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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INEMATHEQUE DE M. HULOT
말이 실패하는 곳에서, 사랑이 떠난 시간에서 음악이 시작한다고 한다. 음악을 듣는 것은 그래서 우리를 매번 돌이킬 수 없는 회한에 젖게한다. 우울할 때 음악을 듣는 일은 그래서 예전에는 피했던 일이다. 대신 그럴때 나는 책을 꺼내들곤 했다. 책은 우울에서 벗어나게 하고 음악은 돌이킬 수 없는 시간에 머물게 하기에. 그러면 영화는 우리를 어디에 데려다줄까. 혹은 영화는 어디에서 시작하게 되는걸까.
극장의 빈 자리는 정말 비워진것이 아니라 거기 없는 사람들, 떠났거나 아직 오지 못한 사람들의 영혼으로 채워져 있다고 생각해왔다. 좋은 영화는 빈 자리의 영혼의 무게를 동반한다. 극장안의 우리는 혼자라도 홀로는 아닐 것이다. 우리는 여기 없는 이들이 볼 수 없는 것들을 앞서 보고 있는 일종의 척후병斥候兵들로- 사실 누가 그들을 파견했는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차용되어 나온 것이다. 빈 자리의 그들은 우리의 정찰과 탐색 이후에 어쩌면 나중에 오게 될 것이다. 극장을 하는 나의 믿음은 이러했다. 사람들은 이제 생각을 바꾸라 한다. 대체로 영업의 논리는 다를 수 밖에 없다. 문화라 부르는, 사실은 영업과 통상通商의 규칙은 채워짐을 욕망하고, 요구한다. 대체로 관료들이나 통상인들의 주문이 그러한데, 이제는 다른 ..
고양이의 눈은 아게이트 보석의 깊이를 갖고 있다고 한다. 마르케의 기욤이 그러하듯 고양이는 모든 걸 지켜본다. 비오는 날 김경의 '상상 고양이'를 보니 그런 냥이와 살아보고 싶은 생각이...
코엔 형제의 을 보았다. 기억나는건 물론 노래들과, 무엇보다 고양이. 고양이는 르윈 데이비스의 생활 공간에서 먼저 깨어나 움직이고 집에서 빠져나와 그의 예술을 위한 험난한 여정에 동행한다. 그는 고양이를 다른 이들에게 부탁하려 했지만 아무도 고양이를 보호할 이들은 없다. 르윈 또한 고양이를 두고 제 길을 떠나려 한다. 르윈이 도달하려 했던 두 세계를 왕래해 두 단절된 공간을 대면시키는 고양이의 믿기 힘든 모험. 고양이를 부탁해.
아침에 일어나 창의 커튼을 젖히자 차오프라야 강의 탁 트인 전망이 눈에 들어왔다. 그날 이후로 가끔 호텔에서 보았던 이 풍경을 꿈에서 만나곤 한다.
영화는 우리의 음악.. 그래, 음악처럼 우리는 듣는다. 눈을 감는 것과 같다. 그리고 이미지를 떠올린다. 만약, 우리가 그렇게 이미지를 떠올릴 수 있다면, 눈을 감은 채. 그렇다면 우리는 다른 것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라는. 즉, '나'가 아니라, '우리'라는. 아마도 이 지점에서 시네아스트와 그렇지 않은 나의 분화의 지점이 있으리라. 나는 그것이 '나'의 음악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나'의 이미지라고. 그런데 시네아스트는 그것이 '우리'의 음악이라 말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걸 담아낼 이유가 없을지도 모른다. 달리 말하자면, 영화란 언제나 '내'가 '타자(들)'과 관계를 맺어야만 성립하는 것이다. 그걸 절절하게 느끼는자만이 시네아스트가 될 수 있다. '우리'는 듣는다. '우리'의 ..
우연히 공연장을 지나다 비를 피하려 들어선 순간 흘러나오는 노래에 취해 가만히 대기실에 앉아 음악을 들었다. 음악은 종종 시간을 거스르게 한다. 내가 아직 어릴때 긴 머리에 노래를 부르는 여자에게 빠졌던 적이 있었다. 옆에서 검은 코트에 긴 머리에 담배를 물고 기타를 연주하던 한 남자가 있었고, 난 그 자리에 있고 싶었기에 기타를 배웠었다. 그렇게 보았던 상상은 결코 실현되지 않았지만 가끔 그 노래소리들을 듣곤한다. 아니 그 소리들을 피하려곤 한다. 노래와 음악은 벽을 넘어서고 몸을 꿰뚫고 경계의 기슭으로 이끌기에. iPhone 에서 작성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