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네마테크의 아이들이 '로메르 카페'라 부르는 인사동의 작은 카페에서 얼마전에 인터뷰를 했었다. 이런 저런 이야기들을 나눴는데, 사실 질문에 나선 이에게 나 또한 어떤 질문들을 던져보고 싶었는데, 그러지는 못했다. 약간의 오해가 있을 듯도 해서 [편집자 주]의 일부 내용을 수정했다. 시가 시네마테크에의 지원 계획을 철회했다는 표현이 정확한 것은 아니기 때문다. 시는 시네마테크에 대한 지원계획이 아직 없었다. 정책 우선순위와 예산 부족이 이유다. 


 

“과거와 현재, 미래의 시네마테크“

- 대담: 김성욱(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래머) + 김경민(서울아트시네마 관객)  

 

[편집자 주] <ACT!> 기획대담이 일곱 번째를 맞습니다. 이번 주제는 시네마테크입니다. 사실 서울아트시네마는 설립초기부터 영화를 보고 싶은 관객과 운영진의 열정만으로 이끌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이번 서울시의 결정에 대한 소회와 함께 그 동안의 운영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시네마테크의 미래에 대해 얘기를 듣기 위해 김성욱 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래머를 만났습니다. 함께 대담을 진행한 김경민씨는 서울아트시네마의 열렬한 관객이자 영화를 공부하는 영화학도입니다. 부디 이번 대담을 통해 우리에게 시네마테크는 어떤 의미인지 다시 생각해보고 시네마테크를 오래 지속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할 수 있는 작은 단초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김성욱 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래머를 만났다. 크게는 정부/서울시에 대한 지원 요구의 역사를 중심으로 인터뷰를 진행했지만 (기대했던 것처럼) 또 다른 이야기도 많이 들을 수 있었다. 차마 묻지는 못했지만 아주 커다란 질문들이 머릿속을 맴돌기도 했다. 예컨대 영화라는 것은 대체 무엇일까, 시네마테크란 과연 무엇일까, 같은 질문들 말이다. 인터뷰가 끝나고 보니, 우리의 안내자들은(김성욱 프로그래머의 표현을 빌려왔다) 저 질문에 대해 충분히 고민했고 나름의 답까지 만들어가고 계신 듯 했다. 그렇다면 우리의 고민은 이 자리에서 시작될 수 있을까?



김경민: 시네마테크 프로그래머신데, 이 일을 어떻게 시작하게 되셨는지 궁금하다.

김성욱: 1993년도에 문화학교 서울을 처음 갔던 것으로 기억한다. 영화를 보는 관객의 입장에서 갔었다. 그 때 마침 연구팀을 모집하고 있어서 조영각씨와 영화보고 세미나를 하는 연구팀 활동을 시작했다. 당시 문화학교서울은 국내에서 볼 수 없는 영화의 비디오에 자막을 넣어 상영하는 비디오테크였는데, 지금 미디액트를 하는 이주훈, 서독제의 조영각, 인디스토리의 대표 곽용수 씨, 그리고 지금 평론활동을 하는 김형석 씨 등이 운영위원을 하고 있었다. 당시 20대 중후반의 나이였을 때인데, 이들은 열정을 지닌 선구자들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들이 비디오테크를 했기에 나도 거기서 영화를 볼 수 있었으니 내게 그들은 안내자였던 것이다. 점차 이런 프로그램을 극장에서도 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있었다. 그런데 극장에서 필름으로 트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었다. 때마침 1995년이 지나가면서 국제영화제도 만들어지고 필름으로 부산, 전주 등에서 영화 상영을 하면서, 더불어 자막을 투사하는 방식도 가능해졌다. 필름으로 운영하는 시네마테크도 가능하겠다는 생각이 있었다. 문화학교 서울이라는 이름으로 필름 상영을 극장에서 시작한 것이 1999년의 일이다. 그 무렵 나는 문화학교 서울에서 연구 소장을 했다. 연구소 이름이 소니마쥬 Son-Image였다. 그때 고다르의 영화를 좋아했었으니. 1999년에는 영화신문 ‘Fantome’을 발행하기도 했다. 우리가 유령같다는 생각을 했었다. 2000년도 들어서는 필름으로 작가들의 회고전을 개최했다. 루이스 부뉴엘, 에릭 로메르, 스즈키 세이준, 파솔리니 회고전 등을 당시 아트선재 지하 극장을 빌려 상영했다. 2002년 즈음 서울에서 필름 영사를 제대로 할 수 있는 곳이 아트선재센터 정도였기에, 이 공간을 거점으로 해서 일 년에 몇 차례 영화제를 했던 것을 1년 내내 상설적으로 하게 된 것이 20025월에 정식으로 서울아트시네마가 개관했을 때부터이다. 시네마테크를 하게 된 계기는 특별하다기보다는 비디오테크에서 시작해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나의 영화일은 시간이 걸렸을 뿐이지 자연스러운 결과였다고 생각한다. 언제나 의아한 것은 이전 세대는 왜 시네마테크를 할 생각이 없었을까, 이다. 시네필에 대한 말들이 있는데, 영화보기를 좋아하고, 그리고 글을 쓰고, 영화를 만든다, 라는 생각들. 그런데 이걸 단계론적으로 말하곤 하는데, 나는 이 말이 잘못됐다고 생각한다. 트뤼포나 고다르의 말도 영화 보는 것과 만드는 것, 글을 쓰는 것이 사실 다 동일하다는 의미라 생각한다. 이걸 단계나, 수준의 문제로 말하는 이들을 나는 의심한다. 물론, 나는 영화 창작자, 예술가들을 어쩌면 관객보다 더 존중할 수도 있다. 하지만 존중을 위해서라도 영화를 보여주어야 한다. 이상한 일이지만 시네마테크에 대한 시도를 전 세대가 하지 않았던 것은 그것이 물리적으로 시작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이 아니라(우리도 하지 않았나?), 그걸 시도할 생각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전 세대에서 유일하게 그걸 하려했던 이는 예전 필름 포럼을 하던 임재철 씨이다. 그 외의 분들은 소망을 내비쳤던 이들은 있었지만 실행은 하지 않았다.

 

김경민: 관객으로 문화학교 서울을 다닐 때는 학생이었나?

김성욱: 대학원을 다니고 있었지만 경제학을 공부하고 있었다. 사회과학과 인문학에 대한 관심이 많았다. 영화는 공부이외에 어릴 때부터 좋아했던 취미생활이었다. 생각해보면 사회과학에서 인문학으로, 그리고 예술이나 영화로 이끌렸다고 생각한다. 문화학교 서울이 내가 살던 사당동에 있었던 것도 한 몫 했다. 지리적으로도 가까워서 영화보고 사람들이랑 술 마시고, 이야기하는 것이 자연스러웠다. 멀었다면 그렇지 못했을 것이다. 90년대 초에 영화에 전보다 더 빠져들었던 것은 그것이 순수하게 개인적인 것이었기 때문이다. 집단이니 조직이니 이런 곳에서 일탈하고 싶었다. 80년대를 거친 이들이 갖는 일반적인 생각이랄까. 그런데 도리어 문화학교서울에서 공동성의 경험을 했던 것 같다. 공동체를 원했던 것은 아니었지만, 그 시절에서는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그 곳에 모여들었던 것 같다. 새로운 방식의 관계성이 있었다. 집단적인 목표가 분명하지는 않았지만 영화로 같이 묶여있었다. 처음에는 찾아볼 수 있는 영화 자료들을 다 읽어보겠다는 생각이 있었다. 당시 국내에서 한국어로 볼 수 있는 영화 자료들, 책은 제한적이었다. 영화 책이나 자료를 보기 위해 남산에 있는 영진위 자료실, 국립중앙도서관에도 갔었고, 한양대 도서관이나 서강대 도서관도 돌아다녔다. 비디오는 몇 년 보다 보면 볼 수 있는 것이 별로 없었다. 외국 방송에서 보거나 위성방송, 특히 일본의 BS2가 그야말로 영화 천국이었다. 틀어주는 영화를 매일 녹화하고, 모든 가능한 방식을 다 동원해 영화를 봤던 거다. 영화를 학교에서 공부하게 된 것은 뒤의 일이다. 그것도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김경민: 2002년에 시네마테크 협의회가 나오고 같은 해에 소격동에서 서울아트시네마가 개관 했다. 당시의 영화계 분위기나 상황이 어땠는지 궁금하다.

김성욱: 그 당시에는 고전영화나 예술영화를 보는 것이 교양쯤으로 생각되었던 것 같다. 90년대부터 그런 기운이 있었는데, 사실 지금 생각해보면 그게 끝물이었다고 생각한다. 독립영화전용관에 대한 고민도 있었고, 같은 해에는 미디액트도 개관했다. 90년대 비디오테크 세대들이 꿈꿨던 것들이 대중적으로 구체화되는 시대였다. 물론, 전 세계적으로 보자면 이미 시네마테크는 변화를 겪고 있었다. 새로운 공간마련에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고, 필름의 점차적인 소멸화와 디지털과 뉴미디어의 도래에 따른 극장관람 환경, 시네필 문화의 변화들을 고민하고 있었다. 우리는 세기말에 시작해, 21세기에 들어서야 정식으로 시네마테크를 시작했다. 새로운 물결이었지만 뒤늦게 도착했기에 사실 처음부터 시대의 변화들과 마주해야만 했다고 생각한다.

 

김경민: 그러면 협의회가 출범하고 극장이 개관했을 때 정부의 지원은 없었나?

김성욱: 초기에 영화진흥위원회를 통해서 극장 임대료를 지원받았다. 영화를 상영하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비용이 발생하는데, 예컨대 상영료(저작권료), 자막비용 등이 들어간다. 상영료는 영화의 저작권과 관련되는데, 이것이 21세기에 시네마테크를 시작하면서 부딪힌 꽤 큰 문제이다. 말하자면, 디지털화의 진행에 따라 도리어 저작권 관리 강화에 의해 상영의 난점이 발생했다는 것이다. 시네마테크는 영화를 소유의 관념에서 해방하는 곳이다. 영화가 예술이라면 그것은 문학이나 미술과 마찬가지로 사람들에게 자유롭게 보여져야만 한다. 그렇기 위해서는 영화의 상영을 제한하는 저작권(소유권)의 문제를 해결해야만 한다. 영화의 상품적 가치를 부정하지는 않지만, 영화의 예술적, 문화적 가치를 보전하기 위해서는 엄격한 저작권의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우리는 CJ가 저작권을 갖는 한국영화들도 상영하곤 하는데, 이런 영화들에 대해서도 가격을 지불하고 있다. 한국으로 치자면 메이저 영화사들이나 과거의 영화사들은 자사 영화의 상품적 가치를 지키는 저작권을 강경하게 유지하는 반면 그것의 공유권에는 관심이 덜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쁜 결과들이 초래된다. 비싼 저작권 때문에 상영이 어렵다. 가령, 이만희 감독의 영화를 틀기가 어렵다. 영화의 공공권, 즉 관객들의 영화에의 자유로운 접근을 위해서는 지원이 불가피하다.

 

김경민: 소격동에서 현재의 낙원상가로 극장이 이전할 때 극장 재계약 문제 외에 다른 이유는 없었나?

김성욱: 지하극장의 보수를 위해서 2005년부터는 임대를 할 수 없다는 통보가 있었다. 계약을 할 수 없게 되니까 이전이 불가피해졌다. 그런데 내가 알기로는 지금까지 개보수를 안 한 것 같다.(웃음) 그 이후로 들어가 본 적은 없다. 시네마테크의 극장도 영화만큼이나 역사성을 갖는다고 생각한다. 스크린과 공간을 거쳐간 영화의 흔적이란 게 있다. 시네마테크가 오래된 극장인데, 여기서 하다가 다른 데서 몇 년하고 그런 식으로 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 이후로 그 극장에 가보지는 않았다. 여전히 계단이나 출입구 모양이 비슷한 걸 보면 다른 이유가 있었을 것 같지만 지금까지도 알 수 없는 일이다. 그 때의 상실감은 이루 말할 수 없다. 파스빈더의 회고전을 했었고, 차이 밍량의 <안녕, 용문객잔>을 소격동 시절의 마지막 상영으로 했었는데, 그 때문인지 <안녕, 용문객잔>은 내게 잊을 수 없는 영화로 남았다. 차이밍량은 영화관의 오래된 의자가 할머니와 자신의 정서적 유대의 끈이라 말했는데, 우리는 그런 유대의 끈을 당시에 잃어버렸다. 큰 손실이었다.


김경민: 재개관 후 2006년에 <친구들 영화제>가 시작됐는데, 당시 다양성 영화 복합 상영관이 추진되다가 무산이 되었다. 2006년의 시네마테크 이야기를 들려주시면 좋을 것 같다.

김성욱: 당시 재개약을 못하면서 옮길 상영관을 바로 찾지는 못했다. 그 때 한국 시네마테크협의회의 이름으로 처음 성명을 냈다. 지원이 필요하다는 내용이다. 당시 서울아트시네마가 개관하면서 극장을 자주 왔던 감독들이 있었다. 관객처럼 영화를 보러 왔던 사람들인데 이들이 사태에 관심을 보였고, 2005년 초에 현재 낙원상가로 공간을 옮기면서 이들과 몇 가지 고민들을 공유했다. 첫째, 시네마테크의 안정적인 공간을 마련하는 것이었다. 둘째가 지원에 대한 거다. 정상적으로 운영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래서 극장에 자주 오던 영화감독들과 시네마테크를 홍보도 하고 전용관 마련에 대한 요구를 하는 영화제를 하게 된 것이다. 그들이 시네마테크의 친구들이니 영화제 제목은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라고 명명했다. 20061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가 열렸다. 그 해에 시네바캉스라는 행사도 여름에 시작했다. 서울 시민들과 함께 다양한 고전영화를 보기 위해 시작했다. 2007년에 영화진흥위원회에서도 전용관 논의가 시작되고 복합관을 만들자는 논의가 진행됐다. 그런데 정권이 바뀌고, 영진위 위원장이 바뀌며 예산이 사라지게 되었다. 논의의 주체로 시네마테크가 있었다면 아마도 진행이 빨랐을 수도 있었을 거라 생각하는데, 그 때에 우리는 주체가 아니었다. 논의 테이블에 들어간 적도 없다. 그 이후에는 전용관에 대한 논의가 실종되었다. 당시 시가 시민들을 위한 영화공간으로서 시네마테크를 지원하고 안정적인 공간을 마련하는데 나설 수 있는지에 대해 요청이 있었는데, 공식적인 화답은 작년에야 있었다



▲ 서울아트시네마의 김성욱 프로그래머



김경민: 시네마테크라는 것이 어떤 이유에서 공공성을 가지는 것이고, 왜 정부의 지원을 필요로하는지의 근거를 만들어야할 것 같다. 그런 식으로 근거를 만들어가야 지속적인 지원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요즘 무비콜라주가 다양성영화지원을 받는다는 얘기도 들었는데 시네마테크가 다양성영화를 상영하는 곳이라고 하면, 그런 곳들과의 차별성이 사라질 것이고 한편으로 영상자료원과는 어떤 차별점이 있을지. 이 사이에서 시네마테크가 어떻게 정당화 될 수 있을까?

김성욱: 2012년의 개관의 시점에서 보자면 그 때 영상자료원은 시네마테크의 기능을 거의 하지 않고 있었고, 예술영화관이 몇 곳 있었지만 시네마테크와는 성격이 달랐다. 시네마테크에의 지원은 영화의 역사에서 이미 오래된 근거를 갖고 있다. 그건 미술관이나 박물관에 대한 지원만큼이나 근거가 분명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반대로 다양성영화관 지원이라는 명목의 지원근거가 더 불분명하다고 생각한다. (다양성이라는 표현이 불분명하다는 것이다) 백화점이 동네 슈퍼보다 사실 물건이 더 다양하지 않나? 예술영화관에 대한 지원, 그것도 대기업의 지배력 안에서 민간이 운영하는 극장에 대한 지원은 타당하다. 시네마테크는 말하자면 비영리 법인에 의한 공공상영관이다. 국가의 공적 공간과 시장의 개인이나 기업의 영화관들과는 다르다. 나는 현재의 시네마테크가 1970년대 독일 공공영화관의 성격과 비슷하다고 생각하는데, 당시 독일에서는 비영리적 성격의 공공영화관이 시장의 예술영화관과 달리 상영관의 추구목표, 운영방식, 상영작 선정과 상영 방식의 비상업적 성격에서 공익성을 지니고 있기에 공익에 이바지하는 문화예술단체로 국가나 지방자치단체의 지원의 대상이 된다고 결정했다. 시네마테크에 대한 지원의 근거는 역사 속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입증되었다고 생각한다.

  공적 지원의 근거로 말해지는 공공성과 관련해서는 알다시피 세 가지 다른 의미가 있다. 첫째, 국가와 관련되는 공적이라는 의미이다. 다른 하나는 특정의 누군가가 아닌 모든 이들에 관계되는 공통적이라는 의미이다. 마지막으로는 누구에게나 접근 가능하다는 의미의 공개적이라는 의미가 있다. 공공성은 국가가 관리 통제하는 것이 아니다. 시네마테크의 공공성이라는 것은 공통적이면서 공개성에 있는 대안적인 공공성이다. 요즘의 문제는 자칫 공공성을 국가의 문제로 돌리면서 동시에 신자유주의의 효율성을 강조하면서 공공기관에 수익성을 요구하는 것이다. 새로운 시네마테크 전용관의 마련도 국가나 지방자치단체의 관리를 요구하는 것이 아니며, 그렇게 되어서도 안 된다. 우리는 대안적인, 혹은 대항적인 공공권을 말한다.

  정책적 지원과 관련해서는 이중적인 생각은 있다. 정책적인 지원이라는 것이 정책지원자들의 합리적인 판단에서 나오는 것 아닌가. 기준점이 다를 수는 있다. 그렇다면 정책의 우선순위는 어떻게 결정되어야 하나? 판단은 아마도 국가나 정부가 하겠지만, 가령 지금까지 시는 시네마테크를 지원해오지 않았다. 그런데 이는 정당한가, 라고 의문을 제기할 수 있다. 운영이 어려워서 지원을 요청한다기 보다는, 이런 영역이 정부나 지자체의 지원의 대상이 될 만한지 판단의 요구를 계속 해왔던 것이다. 다른 곳에서도 말했지만, 서울의 스크린 수가 460여개가 있다. 그들 중 대부분은 대기업의 멀티플렉스들이다. 이중 예술영화관의 스크린은 손꼽을 정도이고, 공공상영관이라 말할 수 있는 극장은 서울아트시네마와 독립영화 전용관 인디스페이스 두 곳이다. 비교하자면, 파리는 서울보다 인구수는 네 배나 적고, 영화관객수도 절반 정도인데(서울은 56백만, 파리는 27백만), 민관 영화관이 150, 그중 예술영화관이 90여개이다. 이 차이는 심각하다.

 

김경민: 그렇다면 그 차이들은 어디서 나온다고 생각하는지?

김성욱: 역사적인 배경이 다르다고 생각한다. 해외에서 이런 영화관들은 이미 3-40년대에, 그리고 60, 70년대부터 등장했다. 한국에서 6,70년대는 불모지였다. 지금의 예술영화관들은 90년대에 들어서 시작되었다. 영화문화운동들도 그 시점에서 시작되었다. 역사성의 차이가 이런 환경적인 차이를 만든 것 같다. 90년대는 그런데 영화 소비의 가속화 현상들, 즉 멀티플렉스를 통한 가속화가 한국에서 빨리 진행됐던 시기다. 그러다보니 멀티플렉스를 통한 영화의 소비가 진행되고, 이 속에서 독립영화들이나 고전영화를 상영해가는 것이 쉽지는 않았다. 게다가 영화관을 영화문화의 중요한 장소로 여기는 인식이 없었던 탓도 있다. 이건 우리들의 문제다. 영화의 상업성에 관심을 보인 이들이나 영화관을 생각했지, 상대적으로 영화예술에 관심이 있었던 이들이 영화관을 문화공간으로 인식하는 게 드물었다고 생각한다.

 

김경민: 비교적 최근의 일에 대해 질문을 하고 싶다. 2013년 여름에 박원순 시장이 청책 토론회를 열었는데, 그때 선생님도 가신 것으로 안다. 거기서 어떤 말들이 나왔고 진행이 어떻게 됐는지?

김성욱: 발제가 있었고, 토론이라기보다는 자유발언 형식이었다.

김경민: 그때 서울시가 어떤 답변을 하기도 했는지.

김성욱: 그렇지는 않고 듣기만 했다.

김경민: 당시에 나왔던 요구사항은?

김성욱: 그때가 공식적으로 서울시와 이야기할 수 있는 첫 자리였다. 서울시의 영화 정책이 공공성의 지원에 있다는 것이었고, 시네마테크에 대한 안정적인 지원과 공간에 대한 지원의 이야기가 있었다. 변영주 감독, 정윤철 감독 등의 영화감독들의 제안 발언들도 있었다. 짧은 시간이었기 때문에 많은 이야기를 한 것은 아니다. 다른 사안들도 있었기 때문에. 시네마테크와 관련해서 시의 지원과 새로운 공간 마련에 대한 이야기들이 나왔다.

 

김경민: 전용관을 실제로 추진한다는 얘기도 있었다. 그래서 친구들과 같이 이상한 걸 해보자는 이야기도 나왔고.(웃음)

김성욱: 어떤 거 이상한 거?

김경민: 로슈포르 노래를 부르면서 코스튬도 맞추고 그래서 개관식에 5분만 달라고. (웃음) 그러다 최근에 예산이 부결이 됐다는 얘기가 들렸다. 그리고 14년도에는 시네마테크에 대한 계획 자체가 안 나와있다. 그 얘기를 들으시고 앞으로 어떻게 대응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있으신지?

김성욱: 전용관은 시네마테크를 위한 안정적이고 지속가능한 공간의 의미이자, 새로운 공간을 말한다. 2002년도에 서울에서 시네마테크가 시작했다는 것은 상당히 뒤늦은 거다. 21세기의 상황이라는 것이 멀티플렉스 환경, 새로운 미디어의 등장 등의 변화가 있었기에 해외에서는 이미 새로운 관객층을 흡수하고, 교육과 전시 등을 위한 새로운 공간에 대한 요구들이 있었다. 파리, 뉴욕, 온타리오, 등등 여러 도시에서 시네마테크를 위한 신축 건물의 요구가 있었고, 또 새롭게 마련됐다. 우리의 경우는 현재의 조건이 시설도 낙후되어있고 영사장비도 부실하고, 매년 임대를 하는 불안정성의 문제가 있기에 제대로 된 상영설비를 갖춘 공간을 요구하는 것이고, 또한 십여년 동안의 활동에서 새롭게 필요한(사실은 설립 당시부터 있어야만 했던 것이기는 하지만) 공간들, 이를테면 자료실이라던가, 교육을 할 수 있는 공간들의 수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최근에는 영화진흥위원회가 부산으로 이전하면서 시네마테크의 공간 마련에 소극적이고, 그렇기 때문에 본격적으로는 2010년부터 서울시의 지원과 함께 공간 마련에 대해 요청을 했었다. 2011년도에 조례제정을 했었고, 시의 지원을 촉구했는데, 최근에야 대답이 돌아온 것이다. 하지만 지금도 시네마테크에 대한 지원여부는 결정되지 않았다. 전용관을 마련하겠다는 시의 대답과 의지 표명은 있었지만 아직 예산 반영이 되지는 않았기에 낙관할 수는 없다. 동시에 새로운 공간을 마련하는 문제를 시가 어떻게 해해나갈 것인지도 불투명하다. 가령, 아직까지도 시와 시네마테크간에 어떤 합의나 논의를 이뤄낸 것은 아니다. 가령, 시의 정책결정자들이 공식적으로 서울아트시네마를 방문한 적이 없다. 꼭 이 곳에 와야만 하는 것은 아니지만. 논의가 되려면 기존의 장소를 방문하는 것이 순서가 아닐까 싶다. 다만, 시가 전향적인 자세를 보이고 적극적인 관심을 보이는 것은 환영할 만한 일이다. 시네마테크를 건립할 것임을 몇 차례 공표했고, 지난 해에는 이와 관련한 용역조사가 있었다. 최근에는 서울영상위에서 여러 영화 단체들의 대표자들이 모여 복합상영관의 부지와 운영에 관한 논의를 하고 있다. 우리는 시네마테크의 이전이라 생각하지만, 시는 이와 관련해서 모호한 입장이며 전체적인 논의가 시네마테크가 아니라 복합관으로 진행되고 있기에, 여러 영화단체들이나 기관들이 들어가게 될 것 같다. 생각보다 공간의 규모가 커졌고, 그 만큼 건립의 진행, 운영과 관련한 논의, 공간에의 참여방식, 지원의 방식 등에 대해 최종적인 결정을 하는 데에는 시간이 오래 걸릴 것 같다. 이 유사한 복합관의 논의가 2007년에도 있었는데, 여러 이유로 결국 무산되었다. 배가 바다로 가야지 산으로 가지 않기를 바라고 있다.


김경민: 아트시네마 직원들의 근무 햇수가 길지는 않은 것 같은데, 그것도 앞선 문제들과 상관 관계가 있을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김성욱: 업무적인 불안정성의 영역이 있다고 생각한다. 여러 가지 요소들이 있지만, 그 부분들을 객관적으로 얘기할 수 있는 것은 아니고. 2010년도 이전까지는 그래도 조금 더 지속성이 있었다. 그런데 2010년도를 넘어가면서 많이 바뀌었다. 작년부터는 또 어느 정도의 지속성이 유지된다고 생각한다. 2009년을 넘어가면서는 상당히 많은 외부적인 요인이 있었다. 예산 지원의 중단이나 공모제나 이런 문제들은 일을 해왔던 이들에게 근본적인 회의감을 느끼게 한다. 시네마테크라는 것이 사회적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부분도 있다. 외국에서도 시네마테크 실무자들의 기본 덕목을 열정이라 말한다. 하지만 모든 일이 열정만으로 할 수 없는 것이다. 안정성이라는 것은 아무래도 일을 계속 지속해나갈 수 있는 임금 같은 경제적인 조건이 큰 부분으로 작용하는 것인 사실이다. 고용의 안정성을 어떻게 지켜나갈지는 큰 문제다. 극장을 찾는 사람들도 지속적으로 나이를 먹어가면서도 극장을 찾으면 좋겠다, 동시에 근무하는 사람들도 지속적으로 일을 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이 분야에서도 전문성의 영역이 큰데 불안정성이 생기면서 사람이 바뀌는 건 문제다. 예를 들어 영사기사, 매표, 수표라는 것도 실제로는 외국의 영화관에 가도 몇 년 만에 가도 똑같은 사람이다. 영화를 보는 입장에서 변함없음이 주는 심리적인 안정성이 있다. 여전히 그것이 존속한다는 것, 존재한다는 것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세상에는 내 발길이 머물지 않아도 무언가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있어야만 하는 곳이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설사 그곳에 가지 않더라도, 그것이 존재 해야만 하는 필요성. 그것은 사회적인 필요성이지, 시장의 관점에서는 아니다. 세상이 너무 빨리 폐기처분되어 버리는데, 시네마테크가 빨리 폐기처분 되어져버렸던 영화들을 보존하고 상영하는 곳이라면, 이곳은 영화가 최종적으로 사라지지 않는 한 지속되어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시장경쟁과 시장 가치 안에서 사라져야만 한다면 정상적이라고 볼 수 없다. 똑같이 일을 하는 사람들의 지속성 여부도 포함되어야 한다

 


▲ 질문 중인 서울아트시네마 관객 김경민



김경민: 몇 년 전에 인터뷰 하신 것을 찾아봤다. 당시에 여러 예를 들어주셨다. 아트시네마는 시네마테크 프랑세즈와도 (정부, 프랑스 영진위 지원 80%, 관객수입 20%), 뉴욕의 필름포럼과도 (기부금 50%, 포드재단 융자와 티켓 수입 50%) 다른 방식의 한국적 상황을 고려한 모델을 만들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말씀하신 적이 있다. 선생님이 생각하시기에 그런 모델이란 어떤 것인가?

김성욱: 한국의 상황에서는 정부나, 지자체의 지원이 필수적이다. 정부나 시의 지원이 최소한 50%는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유럽은 국가의 지원이 큰 부분을 차지하지만 미국은 시장주의가 있는데, 시장주의라 하더라도 펀드라던가 민간기업, 재단의 지원이 구조에 있어서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한국은 기업이 그런 지원을 하지 않고, 한다 해도 직접 운영을 하려 한다는게 문제다. 따라서 미국처럼 민간의 지원이나 후원의 퍼센트가 높을 수는 없다. 현재 서울아트시네마의 구조로 보면 정부 지원이 30%. 민간 영역이 70% 이상인데, 이 구조가 바뀌어야 한다. 그래야 현실적으로 이 공간의 공적 역할이 지속적으로 가능하다. 시네마테크는 관객 수입으로 재정을 충당할 수 없는 구조다. 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이다. 영화제도 관객 수로 충당하지는 않지 않는가? 공적지원의 방향은 유럽과 미국의 중간정도는 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현재, 서울아트시네마 2002년부터 개관했지만, 시는 한 번도 지원을 한 적이 없다. 서울아트시네마가 서울의 시민을 대상으로 영화를 상영을 해왔던 건데, 시의 공적 지원이 없었다는 것은 지원을 받을 만한 활동을 하지 않았는지를 생각하게 한다. 시가 충분히 정상적인 판단을 해야할 문제라고 생각한다.

 

김경민: 지금 시점에서 영화나 문화 안에서 영화의 공공성이라는 것을 두고 봤을 때 지금 현재 시네마테크는 어떤 위치에 있고, 앞으로는 어떤 자리를 지켜야할까?

김성욱: 예전에도 말했던 적이 있는데, 어떤 이들은 시네마테크를 전위라 생각하는데, 틀린 말은 아닐테지만 사실 후위에 더 가깝다고 생각한다. 모든 상업적 가치를 소진한 영화들을 상영하고 있으니, 영화가 실효성을 다 소진한 뒤에도 영화가 남을 장소이다. 우리는 뒤 쪽에 있다. 영화의 뒤를 지켜두어야 한다. 그래야 앞으로 나갈 수 있다. 뒤의 세대들을 위한 장소로서도 더 적극적인 기능을 했으면 한다.

 

김경민: 작년부터 서울 아트시네마 내의 에디터 모임이 사라진 것으로 안다. 녹취 자활이 따로 뽑히고 있어서 내심 놀랐다. 아까도 새로운 세대의 교육에 대해 말씀하시기도 했는데, 제 생각에 에디터 모임은 (잘 진행됐을 경우에) 다음의 시네마테크 세대를 배출할 수도 있을테고, 지금과 같은 시네마테크 문제에 유기적으로 결합할 수 있는 모임일 것 같은데 어떤 속사정이 있었는지 궁금하다.

김성욱: 양면적인 게 있는 것 같다. 참여하는 사람도 적극적이어야 하고, 극장에서도 어느 정도 지원이 있어야 한다. 생각들은 갖고 있지만 현실적으로 진행하기가 힘든 것 같다. 생각보다 젊은 친구들이 많이 바쁜 것 같다. (웃음) 전념할 수 있는 조건들이 마련되어야 전념을 할 텐데, 그 조건을 우리가 만들어내는 것이 어려우니, 악순환이 있다. 나는 반응의 연쇄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A에서 무언가가 이루어지면 B에서는 A로 오는 것만은 아니고 B 안에서 A라는 것을 어떻게 이루어갈지를 생각하는 것. 나는 극장에 모든 사람들이 올 수 없다고 생각하고, 그럴 만큼 영화관도 크지 않다. 사람들이 다 와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내가 꼭 가지 않더라도 극장이 여전히 있고, 각자의 자리에서 영화들에 어떻게 반응해갈 것인가를 고민할 수 있다. 글을 쓰는 것도 그런 일이라고 생각한다. 영화를 보고 영화에 대해 글을 쓰는 사람들이 많아졌으면 하는 생각은 언제나 한다. 그렇게 자발적인 참여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과 함께 그런 참여를 어떻게 지원할지는 고민이다.

  요즈음에는 작은 영화공동체들 이런 부분과 같이 어떻게 연계를 해서 서포팅을 할 수 있는지 생각한다. 영화공동체 끼리의 네트워크를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작은 공동체의 네트워크들 말이다. 자발적으로 진행되는 집단들을 눈여겨보고 있다. 그런 소규모 집단과 시네마테크는 어떻게 같이 할 수 있을지. 소규모 공동체를 하는 이들을 만나보려 한다. 개인적으로 궁금하다. 여전히 작은 규모의 모임에서 어떤 식으로 영화를 생각하고 있는지.

 

김주현: 최근에 다른 관심?

김성욱: 시네마테크 아카데미는 계속 생각하고 있다. 거창해 보이는데 (웃음) 일종의 대안영화학교이다. 영화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데 대학을 거치지 않아도 영화를 접할 수 있도록 해주는 학교. 등록금도 비싸니 모두 대학에 갈 수는 없다. 비평스쿨도 있을 수 있고. 영화를 만들고 싶어 하는 사람들과 같이 영화제작을 해보는 일종의 시민학교이다. 아이들을 위한 시네마테크도 생각한다. 몇 번 시도를 했는데, 현재 공간에서는 힘들다. 나는 영화를 둘러싼 세상이 너무 제도화되는 것이 문제라 생각한다. 그런 제도적 절차를 거치지 않더라도 영화를 만나고, 보고, 만들 수 있는 그런 환경이 마련되어야 한다. 시네마테크가 그런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김주현: 시네마테크를 운영하면서 기억에 남은 한 장면을 꼽자면?  

