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NEMATHEQUE DE M. HUL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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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일기

할 하틀리 특별전

KIM SEONG UK 2008. 7. 28. 12:24




할 하틀리에게 도대체 무슨 일이 생겼나?

이상한 일이지만 할 하틀리는 미국영화에 대한 최근의 논의에서 언제나 배제되어 있었다. 토드 헤인즈, 거스 반 산트의 신작이 여전히 극장의 스크린을 장식하고 있는 것에 비하자면 하틀리의 영화는 극장에서건 영화제에서건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90년대 '문화학교서울'과 같은 비디오테크에서 미국 인디영화를 소개할 때마다 그가 관객들로부터 언제나 거대한 환대를 받았던 것을 감안하자면 근래의 그의 영화에 대한 무관심은 지나칠 정도라 여겨진다. 물론 그때도 하틀리의 영화가 극장에서 필름으로 공개되는 일은 거의 없었다. 2005년에 공개된 <걸 프롬 먼데이>가 한국의 국제영화제에서 만날 수 있었던 비교적 그의 최근작이었다. 미국 평론가인 조나단 로젠봄이 왕가위의 바그너적인 <2046>과 비교하면서(두 편 모두 미래사회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이 영화를 그해 최고의 ‘베스트10’에 뽑으며 비평가들이 놓친 걸작이라 평가한 바 있지만 그래도 대부분의 비평가들은 그의 최근작들에 거의 부정적인 평가를 내리고 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걸 프롬 먼데이>가 소개될 즈음에 ‘뉴욕 매거진’의 한 평자가 ‘도대체 할 하틀리에게 무슨 일이 생겼나’라는 표제의 글을 썼던 적이 있다. 이 제목은 그의 최근 영화들에 대한 대중적 무관심을 떠올리게 한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90년대 초에 혜성처럼 등장해 저예산에 자신의 고향인 롱아일랜드를 배경으로 할 하틀리는 지극히 창조적인 영화들을 만들어냈다. 그러면서도 그는 늘 ‘도대체 내가 만든 영화를 어떤 사람들이 볼까? 예술을 좋아하는 대학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라며 의아해했다. 실제로 90년대 후반을 거치면서 그의 영화는 관객을 떠났고 또 관객들 또한 그의 영화를 외면했다. 그와 동시대에 영화를 만들었던 미국의 인디 감독들이 유명 스타를 기용해 고예산의 영화를 만드는 변신을 거듭한 것과 비교하자면 그의 행보는 낯설기만 하다.

<걸 프롬 먼데이>는 새로운 관객을 만나고자 했던 하틀리의 새로운 전략의 영화였다. 트리플 M이라는 조직이 주도한 소비자 혁명으로 극단적인 인간의 상품화가 도래한 어느 미래사회에서 상품의 가치는 소비자의 구매력에 의해 평가되고 심지어 섹스조차 성에 대한 구매력을 갖지 못하면 진행될 수 없는 처참한 상황에 이른다. 트리플 M의 고위 간부로 일하는 잭은 이런 소비사회에 환멸을 느끼는데 어느 날 ‘먼데이’라는 낯선 행성에서 미모의 외계인 여인이 그를 방문한다. 이 황당무계한 이야기에 대해 하틀리는 ‘가짜 SF’라고 말했다. 소비사회의 고립된 인간이 취할 수 있는 유일한 판타지라고 말할 수 있겠다.

