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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INEMATHEQUE DE M. HULOT
대체로 일을 하다보면 비슷한 질문을 받는 편이긴 한데, 얼마전 '페드로 코스타 영화를 왜 좋아하냐'라는 물음에 몇 가지 이유를 들었던 것이 생각났고, 그 때문에 이런 서두의 짧은 글과 그와 2016년에 나눴던 인터뷰를 다시 소개하게 되었던 것 같다. 이후에 더 말을 보탤지도 모르겠지만, 당장은 그 때 떠올린 이유를 말해야만 할 것 같다. 2001년 페드르 코스타 감독을 광주 국제영화제에서 처음 만났었다. 당시 을 상영하던 때다. 어둑하고 날선 눈빛, 하지만 작은 일에도 이내 맑은 미소를 지어보이는-그럴때마다 살짝 버드렁니가 드러나곤 했다-, 그의 전작들의 '피와 뼈'의 주인공들과 닮아보였던, 그러면서도 영화에 대해 거침없이 말하던 그의 모습을 기억한다. 그 이후로 전주국제영화제에서, 그리고 2013년에는..
사회적이고 문화적인 논쟁들. 상반된 비전들이 마지막으로 허용되던 시절인 아메리칸 뉴시네마의 마지막 황금시대는 1970년대 말에 종말을 고한다. 피터 바스킨트에 따르면 80년대 변화의 양상은 영화의 주역들이 바뀌는 것에서 시작한다. 창조적 감독들이 주도하던 할리우드 문화는 이제 사무실에 앉아 투자 수익을 고민하는 회사의 중역들, 투자자들, 변호사들, 이른바 비즈니스맨들의 전일적 지배로 변경된다. 또 다른 변화는 생산과 소비를 동시에 장악하고 대중의 행동을 강력하게 규정하는 광고와 마케팅이다. 영화는 이제 홍보 여부에 따라 평가받고, 한 문장으로 요약될 수 있는 ‘하이 컨셉’의 아이디어가 성공작을 만든다. 영화학자 존 벨튼은 1970년대 후반과 80년대에 성공을 거둔 영화들이 대중을 불편하게 하기보다는 안심..
이 영화에 대해 무엇을 말할 수 있을까. 아마도 모든 감정들. 질투와 불안, 기대와 염려, 자유와 쾌락, 사랑과 우정. 그 무엇보다 모든 이들이 품고 있는 열정. 물론 이를 구현하는 일은 어렵고 그만큼 고귀한 것이다. 그래서 이 영화의 모든 아름다운 장면들은 낮은 위치의 사람들이, 한번도 무대의 주인공이 되지 못했던 이들이 선망의 대상이 되는 무언가를 바라보고 올려다볼 때이다. 올려다보는 사람들의 기대와 질투. 낮은 위치의 사람들에 카메라를 두는 것. 그것이 그레미용의 휴머니즘이다. 하지만 그 짜릿한 비행을 맛본 이들만이 누릴 수 있는 공유될 수 없는 우정과 연대. 장 그레미용의 ‘창공은 당신의 것’.
올해의 친구들에게는 공통 주제를 제안했다. ‘저주받은 영화들’을 추천해 달라 부탁했다. 장 콕토가 제안한 이 개념은 대중들에게 제대로 보이지 않는 영화들을 겨냥한 말이다. 그렇다고 이 말뜻이 1940년대의 문맥 그대로 지금 통용된다고는 말할 수 없겠다. 시네마테크 친구들이나 관객 선택의 목록에서도 딱히 일관성이 보이지는 않는다. 어떤 영화들은 제목조차 낯설지만 다른 영화들은 잊고 있었을 뿐 알려진 작품들이다. 한 번도 상영된 적 없는 무성영화가 있는가 하면 근작들도 있다. 저열한(?) 장르영화나 B영화의 목록을 발견할 수 있지만 거대 예산의 작품들도 있다. 추천자들 각자의 취향이 고려됐을 것이다.기획자로서 물론 기대하는 것은 각자의 취향을 넘어선 새로운 영화사의 배치이다. 가령, 저주받은 영화는 당시 ..
