. 추측해 보건데, 아마도 그는 차를 몰고 나갔지만 카프카적인 상황에 빠져서 어디로도 전진하지 못하고 뱅뱅 돌다가 그 자리로 돌아온 것 같다. 마지막에는 미첼과 마르첼로가 냉동고에 고기처럼 혹은 죄수처럼 들어가 있다. 그곳은 절대로 나갈 수 없는 공간이고, 그 전체가 문명이자 감옥인 것이다. 그런 점에서 <올드 보이>의 감옥이나 <사이보그지만 괜찮아>의 정신병원 같은 공간을 구상할 때 아마 무의식적으로 이 영화에서 받은 영향이 있었지 않나 싶다.




관객1
: 초반에 낮 장면에서 아이들이 밖에서 노는 소리를 계속 삽입했는데, 그런 점들은 어떻게 보셨는지.

박찬욱 : 학교 아이들이 와있다는 설정 때문에 공간감을 주려고 했던 것 같다. 그런데 처음에는 아이들의 소리가 지배적이었다면 점점 뒤로 갈수록 개가 짖는 소리, 칠면조나 거위 등의 동물, 새소리가 지배적이 된다. 마지막에는 개들이 집을 점령해버린 듯한 상황이 펼쳐진다. 그런 이미지들과 감금의 이미지들 때문에 이 영화를 루이스 부뉴엘의 <절멸의 천사>와 비교해서 얘기하는 평론가들도 많다고 들었다. 문명의 종말과 그런 상황에 던져진 네 고깃덩어리들은 그것을 명백하게 보여준다.




관객2
: 개인적으로 미셸 피콜리의 최후의 장면을 굉장히 유쾌하게 봤는데, 감독님은 어떻게 보셨는지 궁금하다.

박찬욱 : 그 장면은 물론 재밌게 봤다. 이 영화에서 찾아볼 수 있는 사드적인 요소 중 하나가 어른에서 아이로의 퇴행이다. 아이들이 똥, 방귀에 웃고 깔깔대며 좋아하는 것과 같다. 이 영화도 늙수그레한 감독과 나이 50을 전후한 아저씨들이 그런 종류의 쾌감을 느끼고 장난치면서 만든 것 같다. 영화 끝에는 아이에서 짐승으로, 마치 진화를 거꾸로 해나가는 듯한 퇴행을 보여준다. 근데 이미 변기의 폭발을 본 후라서 별로 충격적이진 않다. 사드가 남긴 말 중에 ‘종이에 쓰인 똥은 냄새나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영화의 장면들도 구역질이 나기 보다는 웃겼다.


정리 : 이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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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승욱 감독이 선택한 르네 끌레망의 <들판을 달리는 토끼>


2월 6일은 오승욱 감독의 날이었다. 그가 박찬욱 감독과 함께 게스트 프로그래머로 직접 참여하여 마련된 「최선의 악인들」 섹션 중 오승욱 감독의 선택작 세편이 오늘 하루 동안 연달아 상영되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마지막 상영작인 <들판을 달리는 토끼>가 끝난 후 프로그래머로 분한 그와 관객과의 진솔한 대화가 이어졌다. 오승욱 감독은 자신이 좋아하는 영화에 대해 얘기할 때 정말 즐거워한다. 그것이 진지한 이야기이든, 농담이든 간에 열정적으로 자신의 생각을 토로하는 오 감독은 한 번 이야기하면 웬만해선 말을 멈추지 않는다. 여기 오승욱 감독이 왜 악당에게 매력을 느끼고 그런 영화를 좋아하고 사랑하는지, 그가 꼽은 최선(?)의 악인은 누구인지 악당 사랑에 대한 그 끊어지지 않는 이야기를 옮겨본다.






김성욱(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래머) : 영화 재미있게 보셨는지 궁금하다. 당황스런 관객들도 있을 텐데, 이 영화가 도대체 무슨 얘기를 하는 건지 설명해 주실 분을 모셨다(웃음). 프로그래머로 분한 오승욱 감독님으로부터 선택의 변을 들어보자.

오승욱(영화감독) : 이 영화를 처음 알게 된 것은 10년 전쯤 EBS 명작극장에서 방영했던 때로 기억한다. 미국어로 더빙된 100분 버전이었는데 영어 제목은 <AndI hope to die>였다. 하지만 그 당시 영화를 보진 못했다. 허진호 감독이 녹화를 해서 제 영화랑 똑같은 게 있다며 보여주었다. 그때 <킬리만자로> 촬영 한 달 정도 앞두고 정신이 없을 때였는데 디테일마저 비슷하다며 알려주었다. 당구공 던지는 것도 나오고, 총 돌리는 것도 나오고, 화분에서 장난치고 그런 것들이 다 똑같고 심지어 마지막에 총 맞는 장면도 똑같으니까 꼭 보라고 권했다. 근데 허진호 감독이 90분짜리 공테이프로 녹화해서 마지막 10분은 못 봤다. (웃음) 처음 봤을 때는 무슨 내용인지도 모르겠고, 내 영화랑 비슷하다는 생각도 안 했다. 내 영화에만 꽂혀 있으니까. 어쨌든 라스트는 못 보고 테이프 반납한 뒤 잊어버린 영화였는데, 요번에 이걸 틀게 된 것은 한 열편 정도 추천을 했었는데 보고 싶던 영화들이 프린트가 없거나 수급이 어려워지면서 계속 다른 리스트를 제출하게 되면서다.


‘최선의 악인들’ 섹션에서 꼭 상영하고 싶은 영화는 감독 중심이 아니라 배우 위주였다. 박찬욱 감독이랑 공히 제일 좋아하는 배우는 리 마빈인데, 그 사람이 나오는 영화는 많이 상영했고, 리 마빈이 제일 멋있게 나오는 영화로 <프라임 컷>을 추천했는데 그것 역시 프린트 수급이 안 되어 안타까웠다. 그 다음으로 선택하고 싶었던 배우가 바로 이 영화에 나오는 로버트 라이언이다. 로버트 라이언에 제일 처음 꽂힌 건 <와일드 번치>다. 윌리엄 홀덴과 어네스트 보그나인 패거리가 있고, 로버트 라이언 패거리가 있는데 거기서 로버트 라이언이 너무너무 좋았다. 영화의 주인공은 윌리엄 홀덴이고 로버트 라이언은 홀덴에게 배신당한 친구로 나온다. 로버트 라이언은 홀덴 패거리를 쫓아야 하는데 자기 패거리에는 말도 안 되는, 쓰레기 같은 놈들이 나온다. 그래서 힘들어하는데 그런 모습이 너무 좋았다. 왜 <와일드 번치>의 마지막에서 정리를 해주지 않는가. 로버트 라이언이 흙벽에 기대서 ‘우리 시대는 끝났고 다른 세대가 오는 것’이고, ‘우리는 폐물이다’라고. 그걸 보고 있으면 악당들은 어른이 되지 못한 아이들이란 생각이 든다. 바로 늙은 아이. 어른으로서 성장하기 위한 벽을 뛰어넘지 못하니까 늙은 아이가 돼서 파멸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리고 오늘 보셔서 아시겠지만 로버트 라이언은 다른 악인들과 다르게 뱀눈의 느낌이 있다. 그렇지만 그 눈은 리 반 클리프의 뱀눈도 아니고, 어네스트 보그나인의 동그랗고 사악한 눈도 아닌 피곤에 찌든 눈빛이다. 50년대 니콜라스 레이 영화에 출연할 때는 나이가 그렇게 많지도 않은 사십대 초반이었을 텐데 그 때부터 피곤한 눈빛을 가지고 있었던 듯 하다. <셋업>이란 권투영화에서도 좋았고, 로버트 알드리치와 작업한 영화들도 좋았다. 근데 이 사람이 50년대 후반 들어서면서 조연급으로 밀려나기 시작했다. RKO 영화에서 주연을 했다고 대단한 주연이란 건 아니지만 그렇게 아예 조연으로 굳어질지는 몰랐다. 로버트 라이언이 60년대 초에 나온 영화 중 <배드 데이 블랙 록>이라고 존 스터지스 감독의 영화가 있는데, 그 영화도 꽤 인상적이다. 로버트 라이언이 스펜서 트레이시를 아주 지긋지긋하게 괴롭히는 동네 깡패로 나온다. 리 마빈과 어네스트 보그나인을 똘마니로 데리고서는 아주 정나미가 떨어질 정도로 괴롭힌다. <특공 대작전>에서는 리 마빈 패거리를 괴롭히는 장교 역으로 나오기도 하는데 그런 식으로 하다가 사라져 버렸다. 로버트 라이언이란 배우가 마지막으로 좋은 연기를 한건 <와일드 번치>가 아닐까 생각한다. 어쨌든 이 배우의 영화를 틀고 싶었다. 그러다 갑자기 생각난 영화가 바로 오늘 상영한 <들판을 달리는 토끼>다. 로버트 라이언이 마지막으로 비중 있는 주연으로 출연한 영화인 셈이다. 이 영화 마치고 로버트 라이언은 할리우드로 가서 몇 년 뒤에 죽은 것으로 알고 있다.


