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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고다르 이야기 (9)
CINEMATHEQUE DE M. HULOT
10월 30일부터 ’Forever Jean Luc Godard: 장 뤽 고다르 회고전‘이 시작한다. 이번 회고전에서는 60-70년대 정치와 비디오 작업의 시대 이후 1980년대 다시 영화로 복귀한-그의 말을 빌자면 히치콕의 죽음 이후-, (1980)를 시작으로한 '후기' 고다르 영화들을 상영한다. 68이후 70년대의 작품들 주요작 14편은 이미 2018년에 “1968+50 새로운 세상, 새로운 영화” 특별전에서 상영한 바 있다. 80년대 ‘이후’, 고다르에게 영화는 애도와 믿음의 대상으로, 그는 시대의 변화, 무질서한 환경에서 가능한 최선을 다해 영화를 갱신하고 규칙에 대한 예외를 요구하고, 순수한 것과 불순한 것, 기하학과 혼돈, 소통과 소음 사이에서 가장 불순한 변화의 이미지를 추구한다. 여전히 사랑..
지중해를 항해하는 크루즈 호의 선상에서 앞이 보이지 않는 칠흑 같은 어둠을 마주한 한 여인이 이렇게 말한다. ‘불쌍한 유럽이여. 고뇌에 의해 정화되기보다는 고통에 상해가는 유럽이여. 되찾은 자유에 고양되지 못하고 도리어 모욕당하고 있구나’. 고다르의 은 이렇듯 위기에 처한 유럽의 역사를 임종의 시선으로 되돌아보는 영화다. 3부로 구성된 이 영화는 전쟁과 문화, 유럽 통합과 글로벌한 세계, 예술과 문화의 등질화, 저작권 등의 문제를 비판하고 있다. 이미지와 소리가 격렬하게 요동치는 마그마와도 같은 이 영화를 여섯 개의 키워드로 살펴본다. 제목: 필름과 소셜리즘고다르는 영화를 만들 때 먼저 제목을 결정한다. 아이디어보다 제목이 앞설 때가 많다고 한다. 그가 마치 과학논문이나 실험보고서를 작성하듯이 영화를 만..
장 뤽 고다르의 근작 과 2000년대 이후 고다르 영화의 행보 장 뤽 고다르의 근작 이 개봉할 예정이다. 자세한 논의는 아마 개봉 이후에나 가능할 것이다(나는 이 영화를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처음 보았고, 지난해 여름 서울아트시네마에서 다시 볼 기회가 있었다). 그러므로 우선 머릿속에 떠오르는 세 가지 다른 이야기를 통해 우회하고 싶다. 첫 번째 이야기. 올해 프랑스 대선에서 논란의 중심에 있었던 정책 중 하나는 ‘아도피법’이었다. 아도피법은 2009년에 도입된 일종의 ‘스리 스트라이크제’로 위법적인 다운로드 단속법을 말한다. 사르코지 대통령 시절에 만들어진 이 법은 다운로드 유저에게 인터넷상의 저작권 침해의 죄를 물어 형사 처벌을 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최고 징역 3년에, 벌금 30만유로를 물리게 하고..
1983년은 카르멘의 전성시대였다. 프란체스코 로지, 카를로스 사우라, 피터 브룩이 마치 경연이라도 하듯이 카르멘을 영화로 만들었던 것은 당시 비제의 오페라가 저작권 소멸상태가 됐기 때문이었다. 고다르 또한 작업에 착수했다. 다른 작가들과 달리 그는 비제의 오페라를 느슨하게 차용만 했을 뿐 그 유명한 음악을 쓸 생각이 없었다. 오토 프레민저의 (1954)처럼 이야기를 현대로 옮겨왔고, 처음엔 이자벨 아자니를 주인공으로 염두에 두었다. 아자니의 바쁜 일정 탓에 당시 신인이었던 마루츠카 데트메르스가 최종적으로 카르멘 역에 캐스팅되었다(그녀는 국내에는 (1989)으로 잘 알려진 배우다). 고다르의 계획은 급진적이었다. 그는 음악을 따라가는 이야기, 혹은 음악이 이야기의 전체가 되는 영화를 구상했다. 카르멘은 ..
