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랩스틱 개그의 쿨한 매력 - 버스터 키튼 회고전*

 

 

 

 

68혁명 당시의 파리를 배경으로 한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의 <몽상가들>(2003)의 한 장면에서 시네마테크 프랑세즈를 돌아다니며 영화에 몰두한 두 명의 청년 매튜(마이클 피트)와 테오(루이 가렐)는 무성영화의 전설적인 코미디 배우에 대해 설전을 벌인다. 테오는 찰리 채플린이야말로 가장 위대한 코미디 감독이라며 <시티 라이트>에서 채플린과 눈먼 소녀가 나중에 다시 만나는 장면을 예로 들고 있다. 매튜는 채플린을 깍아내린다. 그는 위대한 배우였을 뿐이라고. 키튼이야말로 20년대의 고다르이자 위대한 작가였다고 그는 말한다. 매튜는 키튼의 <카메라 맨>의 한 장면을 떠올린다. 채플린과 키튼, 이들 중 누가 더 위대한 무성 코미디 감독이었는가를 묻는 질문은 아마도 20년대 할리우드에서 익살희극이 등장한 이래 되풀이되어온 논쟁일 것이다. 일견 무의미해보이기도 하지만 프레드 아스테어와 진 켈리에 대해 벌이는 논쟁만큼이나 오랜 역사적 기원을 갖고 있는 채플린과 키튼의 차이는 앤드루 새리스에 따르자면 시와 산문, 평민과 귀족, 탈구와 적응, 사물의 의미와 기능, 천사로서의 인간과 기계로서의 인간, 이데아로서의 소녀와 관습으로서의 소녀, 슬랩스틱의 원심성과 구심성의 차이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 둘의 차이에는 보다 영화적인 문제가 있다.

버스터 키튼에 대해 말한다는 것은 프리츠 랑, 또는 장 뤽 고다르에 대해 말하는 것처럼 20세기의 영화, 특히 세기 초의 영화가 어떠한 것이었는지, 그리고 영화가 모던한 세계와 어떤 관계를 맺고 있었는지를 말하는 것이기도 하다. 키튼은 영화가 탄생한 1895년에 태어났다. 그는 1920년대에 서커스와 마임에 기원한 무성영화의 근본적인 장르인 익살희극(뷔를레스크)의 창시자로 전성기를 구가했고, 유성영화가 도래하던 20년대 후반에 서서히 영화계에서 사라져, 30년대 이후에는 완전히 망각된 존재가 되었다. 그는 1933년 이후에 대략 60여 편의 영화에 출연했지만 대중들의 기억에 남는 영화는 고작 <선 셋 대로>나 <라임 라이트> 정도였을 뿐이다. 이들 영화에서 그가 맡은 역할은 미미한 조연에 불과했다. 하지만 버스터 키튼은 6-70년대에 새롭게 조명을 받았고, 영화탄생 100주년을 기념하던 1995년(마찬가지로 키튼의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던 해)에 다시 화려하게 부활했다. 할리우드의 이방인이었지만 방랑자 ‘찰리’의 캐릭터를 통해 대중적인 사랑을 받은 채플린이 냉전의 시기에 할리우드에서 추방되면서 상징적인 인물로 남은 것과 달리 키튼은 할리우드의 시스템의 화려한 조명 아래 그림자속으로 조금씩 느리게 일식되어버렸다. 이는 키튼의 불가피한 운명이었을 런지도 모른다. 언제든지 모던한 세계를 떠나 자유롭게 방랑할 수 있던 찰리와 달리 시스템에 순응하는 것을 일찌감치 습득했던 키튼은 자신의 몸을 모던한 세계의 기계화된 리듬에 최대한 적응시키려했고, 그 비인격적인 시스템에서 자신의 안정적인 위치를 발견하기 위해 필사적인 노력을 벌였다. 키튼의 영화속 캐릭터는 그의 화신과도 같았다.

 

무표정한 얼굴
성룡을 능가하는 버스터 키튼의 놀라운 기예는 아주 어린시절부터 체계적으로 습득된 것이다. 일설에 따르면 그는 생후 6개월 되던 해에 계단에서 굴렀지만 멀쩡했고(이 황당한 꼬마아이를 본 탈출묘기의 고수였던 후디니는 ‘이런, 무척 튼튼한 아이구만buster!’이라 감탄했고 이 때문에 키튼은 ‘버스터 키튼Buster Keaton’이라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3살 때에는 회오리에 휘말려 거리까지 날아갔지만 상채기 하나 없었다고 한다. 하여 키튼은 부모의 손에 이끌려 다섯 살때부터 보드빌 쇼의 일원으로 활약을 하게 되었다. 거친 세계에서 일하면서 키튼은 심각한 표정을 유지할수록 웃음을 촉발할 수 있음을 깨달았고 어떤 고난에도 불평하지 않았으며 육체적 고통에 순응하는 법을 배워야만 했다. 넘어져도 일어나고, 사랑하지 않으면 그럴 때까지 기다리며 결코 울지 않으며 미소 지으려 하지도 않는 것. 그의 트레이드 마크인 ‘무표정한 얼굴 great stone face'은 이런 환경에서 비롯된 것이며, 그는 철저하게 환경에 적응하면서 완전한 육체적 추상을 통한 우아한 몸놀림을 통해 스스로를 해방하려 했다.