김성욱: 가장 기억이 남는 것은 아무래도 2010년도, 영진위의 공모제와 지원 중단에 따라 영화인들과 관객들이 후원에 나섰던 일이다. 그때의 판단은 우리는 공모제를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현실적 판단은 아니었다. 주변의 사람들도 공모제에 참여하라고 말했었다. 하지만 우리는 그들이 공모를 할 권리가 있는지에 의문을 갖고 있었다. 그들은 이 질문에 제대로 답하지 못했다. 그리고 나서 시네마테크가 지속되는 것은 사회적인 영역으로 던져진 것이었다. 우리는 극장을 계속 할 것이다. 하지만, 이곳이 지속되려면 이제 지원이 필요했다. 만약 당시에 관객들의 지원이 없어 이 공간이 사라진다면 그것에 대해 서글퍼할 이유는 없다고 생각했다. 시민적 영역에서 충분히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니 누구를 탓할 것이 아니다. 하지만 시네마테크는 중단되지 않았고 남았다. 당시에 영화인들이 후원을 했던 것이 결정적으로 작용을 했다. 동시에 관객들의 지지가 있었기 때문에 지금까지 오게 된 것이다. 나는 그 때의 일이 시네마테크에 대한 이 사회에서의 시민권 획득의 과정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이제 공적 영역에서 화답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언제까지 개인의 후원으로 이곳이 남아야만 할 것인가. 서울의 관객들은 지난 12년 동안 충분히 해왔다고 생각한다. 이제는 시가 시민들의 노력에, 그들의 요구에 화답을 보일 때이다.

 

[ACT! 88호 기획대담 2014.03.31]

 

진행 및 정리: 김경민(서울아트시네마 관객), 

김주현(ACT! 편집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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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2013년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가 열릴때 문화연대의 정책 활동가로 일하는 최혁규씨와 짧은 인터뷰를 했다. 당시 인터뷰에서도 서울시의 시네마테크 지원에 대한 이야기가 오갔다. 얼마전 인터뷰를 하다가 문득 예전의 글이 생각났다


 


서울아트시네마김성욱 프로그램 디렉터 인터뷰


최혁규

 


기존의 멀티플렉스 영화관에 익숙했던 사람들에겐 조금은 낯설 수 있는 영화관이 있다. 물론 서울 도심부에 예술영화 전용극장도 꽤 있고, 멀티플렉스 극장 안에 예술영화 전용관이 있긴 하지만 이곳은 그런 곳과 또 다른 성격의 영화관이다. 바로 서울아트시네마다. 서울아트시네마는 종로 낙원상가 4층에 위치한 시네마테크 전용관으로서 2002년부터 현대영화, 고전영화 할 것 없이 세계 각국의 영화들을 다양하게 소개해왔던 곳이다. 서울아트시네마는 영화의 집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 공간을 통해 많고 다양한 영화들을 어떻게 하면 더 많은 시민들과 만나고 교감할 수 있는지 고민하고 있는 김성욱 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램 디렉터를 만나봤다.

 


최혁규 : 서울아트시네마에서 프로그램 디렉터로 일하고 있는데 간략한 소개를 부탁한다.

 

김성욱 : 서울아트시네마에서 프로그램 디렉터로 일하면서 매년 10-15회 정도의 작가전이나 특별전 등을 기획하고 있다. 그 외에는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을 하고 있다. 원래 시네클럽의 회원에서 시작해 영화 프로그램의 기획을 하게 되었는데, 영화비평 활동도 함께 했었다.

 

최혁규 : 서울아트시네마는 시네마테크 전용관이다. 시네마테크(cinematheque)는 영화(cinema)와 도서관(bibliotheque)의 합성어인데, 시네마테크로서 서울아트시네마란 곳이 어떤 곳인지 궁금하다.

 

김성욱 : 서울아트시네마는 고전/예술 영화를 전문적으로 상영하는 시네마테크(cinematheque) 전용관이다. 서울에서는 유일하게 민간 비영리로 운영되는 전문적인 영화관이다. 2002년에 처음 개관해 지난해 10년을 넘겼다. 영화관 하면 개봉하는 영화들을 만나는 장소쯤으로 생각하는데, 실제로는 다양한 영화관들이 있다. 음악관이나 미술관, 혹은 도서관이 다양하게 존재하듯 말이다. 가령, 책만 하더라도 신간을 갖춘 대형 서점들이 있는가 하면 이미 절판되거나 과거 작가들의 전집을 읽으려면 아무래도 도서관을 찾을 수 밖에 없다. 그림도 마찬가지다. 작은 갤러리가 있고 시립, 국립 미술관들이 있다. 그런 식으로 서울아트시네마는 과거의 영화들과 만날 수 있는 일종의 영화도서관이자, 지난 해 프랑스의 영화감독 프랑수아 트뤼포의 전작 20여편을 회고전에서 상영했던 것처럼 미술관이나 박물관과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고 우리들이 과거의 작품만 트는 것은 아니고 서울에 개봉하지 못하는, 수입되지 못한 해외 걸작들을 상영하는 특별전도 개최하고 있다. 지금 진행하고 있는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처럼 영화를 만드는 사람과 영화를 좋아하는 관객들이 함께 만날 수 있는 특별한 장소이기도 하다. 영화가 숨쉬고 움직이고 쉬는 집이라고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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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혁규 : 시네마테크의 유래는 어떻게 되는가? 그리고 시네마테크의 해외 사례는 어떤가?

 

김성욱 : 해외에서는 주로 시네마테크, 혹은 필름아카이브(film archive) 등의 명칭으로 이미 1930년대부터 시네마테크가 만들어졌다. 영화란 그림이나 미술처럼 동질적이지 않은 대상이다. 영화라는 대상이 보는 관점에 따라 다양하게 존재한다. 1930년대 시네마테크가 서구에서 처음 만들어진 것은 영화를 문화적 유산, 특히나 20세기의 문화적 유산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문화적 유산이란 시장의 상품이나 혹은 좋은 의미에서의 예술품과 동일한 것은 아니다. 70년대 아날학파 역사가들이 뒤늦게 깨달았듯이 영화는 20세기의 역사와 사회, 인간의 삶이 담긴 중요한 기록물이기도 하니까. 물론 우리 같은 시네마테크는 전후, 특히 60년대 새로운 영화들의 등장과 함께 시작된 새로운 시네필 문화와 맥을 같이한다 생각한다. 비록 서울은 40년정도 늦긴 했지만.

 

최혁규 : 전부가 그런 건 아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영화를 미술이나 문학 같은 다른 예술들과는 다른 일회용적인 유흥거리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영화의 엔터테인먼트적인 요소만 생각하고 있다고 해야 할까? 이유야 다양하겠지만 문화적 사회적인 구조가 바뀌지 않는 한 이런 인식이 크게 바뀌지 않을 것 같다. 시네마테크가 영화를 시장의 상품이나 예술품이 아닌 문화적 유산으로 생각하고 접근하는 곳이라고 했는데, 그러면 시네마테크가 문화적 사회적으로 어떤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가?

 

김성욱 : 글쎄... 고다르 식으로 말해서 예술이 예외적인 것이고 문화가 규칙의 문제라면, 우리는 영화의 규칙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1947년에 이미 뉴욕의 에미모스 보겔은 그들이 보고 싶어 하는 영화들을 마음대로 보기가 어려웠던 상황에서 상영될 기회가 없었던 ‘전복적인 영화들’을 관객에게 보여줄 결심을 했다. 그들은 ‘성숙한’ 관객들을 대상으로 극장에 걸린 상업영화들만이 전부라 생각한 관객들에게 그런 영화만큼이나 흥미롭고 재미있는 다른 영화들의 세계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 했다. 다른 영화들을 볼 수 있다면 다른 세상도 꿈꿀 수 있을 것이다. 자본과 힘에의 종속은 피하기가 쉽지 않지만 문화의 영역은 그나마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60년대에 기 드보르가 이미 세상이 영화같은 스펙터클이 되었다고 말했듯이 새로운 영화들 혹은 아직 도착하지 못한 과거의 영화들과 만나는 것은 이미 사회적인 행위다.

 

최혁규 : 가만 살펴보면 정부 차원에서 과거의 영화들, 현재의 영화들, 그리고 새로운 영화들을 만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주는 정책을 제시한 적은 없는 것 같다. 아마도 문화 정책의 큰 틀 안에서 세부적으로 미약하게 제시될 것이다. 박근혜 정부가 문화정책으로 문화기본법과 문화예술후원활성화법의 제정, 예술인복지법 수정, 문화예술도시 개발 등을 제시했는데, 이 정책들이 서울아트시네마에 어떤 영향을 끼칠 거라 생각하는가? 또는 차기 정부가 영화 부문에 대한 어떤 정책을 제시했으면 하는가?

 

김성욱 : 글쎄... 구체적인 계획이 아직 나온것이 없어 아직은 알 수 없는 일이다. 우리는 그보다 부산처럼 서울시가 시네마테크에 관심을 보이기를 기대했는데 아직까지 뚜렷한 반응이 없다. 서울아트시네마는 서울시민들의 영화복지를 위한 공간이기도 하다. 이미 몇년전부터 서울시가 나서서 부산처럼 낙후된 영화공간을 개선해 새로운 전용관을 마련하기를 요구했지만 반응이 없다. 중요한 것은 문화가 규칙의 문제라 이야기했듯이 제대로 규칙이 마련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영화의 공공성의 위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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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연대 인터뷰]11호 (2013년 2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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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는 시네마테크를 지원할 수 없는가?

 

서울시의 시네마테크 지원을 촉구하는 ‘시민청원’이 지난 3월 13일에 시작됐다. 불과 몇일만에 지지자 천명을 넘겨 청원이 정식으로 성립되었다. 단기간에 관객들, 시민들이 참여해 지지서명을 한 것은 사실 놀라운 일로, 그 만큼 이 문제에 관심들이 많았다는 것을 입증한다.

 

시민청원 이전에, 이미 서울아트시네마는 서울시에 시네마테크의 지원과 관련해 몇 차례 제안을 했었고 최근에는 공식적인 질의서를 보내기도 했다. 이미 2006년부터, 그리고 2010년 1월에 ‘시네마테크 전용관 건립을 위한 추진위원회’(위원장 이명세 감독)를 발족하면서 시의 지원과 시네마테크를 위한 새로운 공간을 마련해줄 것을 촉구했다. 당시 서울시는 충무로국제영화제에 매년 30억을 지원하고 있었다. 그런 서울시가 시네마테크에 지원을 못할 이유는 없었다. 물론, 서울시는 시네마테크의 지원에 관심이 없었다. 지원의 근거가 미약했던 탓일까? 근거를 더 마련하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들이 있었다. 그리하여, 2011년 5월에 시네마테크 지원 정책 포럼을 거쳐 그해 12월, 김미경 서울시의원의 발의로 ‘전용과 지원 조례개정’을 이뤄내기도 했다. 사실 포럼에서 나왔던 의견이지만 조례까지 만들어질 필요는 없었다. 중요한 것은 서울시의 의지였다. ‘서울시 문화도시 기본조례’에는 ‘시장은 문화예술인들의 문화예술활동을 육성하고 이를 지원하기 위한 문화시설 및 제반여건을 조성하는데 노력한다’고 되어 있다. ‘서울시 영상진흥조례’에도 ‘시민의 문화생활을 향상시키기 위해 영상문화의 다양성, 공공성 증진과 관련한 사업을 지원한다’고 되어 있다. 시민의 문화향유권을 존중했다면 그리고 의지가 있었다면 시네마테크에 대한 즉각적인 지원이 가능했을 것이다. 물론 당시 서울시는 관심이 없었기에 이런 조례가 이미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지원의 근거를 마련하는 조례 개정이 필요했던 것이다. 당시 서울시는 충무로국제영화제에 매년 30억을 지원하고 있었다. 서욱국제가족영상축제에도 매년 3억원의 예산을 지원했다. 당시 오세훈 전 시장이 서울시장으로 취임하면서 이 두 영화제가 서울시의 전폭적인 지원에 힘입어 개최됐고, 결국 지원이 중단되면서 영화제도 사라졌다.

 

2011년 10월, 현 시장이 당선되면서 상황은 바뀌는 듯 했다. 근 십여년 만에 서울시의 시네마테크의 지원과 관련한 기대감이 커 갔다. 결과적으로 그 만큼 아쉬움도 남았다. 2013년, 드디어 서울시는 전용관을 지원하기로 결정했고, 서울의 한 개관을 지원했는데, 정작 시네마테크는 지원의 대상이 될 수 없다고 했다. 이와 관련해서는 서울시가 2014년에는 지원의 폭을 넓히겠다는 말이 있었기에 당시 다툴 만한 문제는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그 와중에 서울시는 시네마테크 전용관을 건립하겠다고 했고, 이는 현재 진행 중에 있다. 하지만, 문제는 올해 예산에서도 시네마테크에 대한 지원이 배정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시민 청원은 그런 상황에서 진행된 정당한 요구였다. 이런 청원이 진행되지 않더라도 지난 과정들을 돌이켜봤을 때, 시네마테크에 대한 지원은 이미 고려될 수 있고, 또한 고려되어야만 했다.

 

시네마테크 지원을 요구하는 시민청원에 따라 얼마 후, 서울시가 서울아트시네마 지원을 검토한다는 내용의 기사가 나왔다. 3월 19일자 기사에 따르면 “시 문화산업과 관계자는 독립예술영화 전용관을 지원할 근거 조항은 있지만 예산이 한정된 만큰 정책의 우선순위를 살펴 결정하게 될 것”이라 한다. 예전 서울시장들이나 시의 무관심과 비교해보면 지금의 서울시는 영화문화와 관련해 진일보한 입장을 갖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환영할 만한 일이지만, 아쉬운 것은 조례개정이 있었던 것을 감안할 때 이미 3년째 동일한 답변이 되돌아오고 있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예산 배정이 되지 않았다와 정책 우선순위를 고려해야 한다는 말이다.

 

질문이 남았다. 그렇다면, 시네마테크의 지원은 언제까지 서울시의 정책우선순위가 될 없는 것인가? 반대로, 서울시는 지금까지 영화문화와 관련해 어떤 지원을 해왔던 것인가? 이러한 질문은 서울시의 문화정책의 목표와 과제, 정책의 방향이 무엇인가, 혹은 무엇이 되어야 하는가, 라는 질문과 무관하지 않다. 가령, 지난해 3월 서울시의 영상문화청책 토론회에서도 이와 관련한 제안이 있었다. ‘서울시 영상문화 정책 제안’이라는 제목으로 발표된 내용에서 가장 중요하게 언급된 것은 국내 타 지역 및 해외 주요도시와 비교해 서울의 영상정책 전반이 미흡하며, 인구대비 지원예산 규모도 부족하고, 시민들의 문화의식에 비해 다양한 문화향유권 지원이 부족해, 전반적으로 서울시의 공공영상문화 정책이 부족하다는 것이었다. 언제나 되돌아오는 예산부족과 정책의 우선순위와 관련한 문제는 지금의 현실에서 정책의 주된 방향을 어떻게 설정할 것인가의 문제로 접근해야만 한다. 이는 영화적 쟁점이기도 하다. 한 편의 영화에 대한 논의만큼, 우리는 영화가 어떤 상황에 있고 동시에 어떻게 영화를 지원할 것인지를 쟁점화해야만 한다.

 

쟁점의 현실을 이해할 만한 몇 가지 사례들을 들고 싶다. 가령, 서울의 극장환경을 살펴보자. 현재 서울의 스크린 수는 460여개, 이 중 대부분은 대기업의 멀티플렉스 극장들이며, 이 중 예술영화관들은 손꼽을 정도이다. 공공상영관이라 할 만한(공공상영관이라 말한 것은 일반 영화관에서는 상영될 기회가 없는 영화들을 비상업적 방식으로 상영하는 영화관을 의미한다) 극장은 비영리 시네마테크 전용관 서울아트시네마와 독립영화전용관인 인디스페이스 두 곳이다. 하지만, 지난 해 서울의 관객 수는 그 어느 해보다 많아져 5천 6백만명에 달했다. 좋은 비교는 아닐테지만(좋은 문화적 환경을 갖춘 외국의 도시들과 비교하는 것은 언제나 우리를 의기소침하게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상적인 모습이 어떻게 구현될 수 있는지를, 우리의 상상력이 단지 허구가 아니라는 것을 이해하는 데에는 도움이 된다), 서울시의 상황을 파리와 비교해보고 싶다. 종종, 서울시가 문화도시로서의 도시경쟁력을 말하면서 런던, 파리, 로마 등의 예를 들고 있으니 이 비교가 이상한 일은 아닐 것이다.

 

2013년 파리의 경우, 인구수는 대략 250만으로, 영화 관객 수는 2천7백만에 달한다고 한다. 서울의 관객 수의 대략 절반의 수치이다. 스크린 수 또한 374개로 서울보다 적은 편이다. 하지만, 그 중에서 민간영화관이 150개이며 예술영화관이 89개였다. 예술 영화관의 수는 대략 서울의 9배에 달한다. 파리는 영화의 역사가 오래된 곳으로 우리의 문화수준보다 높다고(관객수준을 말하는게 아니다) 가정하더라도, 이 차이는 심각한 것이다. 결과적으로 서울 시민들은 대기업 멀티플렉스의 시장지배와 획일적인 영화상영에 고스란히 방치되어 있다. 심각한 상황이지만 이는 아직까지 주요한 쟁점이 아니다. 지난해, 서울시장은 대형마트 규제의 필요성을 언급하며 외국에서는 입주나 매장 규모의 제한을 두고 있다며 “중소 상공인들, 재래시장 종사자들이 몰락해버리면 계층간 갈등이나 사회의 어떤 불안요인, 등 사회적 문제가 생긴다”고 말했었다. “이런 것들을 방지하는 것은 우리 시대의 큰 화두”라고도 덧붙였다. 이 동일한 논리가 서울이 처한 영화문화의 상황에도 적용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같은 논리로 서울시는 멀티플렉스를 규제할 수도 있다. 민간 예술영화관들의 몰락이나 독립영화관, 시네마테크가 처한 상황 또한 사회적 불안요인이 될 수 있다. 영화관의 대기업 지배는 대형 마트의 폐해만큼 심각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아니, 시민의 정신과 감정, 의식, 공동체성의 감각 등에 심각한 불안 요인을 만들기 때문에 더 큰 문제이다. 베르나르 스티글러의 표현을 빌자면 대기업 멀티플렉스의 마케팅 지배는 영화 관객의 곤충적 군생조직화를 양산한다.

 

서울시가 시네마테크를 지원하는 것에 더한 근거를 마련해야만 할까? 조례가 있으니 근거는 마련됐다고 생각하는데, 이미 서울시가 지난해부터 민간 독립영화관을 지원하고 있으니 더한 근거를 더 마련해야만 할 이유는 없을 것 같다. 서울에서 열리는 영화제들 또한 서울시의 지원을 받고 있다. 이제는 시네마테크가 지원을 받지 못하는 합당한 근거를 찾는 것이 더 어려운 일이 됐다. 그럼에도 다른 사례를 들고 싶다. 1970년대부터 독일의 지방자치단체는 서울아트시네마와 같은 비영리적 성격의 영화관(독일의 경우 이를 공공상영관Kommunale Kino)을 지원했는데, 그 근거는 정신적, 예술적 삶을 표현하는 고전예술 영화를 상영하는 영화관을 공익에 이바지하는 문화예술단체로 간주해야 한다는 이유였다. 지원의 또 다른 근거는 이들 영화관의 활동이 사업성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고 공공상영관의 추구목표와 운영방식, 상영작 선정과 상영방식의 비상업적 성격의 공익성이 있기에 정부나 지방자치 단체들이 재정을 지원해 주는 것이 타당하다는 것이었다. 독일식의 공공영화관은 다른 영화들을 다른 방식으로 보여주는 곳으로, 다른 영화들이란 일반 극장에서 상영될 기회가 거의 전무한 영화들이다. 이곳에서는 최신영화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다시 보고, 새로이 보고, 새삼 발견하는 것이 더 큰 의미를 갖는다. 서울의 경우 이러한 공공상영관이란 서울아트시네마와 같은 비영리 시네마테크나, 인디스페이스 같은 독립영화전용관이다.

 

서울시의 시네마테크 지원을 둘러싼 논의는 그러므로 영화문화의 정책과 관련한 영화적 쟁점이자 직업적 관심사 이상의 중요한 쟁점이다. 말하자면 영화를, 공공적 성격의 영화관을 어떻게 볼 것인가라는 문제다. 가령, 새로운 독일영화가 나오던 1970년대에 독일의 지방자치단체들이 공공영화관을 지원했던 것은 전통적으로 공익성을 가진 문화예술공간으로 간주했던 연극의 공연장, 음악의 연주장, 문화유산의 박물관, 문학의 도서관 외에 영화의 상영관 역시 사회의 문화적 자산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뒤늦긴 했지만, 그러므로 더 좋은 기회가 여전히 남아 있다. 2002년 파리 시장에 선출된 베르트랑 들라노에는 파리시의 문화관련 정책 가운데 영화문화의 다양성 보존과 지원정책의 일관성을 목표로 '미션 시네마Mission Cinema'라는 정책을 시작해, 파리의 영화문화를 혁신했다. 이 정책은 영화와 관련해 파리의 문화적 예외를 보존하려는 것이었다. 다섯 가지의 주요한 정책이 있는데, 파리의 독립적인 영화관들에 대한 지원, 영화 교육, 영화제 및 상영회 개최(파리시가 주최하는 '파리 시네마 영화제', 야외 상영회 등), 이미지 포럼 지원(파리시가 운영하는 영화관으로 프로그래밍, 운영지원), 파리에서의 촬영지원 등이다. 서울시 또한 이들 정책들의 일부를 이미 실행하고 있다. 하지만 실행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 공공적인 영화관에 대한 지원이다.

 

이제 5월이 오면 서울아트시네마는 개관 12주년을 맞이한다. 횟수로는 13년째이다. 그동안 많은 영화인들의 후원이 있었고, 관객들의 참여가 있었다. 그러나 시네마테크에의 지원과 관련해 정책결정자들로부터 우리가 되돌려 받은 것은 언제나 지불이 불가능한 부도수표였다. 단순한 사실은 지난 12년간 서울시가 시네마테크에 대한 지원을 결코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관심도 생각도 없었다. 하지만, 상황은 변화하고 있다. 최근 서울시는 그리고 현 시장은 전 시장들의 재임시절과는 비교가 안될 만큼 답변과 관심을 보이고 있다. 이제는 정책결정자들이 애매한 내일을 기약하지 않았으면 한다. 그들이 반대로 과거를 되돌아보고 지금, 이제 결정을 해주기를 기대한다. 우리가 생각하는 또 다른 세상이란 바로 여기, 지금이기 때문이다.

 

김성욱 / 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램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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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acrosstheuniverse 2014.03.22 02:26 신고

    글 잘 읽었습니다. 많은 이들이 선생님의 생각에 뜻과 마음을 함께 하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계시지요?^^지루한 기다림이었지만 머지않아 좋은 소식이 찾아올 것입니다. 그렇게 될 수 있도록 관심과 애정을 갖고 늘 지켜보겠습니다. 더 힘내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아프지 마시길.....건강하세요~^^

  2. 지나가는과객 2014.11.10 12:42 신고

    분명 전액지원을 해줘야 맞는데.. 제가 나설일이 없었으면 좋겠네요 서울의 횃불 서울아트시네마 파이팅

-시네마테크는 한 나라의 문화수준을 가늠하는 문화척도 
-문화선진국으로 도약 위해 안정적인 시네마테크 공간 확보 및 재정적 지원 시급


(사)한국시네마테크협의회(대표 최정운www.cinematheque.seoul.kr)와 서울에 시네마테크전용관을 건립하기 위한 추진위원회(위원장 이명세, 이하 시네마테크전용관 건립 추진위), 그리고 서울특별시의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김미경 의원이 공동 주최하는 ‘서울시의 시네마테크 지원을 위한 정책포럼’이 지난 26일 서울시의회 의원회관 2층 대회의실에서 영화진흥위원회 등의 영화단체 관계자, 영상문화에 관심이 많은 서울시의회 의원 및 서울시 집행부 관계자 물론 영화를 사랑하는 일반 시민 등 1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이날 포럼은 1, 2부로 나누어 진행되었으며, 1부 행사 때에는 허광태 서울특별시의회 의장, 김현기 서울특별시의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위원장 등 시의회 관계자와 시네마테크전용관 건립 추진위원장을 맡고 있는 이명세 감독, 시네마테크전용관 건립기금 마련을 위한 2차 후원광고 캠페인에 출연한 이준익 감독 등의 영화인, 그리고 10여 년간 민간 단위에서 꾸준히 시네마테크 활동을 펼쳐온 한국시네마테크협의회 최정운 대표가 모두발언자로 나서 기조연설을 하고, 김성욱 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램 디렉터의 발표로 서울 유일의 민간 비영리 시네마테크인 서울아트시네마의 현주소를 실감할 수 있는 관련 영상 상영 및 현황 보고가 이어졌다.

본격적인 지원정책을 논의하고 모색해보기 위한 주제 발표 및 토론이 진행된 2부 행사에서는 허문영 시네마테크부산 원장과 여금미 파리3대학 영화학 박사이자 고려대학교 응용문화연구소 선임연구원이 각각 시네마테크의 지원에 관한 선진사례로서 부산과 파리시의 정책에 대하여 주제발표를 진행했고, 김혜준 부천문화재단 대표이사와 김미경 서울특별시의회 의원이 서울시의 시네마테크 지원정책이 어떻게 이뤄져야 하는지 그 방안에 대한 주제발표를 했으며, 사회는 서울여성영화제 집행위원장인 변재란 순천향대 영화애니메이션학과 교수가 맡았다. 또한 서울시의 문화정책을 담당하고 있는 안승일 서울특별시 문화관광기획관, 김경욱 서울특별시의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전문위원, 송승민 한국시네마테크협의회 사무국장이 토론자로 나서 관련 주제에 대한 열띤 논의를 펼쳤다.

“서울을 최고의 영화도시로 만들기 위해 시네마테크에 대한 지원이 필요하다”
_허광태 서울특별시의회 의장 

허광태 서울특별시의회 의장은 “제8대 시의회가 출범한 이래 많은 시대의 필요성과 요청에 의한 많은 전문적인 토론회가 이 장소에서 이루어졌지만 민간 단위에서 열심히 활동해오던 시네마테크와 같은 곳을 지원하기 위하여 서울시의회 관계자와 영화인, 민간 관련 단체가 공동으로 이렇게 준비한 포럼은 아마 지금까지 지방 의회 20년간 처음 있는 일인 것 같다”며 “그래서 이 자리가 더할 나위 없이 뜻 깊고 앞으로 서울을 최고의 영화도시로 만들어내기 위한 관계자 여러분의 목소리에 보다 적극적으로 귀 기울이며 노력할 것을 약속 드린다”고 말했다.

“서울시의 영화문화에 대한 지원에서 이제 마지막으로 남은 것이 시네마테크이다”
_김현기 서울특별시의회 문화체육관광위원장

김현기 서울특별시의회 문화체육관광위원장은 “영화는 종합예술로 패션, 음악 등이 총망라되어 있어 영화가 발전하면 산업이 발전하고 서울이 발전한다고 믿는다. 서울시는 현재 상암동에 DMC센터를 마련, 감독, 프로듀서를 지원하고 최근에는 프로덕션 센터까지 만들어 지원하고 있는데 이제 마지막으로 남은 것이 시네마테크 같다. 오늘 정책토론회가 영화산업과 영화발전을 위한 특별한 계기가 되길 기원하고 문화체육관광위원장으로서 미력하나마 힘을 보탤 것”이라고 밝혔다.

“시네마테크는 한 나라의 문화예술 수준을 가늠하는 척도이다”
_이명세 영화감독, 시네마테크전용관 건립추진위원장

서울에 시네마테크전용관을 건립하기 위한 추진위원회 위원장이자 영화인을 대표하여 이 자리에 참석한 이명세 감독은 “누벨바그의 아버지인 바쟁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시네마테크는 한 나라의 문화예술 수준을 가늠하는 척도”라며 “만약 이런 시네마테크가 좀 더 일찍 자리 잡았다면 한국영화의 진화는 좀 더 빠르게 이뤄졌을 것”이라 말했다. 또한 그는 “이미 늦은 감이 없지 않으나 2012년은 시네마테크 서울아트시네마의 개관 10주년이 되는 해이니만큼 이제라도 이러한 자리를 통해 서울시가 공공문화예술에 더 많은 관심과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할 것이고 하루 빨리 제대로 된 시네마테크전용관을 건립하는데 앞장설 것”을 촉구했다.

“문화권력을 우선시하는 문화선진국으로 가기 위해선 시네마테크에 대한 지원이 필요하다” 
_ 이준익 영화감독

또 다른 영화인으로 최근 시네마테크전용관 건립기금 마련을 위한 후원광고에도 출연한 이준익 감독은 “정치, 경제, 문화 세 가지 권력 중 어디에 우선순위가 있느냐에 따라 선, 후진국을 나눌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가장 후진국은 정치권력이 우선하는 나라이고 중진국은 경제권력이 우선하는 나라이며, 마지막 문화 권력을 우선하는 나라가 가장 선진국에 속한다”며 “디자인 서울, 문화선진국을 꿈꾸는 인구 천만이 넘는 대도시에 번듯한 시네마테크 하나 없다는 것은 실로 수치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고 지적했다. 또한 그는 “서울이 형식 면에서는 많이 발전했는데 내용면에서는 아직 부족한 게 많다. 이제는 서울이 형식보다는 내용에 충실할 때가 왔고 형식을 뛰어넘는 내용을 갖추는 첫 번째 조건은 장르간의 화합이며 그 내용의 구체적인 사례로 시네마테크가 기능할 수 있다. 우리 아이들이 문화선진국에 살 수 있도록 서울시가 앞장서서 많은 도움을 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시네마테크의 공적 활동의 재원을 서울시가 지원하는 것은 문화도시를 만드는 데 있어서 필요한 일이다” 
_ 최정운 한국시네마테크협의회 대표이사

최정운 한국시네마테크협의회 대표이사는 “영화는 우리의 일상이고 삶이며 문화의 꽃이라 할 수 있기 때문에 영화문화예술에 대한 활동을 제하고 서울이 세계 제 1의 문화도시라는 목표점에 도달할 수 없을 것”이라며 “공적 활동의 재원은 당연히 공공기관이나 서울시와 같은 지자체에서 담당하는 것이 마땅하다. 오늘 이 자리는 시네마테크에 대한 현실적 지원방안을 제안하고 검토하는 첫 발을 내딛는 순간이라는데 그 의미가 크다”고 전했다.

“부산이 문화 불모지라는 불명예를 씻어낸 것은 시네마테크 부산의 역할 덕분이다” 
_ 허문영 시네마테크 부산 원장

한편 본격적인 발제와 토론이 이어진 2부 행사의 첫 번째 주제로 국내 최초이자 유일한 시네마테크전용관 선진사례로서 ‘시네마테크부산 지원사례’에 대하여 발표를 맡은 허문영 시네마테크부산 원장은 "부산국제영화제의 성공과 문화 불모지라는 불명예를 씻어내고 영상도시로 발돋움하려는 부산시의 의지가 맞아떨어졌기에 빠른 진행이 가능했다. 시네마테크부산이 공공기관이 주축이 된 위로부터의 건립이었다면, 서울은 자생적으로 성장한 아래로부터의 건립 추진이므로 더 큰 힘과 지속력을 가질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그는 “시네마테크부산의 경우도 하드웨어적으로 일정 정도 토대를 갖춰놓긴 했고 올해 9월 이후 더 넓은 공간인 영상센터로 이전할 예정이지만 부산국제영화제의 위탁운영이 올해로 끝나고 시네마테크 업무가 영상센터 운영법인에 이관될 가능성도 있어 부산시를 비롯해 여러 기관 단체, 혹은 관련 전문가들로부터 시네마테크라는 고유한 기관의 성격, 고유성을 어떻게 지켜나갈 것인가에 관한 지속적인 설득의 작업은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파리는 이미 80억 규모의 예산을 들여 시네마테크를 지원하고 있다.” 
_ 여금미(고려대 응용문화연구소 선임연구원)

파리3대학에서 영화학을 전공하고, 현재 고려대 응용문화연구소 선임연구원으로 있는 여금미 박사는 해외 선진사례로 ‘영화적 다양성을 위한 파리시의 정책’을 주제로 파리시가 전폭적으로 지원하는 시네마테크 포럼데지마주에 대한 사례를 발표했다. 그녀는 “포럼데지마주는 파리를 배경으로 한 영화들을 수집함으로써 도시의 변모 과정이나 다양한 시각을 통해 조명된 도시의 이미지 등을 보관하고 이를 시민에게 제공한다는 특별한 개성을 가지고 있고 무려 80억 규모의 예산을 파리시로부터 지원받고 있다”며 “서울아트시네마가 포럼데지마주와 동일하지는 않지만, 비슷한 기능을 수행하고 있는 공간이므로 이 공간의 물적토대를 어떠한 방식으로 발전시켜 나갈 지 서울시와 함께 모색해보는 것은 매우 유익한 일이다”라고 밝혔다.

“서울시가 의지만 있다면 언제든 안정적인 시네마테크전용관을 만들 수 있다. 무엇보다 의지가 중요하다” 
_ 김혜준(부천문화재단 대표)

‘서울의 시네마테크 지원 어떻게 할 것인가’란 주제로 세 번째 발제를 맡은 김혜준 부천문화재단 대표는 “무엇보다도 곧바로 일을 추진하는 의지만 있다면 얼마든지 전용관을 지을 수 있다”며 “일단 건물을 잘 지을 것인가, 지속적인 운영예산 마련에 힘쓸 것인가 등 실질적 문제들에 대한 서울시의회와 서울아트시네마 간의 협의가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전용관을 잘 지어놓으면 건립을 도와준 의원의 이름이 100년간 기억될 것"이라며 의원들의 도움을 촉구했다.

