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뽕' 이두용 "2시간 40분짜리를 1시간 30분으로 싹둑"
<배한성의 아주 특별한 인터뷰> '뽕'의 감독 이두용을 만나다

지난해 우리 영화계 가장 큰 경사 중의 하나를 꼽는다면 전도연 씨가 칸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게 아닐까 싶은데요. 지금이야 여기 저기 해외 영화제에서 우리 영화가 상도 받고 그러지만7, 80년대는 참 힘든 일이었죠.

해외 영화제에서 첫 번째로 상을 받은 영화, 뭔지 아십니까? 1981년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특별상을 수상한 이두용 감독의 ‘피막’이란 영환데요. 이 감독의 1983년작 <물레야 물레야>는 칸영화제에 초청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그를 ‘한국영화의 세계화’라는 화두의 원조라고 볼 수 있는데요.

이두용 감독은 ‘잃어버린 면사포’로 데뷔해서 ‘뽕’ ‘내시’ ‘최후의 증인’ ‘돌아이’ ‘용호대련’ 등 7,80년대 한국의 상업영화계를 풍미한 감독이구요. 70년대 중반에는 태권 액션영화로 이름을 떨쳤고, 토속물의 대가였고, 최근까지 작품 활동을 하고 있는 몇 안 되는 70년대 데뷔 감독 중 한 사람입니다.

지난 8일부터 서울 낙원동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열리는 ‘2008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 이곳에서 후배 감독들이 ‘이두용 감독 특별전’을 마련했다고 하는데요. 이두용 감독을 1월 14일 CBS 배한성의 아주 특별한 인터뷰(FM 98.1Mhz, 연출 김우호 PD)에서 만나봤습니다.

◇ ‘감독 특별전’ 후배 감독들에게 고마울 뿐

▶ 요즘 근황은 어떠세요?

명지대학교 연극영화학과 초빙교수로 바쁘게 지내고 있는데 올 1월에 정년퇴직을 합니다. 막상 정년퇴직을 한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이상해지더라고요. 시원섭섭하다는 표현이 딱 맞는 것 같아요.

▶ 1월 8일~2월 3일까지 종로구 낙원동에 있는 서울아트시네마에서 ‘2008 시네마테크 친구들 영화제’로 감독 특별전을 갖는다고요?

올해 3회째라는데 저는 처음 가봤어요. 젊은 감독들이 주축이 돼서 알차게 영화제를 해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보통 영화제하면 푸짐한 행사 중심으로 많이 하거든요. 영화배우나 감독들 초청, 이벤트를 많이 하면 좋은 영화제로 평가를 하는데 이 영화제는 국제영화제로서 내용이 알찹니다.

작가주의적인 영화를 중심으로 하는 점이 아주 독특해요. 그 젊은 감독들이 특별전을 해준다고 하는데 우선 고맙고, 영화를 예술인가, 아닌가 하는 논란을 뛰어넘어서 서로 감상하고 젊은 영화학도들이나 관객들에게 이해시키고 알리는 게 아주 좋았던 것 같아요.

▶ 어떤 작품들이 상영되나요?

[BestNocut_R]이번에 5작품이 상영되는데 <최후의 증인>, <뽕>, <내시>, <물레야 물레야> 등입니다. 그 중에 1978년에 기획해서 79년에 만든 <최후의 증인>이라는 작품은 당시 검열의 시대였기 때문에 엄청나게 잘려나갔어요. 그게 2시간 40분짜리 영화인데 1시간 30분짜리로 상영이 되니까 내용이 연결이 안 되죠.

이건 내 영화가 아니라고 생각해서 80년도에 처음 한 번 보고 이후에는 잊어버리고 있었어요. 그 영화를 젊은 감독들이 2시간 40분짜리 원본을 찾아내서 상영을 해주는데 저도 이번에 가서 그 원본을 보니까 너무 반갑더라고요. 내 작품이 아니라고 생각해서 20년 동안 잊어버리고 있던 작품을 젊은 감독들이 좋게 봐서 이 작품을 중심으로 감독 특별전을 열어준다고 하니까 그저 고마울 뿐입니다.

▶ <최후의 증인>이 검열에서 잘려나간 이유는 뭔가요?

6.25 전쟁의 후유증을 배경으로 한 영화인데 동족간의 이념을 다룬 영화가 아니에요. 한 순진무구한 사람이 권력자들한테 모함을 당해서 일생을 감옥에서 보내는, 그리고 전쟁 때문에 일생이 마모되어 가는 과정을 한 수사관이 수사를 하면서 드러나는 영화인데 이두용 감독 사상이 수상하다고 누가 청와대에 투고를 했어요.

옛날에는 영화를 만들 때 금기가 있었어요. 이념을 다룬 것은 물론 안 되고 공무원 부패를 다룬 것도 안 되고, 아주 많았어요. 그런 게 다 걸렸었나 봐요. 그러니 모조리 잘려버리니까 영화가 절름발이가 된 거죠. 그래서 개봉날 영화를 보다가 뛰쳐나왔어요. 나와서 시간표를 보니까 그 영화가 2시간 40분짜리인데 1시간 40분으로 돼 있더라고요.

▶ 1981년 작품인 <피막>은 우리 영화 역사상 최초로 해외영화제에서 수상을 한 작품이에요.

베니스 국제영화제에요. 회사에서도 그냥 출품해 본 건데 상을 받으리라고는 생각도 안 했어요. 아직 국내에 베니스 국제영화제가 알려지지 않았던 시기이기도 했고요. 그때 받은 상은 이시답 상이라고 해서 그 해에 총 6명을 뽑아요. 그 중의 하나로 들어간 거죠. 당시에는 지금처럼 국제영화제에서 상을 받았다고 해서 화제가 되었던 건 아니에요. 외신에서 들어오면서 점점 알려지기 시작한 거예요. 외국 비평가들이 이두용 감독 찾으러 오고 하니까 점점 알려진 거죠. 언론 쪽에서도 영화에 대해서 심도 있게 보고 있었던 건 아니니까요.

◇ 화장실에 숨어서 하루 종일 영화를 보기도

▶ 영화를 하시게 된 계기가 있으신가요?

대부분의 영화감독들처럼 영화광이었어요. 중학교 때 이미 영화에 푹 빠져있었는데 당시에 영화는 거의 미국영화였어요. 그런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은 대체 누굴까 생각했었어요.제가 서울이 고향이라서 주로 국도극장을 갔었어요. 당시 중학생이었고 미성년자 관람불가도 많았고 또 학생이라 돈도 없었는데 어찌해서 들어가면 하루 종일 4,5회씩 화장실에 숨어서 보기도 했어요. <역마차>, <오케이 목장의 결투>, <원탁의 기사> 등 영화의 비주얼에 푹 빠진 거죠.

▶ 용산고등학교를 나오셨는데 공부를 잘 하셨다면서요?

잘 한 건 아니고 중간 정도였는데 영화에 푹 빠졌어요.

▶ 그림도 잘 그리신다는데 영화와 무관하지 않을 것 같아요.

그런 재주가 있었나 봐요. 중고등학교 때부터 나는 영화감독이 되겠다고 하니까, 주위에서 너는 나가면 움직이는 그림을 하면 되겠다고 할 정도였어요. 마침 학교 선배가 영화 조감독을 하고 있었는데 영화감독이 꿈이면 빨리 나한테 와서 일도 좀 거들면서 배우라고 해서 그렇게 된 거예요. 그래서 용산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영화판에 뛰어든 거죠. 졸업하기 전부터 드나들기 시작하면서 선배 일을 틈틈이 돕다가 졸업하면서 영화 일을 본격적으로 시작했어요.

▶ 첫 번째 데뷔작품은 어떤 영화인가요?

1969년 작 <잃어버린 면사포>인데 신성일, 문희 씨가 주연을 한 멜로드라마에요. 첫 작품이 흥행이 좀 돼서 이후에도 계속 감독을 했던 거죠. 당시에 10만 관객이 들면 대박이라고 했는데 이 정도 관객이면 요즘 100만 관객과 맞먹을 거예요. 이 작품이 10만 관객까지는 아니었지만 꽤 히트를 했었죠.

▶ 작품의 평가는 어땠나요?

내용이 좋다고 하더라고요. 제가 첫 번에 인정을 받은 게, 옛날에는 지방에 ‘흥행사’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이 사람들이 서울 중앙에 영화제작 자금을 올려 보내 주면 영화사로 돈을 줘서 영화를 만들 수 있었거든요. <잃어버린 면사포>가 지방에서도 흥행이 괜찮았고 좋게 봐서 확산이 된 겁니다.

▶ 같은 시대에 활동했던 감독님들은 어떤 분들이 있나요?

신상옥, 이만희, 홍성기, 김수용 감독들이 있죠.

◇ 전국 태권도 유단자들로 만든 ‘태권 액션물’


▶ ‘70년대 중반 한국 영화계에 태권 액션물 유행을 일으킨 장본인’, ‘직선과 생략의 액션 미학’이라고 어느 평론가가 말했는데요.

제가 액션을 시작할 그 무렵까지 멜로드라마, 신파를 많이 했어요. 그런데 하다 보니까 싫증이 나더라고요. 아까도 이야기했듯이 어렸을 때부터 비주얼한 영화를 만들고 싶었는데 이야기 중심의 멜로만 하다 보니까 뭔가 이게 아니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더라고요. 당시 상황이 스토리텔링 중심으로 영화를 만들던 때였는데 그 장르가 나쁘다는 게 아니고 스스로 이게 아니다 생각할 즈음에 외국에 내보내는 영화를 만들고 싶어진 거예요.

외국에 나가려면 지금도 그렇지만 우리의 풍습이나 생활을 다룬 것은 승산이 없어요. 외국에 나간다는 건 영화제에 나간다는 게 아니고 영화 시장에 나가는 영화를 하고 싶었던 거죠. 영화시장에서 남의 나라 풍습이나 생활을 다루면 관심 밖으로 밀려나잖아요. 그렇다면 갈 수 있는 건 액션이라고 생각한 거예요.

당시 할리우드나 일본에서 얼마나 액션영화를 잘 만들었는지 몰라요. 그러면 그냥 3류 액션영화를 만들면 안 되겠다, 외국 감독들 못지않은 영화를 만들어서 영화시장에 내보내야겠다는 발칙한 생각을 했어요. 당시에 이소룡의 쿵푸를 다룬 영화가 막 확산되기 전이었어요. 한국의 태권도를 가지고 액션영화를 만든다면 외국 젊은이들이 호기심을 갖고 영화를 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 거죠.