키튼의 무표정과 날렵한 몸놀림을 통한 개그는 기계적인 성격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베르그송은 ‘생명력이 있는 것처럼 보이면서도 동시에 기계적인 배열이 분명하게 느껴지는 행동과 사건의 배치는 모두 희극적’이라고 말했는데, 이는 키튼의 개그에 적절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채플린과 키튼은 1920년대 무성영화를 대표하는 두 명의 희극 배우였지만 웃음을 제조하는 방식에서 서로 커다란 차이를 보였다. 채플린의 웃음은 늘 얼굴과 함께하며 표정을 통해 감정을 포현해냈다. 얼굴이 신체의 가장 윗부분을 차지하고 있기에 채플린의 마임에 근거한 다양한 얼굴표현은 보다 정신적인 천상의 웃음을 만들어냈다. 반면 키튼은 얼굴의 표정을 지워버리면서 마치 거대한 도박장과도 같은 비인격적인 세계 안에서 특유의 무표정한 얼굴로 부지런한 발을 움직이며 아크로바틱 액션개그를 선보였다. 키튼의 재빠른 발은 채플린의 얼굴과 대조적으로 지상과 맞닿아 있는 것으로 천상의 즐거움과 다른 지상의 수고스러움과 고난을 담아내고 있다. 키튼 영화의 묘미는 이런 발 빠른 액션과 상상을 불허하는 스턴트 묘기에 있다. <스팀보트 빌 주니어>에서 폭풍우가 치는 가운데 돌연히 집이 무너지는 순간 키튼이 창으로 무사히 빠져나오는 장면(키튼은 이 장면에서 대역을 쓰지 않았기에 몇 번의 NG로 인해 죽음의 위기에 놓일뻔 했다고 한다), <제너럴>에서의 기차위에서 벌어지는 추격 장면, <항해자>에서 문어와 벌이는 수중 액션, <손님 접대법>에서 폭포에서 벌어지는 구조작업 등, 키튼의 액션은 당시의 어떤 영화도 흉내 낼 수 없는 특별한 것이었다.

톰 거닝이 지적하듯이 키튼은 자신의 영화에서 늘 비합리적인 원칙에 근거한 합리화된 시스템(이는 20년대 미국의 지배적인 생산구조인 테일러주의 또는 포드주의와 등치되는 것이다)에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 노력하는 인물을 묘사한다. 채플린이 산업적인 생산시스템에 대해 체계적으로 기계파괴적인 반응을 보인 것과 달리 키튼은 변화된 환경에 적응하는 인물을 통해 역설적으로 시스템의 부조리성을 폭로한다. 이 차이는 채플린과 키튼이 인간과 기계의 관계를 서로 다르게 이해하는 것에서 기인한다. 가령 채플린의 희극에서 사물, 기계와 싸우는 찰리는 승리를 거두기 위해서가아니라 사물, 기계의 악마성을 보다 분명히 하기 위해 서투른 투쟁을 벌인다. 최종적으로 사물과 기계는 찰리에게 승리를 거둔다. 하지만 이는 역설적으로 물화되지 않은 찰리의 ‘휴머니티’의 승리를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찰리가 기계를 다루고 통제하는데 서투른 것은 그가 기계의 단조로운 리듬과 다른 인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키튼의 경우에 사정은 달라진다.

 

기계 개그
채플린이 인간과 기계를 적대적인 것으로 간주한 반면 키튼은 기계를 인간의 연장으로 보고 있다. 키튼의 캐릭터는 대규모의 산업기계와 직면해 그것에 순응하면서 서로 대화하고, 결국은 그것을 지배하기에 이른다. 지배와 통제를 위해서는 기계와 사물에 순응해야 하며, 또한 기계와 사물을 몸의 연장으로 받아들여야만 한다. 이럴 때 사물과 기계는 살아있는 존재가 되어 키튼의 몸에 반응한다. 예를 들어 <제너럴>(1926)에서 기관사인 키튼은 영화의 한 장면에서 애인을 납치한 북군병사들을 쫓아 기관차 ‘제너럴’을 몰고 추격전을 벌인다. 키튼은 기관차에 탑재된 대포에 불을 붙여 전방의 기관차를 겨냥하는데 이 순간 대포의 포신이 갑자기 주저앉아 오히려 키튼의 기차를 겨냥한다. 위험에 빠진 키튼. 당황한 키튼은 기차의 운전좌석으로 대피하지만 포탄은 이제 막 발사될 직전이다. 이 순간 기관차는 커브에 접어들고, 수평으로 발사된 포탄은 정확하게 직선으로 날아가 북군병사가 탄 기관차에 명중한다. 대포는 키튼의 의도와는 다른 방향에서 키튼의 의도를 따라온 것이다. 기계를 통제하려는 키튼의 몸, 자율적인 대포기계, 이탈하는 선로와 포탄의 궤도. 이렇게 웃음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키튼의 영화에서 사랑과 결혼 또한 이와 유사한 패턴을 반복한다. 영화 속에서 키튼은 매번 채플린과 마찬가지로 한 여인을 사랑하지만 그녀와의 연애의 성공은 늘 예상치 않은 방식으로 갑작스레 다가오고, 둘의 사랑은 매번 결혼식이란 최종적인 절차를 요구받는다. <스팀보트 빌 주니어>에서 갑작스런 태풍이 마을을 쑥대밭으로 만들어버리지만 키튼은 아버지, 연인을 차례로 구한 뒤에 급기야 조난중인 목사를 물에서 구조해 결혼식을 치른다. 이는 낭만적인 사랑이 아니라 순종적인 사랑에 다름 아니다. (키튼의 영화에서 결혼은 사랑의 완성이 아니라 슬픔의 시작처럼 보이기도 한다. 가령 <전문학교>와 <셜록 주니어>의 마지막 장면의 결혼식은 죽음을 예고하고 있다). 