“시네마테크에 대한 지원 조례제정을 통해 서울시의 지원에 대한 법적 근거를 마련하는 일이 필요하다” 
_ 김미경(서울특별시의회 의원) 

마지막 발제자로 이날 포럼의 공동주최자이기도 한 김미경 서울특별시의회 의원은 ‘서울시의 시네마테크 지원정책 방안’에 대한 주제 발표에서 "시네마테크전용관 건립의 근거가 될 만한 현행 조례가 있지만 그 근거가 불명확하다. 별도의 독립영화 및 시네마테크 지원 조례 제정을 통해 서울시의 지원에 대한 법적 근거를 마련하고 영화산업에 대한 장기적인 발전전략을 세우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주제 발표가 끝난 후에는 토론자들의 질의와 함께 심도 깊은 논의가 이어졌다. 서울시의 문화정책을 담당하고 있는 안승일 기획관은 "영화의 박물관이자 도서관이자 상영관인 시네마테크전용관의 필요성에 깊게 공감한다. 시민운동 형태로 추진되는 것도 지속가능성 측면에서 바람직하며, 이에 문화사업 총괄자로서 반성하는 바가 있다. 그동안 서울시도 문화영상 사업의 육성을 위한 나름의 노력을 기울였지만 예산이라는 게 늘 부족하다. 예산 책정의 실질적 권한을 지닌 서울시의원들의 도움이 필요하다. 또한 별도의 조례를 마련하지 않더라도 의지만 있다면 충분히 지원할 수 있는 법적 근거는 있다"고 말했다.



또 한명의 토론자인 서울시의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의 김경욱 전문위원은 “조례 제정의 필요성은 공감하지만 시네마테크에 대한 조금 더 명확한 정의와 기존에 영상자료원 같은 공공기관과의 분명한 차별점이 있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김미경 의원은 “조례를 통해 명확한 법적 근거를 마련하지 않는다면 예산 책정도 어려울 것이다. 집행부 측은 새로운 예산을 되도록이면 추가하지 않으려고 하는 생리가 있다"고 밝혔고, 여금미 박사는 "한 도시에 시네마테크가 하나만 있어야 할 이유는 없다. 다양성 측면에서도 그러하며, 파리의 경우도 시네마테크 프랑세즈와 포럼데지마주 등의 다양한 기능의 시네마테크가 있다”며 시네마테크 서울 전용관의 건립의 필요성을 주장했다. 허문영 원장 또한 "한국영상자료원은 한국영화를 보존하고 상영하는 데 주력할 수밖에 없으며, 시네마테크 부산은 애초의 설립 취지에 맞추어 주로 아시아권 영화들을 보존하려 한다. 따라서 서울아트시네마는 지금까지 해오던 방향처럼 전 세계의 중요한 영화적 자료들을 보존한다면 세 기관 간에 서로 보완적인 조화를 이뤄낼 수 있을 것"이라 말했다.

예정된 시간을 넘겨 뜨겁게 진행된 토론과 객석을 가득 메운 시민들의 참여는 서울시가 시네마테크에 대한 지원과 공간 마련에 적극적으로 나설 필요성을 공감하는 자리가 됐다. 한편 주최측은 올해 가시적인 성과를 이루기 위해 5월 이후에 시네마테크에 대한 지원방안과 조례제정에 관한 구체적인 후속 논의가 필요할 것으로 보고 이와 관련하여 논의를 진전시켜나갈 수 있는 토론회 및 관련 기관과의 간담회를 지속적으로 개최한다는 방침이다. 특히 이번 포럼의 공동주최로 나선 김미경 의원은 앞으로 시네마테크 지원의 법적 근거를 마련할 수 있는 조례 제정을 발의하는 등 시네마테크 지원과 관련한 보다 적극적인 행동에 나설 예정이다. / 신선자 (서울아트시네마 기획홍보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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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의 글을 다시 끄집어낼 때가 있다. 최근 시네마테크와 관련한 논란을 보면서 혹시나 시네마테크가 어떤 곳인지 모르는 분들을 위해 시네마테크를 설명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문득 외국의 시네마테크를 소개할 생각에 썼던 글이 떠올랐다. 이미 2년전의 글이라 내용들을 일부 수정하고 싶은 생각이 있지만 일단 소개의 차원에서 시네마테크와 관련한 역사를 다시 옮긴다. 기회가 된다면 더 추가해서 글을 쓰고 싶긴 하다. 예전 '컬처뉴스'에 연재로 할 계획이었다가 두번만 쓰고 넘긴 글이다. (Hulot)



1. 시네마테크, 상상의 영화박물관



외국에 나갈 기회가 있을 때마다 습관적으로 관광명소보다는 예술영화관이나 시네마테크 혹은 영화박물관과 같은 공간들을 방문하곤 한다. 일단 필름으로 극장에서 못 본 영화를 챙겨보고 이어 천천히 영화가 상영되는 극장을 둘러보곤 한다. 상영 10분 전에만 판매되는 입장권 때문에 상영 바로 직전에 극장의 매표소 앞에 줄지어 선 관객들, ‘복원판 뉴 프린트’라는 광고가 붙은 영화의 포스터, 극장의 벽면을 성당처럼 장식하고 있는 스테인드글라스, 지나칠 정도로 어두운 극장의 회랑에 시선을 보내고 있노라면 스크래치가 심한 낡은 필름만큼이나 공간에 배어 있는 과거의 시간이 느껴진다.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작가나 작품뿐만 아니라 영화가 상영되는 조건과 공간, 그곳을 방문하는 사람들에게 애착을 갖기 마련이다. 그 영화가 어떤 줄거리였고 어떤 배우가 출연했는가라는 정보 이상의 추억이 영화에 담겨 있기 때문이다. 영화를 보았던 시간과 계절, 그 영화가 상영된 장소, 영화를 본 후 친구와 걸었던 밤거리에 대한 기억이 영화의 줄거리보다 더 민감하게 우리의 추억을 자극한다. 이를테면 지금은 사라진 코아 아트홀에서 컬러 복원판으로 재상영된 자크 드미의 <쉘부르의 우산>을 보았던 내 경험은 극장 안에서 훌쩍이던 연인들의 모습과 영화가 끝난 후 친구와 걸었던 그 해 가을 종로와 혜화동의 밤거리에 대한 기억과 연결되어 있다.


일찍이 롤랑 바르트는 영화관의 어둠 이전에 존재하는 거리의 어둠에 대해 언급하면서 밤의 경험이 영화체험의 가장 중요한 요소라 말한 바 있다. 최근의 영화 관람이 지닌 문제는 영화와 그것을 가능케 하는 조건들과의 철저한 단절로 표현될 수 있겠다. 미국의 영화평론가인 조나단 로젠봄은 극장이 아닌 비디오로 영화를 관람하는 것의 문제를 지적하면서 “사람들은 마치 자신들 모두가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기라도 한 것처럼 영화에 대해 말한다. 이것이 우리가 직면해 있는 문제다. 우리가 영화가 무엇인지를 말할 때, 또는 영화를 기술하려고 노력할 때, 우리는 영화를 조건과는 무관한 대상으로 고찰하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 이 조건에서 우리들은 영화를 보고 그런 방식으로 영화를 받아들인다. 이런 상황들은 종종 대상으로서 우리들의 영화의 인식에서 결정적이다”라고 말한다.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작가나 작품뿐만 아니라 영화가 상영되는 조건과 공간,
그곳을 방문하는 사람들에게 애착을 갖기 마련이다. 사진 서울아트시네마야외

영화관에서의 영화 관람을 특권화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다만 영상이 범람하는 지금의 시대에 앙드레 바쟁이 그랬던 것처럼 ‘영화가 무엇인가’라고 질문하고자 한다면 이제 조금 관점을 달리해 ‘영화가 어디에 존재하는가’라고 묻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하고 싶다. 시네마테크를 운영하는 입장에서 말하자면 첫 번째 질문만큼이나 영화의 ‘거처’와 관련한 두 번째 질문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사실 영화가 처음 대중들에게 선을 보인 1895년 이래로 영화는 고유의 역사를 통해 산업적 대상에서 예술적 대상으로, 그리고 문화적 유산으로 변모해 왔는데, 이 때 영화에 대한 사고의 변화와 마찬가지로 상업영화관, 시네클럽, 공공상영관, 예술영화관, 시네마테크와 같은 다양한 상영공간의 역사가 함께 했다.


시네마테크는 좀 거창하게 말하자면 영화가 처했던 위기의 역사와 함께 했다. 전 세계적으로 시네마테크가 처음 모습을 보인 시기는 1920년대 말 무렵인데, 이 때는 무성영화가 유성영화로 넘어가던 변화의 시기로 당시 무성영화의 대중적인 스타들과 감독들, 그리고 영화 애호가들은 토키의 도래로 인해 무성영화가 지닌 예술적 표현의 가능성이 사라지는 것에 깊은 우려를 보였다. 토키의 등장은 무성영화를 대중들의 눈앞에서 사라지게 만들었고, 이는 곧바로 무성영화 필름에 심각한 손상을 초래했다. 멜리에스가 만든 영화들의 네거티브 프린트가 파손되었고, 미국에서는 이 시기 무성영화의 75%가 영원히 사라져버렸다.


영화 제작자들과 배급업자들은 시대에 뒤떨어진 무성영화를 관객들이 더 이상 보지 않을 거라 믿었고, 극장에서는 무성영화를 더 이상 상영하지 않았다. 이 때 영화가 계속 대중들에게 상영되기 위해서는 필름의 ‘보존’이 불가피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되면서 이를 위해 영화를 보존하는 박물관으로서의 시네마테크(혹은 필름아카이브)가 제기되었고 프랑스, 독일, 미국 등지에서 조금씩 성격은 달랐지만 필름을 보관하는 필름아카이브가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물론 보관소로서의 필름아카이브가 아니라 상영공간으로서의 시네마테크의 의미와 중요성이 보다 분명해진 것은 사실 1950년대 무렵의 두 번째 시기라 할 것이다. 전 세계적으로 새로운 영화들(이탈리아 네오리얼리즘, 프랑스의 누벨바그, 미국의 뉴아메리칸 시네마 등)이 등장하면서, 새로운 세대의 영화애호가들은 영화를 보존하고 계승하는 것이 필름을 ‘보관’하는 머무는 것이 아니라, 필름 캔 위에 수북이 쌓인 먼지를 털어내고 극장의 어둠에서 그것의 빛을 체험하는 행위를 통해 이루어질 수 있다고 주장한다. 보여주는 예술로서의 영화가 극장에서 상영될 기회가 없다면 결국 그 영화는 존재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인 셈이다.

시네마테크는 다양한 시대, 다양한 공간의 영화로 관객들의 상상력을 채워준다.
서울아트시네마 '시네바캉스'의 풍경 ⓒ 김성욱

새로운 시각(이른바 작가정책)으로 영화를 다시 보면서 예술로서의 영화를 재인식하던 시기가 바로 이때다. 작가정책, 영화비평, 시네필이 시네마테크와 이토록 긴밀하게 호흡하던 시기는 아마 없었을 것이다. 뉴웨이브 세대들은 영화를 보는 것이 영화들 간의 새로운 관계를 형성하는 비평작업이자 새롭게 영화를 만드는 과정이라 여겼기에 보는 행위와 비평작업, 영화를 만드는 행위에 어떤 위계를 부여하지 않았다. 그들은 스스로 영화의 좋은 관객이자 비평가이며 작가라는 사실을 자부했다. 비평가에서 시작해 영화를 만든 프랑스 누벨바그의 기수였던 고다르는 “우리는 영화의 역사에서 에이젠슈테인 뒤에, 혹은 로셀리니 뒤에 어떤 감독들이 존재하는가를 알 수 있었다. 이 모든 것을 랑글루아의 시네마테크가 우리들에게 가르쳐주었다”라고 말했는데, 이는 시네마테크에서의 영화보기를 통해 영화의 역사에 대한 이해를 형성할 수 있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 시기 그리피스, 에이젠슈테인, 무르나우, 프리츠 랑, 하워드 혹스, 미조구치 겐지, 알프레드 히치콕 등의 다양한 작가들의 회고전과 특별전이 열리면서 영화의 역사에 대한 인식이 새롭게 만들어졌다. 이들이 형성한 영화의 역사에 대한 인식은 물론 작품의 연대기적 시간에 근거한 것은 아니다. 작품들 간의 서로 다른 거리와 시간의 커넥션을 통해, 그것들이 형성한 성좌에 의해 구성된 영화의 역사적 시간 개념이 보다 중요했다.


“영화의 유일한 학교는 영화관이다”라고 선언하며 심지어 영화학교를 거부한 뉴웨이브 세대들의 영화관에서의 전설적인 영화경험은 지금 되돌아보면 신화만큼이나 거리가 있는 이야기처럼 들린다. 아마도 이후의 시기를 현재와 관련해 고려하는 게 그래서 보다 중요한데, 이는 1960~1970년대를 거치면서 영화가 이미지의 주요한 원천이나 대중예술의 유일한 지위를 더 이상 차지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과 관련된다. 관객들은 이제 신문의 줄 광고에 실린 영화상영 광고를 보고 도시를 가로질러 영화와 만나기 위해 버스를 갈아타고 여정을 떠나는 모험가들이 아니다. 그들이 느끼는 영화의 즐거움은 또한 1000석이 넘는 극장에서 70mm 대형화면에 투사되는 <아라비아의 로렌스>를 보며 황홀해하던 이미지에의 매혹과 비교하자면 지극히 작은 것처럼 보인다.

역사와 현실, 시대의 유일한 증언자임을 자부했던 영화는 기껏해야 이야기의 즐거움을 제공하는 여흥에 머물고 있고, 이제 영화광이 된다는 것은 반문화와 관련된다기보다는 대학이나 영화학교와 같은 제도적 기관에의 편입을 의미하는 것이 돼버렸다. 개인화된 영화체험, 끊임없는 영화의 축소화 경향, 너무 빨리 진행되는 제도화의 경향이 지배하는 영화문화 속에서 시네마테크는 또 한 번 그 자신의 고유의 역할에 대해 고민해야만 한다. 시네마테크와 관련해 영화의 교육학과 박물관학이 제기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영화가 무엇보다 보여주는 행위라면 영화는 그것을 보여주는 열정을 지닌 사람들과
그것을 보는 사람들, 그리고 영화가 상영되는 공간과 조건에 의존할 것이다. ⓒ 김성욱

시네마테크는 그러나 기억의 기념비를 세우고 때가 되면 무언가를 기념하는 제도적 박물관처럼 그렇게 낡은 것은 아니다. 한국의 경우 그 역사가 일천해 부분적인 한계가 있을 터이지만 그럼에도 한국에서 시네마테크가 1990년대를 거치면서 관객운동이라는 고유의 활력을 바탕으로 독립적인 방식으로 진행되어 왔다는 사실을 중요하게 평가할 필요가 있다. 1990년대 말 아트선재 센터 지하에서 처음 필름 상영을 시작하면서 2002년 정식으로 시네마테크 전용관이 설립되고, 또 지금은 낙원동의 4층 건물의 한 개 관에서 관객들과 만나고 있는 ‘서울아트시네마’는 그런 관객운동의 활력에 근거해 만들어졌다.


사실 외국의 시네마테크를 돌아본 사람들이라면 느끼겠지만 서구의 다양한 사례와 비교해 볼 때 21세기에 이렇게 제도적 지원은 지극히 적으면서 관객운동의 활력이 강하게 느껴지는 곳은 오직 서울뿐이라는 생각이 든다. 게다가 이렇게 다양한 과거의 영화들을 일년 내내 관객들이 손쉽게 만날 수 있는 곳도 많지 않다. 2006년 올 한해만 보더라도 서울아트시네마에서는 빔 벤더스, 샹탈 아커만, 막스 오퓔스, 키에슬롭스키, 안소니 만, 샘 페킨파, 라울 루이즈, 와카마츠 코지, 베르너 헤어쪼그, 자크 투르뇌르, 더글라스 서크, 빌리 와일더 등 거장들의 회고전과 멕시코 영화제, 라틴 아메리카 영화제, 브라질 영화제, 체코 영화제 등이 개최된 바 있다.


이런 영화들을 시네마테크에서 상영하는 것은 호사스런 축제와는 거리가 멀다. 시네마테크의 영화 상영은 아직 그 시효를 다하지 않은 수많은 영화의 잠재적 가치를 상영을 통해 실현하는 행위이며, 동시에 미래의 영화, 미래의 관객을 준비하는 작업이기도 하다. 영화의 진정한 가치, 그것의 잠재적 가치를 평가하는 것은 현재의 관점에서만 진행될 일도 아니며 예술의 역사를 고려할 때 늘 현재의 평가가 온당했던 것도 아니다. 작가의 작품이 지닌 시장 가치는 유행에 따라 개봉하는 당시에 평가가 되겠지만 시장가치와 그것의 잠재적 가치가 같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래서 시간을 견뎌내는 영화의 잠재적 가치를 유보시키고, 그것을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의 관객들에게 전달하고 계승하는 것이 무엇보다 필요한 것이다.


영화는 쉽게 유행에 뒤쳐지고 보지 않는 영화는 망각의 저편으로 빨리 사라진다. 누군가는 진정한 영화애호가는 이제 막 개봉한 영화를 접하고서도 “이 영화는 아주 빨리 잊혀질 것이고 유행에 뒤진 영화가 될 것이야”라고 민감하게 느끼는 사람들이라 말한다. 미술관에 전시된 미술품이 여전히 굳건한 예술의 지위를 차지하고 있는 것과 비교하면 영화는 대단히 위약한 처지에 있다. 만약 영화가 무엇보다 보여주는 행위라면 영화는 그것을 보여주는 열정을 지닌 사람들과 그것을 보는 사람들, 그리고 영화가 상영되는 공간과 조건에 의존할 것이다. 시네마테크는 제도화된 박물관이 아니라 벤야민이 말한 ‘집단적인 꿈의 집’이자 말로가 원했던 ‘상상의 박물관’에 가깝다. 20세기의 대중예술로서 영화는 미술만큼이나 그것이 거주할 집, 시네마테크를 필요로 하고 있다.
▲ ‘시네마테크 프랑세즈’에서 장 엡스탱의 <라 벨 니베르네즈>를 보고 나서 센느 강은 진정 새롭게 다가온다. 사진: 시네마테크 프랑세즈(베르시) ⓒ 김성욱


2. 그리고 시네필이 시네마테크를 창조했다



한 번쯤 파리를 방문해본 여행자들은 루비통 매장이 있는 화려한 샹제리제 거리나 파리 시내의 야경을 내려다볼 수 있는 에펠탑, 퐁 데 자르나 퐁 네프 다리가 놓여있는 센느 강, 혹은 루브르 박물관이나 오르세 미술관 등을 주로 떠올리곤 한다. 아마도 파리에 관한 공식적인 이미지들은 그와 같을 것이다.


하지만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파리의 추억은 좀 남다르다. 이를테면 내게 파리의 풍경은 영화관에 대한 기억들로 가득하다. 생 미셀 근처의 골목골목에 숨어있는 유서 깊은 예술영화관들, 5유로를 내면 하루 종일 서너 편의 영화를 볼 수 있었던 레알 역 지하에 있는 ‘포럼 데 이마주’, 전시를 관람하고 영화를 함께 볼 수 있는 퐁피두센터 지하의 영화상영관, 혹은 과거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샤이오 궁 뒤편에 있던 ‘시네마테크 프랑세즈’(지금은 좀더 호화로운 건물을 조성해 베르시로 이전했지만) 등, 파리에는 정말이지 다양한 영화관들이 즐비하다. 매주 수요일 가판대에서 판매되는 ‘파리스코프’를 사면 일주일간 파리 시내에서 상영되는 모든 영화들의 정보를 확인할 수 있는데, 보고 싶은 영화들에 동그라미를 쳐가며 찾았던 파리 시내의 이러한 어둑한 영화관들은 내겐 루브르 박물관보다 더 진정한 밤의 박물관이었다. 그리하여 에펠탑은 ‘포럼 데 이마주’에서 르네 클레르의 무성영화 <파리는 잠들다>를 피아노 연주와 함께 본 후에 달라 보였고, 센느 강은 ‘시네마테크 프랑세즈’에서 장 엡스탱의 <라 벨 니베르네즈>를 보고 나서 진정으로 새롭게 다가온다.

파리의 영화환경은 하루아침에 생겨난 것이 아니라 오랜 역사를 통해 서서히, 혹은 급격
한 생성의 변화를 겪으면서 생겨났다. 사진: 시네마테크 프랑세즈(샤이오) ⓒ 김성욱

이러한 곳들은 프랑스의 영화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영화관들로 파리지앵들에게는 영화의 사랑을 몸에 익힌 장소이자 영화애호가들(시네필들)의 상징적 결집의 장소이기도 하다. 거장들의 회고전과 특별전, 기획전이 매달 개최되는 시네마테크 프랑세즈, 포럼 데 이마주, 퐁피두를 제외하고도 파리 시내에는 90여 개가 넘는 크고 작은 예술영화관들이 또한 존재한다. 파리시의 인구가 서울시의 1/5도 안되는 250만 명쯤이라 할 때 이렇게 다양한 영화상영 공간들이 존재한다는 것은 정말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이러한 공간들의 역사가 이미 1920년대에 그 기원을 두고 있다는 점이다. 파리의 다양한 영화문화환경에 놀라움을 표현할 때 그래서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그것이 하루아침에 생겨난 것이 아니라 오랜 역사를 통해 서서히, 혹은 급격한 생성의 변화를 겪었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것이다. 모든 나라가 그러하듯 프랑스의 영화문화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때문에 그 생성의 역사를 되돌아보는 것이 필요하다.


프랑스에서는 이미 1920년대부터 영화잡지, 영화비평을 둘러싼 노력이 있었고, 시네클럽이라는 광범위한 민중운동이 있었다. 1920년대의 시점에서 소비에트가 영화를 혁명화하려 했다면, 그리고 1930년대의 독일이 영화를 국가의 정치적 미장센으로 만들려 했다면 프랑스는 일치감치 그들과는 다른 의미의 영화국민이 되려했다. 현재 ‘카이에 뒤 시네마’의 편집장이기도 한 장 미셸 프루동은 『민족과 영화』라는 책에서 그런 프랑스의 영화사랑에 대해 “프랑스는 영화사랑의 나라, 혹은 시네필의 조국이 되려했다. 이는 세계의 유명 영화인들이 모두 각자의 조국을 버리지 않으면서 모두 영화조국의 시민이 되려하는 것에서도 알 수 있다. 그리고 그 곳에는 프랑수아 트뤼포와 같은 영화라는 이름의 국민의 왕자, 영웅 혹은 순교자가 있었다. 영화를 투영해 영화보다 더 크고 아름답고 다양하게 영화의 가치를 세계에 투영하려 하는 것. 그 순수한 의미만을 고려할 때 프랑스, 특히 파리는 영화의 수도가 된 것이다”라고 표현한 바 있다. 좀 과장돼 보이긴 하지만 사실 틀린 말은 아니다.

5유로를 내면 하루 종일 서너 편의 영화를 볼 수 있었던 레알 역 지하에 있는 ‘포럼 데 이
마주’ ⓒ 김성욱

역사를 되돌아볼 때 프랑스의 영화사랑은 두 가지 대립적인 힘의 작용에 의해 진행되어 왔다고 볼 수 있다. 그 하나의 축이 영화예술을 보존, 육성하려 했던 자발적인 노력의 과정이라면 다른 축은 오랜 역사를 통해 영화를 문화제도 안에 적절하게 위치시키려는 노력이다. 전자가 시네클럽, 시네마테크, 예술영화관들의 자발적인 생성과 영화애호가들의 노력이라면 후자는 예술로서의 영화를 제도적 지원이 가능한 문화의 영역으로 끌어올리려 한 행정가들의 노력에 있다.


이미 1920년대, 그러니까 영화가 무성영화였던 시대, 혹은 영화가 젊었던 시절에 초현실주의와 아방가르드 영화에 매혹을 느낀 초기의 영화애호가들(시네필)은 소규모로 시네클럽을 조직해 영화상영과 토론을 행하면서 영화가 예술임을 표명했다. 시네클럽은 영화상영의 공간이자 비평의 공간이었고, 또 영화가 예술이라는 사실을 일깨우는 공간이었다. 이 시기의 시네클럽은 실로 다양했는데, 이를테면 1920년대 시네클럽의 핵심적인 인물이었던 레옹 무시낙은 1928년에 ‘스파르타쿠스의 친구들Les Amis de Spartcacus'이라는 노동자 중심의 시네클럽을 만들기도 했다. 그는 당시 시네클럽의 영화상영에 대해 “영화상영이 끝난 뒤에 사람들은 떠나기를 거부했다. 그들은 열정적으로 앙코르를 외쳐댔다. 그래서 우리는 영화의 마지막 릴을 다시 한번 틀어야만 했다. 그 영화가 에이젠슈테인의 <10월>이었다. 마지막 전철도 끊어진 상태, 그래서 대부분의 노동자 관객들은 영화가 끝나 뒤에는 걸어서, 밤새도록 집으로 돌아가야만 했다”라고 감동적으로 회고한다. ‘스파르타쿠스의 친구들’이란 시네클럽은 프랑스에서 첫 번째로 만들어진 전국적 규모의 대안적인 영화상영 네트워크로 알려져 있는데, 이들은 파리에만 1만 5천명의 회원을 확보해 검열로 인해 상영이 불가능했던 소비에트 영화들을 집중적으로 소개했다. 에이젠슈테인의 <전함 포템킨>이 이러한 네트워크를 통해 프랑스 전역에서 3만 여명의 관객을 동원하기도 했었다.

초기의 영화애호가들은 소규모로 시네클럽을 조직해 영화상영과 토론을 행하면서 영화
가 예술임을 표명했다. 사진: 파리의 예술영화관 그랑악시옹ⓒ 김성욱

전후 프랑스에서는 전설처럼 회자되는 새로운 시네필의 탄생의 역사가 도래한다. 이 새로운 세대는 영화예술에 대한 기성의 견해에 반대 의견을 내비치면서 자신들의 영화적 취향을 과시하는 ‘저항’을 벌이기도 했다. 이를테면 시인 장 콕토가 1948년에 아방가르드 영화운동을 활성화하기 위해 만든 ‘Objectif 49'라는 시네클럽에는 로베르 브레송, 로저 렌하르트, 장 그레미용, 르네 클레망, 마르셀 카르네 등이 참여했는데, 이 시네클럽은 당시 배급이 불가능했던 영화들, 상업적으로 성공하지 못해 시장에서 사장된 영화들, 시네클럽의 취향과 열정에 어울리는 영화들을 주로 상영했다. 장 콕토의 <무서운 부모들>, 로셀리니의 <독일 영년>, 오슨 웰즈의 <위대한 앰버슨가> 등과 같은 작품이 여기에 포함되어 있었다. 장 콕토는 또한 당시 각 나라의 당국자들이 작품을 선별하던 기존의 영화제에 대항해 ‘타도 칸느’를 외치며 “우리가 스스로 작품을 선별할 것이다”라며 스스로 ‘저주받은 영화들’이라 칭한 영화들을 상영하는 ‘저주받은 영화 페스티벌’을 개최하기도 했다. 이 영화제에는 당시 19살의 고다르가, 21살의 리베트, 17살의 트뤼포가 참여하면서 영화상영 후에 격렬한 논쟁을 벌이기도 했다.


새로운 영화문화의 활성화에 기폭제가 된 것은 물론 앙리 랑글루아의 시네마테크였다. 1936년, 앙리 랑글루아와 조르주 플랑주에 의해 창설된 시네마테크 프랑세즈는 2차대전 이후 1948년, 50석의 상설관으로 개관하며 프랑스 영화문화에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당시 16세였던 프랑수와 트뤼포는 “시네마테크는 당시 우리에게 안식의 장소이자, 피난소이며, 가정이었다. 50석밖에 안되었기에 우리는 좌석에 앉지 않고 맨 앞줄의 마루에 앉는 것이 일상적인 일이었다”라고 말한다. 이러한 시네필들은 영화를 새로운 예술로 인식했고, 영화와 그것의 역사에 대한 반성의 새로운 장을 열었던 독특한 관객들이었다. 시네필들은 문서에 의존하는 영화사가와는 다른 나름의 기억술에 근거해 영화의 역사를 새로 써내면서 영화와 관련한 논쟁에 있어서 열정적이었고, 작품의 분류와 체계화, 취향의 판단에 있어서 야심적이면서도 세밀하고, 무엇보다 자신들이 좋아하는 영화의 가치를 적극적으로 옹호했다. 그런 점에서 시네필 문화는 제도적이고 공적인 문화와는 거리가 멀었다. 프랑스에서 시네필 문화는 그것의 바깥에서, 거의 독학을 통해, 자발적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전후 프랑스 시네클럽은 당시 배급이 불가능했던 영화들, 상업적으로 성공하지 못해
시장에서 사장된 영화들을 주로 상영했다. 사진: 파리의 예술영화관 르 카르티에 라탱
ⓒ 김성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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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stella 2009.03.11 01:19 신고

    아, 너무나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시네마테크라는 공간의 역사적인 기원과 그 가치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만드네요. 시네마테크의 설립자 랑글루와는 죽었지만, 오늘날에도 그랑 악시옹 극장안의 어둠속에서 씨네필들과 함께 영화를 보고있다는 얘기는 슬쩍 감동이..

    글 중에, 영화를 보았던 시간과 공간에 대한 추억이 특정 영화에 대한 기억에서 얼마나 큰 자리를 차지하는지에 대해서 정말 공감합니다. 쉘부르의 우산 얘기를 하셔서 문득 떠올랐는데요. 예전에 아트시네마에서 자크 드미 전을 했을때 [로슈포르의 숙녀들]을 보고 거리에 나온 후, 부드러운 활기로 가득했던 밤의 풍경과 귓가에 흐르던 미셸 르그랑의 경쾌한 음악소리는 그 영화를 떠올릴때마다 마치 소설 속 에필로그처럼 '함께' 솟아오르는 추억이랍니다.
    또, 존 휴스턴 감독의 [죽은 자들] 엔딩 크레딧에서 묘지위에 내리는 눈송이들이 하얗게 스크린을 덮는 장면을 보고난 후 극장 밖에 나왔을때 느꼈던 '밤의 어둠'은 분명히 예전의 어둠과는 다른 특별한 것이었습니다.

    ( ㅎ 그런데, 이 글을 읽으며 눈앞에 펼쳐지는 또 하나의 영화적 풍경은 플레이 타임에서 윌로씨가 회색 고층 빌딩들 사이로 성큼성큼 걸어다니는 그런 모습이예요. ^^ 아주 오래전, 파리에 흩어져있는 극장들 이곳 저곳을 즐거운 걸음으로 찾아다녔을, '아트시네마의 윌로씨'가 상상속에 그려져요. )

  2. Hulot 2009.03.11 02:58 신고

    2003년에 자크 타티의 <플레이 타임>을 파리의 르네 거리에 있는 L'Arlequin이라는 극장에서 70mm로 본 적이 있어요. 복원판이 재상영됐던 때입니다. <축제일>도 개봉시의 흑백버전과 미개봉의 컬러버전을 같이 상영했던 '자크 타티'에의 오마주전이었죠. 70mm라고는 하지만 스크린이 아주 거대한 곳은 아니었기에 조금 아쉬웠지만 그래도 그 넓은 화면에 윌로씨가 돌아다니는 모습을 보는 일은 무척 경이로운 일이었습니다. 2-3천석 극장에서 이 영화를 70mm로 보면 어떨까, 라는 생각을 했었죠. 자크 타티의 '회고전'을 올 5월에 시네마테크 서울아트시네마에서 할 예정입니다. 예전 아트선재 시절에 <윌로씨의 휴가>를 튼 적이 있지만 시네마테크에서 타티의 영화를 상영할 기회가 없었습니다. 벌써 5월이 기다려지는데 현실의 넘어야 할 산들이 많네요.

  3. sesism 2009.03.11 11:11 신고

    난간에 서서 관객들을 내려다보는 랑글루아의 이미지에 선생님이 겹쳐졌어요. 언젠가 "마지막 상영이 끝나고나서 인사동 쪽으로 빠져나가는 관객들을 내려다본다"던 말씀이 생각났거든요. 저도 5월이 기다려지는데 그저 그저 화이팅입니다 :)

  4. Hulot 2009.03.14 02:54 신고

    가끔 옥상에 심야 카페를 하나 차리면 좋겠다는 생각을 할 때가 있네요...영화가 끝난 후에도 쉽게 발길을 돌리지 못하고 옥상에서 담배를 피우는 사람들과 밤새 커피에 술을 한잔 해도 좋을 듯 싶은데.

  5. iamarock 2009.04.09 10:39 신고

    아트시네마에서 영화도 보고 미드나잇 파티도 하고 그랬으면 정말 좋겠네요. 꿈꿔 봅니다.

    • Hulot 2009.04.11 10:24 신고

      유럽에서는 가을에 백야축제를 하지요. 저녁부터 아침까지 갤러리, 박물관, 영화관이 밤새 개방을 하고 거리에서 공연이 벌어지는.. 그런걸 가을에 인사동에서 하면 좋을텐데요..

  6. void 2009.04.09 20:41 신고

    으흐흐 미드나잇 파티... 옥상 난간에 기대 서 있다보면 다리가 아파서 안에 있는 빨간 의자 갖고 나오고 싶어지더라구요. 햇살에, 선선한 바람에, 좋은 영화에. 문득문득 행복하다고 느낍니다.

    • Hulot 2009.04.11 10:27 신고

      '시네바캉스'를 하는 여름에 옥상에 모래를 깔고 파라솔을 설치하고 한적하게 보내도 좋을 텐데요..

  7. melomane 2009.10.17 11:20 신고

    글 참 재미있게 읽었어요. 이 좋은 공간들도 모르고 있었다니 파리에서 보낸 짧은 기간이 참 허무하단 생각이 드네요. 대신 지금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상영하는 영화를 꼼꼼히 체크하고 자주 다니려고 합니다. 여기서 관람한 영화는 왠지 머리 속에 뚜렷이 남는 것 같아요. 프로그램이 좋아서 그렇겠죠?

    • Hulot 2009.10.21 02:21 신고

      파리는 언제 가도 여전히 예전의 극장이 있고, 또 예전의 영화들을 늘 상영하고 있어 사라지지 않는 추억의 거처가 있다는 안도감이 생겨요....

