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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INEMATHEQUE DE M. HULOT
* "아녜스 바르다 회고전"이 거의 끝나갈 무렵인 10월 31일 상영 후 서울아트시네마에서 바르다에 관한 강연을 했다. 이 영화는 한국에서는 거의 소개될 기회가 없었던 작품이다. 하지만 바르다의 예술가의 초상화 작업, 혹은 그녀 자신의 자화상과 관련해서 이 영화는 대단히 중요한 위치를 점하는 작품이다. 그 일부를 소개한다.(김성욱) 김성욱(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래머): 이 영화는 DVD로도 출시된 적이 없고, 예전에 서울국제여성영화제에서 열렸던 아녜스 바르다 특별전 때도 상영되지 않았던 작품 중에 하나라서 오늘이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필름 상영을 하는 날이었을 것이다. 반면에 이 영화 다음에 만들어진 라는 작품은 유일하게 한국에 비디오로 출시되었던 작품이다. 이런 상황 자체가 방금 보신 영화가 놓인 처지를 ..
한때 아시아 영화들이 환대를 받던 때가 있었다. 불과 십오 년 전만 해도 중국 5세대의 영화들이나 대만 뉴웨이브, 이란 뉴웨이브 감독들의 영화가 극장에서도 제법 인기를 끌었다. 중국의 장예모와 첸 카이거, 대만의 허우 샤오시엔, 차이밍량, 그리고 에드워드 양, 이란의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등의 작가가 영화잡지는 물론이고 신문에 소개되기도 했다. 이제 호시절은 끝난 것처럼 보인다. 일본 영화를 제외하고 극장가에서 아시아 영화들을 좀처럼 찾아볼 수 없다. 21세기에 새롭게 출현한 아시아 영화들 대부분이 거대한 공백처럼 존재유무를 확인하기 힘들다. 이는 아시아 영화들의 퇴보를 의미하는 것일까? 사실은 그렇지 않다. 국제영화제를 방문하거나 세계 영화계의 동향을 살펴보면 최근 가장 주목받는 영화들 대부분이 아시아 ..
* 이번 주 화요일부터 '아녜스 바르다 회고전'을 개최하고 있다. 원래대로라면 작년에 열렸어야 했던 회고전이다. 그동안 클레르 드니, 샹탈 애커만,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영화들을 소개했고 워낙 좋아하는 아녜스 바르다의 회고전은 일정을 미루고 있었다. 그러던 차에 지난 해 드디어 10월에 회고전을 개최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다른 곳에서 바르다의 영화를 상영하는 행사가 9월쯤에 열린다는 소식을 접했고, 일정상 양보하기로 했더랬다. 대신 21세기의 프랑스 영화들을 소개하는 특별전을 치르기로 했다. 다른 곳에서 바르다의 회고전이 열린다면 아쉽지만 그래도 기뻐하면서 보러 갈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약속과 달리 회고전이 열리지는 않았다. 그렇게 일년이 지났고, 바르다의 영화를 서울아트시네마의 스크린에서 소개할 ..
1. 프랑스의 영화감독 자크 드미의 영화를 극장에서 처음 본 것은 1992년 가을무렵이었다. 지금은 사라진 종로의 코아 아트홀에서 이 재개봉을 했었다. 1991년에 자크 드미가 세상을 떠나면서 프랑스는 물론 전 세계에서 그의 영화를 재평가하는 분위기가 있었다. 이 한국에서 재개봉한 것도 그런 일환이었다. 한국에서의 재개봉 또한 기회였지만, 생각해보면 그 때의 상영은 1991년에 자크 드미가 세상을 떠난 후에 그의 영화를 재평가하기 위한 기획의 일환이기도 했다. 영화가 상영되는 극장에는 남몰래 눈물을 훔치던 연인들이 있었다. 드믄 드믄 올드팬들도 있었다. 그들 가운데 나 또한 끼어 있었다. 영화가 끝난 후 먹먹한 마음에 대학로까지 걸어갔던 기억이 아직까지 생생하다. 가끔은 영화보다 그 때 종로의 거리들이 ..
