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로드 소테와 파트리스 르콩트의 영화들 간에 어떤 공통점이 있는가를 말하는 것은 그들 각자의 영화에 어떤 일관된 테마와 스타일이 있는가를 확인하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일이다. ‘감정의 세공술사’라는 이번 시네마테크 부산의 기획전 제목은 그래서 부가적인 설명이 필요할 터인데, 대신 나는 다른 비교들을 들고 싶다. 1924년생인 소테와 1947년생인 르 콩트는 작업의 시대로만 보자면 누벨바그 이전과 누벨바그 이후의 작가들이라 할만하다. 하지만 두 감독이 한국의 관객들에게 친숙하게 인지된 것은 90년대 초의 일이다. 여전히 대중적 기억에 회자되는 <겨울의 심장>(국내 개봉제목은 ‘금지된 사랑’이었다)과 <사랑한다면 이들처럼>이 서울에서는 지금은 사라진 씨네하우스란 극장에서 소개되었다. 예술영화의 늦바람이 살랑거리던 때로 소테와 르콩트의 영화는 중년의 연애를 섬세하고 관능적으로 그렸다는 점에서 관객들의 호응을 얻었는데, 그 때가 프랑스 영화들에 ‘누벨 이마주’라는 기묘한 꼬리표를 붙이던 시절이었기에 이들의 영화는 분류 불가능한 프랑스 영화의 한 경향쯤으로 치부되었다.


프랑스라고 별반 사정이 다르지는 않았던 듯하다. 가령, 클로드 소테의 실질적인 데뷔작이라 할만한 <거대한 위험>(1960)은 개봉즉시 외면당했다. 하필이면 고다르의 충격적인 데뷔작 <네 멋대로 해라>와 한 달 차이를 두고 개봉해 잔뜩 누벨바그에 쏠린 관심때문에 r의 영화가 쉽게 무시되었던 것이다. 소테의 영화는 누벨바그의 악동클럽들과는 달리 자크 베케르와 장 피에르 멜빌의 고전주의에 더 친화력을 갖고 있었다. <거대한 위험>은 호세 지오바니의 원작을 영화화한 작품으로(그는 자크 베케르의 <구멍>(57)과 장 피에르 멜빌의 <두 번째 숨결>의 원작자이자, <시실리안>, <암흑가의 두 사람>의 연출가이기도 하다), 사내들의 우정과 배신을 그린 프렌치 누아르 풍의 영화다. 영화의 오프닝 장면은 편견 없이 보자면 정말 감탄할 만큼 탁월하다. 지금으로 보자면 두기봉 영화의 오프닝 정도가 이에 필적할 만하다. 밀라노 역에 두 사내가 가족들을 데리고 등장한다. 어찌된 일인지 그들은 가족들을 모두 기차에 태우고는 사람들로 붐비는 역 앞에서 누군가를 기다리는데, 얼마 후 우리는 이들이 백주대낮의 노상강도임을 알게 된다. 이어지는 자동차 도주. 안전을 도모하기 위한 것인지 갑자기 한 남자가 차에서 내려 오토바이로 갈아타는데 그는 경찰의 제지로 다시 야산으로 탈주한다. 다시 자동차를 훔쳐 달아난 이 사내는 반대편에서 오던 차를 몰고 오던 예의 친구를 만나 기쁨의 재회를 나눈다. 조셉 루이스의 <건 크레이지>에서 은행을 턴 남녀가 차를 몰고 달아나다 재회해 기쁨의 키스를 나누는 순간을 떠올리게 하는 장면이다. 이어 이들은 다시 버스를 갈아타고 프랑스로 건너가는데, 때마침 등장한 경찰들과의 총격전으로 가족들과 그 사내가 사살되고 주인공 니노 벤추라만이 살아남게 된다. 예측 불가능한 속도와 사건으로 치닫는 영화 초반부의 시퀀스는 실로 놀라운데, 운동의 리듬뿐만 아니라 음악, 액션의 안무, 얼굴의 클로즈업으로 이어지는 장면의 연쇄가 꽤나 시적이다. 장황하게 소개한 이유는 잘 알려진 소테의 영화들 가운데 여전히 덜 알려진 이 영화가 이번 기획전에서 다시 재평가 되기를 기대하기 때문이다.