의도하지 않은 방식의 결과로 얻게 된 이런 행운(혹은 불운?)은 키튼의 영화에서 웃음(또는 적지 않은 슬픔을 간직한 웃음)을 만들어낸다. 이런 양가성이야말로 키튼 영화가 지닌 독특한 성격이라 할 수 있다. 키튼 영화의 희극성은 따라서 배우가 자빠지고 넘어져서 웃음을 유발하는 퍼포먼스에 머물지 않는다. 물리학의 법칙에 의거해 고도로 연출된 장면의 효과로 인한 웃음, 이것이야 말로 키튼 영화의 묘미에 가깝다. 키튼을 위대한 ‘작가’로 채플린을 위대한 ‘배우’라 부르는 것도 이 때문이다. 채플린에게 카메라는 사실 그리 중요한 역할을 하지 않는다. 카메라는 단지 배우인 채플린과 그의 영화를 보는 관객을 중계하는 보이지 않는 존재에 다름 아니다. 하지만 키튼의 경우 카메라는 사뭇 다르다. 키튼에게 카메라는 액션과 관련되어 있고, 세계와 연결되어 있다. 아마도 키튼의 영화에서 카메라를 고려하지 않는다면 그의 영화의 세부적인 디테일에 대해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키튼의 영화에서 마찬가지로 정말로 잊기 힘든 것은 그의 몸과 액션뿐만 아니라 그의 영화속 세계를 구성하고 있는 환경들, 사물들, 그것의 운동들이다. <항해자>(1924)와 <스팀보트 빌 주니어>(1928)의 거대한 증기선, <제너럴>과 <손님 접대법>(1923)의 기차, <셜록 주니어>(1924)의 영화관이 이와 같은 것이라 말할 수 있다. 기계와 키튼이 맺는 관계는 하지만 대단히 양가적인데, 이는 그의 삶이 그러했던 것처럼 사물과 기계의 시스템에 주도적인 역할을 부여하면서 키튼이 자신이 거주할 안전한 공간을 확보하려 했기 때문이다. 그는 모던한 세계의 기계문명 앞에서 무력한 아이와도 같은 위치에 서 있었고, 동시에 수학과 물리학에 능통한 숙달된 운동선수처럼 세계의 무질서에 맞서 몸의 개그를 보여주었다. 키튼의 기계-개그는 그리하여 살바도르 달리와 루이스 부뉴엘과 같은 20년대 초현실주의자들은 물론이고 소비에트의 형식주의자들과 미래파들을 열광시켰으며 영화의 미장센에 주목한 누벨바그리언들을 매료시켰다. 

 

 

 

 

이렇게 되리라곤...
키튼은 화려한 20년대를 마감하면서 1928년 MGM으로 옮겼고, 여기서 <카메라 맨>(1928)이란 각별한 작품을 남겼지만 유성영화의 도래와 더불어 퇴락을 겪게 된다. ‘MGM으로 이적한 것은 인생 최대의 실수’라고 술회하듯이 키튼은 할리우드 시스템의 포로가 되어 자신의 재능을 발휘하지 못했고, 1933년에는 급기야 알콜중독자란 표면상의 이유로 MGM에서 쫓겨나기에 이른다. 이후 키튼은 삶은 비극의 연속이었다. 그는 6-70년대에야 다시 주목받게 되었다. 이는 아이러니한 일이기도 한데, 1940년대의 후반부터 50년대에 걸쳐 할리우드에서 발생한 촬영소 시스템, 호화찬란한 할리우드 시스템의 붕괴를 겪고 나서 키튼이 다시 영화사안에 복권되었기 때문이다. 키튼의 영화와 삶은 그리하여 20세기의 모던한 세계, 그 역사와 맥을 같이한 할리우드 시스템의 역사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고 말할 수 있다. 키튼은 모던한 세계에서 인간이 새로운 방식으로 일하기 위해 시스템에 순응해야 하며 그것에 맞춰 신체를 조정해야만 한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키튼의 이러한 페시미즘은 <라임 라이트>(1953)에서 관객들의 썰렁한 반응을 지켜보는 초라한 배우가 된 그가 ‘우리가 이렇게 되리라고는 꿈에도 몰랐어’라고 비탄에 젖어 이야기할 때 극에 달한다. 그럼에도 그의 ‘쿨’한 액션개그가 지닌 매력은 슬픔을 넘어설 만큼 기쁨을 주고 있다.
김성욱(영화평론가)

 

* 예전 2004년 처음으로 '버스터 키튼 회고전'을 개최할 때, 이제는 사라진 '필름 2.0'에 썼던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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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환대 Our Hospitality

버스터 키튼은 영화가 탄생한 1895년에 태어났다. 그는 1920년대에 서커스와 마임에 기원한 무성영화의 근본적인 장르인 뷔를레스크(익살희극)의 창시자로 전성기를 구가했고, 유성영화가 도래하던 20년대 후반부터 서서히 영화계에서 존재감을 잃기 시작해, 30년대 이후에는 할리우드에서 완전히 망각되었다. 1933년 이후에 그는 대략 60여 편의 영화에 출연했지만 대중들의 기억에 남는 영화는 고작 <선 셋 대로>나 <라임 라이트> 정도였을 뿐이다. 이들 영화에서 그가 맡은 역할은 그저 미미한 조연에 불과했다.

키튼의 영화는 그러나 1950년대에 새롭게 발굴됐다. 하나의 전설적인 일화가 전해 내려온다. 1954년 어느 여름밤. 버스터 키튼은 아내와 함께 <제너럴>이 상영되는 L.A.의 코로넷 극장을 우연히 방문했다 과거를 떠올리게 하는 자신의 옛 영화를 결코 보려하지 않았던 키튼이기에 이 방문은 대단히 이례적인 것이었다. 당시 극장의 지배인이었던 레이먼드 로하우어는 키튼이 극장을 방문한 것에 놀라 그에게 무성영화 보존의 필요성을 역설했고, 키튼은 자신의 차고에 몇 편의 영화가 있다며 필요하다면 가져가라고 그에게 말했다. 다음 날, 키튼의 집을 방문한 로하우어는 그의 주차장에서 <세 가지 시대>, <전문학교>, <셜록 주니어>, <항해자> 등의 질산염 프린트를 발견했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이미 파산한 ‘버스터 키튼 프로덕션’의 유실된 영화들이 수집되기 시작했다. 그 덕분에 할리우드 무성영화의 80% 이상이 소실되었음에도 키튼의 영화는 이례적으로 보존되어 1950년대 미국의 극장에서 다시 새로운 관객들과 만날 수 있었다. 그의 영화는 6-70년대에 새롭게 조명되었다. 1965년에는 사무엘 베케트의 <필름>에 출연했고, 1968년에는 케빈 브라운로우의 무성영화에 관한 인터뷰책 'The Parade's gone by'가 출간되었고 같은 해 '그레이트 스톤 페이스'라는 다큐멘터리가 공개됐다. 이번 특별전에서 이 다큐멘터리가 상영된다. 영화탄생 100주년을 기념하던 1995년(마찬가지로 키튼의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던 해)에 다시 화려하게 키튼은 부활의 계기를 마련했다. 1995년. 키튼의 탄생 100주년의 해에 ‘버스터 키튼의 예술’이란 세 박스 세트의 DVD가 출시되었다. 11편의 극영화에 19편의 투 릴 영화들이 DVD에 수록되었다. 우리가 대중적으로 키튼의 영화를 볼 수 있었던 것은 DVD의 출시 덕분이었다.