* 지난 8월 7일 서울아트시네마에서 데니스 호퍼를 추모하는 의미에서 특별상영을 했었다. 상영 후에 했던 강연의 일부를 올립니다. 김성욱(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래머): 올해 데니스 호퍼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데니스 호퍼와 관련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아무래도 가 아닌가 해서 이 영화를 상영하게 되었다. 이 영화는 라스트 부분이 가장 오래 기억에 남지 않을까 한다. 마지막 장면의 파괴적 이미지가 굉장히 인상적이었는데 동시대적으로는 1967년에 만들어졌던 의 마지막 장면 또한 그렇다. 와 같은 해에 나왔던 의 라스트 역시 상기된다. 이 두 영화의 라스트는 굉장히 느린 속도로 주인공들의 죽음을 그리며, 움직임이 정지된 순간의 느낌을 잡아낸다. 반면 의 엔딩은 거의 비슷한 시기에 만들어진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
‘오시마 나기사 회고전’ 특별 좌담 시네마테크 서울아트시네마에서는 ‘오시마 나기사 회고전’을 맞아 일본영화연구자인 히라사와 고를 초청, 전후 일본 영화사에 혁명적 바람을 일으킨 오시마의 세계를 깊이 탐구해 볼 수 있는 특별 강연과 좌담을 마련했다. 지난 18일 오후 ‘오시마 나기사의 영화와 동아시아’란 주제로 김성욱 프로그래머의 진행 하에 히라사와 고, 변성찬, 후지이 다케시, 몬마 다카시 4명의 패널이 참석한 가운데 이어진 좌담은 오시마의 현재성을 살펴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그 현장의 일부를 전한다. 김성욱(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래머): 지금 ‘구로사와 아키라 회고전’도 진행되고 있는데 구로사와의 영화에 비하자면 오시마 감독을 이해하는 것에는 난제가 있다. 당대의 현실과 긴밀한 접속을 이뤄낸 작가였..
'페데리코 펠리니 회고전'이 오늘 개막합니다. 첫 날은 그의 영원한 동반자였던 줄리에타 마시나가 출연한 두 편의 영화가 상영됩니다. 잘 알려진 과 줄리에타 마시나의 변모를 확인할 수 있는 펠리니의 데뷔작 입니다. 줄리에타 마시나는 1920년 이탈리아의 산 지오르지오 디 피아노에서 태어났다. 그녀는 십대에 연기를 시작했고, 연극과 라디오에 출연하기도 했다. 1943년 페데리코 펠리니와 결혼한 마시나는 펠리니의 영화에 출연하기 전부터 이미 여러 편의 이탈리아 영화에 출연했고, 1948년에는 이라는 영화로 연기상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줄곧 마시나를 따라다녔던 이미지는 단연 에서의 영원한 방랑자 젤소미나였다. 펠리니에게 그녀는 각별한 존재였다. 펠리니는 젊은 시절 미국의 만화가이자 일러스트레이터인 프레데릭 오..
엘리아 카잔은 2003년 9월 28일 사망했다. 1975년작인 으로 사실상 영화계를 은퇴했던 경력을 고려한다면 카잔의 후기의 삶이 비교적 조용했을 것이라 생각할 수 있겠지만 사실, 그렇지는 않았다. 97년에 카잔은 860페이지에 달하는 '나의 삶'이라는 자서전을 출간해 화제를 모았다. 그리고 20세기를 마감하는 사건이 있었다. 1999년 3월의 아카데미 수상식, 여기서 카잔은 '평생공헌상'을 수상했다. 곧바로 수상을 반대하는 의견이 나왔다. 카잔이 50년대에 동료들을 밀고했던 것이 문제였다. 1951년 반역행위조사위원회(House Un-American Activities Committee)에서 증언을 거부해 16년 동안이나 할리우드에서 추방됐던 의 아브라함 폴란스키가 분명한 반대의사를 표명했다. 아카데미..