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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옛적, 세르지오 레오네가 있었다 본문
옛날 옛적, 세르지오 레오네가 있었다
비평적 거리를 확보하기 힘든 영화들이 있다. 이를테면 프랑수아 트뤼포가 히치콕과 인터뷰를 하면서 “<숙녀 사라지다>는 제가 일주일에 두 번씩 보기도 했죠. 영화를 볼 때마다 세세한 장면들이 어떤지, 카메라의 움직임을 어떻게 하는지 등을 자세히 봐야겠다고 마음먹지만 이게 막상 영화가 시작하면 등장인물과 스토리에 빠져버려 아직까지도 영화의 기술적인 부분을 모르겠네요”라고 고백하는 것처럼 말이다.
나로서는 세르지오 레오네의 중후기 작품들(특히 1967년 이후에 만든 세 편의 영화)인 <옛날 옛적 서부에서>(이하 <서부에서>)와 <석양의 갱들>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이하 <아메리카>)가 그런 영화들이다. 레오네의 영화에 대해 언급하는 것은 열렬한 팬으로서 어떻게 그의 영화에 도취되었는지를 슬며시 고백하는 것과 같다. 나는 그의 위대한 영화가 장 피에르 멜빌과 마찬가지로 내가 태어나던 즈음에 만들어졌다는 것에 감사한다. 개인의 삶은 그렇지 않겠지만 영화적 삶이 그들의 영화와 더불어 시작됐다는 것이 결코 우연이 아니라고 믿어버리고 싶은 것이다.
<아메리카>의 복원판이 국내에서 DVD로 출시되던 즈음에 흥분을 참지 못하고 '필름2.0'에 썼던 글에서 살짝 언급했지만 나는 이 영화를 고등학교를 졸업하던 1985년 겨울 신정 특선프로로 명보극장에서 처음 접했다. 텔레비전으로 <황야의 무법자>를 봤던 것에 잔뜩 기대를 하며 이제 성인이 됐다는 해방감에 친구들과 한껏 폼을 잡고 극장을 찾았는데, 영화는 내게 상처만을 안겨줬다. 4시간 분량의 영화가 두 시간으로 대폭 삭제된 탓에 영화를 온전하게 받아들이는 것은 힘든 일이었다. <아메리카>는 마치 상흔처럼 기억의 저편에 잠복해 있다가 종종 과거에서 온 망령처럼 불쑥 모리코네의 음악과 더불어 출몰하곤 한다. 터무니없는 망상이지만 여전히 시효를 다하지 못한 레오네의 영화를 기억의 무대가 아니라 시네마테크의 스크린에 소환하는 것이 하나의 임무라 여겼다. 이제 그 때가 도래했다. ‘옛날 옛적’이라는 마법의 주문을 걸어볼 참이다.
서부극의 극한을 실험한 위대한 매너리즘의 작가
세르지오 레오네의 비범함은 그가 유희적이면서 폭력적인 세계를 놀라운 스타일로, 그것도 장엄한 오페라처럼 역사와 인물을 스크린에 담아냈다는 점에 있다. 본인 스스로는 셰익스피어가 서부극을 쓴다는 심정으로 영화를 만들었다고 했고, 사람들은 비스콘티가 서부극을 만드는 느낌으로 서부극 오페라를 완성했다고 환호했다. 미국 서부극을 ‘신성모독’ 했다는 중상모략을 감내하면서 레오네는 미국의 신화와 장르의 코드를 뒤틀고 누벨바그리언들의 작업에도 결코 뒤지지 않을 삐딱한 시선으로 영화적 비평을 이뤄냈다. 유럽 모던영화의 새로운 물결에 발을 담그면서도 고다르나 트뤼포의 장르 파괴의 한계를 넘어, 레오네는 그 누구도 쉽게 도달하지 못한 지극히 실험적인 작가가 어떻게 대중과 화해할 수 있는가의 성공 사례를 보여주었다. 세르주 다네의 표현을 빌자면 그는 에이젠슈테인, 찰리 채플린, 알프레드 히치콕과 같은 대중적 작가의 경지에 이른 마지막 인물이었다.
장 피에르 멜빌, 스즈키 세이준과 마찬가지로 미국의 바깥에서 할리우드 장르의 법칙과 형식의 고민을 극한까지 밀고 나간 위대한 매너리즘의 작가로서 레오네는 서부극에서 자신의 영화적 야심과 분방함을 분명히 보여주었다. 그는 할리우드의 변방에서 서부극을 새롭게 창조하고, 변경하고, 완성하고, 누가 뭐랄 것도 없이 자기 스스로 제의를 치렀다. 그는 뛰어난 영화사적 감식안을 지녔던 인물이다. 그는 미국 서부극의 위대한 작품을 만든 감독들이 대부분 유럽인들로, 가령 존 포드는 아일랜드인이었고 프레드 진네만은 오스트리아인, 와일러는 알사스인, 투르뇌르는 프랑스 사람이었기에 그런 대열에 이탈리아인으로서 영화의 역사에 참여하는 것이 지극히 당연한 일이라 여겼다.