하틀리는 그가 추종했던 유럽 영화감독들, 특히 장 뤽 고다르의 <알파빌>과 프랑수아 트뤼포의 <화씨 451>, 혹은 니콜라스 뢰그의 <지구에 떨어진 남자>에 대한 영화적 비평처럼 이 영화를 만들었다. 그러나 소비자의 독재 체제에 대한 그의 비판을 보고 있으면 조나단 로젠봄의 해석처럼 이 영화가 <알파빌>이라기보다는 ‘코카콜라 세대’에 관한 사회문화 비평을 시도한 고다르의 <남성, 여성>에 더 근접한 영화라는 점을 느끼게 된다. SF 스릴러의 외양을 취하고는 있지만 영화가 다루는 주된 문제들은 현실세계에 대한 시적 풍자인 것이다. 모든 이들의 손목에는 물건처럼 바코드가 새겨져 있고 두 사람이 섹스를 하기 위해서도 서로 투자의 신용등급을 상향조정해야만 한다. 소비사회에 대한 지극히 철학적인 질문들, 이는 하틀리의 영화를 특징짓는 것이기도 했다.

젊다는 것이 부끄럽다
 

한때 90년대는 할 하틀리의 시대처럼 보였다. 1959년생인 하틀리는 미국 인디영화의 새로운 부활을 알리는 상징적인 인물로 평가받았는데, 이를테면 75만 불의 저예산으로 만든 장편 데뷔작인 <믿을 수 없는 진실>(1988)은 스티븐 소더버그의 <섹스, 거짓말 그리고 비디오테이프>(1989)와 더불어 저예산 인디영화 제작의 새로운 가능성을 일깨웠다. 미국과 유럽의 예술영화관에서 하틀리는 당시 꽤 인기를 끌었던 작가였다.

하틀리의 중요성은 그가 미국 인디영화의 선행자들이 남긴 영화적 유산, 가령 존 카사베츠에서 존 세일즈까지, 혹은 80년대 스파이크 리와 짐 자무시 등이 보여준 독립제작의 유산을 이어가면서 새롭게 이후의 세대에게 영감을 던져준 매개자였다는 점에 있다. 리차드 링클레이터와 케빈 스미스의 수다스런 영화들(하틀리는 저예산에서 유일하게 풍요롭게 쓸 수 있는 것이 시적이고 유머러스한 대사라 여긴 듯하다)에서 하틀리의 영향력을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하틀리는 동시대적으로 쿠엔틴 타란티노처럼 할리우드 제국에서 서서히 자신의 영화적 영향력을 행사한 그런 재주꾼은 아니었다. 또한 스티븐 소더버그나 로드리게즈처럼 저예산으로 엄청난 흥행을 이뤄낸 그런 재주꾼 또한 아니었다.(적은 비용으로 높은 흥행수입을 올리는 것이 독립영화의 미덕처럼 선전될 때 인용될 수 있는 그런 재능있는 인물이 아니라는 말이다) 어쩐지 그의 이미지는 <바보 헨리>의 주인공 헨리와 닮아 보인다. 예술가에게 있어서 문제가 되는 것은 재능의 실현이 아니라 그러한 재능이 발견되고 기대되는 환경과 조건이다. 언젠가 오슨 웰스는 미국이 언제나 젊은이들을 발굴하면서 그들을 착취한다라고 말한 바 있는데 하틀리는 그런 환경과 조건을 감수하면서 완고할 만큼 자신의 세계를 지극히 한계적인 조건에서 미니멀한 영화를 만들어내는 것에 집중했다.

시나리오 작가로, 감독으로, 편집자로, 그리고 영화음악의 작곡가로 할 하틀리는 데뷔작 <믿을 수 없는 진실>에서부터 <트러스트>(1990), 그리고 <심플맨>(1992)으로 이어지는 초기의 ‘롱아일랜드 3부작’에서 자신의 영화적 세계를 일찌감치 보여주었다. 그의 영화는 유럽적인 미니멀리즘의 미학에 근거하는데, 이는 그의 독특한 스타일의 산물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예산의 제약에서 나온 것이다. 대담한 컬러의 활용, 이미지와 사운드의 독특한 병치, 그리고 주변의 세계에 대단히 민감한 인물들(이들 대부분은 여성들이다)은 사회적으로 닫힌 관계성에서 가족과 사랑, 신뢰와 믿음의 문제를 반성한다.

