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카사베츠와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특별전을 연 서울아트시네마는 숨 돌릴 틈 없이 프랑수아 트뤼포 감독의 전작전을 준비하였습니다. 영화사에 길이 남을 아름다운 영화들을 만든 감독이자 씨네필의 대명사인 트뤼포의 전작 23편을 개관 10주년을 맞은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상영할 수 있어 그 의미가 더욱 각별히 느껴집니다.

 

프랑수아 트뤼포는 자신의 인생을 통째로 영화에 바친 사람입니다. 자신이 좋아하는 영화의 대사를 모두 외웠다거나, 이별했던 아버지를 만나러 가는 대신 찰리 채플린의 <황금광 시대>를 보러 갔다는 에피소드 등은 너무나 잘 알려져 있습니다. 그리고 그는 단지 영화를 많이 보는 것에 그치지 않고 열정적으로 영화에 대해 토론을 하고 글을 썼습니다. 이 시기 트뤼포와 함께 활동했던 씨네클럽의 멤버들은 훗날 누벨바그를 이끈 기수가 되었으며 트뤼포가 발표한 ‘프랑스 영화의 어떤 경향’과 같은 글은 프랑스 영화계를 바꾸는 기폭제 역할을 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마침내 영화를 만들었습니다. 1959년에 자신의 어린 시절의 경험을 담은 <400번의 구타>로 장편 데뷔한 후 마지막 영화인 <신나는 일요일>(1983)까지의 25년 동안 23편의 영화를 꾸준히 만들었습니다. 흥행에 실패하거나 개인적인 아픔을 겪을 때도 있었고 건강이 나쁠 때도 있었지만, 그는 결국 다시 현장으로 돌아가 영화를 만들었습니다.

 

사실 트뤼포는 이름이 알려진 정도에 비해 비평적 지지는 뚜렷하게 나뉜 편입니다. 특히 누벨바그 이후 본격적인 ‘상업영화’의 길을 걸으면서 초기의 급진성을 잃었다는 비판을 받았으며, 한때 영화 동지였던 장 뤽 고다르는 <아메리카의 밤>을 두고 “변절자”라며 트뤼포를 공개적으로 비난하기도 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트뤼포가 세상을 떠난 지 30여년이 지난 지금 그의 영화들에 대한 어떤 선입견이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이번 기회에 트뤼포의 영화를 처음부터 찬찬히 한편씩 보기를 권합니다. 트뤼포는 고다르처럼 급진적이지 않았고, 로메르처럼 미학적으로 엄격하지 못했고, 샤브롤처럼 도발적이지도 않았습니다. 하지만 트뤼포는 동시대 감독들 중 누구보다 자신과 닮은 영화를 만들었습니다. 그의 영화에 하나 같이 거친 어린 시절, 불안한 청년 시절, 여전히 불안한 성인 시절, 실패하는 사랑, 그리고 약간의 우울과 신경질적인 제스처가 담겨 있는 것은 단순한 우연이 아닙니다.

 

이처럼 트뤼포의 삶과 밀접하게 맞닿아 있는 영화들을 보고 있으면 어쩌면 그는 영화로 어떤 거창한 목표를 달성하는 게 아니라 영화를 통해 자신을 돌아보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이 아니었을까 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 결과 우리는 지금 누구보다 영화를 사랑했던 한 사람의 내밀한 고백을 들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그의 영화가 다른 어떤 영화도 주지 못하는 특별한 감흥을 주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번 전작 회고전을 통해 관객들과 함께 쓸쓸하면서도 따뜻한 트뤼포 영화의 아름다운 분위기를 느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 특별행사
>>오픈토크 Open Talk

6월 24일(일) 16:00
““한국에서 영화감독으로 산다는 것””
진행│변영주(영화감독), 이해영(영화감독)
초대손님│김종관(영화감독), 이혁상(영화감독) 등

 

>>시네토크 Cine Talk
7월 1일(일) 15:30 <부드러운 살결> 상영 후
트뤼포의 영화세계│유운성(전주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 영화평론가)

 

7월 8일(일) 18:00 <사랑의 도피> 상영 후
앙트완 드와넬의 모험│김성욱(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램 디렉터, 영화평론가) 

 

감독|프랑수아 트뤼포 Francois Truffaut (1932~1984)
1932년 출생. 십대 때부터 앙드레 바쟁이 속한 시네클럽에 참석하고 앙리 랑글루아가 운영하는 시네마테크에 출석했으며, 16살에는 “영화중독자 서클”이란 이름의 시네클럽을 만들어 직접 영화를 상영하기도 했다. 이 시기에 장 뤽 고다르, 장 마리 스트라우브, 에릭 로메르, 자크 리베트 등과 친분을 쌓았다.
1950년에는 자진해서 군대에 입대했으나 부적응으로 인해 2년도 채우지 못하고 전역했다. 그 후 각종 매체에 글을 기고하며 본격적인 영화 비평을 시작했으며 1954년 까이에 뒤 시네마에 발표한 “프랑스 영화의 어떤 경향”은 프랑스 영화계에 뜨거운 논란을 일으켰다. 이 당시의 ‘평론가 트뤼포’는 기성 영화를 강도 높게 비판하며 오손 웰즈, 장 르누아르, 알프레드 히치콕, 사샤 기트리, 자크 타티 등의 영화를 적극적으로 옹호했다.
트뤼포는 이 시기부터 이미 시나리오를 쓰고 테스트 촬영을 하는 등 영화를 찍을 준비를 하고 있었으며 마침내 1957년, 23분 길이의 단편 <개구쟁이들>을 만들었다. 그리고 1959년에는 <400번의 구타>를 만들어 비평과 흥행에서 성공을 거두며 본격적으로 감독의 길에 들어섰다. 이후 1984년에 세상을 떠날 때까지 앙투안 드와넬 시리즈를 포함한 자전적인 영화들과, 자신이 좋아했던 범죄물, 그리고 무엇보다 아름다운 여인들이 등장하는 멜로드라마를 만들었다.
감독 데뷔 후에도 비평 작업의 일환으로 알프레드 히치콕과 나눈 긴 대화를 정리한 책을 냈으며, 깐느영화제 보이콧이나 시네마테크 프랑세즈의 관장이었던 앙리 랑글루아의 복권 운동 등 사회·영화계 현안에 대해서도 열정적으로 자신의 목소리를 냈다. <녹색 방> 등 자신의 영화에 직접 출연하기도 했으며 스티븐 스필버그의 초청으로 <미지와의 조우>에 조연으로 출연한 것도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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