‘영화의 고전과 미래의 시네마테크’에 관한 포럼 [2]


각기 다른 지역, 기관에서 시네마테크 활동을 펼치고 있는 토론자들이 시네마테크가 안고 있는 근본적인 문제를 꺼내면서 얘기는 자연스럽게 현재 한국시네마테크협의회, 시네마테크 전용관인 서울아트시네마가 처한 위기 상황에 대한 열띤 토론으로 이어졌다. 이슈가 된 내용의 주요 골자는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가 시네마테크 전용관 지원사업을 오는 3월부터 공모제로 전환한다고 통보해온 것. 이는 그간의 시네마테크 활동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는 발언이며, 당장 공간이 없어지는 상황을 만든다. 8년간 쌓아온 것이 물거품이 되어 사리질 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야말로 한국의 랑글루아 사태에 대비하여 ‘공간의 재발견, 행복의 시네마테크’를 찾아 다시 처음부터 기나긴 여정을 걸어야할 지도 모른다. 이번 포럼에 참여한 관계자와 관객들 모두는 너나할 것 없이 이 소중한 공간이 계속해서 유지되길 바라며, 시네마테크에 대한 깊은 애정을 고백했다. 여기에 납득 불가능한, 비상식적인 현 상황에 답답함을 느낄 수밖에 없는 이들의 탄식 또한 깊었던 시간을 두번째로 담아본다.







김성욱(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래머) : 다른 기관에서 활동하지만 같은 고민을 안고 있는 시네마테크의 관계자들과 시네마테크의 미래가 어떻게 될 것인가를 논의해보자는 취지에서 이번 친구들 영화제 기간에 포럼을 마련했다. 앞서 각 기관의 시네마테크 활동 내력과 여러 현안 문제에 대해 어떻게 대처하고 있고 어떤 의견을 갖고 있는지 들어봤다. 오늘 포럼에 참여해주신 관객 분들의 얘기도 듣고 싶다. 어떻게 이 자리에 오게 되었고 시네마테크에 대한 어떤 생각을 갖고 계신지 말씀해 주신다면.

관객1 : 시네마테크를 다니기 시작한 것은 중학생 때 부산에서였고 지금은 고등학생이다. 재작년 월드시네마 상영 때부터 시네마테크 부산에 다녔다. 부산이 아무리 국제적인 영상도시라 해도 아무래도 서울보다는 다양한 영화들을 접하기 어려운 편이다. 그래서 멀티플렉스 밖의 영화들을 찾아다니다 보니 자연스럽게 시네마테크 부산을 알게 되었다. 지난해 서울로 올라와서부터는 서울아트시네마를 다니게 되었다. 부산과 서울은 프로그램이나 관객 분위기에서도 많은 차이가 있다. 근데 다니다보니 부산이나 서울이나 생각보다 학생들이 많다는 생각은 했다. 요즘은 서울아트시네마에 출근하다시피 한다. 가끔은 어려운 영화들도 있지만, 대부분 보고 나면 놀라운 작품들일 때가 많다.

관객2 : 작년 말부터 아트시네마를 알게 되었다. 영화 보러 갈 데를 찾다가 오게 되었는데 분위기나 사람들의 생각이 나와 비슷해서 좋다. 친구들 영화제도 얘기를 많이 들어서 보고 싶었고, 사람들의 생각을 듣고 싶어서 시네토크가 마련된 영화를 위주로 선택해서 보고 있다. 오늘도 얘기를 듣고 싶어 포럼에 참여했다. 극장은 친구랑 자주 오는 편인데, 새로운 세상이지만 포근한 느낌을 주는 공간이라고 느낀다. 요즘 사는 게 쉽지 않은데, 극장에 가면 많은 위로를 얻는다. 이번에 영진위가 지원을 감축한다는 얘기를 듣고, ‘이 공간이 없어지면 안 되는데…’하고 걱정을 많이 했다.




김성욱 : 그러고 보면 시네마테크의 역할 중에 피난처 같은 공간도 있는 것 같다. 최근에는 감독이 시나리오가 안 써질 때나 일자리를 잃은 영화지 기자가 저녁에 와서 영화를 보는 이야기를 나누곤 한다. 그렇게 시네마테크 극장은 마치 상실감을 가진 사람들에게 피난처가 되기도 한다.

허문영(시네마테크 부산 원장) : 아무래도 멀티플렉스에서 <과속스캔들>을 보는 것과는 전혀 다른 경험이라고 생각한다. 거기서는 같은 영화를 보면서 내 옆에 앉은 사람이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할 거라고 기대할 수 없다. 하지만 시네마테크에서는 친구 같은 느낌, 서로 말하지 않아도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일 거라는 느낌을 받는다.

관객3 : 개인적으로는 자기만 아는 미술관을 찾아가는 느낌과 비슷하다. 감독 회고전이나 예술 영화들이 처음에는 난해하게 느껴졌지만, 1년 정도 지나니까 마치 내가 원하는 화가나 화풍을 보기 위해 작은 미술관을 찾는 기분이 들었다. 이제 극장을 다닌 지 2년 정도가 되니까 시네마테크가 마치 운명공동체처럼 느껴져서 운영진의 프로그래밍에 대한 고민들이 내 고민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내년에는 어떤 영화들을 틀지 너무 궁금하다. 오늘 포럼에 참여하게 된 것도 여기 계신 분들은 어떤 고민들을 갖고 있을지 궁금해서다.



김성욱 : 당장 시네마테크가 안고 있는 곤경은 영진위와의 계약 중단과 공모전이다. 얼마 전 영진위로부터 시네마테크 지원사업이 공모 형식으로 전환한다는 공문을 받았다. 내용은 매우 간단한데 "2009년 영화진흥위원회와의 계약이 중단되니, 2009년에 진행될 공모전에 공모해 좋은 결과를 얻길 바란다"는 것이었다. 매우 당황스러웠다. 아마 이번 주가 공모제와 관련해서 중대한 시기가 될 것 같다. 앞으로의 추이는 더 지켜봐야할 것 같다. 

허문영 : 지금 방식의 지원 제도만으로도 시네마테크 운영의 안정성이 완전히 보장되지 않는다. 공모전은 불안정성을 더 높이는 것이고, 운영 주체들에게는 90년대 초중반으로 되돌아가야하는 상황이다. 한국시네마테크협의회에게는 위기국면이 아닐 수 없다. 실제로는 그 반대가 되어서 안정성을 높여가야 한다. 문화 경쟁력을 입버릇처럼 말하는데, 그렇다면 전용관도 짓고 운영의 절반 이상을 공적 자금으로 부담할 수 있어야 하는데, 이것은 현상유지도 않겠다는 것이다. 전혀 납득할 수 없는 상황이다.

김성욱 : 당장 3월부터가 문제다. 결국 공모제가 끝날 때까지 진행 중인 기획전이나 사업내용을 중단하거나 연기해야 할지도 모를 일이다. 공모전의 결과도 보장할 수 없기 때문에 곤란해질 수 있다. 공모제라는 것이 매년 1년 단위 계약이니 매년 공모제에 참여하려 씨름해야 하고 그러면 프로그램이나 운영의 자율성에 심각한 불안정성과 통제가 따를 수 있다. 



관객4 : 공모제에 관한 기사를 보았다. 기사 내용대로라면 문화 사업 전반을 공모 형식으로 전환시키겠다는 근본적인 정책 방향이 엿보였다. 그것은 문화 사업들을 뿌리부터 흔드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이번 시네마테크를 둘러싼 문제는 그 시발점이란 생각도 든다.

김성욱 : 이런 결정이 문화적으로 어떤 위기인지 못 느끼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이번 사태를 보며 그 동안 시네마테크와 관련한 문제를 제대로 이해시키지 못했던 것이 지금 이렇게 단순한 방식으로 진행되는 상황을 만든 것 같다. 그래서 그들에게 합리적이고 상식적인 방식이 통용될지도 의문이다. 프랑스의 경우 랑글루아 사태를 겪으면서 공적 자금을 투여해 시네마테크를 지원하는 것이 민간의 자율성을 위협할 수 있다는 교훈을 얻었다. 현재 CNC와 국가가 시네마테크 프랑세즈의 운용비용중 80% 이상을 지원하면서도 자율성을 보장해 주는 것은 68년도에 얻은 경험을 통해 문화적 합의를 이룰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문제는 단순히 법률적인 문제로 다룰 수가 없고 문화적 합의가 필요한데, 아직 우리 사회에선 그런 합의에 도달하지 못했다고 할 수 있다.

허문영 : 지금의 지원체계가 만들어진 것은 90년대 문화학교 서울 시절부터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순수하게 쌈짓돈을 모아 함께 좋은 영화들을 공유하겠다는 의지에서 출발했던 것의 성과다. 그런 이들의 운동이 성실히 수행되어 온 결과가 공적으로 인정되고 그것이 지속적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지원해주기 위한 것이었는데 영진위의 이런 결정은 어려운 시절에 오랫동안 의미 있는 운동을 이어 온 운영주체들의 노력을 모두 무화시키는 것과 다름없다. 90년대부터 뛰어난 사람들이 다른 것들을 포기하면서까지 이 운동에 뛰어들었고, 많은 사회적 비용 또한 치루면서 이룬 성과다. 이번 상황을 보면 문화적 합의가 어느 정도까지 이루어져야 정치적인 외풍을 막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까지 든다.



관객5 : 이런 시기에 서울아트시네마를 찾는 관객들에게 주문하고 싶은 바가 있다면 듣고 싶다.

김성욱 : 고작 1개관에 불편한 시설의 극장이지만 이 공간을 만드는 데도 거의 10년 이상의 긴 시간이 걸렸다. 이런 공간이 한 번 사라지거나 무너지고 나면 다시 건설하는데 두세 배, 아니 열 배 이상의 시간이 걸릴 것이다. 잃어버린 공간과 상처를 치유하고, 그 동안의 시간과 노력을 대체할 수 있는 새로운 공간을 찾기란 거의 불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물론 다른 이들이 할 수도 있겠지만. 이번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의 슬로건이 ‘공간의 발견, 행복의 시네마테크’였었다. 개막을 할 때는 몰랐는데, 상황이 2~3주 만에 이렇게 급작스럽게 변화하고 나니 이제 정말 공간을 새로 발견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 되고 말았다.


정리 : 이후경


※ 지난 2월 14일 열린 ‘영화의 고전과 미래의 시네마테크’에 관한 포럼에서 논의된 내용은 ‘영화의 고전과 미래의 시네마테크’에 관한 포럼 [1]편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오는 2월 28일 토요일 2시에는 2차로 최근 시네마네크와 관련한 긴급한 문제와 관련해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긴급 토론회 - 시네마테크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라는 긴급 토론회가 열린다. 김영진(영화평론가), 오승욱(영화감독), 정윤철(영화감독), 김성욱(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래머), 김홍록(한국시네마테크협의회 사무국장) 등이 참여해 현재 위기라 할 수 있는 시네마테크의 문제를 논의한다. 시네마테크에 관심을 갖고 있는 많은 관객들이 함께 참여해 시네마테크의 고민을 공유하는 뜻 깊은 자리가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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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고전과 미래의 시네마테크’에 관한 포럼 [1]


지난 2월 14일 오후 1시 인사동 카페 갤러리 "리틀 차이나"에서는 소중한 자리가 마련됐다. 서울 및 지역에서 꾸준히 시네마테크 활동을 펼치고 있는 관계자들과 시네마테크 전용관인 서울아트시네마를 찾은 관객들이 모여 현재 혹은 미래의 시네마테크에 대한 고민을 나눈 것. 이 자리는 2009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 기간 중 이벤트성의 영화 상영 외에 비슷한 고민을 하는 또 다른 친구들과 시네마테크 본연의 문제를 놓고 보다 뜻 깊은 논의를 해보자는 취지에서 열린 포럼이다. 서로 다른 지역, 서로 다른 기관에서 묵묵히 시네마테크 활동을 펼쳐온 토론 참가자들 모두는 그간의 역사를 되짚어보며 아직 산재된 현안의 문제가 많지만 그래도 시네마테크 운동이 지속되어야 한다는 견해에 한 목소리를 냈다. 이날 토론자로는 이번 포럼을 주최한 서울아트시네마 김성욱 프로그래머와 시네마테크 부산의 허문영 원장, 그리고 한국영상자료원 프로그램팀의 오성지 팀장이 참석했다. 영화를 사랑하고 영화를 배우고 영화를 통해 세계를 알고자 했던 사람들에게 피난처가 되어 온 시네마테크는 미래적 관점에서 과거의 영화들을 보존하고 현재의 관객과 만나기 위해 어떤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무엇을 시급하게 고민해야 할까. 그들이 걸어온 길을 뒤돌아보고 앞으로 고민해야할 문제들을 나누면서 제기된 내용을 여기에 싣는다.






김성욱(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래머) : 이번 영화제에서는 영화를 선택해 준 친구들 외에 또 다른 친구들을 소개하는 자리도 마련했다. 오늘 포럼 토론자로 나선 다른 지역, 다른 기관에서 시네마테크 활동을 하고 계신 여기 두 분이다. 오늘 포럼은 ‘영화의 고전과 미래의 시네마테크’라는 주제로 얘기 나누고자 하는데, 먼저 각 기관의 역할과 내력에 대한 짧은 설명이 필요할 것 같다. 서울아트시네마부터 간략히 말씀드리자면 민간영역에서 가장 먼저 만들어진 시네마테크로써 2002년에 아트선재센터에서 출발하여 지금의 낙원상가에 위치하게 되었다. 그동안 비용은 영진위에서 32% 정도를 지원했고, 나머지는 협의회나 관객수입, 별도의 사업, 후원금 등으로 꾸려왔다. 특히 후원금은 필름 구매에 써오기도 했다.

오성지(한국영상자료원 프로그램팀장) : 한국영상자료원은 1974년 지금의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가 영화진흥공사였던 시절에 운영했던 필름 보관고 형식에서 출발했다. 그 후 1995년에 서초동, 2004년에 상암동으로 이전하게 되었고 현재 각각 300석, 150석, 50석의 3개관을 운영 중이다. 한국 고전영화를 많이 상영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고, 보통 감독이나 배우 중심의 회고전, 특별전을 열어왔다. 100% 국고로 운영되는 문화부 산하단체로 공공기관 성격이 강하고, 현재로써는 필름 복원, 보존, 상영을 모두 아우를 수 있는 유일한 기관이라고 할 수 있다.

허문영(시네마테크 부산 원장) : 시네마테크 부산은 1999년 8월에 설립되었다. 앞서 1996년 부산국제영화제가 예상 밖의 대성공을 거두자 부산에서는 시를 국제적인 영상도시로 성장시키겠다는 관민합의가 형성되었다. 시네마테크 설립은 그런 전략적 합의의 일환으로 영화제가 제안하고 부산시에서 수락해서 이루어졌다. 요트경기장 근처에 160석의 1개관과 사무실을 포함한 건물에 위치하고 있고, 운영비는 부산영화제와 부산시가 5:5에서 4:6정도로 부담하고 있다.



김성욱 : 세 기관의 역사는 조금씩 다르지만 시네마테크가 지닌 성격, 즉 고전영화 상영과 레퍼토리 상영의 형식을 공유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특히 한국영상자료원에서는 최근 영화박물관을 개관, 상영과 전시를 동시에 진행할 수 있는 가장 모범적인 모델을 보여주고 있는데.

오성지 : 한국영상자료원에는 80년대부터 심의 등급을 받은 필름들이 1벌씩 보존용으로 보관되어 있다. 프랑스 같은 국가처럼 기증이나 의무 납본제는 아니고 국가에서 1벌씩을 구매하는 형식이다. 보관을 맡을 때 상영 승인을 함께 받는 저작권법이 따로 마련되어 있기 때문에 원내 상영이 자유롭다. 그 점을 살려 최대한 한국고전영화를 많이 틀려고 한다. 또 한국영화박물관도 개관해서 한국영화사 100년을 알기 쉽도록 풀어놓았다. 상영과 전시를 함께 하는 예로 이번 2월 26일부터 열릴 하길종 추모전 때는 기획 전시도 함께할 예정이다. 영화를 통해 그의 작품세계를 이해하고 전시를 통해 더 다양한 면들을 살펴볼 수 있도록 했다.

허문영 : 시네마테크 부산에서는 전통적인 고전 중심의 프로그램과 최근의 독립, 예술영화들 중 상영기회가 적었던 작품들의 레퍼토리 상영을 반반씩 진행하고 있다. 프로그램 이외에는 연중 이론과 실습 강좌를 진행하며 대학에서 영화를 공부하지 못한 사람들에게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영화전문자료실도 운영하면서 영화 공부하는 학생들에게 필요한 최근 문헌 자료들도 제공하고 있다. 작년 1월부터는 한국영상자료원의 분원 역할도 맡게 되어 1,200편 정도의 디지털화한 보관용 자료들을 받아 관내 상영을 할 수 있게 되었다. 2007년부터 부산시에서 장기적인 아카이브 설립 필요성에 따른 예산을 지원받아 아시아 영화 중심의 아카이브를 구성하려 하고 있다. 일차적으로는 부산국제영화제의 뉴 커런츠 섹션에 포함된 젊은 아시아 작가들의 영화들을 우선적으로 구입하려고 하고 있다. 그 외에 아시아 고전들도 구매하고 있는데 지금까지는 장철과 마스무라 야스조의 영화를 포함한 30여 편의 필름과 판권을 보유하고 있다.



김성욱 : 아카이브를 구축할 때 작품의 선택기준은 각 기관에서 어떻게 설정하고 있나? 

허문영 : 먼저 경제적인 조건이다. 프린트와 아카이브 관내 상영권을 함께 사는 것이 가장 좋은데 신작들의 경우는 가능할 때가 많지만 고전들의 경우는 힘들다. 특히 오즈의 영화를 사려고 하면 쇼치쿠 같은 곳에서는 아직 상업적으로 팔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부분 판권은 아예 취급도 안 해준다. 그래서 상업 판권을 협상을 잘 해서 구매하는 방향도 고려중이다. 그렇게 들여왔을 때 상대적으로 고전적인 가치를 가지면서 다른 아트플러스 체인 극장들에서도 틀고 싶어할만한 영화들을 고른다. 그래야 비용을 어느 정도 충당할 수 있다. 이 방침이 장기적으로 유효한지는 아직 모르겠다. 아마도 앞으로 장기적으로는 샤트아지트 레이나 르트윅 가탁 같은 인도감독들이나, 서아시아, 남아시아 영화들 중심으로 구성해 가야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김성욱 : 서울아트시네마 상황도 비슷하다. 시네마테크 부산을 염두에 두고 비아시아 영화들, 그 중에서도 제법 상영하기가 손쉬운 프랑스를 제외한 유럽영화들을 염두에 뒀다. 가장 상업적인 방식으로 배급하는 미국의 경우에도 고전영화들을 구입하기가 가장 어렵다. 여기서 또 문제는 방향을 작가 컬렉션으로 잡을 것이냐, 100편 정도의 작품을 엮어서 전체 모양새를 잡을 것이냐다. 세르지오 레오네 컬렉션은 전자의 경우고, 할리우드 고전 컬렉션은 후자의 경우다. 그 역시도 구입이 어려운 작가들도 있고, 각 배급사마다 판권료가 너무 높은 경우도 있고, 시네마테크의 비영리 상영을 원칙적으로 고려하지 않는 배급사들도 일부 있어 어려움이 많다. 가령, 할리우드 고전 컬렉션으로 하워드 혹스의 영화들 대부분이나 존 포드의 작품들, 특히 <수색자>와 <리버티 밸런스를 쏜 사나이>와 같은 경우는 시네마테크의 비영리 판권 구매가 어려웠다.  







김성욱 : 조금 전에 아카이빙 문제에 대해 얘기했는데 다른 문제들도 있다. 바로 관객의 문제다. 시네마테크에서는 과거 영화들을 주로 상영하는데, 영화를 보는 주 관객층은 젊은 세대란 점이다. 물론 서울아트시네마의 경우 미국 고전영화를 상영할 때 나이드신 관객분들이 오기도 한다. 두 기관에서는 프로그래밍할 때 관객층을 고려하는지 어떤 문제들에 부딪히고 있는지 듣고 싶다.

오성지 : 자료원은 오히려 반대다. 기관 성격상 한국고전영화들을 많이 상영하는데 대부분의 관객층은 장노년층이나 연구자들이어서 젊은 관객층을 개발하는 것이 가장 큰 문제가 되고 있다. 그 방안으로 시도했던 것이 <청춘의 십자로>인데 성공적인 케이스였다. 아무래도 30년대 무성영화다보니 빠른 템포에 익숙한 젊은 관객들에게 어필하지 못할 것을 염려해 변사공연을 결정했다. 30년대 영화를 체험할 수 있는 방식으로 하되 너무 똑같이 재현하면 지루할 수도 있어서 약간의 노래 공연 방식을 추가했다. 김태용 감독과 박창희 음악 감독이 참여해주셔서 고전을 보는 방식을 현대적인 방식으로 개발해냈다.

허문영 : 부산도 시네마테크라면 당연히 틀어야한다고 생각하는 영화를 다 못 틀고 있다. 복합적인 문제겠지만 가장 큰 요인은 아무래도 관객의 기호와 관련된 문제다. 작년에는 부산에서 한 번도 소개되지 않은 고전 중의 고전들을 관객이 감소하는 한이 있더라도 집중적으로 소개해보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예를 들면 니콜라스 레이나 로셀리니, 칼 드레이어 같은 감독들을 소개할 생각이었다. 그 워밍업으로 연초에 장 르누아르 전을 했고 프리츠 랑의 독일시절과 할리우드 시절을 묶어서 야심찬 준비를 한 적도 있다. 하지만 결과는 쓸쓸했다. 그런데 사실 르누아르나 랑 정도면 당시에는 대중영화였고 고전 중에 재밌는 영화들에 속한다. 그래서 로셀리니, 드레이어를 상영하면 어떻게 될까 고민할 수밖에 없었고 방향 수정이 불가피해졌다. 또 서울아트시네마와는 다르게 관객층도 대부분 30대 이상이라 그들에게 가장 크게 호소하는 영화들은 일본 고전이고 미국 영화들에 대한 선호도는 낮은 편이다. 2005년에 했던 로버트 알드리치 전은 서울에선 3,000명이 넘게 들었지만 부산에서는 250명 정도였다. 반대로 나루세 미키오 같은 경우는 비슷했다. 인구대비로 봤을 땐 이상할 정도로 선호도가 높은 것이다. 어떤 기획전을 할 때 관객 선호도를 잊고 프로그래밍 한다는 것은 사실 현실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거의 불가능한 일이라고 할 수 있다.




김성욱 : 상영의 방식과 관련한 문제도 논의가 필요하다. 필름 상영을 고집하다보면 실제적인 문제들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 실제로 최근 프랑스 외무성이나 괴테 인스티튜트에서는 자국 영화들을 외국에서 상영할 경우 디지털 포맷을 이용할 것을 권유하고 있다. 말하자면 앞으로 파스빈더 영화를 필름으로 보기 어려워진단 얘기다. 그렇게 디지털화될 경우 시네마테크는 원래의 상영 방식, 즉 필름 상영을 고집하기 어려워질 것이고, 프로그램들도 갈수록 편협해질 수밖에 없다. 필름 상영은 프린트를 찾거나 운송비용 등의 부가적인 비용이 점점 더 많이 들고 있다. 이런 문제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고 있는지.

오성지 : 한국영상자료원에서도 필름 복원 및 상영에 비용이 굉장히 많이 들어서 필름 상영을 고집할 것인가, 블루레이나 DVD같은 디지털 상영으로 손쉽게 갈 것인가 하는 문제를 고민하게 된다. 우선은 35미리 필름 상영을 고집하고 있고 최대한 그 영화의 오리지널 상영 방식을 고집하려고 한다.

허문영 : 필름 상영에는 상영료, 운송료, 자막운용 등 비용의 문제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디지털화가 바람직하다고 생각지는 않는다. 예를 들어 블루레이 같은 경우는 저작권자가 디지털 리마스터링을 하기 위해 몇 억씩 들여야 한다. 그런 점을 고려하면 니콜라스 레이의 <그들은 밤에 산다>같은 영화는 비용해소가 안되기 때문에 블루레이로 나올 수가 없다. 상영 포맷으로는 용이할지 몰라도 고전들의 경우에는 디지털화에 큰 기대를 걸 수는 없다고 본다. 또 괴테 인스티튜트처럼 고전들을 디지털화하는 경우도 그것이 전 세계의 시네마테크들에서 수용할 수 있는 방식인지 고려해야한다.

오성지 : 아무래도 우리나라가 기술도 뛰어나고 정부 측에서도 디지털 콘텐츠들을 선호하다보니 한국영상자료원에서도 한국고전들을 디지털로 복원하거나 디지털로 VOD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하지만 그건 예전엔 한국고전들을 보기가 워낙 어려웠기 때문에 접근성을 높이려는 차원에서 제공하는 서비스다. 사실 보존기간을 고려했을 때도 필름이 가장 안전한 형태다. FIAF에서도 디지털화 얘기가 많이 나오고 있지만 큰 기대는 않고 있다.

김성욱 : 아무래도 시네마테크들에서는 시간이 지나도 35미리 필름 상영 방식이 유지될 것 같다. 필름 프린트를 뜨거나 디지털화를 할 때는 활용도나 수익성이 고려될 수밖에 없고 특히 디지털화에선 그 영화가 하나의 콘텐츠로써 유통되면서 얼마나 수익을 발생시키는지가 더 많이 고려된다. 만약 디지털화가 더 활성활 될 경우, 수익성이 높지 않은 고전들의 경우에는 필름으로 만들어지지 않을 수도 있어, 디지털화가 안 된 채로 사장될 가능성도 있다. 


정리 : 이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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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친구들영화제' 여는 서울아트시네마 김성욱 프로그래머 인터뷰

 

지난 1월 29일부터 서울아트시네마에서는 '공간의 발견, 행복의 시네마테크'라는 모토 하에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가 열리고 있다. 박찬욱, 류승완, 김지운, 배창호, 이명세, 홍상수 등 한국을 대표하는 감독들에서부터 권해효, 하정우, 안성기 같은 배우들까지, 이들이 '시네마테크의 친구들'을 자처하고 나선 데에는 이유가 있다. 영화의 역사가 저장되고 축적되는 시네마테크라는 공간의 중요성에 비해, 불안정한 위치가 계속되는 가운데 여전히 존폐의 위협에 시달리고 있기 때문이다. 아니 그 위협이 최근 들어 더욱 커졌기 때문이다.

프레시안은 영화비평웹진 '네오이마주'와 함께 영화평론가로도 활동하는 서울아트시네마의 김성욱 프로그래머를 만나 이번 친구들영화제와 시네마테크의 현재에 대해 긴 대화를 나눴다. 여기 그 전문을 게재한다. (편집자 주)

- 작년 1월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의 모토가 '시네마테크 영년'이었다. 1년이 지난 지금 소회가 어떤가?

당시 그 모토를 내놓은 것은 2008년엔 시네마테크 전용관이 첫 삽을 뜰 수 있겠다는 기대 때문이었다. 새로운 포메이션이 필요할 거라 생각했으니까. 정권이 바뀐 뒤 영화정책도 상당한 변화를 겪으면서 결국 작년 2008년 하반기에 시네마테크 전용관 사업은 현상적으로 백지화가 되어버렸다. 결과적으로 말 그대로 '영년'이 돼버렸다. 새롭게 '정립'하자던 게 새롭게 '시작'해야 하는 상황이 돼버렸다. 시네마테크의 재정적인 재정적 문제는 물론 프로그램 편성에 있어서도 어려움이 크다. 다만 2008년부터 새로이 시네마테크 컬렉션을 시작해 시네바캉스 때 세르지오 레오네 영화를 선보일 수 있었다. 이 사업은 2009년에도 이어진다. 이번엔 헐리우드 고전 컬렉션을 하게 된다. 이것이 가장 큰 변화겠다.


- 친구들 영화제가 처음 전용관 건립을 외치며 시작됐던 만큼, 전용관이 백지화된 상태에서 올해 전용관 건립 얘기가 다시 전면으로 나올 줄 알았다. 그런데 오히려 올해 모토는 '공간의 발견, 행복의 시네마테크'이다. 다른 전술을 써야겠다고 판단한 것인가.

당장 해결할 수 있는 문제도 아니지 않은가. 2002년부터 10년 안에 해결하자는 게 목표였는데 지금으로선 영 불투명해보인다. 그렇다면 결국 현재의 한정된 공간 안에서 어떻게 풀어나갈 것인가가 중요해진다. 반어법적 수사인 셈인데, 이 상황에서도 행복하게 살자는 게 그 모토의 의미다. 물론 궁극적인 목표는 전용관 설립이지만.

- 전면적인 변화가 일어나고 있지만 어쨌든 지금의 공간을 지키면서 가겠다는 의미에서 공간을 긍정하는 것으로 보인다. 현실과 이상이 공존하는 모토라 여겨지는데.

현실과 이상을 연결한다는 의미도 있을 것이다. 나로서는 '긍정'이란 말에 지금까지 이 공간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유지돼 왔는지 다시 한 번 살펴보자는 의도도 담고 있다. 영화정책과 관련해서도 나의 가장 큰 불만은 언제나 그것이 왜 이런 식으로 흘러오고 만들어져왔는지 따져보지 않고, 모든 걸 지금 시점에서 무조건 새로 재편성해 나가려는 분위기다. 작년 영진위의 전용관 정책도 과거를 재검토하지 않은 채 미래의 어떤 부분들을 끄집어 와서 이게 더 낫지 않냐며 대안 아닌 대안을 내놓은 것이다. 이게 훨씬 위험하고 더 큰 문제라 생각한다. 사회적으로 보면 중소기업들이 뭘 만들어놓고 나면 뜬금없이 대기업이 들어와서 현상을 재편해버리는 식이 존재하는데, 이것이 문화와 예술의 영역에서도 존재한다는 건 대단히 위험하다.

'행복한 시네마테크'란 게 뜬금없을 수도 있겠지만, 그런 현실이 있기 때문에 결국 공간을 재긍정하자는 것이다. 결국 영화에 있어서 행복을 추구하자는 얘기다. '행복 추구권'이라는 건 미국에서의 경우 '누구나 행복을 추구할 수 있다'는 권리가 아니라 '인간이라면 행복을 추구해야 한다는' 의무로 주어져 있다. 그렇다면 시네마테크와 영화와 관련해서도 충분히 행복을 추구할 권리와 의무가 있는 게 아닌가.

- 낙원상가 재개발 문제와도 관련이 있는가. 2009년에 한다고 발표가 났다가 흐지부지된 듯한데.

아직 구체적이진 않은 것 같다. 하지만 얼마 전 용산 철거문제도 있었지만, 재개발이라는 게 어느 순간 갑자기 진행되는 면이 있지 않나. 예상치 않은 순간에 그런 일이 발생할 수도 있겠다 생각한다.

▲ 2009년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
- 예전 아트선재센터 얘길 해보자. 아트시네마가 나간 뒤 몇 년간 아무 움직임이 없다가 최근 시네코드 선재로 재개관했다. 그걸 보는 감정도 그리 좋지는 않을 것 같다.


다른 예술영화전용관이 되는 것 자체는 긍정적으로 보지만, 개인적으로 마냥 좋을 수만은 없다. 씨네코드 선재가 된 게 하필 시네마테크 전용관이 백지화되던 바로 그 시기와 겹치기도 했고.

기억이란 건 공간과 연관되는 법이다. 장소가 변하면서 이전의 기억이 전소돼 버리는 건 그리 바람직한 것이 아니다. 장소가 사라지게 되면 기억도 유령처럼 떠돌게 된다. 2002년 시네마테크 전용관을 구체적으로 고민하고 발언한 것도 시네마테크가 영화를 둘러싼 기억의 거처가 되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하지만 있던 장소도 없어지거나 다른 식으로 변경되는 환경 하에서는 영화를 둘러싼 기억 자체가 위험한 상황에 빠질 수 있다. 최근에는 시네마테크를 둘러싼 기억도 흔적도 없이 쉽게 사라져버릴 수 있겠다는 걱정이 든다. 서울 시내 곳곳이 그렇지 않나. 시청광장도 재건축을 하며 논란이 되기도 했고.

더 나아가 기억이 형상하고 있는 이야기와 역사란 것 자체가 너무 쉽게 부정되는 듯 보인다. 영화가 사회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처럼 영화를 상영하는 극장도 자유롭지 못하다. 시네마테크의 문제는 곧 현실사회의 문제이기도 하다. 기억이나 역사의 가치를 존중할 수 있어야 한다. 기억, 역사, 스토리란 것은 결국 아이덴티티를 형성하는 것이다. 여기에 위기가 온다는 건 결국 아이덴티티에 위기가 온다는 것이다. 공간 역시 정체성의 위기를 초래할 수 있다.

- 이번 친구들영화제나 시네바캉스에서 카탈로그 발간하려는 것도 기록과 역사 축적을 위한 몸부림인 셈인가.

내부적으로도 기록을 남겨놓는 게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더 적극적으로는, 그 기억을 소유한 사람들의 기억이 어떻게든 물질화될 수 있도록 노력이 필요하다. 영화란 것도 눈에 보이지 않는 생각과 주제를 눈에 보이는 것으로 물질화한 결과다. 그래서 오히려 올해가 더 영년의 느낌이 강하다. 결국은 기억과 역사를 둘러싼 싸움이 될 것이다. 어떤 기억을 끄집어내어 앞으로 나갈 것인가 하는 문제는 중요하다. 1, 2년 사이에 상당한 변화가 일어날 조짐이 보인다.

- 서울아트시네마는 영진위의 지원에 많이 기대고 있는 것으로 안다. 앞으로 상황이 어떻게 변할 거라 전망하고 있나?