고다르가 <사랑의 찬가>에서 남의 역사를 빌려 영화를 만드는 ‘빈곤한 미국’을 조롱하듯 레오네는 미국이라는 나라가 전 세계의 역사나 문화에서 영화의 아이디어를 끌어오기에(그들은 이탈리아의 치네치타에서 <벤허>를 찍었다!) 미국영화를 미국인들에게만 떠넘기는 것이 어불성설이라 생각했던 것이다. 유럽인이 미국의 역사를 기술하거나 그 역사를 표상하는 일에 관여하는 것은 간섭이 아니라 영화사적으로 보자면 지극히 당연한 것이다.
미국에 대한 동경과 환멸을 영화에 담아내면서 레오네는 미국인들이 영화로 서구(West)를 역사화한 것에 대응해 서부(Western)를 역사화하는 시도를 감행했다. 레오네의 이런 분방한 사고는 이점이 있을 뿐만 아니라 지극히 온당한 것이다. 미국이 단지 일국가가 아니기에 그 바깥인 이탈리아에서 미국영화를 ‘성립’시키려는 야심을 표출하는 것은 일리가 있다. 레오네는 미국영화와 그것이 자신에게 미친 영향력을 대차대조표로 꼼꼼히 살펴보고 하등의 불공정함이 없다는 듯이 서부극을 이탈리아에서 완성한다.
이는 개인의 취향을 넘어서서 세계영화사를 공정하게 성립시킨 경이적인 사건이라 할 만하다. 미국영화계가 에른스트 루비치, 무르나우, 자크 투르뇌르, 에드가 울머, 알프레드 히치콕, 프리츠 랑과 같은 감독을 가질 수 있었다는 것에 감사해야 한다면 마찬가지로 그들은 세르지오 레오네에게도 경의를 표해야만 하는 일이다. 그는 60~70년대 미국영화의 새로운 가능성에 활력을 불어넣어준 장본인이기도 했다. 유혈 낭자한 서부극을 만드는 것에 잠시 주저했던 샘 페킨파는 레오네의 영화를 본 후에 <와일드 번치>(1969)를 만들 자신감을 얻었고 이에 감사를 잊지 않았다. 여담이지만 영화에서 빚진 것을 정당하게 표현해야만 영화의 역사가 제대로 성립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레오네가 서부극에 뛰어든 1960년대는 미국이 베트남전쟁으로 곤욕을 치르던 시기였다. 레오네의 서부극은 샘 페킨파의 시도 이전에 미국의 제국주의적인 폭력과 잔혹성을 고스란히 영화로 되돌려준 획기적인 기획이었다. 그는 존 포드 말년의 서부극들, 특히 <수색자> <리버티 밸런스를 쏜 사나이> <샤이안의 가을>과 같은 작품에서 ‘이탈리아 웨스턴’의 영감을 과감히 끌어왔다.(물론 구로사와 아키라의 <요짐보>에서 ‘달러 3부작’의 첫 아이디어를 얻었던 것을 인정하고 넘어갈 일이다.) 그래서 1964년에 그가 선보인 <황야의 무법자>를 우리는 서부의 진정한 서사시를 만들어낼 심산으로 존 포드를 비롯한 저명한 감독이 제임스 스튜어트, 그레고리 펙, 존 웨인과 같은 서부극의 스타를 출연시켜 야심차게 만들었던, 하지만 실패로 끝난 <서부개척사>(1962)의 운명과 비교해야만 한다. 서부극의 영혼이 미국에서 몰락하고 있을 때 그것에 새로운 몸을 부여하고 최종적으로는 장엄한 장례를 치른 것은 정작 존 포드나 안소니만이 아니라 세르지오 레오네였던 것이다.
장엄한 오페라 서부극
레오네의 서부극은 장엄하지만 유희적이고 시니컬하다. 신사다운 영웅들이나 법과 질서를 존중하는 보안관은 그의 작품에서 얼굴을 내밀지 못한다. 그는 ‘계몽주의적 서부극’에 오줌을 갈기거나 침을 뱉었다. 지린 냄새가 나거나 오물이 몸에 묻은 것 같은, 청결함과는 거리가 먼 지저분하고 땀과 먼지투성이의 인물을 영화에 등장시켰다. 가령 <서부에서>의 한 장면에서 살인청부업자로 분한 헨리 폰다는 몰살한 가족들 틈에서 생존한 아이를 발견하고는 푸른 눈을 번뜩이며 잠시 고심하다 침을 뱉는다.
