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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INEMATHEQUE DE M. HULOT

서울에도 시네마테크 전용관을! 본문

서울아트시네마소식

서울에도 시네마테크 전용관을!

Hulot 2010. 1. 17. 03:00

"서울에 시네마테크 전용관을 건립하기 위한 추진위원회" 발족

2010년 1월 15일, 5시. 서울아트시네마에선 실로 기념비적인 일이 일어났다. 국내 내로라하는 영화감독, 배우들이 ‘서울에 시네마테크 전용관을 건립하기 위한 추진위원회(이하 시네마테크 건립 추진위)’를 결성하고 바로 이날, 그 뜻 깊은 결의를 알리고 다지는 발족식과 기자회견을 가졌다. 기자들뿐만 아니라 일반 관객들도 참가, 공감대를 나눈 이 자리는 영화를 꿈꾸는, 영화를 사랑하는 이들의 염원을 모아 자발적으로 이뤄진 것이다. 온전한 영화의 집을 짓기 위해 스스로 깃발을 들고 나서 이제 시작을 외치는 추진위의 행보에 귀추가 주목된다. 추운 겨울이지만 열기만큼은 그 어느 때보다 불탔던 시네마테크 건립 추진위 발족식 현장을 전한다.


새해가 밝음과 동시에 서울에 있는 많은 시네필들의 동면을 깨워주었던 친구들 영화제는 쉬지 않고 5년을 내리 달려왔다. 하지만 지금의 서울아트시네마는 다섯 번째 생일을 맞은 친구들 영화제와 맞물려서 가장 큰 위기에 처해있다. 그건 바로 ‘공간’의 문제로, 어쩌면 이번 영화제를 끝으로 서울아트시네마는 또 다시 보따리를 싸서 어딘가로 떠나야할 지도 모른다. 인구 천만이 넘는 이 대도시에 변변한 시네마테크 전용관이 없어서다. 사실 전용관 설립 추진은 소격동 시절부터 끊임없이 논의되었던 사항이다. 2007년에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와 서울시가 구체화하려했던 ‘다양성영화 복합상영관 건립’이 그 염원의 실체다. 그런데 정책담당자가 바뀌면서 불현 듯 수포로 돌아가 결국 좌초되고 말았고, 그 결과 서울아트시네마는 5번의 친구들 영화제와 창립 10년을 앞둔 시점에도 여전히 안정적인 공간을 찾아 동분서주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와 같은 시네마테크의 고질적인 문제를 헤쳐 나가기 위해 시네마테크는 2010년 1월 15일 오후 5시,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서울에 시네마테크 전용관을 건립하기 위한 추진위원회(이하 시네마테크 건립 추진위) 발족식과 기자회견을 가졌다. 정윤철 감독의 사회로 진행된 이날 행사에는 추진위원장에 위촉된 이명세 감독과 친구들 영화제 대표인 박찬욱 감독을 비롯해 봉준호, 최동훈, 김지운, 윤제균, 류승완, 이경미 등 8명의 감독들과 김성욱 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래머가 동참했다. 이날 발족식은 기자들뿐만 아니라 일반관객들도 자유롭게 시네마테크에 관한 궁금증을 풀 수 있는 자리였고, 참석한 감독들이 개인적으로 가지고 있던 시네마테크에 관한 이야기를 공유할 수 있는 시간을 갖기도 했다.

