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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INEMATHEQUE DE M. HULOT

자크 드미의 해변 본문

영화일기

자크 드미의 해변

Hulot 2009. 8. 5. 15:56
프랑스의 영화감독 자크 드미의 영화를 극장에서 처음 본 것은 1992년 가을무렵이었다. 지금은 사라진 종로의 코아 아트홀에서 <쉘부르의 우산>이 재개봉을 했었다. 추억의 고전을 재상영하는 기회였다. 1991년에 자크 드미가 세상을 떠나면서 프랑스는 물론 전 세계에서 그의 영화를 재평가하는 분위기가 있었다. <쉘부르의 우산>이 한국에서 재개봉한 것도 그런 일환이었다. 한국에서의 재개봉 또한 기회였지만, 생각해보면 그 때의 상영은 1991년에 자크 드미가 세상을 떠난 후에 그의 영화를 재평가하기 위한 기획의 일환이기도 했다. 영화가 상영되는 극장에는 남몰래 눈물을 훔치던 연인들이 있었다. 드믄 드믄 올드팬들도 있었다. 그들 가운데 나 또한 끼어 있었다. 영화가 끝난 후 먹먹한 마음에 대학로까지 걸어갔던 기억이 아직까지 생생하다. 가끔은 영화보다 그 때 종로의 거리들이 더 떠오를 때가 있다. 

<쉘부르의 우산>은 한 때 텔레비전의 추억의 명화의 단골 레퍼토리였다. 누구가 이 영화를 기억하고, 또 영화 속 노래의 한 구절 정도를 흥얼거린다. 

2005년에 파리에 있으면서, 서울아트시네마에서 개최하는 자크 드미의 회고전을 위해 잠깐 다게레 거리에 있는 영화사 시네 타카리스를 방문했던 적이 있다. 시네 타마리스는 드미의 부인이자 영화감독인 아녜스 바르다가 운영하는 영화제작사이다. 바르다는 90년대에 들어서 자신의 영화 뿐 아니라, 판권이 나뉘어져 있던 드미의 영화들 판권을 구매했고, 또 일부 작품을 복원하기도 했다. 지금, 드미의 영화를 볼 수 있는 기회는 그런 아녜스 바르다의 노력 덕분이다. 게다가 그녀는 <로슈포르 25년 후>, <자크 드미의 세계>라는 드미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두 편 찍었고, <낭트의 자코>라는 자크 드미의 유년기를 다룬 극영화, 그리고 최근작 <바르다의 해변>에서 자크 드미에 관한 이야기를 자주 다뤘다. 

이는 단지 자크 드미가 그녀의 부인이라서만은 아니다. 아마도 그 근원에는 자크 드미의 영화가 프랑스 본국에서 지나칠 정도로 저 평가 받았던 탓도 있을 것이다. 장 피에르 멜빌이 범죄장르 영화에서 그러했던 것처럼, 자크 드미는 뮤지컬 장르에서 독특한 성과를 이뤄냈는데, 이런 영화들은 흔히 그렇듯이 할리우드 영화를 모방한 작품으로 평가되어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할리우드 영화의 카피일 뿐이라는 것이다. 다른 나라의 사람들이 자크 드미의 영화를 빈센트 미넬리, 혹은 스탠리 도넨의 뮤지컬 영화와 혼동을 일으키지 않는 것과 비교하자면 그렇다. 사실, 영화의 나라라는 프랑스에서도 자국에서 소외시킨 감독들이 꽤 많다. 멜빌, 자크 베켈, 자크 드미 등, 이런 감독들의 명단은 대부분 장르성 영화들이다. 

2005년, 겨울에 드믄 기회였지만 파리의 '퐁 데 자르'근처의 '갤러리 쉐레'에 자크 드미의 엑스포제가 있었다. 엑스포제는 아주 작은 갤러리에서 열렸지만 들어가는 입구에서부터 사진에 보이는 것처럼 <쉘부르의 우산>에 나오는 공간들의 다양한 색의 벽지가 벽에 채색되어 있고, 드미의 해맑게 웃는 사진들이 걸려있었다. 

<당나귀 공주>에 나오는 델핀 세리그의 분홍색의 요정복장의 사진은 정말 예뻤다. 특히 자크 드미가 <로슈포르의 숙녀들>에서 카트린 드뇌브의 춤 장면의 연출을 지도하는 장면이 인상적이었죠. 자크 드미의 동작이 카트린의 그것보다 더 아름답게 보여요. 그 옆에는 모든 사람들이 자크 드미의 영화를 '유아적'이고 '친미적'이라 비난했던, 그래서 괴롭고 고독한 삶을 살았을때 그의 평생의 충실한 동반자이자 그의 영화적 활동을 지원해주었던 아녜스 바르다가 카메라를 들고 미소를 보내고 있죠.

그리고 또 한장의 사진. 자크 드미와 야네스 바르다, 그리고 고다르와 안나 카리나는 젊은 시절 무척이나 친한 사이였죠. 바르다는 고다르와 카리나의 결혼식 사진을 찍어주었죠. 이들의 관계는 물론 정치의 시기를 거치면서 변화가 됩니다. 고다르는 드미의 영화를 경멸하기 시작했죠...

자크 드미는 바다를 참 좋아한 작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