이미 1955년에 <미소여 안녕>이란 작품으로 데뷔했지만, 크게 주목받지 못했던 소테는 <거대한 위협>의 실패 이후에 절치부심하다(그는 이후 십여 년간 프랑스 영화계의 주요한 시나리오들을 손봐주는 ‘시나리오 닥터’로 활동했는데, 트뤼포를 포함해 모든 이들이 그에게 시나리오 자문을 구했다고 한다) 1970년작인 <즐거운 인생>으로 재기에 성공했다. 1970년대 이후의 작품들은 로미 슈나이더와 엠마누엘 베아르 등의 여배우들과의 협연으로 유명하다. 특히 범죄자를 놓쳤다는 자책감에 시달린 형사의 이야기를 그린 <맥스>(1971)와 중년의 두 남자와 한 여자 사이의 사랑과 우정을 다룬 <세자르와 로잘리>(1972)에서의 로미 슈나이더의 마성의 미에 주목할 만하고, <겨울의 심장>(1992)과 <넬리와 아르노>(1995)에서의 엠마누엘 베아르의 귀품 있는 연기는 더 말할 필요가 없다. <나쁜 아들>(1980)도 주목할 만하다.






소테의 영화에 대해 덧붙여 말한다면, 나는 그의 영화가 1930년대 프랑스 영화의 시적 리얼리즘에 근접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이는 그의 영화에서 엿보이는 노스탤직한 분위기 때문만이 아니라 작업의 방식, 스타일에서도 나온다. 프랑스 영화하면 작가 영화로 환대받지만 프랑스 고전주의는 코미디, 로맨스, 뮤지컬, 스릴러, 사극 등의 장르 영화에 배우 시스템이 가미된 대중적인 영화였다. 시적 리얼리즘은 그러한 대중주의에 멜로드라마, 사회적 판타지, 누아르 리얼리즘, 낭만적인 페시미즘, 마술적 리얼리즘 등을 결합한 것이다. 무엇보다 이런 영화의 미덕이라 함은 일상에 시적, 정서적인 감성을 더하는 것으로 일상을 서정으로 이끌어 올리는 것에 있다.


파트리스 르콩트의 영화 또한 대중주의에 가까운데, 그는 비평가와의 불편한 관계로 유명세를 치르기도 했다. 그는 1999년 프랑스 비평가들이 대중적, 상업적인 프랑스 영화를 죽이기 위해 비평을 쓰는 것처럼 보인다며 맹비난을 했었다. 그의 대중적 면모는 스스로 ‘오락 영화를 만드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라는 자신감에 찬 말에서도 엿보인다. 물론 그의 대중주의는 이중적인 면모를 갖고 있다. 코미디에서 액션, 사극, 서스펜스 터치의 작품 등 르콩트는 다양한 장르 영화를 만들었지만 그 어떤 단일한 장르나 장르의 규범에 종속되지 않는 독특한 그만의 향기를 유지했다는 점에서 이채롭다. 무엇보다 그의 영화는 과장된 코미디에 뿌리를 두고 있다. 그는 원래 만화가 일러스트레이터로 활약하다 영화를 시작했는데(최근작에서 그는 전력을 살려 드디어 3D 애니메이션 <파리의 자살가게>(2012)을 만들었다), 데뷔작의 실패 이후 그가 감독인생의 발판을 마련하게 된 것은 프랑스 희극연극집단의 무대를 여름 휴양지로 옮겨 소시민들이 벌이는 레저 익살소동극인 <선탠하는 사람들>(1978)의 대중적 흥행덕분이었다. 후속작인 <선탠하는 사람들2>(1979)이 만들어질 정도였다.





하지만 그를 국제적으로 유명하게 만들고 그의 전매특허라 할 수 있는 너무 열정적이라 조금은 왜곡된 사랑과 꿈같은 여정을 그린 출발점의 작품은 단연 <살인혐의>(1989)와 <사랑한다면 이들처럼>(1990)이라 할 수 있다. <살인혐의>는 언제나 창백하고 무표정한 고독한 중년 남자가 이웃집 아파트에 새로 이사온 앨리스라는 젊고 아름다운 여인을 훔쳐보면서 점점 마음을 열게 되고 인생이란 고독에서 행복과 사랑의 빛을 발견하게 되는 이야기의 영화다. <사랑한다면 이들처럼>은 르콩트의 영화가 철저한 개인주의와 연애지상주의로 무장되어 있음을 보여주는 영화다. 노르망디 해안가를 배경으로 미용실에서 머리를 자르는 것에 흥분을 느낀 소년이 나이가 들어 아름다운 미용사와 결혼해 꿈같은 사랑을 얻게 되는, 하지만 충격적인 비극으로 향하게 되는 이야기다. 이 영화는 르콩트 영화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연인들의 유토피아적 세계를 꿈처럼 제시한다. 그의 작품은 가장 일상적인 현실에서 시작해 다른 세계로의 꿈같은 여정을 그리는데, 이는 하나의 시간과 이미지에서 다른 이미지와 시간으로 톤과 분위기뿐만 아니라 빛, 컬러, 운동, 음악 등의 변형으로 표현된다. 일종의 무의식의 방법이라 할 만한 스타일에서 중요한 것은 정서적 일관성을 획득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르콩트의 영화는 항상 현실과 허구의 세계가 다툼을 벌이고 남녀관계의 뒤얽힘이 계기가 되어 충만해져가는 꿈과 망상의 세계를 그린 우디 앨런의 영화를 떠올리게 한다.