퍼센테이지만 따지면 영진위의 지원은 전체 예산 중 30%로 정도로 그리 높지 않다. 문제는 이것이 필수적인 공간 임대료 등에 해당되기 때문에 절대적이라는 것이다. 지금의 한국은 정상적인 생각들이 별로 유지되진 못하는 사회고, 자명하고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금방 쉽게 사라질 수 있다는 게 현실이다. 그렇다면 시네마테크도 그리 자명한 곳은 아닌 듯하다. 눈에 드러나진 않지만 위기적 국면이란 생각은 많이 한다.

- 친구들영화제 이야기로 들어가 보자. 프로그래밍은 어떤 과정을 거치게 되는가?

친구들영화제는 바자회나 후원미술전처럼 일단 후원행사이기 때문에 참여하는 사람들도 후원의 의미로 참여를 한다. 이 분들이 최소 3편 정도를 추천해 주면 그 중 한 편을 결정하게 된다. 현실적으로 가능한 작품이 주로 정해지게 되니 최선의 선택이 아닐 수 있다. 아쉽기는 하지만 결핍을 드러내는 것도 중요하다고 본다. 실질적으로 필름이 오가고 한정된 시간 안에 필름이 상영될 수 있나 하는 물리적인 조건을 비롯해 많은 요건을 충족시켜야 하니까.

정가형제의 경우도 4, 5편을 추천했고 여기엔 안토니오니 감독의 영화도 있었는데, 좋은 상태의 프린트를 구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오히려 가장 어려울 거라 생각했던 타르코프스키 감독의 <거울>이 확정됐다. 변영주 감독의 경우도 여러 편의 역사극을 추천했으나 최종적으로 <란>으로 결정됐다. 류승완 감독의 경우 당연히 목록이 더 많았는데, 그중 몇 편은 이미 오승욱 감독의 선택작과 겹치기도 했다. 현실적으로 추천의뢰 받은 것 중 프린트 수급이 쉽지 않았던 게 많았다.

- 현실적인 선택이란 결국은 거의 프린트 수급의 문제인 셈인가?

그렇다. 또 작년 수급하던 시기가 환율이 엄청 올랐던 시기라, 제한적 상황이 많이 발생했다. 홍상수 감독의 경우 매년 한 편만 추천했었고 언제나 쉽게 성사되곤 했는데, 올해의 <탐욕>은 좀 어려웠다. 원래 헐리우드 고전 컬렉션에 포함해 사려고 했던 영화여서 프린트를 추적해보니 현재 남아있는 가장 긴 버전은 TCM에서 상영한 버전인데 필름으로 존재하지 않더라. (편집자 주 - 에리히 폰 슈트로하임 감독의 <탐욕>은 원래 7시간 20분 가량으로 완성됐으나 제작사에 의해 여러 차례 편집된 뒤 최종 140분 가량으로 개봉됐다. 이는 영화사에서 '산업'에 대한 '예술'의 패배를 상징하는 사건으로 회자된다.) 결국 가능한 것은 18프레임의 140분 버전이었다. 이것도 괜찮겠냐고 홍감독에게 물어보니, 예전에 본 것도 140분 버전이었다며 그 이상 긴 버전은 과욕이라고, 140분 버전도 충분히 의미가 있다고 대답하더라. 안성기도 배우 중심으로 <디어 헌터>, <아마데우스> 등을 포함해 4편을 추천했는데 결국 <미드나잇 카우보이>로 정해졌다.

▲ 탐욕

가장 큰 어려움을 겪은 건 박찬욱, 오승욱 감독의 '최선의 악인들' 상영작이다. 오승욱 감독의 첫 추천만 12편 가량이었으니까 잘만 됐다면 20편이 될 수도 있었다. 그런데 환율이 올라가니 경비가 두 배가 되더라. 예산 지원이 없는 상황에서 결국 상영작 수를 줄여 최종적으로 각 세 편씩 여섯 편이 됐다. 빠진 작품이 너무 많다.

- 기자회견 때 박찬욱 감독이 "20편 가량 하고 싶었지만 안 됐다"며 맛뵈기라 한 게 그 말이었나.

그렇다. 맛뵈기란 표현이 맞다. 진짜로 좋은 조건이라면 스파게티 웨스턴을 추천하듯이 25편 정도를 하면 좋았겠지만. 참여하시는 분들이 씨네토크 등에서 매번 원래 추천했던 영화도 같이 얘기하곤 하니까, 결국은 또 다른 방식의 프로그램이 존재할 수도 있었구나 생각해주면 좋겠다. 상상의 프로그램이 존재하는 거다, 결국은.

- 내년에도 그런 식의 게스트 프로그래머 방식이 계속될 예정인가?

그렇다. 자주 참여하시는 분들에게 독자적으로 프로그램을 꾸리도록 맡기는 건 '김지운의 B무비'나 '류승완의 액션스쿨'처럼 이미 전례가 있다. 앞으로도 진행할 생각 있다. 감독만이 아니라 평론가나 배우가 게스트 프로그래머가 될 수도 있다. 참, 재작년보다 상황이 안 좋아진 것 중 하나가 해외 초청 부문이 없어졌다는 거다. 작년 아벨 페라라 특별전처럼 원래 해외 초청 부문도 고려했지만 환율 때문에 포기했다.

- 물망에 오른 감독이 누구였는지 공개할 수 있나?

두기봉 감독도 있었고 미국과 유럽의 감독들이 있었다. 아무래도 힘들겠다 싶어서 초창기부터 접었다. 덕분에 올해 프로그램이 좀 심플하다. 게다가 참여할 수 있었는데 못 하신 분들도 꽤 된다.

- 모든 작품이 다 추천작이겠지만, 그래도 '이건 꼭 봐야 한다'는 개인적 추천작이 있다면?

글쎄... 놓고 보니 각각 이유는 다르지만 다 한 번씩 다시 들여다봐야 할 작품들이다. 지금의 시대적 분위기를 반영하는 영화들이 많다. <탐욕>과 <선라이즈>는 시대 안에서 사람들이 느끼는 육욕의 탐욕이나 이 사회에서 갖고 있는 불안, 본질적인 위험성 등을 다룬다. 예술이란 게 이 시대가 제대로 가고 있는가, 질문을 던지는 것 아닌가. 일견 문제가 없어 보여도 멘탈리티의 면에서 문제가 있는 건 아닌지, 사회가 정상적으로 흘러가고 있는지. <실물보다 큰>도 마찬가지다.

▲ 선라이즈

<4월>은 지금 이 시대에 잘 어울리는 영화다. 2월에 미디어법 통과 문제도 있지만, 미디어와 영화의 교투의 흔적들이 많이 들어있는 영화다. 옛날엔 극장에 가야 영상을 봤지만 지금은 텔레비전과 각종 다양한 미디어로 모두가 쉽게 영상을 접하며 미디어가 영상의 큰 부분을 차지한다. 이걸 반대로 얘기하면 영화하는 사람들이 미디어에 대해 많이 고민하고 잘못된 영상에 대해 문제의식을 가져야만 하는 시기이기도 하다는 얘기다. 작년 말 타종식에서 보도 영상의 문제도 있었고.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폭격과 관련된 영상들이나 미디어법 같은 문제를 돌아볼 수 있는 영화다. 이 작품을 추천한 정윤철 감독이 원래 사회 문제에 관심을 많이 드러내기도 하고, 당시 이탈리아와 지금 우리의 상황이 많이 비슷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배창호 감독이 추천한 <분노의 포도>는 대공황 기근 때문에 이주하는 과정에서 생겨나는 문제들을 다루는 영화로, 존 포드 영화중 사회적 리얼리즘이 가장 강하게 배어나오는 작품이다. 흥미로운 건 이 영화가 2, 30년대 대공황 기근을 다루고 있지만, 포드의 머릿속에선 19세기에 감자기근 때문에 아일랜드에서 이주해온 사람들의 이야기가 들어있었던 것으로 보인다는 점이다. 자기 선조들의 여정을 <분노의 포도> 안에 똑같이 겹쳐놓는 부분이 있다. 지금 우리 현실 하에서 재개발이나 경제적인 문제와 관련해 겹치는 면을 발견할 수 있는 영화다.

▲ 분노의 포도

<캘리포니아 돌스>는 상대적으로 희망적인 영화라 할 수 있다. 여자 프로레슬링의 세계를 다루고 있고 피터 포크가 그들의 매니저로 나오는데, 로버트 알드리치의 유작이라 더 의미가 있다. 마지막 장면이 매우 인상적이다. '링'은 그나마 규칙이 적용되며 승자가 결정되는 게임이 벌어지는 곳이지 않나. 지금 우리 사회는 규칙도 없는 게임이 강요되는 곳이니 말이다.

'최선의 악인들' 상영작들은 악인이 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오승욱 감독이 지적했듯, 사회에서 직접 본다면 접근하기 두려운 사람들이지만 자기들 나름의 원칙과 규율을 갖고 살아가려 했던 인물들의 모습이 드러난다. 범죄영화의 범주를 묶어놨다기보다 시대적 징후의 흔적이 드러난다고 볼 수 있다. 이명세 감독이 추천한 <카리비아의 밤>도 이런 괴로운 시대에 볼 수 있는 따뜻한 영화라 할 수 있다. 전반적으로 이런 때에 영화제를 하면서 어떤 영화를 보고 어떤 얘기를 나눌까 고민한 결과가 반영된 것 같다.

- 시대가 어지럽다는 사실이 친구들의 선택에도 영향을 미쳤다는 얘긴가?

그런 것 같다. <란>도 전쟁과 전쟁 이면에서 발생하는 허망함 등을 다루고 있지 않나. <미드나잇 카드보이>도 마찬가지다. 친구들 각자 고른 영화들이지만 각각 시대적인 곤경과 고통 불행, 이런 것 아래서의 사람들의 문제들을 다루는 작품들이다. 어떤 공통적인 멘탈리티가 보인다. 한 편만이 아니라 여러 편을 상영하면서 그런 주제의식이 더 잘 드러내게 되는 것, 그게 게스트 프로그래머를 도입한 이유인 셈이다.

영화란 게 90%의 사람이 보는 영화가 있고 10%의 사람이 보는 영화, 두 가지 종류가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셈이지 않나. 우리가 상영하는 영화는 10%가 보는 영화들이다. 그런데 과거적 시점에선 그 영화가 90%의 사람들이 보던 영화일 수 있다. 그런 영화를 90%까진 아니더라도 10%보다는 더 많은 사람들과 함께 보고 이야기하자는 취지가 있다. 훨씬 예외적인 선택을 할 수도 있었겠지만, 지금은 10%의 영화를 가지고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나야 할 시기라 생각한다.

어떤 하나가 변했을 뿐인데 전체 사회적으로는 10% 이상이 바뀌는 경우가 왕왕 있지 않나. 하나의 미세한 변화가 90%의 커다란 변화를 일으키기도 하고. 지금 영화를 가지고 어떤 고민을 주창해 나가야 하는가의 문제에 있어 시네마테크의 경우 10%의 영화를 갖고 그보다 더 대중적으로 사람들과 만나며 얘기할 필요성이 있다. 그런 게 이해를 받지 못한다면 시네마테크도 쉽게 없어질 것이다. 여기에 오는 사람이 모두 만족하는 것도 아니고.

- 얼마 전 실버영화관 개관 소식도 있었지만, 영화산업이 침체돼 있다 보니 과거 라이브러리 안에서 특별전, 기획전 등의 형태로 재상영되는 영화들이 많다. 새로운 걸 하기보다는 원래 있는 걸 재조합하는 셈인데, 시네마테크의 프로그래머로서 이를 어떻게 보는가?

관객들이 지속되지 못하는 조건들이 많은 것 같다. 시네마테크도 이제 10년이 됐는데 과연 관객이 축적됐는가. 2002, 2003년도에 왔던 사람들이 지금도 다시 오는가. 대부분은 젊은 시절에 좀 보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줄어들고, 새로운 세대의 관객들이 유입된다. 새로 온 사람들이 몇 년이 지나도 계속 올 수 있는 조건이 형성돼야 하는데, 반복이 불가피한 것도 그래서다. 예를 들어 4년 전 모리스 피알라나 필립 가렐, 장 으스타슈의 영화들을 틀었는데, 지금 시네마테크를 찾는 관객들 중 상당수는 그 영화들을 못 봤을 것이다. 새로운 영화들을 찾는 것도 중요하지만 새로운 사람들을 계속 찾아가는 것도 중요하다. 매번 신작만 찾아가는 건 일반 극장들이 갖는 전략이다.

그러므로 시네마테크에서는 재상영과 첫상영, 두 가지 배분을 잘 맞춰가는 게 제일 중요하다. 그런데 재상영이란 걸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아 생기는 문제들이 존재한다. 한마디로 '한번 봤으면 됐지 왜 또 보나' 식이다. 진정한 영화광이란 영화를 보고 글을 쓰고 결국 영화를 만드는 것이란 얘기가 있다. 그렇다면 2년 전 무르나우 회고전에서도 상영됐던 <선라이즈>의 경우, 두 번째 상영이니 언급도 두 배 이상이 돼야하지 않을까. 씨네필이란 말이 지금은 경멸적이거나 조잡스러운 뉘앙스도 갖게 됐지만,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씨네필이란 처음 보는 영화들에 열광하는 것뿐 아니라 그것에 대해 글을 쓰거나 다른 방식으로라도 영화를 알릴 생각을 하는 것이다. 그러나 대체로는 처음 상영하는 영화의 첫 프리뷰를 쓰는 데에만 너무 열광하는 듯하다. 새롭고 소개되지 않은 작품들을 찾아나가는 탐색, 이것이 다시 상영되거나 할 때 새로운 이야깃거리를 다리 끄집어내는 것, 이 두 가지가 병행되어야 한다.

- 전용관이 아니어서 어려운 부분이 있겠지만, 시네마테크에선 아카이브와 라이브러리 문제도 중요하지 않나. 지금은 너무 공간이 한정돼 있고 영화자료들이 대부분 사무실 공간 안에 있어 폐쇄적이다. 조금 더 오픈해서 밖으로 내보낼 방법은 없을까?

그걸 해보려 하는 게 '공간의 재발견' 아니겠는가. 원래 전용관 구상이 처음 될 때 가장 염두에 두었던 것도 그런 부분이다. 전통적인 관객이란 마치 플라톤의 동굴에 있는 죄수들처럼 한정된 공간 안에서 묵묵히 영화만 들여다보는 관객일 것이다. 그러나 이동이 자유로운 관객들을 설정하는 것도 공간을 변화시켜 나가는 힘이다. 박물관, 갤러리처럼 '방문자'로서의 관객 말이다. 예를 들어 묵묵히 시네마테크에 앉아 10년간 영화만 보는 관객이 있다고 치자. 과연 몇 퍼센트의 영화나 볼 수 있을까. 단지 영화 상영만이 아니라 책을 비롯한 다른 미디어 자료들도 볼 수 있고, 토론을 할 수도 있는 '자유로운 방문자' 층을 만들어나가야 한다. 전용관을 구상하면서 많이 고려했던 부분이지만, 한정된 공간 안에서는 그런 게 묻히기 마련이라 해결을 고민하고 있다. 제한적이긴 해도 현재 로비에 앉아있을 수 있는 공간이나 책을 읽을 수 있는 테이블을 만들어둔 상태다. 친구들영화제를 하면서 그 공간을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 관객들의 선택이 <열대병>이었는데, 다른 작품을 예상하고 있던 터라 다소 의아스러웠다. 당신은 어떻게 보는가?

투표에 의해 결정된 작품이다. 반대로 얘기하면 다른 작품을 민 사람들이 투표에 열의가 없었던 것일 수도 있겠다. 어떤 작품을 적극적으로 지지한다면 장렬하게 글을 쓰던가 할 텐데 그런 사람은 많지 않았다. 그럴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겠지. '참여'라는 게 여러 의미가 있는데, 영화를 보러 오는 것도 참여지만 글을 쓰는 것도 참여가 될 수 있다. 세상에 대고 빈정대는 건 쉽지만 참여해서 뭔가를 변화시켜 나가는 건 쉽지 않다. 외형적으로 그런 부분들을 좀더 대중화시켜나가는 게 필요한 듯하다.

- 천사들의 선택으로 상영되는 <무셰뜨>는 배우들이 필름을 기증했다. 어떻게 성사된 것인가?

배우들의 모임인 씨네마엔젤에서 이나영 씨를 통해 필름 기증을 하겠다는 제안이 먼저 왔다. 이나영은 고전영화도 많이 보는 사람이고, 아트선재 시절부터 아트시네마에 자주 왔던 데다 예전 인터뷰에서도 <무셰뜨>를 자주 언급한 바 있다. 나중에 보니 이나영뿐 아니라 박해일 등 많은 배우들이 포함돼 있더라. 매년 한 편씩 그렇게 진행할 수 있을 거라고 전망하고 있다. 작품들의 목록은 씨네마엔젤에서 선별할 수도 있겠고.

▲ 무셰뜨

- 다소 놀라운 얘기다. 배우들이 시네마테크나 고전영화에 진지한 관심이 별로 없다고 오해하거나 그렇게 믿고 싶어하는 경향이 강하다.

제안도 먼저 그쪽에서 적극적으로 해줬다. 우리뿐 아니라 독립영화를 비롯해 다양하게 지원을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영화란 게 원래 욕망의 투사되는 매체이긴 하지만 그 욕망이 과연 건전한가는 다른 문제다. 그 욕망을 해체하는 게 영화 및 예술의 기능이기도 하다. 게다가 영화가 하나의 투기이기도 한데, 그런 투기적 행위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게 영화를 보는 과정에서 중요한 부분이기도 하다. 어쨌든 누구나 다 각자의 시선으로 영화를 보며 각자의 욕망을 투사하게 된다. 영화라는 게 그렇게 자명한 게 아니기도 하고. 영화에 대해서 자꾸 이건 좋다, 이건 아니다 평가를 해나가는 것이 좋은 관객이라 오해되는 부분이 있다. 평가 이전에 그 작품이 존재할 수 있을지 없을지 '생산' 문제 자체를 고민하는 게 중요하다. 그러나 이런 문제는 민감하게 여기지 않는 것 같다.

- 민감하게 여기지 않는 게 아니라 무력감을 느끼는 게 아닐까?

힘들어도 뭐든 해야 하는 것 아닐까. 어디서 봤는지 기억은 안 나지만 인상깊게 본 말이 있다. "영화라는 건 늘 패배해왔다. 자본에도, 권력에도, 국가에도 패배해왔다. 마치 승리해온 것처럼 생각하는 건 환상이다."라는 거다. <탐욕>의 경우 7시간 반짜리가 그나마 버티고 남은 게 140분짜리다. 위대한 영화를 망쳤다고 분개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고, 영화란 게 그 모든 걸 거치고도 승리해왔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사실 이건 너무 희망적인 얘기다. 실제로는 <탐욕>의 초기에 편집되고 버려진 부분은 남아있는 게 전혀 없으니까. 그런 현실에 대한 인식이 필요하다. 영화는 늘 사라져왔고 늘 패배해왔다.

- 그 말은 역설적으로 매우 희망적으로 들리기도 한다. 이제껏 그렇게 패배해왔으니 지금의 이런 시련쯤은 아무것도 아니다, 라는. 결국 '뭐라도 해야 한다'로 다시 돌아오는 셈이다.

나도 역설적인 의미로 파악하고 있다. 그런 역사가 있었으니 과연 무엇을 할 것인가를 고민해야겠지. 그렇게 뭔가를 하기 위해 노력하다 보면 유지되는 부분도 더 커질 것이다. 친구들영화제의 경우만 해도, 단순히 영화를 상영한다는 의미뿐 아니라 시네마테크를 지켜주는 버팀목 역할을 하고 있다. 관객의 힘만으로는 지키기 힘든 게 사실이다. 작년도 어려웠지만 올해 더 어려워질 것 같은데, 친구들영화제같은 프로그램으로 시네마테크의 필요성이나 위상 같은 게 대중적으로 홍보되는 면이 있다. 그런 의미에서 여기에 친구들로 참여해주시는 분들에게 고마운 마음이 크다.

- 올해의 소망이라면?

아무래도 시네마테크로서는 전용관의 설립이 무엇보다 시급한 일이다. 문화와 예술의 영역에서 언제나 지원이 절실하다. 이번에 상영하는 구로사와 아키라의 <란>의 경우 구로사와 감독은 당시 일본에서 영화 제작의 자본을 구할 수 없었다. 그의 영화에 돈을 지원한 것은 프랑스였다. 당시 자크 랑 문화성 장관은 구로사와 감독에게 "일본에서 구로사와 같은 감독이 영화 자금의 조달을 할 수 없다는 것이 정말 이상한 일이다. 작품에서나 흥행에서 성공하고 있는데"라고 의문을 표했었고, 구로사와는 "일본 영화계의 수뇌부는 새로운 것을 하려고 하지 않는다. 영화를 사랑하지도 않고 이해하려고 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수뇌부로부터 미움을 받고 있다. 일본의 뛰어난 감독들은 다 죽고 나 혼자 노력하고 있을 뿐이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문화와 예술은 시간이 오래 묵으면서 깊어지는 것이라 생각하는데, 영화와 관련해선 어찌된 일인지 언제나 이런 단순한 사실이 부정되곤 한다. 과거를 지워버리면서 산업은 승리한 것 같지만 문화와 예술에서는 언제나 후퇴가 있었다. 지난 8년간, 아니 1999년부터 작가들의 회고전 필름 상영회의 역사를 보자면 이미 십 년이 지난 과거의 역사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가를 세밀하게 볼 필요가 있다. 부언하자면, 뉴욕이나 파리를 제외하자면 니콜라스 레이나 알드리치, 타르코프스키, 존 포드, 무르나우 등의 영화와 쉽게 만날 수 있는 곳은 많지 않다. 하지만 이런 일도 언제든 쉽게 부정될 수 있다. 거장들이 영화계에서 그렇게 쉽게 사라질 수 있듯이 말이다.

시네마테크를 전위라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사실 반대로 이곳은 후위라고 말할 수도 있다. 영화를 문화로, 예술로 생각할 수 있는 마지막 보루인 셈이다. 게다가 이곳은 가장 뒤늦게 변하는 곳이다. 영화는 산업으로 무성을 버리고, 흑백을 버리고, 필름을 버렸지만 이곳에서는 아직 그런 영화의 유산을 버릴 수 없다고 말하고 싶다. 언젠가 배창호 감독님이 "장 르누아르는 영화가 산업과 예술과의 싸움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지금은 싸움조차 이루어지지 못하고, 예술은 산업에 졌다"라고 말씀하셨는데 이걸 인상적으로 기억한다. 그래도 시네마테크에 오면 아직 그 싸움이 끝나지 않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올해의 소망이라면, 그래, 이랬으면 한다. 모든 불행에도 시네마테크에서 영화를 보며 그나마 잠깐이라도 행복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김숙현 기자,백건영 영화비평웹진 네오이마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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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무로국제영화제에 참석한 시네마테크 프랑세즈의 프로그램 디렉터를 만나 인터뷰한 내용을 <필름2.0>에 실었던 글이다. 
 

지속적인 영화 상영 보존의 길 : 김성욱, 장 프랑수아 로제를 만나다

충무로국제영화제에서 시네마테크 프랑세즈의 프로그램 디렉터인 장 프랑수아 로제를 만났다.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처음 인사를 한 이래로 나는 그를 몇 번 만났다. 3년 전 파리에서 그를 만나 짧게 인터뷰를 했던 것을 기억한다. 시네마테크 프랑세즈가 샤이오를 떠나 랑글루아 시절부터 염원했던 새로운 장소(최종적으로는 베르시로 결정됐다)로 이전하기 직전이었는데, 시네마테크의 새로운 공간 계획과 관련해 몇 가지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한 자리였다. 물론 프로그램에 대한 이야기도 나눴고, 시네마테크 서울아트시네마와 마찬가지로 민간에 의한 조직이지만 국가 재정 지원이 80%이고, 그럼에도 독립성을 유지하는 점이 부러웠다. 장 프랑수아 로제는 1992년부터 시네마테크 프랑세즈의 프로그래머로 활동하고 있는데 그가 첫 번째로 기획했던 ‘마리오 바바 회고전’을 뜻 깊게 생각하고 있었고, 법학을 전공했던 때문이었는지 ‘폐쇄’라는 주제로 정신병원과 감옥과 관련한 기획전을 열었던 것을 또한 즐겁게 추억했다. 이번의 만남은 시네마테크 프랑세즈가 새롭게 복원한 막스 오퓔스의 <롤랑 몽떼>(1955)의 복원판 상영과 관련해 이야기를 나누기 위함이었다. 물론 시네마테크를 둘러싼 현안을 더 논의하고 싶었다. 하지만 짧은 일정 때문에 그런 논의는 나중을 기약해야만 했다.




김성욱(영화평론가) 이번에 충무로국제영화제에 참여한 건 <롤라 몽떼> 복원판 상영 때문으로 알고 있다. 어떻게 이 영화를 시네마테크 프랑세즈가 복원하게 됐나?
장 프랑수아 로제 일단 이 영화는 올해 칸영화제에서 먼저 소개가 됐고, 7월에 시네마테크 프랑세즈에서도 야외에서 상영했었다. 11월부터는 파리의 두 곳 상영관에서 영화를 개봉할 예정이다. 시네마테크 프랑세즈에서는 영화의 복원 작업을 진행하고 있는데, 이번 복원은 관장인 세르주 투비아나와의 협의 하에 진행한 프로젝트였다. 사실 이 작품은 오래전부터 보지 못했던 영화다. 막스 오퓔스의 뜻대로 영화가 상영될 수 없었고 온전한 판본이 없었다. 프랑스 영화 역사에 있어서 중요한 작품이고 또 시네마테크 프랑세즈가 애착을 갖고 있는 작품이기도 했다. 작품의 판권을 가지고 있는 분은 제작자의 딸인 로렌스 브라운 베르제로, 그녀의 아버지가 제작자는 아니지만 1966년에 이 영화의 판권을 구매했었다. 그 분을 설득해 영화를 복원하게 됐다.



김성욱(영화평론가) 작업 중 어려움은 어떤 것이었나?
장 프랑수아 로제 작업 기간이 길 수밖에 없었다. 가장 중요했던 게 두 가지인데, 첫 번째로 이 영화의 여러 버전이 존재하기 때문에 그걸 최대한 모아서 모든 소스를 확보하는 게 우선이었다. 그리고 여러 시네마테크에서 가져온 프린트를 비교했다. 그 다음은 칼라 복원 문제가 있었다. LA에 있는 ‘테크니 칼라’에서 디지털 복원을 했다. 중요한 스폰서가 두 군데 있었다. ‘톰슨 재단’에서 영화 복원에 대한 기술적 지원을 받았고, ‘프랑스-미국 문화재단’이 공동으로 후원을 했다. 2년 이상이 소요됐는데 기술적으로 상당히 어려움이 많았다.



김성욱(영화평론가) ‘톰슨 파운데이션’은 어떤 곳인가?
장 프랑수아 로제 ‘톰슨 파운데이션’은 영화유산을 보존하고 그것의 복원에 노력을 기울이는 단체다. LA에 테크니 칼러 복원회사를 또한 갖고 있다. 기술적인 부분은 톰슨에 의해 가능했다. 또한 자금적인 지원 또한 이들을 통해 이루어질 수 있었다.


영화의 기념비화, 혹은 디지털의 우려
 

<롤라 몽떼>의 복원에 참여한 곳은 정확하게 네 군데이다. 실무적인 진행은 시네마테크 프랑세즈가 했고, 이 영화의 판권을 갖고 있던 ‘목요일 필름’이 시네마테크 프랑세즈에서의 복원을 위한 판권 문제를 해결해주었다. ‘톰슨 파운데이션’은 2006년부터 <롤라 몽떼>의 복원과 관련한 작업에 지원을 했는데 주로 디지털 팀과 테크니 칼러의 복원과 관련한 진행을 했다. 또한 미국영화와 프랑스영화의 보존과 복원에 노력을 기울이는 ‘프랑스-미국 문화재단’이 참여했다. 이런 필름 복원은 문화유산으로서의 영화를 보존하기 위한 중요한 작업이다. 90년대 이래로 서구에서는 ‘재발견의 영화’라 불리는 고전영화의 디지털 복원과 ‘복원판’의 재상영이 빈번하게 진행되고 있다. 그러면서 동시에 ‘복원’은 종종 시네마테크의 숭고한 ‘임무’처럼 취급되고, 영화의 역사를 ‘기념비화’하는 마술적인 언어로 포장되는 문제를 낳기도 했다. 필름을 복원해 거대한 영화제에서 이벤트로 상영하는 것을 ‘숭고’하게 여기고 반면에 극장에서 그 영화를 다시 상영하는 것을 하찮게 여기게 되는 경향들이 있다는 것이다
 


김성욱(영화평론가) 근래에 디지털 복원이 유행처럼 많이 생기고 있다. 영화제를 통해 복원된 영화가 상영되고 DVD로 출시되기도 한다. 그런데 종종 이러한 복원은 비평적 관심보다는 영화의 ‘기념비’화를 초래하는 인상을 주기도 한다. 이런 문제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장 프랑수아 로제 나도 그렇게 생각하는 편이다. DVD의 경우는 또 다른 상영 방식이라 생각한다. 일단 오래된 영화를 상영하는 데 있어서 상영관의 확보가 어려운 문제다. <롤라 몽떼>의 경우에는 사실 감독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여러 상영판본이 존재하면서 영화가 잘려나가는 수난을 겪었었다. 그래서 이 작품의 경우에는 제대로 상영되거나 본 사람이 많지 않았다. 감독의 의도대로 복원을 했다는 것에 큰 의미를 두고 있다. 시네마테크의 임무는 영화를 보존하는 데 목적이 있다. 단순히 자료로서 창고에 정리돼 있는 것이 영화를 보존하는 것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영화를 보존한다기보다는 정말 보고 싶은 영화를 보존하는 것, 결국 영화를 상영하는 것이 보존하는 것과 같은 의미라고 생각한다.



김성욱(영화평론가) 한 예를 들고 싶다. 몇 년 전에 장 비고의 <라탈랑트>를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상영한 적이 있었다. 그 프린트 버전에서는 고몽영화사가 이 영화를 훼손한 것에 대해 깊은 반성을 하는 짤막한 안내가 있었다. 고몽이 장 비고의 사후에 이 영화를 감독의 의도와는 무관하게 편집해서 상영한 것을 반성하는 내용이었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올해 초에 홍상수 감독의 추천작으로 이 영화를 다시 상영할 때에는 프린트의 앞부분에 이러한 내용이 없더라.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복원된 영화가 사실 결핍과 부재의 흔적을 제대로 지니지 못할 경우, 결국 이후의 관객들이 그 영화 복원의 함의가 무엇인지 모르고 그저 좋은 화질의 영화를 보고 있다는, 그래서 그런 영화의 존재를 자명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디지털 환경에서 이런 복원의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나?

장 프랑수아 로제 그런 인식에 공감한다. 기술적인 면 때문에 피할 수 없지만 그러나 융통성을 발휘할 필요도 있다. 영화와 관련해 도덕적인 문제가 있다. 그래서 복원의 과정에서도 감독이 의도한 대로의 진실성에 최대한 접근하려고 노력하는데, 그런 부분을 놓치는 면이 없지 않아 있다. 사실 이런 문제는 훌륭한 복원가들에게 던져지는 질문이기도 하다.



김성욱(영화평론가) 상영과 관련해서 디지털의 문제는 사실 더 심각하다. 갈수록 필름 프린트로 영화를 상영하는 것이 어려워지고 있다. 독일의 경우 ‘괴테 인스트티튜드’를 통해 예전에는 독일영화의 16㎜ 프린트들이 유통됐었다. 이제는 필름이 아니라 모두 DVD로 바뀌고 있다. 한국에서 유럽의 고전영화를 필름으로 보는 것은 이제 어려운 일이자 상당한 비용이 들어가는 일이다. 시네마테크의 입장에서 보자면 이는 심각한 문제다. 좋은 상태의 프린트를 찾는 것이 어렵고, DVD나 디지털 상영은 상대적으로 쉽지만 그것은 시네마테크의 상영에 적합한 것이 아니다.

장 프랑수아 로제 시네마테크의 디지털 상영에 대해서 개인적으로는 반대의 입장이다. 그러나 가끔 보존 필름이 존재하지 않을 경우에 디지털 상영을 시도하지 않을 수 없다. 필름이 없어지는 것이 오래된 영화에만 국한된 일은 아니다. 현대영화의 경우도 마찬가지인데, 예를 들자면 클로드 샤브롤의 일부 영화가 그렇다. 더 이상 좋은 상태의 35㎜ 필름이 존재하지 않는 작품이 있다. 70년대에 만들어졌지만 프린트가 손상됐고, 판권을 갖고 있던 회사가 샤브롤의 영화를 보존하는 데에 무관심했기 때문이다.



영화의 루브르, 시네마테크 프랑세즈


영화의 역사는 <롤라 몽떼>의 사례에서도 알 수 있듯이 손실과 결핍, 폐허의 역사이기도 했다. 1930년대 이래로 절멸의 위기에 처했던 영화들은 그 기원의 장소인 상업극장에서 아카이브나 영화박물관, 시네마테크의 수장고로 조금씩 이전해 갔다. 그렇지만 필름아카이브는 결코 완벽한 수장고가 아니었고 언제나 결핍의 흔적을 갖고 있다. 때문에 시네마테크는 영화박물관으로서의 새로운 기능들을 모색해야만 했다. 시네마테크 프랑세즈의 설립자인 앙리 랑글루아는 시네마테크가 ‘영화박물관’, 즉 ‘영화의 루브르’라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동시에 이 박물관이 일반적인 박물관과는 다른, 기존의 박물관으로부터의 일탈, 탈구축을 통해 구성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아도르노가 박물관(Museun)과 사당(Mausoleum)의 발음상의 유사성에 근거해 박물관을 예술 작품의 묘지라 불렀던 그런 비판을 넘어서야만 했다. 시네마테크 프랑세즈는 2005년, 보다 크고 넓은 새로운 공간으로 이전하면서 이런 오랫동안의 꿈을 부분적으로 실현할 수 있었다. 랑글루아는 1961년에 영화예술의 박물관이 기술의 박물관이 아니라 예술의 박물관이어야만 한다며 20세기 초의 모든 예술 경향들의 교차로서의 예술의 박물관, 시네마테크를 꿈꿨었다. 시네마테크 프랑세즈는 영화 상영만이 아니라 기획전, 심포지엄, 교육, 전시회가 열리는 문화공간이다. 한국에서 이런 박물관에 대한 꿈은 여전히 상상적으로 남아 있다. 2007년 영화진흥위원회는 시네마테크 전용관이 입주하는 ‘복합 상영관’의 설립에 관심을 기울였고 예산의 일부를 확보하기도 했다. 하지만 현재 이와 관련한 구체적인 논의가 더 이상 진척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시네마테크는 박물관의 기능을 하게 될 것이지만 그것은 제도화된 박물관을 탈피해야만 한다. 영화가 제도화된 박물관의 불이 꺼진 후에 개장하는, 무의식의 밤의 역사를 담아낸 ‘밤의 박물관’이었기 때문이다.