그런 인물들이 펼치는 이야기는 지극히 일상적이다. 하지만  어딘가 이상한 구석이 있는 화면과 대화로 일관되기에 다소 유머러스하다. 특히나 그의 영화를 흥미롭게 만드는 것은 풍부한 대사들이다. 하틀리는 인물들의 대사로 가장 정서적이면서 충격적인 순간을 만들어낸다. 지극히 비자연적이라 느낄 만큼 하틀리의 인물들이 읊조리는 대사들은 시적이고 극렬한 아포리즘들로 가득하다. 긴 화면의 지속시간동안 무표정한 인물들이 말하는 아포리즘은 인물들 간의 거리, 한계적인 사회적 위치, 가족 관계에서 그들이 겪는 고충을 표현한다.

<트러스트>를 한 예로 들고 싶다. 영화 속 주인공 마리아는 비행청소년으로 학교에서 퇴학처분이 내려지고 부모 몰래 임신한 상태다. 그녀는 집을 뛰쳐나가려 하는데 아버지는 “너 같은 창녀를 집에 둘 수 없다”며 흥분하다 갑자기 심장마비로 사망한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마리아는 자신의 남자친구에게 “고등학교 중퇴에 임신까지 한 너랑 결혼할 것 같아? 하루 종일 TV 앞에 앉아 지내다 보면 네가 21살 때는 어떻게 보일지 생각해봤어? 내가 그런 걸 바랄 것 같아? 난 그런 거 싫어.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건 멋진 축구선수가 되는 거야”라는 야멸친 소리를 듣게 된다.

어찌할 바를 몰라 방황하는 마리아는 임신중절을 결심하고, 거리를 헤매다 부친과 불화를 겪는 한 남자를 만난다. 그리고 이들의 사랑과 신뢰의 이야기가 전개된다. 영화의 한 장면에서 그녀는 밤에 혼자 노트를 펼치고 거기에 ‘나는 부끄럽다. 철없는 게 부끄럽다. 어리석다는 것이 부끄럽다’고 조용히 적어나간다. 사랑에 의심을 품게 된 인물들이 사랑이 깨져도 신뢰를 얻게 되는 이야기는 삶에 대한 성찰뿐만 아니라 아주 묵직한 감동을 선사한다.

1993년 작인 <아마추어>는 초기의 경향에서 그가 새롭게 변모하는 계기를 마련한 작품으로, 고독하고 질병으로 가득한 도시에서 절망적인 탈주를 감행하는 인물들의 이야기를 그린다. 그의 영화를 두고 ‘연기의 놀라움, 복잡성과 모호성을 보여주는 특별한 방식, 시적이고 미학적인 유럽적 의미의 진정한 작가’라 격찬한 이자벨 위페르의 출연으로 이 영화는 대중적인 호응을 얻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더 흥미를 느끼는 작품은 <바보 헨리>(1997)다. 이 영화로 하틀리는 창조적인 인간이 느끼는 곤경을 영화를 통해 자세하게 열거하며 지극히 낭만적인 예술적 작가성의 탈구축을 시도한다.

이야기는 쓰레기 수집원인 사이먼과 역사적 대작을 쓰겠다고 호기를 부리는 작가 헨리, 이 두 사람을 축으로 전개된다. 헨리는 어느 날 친구 사이먼이 정작 자신보다 더 뛰어난 문학적 재능이 있음을 깨닫고는 절망하는데, 사이먼은 이후 승승장구 노벨문학상을 거머쥐는 작가로 탈바꿈한다. 아주 사소한 계기로 자신의 숨겨진 재능을 꽃피운 인물과 언제나 창조적 열망을 품고 있지만 정작 그 재능을 인정받지 못하는 인물을 대비시키면서 하틀리는 뛰어난 재능을 지닌 예술가가 인정될 수 있는 조건에 대해 성찰한다. 되돌아보면 이 작품은 90년대 할 하틀리의 작가로서의 자화상을 떠올리게 한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그는 재능을 어느 정도 인정받은 작가였지만 그렇다고 다른 동시대의 인디영화 감독들처럼 영화산업에서 탁월한 영향력을 얻게 된 그런 작가는 아니었던 것이다.