버스터 키튼의 회고전을 처음 개최한 것이 이미 2004년의 일이다. 당시 레이먼드 로하우어의 방대한 무성영화 컬렉션-700편-을 인수한 곳이 두리스 코퍼레이션으로 이 곳의 팀 란자 씨의 협조로 이번에 상영하는 영화들 대부분을 필름으로 상영할 수 있었다. 당시 31편의 영화를 상영했다. 방대한 두리스 필름의 무성영화 컬렉션이 다른 곳으로 팔리면서 한동안 대규모 회고전이 어렵지 않을까 싶었는데, 다행이 십년이 지나 다시 한번 큰 규모의 특별전을 개최하게 되었다. 2004년을 기억하며 그 때와 마찬가지로 버스터 키튼에 대한 "우리들의 환대"를 표하고 싶다. 그는 최선을 다해 불가능한 일을 완수하고 고독한 형상의 이미지를 남기고 사라졌고, 다시 우리들에게 나타났다. 그는 형편없는 패가 들어와도 태연했고 새로운 방식으로 일하고 우아한 방식으로 움직이고 새로운 리듬으로 사랑하고 이 세계에서 가장 쿨하게 생존했다. 댄 칼라한이 했던 마지막 말을 기억한다. "그가 얻으려고 했던 것은 단지 우리들의 웃음이었지만, 우리는 그에게서 모든 것을 얻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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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드 맥스: 분노의 도로'의 조지 밀러는 "무성영화처럼 말이 없어도 이해할 수 있는 작품을 만드는 것"이 자신의 기획이라 말했다. 끝없는 추적과 서바이버. 이 때 조지 밀러가 염두에 둔 것은 물론 '퍼스트 액션 히어로' 버스터 키튼의 체이스 필름들. 특히 '제너럴'이다. 매드 맥스의 팬들이라면 이제는 버스터 키튼과 만날 기회다. 이번주 목요일부터 열리는 '버스터 키튼 특별전'.

매드 맥스 분노의 도로의 리듬에 실린 버스터 키튼의 '제너럴'. ​


"The General: Fury Road”
https://t.co/gKdcExlnc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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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지원에서 하는 올겨울 강의는 고전기 작가들을 살펴보는 '클래식의 현대성'이다. 대부분은 시네마테크에서 소개했던 작가들로 다시 한번 이 작가들의 영화를 살펴보고 작은 결과를 만들어볼 생각. ​



강좌취지
영화의 클래식은 1950년대 말까지의 특정한 스타일의 영화를 지칭한다. 이 시기 영화의 보편성을 이뤄낸 특권화된 장소는 할리우드였다. 할리우드 영화는 스타와 장르의 결합, 명백함과 투명성, 통일성, 조화로움, 공통적인 감정의 표현 등의 특성을 갖고 있었다. 영화의 클래식은 종종 올드한 것으로 치부되곤 하지만, 반대로 영화 매체의 유년기의 활력과 영화 예술의 젊음을 또한 확인할 수 있다. 클래식은 시스템의 산물이지만 작가들은 고유의 방식으로 이러한 시스템의 양산체제에 독특한 방식의 파열구를 만들어내기도 했다. 이 강의는 고전기 영화의 특성을 살펴보면서 동시에 이 시기의 대표적인 작가들의 작품에서 어떻게 영화의 통일된 시스템의 위반과 균열, 파괴가 발생하고 있는지를 이야기하려 한다.

1강 버스터 키튼의 기계
2강 막스 오퓔스의 내러티브
3강 스턴버그의 시스템
4강 하워드 혹스의 스타일
5강 존 포드의 운동의 시학
6강 프리츠 랑의 비전
7강 장 르누아르의 픽션과 자연
8강 빈센트 미넬리의 꿈

http://daziwon.net/first_2015/144833

다중지성의 정원
http://daziwon.net/apply_boa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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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세 감독이 선택한 페데리코 펠리니의 <카비리아의 밤>


유난히 바람이 거세진 2월 15일 오후, 지난해부터 친구들 영화제의 새 친구로 합류한 이명세 감독의 추천작 <카비리아의 밤>이 상영되고, 추위에도 불구하고 많은 관객들이 자리를 지킨 채 이명세 감독과의 만남을 기다렸다. 꾸준한 ‘펠리니 사랑’으로 서울아트시네마의 문을 두드리는 이명세 감독은 짧은 시간동안 펠리니에 대한 개인적인 기억부터 최근의 고민까지 많은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줄리에타 마시나의 눈물에 매료된 관객들로 인해 <카비리아의 밤>의 시네토크는 비교적 조용하고 차분한 분위기에서 진행되었지만 더 없이 값진 시간이었다. 영화에서도, 영화에 대한 이야기 속에서도 순수함이 묻어났던 그 현장을 전한다.





김성욱(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래머) : 작년에 친구들 영화제에서도 페데리코 펠리니의 <로마>를 추천했는데 올해도 펠리니의 <카비리아의 밤>을 선택하셨다. 감독님은 공식석상에서 언제나 펠리니를 좋아한다고 말하곤 하시는데 다시 보니 어떤 느낌이셨는지.

이명세(영화감독) : 정확하게 기억나지는 않지만 <카비리아의 밤>을 2001년 뉴욕에서 처음 보았다. 그곳에서 영화학교를 다닐 때 마지막 부분에 영화에서 유일하게 한 장면 나오는 빅 클로즈업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때는 이론적으로만 생각하다가, 영화를 보고 나서 마음속으로 많이 울었다. 다시 보니 처음 봤을 때처럼 눈물이 많이 쏟아지지는 않지만 가슴이 메어지더라. 당시 영화를 보고 쓴 일기가 있었는데 그때 적은 내용이 어렴풋이 기억난다. <카비리아의 밤>은 돌아온 탕아라고 썼던 것 같다. 어떤 어머니가 돌아온 탕아를 맞이해서 따뜻한 물과 소소한 반찬으로 밥을 차려주었을 때 탕아가 밥을 먹는 그런 분위기와 같다 생각했다. 이 영화를 보며 줄리에타 마시나의 눈에 고인 눈물이 마치 보석 같았다. 요즘엔 다들 힘들고, 더군다나 오늘 날이 많이 쌀쌀해졌는데 <카비리아의 밤>을 보고 절망 속에서도 힘을 찾기를 바란다.