김성욱(영화평론가) 시네마테크 프랑세즈의 박물관의 기능에 대해 이야기해보고 싶다. 요즈음 시네마테크에서는 ‘데니스 호퍼’의 전시회를 하고 있는 것 같은데, 어떻게 이런 전시를 하게 됐나?

장 프랑수아 로제 아직 시작하지는 않았고, 10월에 전시회가 열릴 계획이다. 오래 전부터 구상했던 전시회였다. 데니스 호퍼는 할리우드를 대표하는 사람이었고 동시에 현대예술에 깊은 관심이 있었다. 그의 작품, 그의 주변 사진, 그리고 그가 수집하고 소장한 컬렉션들을 이번 전시에서 보여줄 것이다. 시네마테크에서의 전시는 보통 일 년에 두 차례 치러지는데, 올해 초에는 조르주 멜리에스의 전시가 있었다. 그 전에는 샤샤 기트리에 관한 전시를 했었다. 내년에는 자크 타티의 전시를 기획하고 있다. 굉장히 특이한 전시가 될 것이다. 샤이오에서 2005년에 베르시로 이전하면서 전시 공간을 확보할 수 있었기에 이런 일들이 가능해졌다.



김성욱(영화평론가) 베르시로 이전하면서 시네마테크 프랑세즈의 ‘영화박물관’의 기능이 더 커졌다고 볼 수 있다. 전시도 열리고, 영화가 상영되는 상영관도 4개관이다. 영화도서관(BIFI)도 함께 입주해 있다. 랑글루아 시절부터 시네마테크는 박물관의 개념을 중요하게 여겼다. 시네마테크의 박물관적 기능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나?

장 프랑수아 로제 박물관이라는 측면에서 보자면, 일반 박물관은 방문자들이 한 시간에서 두 시간 정도의 방문을 하고 끝나버리지만 시네마테크는 일반 미술관에서 예술 작품을 전시하는 것과 달리 영화를 보여준다. 영화를 보여주는 것은 또한 시간을 보여주는 의미를 갖고 있다. 이전과 더불어 공간을 확보하면서 그런 박물관의 이미지를 갖출 수 있는 기회가 됐다. 일반 방문객들이 미술관을 방문하는 것과의 차이는 문화적인 공간으로서 작품을 만든 작가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는 등의 문화적 공간으로서의 기능을 수행한다는 것이다. 모든 분야가 개발될 때에는 자신의 정체성에 관한 질문을 하게 되는데, 이런 박물관과 관련한 문제가 시네마테크에서는 중요한 문제였다.



김성욱(영화평론가) 예전에 랑글루아는 시네마테크 프랑세즈가 ‘영화의 루브르다’라고 말한 적이 있는데.

장 프랑수아 로제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웃음) 영화가 예술이라 여겼기 때문이다. 그것은 행복하면서도 불행한 부분이기도 하다. 영화에는 불투명한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아주 보편적이면서도 아주 노블레스적인 측면이 존재한다, 그래서 경계선이 애매하다. 어떻게 보면 그게 기회이면서 아니기도 하다.



김성욱(영화평론가) 하지만 동시에 고다르가 박물관에 대해 경멸조로 말했던 것을 마지막으로 이야기하고 싶다. <사랑의 찬가>에서 루브르 박물관을 일종의 약탈자로 묘사하는 식으로 말이다. 박물관에서 예술의 물리적 현존이 예술의 회복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장 프랑수아 로제 영화에서는 그 부분이 더 맞는 것 같다. 영화는 현존하는 예술의 분야이고 대단히 대중적이기 때문이다. 지난 6~70년간 영화가 예술 장르가 될 수 있다는 생각에서 시네마테크가 출발했었다. 이런 의문은 사실 현대에 와서 더 많은 질문을 하게 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김성욱)




* 시네마네크 프랑세즈의 프로그래머인 장 프랑수와 로제와는 이번 인터뷰외에도 몇 번 만난 적이 있었다. 부산국제영화에서 첫 만남 이래로, 파리에서 '김기영 감독 회고전'이 열릴 때 옮기기 전의 샤이오의 시네마테크 프랑세즈에서 커피를 마시다 인사를 나눴다. 규모와 사정이 워낙 다른 탓에 뭔가 서로 교감을 나누기에는 힘든 실정이지만 결국 고민하는 문제는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시네마테크 공간의 법적인 지위와 관련한 제도적 문제가 요즘 관심사이기도 해서 그런 문제들로 이야기를 나눌 생각이었지만 다른 일정들 때문에 다음으로 미뤄야만 했다. 요즘 시네마테크 프랑세즈에서는 '스파이크 리 회고전'을 하고 있던데, 문득 그 정도 연배급의 한국영화 작가들이 여전히 프랑스에서도 소개되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시네마테크 프랑세즈는 '프랑세즈'라는 국적의 표현이 들어가있긴 하지만 실은 글로벌한 영화역사의 '박물관'이길 꿈꿨었다. 글로벌과 로컬리티의 충돌이 있었다는 말이다. 이건 여전히 그들의 시네마테크에 모순으로 남아 있다. 그것이 또한 우리의 고민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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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마테크, 우리들의 영원한 사랑
시네마테크 후원회 감독들을 만나다
2006.01.25 / 편집부

좀처럼 한 자리에 모이기 쉽지 않은 감독과 배우들, 영화평론가들이 뭉쳤다. 서울 유일의 시네마테크 아트시네마의 지속적인 재정난을 안타까워하던 이들은 ‘친구들’이라는 이름의 후원회 명단에 이름을 올렸고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그중 박찬욱 감독, 오승욱 감독, 류승완 감독과 김성욱 아트시네마 프로그래머를 초대해 대화를 나눴다. 영화를 보고 만든다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는 와중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우리들에게 시네마테크는 왜 반드시 필요한 것인가?

대담 참석자 박찬욱 감독, 오승욱 감독, 류승완 감독, 김성욱 아트시네마 프로그래머
진행 김용언, 허지웅 기자

FILM2.0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엔 어떻게 참여하게 됐나?
박찬욱 감독 극장이 워낙 어렵다는 이야기가 들려오길래, 그러다 문이라도 닫게 되면 큰일이다 싶어 참여했다. 당장 프로그램이 부실해진다거나 하면 그게 우리 손해지.
오승욱 감독 맞다. 시네마테크가 없어지면 어디서 영화를 보나.
류승완 감독 나는 평생 회원 카드까지 있는데 문 닫으면 아까워서 큰일이다.
오 예전에 영화 아카데미 면접 시험을 보는데 다수의 학생들이 가장 좋아하는 영화로 장 피에르 멜빌의 <사무라이>를 꼽더라. 그때 시네마테크의 위력을 실감했다. 시네마테크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영화를 공부하는 이들에게 힘이 되고 있는 것 같았다.

FILM2.0 2000년대에 정식 개관한 시네마테크를 처음 찾았을 때의 감회가 모두 남달랐을 것 같다.
김성욱 프로그래머 부연 설명을 하자면, 상영은 1999년부터 시작했다. 루이스 부뉘엘, 오손 웰스, 로베르 브레송, 에릭 로메르 등의 작품들을 상영하며 시네마테크 구축을 위한 기초 작업을 했고, 2002년 5월 소격동 아트선재센터에서 정식으로 개관했다. 그 전에는 문화학교 서울과 서울시네마테크로 분화돼 간헐적으로 이뤄지던 활동이 통합된 것이다.
박찬욱 감독 맞아, 오손 웰스 회고전을 찾아가서 봤던 게 기억난다. 시네코아에서 하지 않았었나? 처음에는 단발성 행사인 줄로만 알았다. 그런데 어느 날 공간이 생기면서 정착이 되니까 한국이 정말 달라졌구나 싶었다. 도쿄에 있는 시네마테크를 그렇게 부러워했었는데 말이지.
오승욱 감독 하다못해 홍콩에도 있다.(웃음)
김성욱 프로그래머 하다못해 필리핀에도 있다.(웃음)
류승완 감독 나는 아트선재센터 시절에 시네마테크를 자주 찾았다. 구로사와 아키라 회고전 때 <요짐보>와 <7인의 사무라이>를 필름으로 보고, 또 스즈키 세이준의 영화들을 한꺼번에 보고 너무 좋아했던 기억이 난다. 와, 이런 세계가 다 있구나 싶었다. 브레송 영화를 볼 때도 비디오로 볼 때와는 전혀 다른 종류의 자극을 느꼈다. 개인적으로 인상 깊었던 것은 관객들의 면면이다. 날마다 그 얼굴이 그 얼굴이다.(웃음) 매일 오던 분들만 계속해서 오는 거다. 도대체 뉴 페이스가 없다. 그런데 어느 순간 이 분들이 취직을 하신 건지 점점 사라지더라. 극장에 온종일 죽치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서 '저 분들도 먹고살아야 할 텐데'라며 걱정했었는데, 정작 이 분들이 사라지니까 극장에 위기가 찾아오더라.(웃음)
오승욱 감독 막상 눈앞에 생기고 나니까 그 전에 시네마테크의 존재를 갈망했던 마음들이 많이 사라져버린 것 같다. 이제는 영화제들도 많아졌으니까.
류승완 감독 요즘은 영화들을 너무 쉽게 보는 것 같다. 동영상으로도 보고, DVD로도 보고... 필름으로 보는 맛이 전혀 다른데 그걸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박찬욱 감독 동감한다. 난 로버트 알드리치의 <더티 더즌>을 비디오로 봤을 땐 그저 그런 오락 영화라고 생각했는데, 이번에 필름으로 다시 보고 나니 ‘내가 이 영화를 정말 보기는 했나’ 싶더라. 정말 깜짝 놀랐다. 필름으로 보면 전혀 달라지는 영화들이 있다.

류승완 감독 유서 깊은 허리우드극장에서 영화를 보는 즐거움도 있지 않나? 족발 냄새 나는 골목을 뚫고 지나가 예술영화를 보는 쾌락.(웃음)
박찬욱 감독 극장 건너편의 카바레 출입하시는 아주머니, 아저씨들과 함께 엘리베이터를 타는 아슬아슬한 정서!
오승욱 감독 엘리베이터 타고 함께 올라가 아줌마, 아저씨들은 카바레로, 우리는 극장으로 갈라져 향할 때의 그 정서 말이지. 왠지 은밀해 보이고, 무슨 범죄라도 벌어지는 것 같은 느낌.
류승완 감독 내 돈 내고 영화 보러 가는데 눈치가 보인다.(웃음)
오승욱 감독 낮에는 그런 느낌이 더 강렬해진다. 남들 다 일하는 낮 시간에 영화 보러 가는 것이나, 카바레 가는 것이나 둘 다 그다지 생산적인 활동은 아니거든. 이런 두 가지 성격이 절묘한 시너지 효과를 일으킨다. 이를테면 ‘죄의식을 동반한 영화 보기’ 말이다. 옛날 동시 상영 극장 주변에는 카바레도 있고 술집도 있어서 분위기가 참 묘했다. 난 아트선재센터 시절도 좋았지만 지금 허리우드극장 분위기가 더 좋다.
류승완 감독 극장 앞 카페에 앉아 있으면 재미있다. 극장 주변에 펼쳐진 안국동 일대를 내려다보면 정치, 사회, 경제 전반을 두루 걱정하는 분들이 숱하게 많다는 걸 알 수 있다.(웃음)
오승욱 감독 얼마 전에 보니 카페 앞에 ‘사채업자들 출입 금지’라고 써 있더라. 옛날에 극장에서 꼬마들에게서 삥 뜯던 양아치들이 생각났다.
류승완 감독 그 분들이 나이 들어서 사채업자를...(웃음)
김성욱 프로그래머 종로 쪽 극장들이 모두 리모델링해서 재개관했지 않나. 환경이 그렇게 되면서 사채업자들이 갈 곳이 없어지니 우리 극장 앞으로 모여들더라.
류승완 감독 시네마테크에서 영화를 본다는 것은 단순한 관람의 의미가 아닌 것 같다. 영화를 겪고 체험한다는 말이 더 어울린다. 영화를 좋아하는 많은 사람들이 한 곳에 모여 비슷한 감정을 공유하며 한 편의 영화를 경험하는 것이다. 멋지지 않은가.

박찬욱 감독 외국인들에게서 한국영화의 개성은 어디서 오는지에 대한 질문을 많이 받았다. 영화사의 중요한 작품들을 순서에 맞게 체계적으로 감상하거나 공부하지 못한 상황에서 기회가 되는 대로 배웠기 때문에 그런 개성이 형성된 게 아닌가 싶다. B무비부터 보기 시작해 존 포드를 마흔 살이 넘어서 처음 보게 되니까, 우리가 만드는 영화들도 어딘가 특이해지는 것이다.
오승욱 감독 맞다. 내가 장철이나 페킨파 영화 보고 열광할 때, 프랑스 애들은 장 르누아르 영화를 보고 있던 식이다.
류승완 감독 오우삼이 장 피에르 멜빌을 좋아했다라고만 알고 있다가 나중에 <사무라이>를 보고서야 ‘이게 진짜구나’ 싶었다.
박찬욱 감독 오우삼을 먼저 보고 샘 페킨파를 나중에 본다든가, 성룡을 먼저 알고 그 다음에 버스터 키튼을 알게 된다든가. 이런 식으로 거꾸로 역사를 거스르는 모습들이 재미있는 경험과 성향을 만들어내는 것 같다.
류승완 감독 특히 우리 세대는 그 불균형이 매우 심하다. 40대인 선배들과 다르게,(웃음) 우리는 주로 비디오를 통해 모든 것을 보던 세대다.
박찬욱 감독 그런 경험들이 고전에 대한 아주 잘못된 고정관념을 만들었다. 조악한 환경에서 고전을 보면서 ‘저런 영화가 뭐가 좋을까’라는 잘못된 생각이 만들어진 것이다.
오승욱 감독 시네마테크에서 필름으로 고전을 다시 보면서 새로운 영화를 보는 듯한 충격을 받게 된다. 일전에 <성난 황소>를 관람하면서 그런 충격을 받았다. 양 옆이 잘려 제대로 된 화면 비율을 감상할 수 없는 비디오 영상으로는 영화의 가치를 발견하기 힘들다.

FILM2.0 여기 모인 감독들은 B무비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남다르기로 유명하다. 그런 취향은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살점과 피가 난무하는 것을 보며 영화에 대한 애정을 키우기란 어려운 일이 아닌가? (웃음)
박찬욱 감독 그렇지 않은 사람들을 우리가 이해하지 못한다.(웃음) 난 <러브스토리>를 보면서 진지하게 생각했다. 이 영화의 어떤 점이 그렇게 좋다는 걸까. 아직도 모르겠다.
류승완 감독 두 시간 동안 남자 여자 계속 이야기하는 영화, 정말 못 보겠다. 도대체 말이 안 되잖아. 그걸 왜 돈 들여서 두 시간 동안이나 보고 있어야 하나.(웃음)
박찬욱 감독 우리는 남녀가 장난치고 눈빛 교환하는 것 보고 있으면 왠지 창피해져서 견딜 수가 없는 사람들이다. 아, 부끄러워.(일동 폭소)
오승욱 감독 사실 대한민국이라는 나라가 옛날부터 폭력에는 관대한 나라가 아니었나. 시대적인 부분을 감안해보면 우울한 군사독재 시대를 지나오면서 ‘이런 세상에서 순진한 사랑 놀음이 웬 말인가’라는 생각도 자주 했다. 그런 영화들, 왠지 낯설고 창피하다.
김성욱 프로그래머 여기 모인 감독들은 한국영화 지평 위에서 볼 때 굉장히 새로운 세대다. 그 전의 감독들은 사실 영화 자체에 대해 이야기하는 부분이 많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지금처럼 자신의 영화적 취향에 대해 강력하게 표현하는 감독들은 더욱 찾아보기 힘들었다.

FILM2.0 자신의 취향으로부터 새로운 것들을 만들어낸다고 했을 때, 그 안에 진정 나만의 것이라 할 수 있는 성질이 존재할지에 대한 두려움은 없나? 이를테면 무의식 중에 다른 영화를 따라하고 있지 않을까 하는 강박관념 말이다.
박찬욱 감독 난 한 번 본 영화들을 많이 잊어버리는 편이다. 옛날에는 영화를 본 시간들이 내 인생에서 지워져버린 것 같아 무척 슬펐다. 그런데 이제 영화를 직접 만드는 입장이 되고 나니 오히려 좋은 것 같다. 다른 사람들의 경우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아무리 좋은 영화를 많이 봤어도 일부러 따라하지 않는 이상, 자기 영화에서 남의 것이 묻어나오진 않는다.
오승욱 감독 그에 버금가는 영화를 만들겠다는 생각을 할 뿐이다. 나는 시나리오를 쓰면서 도움을 많이 받는 편인데, ‘이런 장면에서는 저렇게도 표현을 하는구나’라며 참고를 할 뿐이지 그것을 모방해야겠다는 생각을 하진 않는다.
류승완 감독 나 같은 경우는 하도 남의 영화를 베꼈다는 소리를 많이 들어서 무감각해졌다. 사실 좋은 장면은 베끼고 싶다. 이를테면 <포인트 블랭크>에서 구타하다가 지쳐 쓰러지는 장면을 보고 나서 “내가 빨리 먼저 베껴야지!”하고 소리질렀다.(웃음) 그런데 실제 따라해 보려고 하면 절대 그대로 나와주질 않는다. 배우가 다르고 환경이 다르면 결과물이 같을 수 없다.
김성욱 프로그래머 나는 당신들의 영화에서 60년대로부터 70년대로 넘어가던 순간의 미국영화의 정서를 느낀다. 과잉의 에너지 말이다. 비교될 만한 미국영화들과 당신들의 영화를 함께 상영하는 기획도 좋을 것 같다. 예를 들어 류승완 감독의 <주먹이 운다>나 브라이언 드 팔마의 <캐리> 같은 경우도, 둘이 전혀 다른 영화 같지만 화면을 분할하는 운용의 방식을 비교해보면 참 재미있다.
박찬욱 감독 <친절한 금자씨>의 경우, 처음에는 주인공으로 고두심 선생을 고려했다. 그런데 그렇게 되면 존 카사베츠의 <글로리아>와 너무 비슷해질 것 같아 변경했다.
오승욱 감독 하늘 아래 과연 새로운 것이라는 게 있는지 없는지도 잘 모르겠다.
박찬욱 감독 내 생각은 다르다. 예술 작품은 모두 새롭다고 생각한다. 관점에 따라 모든 것들이 다 비슷하다고 볼 수 있겠지만, 연기자가 다르고 주변의 환경이 다르며 감독의 의식이 다르기 때문에 매번 다른 새로운 것이 만들어질 수밖에 없다.
오승욱 감독 박 감독과 나 사이에 ‘새롭다’는 의미가 다르게 해석된 것 같다. 물론 감독이 영화를 찍으면서 그 안에 담기게 되는 인간이나 사회에 대한 시각은 언제나 새로워야 한다. 하지만 영화적 구성의 형식을 새롭게 함으로써 전혀 새로운 영화를 만들겠다는 강박관념은 경계해야 한다는 의미다.

FILM2.0 시네마테크에서 영화들을 보면서 ‘내가 만들고자 하는 영화의 방향성이 틀리지 않았구나’하는 동질감이나 안도감을 느끼는 경우도 있었을 텐데. 나만의 스승을 찾았다는 그런 느낌 말이다.
오승욱 감독 시네마테크에서 한 감독의 열 편 이상 되는 작품을 한꺼번에 본다는 건 그 사람의 인생을 조망하고 체험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런 식의 체험은 창작자에게 영화를 계속 할 수 있는 용기를 심어준다.
류승완 감독 안도감보다는 경외감을 더 느낀다. 과거에 아무 생각 없이 봤던 B무비를 시네마테크에서 다시 보면서 어느 순간 존경스러워진다. 도대체 어떻게 알드리치는 <베이비 제인에게 무슨 일이 생겼나> 같은 영화를 만들 수 있었을까? 스즈키 세이준이나 쇼 브라더스 영화를 다시 볼 때도 마찬가지다. 그냥 무술 영화인줄 알았는데 한 데 모아 보니까 전혀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다.
박찬욱 감독 정말 그렇다. 시네마테크의 회고전이나 기획전을 통해 접한 감독은 남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정말 그 감독과 사귄 것 같고, 굉장히 잘 아는 사이인 것 같고.
오승욱 감독 알드리치 회고전을 전부 보고 나왔더니 그 양반 얼굴이 눈앞에 그려지더라.(웃음)
류승완 감독 보면 볼수록 많이 배운다. 실제로 시네마테크를 거치면서 최근 몇 년간 취향도 많이 바뀌었다.
박찬욱 감독 신작을 보러 개봉관에 가본 지 몇 년 됐다. 같은 시간을 투자해 시네마테크나 DVD로 500배 더 재미있는 영화들을 볼 수 있으니까.
오승욱 감독 난 사실 개봉관 공포증이 있다. 내가 보기에는 너무 엉망이고 재미없는 영화인데, 입추의 여지없이 꽉꽉 들어찬 관객들이 모두들 웃고 있을 때, 정말 낙오자가 된 느낌이다.(웃음) 이래서 영화감독을 할 수 있겠나 싶고. 나 혼자 공감하지 못하는 상황이 무서웠다.
류승완 감독 그런데 이렇게 가다간 시네마테크는 ‘낙오자 집단이 영화 보는 곳’이라는 오명을 쓰게 될 것 같다.(일동 웃음) 대담 분위기를 바꿔야 한다!

FILM2.0 관객들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평론가들이 영화의 유령성에 대해 이야기할 때가 있지 않나. 시네마테크에 오는 관객들 역시, 색이 바래서 존재가 희미해지는 옛날 고전 프린트들을 열렬하게 감상하는 유령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김성욱 프로그래머 공간과 관객을 함께 생각해야 한다. 관람이 이뤄지는 장소에 대한 이야기가 없고, 모두들 영화 내용에 관해서만 이야기한다. 영화는 관객들에게 보여지는 순간 비로소 완성되지 않나. 그 동안 영화에 대한 무수히 많은 이야기들이 있어 왔는데 유독 영화를 보는 공간에 대한 담론은 전무했던 게 사실이다.
오승욱 감독 극장에서 영화를 보면 공간과 관객에 대한 느낌이 반 이상을 차지한다. 고등학생 때 <디어 헌터>를 극장에서 봤을 때가 생각난다. 영화가 끝나고 멍한 기분으로 극장을 나서려는데, 저쪽 구석에 내 또래 남학생이 나와 비슷한 표정으로 자리에 앉아 있더라. 별다른 말을 건네지는 못했지만 큰 감동을 느꼈다. 같은 공간에서 비슷한 경험과 느낌을 가졌다는 사실에 대한 동질감이랄까. <디어 헌터>를 떠올리면 그때의 광경이 제일 먼저 기억난다.
박찬욱 감독 옛날에 프랑스문화원에서 영화 볼 때는 관객들 사이에 교류하는 정서가 매우 풍부했다.
류승완 감독 90년대 초반만 하더라도 그런 정서들이 많았다. 시네코아나 문화학교 서울을 가도 영화를 본 뒤 토론하는 풍경들이 낯설지 않았다. 나는 지금 세대 영화광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너무 궁금하다. 블로그들을 돌아다니다 보면, 경쟁적으로 영화에 관한 글을 올리는데 가만히 들여다보면 좀 이상하다. 그 영화에 대한 자기 생각이 아니라 줄거리만 달랑 써 있을 때가 많다. 그 영화를 봤다는 사실 자체가 더 중요한 것 같더라.
김성욱 프로그래머 공간 이야기로 돌아가자면, 얼마 전 프랑스에 갔을 때 시네마테크 프랑세즈가 이전한 모습을 보고 놀랐다. 10년이 넘도록 이전 문제를 논의했다는 건 알았는데, 새로 장소를 옮기면서 굉장히 럭셔리한 성전처럼 바뀌었더라.(웃음) 동시에 제도적 공간이라는 느낌도 강하게 받았다. 영화라는 매체 자체가 그다지 제도적이지 못한 예술이라고 생각하는데...결국 딜레마라는 생각이 든다.
류승완 감독 나는 시네마테크 프로그램이 고전에 치우치기보다는 우리 주변의 묻혀버린 감독들에 대한 재발견 위주로 편성됐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한 감독이 그의 필모그래피를 걸작으로만 채워나가지는 못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졸작만 만드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오승욱 감독 흥행이라는 측면도 같이 생각해야 한다. 브라이언 드 팔마처럼 상업적으로도 큰 성공을 기대할 수 있는 기획이 필요하다.
김성욱 프로그래머 안 그래도 신년을 맞이해 큰 기획을 생각 중이다. 한국의 젊은 감독들과 영화광들이 가장 존경하는 감독으로 꼽는 마틴 스콜세지나 드 팔마 같은 감독의 특별전을 구상 중이다.
오승욱 감독 아무튼 시네마테크가 심각한 경영난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활동하면서 예전과는 비교할 수 없이 넓어진 스펙트럼을 구축해냈다는 사실이 경이로울 뿐이다. 예전에는 누가 감히 알드리치나 멜빌의 회고전을 상상이나 했겠는가.

FILM2.0 개인적으로 보고 싶은 회고전이 있다면?
박찬욱 감독 루키노 비스콘티 영화제를 한번 했던가?
김성욱 프로그래머 아직 못했다. 예전에 로마까지 가서 노력해봤는데 잘 안 됐다. 김지운 감독은 파졸리니 감독 회고전을 했으면 하더라. 파졸리니 같은 경우는 저작권 소유자가 굉장히 까다로워서 전작 회고전을 개최하기가 힘들었다. 그런데 얼마 전 그 분이 돌아가시면서 회고전을 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됐다.
오승욱 감독 존 포드의 두 번째 회고전과 하워드 혹스 전작, 그리고 무엇보다 기노시타 게이스케 회고전이 보고 싶다. 일본영화사를 보면 이 감독의 명성이 너무나 자자해서 많이 궁금했었는데, 이번 쇼치쿠100주년영화제 때 <나라야마 부시코>와 <카르멘 고향에 돌아오다>를 보고 나서야 왜 유명한지 이해가 갔다. 게이스케의 모든 영화가 보고 싶어졌다.
류승완 감독 샘 페킨파와 존 프랑켄하이머의 영화들, 특히 <맨츄리안 켄디데이트>를 스크린에서 보고 싶다.
오승욱 감독 페킨파 좋지. 세르지오 레오네도 함께라면 더 좋겠다.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를 극장에서 완전판으로 보는 게 소원이다.
김성욱 프로그래머 모두들 미국영화를 좋아하는 것 같다.
박찬욱 감독 아니, 꼭 그렇지는 않다. 일본, 유럽영화에도 관심 많은데, 이탈리아의 마르코 벨로키오승욱 감독 같은 감독들의 영화제도 꼭 보고 싶다.
오승욱 감독 그동안 미국영화를 굉장히 폄하해 왔던 경향에 대한 반작용일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50년대 미국영화에 대한 관심이 크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 시대 영화들 속의 기이한 정서, 이를테면 두 번의 세계대전과 매카시즘에 대한 죄의식들이 영화 속에 암호처럼 박혀 있는 것을 하나하나 발견하는 쾌락이 있다.

FILM2.0 마지막으로 이번 영화제에 추천했던 작품의 변을 부탁한다.
박찬욱 감독 돈 시겔의 <킬러>를 선택했던 데는 다른 이유가 없다. 순전히 리 마빈에 대한 애정 때문이다. 팬클럽 회원이다.
오승욱 감독 나도 팬클럽 회원인데. 리 마빈, 찰스 브론슨, 제임스 코번.(웃음)
류승완 감독 난 새뮤얼 풀러의 <충격의 복도>를 골랐다. <지옥의 영웅들> DVD를 보다 서플먼트에 그 영화가 언급되길래 고른 것이다. 이번 기회가 아니면 못 볼 것 같아 아트시네마 쪽에 끈질기게 졸랐다. 예전에 박찬욱 선배가 <벤허> 10편과 <충격의 복도> 1편을 바꾸자고 하면 바꾸지 않겠다고. 그런데 <벤허>는 우리 아버지가 지상 최고의 영화로 꼽는 작품이다.(웃음) 도대체 어떤 영화길래, 하고 궁금해졌다.
오승욱 감독 난 세르지오 레오네의 <석양의 갱들>이다. 예전에 아트시네마에서 <석양의 무법자>를 보고 나오는데, 어떤 경상도 아가씨가 대단히 노골적인 경상도 억양으로 영화의 오프닝 송을 흥얼대며 지나갔다. 내 인생에서 매우 인상 깊은 순간이었다.(웃음) 나와 20년 이상 차이 나는 젊은이들이 이 영화를 보고 이렇게 좋아한다는 사실이 즐거웠다. 이번에 <석양의 갱들>을 보고 나올 때 관객들이 이 영화의 오프닝 송을 흥얼대는 걸 꼭 듣고 싶다.

사진 김춘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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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 우리의 마지막 방어선을 지켜야 한다
시네마테크의 후원자 정성일의 헌사
2006.01.25 / 정성일(영화평론가)

서울 유일의 시네마테크 아트시네마는, 한 마디로 서울 유일의 영화 천국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곳이 아니라면 우리는 영화에 대해 사유할 수 있는 공간을 찾을 수 없을 것이다. 시네마테크를 안정적으로 보존하려는 영화계의 움직임이 2006년 초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시네마테크의 후원자 ‘친구들’ 중 한 명인 영화평론가 정성일의 진심 어린 헌사를 싣는다.

짧은 글의 헌사. 그러므로 여기서는 문제를 간단하게 말하자. 시네마테크는 우리의 마지막 방어선이다. 만일 이게 무너진다면 이 땅에서 영화를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은 다 개소리다. 과장하는 것이 아니다. 시네마테크 없이 영화를 사랑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찰리 파커의 사보이 레코딩을 들은 적 없는 재즈 애호가를 상상할 수 있을까? 엘비스 프레슬리의 선 세션을 들은 적 없는 록 매니아를 인정할 수 있을까? 아르튀르 시나벨의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녹음을 들은 적이 없으면서 고전음악을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나는 D. W. 그리피스의 <흩어진 꽃잎>, 루이 푀이야드의 <뱀파이어>, 에리히 폰 슈트로하임의 <결혼행진곡>, 칼 드레이어의 <집안의 주인>, 세르게이 에이젠슈테인의 <10월>, 빅톨 셰스트롬의 <바람>, F. W. 무르나우의 <밤으로의 여행>, 두 편의 <증기선>(존 포드와 버스터 키튼), 찰리 채플린의 <시티 라이트>, 장 르누아르의 <성냥팔이 소녀>, 프랭크 로이드의 <씨 호크>, 라울 월시의 <영광의 대가>, 기누가사 데이노스케의 <미쳐버린 한 페이지>, 오즈 야스지로의 <비상선의 여자>, 조셉 폰 스턴버그의 <뉴욕의 부두>, 알프레드 히치콕의 <살인!>, 제임스 쿠르즈의 <활동사진의 머톤>, 프리츠 랑의 <스피오네>, 헨리 킹의 <스텔라 달라스>, 보리스 바르네트의 <모자상자를 갖고 온 소녀>, 레프 쿨레쇼프의 <법의 이름으로>, 장 엡스탕의 <어셔 가의 몰락>, 자크 카트랑의 <괴물들의 갤러리>, 킹 비더의 <빅 퍼레이드>, 에른스트 루비치의 <내게 다시 한 번 키스해주세요>, G. W. 파프스트의 <판도라의 상자>(나는 아트시네마로부터 받은 ‘백지수표’에서 2006년 1월에 함께 보고 싶은 영화로 우선 이 영화들을 떠올렸다. 왜냐 하면 이 목록은 나에게 일종의 고향 같은 영화들이기 때문이다. 물론 많은 영화들이 빠졌다) 중 단 한 편이라도 안 본 영화가 있다면 영화를 사랑한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어렵다. 내 생각에 그건 영화의 사랑에 대한 교양이 부족한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이 영화들을 적어도 세 번 이상은 본 사람과만 영화를 이야기하고 싶다. 할 수만 있다면 다시 보았을 때 적어도 매번 3년 이상의 간격이 있다면 더욱 좋을 것이다. 비로소 그렇다면 영화를 통해서 얼마만큼 자신의 사랑이 새롭게 태어나고 있는지를 확인할 수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걸 어디서 할 수 있을까? 물론 당나귀 프로그램을 동원하여 집에서 컴퓨터로도 할 수 있다. 하지만 영화는 함께 보는 것이 중요하다. 내가 감동을 받을 때 그 어둠 속에서 누군가 나와 함께 그 순간 탄식의 한숨을 쉬고야 마는 그 숨소리를 듣고 싶다. 그래서 지구상에서 나와 함께 바로 이 순간 영화에서 받은 감동을 함께 나누는 인간이 있다는 사실을 느끼고 싶다. 이 위대한 영화들을 보는 순간, 시네마테크는 나에게 우주의 중심에 다름 아니다. 그리고 영화를 통해서 위대한 순간에 우리는 감동으로 연대한다. 그러므로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우리들의 사랑은 여기가 방어선이다. 이걸 지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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봐야 할 영화 놓치지 않을, 전용관이 필요해!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대담
2007.01.17 / 장병원 기자

서울아트시네마를 후원하는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행사가 2회를 맞았다. 지난해에 이어 홍상수, 구로사와 기요시, 유지태, 엄지원 등 새로운 얼굴들이 시네마테크의 지지자로 나섰다. 박찬욱, 봉준호, 류승완 감독 등 시네필의 최후 방어선을 지키기 위해 나선 친구들의 지지 메시지를 대담을 통해 전한다. 대담에는 서울아트시네마 김성욱 프로그래머가 패널로 참여했다.