극단적인 얼굴의 클로즈업이 제공하는 친밀한 거리 때문에 그가 뱉은 침은 마치 영화를 보는 관객들(혹은 카메라나 스크린)에 튀는 불결한 느낌을 갖게 한다. 불결함은 도덕과 윤리에도 묻어나는데, 그의 서부극에서 법과 질서의 정비는 불충분하고 돈에 눈이 먼 도적과 살인청부업자는 땀을 삐질 흘리면서 메마른 황무지를 떠돈다. 무법자들은 잔혹한 폭력과 죽음을 대수롭지 않게 무시한다. 레오네에게 이러한 세계는 환상의 기초가 되는 현실이었다. 그는 역사적 사실, 생활양식이나 의상, 무기의 선정에 지극히 세심한 관심을 보였는데 사실에 근거하는 것이 판타지의 근원이라 여겼던 탓이다. 세심한 현실 인식은 종전의 할리우드 서부극에 결핍되어 있었던 것이다.
레오네는 서부를 무대로 역사의 현실에 근거한 우화를 만드는 작업을 동시대 고다르나 파솔리니가 했던 것 이상으로 ‘달러 3부작’에서 완수했다. 레오네의 우화작업은 고다르가 <주말>과 <동풍>에서, 파솔리니가 <매화 참새>에서 시도한 것을 웃도는 영화사적 가치를 지닌다고 생각한다. 그는 자신의 영화가 ‘어른들을 위한 우화, 성인들을 위한 옛날이야기’가 되어야 한다고 믿었고 이러한 우화가 지극히 ‘비판적’인 것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 점에서 레오네의 서부극은 존 포드보다는 하워드 혹스의 영화처럼 유희적이다. 먼저 영화의 이야기에 몰입하고 즐기는 시간이 있어야만 한다. 이어 눈을 뜨는 각성의 시간이 다가온다. 그래야만 어른을 위한 우화, 성인을 위한 옛날이야기가 성립될 수 있다고 레오네는 믿었다. 깨어난 시선이 제공하는 비판적 거리는 영화의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구분 짓는다. 유희는 각성된 현실을 목표로 할 때에만 실로 진지해질 수 있는 것이다.
‘달러 3부작’보다는 <서부에서>가 그런 ‘비판적 영화’의 최종적인 완성에 가깝다. 원래 <석양의 무법자>로 ‘달러 3부작’을 마감한 레오네는 1967년부터 ‘옛날 옛적’의 미국 역사 대작을 찍는 것에 열중했다고 한다. 그중의 하나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리메이크하는 기획이었다. 할리우드 제작사는 그의 제안을 묵살했고 대신 은근슬쩍 서부극을 ‘한 편 더’ 만드는 제안을 내밀었다. 망설이던 레오네가 ‘다시 한 번’ 서부극을 만들기로 결심을 굳힌 것은 헨리 폰다와 찰슨 브론슨을 영화에 주역으로 캐스팅할 수 있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레오네는 원래 <황야의 무법자>의 주인공으로 헨리 폰다를 캐스팅하려 했었다. 비싼 출연료 때문에 기획이 좌절되면서 대신 찰슨 브론슨을 염두에 뒀는데, 이 또한 실패로 끝나면서 결국 당시 덜 유명했고 출연료가 쌌던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그의 ‘달러 3부작’의 주인공으로 발탁되는 행운을 얻게 됐다. 그런 점에서 헨리 폰다와 찰슨 브론슨을 기용한 서부극은 정확하게 그의 서부극의 시작으로 되돌아가 그것을 완결하는 기획이라 할 수 있다.
<서부에서>는 개척기의 서부를 무대로 철도 부설 예정지인 토지를 가진 미망인 질(클라우디아 카드리날레), 그녀를 죽이려 철도회사에서 고용한 살인청부업자 프랭크(헨리 폰다), 살인청부업자에게 과거의 복수를 감행하고 결과적으로 그녀를 지키려는 하모니카 사내(찰슨 브론슨), 그리고 이를 지켜보는 샤이안(제이슨 로바즈)이 벌이는 드라마가 주된 영화다. 그러나 ‘일찍이 서부가 있었다’라는 이탈리아 원제는, 일찍이 존재했던(지금은 사라진) 서부의 대지와 개척기의 불온한 공기, 그리고 비정하게 사라진 무뢰한들의 시대가 진정으로 이 영화의 주인공임을 일깨운다. 영화의 라스트는 그런 점에서 의미심장하다.