김성욱 : 추천의 변에서도 줄리에타 마시나의 장면들을 통해 펠리니의 지독성을 느낄 수 있다고 하셨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점이 그런가.

이명세 : 좋은 감독들은 뛰어난 테크니션이다. 페데리코 펠리니도 말하자면 테크니션의 감독이라 생각한다. 영화 마지막의 빅 클로즈업 같은 경우도 잘 쓰면 좋은 약이 되고 못 쓰면 오히려 독이 되는 숏 중 하나다. 결정적 한 장면인 것이다. 카비리아가 집을 팔고 4만 리라를 만들어왔을 때 오스카는 매우 당황해하며 담배를 커피 잔에 턴다. 웬만한 감독들 같으면 그 부분을 클로즈업으로 땄을 텐데 펠리니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 장면에는 순진한 카비리아의 모습을 제대로 바라보지 못하고 선글라스로 위장해야 했던 오스카의 심정이 담겨있다. 오즈 야스지로의 <만춘>에서도 마지막에 사과 깎는 클로즈업이 인상적이지 않나. 펠리니는 아마도 앞서 말한 장면들을 미리 정해놓고 촬영에 들어가지 않았나 싶다. 그 장면을 위해 영화 전체를 남겨두었던 것에서 펠리니의 지독성을 느꼈다.


김성욱 : 줄리에타 마시나는 펠리니의 부인이기도 하고, <길>과 더불어 <카비리아의 밤>에서 전문적인 연기라기 보단 순수한 영혼을 지닌 여인의 역할을 맡는다. 줄리에타 마시나의 얼굴만 보고 있어도 천진난만하다는 느낌이 든다.

이명세 : 줄리에타 마시나가 출연하는 영화들에서는 분명 공통점을 느낄 것이다. 일종의 서커스나 축제의 모습을 통해 줄리에타 마시나는 비애가 서린 광대의 모습을 표출해낸다. 줄리에타 마시나는 어떤 상징물이나 아이콘일 수도 있고 이미 그 자체로도 연기일 수 있다. 드라마가 몸에 녹아있는 느낌이 든다. 영화연기라는 것은 연극연기와 다르게 배우 자체가 가지고 있는 것이 바로 연기인 경우가 있다. 펠리니와 함께 한 인물 중 또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니노 로타 음악 감독이다. 그는 펠리니 영화의 대부분의 음악을 맡았다. 펠리니 영화 속의 그의 음악은 영화 속에서 분리될 수 없는, 영화음악이라기보다 영화의 문장이면서 문체, 주제, 소재가 된다. 펠리니의 모든 영화들이 그런 것 같다.


김성욱 : <카비리아의 밤>은 1950년대 마지막 무렵의 영화다. 로셀리니를 비롯해 이 시기 이탈리아 영화들은 주로 영혼을 울리는 것에 집중되어있었다. 희망을 찾을 수 있는 불행한 시대가 이탈리아로 따지면 1950년대였던 것 같고, 60년대의 소비화가 진행되어지는 전 단계에 직면한 시기라 생각된다. 때문에 작년 감독님의 추천작이었던 <로마>와는 분위기가 매우 다른데.

이명세 : 확실히 펠리니의 <카비리아의 밤>과 <로마>는 차이가 있다. 사실 작년에 <로마>를 상영했을 때 모든 관객들이 놀라고 울고 할 줄 알았는데 의외로 반응이 썰렁하더라. (웃음) 오늘 관객들께서 <카비리아의 밤>을 어떻게 감상하셨는지 너무 궁금하다.


김성욱 : 네오리얼리즘이라고 불리는 영화들은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모두 공감을 이끌어내는 것 같다. 하지만 펠리니의 60년대 이후 영화에 대해서는 조금씩 다르다고 생각한다. 네오리얼리즘 이후의 펠리니 영화들에서 보여 지는 화려하고 거대한 규모와 장식적인, 말하자면 하나의 서커스 같은 연출에 당혹해하시는 분들도 있다. 펠리니 감독의 60년대 이전과 이후 영화들 양쪽을 모두 좋아하시는지.

이명세 : 그렇다. 나는 ‘영화를 영화로 찍는 다섯 명의 감독을 알고 있다’고 항상 이야기하곤 하는데, 그 중 한 명이 페데리코 펠리니다. 60년대로 들어선 펠리니는 그야말로 영화 자체로 뛰어 들어가는 설정을 보여준다. <카비리아의 밤>에서는 줄리에타 마시나가 영화언어 자체인 것이다. 숏이나 장면전환뿐만 아니라 연기자 자체도 영화언어가 될 수 있다. 그런 것들이 후대의 영화들에게 영감을 준 영화가 아닐까 생각한다. 어떤 장면을 보면 <토토로>의 한 장면 같기도 하다. (웃음) 펠리니 영화를 보다보니 생각난 건데, 시네마테크라든지 상업영화, 고전영화라는 말을 없앴으면 좋겠다. 영화는 그냥 영화다. 다시 보아도 또 다른 느낌이 계속 나올 수 있는 것들이 좋은 영화의 기준이라 생각한다. 고전영화라기 보단 좋은 영화라는 표현이 옳지 않겠나.


관객1 : 영화의 마지막은 <판의 미로>같다는 생각도 했다. 감독님은 늘 절대적인 영화적 가치나 순수성에 대한 동경이 있으신 것 같다.