서울에 시네마테크 전용관이 없는 것은 문화의 수치다 - 박찬욱

정윤철 감독: 서울시에는 시청이 있어야하고 기독교인들에게는 교회, 불교인들에게는 절이 필요하듯 영화인들에게는 시네마테크라는 곳이 필요하다.
최동훈 감독: 시네마테크에 와서 영화를 보는 게 영화를 만드는 만큼이나 재밌다는 걸 느꼈다. 단순 영화인에 대한 문제도 있지만 일반관객들이 다른 국가들과 한국영화의 클래식을 관람할 수 있는 기회가 보장되기를 바란다. 삶에 지친 사람들에게 행복을 주는 영화관이지 않을까.
박찬욱 감독: 영화 공부 하던 때 교과서에 실리는 꼭 봐야 하는 영화들을 볼 기회를 가지지 못한 채 감독이 되었고, 그렇게 영화를 만들다보니까 아시다시피 족보 없는 영화가 자꾸 만들어진다(웃음). 영화를 배우고 감독이 되려하는 후배들이 더 이상 그런 길을 밟지 않기에라도 이런 곳이 있어야한다. 만약 불법 다운로드를 일삼는 사람들이 ‘도대체 고전예술영화들은 어디서 보냐’라고 물었을 때 ‘시네마테크에서 그런 영화들을 볼 수 있다’라고 자신 있게 이야기 할 수 있어야 하지 않겠나. 경제나 인구로 이런 어마어마한 도시인 서울에 시네마테크하나 유지하지 못한다면 이건 수치라고 생각한다.

시네마테크가 있는 부산이 부럽다 - 봉준호

이명세 감독: 말로만 듣던 시네마테크를 미국 ‘필름포럼’이라는 공간에서 만났다. 그로 인해 여태 찍었던 영화 속에서 나름의 체계적인 정리를 했고, 서울에 시네마테크가 생겼다고 이야기를 들었을 때 기뻤다. 이런 귀중한 공간들이 영화인들이나 목말라했던 후배감독들 뿐만 아니라 더 많은 사람들이 찾아줘야 하는데 왜 이렇게 찾지 않는지 궁금했다. 이 보물창고를 유지해야 보물들이 전달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봉준호 감독: 한 나라 영화산업 문화의 자존인 시네마테크가 몇 년마다 옮기면서 번듯한 보금자리 하나 없다는 게 부끄러운 일인 것 같다. 프랑스에 가볼 일이 있다면 시네마테크 프랑세즈를 둘러보시기를 바란다. 입이 딱 벌어질 정도다. 참 부러웠다. 멀리가 아니더라도 부산에 가보시면 훌륭한 시설이 있는데 어쩌다가 없는 게 없는 서울은 이렇게 되었을까. 반성하고 있다.

시네마테크는 영화의 도서관이다 - 윤제균

윤제균 감독:
일반적인 책들을 파는 서점이 있다. 그곳에는 베스트셀러 되는 작품과 이슈화되는 작품들이 놓여있다. 하지만 도서관이라는 곳도 책을 보유하고 있다. 철이 지났지만 보고 싶은 책이 있거나 서점에 팔지 않는 책들이 있을 때 그런 것들을 보관하는 도서관이 있어야한다고 생각한다. 쉽게 생각해서 서점과 도서관의 차이가 아닌가. 시네마테크는 영화의 도서관이다.
김지운 감독: 90년도 초반 아르바이트해서 모은 돈으로 무작정 유럽에 갔다가 두 달 동안 시네마테크 프랑세즈에서 100편의 영화를 봤는데 보잘것없었던 영혼을 가졌던 사람이 좋은 영화를 통해 더 나빠지지는 않는 경험을 했던 것 같다(웃음). 그런 의미에서 시네마테크는 은총의 공간이고 인생의 질을 고민하게 만들었던 공부방이다.
류승완 감독: 최근에는 시간의 흐름과 함께 영화가 사라지고 있다. 단관개봉시절에 한 편의 영화를 두 달 세 달보고 그런 시절은 오지 않는 거잖나. 역사에 기록되는 영화 뿐 아니라 불량식품처럼 취급되었던 영화도 보는 등 더 재밌게 즐기며 살아갈 수 있는 좋은 공간이 시네마테크다.
이경미 감독: 영화공부도 늦게 시작한 편이고 영화도 못 본 것이 많은데, 지금도 시네마테크를 통해서 재미있는 영화들을 본다는 생각을 하면 흥분이 된다. 잘 지켜졌으면 좋겠고 더 많은 사람들이 찾을 수 있는 공간으로 거듭나기를 바란다.