그리고 학교 다닐 때 제가 태권도를 좀 했어요. 그때 배울 때 관장님이 말씀하시기를, 과학적으로 발이 주먹보다 2.5배의 힘이 있다고 하셨거든요. 그래서 발을 응용해서 액션영화를 만들면 좋겠다고 해서 만든 것이 태권도 영화 <용호대련>이었어요.

▶ <용호대련>의 흥행은 어땠나요?

흥행이 좋았는데 특히 지방에서 좋았어요. 헐리웃 극장에서 시작을 했는데 확산이 되면서 대한민국에 태권도 영화가 나왔다고 굉장히 반응이 좋았어요. 이후에 그런 영화를 만들어달라는 주문이 쏟아지더라고요. 그래서 몇 년 동안 정신없이 만들었죠.

▶ 당시에는 컴퓨터 그래픽 같은 기술이 부족하니까 위험한 부분도 있었겠어요?

컴퓨터 그래픽도 없었고 전문적인 스턴트맨들도 없었죠. 그 영화를 만들 때 전국의 태권도 유단자들을 모집했어요. 그랬더니 300명 정도가 와서 영등포의 한 도장에 가서 오디션을 보고 100명 정도로 간추렸어요. 그렇게 태권도 영화를 시작한 거예요. 저 친구는 기능도 있지만 연기도 할 수 있겠다, 악당 역에 어울리겠다, 이렇게 전부 배치해서 영화를 만들었는데 굉장히 소중한 친구들이에요. 태권도 영화는 이 친구들이 원조에요. 한때는 방송국의 무술감독으로 활동도 했고 지금은 그 후배들이 하고 있죠.

▶ 1980년대에 만든 <돌아이> 시리즈의 인기가 대단했었어요.

주인공이 전영록 씨인데 영화광이에요. 집에 가 보니까 영화와 관련된 책, 음반 등 프로 못지않게 갖춰놔서 깜짝 놀랐어요. 그래서 배우 이상으로 성공하겠다는 생각을 했었어요. <돌아이> 찍을 때도, 지금 같으면 컴퓨터 그래픽으로 할 텐데 남산의 케이블 카 위에 직접 올라타서 결투 신을 찍을 정도였어요. 그걸 시키는 감독이나 그걸 하는 배우나 또라이였죠.(웃음) 전영록 씨는 운동을 많이 해서 몸놀림도 좋고 열정이 대단했어요.

▶ 새로운 스타일의 다양성을 갖춘 영화를 추구하시는 것 같아요.

처음부터 거시적으로 다양성을 추구해야겠다고 시작한 건 아니고 한 유형의 영화를 하고 나면 정반대의 영화를 해요. 진지한 장르를 만들었다면 그 다음은 가벼운 장르를 만드는 거죠. 다른 영화를 하면 신인감독이 된 것처럼 신선하고 신이 나거든요.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으려고 영악한 계산을 한 것도 아니고 전혀 다른 장르의 영화를 만드는 작업이 즐거움을 줘요. 그래서 그런 작업들을 선호한 거죠.

▶ 외국 영화감독들에게 영향을 받으셨을 거 같아요.

외국의 특정한 감독이나 영화에 영향을 받은 건 아니고 전체 외국 영화의 수려함에 영향을 받았어요. 다만 프랑스 감독 클로드 를르슈가 만든 <남과 여>를 보고 깜짝 놀랐어요. 망원렌즈로 피사체를 심도 있게 잡아내거든요. 렌즈의 정확한 사용, 범위 등에 놀라는데 오히려 그런 사람의 작법에 영향을 받았을 거예요.

▶ 어느 인터뷰에서 ‘끝까지 액션영화를 하면 좋았을 것’이라고 고백도 하셨다는데 어떤 내용인가요?

요즘은 그렇지 않은데 우리 사회는 이상하게 액션영화를 폭력영화로 보고, 좋지 않은 영화라고 생각하는 인식이 저변에 깔려있어요. 유교의 인식 때문이라고 개인적으로는 생각하는데 영화를 영화로 봤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액션영화를 3류 영화로 보는 게 못 견디겠어요. 좋아서 만들기도 하고 해외수출용으로 만들었는데 멜로영화보다 액션영화 만들기가 더 어려워요. 노동의 강도도 그렇고요.

예를 들면 할리우드 액션 스타인 아놀드 슈워제네거, 실베스터 스탤론 같은 배우는 멜로 배우보다 열 배는 개런티를 더 받아요. 제작비도 더 많이 드는데 그만큼 액션영화가 쉽지 않다는 얘기에요. 제가 결정적으로 액션영화를 그만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한 게, 그 100명의 태권도의 달인들을 뽑아서 훈련을 시켰는데 그에 맞는 대우를 해주지 않고 ‘으악새 배우’라고 하면서 천하게 보는 거예요.

그 친구들하고 우리 세계적인 액션영화를 만들자고 단단히 약속하고 시작했는데 너무 마음이 아프더라고요. 나 역시도 똑같은 감독 연출료를 받고 고단한 액션영화를 만들어서 뭘 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액션영화의 인적자원에 대해서 대접을 안 해요. 지금은 그렇지 않으니까요.

◇ 나도향의 원작 ‘뽕’ 재미와 해학으로 재탄생

▶ 1985년 작 <뽕>을 찍으실 때 장소 찾는 것부터 쉽지 않으셨다고요?

우리가 일제 강점기 시절의 어두운 부분이 있었잖아요. 살기 어려운 사람들이 척박한 땅에 사는 이야기인데, 원래 나도향 씨의 원작이 아주 사실감 있고 생생한 반면 시대 배경도 그렇고 아주 어두운 작품이에요. 그래서 어두운 부분은 소설로서 충분히 표현이 되었으니까 영화는 재미있게 해학적으로 만들면 되겠다, 해학이라는 생각이 퍼뜩 떠오르더라고요.

작가와 잘 상의해서 진행하는데 검열도 그렇고 영화의 진위를 잘 모르는 거예요. 영화사마다 다 달라서 어떤 영화사는 바로 만들자고 그러고 또 어떤 영화사는 미진하고, 검열은 사전 검열이라는 게 있어서 걸리고, 결국 영화사를 세 곳을 전전하다가 이태원 씨가 처음 차린 태극영화사에서 하게 되었는데 대박을 친 거예요.

▶ 그 작품에서 이두용 감독님은 상업적으로 접근하신 건가요?

나중에 흥행이 되니까 상업적이 된 거고, 가난하고 척박한 땅에서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잖아요. 나라 잃은 땅에서 여자가 몸으로 살아가는 이야기인데 그걸 사실적으로 접근하면 칙칙해서 안 되겠더라고요. 그 배경에 깔린 건 슬픔이지만 영화를 보면서 껄껄거리게 재미있게 만들자고 해서 접근한 게 뽕입니다.

▶ 1986년 작 <내시> 역시 대단한 흥행을 거두셨잖아요?

1986년도에 두성영화사라고 직접 영화사를 차렸어요. <내시>가 창립 작품이에요. 모든 감독들이 그렇겠지만 자본을 투입해서 완벽한 작품을 만들자고 해서 직접 영화사를 차렸고 첫 영화가 내시인데 당시 제작비 규모로 봤을 때 어마어마한 작품이에요. 당시 제작비 규모가 7000~8000만원이었는데 내시는 홍보비까지 5억원이 들었어요. 그런데 영화가 흥행이 안 되면 알거지가 되었을 텐데 다행히 국도극장 정문이 깨질 정도로 사람들이 많이 와서 흥행이 되었죠.

▶ 영화는 대박이냐, 쪽박이냐로 명암이 갈리는데 이두용 감독님은 어떠셨어요?

지금까지 65편정도 만들었는데 흥행된 것은 10~15%정도, 적자는 안 난 게 10%정도고 나머지는 쪽박이에요. 그런데 흥행된 걸로 커버를 하는 거죠.

▶ 요즘은 한국영화의 위기론이 많이 이야기되고 있어요.

한국영화가 제2의 르네상스 시대다, 황금기라고 작년까지 그랬잖아요. 영화라는 게 흥행이 되었다가도 안 되기도 하는 건데 조금만 안 되면 위기라고 하고 조금만 잘 되면 황금기라고 하는데 물론 포장과 과장이 있었던 건 사실이에요. 하지만 영화는 쪽박을 차든 대박을 치든 없어지지 않아요. 모든 생활이 영상이잖아요. 토성까지 인공위성으로 찍어오는데 이걸 찍어오는 것은 영상이거든요. 영상이 있는 한 영화는 발전합니다.

요즘 영화의 위기론을 많이 이야기하는데 우리 세대 감독들과는 다른 문법으로 젊은 감독들이 잘 만들잖아요. 제작비를 대거 투여해서 해외에 많이 내보내는데 세계에서 상 받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건 수단이고 세계의 상업 시장에 우리영화가 나가야 해요.

물론 우려하는 바도 알겠어요. 2006년에 우리 영화가 120편이 만들어졌다고 하더라고요. 그랬다가 작년 제작한 영화는 40편도 안 되는 것 같아요. 하지만 그런 걸 가지고 한국영화가 끝났다고 하기에는 너무 이른다고 할 수 있죠. 총기 있고 잘 만드는 젊은 감독들이 있잖아요.

◇ ‘메이드 인 코리아’ 세계 영화시장에 들어가야

▶ 그런 의미에서 심형래 감독의 <디 워>가 할리우드 시장의 문을 두드렸다는 건 의미가 크다고 할 수 있겠군요.

내용이야 어쨌든 미국에서 2000개 이상의 스크린에서 걸었다는 건 대단한 겁니다. 미국사회에서 그만큼 상품대접을 받았다는 거거든요. 일단 흥행영화라고 하면 입장료를 끊어서 들어오는 코흘리개 어린애나 노인이나 똑같은 돈을 받는 거예요. 그 사람들이 재미있게 보는 영화가 어떤 영화인지 생각해야 해요. 영화에 대한 논란도 있지만 심형래 감독이 비즈니스를 잘 해서 미국에서 2000개 이상의 스크린에 걸은 건 상업적으로는 성공했다고 봅니다.

전 세계 극장의 절반이 미국에 있어요. 한때 우리나라의 농구화나 운동화가 전량 미국으로 갔었어요. 그때 들은 이야기로는 메이드 인 코리아 운동화를 미국인 개인이 1년에 4.5켤레를 신는다고 해요. 4.5켤레를 3켤레로 줄이면 한국의 운동화 산업이 망한다고 할 정도였어요.

농담으로 생각해서 웃었는데 중국제가 들어가서 정말로 그렇게 되었잖아요.마찬가지로 영화의 전 세계의 배급망은 미국이 주도하고 있어요. 영화도 그 체인에 들어가야 하는데 정상적으로 대접받고 들어간 게 <디 워>라는 거죠.