이명세 : 어느 순간 영화라는 것에 대한 담론이 사라진 게 아닌가하는 생각이 든다. 모든 예술에는 절대음감, 절대언어라는 게 있지 않나. 영화에도 ‘절대 숏’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숏들을 찾으려 노력하고 있다. 그걸 표현하는 게 영화감독의 임무이자 일이라 생각한다. 우리가 이 공간에 모두가 모여서 영화를 보고 이야기를 하려는 자체가 일종의 판타지다. 영화를 보는 내내 ‘정신의 유전자’가 떠올랐는데, 우디 알렌, 버스터 키튼, 펠리니 등과 같은 아름다운 사람들이 계속해서 아름다운 영화들을 통해 발견하고 삶을 발전시킨다. 나 역시 그 중 하나일지 모르고 관객도 그 중 하나일 것이라는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관객2 : 요즘 처음으로 사랑이라는 걸 하고 있다. 그런데 영화에서 카비리아가 시련을 당하는 부분을 보고 오늘 온 걸 후회했었다. 그녀가 다시 사랑을 할 수 있을까, 그녀가 다시 행복을 찾을 수 있을까가 너무 궁금하다.

이명세 : 물론 카비리아는 다시 사랑을 하게 될 것이다. 이건 내가 영화를 하는 것과 비슷하다. 관객을 사랑해서 사랑의 편지를 썼는데 무참하게 답장이 오지 않는 심정이랄까. (웃음) 히자만 언젠가는 올 것이라 생각하고 또 다시 영화를 찍게 되고 현장에 나간다. 흔한 이야기지만 사랑은 주는 게 더 좋다. 주는 것으로 행복한 것이 사랑이라 생각한다.



김성욱
: 고전영화에 대한 이야기도 하셨는데, 좋아하는 감독의 상당수가 이미 시대를 다한 감독들이다. 자크 타티나 펠리니, 키튼과 같은 감독들. 이런 사람들의 영화는 지금 보아도 여전히 영화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왜 이후의 영화들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시는지.

이명세 : 그런 감독들은 영화를 영화로 찍기도 하지만 따뜻한 감성을 가지고 있었다. 영화의 기본은 사람을 바라보는 것이고, 예술의 한 면은 결국 세상에 대한 연민이다. 그런 감정이 없이는 영화든 소설이든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워낭소리>의 흥행도 기쁘게 생각한다. 영화라는 예술은 따뜻한 부분을 나누는 것이라 생각한다.


관객3 : 지금까지 만든 영화 중에 펠리니 감독에 대한 오마주나 장면 혹은 설정 등을 인용한 것이 있는지 궁금하다.

이명세 : 의도적으로 한건 없다. 비슷하다는 생각은 많이 한다. 영화적인 방법들은 펠리니를 일찍 만났더라면 영향을 더욱 받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관객4 : 카비리아에게는 사랑외의 어떤 믿음이 좌절되는 부분도 있다고 생각했다. 영화의 마지막은 희망을 이야기하면서도 신의 축복 같은 느낌이 들더라. 신의 실험을 통해 신과 교류하는 느낌도 들었다.

이명세 : 중요한 것은 배치의 문제다. <카비리아의 밤>은 격렬한 논쟁을 불러일으키는 종류의 영화는 아니다. 극장이라는 공간은 광장의 예술이다. 영화의 매력은 같은 감정을 나눌 수 있을 때 발산된다. <카비리아의 밤>을 보고 난 후, 그런 마음들이 교류되었으면 좋겠다.


정리 : 강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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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 개막
-‘새로운 영년’ 위한 첫 삽을 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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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8일 늦은 저녁, 서울아트시네마 로비가 오래간만에 북적거렸다. 세 번째로 열리는 ‘2008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 개막식을 앞두고 관객 맞이에 분주해서다. 극장 한쪽에는 이두용 감독을 포함한 많은 감독들과 영화제 관계자, 관객들이 개막식에 참석하려고 자리를 지키고 있고 다른 한 켠에서는 개막식 막바지 준비에 박차를 가하고 모습이었다.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서울아트시네마 후원 릴레이 100人 전시. 평소 『씨네 21』 지면을 통해 공개되었던 서울아트시네마를 지지하는 각계 인사들의 후원 글이 극장 벽면을 빼곡히 채우고 있었다. 극장에 들어서게 되면 누구나 친구들이 보내는 격려와 응원의 메시지에 한 겨울 몸과 마음이 훈훈해짐을 느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올해로 세살이 된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는 2006년 1월, 시네마테크를 지지하는 ‘친구들’의 참여로 시작된 행사. 2회째인 지난해가 시네마테크의 전용관 설립을 위한 모토 아래 시네마테크의 재정적 안정을 도모한 해였다면 올해는 재탄생의 의미로 ‘시네마테크의 새로운 영년’을 선포하며 시작되었다. 서울아트시네마 김성욱 프로그래머는 “2002년 시작한 시네마테크의 활동을 되돌아보면서, 다시 시작하는 느낌으로 출발하려고 한다”라며 “올해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가 영화로 친구와 우정을 나눌 수 있는 장이 되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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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날 개막식은 권해효 씨의 재치 넘치는 사회로 진행되었고 개막작으로는 버스터 키튼의 <셜록 주니어>가 상영됐다. 7시 30분, 한달 여 동안 열리게 될 ‘친구들 영화제’의 개막식은 그간 시네마테크의 발자취를 느낄 수 있는 개막 영상으로 서막을 열었다. 2002년부터 2007년까지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주최한 영화제 포스터가 시간순서대로 빠른 속도로 지나가면서 보여진 개막영상은 지난 5년간 시네마테크의 활동을 정리해주는 자리였고 이어 이번 영화제에서 상영할 작품들도 함께 소개되었다. 이두용 감독 특별전, 아벨 페라라 특별전, 프랑수와 트뤼포 특별전을 소개하는 영상과 올해 친구들이 뽑은 영화, 추천의 변을 직접 소개하는 영상이 흘러나왔다. 김영진 평론가, 정성일 평론가, 오승욱 감독, 이명세 감독, 박찬욱 감독, 최동훈 감독, 배우 김혜수 씨 등 이번 영화제에 함께하는 친구들은 자신이 선택한 영화에 대한 추천사를 전했다. 정성일 평론가는 “365일, 2008년 이곳에서 항상 다시 만날 수 있는 친구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라는 말로 서울아트시네마의 진정한 주인이 관객임을 상기시켜 주었다.