FILM2.0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행사가 2회째를 맞았다. 봉준호 감독은 올해 신입 멤버시다.
봉준호 감독 작년에는 <괴물> 때문에 바빠서 참여를 못 했다. '친구들' 행사할 때 촬영 끝나고 편집하고 있었다.
김성욱 프로그래머 봉 감독께도 연락 드렸는데 휴대전화가 꺼져 있었다.

FILM2.0 다들 바쁘실 텐데, 요즘에도 시네마테크에 자주 가나?
박찬욱 감독 얼마 전 ‘알랭 들롱 회고전’ 때 갔었다. 그때 가슴 아픈 일이 있었어. 영화 시작 전에 추첨을 해서 상품을 준다는 거야. 상품이 프랑스 시네마테크 프랑세즈에서 했던 알랭 들롱 회고전 포스터하고 브로마이드. 세 명을 뽑아서 상품을 주는데, 마침 첫 회여서 나를 포함 총 관객이 일곱 명이었다. 일곱 중에 셋이면 자동으로 걸렸다고 생각했는데 못 받았네. 진짜 받고 싶었는데. 김성욱 프로그래머가 전날 그 상품을 보여주기에 자꾸 만져보면서 "좋다. 이거 돈 주고도 못 사겠네", 그랬는데 꿈쩍도 안 해.
김성욱 프로그래머 오승욱 감독은 당첨돼서 받아가셨다.
박찬욱 감독 거기서 왜 못 뽑히나? 상품 탄 사람 중 한 아저씨는 원투쓰리 카바레 문 열기 전에 온 아저씨 갔던데.
봉준호 감독 나도 알랭 들롱 회고전이 마지막이다. 알랭 들롱도 들롱이지만, 장 피에르 멜빌을 필름으로 볼 심사로 갔다. 이상한 게 알랭 들롱은 나오는데 장 피에르 멜빌 이름은 안 나오는 거야. <암흑가의 세 사람>과 <암흑가의 두 사람>을 혼동해서 <세 사람>이 멜빌 영환데, <두 사람>을 본 거지.
류승완 감독 <두 사람> 때문에 프랑스에서 단두대가 없어진 거라는 말이 있지 않았나?
봉준호 감독 나도 그 얘길 들었다. 마지막 장면에서 알랭 들롱이 단두대에 서는데 그 눈빛이 너무 호소력 있어서 단두대가 없어졌다는. 마지막 장면에서 들롱이 입은 와이셔츠를 싹싹싹 자르고 카메라가 돌아가는데 기가 막히다. 근데 그 장면 빼곤 다 후지더라.(웃음)
박찬욱 감독 나는 <세 사람>을 배우 임수정과 봤는데 좋아하더라. “옛날 아저씨들 멋지네요”, 그러면서.
류승완 감독 난 알랭 들롱 회고전은 못 봤고 지난여름에 와서 살다시피 했다. 2006년에는 마틴 스콜세지 <성난 황소>, 샘 페킨파 <와일드 번치>를 프린트로 본 게 제일 큰 수확이다. 보는데 정말 눈물 났다.

시네마테크의 보루, 전용관

FILM2.0 올해는 행사제목이 ‘시네마테크 전용관 설립을 위한’ 시네마테크의 친구들이다. 전용관 문제를 이슈로 삼았다.
류승완 감독 최근 리모델링한 프랑스 시네마테크 프랑세즈(이하 ‘프랑세즈’)를 보면 전용관의 위력이 실감된다. 프랑세즈는 건물이 여러 개인데 그중 어디에는 장 폴 고티에가 디자인한 옷도 전시돼 있었다. 거긴 영화도 스크린으로만 보는 게 아니라 다양하게 본다. 브라운관, 모니터로 보고 소리는 전화기로 듣는다. 그거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재밌더라. 영화 안 보는 관광객들도 구경 온다.
봉준호 감독 얼마 전 김기영 감독 회고전을 프랑세즈에서 개최해 갔었다. 거긴 스크린이 서너 개 된다. 앙리 앙글루아관, 장 비고관, 이런 식으로 이름이 붙어 있다. 스크린이 여러 개라 복수로 프로그램을 진행하는데 좌석이 미어터진다. 김기영 감독 회고전, 독일 표현주의전, 프레드릭 와이즈만 다큐멘터리가 한꺼번에 돌아간다. 그러면서 독일 표현주의 영향을 받은 영화들도 같이 하는데, 리들리 스콧의 <에일리언> <블레이드 러너>, 팀 버튼의 <배트맨>이 줄줄줄 나온다. 짧게 한 편씩 하고 퇴장하는 게 아니라 일정 기간 동안 반복 상영하는 방식이다.
류승완 감독 내가 갔을 때는 페드로 알모도바르 영화제를 했는데 알모도바르가 직접 한 디자인, 영감을 받은 그림들, 셀프카메라 등등 영화 외에도 다양한 자료들을 함께 볼 수 있다. 그걸 따라가면 이 감독이 어떻게 영화를 만드는지 알 수 있다. 알모도바르 영화 보면 부감으로 도시 풍경 잡는 장면들이 자주 나온다. 그런 이미지는 친구 미술가의 그림과 거의 똑같이 진행된다는 걸 전시회 보고 알았다. 그런 거 보면서 여기에 내 흔적을 남기면 소원이 없겠다는 생각을 했다.
박찬욱 감독 꿈도 커.(웃음)
봉준호 감독 프랑세즈에서 무르나우의 무성영화 <노스페라투>를 봤는데 특이한 체험이었다. 음악도 없었기 때문에 90분 동안 관객들이 숨소리 한 번 못 내고 두 손 모으고 봤다. 그때 중학생들이 바글바글했다. 한국에서도 피카소 전시회 하면 학생 무료공연도 있고 선생님이 숙제도 내주지 않나. 그런 식으로 온 애들이다. 걔들이 아무리 프랑스 애들이지만 그걸 보고 싶겠어? 비비 꼬고 떠들고 그러지. 내 옆에 앉은 아저씨는 독일 표현주의에 관한 두꺼운 책을 들고 있는 걸로 봐서 영화학자가 분명한데, 이 아저씨가 앞에 있는 애 뒤통수를 후려치면서, "조용히 해!" 호통을 치더라. <에일리언> 1편 디렉터스컷을 잡티 하나 없는 프린트, 초대형 화면으로 봤는데 죽인다. 몰랐던 장면도 많이 있다. 그러니까 원조다. 이동갈비나 함흥냉면 같은 원조.
박찬욱 감독 스위스에도 유명한 시네마테크가 있다고 하던데?
김성욱 프로그래머 벨기에다. ‘시네마테크 벨지움’. 거기엔 자크 루도라는 사람이 있었다. 자크 루도가 컬렉션을 해 만들었는데 마틴 스콜세지 같은 감독은 ‘벨기에 시네마테크를 구하자’라는 주장도 했었다. 아주 작은 공간인데 들어가 보면 지하에 무성영화 시절의 영화들과 기계들이 전시돼 있다. 규모는 작지만 프로그램은 굉장히 알차다.

FILM2.0 서울아트시네마에서는 시네마테크가 영화만 상영하는 공간이 아니라 시네필들의 ‘집’으로 개념이 전환되기를 바란다. 영화의 역사를 보존하고 시네필이 영화에 대한 생각을 나누고 언제든 찾아올 수 있는 살롱이 돼야 한다는 것인데.
봉준호 감독 그런 점에서는 이전에 있었던 아트선재센터가 좋았던 것 같다. 공간의 독립성이나 주변환경, 시설 등의 측면에서.
박 솔직히 난 여기도 괜찮은 거 같다. 오승욱 감독도 좋아하잖아. 젊은이들이 잘 안 오려고 하는 게 문제이긴 하지만. 우선, 계약이 끝나면 내일을 걱정해야 하는 불안정한 구조가 개선돼야 한다.
김성욱 프로그래머 지금 공간은 영화 상영이 끝나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장소도 마땅치 않다. 프로그램 성격에 따라 전시 같은 기획을 해볼 수도 있는데 장소 문제가 제일 걸린다. 우리는 공간의 성격을 바꿀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박찬욱 감독 시네마테크라면 필름 아카이브도 있어야 한다. 스크린 수도 여러 개면 좋겠다. 영화제 기간이 짧고 상영 횟수도 몇 번 안 되기 때문에 잠깐 바쁜 일이 있으면 순식간에 지나간다. 그런데, 영화학과 학생들이 시네마테크에 오지 않는 건 정말 이상하다.
류승완 감독 얼마 전에 모 대학에 갔는데, 그들은 자기 학교에도 시네마테크가 있다고 주장한다. DVD나 디빅스로 다 본다는 거지. 공간에 대한 개념이 완전히 달라졌다. 요즘 젊은이들은 PC, DVD, 필름을 다 같은 걸로 생각한다. 시네마테크가 뭔가 다른 체험을 할 수 있는 공간이라는 인식이 안 돼 있다.
봉준호 감독 영화학과 교수들도 개탄한다. 요즘 애들은 고전을 잘 안 본다고. <디파티드>를 보면 마틴 스콜세지의 초기영화를 보고 싶지 않을까? 나는 그랬는데 요즘 친구들은 안 그런 것 같다. 현재 영화와 과거 영화에 대해 이분법적으로 생각이 갈려 있다. 고전영화도 당시에는 흥행작들이었는데, 현재 시점에서 고전이라고만 생각한다. 영화사 책에 나오는 영화와 <반지의 제왕>을 다르게 받아들인다.
박찬욱 감독 음대생들은 지금도 모차르트를 듣고 문학 전공하는 학생은 톨스토이를 읽는데 영화만 유독 고전을 도외시한다. 옛날 건 딴 세상 이야기 취급하고 요즘 것만 찾는다. 영화잡지도 아니고 왜 자꾸 새로운 것만 봐야 되는 거야?
류승완 감독 시네마테크 문화는 지금 아니면 정착시키기 힘들다. 지금이 좋은 기회다. 한국영화가 지금처럼 잘 나가고 존중받을 때, 영화에 대한 충심들이 솟아날 때 그런 문화를 만들어놔야 한다. 적어도 영화 하는 게 ‘딴따라’ 소리 안 듣는 시절에 뭘 해도 해야 한다.
박찬욱 감독 옛날에 조영욱(<올드보이> <친절한 금자씨> <싸이보그지만 괜찮아>의 음악감독)하고 목동에서 비디오 가게를 한 적이 있다. 딱 1년 동안 영화마을. 비디오를 꽂아 놓을 때 좋은 영화를 구색으로 갖춰야 해서 꽂아놨는데 아무리 갖다 놔도 빌려가는 사람이 없다. 영화도 좋고, 기간도 길고, 대여료도 싼데 아무도 안 빌려가.
류승완 감독 난 영화마을에서 일할 때, 좋은 영화는 반짝거리는 비닐케이스로 포장을 바꿔놓았다. 반짝거리는 비닐로 싹 갈아 놓으면 신품인 줄 알고 잘 빌려 간다.(웃음) 테이프 위치도 신품처럼 앞으로 빼 놓는다. 빌려가서 2주씩 안 가져오는 사람들은 신프로 대신 그런 영화 꽂아 놓으면 여지없이 빌려간다. 나중에 와서 막 항의하지. 이런 거 왜 빌려 주느냐고.
봉준호 감독 체험을 하면 조금씩 달라질 수 있다. 고전영화인데 너무 재미있고 압도적으로 다가오는 걸 체험하고 나면 생각이 바뀔 수 있다. 시네마테크가 필요한 게 그런 이유 때문이고.
박찬욱 감독 더글라스 서크 회고전 할 때 우리 아이를 데려와서 영화를 여러 편 봤는데 정말 재미있어 하더라. 보면 그렇게 좋아한다. 서크 영화가 또 멜로드라마니까 웃고 울고 하면서 보기 좋다.

시네필 문화의 달라진 풍경들

FILM2.0 지금 주 관객층들은 과거 시네필 세대와 연배 차이가 많지 않은가?
류승완 감독 난 지금 세대와 거의 차이 안 난다.
봉준호 감독 나도 별로 차이 안 난다. 박찬욱 감독님은 차이가 좀 나지? 우리는 야매 시네마테크 세대다. 불법 카피한 비디오테이프에 길들여진 세대. 화질이 다 뭉개진 로셀리니의 <무방비 도시>를 눈이 벌개져서 본 사람들이다. ‘세계영화사’ 책에 나온 영화들을 전부 한 번 보고 싶다는 열망이 너무 강했다. 우리는 후진 거, 떡 진 거라도 봐야 하는 세대였다. 요즘은 인터넷에 다 있고 DVD 주문하면 다 온다.
박찬욱 감독 80년대 초 서강대 커뮤니케이션센터라는 게 있었다. 거기가 야매 시네마테크였다. 프랑스문화원, 독일문화원이 자막은 없지만 그나마 제대로 영화 볼 수 있는 유일한 창구였다.
봉준호 감독 독일문화원에 빔 벤더스가 왔었잖아. 당시 서울대 학생이었던 김홍준 감독이 놀라운 질문들을 퍼부어서 빔 벤더스가 흠칫 놀랬다는 전설적인 이야기가. 한국에 뭐 이런 애가 다 있나, 싶었던 거지. 그 다음에 문화학교 서울이 나타나서 왕성하게 활동했다.
류승완 감독 문화학교 서울은 비디오테이프 겉에 쓴 영화제목을 타이프를 쳐서 붙였다. 나름대로 큰 변화였다. 다른 데는 급하면 매직으로 썼는데 거기는 굉장히 전문적이었다. 영화만 트는 게 아니라 공부도 하고 연구서도 냈다.

FILM2.0 비록 야매 시네마테크 문화지만, 그런 자양분이라도 받지 않았나? 지금의 다운로드 세대들은 영화 보는 방식, 접근 태도 모두 다르다. 당신들은 시네필 세대지만 영화를 만들어서 보여줄 사람들은 지금 세대들이다.
봉준호 감독 야매 말고 언더그라운드라고 하자. 안 그래도 그런 부분이 걱정된다. 시네마테크에서는 일정한 시간에 모여서 누군가 틀어주는 영화를 본다. 이렇게 허우대 멀쩡한 놈도 영화를 좋아하는구나, 뭐 저렇게 생긴 애가 영화를 좋아하냐, 라는 공감을 하면서 본다. 컴퓨터에 저장시켜놨다 잠깐 보다가 벨소리 울리면 포즈 누르고 전화 받고 다시 보는 것과 완전히 개념이 다르다. 영화는 점점 휴대전화 동영상처럼 변하고 있지 않나.
류승완 감독 누구나 자기 과거는 좋게 기억한다. 지금 내가 좋아한 걸 놓치기 싫어서 몸부림치는 건지, 요즘 세대들도 좋아할 수 있는데 몰라서 즐기지 못하는 것인지, 고민을 많이 했다. 요즘 세대들도 아주 싫어하지 않는다는 생각을 하는 것이 시네마테크에서 본 영화에 쇼크 먹고 열광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잖아?
봉준호 감독 고전이나 희귀영화 마니아들이 볼 만한 영화들은 더 다운받기 편하게 돼 있다. 자막도 기가 막히게 들어가 있다. 시네마테크가 빨리 자리를 잡아서 그 친구들을 자봉으로 끌어들이는 것도 방법이다.(웃음)
박찬욱 감독 <센소>는 거기에도 없던데. 다운로드에 도가 튼 선수들 시켜서 찾아보게 했는데 그런 영화는 없대. 컴퓨터나 DVD로 보는 것과 극장에서 보는 영화는, 음악으로 치면 연주회에서 듣는 음악과 CD로 듣는 음악의 차이와 같다. 다운로드족도 개봉영화는 보러 가잖아.
봉준호 감독 시네마테크에서는 개봉영화를 안 하잖아.
류승완 감독 피카소 그림을 화집에서 봤으면, 그 그림을 ‘안다’고 하지 ‘봤다’고 하지 않는다. 음악도 마찬가지인데 영화는 다운로드로 봐도 다 봤다고 생각한다. 영화를 만들 때 모니터 사이즈를 생각하면서 만들진 않잖아.
박찬욱 감독 영화가 쉬워서 그런가봐. 만만해서.
김성욱 프로그래머 영화를 봤다, 영화에 대해 얘기한다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영화를 어디서 봤는지가 중요한 문제다. 해외 감독들은 비평가들에게 그런 불만을 많이 드러낸다. 대부분의 비평가들이 극장에서 영화를 보고 평가하지 않는다. 영화가 어디에 있는가의 문제, 영화는 극장을 전제로 해서 만드는데 요즘은 다른 곳에서 본다는 게 큰 갭이다.
박찬욱 감독 요즘에는 사무실에서 봤나, 집에서 봤나가 중요하다.(웃음) 배우인 (이)병헌이도 친구들하고 시네마테크에 같이 오고 싶은데 자기 온다고 소문나면 일본 아줌마들이 표 다 사버려서 안 된대.(웃음) 일본 아줌마들 무서워.
봉준호 감독 알랭 들롱 회고전 때 보니까 시네마테크에 아주머니, 할머니들이 많이 와 있었다. 그분들에게는 알랭 들롱이 브래드 피트였고 디카프리오였다. 그분들 소싯적에 알랭 들롱 얼마나 대단했어. 지금 고전이 과거 흥행영화라는 걸 잊지 말아야 된다니까. 우리도 고령화 사회로 넘어가고 있기 때문에.
박찬욱 감독 프랑세즈에 오는 사람들이 대부분 그런 사람들 아닌가?
류승완 감독 김기영 감독님 회고전에 이화시 씨가 오는 거, <바람 불어 좋은날> 할 때 안성기 선배님이 오는 거, 이런 게 재미있다. 외국 고전도 있지만 한국영화 고전에도 눈을 돌릴 수 있다. 난 사실 2006년 가장 좋았던 게 이두용 감독님의 <최후의 증인>이었다. 영화 틀고 이두용 감독님 모셔서 얘기 들으면 재미있자나?
박찬욱 감독 영상자료원이 학문적이고 자료보관 측면이 강하다면, 시네마테크는 좀 더 자유롭고 재미있게 프로그램을 꾸밀 수 있으니까 그런 부분들을 더 고민했으면 좋겠다.
봉준호 감독 김기영 감독님 회고전에는 정일성 촬영감독님 모시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당시의 생생한 이야기들도 듣고. 이화시 여사님은 박정희 정권 때 얼굴이 퇴폐적이라는 얼토당토않은 이유로 활동을 못 하신 게 영원히 상처가 되신 것 같았다. 지금도 활동하고 있는 윤여정 여사처럼 계속 영화하고 싶다고 젊은 감독들이 좀 불러 달라고 하셨다.
류승완 감독 진짜 생존에 계신 선배 감독님들 모셔서 회고전 했으면 좋겠다. 그런 생생한 증언들이 모이면 역사를 만들어갈 수 있다. 이두용 감독님 회고전에서 <최후의 증인> 상영하기 전에 앞에 나가서 감독님이 마이크를 잡으셨는데, 손을 부들부들 떠시면서 “이 영화는 인간 회복을 외치는 영화입니다!”라고 외치셨다.
박찬욱 감독 여러 해 전에 이두용 감독님을 만나서 <최후의 증인>이 최고라고 했는데, 그땐 가 더 낫지 뭘, 그러셨는데 자신감을 많이 얻으셨나보다. 그때까지만 해도 날 별 이상한 애 다 보겠다는 눈으로 쳐다보셨다.
김성욱 프로그래머 제도화된 아카이브와는 다른 걸 해볼 수 있는 여지들이 있다. 서구 시네마테크의 기능 중에도 제대로 된 평가를 못받은 영화를 발굴하거나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영화들을 묶어내고 조명하는 기능이 있다.
봉준호 감독 프랑세즈에서도 이상한 거 많이 기획한다. 테렌스 피셔의 공포영화, 이탈리아 에로티시즘 회고전 등 다양하다. 장 프랑수아 로제라는 사람이 있는데 잡스러운 취향이라 B시네마 프로그램을 많이 기획한다.
김성욱 프로그래머 시네마테크 상영을 통해 그런 영화들에 대한 평가를 달리 내리는 작업이 중요하다. 30석 정도 되는 공간이 허락된다면, 필름과 DVD를 혼용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럴 경우 지금보다 훨씬 더 다양하게 셀렉션할 수 있다.
박찬욱 감독 난 찬성이다. DVD도 레이저로 한글자막을 쏴주면 된다.

우리들의 행복한 영화

FILM2.0 영화제를 위해 각자 영화들을 추천했는데, 실제로 더 보고 싶은 영화들도 있었다고 들었다.
박찬욱 감독 추천한 영화가 복수였다. 원래는 베르톨루치의 <컨포미스트>를 정말 보고 싶었다. 웬만하면 흑백 말고 컬러영화로 하려고 한다. 컬러가 프린트로 보면 감동이 더 크다. <컨포미스트>는 영화사상 가장 위대한 촬영이라고 말할 수 있는 영화고 프로덕션디자인 측면에서 도 그렇다. 근데 그 영화는 이번에 상영이 어렵다고 해서 접었다. 안토니오니 영화를 좋아하기 때문에 <패신저>를 추천했다. 안토니오니하고 같이 일했던 제작자를 만난 적이 있는데, 안토니오니가 자기 영화 말할 때는 <여성의 정체>를 꼭 말한다고 그러대.
김성욱 프로그래머 <여성의 정체>는 예전에 한국에서 수입한 프린트로 서울아트시네마에서 튼 적이 있다. 노출 장면이 많아서 제대로 개봉을 못 했다. 비디오로 출시될 때는 ‘에로티시즘의 거장 안토니오니’라는 말이 박혀서 출시됐다.
박찬욱 감독 난 이탈리아영화가 좋다. 영화제에 가면 경쟁 부문보다 회고전을 주로 보는데 감동적으로 봤던 게 ‘킹즈 오브 이탈리안 B’이라는 프로그램이다. 프로그래머가 조 단테와 쿠엔틴 타란티노였다. 전부 심야상영인데 다 재밌지는 않았지만 인상적이었다.
봉준호 감독 난 구로자와 아키라의 <숨은 요새의 세 악인>을 먼저 골랐는데 그 영화는 수입이 돼서 올해 개봉한다고 하더라. 화면 사이즈의 차이를 가장 압도적으로 느낄 수 있는 감독이 구로자와라고 생각한다. <란> 같은 영화를 봐도 알 수 있는데, 공간을 장악하거나 펼쳐내는 파워가 남다르다. 이마무라 쇼헤이의 <복수는 나의 것>이 그 다음이었다. 사실 말은 안 했는데 베르톨루치 <1900년>을 보고 싶었다. 걸작이다 아니다 평하긴 쉽지 않지만 불균질하고 복잡한, 어마어마한 스케일의 영화인 건 사실이다. 감독에게는 완전히 소진해버리는 시점이 있는 것 같다. 코폴라도 <대부> 1, 2편, <컨버세이션>을 지나 <지옥의 묵시록>에서 완전 연소가 되더니 그 다음부터 비리비리한 영화만 찍으면서 여생을 보내고 있다. 베르톨루치에겐 <1900년>이 그렇게 완전 연소된 영화인 거 같다. 이탈리아영화도 계보를 만들어 상영하면 재미있을 거 같다. 펠리니도 로셀리니의 조감독 아니었나?
박찬욱 감독 비스콘티는 장 르누아르의 조감독이었다.
김성욱 프로그래머 안토니오니는 마르셀 카르네의 조감독이었고, 베르톨루치는 파졸리니의 첫 영화 <아카토네>에서 조감독을 했었다.
류승완 감독 난 처음에 <최후의 증인>을 꼽았다. 영상자료원에서 그 영화를 볼 때 분위기 정말 장난 아니었다. 저작권문제 때문에 못 틀게 됐지만. 예전부터 박찬욱 감독님이 <최후의 증인>, <최후의 증인>, 하도 그러셔서. 강우석 감독님도 <흑수선> 제작하실 때, <최후의 증인>을 봤기 때문에 <흑수선>을 만들 수 있다는 얘기를 하셨다. 그 실체를 보고, ‘내가 정말 존경할 만한 감독님, 자랑스럽게 얘기할 만한 영화가 생겼구나’라고 벅찬 흥분을 느꼈다. 구로사와의 <천국과 지옥>, 알드리치의 <북극의 제왕>, 라울 월시의 <포효하는 20년대>를 거쳐서 <더러운 얼굴의 천사>가 올라갔다.
박찬욱 감독 그 영화가 제임스 캐그니가 사형당하는 영환가? 예전에 배우 최무룡 씨가 주부상대 아침 프로그램에 나왔다. MC가 “아드님의 연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라고 물으니까 그때가 <모래시계>하고 있을 때인데, “눈에 힘만 준다고 명연기는 아니죠”, 이러는 거다. 그러면서 “<더러운 얼굴의 천사>라는 영화를 보면 제임스 캐그니가 사형당할 때 보여주는 연기가 진짜지”, 그런 말씀을 하시더라고.
류승완 감독 제임스 캐그니 연기를 배우지망생들이 보면 진짜 좋을 거다. 캐그니는 진짜 갱으로 태어난 사람 같다. 캐그니를 보면 조 페시가 되게 착실해 보인다니까. 제임스 캐그니는 영화마다 설정이 있다. 그 영화에서 어깨를 까딱까딱하면서 말을 하는데, 어우 너무 멋있어서 영화 본 다음 며칠 동안 그거 흉내 내면서 다녔다. 되게 야비하게도 나오고. 그리고 키가 아담해서 좋아.
박찬욱 감독 스탠리 큐브릭이 위대한 배우 세 사람 중 하나로 꼽았자나.
봉준호 감독 나머지 두 명은 누구지?
박찬욱 감독 잭 니콜슨하고 제임스 스튜어튼가?

FILM2.0 기획자 입장에서 영화제를 준비한다면 어떤 프로그램들을 꾸리고 싶은가?
박찬욱 감독 난 지금 준비 중이다. 언젠가 할 거다. 악인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영화 중 걸작을 묶어서 하는 ‘최선의 악인들’이라고. 영국 ‘프리시네마 회고전’도 하고 싶었는데, 그건 2월 달에 한다고 들었다. 프리시네마 감독들은 진정한 연출의 ‘선수들’이다. 한국에서는 필름으로 보인 적이 없고 큰 조명을 받지 못해 지금은 완전히 잊혀졌다.
김성욱 프로그래머 프리시네마 회고전 할 때 ‘감독조합 추천영화’를 받고 감독들이 직접 영화를 소개하는 행사를 하면 좋을 것 같다.
봉준호 감독 감독조합 추천작이라는 도장 찍고 감독조합 정기모임을 시네마테크에서 하는 거지. 떼로 와서 영화 같이 보고 한 명이 나가서 영화소개도 하고. 난 기획하라면 김기영 감독님 전작 회고전을 하고 싶다. 살아계신 한국 감독님들 회고전을 많이 해보고 싶다.
류승완 감독 나는 주목받는 신작들의 계보를 추적하는 영화제를 해보고 싶다. 감독 중심이 아니라 종역이나 단역, 스탭들을 중심으로 계보를 만들어 봐도 재미있을 거 같다. 예전에 한국어로 더빙된 한홍 합작 무술영화들이 있었다. 그게 그렇게 보고 싶다. 왕우가 ‘카사노바 왕’이라는 이름으로 나오는 진짜 싸구려 영화가 있는데 그런 거 보고 싶다. 옛날에 동시상영관에서 봤던 영화들. 그리고 마이클 파웰 영화 필름으로 보고 싶다. 색감이 진짜 죽일 것 같다.

FILM2.0 시네마테크에 바라고 싶은 당부도 있을 듯하다.
봉준호 감독 집중공략하는 타깃을 설정했으면 좋겠다. 대학과 연계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영화는 관람의 습관이란 게 중요하기 때문에 일단 재미를 붙이기 시작하면 계속 볼 수 있다.
류승완 감독 더 많은 사람들이 올 수 있도록 하는 마케팅 방식도 고민해야 할 것 같다. 명분에 사는 일이지만 실리도 중요하다.
박찬욱 감독 난 영화제 기간이 짧다는 게 제일 아쉽다. 상영이 몇 번 안 되기 때문에 놓치는 영화들이 아깝다. 번듯한 전용관이 설치돼야 해결될 수 있는 문제다. 난 이번 대선에서 시네마테크 전용관 확보와 지원을 공약으로 내 건 후보를 무조건 찍을 거다. 영화인들이 밀어주면 대통령이 되지 않나.(웃음)

진행 장병원 기자 | 정리 김교석 기자 | 사진 김수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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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집을 짓자, 보는 기쁨을 위하여
시네마테크 전용관, 어떻게 시작할까?
2007.02.14 / 김혜선 기자

시네마테크 전용관의 필요성이 대두된 지는 오래다. 이젠 언제 어떻게 누가 그런 일들을 이루어낼 수 있을지, 어떤 사례를 좇아 한국적 시네마테크 전용관을 만들어야 할지에 대한 논의들이 뒤따라야 할 때다.

지난 1월 18일부터 2월 6일까지 서울 낙원동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열린 ‘2회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가 성황리에 막을 내렸다. 박찬욱, 봉준호, 홍상수, 류승완, 김지운, 김홍준, 오승욱 감독, 영화평론가 정성일, 배우 유지태, 엄지원이 ‘시네마테크의 친구’를 자처했고, 작품을 추천한 이들 게스트와 함께하는 ‘관객과의 대화’는 거의 매진됐다. 이 때문에 영화제 첫 주엔 280석의 상영관에 200석이 들어차는 등 평일 평균 좌석점유율이 75%에 달했을 정도. 관객들의 뜨거운 반응으로 인해 영화제는 한마디로 대박이었다. 서울아트시네마의 행사 중 가장 흥행이 잘되는 축에 속하는 ‘시네바캉스’도 평균 관람객이 100명 정도임을 감안하면 놀라운 상황이었다. 서울아트시네마 김수정 사무국장은 “19일간의 영화제 기간 동안 서울아트시네마를 찾은 전체 관객 수는 약 8,300명이다. 2006년에는 9일간 5,800명이 들었다. 기간이 19일로 늘었는데도 작년에 비해 관객이 줄어들지 않았다는 사실은 꽤 고무적”이라는 소감을 밝혔다.

관객들 중 상당수는 박찬욱, 김지운, 류승완을 비롯한 영화인들이 추천한 영화를 보고 싶다는 기대감, 영화를 보고 그들과 대화할 수 있겠다는 기대감으로 영화제를 찾았다.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의 <절규>와 '봉준호 감독과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 대담‘은 가장 먼저 표가 매진됐고 ’시네마테크의 친구‘들의 추천영화 중에선 <복수는 나의 것>이 가장 빨리 매진을 기록했다. 김수정 사무국장은 “2주차로 접어들며 빌리 와일더 영화를 상영했을 때는 평소 시네마테크를 찾는 연령층의 관객들이 많았지만 감독들이 관객과 대화를 하러 오는 시간에는 관객 연령층이 매우 젊었다”고 설명한다. 신작 <절규>의 상영과 대담을 진행하고 영화제 후원차 서울아트시네마를 찾았던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은 이런 풍경을 보고 무척 놀라워했다. “일본에선 주류 영화감독들이 절대 이런 일 안 한다.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지. 자기 영화 찍느라 바쁘다. 어떻게 이처럼 관객 몇백만을 동원하는 현역 감독과 젊은 관객들이 한자리에 모여 영화를 볼 수 있는지 신기하다.” 하긴, 이건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풍경이다. 장 뤽 고다르, 프랑수아 트뤼포, 클로드 샤브롤 등이 시네마테크 프랑세즈에서 영화를 보고 열띤 토론을 했던 시절은 그들이 누벨바그의 명감독이 되기 전이었다. 기요시의 말처럼 이 신기한 풍경 속에는 시네마테크의 미래를 열어갈 중요한 열쇠가 있다.

공간이 곧 문화

감독들은 왜 시네마테크를 사랑할까? 지난 12월 말 ‘FILM 2.0과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대담’에 참석했던 봉준호 감독의 말이 그 이유를 대변해준다. "우린 불법 카피한 비디오테이프에 길들여진 세대다. 화질이 다 뭉개진 로셀리니의 <무방비 도시>를 눈이 벌개져서 본 사람들이다. ‘세계영화사’ 책에 나온 영화들을 전부 한번 보고 싶다는 열망이 너무 강했다.“ ‘야매’ 비디오 속 다 찌그러진 영상을 보면서 영화를 공부하고 만들었던 이들에겐 그 ‘야매’들의 실체인 필름으로 영화를 본다는 사실이 놀라운 경험일 수밖에 없다. 다운로드가 횡행하는 시대, 작은 모니터나 TV 화면으로는 체험할 수 없는 스크린의 기운이 그들을 시네마테크로 불러 모으는 것이다. 그런 감독들의 체험담을 들으러 온 관객들 사이에서 미래의 감독, 미래의 배우, 미래의 평론가가 나오는 순환의 역사가 만들어질 수 있는 것이다. 더군다나 이 체험을 상시적으로 할 수 있는 공간이 있다는 건 영화를 평생의 업으로 삼는 사람들이나 영화를 문화로 받아들이는 이들 모두에게 일종의 축복이다.