▶ 2005년 초에 프랑스 브졸영화제에서 특별 공로상을 수상하셨고 회고전도 열렸는데요.

그 영화제가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아시안 영화제만 해요. 해외에서 3번 회고제를 열었는데 브졸의 집행위원장이 15년 전부터 저의 회고전을 하고 싶었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8작품을 거기서 했어요. 고맙게도 한국의 영화감독을 환대해 주었어요.

한국에 있는 필름을 가져간다는 게 쉽지 않을뿐더러 프랑스에 있는 필름들을 모두 수거해서 회고전을 하는데 정말 감동을 받았죠. 막대한 비용을 들여서 해주는 데 문화선진국이 이래서 문화선진국이구나 싶어서 머리가 숙여지더라고요.

▶ 이두용 감독님의 대표작을 꼽으라고 한다면 어떤 작품을 꼽으시겠어요?

제 영화를 10년 후에 다시 보면 촌스러워요. 당시 영화를 만들 때마다 완성도 100%의 영화를 만들자는 게 모토인데, 감독의 생각을 배우가 연기하고 연기한 것을 필름에 찍어서 보여주는 게 영화인데 자본이나 기능, 환경에 의해서 내 생각이 전달 안 될 때가 더 많아요. 그래서 많지 않은데 어쨌든 내가 만든 좋아하는 영화가 있어요. <장남>, <뽕>, <피막>, 그리고 사회성을 다룬 액션영화 <해결사>는 애정이 많이 가는 작품이에요.

▶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서 말씀해 주세요.

영화 기획을 하고 있고 대본도 쓰고 있는데 영화를 만들려면 막대한 자본이 들어가잖아요. 그래서 펀딩을 하는데 애로사항이 있어요.

(FM 98.1MHz 월~토 오후 4시 5분, 정리=박길자)

※ 배한성의 아주 특별한 인터뷰(표준FM 98.1MHz)는 월~토 오후 4시 5분에 방송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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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으로 쓰고, 발로 버틴 그네들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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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선우 감독의 <우묵배미의 사랑>은 누가 불행했고 누가 행복했는지 묻기보다, 누가 어떻게 사랑했고,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보여주는 영화다. 인물 모두에게 애정을 갖고 찍고 애정을 표현한 영화다. 그래서 영화 속 그녀들의 손, 그네들의 발은 한없이 돋보인다. <우묵배미 사랑> 속 그녀들은 손으로 사랑과 가난을 써내려갔고, 그들은 발로 시대의 풍파와 삶의 고단함을 버텨왔던 것 같다.


디테일한 연출이 돋보이는 영화는 아름답고 앙증맞다. 일례로 에릭 로메르의 영화에서 여자의 무릎을 더듬는 남자의 손은 에로티시즘과는 거리가 멀고, 그저 귀여워 보인다(그 손의 떨림이라니…). 트뤼포는 여자를 향한 사랑을 목덜미를 쳐다보는 행위로 대신했다. <쥴 앤 짐>에서 짐은 카트린의 목덜미를 훔쳐보는 걸 즐긴다. 그리고 짐은 카트린의 목을 어루만진다. 트뤼포의 눈은 은밀했다. 브레송의 영화 <사형수 탈옥하다>에서 탈옥을 기도하는 한 남자의 손은 신의 존재를 느끼게 해준다. 한 평자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어떻게 손을 보여주는 것만으로 신의 존재를 증명하는가. 아! 위대한 브레송.” 이 뿐만이 아니다. 오즈 야스지로의 영화를 보고 나면 오차즈케의 맛이 그립고, 맥주와 돈까스를 먹고 싶어진다. 오즈는 일상적인 것을 예술로 승화시켰다. 대단한 오즈 야스지로!

하스미 시게히코라는 영화평론가는 존 포드의 영화에서 맥주병을 던지는 행위가 그의 영화에서 서사를 진행하는 원동력이라고 했다. 그저 던질 뿐인데, 그게 뭐 그리 중요한가 싶다. 허나 실제로 존 포드의 영화에서 던지는 행위는 자주 등장한다. 존 포드의 후기작 <도노반의 산호초>를 보면 쉴 새 없이 날아다니는 맥주병을 확인할 수 있다. 나루세 미키오의 영화 <여자가 계단을 오를 때>는 가파른 계단을 오르는 여자의 발을 보여줌으로써 험난한 여성의 삶을 어루만진다. 나루세 미키오는 이 영화에서 여자 주인공이 계단을 오르는 장면을 매번 다르게 찍음으로써 각기 다른 느낌을 만들어냈다. 이처럼 좋은 영화들은 감독의 섬세한 연출 감각을 자랑한다. 장선우의 <우묵배미의 사랑>도 그런 영화 축에 속한다고 생각한다.


<우묵배미의 사랑>은 소품이 빛나는 영화다. <우묵배미의 사랑>은 풍경마저도 소품으로 사용한다. 그래서 이 영화는 매 씬 마다 화면구성이 꽉 차 있다는 느낌을 준다. 불순물이 첨가되지 않은 순물질이라고 할까? 외화면에서 들려오는 기차의 경적, 여관 방 창 너머로 들려오는 빗소리, 봉제 공장 미싱 소리, 오래된 카세트에서 흘러나오는 뽕짝, 공장 아주머니들이 미주알고주알 나누는 수다, 막걸리 한 사발로 하루의 피로를 씻는 남정네들의 술판, 동대문 시장 상인들의 활기찬 모습, 나이트클럽에서 볼 수 있는 자본주의의 살풍경한 모습 등 이 영화는 근대화 과정을 겪는 변두리 서울을 소리와 풍경으로 세심히 묘사한다. 공장에서 노동자들이 일하는 모습은 과하다 싶을 정도로 긴 호흡을 자랑한다. 여기에는 단순 노동이 가지고 있는 반복성이 있다. 미싱 돌아가는 모습, 아주머니들이 실밥 뜯는 모습 등이 그렇다. 하지만 이 영화는 노동의 반복성을 통해 활기찬 노동 현장을 보여주되 우울한 모습을 보여주지는 않는다. 남편에게 두들겨 맞아 화장으로 멍든 자국을 가린 공례조차도 일할 때만큼은 침울한 표정을 짓지 않는다. 기계의 반복성과 노동하는 손의 리듬감이 있어서 이 영화는 활기차 보인다. 한편 <우묵배미의 사랑>은 탁월한 음향 연출 감각을 보여준다. 외화면에서 들려오는 기차 소리가 대표적이다. 어두운 밤 외화면에서 들려오는 기차 소리는 배일도와 공례가 겪어야 할 험난한 길을 암시한다. 배일도와 공례가 야밤 도주하던 그 날, 일도는 기차 안에서 두 사람의 앞날을 ‘샛길’에 비유했다. 영화에서 기차의 경적 소리는 불안한 미래를 암시하듯 잊혀질만하면 등장하고, 마지막 장면에서도 공례가 떠나고 쓸쓸히 논길을 걸어가는 일도의 어깨 너머로 기차가 지나간다. 기차의 경적소리는 ‘샛길’같은 공례와 일도의 미래가 아니었을까?


남자들은 두 발로 가난과 쓸쓸함을 지탱했다. 영화의 오프닝은 일도가 아내에게 두들겨 맞고 집을 뛰쳐나오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논길을 비틀비틀 걷던 일도는 이내 논두렁으로 나자빠지면서 한 쪽 발을 접질린다. 일도는 발을 움켜잡고 구질구질한 자기 삶을 한탄한다. 그리고 공례를 생각한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을 상기해 봐도 공례가 떠난 후 일도는 논두렁을 거닌다. 이때 일도는 꼿꼿이 선 채로 논두렁을 걸어간다. 첫 장면과 달리 일도는 비틀거리지 않고 무게중심을 잡고 있다. 한 쪽 다리를 다친 일도의 모습과 꼿꼿이 선 일도의 모습은 묘한 대구를 이룬다. 일도는 사랑에 실패하고 남은 상처와 시대가 안겨준 가난을 두 발로 버텨야 하는 남자였다. 반면, 이 영화에서 남자의 발은 폭력의 도구로 쓰이기도 했다. 공례의 남편으로 등장하는 이대근은 아내를 논두렁에 패대기친 후 발로 마구 밟는 무지막지한 남자다. 그는 공례가 일어서려고 하면 다시 자빠뜨린 후 발로 밟았다. 이대근의 무시무시한 발을 보면서 한 가정에서 남자들의 발아래 상처받았을 80, 90년대 여성들을 생각해보니 가슴이 저릿저릿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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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묵배미의 사랑>에서 남자들은 발을 자주 쓴다. 미싱을 돌리는 장면에서 일도의 발이 클로즈업 된다. 또, 일도가 아내와 잠자리를 가질 때 그는 보통의 남자들처럼 손으로 아내의 속옷을 벗기지 않는다. 급한 김에 발가락으로 아내의 팬티를 벗긴다. 물론 이 장면은 애교라고 볼 수도 있다. 한편, 일도는 여자의 손을 잡는 게 어색했나보다. 기차간에서 두 사람이 맥주를 주거니 받거니 하다가 우연히 손을 잡았을 때 당황하던 기색이 역력하던 둘의 모습은 지금 보면 참 아이러니하다. 마치 아침 드라마의 한 장면을 보는 듯. 그래서 재회 장면에서 일도는 공례의 손을 잡지 않고 발로 지그시 눌렀나 보다. 일도와 공례가 헤어진 후 술집에서 재회하는 장면에서 일도는 공례와의 어색함을 감추지 못한다. 일도는 발로 자신의 의사를 표시하고, 공례에게 자신의 온기를 발로 전한다. 이처럼 이 영화에서 남자들은 발로 삶을 버텨냈고, 발로 애정을 표시했다.


여자들은 박복한 삶을 손으로 견뎌냈다. 사랑을 표현하는데 있어서 남자가 발을 사용했다면, 이 영화에서 여자들은 손으로 사랑을 표현하고 전달했다. 가장 밀도 높아야 했던 여관 씬에서, 공례는 일도의 하얀 양말을 빡빡 문질러서 씻어준다. 일도의 아내도, 집 나간 남편이 없는 동안 투덜거리면서 빨래를 한다. 두 여자의 손에는 일도가 내일 신고 나가야 할, 흰 양말이 쥐어져 있다. 두 여자는 내 남자의 발이 깨끗해 보이도록 하기 위해서 더러워진 양말을 손으로 빡빡 문질러서 빨아준다. 그것이 그녀들의 애정이며 사랑이다. 일도의 아내는 일도가 밥을 먹는 동안 가만히 지켜보다가, 조심스레 반찬을 올려 준다. 그 때의 손. 수줍음이 많은 공례는 일도에게 말로 자신의 처지를 말하지 못하고 종종 편지를 쓴다. 화면에서 보이지 않지만 아마도 공례는 혼자서 모래 손으로 꾹꾹 눌러가며 편지를 썼을 것이다. 보이지 않는 공례의 손. 공례의 손은 가끔 적극적으로 변하기도 한다. 야밤 도주하던 날 조마조마하게 망설이던 일도의 손을 잡고 뛰었던 것 역시 공례의 손이다. 공례와 일도가 첫 관계를 가질 때도 그랬다. 그렇게 소극적이던 공례의 손은 일도의 사타구니에 이미 닿아있었다. 장선우의 짓궂은 면이 유감없이 발휘되는 장면이다.

