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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INEMATHEQUE DE M. HULOT
이상한 일이지만, (박홍열, 2022)의 오프닝과 마지막의 텅빈 공간과 건물이 마음이 남았던 것은, 생각해보면 그 곳이 지극히 평범하기 때문이다. 경험의 장소가 모두 기억의 장소로 남는 것은 아니다. 이런 범용한 공간은 그럼에도 진지한 사람들의 노력과 고민, 다양한 감정이 남겨진 기억의 장소이기도 하다. 그래서 좋은 영화는 늘 미지성을 동반하는 친밀한 곳으로 관객을 다가가게 한다. 이를테면, 아이들은 주로 도토리마을 방과후 건물 지층에서 뛰어노는데 오프닝과 마지막에서 우리는 그런 아이들이 사라지고, 비어있는, 텅 빈 공간과 마주한다. 오프닝에서, 이 비어 있음은 심지어 유일한 장면전환 효과인 디졸브로 시각화되어, 기억의 잔상을 남긴다. 이때 잔상이란 앞서 말했듯, 실은 내가 전혀 알지 못하는, 특이적이지..
특별히 기억하는 토크 중의 하나가 2010년 2월,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에 참석한 홍상수 감독이 칼 드레이어의 (1955)에 대해 말했던 날이다. 그 당시 매년 나는 그에게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에 참여해 달라고 제안했고, 그는 주저 없이 한 편의 영화를 선택했다. 에리히 본 스트로하임의 , 장 비고의 , 부뉴엘의 , 그리고 그 해에는 를 꼽았다. 상영 후 토크에서 를 선택한 이유에 대해 그는 이렇게 말했다. ”이 영화는 영화를 만드는 사람으로서 내게 이상적 표본이 된 영화 중 하나다. 이후에 가끔 이 영화를 다시 떠올리면 카메라의 수평운동, 계속되는 카메라의 느린 움직임과 긴 기다림이 기억난다. ‘긴 기다림이 있어야만 이 결말이 믿어질 수 있구나’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카메라 움직..
(2022)의 오프닝을 우연히 다시 보다가 서울극장에서 정동길로 이어지는 플래시백 장면에서 마찬가지로 우리들 기억 속의 시간이 기묘하게 흘러가고 있음을 새삼스레 깨닫는다. 말하자면, 영화를 보는 경험이 만들어내는 가시화된 이미지의 경험, 즉 특이한 기억을 낳는 힘에 대해서 말이다. 이 영화를 제작할 당시에 감독은 서울극장이 폐관하리라고는 생각지 못했으니, 오프닝과 라스트에서 영화속 인물들이 극장 앞에서 과거의 만남과 사랑하는 이의 부재를 떠올리는 것은 자연스런 일이었을 것이다. 시간은 흘렀지만, 그들의 기억을 공유할 영화(관)은 여전하다. 아니, 그럴 거라 믿었을 것이다. 죽음과 부활의 기획. 하지만, 정작 2022년 이 영화가 공개될 때에 서울극장은 폐관했고, 기억을 떠올릴 장소가 사라졌다. 인간적 관..
1940년대 할리우드 스크루볼 코미디 장르를 분석한 스탠리 카벨은 이 장르를 특별히 ‘재혼 희극’이라 불렀다. 같은 반려자와의 두 번째 결혼으로 끝맺는 영화들로, 불화를 거친 커플이 서로 관계의 올바름을 재확인하는 이야기다. 조지 쿠커의 (1940)가 그런 재혼 희극의 대표작이다. 이야기는 이중적 과정을 거친다. 그 하나가 타인에 대한 불신과 불관용을 극복하는 것이라면, 다른 하나는 자신의 선택에 대한 불확실성을 넘어서는 일이다. 재혼 희극은 그러므로 질서와 불화의 가능성을 생각하게 하고, 불화를 넘어가는 창조적인 방법을 고안하게 한다. 불화를 용인하는 것이 민주주의의 핵심이라는 자크 랑시에르의 말을 상기한다면, 이런 영화를 정치의 알레고리로 읽는 것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가령 의 크레딧에 차례로 등장..
