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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회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가 이제 곧 끝난다. 이번 영화제에서 웹데일리 작업을 진행하면서 ‘데일리 친구’의 입장에서 한 달 간의 여정을 돌아보자면, 그저 매진 걱정 없이 영화를 공짜로 볼 수 있어서 마냥 좋았다. 여느 관객의 입장에서는 좋은 점도 있고 나쁜 점도 있었던 것 같다. 영화제가 끝나는 시점에서 나에게 있어 이번 친구들 영화제의 좋았던 것과 나빴던 점은 무엇이었을까. 그것들을 떠올리며 데일리 에필로그 란에 간단하게 정리해본다.


좋았던 것은  교과서를 벗어난 <수라>를 만난 즐거움이다. 마츠모토 토시오라는 난생 처음 들어보는 감독의 영화<수라>를 보면서 너무 즐거웠다. 힘든 영화였다는 점은 별개로 치고 싶다. 정성일 선생님의 표현을 빌자면 한동안 ‘교과서적’ 목록의 영화들을 숙제하는 심정으로 하나씩 챙겨보고 있었는데, 전혀 사전 정보 없는 감독의 영화를, 그것도 너무 멋진 영화를 부담(?) 없이 볼 수 있어서 정말 기뻤다. 한편으론 이런 감독을 몰랐다는 것이 부끄럽기도 하지만 그래도 기쁜 건 어쩔 수 없다. 데뷔작인 <장미의 행렬>도 봤는데, 이 역시 멋진 영화였다.

또 하나는 꿈에 그리던 <셜록 주니어>를 필름으로 접한 것이다. 내가 버스터 키튼의 영화 중 제일 처음 본 것은 <셜록 주니어>다. 그 때는 비디오로 봤었는데 좋지 않은 화질로 볼 때도 너무 좋았었고 특히 마지막 장면에서는 살짝 감동도 받았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서울아트시네마에서 '버스터 키튼 회고전'이 열렸고 그 기회로 <손님 접대법>이나 <세 가지 시대>, <항해자> 등을 필름으로 볼 수 있었는데 그 때 들었던 생각이 ‘<셜록 주니어>도 필름으로 볼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였다. 그리고 이번 영화제에서 드디어 <셜록 주니어>를 필름으로 봤다. 더할 나위 없는 기쁨이다. 지금 다시 생각해도 마지막 장면은 너무 감동적이고 슬프다. 현실에서 아무 것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키튼이 영화에 들어가서 멋쟁이 역할을 하고, 다시 현실로 돌아와서는 영화를 따라하는 것 말고는 아무 것도 못 하는 모습은 뭔가 찡하다. 그 마지막 표정을 필름으로 볼 수 있어서 조심스럽게 말하자면, 조금 행복했다. 아! 지금도 콧날이 시큰거린다.


이번 영화제에서 '아벨 페라라 특별전'은 참 좋았다. 내가 기대했던 것과 맞아 떨어지는 부분, 다른 부분들을 체크하는 즐거움이 있었다. 하지만 더 좋았던 프로그램을 꼽는다면 '이두용 특별전'이다. 이두용 감독님의 영화는 그냥 내 기대를 뛰어넘어 버렸다. <최후의 증인> 복원 판은 영상자료원에서 이미 봤었다. 그래서 ‘나머지 영화들도 <최후의 증인> 정도겠지’라고 한계치를 내 안에서 만들어 버렸었다. 왜 그랬는지 잘 모르겠지만 그랬던 것 같다. 하지만 이번 특별전을 통해 영화를 한편씩 볼 때마다 그런 말도 안 되는 생각들은 하나씩 깨져나갔고 난 그냥 입을 딱 벌릴 수밖에 없었다. 특히 카메라가 자신의 프레임을 변화시켜나가며 인물들을 따라가는 일련의 장면들은 뭔가 대단하다는 느낌이었다. ‘영화적 순간’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겠지만 이런 상투적 표현은 피하고 싶다. 영화를 몇 번이고 다시 보고 공부하고 더 생각해야 되겠구나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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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나빴던 점을 들자면 평소에 비해 관객이 너무 많았던 것이다. 좋은 영화들 실컷 보고 뭐가 나쁘냐할 수도 있겠지만, 싫은 점이 딱 하나 있었다. 평소에 비해 관객이 진짜로 너무 많았다는 것. 서울아트시네마의 관객들에 대해서는 항상 묘한 양가적 감정이 있다. 자세히는 모르지만 서울아트시네마의 사정이 어렵다고 하니 관객들이 많이 왔으면 하고 항상 생각한다. "이렇게 좋은 영화를 안 보러 온단 말이야?" 하면서 괜히 건방진 한숨을 쉴 때도 있다.