한편 여자의 폭력성은 일도의 아내 유혜리의 손에서 나타났다. 일도의 아내는 화가 나면 손에 잡히는 모든 것을 던져버리고 깨부순다. 그녀가 손에든 부지깽이와 놋그릇, 연탄은 일도의 뒤통수를 가격하고, 전신을 멍들게 한다. 억척스러운 유혜리의 손에서 몰강스러운 맛이 났다.


끝으로 누군가 필자에게 이 영화에서 가장 매력적이었던 장면을 꼽으라면 일도와 공례가 초크로 약속 시간을 정하던 장면을 택하겠다. 미싱을 돌리던 일도는 공장 아주머니들을 눈을 피해 옆자리에 앉은 공례에게 일종의 사인을 보낸다. 그는 들고 있던 초크로 미싱에다 ‘8 1/2’라고 쓴다. 펠리니의 영화제목과 흡사한 게 오마주인가 하는 생각도 잠깐 했다. 또, 이 장면을 보면서 톨스토이의 소설 <안나 카레리나>를 떠올렸다. 레빈이라는 귀족은 어린애처럼 맑고 고왔던 키티라는 아가씨에게 매번 거절당한다. 안타깝게도 그녀는 다른 남자를 사랑하고 있었던 것이다. 우여곡절 끝에 레빈과 키티는 서로의 마음을 알아가게 되고 레빈은 마지막으로 그녀에게 다시 한 번 고백한다. 이 때 레빈은 백묵으로 탁자위에 알파벳 머릿글자만 적어서 보여준다. 남들이 보면 낙서이지만, 키티가 보기에 그 낙서는 일종의 연애편지이며 레빈의 프로포즈였다. <우묵배미 사랑>에서 공례와 일도도 백묵으로 서로 대화를 나누었고, 영화 후반부에 가면 손에 물을 찍어 탁자 위에 비닐하우스에서 만나자는 말을 적는다.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고, 소설과 영화 모두 사랑에 빠진 연인들의 애틋함을 느낄 수 있다.


<우묵배미의 사랑>은 자칫 무거울 수도 있는 90년대 이야기를 해학과 골계미로 풀어낸다. 그리고 이 영화 속 이야기 속에는 욕망과는 거리가 멀고 사랑과 거리가 가까운 러브 스토리가 있다. 이 영화는 누가 불행했고 누가 행복했는지 묻기보다, 누가 어떻게 사랑했고,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보여주는 영화다. 그래서 그녀들의 손, 그네들의 발이 더 돋보였던 것 같다. <우묵배미 사랑> 속 그녀들은 손으로 사랑과 가난을 써내려갔고, 그들은 발로 시대의 풍파와 삶의 고단함을 버텨왔던 것 같다. (이도훈 : 데일리 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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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포스트]
김태용 감독의 ‘내 인생의 영화’ 장선우의 <우묵배미의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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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마테크에 관한 짧은 필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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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한 영화 감상이 아닌 온 몸으로 영화를 체험하게 하는 시네마테크의 공기는 영화에 대한 갈증을 씻어주는 묘한 매력이 있다. 인간이란 누구나 그리운 대상을 떠올리고 추억하며 지극한 행복을 느끼는 존재다. 고전 속에는 그렇게 그리운 대상들이 오롯이 살아 숨쉬며 살아있는 우리들에게 행복을 전달해준다.

시네마테크의 위치는 오묘하다. 이전에 있었던 아트선재센터도 지금의 허리우드극장도 친근한 공간은 아니었지만, 막상 찾고 나면 왠지 모르게 마음이 놓이는 곳이란 생각이 든다. 인사동 거리를 거쳐 돌담길을 차례로 지나 외로운 계단을 걸어 내려가야 만날 수 있었던, 그리고 북적거리는 종로 거리를 지나 덜컹이는 엘리베이터의 불안함을 감소해야 도착할 수 있는 곳. 시네마테크에 대한 알싸한 추억담은 때때로 영사기를 통해 상영되는 한 편의 영화처럼 느껴지곤 한다.


아마도 내 기억이 맞는다면 내가 맨 처음 시네마테크를 찾은 것은 2002년의 여름 즈음, 정독도서관 열람실에서 책 구경하는 게 유일한 낙이었던 스트레스 충만한 고3 시절일 것이다. 그 무렵 나에게 시네마테크는 정독도서관을 들어가기 전에 괜히 한 번 기웃거려보는 호기심의 대상이었는데, 그러던 어느 날 호기심이 심하게 발동하여 극장 안으로 들어선 게 시네마테크와의 첫 만남이었다. 막연하게 들어선 시네마테크의 첫인상은 고요하면서도 친밀한 느낌이랄까(?!) 멍하니 두리번거리던 나에게 누군가 무언가를 물어왔는데 벌떡 일어나 도망쳤던 기억이 난다. 이어폰을 끼고 있어 무슨 말인지 듣진 못했지만 아마도 어떤 영화를 보러 왔냐는 정도의 질문이 아니었나 싶은데, 뭐가 그렇게 부끄러웠던 건지…. 아무튼 그렇게 시네마테크와의 첫 만남은 나름 강렬한 청춘의 기억으로 남아있다. 도망치듯 극장을 빠져나오고 끝나지 않을 것만 같았던 고3 시절은 지나가고 나는 대학에 입학했다. 그리고 오랜만에 찾은 시네마테크는 아이러니하게도 소격동의 마지막 고별전인 '라이너 베르너 파스빈더 회고전'이 진행 중이었다. 독일의 비정한 역사 속에서 끊임없이 소외와 억압의 문제, 인간관계의 실체를 자문했던 그의 작품을 보기 위해 매일 시네마테크를 찾으면서 나는 고전 영화를 향한 막연한 그리움 같은 게 조금씩 움튼 것 같다.


개인적으로 의미가 많았던 아트선재센터에서 허리우드극장으로 자리를 옮기고부터 한 달에 한 두 번씩은 꾸준히 시네마테크를 찾는다. 휘청거리는 엘리베이터를 함께 타고 올라오다가 지금은 없어진 극장 건너편 카바레로 향하는 아주머니 아저씨들과 갈라질 때의 그 은밀한 정서. 더불어 매번 마주쳐서 익숙한, 왠지 반갑게 인사를 해야 할 것만 같은 관객들을 마주할 때의 어색한 감정은 이젠 정겹게 느껴진다. 내노라하는 감독들과 종종 같은 상영관에서 영화를 관람할 때면 주책스럽게 영화보다 그들의 뒤통수에 시선이 가기도 한다. 가끔 비 내리는 흐린 스크린과 잡음 가득한 사운드 같은 건 별로 중요치 않다, 그저 쉽게 접할 수 없는 고전들을 함께 할 수 있는 공간이 있다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단순한 영화 감상이 아닌 온 몸으로 영화를 체험하게 하는 시네마테크의 공기는 영화에 대한 갈증을 씻어주는 묘한 매력이 있다. 인간이란 누구나 그리운 대상을 떠올리고 추억하며 지극한 행복을 느끼는 존재다. 고전 속에는 그렇게 그리운 대상들이 오롯이 살아 숨쉬며 살아있는 우리들에게 행복을 전달해준다.


올 해로 세 번째로 맞이하는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는 시네마테크의 주옥같은 프로그램 중에서도 특히나 반가운 행사다. 시네마테크의 소중함을 알고 그 안에서 상영되는 고전 영화의 가치를 이해하고 또 그 모든 기억과 경험을 나눌 수 있는 ‘친구’들이 함께하기 때문이다. <올 댓 재즈>를 보고나서 밥 포시의 경이로운 열정을 찬양하고 <더러운 얼굴의 천사>를 보고 제임스 캐그니의 소름끼치는 연기에 감탄했던 기억, <그림자 군단>을 보고 너나할 것 없이 감격적인 표정을 짓던 감독들의 얼굴, <셜록 주니어>를 보며 박수치며 깔깔거린 시네마테크 ‘친구’들의 웃음까지. 이 모든 것이 어우러져 한 편의 영화를 보는 듯한 착각과 환상에 젖어드는 공간이 있어 참 다행이란 생각이 든다. 이젠 이 친구들이 더 이상 어색함에 서성이지 않게, 그리울 때면 언제든 거장들의 명작들을 꺼내볼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할 차례다.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친구가 있고 그런 친구가 모여드는 시네마테크라면 아마도 세상에서 가장 매력적이고 매혹적인 공간으로 기억되지 않을까 싶다. / 이유진 (무비위크 기자 illenne@movieweek.co.kr)

시네마테크에서 시공간을 공유하는 경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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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마테크는 현재의 시네필을 위한 전유물만이 아니라 아직 시네필인지 아닌지 확신할 수는 없으나 형언할 수 없는 느낌의 영화를 만날 수 있는 곳, 그런 영화를 발견하고 틀어주는 곳, 시네필로 나아가게 만드는 곳, 시공간을 공유하는 경험, 흔적을 채취하는 장소이다.

‘2008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가 서곡을 연지 일주일이 지나고 2주째에 접어든다. 연일 흥분과 호기심이 계속되는 시간을 보내고 있어 즐겁다. 그 가운데 뜬금없이 쓸데없는 생각에 확 꽂혀버릴 때가 있다. 극장에서 영화를 본다는 행위, 영화가 상영되는 그 시간 동안에는 시간과 장소를 누군가와 공유한다는 그 자체에 매료되는 어느 순간 등이 그렇다.