10년 전에 정신없이 본 경험만으로 이 영화를 추천했다. 설마 이 영화를 구할 수 있을까 생각했는데 막상 상영하게 되니 처음에는 당황스러웠다.(웃음) 영화도 다시 DVD를 보니까 너무 황당하더라. 도대체 이게 무슨 얘기야! (웃음) 게다가 로버트 라이언의 연기가 좋은가 하면 그렇지도 않았다. 프랑스인 감독과 배우랑 하려니까 힘들어하는 것 같았다. 로버트 라이언 연기 중에서도 좋은 연기라고 할 수 없고, 자기가 뭘 하는지 모르거니와, 감독 사이에서 뭔가 잘 안 될 때의 조급함이 보이는 것 같다. 그냥 보여주기 편한 것만 연기한다는 느낌이었다. 이 영화를 상영하는 게 옳은가 하는 생각도 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걸 틀기로 한건 이상하게 불 균질하고, 울퉁불퉁하기 때문이다. 그게 이 영화의 매력이 아닐까 싶다.


마지막 강탈 장면이 멋있긴 하지만 말이 안 되지 않나. 왜 양복을 입고 주차장에서 박치기를 하지, 처음부터 고가사다리차 이용하지 왜 저렇게 어렵게 하지 싶다. (웃음) 감독의 질투가 아닌가 생각해봤다. 르네 클레망 감독이 대가라고 하기는 힘들다고 하기에. 어떤 사람은 <태양은 가득히>란 영화를 보고 ‘배우도 좋고 원작도 좋은데 연출은 구리다’라고도 했다더라. 하지만 르네 클레망이란 감독은 나름대로 연출을 잘 하는 감독이다. 그리고 로버트 라이언이란 미국 배우와 작업을 해서 이상하다고 말하는 것 역시 말이 안 된다. <빗속의 방문객>에서는 찰스 브론슨이란 배우와 사악한 분위기를 풍기는 영화를 만든다. 거기선 연출도 훌륭하다. 근데 <들판을 달리는 토끼>를 보면 감독이 미쳤나, 왜 이런 영화를 만들었을까 곰곰이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떠오르는 게 있다. 바로 세르지오 레오네다. 르네 클레망은 서스펜스 만들고, 오밀조밀한, 말 되는 영화를 만들었는데 왜 이럴까 생각해보면 이건 세르지오 레오네를 비롯한 동시대 감독들에 대한 질투로 보여 진다. 레오네가 영화를 만들고, 미국에서는 뉴 아메리칸 시네마가 나오고, <겟 카터>에서 나오는 이상한 교차편집, 이상한 분위기를 만드는 영화들을 보면서, 자기 길이 아닌 길을 갔다는 느낌이 들었다. 서스펜스 만드는 데는 도가 튼 사람이 이상한 에너지의 영화를 보면서 나도 만들고 싶다고 생각을 한 것 같다. 그래서 미국배우 로버트 라이언을 데려다가 무리해서 캐나다로 장소를 옮기고 무리한 설정을 하고, 루이스 캐롤의 고양이도 등장시키고 했던 것이 아닌가 싶다. 어떤 정서를 만들거나 주인공의 액션을 통해서 폭발하는, 그런 이상한 마력을 불어넣는 장면을 만들지는 못했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상영하기를 잘했다는 생각을 했다. 이렇게 불 균질한 영화가, 그 당시 73년의 뭔가를 보여주는 영화가 아닐까란 생각에서다. 멜빌이 만든 <암흑가의 세 사람>에서의 강탈 장면을 직접 만들어보고 싶어 했던 것이 아닐까. 만든 적은 없지만. 당시 중년이 조금 넘어가는 감독이 나도 한 번 멋진 갱 영화를 만들고 싶어 하는 욕망으로 만든 울퉁불퉁한 영화라고 생각한다. 그런 불 균질과 울퉁불퉁함 속에 이상한 매력이 있다.


사실 영화가 뭘 말하는지 르네 클레망이 무슨 생각을 했는지 모른다. 옆에 세르지오 레오네가 있고 뉴 아메리칸 시네마가 있고, 이 행간 속에서 르네 클레망은 무슨 생각으로 이렇게 납득이 안 되는 영화를 만들었을까. 직관적으로 하나 밖에 안 떠오른다. 그것이 다름 아닌 ‘질투심’이다. 영화감독이 항상 걸작을 만들 수는 없지 않는가. 이렇게 이상하게 울퉁불퉁한 영화가 있다는 것도 재미 있지 않나. 그렇다고 쓰레기통에 들어갈 영화도 아니다. 홍콩 느와르나 일본 갱 영화에 영향을 미친 것도 있다고 생각한다. 말도 안 되는 이상한 장면이라 생각되지만 이런 영화에서 물려받은 것, 해보고 싶은 장면들도 있다. 저도 영화에서 당구장 장면 찍었지만, 이 영화 보면서 내 영화 <킬리만자로>와 비슷한 장면들이 있어서 놀랐다. 그래서 냉혹하게 바라보기 보다는 이 영화가 사랑스러웠다. 여러 관객분들이 이 영화 보면서 황당하고 당황스러웠겠지만 전 속으론 ‘감독님, 저보다 먼저 하셔서 망하셨군요’하면서 말이다. (웃음)


그리고 이 영화는 악당들의 성향에서 뿜어져 나오는 재미가 또 있다. 악당들이 자기가 만든 윤리에 집착하는 거다. 로버트 라이언이 악당은 악당인데 자기 부하가 여자 쳐다본다고 병적으로 때리는 장면이 그렇다. 그런걸 보면 이 사람들의 윤리, 특히 갱 영화의 악당들은 이상한 윤리를 갖고 있는 경우가 많다는 생각을 한다. 여자는 건들지 않는다든지 하는 것 말이다. 자신이 세상을 버티고 살아가는 윤리관들이 있다. 이들의 윤리관 때문에 범죄 영화들이 독특해지는 게 아닌가 싶다. 저는 이번에 맡은 ‘최선의 악인들’ 섹션에 그런 영화들을 다 골랐다. 제가 좋아하는 악당들은 악당이라 하더라도 사회적 악당과 국가적 악당의 중간쯤에 끼어 있는 악당인 셈이다. 어찌 보면 룸펜 프롤레타리아 악당. 악당의 조건도 못 갖추고 있는데 악당 짓을 하고 있고, 근데 그 결말은 파멸이고. 개인적으로 그런 악당들에 매력을 갖게 된다.


정리 : 김보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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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아트시네마의 수표업무를 맡고 있는 박미량 씨와의 인터뷰


최근의 멀티플렉스에서는 뜯는 티켓들을 보기가 힘들다. 게다가 요즘은 기존의 티켓 대신에 얇은 종이로 된 영수증을 주는데, 이것은 영화를 본 뒤 티켓 모으는 것이 소소한 즐거움이었던 사람들에게는 조금 슬픈 일이다. 그런 점에서 아트시네마에서 보는 ‘뜯는 티켓’은 매우 즐거운 일이다. 티켓을 받고, 티켓을 확인한 뒤 뜯고, 뜯겨진 티켓을 돌려주는 것은 마치 기계적인 움직임처럼 보이지만 이 과정 속에는 손과 손이 거쳐 만들어낸 흔적들이 있다. 필름과 스크린 위에 흔적을 남기는 영화처럼 티켓에 설렘의 흔적을 남겨주는, 수표업무를 맡고 있는 박미량 씨를 만났다. 





신윤하: 아트시네마에서 어떻게 수표업무를 하게 되었는가?

박미량: 홈페이지에서 프로그램을 확인하다가 수표아르바이트를 모집하는 것을 보았다. 마침 시간도 가능했고 공부도 하고 싶었기 때문에 하게 되었다. 사실은 낙원상가 4층 옥상에 있는 아트시네마의 위치와 분위기에 반해서 하게 된 것이 가장 큰 이유다.(웃음)

 

신윤하: 아트시네마에서 수표 업무하기 이전에 다른 극장이나 영화제에서도 일을 한 적이 있는가?