진실한 픽션에서 가능한 영화로
 

90년대 인디영화의 기린아였던 하틀리의 21세기의 위치는 세기말을 배경으로 만들어진 <인생전서>(1999)에서 엿볼 수 있다. 세기말을 배경으로 ‘요한계시록’에 근거해 그리스도와 막달라 마리아의 이야기를 그린 이 영화는 새로운 밀레니엄에 세계가 멸망으로 치닫고 있는 상황을 다룬다. 종말의 열쇠를 쥔 자는 물론 예수와 사탄이다. 예수는 인간의 영혼을 구제하기 위해 사탄과 대결을 벌이지만 인류를 구할 가치가 있는지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한다.

끊임없이 변화해가는 영상, 강렬한 음악, 시공을 넘나든 운명이 마치 스파이 스릴러 장르 영화처럼 전개되고 화려한 컬러의 섬광들이 관객들을 반수면의 상태로 이끈다. 그러나 이 영화의 특별함이 예언과 종말의 신학적 테마에 머무는 것은 아니다. 차라리 하틀리의 새로운 영화적 전략, 즉 할리우드 영화산업이 강요하는 ‘흥행에의 부담’에서 벗어나 지극히 한계적이지만 새로운 영화를 창조하려는 그의 독자적인 시도를 읽어가는 것이 보다 중요하다고 말하고 싶다. 그는 디지털로 영화를 만들면서 자신이 찍고 싶어 했던 주제를 새로운 방식으로 창조할 수 있는 가능성을 모색한다. 스탭들을 7~8명 정도 제한적으로 두고 모두에게 권한이 있는 독립적인 시스템으로 영화를 만드는 그만의 방식을 고민하는 것이다.

최근작인 <걸 프롬 먼데이>는 이런 하틀리의 새로운 전략의 보다 분명한 표현이다. 각본, 감독, 제작을 함께 했던 하틀리는 ‘선댄스영화제’에서 처음 이 영화를 선보인 후에 극장에서의 단기간 상영을 마치고, 이어 스스로 시작한 영화배급사의 웹사이트를 통해 DVD를 판매하는 전략을 시도했다. 이러한 (이렇게 말해도 된다면)생존전략은 불가피한 것이자 그만의 독립성을 지키기 위한 기획이기도 하다. 인터뷰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하틀리는 이 영화를 촬영하기 전에 배급사에 자신의 구상을 소개한 적이 있는데 그때 그에게 되돌아온 말은 “우리도 이 영화가 좋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도저히 책임질 수는 없다. 미국에서 아마 6만 명 정도가 돈을 지불해 영화관을 찾겠지만 이 영화의 필름을 인화해 선전하는 것만으로도 그 100배의 비용이 들 것이다”라는 거절이었다고 한다.(사실 이런 일은 먼 미국의 일이 아니라 우리 영화계의 냉혹한 현실이기도 하다)

하틀리는 그러나 그런 거절의 말을 반대로 “그래, 6만 명이 각각 7달러를 지불해 이 영화를 본다면 그 정도로도 충분하다”며 그 수요에 맞춰 영화의 제작 자금과 배급을 진행하는 방법을 취했다고 한다. 그는 자신의 손아귀에 있는 자금을 바탕으로 할 수 있는 최선의 방식으로 영화를 만드는 것에 몰두한다. 그는 인디영화 감독이 적은 예산으로 창조적인 작업을 어떻게 할 것인가를 궁리하는 것이 너무나도 당연하다고 여긴다. 무엇인가 부족한 예산에 변명을 할 수만은 없다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그는“내 영화를 즐겨주고 돈을 내주는 사람들이 있다고 하면 기쁘겠지만 그 사람들에게 완전히 의지할 생각은 없다”고 딱 잘라 말한다.