한 달간은 '친구들 영화제'와 함께 하리라 맘먹고 개막식에 참석했을 때 내게 첫 번째로 눈에 들어온 것은 ‘새로워진 리더 필름’과 개막 영상을 통해 뇌리 속의 기억의 잔상을 끄집어 낸 그간 상영된 작품, 프로그램에 대한 포스터들 이었다. 지난 5년간의 시간을 다시금 재출발하는 의미에서 ‘새로운 영년’을 선포한 시네마테크가 공들여 만들었을 그 '리더필름'과 ‘개막 영상’을 스크린으로 보면서 순간순간 많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그 중 하나는 화재 대피에 대한 안내 문구가 나오면서 정말 불꽃이 나오더라는 것. 그 짧은 이미지를 보면서 ‘역시 단순 명료해서 좋아!’라는 생각을 했고 ‘근데 음악도 바뀌었네. 난 전자음의 짧고 심플한 예전에 나오던 음악이 더 좋은데’라는 생각도 했다. 뭐 이런 저런 정말 쓸데없는(?) 자질구레한 생각들이 순간 넘쳐났다.


그리고 중요한 또 한 가지 생각은 ‘시네필이 지켜야할 에티켓’에 대한 문구를 접할 때 뇌리에 스친 것. ‘시네필’이라는 단어다. 갑자기 궁금해졌다. 나는 과연 시네필인가? 혹은 여기 이곳 시네마테크, 서울아트시네마는 시네필을 위한 공간인가? 시네필이 아니면 들어올 수 없는 곳인가? 이런 질문이 들었다. 친구들 영화제에 관한 소식을 다룬 몇몇 매체의 기사 헤드라인에 보면 곧잘 “영화광들 다 모인다!”, “시네필들의 향연” 등등의 문구를 접하게 된다. 그것만 보면 시네마테크가 시네필만을 위한 장소로 국한되어지는 느낌이 있다. 이 지점이 좀 아이러니하다.

이 점이 궁금해 시네필이라는 단어를 사전에서 뒤져보았다. 게으른 성격 탓에 그 어원이 어디서 기원했는지는 찾아보지 못했으나 사전을 뒤졌을 때 국어사전에 등록된 단어라는 점이 또 한편으론 마냥 신기하고 반갑기도 했다. 그것도 언제 등록된 단어인지 모르나 신어, 즉 새로이 생겨 만들어진 신조어로 나왔다.
사전적 의미로 시네필은 ‘영화를 열광적으로 좋아하는 사람’으로 명기되어 있다. 소위 말하는 ‘영화광’을 지칭한다. “그렇다면 나는 영화를 좋아하긴 하는데 때론 열광할 때도 있지만 때론 지칠 때도 있는데 열광한다는 것의 기준은 뭘까?”라는 생각에 미친다. 좋으니까 보고 매력적이니까 주머니를 털어 돈 주고 영화보긴 하지만 진짜 내가 열광하는 것인가? 이 점은 석연찮은 구석이 있다. 열광에는 취향의 문제가 끼어든다.

한 달 전 즈음 필자는 아는 몇몇 지인과 모 영화평론가와 함께 술자리를 가진 적이 있다. 그 곳에서 나눈 얘기 중 하나가 시네필에 대한 것이었다. “선생님은 1년에 영화를 몇편이나 보셔요? DVD나 비디오는 얼마나 소장하고 있나요? 시네필의 대명사로 알려진 트뤼포는 2만 편이 넘는 영화를 봤다고 하던데(숫자에 약해 정확치는 않음)...” 이런 질문이 오가던 중 그 평론가는 다음과 같이 답했다. “에이 난 시네필이 아니예요. 왜냐? 취향이 없거든... 정말 시네필들이 얼마나 많은데...” 이 말은 그 자리에 있던 이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있었다. “시네필, 영화를 열광적으로 좋아하는 사람은 취향이 있어야 하는 구나”다. 이번 친구들 영화제에 정성일 평론가도 자신이 선택한 <수라>라는 작품에 대한 소개를 하면서도 비슷한 얘기를 했다. “<수라>는 영화를 사랑하는 모든 이들을 만족시킬 수는 없는, 취향의 영화다. 이 영화가 취향에 맞았다면 나는 그들을 친구를 넘어 동지라 부르고 싶다”라고, 이 지점에서 또 한번 생각해본다. 난 취향이 있나? 생각해보면 별반 없다. 멜빌을 보고도 로메르를 보고도 혹은 최근에 친구들 영화제에서 본 페라라를 보고도 좋은 지점을 발견한다. 그럼 난 취향이 없는 것인가? 취향이 없다는 것 자체가 취향이 될 수는 없나? 꼭 취사 선별이 필요한 것인가? 아직 해답을 찾지는 못했다. 혹은 꼭 해답을 찾을 필요성을 느끼지도 못한다. 이 시점에서 분명하게 드는 한 생각은 “그러한 생각을, 고민을, 내가 지금 하고 있구나”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닌가하는 거다. 내가 아직 취향을 갖지 못한 것은 아직 봐야할 영화, 보고픈 영화가 너무 많아서 그럴 수도 있고, 정말 취향 자체가 없는 것일 수도 있다. 그리고 그 자체가 나의 취향이라 말할 수도 있을게다.


연인들이나 혹은 친구들 간에도 우리는 곧잘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한다. “자긴 내가 좋아? 어디가 좋아? 좋은 이유 열 가지만 대봐.” 혹자는 콕 집어서 좋은 이유를 열거하기도 하나 혹자는 “그걸 어떻게 말로 하니. 그냥 좋아. 다 좋아. 마냥 좋아!”라고 말로 표현할 수 없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리고 우리는 때론 후자의 말에 더 큰 감동을 느끼게 된다. 이를 영화에 대비해 봐도 그렇다. 대사 하나에 배우 표정 하나에 그 작품이 뇌리에 와서 박힐 때가 있다. 줄거리도 배우 이름도 감독이 누구였는지 설사 기억을 못 한다 해도 말이다. 우리들은 종종 너무 좋은 영화를 보면, 말문이 막혀, 가슴이 먹먹해질 때가 있다. 얼마 전 필자가 아는 허우샤오시엔과 오즈 야스지로를 유독 좋아하는 지인이 그런 말을 했다. “누나 정말 좋은 영화를 보고 그 감독한테 경배를 올리듯 헌사 내지는 정말 좋은 글을 쓰고 싶은데... 맘처럼 되지 않아요. 쓸 수가 없지 않아요? 표현할 수가 없네”라고... ‘형언할 수 없다’는 최고의 찬사인지도 모르겠다.


트뤼포는 영화를 좋아하는 첫 번째 행위는 같은 영화를 반복해서 보는 것이고 두 번째 행위는 영화에 관한 글을 쓰는 것이고 마지막 세 번째는 영화를 만드는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아직 필자는 첫 번째 행위에 머무르고 있으나 혹은 아직도 못 본 영화가 너무 많아서 보는데 집중하고 있는 시점이며 영화를 사랑하기 위한 준비단계에 있다. 그리고 상상력이 부족한 탓에 영화를 만들 생각조차 감히 해보지 못한다. 그것은 내 일이 아니라는 느낌이 지배적이다. 하지만 그러니까 그렇기 때문에 시네마테크를 찾는다. 시네마테크는 현재의 시네필을 위한 전유물만이 아니라 아직 시네필인지 아닌지 확신할 수는 없으나 형언할 수 없는 느낌의 영화를 만날 수 있는 곳, 그런 영화를 발견하고 틀어주는 곳, 시네필로 나아가게 만드는 곳, 시공간을 공유하는 경험, 흔적을 채취하는 장소이다.


영화는 결코 혼자 할 수 없는 공동의 작업이고 극장에서 상영될 때만이 비로소 완성되는 것 같다. 최종 목적지는 바로 관객이다. <미셀 푸코 연구>라는 책에서 바르트는 "텍스트는 여러 문화에서 나온, 그리고 서로 대화하고 패러디화하고, 항의하는 여러 글쓰기로 이뤄져 있다. 그러나 이 다면성이 합치는 한 장소가 있는데, 그 장소는 작가가 아니라 관객이다. 텍스트의 통일성은 시원에 있는 게 아니라 목적지에 있다. 그러나 그 목적지는 개인적일 수 없다. 관객은 글을 이루는 모든 흔적들을 하나의 자리에 모으는 어떤 사람이다"라고 했다. 시네마테크는 그러한 관객들, 친구들과 함께 밤의 문화를 향유할 수 있는, 언제 졸업할 지는 모르나 그러한 흔적이 물씬 풍겨나는 장소이고 그 중심은 바로 시공간을 공유하는 그 자체의 경험이다.


필자는 종종 엉뚱한 상상을 해본다. “내가 지금 보고 있는 저 이미지가 현실이고 내가 현실이라고 믿고 있는 이 세계가 환상일지도 몰라.” 역설적인 표현이지만,가령 삶과 죽음, 실재와 허상 등은 동어반복에 지나지 않을 지도 모른다. 고다르가 영화를 ‘1초에 24프레임의 진실’이라고 말한 것이나 로라 멀비가 이를 역설적으로 표현한 ‘1초에 24프레임의 죽음’이라고 말한 것은 동일 선상에서 다 맞는 말 같다. 그리고 시네마테크는 우리에게 그러한 삶과 죽음의 진실, 역사의 흔적을 만끽하게 해주는 장소다. 알랭 레네가 <세상에 모든 기억>이란 단편에서 세상에 모든 기억이 존재하는 곳이 도서관이라고 했는데 같은 의미로 시네마테크는 영화에 관한 모든 기억, 흔적이 있는 곳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나아가 시네마테크가 보다 기민한 행동으로 영화 박물관, 영화 학교의 역할을 톡톡히 해주길 기대해본다.


벤야민의 <일방통행로>라는 책의 <주요소>라는 챕터를 보면 다음과 같이 서술되어 있다. “지금 삶의 구성은 확신보다는 훨씬 더 사실들의 권역에서 이뤄지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참된 문학 활동이 문학의 틀 안에서 이뤄지길 바라서는 안 된다. 문학이 제대로 효력을 발휘하려면 행동과 글쓰기가 엄격하게 교대되어야만 한다. 그렇게 하려면 괜히 젠 체하기만 하며 일반적인 제스처만 취하고 마는 저서보다 현재 활동 중인 공동체들에 영향을 미치기에 훨씬 더 적합한 언뜻 싸구려처럼 보이는 형식들, 즉 전단지, 팸플릿, 신문 기사와 플래카드 등을 만들어야 한다. 그러한 기민한 언어만이 순간순간을 능동적으로 감당할 수 있다. 온갖 의견이 사회적 삶이라는 거대한 장치에 대해 갖는 관계는 기름과 기계의 관계와 동일하다. 아마 터빈 위에 서서 위에다 기계유를 쏟아 부을 사람은 없을 것이다. 감추어져 있는 축이나 이음매에 기름을 조금 쳐주는 것이 다일 텐데, 그러자면 그것들이 어디에 있는지를 알아야 할 것이다.”


