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년 만에 아트선재센터를 찾아 영화를 봤다. ‘허우 샤우시엔 회고전’을 진진과 공동 개최하면서 개막행사 참석을 요청받았기 때문이다. 간단한 개막행사에 이어 '자객 섭은낭'을 보았다. 1시간 44분 동안 영화와 함께 과거의 기억들이 떠올랐다.

서울아트시네마가 처음 아트선재센터 지하에 서식지를 마련했던 시절, ‘허우 샤오시엔 회고전’을 2003년 4월에 개최했다. 당시 6,000여명의 관객들이 왔던 것으로 기억한다. 한 해가 지나 2004년 10월 무렵, 아트선재센터가 공사를 이유로 계약을 더 이상 할 수 없다는 통고를 해왔다(사실 이런 방식이 최근 벌어진 일에서도 비슷하게 나타나서 놀랍기도 했다). 2000년이래로 시네마테크가(당시는 문화학교서울 영화제로 개최했다) 회고전을 계속 해왔던 곳이다. 이곳에서 프리츠 랑 백주년 회고전을 했고, 스즈키 세이준 회고전(그 때 세이준 감독이 처음으로 한국을 방문했다)을, 에릭 로메르 회고전을 개최했던 곳이다. 2002년 5월에 정식으로 시네마테크 전용관을 아트선재 지하에 개관할 수 있었다. 개관 3년만에 계약을 더 이상 할 수 없다는 말을 듣게 되리라고는 생각할 수 없었다.

2005년 3월, 개관 이래로 1,000여편의 영화를 상영하고는 파스빈더 회고전을 끝으로(마지막엔 차이밍량의 ‘안녕 용문객잔’을 상영했다), 말 그대로 쫓겨난 시네마테크는 낙원으로 이전했다. 공사가 끝나면 되돌아갈 생각도 있었고, 몇 번 비공식적 경로로 의사를 전달하기도 했다. 나로서는 그 곳이 좋은 장소라기보다는, 처음 문을 연 곳에서 가능하면 오래 하는 것이 좋겠다 생각했었다. 수 십년이 지나서도 여전히 그 자리에 있는 파리나 뉴욕, 도쿄의 영화관들처럼. 그곳에서 영화를 보았던 사람들이 아이들을 데리고 찾을 수 있는 곳으로. 하지만, 그 이후 아트선재센터가 개보수를 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없고, 계약도 다시 할 일도 없었다.

그 이후로 십년간 나는 근처를 지나간 일은 있지만 한 번도 그곳에 들어가 본적이 없다. 그곳은 말하자면 기억이 노예가 되는 장소였다. 처음 시네마테크를 개관한 곳이지만, 나는 그곳을 잊고 살았다. 그러던 지난해, 어쩌다 참여한 학술 행사로 불가피하게 무대에 올랐고, 그리고 올해 초 좋아하는 필립 가렐의 '질투' 상영에 이은 토크로 어쩔 수 없이, 결코 되돌아갈 생각 없던 그 곳을 찾았다. 그리고 오늘, 십년 만에 처음 객석에 앉아 영화를 봤다. 개막행사 전에 아주 짧게 그런 기억에 관한 이야기를 하긴 했다. 이상한 일이지만 14년간 시네마테크를 하면서 네 번 허우 샤오시엔 회고전을 하게 됐다. 2003년 처음 소격동 시절에(아트선재 시절이라 결코 말하지 않는다), 2005년 낙원으로 넘어와 1회 대만영화제를 하면서(그 해 허우 샤오시엔 감독이 내한했다), 2008년 2회 대만영화제에서 허우 샤오시엔 감독의 영화를 또 몇 편 상영했고, 그리고 올해 2015년 새 공간으로 이사 오면서 다시한번 허우 샤오시엔 회고전을 개최한다. 이번 회고전의 제목을 '最好的時光', 즉 ‘가장 행복하고 좋았던 시간’이라 정했던 것에도 이유가 있다. 허우 샤오시엔의 영화를 틀었던 그 시절은 시네마테크에도, 우리에게도 좋았던, 행복했던 시간이었다.

이제는 그 기억들도 피하고 싶어진다. 다행히 거리에는 비가 내렸다(가렐 영화의 토크를 했던 날에도 우연처럼 비가 내렸다. 그 날, 예전 소격동 시절 영화를 보러오던 사람들과 골목길을 따라 내려가던 길을 다시 걸으며 안국역 횡단보도에 이르러서는 잠시 머뭇거릴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제, 같은 일이 반복되는 그곳에, 아마도 더 이상 가게 될 일은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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