하지만 막상 영화제 기간에 관객들이 많이 오니까 나도 모를 이상한 감정이 생긴다. 뭔가 뺏긴 것 같기도 하고 약간 쌤통이 나기도 한다. <R-X마스> 같은 영화는 나 혼자 조용히 봤으면 더 좋았을 것 같다. <수라> 같은 영화는 보고 나서 한적한 로비를 걸어서, 한적한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며 좀 더 여운을 즐기고 싶다. <우묵배미의 사랑>의 경우는 "난 <우묵배미의 사랑>을 필름으로 봤지롱~~" 하면서 주위 사람들에게 자랑도 좀 하고 싶다. 하지만 다 실패했다. 못된 마음인 거 알지만 어쩔 수 없다. 인간이기에 그러한 양가성을 지니고 있는 거겠지 싶다. 더불어 그것은 단지 친구들 영화제, 시네바캉스와 같은 조금은 대중적인 행사에만, 그러한 행사로만 관객들이 쏠리는 기현상에 대한 반감의 표현인지도 모르겠다. 벌써부터 친구들 영화제 이후 프로그램인 빈센트 미넬리 회고전 때는 관객이 얼마나 많이 올 지 기대와 걱정이 동시에 생긴다. (by 김보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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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보년(시네마테의 친구들 영화제 데일리 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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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막 영화를 보기 시작한 영화 ‘초짜’인 나는 이번 친구들 영화제에서 상영된 30편의 영화들이 거의 모두 처음 보는 영화들이었다. 그렇기에 아벨 페라라의 영화들과 <글로리아>, <순응자>, <애니홀> 등의 영화들을 필름으로 처음 접할 수 있었다는 것만도 분명 행운이었고, 큰 즐거움이었다. 하지만 내게 있어 이번 ‘2008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에서 가장 기억 남는 것은 필름으로 처음 접하게 된 그 영화들이 아니었다. 가장 소중했던 그 기억은 바로 10년, 20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 ‘나의 한국영화사’ 한 페이지를 채워주신 이두용 감독님과 배창호 감독님의 마스터클래스와 시네토크 시간이었다.


나에게 있어 최초의 한국영화는 얼마 전에 엄마에게 들었던 이야기에서 시작된다. 서울아트시네마에서 마지막 3회 차 영화를 보고 늦게 들어온 나에게 엄마는 어렸을 때가 기억 나냐고 물었다. 아빠와 엄마는 당시 어디에도 맡기지 못한 애기였던 나를 데리고 피카디리 극장으로 영화를 보러 갔었다고 한다. 언제 애가 울지 모르기 때문에 비상구 근처 좌석에 앉아서 엄마는 잔뜩 긴장한 채 내내 영화가 아닌 애만 보게 됐는데, 나는 젖병을 물고 세상모르게 조용히 잠만 잤다고 한다. 엄마는 그 때 본 영화가 무엇인지 애써 기억하려고 해봤지만, 나 때문에 영화를 제대로 보지 못해서 ‘한국영화’라는 것만 기억할 뿐 영화 내용이 무엇이었는지, 어떤 배우가 나왔는지 전혀 기억하지 못 하겠다고 하셨다. 언제 애기가 울지 몰라 영화를 제대로 보지 못했던 그 날이 극장에서 본 엄마의 마지막 영화였고, 젖병을 물고 잠만 자느라 보지도 못했던 그 영화가 내게 있어서는 최초의 한국영화였던 셈이다.


제목도 모르는 최초의 한국영화 이후, 약 10년 뒤 집에서 비디오로 본 <쉬리>가 두 번째 한국영화이고, 내가 기억할 수 있는 한에서는 첫 번째 한국영화이다. 그리고 <동갑내기 과외하기>, <황산벌>, <실미도>와 같은 영화가 개봉되었던 2003년부터 제대로 극장에서 한국영화들을 보게 되었다. 80년대 후반생인 나의 한국영화사는『한국 영화사 開化期에서 開花期까지』라는 책의 목차로 치자면 마지막 장인 「한국영화의 성장과 전망 1996~현재」에 해당되는, <쉬리>(1998)에서 시작되어 멀티플렉스 극장과 함께 자라난 10년도 안 되는 짧은 역사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에게 영화를 보기 위해 아침부터 줄을 서서 기다리는 경험이나 으슥한 동시상영관이나 재개봉관에서 영화를 보는 경험이 있을 리가 없다. 그리고 나의 개인적인 한국 영화사는 1998년에서부터 시작하기 때문에 80년대와 90년대 초의 한국영화 상황과 분위기를 당시에 개봉했던 영화들을 회상하면서 이야기 할 수도 없다.