시네필인지 아닌지 아직 확신할 수 없는 많은 관객, 영화의 친구, 영화에의 애정, 열정이 있는 많은 이들한테 시네마테크가 벤야민의 말처럼 감추어져 있는 축이나 이음매에 기름을 쳐주는 역할을 해줬음 한다. 그렇게 진일보하길 바란다. 극장에 자주 가다 보면 나이든 어르신을 보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얼마 전에는 한 어르신이 엘리베이터 안에서 말을 걸었다. “옛날 영화인데 젊은 사람이 이런 영화를 다 봤어?”라며 의아해 했다. 아마 추측컨대 그분은 그 옛날 필름으로 봤던 영화를, 그 때의 흔적을 찾고 싶어 아트시네마를 찾았을 것이다. 필자 역시 훗날 노인이 되어서 지금 내가 경험한 페라라를, 장 비고의 <라탈랑트>를 다시금 보고 싶어 질 때가 분명 있을 것이다. 그때도 기분 좋게 지금의 흔적과 경험을 회상하며 시네마테크에 오고 싶다. 내 생이 다하는 날까지 시네마테크가 지속되길 진심으로 바란다. 시공간을 공유한다는 것, 설사 훗날 지금의 이 순간을 망각해버릴지언정 망각도 기억의, 흔적의 조각인 만큼 소중하게 여기고 싶다. (신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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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소한 것의 특별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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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매력은 별거 아닌 당연하고 사소한 것들이 확대되어서 극장의 큰 스크린에 나타났을 때 받게 되는 ‘놀라움’과 ‘특별함’에 있다.

극장에서 영화를 보다보면 아무것도 아닌 사소한 장면이나 인물의 미세한 표정 변화 혹은 작은 몸짓 하나가 영화에 대한 강한 인상을 남길 때가 있다. 필자에게 있어 이번 "친구들 영화제"에서는 홍상수 감독이 선택한 장 비고의 <라탈랑트>가 그러하다. 영화가 끝나고 나서도 계속해서 머릿속에 맴돌았던 장면이 있다. 그것은 바로 쥘의 어깨 위에 위태롭게 매달려 있던 새끼고양이의 움직임이다.


‘쥘의 어깨에 매달려 있는 새끼고양이’라는 사소한 것이 나에게 <라탈랑트>의 다른 어떤 장면들보다 특별함을 갖게 된 것은 이 영화를 극장에서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극장에서 <라탈랑트>를 보기 이전에 DVD로 영화를 보았던 적이 있으나 당시는 쥘의 어깨에 매달려 있는 새끼고양이의 움직임은 나의 눈에 특별히 들어오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된다. ‘어깨에 새끼고양이 한 마리가 앉아있구나’하는 정도였다. 그런데 극장에서 이 장면을 다시 접했을 때는 느낌이 굉장히 틀렸다. 춤을 추는 쥘의 움직임에 따라 함께 들썩이면서 떨어지지 않으려고 하는 새끼고양이의 필사적인 모습과 갑작스러운 쥘의 큰 몸짓 때문에 새끼고양이가 살짝 날랐다가 미끄러지고, 떨어질 뻔 하는 일련의 작은 움직임들이 눈에 띄었다. 아니 이러한 새끼고양이의 움직임은 그냥 ‘눈에 띤다, 보았다’라는 표현보다는 ‘눈에 포착되었다’라는 표현이 더 어울릴 것이다. 필자의 눈에 포착된 그 장면은 말 그대로 강력하게 뇌리에 꽂힌 것이다. 영화에서 실제 진행되었던 시간은 고작 1분 정도인데 그 장면의 느낌은 조금 더 길게 나의 망막에 맺혀있었던 것 같다.  DVD로 봤을 때는 별반 느낌 없이 지나가버리거나 눈에 잘 들어오지 않았던 새끼고양이의 작은 움직임 하나가 극장의 큰 스크린을 통해 ‘포착’되고, ‘확대’되어져서 순간적으로 들어온다. 그 움직임은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것이 아닌 매우 낯설고 신비스러운 것처럼 다가왔다. <라탈랑트>에서 새끼고양이의 작은 움직임을 통해 받았던 묘한 경이로움은 초기 영화를 보던 관객들이 바람에 흔들리는 잎사귀의 움직임에 열광했다는 사실을 떠올리게 한다.


<라탈랑트>는 사소한 것에 특별함이 있는 영화이다. 남편은 부인이 주는 옷을 받아 갈아입고, 부인은 남편의 옷을 갈아입는 사이에 테이블 위에 있는 실을 들어 치수를 재는 일상적인 움직임을 하나하나 보여주는 이 평범한 숏은 이중인화의 특수효과 장면만큼 놀라움을 준다. 밤마다 자다가 깨야 되는 생활에 피곤한 부인의 표정과 남편이 방으로 돌아왔을 때 그녀의 자연스럽고 일상적인 움직임과 서로 말하지 않으면서 남편이 옷을 내리기 전에 치수를 재는 절묘한 타이밍의 능숙한 몸짓에 삶의 느낌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줄리엣이랑 헤어지고 나서 넋이 나간 선장을 보다 못해, 쥘은 줄리엣을 찾아 나선다. 줄리엣은 쥬크박스가 있는 가게에 들어가서 신혼 첫날 ‘라탈랑트’의 선원들이 불러주었던 노래를 듣는다. 줄리엣을 찾으러 호텔과 거리를 돌아다니던 쥘은 가게에서 나오는 ‘선원의 노래’를 듣고 가게로 들어간다. 그곳에서 쥘은 노래를 듣고 있는 줄리엣을 찾게 된다. ‘선원의 노래’는 다른 사람들에게 최신 히트곡일 뿐이지만 ‘라탈랑트’의 식구들에게는 서로를 연결해 주는 특별한 노래가 된다. 그래서 쥘과 줄리엣이 노래를 통해 만나는 우연의 순간이 마치 필연의 순간처럼 보인다. 단지 유행 노래일 뿐인 것을 특별한 것으로, 필연의 기적으로 만들어낸다.


<라탈랑트> 상영 후 시네토크 시간에 홍상수 감독은 <라탈랑트>의 모든 씬에 사랑이 담겨있고, 사랑해서 찍은 느낌이 나는 영화라고 말했다. 무엇이 이 영화에 사랑스러운 느낌을 주는 것일까? 눈에 포착된 작은 움직임에 대한 감탄, 일상적인 몸짓과 장면들이 담아내는 삶의 느낌, 사소한 것이 만들어내는 기적이 영화를 사랑스럽게 만드는 것이라 생각된다. <라탈랑트>는 감정이 삭막해진 요즘에 딱 어울릴 법한 영화다. 사랑스러움과 아기자기함이 물씬 풍기는 이 영화는 계속 웃으면서, 물안개처럼 잔잔하게 흐르던 음악을 흥얼거리면서 집에 가게 했다. <라탈랑트>는 별거 아닌 당연하고 사소한 것들이 확대되어서 극장의 큰 스크린에 나타났을 때 받게 되는 ‘놀라움’과 ‘특별함’이 가득한 매혹적인 영화다. (신윤하: 데일리 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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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 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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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1.10 김영진 편집위원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에서 우리가 결국 확인하는 것은, 우리는 결코 고독하지 않으며 이전에도 그랬는지 모르지만 앞으로도 세대를 초월해 친구가 될 수 있다는 믿음의 나눔일 것이다. 시네마테크를 통해 나눌 수 있는 이 우정의 교감은 영화를 만들고 보는 것이 덧없는 극장 흥행의 운명에서 벗어나 고갈되지 않는 체험이라는 것을 실감하게 만든다.

1월 8일부터 2월 3일까지 서울아트시네마에서는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가 열린다. 영화감독, 평론가, 배우를 주축으로 한 시네마테크의 친구들이 각자 영화를 한 편씩 선정하고 관객들과 함께 해당 영화를 보며 대화를 나누는 이 행사는 올해로 세 번째다. 시네마테크의 단골인 박찬욱, 오승욱 감독을 비롯해 김지운, 김태용, 이명세, 임순례, 장준환, 최동훈, 홍상수와 배우 김혜수, 류승범, 평론가인 정성일과 필자 등이 영화를 선정했다. 아울러 이두용 감독 특별전과 아벨 페라라 특별전이 마련되고, 영원한 시네필의 초상인 프랑수아 트뤼포의 회고전도 마련돼 있다. 아벨 페라라는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자격으로 내한하고, 이두용 감독도 극장에서 직접 관객을 만날 예정이다.

가슴 뛰는 상황이 아닐 수 없다. 수년 전 아트시네마의 김성욱 프로그래머로부터 이 행사의 게스트로 참여할 것을 제안받았을 때는 소격동에서 종로2가로 둥지를 옮긴 이 극장의 존립 자체가 불투명한 상황이었다. 극장의 생존을 걱정해야 하는 처지는 바뀌지 않았지만, 그리고 서울시는 시네마테크를 여전히 백안시하고 있지만, 여하튼 친구들은 이곳에 계속 모이고 있다. 아트시네마에 한 번이라도 가본 사람이라면 20세기의 매체인 영화를 극장 대형 스크린에서 함께 관람한다는 것의 의미를 저절로 체득하리라고 믿는다. 얼마 전 스탠리 큐브릭의 <배리 린든>(1975)을 이곳에서 봤을 때 비디오와 DVD로 다섯 번 본 그 영화와 껍데기만 같은 것임을 알게 되었다. 큰 화면에서 남녀 주인공이 눈짓을 교환하는 간단한 장면에서조차 대가급 감독이 왜 다른 세부 묘사의 재능을 보여줄 수 있는 것인지 실감이 났기 때문이다. 남녀가 눈을 맞춘다, 그들은 사랑에 빠진다, 그들은 결혼한다는 단순한 전개가 한마디 말 없이 불과 몇 분의 화면 전개 사이에 묘사되는데 활자언어로 환치될 수 없는 경지가 거기 있었다.

이런 것이 영화의 박물관인 시네마테크에서 공유할 수 있는 경험의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큰 스크린에서 방금 본 영화의 특정 화면이 얼얼하게 뇌리를 맴도는데 그걸 말로 제대로 집어낼 수 없어 묵묵히 있다가 오래전의 영화에서 시간의 시련을 뚫고 강인하게 버텨온 예술성의 줄기를 제대로 집어낸 것 같은 포만감을 접수하며 과거의 영화를 즐기는 영화 공동체는 미래의 영화를 창작하고 감상하는 토대로 이어지게 되는 것이다. 아쉽게도 한국에서는 이 공동체의 체험이 21세기에야 시작된 것이지만, 더 이상 비밀결사조직 같은 느낌은 주지 않는다. 영화를 좋아한다는 이유만으로 종사자들이 가난과 과부하가 걸린 근무조건에 갇혀 있는 것은 안타깝지만, 여하튼 친구들은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과거의 명작을 제대로 극장에서 필름으로 볼 수 없었던 필자 세대에 비해 이제 마음만 먹으면 작심하고 1년간 이곳에 들락거리면서 영화를 섭렵할 수 있는 행운이 가능해진 것이다.

