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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INEMATHEQUE DE M. HULOT
베르트랑 타베르니에 감독이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들었다. 미국 영화를 너무 사랑한 이 프랑스 감독을 처음(이자 사실 마지막이다) 만났던 것은 2002년 6월의 일이다. 센트럴시네마에서 열린 서울 프랑스 영화제에 그의 신작 이 상영됐고, 주연 배우와 함께 그가 극장을 찾았다. 그의 영화가 정식 개봉된 적은 없기에, 기자들의 질문이 온통 배우에게만 집중되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는 영화 탄생 백주년을 맞던 해에 ‘미국영화사 50년’이라는 꽤 두툼한 책을 출간하기도 했던 미국 영화광으로, 나중에는 라는 다큐멘터리를 만들기도 했다. 고다르가 말했듯이 그는 해방과 시네마테의 아이로, 어린 시절 봤던 영화의 기억을 희망과 비슷한 감정으로 기억한다. 이를테면 그는 1944년 고향 리용의 해방을 알리는 하늘을 뒤덮은..
가모 강변에서 도시샤 대학을 향해 걸어가다 시장거리에서 우연히 들린 곳이 ‘데마치 좌’라는 교토의 영화관이다. 벚꽃이 만발하던 4월 이맘때다. 세타 나츠키의 라는 영화를 상영하고 있었다. 1층에는 다양한 영화서적이 구비되어 있고, 가볍게 커피와 맥주를 마실 수 있는 라운지 카페가 있고, 2층 계단을 올라가면 상영관이 있는 작고 예쁜 영화관이다. 별도의 매표소 없이 일본의 라멘집처럼 자동판매기로 표를 구입할 수 있다. 최근, 이 극장도 코로나19 바이러스의 감염 확대로 나날이 심각한 상황에 빠져 수익이 70%나 감소해,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 3개월 이내에 폐관을 피할 수 없다고 한다.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이 왕래하는 영화관은 지금은 사람들이 피해야 할 장소가 됐다. 영화관은 관객들을 적극적으로 초대할 수도..
초등학교 3학년때, 언덕배기 빼곡한 집들로 오르는 계단 위 좁은 골목 옆 이층집에 살던 친구 집에는 귀엽지만 실은 난폭한 강아지가 있었는데, 어느날 반가운 마음에 슬쩍 내민 손을 강아지가 덥썩 물어, 살갗에 붉은 잇자국을 선명이 남겼다. 어린 마음에 ‘소년생활’에 연재중이던 ‘강가딘’이란 만화에서 우연히 봤던 ‘공수병’에 걸린게 분명하다며 근거없는 망상에 사로잡혀, 당시 유행하던 영화속 시한부 인생 주인공마냥 몇 달을 마음 졸이며 강아지는 멀쩡한데 내가 물을 무서워하며 집 앞을 지날 때마다 마지막 잎새를 새어갔던 두려움의 근원지였던 곳이 이제는 건물더미와 콘크리트 덩이들로 변해, 파괴후에도 변하지 않는 유년기의 신중한 자취로 남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소가
교토에서 온 영사기사 이시이 요시토石井義人씨의 35mm 영사기 점검과 고장에 대한 대처, 유지보수에 관한 워크숍을 조금 떨어져 비좁은 영사실의 벽에 기대어 지켜보고 있었다. 영화에 관한 완벽하게 실용적인 학습법이자 살아 있는 실험실이다. 서울에 도착하자마자 그는 마침 오즈의 무성영화 ‘학생 로망스’를 보지 못했다며 극장에서 영화를 보고 싶어했다. 영화가 끝나고 영사기의 상태를 곧바로 점검하고 싶다며 영사실로 들어가서는 예정된 워크숍은 내일이건만, 이미 영사실에 들어선 이상 그의 관심, 아니 직업적 호기심은 억누를 길이 없었다. 소음 가득한 영사실에서 실제 기계들을 조작하고 뜯어보고 점검하며, 질문하고 토론하며 의견들을 교환하는, 손으로 생각하고 일하는 그런 장인들의 세계는 볼 때마다 감탄에, 존경하지 않..