박미량: 전주영화제 7회 때 했었고, 몇 회인지 잘 기억나지 않지만 여성영화제에도 2번 참여했다. 그리고 바로 이전에 나다에서도 수표업무를 했었다.

 

신윤하: 수표업무를 하면서 어떤 일이 가장 기억에 남는가?

박미량: 얼마 전에 했던 카를로스 사우라 특별전에서 어떤 나이 많은 관객분이 영화를 보고 너무 기분이 좋은데 말할 상대가 없어서 나에게 영화가 너무 좋다고 말하시면서 매우 즐거워하셨다. 그 때 영화를 보고 난 뒤의 흥분과 즐거움이 느껴지면서 나는 그런 감정들을 잠시 놓치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강민영: 수표업무를 하다보면 아트시네마에서 하는 영화들을 다 못 보는 것이 많이 아쉬울 것 같다.

박미량: 맞다, 극장에서 하는 영화들을 못 보는 것이 아쉽다. 지금 친구들 영화제 같은 경우에는 일주일 중 평일에는 일하고 주말에는 영화 보러 오기 때문에 월요일 빼고 매일 극장에 온다.(웃음)

 

신윤하: 아트시네마에서 했던 프로그램 중에서 어떤 것이 좋았는가?

박미량: 일을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아서 청년 필름 10주년 영화제, 카를로스 사우라 특별전, 사무엘 풀러 회고전까지만 했는데 그 중에서 카를로스 사우라 특별전이 좋았다. 탱고 음악을 굉장히 좋아해서 사우라 영화들도 좋았고, 매일 오시는 단골 관객들뿐만이 아니라 소문 듣고 오시는 일반 관객들도 오셔서 보고 DVD문의까지 해서 좋았다.

 

신윤하: 이번 친구들 영화제에서 추천하고 싶은 영화나 기대되는 영화가 있는가?

박미량: 가장 기대되는 영화는 <퍼제션>과 관객들의 선택으로 뽑힌 <열대병>이다.

 

신윤하: 2009년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 슬로건이 ‘공간의 발견, 행복의 시네마테크’이다. 이 슬로건과 관련해서 간단한 코멘트 부탁한다.

박미량: 서울 아트시네마에서 일을 하게 된 계기가 낙원상가에 있는 이곳의 공간이 매우 맘에 들었기 때문이다. 영화를 보고 나오면 담배 한 대 피워야 할 것 같은 아트시네마만의 분위기가 있다.(웃음) 극장이 옥상에 있어서 좋은 영화를 보고 나오면 살짝 찬바람을 맞으면서 바로 하늘을 보게 되는데 그러면 영화에 대한 감동이 두 배가 된다. 최근에 분위기가 좋은 작은 극장들과 예술극장들이 많이 생기는데, 아무도 따라할 수 없는 특유의 분위기를 가진 아트시네마가 좋다.

 

신윤하: 마지막으로 하시고 싶은 말?

박미량:아트시네마에 자주 오셔서 얼굴이 눈에 익으신 분들이 많은데, 그 분들께서 살짝 눈인사를 해주시거나 수줍게 미소라도 띄워주시면 좋겠다. 지금은 친구들 영화제 자원봉사자 분들이 같이 있어서 외롭지 않지만, 보통 때는 혼자 좁은 공간에 덩그러니 있다 보니까 가끔은 심심해서 혼잣말을 할 때도 있다.(웃음) 



정리: 신윤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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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 기간 동안 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되지만, 극장에 매번 올 때마다 마주치는 반가운 얼굴들이 있다. 바로 관객회원들을 위한 공간인 회원라운지를 책임지고 상영관에 들어가기 전 티켓확인을 하며 상영 후에 이어지는 '씨네토크'에서 마이크를 들고 진행을 돕는 영화제의 ‘자원활동가’ 분들이다. 4일, 사람들이 영화를 보러 들어가고 한산해진 틈을 타 회원라운지의 아기자기한 테이블에 둘러앉아 즐겁게 수다를 떨던 두 분의 자원활동가 박지영(22세, 학생), 임효진(20세, 학생)을 만났다.







신윤하(데일리 친구): 우선 간단하게 자기소개 부탁한다.

박지영(영화제 자원활동가): 박지영입니다. 올해 22이고 동양학 공부하고 있습니다.

임효진(영화제 자원활동가): 임효진입니다. 올해 20이고 국문과 재학 중입니다. 영화제 자원봉사는 이번이 처음입니다.

 

신윤하: 어떤 계기로 친구들 영화제 자원활동가로 지원하게 되었는가?

박지영: 평소부터 종로 낙원상가와 여기 시네마테크를 좋아해서 어떻게든 아트시네마와 엮이고 싶다는 생각이 많이 있었다. 그래서 "씨네21" 뒤에 실린 광고를 보고 바로 신청을 하게 되었고 운 좋게 뽑히게 되어 일하게 되었다.

임효진: 홈페이지에 상영 프로그램을 확인하러 들어갔다가 자원활동가를 구한다는 공지를 보고 마침 방학이고 평소부터 영화제 활동을 해보고 싶어 했기에 지원했다.

 

신윤하: 영화제 기간 동안 주로 어떤 일을 하는지?

박지영: 주로 예매한 분들께 확인하고 표를 발권해 드리고 회원라운지를 관리합니다. 그리고 씨네토크 같은 행사 진행과 아트시네마 내의 작은 업무들을 맡습니다.

 

신윤하: 어떻게 해서 서울 아트시네마를 알게 되었는가?

박지영: 멀티플렉스 같은 영화관에서 해주는 영화들도 많지만 개인적으로는 주류 시선 혹은 대중의 입맛에 맞추는 것이 아닌 감독 자신만의 이야기들을 풀어내거나 작은 것들에 집중하는 예술영화들에 매력을 느끼면서 아트시네마를 알게 되었다.

임효진: 영화 보는 것을 좋아해서 처음에는 장르, 소재 가리지 않고 보았다. 그렇게 영화를 보다 보니까 흔히 일컫는 명작들이나 고전영화, 예술영화들이 점점 재밌어졌다. 이런 영화들을 볼 수 있는 극장들을 찾다가 아트시네마를 알게 되었다. 그리고 영화 보는 것 말고도 영화랑 관련된 모든 일들에도 자연스럽게 관심을 갖게 되어서 친구들 영화제에도 참여하게 되었다.

 

신윤하: 어떤 영화나 감독들을 좋아하는가? 지금까지 아트시네마에서 했던 프로그램들 중에서 어떤 것들이 좋았는지?

박지영: 좋아하고 가장 알고 싶은 감독은 허우 샤오시엔과 이와이 슌지,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이다.

임효진: 좋아하는 영화를 꼽자면 베르톨루치의 <몽상가들>을 좋아하고, <거북이는 의외로 빨리 헤엄친다>와 <텐텐>의 미키 사토시 감독을 좋아한다.



 

신윤하: 두 분은 이번 친구들 영화제에서 어떤 영화를 가장 추천하고 싶은지? 그리고 어떤 영화가 가장 기대되는가?

박지영: 얼마 전에 본 <퍼제션>을 추천하고 싶다. 스토리상의 인과관계는 잘 모르겠지만 영화 장면 하나하나가 인상에 남는다. 그리고 여배우 이자벨 아자니의 연기가 대단했다. 그리고 <무셰트>가 가장 기대된다.

임효진: <퍼제션>은 일을 하다가 마지막 5분 밖에 보지 못했지만 잠깐 본 장면이 매우 강렬했다. 영화제에서 기대되는 영화는 자크 베케르 감독의 <구멍>이다.

 

신윤하: 2009년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 슬로건이 ‘공간의 발견, 행복의 시네마테크’이다. 이 슬로건과 관련해서 간단한 코멘트 부탁한다.

박지영: 시네마테크에서 하는 기획전이나 특별전을 보러 오면 극장에서 영화만 보고 가곤 했는데, 서울아트시네마 만의 필름 라이브러리도 생기고 영화제를 하면서 회원라운지 같은 공간도 생기면서 정말로 시네마테크가 자료보존과 일반인들에게 좋은 영화들을 소개하고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이는 공간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임효진: 평소에 아트시네마를 오면 항상 상영관이 많이 비어있어서 이번 영화제 일을 하면서 사람 많은 것을 처음 봤다.(웃음) 영화제가 끝나도 앞으로도 영화 좋아하시는 분들이 언제나 오면 편하게 영화를 볼 수 있는 공간이 되었으면 좋겠다.