올해 스크린으로 상영되는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 상영작들 대부분이 그런 행운을 특정 관객에게 안겨줄 것이라고 생각되지만, 필자가 특히 기다렸던 작품은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의 <순응자>(1970)다. 베르톨루치가 젊었을 적 동료였던 촬영감독 비토리오 스트라로와 함께 만든 이 영화는 천부적인 재능과 시대의 공기가 만났을 때 어떤 경이적인 결과물이 나오는가에 대한 좋은 예증이다. 남들처럼 정상적으로 살고 싶다는 욕망에서 파시스트가 된 주인공 마르첼로가 과거의 스승인 콰드리 교수를 암살하기 위해 파리로 가는 것이 영화의 주된 내용인데, 수시로 마르첼로의 과거 회상 장면이 끼어든다. 아마도 영화사상 가장 복잡하고 세련된 플래시백 구조를 완성했다고 볼 수 있는 이 영화에서, 주인공 마르첼로는 이 회상 장면을 통해 관객과 함께 자신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듯한 착각마저 준다. 어린 시절 아름다운 외모를 지닌 동성애자에게 성추행당할 뻔했을 때 불쾌했다기보다는 묘한 홀림과 두려움을 경험했던 마르첼로는 무의식적으로 자신이 혹시 성 정체성에 문제가 있는 게 아닐까 근심한다. 파시즘이 대세이던 1930년대의 이탈리아에서 그는 맹인 철학자 이탈로의 안내를 받아 파시스트가 되고 결혼해 가정을 꾸리며 스승과 세상을 향해 자신이 정상인임을 증명하고 싶어 한다.

하지만 그의 무의식 속에서 이상적인 아버지는 전 스승인 콰드리 교수다. 그가 콰드리 교수를 죽이는 것은 일종의 살부 의식을 집전하는 것이고, 아울러 은근히 연모했던 콰드리 교수의 부인 안나에 대한 감정을 부정함으로써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영화의 후반부에 겨울 숲에서 벌어지는 암살 장면은 그 서늘한 공포 묘사 감각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온몸이 마비된 듯한 자세로 공포에 질려 눈을 부릅뜬 채 자동차 안에서 콰드리 교수 부부의 암살을 지켜보는 마르첼로의 모습은 시대의 격랑에 자아를 놓치고 휩쓸려 들어간 개인의 당혹과 공포를 생생하게 웅변한다. 콰드리 교수의 부인 안나로 분한 젊은 시절의 도미니크 산다가 우아하면서도 연약한, 깨어지기 쉬운 유리병 같은 아름다움 속에 감추고 있던 도도함을 끝내 놓아버리고 생명을 애걸할 때 관객이 갖는 통절한 느낌도 함께 남는다. 클라이맥스에 이르기까지 마르첼로의 의식을 충분히 지켜봤던 관객은 이 비극적인 느낌 앞에 할 말을 잃는다.

<순응자>는 개인의 의식 속에 밀고 들어오는 시대의식의 침입 및 그로 인해 개인이 갖게 되는 맹목성과 현혹된 자아의 양상을 현란한 스타일로 전시하는데, 고전영화 시대의 조셉 폰 스턴버그나 오손 웰스가 추구했던 바로크적 수사의 극단적인 아름다움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면서 마를렌 디트리히와 같은 절대적인 미의 아이콘을 교묘하게 도미니크 산다와 같은 당대의 배우의 육체를 통해 재탄생시킨 베르톨루치 스타일의 관능 앞에 관객이 이미 무릎을 꿇은 상태라면 이 영화의 비극성의 심연은 더욱 깊어진다. 영화 초반 마르첼로가 라디오 방송국 스튜디오에서 스승 이탈로를 만나는 장면을 예로 들면, 동일한 공간에서 몇 차례 관객을 헷갈리게 하는 잘못된 화면 연결로 관객을 마치 거대한 무의식의 동굴에 빠트리는 것 같은 묘한 느낌에 빠져들게 한다. 빛과 어둠이 극단적으로 대비되는 가운데 측면으로 느리게 움직이는 카메라가 멈출 때 관객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상황과 만나고 그때 알게 된다. 이것은 카메라가 움직이는 영화이고 그 움직임 속에서 시각적 진술이 만들어졌으며 자신은 주인공 마르첼로와 마찬가지로 거미줄에 갇힌 처지와 비슷하다는 것을 몸으로 느끼는 것이다. 여기서 관객은 마르첼로를 지켜본다고 생각했지만 거꾸로 누군가가 바라보고 있는 마르첼로와 비슷한 입장에 빠진 자신을 깨닫는다.

결국 이런 얘기는 <순응자>를 직접 극장에서 관람하고 그 실체를 만끽해보라고 여러분을 꼬드기는 일종의 호객행위다. 필자가 추천한 배창호의 <꿈>(1990)과 같은 영화도 텔레비전 수상기로는 온전히 접수할 수 없는 화면의 밀도를 갖고 있는 작품이다. 불운하게도 당대에는 어떤 제대로 된 평가도 국내외에서 받지 못했던 이 영화는, 한 뛰어난 감독이 미처 다 추구하지 못했던 형식적 모험의 여정이 얼마나 근사한 경지에 있었는가를 증명한다. 안성기가 연기하는 조신이라는 스님이 겪는 파계와 파멸적인 사랑의 여정 속에 새겨진 수려한 회화적 질감의 화면들은 한국 영화의 독자적 미학을 수립하는 데 한때 가장 멀리 나갔던 감독의 여정을 확인하게 해줄 것이다. 필자 자신도 대학생 시절 본 이 영화를 그 뒤로 제대로 보지 못했다. 오늘날 많은 영화들이 햄버거처럼 흔하게 소비되고 잊혀지고 있지만, <꿈>과 같은 영화는 개개인의 극장 체험 속에 밀봉된 채 오랫동안 햇빛을 보지 못했다. 이 영화를 극장에서 배창호 감독과 관객들과 함께 관람하고 나서 누리는 자그마한 흥분과 기쁨은 이두용 감독의 <내시>(1986)와 같은 영화에도 비슷한 부피로 체험될 것이다. 필자는 이 영화를 일곱 번 관람했는데, 당시에는 이 영화를 보고 느낀 감흥을 나눌 친구가 없어서 무척 고독했다. <내시>는 극장 개봉 당시 흥행한 영화지만, 이상하게도 이 영화에 대해 상세히 언급한 언론 반응을 찾을 수 없었다. 필자와 같은 고독한 관객이 있는지 없는지 모르는 채 전근대적인 충무로 현장에서 억압적인 정치적 분위기를 감내하며 영화를 만들던 당시의 감독들은 더 고독했을 것이다.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에서 우리가 결국 확인하는 것은, 우리는 결코 고독하지 않으며 이전에도 그랬는지 모르지만 앞으로도 세대를 초월해 친구가 될 수 있다는 믿음의 나눔일 것이다. 시네마테크를 통해 나눌 수 있는 이 우정의 교감은 영화를 만들고 보는 것이 덧없는 극장 흥행의 운명에서 벗어나 고갈되지 않는 체험이라는 것을 실감하게 만든다. 올해 세 번째를 맞이하는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를 계기로 영화의 거듭남이라는 축복을 즐겼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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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객 인터뷰 / 송주호(24세), 한상희(23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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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일 병환으로 인해 아벨 페라라의 아시아 첫 방한이 취소되어 안타깝지만 페라라의 영화를 사랑하는 이들은 건재하다. 페라라와 함께하지 못해도 페라라를 얘기할 수 있는 장의 서곡을 장식한 <’R-마스>를 보고 나온 페라라의 건재한 팬들 중 유독 두 사람이 눈에 띤다. 혹자는 솔로들의 전당이라고 말하는 바로 여기 아트시네마에서, 그네들에게서는 풋풋하고 싱그러운 연애기운이 느껴졌기 때문에 질투심이 발동한 것이다. 기쁨은 나누면 배가 된다고 한다. 좋은 영화를 연인과 함께 보는 것은 어떤 것일까? 빔 벤더스는 “한 번 상상해보라. 영화를 보는 당신 곁에서 눈물짓고 박수치고 웃고 탄식하는 천사가 옆에서 함께 영화를 보고 있다고”라는 말로 영화를 같이 보는 친구를 천사로 표현했다. 미대생이라며 자신을 소개한 한상희 씨(23세)와 작년 10월에 전역하고 극장가를 전전하고 있는 송주호 씨와(24세) 함께한 영화 이야기를 싣는다. (by 이도훈)


이도훈(이하 이) : 두 사람의 모습을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자주 보았다. 극장에서 만난 사이인가?

한상희(이하 한) : 작년에 서울아트시네마에서 했던 ‘영화의 매혹’이라는 영화사 강좌를 듣다가 만나게 되었다. 매주 수요일마다 마주치다가 우연히 인사하면서 친해졌다.

송주호(이하 송) : 서로 시간이 맞으면 데이트를 하는데, 얼굴 맞대고 있는 시간보다 스크린을 쳐다보는 시간이 더 길었던 것 같다(웃음).


이 : 우선, 방금 보고 나온 <’R-X마스>를 본 소감이 궁금하다.

송 : 나는 이 영화를 ‘크리스마스 가족영화’로 생각했다. <’R-X마스>의 오프닝과 엔딩은 가족으로 시작하고 끝난다. 오프닝에서 크리스마스 연극을 하는 딸의 모습으로 시작해서 엔딩은 부부의 사랑을 노래하는 장면으로 끝난다는 것이 가족애를 다룬 것이라고 생각했다. 영화의 배경이 크리스마스라서 종교적인 색채도 느껴지는데, 그 부분을 작위적으로 생각했다. 그래서 그런지 불법적인 장사로 생계를 유지하는 두 부부가 딸의 미래를 생각하며 합법적으로 살자며 회개하고 있는 듯하다.

한 : 마약팔지 말자!?(웃음) 이 영화를 일종의 ‘크리스마스 가족영화’라고 하면 가족의 소중함을 말하는 것 같다. 다만 그 소중함을 알아가는 과정이 험난하게 그려져 있다. 비리 경찰은 마치 산타처럼 보이더라. 경찰이 남자 주인공을 납치해서 풀어줄 때, 주인공 남자는 크리스마스 날 아침에 집으로 돌아오지 않나. 비리 경찰이 아버지를 착하게 만들어서 가정으로 되돌려 보내는 것 같더라. 특히 부모가 딸아이에게 사주는 ‘파티 걸 인형’이 기억에 남는다. 외형상으로는 전혀 크리스마스 분위기에 어울리지 않는 불길한 느낌을 받았다. 인형이 검은색 루즈를 바른 모습과 검은 색 머리는 어딘지 모르게 음산하면서 한편으로는 식상하다고나 할까.