철도가 개설되는 가운데 헨리 폰다와의 결투를 끝낸 찰슨 브론슨은 자신을 물끄러미 쳐다보던 미망인이 “언제 이곳에 다시 돌아올거죠?”라고 묻자 “언젠가”라고 나직이 말하고는 그 주름진 얼굴을 돌려 서부 저편으로 말을 타고 떠난다. 미망인을 응시하는 깊고도 슬픈 찰슨 브론슨의 눈은 헨리 폰다의 푸른 눈만큼이나 잊기 힘들다. 이어 샤이안과 하모니카 사내의 우정과 인의의 교환이 뒤를 따른다. 총에 맞아 죽어가는 샤이안은 하모니카 사내에게 “가게나, 내가 죽어가는 모습을 보이기 싫다네”라 말한다. 하모니카 사내는 고개를 돌리고, 샤이안은 쓰러지고, 카메라는 하모니카 사내의 머리 위를 넘어 크레인 숏으로 마을에 기차가 들어와 바쁘게 마을을 건설하는 이름 없는 사람들의 분주한 움직임을 보여준다. 그런 가운데 화면에 내내 보이지 않던 ‘옛날 옛적 서부에서’라는 제목이 빙그르 회전을 하며 잠시 나타났다 사라진다. 이것이 서부극에 바치는 레오네의 진정한 레퀴엠이다. 이 영화에 대해 시나리오에 참여한 베르톨루치는 “비스콘티가 서부극을 찍었다면 아마도 이와 같은 작품이 됐을 것이다”라고 표현했는데 이건 결코 틀린 말이 아니다.
잃어버린 시대에의 애도
감독으로서의 위치에 대한 질문에 레오네는 종종 자신이 이탈리아식 인형극의 조종사와 같다고 말한 바 있다. 그는 서부를 무대로 대지, 열차, 건물, 가구나 소지품, 복장, 그리고 총을 배치하고는 거기에 자신의 인형인 인물들을 등장시킨다. 그리고 그들에게 이름을 부여하며 인형처럼 춤을 추게 했다. 그런데 그 춤은 진혼굿에 가깝다. 이미 사라진 것들, 머물 곳이 없는 떠돌고 방황하는 영혼을 불러내어 제의를 치르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에게 웨스턴이나 갱스터와 같은 미국식 장르는 본질적으로 죽음을 다시 불러들이는 장소이기도 했다.
종종 그의 영화의 특징을 과장된 수사, 그래픽한 장엄한 폭력, 결투의 연극적인 제의로 평가하는데 사실 레오네의 진정한 특징은 가장 강렬하면서도 터무니없는 플래시백에 있다고 말하고 싶다. 유령 이야기 같은 레오네 영화의 중심적인 모티프는 인물들을 과거에 묻힌 상흔의 기억으로, 손실을 반영하는 이미지로 이끌어가는 것에 있다. <석양의 갱들>의 실패한 혁명의 멜랑콜리한 기억을 거쳐(이 영화는 필히 극장에서 봐야만 하는 영화로, 레오네의 영화에서 가장 저평가됐지만 필히 재평가해야만 하는 걸작이다) 최종적으로 레오네는 그의 유작 <아메리카>에서 판타지와 현실, 현재와 과거, 삶과 죽음이 뒤죽박죽 뒤섞인 가장 거대한 환영의 영화를 만들어냈다.
파시즘을 견디며 성장해야만 했던 레오네는 레지스탕스의 아픈 기억을 지녔던 멜빌처럼 공식적인 역사의 진실에 의문을 표하면서 너무 많은 약속들과 꿈이 파멸하고 사라진 것에 애도를 표했다. 피카레스크에 대한 그의 각별한 애정, 그로테스크에 대한 그의 독특한 취향, 유희적인 것에 대한 선호가 여기서 나왔다. 슬픈 현실에 눈물을 보이는 것보다는 웃는 것에 더 많은 가치를 부여하는 것, 그것이 <석양의 갱들>에서 로드 스타이거와 제임스 코번이 보여주는, 혹은 <아메리카>의 마지막에서 로버트 드 니로가 관객을 당황케 하는 웃음이다. 그는 60~70년대의 혼란스런 혁명의 시기를 파괴적인 스타일로 영화에 강렬하게 담아낸 거장이었다. 레오네의 영화에 한국의 올드팬들은 한동안 열광했었지만 사실 그의 영화가 무엇이었는가를 제대로 관찰할 기회를 얻지는 못했었다. 무엇보다 그의 영화가 온전하게 제대로 상영되지 못한 탓이다. 그래서 레오네의 영화를 다시 상영하는 것은 영화 부활의 조건을 협상하고 죽음에서 되돌아오는 주문을 거는 것이다. 마법의 주문으로 영화의 귀환을 반겨보고 싶다. 옛날 옛적, 세르지오 레오네가 있었다! (김성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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