한국시네마테크협의회에서는 한 달에 한 번씩 가치 있고, 의미 있는 영화를 선정해 상영하고, 상영 후 영화에 대한 강좌와 함께 관객들과 영화에 대한 깊이 있는 토론과 대화를 나누는 ‘시네클럽’ 행사를 하고 있다. 지난 6월 20일에는 장 뤽 고다르의 가 발표된 지 50주년을 기념하여 누벨바그의 혁명을 일으킨 고다르의 를 특별 상영하고 고다르의 작품 세계와 그가 일으킨 누벨바그 혁명을 추억해보는 시간을 가졌다. 상영 후에는 김성욱 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래머의 강연도 이어졌다. 극장이 거의 만석일 정도로 큰 호응을 얻은 시네클럽 행사는 고다르의 저력이 여전히 살아 있음을 반증했다. 그 특별했던 시간의 일부를 여기에 옮겨본다. 김성욱(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래머): 올해는 의 개봉 50주년이 되는 해다. 이 영화를 ..
을 상영한 후에 고다르와 시네마테크에 관해 이야기를 했다. 고다르의 를 설명하기보다는 시네마테크의 문제를 살펴보기 위함인데, 고다르에 관해 더 많이 이야기를 한 듯하다. 좋아하는 사람앞에서 원래 실없는 소리를 많이 하는 법이다. 최근의 '시네마테크 사태'와 관련해 시네마테크의 문제를 생각해보기 위함이었다. 그런데 왜 고다르인가? 무엇보다 그가 동시대 누벨바그리언들중에서 가장 충실한 시네마테크의 자식이었기 때문이다. 로메르, 트뤼포, 샤브롤도 시네마테크의 자식들이긴 했다. 필립 가렐과 같은 '포스트 누벨바그리언'들 또한 시네마테크의 자식들이었다. 그 외에도 자식들은 많다. 영화보다 먼저 태어난 사람들은 많지 않으니 모두 자식들인 셈이다. 고다르가 특별한 것은 자기를 키워준 시네마테크에 보답을 해야 한다고 ..
영화, 역사, 시네마테크 - 장 뤽 고다르 특별전 “영화는 결국 아무것도 아니다.” 프랑스 누벨바그를 대표하는 장 뤽 고다르는 20세기의 역사를 결산의 자세로 임해 만든 에서 이렇게 말한다. 는 고다르의 가장 야심적인 작품으로 1988년부터 시작해 10년만인 1997년에 완성한, 그의 영화적 삶과 기억을 도합 네 시간 반에 담아낸 대작이다. 기획의 원대함과 치밀함으로 보자면 19세기 파리에서 형성된 산업문화에 대한 방대한 인용으로 근대성의 원현상을 그려낸 발터 벤야민의 ‘아케이드 프로젝트’와 비견할 만하다. 고다르는 이 작품으로 영화가 ‘거대한 역사’를 이룬다고 말하는데, 다른 역사가 언제나 축소될 뿐이라면 영화는 그 역사를 스크린에 크게 투사하기에 거대하다는 것이다. 고다르는 영화가 무의식의 밤의 역사..
* 13회 부산국제영화제의 '씨네21 데일리(2008.10.02일자)'에 부산에 온 안나 카리나를 위해 쓴 글입니다. 뉴 커런츠 심사위원장으로 부산 찾은 장 뤽 고다르의 뮤즈, 안나 카리나 장 뤽 고다르의 영화를 우연히 보지 않았다면 안나 카리나와 만날 인연은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그 반대가 더 진실에 가깝다. 안나 카리나가 없었다면 고다르의 영화에 대한 관심은 덜했을 것이다. 혹은 우리가 누벨바그(1950년대 후반에 프랑스에서 일어난 젊은 영화작가들에 의한 전위적인 영화운동)라 말하는 고다르의 영화경력은 결코 완성될 수 없었을 것이다. 고다르의 작가적 연대기에서 누벨바그의 시기(1959-1967)가 종종 ‘안나 카리나 시절’이라 불릴 만큼 그의 영화에서 카리나가 차지하는 비중은 절대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