정리: 신윤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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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창호 감독이 추천한 존 포드의 <분노의 포도>






2월 5일 저녁, 사회 고발적인 존 스타인백 소설을 원작으로 한 존 포드의 <분노의 포도> 상영이 끝나고 이 영화를 추천한 배창호 감독과의 시네토크가 이어졌다. 배창호 감독은 내용적인 면으로는 존 포드 영화가 가진 인간에 대한 보편적이면서도 센티멘털함에, 표현적인 면에서는 강렬한 느낌을 주었던 클로즈업에 끌렸다고 한다. 배창호 감독이 들려주는 존 포드의 세계와 <분노의 포도>에 대한 느낌과 기억, 그 현장을 담았다.


김성욱(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래머) : 감독님에게 존 포드의 영화를 상영해 보면 어떨까 제안 드린 적이 있었다. 여러 편을 생각하시다가 결국 <분노의 포도>를 선택했는데.  

배창호(영화감독) : 존 포드 감독 영화를 추천해달라고 해서 조금 난처했다. 좋아하는 존 포드 감독의 영화가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고민하다 최종 물망에 오른 것이 <나의 계곡은 푸르렀다>, <분도의 포도>, <수색자> 등이었다. 개인적으로는 다 비슷비슷하게 좋아하지만, 결국 존 포드 영화 중에서 가장 사실적이고 리얼리즘적인 <분노의 포도>를 택했다. 존 스타인백의 원작을 좋아하는 것도 이유였다. 존 포드 감독을 좋아하는 점은 인간에 대한 시각 때문이다. 인간은 누구나 그렇듯이 선과 악의 공존과 그것들의 부딪침이 있는데, 존 포드 영화에는 인간 선에 대한 가치, 가족에 대한 가치를 존중한다. 또 리얼리즘을 초월하는 센티멘털리티와 내적인 문제로든 사회적인 문제로든 안주하지 못하고 떠날 수밖에 없는 인간의 방랑성을 그린 점들이 좋다. 1987년도에 <황진이>를 만들고 하와이 국제 영화제에서 선보였는데, 영화를 본 한 미국평론가가 나에게 존 포드 감독을 좋아하냐고, 당신 영화에 그런 느낌이 묻어난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때는 이해하지 못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존 포드의 기본적인 느낌이 내가 바라보는 인간의 시각과 연출적인 것들과 맞물려 비슷한 점이 있지 않았나한다. 또 하나 부가할 것은 그렉 톨랜드라는 촬영감독이다. <분노의 포도>는 조명이 사실적이고 콘트라스트가 좋아서 힘이 있다. 그 조명이 헨리 폰다의 눈빛을 살아있게 만든다. 어머니와 헨리 폰다가 헤어질 때 나오는 촛불이나 등잔불에 이글거리던 헨리 폰다의 눈빛을 조명이 잘 살렸다고 생각한다.




김성욱 : 감독님도 말씀하셨지만 영화는 존 스타인백의 소설과는 차이가 있는데, 가장 차이가 있었던 부분은 가족들의 묘사인 것 같다. 존 포드가 다룬 가족의 묘사와 사회 문제를 연결시키는 부분이 이채로웠는데, 오늘 보면서 감독님은 어떤 장면을 눈 여겨 보셨는지?

배창호 : 존 포드 감독은 쇼트를 절제하던 사람이었다. 존 포드가 사람을 클로즈업으로 강조했던 것 중, 나도 이런 부분을 강조했겠다하는 부분들이 있다. 오클라우마에서 떠나기 전에 짐정리를 하는 어머니가 자기 물건을 정리하는 장면이다. 사물들을 정리하다가 언젠가 썼던 귀걸이를 보는데, 장면은 여기서 끝날 법하지만, 어머니는 그 귀걸이를 대고 거울에 비추는 것으로 이어진다. 굉장히 시적이어서 영화의 톤에 맞지 않지만 좋았다. 존 포드가 남성적이지만 어머니를 다룰 때만큼은 깊은 여성성이 드러난다.




김성욱 : 영화 초반부에 오클라우마에 쫓겨나는 이유들은 명시적이지 않지만, 쫓겨 다닐 때 이 사람들이 어떻게 같이 살아갈 수 있는가가 잘 드러난다. 사회적인 것보다 그런 것이 훨씬 더 굳건하게 보여진다. 사회적인 이슈를 다루면서도 가족적인 문제를 다루는 방식을 어떻게 보았는지?

배창호 : 대학 때 원작을 읽었는데 좋아했다. 존 스타인백의 소설은 대공황, 정체를 알 수 없는 자본주의, 빈민에 대한 자본주의의 횡포를 예언한 것이라 생각했다. 영화는 좀 다르다. 두 시간 남짓의 시간에 보여주어야 하니 어차피 깎을 수밖에 없다. 이 영화도 원작이 가지고 있는 테마의 사회 고발적이고 사실적인 것보다는 원형적이고 보편적인 것으로 깎을 수밖에 없었던 것 같다. 톰 조드는 케이시가 물려준 사명감을 느끼고 떠나는 것이고, 엄마는 “We are the people"이라며, 민중으로서의 질긴 생명력과 의지를 가지고 살아간다. 이런 시각이 소설보다 좀 더 보편적이며 원형적이다.




관객1 : 영화를 용산 철거민 사태와 연관지어 보았다. 한국도 자본주의 사회에 최첨단을 달리고 있는데, 감독님은 자본주의 사회를 고발하면서도 제작자들을 설득하기 위해 젊은 영화인들이 어떤 역량을 키워야 한다고 생각하시는지.

배창호 : 영화 쪽으로 좁혀서 얘기해보는 것이 낫겠다. 내 데뷔작인 <꼬방동네 사람들>은 빈민에 관한 영화이다. 소외받고 그늘진 사람들 이야기를 좋아한다. 너무 심리적이기 보다는 배고픔과 같은 인간의 기본적인 문제와 원초적인 갈등에 대해 그리는 것이 좋았다. 개인적인 애정도 있고. 내가 젊었을 때는 자신이 느끼는 제도에 대한 것을 표현할 수 없었다. 지금 시대에도 사회와 경제구조를 보는 의식적인 영화가 만들어져야 하고 관객들이 보아야 한다. 이 영화를 추천한 이유 중에 하나도 우리 청소년들이 보고, 인간에 대한 애정, 사회의식 등을 느꼈으면 하는 바람에서다. 사회의 변화를 부르짖는 영화들이 제도권에서 만들어져서 많은 분들이 보는 시대가 만들어지길 바란다.




김성욱 : 이 영화를 보면서 <꼬방동네 사람들>과 <길>이 섞여 있는 느낌을 받았다. 가장 큰 부분이 어딘가 도착하는 순간과 어딘가로 떠나는 순간들이다. <꼬방동네 사람들>에서도 도착하고 떠나는 장면들이 인상적이다. 영화를 만들면서 존 포드 영화나 웨스턴 영화를 많이 떠올렸을 것 같은데.

배창호 : 내가 후에 삶을 분석적으로 생각해봤을 때, 누군가가 떠나고 다시 누군가를 만나는 것이 삶의 모습으로 느껴진다. 안주해서 잘 있는 것 보다 삶은 다시 무엇을 찾아서 떠나야 하고, 만나고 헤어져야 한다고 느낀다. 존 포드의 영화에서 그가 보는 시선과 맞아 떨어진다. 인생을 보는 굵직한 시각이 비슷한 점이 있었던 것 같다.




관객2 : 감독님께서는 젊은 관객들을 위하여 변명을 하고 있는 것 같다. 표면이 얼마나 사실적인가를 떠나서 여전히 큰 울림이 있었다. 다른 예술을 말할 때는 시대를 초월하여 훌륭하다고 말하는데, 꼭 영화만 옛날 영화가 더 기술이 떨어지고 지금 보면 나이브하다는 식으로 말해지는 것이 안타깝다. 개인적으론 이 영화의 중반부 무도회 열리는 장면이 좋았다. 존 포드 영화에서 나오는 아름다운 공동체이다. 감독님은 방랑정신을 강조했지만, 떠남으로서 설립되는 공동체가 중요하다고 느껴졌다. 사람이 떠나는 것보다는 공동체가 더 중요한 것이 아닌가.