나의 이런 투정은 멀티플렉스 세대인 나로서는 절대 경험할 수 없는 것에 대한 질투다. 과거에 보지 못한 한국영화들을 종종 영화제 회고전이나 특별전에서 필름으로 볼 수 있고, 한국영상자료원에 가면 비디오나 DVD를 통해서 웬만하면 볼 수 있다. 그러나 화려한 멀티플렉스 극장에서 보는 것이나 비디오, DVD로 영화를 보는 것은 80~90년대에 극장에서 영화를 보았던 느낌과 시대의 분위기를 몸과 마음으로 온전히 느끼게 하지는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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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약한 나의 한국영화사에 대한 불만과 직접 경험할 수 없었던 과거 한국영화를 둘러 싼 분위기와 상황에 대한 질투는 <최후의 증인>과 <내시> 그리고 <꿈> 영화 상영 이후에 이어졌던 이두용 감독님과 배창호 감독님의 시네토크를 통해 간접적으로 일정정도 해소할 수 있었다. 이두용 감독님은 검열로 인해서 영화가 일부분이 삭제되고 온전하게 상영을 할 수 없었던 시대적 상황과 영화를 보기 위해 국도극장에서 명보극장까지 줄을 서던 관객들의 모습들에 대한 에피소드, 한꺼번에 2~3편의 액션영화를 연출, 제작할 수 있었던 비법(?) 등 80년대 한국영화의 후면비사들과 직접 영화 현장에서 체험한 한국영화의 변화들을 들려주셨다. 배창호 감독님으로부터는 1990년 <꿈>이 상영되었던 극장의 분위기와 관객들의 반응, 정광석 촬영감독님과 정일성 촬영감독님과 함께 영화 작업 시 생긴 재밌는 에피소드들, 두 촬영감독님 각각의 스타일, <꼬방 동네 사람들>(1982), <적도의 꽃>(1983), <황진이>(1986), <기쁜 우리 젊은 날>(1987) 등의 당신 영화 이야기에서 비롯되어 제기된 요즘 한국영화들에 대한 감독님의 경험과 생각들을 들을 수 있었다. 그리고 시네토크와 마스터 클래스에 함께 참여한 오승욱 감독, 김영진 평론가와 관객들의 약간 흥분된 목소리로 회고되어지는 이두용 감독님과 배창호 감독님의 영화를 보던 기억들까지…. 시간 반 남짓 진행된 시네토크와 마스터클래스는 경험하지 못했던 80~90년대의 시간과 공간 속으로 나를 데려다주었다. 그렇게 나는 2008년 종로 낙원상가 4층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이두용 감독님과 배창호 감독님, 오승욱 감독과 김영진 평론가, 그리고 영화를 보러 온 관객들의 말을 통해 전달되는 경험과 기억들로 ‘나의 한국영화사’에서 비어있는 1980~1990년대의 페이지를 채울 수 있었다.


만약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 데일리'에 참여하지 않았더라면, 나의 게으름 때문에 80~90년대의 한국영화에 대한 이야기들이 은밀하게 구전되는 순간을 놓쳤을 것이고 한동안은(어쩌면 평생) ‘나의 한국영화사 1980년~1990년대’ 페이지가 백지로 남겨졌을지도 모른다. 다행히도 데일리를 하면서 소중한 기회들을 놓치지 않을 수 있었고 개인적인 기록의 차원을 넘어서 오랜 시간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는 공공의 기록으로까지 남길 수 있었다.


‘2008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는 거의 끝을 달리고 있고, 데일리 친구로서 나의 임무도 끝났다. 공식적인 나의 기록의 행위는 끝이 났지만, 앞으로의 새로운 한국영화들과 보지 못한 과거의 한국영화들을 보러 동분서주 돌아다니면서 ‘나의 한국영화사’에 있는 백지들을 채워나가기 위한 비공식적인 기록들은 계속될 것이다. (by 신윤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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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윤하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 데일리 친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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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와 저기 사이의 연관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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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과 헤어짐의 반복은 그 사람을 알게 되는 그 시점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그것은 또한 나와 공동체의 문제를 인식하는 첫 발을 내딛는 작업이다. 그렇게 영화는 친구들을 필요로 하고 친구들을 만들어 나아가며 진일보하고 있는 지도 모르겠다.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를 통해 소개된 작품에서 혹은 그 기간 동안 알게 된 많은 사람들, 새롭게 사귄 친구들과의 경험이 여기 시네마테크에서 지속되기를 바란다. 