지난 해를 제외하고는, 매년 연말에는 한 해 시네마테크에서 상영한 영화들을 되돌아보곤 한다. 올해의 베스트를 뽑기 위한 것은 아니다. 그런 일은 극장을 하는 이들의 몫이 아니다. 다만 우리 삶의 적지 않은 부분이 필름의 추억을 통과해 남게 되기에, 매 한 편의 영화들이 영화관에 발길을 주었던 관객들의 삶에 어떤 사연들로 새겨지게 될까 궁금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필름과 우리들 사이에 생성된 추억은, 무어라 말할 수 없는 감정들로, 그것에 대해 설명하고 글을 쓰는 일은 어렵고 대체로 많지 않기에, 거의 실어에 빠진 침묵 속에 놓여있기 마련이다. 좀처럼 알려지지 않는 그런 비밀에 관심을 두기에 어둠을 여전히 필요로하는 영화관을 하고 있는 것이리라. 대부분의 관객들은 영화를 봤다고 해서 그가 경험한 것을 글이..
영화관의 미래가 밝다고 생각하시나요? 열 평 남짓한 극장 로비에 앉아 질문하던 이들에게 그가 되물었다. 창문 너머로 느릿느릿 해가 저물고 있었다. 잠시 동안 침묵이 흘렀다. 그가 다시 물었다. 영화의 미래가 밝다고 생각하시는 분 있나요? 방금 전까지 우리는 일본 영화관의 폐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던 중이었다. 서너 명의 사람들이 손을 들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가 말을 이었다. “대체로 극장의 미래가 어둡다고 생각하시는군요. 이게 바로 방금 전의 질문에 대한 제 대답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예의 젊고 활력 넘치는 목소리에 안경 너머 부드러운 눈빛은 여전했다. 정말 묻고 싶은 것이 있다고도 했다. “영화관을 운영하면서 무엇이 가장 큰 고민이고, 어떤 일이 괴로웠나요? 활동하면서 즐거운 일이 무엇이었나요..
2005년,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열린 대만영화제에 참석한 차이밍량은 감독 자신이 직접 표를 파는 행위에 나섰다고 말했다. 관객을 찾아나서는 모험을 벌이는 중이라는 것이다. "대부분의 관객들은 내 영화가 어떤 영화인지 알려고 할 뿐 영화를 제대로 보지 않는다." 그는 동시대 대만 관객들이 영화가 ‘보는 예술’임을 제대로 알지 못한다고 말한다. "내 영화의 시사회장은 다른 영화들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를 보인다. 대부분의 시사회장에서는 영화가 끝난 뒤 우레와 같은 박수가 있거나 야유가 뒤따른다. 하지만 내 영화를 본 관객들의 반응은 대부분 느리다. 그리고 영화에 대해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어쩔 줄 몰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차이밍량은 “제발 내 영화를 눈으로 보아 달라”고 호소했다.그로부터 대략 십년이 지..
십년 만에 아트선재센터를 찾아 영화를 봤다. ‘허우 샤우시엔 회고전’을 진진과 공동 개최하면서 개막행사 참석을 요청받았기 때문이다. 간단한 개막행사에 이어 '자객 섭은낭'을 보았다. 1시간 44분 동안 영화와 함께 과거의 기억들이 떠올랐다. 서울아트시네마가 처음 아트선재센터 지하에 서식지를 마련했던 시절, ‘허우 샤오시엔 회고전’을 2003년 4월에 개최했다. 당시 6,000여명의 관객들이 왔던 것으로 기억한다. 한 해가 지나 2004년 10월 무렵, 아트선재센터가 공사를 이유로 계약을 더 이상 할 수 없다는 통고를 해왔다(사실 이런 방식이 최근 벌어진 일에서도 비슷하게 나타나서 놀랍기도 했다). 2000년이래로 시네마테크가(당시는 문화학교서울 영화제로 개최했다) 회고전을 계속 해왔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