배창호 : 어려운 질문이다. 남느냐 떠나느냐 하는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는 시간이 더 필요할 것 같다. 존 포드가 이 영화를 말할 때 가족에 대한 구성과 캐릭터에 주안점을 두었다고 하는 것을 봐서는 가족의 사랑과 화합, 재회의 기쁨이 중심이 된 영화다. 그 화합을 살리기 위해서 평화롭게 남아있다면 얼마나 좋겠나. 하지만 우리를 떠나게 만들 수밖에 없는 사회나 가족의 문제가 생기고 갈등이 생긴다. 남는 것만으로는 명제가 생기지 않는다. 큰 명제는 세상과의 이별이라는 것에 함축적으로 있다.

첫 번째 질문에 대해서는 지금은 표피적 리얼리즘이 세력을 얻는 세상이라고 본다. 이것이 영화의 진화에 도움을 주긴 했지만, 캐릭터의 내면적인 진실은 보지 않고 겉으로만 판단하게 되는 것 같다.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그린 최후에 만찬도 리얼하지가 않다. 의상도 그렇고, 그렇게 일률적으로 앉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런 것보다는 내적인 것을 보는 가치가 중요하지 않을까. 영화도 고전에 있는 내면적인 향기를 본다면, 영화 공부하는 사람에게 도움이 될 것이다. 존 프랑켄하이머 감독이 요즘 젊은 감독들의 영화를 보면 위대했던 감독들의 영화를 보지 않은 흔적이 난다고 했다. 우리나라 감독들도 그런 아쉬움이 있다.




김성욱 : 이 영화에서 헨리 폰다가 연기한 톰이라는 인물은 포드의 영화 중에서도 독특한 인물이라 생각한다. 사회에 대한 분노가 끌어 올라 무언가를 계속 고민하고 배우고 발견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인물이다. 전체적인 느낌이 성자처럼 묘사된 듯 하다. 감독님은 톰이라는 인물을 어떻게 보셨는지.

배창호 : 여기에 나오는 인물의 창조는 존 스타인백이 했고, 존 포드는 형상화하고 표현한 것 같다. 존 스타인백이 가지고 있는 성서적 부분을 차용한 것이다.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가는 것처럼 성서에 대한 지식적인 것과 오클라우마 농민들이 일자리를 찾아 떠나는 사회적인 것의 아이디어를 맞추고 그 과정에서 톰 조드라는 인물이 탄생되었다 보았다. 톰이라는 인물은 자기를 방어하기 위해서 분노할 수밖에 없었던 성난 노동자이다. 그런 인물을 존 스타인백이 만들었고, 존 포드는 그를 모자간의 사랑으로 좀 더 보편성 있게 만든 게 아닐까 생각한다.




관객3 : 존 포드 영화를 자주 보지 않다가 ‘존 포드야말로 풍경화가’라는 글귀를 읽고 보기 시작했다. 그가 풍경을 필름에 담아내는 것이 훌륭하다. 감독님은 어떤 장면이 인상적이었는지 궁금하다.

배창호 : 이 영화에서 존 포드의 구도가 너무 웅장하다는 생각을 했다. 내가 생각한 원작의 풍경은 매우 사실적이고 황량한데, 영화에는 아스팔트가 있고 의상도 너무 깨끗하다. 존 포드는 원근법에 맞추어서 찍은 것 같다. 당시 영화들은 풍경에 서정적인 장면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던 것 같다. 그러면서도 이 영화 몇 장면은 꽤 사실적으로 표현했다. 뉴멕시코에서 아리조나로 가는 길을 찍은 장면은 뉴스릴을 보는 듯한 사실감을 주었다. 시정과 사실성의 밸런스를 맞춘 것 같다.

이 작품을 보면서 느낀 것은 사람을 잘 찍었구나 하는 것이다. 클로즈업이 별로 없는데도 들어가면 힘이 있다. 엄마와 톰, 두 인물들을 보면 존 포드의 일화가 떠오른다. 존 포드가 태양광선이 좋지 않아서 철수해야 하는 상황이었는데도 자꾸 리허설을 하기에, 한 스탭이 “철수해야 하는데, 당신은 무엇을 하고 있나”라고 묻자, 존 포드는 “영화에서 제일 중요한 것을 하고 있지, 오늘 우리는 사람의 얼굴을 찍을 거야”라고 했다고 한다. 바쟁도 클로즈업만큼 신비하고 중요한 게 없다고 했다. 요즘은 너무 남발해서 힘들다. 표면적인 클로즈업을 남발하는 이 시대에 느낌 있고 표현적인 클로즈업을 만나 반가웠다.




김성욱
: 마지막으로 최근 준비하시는 영화에 대해서 한 말씀 해주신다면.

배창호 : 지난해부터 케냐에 있는 어린이 합창단에 관한 실화를 바탕으로 윤성호 감독과 함께 시나리오를 쓴 작품을 준비중에 있다. 지금 투자자가 생각하는 캐스팅이 맞지 않아 논의 중에 있다. 그 사람들이 원하는 캐스팅이 있다는 것을 이해하지만, 양보하기가 쉽지 않다. 지금은 결론이 나기를 기다리는 상태다. 그 영화가 잘 만들어져 관객들과 대화를 나누는 기회가 왔으면 좋겠다.


정리 : 김나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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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워드 혹스의 <신사는 금발을 좋아해>





이 영화와 관련해 깊은 오해를 풀 필요가 있다. 하워드 혹스는 할리우드의 ‘사내중의 사내’라 불렸던 감독으로 남성들 간의 유대를 찬양했던 인물이다. 그는 ‘와일드 빌’ 월맨과 오토바이를 즐기고, 윌리엄 포크너와 비행을, 어네스트 헤밍웨이와 낚시와 사냥을 즐긴 할리우드의 대표적인 마초니즘의 작가였다. 그런데 그가 어떻게 이런 식의 ‘여성 버디무비’를 만들 수 있었을까? 비평가들은 오랫동안 이를 두고 의문을 제기했었다. 달리 말하자면 이 영화는 혹스의 작가성을 논의하기 위한 뇌관과도 같은 작품인 것이다. 혹스는 이 영화로 당시 주류 할리우드가 구축한 안정적인 젠더 정체성을 불안 투성이의 모호한 세계로 뒤바꾸어 놓았다. 혹스적인 남성과 대비되는 여성들이 게다가 남성적 우주의 신성함과 권위를 조롱한다. 그런 점으로 이 영화는 <베이비 키우기>(38)와 <나는 남성 전쟁신부였다>(49), <몽키 비즈니스>(52)의 연장선상에서 논할 필요가 있는 작품이다. 



1925년에 발표된 아니타 로스 원작의 동명소설은 발표 즉시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다음해 소설을 희곡화한 무대극도 호평을 얻었고 1949년에는 브로드웨이 뮤지컬로도 상연되어 대히트를 기록했다. 혹스의 영화는 원작의 20년대를 소비주의 시대의 50년대로 변경했고 뉴욕의 나이트클럽의 인기 댄서 로렐라이(마릴린 먼로)와 도로시(제인 러셀), 두 여인을 주인공으로 내세운다. 로렐라이는 부호의 아들 거스와 파리에서 결혼식을 올릴 예정이지만 거스 아버지의 반대로 여의치 않다. 로렐라이는 도로시와 호화 여객선으로 파리로 향하지만 선상에서 로렐라이가 유혹한 광산왕의 아내가 준 다이아몬드를 몰래 챙겨 둘은 말썽에 휘말린다. 그 와중에 도로시는 로렐라이를 감시하는 탐정 말론에게 마음이 끌린다.





로렐라이는 "다이아몬드가 최고의 친구다"라고 노래 부르고 반대로 도로시는 결혼의 제일 조건이 사랑이라 믿는다. 먼로가 연기한 로렐라이는 당시 할리우드가 준수해온 도덕 가치관과는 사뭇 거리가 있는 인물이다. "아들의 돈 때문에 결혼하는 거 아니냐"고 따지는 부친에게 로렐라이는 "부자의 남자는 미인의 여자와 같아요. 당신은 자신의 딸을 가난한 사람과 혼인시키고 싶은가요? 그것을 내가 바라면 안 되는 건가요?" 라고 당돌하게 반문한다. 이만큼 ‘현실적인’ 해피엔드로 끝나는 영화를 찾기도 쉽지 않다. 부도덕한 결말처럼 보이지만 마릴린 먼로의 천진난만함의 승리라 여겨도 좋을 것이다.