‘2008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가 이제 막을 내리려 하고 있다. 내일이 지나고 나면 한달 간의 여정은 또 다른 추억으로 자리매김할 것이다. 때론 술자리의 재미난 안주거리로 등장할 터이고 때론 개인적 사유의 대상이 될 터이고 때론 미치게 다시 간직하고파서 DVD를, 혹은 어둠의 경로를 배회하며 최근 한 달간 마음속에 담았던 그것을 끄집어내고 싶어질 것이다.


한 달 동안 정말 많은 행사가 있었다. 수백 편의 다양한 영화를 다루는 큰 규모의 어느 영화제보다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는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는, 영화를 좀 더 알고 싶은 욕망을 지닌 사람들에게는 값진 시간이었다고 생각한다. 한두 번 영화제를 통해 소개되었다고 상영 당시 매진되었다고 그 영화가 다양성을 추구하고자 하는 영화 문화 저변을 확대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었다고는 감히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기엔 상영 횟수도 너무 적고 그 영화를 접한 관객이 너무 적지 않은가. 하지만 그것을 두고 감히 값지다고 일말의 희망을 걸어볼 수 있는 것은 이번에 상영된 영화들이 이번에 일회적으로 끝나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혹은 이번이 우리와의 첫 만남이 아니기 때문이다. 시네마테크는 그런 곳이다. 화질 나쁜 비디오로 보던 옛 추억의 편린을 재상영을 통해 되살려주는 곳. 대형 스크린으로 필름으로 보는 기쁨을 전달해주는 곳이다. 오늘 내가 놓친 <글로리아>를, <로마>를 시간이 조금 더 지나면 반드시 다시 만날 수 있는 영화에 대한 애잔한 그리움과 기다림이 존재하는 곳이다.


그러한 곳에서, 내가 믿고 내가 좋아하는 친구들이 선택한 영화를 나의 사랑스런 후배들, 친구들, 새롭게 알게 된 아는 사람들과 함께 공유한 즐거움은 이루 말할 수 없다. 특히나 필자는 영광스럽게도 그 기억의 편린을 조금 더 많이 가슴에 새기고 간직할 수 있는 기회 또한 가졌었다. 바로 영화제에서 이러 저러한 목소리를 담아낸 웹데일리를 통해서다. 사실 나는 진정한(?) 데일리 친구들은 아니다. 웹데일리 친구들은 사실 20대의 젊은 혈기 왕성한 영화를 공부하고 영화를 좋아하고 영화담론을 짊어질 5명의 친구들이었다. 거기서 3년 후면 불혹의 나이에 접어들 나는 그냥 그들의 원고 교정을 봐주는 조력자(?) 역할을 했다. 그도 잘 해냈는지 자신할 수는 없으나…. 그간의 작업을 통해 느낀 면면을 영화제를 통해 다시금 사유하게 된 몇 가지 단상을, 내 머리 속에서 든 질문을 데일리 친구들 에필로그란 이름에 편승해서 편집후기란 명명으로 몇 자 적어보고자 한다.


첫째는 여기와 저기 사이의 연관관계다. 혹은 기억, 역사에 관한 거다. 영화는 20세기 최고의 예술이며 가장 많은 사람들이 접하는 문화 중 하나로 일컬어진다. 그리고 우리는 그 속에서 역사를 알고 배운다. 영화에는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공존한다. 설사 자신이 베트남전을 몰랐다 해도 <택시 드라이버>의 트래비스가 왜 불면증에 빠져 택시 운전을 시작하게 됐는지를 가늠해보다 보면 우리는 베트남전을 전쟁의 아픔을 어렴풋이 접하게 된다. 필자의 경우 출장차 몇 번 미국을 방문한 적은 있으나 거의 서부극에 나오는 텍사스 근방이었기에 동부, 뉴욕에 대한 로망을 가지고 있는데 우디 앨런의 영화를 통해, 페라라와 스콜세지의 영화를 통해 뉴욕에 대한 동경을 더 키우기도 하고, 때론 내가 만약 그 곳에서 산다면 지독히 외로운 이방인의 그 도시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염려해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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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은 <로마>에 등장한 <순응자>에서 그려진 이탈리아와 파리를 보면서 영화와 상관없이 내가 가봤던 유럽 배낭여행의 추억을 떠올리기도 하며 입가에 미소를 머금기도 한다. 또는 <내시>, <뽕>과 같은 사극을 보면서 옛 사람들의 권력욕도 작금의 현실과 다르지 않구나 역사는 그렇게 돌고 도는 순환인가, 과연 여성으로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뿐만 아니다. <우묵배미의 사랑>을 보면서 우묵배미는 일산 신도시가 만들어지기 전 어디쯤이라고 들었는데 왜 저기는 지금의 하남시(예전에 신장이었던)행 버스가 등장했던 것일까 의문을 갖기도 한다. 그것이 옥의 티였건 혹은 우묵배미가 어디였는지는 상관없었기 때문이던 사실 그것은 중요치 않다. 그렇게 영화에는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올곧이 담겨 있어 우리들은 그를 통해 역사를, 도시를, 때론 개인의 추억을 되새김질 하게 만든다는 게 중요하다.