* 아래의 글은 영상자료원의 2016 사사로운 리스트로 꼽은 열편의 영화에 대한 글이다. 무엇보다 내가 감동한 '초콜릿 케이크와 호류지'에 대한 마음의 글. 지금 말하려는 것은 누구에게나 있을 지극히 사적인 영화들의 목록이다. 만들고 싶은 영화, 꿈꾸는 영화들, 마음으로 두고 싶은 영화들이 있기 마련이다. 이 열 편의 작품은 굳이 말하자면 각별히 올해 내 마음에 다가왔던 영화들이다. 그러니 작품을 평가하거나 가치를 나열할 생각 대신에 마음이 동했던 몇 가지 이유들을 적으려 한다. 먼저, 최근에 세상을 떠난 두 작가의 영화들이 떠오른다. 마누엘 드 올리베이라의 (1993), 그리고 샹탈 아커만의 (2015). 이 두 편의 영화는 서울아트시네마에서 기획한 추모전의 일환으로 상영했다(사실 이들을 추모한다는..
당나귀, 우리, 발타자르 로베르 브레송의 는 그의 영화 중에서도 꽤 예외적인 작품처럼 보인다. 전작들의 긴밀하게 연결된 구조와 비교하자면 이야기가 분산적이고 산만하다. 이런 느슨한 구성은 그의 유작 과 비교해 볼 만하다. 이 말 그대로 돈의 순환을 그렸다면, 이 영화에서 순환되는 것은 당나귀이다. 에서의 우연적 연결들은 그러나 작품의 주제와 무관하지 않다. 주인공은 제목 그대로 당나귀이다. 원제 ‘Au hasard, Balthazar’에는 ‘우연 hasard’이라는 단어가 포함되어 있다. 이 영화는 우연히, 그때그때 주인의 사정에 따라 다른 사람에게 양도되는 발타자르의 운명을 암시하고 있다. 당나귀 발타자르는 영화 대부분의 장면에 모습을 보인다. 발타자르는 주인공이자 사건의 진정한 증인이다. 그는..
비토리오의 질문. "주식으로 사라진 돈은 어디로 가는 건가요?" 혹은, 정서적으로 무미건조해진 헤어진 연인들의 사랑은 어디로 가는 것일까? 바르트가 안토니오니를 예찬하며 말했던 것처럼 '일식'에서 안토니오니는 멈추어 서서 오랫동안 대상과 사물이, 인물이 사라질때까지 바라본다. 사물들이 소진될때까지 철저하게 사물을 바라보는 것. 우리들이 없는 세계를 보는 불안. 이는 진정한 영화(관람)의 모험이다. 일식(1962) /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 Eclipse(1962) / Michelangelo Antonioni
“집에 돌아온 걸 환영해요.” 부엌에서 음식을 준비하던 아내 미즈키는 거실 뒤편에서 누군가 지켜보는 인기척을 느껴 되돌아본다. 한 남자가 서 있다. 남편 유스케다. “몇 년 만이지?” “3년이네요.” 둘의 대화는 이상할정도로 담담하게 진행된다. 이들 사이의 3년이란 시간에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알 도리가 없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속내를 알기 어려운 꽤나 느긋한 부부의 대화다. 그가 3년 만에 되돌아온 유령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더라도 이런 상냥한 환대에 어떤 차이가 있는 것은 아니다. 남편은 실제로 3년 전에 사라졌고, 시체는 발견되지 못했지만 죽은 것은 사실이다. 유스케는 자신의 몸이 바다에 있고, 고기들이 몸을 이미 씹어 먹어 버렸기에 시체를 보더라도 자신을 알아채지 못할 거라는 끔찍한 말을, 대수롭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