할 하틀리의 이런 시도를 보며 1994년 뉴욕을 방문했던 고다르와 그가 나눈 대화의 일부가 떠오른다. ‘고다르의 아들’이라 불리기도 했던 하틀리는 <아마추어>를 만들기 직전에 그와 만날 기회가 있었다. 그는 <고다르의 자화상>에 흥미를 느꼈다. 그리고 고다르와 적은 예산으로 영화를 만드는 것에 대해 짤막한 논의를 벌였다. 흥미로웠던 것은 그가 고다르와 영화의 배급과 관련해서 나눈 대화들이다.

하틀리는 컴퓨터와 전자통신을 이용해 영화를 작가가 직접 배급하는 것의 가능성에 대해 다소 낙관적인 견해를 내비쳤고 고다르는 이에 대해 “유럽에서 집과 아파트가 점점 작아지고 있어요. 집에서 영화를 본다는 것은 그래서 점점 작아지는 스크린과 만나는 것일 뿐입니다. 그러면 영화의 프로젝션이 사라지는 것이고, 서로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과 함께 영화를 보는 가능성이 사라지는 것이죠”라고 말했다. 그는 고다르에게 “나는 종종 영화로 무엇을 기대하는지가 불확실하다고 느낍니다. 점점 내가 만든 영화를 보는 사람들이 정작 무엇을 보고 있는지에 대해 확신할 수 없습니다”라고 말했다. 믿을 수 없는 진실들, 그리고 신뢰와 믿음의 문제, 그리고 영화의 가능성에 대한 모색. 하틀리의 문제의식이 여기에 있다.

하틀리는 그래도 자신의 낙관적인 생각을 그 이후로도 버리지는 않았던 것 같다. 90년대에 그는 자신의 대부분의 영화를 ‘진실한 픽션 True Fiction’이란 이름의 영화사에서 만들었다. 21세기에 들어서서 그는 자신의 영화음악 CD, 영화 DVD를 판매했던 인터넷 회사와 파트너를 맺고 영화 제작에 들어섰다. 그의 새로운 영화제작사의 이름은 ‘가능한 영화들 Possible Films’이다. 90년대에 진실한 픽션을 추구했던 하틀리는 믿을 수 없는 진실들과 마주했지만 여전히 영화의 가능성을 모색하고 있는 것이다. ‘특별전’을 개최하면서 도대체 그에게 무슨 일이 생겼는지 다시 한 번 살펴보고 싶은 것이나 여전히 하틀리를 버리지 못하고 신뢰하고 싶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김성욱: 시네마테크 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래머)

* 시네마테크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열리는 '할 하틀리 특별전'의 정보는 www.cinematheque.seoul.kr 를 참고하세요.
* 할 하틀리 특별전 상영작 목록

<트러스트 Trust>

1990 | 미국, 영국 | 107분 | 애드리언 셸릭, 마틴 도노반


폭력적이고 전제적인 홀아버지 밑에 사는 매튜는 전과 기록이 있고, 회사에서도 모니터를 집어 던질 만큼 사회부적응자다. 매튜는 철학책을 읽고 클래식 음악을 들으며, 아버지의 참전 기념품인 수류탄을 들고 사회에 불만을 토로하다 임신한 고등학생 마리아를 만난다. <트러스트>는 선댄스영화제 각본상을 비롯해 수많은 상을 수상하며 할 하틀리를 국제적으로 알리는 계기가 됐다.