이 : 아직 친구들 영화제가 초반이긴 하나 극장에서 꽤 본 것 같다. 이번 기간 중 재미있게 본 작품에 대해서 말해 달라.

송 : 정성일 평론가가 추천한 <수라>를 재미있게 보았다. 영화 속 주인공의 성격이 우유부단한 것 같다. 주인공인 겐고베이가 행동하기 전 상상하는 장면이 많다. 결국 주인공은 자신이 상상한 것과는 반대로 행동한다. 상상 속 사건이 현실에서는 엉뚱하게 전개되는 점이 재미있었다. <수라>를 보기 전에는 사무라이 검술 영화인가 했는데 막상 영화를 볼 때는 그렇지 않았다. 영화 속 상상과 현실이 충돌할 때는 마치 씬과 씬이 검술을 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한 : <수라>는 인물의 심리를 전달하는 과정이 설득력 있었다. 겐고베이가 자신을 속인 코마에게 복수하는 행위가 피상적으로 보이기도 한다. 그럼에도 그의 처지와 행동을 이해할 수 있었다. 예를 들어 겐고베이가 코만의 손을 붙잡고 강제로 아이의 입에다가 칼을 찔러 넣는 장면은 정말 충격적이지만, 실제로 복수를 한다면 저렇게 잔인하게 하겠지 라는 생각이 들더라.


이 : 이번 영화제에서 기대하고 있는 작품이 있나?

송 : 개인적으로 아벨 페라라 감독의 <복수의 립스틱>과 <악질 경찰>을 필름으로 볼 수 있게 되어 너무 설렌다. 자크 리베트의 <셀린느와 줄리 배타러 가다>는 2004년에 너무 재미있게 본 기억이 난다. ‘관객들의 선택’을 선정할 때 이 영화에 표를 던졌는데, 다시 보게 되어서 너무 기쁘다.


이 : 지금까지 서울아트시네마에서 본 작품 중 기억에 남는 영화나 에피소드가 있다면?

송 : 최근 본 스탠리 큐브릭의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은 내게 전대미문의 영화적 체험을 가능하게 해주었다. 그 전까지는 비디오나 DVD를 통해 작은 화면으로만 봐서 그런지 걸작이라거나 아름답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하지만 큰 화면으로 보니 확실히 다르더라. 원숭이들이 모노리스라는 검은 색 돌기둥으로 도구를 사용하는 방법을 알게 되는 장면이 있다. 이 영화의 처음 시작할 때와 중반부에서 암전으로만 검게 처리된다. 암전된 장면에서 스크린이라는 직사각 자체가 마치 그 원숭이들 앞에 떡하니 서있던 돌기둥처럼 느껴졌다. 그런 생각을 하니 소름도 끼치고 정말 벌벌 떨면서 영화를 봤었다.

한 : 서울아트시네마에서 버스터 키튼의 영화를 보면 항시 느끼는 게 있다. 키튼의 영화를 집에서 혼자 보면 키튼이 아무리 익살스러워도 박장대소까지 하지는 않는다. 반면 극장에서 여러 사람과 함께 보면, 깔깔거리고 박수까지 치면서 영화를 본다. 키튼의 영화를 보면서 혼자서 영화 보는 것보다 극장에서 여럿이 함께 볼 때 영화 보는 재미가 배가 된다는 걸 경험했다. 이곳은 영화를 함께 볼 수 있는 공간인 동시에 다른 극장에서는 느낄 수 없는 자유분방한 기운이 있는 곳 같다.


이 :
이번 영화제에서 상영되지 않지만 꼭 필름으로 보고 싶은 작품이 있다면?

송 : 마리오 바바, 다리오 아르젠토의 영화를 꼭 시네마테크에서 보고 싶다. 

한 : 시네마테크가 아트선재에서 마지막으로 상영한 영화가 <안녕, 용문객잔>으로 기억한다다. 그 때 본 그 영화를 결코 잊을 수가 없어서, 이번 관객들의 선택에서도 경합을 벌인 것으로 아는데 다시 한번 상영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이도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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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


관객인터뷰 / 강연하 (23세, 영화 아카데미 25기생)

10일, 프랑수아 트뤼포의 <녹색 방> 상영이 끝난 후 쏟아져 나오는 관객들. 유독 한 여인에게 눈길이 간다. 트뤼포의 <쥴 앤 짐>과 <두 명의 영국 여인과 유럽대륙> 속 남자 주인공들은 사랑하는 여자가 머리를 틀어 올릴 때마다 목덜미를 관찰하는 버릇이 있다. <쥴 앤 짐>의 카트린처럼 머리를 곱게 묶은 한 여인에게 호기심이 발동한 것은 전적으로 트뤼포 탓이리라. 영화 연출을 공부하고 있다는 강연하(23살, 영화 아카데미 25기생) 씨에게 트뤼포를 빌미로 말을 걸어본다. 여기, 그녀의 영화 사랑과 시네마테크에 대한 애정이 있다. (
by 이도훈)

이도훈(이하 이) : 우선, 자기소개를 부탁한다.

강연하(이하 강) : 현재 영화연출을 공부하고 있는 23살의 학생이다. 전에 다니던 영화학과를 그만두고 올해 영화아카데미 25기에 합격해서 연출공부를 하고 있다. 벌써부터 과제의 압박에 시달려서 힘들다(웃음).


이 : 평소 아트시네마에 자주 오는가? 작년에 프로그램이 많았었는데, 가장 기억에 남는 영화제가 있다면?

강 : 자주 오는 편이다. 거의 모든 영화제마다 발품 팔아서 영화를 봤다. 가장 기억에 남는 건 단연 에릭 로메르! 딱 내 취향이다(웃음).


이 : 올해 친구들 영화제에서 가장 기대하는 작품이 있다면?

강 : 가장 기대했던 작품은 <수라>였다. 그래서 어제 상영할 때 봤는데, 내 취향과는 전혀 맞지 않는 영화라는 생각을 했다. 그래도 ‘시네마테크 친구들 영화제’가 아니면 언제 이런 영화를 보겠나 싶어 그 점에 만족했다. 그 외에 보고 싶은 영화는 이명세 감독님이 추천해준 <로마>다. 평소 이명세 감독님의 영화연출방법이 궁금했었기 때문에 <로마> 상영 후 있을 씨네토크를 기대하고 있다. 우디 앨런의 영화는 초기작까지 다 찾아서 볼 정도로 좋아하는데, <애니홀>은 예전에 봤던 작품이지만 스크린으로 다시 보고 싶다.


이 : 방금 프랑수와 트뤼포의 <녹색방>을 보고 나오셨는데, 간단한 소감을 듣고 싶다.

강 : <녹색방>에서 트뤼포가 직접 연기하는 줄리안이 내 성격과 비슷해서 감정이입하기 쉬웠다. 평소 트뤼포의 영화 중 <아델 H 이야기>를 좋아했다. 이 영화를 보면 이자벨 아자니가 한 남자에게 집착하다가 결국 미쳐버린다. <녹색방>도 죽은 아내를 잊지 못하는 한 남자의 이야기다. 두 캐릭터처럼 나 역시 지나간 일에 집착을 많이 한다. 예를 들자면 8년 동안 써서 다 떨어져가는 지갑을 아직까지 쓰고 있다. 사람이나 대상에 대한 집착은 습관 같은 거라는 생각이 든다. <아델 H 이야기>나 오늘 본 <녹색방>에는 무언가를 잊지 못하거나 버리지 못하면서 집착하는 내 성격과 만나는 지점이 있다.


이 : <녹색방>에서 특별히 기억에 남는 장면을 꼽는다면?

강 : 주인공 여자가 입고 다녔던 하늘색 코트. 여자 주인공이 늘 하늘색 코트를 입고 등장하는데, 여자의 하늘색 코트는 트뤼포가 머무는 녹색방과 함께 영화의 주요 테마를 형성하는 것 같다. <녹색방>에서 표현된 색은 영화 속의 ‘죽음’이라는 주제와 연관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이와 비슷한 영화로, 키에슬로브스키가 연출한 <블루> 역시 영화 전체를 지배하는 푸른색이 죽음이라는 주제와 맞닿아 있다.


이 : 영화학도로서 트뤼포에게 본받을 점이 있다면?

강 : 내게는 이야기를 쓸 상상력이 부족하다. 반면에 트뤼포는 데뷔작부터 줄곧 영화를 통해서 자기 이야기를 해왔다. <400번의 구타>를 보면 앙트완 드와넬이 트뤼포와 너무 닮았지 않나. 트뤼포는 캐릭터에 자신을 투영하길 좋아하고 자신이 만든 캐릭터에 무한한 애정을 가지는 것 같다.


이 : 앞으로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상영되길 원하는 작품이 있나?

강 : (갑자기 손뼉을 치면서) 가와세 나오미! 앞으로 아트시네마에서 동시대 영화들도 다양하게 틀어줬으면 한다. 가와세 나오미의 영화 중 아직 보지 못한 초기 다큐멘터리 작품인 <따뜻한 포옹>을 보고 싶다. 이미 본 영화지만 <사라쌍수>도 스크린으로 다시 보고 싶다.


이 : 서울아트시네마에 대한 개인적인 애착을 지니게 된 이유가 있다면 듣고 싶다.

강 : 서울아트시네마를 좋아하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다. 지금은 그만둔 대학을 다닐 때다. 1학년 때였던가, 학교가 너무 싫어서 방황했던 적이 있다. 1학기가 끝나고 휴학을 한 사이 매일 같이 극장에 드나들었다. 2005년 ‘대만 뉴웨이브 영화제’ 때 허우샤오시엔과 차이밍량의 영화를 봤다. 허우샤오시엔의 <동년왕사>를 보고서, 20살 어린 나이에 너무 충격을 받았다. 태어나서 카메라가 움직이지 않는 영화를 처음 본거다. 마치 신천지를 만난 느낌이라고 할까? 또 옥상에 위치한 서울아트시네마라는 특이한 공간이 좋았다. 휴학하고부터는 늘 불안하고 쓸쓸했는데, 시네마테크에 올 때면 힘이 났다. 나에게 서울아트시네마는 영화학교 같은 곳이었다. 이곳에 오면 내가 영화 공부를 하고 있는 것을 후회하지 않게 된다. (by 이도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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