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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INEMATHEQUE DE M. HULOT

생의 회복과 세계의 가능한 지속을 위하여 -피에르 페로의 ‘다음 세상을 위하여’ 본문

영화일기

생의 회복과 세계의 가능한 지속을 위하여 -피에르 페로의 ‘다음 세상을 위하여’

Hulot 2023. 11. 10. 17:32



이번 캐나다 영화제를 준비하면서 소개하고 싶었던 작품 중의 하나는, 그리고 다큐멘터리에 관심이 있는 분들이라면 주목해서 보았으면 하는 작품이 이번 주 일요일 저녁 7시에 상영하는, 여전히 국내에는 생소한 피에르 페로의 <다음 세상을 위하여>(1963)이다.

퀘벡 다이렉트 시네마의 역사와 관련해서는 플래허티에서 존 그리어슨, 그리고 캐나다국립영화위원회ONF의 디큐멘터리, 캔디드 아이 The Candid Eye, UCLA의 플래허티 세미나, 그리고 장 루쉬의 시네마베리테와 미쉘 브로로 연결되는 다큐멘터리의 흥미진진한 연대기, 그리고 1960년대 몬트리올의 ONF, 파리의 민족지학 영화위원회, 미국의 리톡-드류 제작사라는 영화 발전의 삼각축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이와 관련해서 2021년 다큐메거진 DOCKING에 퀘벡 다이렉트 시네마의 연대기와 피에르 페로의 작품에 대해 글을 쓸 기회가 있었다. 조지훈 도킹편집장이 기획한 80년대 대표작 <빛나는 야수>의 온라인 상영을 위해 쓰여진 글이다. 생소한 분들을 위해 아래의 글을 다시 소개한다. “생의 회복과 세계의 가능한 지속을 위하여-피에르 페로의 다큐멘터리“-김성욱

http://dockingmagazine.com/contents/23/1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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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찍이 장 루쉬는 ‘시네마 베리테 분야에서 프랑스에서 우리가 이룩한 모든 것이 캐나다의 ONF에서 온 것이라는 점을 명확히 해야 한다‘고 말했지만, 여전히 캐나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퀘벡의 다큐멘터리는 우리에게 하나의 역사적 사건으로 쉽게 다가오지 못하고 있다. 가령, 퀘벡 다큐멘터리 1세대의 중심인물이자 ‘다이렉트 시네마’의 첫 실험가이며 시인, 에세이스트이기도 했던 피에르 페로Pierre Perrault는 퀘벡 작가들 대부분이 그러하듯 ‘유명한 무명인’으로 남았다.

(…)

그의 대표작 <다음 세계를 위하여>는 캐나다 동부의 퀘벡주, 세인트 로렌스 강 유역의 쿠드르 섬 L’Isle-aux-Coudres에 관한 다큐멘터리다. 쿠드르 섬에서는 1924년까지 나무 말뚝 울타리를 만들어 돌고래를 사냥하던 오랜 전통이 있었는데, 페로는 지역의 근대화 속에서 부정되고 잊혀진, 수십 년간 행해지지 않던 돌고래 사냥을 재개하도록 섬 주민들을 설득한다.

말하자면, 이 작품은 ‘다이렉트 시네마’라는 표현이 불러일으키는 심상과 달리,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직접적’으로 카메라에 기록한 영화는 아니다. 마을 사람들은 사냥의 신화를 재연하기 위해 모두 함께 하기로 결심한다. 긴 겨울 동안 주민들이 한 그루 한 그루 긴 나무 말뚝을 강바닥에 세운다. 그러나 겨울이 지나 물가의 얼음이 녹기 시작해도 돌고래는 나타나지 않는다. 노인들과 주민들은 기다린다. 마침내, 봄이 찾아오고 돌고래가 나타난다. 카메라는 이 결정적 순간을 포착한다.

(…)
장 루쉬는 1963년의 인터뷰에서 <다음 세계를 위하여>를 찬미하며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의 카메라가 베르토프의 뇌에서 자라나서 다시 플래허티로 떨어져, 우리에게 <아란의 남자>를 다이렉트 사운드로 주는 영화“라 말한 바 있다.
페로의 영화는 일견 플래허티의 영화와 유사해 보이지만, 언급한 당시 퀘벡의 정체성의 문제와 깊은 관련이 있다는 점에서 차이를 보인다. 페로가 고립된 섬에 주목한 것도 그 때문이다. 페로의 상상력에서 섬은 퀘벡의 정체성 문제와 깊은 관련이 있다.

섬은 대륙과 분리되어 있고, 그러므로 대륙의 지배에서 거리를 유지하며 생생한 고어를 유지할 수 있다. 섬은 고어의 말들로 넘쳐나는 세계다. 쿠르드 섬 또한 과거 프랑스에 속했지만, 프랑스인 누구도 쉽게 이해할 수 없는 어휘로 생각과 마음을 주고받는 사람들의 말로 가득하다.
이러한 섬의 생존 조건은 무엇보다 그 특수성, 말의 능력에 의해서 지켜질 수 있다. 영화의 제목처럼, 다음 세계를 위해서는, 그리고 이 세계가 존속하려면 기억을 스스로 만들어가는 것이 필요하다. 고래잡이와 같은 실천, 기억의 전승이 없다면 다음의 세계로 나아갈 수 없다. 그런 점에서, 피에르 페로가 함께 작업한 미쉘 브로를 찬미하며 말했던 것이 결국은 자신에 대한 말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는 쇼 비지니스의 월계관을 위해서가 아니라 세속적인 침묵의 기반을 깨고, 행동을 고안하고, 꿈의 미래를 책임지지 않고, 문화적 제국주의에 의해 포위된 문화에 영혼을 제안하기 위해 영화감독이 되었다...그리하여, 그의 작품은 다른 사람들의 말에 의해 점령된 침묵을 해방시키는 전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