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 메뉴

CINEMATHEQUE DE M. HULOT

Historias marginales 본문

소실

Historias marginales

Hulot 2009. 1. 18. 20:27
장 르누아르의 <강>은 정말 아름다운 영화다. 지난해 '장 르누아르 회고전'을 하면서 다시 봤던 르누아르의 영화가 문득 생각나 다른 일들을 잠깐 멈추고 DVD로 몇 장면만을 들여다봤다. 가끔씩 시집을 들춰보거나 사진집이나 그림을 들여다보듯 영화를 볼 때가 있다. <강>은 마치 지뢰밭을 걷는 듯한 긴장감과 불안한 느낌으로 마음을 산란하게 만든다. 과거로부터 탈출하는 것의 안도와 미지의 경험에의 긴장이 조용한 감동을 준다. 앙드레 테시네의 <Loin>이란 작품을 보면 장 르누아르의 <강>을 인용하는 아름다운 순간이 있다. 누구나 멀리 떠나고 싶은 느낌이 들 때의 젊은 마음이 있는데 현실은 언제나 살얼음같이 느껴지곤 한다. 도피하고픈, 저 멀리떠나고픈, 과거와 절연하고 절망적인 현재와 이별하고픈 그런 젊음의 욕망이 <Loin>에도 담겨있다. 
선물로 받은 루시스 페풀베다의 <소외>라는 책을 읽는다. 원제는 'Historias Marginales', 즉 '주변적인 이야기들'쯤 될 듯 하다. 소외의 이야기라는 표현은 조금 더 나아간 듯 하다. 미셀 투르니에의 '외면 일기'쯤 되는 방식으로 아무도 이야기하지 않을 것 같은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를 털어 놓는다. 삶의 거리에서 흔히 마주치는 잊히기 쉬운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들이다.
내가 자주 다니던 곳들은 대부분 요 몇년 사이에 문들 닫거나 사라졌고 마찬가지로 그 곳에 있던 사람들도 만나기 쉽지 않다. 생각해 보면 사람이 북적거리는 곳에 자주 다니지 않았던 탓인지도 모르겠다. 인사동의 잘 가던 음식점들은 대부분 점심 시간인데도 사람들의 왕래가 별로 없던 곳이었다. 때문에 조용히 앉아 밥을 먹고 담배를 한 대 피고 나눠주는 커피도 한잔 마시고 가끔 책을 읽기도 했다. 그렇게 사람이 없던 음식점은 맛은 별로 내세울 게 없었다. 다만 조용한 낮시간의 공간이 내겐 필요했던 것이다. 지난 해 중순 경에 하나 둘씩 그런 음식점들은 사라졌고, 또 그 즈음에 강의를 하던 문예아카데미도 사라졌다. 연말에는 자주 가던 카페도 문을 닫았다. 그러던 것이 이제는 글을 쓰던 '필름 2.0'도 지난 해 말부터 더 이상 나오지 않고 있다. 마지막으로 썼던 카를로스 사우라 회고전 기사, 그리고 개인적으로 준비하던 사무엘 풀러에 관한 글은 사라져버렸다. 잃어버린 물건들의 리스트가 점점 더 많아지고 있다.(hulot)    

'소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5월 26일 수요일 오후의 서울아트시네마  (2) 2010.05.27
2009년 8월 23일  (0) 2009.08.24
Rainy days and fridays...  (2) 2009.07.18
떠나지 않는 삶  (3) 2009.05.03
사회적인 것의 두려움  (0) 2009.05.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