개막 영상이 끝난 후 시네마테크 협의회 최정운 대표가 무대에 올라 개막식의 포문을 열었다. 최정운 대표는 “영화란 감독이라는 마술사가 빛에 우리의 영혼을 심어 만들어진 것”이라고 나름대로 정의 내린 후 “빛을 비추는 동안 살아 움직이던 영화는 불이 꺼지면서 어두운 창고에 갇히는데, 시네마테크는 세계 각국의 창고에 있는 필름을 찾아서 다시 보여주는 곳이다”라며 시네마테크의 역할을 밝혔다. 이어서 김성욱 프로그래머는 이날 상영작인 <셜록 주니어>의 작품 소개와 함께 2008년 서울아트시네마의 사업계획에 대해 짧게 언급했다. 2008년 서울아트시네마는 고전명작 필름 라이브러리 구축을 시작할 계획이며, 지역사회 영화문화 활성화 및 시네마테크의 문화적 연대활동을 강화할 계획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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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사를 위해 무대에 오른 영화진흥위원회 안정숙 위원장은 불법복제 비디오 테이프를 구해서 어렵게 영화 상영을 하던 과거를 회상하면서, 오늘날 극장에서 필름으로 고전 명작을 볼 수 있다는 사실에서 시간의 힘을 느낀다고 전했다. 영화진흥위원회는 올해 서울아트시네마, 인디스페이스, 미디액트가 공동으로 영화 공간을 조성하는 ‘다양성영화 복합상영관’건립을 추진한다고 한다. 안정숙 위원장은 “창작의 영역, 문화의 영역이 중요하다는 응원의 목소리를 보내달라”며 전용관 확보를 위해 동참해 달라고 부탁을 아끼지 않았다. 권해효 씨는 “마음의 선물은 사양할 테니 현찰을 부탁한다”는 재치 있는 언변으로 좌중 분위기를 화기애애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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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축사에 나선 이두용 감독은 야단스럽지 않은 영화제 분위기가 좋다면서 좋은 작품을 상영해주는 시네마테크에 감사의 말을 전했다. 이두용 감독 다음으로 무대에 오른 친구들 대표인 박찬욱 감독은 이번 영화제가 자신에게는 특별한 의미라며 운을 뗐다. 그는 “영화를 막 시작하려고 고민하던 80년대에 이두용 감독님의 영화를 보았고, 90년대에는 아벨 페라라 감독의 영화가 내게 큰 영향을 끼쳤다”며 “그 감독들이 없었으면 내 영화가 그리 잔인하게 나오지 않았을 수도 있다”라고 말했다. 박찬욱 감독은 또한 “시네마테크는 어머니 품처럼 따뜻한 곳이며, 학교 같은 곳이다. 나는 유치원에 온 아이처럼 이곳에서 영화를 보고 젖을 뗄 준비를 하고 있다. 시네마테크에서 영화를 보면서 번듯한 어른이 되기를 기대해본다”라고 시네마테크에 대한 애정을 피력했다.


개막식 막바지에는 서울아트시네마 김홍록 사무국장이 2007년 후원 및 결산보고가 이어지고 곧바로 개막작인 버스터 키튼의 <셜록 주니어>가 몽라의 연주와 함께 상영되었다. 이 영화에서 극장 영사기사로 일하는 버스터 키튼은 탐정을 꿈꾸는 청년으로 등장한다. <셜록 주니어>는 무표정한 얼굴, 아크로바틱한 액션이 눈부신 버스터 키튼이 그리는 좌충우돌 연애이야기면서 동시에 영화와 꿈에 관한 이야기다. 특히나 버스터 키튼의 영혼이 육체를 이탈하여 스크린 안으로 들어가는 장면은 매우 인상적이다. 영화를 보는 동안 극장 내 관객들은 버스터 키튼이 펼치는 익살스러운 행동에 끊임없는 환호와 탄성을 질렀다. 연주를 맡은 몽라의 피아노와 신비한 전자악기 테레민 소리는 마치 초창기 무성영화를 보듯 극장 내 분위기를 한층 돋우어주었다.

영화 상영이 끝난 후 극장 내 로비에서는 간단한 리셉션도 열렸다. 발 디들 틈 없었던 극장 로비. 관객들은 행복한 꿈을 꾸고 나온 표정으로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들 모두 앞으로 영화제 기간에 보게 될 영화들에 들떠 있는 듯했다. 이제, ‘새로운 영년’을 향한 첫 걸음이 시작된 것이다. 좋은 영화를 보면 꿈을 꾸는 것 같다고 하니, 1월 한 달 동안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와 함께 행복한 꿈을 꾸길 기대해보자. (이도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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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터 키튼의 <셜록 주니어>를 몽라의 연주와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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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1월 8일 7시 30분, 세 번째로 열리는 ‘2008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가 버스터 키튼의 <셜록 주니어>를 개막작으로 시작합니다. 이번 ‘2008년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는 지난 5년 동안의 시네마테크 활동을 되돌아보며 다시 새롭게 시작하는 마음으로 ‘시네마테크의 새로운 영년’이라는 슬로건을 걸고 개최됩니다. ‘시네마테크의 새로운 영년’을 선언하는 것은, 시네마테크가 영화를 보는 즐거움과 관객과의 교감을 새롭게 정립하는 것을 포함해 더 능동적이고  창의적으로 영화의 역사를 해석하고, 과거의 영화들을 통해 미래의 영화를 이야기하며, 또 새로운 영화의 탄생을 기원하는 소망의 피력이기도 합니다. 피아니스트 몽라의 연주와 함께 개막작 <셜록 주니어>가 상영된 뒤에는 ‘시네마테크 서울아트시네마 후원의 밤’ 행사도 열릴 예정입니다. 

무성영화 시대 극장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영화 <셜록 주니어>는 지금 이 곳의 시네마테크 공간을 다시 한 번 생각하는 기회를 갖게 할 것입니다. 또, 피아니스트 몽라의 연주와 함께 상영되어 관객들이 새로운 영화 체험을 할 수 있으리라 기대합니다. (개막식 이후에는 1월 14일(월)에 한 번 더 상영됩니다.)