연말에 소개하는 포르투갈 영화는 다양하고 새롭다. 미구엘 고메스의 신작인 , 에릭 로메르의 연극 극본을 바탕으로 한 히타 아세베두 고메스의 , 올해 세상을 떠난 철학자이자 미술 비평가인 장 루이 셰페르가 참여한 , 새로 주목받는 두 신예감독의 데뷔작, 베를린영화제 국제비평가연맹상을 수상한 관객을 독특한 영화적 경험으로 안내할 독특한 퍼포먼스 영화 , 아홉살 소녀의 눈으로 바라보는 가족, 이민, 신비주의, 트라스-우스-몽투스 문화에 관한 초상 , 그리고 다큐멘터리와 픽션의 결합을 시도한 포르투갈 무성영화의 대표작 , 두 편(무성영화 포함)의 복원된 클래식을 상영합니다. 2022 포르투갈 영화제 Portuguese Film Festival 12월 14일(수) ~ 22일(목) 내림 마장조 삼중주 O Trio ..
나는 확신에 찬 기자나 평론가, 감독을 경계한다. 아무리 고매해도 영화보다 자기 자신과 주의 주장을 크게 돋보이려는 말과 글이 꺼려진다. 진실은 파편으로 나타나고, 게다가 영화는 항상 우리를 피해 달아나기 마련이다. 요시다 기주는 그런 달아나는 영화를 평생 쫓은 작가였다. 그는 우연히 시작한 영화라는 일이 평생의 일이 되었지만, 자신에게 어울리는 일인지 계속 망설이며 살아왔다 말했다. 영화는 언제나 그에게 수수께끼였고, 끊임없이 자신에게서 영화가 달아나, 그것을 쫓는 수 밖에 없었다. 2014년 서울아트시네마에서 회고전을 개최하던 때에 그는 칠순을 넘긴 나이였고, 그 무렵 인터뷰에서 그는 이제 다른 일을 할 수 없으니, 영화감독으로 죽을 도리 밖에 없어, 감독이라는 직업이 이제 필연이었다 생각되기를 원했..
올해 마지막 ‘실험영화 월례상영회’에서는 바바라 루빈의 전설적인 작품 (1963)와 그녀에 관한 다큐멘터리 (2019)를 상영한다. 실험영화 월례상영회를 기획하며, 일치감치 연말에는 이 작품을 상영할 계획을 세웠다. 그녀의 작품에 흥미를 갖게 된 것은 2018년 베를린에 체류할 때다. 아스날에서 상영이 있었고, 거주하던 베딩 근처의 사비 칸템포러리(하룬 파로키 인스티튜트가 있는 곳이기도 하다)에서 ‘Edit Film Culture’ 전시가 있었는데, 요나스 메카스와 나눈 바바라 루빈의 솔직하면서도 혼란스런 편지(아래의 사진들)에 눈길이 끌렸다. 그해 요나스 메카스는 아스날을 찾아 개막식에 참석하고 그의 친구들과 공연을 할 예정이었지만, 개막식에서 접한 것은 건강 때문에 참석하지 못한다는 그의 영상 메시지..
“어떤 전통예술도 영화만큼 잠재된 것과 획득한 것 사이의 불균형이 크지는 않다. 영화는 다른 어떤 형태로 인간을 표현하는 것보다 효과적으로 사람을 자극할 수 있으며, 또 무엇보다도 효과적으로 사람을 마비시키기도 한다...영화는 자유 정신에 맡겨진 훌륭하고 위험한 무기이다. 영화는 생각, 감정, 본능의 세계를 표현하는 최상의 매체이다. 내가 영화를 통해 하고자 하는 것은 사람들을 일깨우는 것, 그리고 모든 사람이 가장 좋은 세상에서 살고 있다고 생각하게 만들려는 체제순응주의의 모든 규율들을 파괴하는 것이다.” (루이스 부뉴엘) 2000년, 그의 탄생 백주년을 기념해 처음 개최한 회고전 이후 17편의 작품을 상영한 2005년의 대규모 회고전, 멕시코 시절의 작품을 상영한 2008년의 미니 회고전 이후 오래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