그건 달리 표현하면 여기와 저기 사이의 연관관계를 말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지금 여기라고 하는 것과 그때 저기라고 하는 것이 전혀 무관하지 않다는 것. 우리는 그렇게 영화 속에서 영화 안에서 역사를 배우고, 역사를 인식하고, 느끼고 심지어 그 영화가 스크린에 투영된 그 시간을 함께 공유하며 또 하나의 역사를 만들어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시간은 멈추지 않으니까. 웹데일리 작업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그냥 영화 보면 되지 뭐 굳이 그것을 기록할 필요가 있을까 싶기도 하고 누가 요즘 글을 읽을까 싶기도 하다. 또는 어차피 지나가버린 그 시간의 흔적을 그것도 100% 온전히 복원하긴 싶지 않은 그 작업을 해야만 할까하는 의문이 생기지만 어차피 역사는, 기억은, 흔적들은 그것이 텍스트로 전환될 때 100% 온전한 상태일 수 없는 편린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인식한다면 기록적 차원에서 역사를 만들어가는 주체로서 유의미한 작업이었지 않나 생각하게 된다. 더불어 그를 위해 발 빠르게 움직이며 애써준 데일리 친구들에게 감사한다.


둘째는 진실과 거짓의 차이. 삶에 대한 각성이다. 혹은 언어로 내뱉어진 것의 한계에 관한 질문이다. 영화는 만들어진 허구이다. 허구 즉 거짓을 전제로 한 것이기에 그 속에서 진실된 의미를 찾는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며 분명 한계가 존재한다. 그런데 우린 그 속에서 끊임없이 진실된 의미를 찾아 헤맨다. 과연 진실이란 존재하는 것인가, 거짓 속에서 진실을 찾는다는 의미는 무엇일까라는 질문을 던져보게 된다. 이두용 감독의 <최후의 증인>은 한 미력한 수사관이 사건의 전말을 진실을 밝혀보고자 그 사건과 관계된 증인들을 만나는 과정을 그 족적을 다룬다. 하지만 그것은 그네들 증인들의 언어를 통해 뱉어진 증언을 통해서다. 과연 그것이 진정한 진실에 닿을 수 있는 온전한 기억인가를 되묻는다면 ‘그렇다’라고 답하기 정말 힘들다. 내가 가진 기억도 내 언어도 머리 속에서 생각한 것과 말로 내 뱉어질 때 또 다르고 수정되고 변경되고 거기에 또 무언가가 덧붙여지면 미궁 속으로 빠져들게 마련이다. 수 많은 영화의 테마 중에서 가장 많은 것을 꼽으라면 아마 남녀 간의 사랑, 러브스토리를 다룬 얘기가 있을 수 있고 또 하나를 꼽자면 밀고에 대한 것을 들 수 있을 것이다. 무언가를 찾아 다니는 추적 시퀀스를 다룬 영화는 정말 많다. 이번 친구들 영화제에 작품 목록을 뒤져보아도 쉽게 찾을 수 있을 정도다. 그것은 짜릿한 스릴과 재미가 덧붙여지는 소재이기도 해서이지만 우리네 인간에게는 진실에 접근하고자 하는 욕망이, 삶을 지탱해 나가는 이유를 찾고자하는 열정이 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사실 진실과 거짓의 차이는 어쩌면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다. 아니면 금방이라도 손이 베일 만큼 아주 얇디얇은 종이 한 장 차이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그 무게감이 느껴지지 않을 만큼.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들은 부득부득 그 차이에 목을 매단다. 아마도 한계를 극복하고 싶은 욕구, 삶에 대한 열정 때문일 것이다.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살아지는 것’이라는 말이 있다. 허나 그렇다 해도 세상에 빛을 보았다면 한번쯤 살아가고 싶은 욕구가 생기는 게 인지상정이다. 설사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말이다. 거짓덩어리의 영화에 진실을 찾고자 하는 우리네 욕망은 그와 다르지 않다. 그렇게 영화는 진실과 거짓 사이의 차이를 다루면서 삶을 반영하고 삶을 기대하게 만든다. 더불어 그것이 영화 언어, 혹은 영화 담론 형성을 위해 시네마테크가 존재하는, 시네마테크를 찾는 존재 이유다.