<심플맨 Simple Men>

1992 | 미국, 영국, 이탈리아 | 105분 | 로버트 존 버크, 빌 세이지


함께 은행을 털던 애인과 친구가 자신을 배신하자, 빌은 인간에 대한 믿음을 상실한다. 그의 동생 데니스는 과거 다저스 야구단의 명유격수로 이름을 떨쳤고, 60년대 미 국방성 폭탄테러를 가했던 무정부주의자인 아버지의 행방에만 관심이 있다. 이를 탐탁지 않게 생각했던 빌은 결국 동생과 함께 아버지를 찾아 나선다. 칸 경쟁부문에 출품되기도 했던 <심플맨>은 할 하틀리의 대표작이다.

<아마추어 Amateur>

1993 | 미국, 영국, 프랑스 | 105분 | 이자벨 위페르, 마틴 도노반


기억상실증에 걸린 포르노 사진작가이자 제작자였던 토마스는 포르노 소설을 쓰는 이자벨을 만난다. 파계 수녀인 이자벨은 토마스를 색정광으로 여기지만 33살에 아직 처녀인 그녀는 하루빨리 처녀성을 버리고 싶어 한다. 그런 둘은 무기 밀매 정보가 담긴 디스크 때문에 쫓기는 신세가 되고, 결국은 경찰의 총을 맞는다. 할 하틀리의 별명인 ‘뉴욕 고다르’를 다시 한 번 입증한 작품.

<바람둥이 Flirt>

1995 | 미국, 독일, 일본 | 85분 | 빌 세이지, 파커 포시


뉴욕의 빌은 여자친구 에밀리와 문제가 있다. 베를린에 사는 드와이트는 나이 든 독일 미술상 요한과 함께 산다. 한편, 도쿄에 사는 겸손한 댄스 교실 학생 미호는 존경하던 교사 오즈에게 기습 키스를 당한다. 세 도시에서 일어나는 3개의 이야기. 3가지 사랑을 표현한 할 하틀리의 <바람둥이>는 또 다른 전환점을 맞이한 그의 작품세계에 새로운 시작을 알린 작품이다.

<바보 헨리 Henry Fool>

1997 | 미국 | 137분 | 토마스 제이 라이언, 파커 포시


조용한 사이먼은 우울증을 앓는 어머니와 과잉 성욕을 지닌 누이와 함께 사는 쓰레기 수거원이다. 어느 날, 그들 아파트 지하에 새 거주자가 생긴다. 담배와 폭음을 일삼으며 매일매일 시끄럽게 사는 바보 헨리다. 아무도 그가 어디서 왔는지 모르지만, 그의 출현은 모든 것을 바꿔놓는다. 칸영화제에서 각본상을 수상한 <바보 헨리>는 할 하틀리의 새로운 관심사를 보여준다.

<인생전서 The Book of Life>

1998 | 미국, 프랑스 | 63분 | 마틴 도노반, P.J 하비


1999년 12월 31일, 케네디 공항에 한 쌍의 남녀가 나타난다. 맨해튼으로 향하는 이들의 정체는 예수와 막달라 마리아. 이들은 혼란하고 난잡해진 세상을 심판하러 이 땅을 다시 찾았다. <인생전서>는 프랑스 문화예술 채널 La Sept ARTE가 뉴밀레니엄을 기념하여 만든 ‘2000 Seen By…’ 시리즈 중 한 작품으로, 새천년을 맞는 불안을 빠른 영상과 격렬한 음악으로 표현한다.

<걸 프롬 먼데이 The Girl From Monday>

2005 | 미국 | 84분 | 빌 세이지, 사브리나 로이드


소비자 혁명을 일으킨 MMM이 미국을 장악한다. 세상의 모든 것은 구매력에 의해서 판단된다. 섹스도 마찬가지. 섹스 역시 성 구매력이 있어야 한다. 주인공 잭은 MMM의 상층부에서 일하고 있지만 사실은 반혁명 조직을 이끄는 리더다. 일이 잘 풀리지 않던 어느 날, 잭 앞에 외계에서 온 여인이 나타난다. 디지 베타로 촬영된 할 하틀리의 비교적 근작으로 자본주의를 비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