“시네마테크 전용관을 허하라”는 이슈는 이런 취지에서도 부각됐지만 이 얘기가 물론 어제오늘의 얘기는 아니다. 2002년 1월 한국시네마테크협의회가 출범하고 2002년 5월 서울 소격동 아트선재센터 지하에서 한국시네마테크협의회가 운영하는 전용관 서울아트시네마가 개관했을 때부터 그 길고 긴 논의의 역사는 시작됐다. 서울아트시네마는 아트선재센터와의 2년 계약 후 재계약 불가를 통보받고 2005년 서둘러 지금의 서울 종로구 낙원상가로 이사했다. 그러나 전세살이다보니 새로 이사 간 집도 불안하긴 마찬가지. 올해 3월 만료 예정이었던 허리우드 극장과의 계약이 1년 연장되면 잠시 안정을 찾긴 하겠지만 임대계약 연장은 당연히 임시방편에 불과함을 관계자들 모두 인지해왔다. 불안한 세입자 신세를 청산하지 않고서야 미래를 계획할 수 없는 일. 시네마테크 전용관이 필요하다는 논의는 그렇게 촉발됐고, 2007년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를 통해 그 논의는 더욱 진지한 태도를 갖추게 됐다. 특히 영화제 중반 무렵인 지난 1월 31일에는 시네마테크 전용관 설립을 위한 포럼이 개최됐다. ‘시네마테크는 전용관이 필요하다’라는 제목의 이 포럼에서 서울아트시네마는 계획 중인 새로운 전용관의 조성계획과 이 공간의 성격과 내용 등에 대해 밝혔고, 40명가량의 회원 관객들이 참석해 자유로운 대화를 통해 '영화의 집‘을 만들자며 목소리를 높였다.

서울아트시네마가 내놓은 전용관 구상은 이렇다. 일단 200~250석 규모로 영화 상영과 기타 공연이 가능한 단관 상영관의 형태를 취한다. 서울아트시네마 측은 “영화를 영화로 보기에 적합한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 2, 3개관보다는 단관 형태가 좋다고 판단했다. 규모가 커지면 어쩔 수 없이 이벤트성 행사를 열어야해 시네마테크 본연의 모습을 잃어버릴 수 있다는 생각에 단관을 지향하기로 했다”고 밝힌다. 그 안에 대형스크린이 설치돼 있고 50명 정도를 수용해 토론을 벌일 수 있는 세미나실을 둔다. 관객들의 토론문화를 이끌어내겠다는 취지다. 허리우드 극장의 열악한 영사실과 다른 넓은 영사실의 필요성도 부각된다. 현재는 상영회 때만 어렵게 구한 필름을 상영하고 반납하는 형태지만, 필름을 지속적으로 상영할 수 있는 아카이브가 만들어진다면, 상영설비 역시 다양한 영화들의 포맷에 맞는 시스템을 갖춰야하기 때문이다.

전용관엔 다양한 형태의 필름을 틀기 위해 16mm, 35mm 등 여러 종류의 영사기를 갖추고 한꺼번에 10여 편을 상영하는 영화제를 열 경우 필름 릴을 여러 개 보관할 수 있는 규모의 넓은 영사실을 마련할 계획이다. 필름편집기를 보유한 필름검색실도 만들겠다는 포부다. 영화를 본 관객들이 영화의 감흥을 간직한 채 삼삼오오 무리를 지어 영화 얘기를 할 수 있게 만든 시네카페도 부대시설로 계획 중이다. 미래의 서울아트시네마 전용관은 프랑스의 시네마테크 프랑세즈나 미국의 필름 포럼, 필름 소사이어티 오브 링컨 센터처럼 박물관이나 전시실, 아카이브를 포함한 화려한 규모는 아니지만 한국적 실정에 맞춰가자는 취지의 구성으로 보인다. ‘영화의 집’으로 일컬어지는 ‘메종 드 시네마’의 축소판이라고 할 만하다. ‘영화의 집’이 정확히 무엇일까? 영화 박물관인가? 영화관인가? 영화 학교인가? '영화의 집‘은 이 모든 것을 포함해야하는 곳이다. 서울아트시네마 김성욱 프로그래머는 “미래의 시네마테크는 영화를 상영한다는 것만으로 그 기능을 다한다 할 수 없다. 교육, 자료 열람이 복합적으로 이뤄지는 곳이어야 한다. 과거의 영화들도 보면서 현재의 영화를 토론하고, 미래의 영화를 만들려는 사람들을 북돋아주는 곳이 돼야 한다”며 ’영화의 집‘의 가치를 설명한다. 문제는 이런 전용관을 어디에 어떻게 세울 것이냐다.

서울아트시네마가 밝힌 전용관 구상에 따르면 전용관 건립비용은 60~70억 원 정도로 추산된다. 이 정도 비용은 정부지원 없이는 불가능하다. 뜻있는 대기업이 기업이름과 이미지를 내걸고 대폭 지원금을 낼 수도 있겠지만 현재로서는 어려운 일이다. 그 때문에 서울아트시네마는 영화진흥위원회와의 연계를 통해 서울시와의 면담을 추진 중이다. 서울아트시네마 측은 오세훈 서울 시장과의 만남이 성사된다면 "대중을 이끄는 예술가들을 만들어나가기 위한 투자라고 봤을 때 60~70억의 건축비용이나 대지 마련이 결코 많은 액수가 아님“을 피력할 계획이다. ”영화에 대한 담론을 만들어나가는 것은 곧 문화적 경쟁력을 갖추는 것"임을 설득하려 한다. 시네마테크를 지지하는 박찬욱, 봉준호 감독이 '문화 로비스트‘로서의 사명을 띠고 이 만남에 시네마테크의 대변인으로 참석할 예정이다. 2006년 12월에서 올해 2월로 연기된 이 만남은, 그러나 좀처럼 가시화되지 않고 있다.

시네마테크 서포터스, 모여라

시네마테크 전용관을 짓는 게 플랜 A라면, 시네마테크 전용관을 건립할 때까지 무사히 혹은 꾸준히 현재의 시네마테크를 지켜내는 것은 플랜 B다. 플랜 B의 어려움은 시네마테크 운영의 어려움과 직결된다. 2006년 영화진흥위원회의 전국 시네마테크 지원금은 총 3억 7천5백만 원인데, 서울아트시네마가 허리우드 극장에 내는 임대료만 해도 그 액수의 1/3가량 되는 1억 4천만 원이니 운영재정의 열악함은 말로 다 못한다. 한정된 예산 하에서 프로그램을 위해 필름을 수급하고, 번역과 자막작업을 하는 등의 업무를 온전히 해내기란 당연히 어렵다. 절대비교를 할 순 없지만 미국 뉴욕의 대안극장이자 예술영화 전용관인 ‘필름 포럼’의 1년 운영예산이 35억 원임을 생각하면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프로그램 운영과 필름 수급 등을 원활히 하려면 역시 지금보다 더 많은 서포터스가 필요하다.

시네마테크의 ‘붉은 악마’라 할 열혈 서포터스는 몇몇 영화감독들과 배우들의 모임인 '시네마테크의 친구들‘(대표 박찬욱 감독)이다. 올해는 문화적 연대의 차원에서도 시네마테크를 지지하는 미술가들이 참여해 전시회를 연 바 있다. 서울아트시네마는 이 외에도 서포터스 그룹을 하나둘 늘려나갈 요량이다. 추후 가장 눈에 띄는 서포터스그룹으로 떠오르는 이들은 한국영화감독조합(이하 ’감독조합‘)이다. 김성욱 프로그래머는 “감독조합의 감독들이 매달 시네마테크에서 상영하는 영화들 중에서 한 편을 골라 관객과의 대화를 진행하기로 합의했다”고 말한다. 그 시작은 2월 말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열리는 영국 프리시네마 특별전부터다.

첫 타자는 <타짜> 최동훈 감독. 존 슐레진저의 <어 카인드 오브 러브>를 소개하고, 상영 후 관객과의 대화를 진행하기로 했다. 최동훈 감독은 “한때 놀랍게도 한국에 시네마테크가 없었던 시절이 있었고, 지금은 시네마테크의 존재가 위협받고 있다. 감독조합 차원에서 마음의 응원 이상의 물질적 응원을 하겠다는 공론이 모아져서 참여하게 됐다. 공부하는 마음으로 보고, 관객들과 필름으로 영화를 보는 그 놀라운 기쁨을 나누고 싶다”고 말한다. 최동훈 감독 외에도 감독조합의 봉준호 감독, 김대승 감독, 정윤철 감독, 김태용 감독 등이 적극적인 동참의 의지를 피력했다. 감독조합은 거시적 차원에서 상업적 이유가 아닌 시네마테크 상영을 위한, 혹은 소장가치가 있는 고전영화의 필름과 상영권을 구입해 시네마테크에 기증하겠다는 계획도 논의 중이다. 최동훈 감독은 “지금 한국 영화산업이 위기라고들 하는데, 이럴 때일수록 문화적 저변을 넓혀야하는 게 사실이다. 얼마 전 시네마테크에서 장 피에르 멜빌의 <그림자 군단>을 보고 이걸 필름으로 볼 수 있다는 게 너무 행복해서 거의 울다 왔다. 본다는 것의 소박한 기쁨을 영화광이 아닌 일반인들에도 알려주고 싶다. 무식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해외로 유학 가 시네마테크에서 영화를 본 기억이 있는 사람들이 많지만 한국에 시네마테크가 건재하면 더 이상 유학 갈 필요도 없지 않겠나”라고 말한다. 사실 그렇다. 감독조합의 이런 움직임은 프랜시스 맥도먼드, 존 터투로 같은 배우들과 영화, 음악, 연극, 문학, 분야 기부자들이 참여해 미국 필름 포럼을 후원하는 집단 '서클 오브 아티스트’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서울아트시네마는 이 외에도 더 많은 배우들, 촬영감독조합, 소설가 집단이나 그 밖의 문화예술 단체들과의 연계를 통해 시네마테크 서포터스의 범위를 넓혀갈 계획이다.

정부와 기업, 투자하라

1948년 앙리 랑글루아가 설립한 프랑스의 시네마테크 프랑세즈가 2005년 낡은 샤이어궁에서 나와 전용관 격인 건물을 짓고 베르시로 이전할 때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1980년대부터 이전 논의가 계속됐고, 90년대 말부터 정부 차원에서 이전 프로젝트가 구체화됐다. 현재의 시네마테크 프랑세즈는 영화 상영을 위한 네 개의 스크리닝 룸이 들어서고, 랑글루아 시절부터 축적된 엄청난 소장품을 보유한 영화 박물관과 전시실, 모든 좌석에서 DVD, CD 등 영상을 볼 수 있는 영상자료실, 그리고 영화 전문가나 관계자들을 위한 라이브러리, 레스토랑 등 부대시설이 멋지게 자리 잡고 있다. 이전하기 전에는 10만 정도의 관객이 들었지만 이전 후엔 영화를 보러 오는 관객 수와 박물관, 전시회, 자료실을 다녀가는 방문자 수를 포함해 연간 40~50만 명이 다녀가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영화문화의 토양과 역사가 판이하게 다른 한국의 시네마테크가 시네마테크 프랑세즈를 표준모델로 삼을 수는 없다. 시네마테크 프랑세즈가 오랜 역사 속에서 이뤄낸 것을 한국의 시네마테크가 속성으로 이뤄낼 수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시네마테크 프랑세즈를 영화를 포함한 더 큰 문화유산으로 여긴 프랑스 정부의 시선은 모델로 삼을 만하다.

시네마테크 프랑세즈는 정부와 CNC(프랑스영화진흥위원회)가 재정의 80% 이상을 지원하며 나머지 20%는 관객수입으로 채운다. 포럼 데 이마주는 파리 시가 90%의 재정을 지원한다. 프랑스처럼 일찌감치 영화를 문화적 유산으로 인정한 독일의 경우도 시네마테크가 지역의 커뮤니티가 되는 사례가 있다. 독일 전역에서 160개 정도 운영되고 있는 공공영화관 코뮤날레 키노인데, 비영리단체가 재정의 80%를, 코뮤날레 키노가 들어서는 각 지방자치 단체에서 20%를 지원한다. 국가의 관여나 제도적 장치가 아닌 시장에서의 비상업적 방식으로 영화문화를 활성화한 미국의 경우는 조금 다르다. 뉴욕영화제를 하면서 상설 시네마테크로 만들자는 의견을 수렴해 1969년 문을 연 ‘필름 소사이어티 오브 링컨 센터’는 극장수입, 잡지 판매수입, 사업수입으로 재정의 50%를, 기부금으로 나머지 50%의 수입을 충당한다. 2006년 미국 연예주간지 ‘엔터테인먼트 위클리’ 지가 ‘뉴욕 최고의 극장’으로 평가한 ‘필름 포럼’은 포드 재단의 저금리 융자와 티켓수입이 재정의 40~50%를 차지하고, 기업 조성금, 개인 기부, 공적 지원 등을 받아 민간과 기업의 도움으로 운영되고 있다. 사실상 이들 어느 곳도 우리에게 딱 맞는 모델은 없다. 김성욱 프로그래머는 “한국적인 상황을 고려해 우리 스스로 모델을 만들어나갈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지금으로선 서울아트시네마의 전용관 구상이 단순한 구상에 그치지 않게 하는 것이 급선무다. 인구 1,200만의 도시 서울을 향한 시네마테크의 호소가 받아들여질 때 부산과 대구 등 지역 시네마테크의 미래도 단단해진다. 그러려면 문화관광부, 영화진흥위원회, 그리고 서울시가 시네마테크 전용관 설립 프로젝트를 한류 버금가는 중요한 문화 프로젝트로 받아들여야 한다. 미래의 위기를 두 손 놓고 맞을 수는 없는 일이다. 시네마테크는 더 이상 영화광만을 위한 집이 아니다. 영화라는 꿈을 꾸고 보는 유년부터 노년까지의 모든 이들을 위한 것이다.

사진 이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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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의 시네마테크를 구하기 위한 특별한 행사가 지난 1월18일 수요일 밤 종로구 낙원동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있었다. 18일부터 26일까지 개최될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 기자회견 및 서울아트시네마 후원의 밤이 함께 열린 것이다. 먼저 영화제 기자회견에는 박찬욱, 김지운, 오승욱, 류승완 감독 등이 단상에 올라 이 행사에 참여하게 된 계기와 의의 등에 대해 설명하는 시간을 가졌다. 뒤이어 영화배우 권해효의 사회로 열린 후원의 밤 행사는 최정운 한국시네마테크협의회 대표의 인사말을 시작으로 김수정 한국시네마테크 협의회 사무국장이 향후 서울아트시네마의 계획을 발표하는 시간으로 이어졌다. 설명회가 끝난 뒤에는 버스터 키튼의 <제너럴>을 상영했다. 이날 열린 행사는 침체에 빠진 한국의 시네마테크 문화를 일으키자는 의의에서 마련됐다.

“이곳이 없어지면 영화 볼 곳이 없다”

“감독들 중에서 영화 보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연계해서 힘이 되어보자 해서 출발하게 된 거다. 나 같은 경우 이곳이 없어지면 영화 볼 곳이 없어진다는 위기감 때문에 참여하게 됐다”(오승욱), “우리에게도 이런 시네마테크 공간이 있고, 그게 미래의 유산이 될 수 있었으면 하고, 그래서 이곳이 더 좋은 조건으로 발전했으면 좋겠다”(김지운), “보고 듣는 수준에서가 아니라 영화를 체험한다는 의미에서 이곳은 각별한 의미인 것 같다”(류승완). 각자 감독들은 영화제의 친구들로 이름을 올리게 된 이유와 시네마테크의 중요성을 이렇게 설명했다. 특히 ‘친구들’의 대표를 맡게 된 박찬욱 감독은 “만약 지금 이 공간이 없었거나, 문을 닫는다면 영화광들은 얼마나 많은 불평을 하겠나? 어렵던 시절에 영화를 공부하느라 고전을 보지 못했다. 지금은 진짜 만학도의 기쁨을 누리는 중이다. 한국의 영화광들은 이곳에서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줄 만한 영화를 만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시네마테크의 올해의 ‘친구들’은 총 9명이다. 감독 박찬욱, 김지운, 오승욱, 류승완, 김홍준, 영화평론가 정성일, 김영진, 배우 황정민, 문소리 등이다. 서울아트시네마는 9명에게 보고 싶은 영화를 한편씩 추천하도록 했고, 각각 <킬러> <벌집의 정령> <석양의 갱들> <충격의 복도> <춘몽> <흩어진 꽃잎> <바람 불어 좋은 날> <올댓재즈> <오프닝 나이트> 등을 꼽았다. 행사 중에는 각자가 추천한 영화 상영과 함께 관객과의 대화 시간도 갖는다. 서울아트시네마 김성욱 프로그래머는 “로버트 알드리치 회고전 때 이 감독들이 내내 극장에 오는 것을 보고 감동받았다. 그때가 계기가 되어 이 영화제를 생각하게 됐다. 이들은 시네마테크를 사랑하는 관객이라고 생각한다. 시네마테크는 관객으로서의 친구를 필요로 한다. 2006년 서울아트시네마가 좀더 많은 관객과 공유할 수 있는 자리가 되었으면 한다”며 친구들 영화제의 배경이 시네마테크의 대중화를 위한 일환임을 시사했다.

낙원동 이전 이후 관객 40% 감소

후원의 밤 행사장 입구

2002년 개관한 시네마테크 전용관 서울아트시네마가 극심한 어려움에 빠지기 시작한 건 지난해 4월 아트선재센터에서 지금의 종로구 낙원동 자리(구허리우드극장)로 옮기면서부터다. 현 2년제 임대계약에 따른 불가피한 결정이었다. 김수정 사무국장은 “극장은 장소가 가진 의미가 큰데, 장소를 이전해야 하니까 타격이 컸다”고 밝힌다. 장소를 옮기면서 인지도가 약화됐고, 극장 주변 환경이 바뀌면서 그나마도 찾던 관객의 발걸음이 현저하게 떨어진 것이다. 예년과 비교해 지난해 관객 수는 40%나 급감했다. 이전을 하면서 든 비용을 포함, 4천만원의 적자를 낸 한해였다. 매년 영화진흥위원회의 국고 지원이 있긴 하지만, 그것만으로 충당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이 김수정 사무국장의 설명이다. 가령, “영진위에서 지난해 3억6천만원 정도의 지원비를 받았지만, 전용관 이전비용 및 임대료, 기기 구입 등에 1억9천만원이 들어갔고, 나머지 1억7천만원 중에서 (번역자막지원사업과 출판지원사업의 비용을 제외하더라도) 주요 사업인 지역순회상영 사업에만 9천만원이 들어갔다”고 밝힌다. 따라서 행사를 할 때마다 외부 지원 조건을 먼저 고려해야 하는 것이 현실이다. “기본적으로 예산을 갖고 하는 게 아니다. 행사를 하려면 어디에서 지원을 받아야 할까 고민하는데, 일본, 독일, 프랑스 등의 영화를 자주 하는 이유도 그곳의 연계 기관들이 지원을 잘해주는 편이어서 그렇다”는 것이다. 최근에 열린 “일본영화 계승과 혁신:쇼치쿠 110주년 영화제”의 경우도 일본국제교류기금에서 2천만원을 지원받았지만, 결과적으로 총비용 4천만원이 넘게 들어가는 행사였고, 수입은 1200만원에 못 미쳤다. 인건비와 실비를 모두 제하고도 400, 500만원의 적자를 낸 상황이다. 대관 행사까지 포함하면 지난 한해 5만8천명 정도의 관객이 들었지만, 사실 이 수치는 한회 상영에 10명에서 20여명 남짓한 관객이 썰렁하게 앉아 영화를 보는 안타까운 풍경을 의미한다. 개관 이래 4년 동안 1100여편의 영화를 상영한 영화의 전당이 위기에 봉착한 것이다.

대중화와 재정 확보가 시급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마련된 방안은 크게 두 가지, 대중화와 재정 확보다. “아트하우스와 시네마테크를 구분해야 한다. 시네마테크는 이윤 추구를 위한 곳이 아니다. 그것이 아트하우스와의 결정적 차이다. 그래서 우리 주변 사람들을 통해 전체적인 기조를 만들어가는 것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는 김수정 사무국장의 말처럼, 저명 영화인들이 발벗고 나서 ‘친구들’을 자청한 것은 시네마테크를 친근하게 알리기 위한 방법 중 하나다. 친구들 영화제는 향후 1년에 한번씩 친구들을 새로 선정하여 올해와 같은 방식으로 추천 영화들을 받아 상영하며, 마스터 클래스도 가질 예정이다.

올해 9명의 명단 외에도 ‘친구’가 되기로 약정된 사람들 중 권종관, 김성호, 이현승 감독 등은 후원의 밤 자리에도 참석했다. “여기 친구가 되면 버림받은 걸작 <진짜 사나이>를 틀지도 모른다고 해서 올라 왔다”는 권해효의 재치있는 오프닝 멘트로 시작한 후원의 밤 행사는 서울아트시네마의 향후 주요 사업을 프레젠테이션하는 순서로 이어졌고, “(대표) 안 하면 <달은…>과 <3인조>를 상영해버리겠다는 협박을 듣고 왔다”는 역시 재치있는 박찬욱 감독의 멘트로 끝났다.

이날 주최쪽이 발표한 주요 사업 내용은 다음과 같다. “서울아트시네마의 대중화, 후원을 통한 안정적 재정 확보, 공간의 안정화를 위한 노력, 교육사업 확대, 기본적인 영화들의 확보” 등이다. 친구들 영화제와 같은 행사로 관객과의 거리를 좁히는 것, 후원회 제도의 활성화를 통해 재정확보의 틀을 마련하는 것, 확보된 재정으로 지금의 공간을 안정적으로 구축하는 것, 또한 교육 사업과 아카이브 구축에 매진하는 것 등으로 요약할 수 있다. “상영, 교육, 아카이브가 주기능인 시네마테크”의 역할을 강화하겠다는 쇄신의 의지다. 구체적으로는 개인후원, 기업후원, 영화제 후원 등으로 나눠 후원금을 모집하고, 연령별 청소년 영화교육프로그램을 준비 중이며, 기부를 통한 프린트 확보도 추진 중이다.

<씨네21>은 시네마테크의 이런 움직임에 동참하는 차원에서 한국시네마테크협의회와 공동 주최로 ‘시네마테크 후원 릴레이 캠페인’을 2월부터 시작한다. 매주 한명의 영화인이 기부의사를 밝히고 내용을 발표할 예정이다. 금전적 기부를 포함, 프린트, 물품, 강의 제공 등 다양하게 전개할 계획이다. 영화 문화의 활성화를 위해 모두가 동참할 때다.

글 : 정한석   사진 : 서지형 | 2006.0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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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핫이슈] 시네마테크 전용관을 허하라!

전용관 없어 2~3년마다 이전 불가피, 필요성 인식 확산 및 각종 지원 시급

2007.02.08
글: 김민경

“잠시 영화 상식 퀴즈가 있겠습니다. 서울엔 시네마테크 전용관이 있다, 없다?!” 현재 서울시 종로구 낙원동 낙원상가 4층에 자리한 서울아트시네마를 방문해본 이라면 “있다!”고 자신있게 답할 것이다. 50년대 할리우드영화부터 90년대 한국영화까지 일반 영화관에선 결코 만날 수 없는 옛날영화들을 소개해주는 서울아트시네마는 명실상부한 시네마테크 전용관이다. 그렇다면 왜 박찬욱, 봉준호, 류승완, 김지운, 홍상수, 김홍준, 오승욱 감독들은 ‘시네마테크 전용관 설립을 위한’이라는 부제로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를 마련해야 했을까. 1월31일 열린 전용관 포럼을 자발적으로 찾은 40여명의 관객이 “시네마테크는 집이 필요하다”며 고민을 나눈 건 어째서일까.

제 역할 위해 공간의 안정성 및 부대시설 확보해야

시네마테크는 일반 상업극장에서 보기 어렵지만 영화사에 의미가 깊은 영화들을 보존 및 상영하는 비영리 민간기관을 뜻한다. 프랑스의 시네마테크 프랑세즈가 대표적인 예이다. 한국에선 서울시네마테크, 문화학교 서울, 시네마테크 부산, 대전시네마테크, JIFF테크(전주) 등 15개 단체의 연합체인 한국시네마테크협의회가 지난 2002년 1월 출범했다. 전용관인 서울아트시네마는 2002년 5월 소격동 아트선재센터 지하에서 개관했다. 거장 감독들의 회고전 외에도 독립영화와 실험영화 후원, 청소년 대상의 교육 상영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한국시네마테크협의회가 영화진흥위원회로부터 위탁받아 운영하는 형태로, 영화진흥위원회는 상영관 임대료 전액과 운영비 일부를 지원한다.

문제는 한국시네마테크협의회가 운영하는 시네마테크 전용관이 아슬아슬한 셋방살이를 계속해왔다는 것이다. 처음 문을 열었던 아트선재센터가 2년 계약 만료 뒤 재계약 불가 통보를 보내자 서울아트시네마는 부랴부랴 새로운 셋방을 찾아 짐을 꾸려야 했다. 지금의 낙원상가에 겨우 간판을 달았지만 세입자 신세는 여전하다. 올해 3월 만료 예정이던 허리우드극장과의 계약은 다행히 1년 더 연장됐지만 안도할 수만은 없다. 시네마테크가 안정된 전용관 없이 2, 3년 단위로 방황하는 현실은 시네마테크의 위상에도 큰 영향을 끼친다. 서울아트시네마 김수정 사무국장은 “겨우 인지도를 확보할 만하면 금방 다른 곳으로 옮겨야 하는데, 그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아직도 아트선재센터에 가서 고개를 갸웃하시는 분들도 있다”고 말한다. 건물과 장소가 지니는 의미가 무겁다는 주장이다. 현재 공간이 상영관 외의 부대시설을 갖추지 못했다는 점도 계속 지적돼왔다. 시네마테크는 스크린만으로 완성될 수 없다. 서울아트시네마는 시네마테크로서 온전히 기능하기 위해 △ 무대 공연을 겸할 수 있는 200석 규모의 상영관 △ 25평 이상의 서적 및 영상자료실 △ 50석 규모의 소회의실 △ 필름보관실 등의 시설 모델을 제시한다. 상영 전후 관객이 관련 서적을 접할 자료실, 영화를 본 관객이 자연스레 모여 토론할 시네카페 등을 갖춰야 비로소 자생적인 영화 문화의 요람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지금은 상영회 때마다 어렵게 구한 필름 프린트를 1회 상영 뒤에 반납하는 형편이지만, 상영용 필름을 지속적으로 보관, 재상영하기 위한 아카이브도 필수다. 상영 설비 역시 옛 영화들을 최대한 원형에 가깝게 상영해야 한다는 시네마테크의 원칙을 종종 좌절시킨다. 서울아트시네마 김성욱 프로그래머는 “시네마테크의 사정이 이렇다는 건 사실 입에 담기도 부끄러운 일이다. 지난해 무르나우 감독 회고전을 위해 독일에서 프린트를 공수받았는데, 우리 기계론 이 영화의 영사 속도인 14프레임을 제대로 재생할 수가 없었다”고 씁쓸한 심정을 토로했다.

양질의 영화문화를 위한 장소로서 인식 확산 필요

넉넉지 못한 운영비도 활동의 발목을 잡고 있다. 2006년 영화진흥위원회가 지원한 예산은 3억7500만원. 서울아트시네마가 아닌 전국의 시네마테크에 할당된 금액이다. 이중 1억4천만원이 구 허리우드극장의 임대료로 쓰이고 있다. 10여편을 상영하는 회고전 한번에도 저작권료와 프린트 운송료, 자막 번역 비용 등으로 2천만~3천만원가량이 소요된다. 올해는 5천만원가량 지원금이 늘었지만 여전히 관객 수입과 타 영화제 자막 대행 사업 등이 차지하는 비율이 높다. 관객 수입에 의존하는 사정 때문에 관객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작품 발굴에 주저하게 된다. 운영 주체들이 자신의 경제적 보상을 희생해서 시네마테크를 지탱해가는 현실도 정상적인 풍경은 아니다. 시네마테크는 순수 민간기관이지만 영화의 문화적 가치를 지키고 유통시장의 대항 문화 역할을 수행하기 때문에 국가 및 비영리기관의 지원을 받는 것이 보통이다. 부산국제영화제의 위탁으로 99년 설립된 시네마테크 부산은 자체 운영비 7억원 중 5억원 이상을 시에서 지원한다. 부산시에서 부지를 매입해 건립한 전용관은 160석 규모 상영관과 서적 및 영상자료를 열람할 수 있는 자료실, 세미나실, 편집실 등을 갖췄다. 프랑스의 시네마테크 프랑세즈는 정부와 영화진흥위원회의 지원이 재정의 80% 이상을 차지하고, 포럼 데 이마주는 파리시로부터 90% 이상의 재정 지원을 받는다. 독일의 코뮤날레 키노처럼 공익 목적의 사단법인이 예산의 80%를, 시가 나머지 20%를 지원하는 형태도 있다. 미국은 기부금과 기업에서 설립한 재단의 조성금이 재정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필름 소사이어티 오브 링컨센터와 필름포럼이 활발히 운영되고 있다. 영화진흥위원회 김보연 대리는 “안정적 공간의 필요성에 충분히 공감하고 있다. 현재 독립영화 전용관과 영상미디어센터 미디액트가 입주할 적당할 공간을 물색 중”이라고 밝혔지만, 사업이 막 걸음을 뗀 상태라 가까운 시일에 성과를 기대하긴 어려워 보인다. 서울아트시네마쪽은 다양한 선례를 참고하여 서울시의 지원, 기업 후원 등의 방법을 모색하고 있지만, 당장 시네마테크의 존재 의의에 대한 공감대 형성부터 쉽지 않다. 전용관 포럼에 참석한 김영진 영화평론가는 “전국 시도에 박물관, 미술관이 하나씩은 다 있다. 지방자치단체들이 문화예술행사에 쓰는 돈만 해도 어마어마하다. 하지만 지자체들은 미술관이 없다는 건 창피해하지만 시네마테크가 없다는 사실엔 놀라울 만큼 무관심하다”며 인식의 부재를 한탄했다.

결국 서울아트시네마의 새 집을 찾아주는 작업은 ‘한국사회에 시네마테크가 필요한가’라는 질문에 응답하는 것이다. 서울아트시네마는 이번 전용관 논의가 ‘마지막이 될 수 있다’는 각오로 임하고 있다. 영화산업의 눈부신 성장으로 영화가 산업으로 존중받게 되고 제도화된 영화 교육도 생겨났지만, 정작 다양한 영화를 보고 감상을 나누는 기초적인 영화 문화는 퇴색하고 있다는 위기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이들은 시네마테크가 좋은 평론가와 관객, 감독을 배출하는 인큐베이터라는 인식이 확산되지 않으면 몇몇 활동가가 “독립운동 하듯이” 지속해온 시네마테크의 미래도 더이상 장담할 수 없을 거란 경고를 보낸다. 전용관 문제에서 시작된 이들의 호소는 영화진흥위원회나 문화관광부뿐만 아닌 지방자치단체의 행정가들부터 영화를 소비하는 일반 대중 모두를 향한 것이다. 우연히 퇴근길에 이곳에 들렀다가 인연을 맺었다는 한 관객은 “원래 영화를 잘 알진 못했다. 여길 집처럼 드나들다 1년 동안 200편 정도의 영화를 보게 됐는데, 내가 30년 동안 배운 것보다 더 많은 것을 배웠다. 이곳은 내게 학교 같은 곳이다. 그런데 학교가 자기 건물도 없고, 교무실, 강당, 운동장 등 필요한 시설도 없다니 슬픈 일이다”라고 안타까워 했다. 티켓 한장으로 누구나 입학할 수 있는 이 영화 학교를 지켜가기 위해, 서울아트시네마는 영화를 향수하는 모든 이들의 능동적 참여를 기다리고 있다.

시네마테크 친구들 영화제에 참여한 류승완 감독

“좋은 프로그램을 위해서는 공간의 안정성이 시급하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에 참여했다.
=거창한 명분 때문이 아니라 감독들이 자신의 즐거움을 지키기 위해 나선 것이다. 1년 만에 눈에 띄는 양적 성작을 느낀 건 아니지만 관객층이 넓어지고 있다고 본다.

-시네마테크에서 본 영화 중 기억에 남는 작품은.
=지난해엔 <와일드 번치>와 <분노의 주먹>을 본 게 가장 큰 수확이었다. 비디오로 수십번 봤지만 스크린으로 보니 완전히 다른 영화더라. 그 감정의 크기하며, 로버트 드 니로의 연기가 왜 위대하다고 하는지를 절감할 수 있었다. 명화를 화집에서 보고 그 그림을 봤다고 말할 수 없는 것처럼 영화도 그렇다.

-지금 서울아트시네마에 가장 아쉬운 점은.
=아무래도 공간의 안정성이다. 시네마테크 프랑세즈를 방문했을 때 많은 걸 느꼈다. 페드로 알모도바르 회고전이 열렸는데 감독이 직접 큐레이팅하고 내부 디자인까지 참여하며 4개월을 준비했다. 서울아트시네마가 안정적으로 자리를 잡아야 그런 것도 가능할 것이다. 프로그램에서 아쉬웠던 점은 ‘공인된 걸작’에만 관객이 쏠리는 현상이다. 알려져 있지 않은 걸작을 발굴하기 위해 모험을 하는 맛은 아무래도 부족하다. 시네마테크 프랑세즈를 봤을 땐 ‘이곳에 내 흔적을 남길 수 있다면 소원이 없겠다’ 싶었다. 영화가 경쟁적으로 소비되는 시대에 시네마테크는 예술가들에게 자긍심을 불러일으키는 역할도 하는 것이다.

-앞으로 시네마테크 전용관을 위해 어떤 활동을 계획하고 있는지.
=관객과의 대화처럼 전용관 설립을 응원하는 행사를 계속할 계획이다. 감독들과 돈을 모아 좋은 영화를 구입, 기증하거나 각자의 영화 프린트를 상영용으로 제공하는 것도 토의 중이다.

글 : 김민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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