끝으로 셋째는 친구, 나와 공동체의 문제. 혹은 만남과 헤어짐에 관한 문제다. 영화에는 실로 많은 사람들이 등장한다. 또한 극장에서 영화를 볼 때면 정말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헤어지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그렇게 영화와 함께 하다보면 매번 만남과 헤어짐의 연속적인 반복이 이어진다. 스크린 속의 로버트 드니로를 하비 케이틀을 리버 피닉스를 물론 나는 만난 적이 없고 그네들이 나를 알 턱도 없다. 현실에서는 말이다. 하지만 나는 기억한다. 트래비스의 그 몸을, 청춘의 대명사로 일컬어지는 리버 피닉스의 그 젊은 날의 표정을, 그리고 인사동 거리를 배회하며 인사동의 한 카페나 포장마차에서 그네들의 표정과 얼굴과 몸에 매료되어 아주 열심히 영화를 같이 본 나의 친구들과 지인들과 그네들의 이야기를 건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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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잘생긴 사람은 그렇게 세상을 일찍 등지는 것일까?”부터 “강단 있던 트래비스의 몸 정말 죽이지 않아!” “악질경찰의 그 역할은 하비 케이틀이 아니면 상상할 수 없어!” 등등. 쓸데없이 목소리들을 남발하는 것일지도 모르지만 그렇게 영화와 조우하고 현실의 영화 친구들을 늘려나간다. 한편으론 “혼자보고 혼자 생각하면 그만이지 않나? 꼭 같이 나눌 필요가 있을까?” 싶을 때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해가며 친구를 늘려나가는 것은 혼자 사는 인생이 아니라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이기 때문일 것이다. 필자가 극장에서 만난 사람들이 모두 친구라고 말할 수는 없다. 게 중에는 친구가 되고픈 사람도 있고 때론 저치는 좀 멀리하고 싶네 싶은 사람도 있다. 수없이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 금방 잊혀져버릴 지도 모르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뇌리에 꼭 박혀 결코 잊지 못하는 이도 있다.


친구들 영화제에 자신의 선택작을 내놓은 내노라하는 감독, 배우와 같은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혹은 이번 데일리 작업을 함께 해 온 젊디 젊은 20대의 후배, 데일리 친구들도 마찬가지다. 사실 필자는 친구들 영화제를 할 때마다 정말 그들을 정말 시네마테크의 친구로 말할 수 있나, 친구라는 말을 그리 함부로(?) 붙일 수 있나 하는 생각을 종종 했다. 그것은 아는 사람과 친구에는 분명 차이가 있다는 나름의 견해에서 비롯된 것이다. 하지만 한 달여 간의 영화제 기간 동안 거의 매일 발 도장을 찍으면서 아는 사람도 친구가 될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을 다시 하게 됐다. 이번 데일리 작업을 함께 한 친구 중 한 이는 언젠가 “시네토크 녹취록을 하도 들어서 이제 그 사람을 정말 내가 아주 잘 아는 사람으로 착각하게 되요”라고 말한 적이 있다. 설사 그 시네토크의 주인공이 그 친구를 지금은 못 알아보더라도 언젠가는 그 녹취를 푼 친구의 글을 접하면서 인연이 닿으면, 혹은 훗날 시네마테크에서 다시 조우하게 될 때 인사를 하면 ‘반갑다 친구야’를 외칠 날이 있을 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해본다. 만남과 헤어짐의 반복은 그 사람을 알게 되는 그 시점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그것은 또한 나와 공동체의 문제를 인식하는 첫 발을 내딛는 작업이다. 그렇게 영화는 친구들을 필요로 하고 친구들을 만들어 나아가며 진일보하고 있는 지도 모르겠다.


조금은 두서없이 한 달여 간의 나의 2008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 혹은 웹데일리 작업을 통한 몇 가지 사유를 펼쳐보았다. 아쉽기도 하고 약간은 부끄럽기도 하다. 그러나 기회가 주어진다면 이 여정을 계속하고 싶다. 영화를 온전히 이해한다는 것은 텍스트에 침잠하여 그 내밀한 의미를 파악하고 핵심에 접근하려는 노력과 동시에 그러한 텍스트가 태동하게 된 사회적 배경과 역사적 맥락을 두루 살피는 일이 지극히 중요하다. 맥락이 없는 텍스트는 맹목이고 텍스트가 없는 맥락은 공허하다는 생각을 한다.