개막작 소개

셜록 주니어 Sherlock Jr. 1924년 45분 흑백 무성
감독 버스터 키튼Buster Keaton 잭 블리스톤Jack Blystone
출연
버스터 키튼Buster Keaton(셜록 주니어/영사기사) 캐트린 맥과이어Kathryn McGuire(그의 연인) 조 키튼Joe Keaton(그녀의 아버지) 어윈 코넬리Erwin Connelly(집사/고용인) 워드 크레인Ward Crane(호색한/악당) 포드 웨스트Ford West(극장 지배인/질레트) 제인 코넬리Jane Connelly(어머니) 도리스 딘Doris Deane(극장 밖에서 돈 잃어버린 여자) 루스 홀리Ruth Holly(과자가게 여자) 큐피 모건Kewpie Morgan(공모자) 조지 데이비스George Davis(공모자) 존 패트릭John Patrick(공모자)

작은 극장의 영사기사 겸 청소부인 버스터는 셜록 홈즈 같은 명탐정이 되는 것이 꿈이다. 그는 마을의 소녀 캐트린을 사랑하고 있는데, 어느 날 사랑의 라이벌인 워드가 캐트린 아버지의 시계를 훔쳐 버스터에게 누명을 씌운다. 탐정 솜씨를 발휘해보려다 오히려 꼼짝없이 범인으로 몰린 버스터는 실의에 빠진 채 극장으로 돌아와 영사실 안에서 잠이 든다. 꿈속에서 상영중인 영화 속으로 들어가게 된 버스터는 영화 속의 탐정 셜록 주니어가 되어 진주 도난 사건을 해결하려 한다.

영화라는 기계장치에 대한 키튼의 매혹을 매력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영화에 대한 영화. 극장에서 꿈을 꾸던 키튼의 몸이 분리되어 스크린 속으로 들어가는 초현실적인 장면은 꿈과 유사한 영화의 특성을 드러내면서 꿈과 현실, 환상과 실재의 경계를 지워버리는 인상적인 장면이다. 영화 속으로 들어간 키튼은 급격하게 점프컷 되는 배경의 변화에 따라 설원에 곤두박질치기도 하고 망망대해 위의 암초 위에 서있거나 담장 위에서 떨어지는 등,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이동’을 경험하게 된다. 이 장면들은 상황의 급전으로 인한 웃음을 유발하는 한편 시각적 환영을 창조해내는 영화 매체에 대한 키튼의 자의식적인 인식을 드러내고 있기도 하다. 또한 영화 속 영화에서 특히 갱스터를 방불케 하는 자동차 추격 장면이나 자동차를 돛단배로 만들어버리는 장면 등은 키튼식 액션 개그의 정수를 보여준다.
극중의 영웅 셜록 주니어가 우연의 일치를 통해 위험에서 벗어나거나 지형지물을 적극적으로 이용하면서 사건을 해결해가는 데 비해, 현실 속의 주인공은 여자친구의 노력으로 자기도 모르는 새 누명을 벗게 된다는 사실은 묘한 여운을 남긴다. 그런 점에서 마지막 장면에서 영사실 창문을 통해 스크린을 바라보면서 영화 속 인물의 행동을 그대로 따라하는 키튼의 모습은, 영화를 통해 배우고 느끼고 살아감으로써 구성되는 삶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무척이나 의미심장하다. 45분에 불과한 짧은 러닝타임에도 불구하고, 이후 우디 앨런을 비롯하여 영화의 자기반영성에 대해 성찰했던 많은 감독들에게 커다란 영향을 미친 무성영화 시대의 최고 걸작.
[2004년 ‘아크로바틱 액션 개그: 버스터 키튼 회고전 카탈로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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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주자 소개
몽라 Live Performance of Monla
헤이리 페스티발, 부산국제영화제, 전주국제영화제, 제천국제음악영화제 등에서 다양한 공연을 선보였으며 우리나라의 최초의 여성 테레민 연주자로서 일본, 프라하 등 국내외에서 활동 중이다. 프랑스 파리 에꼴 노르말 등 정통 음악학교에서 클래식을 전공했지만, 월드, 유로피언, 재즈, 뉴에이지, 라운지, 보사노바, 샹송, 블루스, 랙타임에 심지어는 트로트에 이르기까지 대안적인 뉴에이지를 한껏 그려나가고 있다. 지난해 발매된 첫 앨범 ‘꿈꾸는 아이 몽라’에 이어 곧 출시될 2집 앨범에서 영화, 사진, 미술, 전시, 무용, 인형극 등 다양한 예술문화에 대한 관심을 음악으로 표출하려 하는 젊은 ‘씨네마틱 크로스오버(Cinematic Crossover)’ 뮤지션이다.

연주의도
“초창기 무성영화 시절에는 스크린 앞에 오케스트라나 소규모 악단이 자리해서 화면에 맞춰 라이브로 음악을 연주하기도 했습니다. 또한 대사는 없이 다른 음향들은 모두 있는 상태로 만들거나 혹은 음악만 집어넣는 형태로도 상영되었죠. 이번 <셜록 주니어>에서는 앞서 말씀드린 부분의 절충된 실현과 함께 영화의 해석을 도울 수 있는 '음악과 함께 보는 영화'로 감상해 보시면 어떨까 싶습니다. 화면에 맞춰 영화의 테마를 곳곳에 장식하며, 특별히 장면에서 대사를 필요로 하지 않는 경우에는 음악 또는 음향의 의도에 따라 영화의 흐름을 짚어보려고 합니다. 즉흥적으로 연출될 피아노 연주, 아날로그 신디사이저, 일렉트로닉 효과, 1924년경에 개발한 고주파 합성장치로 두 개의 안테나 사이에 흐르는 미세한 전파를 이용한 독특한 악기인 테레민 등의 효과로 영화에 몰입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보고자 합니다. 흑백 무성영화의 대표적인 감독 버스터 키튼의 비현실적 공간인 ‘꿈’을 매개체로 하여, 음악과 함께 영화 속 캐릭터들을 일반적인 틀에서 벗어난 휴머니즘에 대한 시각으로 바라보시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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