혹스의 세심한 연출은 눈여겨 볼만하다. 가령 영화의 첫 장면, 화려하게 보석으로 장식한 제인 러셀과 마릴린 먼로가 처음 등장해 붉은 세퀸으로 장식한 가운을 입고 ‘우리는 리틀락 출신의 두 미녀’라고 노래 부르는 순간은 영화 전체를 예시한다. 이들은 리틀락에서 남자들에게 상처를 입었고 뉴욕에 와보니 어디나 남자들은 똑같다고 노래한다. 이어 ‘신사분을 찾아요. 내성적이던 활발하던 키가 크던 작던 나이에 상관없이 부자라면 돼요’라고 노래하는데 이들이 나중에 만나게 될 사람들이다. 로렐라이는 무대에서 조명을 받으면서도 그녀의 숭배자인 에스먼드의 주머니가 불룩한 것을 보고 틀림없이 반지를 넣은 상자가 있음을 눈치 챈다. 그녀의 다이아에 대한 몰두는 선상에서 늙고 볼품없는 페기의 얼굴에서 거대하고 반짝이는 욕망 가득한 다이아를 떠올릴 때 거의 추상적인 수준에 달한다. 그녀는 남성에의 섹스와 사랑의 욕망을 돈과 다이아몬드로 대치한다. 낭만적인 사랑의 논리보다 자본주의 논리가 제공하는 조건에서 남성과 협상을 벌이는 것이다. 가장 하드 보일드한 로맨틱 코미디인 셈이다. 이 영화는 한 마디로 진지한 재검토가 필요한 혹스의 문제작이다. (김성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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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피차퐁 위라세타쿤은 세계 영화계에서 최근 몇 년간 가장 새로운 발견이다. 그의 영화에 주목하게 되는 이유는 전혀 다른 ‘개념’과 ‘발상’으로 이루어진 영화라는 점에서다. 다큐멘터리와 픽션의 경계를 무너뜨리고, 문명과 야생의 세계를 자유로이 오가는 그의 실험적 스타일에는 마치 영화 역사의 시작을 접하는 것 같은 근원적인 초(超)에너지가 살아 숨쉰다. 카메라의 존재는 지워져 있고, 드러날 듯 드러나지 않는 감정의 굴곡은 영화 속 대기의 감각마저 생생히 느끼게 만든다. <열대병>에는 타이의 고전 민담이 중요한 모티프로 작용하지만, 이런 최소한의 국지적 요소를 제거한다면 기본적으로 그의 영화는 초국가/지역적 토대 위에 서 있다. 그의 영화는 그다지 세련되지도 않고 모더니즘의 잣대로도 읽히지 않으며, ‘영화는 이러해야 한다’는 그 어떤 규칙으로부터도 탈피해 있다. 만국 공통의 실험영화가 극영화라는 최소한의 얼개를 유지하면서 나아갈 수 있는 최고의 미학적 극점에 그가 있다.



아피차퐁 위라세타쿤의 영화는 ‘정글의 영화’라 불러도 좋을 정도로 정글 혹은 숲이 주요한 배경을 차지한다. 말하자면 그의 영화는 원초적인 녹색으로 이루어져 있다. 거기에는 일말의 가식도 없고, 인위적인 에너지도 없으며, 예상 가능한 규칙적 움직임도 없다. 초감각적이라고 부를 만한, 어떻게 보면 무의미한 장면들의 연속인데 거기서 묘한 감흥이 생겨난다. <열대병>은 그의 감각적이고 몽환적인 영화 세계, 그리고 자동 기술법처럼 전개되는 이야기 구조가 집약돼 있는 작품이다. 동성애자인 젊은 군인과 한 시골 소년이 사랑을 나누다 갑자기 소년이 행방불명되고 군인은 그를 찾아 정글로 들어간다. 그가 정글로 들어간 이후 영화는 갑작스레 무성영화 스타일 혹은 이제껏 한 번도 본 적 없는 기이한 판타지로 ‘돌변’한다. 이 영화는 꽤 첨예한 동성애 문제를 묘사하고 있다. 이렇게 그는 언제나 세속적인 것에서부터 출발하지만 결국 초월적인 삶의 의지로 나아간다. 그는 “아무리 참혹한 때에도 미소를 짓는 순간이 생기는 것이 바로 인생 아닐까?”라고 반문한다. 그는 자신의 영화를 두고 "치유의 영화"라고 말한 적이 있다. 판타지로만 이루어진 영화의 후반부에서 정글 속 호랑이의 눈빛이 번쩍 드러나는 순간, 그 모든 긴장과 자극은 짜릿한 치유와 극적 초월의 순간으로 전이된다. 아피차퐁 위라세타쿤은 오감이 아닌 ‘육감’으로 영화를 만드는 감독이다. 현대 영화가 계속 새로워지고 있다는 떨리는 흥분, 바로 그의 영화에 있다. (주성철: '씨네21'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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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코 페레리의 <그랜드 뷔페> 


 

<그랜드 뷔페>는 당대를 대표하는 신사들이자 유명배우들이었던 마르첼로 마스트로얀니와 미셸 피콜리, 필립 느와레, 그리고 우고 토그나지가 실명을 내걸고 서로 다른 직업의 부유한 남성들로 분해 출연한 작품이다. 부르주아 집단에 속한 이들 네 남성은 유복한 중년의 삶을 지내고 있지만, 알 수 없는 공허함이 자신들을 옥죄고 있다고 생각한다. 결국 그들은 각자의 삶을 정리하고 은밀한 별장에서 쾌락과 소비에 빠져들며 죽음을 기다리는 모임을 가진다. 오랜 시간을 들여 엄청난 양의 재료를 준비하고 신선한 고기들을 구입하는 별장 속의 네 남자, 자신의 생계와 계급이 존재했던 파리라는 도시를 떠나 그들이 택한 마지막 여행은 인간의 가장 본능적인 욕구들에 기댄 것이었다.

 

먹음직스럽게 보이는 음식들과 정성껏 요리를 준비하며 수다를 떠는 남자들의 모습은 말 그대로 '그랜드 뷔페'의 호화찬란한 만찬을 연상시킨다. 남성들은 최고급의 재료를 공수해 방대한 양의 음식으로 가득찬 식탁을 차려놓고 거나한 식사를 즐긴다. <그랜드 뷔페>의 초반, 네 남자가 별장으로 완전히 숨어들기 직전까지, 영화는 음식이라는 단어를 익히 알고 있는 기본적인 에너지의 수단으로만 설정한다. 때문에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먹을 것을 씹어 삼키는 필립이나, 그런 그가 배고프지 않도록 음식을 마련하는 필립의 유모의 행동은 지극히 당연한 것이다. 하지만 필립이 가방을 꾸려 집을 나서는 순간, 그는 지금까지 꽤나 규칙적이고 일반적이었던 자신의 삶을 완전하게 붕괴시켜버릴 계획을 실행하기 시작한다. 미셸을 비롯해 별장에 모인 네 남자는 정성을 다해 요리를 하고, 게걸스럽게 식탁 위를 청소한다.

 

자유분방한 성 생활을 즐겨온 파일럿 마르첼로에 의해, 별장의 '만찬'에는 여성들이 초대된다. 여성들은 푸짐하게 차려진 식탁에서 즐겁게 식사를 마치지만, 한 번의 모임으로 끝날 것이라 생각했던 풍족한 식탁이 계속해서 이어지는 것을 보고 진저리친다. 끊임없이 음식을 위 속에 밀어 넣어 통증을 견디다 못해 몸 져 누운 미셸의 모습에 역겨움을 느낀 창녀를 비롯한 두 여성이 별장을 떠나버리지만, 학교 선생인 안드레아는 네 남자의 마지막 파티에 동참하기로 마음먹는다. 안드레아가 연일 이어지는 무절제의 축제에 함께 하면서부터 네 남성의 식탁에는 음식뿐만 아니라 동시다발적 섹스까지 추가된다. <그랜드 뷔페>는 안드레아라는 여성의 등장으로 인해 전환점을 맞게 된다.