필자는 이번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를 통해 소개된 작품에서 혹은 그 기간 동안 알게 된 많은 사람들, 새롭게 사귄 친구들을 통해 여기와 저기가 결코 무관하지 않고 우리네 삶 자체를 지탱하는 역사의식을 새삼 경험하게 됐다. 그 경험이 바로 여기 시네마테크에서 지속되길 또한 바라마지 않는다. (by 신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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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에서는 6명의 '데일리 친구들'이 참여해 영화제 기간 동안 웹데일리를 통해 매일 진행된 시네토크를 정리하고 영화와 관련한 글들을 작성했다. 영화제가 끝나가는 아쉬움을 달리면서 이제 데일리친구들의 짧막한 에필로그를 적는다. 영화에 대한 열정만으로 20대 젊은이들과 함께 '필름에 관한 짧은 사랑'이라는 영화잡지를 창간했던 이도훈의 영화 사랑과 주성치의 <파괴지왕>을 시네마테크에서 꼭 만나고 싶다는 그의 소망을 소개한다.(편집자)

나는 내가 시네필인지 아닌지 확신이 없다. 간혹 데면데면한 사이인 사람이 지나가는 말로 나를 ‘시네필’이라고 부르면 얼굴이 화끈거린다. 그러나 극장 구경(?)을 즐겨하고 일주일에 사흘정도 극장 기운을 쐬지 않으면 안달이 난다. 그래서 좋은 기운이 느껴지는 극장을 찾아 놀러 다니기를 좋아한다. 내가 자주 가는 극장은 서울아트시네마다. 처음으로 영화를 본 극장도 그 곳이요, 연애를 시작한 곳도 바로 그 곳이다. 영화를 보게 되면서 학교에 가면 늘 외로웠지만, 극장에 가면 혼자여도 즐거웠다. 나는 영화에 안달이 났다. 친구 손에 이끌려 아트선재센터 지하에 위치한 시네마테크에 처음 발을 디딘 2003년 여름부터였던가. 나는 극장에서 영화를 보기 시작했다.


내게, 처음 본 영화가 무엇이냐고 물어본다면 주성치의 <파괴지왕>이라고 말한다. 그게 극장에서 처음 본 영화냐고 되묻는다면, 나는 고개를 설레설레 젖는다.


내가 영화를 처음 본 곳은 교실이다. 이 얘길하자면 한 친구 얘길 안 꺼낼 수가 없다. 일주일간 방에서 자장면만 먹고도 살 수 있는 ‘올드보이’ H군은 내게 ‘영화 전도사’ 같은 존재였다. 어렸을 적 아버지와 함께 쇼 브라더스의 영화를 즐겨보던 H군. 고등학교 입학식에서 처음 만난 H는 영화를 좋아한다고 자신을 소개했다. 그는 많은 영화들 중에서도 이연걸의 영화를 좋아하고 주성치를 존경했다. 고등학교 2학년, 입시에 찌들어가던 나와 내 친구들은 여드름 짤 시간도 아껴가면서 대입준비에 박차를 가하고 있었다. 낭만이란 없었다. H는 타성에 젖은 친구들, 현실에 굴복하는 친구들이 찌질해 보였던 모양이다. 그러던 어느 날, 담임선생이 자리를 비운 야간 자율학습 시간. H는 오래된 비디오 테입 하나를 가지고 와서는 기습적으로 틀어버리는 만행을 저지른다. 그건 혁명이었다. 곧이어 반 전체가 눈과 귀를 집중했던 40인치 프로젝션 티비에서는 EBS 교육방송 대신 주성치의 <파괴지왕>이 상영되었다. 의아해하던 아이들은 곧 월드컵 열기를 능가할 정도로 열광했고, 열광을 넘어 발광하기 시작했다. 당시 전교 1등 하던 범생이 녀석도 영어 문제집을 덮고 책상위로 올라가서 손뼉 치고 발을 동동 구르면서 영화를 봤던 걸로 기억한다. 누구하나 공부하자는 소리를 하지 않았다. 집단적인 그 행동은 훗날 우리의 일탈이자 혁명으로 기억된다.