르콩트의 영화에서 흥미로운 것은 특별한 연애관이다. 이 영화의 충격적인 결말에서 엿보이듯이 르콩트의 주인공들은 연애라는 감정 안에서 서로의 차이들을 수용한다. 중요한 것은 사회적 관습으로는 설명될 수 없는 연인들의 사랑의 감정인데, 이는 지극히 둘만의 유토피아적 세계에서만 납득할 만하다. 이런 경향은 결혼과 아이들 대신에 둘만의 관계와 모험, 여행을 강조하는 <걸 온더 브릿지>(1999)에서도 분명하게 드러난다. 그의 영화는 관습과 모럴을 넘어서는 새로운 연애지도를 그리는 것만이 아닌 우리의 감각을 건드리는 침투해들어오는 여인의 몸들의 지닌 관능성 때문에 지극히 감각적이다. 그는 여인의 몸에서 빛이 쏟아지도록 화면을 장식한다. <사랑한다면 이들처럼>은 물론이고 지극히 에로틱한 <이본느의 향기>(1994), 그리고 <친밀한 타인들>(2004)에서 우리는 여성의 머리카락, 어깨, 쇄골, 발끝이 얼마나 감각적으로 작동하는지를 보게 된다. 그의 영화는 루이 말의 영화가 그러하듯이 논리나 이성보다는 감성의 여행을 떠나기를 관객들에게 권고한다. 연인들은 그의 영화에 투영된 감성의 지도 위에 그려진 강줄기를 따라 미지의 영토로 여행을 떠난다. 하지만, 이런 연인들의 유토피아는 또한 우리들의 삶의 근원에서 기원한 것이다. 르콩트는 현대적 삶이 정서적 고독의 상태에 놓여있음을 보여주는 작가다. 그러므로 사랑과 우정이라는 가치가 단연 중요하게 부각되는 것이다. 사랑처럼 선언되지 않는 우정을 그린 작품으로는 <마이 베스트 프렌드>(2006)를 주목해 볼 수 있다.





파트리스 르콩트의 영화는 클로드 소테의 영화와 마찬가지로 시스템의 영화로 대중적인 성공을 거뒀다. 이 두 작가는 시나리오 작가, 영화음악가, 촬영감독, 스타 배우들과의 지속적인 협업으로 유명하다. 세밀한 시각적 구성, 감미로운 음악, 돋보이는 연기들은 이런 지속적인 공정의 결과다. 이번 기획전은 소테의 영화들을 다시 논의해볼 좋은 기회이지만, 무엇보다 상업적 성공을 거두면서도 대중영화의 미덕을 품위 있게 지키는 두 장인의 숙련된 솜씨를 맛보는 것만으로도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을 것이다. (김성욱 / 영화평론가)


* 부산 영화의 전당에서 열린 '클로드 소테, 파트리스 르콩트' 전에 맞춰 <씨네21>에 썼던 글이다. <겨울의 심장>(당시 개봉제목은 금지된 사랑이었던)을 신사동의 씨네하우스에서 봤던 기억이 떠올랐다. 무엇보다 이번 기획전에서는 클로드 소테의 초기작, 특히나 < 거대한 위험>은 필견의 작품이자, 누벨바그 영화들 가운데 새롭게 논의되어야 할 작품이다. 클로드 소테의 영화가 다시 보고 싶어지는 계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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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ool 2014.02.27 23:54 신고

    클로드 소테와 파트리스 르콩트의 영화들을 서울아트시네마에서 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무척 보고 싶은데 부산까지 가기엔......서울의 바쁜 일상이 여유로움을 주지 않을 듯 합니다.ㅠ.ㅠ

    • Hulot 2014.02.28 01:54 신고

      서울에서도 할 날이 있을 거예요. 겨울쯤에 조금은 쓸쓸한 느낌으로 영화들을 보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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