 

<그랜드 뷔페>는 부르주아 계급층에 대한 노골적인 비판과 조롱의 탈을 쓴 블랙 코미디의 형식으로 전개된다. 쓸데없이 음식을 소비하며 임종을 맞기를 바라는 괴상망측한 게임을 하는 대상은 모두 번지르르한 계급을 소유한 대상들로, 그들은 시간이 갈수록 우스꽝스러운 모습과 역겨움을 남김없이 관객들에게 선사한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비판’이라는 단어를 가지고 있는 <그랜드 뷔페>의 내면에는, 인간에 대한 생리학적 갈망이 녹아있다. 영화 속의 남성들은 풍만하고 살 진 몸매의 여성에게 욕망을 느끼며 거침없는 섹스를 즐긴다. 맵시 있는 옷을 입은 날렵한 여자, 혹은 마른 여자 따위는 그들의 관심 대상이 아니다. 남성들은 품에 안기 버거울 정도로 토실토실하게 살이 오른 안드레아에게 찬사와 아름다움의 미사여구를 보탠다. 네 남성들보다 체구가 거대한 안드레아는, 그들이 갈망하며 부러워하는 몸매, 즉 어머니의 이상형이다. 남성들은 안드레아를 통해 성적 욕구를 해소하는 동시에 자신을 돌봐주는, 그리고 걱정해주는 모성애와 같은 애정의 결핍을 충족시킬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남자들은 안드레아의 이름이 새겨진 거대한 파스타를 그녀의 앞에 밀어놓고, 축하의 박수를 보내며 자신들의 앞에서 모조리 먹어치우기를 바란다. 네 남자의 기대와 호응에, 안드레아는 단 한 번도 괴로운 내색을 띈 적이 없으며, 오히려 그녀는 남성들보다 훨씬 더 식욕의 쾌락을 즐기는 인물로 변해간다. 결국 안드레아는 남성들이 남긴 잉여 생산물을 남김없이 먹어치우며 그들을 돌보는 완전한 에너지의 여성으로 존재하게 된다. 시간이 지날수록 우노의 몫이었던 음식을 만드는 일에 안드레아는 관여하기 시작하고, 안드레아의 엉덩이로 반죽해 만든 ‘안드레아 파이’를 게걸스레 먹어치우는 장면에 이르러 안드레아의 지위는 정상에 다다른다. 과식으로 인해, 혹은 기타의 사고로 인해 한두 명씩 죽어 나가는 광경을 마주하면서도 그녀는 평정심을 잃지 않는다. 별장에 처음 초대되었을 때 안드레아는 필립의 사랑이었지만, 그녀는 네 남자와 섹스를 나눈 기이한 관계를 유지한다. 외부와 차단된 별장 안의 삶은 결국 그들이 살던 파리의 삶에서 역행해 고대의 시기를 향해 달려 나간다. 모든 것을 어머니가 책임지고 보살피던 모계 사회 속 군주의 모습을 한 안드레아 앞에, 네 남성들은 하나 둘 씩 칭얼거리는 어린이로 변해간다.

 

마르첼로와 필립, 미셸, 그리고 우고 네 남자가 시작했던 게임의 승자는 결국 필립이 되고, 매우 건강이 악화된 필립을 위해 안드레아는 음식을 준비한다. 때마침 요리할 고기를 제공해주기 위해 정육점 차가 정원에 들어서고, 안드레아가 고기들을 받으러 간 사이 필립은 안드레아가 만들어준 요리를 먹는다. 안드레아의 가슴과 꼭 닮은 풍만한 두 덩이의 케익이 반쯤 없어졌을 때, 필립은 괴로운 표정으로 숨을 거둔다. 시간을 무시하고 인간의 도덕이라는 것을 무시한 채 벌어진 부르주아 계층의 엄청난 판타지는 필립의 죽음으로 인해 사라진다. 영화는 임종이 다가오는 것을 알면서도 배 속으로 음식을 밀어 넣어야 했던 광기 넘치는 부유층의 후회와, 허약해진 남성들을 마지막까지 돌보아 주었던 안드레아의 모습으로 결말을 맺는다. <그랜드 뷔페>는 스크린에서 눈을 떼고 싶을 정도로 참을 수 없는 역겨움을 묘사한 풍자 코미디를 보여주는 동시에, 마지막으로 별장에서 살아남은 인물은 결국 안드레아 혼자라는 것을 강조한다. 영화는 안드레아를 살려둠으로써 또 다른 희망, 혹은 타락한 인류의 미래에 대한 긍정적 기대를 보여주고 있다. (강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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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크 베케르의 <구멍>





프랑수아 트뤼포는 언젠가 “장 르누아르가 존경의 대상이라면, 자크 베케르는 나와 친구들이 동일시했던 이름이다”라고 밝혔다. 현실은 조금 다르다. 장 피에르 멜빌, 로베르 브레송과 함께 프랑스영화의 황금기와 누벨바그시기를 연결하는 가장 중요한 작가인 자크 베케르는 종종 과소평가 받곤 한다. 장 르누아르가 <위대한 환상>, <시골의 하루> 등을 만들던 시기에 든든한 조력자로 활동했던 베케르는 르누아르로부터 막대한 영향을 받았다. 르누아르의 휴머니즘과 자연주의적인 스타일이 곧바로 베케르 영화의 핵심을 형성했던 것인데, 어쩌면 그런 성향이 현대의 관객과 그의 영화 사이의 틈을 제공하는지도 모르겠다. <구멍>은 <황금투구>(1952)와 <현금을 손대지 마라>(1954)를 잇는 베케르의 대표작이자 그가 유작으로 남긴 작품이다. 베케르는 한 인터뷰에서 “비토리오 데 시카가 <자전거 도둑>에서 성취한 자연주의적인 통찰을 <구멍>이 재현하기를 열망한다.”고 말했다. 건강이 나빠진 그가 유작에 담은 노력은 그 열망의 반영이었다. 그는 원작소설을 쓴 조제 조반니와 직접 각색작업을 진행했고, 실제 탈옥사건에 가담했던 세 사람(영화를 제작하던 당시엔 그들이 이미 형을 마친 후였다)을 현장에 데려와 조언을 구했고, 탈옥자 한 명을 포함한 출연자 전원을 비전문배우로 구성했고, 사건이 벌어진 ‘라 상테’ 형무소에서 대부분의 장면을 촬영했다. 현대의 관객이 무심코 넘길 <구멍>의 사실적인 분위기는 그렇게 치열한 과정 속에서 구한 것이다.

 

6호실의 네 수감자 - 롤랑, 마누, 신부, 조는 새롭게 이감된 가스파르를 동료로 받아들일지 망설인다. 그들에겐 비밀이 있다. 모두 긴 형량을 남겨둔 네 사람은 곧 바닥을 뚫고 탈옥할 예정인데, 가스파르가 그들의 계획에 동참할지 알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1급 살인을 기도해 10년 이상의 형을 받을 확률이 높은 가스파르가 그들의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이자, 며칠에 걸쳐 그들의 계획이 착착 실행된다. 하지만 행운은 그들의 편이 아니었다.

 

베케르가 공들여 완성해놓은, 감옥 내부의 풍경 하나하나가 놓치기 아까운 것이지만, 그 중 압권은 탈옥과정의 묘사에 있다. 갖가지 도구의 활용법, 유머 넘치는 위장술, 섬세하면서 과감한 실행력은 흡사 탈옥의 지침서로 보일 정도다. 다섯 사람이 시멘트 바닥을 처음으로 깨부수는 신은 영화의 클라이맥스 중 하나이면서, 영화의 스타일을 대표하는 장면이다. 견디기 힘든 거대한 소음에 가스파르는 귀를 틀어막고, 신부는 초조한 마음으로 문밖을 감시하며, 마누와 롤랑과 조는 돌아가며 철제 도구로 바닥을 내리친다. 시멘트가 정말로 부서져 바닥의 흙이 드러나게 되는 4분여의 시간을 영화가 별 편집 없이 보여줄 동안, 관객은 호흡을 멈춘 채 그 광경에 몰입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생생한 묘사만큼 영화를 충만하게 하는 건 다섯 남자의 동료애다. 좁은 공간 안의 다섯 남자는 짧은 시간이나마 모든 것을 나누는 사이다. 그들은 음식과 기호품을 나눠 먹고, 노동을 함께 하며, 무엇보다 목숨을 담보한 비밀을 공유한다. 그들에게 탈옥은 범죄가 아니라 삶을 위한 투쟁이었던 바, <구멍>은 다섯 인간의 투쟁의 기록이다. 서로 믿으며 협력하는 공동체는 <구멍>을 평범한 감옥영화, 탈옥영화와 전혀 다른 곳에 위치시킨다. <구멍>의 아름다움은 공동체의식이 꽃피운 삶의 가치에서 비롯하고, 그런 점에서 그들이 웃으며 음식을 나누는 긴 장면의 여운은 영화가 끝난 뒤에도 좀체 사라지지 않는다. 베케르는 장르영화를 통해 인간 심성의 깊은 곳에 다다르고 있으며, <구멍>은 인간의 꿈과 우리들의 낙원이 사라지는 과정을 쓰라리게 묘사한다. 로베르 브레송의 <사형수 탈옥하다>에 맞설 수 있는 유일한 세계, 열편의 <쇼생크 탈출>이 나온다 한들 넘어설 수 없는 세계가 여기에 있다.(이용철: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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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페킨파 2010.04.22 16:00 신고

    http://www.artnstudy.com/inmoonsoop/Lecture/default1005.asp?lessonidx=off_snHong03 여기서 평론가 홍성남 선생님이 브레송 강의를 하시네요