H가 선동한 혁명은 피 흘리지 않고도 이루어낸 깨끗한 성공이었다. <파괴지왕>에서 계란을 두 눈에 뒤집어쓰고 불에 달군 모래에 두 손을 팍팍 찔러 넣는 주성치는 우리의 영웅으로 급부상했다. H는 주성치를 전파하는 전도사 역할을 했다. 이후 우리 반 아이들은 시간 나는 대로 선생님 눈치를 봐가면서 H군이 준비해온 <소림축구>와 <희극지왕>, <서유기 월광보합>같은 영화를 보고는 했다. 40명 남짓한 남정네들은 그 날 이후 주성치를 교주로 모시게 된다. <파괴지왕>을 함께 보던 그날, 우리는 영화를 함께 보았고, 그래서 더 행복했다. 영화가 예술이나 오락이 될 수 있으려면 혼자가 아니라 함께 보고 열광해야 한다는 걸 지금, 그 시절을 생각하면서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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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도에서 서울로 유학 온 H와 나는 자주 만나는 사이였다. 당시 H와 나는 대학생활에 지쳐있었다. 대학생활은 우리가 TV 시트콤에서 본 것처럼 아기자기 하지 않았고, 달콤하지 않았다. 낭만과는 거리가 멀고 지리멸렬했다. 특히 당시 나는 짝사랑 하던 여자에게 4번 프러포즈했지만 4번 다 보기 좋게 차였다. 그녀는 잔인했고, 나는 상처 받았다. 봄이 가고 여름이 올 무렵, 실연의 상처로 피폐해진 나를 안쓰럽게 쳐다보던 H는 어딘가로 나를 이끌었다. 돌담길을 지나 풍문여고생들의 향긋한 샴푸 냄새가 사라지는 길 끝에 다다르니 극장이 나타났다. 서울아트시네마가 그곳에 있었다. 돌담길 길의 끝에 극장이 있었고, 그 길의 끝에서 내 영화 역사가 시작되었던 것이다. 소격동에 있던 시네마테크는 이후 구 허리우드 극장으로 자리를 옮긴다. 낙원상가 4층 옥상에 위치한 지금의 서울아트시네마는 UFO처럼 보인다. 모르긴 몰라도, 전 세계에서 하늘과 맞닿아 있는 극장은 이곳뿐일 것이다. 시네마테크의 그로테스크한 모양새와 옥상이라는 위치가 맞물리면서 SF적인 발상도 해본다. 밤이 되면 극장위로 별이 쏟아지고, 극장 뒤편으로는 네온사인이 휘황찬란한 빛을 뽐낸다. 간혹 오색찬란한 네온사인 빛이 지구별 전체에 보내는 신호 같기도 하다. 아마도 밤하늘에 신호를 보내서 세계 각국의 영화 친구들에게 메시지를 보내고 있는 건 아닐까? 그래서 우리가 세계 각국의 고전 명작을 서울 한 복판에서 보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이렇게 생각하고 보니 정말 쌈 마이 같은 극장이다. 김성욱 프로그래머가 어디선가 한 말대로 서울아트시네마는 B급 극장이며, B급 상상력과 키치적 낭만이 교차하는 곳이다. 나는 B급 극장과 B급 낭만이 있는 이곳이 좋다.


혼자 즐겁자니 지금 내 곁에 없는 친구들에게 미안하다. 그들 중 대다수는 군대에 있거나 개인적인 사정으로 지방에 머물고 있어 서울아트시네마에 오지 못한다. 이번 친구들 영화제에서 버스터 키튼의 <셜록 주니어>를 보면서 H군과 주성치, 그리고 고등학교 친구들을 생각했다. 먼 훗날 주성치가 버스터 키튼처럼 시네필의 사랑을 받아 아트시네마에서 회고전이 열리게 된다면, 나는 고등학교 동창들을 모아 반창회를 열 것이다. 고등학교 때처럼 우리의 ‘영화 전도사’ ‘주성치 대변인’ H를 무대 위에 올려 사전 소개를 할 수 있도록 하고, 친구들과 필름으로 <파괴지왕>을 단체 관람 하련다. 나는 지금 내 곁에 없는 나의 영화 친구들과 함께 열광하고, 발광하면서 영화를 보고 싶다. 그러니 부디 서울아트시네마가 장수하길 바라며 더불어 나와 내 친구들의 영화 사랑도 식지 않았으면 한다. 주성치의 <파괴지왕>을 필름으로 볼 그날 까지. 서울아트시네마여 지구를 떠나지 말아다오!! (by 이도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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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도훈(2008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 데일리 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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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ICEBREAKERS 2009.04.13 19:26 신고

    갑자기 파괴지왕이 생각나서 우연히 블로그에 들리게 되었네요. 잘 보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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