이처럼 이날 발족식 참석자 모두는 하나같이 상기된 모습을 보이며 시네마테크에 대한 열정을 내비쳤다. 김성욱 프로그래머는 전용관을 건립하기 위한 추진위원회 발족식이 굉장히 기념비적인 순간이라는 것을 강조하며, 시네마테크의 연혁을 간단히 설명했다. 그에 따르면 1990년대 초반 비디오테크부터 출발해 영화사 100주년을 기념하며 전국시네마테크연합이 창립되었고, 2002년 한국시네마테크협의회가 사단법인 인가를 받으며 발족, 이후 서울아트시네마는 소격동 아트선재 공간을 대관해서 수많은 회고전과 특별전을 진행해왔다 한다. 2004년 재임대계약을 할 수 없다는 통보를 받고 서울아트시네마는 존폐위기를 맞지만, 2005년도에 안국동 시기를 마감하고 낙원 허리우드극장으로 옮겨오면서 서울아트시네마는 다시 전용관을 마련했다. 그 다음 해 1월 시네마테크 지원을 결의해주었던 다수의 영화감독들이 주축이 되어 처음으로 친구들 영화제가 열리고 그렇게 2010년 5주년의 해가 찾아온 것이다. 시네마테크 부산의 경우 창립때인 1999년부터 전용관으로서 역할을 다해왔지만, 서울은 안정적인 전용관 마련이 불투명한 상황이다. 김성욱 프로그래머는 한국시네마테크협의회 창립 10주년이 머지않은 시점에서, 서울에 시네마테크 전용관을 건립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고 시급한 일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2008년 서울시와 영진위가 영화인들과 시네마테크의 요청으로 진행하다 정책결정자들이 바뀌면서 좌초한 시네마테크 전용관의 건립을 이어가야 한다고 말했다.

서울시가 다시 나서야 한다

김성욱 프로그래머의 간단한 경과보고가 끝난 후, 추진위원장인 이명세 감독의 발족 취지문 낭독순서를 거쳐 시네마테크를 지지하는 감독들과 영화사 스폰지, 퍼시픽엔터테인먼트 등에서 참여한 필름 프린트 기증식이 이어졌다. 박찬욱 감독의 <박쥐>, 봉준호 감독의 <마더> 등 기증자들은 자신의 흥행작 혹은 최근작 프린트를 시네마테크에 기증했다. 감독들에게는 분신인 프린트를 기증함으로 극장의 중요성과 영화박물관의 중요성을 상기시켰던 기증식은 한국시네마테크협의회 최정운 대표의 손을 통해 소중하게 전달되었다.

극장 안을 가득 메운 기자들의 질의응답을 마지막으로 ‘서울에 시네마테크 전용관을 건립하기 위한 추진위원회 발족식’은 막을 내렸다. 여러 감독들의 담소로 인해 편하고 훈훈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되었던 발족식은 서울에 시네마테크 전용관의 건립이 절실히 필요하다는 것을 다시금 느끼게 해주었던 뜻 깊은 자리였다. 이명세 감독이 말하듯 시네마테크는 영화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가 녹아있는 소중한 ‘보물창고’이며 이 보물창고를 지키기 위해 우리는 시네마테크의 안정된 공간 즉 ‘시네마테크 전용관 건립’ 문제에 모든 힘을 실어주어야만 한다. 시네마테크 전용관을 건립하기 위한 추진위원회가 스스로 발족식을 거행했듯이 시네마테크를 사랑하는 관객들과 영화인들의 관심 또한 시급하다. 정윤철 감독이 말하듯 교회와 절간은 신도들의 열정과 참여로 인해 세워지듯 시네마테크의 전용관 건립 또한 영화의 보물창고를 소중하게 지키기 위한 자발적인 관객운동이 되어야만 가능한 것이다. (강민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