마이크 핫지스의 <겟 카터>




마이크 핫지스는 우리에게 잊혀진 영화감독이다. 클라이브 오웬을 발견하게 만든 <크루피어>(1998)와 <죽어야 잠들리라>(2003)로 근래 잠시 재기하기도 했으나, 그의 걸작 <겟 카터 Get Carter >는 여전히 실베스터 스탤론이 출연한 형편없는 리메이크의 유명세 아래 있다. 그야말로 환장할 일이다. 테드 루이스의 원작소설 <잭, 고향으로 돌아오다>를 각색한 <겟 카터>는 영국 갱스터영화의 역사에서 빼놓지 않고 언급되는 걸작이다. 그리고 1990년대 이후 반짝 성공하며 영국영화의 부흥을 이끈 현대 갱스터영화의 전범에 해당하는 작품이다.



런던 갱스터의 멤버인 잭 카터는 조직의 반대를 무릅쓰고 북쪽 뉴캐슬로 향한다. 며칠 전 죽은 형의 장례식에 참석하고 원인을 파헤치기 위해서다. 카터는 점잖고 얌전한 인물인 형의 죽음이 평범한 사고사로 묻히는 걸 캐내다 지방 조직의 심기를 거스르게 된다. 외부에서 온 손님을 달가워하지 않는 뉴캐슬의 조직에 대항하는 카터의 입장은 분명하고 단순하다. 뉴캐슬은 자기가 어린 시절을 보낸 고향이고, 그 곳에서 벌어진 형의 죽음을 묵과하게 않겠다는 것이다.



뉴캐슬로 향하는 열차에 오른 잭 카터의 외모는 영국신사에 가깝다. 고급 양복과 세련된 얼굴의 그는 조용히 책을 읽는다. 그런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사정이 다르다. 그가 든 책은 레이먼드 챈들러의 소설 <안녕, 내사랑>(영화에는 어울리지만 중년신사에겐 어울리지 않는)이며, 열차가 종착역에 멈출 즈음에도 그가 읽은 분량은 얼마 되지 않는다. 비싼 양복을 입고, 책을 읽고, 일등석에 앉아 있는 그는 사실 사람 죽이는 데 능한 킬러다. 열차에서 내리는 순간, 그는 자신의 본성에 더 어울리는 밑바닥의 현실로 진입한다.



신시사이저로 연주된 현란한 퓨전재즈와 과감하게 사용된 줌인이 눈과 귀를 채우는 시작점부터 <겟 카터>는 1970년대 상업영화의 냄새를 물씬 풍긴다. <겟 카터>를 평범한 갱스터영화로부터 구하는 건 무심한 듯 건조한 색체의 영화와 캐릭터다. <겟 카터>는 카터가 범죄의 중심에 이르는 과정을 애써 긴장감 넘치게 포장하지 않을 뿐더러, 엉뚱할 정도로 직선적이고 차가우며 전혀 친절하지 않은 인물인 카터는 현대 영웅의 한 전형을 창조해냈다. 한마디로, 쿨한 인물이 등장하는 쿨한 영화란 이야기다.



<겟 카터>는 마이크 핫지스가 같은 연배의 영국인인 존 부어맨이 미국에 건너가 만든 <포인트 블랭크>에 대한 답변으로 연출한 작품 같다. ‘68년 직전에 제작된 <포인트 블랭크>가 부정하고 환각상태에 빠진 미국의 미래를 예언한 것처럼, 마찬가지로 막무가내의 거친 남자를 빌린 <겟 카터>는 개발과 소비가 폭발할 즈음의 사회와 마약과 매춘에 얽힌 상류층의 진실을 대면한다. 앞만 향해 성큼성큼 걷는 두 주인공이 부닥치는 어딘가 역겹고 몽환적인 분위기도 비슷하다.



마이클 케인을 고상하고, 인자하며, 코믹한 배우로 알고 있는 요즘 관객에겐 <겟 카터>의 날 선 연기가 놀라움일 것이다. <겟 카터>는 젊은 시절의 마이클 케인이 미국영화에 있어 로버트 드 니로 같은 존재였음을 재확인하는 자리다. 케인보다 놀라운 배우는 존 오스본이다. 『성난 얼굴로 돌아보라』 의 작가로서 ‘성난 젊은이들’의 상징이었던 그가 범죄조직의 우두머리로 분한 것 자체가 당시 영국 관객에겐 충격이었을 게다. 그의 등장은 시대의 변화와 타락한 현실을 동시에 상징하는 사건이었다.(이용철: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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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네 클레망의 <들판을 달리는 토끼>



<들판을 달리는 토끼>는 바로 전 해에 찰슨 브론슨을 미국에서 불러들여 주연으로 만든 영화 <빗속의 방문객>에서 재미를 본 르네 클레망 감독이 할리우드에서 개성 있는 조연 정도로 만족하며 나이를 먹어 가던 로버트 라이언을 프랑스로 불러 들여 장 루이 트탱티냥과 함께 만든 매우 이상하고 불균질 한 영화다. 로버트 라이언은 50년대 RKO의 영화에 출연하며 니콜라스 레이, 로버트 와이즈, 안소니 만의 영화에 조연 또는 주연으로 출연하다가 60년대에는 악당 연기를 주로 하는 조연배우로 굳어진다. 그의 피곤한 듯한 회색 눈빛은 리 마빈의 그것과 비슷하지만, 많이 달랐다. <배드 데이 블랙 록>에서 내로라하는 할리우드의 악당들, 어네스트 보그나인과 리 마빈을 똘마니로 거느리고 시종일관 점잖은 스펜서 트레이시를 야비하게 괴롭히는 그의 번득이는 작은 눈은 잔인할 정도로 아무것도 없는 시골마을에서 뭔가 나쁜 짓만을 찾아 헤매는 그런 악당의 눈이었고, 그것은 정말 소름끼친다. 리 마빈과 어네스트 보그나인이 아무리 대단한 악당이어도 로버트 라이언 앞에서는 그냥 똘마니일 수 밖에 없는 것이 당연하다. 그의 최고의 연기 중 하나는 <와일드 번치>이다. 친구 월리엄 홀덴에게 배신당하고 그들과 적이 되어 뒤를 쫓는 그의 늙고 지친 모습은, 한때는 최고였지만 이제는 몰락하여 외톨이가 된 늙은 악당을 보여준 최고의 연기였다.

영화 <피아니스트를 쏴라>, <다크 페세지>의 원작자인 데이비드 구디스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만든 이 영화는 60년대 조연으로만 영화에 출연 하던 로버트 라이언이 노회하고 잔인한 악당으로 출연하는 마지막 주연작이다. 그는 이 영화를 찍은 후 할리우드로 돌아가 두어 편의 영화에 조연으로 출연하고 죽는다. 어린 시절 관계에 집착하는 로버트 라이안과 장 루이 트랭티냥의 이상한 자살적 행위가 독특하고, 악당들의 유치한 기 싸움이 재미있다. 르네 클레망은 <빗 속의 방문객>에서도 유리창에 호두알을 던져 깨먹는 묘기를 부리는 주인공이 나오는데, 이 영화에서도 역시 담배 세우기 같은 악당들만의 묘기를 보인다. 그것은 홍콩으로 건너와 이쑤시개 씹기라던가, 라이터 불을 입으로 마시기, 담배를 손가락 사이로 돌리기 같은 악당들의 고독을 표현하는 디테일로 발전한다. 악당들은 자신들만의 아주 하찮고 쓸데없는 재주를 지니고 있다. 그리고 그들은 그것을 자기 앞에 놓인 파멸을 지연시키는 부적인양 집착한다. (오승욱: 영화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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