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레테 폰 트로타의 <한나 아렌트>




<한나 아렌트>는 독일계 유대인 철학자 한나 아렌트의 전기 영화이지만, 그의 생애의 아주 작은, 하지만 강렬했던 순간을 담고 있다. 1961년 아렌트는 예루살렘에서 열린 나치 전범 아돌프 아이히만의 재판에 참석해 기사를 쓰게 되는데, 영화는 그 과정에서 벌어지는 아렌트의 곤경을 다룬다. 그녀는 1933년 나치스 정권 성립 후 독일에서 프랑스로 건너가 강제수용소에 억류되었다가 아슬아슬하게 탈출해 1941년 미국으로 망명했다. 이러한 경험을 근거로 『전체주의의 기원』이라는 책을 발표해 명성을 얻었다.하지만 아이히만의 재판에 대한 글은 논란을 불러왔다. 그녀는 아이히만이 냉혹한 괴물이 아니라 지극히 평범한 관료였음에 큰 충격을 받았고 이러한 생각을 『더 뉴요커』에 발표해 파문을 일으켰던 것이다. 


1960년대 초에 아렌트의 주장은 꽤나 위험한 것으로 비쳐졌고, 그로 인해 그녀는 유대인들과 이스라엘과 적대적인 관계에 놓인다. 영화는 그러나 아이히만의 재판에는 큰 비중을 두지 않고 대신 그녀가 처한 상황을 묘사하는 데 많은 시간을 들인다. 그녀는 아이히만의 옹호자로, 나치를 도운 일부 유대인 지도자를 고발한 비열한 자로 비난과 협박을 받았고, 대학에서는 사직을 권고당하고 오랜 친구와도 결별하게 된다. 그럼에도 그녀는 신념을 굽히지 않았다. 그녀가 자신의 신념을 고수했던 근본적인 이유는 영화의 끝 무렵 그녀의 대학 강연에서 확인할 수 있다. 아렌트 역의 바바라 슈코바의 연기가 워낙 탁월해 연설에 빠져들게 되는데, 그녀는 이미 <로자 룩셈부르크>에서도 마찬가지로 로자의 탁월한 연설을 훌륭하게 연기한 바 있다.





아이히만의 재판이 영화에서 작은 비중으로 표현된 것에는 이유가 있어 보인다. 이미 이 사건은 에이알 시반의 탁월한 다큐멘터리 <스페셜리스트>에서 다뤄진 바 있다. 감독은 한나 아렌트의 저서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을 축으로 4개월에 걸쳐 350시간 동안 열린 아이히만 재판의 기록 영상을 두 시간으로 재구성했다. 아이히만은 잔인한 괴물이 아니라 규율과 명령에 충실한 관리였고, 그러므로 생각과 양심과 상상력이 없이 관료 조직에 편입되었을 때 지극히 평범한 사람도 결국 거대한 악에 가담하게 된다는 것이 문제이다. 악의 평범함이란 생각 없는 개인에게 악으로의 통로가 도처에 있다는 사태를 지칭하는 것이다. 이 영화가 아렌트를 보여주는 방식에서 주목하는 것도 이러한 문제들이다. 


가령, 아이히만의 재판 과정을 전적으로 다큐멘터리 화면으로 대신하면서 감독은 범죄자와 희생자라는 강고한 도식에서 벗어나 아렌트의 평범한 일상에 주목한다. 그녀가 뉴욕의 친구들과 벌이는 파티들, 학생들과의 사소한 대화들, 남편과의 결혼 생활, 담배를 물고 소파에 누워 생각하는 그녀의 모습 등. 트로타의 카메라는 이런 평범한  일상에 작지만 어떤 거대한 변화들이 발생하는가를 지켜보게 한다. 아이히만은 법정에서 “단지 명령에 따랐을 뿐”이라 담담하게 말했다. 아렌트의 주장은 자각 없는 평범한 인간이 미증유의 학살에 참여할 수 있다는 것인데, 이는 그녀가 겪게 될 이후의 곤경을 거울처럼 비추는 듯하다. 그녀의 글에 대한 악의적인 반응들, 친구와의 결별, 이스라엘 정부의 출판 중지 요청, 학교 당국의 수업 중지 요구 등은 그녀의 순진한 눈빛(이는 세르주 다네가 알랭 레네의 <밤과 안개>와 비교해 2차 대전 당시 조지 스티븐슨이 수용소를 촬영할 때의 시선을 두고 했던 그런 의미에서다)에 대한 과도한 반응들이다. 이런 순진한 눈빛은 그녀의 합리적 지성 때문이 아니라 그때의 시간에 그곳에 있던 사람에게만 부여되는 특권이다. 나중에 오는 자들은 더한 정당성과 윤리적 책임을 감수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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